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간판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잠수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과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개막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 혈압
    2026-08-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772
  • 월드컵사격 진종오 10m 금메달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30·KT)가 뮌헨월드컵 1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진종오는 19일(한국시간) 독일 뮌헨에서 계속된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사격대회 남자 10m 공기권총에 출전, 결선합계 689.4점을 쏴 1위를 차지했다고 대한사격연맹이 20일 밝혔다.
  • 입주 1년 맞는 국내 첫 뉴타운 ‘은평 뉴타운’ 가보니…

    입주 1년 맞는 국내 첫 뉴타운 ‘은평 뉴타운’ 가보니…

    국내 첫 뉴타운으로 도시재개발의 새 모델을 제시한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1지구)이 다음달 1일로 입주 1주년을 맞는다. 재개발 인·허가권을 지닌 공무원과 사업주체인 주택조합의 비리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은평뉴타운은 북한산 자락의 수려한 조망과 국내 최고 수준의 친환경 주거환경 덕분에 관심을 끌었다. ●담·도로턱·전신주 등 없는 세련된 5無도시 진관근린공원 북쪽에 자리잡은 1지구 상림마을(6·7·8단지 4514가구)에 들어서니 편도 1차선의 도로를 중심으로 저층 건물들이 좌우로 아담하게 펼쳐져 있다. 단지 안에서 노면전차(트램)만 다니지 않을 뿐이지 영락없이 유럽의 세련된 도시에 온 느낌이다. 담, 도로턱, 옹벽, 간판, 전신주가 없어 ‘5무(無)도시’로 불리는 명성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닌 듯하다. 아파트 단지를 ‘口’ 모양으로 배치해 건물 자체가 차음벽 역할을 하도록 설계한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자전거도로 또한 잘 갖춰져 있어 단지 어디서나 ‘자전거 탄 풍경’을 접할 수 있었다. 산책길에서 만난 롯데캐슬 입주민 김모(45)씨는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풍광과 맑은 공기야말로 최고의 자랑거리”라며 뉴타운의 주거환경에 흡족해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아파트보다 2배 이상 나온다는 관리비에 대해서는 만나는 주민마다 불만을 털어놨다. 강남에 살다 지난해 말 이사왔다는 푸르지오 입주민 김모(57·여)씨는 “같은 평수인데도 예전에는 월 15만원 정도면 충분했는데, 여기서는 무려 35만원이나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 135㎡ 면적의 한 아파트에서는 지난 1월 관리비가 70만원까지 나왔다. 임대아파트 주민 중 일부는 ‘관리비 폭탄’을 감당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하기도 했단다. 또 특정 브랜드의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며 부실시공 의혹을 제기하는 주민들도 만났다. 서울시도 이런 불만은 잘 알고 있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뉴타운이 주변 지역보다 2~3도가량 온도가 낮은 데다, 단지별 가구 수가 적다 보니 관리비가 어느 정도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주민 동의를 거쳐 관리사무소를 통합하는 식으로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시공 의혹·못자리골 관리 미흡 문제도 뉴타운을 관통하는 못자리골 실개천은 입주 당시만 해도 ‘작은 청계천’으로까지 불리며 이곳의 자랑거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곳 바닥에는 바짝 마른 돌멩이만 가득한 흉물로 전락했다. 롯데캐슬 입주민 정모(53)씨는 “서울시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을 실개천인 것처럼 속여서 분양했다.”며 즉각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해결 기미가 엿보이고는 있지만 대중교통 부족 문제 역시 시와 자치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아이파크 입주민 정모(37)씨는 “국내에서 가장 잘 만든 재개발 단지라는 이곳에서도 ‘일단 집부터 지어놓고 보자.’는 식의 편의주의 발상이 담겨 있다.”면서 “다른 뉴타운에서는 입주에 앞서 기반시설을 우선적으로 갖추게 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사진 류지영 백민경기자 superryu@seoul.co.kr
  • [데스크 시각] 양준혁선수가 던진 화두/손원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양준혁선수가 던진 화두/손원천 체육부 차장

    프로야구 삼성의 간판스타 양준혁(40) 선수가 지난 9일 개인 통산 최다인 341번째 홈런을 쏘아올리며 ‘만년 2인자’의 설움을 훌훌 털어 낸 것이 화제가 됐다. 17년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시즌도 홈런왕 타이틀을 가져 보지 못한 선수가 일궈 낸 홈런 기록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새삼 양준혁 선수에 관한 얘기를 끄집어내는 까닭은 그의 기록 행간에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덕목이 숨어 있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록의 근간은 ‘성실함의 재발견’이란 것이다. 소걸음보다는 잰걸음의 가치가 더 숭배되는 세상에 그가 던진 화두다. 양준혁 선수가 2인자의 설움을 안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통산 기록부터 들춰봐야 한다. 그는 개인 통산 최다홈런(343개)을 비롯, 최다안타(2223개)·최다 2루타(444개)·최다 루타(3746루타)·최다 타점(1329타점)·최다 볼넷(1301개)·최다 타수(7005타수)·최다 득점(1252점) 등 통산 타격 8개 부문에서 모두 1위다. 그가 경기에 출장할 때마다 자신의 기록은 물론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뜻이다. 통산 타율은 무려 .317. 기업의 경우에 대입해 보면 그의 기록에 담긴 의미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7년 동안 꾸준하게 양질의 상품(통산 3할대 타율)을 출시해 시장의 인기를 유지하면서도 통산 2223개의 제품(안타), 특히 15년 연속 두 자릿수 이상의 ‘대박상품’(홈런)을 생산한 기업과 비슷하다고 보면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알토란 같은 수익을 내는 우량 기업인 셈이다. 그런데 양준혁이 홈런왕뿐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선수’, 즉 MVP(Most Valuable Player)상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기록으로만 보자면 MVP를 서너 번은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수상은커녕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적조차 없다. 시계추를 잠시 뒤로 돌려 보자. 1993년 신인이던 양준혁은 타율 1위와 홈런·타점 2위 등 발군의 성적을 수확했으나 MVP는 홈런·타점 1위를 차지한 팀 선배 김성래에게 돌아갔다. 1996년 그는 타율·최다안타·최다2루타·장타율 1위와 홈런·타점·득점·출루율 2위란 성적표를 들고 다시 한 번 MVP를 노크했지만 역시 다승왕인 한화 구대성 선수의 몫이 됐다. 1997년 이후에는 3년 후배 이승엽에게 번번이 가로막혔다. 막강 홈런포로 무장하고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이승엽은 무려 5번이나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며 양준혁에게 쓴잔을 안겼다. 여기서부터 2인자의 그늘이 양준혁에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한 이후로도 양준혁의 ‘MVP 잔혹사’는 계속됐지만 이승엽이라는 ‘천재’ 때문에 2인자 인상이 굳어졌다는 것이 야구계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양준혁은 어느 한 해 반짝 활약으로 1위 기록을 차지한 적이 없다. 앞에서도 보았듯 그와 관련된 기록은 ‘연속’ 혹은 ‘횟수로서의 최다’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기록으로 세상에 되묻는다. 누가 가장 ‘가치 있는’ 야구 선수냐고.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성실함을 이기는 비범함은 없다. 뒤집으면 평범한 타자가 비범한 천재를 넘어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는 성실함이란 뜻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 그러나 너무 흔해 간과하기 쉬운 진리를 양준혁은 실천으로 증명해 보였다. 언젠가는 양준혁의 기록도 깨질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다만 그 결실이 천재에 의해 달성되기보다는 다소 느리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의 손에서 거둬지길 바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기대다. 양준혁도 아마 똑같은 것을 원하고 있지 않을까. 손원천 체육부 차장 angler@seoul.co.kr
  • 목소리 높이는 정동영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거침없는 목소리를 냈다. 정 전 장관은 18일 오전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민주당이 마음을 비우고 바닥부터 성찰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며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촉구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년간 정세균 대표 체제의 민주당을 두고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면서 “당 간판이 민주당이지만 들여다보면 당의 민주성, 투명성, 개방성이 한참 전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당 지도부가 복당을 반대하는 것에는 “제가 당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렇게 배제하고 배척하기까지 그런 것이 현실로 나타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바위가 나타나면 잠시 멈춰 가듯이 순리와 상식에 따라 복당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범정동영계 출신인 이강래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복당에 우호적인 환경이 마련된 만큼 정 전 장관은 굳이 조바심을 내지 않고 숨을 고르면서 정 대표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은 이날 광주 민주화운동 29돌을 맞아 홈페이지에 ‘대한민국에 광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올렸다. 그는 성명에서 “평화민주개혁세력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새로운 진보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삶의 질 향상과 분단 해소가 새로운 진보의 핵심 내용”이라면서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광주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맞수] (5) 한나라 조해진 - 이정현

    [맞수] (5) 한나라 조해진 - 이정현

    여의도의 숱한 입(口) 가운데 2개의 특별한 입, 한나라당 조해진·이정현 의원의 입이다. 각각 ‘특별한 소리’를 전달하는 통로여서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부 핵심의 ‘은밀한 소리’는 조 의원을 거쳐 증폭된다. 지독히도 ‘짧은 말’, 박근혜 전 대표의 ‘원음’은 이 의원을 통해 그 의미가 구체화된다. 이들은 앞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각각 이명박-박근혜 캠프를 대변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움직이는 어록(語錄)집이다. 지난 수년간 박 전 대표의 말을, 날짜와 주변 상황에 맞춰 줄줄이 풀어낼 정도다. 2004년 3월 박 대표의 시작부터 2008년 8월 당내 경선까지를 정리, 어록집을 발간한 덕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는 ‘말’을 알기에 ‘생각’을 논할 수 있다. 많게는 하루 300~400통씩 기자들의 전화를 받게되는 이유다. 그래서 늘 3개 이상의 휴대전화 배터리를 지니고 다니는 습관도 생겼다. 그는 17일 “박 전 대표의 생각을 거침없이 전할 수 있는 자신감은, 박 전 대표의 변함없는 원칙 때문”이라고 겸손해 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기자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최근 당 쇄신특위에 참여, 박 전 대표의 뜻을 간접 전달하고 있다. 이 의원은 호남 출신으로 한나라당에서 26년을 ‘버텨’냈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간판으로 유일하게 호남권(광주)에서 출마한 것을 계기로 박 전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수석 부대변인직을 맡으면서 박 전 대표의 해설자가 됐다. 조 의원은 ‘권력 핵심’의 뜻을 ‘정치 부호’로 변환해 전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당내 주요 계파마다 대외 창구로서 저마다의 입을 갖고 있지만, ‘여권 주류’ 전체를 아우르는 통로로는 조 의원이 주로 활용된다. 이명박(MB) 대통령이 당내 분위기나 시중 여론이 알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주요 인사의 하나이기도 하다. 양방향 통로인 셈이다. 이 힘의 원천은 ‘공보맨’ 생활 17년이라는 그의 이력이다. 1992년 박찬종 전 의원의 보좌역으로 정치권에 발을 내디딘 뒤 공보 업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MB의 공보맨으로는 4년. 시간은 짧지만, 서울시장 재임시절을 함께 해 그 비중이 가볍지 않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무보좌관으로 지내면서도 ‘MB의 입은 조해진’으로 간주됐다. 이 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요즘도 그의 ‘말’은 신문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겸손한 그의 성품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정치’에 대한 바람 때문일 수도 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당내에서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희룡 의원과 나경원 의원이 동기다. 스스로도 “참모 역할을 오래 해 2002년 대선 이후 내 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MB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잠시 접었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을수록, 무게감이 실리게 될 그의 입이다. 주현진 김지훈기자 jhj@seoul.co.kr
  • 日 민주당 새대표에 하토야마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62) 새 대표가 17일 “중의원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지상명제”라고 밝혔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NHK의 ‘일요토론’에 출연, “오는 8월쯤 중의원 해산 및 선거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생활자 중심으로 정치를 새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 정권교체를 실현시키겠다는 포부다. 하토야마 대표는 16일 치러진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124표를 획득, 오카다 가쓰야(55) 부대표를 25표 차로 눌렀다. 불법 정치자금 의혹설에 전격 사임한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 체제의 조직력 덕택이다. 당 집행부의 힘이 안정감을 내세운 하토야마 대표 쪽으로 쏠렸다. 하토야마 대표는 중의원 선거를 겨냥, 공약으로 내건 ‘거당(擧黨)체제’를 구축했다. 당의 쇄신과 함께 결속을 위해서다. 대표선거의 여세를 몰아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때문에 선거에서 경합했던 오카다 부대표를 간사장에,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오자와 전 대표를 선거담당 대표대행에 임명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를 갖췄다. 하토야마 대표를 중심으로 한 오카다 간사장과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고시이시 아즈마 등 3명의 대표대행 체제다. 특히 하토야마 대표는 오자와 전 대표의 ‘꼭두각시’라는 당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내가 대표다.”라며 ‘하토야마의 컬러’에 따른 집행부임을 역설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당의 얼굴이자 선거의 간판인 만큼 아소 총리와의 한판 승부를 피할 수 없다. 교도통신의 여론조사 결과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하토야마 대표는 43.6%를 얻은 반면 아소 다로 총리는 30%에 그쳤다.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더욱이 공교롭게도 둘 다 전형적인 ‘세습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하토야마 대표의 할아버지는 자민당을 만든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다. 아소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일본 현대정치의 틀을 다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다. 할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정권을 건 ‘총리 손자 대결’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당의 노선이나 정책에 크게 손을 대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오자와 전 대표 때처럼 안전보장에서는 미국보다는 유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hkpark@seoul.co.kr
  • e스포츠 신구 4대 천왕 박정석-이영호 맞대결

    e스포츠 신구 4대 천왕 박정석-이영호 맞대결

    돌아온 영웅과 현존 최강 병기가 맞대결을 펼친다. 박정석 선수(공군)와 이영호 선수(KTF)가 오는 17일 펼쳐지는 곰TV 클래식 32강전에서 맞붙게 됐다.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공군 에이스의 유일한 32강 진출자 박정석 선수는 16강 문턱에서 힘든 상대를 만났다.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선수와 함께 4대 천왕으로 불렸던 박정석 선수지만 이에 맞서는 이영호 선수도 신 4대 천왕 ‘택뱅리쌍’을 이끄는 최연소 로열로더(스타리그 첫 출전 우승자)로 만만치 않은 기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CJ 엔투스의 간판 테란 대열에 합류한 조병세 선수는 웅진 스타즈 박정훈 선수를 상대로 16강 진출을 노린다. 같은 팀 변형태 선수는 KTF 매직엔스 김대엽 선수와 맞붙는다. 최근 온게임넷 스파키즈에서 KTF 매직엔스로 이적한 안상원 선수는 웅진 스타즈의 신예 김종현 선수와 맞대결을 펼친다. 이적 후에 첫 승을 기록하고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안상원 선수는 이번 대회에 거는 각오가 남다르다. 사진 = 박정석, 이영호 선수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포츠 라운지] 女쇼트트랙 새 간판 조해리

    [스포츠 라운지] 女쇼트트랙 새 간판 조해리

    5월의 태릉선수촌은 부산하다. 미래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쏟아내는 ‘단내’로 하루종일 흥건하기 일쑤다. 지난 10일 선수촌에 발을 디딘, 몸집 가느다란 조해리(23·고양시청)의 땀은 누구보다 진하다. 이번이 세 번째 입촌. 그러나 한 번도 올림픽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 뒤편 불암산 등반 코스에서 혹독한 체력훈련을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이유다. 지난달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끝낸 조해리의 겨울올림픽 진출을 놓고 “2전3기”라고 남들은 말하지만 그에게는 이제 비로소 시작됐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신도 “그건 내년 2월 밴쿠버 금메달로 향하는 첫 발걸음이었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TV로 본 쇼트트랙에 매료된 초등생 초등학교 1년 때인 1992년 2월의 어느 늦은 밤. 조해리는 당시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열리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전 TV 중계에 시선이 꽂혔다. 김기훈과 모지수, 이준호, 송재근 등이 차례로 코너를 돌고 있었다. “자빠질 듯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며 얼음판을 내달리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불과 0.04초 차로 캐나다 선수들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따낸 순간 6살 꼬맹이는 자신의 쇼트트랙 꿈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평생의 스승’ 모지수(38) 코치와의 인연도, 비록 브라운관에서였지만 사실 그때부터였다. 이듬해 본격적으로 얼음을 타기 시작한 조해리는 세화여고 동창인 고기현, 동갑내기 이호석 등과 순탄한 주니어시절을 보냈다. 다만 이들보다 한 발짝 걸음이 늦었다는 게 살짝 아쉬웠을 뿐. “2002년 기현이가 솔트레이크올림픽 금을 따냈을 때 저는 그해 주니어세계선수권 출전이 첫 국제경기였어요. 많이 늦었죠?” ● “너무 안 풀려 한때 자살사이트도 기웃” 사실 그녀는 견디기 힘든 대표팀 탈락의 아픔을 두 차례나 겪었다. 2002년 주니어선수로 올림픽무대를 노크한 조해리는 입촌을 앞두고 국제빙상연맹(ISU)의 나이 제한에 걸려 그만 꿈을 접어야 했다. 동갑 고기현이 5월생이었던 데 견줘 조해리는 7월생. 2개월 차이에 눈물을 뿌려야 했던 셈. 2003~04시즌 세계선수권과 겨울유니버시아드 금메달로 올림픽의 꿈을 다시 부풀리던 조해리는 토리노대회 최종 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이번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쇼트트랙이란 종목이 부상이 심해요. 저도 그 당시 부러지고 찢어지고 어깨 빠지고, 허리디스크까지···. 심지어는 스케이트화를 세게 졸라 매다 발등을 다쳐 수술까지 했었어요.” “하나 뿐인 외손녀인데 그만 시켜라.”라는 외할머니 으름장에 온 식구가 난감해할 때도 있었어요.” 부상으로 헤매기를 3년 반. “도대체 왜 나만 안 될까라는 자괴감에 한때 자살사이트를 기웃거린 적도 있었으니 할 말 다했죠.” ●공공의 적, 왕멍을 잡아라 지금 태릉에서 밴쿠버를 준비하는 6명의 여자대표팀에 최대 명제는 ‘왕멍 타도’다. 세계 정상을 위해선 필수라는 것. 특히 그에 대한 조해리의 기억은 특별하다. “2002년 춘천 세계선수권에서 왕멍을 처음 봤어요. 저랑 똑같이 첫 국제무대 출전이었거든요.”라는 조해리는 “근데 엄청나게 얼음을 못 타더라고요.” “왕멍을 잡아야 밴쿠버 메달이 보여요. 지금은 그저 얄밉게 바라보는 게 전부지만 왕멍의 기량뿐 아니라 코스를 자유자재로 운영하는 경기 능력은 우리가 배울 만해요. 밴쿠버로 가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방법밖에 없잖아요. 물론 그건 왕멍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조해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10개월이다. 글ㆍ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조해리는 누구 ■출생 1986년 7월29일 서울생 ■학력 신용산초-목일중-세화여고-고려대(체육교육학과)-고양시청 ■체격 167㎝, 몸무게는 비밀 ■가족 조상구, 유인자씨의 외동딸 ■초등학교 1년 쇼트트랙 입문 ■성적 -월드컵 3·4차대회 3000m계주 금메달(2002년) -아오모리겨울아시안게임 3000m계주 금,1500m 은,1000m 동메달(이상 200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 3000m계주 금메달(2004년) -겨울유니버시아드(토리노) 1000·1500m 은메달 -아시아선수권(타이베이) 1000·3000·3000m계주 3관왕(이상 2007년) -아시아트로피(타이베이) 500·1500·3000m계주 3관왕(2008년)
  • 영진위, 칸서 韓영화 홍보 총력…대표단 파견

    영진위, 칸서 韓영화 홍보 총력…대표단 파견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강한섭, 이하 영진위)가 오는 24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 대표단을 파견해 홍보에 총력을 기울인다.14일 영진위 관계자는 “강한섭 위원장 등 6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칸영화제에 참석해 한국영화의 해외 홍보와 국제 영화계 인사들과의 교류 등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여러 활동을 펼친다.”며 “이를 위해 칸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영화종합홍보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홍보관에서는 한국영화에 대한 각종 영상물, 인쇄 홍보물,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배포, 상담하며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산업에 관한 토털 정보를 제공한다. 홍보관에는 한국영화 세일즈 부스가 들어서고 국내외 영화인들의 미팅과 언론 인터뷰 장소로도 활용된다. 칸영화제 기간인 18일 오후 9시 30분부터 자정까지(현지시간) C-Beach(영화제 행사장 주변 해안가 레스토랑)에서는 ‘한국영화의 밤’ 리셉션이 열린다. 부산영화제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국내외 영화 인사 400여 명이 참석해 활발한 교류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영진위는 18일 오후 3시부터 5시(현지시간)까지 일본 부스에서 열리는 AFIN(Asian Film Industry Network) 총회에 참석한다. 이번 총회에 참가하는 아시아 영화진흥 기관은 영화진흥위원회(한국), Unijapan(일본), Vietnam Media(베트남), The Federation of National Film Association of Thailand(태국), Singapore Film Commission (싱가포르) 등이다. 총회에서 다뤄질 논제는 각 나라별 영화산업 통계의 공유, 2009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데스크’ 공동 운영 등 협력 증진에 관한 사항이다. 이밖에도 영진위는 스크린 인터내셔널(Screen International),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 등과 같은 국제 매체에 한국영화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고 칸 영화 마켓 입구 거리에 입간판 광고물을 설치한다. 한편 이번 칸영화제에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주목할 만한 시선), 박찬욱 감독의 ‘박쥐’(공식 경쟁),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감독 주간) 등이 주요 부문에 진출했다. (사진=제62회 칸영화제 포스터)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해남의 논개 ‘어란’ 한·일 재조명

    1597년 명량대첩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전해져 오는 호국(護國)여인 ‘어란’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재조명되고 있다.‘해남의 논개’ 어란(추정)과 관련된 전설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 어란마을 노인들 사이에서 400여년째 구전되고 있다. 마을 이름과 같은 ‘어란’이란 여인을 맨 처음 발굴한 박승룡(82·향토사학자·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옹은 11일 ‘호국여인 어란 자료집(188쪽)’을 펴냈다.여기에는 ‘어란’에 관한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한 일본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의 유고집(48~49쪽)이 한글과 일어로 실려 있다. 이 사실을 박옹에게 전해준 히구마 다게요시 히로시마수도대학 교수와 어란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추정 유적지(사당,석등) 등이 사진과 함께 더해졌다. 충무공의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나오는 관련 대목도 있다. 사와무라 유고집의 핵심은 왜군장수 칸 마사가게가 명량해전 출전일을 충무공이 보낸 간첩인 어란에게 발설해 왜군이 대패했다는 것이다. 어란 관련 언론보도(서울신문 2008년 1월14일자 11면)가 잇따르면서 지난해 1월 어란마을에서는 마을 청장년과 출향인사 등 243명으로 ‘어란보존현창회’가 꾸려졌다. 마을회관에 간판을 달고 어란 유적지 현장답사 등을 돕고 있다. 한편 박옹에게 어란 기록을 넘겨준 히구마 교수는 어란과 관련한 한국·일본측의 기록, 신문보도와 토론회 내용, 어란마을 현장답사내용 등을 모아 다음달 연구논문으로 발표한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CF 퀸 연아 애니콜도 접수?

    ‘월드스타’ 김연아가 삼성전자의 간판상품인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에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6일 업계에 따르면 2009년 ‘CF퀸’으로 등극한 김연아는 삼성전자와 애니콜 광고 계약을 조만간 맺고 광고촬영에도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김연아측과 애니콜 광고건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계약을 하지는 않았다.”면서 “광고계약의 성격상 확정되기 전까지 진행상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역대 애니콜 광고에는 이효리, 문근영, 전지현, 권상우 등이 출연했다. 지난 3월 말부터는 섹시스타 손담비가 ‘꽃보다 남자’ 멤버들과 함께 애니콜 광고모델로 나오고 있다. 김연아가 애니콜 광고에도 등장하게 된 것은 지난 2월 초부터 선보인 삼성 하우젠 에어컨 광고가 ‘대박’을 친 것과 무관치 않다. 김연아가 ‘씽씽송’을 부르며 춤실력까지 뽐낸 광고가 전파를 탄 이후 하우젠에어컨은 1~3월 말까지 판매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25% 이상(금액기준) 증가했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IB스포츠 관계자는 “광고주(삼성전자)의 동의 없이 계약 진행상황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오는 10일 캐나다 토론토로 출국하며 오는 8월에 다시 귀국할 예정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심리적 고통 해방시킨 이승엽의 부활포

    심리적 고통 해방시킨 이승엽의 부활포

    드디어 터졌다. 최근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렸던 이승엽(요미우리)이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도쿄돔 홈경기(7일)에서 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승엽은 팀이 0-3으로 끌려가던 7회말 2사 후 요코하마 선발 후지에 히토시의 3구째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우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지난달 17일 주니치전에서 손맛을 본 이후 꼭 20일만에 기록한 홈런포이자 자신의 시즌 5호 홈런. 한번 터지면 걷잡을수 없는 이승엽답게 이날 대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가사와라의 역전 쓰리런 홈런이 터진 8회말 2사 1루에서도 바뀐 투수 야마구치의 가운데 높은 공을 그대로 통타, 우측 외야석 상단 광고간판을 맞추는 초대형 투런홈런(추정 비거리 145m)까지 터뜨리며 요코하마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이날 요미우리는 자신의 프로 첫 선발등판이었던 요코하마 루키 후지에를 맞아 7회 2사까지 단 3안타만을 기록할 정도로 공격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기내내 무기력했던 요미우리 타선은 이승엽이 후지에에게 뽑아낸 홈런포가 그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지에가 물러나자 요미우리는 8회에만 홈런 3방(오가사와라-이승엽-아베)으로 대거 6점을 뽑아내며 7-3 역전승. 전날 사카모토 하야토의 9회말 끝내기 홈런의 분위기를 이어가며 리그 1위를 굳건히 했다. 이승엽 입장에서는 이날 요코하마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던 경기였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원정 6연전에서(히로시마,한신) 수많은 득점찬스를 살리지 못하며 작년과 같은 악몽이 되풀이 될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좌,우 투수 가릴것 없이 ‘플래툰 시스템’의 핑계거리가 무색하리만큼 부진의 연속이었다. 최근 요미우리는 상대 선발투수에 따라 1,2번 타자가 매경기마다 바뀌는 것은 물론 이승엽의 경쟁자인 에드가르도 알폰소가 극심한 부진(34타수 4안타 타율 .118)끝에 2군으로 내려갈 정도로 포지션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만약 알폰소가 당초 기대치에 충족시키는 활약을 펼쳤다면 2군행의 주인공은 알폰소가 아니라 이승엽 그 자신이었을 것이다. 3,4번 타자인 오가사와라와 라미레즈 그리고 올시즌 공포의 8번타자로 진화중인 센트럴리그 타율 1위인 사카모토를 제외하면 어느누구도 주전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승엽은 모처럼만에 선발출전이었던 지난 5일 경기(요코하마전)에서 3회말 자신의 손목을 강타 당하는 히트 바이 피치드볼을 얻어맞고 경기중 교체되는 불운까지 겹쳤던 상황. 다행히 6일 경기에서 3타수 1안타(볼넷 1개)에 도루까지 성공시키며 한시름을 놓았지만 알폰소를 대신해 1군에 올라온 오다지마 마사쿠니의 존재가 껄끄러웠던게 사실이다. 비록 오다지마가 이승엽을 추월하기엔 아직은 기량이 역부족이긴 하지만 최근 이승엽의 팀내 입지로 봤을때는 안심할 단계는 분명 아니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7일 경기에서 모든 불신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맹활약을 펼치며 컨디션 회복의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일말의 불안감마저 날려버렸다. 지금 현재 요미우리 1군에 등록된 외국인 선수는 개막전 라인업과 비교할때 많은 변화가 있다. 마무리 투수인 마크 크룬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공백을 요미우리 육성군 출신인 위르핀 오비스포가 1군에 등록된 상태다. 여기에 작년시즌까지 야쿠르트에서 활약했던 베테랑 투수인 디키 곤잘레스가 지난 3일 1군에 등록돼 기존의 세스 그레이싱어를 포함해 투수 3명 타자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인 타자는 이승엽 단 한명뿐이다. 비록 투수와 비교해 외국인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 이승엽은 이런것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동안의 부진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심리적인 압박감과 조급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요코하마전에서 이승엽의 부활포가 반가웠던 것은 이러한 심리적 고통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직 물러나

    정·관계 로비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7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태광실업은 이날 오전 경남 김해시 안동 태광실업 본사 강당에서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박용길(61) 신임 회장의 취임식을 가졌다. 이로써 박연차 회장은 1980년부터 맡아온 태광실업 회장직을 29년 만에 사임하고 태광실업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신임 박 회장은 1950년대 부산 신발업계의 대표적 간판기업이었던 삼화고무 출신으로, 1980년부터 태광실업을 이끌어온 박연차 회장을 20여년간 보좌하며 부회장직을 맡아 왔다. 앞서 박연차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승영 정산컨트리클럽 대표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정 전 대표는 “(현재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참모로서 책임을 져야 하고 구속 수감 중인 박 회장을 보좌하기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박연차 회장도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밝혀 박용길 부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대구길 = 명품관광자원

    대구길 = 명품관광자원

    “1900년대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대구 근대화가 태동한 곳입니다. 대구읍성 해체 당시 선교사들이 성돌을 가져와 이 건물의 계단돌과 초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골목문화해설사가 동산선교사주택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자 참가자들은 메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날 동산선교사주택과 진골목 일대에서 열린 ‘도심문화탐방 골목투어’ 모습이다. 진골목은 긴골목의 대구식 표현으로 일제시대 부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참가자 25명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 동안 3㎞를 걸으며 골목관광을 했다. 이 골목투어는 대구 중구가 도심골목에 숨은 문화유적을 통해 대구 역사를 보여 주려는 프로그램. 지난해 5월 시작했으며 올해는 지난 3월 초에 처음 운영했다. 3월 125명, 4월 395명 등 모두 520명이 다녀갔다. 매주 둘째·넷째주 토요일과 셋째주 목요일 등 한달에 세차례 실시하는 것을 감안하면 반응이 폭발적이다. 지난 한해 동안 참가자 500명을 이미 초과했다. 골목투어 제1코스는 경상감영공원→향촌동→종로초교→삼성상회→달성공원, 제2코스는 동산선교사주택→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고택→종로→진골목이다. 한국JC특우회 지부장들과 골목투어를 한 석왕기(54·한국JC특우회 회장) 변호사는 “대구 문화를 지부장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참가했다.”며 “다른 지역을 관광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길’이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구시는 도심 골목길은 물론 팔공산과 낙동강, 금호강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 환경이 집중적으로 모인 장소를 중심으로 걷는 길 만들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우선 시는 골목투어와 같은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심 골목길을 체험로로 단장키로 했다. 대구는 근대 도심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로 꼽힌다. 이와 함께 지역 명산인 팔공산에 흩어져 있는 불교문화유산을 활용, 걷고 체험하는 문화 탐방길을 만들 예정이다. 갓바위를 관리하는 선본사에서부터 지장사→동화사→부인사→파계사를 잇는 20㎞의 팔공산 순례길이 핵심이다. 여기에다 방짜유기박물관→자연염색박물관→공산갤러리→송광매기념관을 연결하는 팔공산 문화길 조성도 검토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팔공산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패한 뒤 후퇴한 길을 복원해 팔공산의 역사적 장소성도 알리기로 했다. 낙동강변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다니던 옛길을 되살리고 산책길, 유적답사길, 농촌체험길, 모험레포츠길, 자전거길 등을 조성한다.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변에는 안심습지와 팔공산을 잇는 생태 및 습지탐방로, 야생화단지, 조류 탐조시설, 생태문화공원, 연꽃생태 체험원 등을 만든다. 이밖에 시는 숨어 있는 아름다운 거리를 찾기 위해 7월 중순까지 구·군·시민의 추천을 받아 아름다운 거리 두곳을 선정할 계획이다. 길이가 50m 이상 되는 이미 조성된 골목이나 거리 가운데 전통·역사가 있는 거리나 문화가 살아 있는 거리, 간판이 아름다운 골목, 가로수가 예쁜 거리, 인도가 아름다운 거리 등 특징있는 거리나 골목이 대상이다. 시 관계자는 ”길은 삶의 채취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소중한 공간”이라면서 “세계육상대회가 열리는 2011년 전까지 도심 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대구의 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스타와 친구들의 ‘인간적인’ 뒷이야기

    스타와 친구들의 ‘인간적인’ 뒷이야기

    SBS 예능의 간판 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이 6년 만에 부활한다. 이번에는 이휘재, 신정환, 황현희가 진행을 맡아 입담을 발휘한다. 방송은 스타와 스타의 친구들이 출연해 그들의 인간적인 뒷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좋은 친구들’은 1994년 이봉원, 최양락이 처음 진행을 맡은 이후 10년간 SBS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 자리를 지켰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남희석, 박수홍이 진행한 시기에는 ‘비교체험 극과 극’, ‘사랑학 개론’, ‘기막힌 대결’ 등 코너가 인기를 얻으며 시청률이 30%에 육박하기도 했었다. 이번 ‘2009 좋은 친구들’도 진행자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특히 KBS ‘개그콘서트’ 등에서 인기를 얻은 황현희는 SBS 프로그램에 첫출연해 넘치는 의욕을 드러냈다. 그는 첫 녹화에서 “지난해 시상식에서 영혼을 팔아서라도 웃겨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영혼을 SBS에서 팔겠다.”고 새 프로그램을 맡는 각오를 재치있게 밝혔다. 첫방송은 7일 오후 11시15분으로, 이날 방송에는 SBS 아내의 유혹의 부자지간으로 출연한 ‘나쁜 남자’ 김동현과 ‘찌질남’ 변우민이 출연한다. 또 그 친구들이 나와 변우민이 1억 2000만원 사기사건으로 고발당한 사연, 김동현이 친구 등록금을 강탈한 사연 등 그동안 방송에서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폭로한다. 또 함께 출연한 가수 장윤정과 솔비는 스타 배심원으로 활약한다. 제작진은 “연예인들도 지치고 힘들 때 힘을 주는 든든한 친구들이 다들 있다.”면서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방송을 통해 돌아보고 이를 계기로 더 좋은 관계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메트로플러스] 의정부 야채시장 시설 현대화

    경기 의정부시는 청과야채시장에 대해 조만간 1차 아케이드 공사가 끝나는 대로 2차 시설현대화 공사를 시작, 추석 전에 공사를 모두 마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이에 맞춰 도매시장 중심에서 도·소매 시장으로 전환해 소비자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대규모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2005년 4월 등록된 청과야채시장은 같은해 9월 중소기업청과 경기도, 의정부시의 도움을 받아 지붕을 산뜻한 아케이드로 교체했다. 14억 2000여만원을 들여 간판 정비와 소방·음향시설 등을 추진하고, 6억 7000여만원을 투입해 고객쉼터, 만남의 광장, 이벤트 무대 등을 설치한다.
  • 여호수아 “6월엔 한국新”

    30년 묵은 육상 100m 한국 기록은 요지부동이었다. 한국 육상의 간판 스프린터 임희남(27·광주시청)과 여호수아(22·성결대)는 4일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남자 100m 한국기록(10초34)에 도전했으나 10초5대에 그쳤다. 임희남은 일반부 결승에서 10초51에 결승선을 끊어 전덕형(대전시체육회·10초55)을 제치고 우승했다. 임희남은 2007년 7월 일본 남부그랑프리대회에서 10초29를 뛰었지만 뒷바람 탓에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한국기록을 경신할 1순위 기대주 여호수아는 대학부 결승에서 10초53에 골인했다. 지난해 10초48을 뛴 여호수아는 지난 2, 3월 자메이카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 기대를 모았으나 부진했다. 이로써 올 한국육상 100m 기록은 지난달 23일 중고연맹전에서 나온 김국영(평촌정보산업고)의 10초47이 그대로 남았다. 여호수아는 “최근 교생실습으로 연습량이 절대 부족했다. 골인하면서 전광판 기록을 봤는데 창피스러웠다.”면서 “고교 후배들이 바짝 쫓아오는 마당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컨디션만 괜찮다면 10초20대 기록엔 자신 있다. 다음 대회인 전국선수권(6월4~5일 대구)에서는 뭔가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여호수아의 100m 10초53은 역대 16위 기록이다. 1979년 9월9일 서말구(54·해군사관학교 부교수)가 멕시코 여름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10초34와는 거리가 멀다. 2위 기록은 1985년 9월25일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47·당시 해태)이 세운 10초35다. 김천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맨손으로 두방이면 잡는 황소를 정보부 협박에…”

    “맨손으로 두방이면 잡는 황소를 정보부 협박에…”

    “전부 그렇게 먼저 보내고 난 후에는…프로레슬링이 지금 인기가 없으니까 큰 죄를 지은 거 같아.참 팬들에게 사랑받았는데….이렇게 모래성같이 싹~ (인기가 사라지니) 내 자신이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지.어디 누구한테 가서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왕년의 프로레슬러 천규덕(77)씨가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천씨는 한국 프로레슬러 1세대로 혼자 남아있는 현실에 다시 한 번 회한의 감정을 내뱉었다.  그에게 한국 프로레슬링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얘기를 듣기 위해 최근 ‘프로레스링 동우회’를 찾았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건물 5층에 마련된 동우회 사무실.좁은 계단을 오른 뒤 헬스클럽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넓지않은 공간에는 사무를 보는 직원도 번듯한 간판도 없었다.낡은 건물의 한 귀퉁이 옥탑방,한국 프로레슬링의 현 주소를 보는 듯 했다.  한때 전국민을 들썩이게 만들며 링 위를 호령했던 챔피언에게 현재 주어진 자리는 사각의 링이 아닌 쿠션이 푹 꺼진 낡은 소파였다.천씨는 이 곳에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영광과 좌절에 대해 얘기했다.  ●일본 방송 보고 기술 배우던 초창기  그는 부산에서 군생활을 하던 중 전파사 TV로 전설적인 레슬러 고 역도산(본명 김신락 1963년 사망) 선수의 시합을 보고선 프로레슬링에 입문(1950년대 후반으로 추정)했다.  “1949년도에 육군항공대(현재 공군)에 입대를 한 뒤 부산에 있는 부대로 발령을 받았지.근데 그때만해도 부산 해안가에서는 일본 방송이 잡혔어요.어느날 전파사 TV에 역도산씨가 나오는 거야 그 분이.스타일 보니까 손으로 막 치고 있더라구.나도 이건데(손) 한 번 해보자 해서 다음날 같은 체육관에 있던 고 장영철 선수(2006년 사망)한테 가서 말하면서 시작했어요.우연하게 시작한 거지.”  천씨가 털어놓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초창기는 주먹구구식이었다.  “시합을 하려면 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는 밑에 매트를 깔고 나무로 된 기둥을 세운 다음에 링을 만들었지.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TV보고 ‘이렇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했죠.기술도 TV보고 배우고….덩치 큰 사람들이 로프 위에 탁~걸치면 기둥이 무너졌어요.그때는 다 그렇게 했어요.” ●찬란했던 전성기  부산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천씨는 장영철과 함께 1963년쯤 서울로 진출해 흥행을 거듭하게 된다.그가 회상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너무도 화려했다.지금의 쇠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했어요.인기가 하늘을 찔렀지.배고프고 밤이면 할 게 없었어.놀거리도 없었지.근데 우리가 이걸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겠느냐 말야.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일본 사람들 불러다가 때려눕히니 얼마나 통쾌했겠느냐 이거야.장충체육관에 한 7000~8000명이 들어가는데 그 바깥에 사람들이 더 많았어.표를 못 구해가지고 암표가 막 3~4배씩 뛰고,그래도 표 못 구하면 다방이나 그런데로 몰려가고…TV가 나온(널리 보급된) 뒤에 레슬링하는 날이면 거리에 택시가 없었어요.다 그거 구경한다고 집으로 들어가버려서….”  1965년 중반 일본에서 활동하던 고 김일 선수(2006년 사망)가 귀국해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한층 높이게 된다.그의 박치기 한 방에 일본 선수들이 고꾸라지는 모습에 국민들은 희열을 느꼈다.김일은 전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국민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하지만 천씨 등 ‘국내파’는 김일의 등장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우리가 틀을 잡아놓고 나니까 오오키 긴타로(김일의 일본식 이름)라고 들어오니 당황스러운 거죠….일본 이름으로 활동했으니까 한국 사람인 줄도 몰랐고.기분이 안 좋을 수 밖에 없었던 거죠.그래도 내 마 딱 그 사람이 그래도 외국에서 시합 많이 해 봐서 경험은 많을 거 아니냐고 해서 같이 시합을 하게 된 거야.일주일에 하루 이틀 쉬고 계속 시합이 잡혔지.정부가 국제 경기를 한 달에 한 번씩 하라고 하고.”  김일 장영철 천규덕 등의 활약에 한국 프로레슬링은 승승장구한다.  ●‘프로레슬링은 쇼’ 사건  “그러다가 레슬링이 쇼다 그 사건이 터져서…참 인기가 그게…한 번 떨어지니까 좀처럼 되살리기 힘들대요.갈수록 사람이 줄고 (팬들로) 꽉 찼던 장충체육관이…”  1965년 11월 27에 터진 ‘장영철 파문’을 얘기하는 천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일본 오쿠마 선수가 장 선수한테 새우꺾기(허리를 꺾는 기술)를 했어.원래 로프를 잡으면 놔주는데…움직일 수 없으니까(로프까지 못 가니까) 옆에 있던 한국 선수들한테 올라오라고 (장선수가) 손짓을 해서 집단 폭행을 했다는 거지.홧김에....그것 때문에 선수들이 연행돼서 경찰서로 갔죠.거기서 기자들이 ‘이기 레슬링 짜고 하는 거 아이가.’라고 묻는데 장 선수가 대답을 못 한 거야.취조받고 그러니까 겁도 나고 해서.그러다 보니 다음날 신문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레슬링이 쇼’라고…난 그때 전주에 시합하러 내려가 있었는데.”  당시 신문 등 관련자료들에는 이 사건에 대해 “장영철이 경찰서에서 ‘프로레슬링에선 사전에 경기 과정과 우승자를 논의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프로레슬링의 규칙 등을 검사가 잘못 이해하고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식으로 발표했다.” 등으로 기록돼있다.  천씨가 기억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여기까지였다.(하지만 이 부분은 다른 자료들과 좀 배치되는 면이 있다.당시 신문기사 등에 따르면 1974년에도 국내에서 김일 선수가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을 벌이는 등 흥행이 잘 됐다고 알려졌다.이후 김일과 장영철 천규덕의 불화가 깊어지고 후진양성이 되지 않는 등 악재가 겹쳐 1970년대 중후반 프로레슬링이 침체된다고 전해진다.)  ●잿빛 추억 그리고 하늘색 꿈  “사람이 안 들어오더라구.100명이 줄고 그 다음날이면 100명이 더 줄고….내가 그래서 김일-장영철-나 3자 시합도 주선해보고,미국도 유학갔다 오고 그랬는데도 결국 안 되더라구.한달에 한번 시합하다가 두달에 한번,6개월에 한번….시골로 다니면서 무슨 서커스단도 아니고…이제 나도 나이도 먹고 그냥 주저앉았는데 그러다 김일씨도 혼자서 해보니 안되잖아요.그 때 세 사람이 한 몸이 돼서 화합하고 그랬어야 하는데,그래서 레슬링이 이지경이 된 거죠.”  1985년 링을 떠난 천씨는 선수시절부터 몸을 담았던 영진약품 무역부에서 1989년까지 근무한다.그후 군 동기생의 회사에서 6년간 일을 한다.1998년에는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으로 원로 선수들과 함께 프로레슬링 동우회를 결성한다.  또 2008년에는 동국대 사회체육대학원 스포츠엔터테인먼트과에서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하지만 학생 수가 적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강의를 그만두게 된다.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프로레슬링 대회는 1년에 다섯번도 채 되지 않는다.선수층도 얇고 무엇보다 ‘젊은 스타’가 수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천씨는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까지 프로레슬링 인기 부활의 불씨를 당길 꿈을 놓지 않고 있다.다른 단체들과 손을 잡고 큰 시합을 열 계획을 구상중이라고 했다.  “옛날엔 죽이라 살리라 때리라 이랬는데 이제는 손뼉치고 웃고 즐기는 시대가 됐어.우리 프로레슬링도 그렇게 가야지.팬들은 쇼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이거야.즐겁게만 해달라는 거지.이게 팬들의 요구사항일 거예요.”  그는 여든이 다된 지금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아침 저녁으로 앉았다 일어나기,아령들기 등으로 5시간씩 단련하고 있다고 했다.언젠가 인기가 다시 되살아나는 날까지 자신과 프로레슬링을 지탱하기 위해.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사진 동영상 인터넷서울신문 김상인vj bowwow@seoul.co.kr  
  • [盧 전대통령 소환] 청문회 스타 의원→대통령→포괄적 뇌물 피의자로

    [盧 전대통령 소환] 청문회 스타 의원→대통령→포괄적 뇌물 피의자로

    정치인 노무현의 인생은 ‘풍운아’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그대로 적용된다. 1988년 국회 입성 과정부터 그랬다. 13대 총선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 의해 재야인사 영입 사례로 발탁됐다. 이어 같은해 ‘5공 청문회’에서 국민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1990년 3당 합당 때는 ‘역사적 반역’이라며 합류를 거부했다가 ‘삼수’의 시련을 겪었다. 1992년 총선 실패, 1995년 부산시장 도전 실패, 1996년 서울 종로 패배의 쓰라린 경험이었다. 그는 19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입당,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 당시 민주당 잔류파들과 함께 결성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가 ‘3김 청산과 세대교체’를 내건 이인제 후보 지지 등으로 의견이 갈릴 때 “시대의 과제는 정권교체”라고 주장했다. 이어 1998년 7월 종로 보선에서 6년 만에 원내 재입성에 성공했으나 2000년 16대 총선에서 종로를 마다하고 부산에 자원 등판했다가 쓴 맛을 보게 된다. 그러나 부산에서의 출마는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간판을 달며 ‘동서 분할 종식’, ‘국민 통합’이라는 주제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국민적 지지의 출발점인 ‘노사모’도 이 무렵 탄생한다.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 발탁은 새로운 전기로 작용했다. 대권 도전의 중요한 발판이기도 했다. “정치인 집단을 조직화하고 세력으로 엮어 이끌어 나가는 조직적 리더십을 한번도 실험해 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했듯, 약점을 보완하는 기간이었다. 2001년 3월 장관직을 떠난 뒤 본격적인 대선 후보경선 준비에 나선다. 변변한 조직도 없었지만 ‘국민참여 경선’에 힘입어 ‘이인제 대세론’을 극복했다. 몇 차례 말 실수로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지지도 하락을 경험했지만 월드컵 축구 4강 열기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던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 대권을 거머쥐었다. 제16대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는 등 정치적 굴곡은 계속됐다. 그의 20년 정치 인생은 ‘충돌’과 ‘도전’의 역사였다. ‘도덕성’은 힘의 근원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성장기와 자수성가형 인생 스토리는 ‘못가진 자’에 위로를 주며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했다.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이 두가지는 노무현 정부를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했다. 향후 판결 내용에 따라 자연인 노무현은 그에 합당한 권리를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과 대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인으로서의 기반은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최선은 대의(大義)를 따르는 것이며, 차선이 대세(大勢)’라고 하던 정치인 노무현은 이제 그 둘을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내려 놓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야한 옷 입는 여자들은 테러보다 위험?

    야한 옷 입는 여자들은 테러보다 위험?

    제3세계를 국제 정치나 경제 역학 구도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통용되는 요즘 멀고도 가까운 정도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 교류로 세계가 좁아지며 가까워진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나라들 말이다. 인도네시아, 인도, 이집트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한국 교민이 3만명 가량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전 국민의 88%가 알라를 믿는 나라다. 중동 전체 무슬림의 숫자보다 이곳에 사는 무슬림이 더 많다. 또 이슬람 정체성을 지닌 나라로서는 드물게 격렬한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다. 성적 소수자가 인구의 10%에 달하며 2001년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무장조직 지도자 아부 바카르 바시르가 TV에 나와 “야한 옷을 입는 여자들이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발리를 테러한 폭탄보다 더 위험하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숩 칼라 부통령은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중동 남자들이 (섹스)관광을 더 많이 오도록 과부가 많은 리조트를 홍보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한때 여성들이 집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범죄로 보는 포르노금지법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우리는 얼마나 인도네시아를 알고 있는 것일까. ●아시아의 눈으로 본 인도네시아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원제 Julia’s Jihad, 구정은 옮김)은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를 읽자는 취지로 푸른숲이 만든 전문출판사 아시아네트워크의 네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인 율리아 수리야쿠수마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외교관인 부모를 둔 탓에 어린 시절 유럽 국가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보기에 외국인 같고, 유럽인이 보기에도 외국인 같은 ‘경계인’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상당히 균형감 있게 이슬람과 인도네시아를 바라본다. 그는 맹목적이며 비이성적인 종교, 관용을 모르는 배타적인 종교, 여성 억압적인 종교로 이슬람에 덧씌워진 편견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 원래 이슬람은 이성과 지식, 관용, 타인에 대한 존중, 진실, 연대, 신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맹목적인 때리기, 이슬람을 명분 삼아 국민을 억압하는 국가 권력,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을 폭력의 종교로 만들고 있다고 강변한다. 저자의 눈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나 조지 W 부시나 다를 바 없다. 알라는 서로가 서로를 알게 하기 위해 ‘다름’을 줬는데 다름을 이유로 증오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가슴 아파한다. 저자는 특히 이슬람이 종교적인 형식주의에 물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이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부족 전쟁으로 과부가 많아지자 이를 구제할 목적으로 일부다처를 언급한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생존을 위해 예언자 무하마드가 청결을 강조하며 시작됐던 할랄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금식기간인 라마단이 끝난 뒤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최대 명절인 르바란은 서양의 크리스마스처럼 상업화되고 있다.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베일인 히잡(인도네시아에서는 질밥)은 연원도 불분명한 것인데 신앙심을 판단하는 잣대가 됐다. 저자가 이슬람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무하마드 만평 사건이나 네덜란드 영화 감독 테오 반 고흐의 작품 ‘복종’ 파문은 서구 사회의 몰이해로 빚어진 일이라며 이슬람을 옹호한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가정사에서부터 수카르노-수하르토-하비비-와히드-메가와티-유도요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을 바라본다. 30년 독재정권의 수하르토 쪽에 붙었던 수많은 엘리트가 수하르토가 무너지자 개혁세력이라는 탈을 쓰고 돌아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가치관을 강조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는데 이러한 고리를 끊어야 인도네시아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의 글 사이사이에 인도네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깊이 읽기’가 곁들여져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1만 6000원. ●인도 1만년·이집트 7000년 역사 한눈에 ‘인도 이야기’(웅진지식하우스 펴냄)와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가람기획 펴냄)은 각각 서구인과 한국인의 눈으로 인도와 이집트의 과거와 현재를 그린 책들이다. ‘인도 이야기’는 인도 독립 60주년(2007년) 기념 대작을 구상하던 영국 BBC가 간판 프로듀서이자 저명한 대중 역사가인 마이클 우드에게 맡긴 프로젝트다. 지난 40년 동안 30차례 이상 인도를 방문했던 우드는 집필 과정에서 장장 18개월 동안 인도에 머물며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생생하게 취재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인도 1만년 역사를 깊게 통찰할 수 있는 역작을 내놨다. 1만 8000원. 아랍어 전공자인 손주영 한국외대 교수, 송경근 조선대 교수가 함께 지은 ‘이집트’은 고대부터 아랍 공화국 건설, 나폴레옹 점령기, 무함마드 알리 가계 통치기, 영국의 점령과 보호 통치기 등에 이르기까지 7000여년의 이집트 역사를 다룬다. 아랍 문화의 주역으로 건축, 문학, 예술 등의 보고로 불리는 이집트의 발자취를 쫓아가다 보면 현대인들도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적지 않다. 1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