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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쇼생크 탈출/이춘규 논설위원

    영화 빠삐용. 프랑스령 기아나로 향하던 죄수 수송선에서 스티브 매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열연한 빠삐용과 드가가 만난다. 빠삐용은 살인 누명, 드가는 지폐위조 혐의다. 빠삐용은 자신을 범인으로 몬 검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드가는 아내에게 당한 배신 때문에 탈주하기로 한다. 둘은 우정을 나눈다. 연이은 탈주 탓에 둘 다 악마의 섬에 갇힌다. 끝까지 자유를 꿈꾼 빠삐용은 마침내 혼자서 까마득한 벼랑에서 뛰어내려 탈주에 성공한다. 1994년 개봉된 영화 쇼생크 탈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종신형을 선고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 남자에게 죄수들의 세계는 끔찍하다. 비리와 악행을 일삼는 교도관에게도 시달린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탈출 계획을 세운 뒤 탈옥에 성공한다. 자유와 희망, 제도 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사실감이 넘쳐 실화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실화는 아니다. 원작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각색했다. 신창원. 1997년 1월 20일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부산교도소 감방에서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출한다. 2년 반 동안 신출귀몰하며 화제를 뿌린다. 홍길동으로 미화되기도 했지만 전국을 누비며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강간 1건 등 총 142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도피 중 꼼꼼하게 쓴 일기엔 교도행정의 문제점 등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검거될 때 입었던 화려한 쫄쫄이티셔츠는 모조품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일본에도 전설적인 탈옥사건이 있다. 시라토리 요시에. 28세이던 1936년 살인혐의로 수감 중 처음 탈옥해 3일 만에 붙잡힌다. 6년 후. 탈옥수라는 이유로 독방에서 혹독한 대우를 받은 데 앙심을 품고 2차 탈옥해 3개월 만에 자수한다. 2년 뒤에는 매일 쇠창살에 된장을 발라 부식시킨 뒤 제거하고 탈주. 2년여 만에 붙잡힌 뒤 다시 감방 바닥을 파고 탈주하는 등 모두 4차례 탈옥해 ‘탈옥왕’으로 불렸다. 재판에서 사형을 면하게 되자 모범수로 1961년 가출소, 막노동을 하다 71세에 사망한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교도소에 수감된 탈레반 조직원 500여명이 외부에서 5개월간 파고 들어간 320m의 땅굴을 통해 탈출했다. 아프간판 쇼생크 탈출. 2008년 6월에도 탈레반 공격을 받아 탈레반 조직원 등 1000여명이 탈옥했던 교도소다. 오는 7월 주둔군 단계적 철군을 앞둔 시점에 발생한 대규모 탈옥 사건으로 미군과 나토군의 전략에 차질이 예상된다. 탈옥사건은 항상 후폭풍이 거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SM5·YF쏘나타 등 18만여대 리콜

    국내 간판 중형 차량인 르노삼성차 SM5와 현대차 YF쏘나타 등 18만여대의 승용차가 안전장치 결함으로 리콜된다. 국토해양부는 24일 SM5와 SM3, YF쏘나타, 투싼ix에서 각각 제작결함이 발견돼 리콜한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은 2009년 8월 12일부터 지난해 10월 29일까지 제작된 SM5 5만 5648대와 2009년 4월 23일부터 지난해 8월 10일 사이에 제작된 SM3 6만 5157대에서 운전석 에어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해 4월 1일부터 올해 1월 16일 사이에 제작된 SM3 3만 8742대도 후부 반사기의 반사성능이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30일부터 5월 17일까지 제작된 현대차의 YF쏘나타 1만 9211대와 지난해 2월 27일부터 4월 17일까지 만들어진 투싼ix 8050대에서도 후부 반사기 불량이 드러났다. 해당 차량 소유자는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으며, 리콜 전의 수리 비용도 청구할 수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이발사’ 윤영배 여백과 여운의 음악

    ‘이발사’ 윤영배 여백과 여운의 음악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한국 가요사에 작지만,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루시드폴(본명 조윤석)과 말로(정수월), 이승환, 이한철, 이규호를 배출한 것. 그리고 또 한 명. 동아리 후배 이한철과 팀을 꾸려 나왔던 ‘이발사’ 윤영배(43)가 주인공이다. 윤영배는 그 후 싱어송라이터 창작집단인 하나음악과 연을 맺었다. 장필순과 불독맨션의 앨범 등에 참여하면서 독특한 노래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래 전부터 솔로 앨범을 기대하게 했지만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 영화 ‘산책’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참여하다가 돌연 여행길에 올라 네덜란드의 명문 음악원인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움에 입학했다. 하지만 곧 자퇴를 했다. 2년여의 네덜란드 생활을 끝낸 뒤 제주도에 내려가 밭을 갈았다. 오랜 침묵을 지키던 그가 데뷔 17년 만에 첫 앨범 ‘바람의 소리’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키 큰 나무’와 ‘이발사’ ‘바람의 소리’ 등 5곡을 어쿠스틱 기타의 사운드 위에 사려 깊은 목소리로 얹었다. 양념은 모두 뺐다. 여백과 여운이 느껴진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20일 밤 12시 35분에 싱어송라이터 ‘이발사’ 윤영배의 공연을 방송한다. 스페이스 공감 무대 또한 윤영배의 앨범처럼 비워낸 듯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바람의 소리로만 채운다. 고(故) 김광석의 해맑은 웃음과 예전 안치환의 담백함이 윤영배에게서 오롯이 묻어난다. 공연에는 윤영배의 20년 지기이자 동료인 가수 이한철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의 별명 ‘이발사’는 웬델 베리의 장편소설 ‘포트윌리엄의 이발사’에서 따왔다. 작은 강변마을 포트윌리엄의 간판도 없는 조그만 이발소에서 동네 사람들 곁에 공기처럼 스며든 이발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윤영배는 “이런 삶이 진정한 삶 아니겠느냐.”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생방송 리포트 중 ‘콧물 질질~’ 미녀기자 굴욕

    한 미모의 여기자가 생방송 뉴스 소식을 전하던 중 흘러내린 콧물에도 끝까지 진행하는 프로정신을 발휘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5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코 풀어라’(Blow Your Nose)라는 제목으로 캐나다 언론 시티TV의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시티뉴스의 한 여기자 영상이 소개됐다. 공개된 영상에서 이 여기자는 토론토 유명 공연장인 마세이홀 앞에서 강풍을 맞으며 뉴스를 전하던 중 그만 콧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끝까지 뉴스 소식을 전하는 투혼(?)을 발휘해 눈길을 끌었다. 상황은 이렇다. 그녀는 콧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이내 자신도 느꼈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오히려 콧물이 코끝으로 흘러 안타깝게도 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이 같은 장면은 현지 전파를 통해 퍼져 나갔고, 유튜브에도 해당 영상이 올라오면서 큰 이슈를 모았다. 또한 CNN 스포츠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18일 이 영상을 하루의 온라인 이슈를 소개하는 최고 영상 페이지의 ‘오늘의 생방송’으로 선정하며 “여기자는 매우 사랑스러운 외모와 프로정신을 지녔다.”라며 경의를 표했다. 화제를 모은 여기자는 미인 대회 출신의 사피아 캄발리아(Saphia Khambalia). 그녀는 지난 2007년 ‘미스 캐나다’ 선발 대회에서 특별상인 미스 기업가(Entrepreneur)를 차지한 미모의 재원으로, 언론학을 전공하고 현재 시티TV의 간판 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슈퍼스타K’ MC 김성주 “이백만 씨 찾습니다” 이색 공약

    ‘슈퍼스타K’ MC 김성주 “이백만 씨 찾습니다” 이색 공약

    Mnet ‘슈퍼스타K‘의 간판 MC인 김성주가 슈퍼스타K3의 성공을 기원하는 이색 공약을 내걸어 화제다. 그는 18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슈퍼스타K3 지원자수가 200만 명을 넘긴다면, 이백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 앞에서 절도 하고 오디션을 보겠다.”고 선언했다. 김성주의 재치있는 공약을 본 사람들은 “주변에 실제로 ‘이백만’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고 추천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슈퍼스타K 제작진도 “대한민국에 이백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을 찾는다.”고 발 벗고 나섰다. 현재 지원자 증가 추이를 살폈을 때, 200만명 돌파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슈퍼스타K3의 지원자는 접수 40여 일 만에 135만 명을 돌파하면서 시즌 2의 기록인 134만 6402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한편 슈퍼스타K3는 오는 4월 24일 부산지역 2차 예선을 시작으로, 4개월간 전국 주요도시 및 해외를 찾아가는 ‘오디션 투어’를 시작한다. ARS(1600-0199)와 UCC(www.superstark.co.kr)를 통한 1차 예선 응모는 6월28일까지 진행되며, 1차 예선 합격자는 4월24일 부산 예선을 시작으로 7월 3일 서울 예선까지 국내 총 8개 지역 중 선택해 오디션을 치르게 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야 의원들이 전하는 분당을 분위기

    여야 의원들이 전하는 분당을 분위기

    4·27 재·보궐 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나라당에서는 ‘분당발(發)’ 공포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내년 총선·대선에 대한 기대 심리가 싹트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을 지역에 선거 지원을 다녀온 여야 의원 10명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 선거 구도가 정권에 대한 ‘중간 심판’의 성격을 띠는 게 우려스럽다. 현장을 돌아다니면 정권에 대한 불만을 많이 듣게 된다. 중산층을 끌어안는 정책을 제대로 못 했다거나 소통이 부족했다는 등의 질책이 많다.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막상막하이다. ●주광덕 의원 박빙이다. 이런 판세가 형성된 자체가 문제다. 학연·지연을 따져 인맥을 찾아낸 뒤 일일이 전화해서 지지를 호소한다. 전화 1통에 10여분씩 걸린다. 매일 2시간 이상 전화기를 붙잡고 산다. 아내와 아이들한테도 지인들에게 여당의 의지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 ●박보환 의원 어렵다. 분당을 한나라당 텃밭처럼 간주한 게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다. 집값도 많이 떨어졌고 분당이 조성된 지 20여년이 지나면서 2세대들도 많아져 유권자층도 젊어졌다. 그러나 늘 이겼던 곳이라 제대로 된 조직도 없다. 연고자와 직능단체 등과 최대한 접촉하고 밤낮으로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이두아 의원 ‘강남 벨트’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선거 운동의 초점을 핵심 지지기반인 전문가 그룹에 맞췄다. 그러나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출·퇴근 인사 때 처음에는 무관심했으나, 차츰 “승리하십시오.”나 “투표하겠습니다.”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는 게 위안이다. ●차명진 의원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이다. 선거운동 따로 지역민심 따로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이다. 민심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본다. 선거운동이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얼음에 구멍을 뚫듯 타깃을 확실히 정해서 표심을 장악해야 한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 분당에서 여러 선거가 치러졌지만, 유권자들이 이번처럼 후보와 악수하려고 기다리고 사진 찍으려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나이 많은 분들은 여당 성향이 틀림없지만 맹목적이지는 않다. 반(反) 민주당 정서가 줄고 있다. 향우회 등 지연을 활용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김부겸 의원 상가 등을 가는데 주민들이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기간 표심이 한나라당으로 굳어져 있어 치고 나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예상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와 해볼 만하다. 주민들은 ‘대선 후보인 손 대표의 출마는 신선하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네거티브 광고를 하는데 투표율이 관건이다. ●송민순 의원 팽팽하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심판의 목소리가 높다. 손 대표에 대한 호감도도 높다. 야당 대표를 떨어뜨리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나라당의 물량 공세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직 표심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춘석 의원 ‘민주당’ 간판만 빼면 다 좋다는 반응이다. 손 대표가 옥스퍼드대 출신에 경기도지사, 당 대표 등 스펙으로는 빠지는 게 없다고 한다. 선거사무실 앞에 전주 버스파업 사태를 정상화하라고 장송곡을 틀어 놓은 게 학원가 주변이라 주부를 중심으로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이찬열 의원 손 대표의 ‘나홀로 선거’가 많이 알려졌다. 비서와 명함 돌리는 사람 등 3명만 다닌다. 문을 연 식당은 다 들어가고 유권자가 보이면 40~50m 쫓아가 악수한다. 장세훈·강주리기자 shjang@seoul.co.kr
  • 순박한 시골 할머니들의 ‘물과 풀 같은 투쟁’

    순박한 시골 할머니들의 ‘물과 풀 같은 투쟁’

    ‘문학의 위기’라는 명제는 긴장감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리얼리즘 문학이 구닥다리, 천덕꾸러기 취급받은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둘은 무관하지 않다. 형식의 파격과 실험이 높게 여겨지고 리얼리즘은 진부한 장르로 치부되는 속에서 대중과 문학은 소통의 방법을 서로 잃어 가고, 문학의 위기는 더욱 부추겨졌다. 문단 내부에서조차 문학이 보통의 사람들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변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누가 한가하게 소설을 읽겠느냐는 자조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선옥(47)의 새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창비 펴냄)은 이런 상황 속에서 미련스러울 만치 우직하게 리얼리즘을 틀어쥐고 있다. 게다가 예의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면 ‘철 지난 얘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풀어 가기 일쑤인 것과 달리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섬세하고 경쾌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으니 리얼리즘 문학의 또 다른 성취라 할 만하다. 지난해 계간지 창비에 네 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작품이다. ‘꽃 같은’은 공선옥이 요즘 흠뻑 빠져 있는 시골과 시골 사람, 시골 생활 이야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시골 마을 투쟁 이야기’다. 변변히 하소연할 곳 하나 없어 분통 터지게 억울하지만, 소박하고 정겹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투쟁을 벌이는 시골 무지렁이 할머니들이 투쟁의 주역들이다. 소설 속 평화로운 ‘전남 순양군 진평리’에 어느날 불법 쇄석 공장 ‘순양석재’가 들어서고 허구한날 ‘독가루’를 날려대니 ‘깻잎에 돌가루가 박혀 입에서 싸그락싸그락 돌이 씹히는’ 지경이 됐다. 개발업자와 지역 정부는 서로 유착해 있고, 감사원이니 법원이니 등은 그들을 거들떠보거나 귀 기울여주지 않고, 언론은 기업 편에서 일방적 기사만 써댄다. 서울의 환경단체는 작은 시골 사정까지 돌보기에 너무 바쁘시다.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93세 ‘맹순이 언니’를 비롯해 시앙골댁, 해징이댁 등 70~80대 할머니들이 나서서 공장 앞에서 덤프트럭을 막고,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법원에 소송하고, 감사원에 탄원서를 넣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디모’에 나선다. 그런데 정겹기 그지없다. 군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할 때는 한쪽에서 솥단지 걸어 놓고 밥 지어 먹다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불러 밥을 먹이기도 한다. 새벽녘부터 굉음을 울리며 시골길을 질주하는 덤프트럭을 보면서는 “저 사람들 밥은 먹고 나왔을까.”라며 안쓰러워한다. 참 ‘물 같고 풀 같은 투쟁’이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패배가 아니다. 고구마 캐다가 호미 끝에 고구마 서너 알 매단 채 이승을 떠난 ‘맹순이 언니’의 혼령은 먼저 떠난 무수굴댁 혼령을 만난다. 그리고 “꽃 같은 시절을 보내다 왔어.”라고 자랑한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았건만 늘 눈치 보느라 절절매며 제 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이들 아닌가. 한데 순사건, 나라님이건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다가 왔으니 그 자체가 ‘꽃시절’이란다. 실제로 순양군 도시 철거민, 빈민, 베트남 이주여성, 시인, 노동자 등 거대 담론 바깥에 있는 이들의 느슨하지만 따뜻하게 연대하는 꽃 같은 시절이 작품에 담겨 있다. 공선옥의 소설 속에서는 숱한 소리들이 이어진다. 띠루띠루띠루루루~ 낭랑한 지렁이 울음 소리가 귀에 어른거린다. 팽나무, 대나무, 산죽나무도 우웅우웅 노래하고, 싸락눈은 싸그락싸그락거린다. 공장의 쇄석기 소리에 맞서는 시골 할머니들의 외침에 자연이 거들며 내는 소리들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한껏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던 온갖 작고 초라한 것들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눈 부릅뜨고 둘러봐도 보이지 않던 ‘낮은 곳, 못난 것’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데 의아하다. 눈과 귀가 밝아졌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절로 데워져 있다. 공선옥 소설의 힘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0년 만에 방송 진행… OBS ‘명불허전’ MC 차인태 아나운서

    [김문이 만난사람] 20년 만에 방송 진행… OBS ‘명불허전’ MC 차인태 아나운서

    #문: ‘벽창호’라는 말을 아시나요. #답: 물론이죠. 앞이 꽉 막힌 사람을 비유하는 것 아닌가요. #문: 그럼 ‘벽창호’의 어원에 대해서는? #답: ? 잘 모르겠다? 그럼 여기서 잠깐,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말을 빌려 보자. 강 전 총리는 평소 강연이나 공개 석상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스스로 “저는 벽창호 출신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약간 의아하게 여긴다. ‘벽창호’라는 말이 썩 좋은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 전 총리는 다시 “사실은 평북 창성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로 옆에 벽동군이 있는데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의 소가 어찌나 억세고 우직했던지…”라고 하면서 지금의 ‘벽창호’가 북한 지역의 소 ‘벽창우’에서 유래되었음을 설명한다. 그제야 좌중들은 ‘아!’ 하고 감탄하며 박수를 보낸다. 원래 ‘벽창우’는 주인에게 충직하면서도 무뚝뚝하게 일만 해 오다가 배알이 뒤틀리면 일도 안 하고 주인도 몰라본다는 소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 북한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다. 앞이 꽉 막혔다는 벽(壁)과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을 연상할 때 쓰는 ‘벽창호’라는 말은 이렇게 벽동과 창성의 소 벽창우(碧昌牛)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은 압록강변에 있으며 백두산과 수풍댐 중간쯤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우리나라 아나운서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차인태(67)씨. ‘벽창우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부터 1992년 MBC 임원으로 승진할 때까지 23년 동안 일선에서 아나운서와 방송 진행자의 길을 소처럼 우직하게 걸었다. 이후 1998년 제주 MBC 사장을 거쳐 경기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매진할 때도 그러했다. 그가 요즘 화제에 올라 있다. 암을 극복하고 20년 만에 다시 일선으로 돌아와 방송 진행을 맡고 있어서다. 그는 지난 5일부터 매주 화요일 밤 10시 OBS 경인TV의 ‘명불허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내가 언제 방송계를 떠났나요. 은퇴한다고 얘기도 안 했는데 언론에서는 ‘20년 만에 복귀’라고 합디다. 그건 맞지가 않고요.”라고 했다. 또 그는 “사람이 살면서 아플 수도 있는 건데 못 밝힐 것도 없고 또 드러내 놓고 얘기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차나 한잔 하자며 지난 11일 오후 그를 ‘잠시’ 만났다. 6년 전 차씨가 평안북도지사로 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사를 했다. 활짝 웃는 모습이 여전히 천진한 아이 같다고 하자 파안대소했다. 암투병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다시 방송 진행을 하게 됐을까. 그는 김종오 OBS 경인TV 사장과의 인연을 먼저 꺼냈다. 김 사장은 MBC 보도본부장 출신으로 대구 MBC 사장 등을 지냈다. “MBC 입사 후배인 김 사장과는 자연스럽게 가끔 만나지요. 최근에는 지난 3월 초에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 사장이 ‘차 선배의 격에 맞는 거 하나 생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제게 의견을 물어 왔습니다. 2, 3일 동안 생각하면서 다른 방송이면 부담이 되겠지만 이번 일은 순수한 마음에서 (후배를) 도와주자고 결론을 냈지요. 그러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응하게 됐습니다.” 그가 후배의 제의를 수락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가 아닌 요즘, 특히 밤 10시쯤 되면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이 ‘시끄럽거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것 일색인 데 반해 ‘명불허전’은 편안히 즐길 수 있는 내용이어서 선택했단다. 그 시간이면 하루를 정리하면서 조용히 잠을 잘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론을 편다. 인생 성공담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은 시청률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명불허전’은 사회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그들이 살아온 길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배우 정한용, 박재동 화백 등이 진행한 OBS의 간판이다. “시끄러운 것들이 아닌, 한 박자 물러서서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비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말입니다. 인기인과 정치인은 빼고 한 분야에서 고집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부담 없는 프로그램이지요.” 20년 만에 돌아온 소감은 어떨까. “다시 말하지만 복귀가 아닙니다. 타던 자전거를 오랫동안 세워 놨다가 다시 꺼내 페달을 밟는 것입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대부분 디지털화됐다는 것입니다. 방송 기자재도 그렇고 카메라도 그렇고, 그 앞에 다시 섰을 뿐이지요.” 그의 이력을 보면 1966년에 데뷔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그해 1월 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지방 발령을 하기에 그만두고 군대에 갔다.”면서 군 복무 이후인 1969년 MBC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 그 길로 줄곧 MBC에서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18년 동안 ‘장학퀴즈’를 진행해 40대 이상에게는 여전히 반가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죽하면 ‘장학퀴즈 세대’라는 말도 있을까. “저 역시 가장 기억에 남지요. 단일 프로그램을 18년 동안 했다는 것도 기록이고, 전철을 타면 ‘장학퀴즈의 차인태’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간혹 저한테 ‘차인표’가 아니냐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제 동생입니다.’ 하면서 웃어넘깁니다.” 차씨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그런 에피소드를 추억했다. 그는 제주 MBC 사장 이후 경기대 다매체영상학부 책임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의 1막을 정리하려고 잠시 쉬고 있었지요. 그동안 소홀했던 가정에 악센트를 주는 방향으로 설정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하루는 경기대 손종국 전 총장에게서 식사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손 전 총장은 학군(ROTC) 13기로 제 후배이기도 했습니다. 다매체영상학부를 만들려고 하니 좀 맡아 달라고 간곡히 얘기하더군요. 그래서 예정에 없던 교수 자리로 가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당시는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지금은 학부 안에 다섯개의 학과가 있고 교수만 해도 15명이 있으며 경기대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인기 학부가 됐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11년 동안 헌신한 결과다. 화제를 건강 얘기로 돌렸다. 그는 2009년 말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으면서 1년 6개월여간 투병 생활을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림프종은 혈액암이나 마찬가지지요. 지금 저의 상태를 말하면 항암 표적 치료는 끝냈습니다. 모든 것이 건강해졌고요. 저와 의료진이 서로 잘 어우러져 다행스럽게도 좋은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번 암에 걸리면 재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암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떠나보낼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같이 가면서 서로가 서로한테 이기려고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그는 또 “암 환자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주변에서 편안하게 대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너무 침소봉대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숨길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투병 중에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을 얘기한다. “주치의가 몇 가지 얘기를 하더군요. 첫째 암 환자들은 귀가 얇아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리산 채식이다, 알래스카산 뭐다 하는 식의 얘기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감기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셋째는 넘어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회복력이 젊은 사람에 비해 더뎌지거든요.” 그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병상에 누워 진정 얻은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과분하게 대접받았구나. 남은 인생은 참으로 겸손하고 매사에 고맙게 살아가자’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90살이 넘은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 아침마다 부인과 부모 등 네 식구가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 이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네 식구는 314살입니다. 내년에는 318살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의 집에는 중국 쪽에서 벽동마을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월남했지만 차씨가 태어날 때 태를 묻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차인태 아나운서는… 1944년 평북 벽동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월남했다. 1963년 휘문고를 나와 1966년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해 KBS 아나운서 공채시험에 합격했으나 군 복무를 위해 그만두고 1969년 MBC 아나운서 시험을 통해 입사했다. 이후 ‘뉴스데스크’ ‘장학퀴즈’ ‘출발 새아침’ ‘별이 빛나는 밤에’ 등 100여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MBC의 역사를 만든 ‘아나운서계의 전설’로 불린다. 특히 ‘장학퀴즈’의 경우 1973년 2월부터 1990년 4월까지 18년간 진행을 도맡아 MBC 대표 프로그램으로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권투와 축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생생하게 중계해 40대 이상에게는 추억의 목소리로 남아 있다. 1992년 MBC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방송 일선을 떠났고, 이후 제주 MBC 사장과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 평북도지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장 등 다양한 직함으로 활약했다. 최근 OBS 경인TV의 ‘명불허전’으로 20년 만에 방송 현업으로 돌아왔다. 경원대 교수인 부인과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구순의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 ‘네이버 천하’ 흔들까

    국내 포털 시장에서 네이버의 독주가 심화되는 가운데 2위와 3위 사업자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SK커뮤니케이션즈가 전방위적 협력에 나선다. 이에 따라 네이버가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는 검색 시장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각종 콘텐츠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포괄적 업무제휴 MOU 교환 SK커뮤니케이션즈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은 14일 포괄적 업무제휴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이를 통해 상호 응용프로그램 개발환경(API)이 공개돼 네이트 싸이월드와 다음의 서비스가 연동된다. 각각의 서비스에 따로 로그인하지 않아도 클릭 한번으로 두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카페나 블로그 등에 올라온 글을 다음에 직접 로그인하지 않고도 네이트온 메신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과 사진 등도 네이트를 방문하지 않고 다음에서 볼 수 있다. 두 회사는 포털의 핵심 수익사업인 광고 비즈니스에서도 협력관계를 맺기로 하고 검색광고 공동 판매와 운영에 합의했다. SK컴즈의 클릭당 과금 방식(CPC) 검색광고는 다음이, 다음의 정액제 과금 방식(CPT) 검색광고는 SK컴즈가 참여해 공동 운영된다. 각각 경쟁력 있는 상품 운영에 집중함으로써 상품 고도화는 물론 시스템 및 인력 운영에서도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양사의 설명이다. ●싸이월드 홈피 다음에서 볼 수 있어 두 회사는 향후 모바일 웹 분야 및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분야의 광고 제휴도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모바일 네이트의 검색광고 부분은 다음이 판매를 대행하고 모바일 네이트의 배너광고 판매에도 다음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한 상호 협력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주형철 SK컴즈 대표이사는 “이번 제휴는 이용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업무 제휴”라면서 “한국 인터넷 산업의 두 간판 기업이 협력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세훈 다음 대표이사는 “MOU 교환으로 이용자들은 양사 서비스를 함께 사용하는 데 훨씬 편리함을 느낄 것”이라면서 “이러한 시너지를 통해 양사의 서비스 및 비즈니스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北, 고위관리·軍도 세습

    북한 김정은 3대 세습에 이어 고위층에서도 2세 자제들이 군과 내각에서 고위직을 꿰차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일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앞두고 상장 2명, 중장 5명, 소장 38명을 승진시키는 내용의 군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상장(중장)으로 승진한 오일정(57) 당 군사부장. 그는 지난해 9·28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소장에서 중장으로 승진한 지 6개월 만에 상장을 달아 초고속 승진을 했다. 오일정은 북한의 대표적인 혁명 1세대인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지난해 군사부장에 올랐다.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과 남산학교, 김일성종합대학 동기동창으로 어려움을 겪을 법도 했지만 ‘오진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군부에서 대외업무를 주로 맡았다. 군사부장은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교도대 등 예비병력을 총괄하는 자리로 민간 무력에 대한 교육과 관리를 통해 김정은 후계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지난달 조선중앙은행 총재로 임명된 백룡천(49)은 백남순 전 외무상의 셋째 아들이다. 49세의 젊은 그가 내각 사무국 부장에서 중앙은행 총재로 초고속 승진을 한 배경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백남순은 1999년부터 2007년 사망할 때까지 8년간 북한 외교의 간판이었다. 백 총재는 지난해 당 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이름을 올려 정치적 위상도 함께 올랐다. 이날 군 인사에서 황병서 부부장도 6개월 만에 상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62세로 당 조직지도부에서 군사 분야를 담당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리용철·리제강 제1부부장이 사망한 데 이어 올해 박정순 제1부부장까지 폐암으로 사망해 조직지도부 고위직이 공석인 만큼 승진 가능성도 거론된다. 또 허영호 인민보안부 부부장 등을 중장으로 승진시켰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세계최대 해병기지 美 콴티코 훈련소를 가다

    세계최대 해병기지 美 콴티코 훈련소를 가다

    “좋아, 왔어!”(I got it!) 여기저기서 표적을 잡았다는 외침이 아우성치더니 이내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이 동시다발적으로 건물 안을 울린다. “탕, 탕, 탕…두두두두두….” “이번엔 1층을 조준해!” “2층에 아직 적들이 남아있어요.” “그래? 그럼 2층을 마저 처리한다. 집중해!” “2층 조준!” “2층 조준!” “2층 조준!“ “탕,탕,탕…두두두두두…” 8일 기자가 찾은 미국 버지니아주 동북부 해안의 콴티코(Quantico) 해병대 장교 훈련소에서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펼쳐지고 있었다. 허허벌판에 아프가니스탄 시가지를 닮은 모형 건물들을 만들어 놓고 반군을 소탕하는 식이다. 건물 벽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상점마다 아랍어로 된 간판이 걸려있다. 마치 아프간의 어떤 거리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라도 들 정도였다. 상점 앞에 고기, 채소, 과일 등이 진열돼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만져 보고 나서야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정교했다. 건물 안에는 아프간 주민들이 덮고 잘 법한 이부자리와 세간살이들이 진짜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어차피 실전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해놓을 필요가 있을까. 찰스 맥리드 원사는 “최대한 실전처럼 훈련해야 실전에서 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해병 장교들이라고 하지만 훈련은 해병 병사와 똑같은 내용으로 받는다. 어차피 전장에서는 같은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훈련은 ‘벌판에서 시가지 접근→건물에 진입해 반군 진압→건물 안에서 건너편 건물의 반군 사격→사격 후 건너편 건물로 진입’ 등의 흐름으로 진행됐다. 해병들은 실전 때와 똑같은 무게의 군장(軍裝)을 주렁주렁 달고 뛰어다녔다. 총에 실탄이 없다는 것만 실전과 달랐다. 총성의 크기도 같고 탄피가 튀어져 나가는 것도 같지만 총알 대신 레이저가 발사된다. 이것이 상대편 몸에 맞으면 전자 감응장치가 “맞았다.”고 알려주고 저격을 당한 상대편은 그 자리에 누워 전사자 역할을 한다. 서로 편을 짜서 전투하는 ‘서바이벌 게임’식 훈련이었다. 훈련 중 해병들이 끊임없이 뭔가를 외치고 소통하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총성보다도 아우성치는 사람 목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전쟁터가 아니라 무슨 격렬한 토론회나 강의실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부족한지 각 지점마다 서있는 교관들은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라.”고 다그쳤다. 시시각각 각자가 인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최상의 판단을 추구하는 것이 이 아우성의 목적이었다. “발사!”(Fire!)하는 명령은 잘 들을 수 없었다. 선임 훈련생이 작전을 주도했지만 제각기 조준을 하고 판단이 서면 바로 총을 쐈다. 맥리드 원사는 “큰 틀에서 점령 명령이 떨어지면 미세한 부분은 현장에서 각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대처한다.”고 했다. 1917년에 생긴 콴티코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해병 기지로, 이곳에 있는 훈련소는 모든 미 해병 장교들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코스다. 그러니까 이 곳을 졸업한 해병 장교들이 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에서 싸웠고 한국전쟁 때 인천에서 싸운 것이다. 4년제 대학이나 군사학교에서 6~10주간 예비후보 과정을 거친 20대의 혈기왕성한 소위·중위 등이 이곳에서 6개월 간 시가전, 유격 훈련 등 기본교육을 받고 세계 최강의 해병 장교로 거듭난다. 해마다 2100명의 해병 장교가 이곳에서 배출된다. 이 훈련소를 졸업한 장교들은 병과 별로 짧게는 3개월(포병, 보병 등), 길게는 2년(전투기 조종사)간 전문교육을 받은 뒤 바로 전장 등 일선 부대에 배치된다. 이날 훈련장에서 만난 해병 장교들은 대부분 백인이었고 유색인종은 드물었다. 이들은 가장 힘든 병과를 스스로 택한 데서 오는 해병 특유의 ‘프라이드’로 충만해 있었다. 표정이 밝고 목소리가 우렁찼다. 브라이언 빌러드 중위는 제법 차가운 날씨였음에도 군복 소매를 걷어올려 입고는 “하나도 춥지 않다.”며 해병 정신을 뽐냈다. 와츠 카일리 소위 등에게 한국 해병대의 명성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들었다.”면서 “언젠가는 함께 훈련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싸운 마이클 허만(소령) 교관은 “타이거(맹호부대)가 베트남전에서 떨친 뛰어난 명성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 해병은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자 그는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미 해병은 ‘데블 독’(Devil Dog)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했다. ‘지옥에서 온 사냥개’란 의미로, 1차 세계대전 때 미 해병에게 호되게 당한 독일군이 지어준 별명이란다. 글 사진 콴티코(버지니아주)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美해병이 동양무술을? “육박전에선 더 효과적” 콴티코 훈련소의 해병 교육 과정엔 ‘동양식 무술 연마’가 포함돼 있다. 육박전에서 적과 맞닥뜨렸을 때 몸을 써야 하는데, 이럴 땐 동양의 무술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태권도, 유도, 가라데, 타이 무예 등 온갖 무술과 격투기를 ‘짬뽕’한 것이다. 1차 대전 때 미군은 육박전에 대비해 복싱과 펜싱 등을 연마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여기에 동양식 무술을 조금씩 가미했다. 그러다 2001년에 아예 동양 무술을 주조로 한 현재의 종합무술을 창안했다. 8일 훈련에서 해병들은 총을 가진 적에 맨손으로 대처하는 법, 맨손 대 맨손으로 적을 상대하는 법 등 다양한 시나리오 별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연습을 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최대한 실제상황을 연출하는 훈련 방식이 흥미로웠다. 콴티코(버지니아주)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게리 무어를 기리며…유병열·김태원 등 국내 기타리스트 12명 헌정공연

    게리 무어를 기리며…유병열·김태원 등 국내 기타리스트 12명 헌정공연

    지난해 4월 30일, 영국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1952~2011)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주최 측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무대’라고 홍보했다. 수십년 동안 방한을 고대했던 팬들은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 ‘파리지엔느 워크웨이스’(Parisienne Walkways) 등 무어의 울부짖는 기타에 흠뻑 취했다.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연주하던 무어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블루스 기타의 전설로 남은 그의 곡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는 17일 오후 2시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는 기타리스트 12명이 뭉쳐 ‘12G신(神)의 송가(頌歌)’라는 제목의 무어 헌정공연을 갖는다. 사연은 이렇다. 기타리스트 유병열의 새 앨범 작업으로 자주 만나던 김태원(부활)과 최이철(사랑과 평화)은 무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3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헌정공연은 무어의 영향을 받은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하나 둘 합류하면서 판이 커졌다. 덕분에 관객들은 한국의 간판 기타리스트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행운을 얻었다. 3명 외에도 ‘백두산’의 김도균, ‘위대한 탄생’의 최희선, 손무현(한양여대 교수), 타미 킴, 박창곤(이승철 황제밴드), 김광석, 한상원(호서대 교수), 이현석, 박주원 등이 참여했다. 함춘호와 신대철(시나위), 김세황(넥스트) 등을 빼면 시대를 풍미했던 기타리스트는 다 모인 셈이다. 각자의 음악적 스타일을 고려해 헌정 곡을 골랐다. 첫 곡은 무어의 연주 가운데 결정판으로 평가받는 ‘엔드 오브 더 월드’로 타미 킴이 맡는다. 이어 김광석이 ‘선셋’, 최이철이 ‘스틸 갓 더 블루스’, 김태원이 ‘파리지엔느 워크웨이스’를 선보인다. ‘기타 신동’ 정성하는 초대손님으로 나온다. 5만 6000~6만 6000원. 1544-1555.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해외 뮤지션들이 그리워하는 무대 ‘서울재즈페스티벌’ 새달 9일 개막

    해외 뮤지션들이 그리워하는 무대 ‘서울재즈페스티벌’ 새달 9일 개막

    “한국 공연은 매번 기대된다. 다시 페스티벌을 찾을 수 있어 행복하다.”(팻 메스니) “관객들의 에너지는 대단했고, 우리는 무대를 즐겼다.”(세르지오 멘데스) “아직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얘기하곤 한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이었다.”(바우터 하멜) 점잔 빼는 관객들이 주를 이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순식간에 스탠딩 공연장으로 뒤바꿔 놓는 마법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의 매력이다. 국내 최고(最古)의 재즈축제인 자라섬 재즈페스티벌과는 또 다른 개성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도 이 무대를 그리워한다. ●팻 메스니와 친구들 다음 달 9일 시작되는 제5회 서울재즈페스티벌의 간판은 10~11일 ‘팻 메스니 앤드 프렌즈’다. 미국의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57)는 6회 연속 수상 포함, 총 17회의 그래미 수상과 33차례의 노미네이션을 기록한 퓨전재즈의 거장이다. 최근 20여년 동안 재즈계의 큰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제1회 페스티벌 때 참석했던 그는 이번에 주최 측의 제안을 받자 단박에 승 낙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는 ‘재즈의 달인’들과 호흡을 맞춰 더욱 기대가 크다. 1970년대 포스트모던 재즈의 선구자이자 미국 버클리음대 교수인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68)은 19살 풋내기 메스니를 발굴한 은인이다. 전설적인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70)는 오랜 동안 버튼과 호흡을 맞춘 지음(知音)이다. 재즈계에서 가장 ‘핫한’ 드러머로 꼽히는 안토니오 산체스(40)는 막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미·일 재즈 디바 ‘맞짱’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재즈 보컬 카산드라 윌슨(56)과 게이코 리(46)는 페스티벌 마지막날(12일) 정면 충돌한다. 게이코 리가 먼저 오르고 휴식 이후 윌슨이 서는 만큼 서로의 무대에 대한 팬들의 반응에 귀를 쫑긋 세울 터. 윌슨은 12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30살 때인 1985년 재즈 전문 음반사인 JMT에서 데뷔했다. 1992년 그래미 최우수 재즈보컬 퍼포먼스상, 2009년에는 최우수 재즈보컬 앨범상을 받았다. 재일교포 3세인 게이코 리(한국명 이경자)는 우연히 재즈 아티스트 그레이디 테이트의 눈에 띄어 1995년 데뷔앨범 ‘이매진’(Imagine)을 발표했다. 맑고 미성이 대부분인 일본 재즈계에 묵직한 중저음대의 음색으로 입지를 다졌다. 재즈페스티벌과 교집합을 선뜻 찾기는 어렵지만 페스티벌 서막(9일)은 박칼린(44)이 책임진다. 탭 댄스와 노래 실력을 선보인다. 5만 5000~16만 5000원. (02)563-0595.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권력따라 움직인 세계 화폐 흥망사

    ‘1987년, 일본의 은행들은 전 세계 다국적 은행 자산의 35%를 장악했다. 일본의 빠른 성장세에 구미 국가들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자산 규모순으로 세계 10대 은행 가운데 7곳이 일본 은행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세계 10대 은행 가운데 일본 은행은 한곳만 남기고 모두 퇴출됐다. 일본 금융은 중상을 입었고, 그 뒤 잃어버린 10년 동안 원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일본이 치명타를 입은 이유가 미국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사냥터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 여겼다.’ ‘화폐전쟁, 진실과 미래’(류방승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가운데 한 대목이다. 총이 없을 뿐 이쯤 되면 사실상 전쟁이나 다름없다. 중국 공영방송 CCTV의 간판 경제프로그램인 ‘경제 30분팀’이 지은 책은 달러 등 세계를 호령하는 화폐의 탄생과 성공, 실패 과정을 파헤치며 세계 화폐의 현주소를 밝히고 미래 화폐전쟁을 예측한다. 각국의 화폐 가운데 가장 먼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된 것은 영국의 파운드였다. 뒤를 이어 달러와 마르크, 엔, 유로, 위안 등이 끊임없이 ‘샅바 싸움’을 벌였다. 보이지 않는 이 각축전 뒤엔 각국의 국력이 버티고 있다. 파운드나 달러가 기축 통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국가의 경제·정치·군사·외교·문화 방면의 힘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 이후, 각국의 ‘샅바 싸움’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과 대규모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으로 인해 벌어진 무역 불균형이 빚은 양국 간 환율 전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책은 실제 기축 통화의 역할을 한 화폐는 파운드와 달러밖에 없으며 이에 도전한 마르크나 엔은 국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중국도 국력을 키우는 것만이 위안을 좀 더 강력한 화폐로 만드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책은 이 밖에도 파운드를 달러로 대체하려는 미국의 모략, 약세였던 파운드가 세계 화폐로 우뚝 서게 된 배경, 엔이 세계 화폐 도약에 실패한 이유, 한때 달러보다 강세였던 마르크가 몰락하게 된 이유, 긴밀한 정치 관계를 맺었던 미국과 유럽이 화폐 발언권을 놓고 벌인 암투, 위안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 등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위안이 달러를 꺾고 기축 통화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까. 고래 싸움에 낀 한국으로서는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지, 아니면 냉정한 방관으로 어부지리를 얻어야 할지 따져봐야 할 때다. 1만 9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법인화 이끌고 ‘지젤 신드롬’ 터뜨린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법인화 이끌고 ‘지젤 신드롬’ 터뜨린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서울대 법인화로 사회가 시끄럽다. 지난해에는 국립 공연단체 법인화로 문화계가 시끌시끌했다. 이를 지켜보는 감회가 남다른 사람이 있다. 최태지(52) 국립발레단장이다. 2000년 법인 전환 결정으로 국립발레단이 진통을 겪을 당시, 그는 단장이었다. 그 후로 11년. 그는 ‘국립 철밥통’을 깬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 2월 정기공연 ‘지젤’로 국립발레단 창단 이래 사상 처음 전회·전석 매진 기록을 세워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이도 그다. 변화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최 단장을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세상, 한국말에 서툰 그녀를 비웃다 오타니 야스에.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인 최 단장의 일본 이름이다. 그녀의 말투에는 아직도 일본어 억양이 강하게 배어 있다. “지금도 제 말이 서툰데 10년 전에는 오죽했겠어요. 발레단이 법인으로 바뀌고 예산을 따내기 위해 당시 서초동에 있던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를 열심히 찾아다니며 브리핑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서툴다 보니 비웃음도 많이 샀어요. 자존심을 버렸죠. 제가 주저앉으면 우리 단원들이 무대에서 맘껏 공연할 수 없었으니까요.” ‘열번 찾아가면 (요구 예산) 한개는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공무원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국립발레단 활동 계획과 자구 노력을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많았지만 이를 꽉 깨물었다. 혼자 힘에 부치면 국립발레단 무용수들도 데리고 갔다. 법인 전환 이후 단원들도 다잡았다. “여러분이 무대를 찾은 관객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월급이 제대로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최고의 자질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따른 합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몰아세운 것 같기도 하다며 웃는 최 단장은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도망갈 순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정말 무서웠단다. “1996년에 단장으로 취임해 법인화 이전과 이후, 그리고 법인화 추진 당시 과정을 모두 겪은 사람이잖아요. 법인화 순간에는 솔직히 많이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했고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젤’ 성공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관객을 감동시키니 월급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발레 대중화 노력에 “슈퍼 상품이냐” 항의도 그래도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듬성듬성 비어 있는 객석 때문이었다. “공무원들 쫓아다니며 열심히 예산 따내 죽어라 연습해서 작품을 무대에 올려도 채워지지 않는 객석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는 최 단장. 그래서 그는 단장이 되자마자 맨 먼저 공연 횟수를 늘렸다. 한달에 한번씩 소극장 발레도 무료로 선보였다. 객석이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소극장 발레는 1997년부터 3년간 계속됐다. “당시만 해도 발레는 우아한 예술, 고급스러운 예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한 극장장은 제게 ‘발레가 무슨 슈퍼마켓 상품인 줄 아느냐’며 큰소리로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는 게 변치 않는 제 생각이에요.” TV 개그 프로그램 ‘발레리NO(노)’ 등 최근 우리 사회에 부는 ‘발레 신드롬’에 격세지감과 행복감을 동시에 느낀다는 최 단장은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도 그 열풍에 한몫한 것 같아 뿌듯하다.”며 웃었다. ‘발레 대중화의 주역’이라는 주위의 찬사에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한국발레 간판 김지영·김주원 키워내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에서 발레리나 하면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외에 그다지 알려진 이가 없었다. 법인화 시험대를 성공적으로 넘긴 최 단장이 “다이아몬드가 될 만한 재목 발굴”에 열중하는 이유다. 한국 발레의 간판 김지영·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은 그 ‘산물’이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재목들을 여러 공연에 데뷔시키는 등 기회를 줬습니다. 외국에서 공연을 가져올 때도 무조건 유명한 작품이 아닌, 단원들이 성장할 여지가 있는 작품 위주로 골랐죠. 힘든 경쟁 속에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남은 친구들이 지영이와 주원이에요.” 최 단장은 ‘지젤’ 때도 이은원이라는 20살의 다이아몬드를 발굴해 냈다. 프랑스 연출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예에게 주인공 지젤 역을 맡긴 것. 이은원은 최 단장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무대에서 증명해 냈다. 프랑스 연출가도 “최태지는 도사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비싼 레슨 이해 못해… 발레학교 설립 시급” “발레에 영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라면서 무용수에 적합하지 않은 체형으로 몸매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국립 발레학교를 서둘러 설립해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게 값비싼 개인 레슨이었어요. 콩쿠르와 입시 위주의 한국 발레 교육은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러자면 국립 발레학교를 서둘러 설립해야한다는 게 최 단장의 지론이다. 오는 10월 창작 발레 ‘왕자 호동’을 들고 이탈리아 무대에 도전하는 최 단장은 “세계와 당당하게 맞서려면 어려서부터 전문 무용수를 훈련시키는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왕자 호동’은 오는 22일 국내 무대(예술의전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데스크 시각] ‘기름값 100원 인하’ 관전법/김태균 온라인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기름값 100원 인하’ 관전법/김태균 온라인뉴스부장

    뛰는 물가를 잡고 싶은 정부의 절박한 사정을 현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 정부의 일시적인 가격 통제가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물가 불안으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지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민생 안정을 정권의 존립 기반으로 삼은 마당에 그까짓 경제학 교과서의 ABC쯤 잠시 접어둔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게다가 4·27 재·보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와 있지 않은가. 현 정권 출범 이후 계속된 고환율 정책이 가파른 물가상승을 이끌었다는 실증적 분석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지난해 말까지 한국의 달러 대비 환율 상승률은 주요 경제권 21개국 중 2위였고, 그것은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비교 대상국 1위로 끌어올렸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데 왜 물가 잡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정부를 자극하느냐는 질책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 초저금리 기조를 장기화시킴으로써 물가 불안을 부추겼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금물이다. 어차피 금리동결 의사봉을 계속 두드려댄 사람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니라 중앙은행 총재가 아니었던가. 고환율 정책으로 진짜 대박 난 업종은 전자나 자동차 산업인데 왜 재미도 별로 못본 우리들한테만 가격인하 압력을 가하느냐는 정유·통신·식품 업종의 볼멘소리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기업들은 늘상 그런 소리를 하기 마련이니까. 1970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취한 90일간의 물가동결 조치처럼 해외에서 실패한 정부 가격통제 사례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 역시 무시해도 좋다. 한국의 정부·기업 관계가 어디 미국과 같은가. 지금 정부가 벌이는 물가와의 전쟁은 이런 ‘전제’가 사전에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러둔다. 이해를 했다면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석달간 이어진 정부의 유가인하 전쟁이 별다른 알맹이 없이 오래된 대책의 리바이벌로 일단락된 게 대표적이다. 나라 곳간(유류세)은 손대지 않고 업자들의 수익구조만 건드리려던 게 애초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와 닿는 것은 없고, 내세울 거라곤 ‘휘발유·등유 ℓ당 100원 할인(그것도 3개월만)’뿐인 형국이다. 고작 이 정도 대책을 위해 대통령이 특별한 표현(“묘하다”)을 동원하고 관계부처 장관들이 번갈아 정유업계를 압박했던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정유업계는 7월까지 기름값을 ℓ당 100원씩 내리면 8000억원가량 손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만큼은 소비자 몫이 되겠다. 하지만 한달에 100ℓ를 넣는다고 해야 3개월간 3만원이다(석달 3만원에 대한 평가는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정부는 왜 ‘ℓ당 100원 인하’ 이상으로는 건져내지 못했을까. 업계나 경제학자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이라는 것, 어차피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것 아닌가. 전방위로 기업들의 팔을 비틀기로 했으면 대책 발표문의 공식 타이틀(석유시장 투명성 제고 및 경쟁 촉진방안)처럼 업계의 반발이 있더라도 그동안 별러왔던 시장구조 혁신에서 뭔가를 이뤄냈어야 했다. 이를테면 ‘석유 혼합판매’ 추진방침을 강하게 담지 못한 게 아쉽다. 혼합판매는 이를테면 SK에너지 간판을 걸고 GS칼텍스나 에쓰오일, 오일뱅크의 기름을 동시에 취급하는 것으로 석유 유통업 경쟁을 촉진하고 사업자 참여를 늘림으로써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는 ‘향후 검토과제’로만 분류했다. 기름값을 내리기로 한 마당에 업계에 이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3년 전 정권 출범할 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면서 가장 강조했던 게 규제완화와 시장기능의 회복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정공법을 제쳐두고 장사하는 사람들한테 적자를 강요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windsea@seoul.co.kr
  • “음악이 곧 내 삶… 공연 생각에 흥분”

    “음악이 곧 내 삶… 공연 생각에 흥분”

    그의 연주를 들었다면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표본’이란 평에 토를 달기가 쉽지 않을 터다. 나이 열일곱에 데뷔 음반으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1997)를 내놓더니, 2년 뒤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음반으로 프랑스 3대 음악상 가운데 하나인 디아파종상을 받았다. 2008년 쇤베르크·시벨리우스협주곡 음반은 발매 첫주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 쇤베르크 곡으로 빌보드에 1위로 데뷔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래미는 벌써 두 번이나 품었다. 날카로운 곡 해석과 함께 야윈 뺨, 도드라진 콧날, 날렵한 턱선에 창백한 낯빛까지 더해 ‘얼음공주’란 별명이 붙었다.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CEO)와 협연하는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32)과 이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질문에 따라 답변의 길이와 뉘앙스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때론 앨범 재킷의 냉랭한 표정이 떠오를 만큼 까칠했다. ‘얼음공주’란 별명에 대해 묻자 “그 별명은 꽤나 유치하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나 쓴다.”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음악과 한국 팬에 대한 애정을 전할 때는 자신의 유튜브 사이트(www.youtube.com/hilaryhahnvideos)에서 본 모습처럼 사랑스러웠다. 2008년 밴쿠버심포니와 협연 이후 3년 만에 내한하는 그는 “공연 생각에 벌써 흥분했다. 꼭 와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네 번째 생일을 한달 앞두고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정말 우연이다. 내가 살던 볼티모어의 동네에 ‘스즈키레슨’(일본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교육자 스즈키 신이치가 개발한 어린이 음악교수법) 간판을 내건 피바다음악원이 있었다. 이전까지 한번도 바이올린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쉽게 싫증을 내는데. -남달리 집중력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에도 접시에 남은 완두콩 한 개까지 남김없이 먹었다.(웃음) →1991년 볼티모어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메이저 데뷔를 했다. 긴장되지 않았나. -난 공연을 정말 사랑한다. 연습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다. →평생을 바이올린과 보낸 걸 후회한 적은 없나. 바이올린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단 하루도 없다. 음악이 곧 내 삶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시각적인 예술이나 창조적인 작업을 다루는 저널리스트가 됐을 것 같다. →당신의 완벽한 테크닉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건조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든 바라보는 관점은 제각각이다. 청중들도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으로 이해한다. →한국에서는 3년 만인데.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더 자주 오고 싶다. 공연에서 연주할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5번은 열살 때 처음 배웠지만 21년 동안 (곡 해석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뽑아내려 애쓴다. →공연을 놓치면 안 될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한국에 오려고 아주 오랜 시간 날아왔다. 여러분은 대문 밖으로 걸어나오기만 하면 된다(웃음). 꼭 함께해 달라. →쉴 땐 보통 뭘하나. -주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가을에 발표할 새 앨범 준비로 녹초라 쉬는 시간까지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 가끔은 내 귀도 휴식이 필요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인 사랑 방 ‘스타·청맥다방’ 복원

    한국 영화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충무로 스타다방과 청맥다방이 ‘한류스타 거리’ 조성과 맞물려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다. 중구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충무로 일대 한류스타의 거리 조성계획을 결정함에 따라 문화부 및 서울시와 예산 확보방안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구는 우선적으로 1960~70년대 영화인들의 아지트였던 스타다방과 청맥다방을 원래 자리에 되살린다. 다방 운영을 한류스타와 영화인들에게 맡겨 수익금 전부를 영화인들을 위해 활용할 계획이다. 두 다방은 40~50여년 전 영화회사 사무실이나 다름없던 곳이다. 전화가 아주 드물던 시절 배우와 감독, 제작진 등은 연락이 편한 다방으로 출근해 일을 처리했다. 당시 충무로3가 은막길 주변에 있던 스타다방은 영화배우, 청맥다방은 제작진들 차지였다. 이와 함께 구는 충무로 일대에 어지럽게 얽힌 전선과 정보통신망 등을 지하로 매설하는 지중화 사업을 통해 거리를 깨끗하게 단장하고,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보도도 확장한다. 특히 한류스타 거리에 맞도록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간판도 정비한다. 도로와 인접한 인쇄·출판 업소를 문화·관광시설로 전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앞서 문화부는 올해 신규사업으로 충무로에 한류스타 명판과 손도장, 미디어조형물, 소장품 전시관, 한류테마관, 3D 한류영상관, 독립영화관 등을 설치. 한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김영수 구청장 권한대행은 “한류스타 거리 지정은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해 우리나라 관광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면서 “충무로가 한류 부흥의 성지로 올라설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근처에 있는 남산N타워와 한옥마을, 서울광장 등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마스터스] 8인의 코리안 “그린재킷 입을 래”

    [마스터스] 8인의 코리안 “그린재킷 입을 래”

    ‘그린 재킷’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로 75회째를 맞는 명인들의 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오는 8일 미국 조지아주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7435야드)에서 열린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다. ‘맏형’ 최경주(왼쪽·41·SK텔레콤)를 비롯해 8명의 한국(계) 선수들이 출전한다. 역대 가장 많은 규모다. 197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장상 한국프로골프협회 고문이 오거스타에 첫발을 디딘 지 38년째인 올해 코리아 군단들은 그린 재킷을 걸칠 수 있을까. 최경주는 9년 연속 초청장을 받은 한국 골프의 간판이다. 2008년 소니오픈 우승 이후 PGA 투어에서 7번 우승했지만 마스터스와 인연은 없었다. 2003년 첫 출전에서는 공동 15위, 2004년엔 우승자 필 미켈슨(미국)에게 3타 뒤진 단독 3위에 그쳤다. 지난해엔 타이거 우즈(미국)와 4라운드 내내 동반 플레이를 펼치며 공동 4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최경주는 5일 “새 스윙에 익숙해졌고 컨디션도 좋다.”면서 상위권 진출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최경주는 1주일 전 열린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6위를 기록, 시즌 두 번째로 톱 10에 진입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네 번째로 도전하는 양용은(오른쪽·39)도 “이번에도 톱 10에 들겠다.”는 각오다. 지난해 공동 8위였다. 양용은은 오거스타에서 9홀 연습 라운딩 뒤 인터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연습해 왔기에 컨디션은 좋은 상태”라면서 “그린이 빠른 만큼 쇼트게임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지난해 깜짝 3위를 차지한 재미교포 앤서니 김(26·나이키골프)도 지난주 셸 휴스턴 오픈에서 공동 13위를 차지하는 등 올해도 돌풍을 이어갈 기세다. 케빈 나(28·타이틀리스트)와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상금왕 김경태(25·신한금융그룹)도 그린을 밟는다. 이 밖에 한국계 아마추어 3명이 대회 주최 측 초청으로 생애 처음 마스터스의 문을 두드린다. 지난해 브리티시아마추어대회 우승자인 정연진(21)과 US 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 우승자인 재미동포 라이언 김(22·한국명 김준민), 지난해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데이비드 정(21·스탠퍼드대)이 주인공이다. 미시간대에 재학 중인 라이언 김은 최근 골프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올해 마스터스의 주목할 신인 10명 안에 이름을 올렸다. 데이비드 정은 라이언 김과 함께 미 대학 골퍼들에게 최고의 영예로 평가되는 ‘벤 호건 어워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거리엔 다시 제멋대로 현수막·간판… ‘디자인 서울’ 뒷걸음”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거리엔 다시 제멋대로 현수막·간판… ‘디자인 서울’ 뒷걸음”

    지금껏 진행한 인터뷰 중에서 “안타깝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은 적이 있었나 싶다. 서울시 출입 기자로 처음 만났던 4년 전부터 줄곧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 줬던 권영걸(60·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2시간 동안 이 말을 십수번 반복했다. 2007년 초대 서울시 디자인총괄본부장으로 2년간 야심차게 추진한 ‘디자인서울 프로젝트’가 자신이 떠난 뒤 정체된 데 대한 아쉬움과 울분, 심지어 불쾌함을 갖고 있는 듯 느껴진다. 권 교수는 최근 무려 저서 5권을 한꺼번에 냈다. 사실 그를 만나 왕성한 집필력에 대해 들어볼 참이었다. 아직 공직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대부분의 시간을 책 홍보보다는 2년간 서울시에서 보낸 공직생활, 공공 디자인의 앞날을 풀어놓는 데 할애했다. ●40년 만에 맞은 디자인시대 “대학 다닐 때 많은 교수님들이 그랬어요.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면 디자인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사실 올 것 같지도 않았고, 오지도 않았죠. 40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야 그런 시대가 왔고, 그 중심에 제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권 교수는 ‘디자인 서울 사업’의 핵심이 된 당시를 이렇게 소회했다. “서울시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역사의 켜가 쌓인 이야기가 있는 도시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시민이 많은, 지식 총량이 아주 큰 도시이고요. 이런 기반이 있으니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고, 적용하면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죠.” 그런 확신을 정책에 녹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본부장 취임 전 서울시 관계자 3명에게 조언을 듣고, 오세훈 시장의 취임사부터 온갖 신문, 방송 인터뷰를 섭렵했다. 임기 2년을 압축적으로 활용하려면 시장의 의중을 꿰뚫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취임 후 첫 한 달은 직원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대신 방 안에 틀어박혀 ‘정책의 길’을 찾는 시간으로 삼았다. 그 다음 3개월은 간부회의에서 각 국실이 보고하는 내용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충고하면서 실력을 보여 주고, 이후 6개월은 도덕성으로 신뢰를 얻었다. 서울시는 어떤 사업이든 주변에 많은 업체들이 있고, 그 업체들과의 관계에서 추호의 잡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소위 ‘1-3-6 전략’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실력과 신뢰를 쌓았다. “오 시장도 많은 역할을 해주었죠. 총괄본부장을 부시장급으로 두면서 힘을 실어주고, 모든 사업을 디자인의 렌즈와 언어로 보라고 강조하면서 서울시 행정에 디자인을 접목할 바탕을 탄탄히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다시 원점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게 그 한숨의 근간이다. ●“디자인 서울 어디 갔나… 한숨만” 디자인 도시의 허브가 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시민의 쉼터가 되는 광화문광장 등 수백억원이 들어간 큰 사업을 많이 했지만 그가 무엇보다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는 것은 ‘디자인 거리 사업’이다. 서울시 안에 디자인 거리 50곳을 결정하고, 이 거리를 정비하는 기간으로 3년을 투자했다. “거리는 중요한 곳입니다. 시민이라면 단 하루도 피할 수 없는 공간이 거리거든요. 이 거리를 걷고 싶게 만들고, 머물고 싶게 하면 문화가 소통되고, 사람들이 몰리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는 것이죠.” 디자인 서울 사업에 열중하는 한편 ‘되돌아가지 않는 개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도 매진했다. 공공건축, 공공공간, 공공시각매체 등 5개 분야에서 규제와 권장을 엄밀하게 규정했고, 2008년부터 적용했다. 많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서울시는 도시 디자인 측면에서 변화를 이루어 냈다. 2007년 10월에는 세계 디자인단체 총연합회가 지정한 ‘2010 세계 디자인수도’로 선정됐고, 서울역 첨단미디어 버스 정류장은 ‘2010 IDEA 디자인어워드’와 ‘iF 디자인어워드’, ‘레드 닷(Red dot)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모두 휩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거리를 보면 ‘울분’을 느낀다고 했다. “현수막은 다시 걸리기 시작했고,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은 간판도 나타나고 있어요. 길에 놓인 시설물들은 관리되지 않고, 길 안내 사인 표준색상도 완전히 무시되고 있지요.” 그는 “선진도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3년, 5년, 10년, 그 이상의 흔들림 없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실종된 듯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오히려 지방에서는 공공디자인 붐이 이는데, 서울에서는 식었다. 먼저 시의 의지가 질책받아야 하고, 디자인 가치에 대해 덜 생각하는 시의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끊임없는 저술… 방점은 ‘사제동행’ “차라리 서울시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잘라 말한다. “2년 동안 서울시에서 야전생활을 하면서 내가 ´형질변경´이 될까봐 걱정했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죠. 이제는 외곽에서 공간 디자인이라는 언어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그 큰 발자국은 ‘공간 디자인의 언어’로 세상에 나왔다. 2001년에 낸 ‘공간 디자인 16강’의 후속편인데, 그동안 배출한 직계제자 중 대학 전임교수 40명과 함께 썼다. “맹자는 군자삼락 중 세 번째 즐거움은 ‘득천하영재이교육(得天下英材而敎育)’이라고 했습니다. 천하 영재를 얻어 가르치고 배출하는 게 즐거움인데, 이런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젠 나눠야죠. 제가 틀을 만들고 각자의 연구 영역을 미시적·입체적으로 썼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한 덩어리가 돼서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학문의 으뜸이라는 말이 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제동행’이고 그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이 책과 함께 ‘공공디자인행정론’, ‘컬러 프랙티쿰’, ‘쉬운 색채학’, ‘리더는 디자인을 말한다’도 냈다. 이 중 ‘리더는’은 유일한 실용서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디자인은 낭비이고, 겉치레이며 전시행정이라는 등 오해와 편견이 난무한 모습을 보며 집필을 결심했다. 세계적인 리더들이 디자인에 대해 어떤 사고를 했고, 국가·도시·기업 운영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보여 주는 책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설득력을 담고 정확도를 기하기 위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명사 100여명이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했는지 연도까지 밝혔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그는 대체 왜 이렇게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하는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를 떠올린다. 당시 교수들 사이에는 ‘책을 낼 것이냐, 짐을 쌀 것인가’라는, 교수에게는 협박과 같은 말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이 잠재의식에 박혀 교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늘 책을 쓰고, 논문을 낸다는 것이 옳다고 돼있다고 했다. 그렇게 1986년에 첫 책을 썼고, 25년 만에 서른 번째 책을 출간했다. 여기서 끝일까. 그는 3권을 더 준비 중이라고 했다. 어떤 책인지 궁금증이 일어 재차 묻자 “제목이나 내용은 비밀이지만 1권은 국민 디자인 도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마도 그의 서른한 번째 책은 서울시가 아닌, 대한민국을 겨냥한 거대 담론이 아닐까.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권영걸 교수는 ●195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공업디자인 학사·미 UCLA 대학원 디자인 석사·고려대 대학원 건축공학박사 ●1979년부터 동덕여대·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서울대 미술대학 14~15대 학장 ●2007~2009년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 역임 ●황조근정훈장 수훈 ●현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인터뷰 동영상은 8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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