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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해녀’가 아니라 ‘잠수(潛嫂)’다.단일 마을로는 이 잠수가 가장 많아 108명에 이르는 서귀포 법환리의 조계화(65) 잠수회장은 “어릴 적에도 해녀보다는 잠수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고 증언한다.더러 ‘잠녀’라는 말도 쓰지만 잠수가 본딧말.일본에서 건너온 ‘해녀’라는 용어가 지배하고 있으나,‘확실히’ 잠수가 맞다.왜 그런가. 문헌을 살피면 ‘나잠(裸潛)’이라는 말이 보인다.나잠은 남녀를 포함한다.여성 전업은 아니어서 남자들도 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가거도 같은 오지에도 남자 잠수가 많았으며,요마적에는 동해안에도 남자 잠수가 늘고 있다.이런 사정인데도 근래 ‘해녀’라는 말이 두루 쓰인다.하지만 역사적으로 해남(海男)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해녀가 모든 잠수의 대표 명칭은 될 수 없다.교과서부터 고칠 일이다. 천대받던 잠수가 ‘뜨고’ 있다.공민왕 시절 최영 장군이 몽골의 묵호들을 토벌한 마지막 격전지 법환리를 찾아드니 문화관광부에서 아예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했다는 입간판까지 서있다.지난 여름에는 이곳에서 잠수축제도 열렸다.그러나 잠수로 먹고 살려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어리석게도 ‘잠녀잡녀(潛女雜女)’라고 경멸했던 전근대적 풍조가 잔존하는 데다 같은 제주도에서도 반가(班家)를 표방하는 이들은 물일을 피했다.험한 물일을 하지만 잠수하는 이들도 여자다.늘상 소금물에 몸을 담그니 아무리 가꾼들 피부가 어찌 거칠지 않으랴.요즈음 젊은 여성에게 매일 소금물에 몸을 담그라면,아마 억만금을 줘도 못할 일이리라. ●우는 아기 구덕에 실어두고 바다로 조선 정종 때 신광수(申光洙)는 석북집(石北集)에서 이 잠수의 광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일시에 긴 파람으로 숨을 토해내니,그 소리 비장하게 움직여서 수궁 깊이 스민다.”잠수의 한이 가히 용궁까지 미칠 듯하다.풍덩풍덩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 마치 필사의 돌격대같다.숨쉬러 올라오면서 고요했던 바다는 갑자기 숨비소리로 충만해진다.매서운 엄동설한에도 우는 애기를 애기구덕에 실어두고 한숨 들이마신 뒤 뛰어드는 바다물질. 세종조 때 기건(奇虔) 목사가 눈보라가 하늬바람에 얹혀 매섭게 휘몰아치던 날,순력에 나섰다.그런데 엄동설한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목사는 질려버렸고,그로부터 염치지심(廉恥之心)이 용납하지 않아 그네들 손으로 잡아올리는 전복이나 소라 따위를 일절 먹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세월은 바뀌었지만,지금도 전복 따위를 먹을 때는 한번쯤 잠수들을 떠올려 볼 일이다. 법환리에서도 예전에는 16∼17세가 되면 물질에 나섰다.꼬마들은 연습삼아서 얕은 ‘갓’(물가)에서 보말을 잡거나 우뭇가사리를 뜯었다.같이 배운 물질이지만 능력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헤엄 잘치고,채취 잘하고,신체 건장한 여자를 ‘상군’이라고 하고 그 밑으로 ‘중군’과 ‘하군’이 층을 이루고 있다.상군과 하군의 격차는 생각보다 커서 ‘내려갈 땐 한빗,올라올 땐 천칭만칭 구만칭’이란 속담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범섬 주변은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하고,‘갓’에서는 헤엄치면서 채취한다.주로 전복 소라 오분재기 보말 성게 해삼 톳 감태 갈래곰보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는데,역시나 해중 보물은 전복.봄이 오면 해경(解警),혹은 허채(許採)라 하여 금지했던 작업이 일제히 풀린다.미역은 2∼3월에 베어내며,봄철이 지나면 녹음이 짙어 뻣뻣해지므로 식용이 불가능하다.감태는 여름철에 종괴호미로 베어내 거름으로 쓰는데,이 거름을 한번 뿌리면 삼 년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땅이 걸어진다. ●백화현상으로 해초 사라져 환경이 변하면서 전복은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어렵다.소라도 수십 년을 살아 날카로운 돌기가 떨어져 나간 탓에 ‘둥구쟁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찾아볼 수 없다.5년여 전부터 이 바다에도 백화현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해초들도 대거 사라지고 말았다.바다가 하얗게 변하는 이른바 ‘갯녹음’이 시작된 것이다. 잠수들은 한달에 10∼12일 정도 물질을 나간다.물질은 물때에 맞춰 시작되는데,법환리 속담에 ‘물싼때랑 나비잠자당 물들어사 돔바리 잡나’란 말이 있다.썰물때는 그럭저럭 지내다가 밀물에 바다에 뛰어들어 일을 한다는 뜻이다.특히나 물이 움직이지 않는 한조금날에는 물질을 피한다.여기에다 파도까지 치면 더욱 힘들다.보통 2m의 파도라도 이런 날에는 2배 즉,수심 4m까지 영향이 미친다.너울이 심하면 전복이 눈앞에 있어도 울렁거려서 잡을 수가 없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잠수병.머리가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뇌신이나 감기약 같은 것을 무턱대고 먹는다.잠수 복지정책이라며 이곳 종합병원에서 특수진료를 시작했지만 언감생심 완치는 꿈도 못꾼다.이들에게 연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천차만별이지요.수 천만원에서 수 백만원,지금도 상군 잠수가 일본에 나가서 석달만 뛰면 1000만원은 거뜬하지요.”라고 말한다.그야말로 ‘언더우먼’이다.가사노동에다 물질까지 해서 어렵사리 번 돈으로 밭도 사고 자녀들 대학까지 공부도 시킨다.이곳에서 자란 저명인사 중 잠수 어머니의 손길로 키워낸 사람들이 많다.김계담 서귀포문화원장이 농담삼아 거든다.“그 뿐인가.남편 술값도 보태지.” 70년대부터 잠수복 다운 잠수복이 나왔지 그 전에는 추운 겨울에도 반나체로 바다에 들었다.작가 현기영은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해촌의 포작진상은 수량이 월등히 많아 일년 열두달 바닷속 열명길을 들락날락 자멱질하여야 했다.노적가리만큼 큼직큼직한 진상꾸러미를 만들어 전복·미역·청각·우뭇가사리·산호·대모 외에 해중 귀물인 진주와 앵무조개 진상은 나중에 면제되었지만 그 대신 전복의 수량이 엄청 불어났으니 포작인의 고역은 말이 아니었다.남정네 근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마누라와 딸자식까지 벌거벗겨 물질을 시키건만….’이라며 옛적 잠수 수탈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中·러·日로 원정 잠수도 이들의 행동반경이 제주 바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부산 울릉도 독도 흑산도 등지로 나가는 이가 많았고,심지어는 중국이나 러시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역으로까지 ‘출가’하였다.봄이면 객지로 떠나 반년 여를 물질만 하다가 가을이면 돌아오는 원정잠수도 있었다.심지어 며칠씩 배를 저어 중국 칭다오(靑島)나 다롄(大連)까지 진출하기도 했다.현지에서는 이들에 대한 착취가 비일비재해 ‘부산 영도 일대에서 (제주 잠수가)짓밟혔다.’는 일제시대의 신문기사가 이를 잘 말해 준다.심지어 선금을 제대로 못갚으면 현지에서 볼모로 잡혀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한 끼 밥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좁쌀 따위의 양곡을 갖고 다녔으며,근검절약으로 돈을 모았다.아기엄마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면서 물질을 다녔다.우도의 신화적인 잠수였던 조완아는 황해도로 물질 나갔다가 뱃전에서 아기를 낳았다.배에서 낳은 배선이,항에서 낳은 축항동이,길에서 낳은 길동이 등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 만삭의 잠수들이 출산 직전까지 물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그 애환을 지금의 우리가 어찌 다 알 것인가.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 물질은 헤엄쳐 나가서 행하는 갓물질,15∼20명쯤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가서 치르는 뱃물질이 있다.가까운 ‘앞바르’를 벗어나 외국까지 가서 오로지 배에서 먹고자면서 떠도는 ‘난바르’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용궁을 다녀온 우도 만행이할머니의 전설같은 실화는 죽음이 늘 이들 곁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장한 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들은 독립운동사에서도 혁혁한 기록을 남겼다.이야기는 일제시대로 올라간다.잠수들의 권익옹호라는 미명 아래 어업조합이 발족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조합장을 도사(島司)가 겸임한 탓에 제주도내에서 잠수의 권익은 애당초 고려되지 않았다.1931년,구좌면 일대 잠수들이 9개 조항의 진정서를 도사에게 제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이들의 불만은 1932년 1월24일 세화리 잠수사건으로 폭발하고 만다.하도리의 부춘화(夫春花·당시 22세)라는 여성의 지휘 하에 1000여명이 세화리 주재소 앞에 모여든다. 당시 인구로 볼 때 1000명은 보통 숫자가 아니다.마침 도사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에 양손에 비창,호미 등을 들고,머리에 흰 물수건을 동여맨 채 행진가를 높게 부르면서 거리에 운집하였다.도로를 가로막고 항의를 시작하였으나 도사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분노의 불길은 더욱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결국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壯擧)는 지금까지 잠수의 역사로 길이 남았거니와 당시에 불려지던 노래말을 들어 보자.‘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잠녀/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날 무더운날 비가 오는날/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아침 일찍 집을 떠나 어두우면 돌아와/어린 아기 젖멕이멍 저녁밥 진자/하루종일 해봤으나 번 것이 없어/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이룬다.’ 노령의 잠수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기억한다.제주 여성의 강인한 힘은 이같은 고통의 산물이리라.최대 20여m 이상의 물속을 헤집는 잠수들의 노역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니,오죽하면 미국무부에서 심해 공사와 해군력 증강을 위해 제주잠수들을 연구하기까지 했을까.잠수를 말하지 않고는 제주바다의 삶에 관한 논의는 애당초 불가능하다.제주민의 바다삶에서 잠수는 알파요,오메가이기 때문이다.
  • [라이더컵] 우즈·미켈슨 vs 해링턴·몽고메리 氣 싸움

    미국과 유럽연합군의 ‘골프전쟁’인 라이더컵이 17일 밤(이하 한국시간) ‘괴물 코스’로 악명 높은 미국 미시간주 오클랜드힐스골프장 남코스(파70·7077야드)에서 개막됐다. 두 선수가 각자의 공으로 플레이를 한 뒤 둘 중 좋은 스코어를 채택하는 방식의 포볼매치플레이로 치러진 첫날,첫경기부터 두 대륙의 간판스타들이 격돌했다.미국은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을 묶어 맨 먼저 내보냈고,유럽은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과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를 출격시켰다. 세계 1위를 비제이 싱(피지)에 빼앗겼지만 출전 선수 24명 가운데 ‘최고수’가 분명한 우즈와 올해 마스터스를 제패한 세계 4위 미켈슨은 미국이 내세우는 최강의 원투펀치다.세계 8위로 유럽팀의 최고 랭커인 해링턴과 라이더컵에 7차례나 출전해 16승을 올린 몽고메리는 유럽이 내세울 수 있는 최강의 카드였다. 두번째 조에도 미국은 관록의 데이비스 러브3세와 패기의 채드 캠벨을 내세우는 강수를 뒀고,유럽 역시 대런 클라크(북아일랜드)와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로 맞불을 놓았다. 세번째는 미국의 스튜어트 싱크-크리스 라일리조와 폴 매킨리(아일랜드)-루크 도널드(잉글랜드)조가 맞붙었다.이들은 모두 라이더컵에 처음 출전했다. 데이비스 톰스-짐 퓨릭조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조는 마지막 네번째 대결을 장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몸값 오른 최경주 재계약 할까 말까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스타이자 세계 24위인 ‘탱크’최경주(34·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의 스폰서 재계약 여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올해 마스터스(3위)와 미프로골프(PGA)챔피언십(6위) 등 메이저대회에서 잇따라 ‘톱10’에 진입한 최경주의 메인스폰서(슈페리어)와 용품스폰서(테일러메이드) 계약기간 3년이 연말에 끝나기 때문이다.최경주의 몸값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연간 슈페리어 8억∼10억원,테일러메이드 4억∼6억원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간 200만달러 정도면 좋겠다.”는 의사를 최근 에이전트인 IMG에 전달한 최경주는 슈페리어와의 관계는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어려울 때 뒷바라지해 준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 수차례 밝혀왔다.최경주를 통해 이미지 제고에 성공한 ‘토종’ 패션업체 슈페리어 역시 결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최경주는 슈페리어가 연간 100만달러 정도만 맡아주면 나머지 100만달러는 용품 스폰서 등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문제는 테일러메이드 코리아와의 재계약 여부.클럽에 유난히 예민한 최경주는 그동안 여러차례 클럽 지원이 미흡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세계적인 업체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변수다. 최경주는 다음달 7일 SBS최강전 출전을 위해 귀국,재계약 문제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양평의 강변길

    [뒷골목 맛세상] 양평의 강변길

    가을이다.어느 주말 느닷없이 하늘이 높아져서 푸른 물을 뚝뚝 떨구고 투명한 햇살 속에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잊었던 그리움마저 아련하게 불러일으킨다면,그리고 그리움의 무게에 비례해 사는 일이 그대를 지치고 허기지게 한다면,차를 지닌 친구라도 불러내어 훌쩍 길을 떠나고 볼 일이다.양평의 빼어난 풍광에는 몇 번이고 더듬어도 질리지 않는 유혹이 있다.더군다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함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의 강심 위에서 황금빛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고 있는 풍광은 차라리 눈이 시리다. 강길의 에도는 굽이굽이 경관 좋은 자리마다 빼곡히 들어앉은 모텔이며 국적불명의 괴이한 건물들,예술보다는 상술을 앞세운 몇몇 갤러리며 화려한 라이브 카페들이 눈엣가시처럼 다가올 터이지만,오래 눈에 담지는 말자.그것은 그것대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어서 생겨나지 않았으랴. ●두물머리 강심은 한폭의 동양화 서울을 떠나 구리를 거쳐 이제 막 팔당댐 부근의 강길을 달려가고 있을 그대에게,나는 맨 먼저 양수리 검문소에서 대성리 쪽으로 빠지는 45번 국도변에서 수종사(水鍾寺)라는 작은 입간판을 찾아보기를 권한다.너무 작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자칫 흘려넘기기 쉽다.어렵게 찾은 수종사의 입간판을 따라 이제 산길을 올라가노라면,채 포장도 하지 않은 길바닥의 흙들이 지난여름의 폭우에 쓸려나가 움푹질푹 요철을 이루고 있을 터이다. 좀 더 수종사의 숨겨진 매혹에 빠질 예정이라면,그쯤에서 한 편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가도 좋다.그렇게 걷다 보면 이마에는 땀방울이 돋고 시원한 샘물 한 모금이 간절해질 무렵에 기다렸다는 듯이 절 입구에 있는 약수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약수터의 샘물마저도 무심코 지나치기를 권한다.정히 갈증을 못 견디겠다면 딱 한 모금만 마시기 바란다.그리하여 마침내 절의 경내에 들어서면 그대는 어쩔 수 없이 대웅전이며 산신각 같은 건물보다도 먼저 무료다실이라는 쪽지가 붙은 삼정헌(三鼎軒)에 눈길이 멈출 것이다. 일말의 주저를 무릅쓰고 삼정헌의 문턱을 넘어서면 무엇보다 통유리로 확 트인 전면에 한 폭의 빼어난 수묵화처럼 펼쳐진 두물머리의 전경을 발견할 것이다.바로 두물머리의 전경을 배경으로 친구와 함께 낮은 다탁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라.아름다운 풍광에 먼저 넋이라도 나간 듯 그대의 입부터 벌어지리라. ●잊을 수 없는 수종사의 차와 산채비빔밥 바로 그렇듯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빼앗긴 것은 비단 그대뿐만이 아니다.수종사가 세워진 아득히 먼 세월부터 일찍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인묵객들이 바로 그대가 앉아 있는 삼정헌 어름에 터를 잡고서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고 또한 붓을 들어 화선지에 옮겼으리라.만일 그대가 알려고만 든다면 삼정헌에 비치된 책자 중에서 쉽게 시인들의 노래를 찾을 수 있으리라.서거정(徐居正),김종직(金宗直),홍언필(洪彦弼),이이(李珥),이덕형(李德馨),정약용(丁若鏞)….이 중에서도 그대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시 한편만은 꼭 빼놓지 말고 읊어보기를. 수종사 절집은 아스라한데 이내 속에서도 기와 홈통을 알아보겠네 호남땅 4백여 많은 사찰도 이 누각보다 크다 못 하리 그대가 차를 먹는 예법에 처음일지라도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뭔가 망설이는 눈치라면 어느새 젊고 예쁜 보살님이 나타나 친절하게 차를 울궈내어 음미하기까지 다법의 과정을 일러줄 것이다. 만일 일요일의 낮공양 시간에 수종사에 다다랐다면 무료로 마신 차에 곁들여 역시 무료인 맛깔스러운 산채비빔밥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터이다. 무료다실이나 무료 산채비빔밥은 어쩌면 절을 홍보하기 위한 고등수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절을 홍보한다고 해도 경내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곳에 터를 잡아 무료다실을 열거나 공양까지 보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적어도 수종사 스님들의 어떤 선의만은 비틀어보지 말자. 기왕에 가을맞이를 나섰으니까 수종사의 차맛에 곁들여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나서자.대성리 쪽의 강변을 거슬러 오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연세중학교 정문 앞에서 ‘죽여주는 동치미국수’(031-591-4632)라는 조금은 무례한 간판을 만나게 될 터이다.간판처럼 죽여줄 정도는 아니지만 4000원짜리 동치미국수며 5000원짜리 김치만두는 확실히 맛이 있다.깔끔한 맛의 김치만두를 먼저 먹고 살얼음이 둥둥 떠있는 동치미국수를 먹는 것이 순서이다.이 ‘죽여주는 동치미국수’는 한 곳만이 아니라 강변도로 곳곳에 있어서 서로 원조임을 내세우는데,맛은 모두 비슷하니까 어디를 찾아도 무방할 듯하다. ●맛은 비슷비슷… 어느집 찾아도 무방 만일 두부전문집을 찾을 요량이라면 그대는 45번 국도의 팔당 방향의 옛 국도를 잠깐 되돌아가서 ‘기와집순두부’(031-576-9009)라는 간판을 발견하기 바란다.옥호 그대로 허름한 옛 기와집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저잣거리처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얼마쯤은 황당하기까지 한 광경을 만날 터이다.순두부백반(5000원)이며 콩비지백반(6000원),생두부(6000원),두부김치(8000원) 이외에도 두부제육볶음,파전,녹두전 등 메뉴가 다양한데,어쩌면 이 다양한 메뉴가 이 집의 흠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가 보다 순수한 두부전문집을 찾을 요량이라면 양수리 읍내에서 서종으로 방향을 틀어 문호리 강변을 지나는 옛날 국도변에 있는 ‘시골손두부전문’이라는 입간판이 걸린 평범한 시골집을 찾기 바란다.‘서종가든’ (031-773-6035)이라는 옥호인데,어디에도 가든은 보이지 않지만,주인 할머니의 손두부 빚는 솜씨만은 오래전부터 호가 난 집이다.손두부전골이며 두부찜,손두부,콩탕이라고 부르는 비지탕이 각각 1인분에 6000원씩인데,그중에서 푸짐한 버섯에다가 돼지고기를 썰어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손두부전골을 빠뜨리지 말자. 서울과 강원도 내륙을 잇는 6번 국도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양수콩나물국밥(031-771-5995)이 양수리에서 양평으로 가는 어름의 국수역 앞 국도변에 있다.콩나물국밥과 황태해장국이 4000원씩인데,콩나물에 북어국물을 붓고 배추김치를 썰어넣어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콩나물국밥이 역시 시원하다. 투명한 햇살이 내려쌓이는 가을들판을 바라보며 콩나물국밥에 1000원짜리 모주 한 사발을 곁들인다면 몸과 마음을 함께 힘들게 하던 그대의 허기도 어느 정도 가실지 모른다.어차피 모주 한 사발로 허기를 달래기에 부족하다면 5000원짜리 새우부추전이나 황태구이를 안주로 역시 5000원하는 동동주 한 됫박에 아예 허기를 채워도 좋다.가을들판에 햇살이 저리도 투명한데 누가 그대의 낮술을 탓하랴. 6번 국도에서 벗어나 옥천으로 접어들어 중미산으로 가는 길목에 도토리국수집(031-771-7562)이 있다.도토리 요리 전문답게 도토리묵탕국(5000원),도토리비빔밥(5000원),도토리냉면(5000원),도토리전병(7000원),도토리전(6000원)으로 도토리 일색인데,그중에서도 고기를 삶아낸 육수에 도토리묵과 김치를 채 썰어넣고 밥을 말아먹는 도토리묵탕국이 일품이다.묵탕국 한 그릇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는 양이지만 어쩐지 부족하게 여겨진다면 도토리전이나 도토리전병을 곁들이자. ●용문산 은행나무축제는 ‘덤’ 가을 양평에서 용문산 ‘은행나무축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용문사 앞마당에 있는 수령 1200년의 은행나무를 기리는 축제인데,‘세계사물놀이겨루기한마당’,산사음악회,영산제,용문산신령제 등이 열린다.용문산의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이제 막 가을의 서장을 여는 듯한 은행나무축제까지 만날 수 있다면,예상하지 못했던 가외의 즐거움이 아니랴. 돌아오는 길에 국도변에서 ‘무명화가의 찰옥수수’라는 붓으로 쓴 입간판을 만날지도 모른다.그대는 결코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고,아니 지나쳤다가도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되돌아가서 어쩐지 어수룩해 보이는 무명화가에게서 찰옥수수 한 봉지를 사기 바란다. 혹시 누가 알랴,찰옥수수를 주고받는 손길 사이로 찌르르,알 수 없는 어떤 전류가 흘러 그대가 벼락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될지를.그리하여 오랫동안 그대를 지치고 허기지게 하던 삶의 화두가 눈앞에서 번쩍,풀려나게 될지를.그럴지도 모른다.깨달음이란 결코 무슨 커다랗고 엄청난 대상에서 오지 않는 법이다. ■ 일부 음식점 ‘미끼상품’ 조심을 양평을 도는 여행길에서 한 가지만 주의하자.주로 정체불명의 괴이쩍고 웅장한 외양을 하고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혹은 갤러리 앞에 내걸린 입간판들에 내걸린 소위 ‘미끼상품’에 대해서다.무슨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점에만 있는 줄 알았던 ‘미끼상품’이 4000,5000원짜리 가격을 내세운 채 양평 일대의 아름다운 강길 여기저기에서도 나부끼고 있다. ‘미끼상품’에 홀려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문을 밀치고 들어선다면,기다렸다는 듯이 정도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가죽 메뉴판이 그대 앞에 놓일 것이다.그런데,이것 봐라. 그대가 입간판에서 보고 들어온 미끼상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대신에 3만∼4만원짜리 비싼 메뉴들만 즐비하게 그대의 눈을 어지럽힐 것이다.미끼상품의 정체를 깨달았다면 그대는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오기 바란다.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한 채 3만,4만원짜리 비싼 메뉴를 시켜도 나중에는 뒷맛이 쓸 것이고,또한 4000∼5000원짜리 미끼메뉴를 우격다짐해도 나중에는 더더욱 뒷맛이 쓸 것이다.
  • [출동아줌마]재래시장을 찾아라

    [출동아줌마]재래시장을 찾아라

    새내기 주부에게 제수용품 준비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무엇을 얼마에 사야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재래시장은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시장 아주머니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수월하게 제사상 준비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집 부근 성동구 성수동 뚝도시장에서 장보기를 통해 제수용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알아봤다. 뚝도시장은 올 6월에 새롭게 리모델링해 바닥과 간판,벽면 등 모든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손님들이 늘어나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었다.예전에는 비만 오면 질퍽거렸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과일가게.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과일은 올해 작황이 좋아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다.차례상에 올려 놓을 사과,배,감과 가족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포도를 샀다.사과는 7개에 7000원,신고배 4개 1만원,감 10개 4000원,포도 2㎏ 1만원으로 모두 3만 1000원이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와 흥정끝에 “시장의 참맛은 깎아주는데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애교를 부려 1000원을 깎는 데 성공,만원짜리 3장을 건네줬다. 과일봉지를 들고 다음에는 한과가게로 들어섰다.여기서는 한과와 약과,옥춘.산자 3봉지에 5000원,약과는 10개짜리 2봉지로 4000원,옥춘은 1500원으로 역시나 500원을 깎고 1만원으로 모두 구입했다. 이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는 “경기가 안 좋지만 추석대목인데….”라며 기분 좋게 500원을 깎아주었다. 대추는 100g에 2000원,밤은 1㎏에 5000원으로 모두 6000원이 들었다. 이렇게 구입하는게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자주 찾는 집에서 한줌씩 더 얻거나,500원씩 깎아주기도 하는 등의 이점이 있어 좋다.밤 한줌을 덤으로 얻으니 더 뿌듯했다. 야채가게에서는 고사리 등의 나물류를 구입했다.고사리는 1근에 2000원,시금치는 1단에 1500원,숙주나물은 1관에 5000원으로 모두 8500원이었다. 야채가게의 아주머니는 “야채값이 너무 올라 주부들이 예전처럼 많이 사지 못해 반근이나 반단 등 조금씩 사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넣어주면 다음 번에도 또 찾아오기 마련”이라며 고사리 봉지에 넉넉히 고사리를 담아줬다. 대형 마트에서 구입하려는 물품들은 4∼5개씩 묶어 파는 게 대부분이라,원래 사려고 했던 것보다 많이 사게 된다.싸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많이 사는 것이 가계부에 쓸데없는 지출이 되곤 한다.하지만 뚝도시장을 찾게 된 후엔 필요한 만큼 조금씩 사게 돼 불필요한 지출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제수용품을 구입하면서 초보 주부들에게 요긴한 것은 시장 아주머니들의 도움말이다.대형 마트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재래시장만의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현정 시민기자
  • [재래시장] 중곡 제일시장

    [재래시장] 중곡 제일시장

    ‘늘어난 손님만큼 덤도 더 드리고 경품도 드려요.’ 추석을 보름 앞둔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3동 중곡제일시장은 낡은 시설에 경기마저 안좋아 ‘썰렁’했던 지난해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오는 24일 준공식을 앞두고 간판정비 등 리모델링 마무리 공사로 분주한 인부들,깔끔하게 정비된 거리위로 추석장 보기에 바쁜 아낙네들,손님 맞이하랴 가게 정리하랴 손이 부족한 상인들….약간은 들뜬 표정의 이들 얼굴에는 미소가 머무르고 있었다. “주변에 할인점이나 대형 마트가 없지만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시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길이 점점 줄었죠.상인들과 함께 없는 살림에 빚을 내서라도 ‘바꿔야 겠다’고 결심하고 시설도 바꾸고 이벤트도 마련했습니다.” 박태신(51) 중곡제일시장 상인연합 대표는 지난해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다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가게 밖 풍경을 가리켰다.시장이 깔끔해진 이후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시설을 정비하는 데 갹출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상인들 사이에 ‘물건값은 올리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싼 값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인 박형태(42)씨는 “찾아주는 주민들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는데 인심 사납게 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15년간 중곡동에 살았다는 박미란(43)씨는 “물가의 오르내림과는 상관없이 대파,버섯 등 대부분의 야채는 1000원대면 풍부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17일부터는 준공기념 경품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경품권을 모아 다음 달 15일 오후 2시 추첨행사를 갖고 1등 지펠냉장고,2등 김치냉장고,3등 세탁기,4등 금돼지 10돈,5등에게는 자전거를 준다. 상인 박씨는 “꼭 얼마 이상을 사야 경품권을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은 없으니 단골가게에 들러 ‘인심’을 얻어보는 게 좋을 것”이라며 “‘꽝’인 경품권도 20장 이상 모아오면 조그만 선물이라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하프타임] 세리·우즈·경주·몽고메리 격돌

    오는 11월14일 제주 라온골프장에서 타이거 우즈(미국) 최경주(34·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 박세리(27·CJ)와 스킨스게임을 벌일 마지막 주자는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로 정해졌다.MBC라온건설인비테이션 주최측은 16일 “몽고메리가 출전 의사를 전해와 다음주 정식 계약을 맺을 예정”이라고 밝혔다.몽고메리는 1993년부터 7년 연속 유럽프로골프투어 상금왕을 지낸 유럽 골프의 간판 선수로 17일 밤 시작하는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라이더컵에도 나선다.
  • [문화마당] ‘알바’와 ‘바이토’/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몇 해 전 일본을 여행할 때 도쿄 시내 길거리에서 ‘바이토 모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간판을 내걸고 있는 곳이 하나같이 가게인 점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과연 어떤 사람을 모집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일본 사람들은 ‘아르바이트’(Arbeit)라는 독일어에서 생선 대가리를 잘라내듯 앞 음절을 잘라내 버리고 ‘바이트’라는 뒤 음절을 취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길거리를 가다 보면 ‘알바 모집’이라는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이 말을 자주 듣는다.‘알바’란 ‘바이토’와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가리킴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본디 ‘아르바이트’라는 독일어는 생업,노동,작업 또는 연구 등을 뜻하는 말이다.부업이라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의 ‘워크’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말이 일본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에 와서는 부업이라는 뜻으로 그 격이 뚝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같은 독일어를 취해 쓰면서도 왜 일본 사람들은 ‘바이토’라고 하고,우리나라 사람들은 ‘알바’라고 하는 것일까?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알바’보다는 ‘바이토’가 더 이치에 맞는다.의미의 무게가 ‘아르’보다는 ‘바이트’ 쪽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음절 단위로 보더라도 ‘아르’와 ‘바이트’로 분철할 수는 있어도 ‘알바’(아르바)로는 분철할 수 없다.이렇게 문법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알바’라고 하는 것은 의미니 음절이니 가리지 않고 무조건 앞쪽을 택하고 보는 우리네 언어 습관 때문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 영화관에서 ‘어게인스트’라는 제목의 할리우드 영화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아무래도 영어 전치사 하나로 제목을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전치사는 반대,대립,적대 관계 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충돌이나 불리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서양어의 전치사란 우리말의 조사처럼 홀로 설 수 없고 반드시 다른 말과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을 확인해 보니 ‘어게인스트 올 디 오즈’(Against All the Odds)라고 되어 있었다.그러니까 ‘온갖 역경을 딛고’라는 뜻이다. 그 때서야 비로소 왜 그 영화의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이해가 되었다.그런데도 영화 수입자는 가장 핵심적인 뒤쪽 낱말은 모두 빼 버린 채 맨 앞의 전치사 한 토막만을 취해 와 제목으로 삼았던 것이다. 비단 영화 제목만이 아니다.몇 해 전에는 ‘위스’(With)라는 여성 잡지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잡지의 제호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동반,접촉,일치 등과 함께 수단이나 도구 따위를 나타내는 이 전치사도 ‘어게인스트’처럼 혼자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는 국어를 연구하기 위한 기관으로 국립국어연구원이 있다.국어연구원은 맞춤법뿐만 아니라 국어와 함께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나 외국어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 [MLB] 밤비노 저주 이젠 풀리나

    16세 소년의 부러진 치아 2개가 미국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를 86년이나 괴롭혀온 ‘밤비노의 저주’를 풀 것인가. 보스턴의 야구팬들은 요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밤비노의 저주가 풀릴 수도 있다.”는 최근 보도를 읽고 또 읽는다. 보도 내용은 이렇다.지난 1일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리 개빈이라는 소년이 보스턴 간판타자 매니 라미레스의 홈런 타구에 맞아 앞니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놀라운 사실은 소년이 서드베리 더튼로드 558번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집은 ‘밤비노’ 베이브 루스가 1916년 구입해 1926년까지 살았던,루스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보스턴은 이날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10-7로 승리했고,이후 10연승을 달렸다.반면 ‘저주의 가해자’ 뉴욕 양키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0-22라는 구단 101년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경기 장소도 루스의 흉상이 있는 양키스타디움. 보스턴은 1918년 겨울 간판 스타였던 루스를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이후 지난해까지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했다. 사람들은 이를 루스의 별명에 빗대어 ‘밤비노의 저주’라 했고,보스턴 팬들은 ‘저주 쿠키’나 ‘저주 아이스크림’까지 만들어 먹으며 저주가 풀리기를 기원해 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집이 맛있대]동부이촌동 중국음식점 ‘동강’

    [이집이 맛있대]동부이촌동 중국음식점 ‘동강’

    외식업이 춘추전국시대다.건물마다 하루 걸러 음식점 간판을 새로 달거나 내린다.식당을 개업하면서 ‘보도자료’를 만들어 돌리는 등 홍보도 무척 많이 한다.이런 식당들은 대개 개업 6개월까진 고품질의 맛을 유지한다.하지만 소위 ‘개업발’이 떨어진 이후에도 맛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곳은 드물다. 서울 동부이촌동 충신교회 맞은편 풍원상가의 중식당 동강은 개업한지 3년이 넘었지만 한결같은 맛으로 손님을 끌고 있다.외국인,특히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답게 동강의 음식은 ‘내공’이 깊다.테이블은 고작 5개이지만 손님들이 하루종일 끊이질 않는다.인테리어는 담백한 듯 절제됐다. 동강의 대표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가 딸기부귀새우다.저민 딸기와 튀긴 새우가 레몬즙과 화이트소스에 버무려 나온다.중국 음식은 기름지고 약간은 느끼하다는 편견을 완전해 깨준다.2∼3명이 왔을 때 하나 주문하면 좋다. 유린기도 주문이 많다.야채 위에 닭다리살을 튀겨내고,그 위에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가득 담은 간장 소스를 부어서 먹는데,매콤한 맛이 별미.느끼하지 않고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오룡해삼도 권할 만하다.해삼 안에 다진 새우를 넣은 후 튀긴 다음 소스를 끼얹어 살짝 쪄낸 것으로 역시 인기 메뉴지만 가격이 비싸다. 소스는 기름과 전분으로 만들어졌는데,웬만한 경력의 요리사가 아니면 만들 수 없다고 한다.느끼하지 않고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맛있다. 요리를 먹고 난 다음 자장면을 권할 만하다.자장면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쇠고기를 썼다.닭고기를 졸여서 국물로 만든 기스면도 시원하다.최성수 사장은 “중식당 특성상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는데 매일 장을 봐서 생물을 쓴다.”고 말했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2) 경남 남해 어부림·미조리숲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2) 경남 남해 어부림·미조리숲

    ●바람·조류 막아주는 울타리형 바다숲 ‘어부림’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가면 ‘물건다방’‘물건슈퍼’‘물건면사무소’‘물건중학교’‘물건수산’ 등등 온통 ‘물건’만 보게 되니 슬몃 웃음이 나온다.물론 ‘물건(物件)’이 아니라 ‘물건(勿巾)’이다.물건까지 달려 내려간 것은 일명 어부림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제150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바람과 조류를 막아선 전형적인 울타리형 바다숲.길이 1500m,폭 30m 내외,7000여 평에 이르는 광대한 숲이 해변을 가로지른다.이팝나무 모감주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말채나무 후박나무가 윗자리를 차지하고,그 뒤를 따라 산달나무 까마귀밥 여름나무 생강나무 화살나무 등이 앞다퉈 자리를 잡고 있다.상목 2000여 그루,하목 8만여 그루,도합 1만여 그루가 도열해 찾아오는 이들을 위하여 늘 열병식을 준비한다.대개 해송 같은 단일 품종이기 마련인 바닷가에 이처럼 식물의 종다원성이 확보된 바다숲이 자리하고 있음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으모 크일나요.해꼬지를 하모 틀림이 벌 받거덩.썩어자빠진 고목도 절대로 손은 대지 마이소.”숲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마을 노인들이 외지인을 보자마자 경계의 낯빛으로 전해 준 준엄한 경고다.입구에도 ‘구역 내 텐트금지.숲속에서 취사를 금함.위반시 법적 조치’란 경고 입간판이 서있다.누백년을 걸쳐 지켜온 숲이므로 이렇게 막고 지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설에는 임진왜란이 터지기 직전에 전주 이씨 무림군(茂林君)의 후손들이 심었단다.그렇다고 보면 대략 400년 역사에 근접하는데,고목의 나이테와 거의 맞아 떨어진다.나무 종류도 170종에 이른다.선조들은 이곳에 왜 이같이 웅장한 숲을 조성하였을까. ●‘숲 해치면 마을 망한다’ 믿음 견고 물건리의 본디 지명은 ‘물건개’.움푹 들어간 만을 따라 펼쳐진 평지에 촌락이 형성되어 지금은 무려 227가구,530여명이 사는 대촌이 됐다.문제는 바다로부터 질풍처럼 내닫는 해풍과 조류였다.숲을 조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숲이 한 눈에 드는 산등성이에 올라 굽어보니 타원형의 숲이 바다와 뭍의 경계선에 그림처럼 놓여졌다.바다로부터의 온갖 도전을 굳건하게 막아주는 ‘지킴이’로 손색이 없는 위용이다. 19세기 말쯤 일이다.생각없는 사람들이 이곳 나무를 일부 벌채한 뒤 큰 폭풍을 만나 마을이 아예 ‘절단’난 적이 있었다.그 후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이곳 주민들의 믿음은 더욱 강고해졌다.1987년의 태풍 ‘셀마’ 때도 바닷물이 들어차 큰 피해를 입었다.물건항을 조성하면서 방파제를 쌓은 이후 해변의 아름답던 몽돌들이 씻겨나가고 있으며,숲에도 직접적인 피해가 닥쳤다.짠물이 숲을 덮쳐 나무가 죽어갔다.그래서 10여년 전부터 곳곳에 느티나무 등 후계목을 심어 뒷 일에 대비하고 있다. 너무도 중요한 숲인지라 아예 ‘제사 잡숫는 숲’이 되었다.숲에서 ‘우두머리’ 나무 한 그루를 정해 ‘당산’이라 이름붙이고 해마다 음력 10월 15일이면 제를 올린다.한 달 전에 동회를 열어서 깨끗하고 부정없는 인물을 뽑아 제주로 삼는다.예전에는 남해읍내까지 40리 길을 걸어서 오가며 제숫거리를 사오곤 했다.당목과 제줏집에는 지금도 왼새끼 금줄을 쳐 금기도 행한다. ●물고기에 숲그늘은 ‘호화판 별장’ 1960년대까지만 해도 봄이면 숲 바로 앞까지 멸치떼가 몰려들었다.은백색의 멸치가 몽돌해변으로 몰려들면 후리그물을 둥그렇게 둘러치고 주민들이 모두 몰려나가 그물의 양 귀를 잡아당겨 끌어올렸다.숲가에서는 드럼통을 개조한 가마솥에다 멸치를 연신 삶아냈고,이를 햇살 좋은 들판에 널어말려 ‘메루치’를 만들었다. 고기떼는 숲그늘로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물고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숲을 그리워한다.동물만이 숲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해변이나 섬의 숲그늘로 몸을 숨기고 ‘그늘의 미학’을 즐긴다.선사시대의 인간들이 바위 그늘에 거주처를 마련하였듯 물고기들도 본능적으로 바위 그늘이나 숲 그늘을 찾는다.물건숲은 이런 물고기들에게는 가히 ‘호화판 별장’에 버금하는 거주조건을 갖춘 곳이다. 숲이 좋았을 때는 지금의 주택지까지가 거대한 ‘나무의 바다’였다.그 후 숲이 줄어들면서 그 물좋던 멸치떼도 사라져 먼 너른 바다로 나가야만 그물에 멸치가 든다.세월이 갈수록 숲은 몸피를 줄여 이제는 옛날의 원형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긴 띠로만 남았다.그래도 이만한 바다숲 구경하기가 쉬운 일인가. 물건숲은 지정학적인 위치와도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이곳은 남해의 바깥바다인 동쪽에 위치하여 외풍을 강하게 받는 곳이다.그래서 바람,특히 태풍에 취약했다.만약에 조상들이 물건숲을 조성하지 않았더라면,사람이 사는 이곳도 지금쯤 소멸되어 허허벌판이 되었음직하다.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제시한 살만한 곳(家居地)은 계거(溪居),강거(江居),해거(海居)의 순이었으니,만약 이 숲이 없었더라면 이곳 사람들은 열악한 해거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을 쳤어야 했을 것이다. 물건숲의 매력은 활엽수와 상록수의 조화에 있지 않을까.대개의 바다숲이 해송 일색인데 반하여 이 숲은 느티나무가 주종이다.느티나무는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을나무의 상징으로,그 친연성은 정자나무나 당산나무에서 단연 돋보인다. ●느티나무·상록수 우거진 ‘미조리숲’ 장관 그렇다면 물건숲은 저 홀로 전통인가.그렇지는 않다.남해군에는 이곳 말고도 걸출한 바다숲이 더 있다.아름답기 비할 바 없는 ‘물미도로’를 통해 십여 분을 달려가면 미조리숲(천연기념물 제29호)에 이른다.수령 50∼60여년에 이르는 거대한 느티나무 군락과 상록수 230여 그루가 해변을 향해 숲그늘을 드리우고 있다.설촌(設村) 역사로 미루어 보건대 숲은 현존 나무들의 나이테를 뛰어넘어 일찍부터 조성되었다가 여러 단계의 변천을 거친 것으로 비정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처참한 풍경과도 마주쳐야 했다.미조리 역시 태풍 셀마를 만난 데다가 작년에는 매미까지 덮쳤다.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진 나무,스러진 나무들이 70여 그루에 달했다.거센 해일이 해변을 강타하면서 숲을 넘어 마을을 들이쳤으며,이 바람에 두 집이 쓸려나가고 일곱 집이 반파되기도 했다. 숲이 조성된 토대는 제방처럼 높다.미조리숲의 관리인이었던 이대승(65)씨는 이 숲은 “선대들이 ‘바람의지’로 세운 ‘울타리’”라고 설명했다.“우리가 죽더라도 후손들이 이어갈 것이 분명하지요.”논밭이 부족한 생활 조건에서 바다에 의지하여 사노라면 어차피 바닷가를 피할 수 없었겠으나 당초 이곳의 생존 조건이 너무나 험난했으니,이들 바다숲은 자연조건에 맞선 인간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미조리는 반농반어의 특성이 말하듯 의외로 논밭이 많다.숲을 넘어가면 밭이 있어 남해 특산인 마늘을 키우며,그 밭을 넘어가면 논이 있다.만약에 숲이 없다면 바람에 실려오는 염해 때문에 농사인들 제대로 됐을까. 바다숲은 비보풍수(裨補風水)와 연관이 깊다.풍수설에 따라 지형적인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비보로서 마을의 지기(地氣)를 키우고 지키고자 했던 것.숲이 없었더라면 바닷쪽이 얼마나 허했을까.숲이 우거지면 마을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이 난다는 속설마저도 이곳에서는 예사롭지 않다.미조리에서도 바다숲은 신성목(神聖木)이다.해마다 10월 15일 밤에 동제를 지내기 위하여 아예 동제당을 숲속에 지어 놓았다.뒷산 참나무가 윗당인지라 먼저 제를 지내고,그 다음에 마을에서 송정해수욕장 넘어오는 무림이 고갯목에 장승을 세우고,마지막으로 바다숲에서 제를 지낸다. ●물고기도 숲을 그리워한다 “태풍 매미가 강타하고 난 다음에는 고기가 들지 않아요.”주민들의 시름이 깊다.봄에는 감성돔과 방어,볼락,여름에는 멸치,가을에는 장어와 게 등을 잡지만 씨알도 잘고 잡히는 양도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숲이 얼마나 어업에 중요한가는 이웃 일본의 사례에서 산견된다.일본에서는 막부시대부터 바다숲의 중요성을 간파하였으며,메이지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인공림을 조성하였다.예컨대 야마구치현(山口縣) 같은 곳에서는 해변 곳곳에 흑송림을 조성하여 고기를 유인하였다.오늘날도 어민은 물론이고 부인회,청년회 등이 앞장서 사회운동 차원에서 숲을 조성한다.물건리와 미조리 숲모심처럼 식수제(植樹祭) 같은 제의도 집행하며 ‘어민의 숲’,‘바다의 숲’,‘물고기의 숲’ 따위의 명표를 붙인 숲을 사회운동 차원에서 키워 나간다. 바다숲은 해변에 바짝 붙어서 운신하는 연안어종의 서식에 결정적인 조건이 된다.숲이 무성한 바닷가에 고기가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바다숲은 풍조(風潮)를 막는 1차적 기능 이외에 물고기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시너지효과까지 부여한다. 우리는 어떠한가.물고기를 위해서 나무를 심자면 삼척동자가 다 웃고 말 것이다.바다만 그러한가.강변숲과 수초가 무성해야 민물고기도 잠자리를 마련한다.콘크리트로 반듯하게 호안을 둘러친 강에서 민물고기가 서식할 수 없듯 해변도로 따위로 장벽을 쌓아올린 곳에 바다물고기가 쉴 터를 장만할 턱이 없다. 이미 수백년 전에 바다숲을 조성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지혜와 체험이 지금의 우리에게서 완벽하게 단절되고 말았다.남해바다의 숲에서 못난 후손들을 일깨우는 죽비의 매운 맛을 느끼며 아쉬웁게 감고계금(鑑古戒今)의 배움을 청해 본다.
  • 영화채널 MC로 복귀한 한성주

    영화채널 MC로 복귀한 한성주

    “이제야 제 본래 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30)가 영화정보채널 무비 플러스(Movie Plus)의 간판 프로그램인 ‘시네마 투데이(금 오후 10시)’의 새 단독 진행자로 나섰다.‘시네마 투데이’는 신작·개봉영화 소개는 물론 한 주간 영화계 소식까지 꼼꼼히 짚는 영화 정보 프로그램.국내 케이블 채널 자체 제작 프로그램으로는 최장수 프로그램(99년 첫 방송)이다. 지난 10일 서울 가양동 ‘YTN미디어’ 녹화장에서 그녀는 한창 녹화를 진행하고 있었다.아나운서 출신으로 방송 진행에 있어서는 베테랑이지만 평소와 달리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그동안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은 많이 진행해 봤지만,영화 분야는 처음이라 많이 떨려요.” 5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올 초 방송에 복귀한 뒤 라디오나 지상파 방송 게스트로는 출연했지만,MC는 처음이란다. 오랜만에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까.“대학 때 전공(국제경제)과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부담도 된다.”는 그녀지만,“영화 관련 서적과 잡지를 탐독하고 틈나는 대로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고품질’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단다.‘딱딱한’ 뉴스 진행과 달리 시청자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잠시 복잡한 일상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해줘 본인 스스로도 흥미를 느끼며 진행하고 있다는 것. “한성주만의 색깔을 입힌,다른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들과는 차별화되는 진행을 선보일 거예요.방송이 끝난 뒤 마치 잘 만든 영화 한편을 보고 난 것 같은 느낌이 드시도록….”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부산 기장군의 오영수

    부산 기장군의 오영수

    소설가 난계(蘭溪) 오영수(吳永壽 1911∼79). 평생 단편소설만을 고집했던 그는 단편작가의 전형으로 꼽힌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가 고향인 오영수는 어릴 적 집안형편이 어려웠다.언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면사무소·우체국 등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그림 솜씨를 살려 간판 그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오영수의 고향 언양은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산세를 등지고 있어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그가 유년기에 보고 자란 고향 주변 자연은 훗날 오영수 특유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향토색 짙은 서정적 작품의 바탕이 됐다. 일찍 고향을 뜬 탓에 언양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다는 오영수 생가는 여러 사람들이 거쳐가고 허물어져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오영수는 일본과 만주 등을 거쳐 1943년,교사인 부인을 따라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3년여 머무른 것이 인생 전환점이 됐다.그는 처가동네인 이곳에서 김동리의 백씨 김범부씨를 알게 됐다.이 인연으로 만난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49년 ‘신천지’에 ‘남이와 엿장수’를 발표,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西)로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삭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었다.’ 1953년 ‘문예’ 12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갯마을’은 오영수가 잠시 살았던 기장군 일광면 조용한 어촌마을 이천리가 배경이다.50여년이 흐른 지금,이천리는 소설속에 그려진 당시 어촌 모습과는 판이하게 변했다.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주변에 군데군데 고층 아파트도 보인다.먼바다로 며칠씩 고기잡이를 나가는 배는 더 이상 볼 수 없다.주민 강대영(58)씨는 “20년 전만 해도 이천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는 어민들이었기 때문에 소설에서처럼 태풍이 덮칠 때면 어부들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곤 했다.”고 말했다. 오영수의 본격적인 문학활동은 서울신문에서 비롯됐다.4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남이와 엿장수’가 입선된데 이어 다음해 ‘머루’가 당선,당당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5년 ‘현대문학’ 창간에 참여해 11년 동안 편집장을 지낸 뒤 77년 고향 근처인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에 허름한 촌가를 구해 낙향했다.서울생활에 회의가 든데다 2차례 받은 위궤양 수술로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고향은 먼 발치서 보는 게 더 아름답다.”며 고향에서 멀지않은 웅촌면 소재지에 자리를 잡아 스스로 숙식을 해결하며 창작활동과 취미인 낚시를 즐겼다. 그럼에도 고향에 대한 오영수의 애착은 남달랐던 것 같다.언양읍 주민 이상문(67) 씨는 “56년 오영수 선생에게 부탁해 울산자연과학고(옛 언양농고) 교가 노랫말을 받았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당시 언양농고 학예부장이던 이씨는 언양출신 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영수에게 교가 가사를 지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당시 학도호국단 한해 예산 500만환 전액을 고료로 보냈다.얼마 뒤 오영수는 “내 고장에 고등교육기관이 생겼다는 것만 해도 영광인데 졸작 고료를 받겠는가.졸작이지만 교가로 활용하고,고료는 돌려보내니 작곡비로 사용하라.”는 내용과 함께 가사를 적은 답신을 보냈던 것. 오영수의 만년 낙향생활은 여유롭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울산지역 출신 시인 최종두(65·경상일보 전 사장)씨는 “난계가 울산에 내려와 지내는 동안 생활이 쪼들렸던 것 같다.”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주며 팔아서 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울산에 머물며 제 7창작집 ‘잃어버린 도원’을 펴내는 등 작품활동에 열정을 보였던 그는 79년 1월 문학사상 1월호에 발표한 특질고(特質考)로 예기치 못한 필화사건을 겪게 된다. 여러 지방의 특질적인 성격을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관점에서 고찰한 특질고가 호남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그는 문인협회·펜클럽으로부터 제명당하고 절필선언까지 해야 했다.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돼 결국 그해 5월 15일 생을 마쳤다. 그가 만년에 머물렀던 웅촌 촌가도 지금은 헐리고 새 집이 들어서 있다.고향 언양읍 뒤편 송대리 화장산 기슭에 묻힌 오영수 무덤앞에는 울산문인협회가 ‘오영수 여기 영원히 잠들다.’라고 새겨 세운 비가 오영수의 묘임을 말해준다. 울산문인협회는 타계 10주년을 맞아 지난 89년 울산 남구 문화원 정원에 오영수 문학비를 세웠다.언양초등학교 동창회도 11회 졸업생 오영수가 우리나라 문학사에 남긴 큰 발자취를 기려 96년 학교안에 ‘오영수 문학비’를 큼직하게 세웠다. 갯마을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유명해진 기장군도 가만 있지 않았다.기장군문인협회가 나서 갯마을 현장인 이천리 마을 성황당 앞에 96년 ‘갯마을 문학비’를 세웠다. 글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100년 맛 이어받은 전성근 ‘이문설농탕’ 주인

    100년 맛 이어받은 전성근 ‘이문설농탕’ 주인

    ●설렁탕 서울을 대표하는 토속음식이다.조선시대 왕이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몸소 쟁기를 끄는 친경례(親耕禮)를 하면서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곰국을 대접하면서 비롯됐다고 한다.왕은 친경례에서 수고한 백성에게 석잔의 술과 음식을 내려줬다.이때 내린 것으로 술은 막걸리,음식은 설렁탕이었다.설렁탕은 현장에서 쟁기질 하던 소를 잡아 끓인 것이 아니다.소를 마구 잡는 법이 아닌데다 설렁탕은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오려면 하루는 족히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쇠고기는 성균관 인근에서 살면서 서울의 쇠고기를 독점 생산,판매하던 반촌(泮村)의 반인들이 댔다고 한다. ■“손기정·김두한·박헌영씨도 한때 단골” “맛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게 100년 장수의 비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종로타워 뒤쪽 이문설농탕 주인 전성근(田聖根·59)씨는 역사의 비결을 묻는 물음에 “오래 됐다고 손님들이 오는 게 아니라 맛이 똑같기 때문에 옵니다.”라고 말했다. 1907년 개업,한 자리에서 98년째 문을 열고있는 최고의 음식점 주인 말치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신선하다.하지만 그 말 속에는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 담겨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역사가 반만년이 넘는다곤 하지만 100년 가까운 식당은 참으로 드물다.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 치열했던 근세사를 건너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최근 외식산업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취업도 어렵고,정년도 짧아진 세태에서 쉽게 생각하고 창업하는 것이 ‘먹는 장사’다.한 집 건너 새로 문을 열고 그만큼 간판을 내리는 업종이 외식업이다. ●70대는 ‘어린’단골 이런 까닭으로 최고(最古)의 이문설농탕이 주목받는다. 이문설농탕은 전씨 집안이 전적으로 일으킨 가업은 아니다.전씨의 어머니 유원석(2002년 작고)씨가 1960년,양모씨로부터 이문설농탕을 인수해 지켜오다 아들인 전씨에게 물려줬다. 이문설농탕의 간판을 처음 단 사람은 홍모씨로 알려져 있고 그뒤 양씨가 인수해 운영해왔다.이들은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창업 연도도 여러 갈래다.당시 경복궁 주위의 경기·배재·중앙·휘문고보 등을 다녔던 노인들의 기억에 따르면 멀게는 1902년부터 짧게는 1907년까지 거슬러 간다.그래서 전씨는 가장 짧은 1907년을 개업 연도로 삼고 있다. 전씨는 “옛날에 이 부근에서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이 할아버지가 돼 손자들 손을 잡고 오시지요.3·4대째 단골이 많지요.저희 집에선 70대는 청춘이고 90대가 돼야 어른 대접을 받습니다.60∼70년 단골이 부지기숩니다.”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70년대 초 건국대 농대를 졸업한 전씨는 경기도 수원에서 부친과 함께 목장을 운영했다.목장이 사실은 할아버지(田熙哲)대부터 내려온 가업.할아버지는 목원대 전신인 감리교 대전신학원 초대교장을 지낸 목회자였다. 전씨가 식당일에 나선 것은 어머니를 돕기로 한 1981년부터.2∼3년 ‘잠시’ 돕겠다고 식당에 나왔다.“당시만해도 식당일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 선입견이 달갑잖았지요.”하지만 식당일을 계속하면서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이집은 보통 집이 아니야.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야.”하는 노인들의 격려에 힘을 얻은 전씨는 식당 운영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오늘의 이문설농탕이 있게 한 공로를 어머니께 돌렸다.그의 어머니 유씨는 1930년대에 이화여전 가사과를 나온 당시의 ‘신여성’이었다.동기로는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의 어머니 이원숙씨가 대표적이다.한국전쟁중이던 50년대 초 부산 광복동에서 유씨는 이씨와 동업으로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유씨는 이후 음식점 운영의 길을 걸었다. 이 집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단골들도 역사의 한 자락을 차지했다.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영웅 손기정,이시영부통령,국어학자 이희승박사,남로당 거물 박헌영,주먹천하의 김두한 등이 단골이었다.김두한은 10대때 한때 종업원으로 일했다고 전해온다. 80년대는 먹성좋은 운동선수 특히 유도 복싱 레슬링 등 격투기 선수들이 많이 찾았다.당시 유도대표 선수들은 YMCA 체육관에서 연습을 했고,유도선수들의 소개로 복싱 레슬링 선수까지 이어진 것이다.유도의 하형주,복싱의 김광선 문성길 등이 대표적이다. 단골이 많은 이 집의 한결같은 맛은 100년 전이나 똑같은 설렁탕을 끓여내는 방식에 있다.단지 장작이 연탄에서 액화석유가스(LPG)로,다시 액화천연가스(LNG)로 바뀌었고,무쇠솥이 압력솥으로 변한 것 뿐이다.건물도 일제시대 그대로다. ●퓨전을 이기는 전통의 맛 이 집의 설렁탕은 소의 거의 모든 부위를 넣고 15시간 푹 곤다.국물이 뽀얗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짙다.그래서 설농탕(雪濃湯)이라고 부른다. 농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국물에 분유나 프림 등을 섞는다는 소문이 나돌아 한때 많은 집들이 타격을 입었다.하지만 제대로 끓여내는 것으로 단골로부터 인정을 받아온 이문설농탕은 오히려 더 장사가 잘됐다. “음식을 엉터리로 만들면 손님이 먼저 알아차립니다.”그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유혹도 많지만 맛에 대한 고집으로 프랜차이즈나 분점도 내지 않고 있다. 상호는 1970년대에 이미 등록했다.“요즘 젊은 사람들이 ‘국적없는’ 퓨전 음식을 찾지만 이들도 나이가 들면 우리 고유의 음식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문설농탕은 일본 언론매체가 특집으로 다루면서 10여년 전부터 일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특히 아침 손님은 일본인이 더 많다.전씨는 이런 이유로 이문설농탕은 이제 자신 개인소유의 식당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역사의 명소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이 된 까닭이다.“저희 집은 값도 마음대로 못올립니다.단골 어르신들에게 먼저 의향을 여쭤봅니다.”설농탕 보통 한 그릇에 5000원.수십년째 가격에 못이 박혔다. 뽀얀 국물처럼 햇빛에 바래 역사가 쌓이고 있는 이문설농탕.“전통을 잇는 장인의 각오로 이 자리를 지켜나가겠습니다.”라는 전씨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삼성증권배 2004 프로야구] 기아, 兵風이 순풍?

    [삼성증권배 2004 프로야구] 기아, 兵風이 순풍?

    호랑이는 ‘병풍’을 타고 포효할 것인가. 9월은 국내 프로야구 ‘위기의 계절’.병역비리 사건은 정수근(롯데) 폭행 파문과 올림픽 여파로 움츠러든 프로야구에 ‘치명타’를 날린 셈이다.일부에서는 시즌 중단설까지 나도는 판국이다.구단들은 이미지 쇄신과 더불어 구멍난 전력 메우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기아에는 병풍이 오히려 ‘순풍’이 될 듯싶다.비리에 관련된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주전들이 대거 연루된 다른 팀들에 견줘 전력이 상대적으로 배가된 셈이다.기아가 치열한 4강 싸움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이유다. ●‘중위권 경쟁’서 단연 유리 지금까지 경찰의 입장은 혐의가 확정된 선수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한다는 것.경기 일정이나 선수의 ‘비중’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한국시리즈를 앞둔 팀에서 에이스가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기아의 현재 성적은 56승55패4무.SK와 함께 공동 4위다.또 6위 LG와는 겨우 1경기 차.이들 ‘3중’이 막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아에서 병역 비리에 연루된 선수는 투수와 내야수 1명씩 모두 2명.R모 투수는 방어율 상위권에 올라 있을 정도로 실속 있는 중간계투 요원이지만 10여명이 엮인 다른 구단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또 김진우와 이종범,홍세완,심재학 등 투타의 주전들도 슬럼프에서 벗어났다.가장 많은 18경기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도 유리하다. 반면 SK와 LG는 병풍의 늪이 깊기만 하다.‘부상 병동’으로 시즌을 시작한 SK는 주전급 투수 조진호가 이미 구속됐고,간판타자인 L모 선수가 지난 11일 불구속 입건됐다.한국야구위원회(KBO)가 병풍 연루 선수들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밝힌 만큼,잔여경기 출장 여부도 불투명하다.LG도 주전급 투수 L모 선수 등 1·2군 30여명이 병풍에 휩쓸리면서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포스트시즌 판도에도 영향줄 듯 현대,삼성,두산 등 3강도 병풍으로 만신창이가 됐다.기아가 4강행 막차를 탈 경우 우승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근거다. 가장 큰 피해를 본 팀은 삼성.J모 코치가 병역비리의 핵심 고리로 꼽히면서 이미지를 구길 대로 구겼다.특히 핵심 중간계투 요원인 오상민,정현욱,지승민 등 3명이 구속되고 Y모 투수가 입건되는 바람에 라인업 구성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H모,P모 등 주전급 야수들도 걸려들면서 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다.최근 5경기 동안 1승1무3패의 부진에 괜히 빠진 게 아니다. 두산도 힘들긴 마찬가지.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는 이재영과 주전 내야수 손시헌이 구속된 게 뼈아프다.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에이스급 선발 P모 투수와 마무리 K모 투수도 KBO 징계는 물론 관계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렇게 되면 포스트시즌에 등판하더라도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경기를 망칠 수도 있다.현대도 빼어난 수비 능력을 자랑하던 유격수 정성훈 등의 공백이 크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SBS 오후 11시5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 차승원,장서희,손태영,성지루,성동일이 말하는 ‘여자는 남자의 이런 행동이나 말에 결혼을 확신한다’라는 주제로 각자의 의견을 살펴본다.여자들이 남자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결혼을 확신하는지 성인 여자 5000명에게 물어 봤다. ●세계의 상인(YTN 오전 8시30분) 세계 최대 외자유치국으로 떠오른 중국.비약적인 중국의 발전에 화교 자본은 큰 역할을 했다.개방 초기부터 경제 특구에 투자한 화교 상인들은 현재도 중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중국 정부 역시 법령 개정 등을 통해 화교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0시10분) 우리와 비슷한 농업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농업선진국으로 우뚝 선 네덜란드 현지를 찾아가,네덜란드의 천적 이용 현황과 효과를 취재한다.네덜란드 최대이자 세계 최고의 천적회사인 코퍼트사를 방문,네덜란드의 천적 사용 역사,연구 현황,신기술,유통 시스템 등을 알아본다. ●뮤직 엔조이(iTV 오후 6시50분) 디바들의 무대.80년대와 90년대 팝계를 이끌어간 우먼파워.팝과 재즈의 고급스러운 선율의 바브라 스트라이잰드,팝계의 요정 올리비아 뉴튼존,섹시한 우먼파워 셰어,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의 머라이어 캐리.감미로운 팝의 여왕 셀린 디온.팝계의 디바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웅시대(MBC 오후 9시55분) 광복이 되어 예전 자동차수리공장을 되찾은 태산은 세기라는 간판을 내걸고 새롭게 시작한다.대호는 다시 무역업을 시작하지만,국수공장과 양조장은 난입한 폭도들로 인해 망가진다.소희,혜영 자매에게 치부책과 땅문서,통장,현금궤를 넘기고 있던 강 영감 집에 돈을 노리고 강도들이 들어온다. ●달래네 집(KBS2 오후 9시20분) 우연히 공중에서 떨어진 개밥그릇에 맞게 된 기현.이대로 넘길 수 없다며 증거물인 개밥그릇을 들고 범인 색출작업을 펼친다.개밥그릇과 관련된 사람을 중심으로 범인을 추적하던 기현은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동물병원 사람들의 계획된 범죄라고 생각한다. ●TV문화지대-음악속으로(KBS1 오후 11시35분) 세계적인 거장 그라프가 지난 5일 내한 공연을 가졌다.당대 최고의 플루티스트를 통해 플루트의 매력를 들여다본다.또한 플루티스트 백수현씨의 설명으로 트릴과 아르페지오,그리고 텅잉 등 플루트 악기의 연주기법과 그 특성을 알아본다.
  • 대학가 주변환경 확 뜯어고친다

    이화여대 입구와 경희대 주변 등 강북 대학가 주변지역의 교육 및 문화환경이 대폭 정비된다. 서울시는 전체 61개 대학 중 31개 대학(강북 27,강남 4개) 주변 지역에 대해 민·관 공동으로 환경정비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시는 이같은 계획에 따라 먼저 지난달 시정개발연구원에 ‘지구단위계획 방향 설정연구’ 용역을 발주했다.2단계로는 80억원을 투입,올해 말까지 16개소의 우선정비지역을 확정할 방침이다. 우선 정비지역으로 선정된 구역에 대해서는 지구단위계획을 수립,시와 자치구가 공동으로 환경정비 사업을 벌인다. 시는 마지막 단계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 지역에 대해 본격적인 환경개선사업에 나선다. 주요 사업은 공공부문의 경우 공공시설정비,전선 지중화,가로시설물 설치공사 등이며 민간부문은 건축물 외관 및 간판 정비 등이다. 2005년에는 48억 5000만원을 들여 이대 입구 및 경희대 주변을,2006년 5개소(100억 투입),2007년에는 3개소(60억원 투입),2008년 이후에는 160억원을 들여 8개소를 정비키로 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가리봉 조선족 골목

    [뒷골목 맛세상]가리봉 조선족 골목

    풍미(風味)라는 말이 있다.이 아름다운 말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함께 쓰인다.이희승 편 국어대사전에서는 ‘1.음식의 고상한 맛 2.사람의 됨됨이가 멋스럽고 아름다움’으로 풀어내고 있다. 가리봉 시장의 조선족 골목 일대를 기웃거리고 다니면서 혹은 골목 안에 있는 용성식당(龍成食堂)이나 연길양육관(延吉羊肉串),금단반점(今丹飯店),삼팔교자관(三八餃子館)의 식탁에 앉아서,풍미라는 말을 몇 번이고 입안에서 되뇌였다.나에게는 고국 아닌 고국에 돌아와 가리봉동 시장의 한 귀퉁이에 자신들만의 골목을 이루고,하루가 끝나는 저녁이면 이 골목에 돌아와 자신들 특유의 음식을 찾는 조선족들이 음식과 사람을 포함하여 두루 풍미로웠다. ●고국서 절망적으로 무너져버린 자존심 조선족이 누구인가.조선 후기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이르기까지 봉건지배와 식민지배의 수탈에 못 견딘 나머지 남부여대로 한반도를 떠나 유랑의 길에 올라야 했던 바로 우리의 핏줄이 아니던가.그렇게 러시아로 흘러든 우리 핏줄은 고려인이 되고,만주벌판을 헤매던 우리 핏줄은 조선족이 되지 않았으랴. 조선족은 엄연히 국가와 민족을 구별한다.그리고 자신들이 조선족임을 단 한번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은 없다.비록 중국이라는 거대한 다민족 국가에 소수민족으로 편입되었지만,자신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굳게 지키며 살아왔다.그런 조선족으로서의 자존심이 다른 곳도 아닌 고국에서 절망적으로 무너져버린 셈이다. 고국 아닌 고국에 돌아온 조선족들은 이미 20만명이 넘는다.그리고 그들 태반이 불법체류자로 몰려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되어 있다.불과 얼마 전만 해도 고려인과 조선족은 해외동포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고국방문이 어렵게 돼 결국 고국에 오기 위해서는 3개월의 관광비자를 받는 데만 1000만원이 넘는 불법적인 돈을 내는 것은 물론 끝내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중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데 필요한 공식적인 비용은 10여만원에 불과하지만,조선족이 ‘코리안드림’이라는 꿈을 좇아 고국에 오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조선족에게 1000만원이란 중국에 있는 가산을 팔거나 아니면 고국에서의 미래를 담보로 해 고율의 이자가 붙은 빚을 내야 가능한 돈인 것이다.도대체 무슨 수로 3개월 만에 그런 돈을 벌고 게다가 ‘코리안드림’이라는 필생의 꿈까지 이룬단 말인가. ●코리안 드림 좇다 태반이 불법체류 조선족이 가리봉 시장에 그들만의 골목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바로 옆에 있는 ‘구로동 벌집’ 때문이다.1960,70년대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값싼 노동력 위주의 구로공단 전성기에,이 땅의 곳곳에서 몰려든 어린 노동자들을 노려 한 평 남짓하게 마구잡이로 지었던 많은 방들이 바로 ‘구로동 벌집’이었다.그리고 우리 경제에서 값싼 노동력 위주의 구로동 시대가 끝나고 벌집들마저 버려지게 되자,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조선족들이 벌집을 채운 것이었다. 만일 그대가 이 글을 읽고 한번쯤 호기심을 일으켜 가리봉 시장 조선족 골목을 갈 예정이라면,나는 그대에게 이제 막 저녁 어스름이 지는 시간을 권하고 싶다.저녁노을을 등지고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 옆에 서 있으면,그대는 퇴근시간이 되기 무섭게 출구를 빠져나오는 많은 인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그 인파의 대부분이 조선족이라 해도 틀림없다.그대는 망설이지 말고 그 인파의 뒤를 따라가라. 조선족은 얼핏 보기에 그대와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옷차림이어서 전혀 그대와 분간이 안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그들 표정을 조금만 자세히 살핀다면 그대는 쉽게 조선족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약간 주눅이 든 듯 분명치 않은 표정에,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안으로 갈무리한 눈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긴장 속에 얼핏얼핏 순수함이 내비치는 얼굴. 그런 얼굴들을 쫓아 몇 걸음 걷지 않으면 그대는 붉고 혹은 노란 한자 위주의 이국적 간판들을 만나게 된다.그렇게 가리봉 시장 초입 삼거리에 다다르면 그대는 삼삼오오 몰려든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를 껴안는 풍경을 만나게 될 터이다. 언제 주눅이 들어 안으로만 감정을 갈무리했냐 싶게 드러내놓고 기뻐하며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애오라지 들뜬 표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대는 문득 하나의 단어가 뇌리에 스쳐 지날지도 모른다. ●주눅 든 듯한 표정에 얼핏얼핏 순수함 해방구.그렇다.조선족이란 우리 핏줄에게 가리봉 시장 골목은 단순한 골목이 아니라 일종의 해방구다.얼핏 3개월의 체류기간을 넘기고 당연히 불법체류라는 범죄자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동안에,처음 겪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틀의 맨 밑바닥에서 흡사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들에게,이곳이야말로 이질적인 옷 따위는 훌쩍 벗어던지고 참다운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해방구나 다름없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좀더 용기를 내어 그들을 따라 골목에 즐비한 음식점들의 한 곳에까지 따라 들어간다면 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맛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만드는 어떤 풍미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나는 그대가 많은 조선족 음식점들 중에서도 ‘양러우촨’(羊肉串)이라는 일종의 양꼬치구이 식당으로 따라가는 행운이 있기를 빈다. 연길양육관(02-838-0014)은 이름 그대로 양러우촨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조선족들은 양뀀 혹은 양고기뀀이라고 하는데,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좁은 식당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탄에 양뀀을 구우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이들을 보면 흡사 무슨 종교적 의식이라도 대하듯 숙연하기까지 하다.그만큼 양뀀이야말로 조선족 음식의 어떤 정체성을 대표한다. 양뀀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지독한 노린내를 거의 맡을 수 없다.그것은 무엇보다도 양뀀에 곁들여 나오는 고춧가루와 참깨,즈란이라고 부르는 향신료 때문이다.게다가 양뀀에 껍질을 까지 않은 통마늘을 함께 구워 고기와 함께 먹다 보면 노린내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춧가루와 참깨 그리고 마늘이야말로 우리 핏줄인 조선족의 정체성이 아니랴. 혹시 중국이나 아니면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길거리나 식당에서 양러우촨을 대하고 불쑥 일어난 호기심에서 한번쯤 맛을 본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 자칫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지독한 노린내를 참지 못하여 그만 헛구역질마저 일으킨 경험도 없지 않을 터이다.그 지독한 노린내를 조선족은 다름 아닌 고춧가루와 참깨,마늘로 해결하고 거뜬히 조선족 특유의 음식으로 만든 것이리라. ●정체성 잃지 않고 고유의 맛 유지 연길양육관에 비해 용성식당(02-3281-6403)은 조선족 골목 안에서는 가장 많은 일품요리를 내는 식당이다.일품요리라고 해서 가격 따위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어떤 요리건 대부분이 1만원 안팎이기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조선족이 즐겨 찾는 것은 우리의 탕수육 비슷한 ‘궈바우러우’와 닭고기 요리인 ‘라지지딩’,돼지고기를 가늘게 채썰어 볶아내어 종이장처럼 엷은 건두부에 싸먹는 ‘징장러우스’,그리고 도미를 통째로 굽고 튀겨서 만든 ‘뤄붸’라는 훌륭한 요리가 있다. 그러나 조선족 골목에 있는 식당 메뉴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은 ‘고러우훠궈’(狗肉火鍋)라는 일종의 개고기 샤부샤부이다.원래 옌볜에서는 개탕을 즐겨먹는데 거우러훠궈는 이 개탕을 또다시 우리의 샤부샤부 문화에 변형시킨 격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족들은 가는 곳마다 그 곳의 음식에 맛을 들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름대로 풍미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면 그대는 과감히 고러우훠궈까지 주문하기 바란다. 맛의 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애오라지 무리하게 맛만을 좇다 보면 맛 자체는 물론 사람마저도 황폐해지고 말지도 모른다.만일 맛의 끝에서 음식의 맛만이 아닌 사람의 맛까지 함께 거둘 수 있다면,그런 맛이야 말로 풍미에 다름없을 터이다. 누군가의 짧은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눈물에 젖은 빵이다.’누군가는 바로 음식의 맛에서 사람의 맛까지 함께 풍미를 맛본 이가 틀림없으리라.그렇게 맛의 끝까지 가본 이가 틀림없으리라.그런 이라면 어떤 거친 음식인들 맛없는 음식이 있을 수 있으랴. ■집들이등 경사때 즐기는 손님 접대용 ●옌볜의 개탕 우리의 보신탕과는 다르게 옌볜의 개탕은 마늘이며 생강 파 같은 양념류나 야채 따위를 일절 넣지 않고 고기만을 맑게 끓여낸 뒤 개즙이라는 양념장에 찍어먹는다. 개즙은 개고기의 내장 따위를 갈아서 거기에 고수라는 향신채를 곁들여 조선족 특유의 양념장을 만들어낸 것이다.이를테면 고기의 맑고 순수한 맛을 지켜내면서 중국에 와서 익힌 향신료 문화를 가미하여 개탕을 즐기는 셈이다. 개탕의 맛은 바로 개즙에서 나오는 것인데,이 개즙의 맛은 집집마다 서로 달라서 개즙의 맛을 비교하여 어느 집 개탕 솜씨가 더 뛰어난가를 가름하는 식이다. 대부분 옌볜의 조선족들은 새로 집을 사서 집들이를 하거나 아니면 특히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개 한 마리를 잡아 개탕을 마련하여 손님을 접대한다. 그리고 남녀노소 없이 가까운 이웃이며 친척들이 모여 누구나 기꺼이 개탕을 즐긴다.그렇듯이 개탕을 못 먹으면 자랑스러운 조선족이 아닌 셈이다.
  • [하프타임] 궉채이 세계롤러스피드 2관왕

    한국 여자 인라인스케이트의 간판 궉채이(경기 동안고)가 9일 이탈리아 슬모나에서 벌어진 세계롤러스피드선수권대회 5일째 주니어 여자 로드 5000m 포인트경기에서 우승후보 카롤리나 우페이(콜롬비아)를 제치고 우승했다.앞서 여자 트랙 1만m 포인트 겸 제외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딴 궉채이는 이로써 2관왕에 올랐고,10일 열리는 로드 2만m 제외경기에 출전,3관왕에 도전한다.이초롱(동안고)도 우페이에 이어 3위로 골인,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 [열린세상] 먼저 가마를 구워야 한다/강형기 충북대 교수 ·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올랐으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개최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월드컵은 엄청난 실패였다.경기를 앞두고 개최 도시의 관광업계는 많은 손님이 지역에서 숙박할 것을 기대했다.그러나 월드컵이라는 세계인의 축제에도 우리의 지방도시에는 숙박을 하면서 지역을 관광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관광이란 ‘관국지광(觀國之光)’,즉 나라(지방)의 빛(光)을 보는 것이다.여기에서 빛이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를 의미한다.고유한 문화가 없는 관광이란 성립할 수 없다는 말이다.마찬가지로 고유한 문화가 없는 곳에서 축제만 따로 성공할 수 없다.월드컵축구대회라는 세기의 축제가 열려도 우리의 개최 도시에 외국인들이 숙박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는 서울만 보면 한국을 다 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사정이 이러한데도 거의 모든 지방은 입만 열면 관광도시요,문화도시다. 축제란 그 지역의 차별화된 공간과 차별화된 시간에 참여자들을 동화시키려는 제전이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세기의 축제,월드컵에는 지방마다 개성 있는 건물,아름다운 경관,다양한 음식,만나고 싶은 사람 등의 차별화된 공간을 준비하지 못했다.보고 느끼고 싶은 차별화된 시간(경기장면)은 TV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배달될 수 있다.따라서 외국인들이 지역에 오고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시간을 담는 차별화된 공간을 준비해야 한다.그러나 우리에게는 차별화된 그릇이 없다. 세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의 공통점은 그 도시 자체가 하나의 문화상품이라는 점이다.우리가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나라를 만들려면 차별화된 공간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과거 공업사회와는 달리 오늘날 지식사회에서 지역발전의 열쇠는 얼마만큼 유능한 인재를 결집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아름다운 환경과 문화가 있는 도시에 인재가 모이고 산업도 싹트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들은 어떠한가.누더기 같은 간판,메뉴판이 되어 버린 식당의 유리창,어느 도시에서나 같은 이름의 아파트 단지,주택과 술집들이 뒤섞여 있는 마을에서 주민의 삶은 지역공동체와 절연돼 있다.최근 이러한 도시에 또 하나의 간판이 덧칠되고 있다.문화도시라는 간판이 그것이다.도무지 그 지역 ‘답다’는 맛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거리에서 문화도시를 자랑하는 지자체 지도자들의 모습은 절망감을 안겨준다. 도시의 모습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정치를 집약하는 것이다.도시의 거주자들은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정치를 선택해온 그들의 정치의식과 함께 문화의식 내지는 문화수준을 도시라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살아간다.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경관이나 관례를 통해 상식을 몸에 익히고 배우며 실천하게 된다.아름답고 질서 있는 마을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마을의 경관을 보존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시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가 최고의 교육장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민의 ‘자치’라는 역사적 경험이 없었고,집안의 정원이라는 사적 공간을 중시하며 살아 왔다.이러한 생활양식은 경제 우선의 지배원칙과 결합하면서 ‘나뿐인 시민들’이 ‘나뿐인 건물’ ‘나뿐인 간판’을 만들어 ‘나쁜 건물’ ‘나쁜 간판’을 즐비하게 했고 결국 모두가 ‘나쁜 도시’의 ‘나쁜 시민’이 되고 있다.이처럼 ‘공적 영역의 의식’인 경관이 파괴된 우리의 도시는 월드컵대회에서 참담하게 증명된 것처럼 경쟁력이 없다. 그러나 마냥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도자기가 가마에서 구워지듯이 개인의 생활은 도시에서 영위된다.도자기를 구우려면 가마를 구워야 한다. 그러나 가마는 망가뜨리면서 내 도자기만 굽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가마를 구워야 도자기를 굽는다.’는 기본 상식을 온 국민들이 공유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그래야 가정도 기업도 도시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 ·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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