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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세계동물기(이와고 미쓰아키 지음, 김창원 옮김, 진선북스 펴냄) 저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야생사진작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남극, 정글에 이르기까지 37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찍은 동물들의 사계절을 달력 형식으로 묶은 책. 1000장의 사진에 300여종 세계 동물들이 망라돼 있다. 4만 8000원. ●사기(김영수 지음·하이툰닷컴 그림, 애니북스 펴냄) 사마천의 ‘사기’를 만화로~. 20년간 ‘사기’ 연구에만 매달려 온 저자가 EBS에서 진행한 ‘사기와 21세기’ 특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가 직접 내레이터로 등장해 ‘사기’의 인물, 사건을 접하며 쉽게 설명하는 형식. 1만원. ●지저분하고 똑똑한 과학 사전(조이 매조프 글·테리 서럴 그림,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펴냄) ㄱ부터 ㅎ까지 사전식으로 똥, 방귀, 트림, 비듬, 뾰루지 등 온갖 더러운 것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 아이들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저자의 유머와 위트가 과학은 물론 역사, 문화사까지 폭넓게 눈뜨게 한다. 1만 3000원. ●손오공의 여행(오승은 글, 홍상훈 옮김, 솔 펴냄) 만화로 친숙한 ‘서유기’.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삼장법사 등 주인공은 알지만 정작 내용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년 전 ‘서유기’를 완역했던 저자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내놓은 요약본. 총 5권. 각 8500원. ●발레리노 리춘신(리춘신 글·앤스러드 빌러스 그림, 고정아 옮김, 비룡소 펴냄) 중국판 ‘빌리 엘리엇’ 이야기. 중국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발레리노가 된 리춘신이 직접 글을 썼다. 수묵화 느낌의 그림이 진한 감동을 더한다. 1만원. ●흥겨운 우리 춤, 신명나는 마당놀이(호원희 글·전미화,이경아 그림, 주니어랜덤 펴냄)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고 싶었는데 ‘하회별신굿탈놀이’,‘봉산탈춤’이라니. 시큰둥했던 아름이는 시간이 갈수록 탈춤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초등학교 연극부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탈춤과 인형극을 재밌게 알려준다. 9800원.
  • 여름방학 온가족 클래식의 바다로…

    여름방학 온가족 클래식의 바다로…

    보람있는 여름방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클래식 입문’을 목표로 삼아도 좋겠다. 새달에 청소년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회가 풍성하다. 청소년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보자. 예술의전당이 8월1일부터 여는 ‘여름음악축제’는 작곡가별 관현악곡을 소개하는 ‘베스트 클래식’과 연주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적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여름 실내악’으로 구성해 골라 듣는 재미를 녹였다. 올해 ‘베스트 클래식’의 소재는 동유럽 작곡가이다. 경찰교향악단의 ‘쇼스타코비치 베스트’(1일)를 시작으로, 충남교향악단의 ‘엘가 베스트’(2일),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시벨리우스 베스트’(8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멘델스존 베스트’(9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드보르자크 베스트’(15일)가 이어진다. 마지막 16일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두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11일부터는 ‘트리오 루체’가 실내악의 가장 기본적 형태인 3중주로 하이든, 멘델스존 등의 음악을 선사하며 ‘여름 실내악’을 진행한다. 신나는 타악의 세계를 보여주는 ‘아카데미 타악기 앙상블’(12일), 프랑스 출신 작곡가 미요와 생상스 등을 만나는 ‘앙상블 모자이크’(13일), 고전음악 실내악의 대표적인 양식인 현악4중주를 선보이는 ‘앙상블 칼마’(14일),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어우러진 ‘앙상블 유니쿨’(15일), 은은하면서도 힘있는 목관악기의 매력을 전달하는 ‘세종 목관 체임버 앙상블’(16일)이 준비돼 있다. (02)580-1300. 고양아람누리는 아람음악당에서 ‘아람누리 여름방학 청소년음악회’를 마련했다. 7일에는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에서 벤저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입문’,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등 익숙한 음악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감성과 표현력 등을 알려준다. 11일에는 ‘서울로얄심포니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팝과 영화음악의 향연’, 18일에는 드라마와 오페라 음악으로 꾸민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열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음악을 선사한다. 1577-7766.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은 11~15일 중극장 블랙에서 ‘충무아트홀 청소년 실내악콘서트’를 갖는다. 일상의 클래식을 영화(11일), 사랑(12일), 운동(13일), 여행(14일) 등 주제별로 나누어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권순훤(11·12일), 노부스 콰르텟의 비올리스트 노현석(13일)이 나서 해설과 연주를 곁들인다. 리듬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리듬 클래식’(15일)으로 축제의 막을 내린다. (02)2230-6624~6.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은 허윤정(첼로), 허희정(바이올린), 허승연(피아노)으로 구성된 허트리오가 만드는 ‘여름방학 청소년 특선’을 마련했다. 6일 ‘언어와 춤’에서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와 프랭크 마틴의 아일랜드 민속음악 등을, 13일 ‘음악으로 하는 이야기’에서는 베토벤과 멘델스존 등의 피아노 3중주를 연주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02)6303-7700.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삽입곡을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러스 인 섬머’가 11~21일 서울을 비롯해 성남, 하남, 대전, 인천 등 7개 도시에서 각각 1차례 공연을 갖는다. 실제로 드라마 속에서 연주한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서희태의 지휘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을 들려준다. (02)548-869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산서 세계마술의 진수 펼친다

    국내 마술산업의 대중화와 육성발전을 위한 ‘제4회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이 다음달 5일부터 9일까지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부산 KBS홀 등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뻔뻔(FUN)한 매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세계마술올림픽협회(FISM), 세계마술협회(IBM), 미국마술협회(SAM) 대회 등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한국,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 국내외 8개국 50여명의 유명 마술사들이 대거 참가한다. 이들은 개·폐막식, 마술 갈라쇼, 마술경연대회, 코미디마술쇼 등의 공연을 통해 화려하고 정교한 마술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매직캐슬에서 ‘올해의 마술사’ 상을 최다 획득한 존 카니와 댄 실베스터, 2008년 IBM&SAM 통합대회에서 ‘피플초이스’ 상을 받은 마크 오베론, 1990년 IBM스테이지 부문에서 상을 받은 토니 차펙, 1998년 IBM대회에서 입상한 줄리어스 플락 등이 출연한다. 국내 마술사로는 2009년 IBM 대회 클로즈업(카드나 동전 등의 일상 소품 마술)부문에서 1위를 한 류현민, 2008년 IBM&SAM 통합대회에서 피플초이스상을 받은 안하림, 제2회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스테이지 부문에서 우승한 한설희, 2008년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스테이지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고 그해 FISM ASIAN 대회에서 우승한 임재훈 등이 갈라쇼에 출연한다. 주요 행사로는 다음달 5일 오후 8시 해운대해수욕장 야외 특설무대에서 국내 최고의 인기 마술사인 최현우의 사회로 개막식이 개최되며 매일 색다른 주제로 구성된 갈라쇼와 매직 경기대회, 코미디 마술쇼, 명인 클로즈업 등의 공연이 본행사장인 KBS부산방송홀에서 열린다. 부산시는 이번 행사가 부산이 국내 매직 산업의 메카로 도약하는 계기와 함께 새로운 관광 상품의 창출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新 세계7대 자연경관 제주도 최종후보 올라

    제주도가 ‘신 세계 7대 자연경관(New 7 Wonders of Nature)’ 최종 후보에 뽑혔다.22일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스위스 ‘뉴세븐원더스(New7Wonders)’는 2007년 7월부터 이달 초까지 웹사이트(www.new7wonders.com)를 통해 진행한 ‘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1, 2차 투표에서 압축된 71곳을 대상으로 전문가 회의를 거쳐 제주도(Jeju Island)를 포함한 28곳의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최종 후보에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스위스 최고봉 마테호른,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리프(대산호초),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군도, 남미의 열대우림 아마존, 아제르바이잔의 진흙 화산, 레바논의 제이타 석회동굴, 아일랜드의 모헤르 절벽, 독일의 흑림지대 등이 포함됐다.뉴세븐원더스는 8월부터 2011년 하반기까지 전 세계 네티즌을 대상으로 인터넷 결선투표를 진행해 세계 7대 자연경관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전문가 회의 의장을 맡은 유네스코 전 사무총장 페데리코 마요르는 지역적 균형, 다양성, 인류에 대해 갖는 중요성 등을 고려해 선정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작업은 문화 유산 보존 및 복원을 통해 문화 다양성을 증진한다는 취지로 스위스 탐험가 베르나르드 베버가 주도하고 있다.뉴세븐원더스는 네티즌들이 추천한 ‘세계 7대 자연’ 후보 441곳 가운데 국가별 최다 득표지 1곳과 접경지역 등 261곳을 1차로 압축한 뒤 이를 다시 섬, 산,화산, 호수, 강, 폭포 등의 7개 그룹으로 나눠 71곳을 선정했었다.뉴세븐원더스는 2007년 1억명이 참여한 투표를 통해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중국 만리장성,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브라질 거대 예수상, 멕시코 치첸이트사의 마야 유적지, 로마 콜로세움,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를 선정한 바 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볼트 vs 가이 ‘세기의 대결’

    볼트 vs 가이 ‘세기의 대결’

    ‘총알 탄 사나이’들이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 ●100m 9초대 무려 7명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슈퍼그랑프리대회가 24~25일 영국 런던에서 열려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100m를 9초대에 끊는 스프린터가 무려 7명이나 나선다. 무엇보다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와 타이슨 가이(27·미국)가 정면 충돌해 눈길을 더한다. 세계 신기록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번개’ 볼트는 세계 최고기록(9초69)을 보유한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1인자. ‘담배연기’라는 별명의 가이는 올시즌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어 다음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의 전초전으로 불릴 만하다. ‘미리 보는 세기의 대결’인 셈. ●100m·200m 대결 가능성 커 둘은 육상의 꽃인 100m와 200m에서 모두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미국의 육상 전문지 ‘트랙 앤드 필드’와 ‘월드 트랙’ 등이 전했다. 지난 4월 승용차를 몰다 교통사고로 발을 다치는 바람에 큰 걱정을 샀던 볼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한 달 만에 실전을 치른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 도로대회 150m에서 이미 파란불을 켰다. 14초8을 0.45초나 앞당긴 14초35로 최고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 초반 100m를 9초91, 후반 100m를 8초72로 달려 100m와 200m에서 모두 건재함을 뽐냈다.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 달 뒤 자메이카 육상선수권 100m에서 9초86으로 올 시즌 통틀어 베스트를 기록하더니 IAAF 월드 어슬레틱스 투어 200m에선 19초59에 결승선을 끊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8일 프랑스 파리 스타드프랑스에서 열린 골든리그 100m를 9초79에 끊었다. 가이에게는 올해가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절정기나 다름없다. 100m와 200m에서 자신의 최고기록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골든리그 골든갈라대회 100m 결승에서 9초77을 끊으며 볼트(23)의 기록을 100분의9초 앞당겼다. 앞서 6월30일엔 미국 뉴욕 아이칸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복 그랑프리대회 200m에서 19초58로 우승했다. 올림픽에 버금가는 큰 무대인 세계 육상선수권에서 금메달 3개(2007년 오사카, 100·200m와 400m 릴레이)를 휩쓴 저력이 살아난 것. ●가이, 스타트 앞서 가이는 스타트에서 볼트를 크게 앞선다. 때문에 스타트가 아주 늦은 편인 볼트와의 맞대결에선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부담감을 떨치기 힘들어 출발 반응속도가 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런던의 날씨도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맞바람을 뚫고 잇달아 기록을 높인 볼트가 우세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만델라 데이/김성호 논설위원

    아프리칸스어로 분리·격리를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해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씻지 못할 오명의 역사를 갖는다. 17세기 이후 이주한 백인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비백인(非白人)을 차별해 온 억압, 멸시의 대명사 아파르트헤이트.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 위주의 국민당 정부수립 후 공식제도로 시작돼 수많은 이들을 사지와 감옥으로 보냈다. 유색인종의 참정권을 막고 다른 인종간 혼인을 금지해 백인 특권 유지와 강화를 밀고갔던 아파르트헤이트. 이 불평등의 체제유지는 1976년 요하네스버그 주변 흑인집단거주지역 소웨토서 터진 폭동으로 큰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유색인종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졌고 1981년 헌법개정에 이어 10년전 인종차별 철폐의 헌법발효를 끌어냈다. 남아공에서의 인종차별 소멸엔 숱한 이들의 희생이 거름이 됐다. 넬슨 만델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일등공신. 인종차별에 맞서 탄압받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회원을 7000명에서 10만명으로 늘려 놓았다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44세때 종신형을 선고받아 27년을 감옥서 보내고 70대 초반 석방된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듬해인 1994년 대통령이 됐다. 세상 사람들은 그해를 남아공에서 350년간의 인종차별이 종식된 해로 부른다. 얼마전 만델라의 91번째 생일, 남아공에선 전국적인 자선행사가 하루종일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는 ‘나눔의 날’로 해 달라는 만델라의 요청을 정부와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대통령, 여야 의원, 고위공직자들이 불우노인 위문잔치며 거리청소에 나서는가 하면 노숙자들에게 담요를 건네는 등 나눔의 손길이 하루종일 이어졌다는데….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생일을 우리 국경일 수준의 ‘만델라 데이’로 공식 지정했다고 한다. ‘갈라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경제 인종차별을 가져온 위인’이란 엇갈린 평을 받는 만델라. ‘아프리카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는 그가 흑백화합과 인종차별 종식을 위해 변함없이 지켰던 통치철학은 ‘관용과 화해’였다고 한다. ‘만델라 데이’, 지정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아빠 이름은 반칠득/방미진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아빠 이름은 반칠득/방미진

    설 전날, 아빠와 나는 창원에 있는 큰집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올랐다. “멀미 나나?”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물었다. 나는 대꾸도 없이 창밖만 봤다. 넓은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지면서 커다란 나무들과 공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어느새 창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창원은 한적하고 깔끔한 도시다. 나는 창원의 탁 트인 느낌이 좋다. 하지만 큰집이 가까워 올수록 멀미는 심해졌다. “멀미 나면 오징어 먹어라.”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며 오징어를 내밀었다. 나는 아빠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또 술 먹을 거가?” 기어이 말하고 말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내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안 묵는다. 정초부터 무슨 술이고.” “약속했데이.” “알았다. 오징어나 묵어라.” 나는 그제야 무시하고 있던 아빠의 손에서 오징어를 받았다. 아빠는 날마다 술을 먹는다. 옛날부터 그랬다. 하지만 친척들 앞에서 술 먹는 것만큼은 정말 싫다. 큰집에 도착했다. 큰엄마, 큰아빠, 식이 형, 고모, 고모부, 영이, 공이. 모두 와 있었다. 다들 들어서는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큰엄마가 아빠 손에 들린 청주 한 병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오느라 힘들었제. 차 안 밀리드나?” 우리가 거실 가운데로 들어올 때까지, 청주는 아빠 손에 그대로 들려 있었다. 아빠는 슬그머니 거실 한쪽에 청주를 내려놓았다. “야! 시내 구경하러 가자!” 식이 형이 말했다. 나는 나가면서 아빠에게 눈짓을 보내, 다시 한 번 술 마시지 말라는 다짐을 해 두었다. 하지만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눈을 피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따라 나왔다. 우리는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시내를 구경했다. “경수, 니 키 마이 컸네. 내 보다 더 크나?” 같은 나이인 영이가 바짝 다가와 키를 쟀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뭘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니야. 경수 오빠야가 더 크다.” 일곱 살인 공이가 내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살갑게 구는 공이 덕에,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공이가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동생이라도 되는 듯, 괜히 더 살뜰하게 챙기며 공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큰집이 가까워오자 또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벌써 술판을 벌였는지 떠들썩한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려왔다. 다행히 아빠는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한잔 더 하소.” 고모가 술을 권했다. “마, 고만 묵을란다.”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제 시작인데 무슨 소리고. 한잔 받아라. 요새 가게는 장사 되나?” 큰아빠가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장사? 잘 되지! 안 될 리가 있나.” 아빠는 몇 년째 회사도 안 나가고 엄마가 하는 분식집 일을 거들고 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손님도, 배달도 줄어 아빠는 하루 종일 가게 구석에 앉아 홀짝거리며 술을 마신다. 아빠는 눈을 반짝이며 술잔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빠는 자제력을 잃고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을 쳐댔다. “야는 일등밖에 안 한다.” 아빠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나는 반에서 30등 하면 잘하는 거다. “야가 이번에 중학교 들어 가제?” 고모가 물었다. “하모. 일등 중학교 안 들어가나. 무슨 시험이든 일등이라.” 입학시험 치는 중학교는 없을 뿐더러 일등 중학교도 없다. 아빠는 계속해서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친척들 얼굴에 슬슬 지겨운 표정이 드러났다. “니는 고만, 입 좀 다물어라.” 큰아빠가 일어나며 말했다. 허우적거리며 걸어가는 큰아빠의 발에 청주병이 걸려 넘어졌다. “뭐가 이래 걸리적거리노? 이게 뭐고?” “식이야 저거 좀 치워라. 술병을 와 저 놔뒀노?” 큰엄마가 삐죽거렸다. “엄마, 냉장고에 넣으까?” “아무데나 갖다 놔라.” 괜히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경수야. 게임하자. 이리 온나.” 식이형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동정 받는 것이 싫었다. 식이형이 나를 억지로 끌었다. 나는 못이긴 척 식이형을 따라 방으로 가면서 아무도 몰래 눈물을 찍어냈다. 설날 아침이었다. 우리는 제사를 지내고 성묘도 하고 왔다. 집에 돌아와 어른들은 다시 술판을 벌였다. 아빠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그만 마시라고 계속 눈치를 줬다. 하지만 아빠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피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또 허풍을 쳐댔다. “동네에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따르는 사람이 천지다. 내가 운만 따랐으면 벌써 국회의원 돼 있을 놈이라. 큭큭큭.” “쓸데없는 소리 고마해라. 시끄럽다마.” 큰아빠가 말하자 고모도 맞받아쳤다. “코딱지만 한 가게하면서 무슨 사장이고? 제발 정신 좀 차리소. 분수를 알아야지.” “뭐? 분수? 지금 어떤 놈이 내한테 분수 어쩌고 지껄여 샀노? 내가 누군 줄 아나? 어? 반칠득이라고! 반. 칠. 득! 알겠나?”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써댔다. “여기 오빠야 칠득인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조용하소.” 고모가 화를 냈다. 아빠는 더욱 악을 쓰며 몸부림을 쳐댔다. 급기야는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기 진짜 미칬나! 니 칠뜩이 아니랄까봐 이라나! 와 이라노! 칠뜩이짓 고만해라. 어이!” 큰아빠였다. 엄마가 아빠랑 싸울 때도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큰아빠가 그러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술 마시면 개다. 개!” 큰엄마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식이 형이 따라 들어왔다. “새끼 우나? 뭘 그라노? 다들 술 채 가지고 헬렐레해서 그러는 거 아이가. 어디 한두 번이가? 니가 이해해라.” 매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래서 더 싫은 거다. 식이 형도 싫다. 큰아빠 자식이라서 싫다. 친척들도 다 싫다. 영이, 공이도 다 싫다. 창원도 싫고 설날도 싫다. 추석도 싫다. 아빠도 싫다. 어른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 밤이 되자 어느 정도 술이 깨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과장되게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이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집에 가자.” 아빠에게 말했다. “하루만 더 있다 가자.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가. 와 그라노?” 왜 그러는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가? 나는 아빠를 계속 따라다니며 졸랐다. “오빠야, 더 있다 가라.” 공이가 나를 잡아끌며 말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 하루만 더 있다 가그라. 이 밤에 어딜 간단 말이고. 차표도 없을 거구만.” 큰엄마였다. “야가 와 자꾸 갈라고 이라노? 아빠 회사도 안 간다 아이가. 오래 있다 가그라 마.” 고모였다. 나는 뚱하니 아빠 팔만 잡고 흔들어댔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왔다. “경수 여자 친구 만날라고 안 그라나. 니 내일 약속 있제. 그자?” 식이 형이 말했다. 고마웠다.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하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을 감추려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아빠와 나는 한밤중에 큰집을 나왔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와?” “아빠가 술 마시고 그라니깐 그렇지! 다시는 여기 안 올 거다!”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나는 아빠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터미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표도 모두 매진이었다. 우리는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이대로 다시 큰집에 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차라리 여기서 밤을 새야지 싶었다. “뭐 좀 먹을래?” “됐다.” 나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잘라 말했다. 아빠가 내 눈치를 슬슬 봤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가서 표를 구해왔다. “니도 내 싫나?” 대뜸,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나는 눈에 뭐가 들어간 척, 눈을 비벼댔다. 손등에 물기가 축축하게 묻어났다. “가자!” 아빠가 나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빠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아빠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빠 손은 꺼끌꺼끌하고 차가웠다. 문득, 아빠 손한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말 가족이 부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남들 앞에 섰을 때요. 그럴 때면 내 가족이 남들 앞에서 초라하다는 사실이 분하고, 슬프고, 견딜 수가 없어 도망치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못난 부분을 보듬어 주는 것 역시 가족이 아닐까 합니다. 경수가 아빠의 손을 꼭 잡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작가약력 1979년 울산 출생.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로 등단. 지은 책으로는 단편동화집 ‘금이 간 거울’(창비), 명랑심리동화 ‘행복한 자기감정 표현학교’(다산어린이), 청소년소설집 ‘라일락피면’공저(창비), 그림책 ‘비닐봉지풀’(느림보) 등이 있음.
  • [사설] 중산층 육성에 앞장서겠습니다

    서울신문이 18일 창간 105주년을 맞았습니다. 한국 신문사 가운데 가장 긴 전통을 가진 신문으로서 생일을 자축하며 독자와 함께 지난 100여년의 세월에 담긴 뜻을 나눕니다. 서울신문의 뿌리인 대한매일신보는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1904년 구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탄생했습니다. 배설 양기탁 선생 등 애국자에 의해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는 최초의 시민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을 펼쳤고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의 본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10년 국권이 상실되면서 일제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로 전락했다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서울신문으로 재탄생하게 됐습니다. 또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일제의 재산이 정부귀속화되면서 서울신문은 자연스레 정부기관지로 한동안 운영되었고 정파적인 지면제작으로 비판을 받은 일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서울신문은 반세기 이전의 좌우대립을 연상시킬 정도로 이념갈등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취지를 이어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사실보도를 통해 공익과 공정성을 앞세우고 건전한 비판이 살아있는 지면제작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사회 각 분야가 편을 갈라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는 이전투구의 현장에서 정파적인 지면을 지양하고 신문 본연의 역할인 정론을 확립하는 데 애쓰겠습니다. 세계신문사를 보면 시대에 따라 불쑥불쑥 정파적인 신문들이 태동했으나 이는 결코 나라의 발전이나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했습니다. 이런 신문들은 길어야 이삼십년 존재하다 쇠망하곤 했습니다. 정론을 추구하는 신문들만이 독자로부터 오래 사랑을 받으며 나라와 민족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해 왔음을 언론교과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를 만들고 지켜낸 선배들이 남긴 정신 역시 사실중심의 보도로 국민의 눈을 활짝 뜨이게 함으로써 국권을 수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국민의 교양을 높이고 삶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을 이은 서울신문은 날로 국가경제력이 떨어지는 이 즈음 중산층의 복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 전체 가구의 75%가 중산층이었으나 2005년 58%로 비중이 뚝 떨어졌습니다. 중산층의 이같이 빠른 붕괴야말로 각종 갈등을 격화시키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본질일 것입니다. 이에 따라 서울신문은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중산층을 두텁게 쌓는 ‘휴먼 뉴딜’의 대장정에 나설 것입니다. 중산층은 헌법 제1조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게 하는 버팀목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욕구에 기초한 목소리 못지않게 공동체의 보존이 중요함을 알려 줍니다. 사회적 약자를 북돋고 강자의 탐욕과 횡포에 맞서되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사실을 있는 대로 보도하는데 역점을 둘 것입니다. 독자 대신 신문이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정파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사실왜곡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질 때 건전한 중산층이 다시 두터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갈등과 분열의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과거 100년간 그래 왔듯이 희망 가득 찬 미래를 일궈나갈 힘과 지혜를 우리 민족은 갖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도 항상 독자의 옆에서 사실과 진실을 따르며 중산층을 복원함으로써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 수준을 높이는 데 앞장설 것을 다시한번 약속드립니다.
  • 서울신문으로 밥상머리 교육 최윤호씨

    서울신문으로 밥상머리 교육 최윤호씨

    “서울신문? 양쪽 말 찬찬히 들어주고 사실만 쓰는 유일한 신문이지.” 전북 정읍 수성동에 사는 최윤호(72)씨는 1978년부터 32년째 매일 아침 대문 앞에 놓인 서울신문을 집어든다. 최씨는 서울신문을 제대로 보는 노하우를 알려줬다. 먼저 1면 톱 기사를 훑고 나서 맨 뒷장의 오피니언면을 펼쳐 사설을 꼼꼼히 읽는다. 그런 다음 사설이 다룬 기사를 찾아서 본다. 그는 “대충 기사 제목만 훑어보고 사설면은 펼쳐 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신문을 봤다고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업으로 바쁜 최씨에게 서울신문의 사설은 세상을 읽어주는 안내자다. 사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사건만 다루는데다 핵심만 콕 짚어서 분석해주기 때문이다. ●“정부 소식 제일 빨리 싣는 신문” 최씨는 서울신문을 자녀교육에도 활용했다. 중요한 사설을 오려서 아침밥상에 올려놓으면 5명의 딸들이 돌아가며 읽었다.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첫째딸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이 입을 모아 소리내어 사설을 읽자 관심을 보이더니 6개월쯤 지나 먼저 최씨에게 “오늘은 오려두신 사설 없으세요?”라고 묻고는 신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둘째딸은 동생들이 어려운 한자어에서 말문이 막히면 뜻과 음을 가르쳐 주었다. 2000년 들어서야 유행한 신문활용교육(NIE)을 최씨는 이미 30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밥상머리 교육 한번 제대로 했지.”라고 돌아봤다. 서울신문을 구독하고 6년쯤 지나자 딸부잣집 아빠였던 최씨에게 귀한 아들이 생겼다. 금이야 옥이야 기른 아들도 서울신문과 함께 자랐다. 마당에 쌓아둔 서울신문은 아들의 놀이터였고 조금 자라선 한글공부의 교재였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자 논술 시험을 준비한다며 학교에 신문을 가져가 읽기도 했다. 최씨 가족의 삶은 서울신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최씨가 서울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한 것은 회사 사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제약회사, 식품회사 등에서 영업직을 맡았던 최씨는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쁜 시절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줄줄이 딸린 식구만 일곱인데 입에 풀칠하려면 신문 볼 틈도 없이 일에 매달려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은 “큰 돈을 벌려면 세상사에 밝아야 한다. 신문을 읽으라.”고 조언해 줬다. 최씨는 며칠 뒤 서울신문 지국에 가서 구독을 신청했다. 왜 서울신문이었을까. 최씨는 “정부 소식을 제일 빨리 싣는 신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종잣돈을 모아 스스로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그는 경제개발계획, 부동산 법규 정비, 규제변화 등 정부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뉴스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울신문을 보며 사업구상을 하곤 했다. 1995년부터 알로에 판매 대리점을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수가 30명이 넘는 꽤 큰 규모의 지사로 키워냈다. 그때가 생각났는지 “신성장사업으로 건강식품이 뜬다는 기사가 1990년대 초반부터 많이 나왔다.”면서 “서울신문 덕분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최씨는 서울신문의 강점으로 ‘균형감각’을 꼽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는 다른 신문들과 달리 서울신문은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중앙·동아, 한겨레·경향 등의 신문은 한쪽의 주장이 전부인 것처럼 대서특필하는데 서울신문은 흥분하지 않고 사실만 전달해준다.”고 평가했다. ●“지역 소식 전하는 일 게을리 말아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전국을 휩쓸던 지난해 6월, 최씨는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 올라왔다. ‘경찰이 폭력진압을 한다.’ ‘시민들이 폭력시위를 한다.’ 언론이 편을 갈라 싸우자 직접 두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토요일 하루를 꼬박 광화문 길 위에서 보낸 최씨는 “시민과 경찰 양쪽 다 흥분하고 피해가 막심했다.”면서 “집에 돌아와 펼쳐본 서울신문은 내가 본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놨다.”고 말했다. 그 이후 최씨는 서울신문을 더 열심히 보게 됐다. 서울신문에 대한 애정이 담긴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최씨는 “우리 동네에서 서울신문을 보는 독자는 나를 포함해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면서 “서울 지역 소식만큼 지역 소식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지방독자들은 점점 더 서울신문을 외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업사원 출신의 최씨에게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비법을 물어봤다. 그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종이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래도 기본에 충실하면 독자들이 진가를 알아줄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105년 역사의 정론지라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도록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기사와 사설을 많이 써달라.”는 주문을 덧붙였다. 최씨의 가장 큰 고민은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25)의 취업문제다. 최근 청년실업 기사를 꼼꼼히 읽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행정인턴, 청년백수 등 문제점만 지적하지 말고 정부가 솔깃할 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 기획-중산층 두껍게] “모래시계형 사회는 불행한 사회 민생현안 좌·우파 정책적 연합을”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 기획-중산층 두껍게] “모래시계형 사회는 불행한 사회 민생현안 좌·우파 정책적 연합을”

    김호기(49)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의 감소는 일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지나면서 얻은 지위와 성취를 대변하는 말인데, 그 토대가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의 경제·사회 생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개인과 사회 전반에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위·아래의 상류층과 빈곤층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산층 분포가 줄어드는, 잘록한 모래시계형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면서 민생 현안에 관한 한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가 함께 머리를 맞대 능동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립되는 세력간에 ‘정치적 휴전’을 선언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16일 김 교수를 만나 위기에 놓인 중산층 문제에 대한 원인과 대책 등을 들어봤다. →중산층의 위기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중산층 문제는 197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세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결과가 각 부문의 양극화로 나타났다. 개인간 소득 격차의 심화를 비롯해 첨단산업과 굴뚝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강남과 강북 등 사회 전반이 양극단으로 갈라졌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됐다. →‘양극화 해소’가 강조됐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중산층 육성’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양극화 심화나 중산층 위기나 담고 있는 내용은 유사하다. 그러나 각각의 담론이 갖고 있는 효과 측면에서는 서로 다르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즉 ‘두 개의 대한민국’으로 나누려는 양극화보다는 사회의 허리가 되는 중산층 육성과 복원에 방점을 두는 것이 좀 더 긍정적이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적합하다. →정부가 최근 중산층과 서민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중대한 정책 기조의 전환점에 서 있다. 2007년 선거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주된 이유는 ‘탈이념적 중도실용’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종합부동산세 폐지론이나 양도소득세 감면이 대표적이다. 많은 국민들이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을 위한 정책으로 인식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중산층 위기를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가 중산·서민층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구체적인 정책들을 담아낼 것인가에 있다.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휴먼 뉴딜’을 내건 기본적인 방향은 맞다고 본다. 중산층은 일자리, 주거, 교육, 노후 등 4가지를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와 복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국가 재정을 과감하게 관련 사업에 쏟아부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방향은 그렇지 않다. 22조원의 예산이 들어갈 4대강 정비사업만 봐도 휴먼 뉴딜이라기보다는 토건사업이다. 잡 셰어링도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해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정규직을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것이 중요할 텐데. -아버지가 서민이었기 때문에 자녀들도 서민이 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계급 구조가 공고화하는 것이다. 사회이동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고 패자 부활전이 원활히 이뤄지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야 대립과 좌우 대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대안 모색이 더 어려운 것 같다. -1980년대 6차례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아일랜드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기업-노조-정부간 신뢰 기반이 구축돼야 한다. 상대방에게 양보를 함으로써 내가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상황도 필요하다. 기업이나 노동자 모두 벼랑끝 한계 상황에 처해 있어야 하고 국가가 불편부당한 중재자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않고 있다. 당장은 민생 현안에 관해 여야간 정치적 휴전이나 좌파와 우파 간 정책적 연합 등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여당, 야당, 언론은 사람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국민적 시선, 국민적 눈높이, 국민적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특히 정부는 돌볼 사람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마지막 가족이요, 보호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리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김호기 연세대 교수 약력 ▲1960년 경기도 양주 출생 ▲1979~90년 연세대 사회학과, 동 대학원, 독일 빌레펠트대 박사 ▲1992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1995년 한국사회학회 총무 ▲1999년 미국 UCLA 사회학과 방문학자 ▲2002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연설 준비위원, 정책기획위원 ▲저서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전환의 정치, 전환의 한국사회> <기로에 선 중산층>(공저)
  • 도심 속 숨은 문화명소 찾아 볼까

    도심 속 숨은 문화명소 찾아 볼까

    서울문화재단은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위해 책·영화·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5일 재단에 따르면 ‘서울 문화예술 탐방프로젝트’는 매번 새로운 주제로 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박물관 등 서울의 숨은 명소를 탐방한다. 주요 탐방 대상지로는 난지 창작스튜디오(23일), 닭 문화관(24일), 홍대 거주 작가 작업실(26일), 정릉(8월15일) 등이 있다. 25일과 다음달 29일에는 가족이 참여하는 ‘우리동네 문화탐방’을 열어 삼선동·창신동 일대와 북촌 한옥마을을 둘러본다. 참가비는 없으며, 일정과 신청은 홈페이지(www.sfa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 영화와 만나다’에서는 청계9가에 위치한 재단 1층 ‘책사랑’에서 영화감독에게서 책이 어떻게 영화 속에서 해석되고 표현되는지를 들어본다. 28일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송해성 감독, 다음달 25일 ‘아내가 결혼했다’의 정윤수 감독과 만난다.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리는 ‘책 읽는 서울-리더&리더(Leader&Reader)’에서는 22일 ‘고산자’의 박범신, 다음달 26일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 작가를 초대해 독자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참가비는 무료. ‘예스24’ 홈페이지(joins.yes24.com)에서 신청한다. 이 밖에 서울열린극장 창동에서 걸작 오페라 네 편의 명곡만을 골라 들려주는 ‘오페라 갈라 4부작’이 열린다. 다음달 12일에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13일 베르디의 ‘리골레토’, 15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16일 푸치니의 ‘라 보엠’이 각각 선보인다. 티켓 가격은 한 회에 1만원이며, 예매는 티켓링크와 창동 홈페이지(www.sotc.or.kr)에서 할 수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구호에 실종된 객관적 사실/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열린세상] 구호에 실종된 객관적 사실/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법이 틀려먹었어요.” 재판에 진 사람들로부터 곧잘 듣는 말이다. 당사자 얘기만 들으면 잘못된 판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판결문을 읽어 보면 틀려먹은(?) 법 때문에 재판에 진 경우는 드물다.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Fact)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오히려 당사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억지인 것이다. 이처럼 법적 판단은 사실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올바른 법적 판단도 기대할 수 없다. 객관적 사실 파악의 중요성은 재판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4대강 사업, 비정규직 법안, 미디어법 등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굵직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올바르고 현명한 해법 또한 객관적 사실의 토대 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4대강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필자는 이 사업의 마스터플랜이 지난달 8일 최종 확정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어이가 없었다. 마스터플랜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그렇게 끼리끼리 편을 갈라 다투어 왔다는 사실을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제대로 된 계획조차 없이 ‘4대강 살리기’라고 홍보부터 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정부가 우선 문제지만, ‘대운하’ 혹은 ‘환경파괴’ 논리를 내세워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만 하는 쪽도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결국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쪽이나 해서는 안 된다는 쪽 모두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섣부른 탁상공론에 기초한 신념에 따라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다른 현안들도 대동소이하다. 다양한 대중매체에 관련 정보들이 넘쳐나고 전문가들의 고견도 수없이 제시되지만,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서 올바른 판단에 도움을 주는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사여구로 장식된 홍보성 정보 혹은 정치적 구호이거나 일방적 의견(Opinion 견해)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사회적 공기(公器)임을 자처하는 주요 언론들도 예외는 아니다. 객관적 사실을 전하기보다는 그 사실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강조하려는 충동에 빠져, 객관적 사실을 가장한 의견으로 오히려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언론들도 많다.  오죽하면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 김훈씨가 “요즘 글쓰기가 어렵고 신문, 저널 읽기가 고통스럽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않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하지 못하는 언어가 횡행하고 있어 단절이 완성돼 가고 있다.”고 했을까. 도대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김훈씨는 그 원인을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씀이다. 정치인들이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시작한 편가르기가 이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고질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객관적 사실’에 터잡아 올바른 판단을 하려 하지 않고,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을 판단한 후 섣부른 집단 신념을 형성하고 그 신념에 좇아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들 편으로 집단을 형성해서 큰 목소리로 이 땅의 정의실현을 외친다. 그러나 정의는 사실을 토대로 실현되는 것이지 구호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섣부른 신념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어서 논리적 반박이나 토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또 집단화되면 더욱 완고해진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식의 집단적 편가르기와 섣부른 집단 신념의 과잉, 거침없는 행동은 객관적 사실과 그에 터잡은 올바른 판단이 설 곳을 앗아가 버린다. 그들이 외쳤던 정의실현도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나는 신념이 가득찬 자들보다는 의심에 가득찬 자들을 신뢰한다.”는 김훈씨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뉴스 다큐 시선] 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 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소방차 2차례 출동시킨 양화점의 도깨비불 소동

    E=온국민의 신경이 남북적십자회담에 모여 있는 가운데서도 희한한 사건은 있었어. 중구 봉래동 1가 88 신일양화점의 공장 「시멘트」바닥에서 파란 불꽃이 솟아나 두 번씩이나 소방차가 출동하는 소동을 벌였지. 처음은 12일 하오 4시쯤 「시멘트」바닥이 갈라진 틈에서 1cm쯤 불꽃이 파랗게 솟아 양화점에서 신고, 소방차 4대와 경찰관 10여명이 출동. 물을 끼얹어 진화했어. 두 번째는 다음날 하오 역시 같은 곳에서 불꽃이 솟았는데 출동한 경찰관은 혹시「메탄·가스」에 불이 붙은 게 아닌가 하고 공장에서 일하던 40여명과 이웃사람들을 긴급 대피시켰지. 불을 끄고는 다음날 아침 화인을 가리기 위해 「시멘트」를 파보았더니「시멘트」밑의 흙에 화약이 1되 가량 섞여 있었어. 공장의 화기가 이 화약에 미쳐 불이 붙어 불꽃이 솟았다고 경찰은 결론을 맺었는데 이 건물은 6·25때 파괴된 곳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그때 화약이 섞여 들어간 것 같다는 이야기였어. [선데이서울 72년 9월 24일호 제5권 39호 통권 제 207호]
  • “100m 지존 가리자”

    “100m 지존 가리자”

    ‘육상의 꽃’ 남자 100m 기록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동안 독주 체제를 굳히던 우사인 볼트(사진 왼쪽·23·자메이카)에, 주춤하던 맞수들이 잇따라 기록을 끌어올려 한달 뒤 세계선수권에서 또 다른 역사를 쓸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단거리 간판 타이슨 가이(오른쪽·27)는 1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골든리그 골든갈라 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77로 우승했다. 가이는 지난달 28일 볼트가 자메이카 대표선발전에서 작성한 시즌 최고 기록 9초86을 100분의9초 앞당겼다. 개인통산 베스트 기록이기도 하다. 가이는 2007년 일본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 100m와 200m, 400m계주를 휩쓸며 사상 4번째로 트레블(3관왕)의 전설을 일궜다. 볼트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혜성 같이 나타나 100·200m, 400m 계주에서 모두 세계기록을 갈아치우고 정상을 밟았다. 육상 선진국과 후발 초강국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오는 24~2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IAAF 슈퍼 그랑프리 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이로써 세계 기록 보유자 볼트(9초69)와 9초72의 아사파 파월(27·자메이카), 가이가 벌일 100m ‘3각 대결’은 대접전을 예고했다. 이론대로라면 100m를 사실상 가름하는 스타트 반응속도에선 파월(190㎝)이, 중·후반 스퍼트에선 볼트(193㎝)가 가장 앞선다는 평가다. 가이(180㎝)는 두 부문에서 고른 기량을 펼치는 편이지만 200m와 400m에 견줘 100m에 주력한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고 새 세계기록을 기대하기에는 격차가 크다. 베이징올림픽 100m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통 탓에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던 가이는 “오늘 기록이 볼트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열심히 훈련 중이라는 사실을 볼트가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날달 올 시즌 최고기록을 세운 뒤 ”가이가 내 기록을 깨기에는 어림도 없다.”며 자극했던 볼트에 대해 신경전을 펼친 것. 100m 전 세계기록 보유자 파월도 이날 발목 통증에도 불구, 9초88로 게이에 이어 2위로 골인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175명/㎢)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수도권 어디에서든 접근하기 쉬워서다. 북한산보다 3.4배(591/㎢)나 더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 경기 수원시의 광교산이다. 수원·용인·의왕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해발 582m)은 도시와의 경계가 애매모호할 정도로 도심에 가깝다. 빼어난 경관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에 등산 코스가 다양해 주말에는 하루 5만여명이 찾는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정맥 700여리 중간지점에 있는 광교산은 한남정맥의 수많은 산 가운데 가장 높고 덩치 또한 가장 크다. 경기남부권을 포용하고 있는 진산(鎭山)으로 꼽히는 광교산은 후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민족사를 간직하고 있다.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서기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평정, 후삼국 통합의 뜻을 이루고 귀경하던 중 이 산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해 ‘광교(光敎)’라고 붙였다고 한다. ●후삼국~조선 격동의 민족사 간직 이곳에는 신라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사찰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진각국사와 현오국사가 머물던 창성사가 있었다고 한다. 진각국사는 우리나라 고건축물 중 최고로 꼽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건축했다. 고려 우왕 12년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창성사 경내에 세운 진각국사탑비는 현재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동공원에 보존돼 있다. 역사탐방연구회 염상균 이사는 “광교산은 지리적인 위치나 특성으로 볼 때 주민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산신이었을 것이고, 불교 전래 이후에는 불교문화가 꽃핀 현장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 순찰사 이광이 지휘한 삼남근왕병 6만명이 왜군 총수 우키다 히데이의 기병 1600명에 충격적으로 패배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김준용 장군 전승비’도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이다. 비로봉(490m)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샛길 안쪽의 자연암반에 김준용(1586~1642년) 장군의 전공이 새겨져 있다. 김 장군은 병자호란 때 광교산 골짜기에서 청 태종의 사위인 양고리를 비롯한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광교산 자락이 흘러내린 곳에 조성됐다. 창룡문 4거리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곳과 방화수류정에 이르는 줄기가 모두 광교산의 맥이다. ●다양한 생태계·등산코스 인기 정조가 사도세자 묘인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화성행궁도 광교산과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공교롭게 고려 궁터와 백제 온조왕의 숙소인 백제행전도 광교산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제, 고려, 조선에 이르는 행궁이 한 장소에 있었던 셈이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은 수원의 들판을 살찌우는 젖줄이다. 시내를 가로질러 황구지천에 모여 안성천에 합류하고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향한다. 광교산에 눈이 쌓인 모습을 일컫는 광교적설(光敎積雪)은 수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광교산은 수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음에도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98과 301속 455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랑버들, 가능장구채, 터리풀, 조팝나무, 노랑갈퀴, 병꽃나무 등 6종의 한국특산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낙지다리 등 희귀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는 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 외오리, 말똥가리, 직박구리 등 26종, 포유류는 고슴도치 두더지 너구리 족제비 삵 멧돼지 고라니 등 16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시 정남채 산림휴양팀장은 “광교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환경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림생태계 보존과 이용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훼손된 곳은 친환경 복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용품점 호황… 지역 경제에 한몫 광교산이 서울 근교의 산 못지않게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것은 버스나 승용차에서 내리면 바로 산에 오를 수 있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경기대 정문 또는 반딧불이 화장실 앞을 시작으로 형제봉~시루봉~통신대~지지대까지 13㎞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에서부터, 청년암~한마음광장~거북바위~광교헬기장(6.5㎞), 상광교 버스종점~사방댐~토끼재(1.6㎞) 등 10개의 코스가 있다. 최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멀리 남산과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 영통에 사는 윤석두(49·자영업)씨는 “광교산의 매력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강·약 코스와 함께 50분~5시간30분 소요되는 장단 코스가 있어 노약자부터 전문 산악인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 도시민들의 취미생활을 바꿔 놓으며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광교산 덕분에 수원은 ‘산악자전거’ 이른바 MTB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다. 동호회 20여곳이 조직돼 있으며 100~300명씩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수원시가 지정해준 청년암~통신대 구간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등산용품 업소도 호황을 누린다. 수원에만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 18곳에 각 5~10개의 등산용품매장이 입점하고 있다. 등산용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5·수원시 인계동)씨는 “주 5일제 근무 영향도 있지만 수원에는 광교산 덕분에 등산인구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등산용품점들이 많고 장사도 잘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반딧불이·다슬기·항아리’ 광교산 명물, 명품 화장실 경기 수원 광교산의 또 다른 명물은 화장실이다. 산 입구에 설치한 ‘반딧불이 화장실’은 1999년 제1회 아름다운 화장실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아파트 가격보다 3.3㎡당 100여만원 비싸게 건축돼 화제를 모았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대리석 바닥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흙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및 유아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비데, 위생시트, 베이비 시트 및 부스, 파우더 실 등 위생 기기들을 설치했다. 좌변기에 앉으면 창밖을 통해 광교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장실 밖에는 20여평 크기의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미술작품 등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루 평균 2200명이 화장실을 찾는다. 등산객 이필근(47·회사원·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씨는 “가족들과 함께 광교산 등산을 자주 하는데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집 화장실보다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광교산에는 반딧불이 외에도 다슬기, 항아리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 위치한 다슬기 화장실은 고급 별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노란빛과 연한 오렌지색의 외관으로 은은함을 더해준다. 내부 벽면은 친환경 목재를 사용해 친근함을 안겨주고 창밖으로는 광교산 전경이 펼쳐진다. 반딧불이 화장실은 우리나라 화장실문화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수원시는 지난 1997년부터 아름다운 화장실가꾸기 사업을 벌여 지역마다 특색있는 공중화장실 40여개를 설치했다. 봉화대, 바람개비, 수롱이, 솔밭산 등 시설 못지않게 이름도 아름다워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나 관광코스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9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수원의 공중화장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바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NOW포토] 솔비 갈라쇼 ‘인형처럼 예쁘게’

    [NOW포토] 솔비 갈라쇼 ‘인형처럼 예쁘게’

    Mnet ‘아이스 프린세스’를 통해 피겨스케이트에 도전하는 가수 솔비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양 실내 빙상장에서 ‘솔비의 갈라콘서트’를 열고 멋진 연기를 펼쳐 보였다. 서울신문NTN(안양 경기)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솔비 “여러분 사랑해요”

    [NOW포토] 솔비 “여러분 사랑해요”

    Mnet ‘아이스 프린세스’를 통해 피겨스케이트에 도전하는 가수 솔비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양 실내 빙상장에서 ‘솔비의 갈라콘서트’를 열고 멋진 연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신문NTN(안양 경기)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야생초 이야기⑦] 꿀풀

    [야생초 이야기⑦] 꿀풀

    이제 바야흐로 초여름이다. 아직은 태양이 그렇게까지 따갑지는 않지만 봄꽃들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들꽃들이 봄처럼은 다투어 피지 않는다. 대신 짙은 녹음이 천지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꿀풀이 핀다. 나물로, 약재로 우리 생활에 널리 쓰이긴 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꿀풀이라니…? 꿀이 많은 꽃인가? 그렇다. 부리모양의 꽃(화관), 저 속에는 꿀이 고여 있다. 다른 풀에 섞여 잘 보이지 않다가도 6월을 넘어서면서부터 30cm 정도의 높이로 쑥쑥 솟아올라 풀숲에 무리지어 피어난다. 요즘은 시골 어디로 가나 농사짓는 곳에서는 제초제를 안 쓰는 곳이 없어 그 흔했던 이 꿀풀도 보기 어려운 야생초가 되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어디서나 풀밭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식용나물에서부터 피부염, 해열제 등 단방약재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보리이삭 같기도 한 꽃이삭에 보랏빛 꽃이 송골송골 모여서 핀다. 시골에서 자란 우리들은 길가에 피어 있는 이 꽃잎을 따서 꽃부리의 뒷부분을 입술에 물고 꿀을 빨아먹었다. 샐비어 꽃을 따서 꿀을 빨아본 사람이라면 금방 짐작이 갈 것이다. 달큼한 꿀물이 제법 혀끝에 묻어난다. 얼마나 꿀이 많으면 ‘꿀방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까. 그래서 작은 토종벌에서부터 큰 호박벌까지 꽃부리에 비집고 들어가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주 이른 봄에 싹이 나기 시작하여 어린 싹을 나물로 해먹는데 ‘가지골나물’이 그것이다. 이른 봄의 푸른 싹은 거의가 나물로 해먹었지만 특히 이 가지골나물은 약효까지 지닌다 하여 그 쌉싸래하고 개운한 맛을 즐겼다. 이른 봄 꽃대가 나오기 전에 채취해서 뜨거운 물에 약 5분 정도 데쳐서 참기름과 간장 양념을 해서 무쳐 먹기도 하며 하룻밤 물에 담가두었다가 된장국을 끓여먹기도 한다. 새순을 잘 씻은 다음 물기를 제거한 뒤 전분을 묻혀서 기름에 튀겨내어 먹기도 한다. 근래에 들어 이곳 지리산 근방에는 아예 이 꿀풀을 집단 재배하는 ‘꿀풀 마을’도 있다. 토종벌꿀 이른바 ‘꿀풀꿀’을 생산해내는 중요한 밀원으로, 그리고 한약재로써 긴요하게 쓰여 농가의 소득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은 그 활용범위가 매우 넓어져 근래에는 장식용 꽃의 부재료로 염료를 입혀서 활용하기도 하고 꽃을 따서 전병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꽃모양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20~30cm 가량의 꽃대 위에 이삭 모양의 꽃차례를 가진 꽃이삭에 보랏빛 꽃들이 옹기종기 핀다. 꽃을 싸고 있는 꽃턱잎(포)에 세 개씩의 입술모양 꽃이 핀다. 이 꽃턱잎 가장자리엔 잔털이 무수히 달려 있다. 7~8mm 정도 되는 꽃받침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역시 흰 잔털이 많이 나 있다. 꽃부리는 약 2cm 되는데 아랫입술꽃잎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고 윗입술꽃잎은 곧게 서 있다. 수술이 4개인데 둘은 길고 둘은 짧다. 꽃이 지고 나면 본래의 줄기 곁으로 한 줄기가 뻗어 나와 곁에 새로운 포기가 형성된다. 그래서 대개 이 꿀풀은 무리져 있다. 볕이 잘 드는 길가나 산기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풀꽃이다. 온화하고 습윤한 기후를 좋아하지만 혹한에도 잘 견디는 야생초로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 흔히 자생한다. 그러나 여름을 지나면 다 말라버리기 때문에 꽃은 물론이고 푸르게 남아 있는 꽃대를 볼 수 없다. 이렇게 한여름이면 말라버린다 하여 한약재의 이름으로는 ‘하고초(夏枯草)’라 한다. 보랏빛 꽃빛깔이 신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꽃 자체가 그렇게 아름답거나 관상용으로 가꿀 만큼 화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한약재로서 뛰어난 가치를 발휘한다고 한다. 꿀풀의 약성은 차갑고 맛은 맵고 쓴 편이어서 약재로 쓰여서는 간경에 작용하고 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주고 눈을 밝게 한다. 꽃이 지고 난 다음 7,8월에 꽃대를 잘라 차를 달여 마시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 약리실험에서 혈압을 내려주고, 이뇨작용을 도우며, 해로운 균을 억제하는 작용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외용약으로 사용할 때에는 꿀풀 달인 물로 환부를 씻거나 생으로 짓찧어 환부에 붙이기도 한다. 쐐기벌레나 벌에 쏘여서 환부가 붓거나 아플 때에는 꿀풀을 생으로 으깨어 붙이거나 생즙을 소주와 함께 섞어서 바르기도 한다. 우리 몸의 여러 질병에 이 꿀풀의 약리효과가 안 미치는 곳이 없다할 만큼 다양하다고 하니 이 꿀풀이 우리 민간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야생초였던가 짐작할 만하다. 따로 재배하지 않아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우리 생활에 긴요하게 쓰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따로 외진 시골길을 찾거나 산 가까이 가야 겨우 볼 수 있지 않은가? 약재를 구하기 위해서는 약재상에 가야 만날 수 있다. 꼭 먹을 수 있어서 귀한 식물이 아니리라. 꼭 귀한 약재여서 귀한 식물이 아니리라. 그 식물들이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우리 인간이라고 온전하겠는가? 인간만큼 둔한 동물도 없을 것이다. 갖가지 이변이 나타나고 자연재해가 일어나야만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 곁이 있었던 풀 한 포기의 소중함을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게 우리 인간 아닌가? 꿀방망이라 하여 한 줄기 꽃이삭을 꺾어 쥐고 꿀을 빨던 궁색한 시절이 오히려 행복했지 싶다. 더러는 시골 학교 교장선생님이 붙잡고 훈화하시던 마이크를 떠올리고 꿀풀꽃대 한 줄기를 손에 들고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즐거워했다. 그 꿀풀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초여름의 들길이 그립다. 드물게 흰꿀풀꽃을 만나면 우쭐하며 신비로워하던 시절, 찔레 새순도 꺾어서 껍질 벗겨 먹으며 들로 산으로 온몸에 푸른 물이 들도록 뛰어다니던 건강한 어린 시절은 이제 꿈에서나 만나려나. 글 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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