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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시대 미국인들은 더 안전해졌을까

    트럼프 시대 미국인들은 더 안전해졌을까

    트럼프 집권 후 살인율 역대 최저의 역설 희망잃은 현실 반전…비극적 죽음 최고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으로 공습 살해한 후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이제 더 안전해졌다”고 말했다.선전포고도 없이 외교 목적으로 이라크를 방문 중인 이란의 정규군 총사령관을 암살하도록 한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선택으로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고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인식은 섬뜩하다. 오히려 “자고 일어나니 더 위험한 세계를 목격하게 됐다”는 프랑스 외교관의 탄식이 더 상식적이지 않은가.트럼프가 집권하고 통계상으로 미국(인)은 안전해졌다. 그가 2017년 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후 미국의 살인사건 발생치는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미 법무부·연방수사국(FBI) 집계에서 트럼프의 임기 첫해 전국 살인율은 10만명당 5.3명에서 지난해 5.0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1980년 10만명당 10.2명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수도 워싱턴DC의 살인 발생 건수는 1991년 482건에서 2017년 116건으로, 뉴욕의 일일 총격 발생 건수는 1990년 13건에서 지난해 2건으로 뚝 떨어졌다. 평범한 미국인 대부분이 매년 살인, 폭력 등의 강력 범죄가 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역설의 반전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인들이 역사상 정점을 찍을 만큼의 절망스러운 죽음을 더 많이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학자들이 주시하는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수는 2017년에만 전년 대비 9.6%가 는 7만 237명이었다. 총기 자살은 총기 살인의 감소분을 메우고도 두 배 더 많다. 국가 자살률 통계를 보면 1999년 이후 10만명당 10.5명에서 2017년 14명으로 최고치에 도달했다. 트럼프의 재임 첫해 미국인 4만 7173명이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들이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내는 언어적 토사물”(CNN 논평) 같은 그의 트윗 폭탄들이 미국인들의 일상을 불안하게 한다.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11월까지 대통령 취임 후 트럼프가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1만 1000여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누군가를 ‘공격’하는 트윗이 5889건으로 절반을 넘었다. 공격 대상은 정적인 민주당뿐 아니라 로버트 뮬러 특검, 언론, 동맹국, 이민자, 사회적 약자까지 광범위했고, 극단적인 자기애와 승부욕만큼이나 강렬한 증오심을 담았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미국인의 우울증 발병 빈도가 증가했다는 주장까지 나올까. 친트럼프와 반트럼프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최고 지도자가 증오·혐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시대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아마 빈곤층일 것이다. 소득이 낮고 상대적 박탈감이 큰 사회에서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비용의 장벽 안에서 길을 잃는다. 안전한 미국은 점점 폭력적 성향을 띠는 미국 우선주의와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감추는 포장지가 된다. 우리 사회도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지난 5일 경기 김포시에서 여덟 살 아이와 30대 어머니, 60대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년간 극심한 생활고를 호소하며 세상을 등진 일가족이 70여명에 이른다. 위기 가족들은 월세나 전기료·관리비 미납, ‘0’이 찍힌 통장 잔고 등 제각각 절박한 신호를 보냈지만 사회안전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도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부러진 사다리의 아래쪽 가로대에 위태롭게 한 발을 내디디며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이웃들이여. 새해 부디 안녕하시기를!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싹 바뀐 김학범호 통했다…이란 잡고 도쿄행 한발짝

    싹 바뀐 김학범호 통했다…이란 잡고 도쿄행 한발짝

    이동준·조규성 연속골 8강 조기 확정한국 축구가 ‘난적’ 이란을 잡고 올림픽 본선 9회 연속 진출에 한발 더 다가섰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12일 태국 송클라 탄술라논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이동준(부산)과 조규성(안양)의 연속골을 앞세워 이란을 2-1로 제치고 8강 진출을 확정했다. 2전승으로 승점 6점을 챙겨 조 2위를 확보한 한국은 오는 15일 ‘디펜딩 챔피언’ 우즈베키스탄과의 3차전 결과에 따라 조 1위 여부를 가리게 됐다. C조 1위에 오르면 D조 2위와, C조 2위일 경우 D조 1위와 4강 진출을 다툰다. D조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 요르단, 북한이 속해 있는데 누구를 만나도 조별리그보다는 수월할 전망이다. 8강 조기 확정을 노린 김학범호는 중국과의 1차전에 나섰던 명단에서 7명이나 변화를 주며 승부수를 던졌다. 1차전에서 벤치를 지켰던 조규성과 후반 교체 투입된 이동준,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이 삼각 편대를 이뤄 이란 골문을 노렸다. 또 중국전에 나서지 않았던 정승원(대구)과 원두재(울산)가 중원에서 공수를 조율했고, 이유현(전남)과 정태욱(대구)이 새로 포백 라인에 가세했다. 경기 시작부터 라인을 끌어올린 한국은 강한 전방 압박으로 피지컬이 뛰어난 상대를 밀어붙였으나 오히려 이란은 템포를 조절하며 측면 침투와 롱 드로잉 등을 앞세워 전반 초반에만 세 차례 슈팅을 날리는 등 한국 골문을 위협했다. 한국은 미드필더 맹성웅이 적극적인 슈팅을 시도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전반 14분 중거리슛으로 한국의 첫 슈팅을 기록한 맹성웅은 전반 22분 상대 페널티 박스 앞에서 기회가 생기자 주저하지 않고 상대 골문 구석을 향해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이란 골키퍼가 간신히 쳐내자 중국전 결승골의 주인공 이동준이 골문 앞으로 달려들어 오른발로 차 넣었다. 두 경기 연속골. 한국은 13분 뒤에도 상대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맹성웅의 패스를 받은 조규성이 강력한 왼발 중거리슛으로 이란 골망을 재차 갈라 경기 흐름을 완전하게 가져왔다. 한국은 후반 9분 프리킥 상황에서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바람에 레자 세카리에게 만회 해더골을 허용하고 이후 이란의 공세에 주춤했지만 김진규(부산)와 김대원(대구)을 투입해 맞불을 놓아 승리를 지켜 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40여년간 새끼 800마리, 절멸 종족 되살린 ‘번식왕 거북’ 고향으로

    40여년간 새끼 800마리, 절멸 종족 되살린 ‘번식왕 거북’ 고향으로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59년 남미의 외딴섬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종의 기원’을 썼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수많은 해양생태종이 서식하고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은 특히 갈라파고스땅거북(코끼리거북)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거북 중 몸집이 가장 크고 가장 오래 사는 육지거북인 갈라파고스땅거북은 갈라파고스 제도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다윈이 처음 갈라파고스 제도를 찾았을 때만 해도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15종류의 아종이 있었지만, 선원과 어민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16세기 수십만 마리였던 개체 수는 현재 약 2만 마리까지 급감했다. 1972년 헝가리 출신 과학자가 발견한 갈라파고스 제도 핀타 섬의 마지막 갈라파고스땅거북 ‘조지’가 수십 년간의 보존 노력에도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2012년 100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단명하면서 ‘켈로노이디스 니그라 아빙도니’ 종마저 공식적으로 멸종됐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의 평균 수명은 180년~20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몇몇 아종에서 복원의 기미가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 산타크루즈 섬에서 진행 중인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Chelonoidis hoodensis) 종 보존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 에스파뇰라 섬에 주로 서식하는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 종은 50년 전만 해도 수컷 3마리와 암컷 12마리 등 15마리가 전부였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에스파뇰라 섬에 사는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 종은 2000마리까지 늘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절멸 위기에 놓였던 종족을 되살린 건 다름 아닌 수컷 거북 한 마리였다. BBC에 따르면 늘어난 2000마리의 거북 중 800마리가 모두 한 수컷 거북의 자손으로 밝혀졌다. ‘정력왕’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로 왕성한 번식력을 보인 거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온 ‘디에고’다. 디에고는 1900년~1959년 사이 에스파뇰라 섬을 찾은 원정대가 발견해 미국으로 옮겨졌다. 이후 동물원에서 살던 디에고는 수십 년이 지난 1976년 종족 보존의 특명을 띠고 다시 갈라파고스 제도로 가게 됐다. 거북의 주 먹이인 선인장 나뭇잎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야생 염소들이 쫓겨난 산타크루즈 섬에서 디에고는 다른 14마리의 거북과 함께 본격적인 번식 작업에 들어갔다. 유별난 성욕으로 눈에 띄는 암컷마다 짝짓기를 시도한 디에고는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800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종족 번식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거북이 보존 전문가 워싱턴 타피아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핀타 섬에 살았던 ‘조지’는 무정란을 낳는 등 번식력이 떨어졌고 결국 한 마리의 새끼도 낳지 못한 채 멸종됐다. 반면 디에고는 짝짓기를 정말 좋아했고, 암컷들도 그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100살이 넘은 나이에도 남다른 번식력을 보여준 디에고 덕에 셸로노이디스 후덴시스 종이 멸종 위기를 벗어난 셈이다.이처럼 종족 보존의 특명을 성공적으로 마친 디에고는 오는 3월 산타크루즈 섬을 떠나 귀향한다. BBC는 11일(현지시간) 디에고가 산타크루즈 섬에서 태어나 에스파뇰라 섬으로 옮겨진 다른 1800마리의 거북의 뒤를 따라 고향인 에스파뇰라 섬으로 돌아간다고 보도했다. 고향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갈라파고스 제도로 보내져 종족 번식의 사명을 수행한 지 약 80년 만이다. 800마리의 자손을 본 디에고는 이제 고향 땅에서 여생을 보내며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지난해 2월 갈라파고스 제도 페르난디나 섬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추측됐던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아종 ‘페르난디나 자이언트 거북’ 한 마리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1906년 배설물과 이빨 자국 등이 발견됐지만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13년 만의 일이다. 100살이 넘은 것으로 보이는 암컷 거북은 현재 산타크루즈 섬의 전용 사육장으로 옮겨진 상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갈라파고스 황소거북 種 보존 기여 디에고 “80년 만에 개선해요”

    갈라파고스 황소거북 種 보존 기여 디에고 “80년 만에 개선해요”

     갈라파고스 제도 황소거북 ‘디에고’입니다. 올해 백 살이 돼서 고향인 에스파뇰라 섬의 야생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는데, 80년 만의 개선이라고 해요.  이래 봬도 전,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의 보존을 위해 열세 마리의 수컷들과 함께 뽑혀 산타 크루즈 섬으로 옮겨져 지낸 대단한 수컷이랍니다. 이곳은 일종의 번식 실험장이었지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 성적 충동은 좀 센 편이랍니다. 자식들이 수백 마리인데 어떤 분들은 800마리쯤 된다고 하더군요.  대단히 성공적인 종족 보존 노력이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1800마리가 산타 크루즈 섬에서 에스파뇰라 섬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자연 상태로 번식한 200마리와 합쳐져 이제 에스파뇰라 섬에는 2000마리가 살게 됐습니다. 저도 이제 3월에 고향 섬에 돌아가게 된다고 갈라파고스 국립공원공단(PNG)이 10일 밝혔다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어요. ‘임무 다했으니 이제 고향 가서 여생을 편히 마치라’는 배려인 셈이지요. 고마운 일이지요.  공원 레인저들은 적어도 이 중 40%는 제 핏줄이라고 얘기들 한답니다. 호르헤 카리온 공단 국장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자손들이 에스파뇰라 섬에 돌아오게 하는 데 기여한 바가 많다. 자신이 태어난 야생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공단에서는 제가 80년 전에 에스파뇰라 섬을 떠난 것으로 믿고 있어요. 50년 전에 에스파뇰라 섬에 사는 제 종족은 두 마리 수컷과 열두 마리 암컷 뿐이었지요. 전 육십 년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있다가 산타 크루즈 섬으로 옮겨졌고요. 현재는 갈라파고스 제도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된 지역으로 여겨지는 에스파뇰 섬으로 개선하기 전에 검역 관리를 받고 있답니다.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906㎞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독특한 식생과 야생동물들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공인됐지요. 이구아나, 거북이처럼 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서식하는 종 때문에 찰스 다윈 님의 ‘종의 기원’ 집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고요. 전 세계 관광객들이 종의 다양상을 구경하러 몰려들지요.  저희 갈라파고스 황소거북과 사촌이 있는데요, 인도양 세이셸 제도에 사는 알다브라 황소거북이랍니다. 여러분이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황소거북은 대부분 저희 사촌들이고요. 딱지 크기가 1.2m여서 뭍에 사는 거북 가운데 가장 크답니다. 가장 오랜 사육된 저희 종으로는 152년이 기록으로 남아 있답니다. 다윈 님이 진화론의 근거로 삼은 것이 섬에 사는 저희 황소거북의 딱지 모양이 제각기 다른 것이었답니다. 갈라파고스란 이름도 스페인어 ‘안장’에서 유래했는데 딱지 모양이 그걸 연상시켜서 였다고 하지요.  저희가 멸종 위기로 치달았던 이유는 유전에서 원유를 채굴하던 선단들이 식용으로 무분별하게 포획한 결과였답니다. 그런데 제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대략 40년 안팎일 것 같은데 지구 반대편, 한국인 여러분을 제가 뵐 날이 올까요?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충남 부남호 방조제 트고 역간척… 갯벌 되살려 자연생태시대 연다

    충남 부남호 방조제 트고 역간척… 갯벌 되살려 자연생태시대 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폐유조선 물막이’ 공사는 전설이다. 정 회장은 충남 서산AB지구 방조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천수만의 극심한 조수간만의 차로 난관에 부딪히자 폐유조선을 동원해 바다의 거센 물살과 파도를 막아 공기를 36개월 단축했다. 이는 ‘정주영 공법’이란 이름으로 세계적 뉴스가 됐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84년 방조제를 완공했다. A지구에 ‘간월호’, B지구에 ‘부남호’라는 거대 담수호도 만들었다. 두 인공 호수는 광활한 주변의 간척 농지에 물을 대는 용도다.세기가 바뀐 지금 충남도가 부남호 역간척에 나선다. 방조제를 트고 바닷물을 유통시켜 갯벌 등을 복원하려는 이 거대한 사업이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개발과 간척의 시대’에서 ‘자연과 환경의 시대’로 전환됐음을 분명히 하는 신호탄이자 상징이다.충남도는 2030년까지 모두 2971억원을 투입해 부남호 하구복원 사업을 벌인다고 9일 밝혔다. 올해 기본계획 수립에 이어 내년에 실시계획과 부남호 퇴적물 처리 및 시험방류 등을 한다. 2022~2027년 하구복원 공사, 갯벌 복원, 하구환경 개선이 이어지고 이후 3년 동안 해수유통을 하고 하구 식생 복원사업을 벌인다. 도는 최근 이 같은 부남호 복원사업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2030년까지 오염된 부남호 바다로 바꾼다 박중호 주무관은 “정부에서 경기 시화호를 대상으로 조력발전소 건설과 해수유통에 나선 일이 있지만 자치단체가 대규모 역간척에 나선 것은 부남호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최종보고회에서 “지금은 개발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의 시대”라며 “농경지의 100배가 넘는 가치를 지닌 갯벌을 되살리는 게 새로운 미래이고 부남호 역간척이 그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충남도가 부남호를 역간척지로 삼은 것은 비교적 장애물이 없어서다. 박 주무관은 “천수만을 낀 보령호, 홍성호 소유 및 관리자인 한국농어촌공사 입장에서 역간척은 스스로 한 간척사업을 부정하는 것인 데다 사업비가 막대해 반대하지만 부남호는 국가 소유지만 물을 현대건설이 관리해 사업이 가능하다”면서 “현대건설도 역간척 반대 입장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부남호는 1982년 10월 담수를 시작한 뒤 37년 동안 호수에 갇혀 농업용수로 쓰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다”며 “이게 가장 큰 역간척 이유”라고 덧붙였다. ●짜고 더러운 담수호 그냥 두면 천수만 재앙 될 것 부남호 수질은 지난해 물속에 함유된 유기물 농도인 총유기탄소(TOC) 함량이 ℓ당 14.2㎎으로 6등급(8㎎ 초과)이다. 7개 등급 중 최악으로 4등급(6㎎ 이하) 아래는 적당한 농업용수로 쓰기 어렵다. 수질오염은 상·하류를 가리지 않는다.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에 걸쳐 끝없이 펼쳐진 부남호는 1560㏊로 여의도 면적(2.9㎢)의 5배가 넘는다. 길이 11㎞, 폭 500m~2㎞에 이르는 거대 호수의 물이 모두 오염됐다. 게다가 돌과 흙으로 쌓은 방조제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하류 쪽은 염분 농도가 높다. 방조제는 길이 1228m다. 박 주무관은 “담수호 20%는 염분이 섞여 있다. 방조제 쪽은 바닷물처럼 짜다”며 “비중이 높은 염분 섞인 물은 하층에 깔려 수문을 열어도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짠물과 오염물질이 섞여 쌓이고 썩어 간다”고 설명했다. 건설 시 담수호 밑에 바닥물을 뺄 수 있는 대형 파이프를 설치했지만 어민들의 반대로 가동이 중지된 상태다. 방조제 앞 천수만에는 우럭 등 양식장이 많다. 천수만에서는 63개 어가가 가두리양식장에서 우럭과 숭어 2062만 3000마리를 키우고 있고, 이 외에도 2665㏊의 바지락, 굴, 새조개 등 양식장이 운영되고 있다. 부남호 인근 한 어민은 “장마철 등에 부남호에서 민물을 흘려보내면 체력이 허약해진 물고기들이 무더기로 폐사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천수만에는 36억t의 바닷물이 담겼지만 부남호 등 4개 담수호가 매년 4억 6000만t의 민물을 쏟아 내 뒤섞인다. 한준섭 도 해양수산국장은 “천수만 물이 남쪽에서 북쪽인 부남호 앞으로 밀려갔다 썰물에 되돌아오는데 유속이 느려 바닷속에 퇴적물이 쌓여 썩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천수만 해양생태가 재앙을 맞는다”고 말했다. 안면도와 서산AB지구 등에 둘러싸인 천수만은 평소 수질이 2등급으로 서해와 별 차이가 없으나 부남호 등이 민물을 방류하면 4~5등급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부남호 하류는 기수역, 상류는 담수호 충남도는 현재 부남호 방조제 밑으로 폭 10m, 높이 3m 사각형 관로 10개를 설치한다. 바닷물이 천수만과 부남호를 드나드는 통로다. 부남호 유입 바닷물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현재 천수만 수위는 만조 때 기준으로 부남호 주변 농경지보다 1.6m 높다. 배들이 천수만과 부남호를 오갈 수 있는 통선문도 만들어진다. 방조제 도로에서 갈라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우회도로를 건설해 두 길을 활용한 통선문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한 국장은 “우회도로에 만든 교량을 들어 배가 출입할 때는 방조제 도로로, 방조제 위 교량을 들어 배가 출입할 때는 우회도로로 차량을 통행시키는 방식”이라며 “방조제와 우회도로 사이 수로에 요트 30~40대가 한꺼번에 들어가 출입을 기다리는 모습은 장관일 것이다.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상품”이라고 기대했다. 요트보다 어선이 주로 오갈 전망이다. 방조제에서 상류 쪽 6㎞ 지점에 길이 1600m 둑이 건설된다. 부남호 중간을 가로질러 태안군 남면 송암리와 서산시 부석면 봉락리를 잇는다. 바닷물·민물을 경계 짓는 둑으로 하류는 해수와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상류는 담수호를 유지한다. 수량으로 따지면 현 부남호 수량 8400만t 중 2000t만 민물로 남는다. 하류 쪽 최대 수심이 16m에 이르고, 상류지역은 3m 정도로 낮다. 담수호 서쪽에 태안기업도시, 동쪽에 서산웰빙특구가 조성 중이다. 박 주무관은 “서산 2개, 태안 1개 하천물이 부남호로 유입되지만 수량이 적어 호수를 줄여도 괜찮다”면서 “둑에 차수막을 설치해 바닷물 침투를 막고 바닥층 민물까지 빠지는 배수갑문도 만든다”고 말했다. ●갯벌 되살려 물고기와 굴·바지락 돌아오게 도는 해수유통으로 되살아날 부남호 갯벌이 938㏊에 이른다고 했다. 또 둑 인근 논 500㏊를 구입해 인공 갯벌도 만든다. 물살이 잔잔한 상류는 물고기 산란장, 갯벌마다 굴과 바지락 등이 지천이던 옛날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붕어와 미꾸라지, 하류는 이마저 없는 ‘죽은 호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양수산부는 2013년 갯벌 ㎢당 소득 가치가 63억원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담수호 내 퇴적물 처리다. 어민들은 담수호 방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도는 담수호 바닥 퇴적물로 둑 전방 기수역에 ‘버드랜드’를 조성한다는 생각이다. 천수만과 서산AB지구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박 주무관은 “퇴적물을 바다로 쏟아 내지 않고 해수유통도 바닷물과 민물이 천천히 섞이며 기수역이 만들어지도록 해 해양생태계 충격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국장은 “올해 주민설명회를 열어 어민들에게 이 부분을 설득하고 더 좋은 해법도 찾겠다”면서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해 국비가 확보될 수 있도록 나서겠다. 너무 큰 사업이라며 부정적이던 해수부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민주노총 60명 총선 출마 도전… 김명환 “창당 안 한다”

    민주노총 60명 총선 출마 도전… 김명환 “창당 안 한다”

    ‘제1노총’으로 올라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오는 4월 15일 치러지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60명이 넘는 후보를 낼 예정이다. 4년 전 총선 때보다 2배 이상 많은 인원이 금배지에 도전한다. 단 이번 총선에 대비해 민주노총 독자 정당을 만들지는 않기로 했다. 김명환(55)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합원과 각 지부 간부들의 총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면서도 “일각의 관측처럼 ‘민주노총당’을 창당해 원내 진출을 시도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정당이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5개로 갈라져 노동자 권익을 제대로 대변할 곳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는 게 지도부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말 노조 집행부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독자 정당 창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진보 정당들이 공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드는 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선에서 전략 지역구를 중심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보낼 계획이다. 정의당, 민중당 등 진보 정당과 협의해 60명 이상의 조합원 출마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기독교 골칫거리 된 한기총, 선거로 부활할까 해체될까

    기독교 골칫거리 된 한기총, 선거로 부활할까 해체될까

    이달 말 정기총회서 차기 회장 선출 금권선거·이단 시비로 교세 하락세 정치적 집회로 보수 개신교 대표 인식 전광훈 목사 연임 여부 따라 운명 좌우전광훈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있는 보수 개신교단 엽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정부 공식 답변 요건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기총이 제26대 대표회장 선거에 돌입해 향후 한기총의 향방에 개신교계와 일반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길자연 목사)의 대표회장 선출 공고에 따르면 오는 10일 오후 5시까지 후보자 등록을 받아 13~15일 후보자격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를 발표해 선거 일정에 돌입한다. 정견발표회 등 선거운동 기간을 거쳐 이달 말로 예정된 한기총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최종 선출한다. 이에 따라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계에선 어떤 후보가 나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현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를 비롯해 1~2명이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전 목사의 후보 등록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 목사가 연임할 경우든 다른 인물이 당선될 경우든 한기총의 운명은 크게 갈릴 것이란 전망이다. 한기총 해산은 헌법에 명시된 정교 분리의 원칙상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전 목사의 구속이 기각된 만큼 전 목사가 수장으로 있는 개신교 연합기구 한기총에 대한 해산 조치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1989년 창립된 한기총은 대부분의 한국 보수 개신교단이 가입해 오랫동안 한국 개신교의 대표 연합기구이자 얼굴로 인식돼 왔다. 그러다가 잇단 금권선거와 이단 시비 끝에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갈라져 나가는 등 분열을 계속해 현재는 교세가 전체 개신교 신자의 3%에 불과한 소수 연합체로 전락했다. 특히 전 목사의 정치적 집회와 ‘대통령 하야’ 같은 종교 이탈의 막말로 정체성 측면에서 개신교는 물론 일반인들의 눈총과 지탄을 받고 있다. 개신교계에 따르면 현재 한기총은 각종 집회에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는 전 대표회장을 빼곤 이렇다 할 활동 없이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은 사회 일반에선 여전히 보수 개신교의 대표로 인식되곤 한다. 실제로 한기총은 담당 정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단법인 관장기관으로 등록돼 있다. 비록 이름뿐인 한기총으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개신교 대표 연합기관으로 통한다. 따라서 이번 대표회장 선거를 계기로 한기총 정상화를 겨냥한 목소리가 벌써부터 분출하고 있다. 실제로 후보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은 한기총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뽑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개신교 시민단체인 평화나무는 지난 6일 전 목사를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재차 고발하며 구속 상태에서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한기총은 새 수장이 뽑힐 경우 당분간 연합기구의 명목을 유지하면서 다른 연합기구와의 통합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지난해 한기총과 한교연은 양측 대표의 회동을 통해 통합 합의 직전까지 진전시켰지만 이단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현재 한교연과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등 각 연합기관의 수장들도 연합기구 통합을 올해 개신교의 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추세다. 일각에선 부활절과 총선이 끝나는 무렵 구체적인 통합 움직임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측 한 목회자는 “위상과 교세가 추락한 지금의 한기총 체제론 사실상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 개신교계 인사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면서 “이달 말쯤 한기총 총회의 선거 결과에 따라 한국 개신교계가 또 한번 요동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유시민 “진중권 글, 검찰발 기사와 거의 같았다”

    유시민 “진중권 글, 검찰발 기사와 거의 같았다”

    사람사는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은 7일 “진중권 전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내용이 수도 없이 봤던 검찰발 기사와 거의 같았다”며 신년토론에서 논쟁을 안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유시민 이사장은 이날 유튜브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에서 “어떤 때에는 판단이 일치했고 길을 함께 걸었던 사이지만 지금은 갈림길에서 나는 이쪽으로, 진 전 교수는 저쪽으로 가기로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조국 사태에 대한 견해가 갈라졌다.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최대한 존중하며 작별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으로 토론에 나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보고 망상, 확증편향이라고 그러지만, 누구나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이라면서 “진 전 교수가 밤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동영상이나 썼던 글을 보고, 자기 생각과 감정에 대해 거리를 두고 성찰해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진 전 교수가 토론회에서 알릴레오에 대해 판타지물이라고 비판한데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며 “보는 사람의 자유로 주관이 달린 문제로 우리가 아니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씨줄날줄] ‘인질사법’과 카를로스 곤/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질사법’과 카를로스 곤/황성기 논설위원

    2016년에 시즌1, 2018년에 시즌2로 방송가를 석권한 일본 드라마 ‘99.9-형사전문변호사’는 검찰이 기소한 형사사건의 99.9%가 유죄가 되는 사법 현실에 맞서 피고의 무죄를 쟁취하는 천재 변호사의 활약을 그렸다. 드라마 타이틀에 내건 99.9는 허구가 아니다. 2015년 최고재판소(대법원 격)가 낸 사법통계를 보면 유죄사건 5만 3120건, 무죄는 70건에 불과해 유죄율이 99.86%에 달했다. 일단 기소되면 무죄 판결을 받기가 불가능한 게 일본이다. 유죄가 될 만한 사건만 기소하는 게 일본 검찰이고, 그 기소를 신뢰하는 게 일본 법원이라 할 수 있으나 유죄를 만들어 내기까지 용의자 혹은 피의자가 받아야 하는 가혹한 수사도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인질사법’이다. 구속영장 등에 의해 최대 23일까지 인신을 구속해 취조할 수 있으나 피의자 혹은 피고인이 피의사실이나 공소사실을 부인하면 구속기간이 장기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경찰이나 검찰이 바라는 진술을 얻기 위해 피의자 등을 인질처럼 잡아 놓는다고 해서 ‘인질사법’이란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붙었다. ‘보석 중 해외여행 금지’를 어기고 지난 연말 일본에서 탈출한 카를로스 곤(65) 전 닛산 회장은 레바논 도착 직후 “취조 때 변호사도 동석시키지 못하게 하는 후진적인 일본 사법의 인질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취조 때 변호사 동석이 가능하고 유죄율 60~70%대인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해 보면 갈라파고스에 비유되는 일본의 낙후한 사법체계는 곤 전 회장의 화려한 탈주극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곤 전 회장의 도주에는 일본 언론들 대부분이 비판적이지만 ‘기소=유죄’인 일본이 독재적 사법체계를 지닌 중국이나 북한과 비슷하다는 통렬한 자기비판의 목소리도 일본 내에서 존재한다. 곤 전 회장이 지난해 3월 초 구속 108일 만에 10억엔(약 108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가 재수감됐던 도쿄구치소 생활도 그를 도주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높다. 곤 전 회장은 밤에도 불 켜진 5㎡짜리 독방에서 지내며 굴욕적인 신체검사, 조악한 식사,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은 하루 30분에 불과한 구치소를 경험했다. 그러나 99.9%의 확률로 유죄가 확정되면 구치소보다 환경이 나쁜 일본 형무소로 보내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주한 것은 재력가인 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곤 전 회장은 8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0시)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대리인이 어제 밝혔다. 도주 과정은 물론 체포, 구속, 기소 등의 과정에서 보여 준 일본의 인질사법에 대해 언급할 그의 폭탄발언에 ‘지금 나 떨고 있니’ 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 핵카드 꺼낸 이란, 시험대 오른 트럼프… 중동 넘어 글로벌 위기 번지나

    핵카드 꺼낸 이란, 시험대 오른 트럼프… 중동 넘어 글로벌 위기 번지나

    새해 벽두부터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한 뒤 불안불안하던 중동 상황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드론을 이용한 표적 공격으로 사살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즉각 철저한 보복을 천명한 데 이어 이란 정부가 5일 사실상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미국과 유럽, 중동 국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겠다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벌인 전임 미국 대통령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들 국가에서 발을 빼려 애써 온 트럼프 대통령. 지난해부터 시리아와 이라크 등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군을 증파하더니 급기야 이란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전면전으로 확대하기에는 미국과 이란 모두 부담이 너무 커 국지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최악의 상황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미국의 최대압박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임박한 공격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대외정책의 전환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고조되는 이란 위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 조짐을 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폼페이오 “이라크 국민은 미군 주둔 지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자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이 미국인과 미국의 자산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로 정해 놓았고 최첨단 무기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52라는 숫자는 1977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444일간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 수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이란 최고지도자의 군사 수석보좌관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상대로 군사 대응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군사시설 등 35곳과 이스라엘 텔아비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문화유산도 공격 목표에 포함돼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내용을 문제 삼으며 이는 유엔 결의에 위배된다고 경고까지 하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계속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갈라졌던 이란의 민심은 이번 공격을 계기로 반미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라크 의회는 5일 미군은 물론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미군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군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요인을 일방적으로 표적 공격해 살해한 것은 주권 침해라며 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국민들이 이슬람국가(IS) 잔당 격퇴를 위해 미군 주둔을 지지한다며 이라크 의회의 결의를 일축했다. 이라크 의회 결의는 구속력이 없고, 미국 정부가 철수 요구를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란 위기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고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이 높아져 미군 철수 요구가 거세지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지난 4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이라크 정부가 (이란의 압박에 떠밀려) 5000명 규모의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이라크에서 이란의 영향력과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단체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솔레이마니 제거로 불안정한 중동에 중대 변화 미국은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이전에도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과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추적해 제거했다. 빈라덴이나 알 바그다디는 테러단체의 지도자였지만, 솔레이마니는 이란이라는 국가의 군 지도자라는 점에서 의미와 파장이 다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에 위협이 되는 솔레이마니를 제거하고 싶어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분석한다. 즉 이란의 군 실세를 제거할 경우 자칫 이란과의 전면전으로 불똥이 튈 위험이 크다. 그럴 경우 유럽과 중동의 동맹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고 중동에서의 입지도 악화시킬 수 있어 선택지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온 트럼프 대통령이 ‘방어적 공격’이라고 주장하며 이란에 제한적 군사행동을 승인한 것은 의외다. 상원의 탄핵심판과 재선 레이스를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으로 보이는 이유다. 하스 회장은 “이번에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직접 제거한 것은 2003년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이래 불안정한 중동 정세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표적 공격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후폭풍이 중동 및 세계정세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국지전에 그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지만 장담하기는 어렵다. 분쟁을 촉발하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거나 종식시키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외교안보팀이 후폭풍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험 부족으로 두세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결정해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댕겼다는 비판이 골자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줌으로써 이란의 도발을 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 중에는 미 중부사령관과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대통령들이 군사적 충돌 위기에 처하면 노련한 참모들과 믿을 만한 정보 자산, 든든한 동맹들, 국민의 신뢰가 중요한데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4가지가 모두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외교안보팀의 잦은 교체로 폼페이오 장관을 제외하고는 대외정책을 다뤄 본 전문가가 거의 없다.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 취임 초부터 자국 정보기관을 대놓고 불신하며 갈등을 빚어 왔다. 정보기관의 분석보다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 주요 결정을 내려왔다. 또 동맹 관계를 돈으로 평가하는 트럼프식 접근은 우방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원인이 됐다. 이번 표적 공격 계획도 영국과 프랑스 등에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고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국무장관이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다. ●유럽·중동동맹국 중재… 美와 유대 쉽지 않아 이란 사태가 중동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과 중동의 동맹국들이 일단은 외교적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동맹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강력한 유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취임 이후 최대의 외교적 시험대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 이란 위기를 상원의 탄핵심판 정국을 돌파하고 재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둔 이 시점에 왜 솔레이마니를 표적 공격했는지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상원의 탄핵심판에 쏠린 관심을 이란으로 돌리고, 강한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이를 몇 안 되는 외교적 성과로 포장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란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한 대로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보다 자신의 직관을 믿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의 파장은 미국과 이란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위기가 중동 위기로, 글로벌 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할 능력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있을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날것의 언어로 자유 외쳤던 시인 김수영…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

    “날것의 언어로 자유 외쳤던 시인 김수영…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

    한국 문단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뚫고 꿋꿋하고 공고하게 융성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때론 누구는 체제를 찬양하고 또 누구는 침묵했지만, 많은 문인들은 자신의 정신과 삶을 글로 말로 풀어내면서 시대를 이야기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이자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한국 문단의 큰길을 만든 인물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함께 들여다보며 문단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시인 김수영(1921~1968)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뜨거운 상징으로서, 아직도 탕진되지 않는 신화를 거느리고 있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해방 후 그의 시는 다음 세대들에게 가장 광범위한 감염력을 가진 선행 모델이 돼 주었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정직성과 현실참여 의지로 시를 썼던 그는 그릇된 것들에 대한 철저한 부정 정신으로, 흔치 않은 비판적 지성으로, 자유와 혁명을 향한 역동적 언어로 기억되고 있는 위대한 시인이다. 그런 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나의 가족’)라는 구절에서 보듯, 그것은 순하고 아득한 사랑의 물결에 감싸인 낡은 둥지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말에 찾아뵀던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에게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가를 실감 있게 들려주었다. 이미 ‘김수영의 연인’(2013)에서 기억 속의 남편을 선명하게 재현한 바 있는 그녀는, 생전 남편이 남겼던 창작 일화나 소소한 삶의 맥락까지 아득하게 전해 주었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여섯 살 위 김수영을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줄곧 따랐고, 1950년 초 서울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휴전 후 김수영과 다시 결합하여 정착한 곳이 성북동이었다. 그로부터 시인이 타계하기까지 김현경은 시인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독자로 함께 살았다. 지금도 남편과 자신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열정을 지켜 주었노라고 말하는 그녀는, 남편이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이 오늘의 자신을 붙잡아 주고 지켜 주고 있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시간을 그대로 품은 책과 유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면서 아직도 자신이 ‘시인의 연인, 시인의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김현경 여사는 1927년생이다. 수업 시간에 김수영 초기작 ‘토끼’를 말할 때 그의 아내가 토끼띠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니, “토끼띠 맞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닭띠고요. 우리가 양계를 했잖아요. 양계장 안에 토끼도 길렀어요”라고 웃으면서 말을 건네신다. 김수영이 1921년생 닭띠이니 내년은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 된다. 전후를 풍미했던 조병화나 김종삼도 동갑내기들이다. “조병화 선생 부인은 진명여고 3년 선배예요. 부덕이 훌륭한 사람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김현경 여사는 현대사의 쟁쟁한 인물들과 관계가 깊다. 작곡가 김순남이 친척 오빠였고, 젊은 시절 임화, 오장환, 박인환 등과도 교유가 깊었다. 이화여대 영문과 다닐 때 정지용 선생께 배우시지 않았느냐고 여쭙자 “그때 시경을 가르치셨어요. 판서를 내가 했어요. 시경에 실린 한시를 한자로 쓰는데 참 열심히 칠판에 가득 썼어요”라고 들려주신다. 정지용 선생 댁에는 안 가보셨냐고 하자 어제인 듯 선명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돈암동 얌전한 기와집에 사셨어요. 근데 이화 그만두시고 녹번리로 가셨어요. 녹번리 댁은 한 번 갔거든요. 겨울철인데 한 번 술이 취하셔 가지고 나 혼자 못 간다고 그러시면서 함께 녹번리까지 갔어요. 참으로 학식이 대단하셨고 라틴어나 영어도 대단하셨지요. 한문은 물론이고요.” 김현경 여사의 첫사랑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다. 그의 첫사랑인 시인 배인철은 그때 매우 이례적으로 ‘흑인시’(黑人詩)를 쓰던 사람이었다. “형님이 인천에서 손꼽는 유수한 실업가이면서 무역상이었어요. 서울과 인천을 걸어 오가기도 했는데 우리는 참 호흡이 잘 맞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리도 안 아팠어요. 얘기를 거침없이 한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산에서 그분이 머리에 총을 맞았어요. 첫사랑이었고 처음 연애다운 연애를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배인철은 김현경 여사와 데이트 중 누군가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김현경 여사는 이화여대의 연애금지 학칙을 어겨 제적을 당한다. 그리고 김수영과 다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김수영의 1950년대는 실존적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명동 문청들 사이의 히로인이었던 김현경과 결혼하여 짧은 시간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결혼 4개월 만에 의용군에 강제 동원됐고, 거기서 야간탈출했다가 체포돼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거제에서 아산 수용소로 이동한 그는 1952년 12월과 1953년 2월 사이로 추정되는 어느 시점에 아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온다. 그리고 바로 부산으로 간다. 그때 ‘자유세계’ 편집장이었던 소설가 박연희의 청탁으로 1953년 5월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를 쓴다. 시인 박태진의 주선으로 미8군 수송관 통역으로 취직하였지만 곧 그만두고 모교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그해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어느 날 그는 서울로 올라와 ‘주간 태평양’ 편집부에 근무하게 됐고, 그 후로 타계할 때까지 서울에서 쭉 살았다. 1952년 말부터 1954년까지의 김수영은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통역으로 교사로 잡지사로 동선을 옮겨 갔고, 공간적으로는 포로수용소(거제·아산), 부산과 대구, 서울로 옮겨 갔다. “그때 시 한 편이 얼만가 하면 30원이에요. 근데 그분 시는 팔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지면이 거의 없었지요. 한 달에 시 한 편 정도 쓰고 나머지 시간은 번역에 매달렸어요. 공터에다 닭을 길렀는데 잘되었어요. 1961년인가 쌀 파동이 일어나 쌀이고 뭐고 십 배로 뛰었어요. 덩달아 옥수수도 모이도 다 수입이어서 사료 값이 너무 오르고 알 값은 떨어지는 거예요. 거의 십 년 가까울 때 내가 딱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김현경은 참으로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분이었다. 이렇게 김수영은 생애 내내 김현경이라는 삶의 동반자이자 매니저이자 동지와 함께했다. 생활의 구체는 물론 시의 초고를 가지런히 정서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김수영은 자기 책이건 남의 책이건 읽으면서 낙서나 언더라인을 치고 책장을 접어 헌책으로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정력적인 독서력을 가진 이였다. 손때와 흔적이야말로 그의 책 읽기의 결실이었다. 김현경은 이러한 흔적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남편 사후에 의상실 경영에 미술 컬렉터 및 디렉터로 줄곧 활동하면서 살았다. 나날의 난경과 고독도 시인의 연인이요 아내라는 자의식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두루 알다시피, 김수영은 사랑의 시인이다. 그는 ‘사랑’이라는 작품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이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낭만적 분위기와는 반대편에서 사랑의 모순과 복합성을 날카로운 이미지로 포착한 작품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불멸의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번개처럼 금이 간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출렁이게 하는 매혹이 아니던가. 김수영은 이러한 번개 같은 순간의 사랑을 여러 흔적으로 남겼다. 그는 자신의 시나 산문에서 여성들에 대한 여러 경험과 기억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김수영의 유일한 여인은 아내 김현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김수영은 언젠가 “시를 쓰는 나의 친구들 중에는 나의 시에 ‘여편네’만이 많이 나오고 진짜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친구”(‘미인’)도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로 “나는 닭띠이고 나의 아내가 바로 토끼띠”(‘토끼’)인 김수영과 김현경 사이의 사랑과 이별, 재회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굴곡의 여정이 김수영만의 사랑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그의 시편에 ‘여편네’가 많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수영 작품에서 출몰하는 여러 여성들은 김현경에 비하면 김수영에게 잠깐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김현경은 시인이 글을 쓸 때 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소음이 없는 서강 언덕을 거주지로 택하기도 했다. 시인의 삶과 정서와 기분까지 헤아렸던 그녀는 그 점에서 김수영의 가장 순하고 아득한 둥지였을 것이다. 그 ‘유일한 여인’ 김현경이 “50년이 못 돼서 가셨으니까 얼마나 안 됐어요?” 하면서 김수영으로 하여 자신이 행복했음은 물론 우리 문학사도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지금도 기뻐하노라고 한다. 번개처럼 불안하기는 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었던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새보수당 ‘화환’ 논란에도 황교안 ‘통합추진위’ 공식화

    새보수당 ‘화환’ 논란에도 황교안 ‘통합추진위’ 공식화

    ‘제3지대’ 질문엔 “어디에 설치하느냐 중요치 않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어 4·15 총선 전 야권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황교안 대표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를 만들고자 한다. 통추위는 이기는 통합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누구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폭넓게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통추위가 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1야당이자 자유민주세력의 뿌리 정당인 한국당이 앞장서서 통합의 물꼬를 트겠다. 기존 자유민주 진영 정당들은 물론이고 이언주·이정현 의원 등이 추진하는 신당들, 국민통합연대와 소상공인신당 등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겠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는 “우리가 이 정권을 심판하지 못한다면 역사는 바로 우리를 심판할 것”이라며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는 사치에 가깝다. 반드시 이겨서 심판하고, 국민을 더 잘살게 해드려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가 추진하는 보수대통합 성사 가능성에 대해 여론은 아직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매일경제가 4·15 총선을 100일 앞두고 여론조사 업체 매트릭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3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수대통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은 67.5%로 가능하다는 응답의 3배를 웃돌았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당장 주요 통합 상대 중 하나인 새로운보수당(새보수당) 측도 황교안 대표가 주도하는 보수대통합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공식 출범한 새보수당의 창당 대회에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축하 화환을 보냈지만 한국당에서는 화환이나 당내 인사가 참석하지 않아 뒷말이 나왔다. 새보수당과 갈라서게 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측도 화환을 보내진 않았지만, 안철수계인 권은희·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참석했다.황 대표는 회의 후 통추위를 당 내부에 둘지, 당 밖의 ‘제3지대’에 만들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어디에 설치하느냐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전희경 대변인은 “통추위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든, 당내든 당외든 상관없이 빨리 모여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이런 노력에 대해 새롭게 출범한 새로운보수당, 그리고 여러 세력께서 화답해주실 거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황교안 대표는 통합을 위해선 자신이 먼저 내려놔야 한다는 지적에는 “제가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외부에 ‘통합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홍준표 전 대표 등의 촉구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렇지만 통추위를 구성해 거기서 차근차근 논의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반응했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한국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선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다 함께 뭉쳐야 한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해 나가고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허일영 막판 3점포에 인삼공사 ‘눈물’

    허일영 막판 3점포에 인삼공사 ‘눈물’

    고양 오리온이 짜릿한 한 점 차 역전승을 거두며 단독 1위 등극을 눈앞에 뒀던 안양 KGC의 발목을 잡았다. 오리온은 5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20시즌 프로농구 KGC와의 홈경기에서 부상에서 돌아온 허일영(11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린 3점포에 힘입어 84-83, 한 점 차 승리를 따냈다. 지난 1일 서울 SK를 꺾은 데 이어 또 대어를 낚은 오리온은 새해 첫 세 경기에서 2승1패를 기록하며 창원 LG와 함께 공동 9위(10승20패)가 됐다. KGC는 두 시간 앞서 열린 경기에서 SK가 3연패 늪에 빠져 잠시 단독 1위에 올랐으나 막판 집중력에서 밀리며 SK와 공동 1위(19승11패)를 유지했다.3쿼터 막판에 꽂힌 허일영의 3점슛에 힘입어 65-63으로 근소하게 앞선 채 4쿼터에 돌입한 오리온은 그러나, 상대에게 거푸 3점포를 얻어맞은 데 이어 브랜든 브라운(20점 9리바운드)과 문성곤(17점 8리바운드)에게 골밑을 내주며 리드를 빼앗겼다. 그러나 경기 종료 41초 전 던진 허일영의 3점슛이 림을 갈라 84-83으로 승부를 뒤집은 뒤 앞서 허일영의 슛을 어시스트했던 이승현이 김철욱의 슛을 블록하며 승리를 지켜냈다. 한 점 차 승부는 창원에서도 연출됐다. 인천 전자랜드가 홈팀 LG의 막판 거센 추격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80-79로 승리했다. 접전이던 경기는 마지막 순간이 더 짜릿했다. LG는 경기 종료 34초를 남겨 놓고 캐디 라렌(17점 5리바운드)이 3점포를 꽂으며 78-80으로 전자랜드를 따라붙었다. 전자랜드는 트로이 길렌워터(29점 5리바운드)가 종료 6초 전 3점슛을 던졌지만 득점에 실패했다. 이어진 LG 속공에서 라렌은 골밑슛을 시도하다 반칙을 얻어내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라렌이 두 번째 자유투를 실패해 전자랜드는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움켜쥐었다. 한편 울산 현대모비스는 홈경기에서 ‘더블더블’(27점 16리바운드)을 기록한 리온 윌리엄스를 앞세워 SK를 83-77로 제압했다. 전주 KCC는 잠실 원정에서 서울 삼성을 84-66으로 눌렀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허일영 막판 3점포에 인삼공사 ‘눈물’

    고양 오리온이 짜릿한 한 점 차 역전승을 거두며 단독 1위 등극을 눈앞에 뒀던 안양 KGC의 발목을 잡았다. 오리온은 5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20시즌 프로농구 KGC와의 홈경기에서 부상에서 돌아온 허일영(11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린 3점포에 힘입어 84-83, 한 점 차 승리를 따냈다. 지난 1일 서울 SK를 꺾은 데 이어 또 대어를 낚은 오리온은 새해 첫 세 경기에서 2승1패를 기록하며 창원 LG와 함께 공동 9위(10승20패)가 됐다. KGC는 두 시간 앞서 열린 경기에서 SK가 3연패 늪에 빠져 잠시 단독 1위에 올랐으나 막판 집중력에서 밀리며 SK와 공동 1위(19승11패)를 유지했다. 3쿼터 막판에 꽂힌 허일영의 3점슛에 힘입어 65-63으로 근소하게 앞선 채 4쿼터에 돌입한 오리온은 그러나, 상대에게 거푸 3점포를 얻어맞은 데 이어 브랜든 브라운(20점 9리바운드)과 문성곤(17점 8리바운드)에게 골밑을 내주며 리드를 빼앗겼다. 그러나 경기 종료 41초 전 던진 허일영의 3점슛이 림을 갈라 84-83으로 승부를 뒤집은 뒤 앞서 허일영의 슛을 어시스트했던 이승현이 김철욱의 슛을 블록하며 승리를 지켜냈다. 한 점 차 승부는 창원에서도 연출됐다. 인천 전자랜드가 홈팀 LG의 막판 거센 추격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80-79로 승리했다. 접전이던 경기는 마지막 순간이 더 짜릿했다. LG는 경기 종료 34초를 남겨 놓고 캐디 라렌(17점 5리바운드)이 3점포를 꽂으며 78-80으로 전자랜드를 따라붙었다. 전자랜드는 트로이 길렌워터(29점 5리바운드)가 종료 6초 전 3점슛을 던졌지만 득점에 실패했다. 이어진 LG 속공에서 라렌은 골밑슛을 시도하다 반칙을 얻어내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라렌이 두 번째 자유투를 실패해 전자랜드는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움켜쥐었다. 한편 울산 현대모비스는 홈경기에서 ‘더블더블’(27점 16리바운드)을 기록한 리온 윌리엄스를 앞세워 SK를 83-77로 제압했다. 전주 KCC는 잠실 원정에서 서울 삼성을 84-66으로 눌렀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17만 년 전 석기인, 채소도 요리해 먹었다…‘직접적 증거’ 첫 발견 (사이언스紙)

    17만 년 전 석기인, 채소도 요리해 먹었다…‘직접적 증거’ 첫 발견 (사이언스紙)

    석기시대 조상들은 적어도 17만 년 전부터 탄수화물이 풍부한 채소도 불에 구워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의 한 동굴에서 그 당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피운 불에 구워진 뿌리줄기 잔해가 발견됐기 때문이다.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대 연구진은 남아공 동부 콰줄루에 있는 레봄보 산맥의 서쪽 절벽에 있는 국경 동굴(Border Cave)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새까맣게 그을린 이 뿌리줄기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에스와티니왕국의 국경 근처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 동굴은 지난 20만 년간 초기 인류가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어 고고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지금까지 초기 인류의 동물성 식단에 관한 연구는 널리 진행됐지만, 식물성 식단에 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초기 인류가 사냥을 통해 남긴 동물의 뼈와 석기는 고고학적 기록에서 일반적으로 썩기 쉬운 식물보다 훨씬 더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연구를 주도한 린 워들리 박사와 동료 연구원들은 5년 전쯤 이 동굴에서 고대인들이 조리용 화로를 통해 남긴 잿더미를 샅샅히 조사하던 중 불에 타버린 17만 년 된 뿌리줄기 잔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연구진은 자신들이 발견한 시료들을 분석함으로써 그 잔해가 흰 뿌리줄기를 가진 히포시스 앙구스티폴리아(Hypoxis angustifolia)라는 학명을 가진 작은 꽃이 피는 식물임을 알아냈고, 실제 주변 곳곳에서 같은 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뿌리줄기 잔해가 17만 년 동안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불에 심하게 탔기 때문이라고 워들리 박사는 생각한다. 또 연구진은 뿌리줄기 잔해와 함께 불에 탄 뼛조각들도 찾아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고기와 채소를 함께 요리함으로써 영양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게다가 이번 뿌리줄기 잔해에서 발견된 갈라짐 형태는 식물에 우연히 불이 붙은 것이 아니라 조리되는 과정에서 서서히 타버렸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에 대해 워들리 박사는 “우리는 이 뿌리줄기가 요리된 뒤 이 동물 안에서 사람들끼리 나눠 먹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 많은 노인까지 함께 나눠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식으로 음식을 나누는 과정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 조직이 형성돼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이밖에도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된 식물 종이 초기 인류가 아프리카와 그 너머를 여행하면서 친숙해진 음식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워들리 박사는 “히포시스 앙구스티폴리아는 항상 푸르며, 아프리카 지도에서 그 분포를 나타내면 남쪽 해안에서 동쪽 해안으로, 곧바로 수단 북부로, 그러고 나서 아프리카 밖 예멘까지 서식한다”면서 “이는 17만 년 전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식량으로 탄수화물이 풍부한 이 식물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있어 이번 발견은 매우 흥미진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3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소금 단장하고… 세계로 ‘간’ 고등어

    소금 단장하고… 세계로 ‘간’ 고등어

    고등어(皐登魚)는 삼치, 참치와 같은 과에 속하는 대표적인 ‘등 푸른 생선’이다. 등이 부풀어 오른 체형에서 이름 붙여졌다. 다른 이름도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등이 푸른 고기’인 ‘벽문어’(碧紋魚), ‘동국여지승람’에는 ‘옛 칼의 모습을 닮았다’ 해 ‘고도어’(古刀魚)로 기록돼 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온대 및 아열대 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계절에 따라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표적인 계절회유 어종이다. 예로부터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이 싸서 ‘바다의 보리’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우리 민족이 400여년 전부터 고등어를 영양식품으로 상식하고 어업을 해 왔다고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을 보면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함경도 등 우리나라 전역에서 고등어가 잡혔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들어 주로 9~12월 거문도와 제주도, 대마도 등에서 잡힌다. 고등어 몸길이는 30∼40㎝ 정도로 등 쪽은 녹색과 검은색 물결무늬가 옆줄까지 퍼져 있다. 이런 고등어는 이제 서민들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됐다. 2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9 국민 해양수산 인식조사’에서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수산물’로 12.3%가 고등어라고 응답했다. 고등어는 2017년과 2018년 조사에서도 수산물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국민 생선’으로 불린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2017년에 공급된 고등어는 14만 4000t 정도로 국민 1인당 7~8마리 정도 먹은 셈”이라고 했다. 고등어 하면 경북 안동을 가장 많이 떠올린다. ‘안동 간고등어’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다. 간고등어는 안동사투리로 ‘간고디’라고 한다. 내륙지방 안동의 특산물로 간고등어가 유명해진 이유와 탄생 배경은 흥미롭다. 교통과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 안동에서 고등어를 먹으려면 경북 해안지역인 영해·영덕 지역에서 잡은 고등어를 등짐과 우마차를 이용해 이틀 동안 걸려 250리를 운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고등어 내장이 상하기 시작하면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려 상하는 것을 막았다. 말 그대로 ‘염장’을 질렀다. 이때 서해안에서 부산을 거쳐 낙동강 마지막 나루터인 안동 개목나루터까지 실려 온 천일염이 사용됐다.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소금을 뿌린 고등어는 날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영덕에서 안동 챗거리장터까지 오는 동안 고등어는 적당하게 변하고 상하기 직전에 소금을 뿌린 뒤 안동시장까지 가다 보면 간이 배면서 맛 좋은 간고등어가 됐다.안동지역에서 아는 사람만 알고 먹던 특산물 간고등어는 2000년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새 특산품으로 출현, 전국 가정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안동 방문(1999년) 등으로 안동이 한참 뜨고 있을 때였다. ㈜안동간고등어 창업을 주도한 언론인 출신 권동순씨의 브랜드화 작업 때문이다. 권씨는 비린내 나는 간고등어의 위생적 포장처리와 마케팅만 잘 받쳐 준다면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종전까지 안동신시장 어물전에서 재래식으로 생산되던 간고등어 대량 생산체계를 갖춘 공장을 설립했다. 또 전통 그대로의 맛을 보존하기 위해 안동에서 40년 간잽이로 명성이 높던 이동삼(2016년 작고)씨를 전격 스카우트해 간판 모델로 내세웠다.권씨는 “간고등어는 소금 치는 사람(간잽이)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그리고 골고루 간이 배도록 쳐야 한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간잽이가 어물전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할 만큼 중요한 자리다. 이씨는 부산 어판장에서 물 좋은 고등어를 사는 것을 시작으로 내장제거, 세척, 습식염장, 건식염장, 저온숙성, 냉풍, 중량선별, 유해물질 검사 등 10단계 이상의 공정 과정을 철저히 감독하는 등 간고등어 제조 책임자 역할을 했다. 특히 이씨의 염장기술 덕에 안동 간고등어는 전국 브랜드로 이름을 날렸다. 이 때문에 안동간고등어는 창업하자마자 대박을 쳤다. 회사 설립 첫해 4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01년 78억원, 2003년 170억원, 2004년 300억원으로 수직성장을 이어 갔다. 회사는 올해 창업 20주년을 맞아 덩치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안동간고등어는 독특한 감칠맛으로 일본, 미국, 캐나다, 멕시코, 칠레, 파라과이,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20여개국으로 수출된다. 1998년 한국생산성본부가 평가한 안동간고등어의 브랜드 가치는 113억원. 단일 특산품으로는 국내 최고 기록이었다. 간고등어로 조리되는 음식은 여러 가지다. 노릇노릇하고 기름이 자르르 배어나는 ‘구이’, 매콤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인 ‘조림’, 갖은 양념과 채소를 곁들인 ‘찜’, 고등어를 구워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을 얹어 먹는 ‘양념구이’, 양념구이를 각종 채소로 쌈을 싸서 먹는 별미 ‘양념찜’ 등으로 탈바꿈한다.뭐니 뭐니 해도 간고등어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음식은 구이다. 안동에서 간고등어 구이로 유명한 곳은 전통목조건물 형태로 지어진 향토·종가 음식점 ‘㈜예미정’이다. 예미정의 간고등어 구이는 간고등어를 쌀뜨물에 10~20분 정도 담가뒀다 구워 비린내가 없고 쫄깃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박정남 예미정 교육원장(대경대 외식학 겸임교수)은 “간고등어는 약한 불에 등부터 먼저 구워 기름기를 빼낸 뒤 그 기름에 속살을 구우면 살아 있는 육즙까지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고 했다. 이어 “간고등어에 강황이나 녹차, 생강가루를 묻혀 구워 먹어도 맛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안동에서 간고등어 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은 ‘일직식당’, ‘안동 간고등어 직영식당’, ‘안동 간고등어 숯불가든’, ‘안동 간고등어 양반밥상’ 등이 있다. 고등어는 대표적인 등 푸른 생선답게 두뇌에 좋은 EPA와 DHA가 풍부해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수험생에게 좋다. 오메가3 지방산 함량이 매우 높아서 기억력 향상, 우울증·치매·주의력 결핍 장애 등 예방과 동맥경화·심장병·뇌졸중 예방에 도움을 준다. 자산어보는 ‘고등어는 간에 좋고 심장기능을 도와주며 얕은 물에서 수압을 덜 받고 자라 육질이 연하고 상하기 쉽다’고 소개했다. 고등어는 살이 단단하고 청록색 광택이 나며 손으로 눌렀을 때 탄력이 있는 게 좋다.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고등어를 바로 먹지 않고 보관하려면 용도에 맞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냉동 보관하면 된다. 조리 전에 식초나 레몬즙을 뿌리면 비린내가 없어지고, 굽기 1시간 전에 소금 간을 해 두면 수분이 빠지면서 육질이 단단해지고 맛도 좋아진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길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길

    등장인물 미노 : 15세이르 : 15세 장소 멕시코 남동부 치아파스에서부터 시작된 철길 위의 화물 기차. 캘리포니아주 근방의 국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무대 정중앙에 화물 기차의 트레일러가 놓여 있다. 트레일러의 양 측면에는 상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가 부착돼 있으며, 상부에는 화물을 싣기 위해 이용하는 핸들과 레일이 튀어나와 있다. 기차는 관객석을 마주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가정한다. 처음 넓고 메마른 땅 위 철길을 달리는 화물 기차. 미노와 이르, 트레일러 상부 핸들에 허리를 묶은 채 기차가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앉아 있다. 불그스름한 노란색 조명이 두 아이의 머리 위로 비춰진다. 노을이 지고 있다. 철길 위 기차 소리만이 옅게 울린다. 주변을 둘러보던 미노, 대뜸 질문을 던진다. 미노 어디쯤일까? 이르, 대답하지 않고 정면만 응시한다. 지친 모습이다. 정적, 그리고 기차 소리. 미노 응? 여기는 어딜까? (사이) 너도 몰라? 이르…그게 중요해? 미노 중요하지. 그걸 알아야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잖아. 이르, 대꾸하지 않고 허리에 맨 밧줄을 만지작거린다. 미노 이르, 나 지도 좀. 이르 네가 꺼내. 미노 꺼내 줘. 미노, 이르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이르, 마지못해 트레일러 측면 사다리 쪽에 매어 둔 가방으로 손을 뻗는다. 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내 미노에게 건넨다. 미노, 받지 않는다. 미노 얼마나 남았어? 이르, 미노를 흘겨보며 느리게 종이를 펼친다. 이르 터널 세 개, 아니, 두 개. 미노곧 있으면 이 길도 끝이네. 이르 아쉽냐? 미노 조금. 넌 어때? 이르, 다시 입을 다물고 철길로 고개를 돌린다. 미노 아쉽지 않아? (사이) 아니면 설레나? 이르 (기가 차다는 듯이) 대체 설렐 게 뭐가 있는데? 미노 앞으로 펼쳐질 일들 말이야. 너도 여기까지 와 본 건 처음이잖아. 이르 자꾸 종알대지 말고 조용히 해. 너 그러다가- 미노 (이르가 주의를 주는 모습을 따라하며) 떨어져, 중심 잃어, 터널한테 잡아먹혀! (미어캣처럼 허리를 곧게 피고 목을 늘여 먼 곳을 바라본다.) 터널 나오려면 한참 멀었겠다. 순간적으로 크게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이르, 급하게 밧줄을 묶은 핸들을 그러쥔다. 미노,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노 이르, 터널한테 잡아먹힌 사람 본 적 있어? 이르 (밧줄의 매듭을 확인하며 건성으로) 응. 미노 어떻게 생겼어? 이르 납작해. 미노 또띠야처럼? 이르, 불편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입을 다문다. 미노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말을 잇는다. 미노 우리 할머니 또띠야 진짜 맛있는데. 할머니는 맨날 일하러 다녔거든. 화요일이면 집에 오는 길에 꼭 옥수수 가루를 한 봉지씩 사 왔어. 만드는 방법도 다 기억해. 옥수수 가루 두 컵에 소금 한 꼬집, 한번에 엉기지 않게 물을 조금씩 넣고- 이르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미노 알지. 우린 순례자들이잖아. 이르 …순례자? 미노 그래. 야수의 등허리에 올라타서 국경을 넘나드는 순례자.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뎌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근사하지 않아? 이르 (심드렁하게) 그래. 참 근사하다. 미노 미국에도 또띠야가 있을까? 맛있는 게 엄청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사이) 없어도 괜찮아. 만드는 방법 기억하니까. 옥수수 가루 두 컵에 소금 한 꼬집, 한번에- 이르 (말을 가로채서 빠르게 읊는다.) 엉기지 않게 물 조금씩 넣어서 납작하게 눌러 굽는다고. 알았어. 미노 외웠네? 다행이다. 이르 그게 왜 다행이야? 미노 네가 꼭 먹어 봤으면 좋겠거든. 우리 할머니 또띠야는 그냥 시장에서 파는 거랑 달라. 이르 (건성으로) 그래. 미노 진짜야! 이르 알았다고.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미노, 푸르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La Llorona. 미노눈물 많은 여인아, 하늘빛 옷 입고 눈물 많은 여인아, 또다시 흐느끼네 고달픈 삶에 길을 잃어도- 미노, 노래를 멈춘다. 이르, 미노를 쳐다본다. 이르 왜 멈춰? 미노 그냥. 이르 다음 가사 몰라? 미노 알아. 이르 뭔데? 미노, 대답하지 않는다. 이르, 나머지 가사를 채워 노래한다. 이르 고달픈 삶에 길을 잃어도 사랑만은 그대로 그대로 머무리라 미노 이 노래 어디서 배웠어? 이르 그냥. 지나다니다가. 미노 나는 할머니가 알려 줬는데. (사이) 할머니 보고 싶다. 이르 나중에 할머니도 미국으로 오시라고 해. 미노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니야. 이르 뭐가? 미노 우리 할머니는 올 수 있어도 안 와. 이르 왜? 미노 싫어하거든. 이르 미국을? 미노 엄마를. 이르 엄마가 돈 보내 줬다며. 미노 맞아. 덕분에 먹고살 수 있었지. 그래도 할머니는 날 두고 간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이르 엄마랑은 언제 헤어졌는데? 미노 태어난 지 반년도 안 돼서. 이르 그럼 얼굴도 모르겠네. 미노, 품속에서 너덜너덜한 사진 한 장을 꺼내 이르에게 내민다. 미노 우리 엄마래. 이르, 사진을 받아 들고 여자의 얼굴과 미노를 번갈아 관찰한다. 이르 어, 닮았네. 그… 입꼬리가 닮았어. 눈매도. 미노 안 닮았어. 이르 아니야, 여기 보면- 미노 할머니가 그랬어, 하나도 안 닮았다고. 이르 …야, 그래도 너 먹여 살리려고 그 먼 길을 간 거잖아. 곧 있으면 같이 살게 될 거고. 난 너 같은 애 처음 봤어. 미노 나 같은 애? 이르 가족 찾으러 가는 애들 중 절반은 전화번호 하나 없이 떠나. 끊긴 연락처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넌, 너희 엄마가 코요테를 고용했다며. 널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미노 응. 이르 넌 운이 좋은 애야. 이르, 사진을 돌려주려 한다. 미노, 고개를 내젓는다. 이르, 사진을 지도에 끼워 가방에 넣는다. 미노 그러면 너는? 이르 나는 뭐? 미노 운이 나빠? 가족이 없어서? 이르 그건 아닐걸. 미노 왜? 이르 아직 안 죽었잖아. 미노, 이르의 말을 곱씹는다. 이르, 손가락으로 기차 위 쌓인 먼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노 죽으면 운이 나쁜 건가? 이르 (건성으로) 몰라. 미노 혼자 다니는 거 안 무서웠어? 이르 그냥 그랬어. 미노 나쁜 사람들 많이 만났어? 이르 응. 미노 그럴 땐 어떻게 했어? 이르 …맞았어. 미노 그런데도 안 무서웠어? (대답이 없다.) 대단하다. 나는 혼자 있으면 무섭던데. 이르 다 컸는데 뭐가 무섭냐? 미노 혼자 지내 본 적이 거의 없었단 말이야. 이르 곱게도 자랐네. 미노 할머니 보고 싶다. 이르 치아파스에 계셔? 미노 아니. 떠나셨어. (사이) 아주 멀리. 어색한 정적. 기차 소리. 미노 이르, 넌 미국 도착하면 어디로 갈 거야? 이르, 미노를 무시하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미노, 그런 이르를 지켜본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미노, 달빛에 의지해 철길을 살핀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끝에 터널을 발견한다. 미노 터널이다. 이르, 급하게 허리에 묶은 밧줄을 풀고 상부에서 내려간다. 미노도 뒤이어 내려간다. 이르는 트레일러 왼쪽의 사다리를, 미노는 오른쪽의 사다리를 끌어안는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다 둘을 삼킬 것처럼 울린다. 이르 (큰 소리로) 미노, 꽉 잡아! 미노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응! 터널. 암전. 과거 미노 아저씨! 트레일러 위로 불이 들어온다. 미노, 앞서 핸들에 매달아 두었던 작은 가방을 끌어안은 채 움직이지 않는 트레일러 상부에 앉아 있다. 관객석을 향해 브로커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중이다. 미노 아저씨, 우리 엄마랑 통화해 봤어요? 우리 엄마 목소리 어때요? 저는 못 들어 봤거든요. 집에 전화기가 없어서요. 그래도 편지로 자주 이야기했어요. 제 이름이 그대로라서 다행이래요. 트레일러 아래로는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르, 무대 상수에서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미노 할머니가 엄마한테 그랬나 봐요, 이름 바꿔버릴 거라고. 근데 안 바꿨어요. 우리 할머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왜 안 바꿨을까요? 이르, 이윽고 누군가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잡히고 만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이르, 엎드린 채 몸을 웅크린다. 여러 발들에게 걷어차인다. 미노 제 이름, 원래는 까미노로 지으려고 했대요. 길 말이에요. 한참 이르를 짓밟고 때리던 무리가 떠난다. 이르, 겨우 몸을 일으켜 걷는다. 무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문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이르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이르의 걸음이 느려진다. 이르 저, 물 한 잔만. 한 모금만…. 이르, 끝내 주저앉고 만다. 그때 살짝 열리는 문 하나. 틈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이르를 비춘다. 손 하나가 컵을 내민다. 미노 길은, 어디서든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이르, 컵을 받아 들고 허겁지겁 물을 마신다. 문이 닫힌다. 미노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랬어요. 이르, 비운 컵을 문 앞에 내려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닫힌 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보다 힘찬 걸음걸이. 미노 아저씨.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요? 이르, 무대를 거닐다 다시 기차 곁으로 돌아온다. 트레일러 위로 오를 기회를 엿보던 찰나, 미노의 말을 엿듣는다. 미노 우리가 아니라, 나만 가요? 이르 (불쑥 끼어들며) 쟤 이틀도 못 버틸걸요. 미노, 이르를 내려다본다. 이르 저런 애들 많이 봤어요. 금방 떨어져 죽어요. 아니면 터널한테 잡아먹히든가. 미노 (다시 관객석을 향해) 나 혼자 가요? 이르 (다급하게) 저 이거 탄 적 많아요. 저번엔 소노라까지도 갔어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미국이에요. 저랑 가면 쟤 미국 도착할 수 있어요. 미노 (이르를 향해) 내 이름은 미노야. 이르 쟤가 미국 가야 아저씨도 돈 받는 거죠? 그렇죠? 미노 미노라니까. 이르 제가 같이 탈게요. 보름이면 가요. 미노 …같이? 이르 같이. 같이 타게 해 주세요. 물이랑 먹을 것도 조금만요. 이르, 간절하게 관객석을 바라본다. 미노,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르의 표정이 환해진다. 금세 트레일러 상부에 오르는 이르. 미노, 이르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미노몇 살이야? 이르 열다섯. 미노 이름은? 이르 …이르. 미노 ‘걷다’ 할 때 그 이르? 이르, 고개를 끄덕인다. 미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암전. 다시 현재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차의 소리는 처음과 같이 옅다. 불 들어오면 두 아이, 여전히 사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다. 이르, 조심스럽게 트레일러 상부로 기어 올라가 반대쪽에 있던 미노에게 손을 뻗는다. 미노, 이르의 손을 잡고 올라온다. 이르, 미노의 허리부터 핸들에 묶는다. 매듭이 튼튼한지 수차례 확인하고 나서야 제대로 앉는다. 미노, 그 모습을 지켜본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르 (허리를 묶으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터널 하나. 이제 하나 남았어. 미노, 말이 없다. 이르 왜 그래? 배고파? 미노 아니. 이르가방에 크래커 조금 남았을 거야. 물도. 그거 먹어. 미노 괜찮아. 이르 곧 도착하잖아. 아낄 필요 없어. 미노 배 안 고파. 이르 그럼 왜 그래? 설마 너, 진짜 아쉬워서 그래? 미노 (말 돌리며) 그 코요테 아저씨는 왜 멕시코에 사는 걸까? 미국을 잘 아는 것 같았는데. 이르 (가방 속에서 물병을 꺼내 내밀며) 미노. 미노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미국이 그렇게 멋지고 살기 좋은 곳이면, 그 아저씨는 왜 계속 코요테로 사는 걸까? 이르, 미노를 흘겨보다 물을 마신다. 이르 (물병을 가방에 넣으며) 모두가 같은 꿈을 꾸지는 않아. 미노 그럼 코요테들은 무슨 꿈을 꾸지? 이르 아무 꿈도 안 꿀걸. 미노 왜? 이르 머리에 든 게 돈밖에 없으니까. 미노 너는 코요테 아저씨가 싫어? 이르 응. 미노 나는 좋았는데. 이르 그 아저씨가 잘해 줬어? 미노 아니. 이르 그런데 왜? 미노 코요테니까. 이르 브로커들이 멋있어 보이디? 미노 브로커를 코요테라고 부르는 게 멋있어 보이는 거야. 이르 그게 그거지. 미노 엄연히 달라. 다시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이르, 경직돼 핸들을 붙든다. 흔들림이 잦아들자 허리 매듭을 확인한다. 미노, 아무렇지 않게 말을 잇는다. 미노 진짜 코요테들은 평생 가족들이랑 무리 짓고 산대.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댔어. 이르 사람보다 낫네. 미노 그치? 나도 코요테로 태어날걸 그랬나 봐. (사이) 너, 진짜 코요테 본 적 있어? 이르 아니. 미노 나도. 이르 늑대랑 비슷하게 생겼대. 미노 그건 알아. 이르 그럼 대충 짐작되잖아. 미노 늑대도 직접 보진 못했단 말이야. 이르 직접 봤으면 아마 밥이 됐을 거다. 대화가 끊긴다. 이르, 미노의 눈치를 본다. 이르 (달래려는 듯이) 넌 운이 좋은 애니까 늑대를 만난 적이 없는 거야. 걔네 엄청 사납댔어. 미노 정말? 이르 그래. 미노 (시무룩해져서) 그럼 평생 못 보겠네. 다시 정적. 기차 소리. 이르, 떠오른 것이 있는 듯 미노의 어깨를 붙잡는다. 이르 미노, 늑대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 미노뭔데? 이르 상상. 미노 상상? 이르늑대를 봤다고 상상하는 거야. 미노 (실망하며) 뭐야. 이르 처음엔 그렇게 시작해야 돼. 자, 말해 봐. 늑대에 대해서 아는 거 뭐 있어? 미노 음… 털이 많아. 이르 그렇지. 미노 갈색. 그리고 검정색. 회색도. 이르 배 쪽에 있는 털은 흰색이랬어. 미노 (점점 신이 나서) 꼬리가 복실복실해. 이르 귀는 삼각형이야. 미노 주둥이가 길어. 이르 눈이 날카로워. 미노 밤엔 막 등불처럼 빛나고. 이르 엄청 빨라. 미노 그리고 높은 소리로 울어. 두 아이들, 동시에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내다 웃음이 터진다. 이르, 재빠르게 표정을 굳힌다. 이르 아직 안 끝났어.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다 상상했어? 미노 응. 이르 눈 감아 봐. 미노, 눈을 감는 척하다가 슬쩍 뜬다. 이르, 미노의 눈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덮는다. 이르 아까 말한 걸 되새겨 봐. 털이랑, 꼬리랑, 귀, 주둥이, 눈…. 미노, 얼굴을 찌푸리며 머릿속으로 늑대를 만들어 낸다. 이르 어때? 그려져? 미노 …늑대다! 이르 그래. 늑대는 어디 있어? 미노 끝없이 펼쳐진 들판. 이르 거기서 뭘 하는데? 미노 달리고 있어. 바람을 거스르면서. 이르 맞아. 늑대는 달리는 중이야.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온몸의 털이 춤을 추지. 갈색, 검정색, 회색…. 여러 색들이 한 데에 섞여서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 내고 있어. 그렇게 달리다 햇살 아래 멈춰 서면, 털 한 올 한 올이 타오르는 것처럼 번쩍여. 미노, 탄성을 터트린다. 이르 늑대는 왜 멈췄을까? 미노 어, 사냥을 하려고? 이르 그렇지. 털만큼이나 번쩍이는 매서운 눈이 사슴을 발견했거든. 미노 사슴아, 도망가! 이르 쉿. 사슴은 풀을 뜯느라 바빠. 늑대가 자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다고. 늑대는 몸을 낮춰서 살금, 살금, 살금, 다가가다가…. 이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큰 소리로 미노를 놀랜다. 미노,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허리에 묶은 밧줄이 미노를 다시 트레일러 위로 앉힌다. 미노 (꿈에서 깬 듯이) 나, 늑대를 봤어. 이르 그래. 그렇게 상상하는 거야. 미노,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미노 진짜로 봤어. 이르 알았어. 진짜 본 거 맞아. 미노 코요테는? 코요테도 볼 수 있을까? 이르 그럼. 미노 코요테가 될 수도 있고? 이르 뭐든 할 수 있어. 미노, 한껏 신난 모습으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상상 속에 빠진다. 이르, 미노를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날이 밝기 시작한다. 마지막 터널이 안개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르, 터널을 발견하고 미노의 옆구리를 찌른다. 미노, 얼굴에서 손을 떼어 낸다. 이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터널. 두 아이들, 밧줄을 풀기 시작한다. 겹쳐 묶은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이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터널을 보며 허겁지겁 매듭을 푼다. 이윽고 트레일러 측면으로 내려가 사다리에 몸을 밀착시킨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르 (소리친다.) 미노! 꽉 잡아야 해!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르, 위를 올려다보자 막 매듭에서 풀려난 미노가 몸을 일으키고 있다.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이르 뭐 해! 내려가! 미노, 이르의 외침에도 꿈쩍 않고 트레일러 위에 꼿꼿하게 서서 터널만을 바라본다. 이르 너 미쳤어? 얼른 내려가라니까! 미노 (나직하게) 나, 정말 됐어. 이르 미노! 내려가! 미노 코요테가 됐어. 이르 미노! 미노, 터널을 끌어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린다. 이르, 눈을 질끈 감는다. 기차의 소리가 귓등을 때린다. 마지막 터널. 암전. 기차 소리가 끊긴다. 침묵 끝에 헤드라이트를 닮은 불이 트레일러 위를 비춘다. 미노가 앉아 있다. 미노, 널브러진 밧줄을 만지작거리며 노래한다. La Llorona의 멜로디. 미노 고달픈 삶에 길을 잃고도 사랑이 그대로 그대로 머물까? 눈을 가린 여인아, 뒤늦은 후회로 눈을 가린 여인아, 손을 내밀어도 죽음의 기차 위에 선 아인 잡을 수 없었다네 계절이 가도 푸른 소나무 그대로 머물 수밖에 마지막 기차 소리 점점 커졌다가, 불 들어옴과 동시에 서서히 잦아들어 옅게 깔린다. 이르, 다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트레일러 위로 올라간다. 미노, 멀쩡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르 너… 너 괜찮아? 미노, 살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이르, 혼란스러운 표정. 이르 너 정말로-. 미노 이르, 미국이야. 두 아이들, 얼마 남지 않은 철길을 멍하니 응시한다. 미노 나 가방 좀. 이르, 얼떨떨하게 사다리에 묶여 있던 가방을 풀어 미노에게 건넨다. 미노, 망설이다가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지도를 꺼내 펼치자 엄마의 사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르에게 내민다. 이르, 어리둥절하게 받아든다. 미노 뒤에 봐. 이르, 사진을 뒤집는다. 낯선 주소가 쓰여 있다. 기차, 서서히 멈춘다. 이르, 급하게 짐을 챙긴다. 이르내려야 돼. 미노 이르. 이르 지금 안 내리면 붙잡혀. 얼른 내려야 돼. 지도와 사진을 가방 속에 쑤셔 넣고 사다리를 타는 이르. 한 발짝씩 아래로 내딛다 끝내 뛰어내린다. 두 발이 땅에 닿는다. 이르 미노. 얼른 내려와. 미노 이르, (긴 사이) 난 못 내려. 이르의 얼굴에 서서히 깨달음이 번진다. 이르 …언제부터? 미노 그게 중요해? 이르, 대답하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한다. 미노 있잖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상상하는 거야. (트레일러 끝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이르, 나에 대해서 아는 거 뭐 있어? (대답이 없자) 어서. 이르 (훌쩍이며 천천히 나열한다.) 치아파스랑, 또띠야랑… 할머니. 까미노. 열다섯 살. 미노 엄마도. 이르, 미노의 가방에서 사진을 꺼낸다. 사진과 미노를 번갈아 본다. 미노 찾아갈 수 있겠지? 이르, 사진을 품속에 넣는다. 미노 자. 이제 눈 감아 봐. 이르,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미노 어때? 그려져? 고개를 젓는 이르. 미노 아니야. 할 수 있어. (사이) 하나씩, 하나씩. 멈추지 말고. 이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기차 주변을 빙 둘러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미노, 이르를 지켜본다. 미노 모르는 게 있을 땐 채워 넣으면 돼. 늑대가 되어서, 코요테가 되어서. 이르 (중얼거린다.) …미노가 되어서. 이르, 멈춰 서서 품에서 사진을 꺼낸다. 뒷면에 적힌 주소와 눈앞의 집을 번갈아 본다. 도착이다. 미노, 허공에 대고 문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이르, 따라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미노, 트레일러 상부에서 일어난다. 미노 (기대에 찬 얼굴로) 누구세요? 이르, 한참의 고민 끝에, 이르 저는, 암전. 막.
  • [사설] 화합과 협치의 새 정치를 새해에 기대한다

    엄중한 국내외 현실 속에서 경자(庚子)년 새해를 맞았다. 정치, 외교, 국방, 경제 가운데 어느 하나도 순탄하게 보이지 않는 비감한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위기와 맞닥뜨리면 더 강해지는 대한민국이었기에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국민과 정부, 기업이 힘을 합쳐 하나가 된다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 4월 총선 앞두고 여야 ‘물갈이 공천’ 해야 올해는 4월 15일 총선에 여야가 명운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여의도 지형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반기 정국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정치사회의 개혁도 일부 이뤘다. 지난 연말 정부 여당은 개정 선거법을 통과시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고,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췄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도 통과시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남았지만, 한국 사회의 오래된 숙제였던 검찰개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과반 승리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면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물갈이 공천’이 필요하다. 앞으로 4년을 관통할 새로운 정치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1월 1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역 의원을 뽑지 않겠다’는 답변이 42.6%로 다수였다. 이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각 당은 국민의 공복이 될 만한 추진력과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유권자들에게 추천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올해 당청은 선거의 승패와 상관없이 야당과의 협치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민심은 ‘서초동 집회’와 ‘광화문 집회’로 갈라졌고 정치권에서는 대화와 타협, 협치가 설 공간을 잃었다. 물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지난해처럼 장외투쟁에만 매달린다면 유권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고, 무엇보다 준비된 수권 정당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총선 이후 구성된 국회에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합리적 야당으로서 정부 여당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비핵화 위해 남북·북미·한중 대화해야 2020년 올해 한국 외교는 그 어느 해보다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2019년 외교안보 과제들이 고스란히 이월됐고, 북핵 등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탓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어그러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제 궤도에 다시 태우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말에 중앙당 전원회의를 이례적으로 4일이나 이끄는 만큼 ‘새로운 길’로 나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 두고 북한이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모라토리엄)을 유지하도록 손짓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절차와 11월 대선 등으로 김 위원장이 원하는 3차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 정세가 2017년의 군사적 초긴장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정부가 북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지난해 단절된 남북 당국 간 협의도 재개할 만한 창의적 발상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현안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분담금 50억 달러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협상은 불가능하다. 이참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재정의해야 한다. 한일 관계도 중대 기로에 섰다. 2018년 10월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일은 경제·군사적으로 갈등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일 정상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는 텄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사법부 판단 존중’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베 신조 총리의 ‘한국의 책임하에 해결’과 충돌하는 개념이라 ‘신(神)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과도 마찬가지다. 수교 30주년을 2년 앞두고 올봄 한국을 방문하게 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앙금을 털어내고 ‘한한령’(한류금지령)의 완전한 해제를 이뤄야 할 것이다. 저성장 해소하고 혁신경제용 규제개혁을 올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벽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정부 재정을 상반기에 70% 이상 집행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해야겠지만, 가장 핵심적 경기 활성화 방안은 혁신경제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 내는 것이다. 기업과 자영업자 등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좌절과 절박함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특히 20대 국회는 ‘데이터 3법’ 등 혁신경제를 지원하는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규제입증책임제’와 ‘규제샌드박스’ 등을 도입한 만큼 새해에는 제도의 정착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 등으로 한쪽에서는 ‘돈맥경화’ 현상이, 다른 한쪽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유동자금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시중 유동성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경기 활성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또 정부가 18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부동산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라 정책에 대한 신뢰만 곤두박질치는 만큼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명제에 귀 기울여 수요·공급이라는 경제 논리에 바탕을 둔 냉정한 부동산 정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공급을 어디에 얼마나 늘릴지, 세금을 어느 수준까지 올릴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 화웨이가 갈라놓은 글로벌 IT 진영

    화웨이가 갈라놓은 글로벌 IT 진영

    인도, 5G 시범사업에 화웨이 장비 허용 美의 ‘인도·태평양전략’과 반대 움직임중국 정보기술(IT) 업체 화웨이의 5세대(5G) 통신장비 채택 여부를 두고 세계가 둘로 나뉘고 있다.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등 미국의 전통 우방국들은 일찌감치 화웨이 배제 요구에 동참했지만 반미 성향이 있는 러시아나 중남미 등은 화웨이 장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 견제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유럽연합(EU)과 아시아 국가들이 속속 ‘반(反)화웨이 진영’에서 이탈해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1월 중 시행할 5G 시범사업에 화웨이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시범사업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이용될 수 있다”며 화웨이 보이콧을 압박하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현재 화웨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장비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격도 경쟁사들보다 30%가량 저렴하다. 인도 정부가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 한 시범사업에서 화웨이 장비가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화웨이 인도 지사의 제이 천 최고경영자(CEO)는 “(화웨이에 대한) 인도의 지속적인 믿음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중국과 인도를 ‘친디아’로 묶어서 부르지만 사실 두 나라의 관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국경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중국산 제품이 인도 시장을 장악해 무역역조 현상도 심각하다. 그런 인도가 화웨이 장비 도입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앞서 영국 정부도 “핵심 정보망을 제외하면 어떤 장비를 써도 큰 위험이 없다”며 화웨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미 국가안보국(NSA)이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한 사실까지 언급하며 화웨이 도입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화웨이가 백도어(보안이 제거된 비밀통로)를 통해 정보를 빼돌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화웨이를 배제할 경우 대중국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차이나머니’에 목마른 각국 정부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월드피플+] 부인에게 딱 맞는 신장 기증한 남편…51년 차 천생연분 부부

    [월드피플+] 부인에게 딱 맞는 신장 기증한 남편…51년 차 천생연분 부부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너무나 딱 맞는 한 노년 부부의 가슴 따뜻한 사연이 세밑 추위를 녹였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부인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올해 74세 동갑내기 부부인 텍사스 오스틴 출신 니퍼 부부의 사연을 보도했다. 고등학생 시절 사랑에 빠져 51년을 해로한 부부에게 가장 큰 근심은 아내 페기의 건강이었다. 신장에 물집이 생기면서 점차 신장 기능이 감소하는 유전성 질환인 다낭성 신장 질환(PKD)을 앓고있었던 것. 특히나 그녀의 모친 역시 같은 질환으로 사망했고 동생 역시 같은 병과 싸운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했다. 결국 올해 신장기능이 단 14%만 기능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자 이식과 신장 투석이라는 선택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이식 리스트에 올린 후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신장을 찾는 기간이 미국 내에서도 평균 7년 정도 걸린다는 점이었다. 또한 70세 이상 환자의 이식수술을 맡을 병원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사실상 필요한 신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기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테스트 결과 남편 마이크의 혈액형과 6개의 항원 조직이 그녀와 일치해 말 그대로 완벽한 짝이 51년 간 옆에 있었던 것. 마이크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면서 "부인에게 신장 한쪽을 떼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2일 텍사스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신장 이식 수술이 이루어졌으며 부인 페기는 현재 회복 중이다. 페기는 "남편의 신장 기증은 정말 최고의 선물이었다"면서 "여생에 더이상 다른 선물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남편 마이크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 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약속했다"면서 "이번 신장 기증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시간을 더 연장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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