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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기춘, 육군훈련소서 영창·퇴영 조치…무슨 일 했길래

    왕기춘, 육군훈련소서 영창·퇴영 조치…무슨 일 했길래

    한국 남자 유도의 간판인 왕기춘 선수가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육군훈련소 입소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적발돼 8일간 영창 처분을 받은 뒤 훈련소에서 ‘퇴영’(비정상적인 퇴소) 조치됐다. 육군 관계자는 13일 “지난달 10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왕기춘 선수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적발돼 같은 달 31일 영창 징계를 받고 이달 7일 부대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왕기춘 선수는 영창 징계에 따른 교육시간 미달로 훈련소에서 퇴영 조치됐으며 앞으로 육군훈련소에 재입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왕기춘 선수의 휴대전화를 함께 사용한 훈련병들도 영창 및 군기교육대 입소 등의 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왕기춘 선수는 병역혜택을 받아 육군훈련소에서 4주간의 교육만으로 병역 의무 이행을 완료하고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육군 관계자는 “왕기춘 선수는 병무청의 입영통지 절차를 다시 거쳐 육군훈련소에 재입소해 4주간의 교육훈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창 뒤 재입소 위기 왕기춘 ‘나이트클럽 부킹사건’은?

    영창 뒤 재입소 위기 왕기춘 ‘나이트클럽 부킹사건’은?

    한국 유도 간판스타인 왕기춘(25)이 육군 훈련소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해 영창 처분을 받고 훈련소 재입소 위기에 놓인 가운데 과거 나이트클럽 폭행사건까지 회자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왕기춘은 지난해 12월 10일 육군 훈련소에 입소한 뒤 휴대전화를 몰래 사용했다가 적발돼 12월 31일부터 8일간 영창 징계를 받았다. 왕기춘은 영창 처분을 마무리 지은 뒤 퇴영했지만 훈련소에 재입소해야 한다. 네티즌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2009년 왕기춘이 연루된 나이트클럽 부킹 사건까지 부각시키고 있다. 왕기춘은 당시 경기도 용인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22세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당시 왕기춘은 해당 여성과 시비가 붙어 욕설을 주고 받다가 한 차례 뺨을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네티즌들은 “왕기춘 4주를 못참고 휴대전화 사용하다 영창가다니”, “왕기춘 영창 힘들었겠다”, “왕기춘 나이트클럽에서도 폭행으로 연루됐는데 비난받을 만 한 듯”, “왕기춘 다시 훈련소 가야되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디자인 서울]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세련된 서울’에서 ‘인간 친화적 서울’ 로

    [커버스토리-디자인 서울]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세련된 서울’에서 ‘인간 친화적 서울’ 로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디자인 서울’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오세훈 전 시장의 ‘세련된 도시 서울’에서 ‘사람 중심의 인간 친화적 도시 서울’로, 정책 방향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10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은 세종로 차없는 거리 조성과 한양도성 복원 등 사람 중심의 인간 친화적 도시 복원에 집중하고 있다. 2006년 7월부터 5년간 한강르네상스와 뉴타운 개발 등을 추진한 오 전 시장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오 전 시장은 취임 첫해 “서울시를 매력 있는 세계적인 도시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디자인이 살 길’이란 표어를 내걸고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디자인총괄본부’를 꾸리고, 2008년에는 서울디자인올림픽을 개최했다. 도시에 디자인의 옷을 입히려는 시도는 다양한 변화를 몰고 왔다. 2500개의 관련 기업과 2만 4000명의 인력을 확충한다는 계획부터 거리 환경 개선사업, 대규모 조성 사업 등이 동반됐다. 서울시내 50곳을 디자인거리로 지정하고 보도블록, 가드레일, 가로등, 간판 등에 통합디자인을 제공하면서 거리 모습을 변모시켰다. 거리를 단순히 목적지로 가게 하는 수단이 아닌, ‘걷고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런 시도를 다른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후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곳도 디자인한다’는 취지 아래 설치한 120다산콜센터 역시 자치단체들이 아류를 만들면서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힌다. 이 밖에 여성 화장실 개선사업, 새로운 서울 상징색 도입, 우수 공공디자인 인증제, 디자인 중심의 건축심의 등도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사업은 대부분 좌초되거나 비판에 직면해 있다. 82년 만에 동대문운동장을 역사 속에 묻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DDP)를 비롯해 광화문광장, 용산국제업무지구, 남산르네상스, 플로팅아일랜드, 한강예술섬 등의 사업이 그렇다. 축구장 3개 크기의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 육조거리를 재현한 파격적인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400여억원을 들인 서울의 상징 광장이란 찬사와 함께 도심 교통난 유발의 주범이란 극단적 평가를 받고 있다. 오 전 시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한강르네상스 사업 역시 빛을 잃었다. 한강르네상스의 상징적인 건물인 세빛둥둥섬은 서울시 감사 결과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직원이 중징계를 받았고, 최근 용도를 변경해 재개방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결정판이던 용산역세권개발사업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시행사의 부도로 막을 내렸다. “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면서 박 시장이 내놓은 ‘서울건축선언’으로 오 전 시장의 ‘디자인서울’ 정책은 사실상 사라졌다. 무난한 평가를 받았던 디자인거리 조성 사업조차 2007년 32억원, 2008년 80억원에 이르던 예산이 2012년 9000만원, 2013년 83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사람과 역사 중심의 정책으로 서울을 가꾸려는 박 시장의 철학에 맞추다 보니 ‘디자인서울’ 정책은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셔틀콕 간판 성지현 코리아오픈 8강 ‘순항’

    여자단식 간판 성지현(새마을금고)이 2연패를 향해 순항했다. 세계 5위 성지현은 9일 서울 방이동 핸드볼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4 빅터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프리미어’ 여자단식 16강전에서 일본의 다카하시 사야카를 2-0(21-14 21-19)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지난해 8년 만에 여단 챔피언으로 우뚝 선 성지현은 이로써 2년 연속 대회 정상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한국의 여단 2연패는 방수현(1993~94년) 이후 20년 만의 경사가 된다. 남자복식 간판 이용대(삼성전기)-유연성(국군체육부대)은 대표팀 후배 신백철(김천시청)-이상준(백석대)을 2-0(21-17 21-12)으로 제치고 8강에 안착했다. 하지만 이용대는 신승찬(삼성전기)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 16강전에서는 런던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세계 2위인 중국의 슈첸-마진에 0-2(6-21 17-21)로 완패했다. 유연성-장예나(김천시청) 조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1위 장난-자오윤레이(중국)에 0-2로 무너졌다. 여자복식의 장예나-김소영(인천대)은 인도의 자왈라 구타-아시위니 폰나파 조를 2-0(21-18 21-12)으로 제압, 8강에 올랐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국내 첫 장애인 전용 사진관 연 나종민씨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국내 첫 장애인 전용 사진관 연 나종민씨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재미가 있고 그것을 더 개발하면 약간의 돈도 따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성세대들도 분명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너무 돈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1년 돈벌이 안해도 큰일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라봄사진관 나종민(51)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전용 사진사다.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들의 사진을 찍어 준다. 덕분에 지난해 12월 24일에는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묵직한 하얀 돼지저금통을 들고 서울 마포구 양화로 8길 17-25 그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향하는…. 우리가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바라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 1000개가 들어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나 대표는 “내가 하는 작은 일이 이렇게 울림으로 돌아오다니”라며 감격했다. 그가 장애인 사진관을 구상하게 된 것은 201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애인 체육대회에 자원봉사 갔다가 한 어머니가 사진관에서 왔냐고 물어 자원봉사라고 답한 게 계기가 됐다. 어머니는 장애인을 둔 집에는 변변한 가족사진 한 장 없다며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가족사진에 어울리는 표정을 잡는 데 품이 많이 들어 사진관에서 장애인들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것도 취미와 사회공헌의 접목이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고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1월 서울 성북구 동서문로 돈암초등학교 인근 건물 1층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바라봄’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봄’을 영어로 쓰면 ‘BOM’이 아니라 ‘VOM’(viewfinder of mind)이다. ‘마음을 바라보는 카메라 창’이라는 뜻이다. 같은 해 3월 인터넷 모금을 통해 300만원을 모으고 장애인 단체의 신청을 받아 30가구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 소아마비, 다운증후군, 자폐아 등 모두 100여 가족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장애인 가족 사진 찍기는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자폐아의 경우 사진관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꺼린다. 설사 들어왔다 해도 조명 앞에 서지 않으려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기도 한다. 장애인들과 눈길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얼굴도 찡그러지고 좋은 사진은 물 건너간다. 이 때문에 사진 찍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200~300번 셔터를 눌려야 한다. 1~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얼마 전 80대 노모가 60대 소아마비 환자인 아들과 함께 사진관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노령연금으로,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각각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맑고 깨끗했다. 비밀은 곧 밝혀졌다. 사진을 찍고 난 뒤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에게 기부를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두런두런 했다. 오히려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왜소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그의 베풂은 마음이 담긴 답례로 돌아온다. 하얀 저금통은 물론 고가의 장애인 전용 의자를 받기도 했다. 스마트폰에는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너무 기쁘네요”라는 문자가 연신 날아온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본받았다. 명문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돈 받고 가르치는 과외는 하지 않겠다며 고교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후배 2명을 추천받아 무료로 학과 공부를 지도해 주었다. 그는 “나눔이 아들에게 전염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1963년생에 82학번인 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다.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에 21년 종사해 오다 2007년 은퇴했다. 직장인으로서는 한창 때인 45살이었으니 승진, 성공, 출세의 사다리에서 일찍 내려온 것이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영업능력을 발휘,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에 올라 샐러리맨들이 부러워하는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회의를 느꼈다. 낙천적, 긍정적 성격이지만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데다 직원들을 관리하며 통솔하는 자리보다 영업 현장에서 직접 뛸 때가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제2의 인생은 없을까 고민하다 사표를 냈다. “솔직히 재무적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축해 둔 것도 조금 있고 국민연금도 충실히 부었고 집도 있으니 여차하면 주택모기지도 가능해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원금 까먹지 않고 지내려고 애쓰는데 있는 것 쓰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5년 정도 더 일하면 2억~3억원을 모을 수 있었겠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 둔 것이 큰 힘이 됐다. 2008년 한 해는 뒹굴뒹굴했다. 집에서 책을 보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무료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그 역시 아침에 일어나면 나갈 곳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 줄 명함이 없다는 생각에 한동안 재취업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취업은 일시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자’로 모아졌다. 2009년 6개월간 성북구에 있는 사설 학원에서 사진을 배웠다. 평소 하고 싶은 것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가족 사진, 풍경 사진을 찍으면서 복습했다.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니 재미도 있고 쉽게 빨리 배울 수 있었다. 2010년 3월에는 희망제작소 행복설계 아카데미에서 은퇴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컨드 라이프 교육을 받았다. 취미와 사회공헌의 접목은 여기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자원봉사를 나가 장애인 단체의 행사사진을 찍어 주면서 해법을 모색했다. 베이비부머는 정해진 길을 걸어온 세대들이다. 상급학교 진학, 명문대 입학, 졸업, 취직 등 주어진 길을 갔을 뿐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의 일탈은 없었다. 나 대표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 실패를 해도 충격이 적다”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치킨 집을 열었다 가게를 접으면 큰돈을 날리지만 악기 같은 것은 배우다 그만둬도 리스크는 크지 않다. 30~40년의 긴 노후가 기다리고 있는 만큼 한두 번 실패한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1~2년, 2~3년 더 좋아하는 것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제3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과거의 지위나 직책 등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어떻게 걸을 수 있겠습니까. 베이비부머는 성장시대를 살다 보니 부족함 없이 지낸 세대입니다. 그래서 물질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머릿속에서 돈과 수익만 떨쳐 버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게 문제입니다. 직장생활을 20년 정도 했으면 웬만한 변화는 헤쳐 나갈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사진 봉사의 영역을 장애인에서 소외계층으로 넓히기 위해 지난해 11월 합정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틈틈이 강연도 나가고 재능 기부도 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도 열면서 바쁘게 지낸다. “몸은 바쁘고 일은 직장 다닐 때에 비해 10배 더 하지만 스트레스받지 않고 재미있어서 좋다”는 그는 사회공헌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외부 행사 출장도 열심히 나가고 협찬을 위해 윤리경영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나 공모전을 여는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다니고 있다. 올봄에는 바라봄을 사단법인이나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할 예정이다. stslim@seoul.co.kr ■퇴사 후 나 대표가 ‘걸어온 길’ ▲2007년 11월 퇴사 ▲2008년 빈둥빈둥 지냄 ▲2009년 8월 사진 교육 ▲2010년 3월 희망제작소 행복설계 아카데미 교육 ▲2010년 5월 장애인단체 자원봉사 시작 ▲2011년 5월 장애인 사진관 구상 ▲2012년 1월 서울 성북구 동서문로에 바라봄사진관 개관 ▲2013년 11월 사진관 마포구 합정동으로 이전 ▲2014년 3~4월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 예정
  • 11일, 이상화가 이상화 넘고…21일, 김연아가 김연아 넘고

    11일, 이상화가 이상화 넘고…21일, 김연아가 김연아 넘고

    한국은 메달 순위에서 3회 연속 ‘톱 10’ 진입을 노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메달 4개 이상을 따 종합 7위 안에 든다는 게 이번 대회 목표다. 첫날부터 메달 사냥에 나선다. 남자 빙속 장거리 간판 이승훈(26·대한항공)이 개막일인 8일 오후 8시 30분(이하 한국시간) 5000m 경기에 출전한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한국 첫 메달의 주인공도 바로 그였다. 이승훈은 열흘 뒤인 18일 오후 10시에는 1만m 2연패에도 도전한다. 10일과 11일에는 금메달 소식을 기대해도 좋다. 먼저 10일 오후 10시 남자 빙속 단거리 스타 모태범(25·대한항공)이 500m 2연패에 나선다. 이튿날에는 ‘빙속 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가 출격한다. 오후 9시 45분 여자 500m에서 2연패를 벼른다. 지난해 세계 기록을 네 차례나 갈아치운 이상화의 상대는 ‘이상화’ 자신뿐이다. 12일과 13일 모태범과 이상화는 각각 남녀 1000m에도 출전해 2관왕을 노린다. 쇼트트랙은 15일 오후 7시 심석희(17·세화여고)가 여자 1500m에 출전한다. 심석희는 2012~13 시즌 시니어에 데뷔, 이 종목 10차례의 월드컵에서 9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18일에는 여자대표팀이 3000m 금빛 계 주를 펼친다. ‘피겨 여왕’의 마지막 연기는 20일 시작된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김연아(24)는 20일 0시 쇼트프로그램, 21일 0시 프리스케이팅에 나선다. 김연아가 2연패를 달성하면 바로 ‘전설’이 된다. 지금까지 올림픽 여자 싱글 2연패를 일궈낸 선수는 소냐 헤니(노르웨이·1924~1932년 3연패)와 카타리나 비트(동독·1984, 1988년) 둘뿐이다. 22일 오전 1시 30분부터는 쇼트트랙 여자 1000m, 남자 500m, 남자 5000m 계주가 이어져 한국 선수들의 추가 메달 낭보가 기대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용대, 상큼한 스타트

    한국 ‘셔틀콕’의 간판 이용대(26·삼성전기)가 상큼한 스타트를 끊었다. 이용대는 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핸드볼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4 빅터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프리미어’ 혼합복식 32강전에서 신승찬(20·삼성전기)과 짝을 이뤄 대표팀 후배 김대선(한국체대)-김지원(제주여고) 조를 2-0(21-18 21-13)으로 완파해 16강에 선착했다. 이용대는 유연성(국군체육부대)과 나선 남자복식에서도 홍콩의 찬윈룽-리춘헤이를 2-0(21-9 21-9)으로 가볍게 제치고 16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는 이용대-유연성의 남복은 물론 이용대-신승찬의 혼복 가능성을 타진할 기회여서 관심을 더한다. 이용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정재성과 짝을 이룬 남복에서 1회전 탈락의 충격을 받았지만 이효정과의 혼복에서 깜짝 금메달을 일궜다. 당시 승리의 ‘윙크 세리머니’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이용대는 이효정의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혼복을 접고 주종목 남복에 ‘올인’했다. 런던에서 동메달을 딴 이용대는 정재성의 은퇴로 고성현과 팀을 이뤘지만 지난해 잇단 부진에 허덕였다. 다급해진 이득춘 감독 등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이용대의 파트너를 유연성으로 전격 교체하고 그동안 뛰지 않았던 혼복에도 이용대를 투입하는 수술을 감행했다. 이용대의 2개 종목 투입이 체력 부담의 우려를 낳았지만 이용대는 “두 종목을 뛰면 컨디션 조절에 더 도움이 된다”며 오히려 반겼다. 대표팀은 안방 아시안게임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올림픽 금메달을 겨냥한 이용대의 파트너를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어린 신승찬을 낙점했다. 경험은 부족하나 장신(171㎝)에 파워까지 겸비한 것이 주효했다. 신승찬은 전주 성심여고 시절 주니어 세계선수권 여복 2연패를 달성한 차세대 주역이다. 5개월째 호흡을 맞춰 온 이-신 조에는 이번 대회가 중요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기대를 모은 남복의 김사랑-김기정(삼성전기)은 가무라 다케시-소노다 게이고(일본) 조에 충격의 0-2 패배를 당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미녀 파이터 송가연, ‘로드걸’ 채보미와 가슴골 셀카

    ‘미녀 파이터 송가연, ‘로드걸’ 채보미와 가슴골 셀카

    ‘미녀 파이터’ 송가연과 로드FC의 라운드걸 채보미의 셀카가 화제다. 화제가 된 사진은 송가연이 과거 로드FC 라운드걸 시절 동료 채보미, 임지혜와 함께 찍은 것이다. 풍만한 가슴이 드러난 라운드걸 의상을 입은 송가연과 채보미는 임지혜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미모를 뽐내 시선을 모았다. 송가연은 지난 7일 방송된 XTM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윤형빈의 제안으로 ‘방구석 파이터’ 정한성 씨와 대결에 나섰다. 송가연은 7일 방송된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MC 윤형빈의 즉석 제안으로 고등학생 정한성군과 파이터 대결을 했다. 정군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종합격투기를 배우고 있는 이른바 ‘방구석 파이터’로 소개됐다. 송가연은 예쁜 외모와는 달리 거칠게 정군을 몰아붙이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 경력을 갖고 있는 송가연을 일반인 고교생이 상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타격공방 중 송가연에게 밀린 정군이 넘어지면서 양쪽은 그라운드 상황에 돌입하자 심사위원들은 급히 시합을 중단했다. 남녀가 바닥에 뒤엉켜 그라운드 공방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여 방송에 부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군이 미성년자여서 더욱 그랬다. 송가연은 국내 최초 여성 종합격투기 선수 겸 로드FC 라운드걸로 활약 중이며 한국 종합격투기의 간판으로 과거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적이 있는 서두원이 대표로 있는 ‘서두원짐’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채보미 역시 로드FC 라운드걸 활동은 물론 모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가연 고교생과 스파링하다 바닥에서 민망한 자세 나오자 …

    송가연 고교생과 스파링하다 바닥에서 민망한 자세 나오자 …

    케이블 채널 XTM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 출연한 ‘미녀 파이터’ 송가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송가연은 7일 방송된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MC 윤형빈의 즉석 제안으로 고등학생 정한성군과 파이터 대결을 했다. 정군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종합격투기를 배우고 있는 이른바 ‘방구석 파이터’로 소개됐다. 송가연은 예쁜 외모와는 달리 거칠게 정군을 몰아붙이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 경력을 갖고 있는 송가연을 일반인 고교생이 상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타격공방 중 송가연에게 밀린 정군이 넘어지면서 양쪽은 그라운드 상황에 돌입하자 심사위원들은 급히 시합을 중단했다. 남녀가 바닥에 뒤엉켜 그라운드 공방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여 방송에 부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군이 미성년자여서 더욱 그랬다. 송가연은 국내 최초 여성 종합격투기 선수 겸 로드FC 라운드걸로 활약 중이며 한국 종합격투기의 간판으로 과거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적이 있는 서두원이 대표로 있는 ‘서두원짐’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얼짱주먹 송가연 고교생과 난투극 벌이다 쓰러져 민망한 자세 나오자 …

    얼짱주먹 송가연 고교생과 난투극 벌이다 쓰러져 민망한 자세 나오자 …

    ‘미녀 파이터’ 송가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송가연은 7일 방송된 케이블 채널 XTM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MC 윤형빈의 즉석 제안으로 고등학생 정한성군과 파이터 대결을 했다. 정군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종합격투기를 배우고 있는 이른바 ‘방구석 파이터’로 소개됐다. 송가연은 국내 최초 격투기 선수 겸 로드FC 라운드걸인 ‘로드걸’로 활약중이며 미모와 실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가연은 예쁜 외모와는 달리 거칠게 정군을 몰아붙이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 경력을 갖고 있는 송가연을 일반인 고교생이 상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타격공방 중 송가연에게 밀린 정군이 넘어지면서 양쪽은 그라운드 상황에 돌입하자 심사위원들은 급히 시합을 중단했다. 남녀가 바닥에 뒤엉켜 그라운드 공방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여 방송에 부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군이 미성년자여서 더욱 그랬다. 경기가 끝난 후 송가연은 “혼자 연습한 것치고는 잘하는 것 같다”고 상대를 호평했다 송가연은 국내 최초 여성 종합격투기 선수 겸 로드FC 라운드걸로 활약 중이며 한국 종합격투기의 간판으로 과거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적이 있는 서두원이 대표로 있는 ‘서두원짐’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가연 채보미 아찔한 가슴골 ‘셀카’…미모 대결 승자는 누구?

    송가연 채보미 아찔한 가슴골 ‘셀카’…미모 대결 승자는 누구?

    ‘미녀 파이터’ 송가연과 로드FC의 라운드걸 채보미의 셀카가 화제다. 화제가 된 사진은 송가연이 과거 로드FC 라운드걸 시절 동료 채보미, 임지혜와 함께 찍은 것이다. 풍만한 가슴이 드러난 라운드걸 의상을 입은 송가연과 채보미는 임지혜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미모를 뽐내 시선을 모았다. 송가연은 지난 7일 방송된 XTM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윤형빈의 제안으로 ‘방구석 파이터’ 정한성 씨와 대결에 나섰다. 송가연은 7일 방송된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MC 윤형빈의 즉석 제안으로 고등학생 정한성군과 파이터 대결을 했다. 정군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종합격투기를 배우고 있는 이른바 ‘방구석 파이터’로 소개됐다. 송가연은 예쁜 외모와는 달리 거칠게 정군을 몰아붙이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 경력을 갖고 있는 송가연을 일반인 고교생이 상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타격공방 중 송가연에게 밀린 정군이 넘어지면서 양쪽은 그라운드 상황에 돌입하자 심사위원들은 급히 시합을 중단했다. 남녀가 바닥에 뒤엉켜 그라운드 공방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여 방송에 부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군이 미성년자여서 더욱 그랬다. 송가연은 국내 최초 여성 종합격투기 선수 겸 로드FC 라운드걸로 활약 중이며 한국 종합격투기의 간판으로 과거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적이 있는 서두원이 대표로 있는 ‘서두원짐’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채보미 역시 로드FC 라운드걸 활동은 물론 모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가연, 고교생과 스파링 도중 민망한 자세로…

    송가연, 고교생과 스파링 도중 민망한 자세로…

    케이블 채널 XTM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 출연한 ‘미녀 파이터’ 송가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송가연은 지난 7일 방송된 ‘주먹이 운다-영웅의 탄생’에서 MC 윤형빈의 즉석제안으로 고등학생 정한성군과 파이터 대결을 했다. 정군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종합격투기를 배우고 있는 이른바 ‘방구석 파이터’로 소개됐다. 송가연은 예쁜 예쁜 외모와는 달리 거칠게 정군을 몰아붙이며 뛰어난 기량을 드러냈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 경력을 갖고 있는 송가연을 일반인 고교생이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결국 타격공방 중 송가연에게 밀린 정군이 넘어지면서 양쪽은 그라운드 상황에 돌입하자 심사위원들은 급히 시합을 중단했다. 남녀가 바닥에 뒤엉켜 그라운드 공방을 하는 것은 방송에 부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송가연은 국내 최초 여성 종합격투기 선수 겸 로드FC 라운드걸로 활약 중이며 한국 종합격투기의 간판 서두원이 대표로 있는 ‘서두원짐’에서 소속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엔저 쇼크] 엔고때 웃던 간판기업들 대처방안은

    [엔저 쇼크] 엔고때 웃던 간판기업들 대처방안은

    새해 벽두부터 엔저(円低)가 화두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우리나라 수출 전반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벌써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수출 관련 업종의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까지 새어 나오고 있다. 6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연평균 엔·달러 환율이 현재와 같은 105엔으로 절하되면 우리나라의 총수출은 전년 대비 2.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엔화 가치가 115엔까지 떨어지면 전체 수출은 무려 4.0% 각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철강, 기계, 자동차, 석유화학, 정보기술(IT) 등 수출 주력 업종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했다. 우려는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자동차 부문에선 최근 국내 산업의 수출을 이끌었던 현대·기아차가 엔저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동차업체는 벌써 엔저를 이용한 마케팅전을 펼친다. 이미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서 캠리의 무이자할부 기간을 연장(12개월→13개월)하는가 하면, 전기차인 프리우스 플러그인(PHEV) 모델 가격도 약 2000달러 내렸다. 닛산도 주력 모델을 중심으로 가격을 최대 10%까지 낮췄다.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역시 엔저 후폭풍과 지난해 4분기 실적 우려 등으로 올 들어 주가가 5%나 급락했다. 전기전자, 석유화학, 조선업계 등 수출 기업이 예외 없이 엔화 약세의 영향을 입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같은 442억 달러(약 46조 4000억원)에 달하는 무역수지 흑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엔저는 과거에도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2005년 1분기부터 2007년 1분기까지 2년간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최대 760엔대까지 내려가면서 당시 우리 기업의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여파는 전체 산업에 걸쳐 나타났다. 2004년 6.75%를 기록했던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2005년 5.86%로 떨어진 데 이어, 2006년 5.24%까지 내려앉았다. 특히 수출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2년 사이 반 토막 났다. 2004년 8.23%에서 2005년 5.62%로 급락한 데 이어, 2006년엔 4.90%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엔화가 내리막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이미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은 12%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엔고 덕에 호황을 누려 온 업계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자업체 임원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연구·개발 등에 과감한 투자를 못한 게 현 상황을 불러온 이유 중 하나”라면서 “호시절 체질 개선을 못한 점에 있어서는 기업도 할 말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해법은 다름 아닌 일본에 있다’고 지적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5년 이상 슈퍼 엔고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일본의 선도 기업은 꾸준히 제품 기술력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여 ‘제2의 도약’을 준비했다.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업들은 환율 탓을 하겠지만 결국 책임론에서 기업도 자유롭지는 못하다”며 “환율은 늘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 한국 주력 수출품을 완전한 하이테크로 만들어 경쟁력을 갖춰야 했는데 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반도체나 휴대전화 부문은 한국의 높은 기술 경쟁력으로 인해 일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을 철수하다시피 할 정도인 만큼 비교적 엔저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해 3~4년 전 가격이 좋았을 때만 생각하지 말고 기업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걷기 편해진 명물거리 연세로 깔끔한 간판에 젊음의 메카로

    걷기 편해진 명물거리 연세로 깔끔한 간판에 젊음의 메카로

    “명색이 문화지구인데 지금껏 이름에 걸맞지 않았죠. 그런데 간판들을 싹 바꾼 것만으로도 마치 딴 곳이 된 듯해요.” 6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는 강모(45)씨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신촌 연세대 앞 굴다리에서 지하철 신촌역에 이르는 550m 구간이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로 재탄생한 모습을 지켜본 소감이다. 서대문구는 이날 ‘신촌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개통에 맞춰 간판 개선사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간판 개선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이다. 개통식에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박원순 시장, 변녹진 구의회 의장, 우상호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번 사업으로 169개 업소의 간판이 모두 교체됐다. 구는 연세로 간판개선 주민위원회와 함께 1개 업소가 여러 개를 내걸어 어지럽게 설치된 간판을 규격과 디자인에 맞게 1업소 1간판으로 말끔하게 개선했다. 고층빌딩에 무질서하게 줄 지어져 있던 돌출 간판을 연립형 간판으로 정리하고 시민통행에 불편을 주는 지주 간판은 모두 철거했다. 오래된 건물에 대해 도색작업도 병행했다. 구는 신촌 명물거리에도 연초 간판 개선작업 계획을 세워 오는 6월 착공, 170여개 업소의 간판을 모두 교체한다. 대중교통전용지구는 기존 4차로를 2차로로 줄여 보도 폭을 넓혔다.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과 긴급차량 통행만 허용된다. 진입 땐 승용차 4만원, 승합차 5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시는 자가용·택시 등이 진입하지 못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신촌 기차역(경의선) 인근 굴다리 앞에 교차로를 신설해 우회하도록 만들었고 신촌 로터리와 연세대 입구 신호체계도 조정했다. 시는 연세로의 교통 환경 개선으로 1990년대 활발했던 신촌의 문화와 상권 부흥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세로 보행자 구역에 자유로운 공연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5∼10월 중 토요일마다 ‘열린 예술극장’을 운영하는 등 고유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할 방침이다. 또 보행자 안전과 편의가 보장되는 ‘보행자 최우선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최대한 보도를 비우며 연세로와 명물거리 전 구간에 벚나무 150여 그루를 심고 띠녹지를 조성한다. 강씨는 “곳곳에 들어선 문화광장에서 행사·이벤트가 활발히 열려 ‘청년문화의 메카’라는 타이틀을 되찾았으면 한다”며 “침체된 신촌 상권 활성화로 이어져 즐거운 신촌, 재미난 신촌, 신나는 신촌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구청장은 “신촌 상권을 활성화하고 젊음이 넘치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 최초로 전신주, 분전함 등을 지하에 매설하고, 연세로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조성하는 사업과 병행해 잘 마무리했다”고 반겼다. 또 “통행에 지장을 주는 지주간판을 모두 없앴고, 건물주를 설득해 도장과 도색을 거쳐 새 간판을 설치했다”며 “특히 주민위원회 덕택에 100% 달성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골치 아픈 옥외 광고 관리… 동작은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동작구가 안전행정부 주관 옥외광고물 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는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서울시 인센티브 평가 최우수구 수상에 이어 옥외광고물 관리 능력을 공인받은 것이다. 이번 수상은 불법 광고물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인허가 업소에 대한 사전 경유제 실시와 찾아가는 법령교실, 온라인 무료 광고창, 순찰대 운영 등 맞춤형 정책으로 이룬 결실이다. 특히 문충실 구청장이 직접 전문가 초청 간담회를 열고 노량진 학원가 불법 광고물 근절 설명회, 교육청과 합동 불법 광고물 추방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올바른 광고문화 조성에 앞장섰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개정에 따라 조례를 개정하고 옥외광고물 기금을 조성하는 등 간판개선 선진화를 위한 정부 정책에 협력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구는 올해도 ‘공사장 가설 울타리 표준디자인 매뉴얼’ 보급과 대로변 옹벽에 공공디자인 공모 수상작을 활용한 ‘시민광고게시판’을 설치하는 등 효율적인 광고물 관리에 나설 방침이다. 구 관계자는 “결과에만 만족하지 않고 간판문화 선진화와 깨끗한 도심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발굴, 살기 좋은 동작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이용대 ‘AG 작전’

    한국 ‘셔틀콕’의 간판 이용대(26·삼성전기)가 아시안게임 시험 무대에 선다. 이용대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전용경기장에서 개막하는 ‘2014 빅터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프리미어’에서 남자복식과 혼합복식 금메달에 도전한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둔 전초전 성격이라 관심을 더한다. 지난해 고성현(김천시청)과 남복 정상에 선 이용대는 올해 유연성(28·국군체육부대)과 짝을 맞췄다. 혼복 파트너는 ‘신예’ 신승찬(삼성전기)이다. 이용대는 2012년 런던올림픽 직후 고성현과 짝을 꾸렸지만 지난해 극심한 부진이 이어져 파트너를 유연성으로 교체했다. 코칭스태프는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둔 탓에 교체를 서둘렀다. 지난해 10월부터 손발을 맞춘 이-유 조는 11월 중국오픈 슈퍼시리즈 프리미어에서 우승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파워는 다소 떨어지지만 범실이 많이 줄어드는 등 한결 안정된 모습이다. 이-유 조는 톱시드이자 런던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마티아스 보에-카르스텐 모겐센 조(덴마크)와 결승 격돌이 점쳐진다. 여기에 김사랑-김기정(이상 삼성전기)이 지난해 광저우 세계선수권 4강 진출 이후 기량이 크게 성장해 기대를 부풀린다. 지난해 8년 만에 여자단식에서 우승한 성지현(새마을금고)의 2연패 여부도 주목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진경호의 시시콜콜] 지방도, 자치도 없는 지방자치선거

    [진경호의 시시콜콜] 지방도, 자치도 없는 지방자치선거

    오는 6월 4일 우리는 다시 투표를 한다. 이번엔 국민이 아니라 주민 자격이다. 나라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위해 일할 일꾼을 뽑는다,고 치고 투표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거룩하기조차 한 이름 아래 우린 그렇게 1995년 이후 여섯 번째로 지방자치선거를 맞는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처럼 신성한 내 주권을 달랑 투표용지 한 장에 담아 던지는 걸로 끝내지도 않는다. 광역단체장부터 기초의원까지 투표용지만 무려 7장이다. 제법 주권을 행사한다. 한데, 고백하건데 난 지금 우리 동네 구청장 이름을 모른다. 지난 선거 때 흘끗 보고는 바로 잊었다. 구의원 이름?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3년 반을 지내고도 구청장 이름을 모르는 죗값은 치르지 않았다. 아니, 치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산다. 내겐 차라리 대통령이 가깝지, 구청장은 정말 먼 동네 사람이다. 자책하진 않는다. 얼마 전 지방자치 토론회에 가보니 패널로 나란히 앉은 교수들도 5명 모두 제 동네 구청장 이름을 몰랐다. 그런 전문가들끼리 지방자치의 내일을 걱정했다. 지방도, 자치도 없는 지방자치선거를 우린 또 치른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 하고, 간판도 없는 안철수당 지지율이 어떻고, 민주당의 운명이 걸렸네 마네 하며 새해 벽두부터 들썩이고 있다. 정치판에선 아무개 대항마로 누굴 세울지 주판알 굴리기에 바쁘다. 장기판의 졸도 아닐진데 멀쩡한 장관을 차출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언론도 다를 바 없다. 지방선거 기사에 지방이 없다. 지역현안이 무엇이고, 누가 적임일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 없다. 여야 전략이 어떻고, 누가 출마하는데 누가 앞서고 하는 경마식 보도만 넘친다. 이름은 지방선거인데 중앙이 부산스럽다. 자치선거라는데 주민은 들러리다. 이러니 내가 구청장 이름쯤 모르는 건 결코 자책 사유가 아니다. ‘여의도 정치’의 전국판(板),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결탁일 뿐인 지방자치를 마냥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자찬할 수는 없다. 내년이면 민선자치 부활 20년이다. 유럽과 같은 자생적 지방자치의 역사를 지니지 못한 탓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새누리당, 민주당, 안철수당이 아니라 정말 우리 동네 일꾼에게 투표한다는 마음으로 맞을 선거가 돼야 한다. 정당공천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공천, 해야 한다. 다만 지금처럼 중앙당의 낙하산 공천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주민들 뜻을 물어 공천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 시기와 임기도 주민들이 정하고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임기 4년 서울시장은 가을에, 임기 3년 충남지사는 봄에 뽑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방자치선거의 정치 과잉을 줄인다. “식당 하면서 가만 보니까 내가 구청장 하면 더 잘할 것 같더라고요”라며 차차기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톱게이’ 홍석천이 용산 말고도, 경주에서도 남원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게 비정상 지방자치선거의 정상화다.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아베 신년사로 본 올 日 키워드] “강한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일 신년사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나라의 모습’을 나타내는 헌법에 대해 국민적 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 안보 정책 충실화, 교육 재생 등을 중요 과제로 꼽으며 “‘강한 일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의지를 다졌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전후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인 헌법 제9조를 개정, 자위대의 명칭을 정식 군대를 의미하는 ‘국방군’으로 바꾸는 방안 등을 공약해 왔다. 자민당은 이달 소집되는 정기국회에서 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개헌 움직임을 본격화한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지난달 31일 보도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또 지난 12월 외교·안보 정책의 사령탑인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를 발족시킨 것과 관련해 “어느 때보다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적극적 평화주의야말로 일본이 짊어질 21세기의 간판”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주창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는 세계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취지지만 이면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라는 평가가 많다.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심화한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갈등을 의식한 듯 아베 총리는 “일본의 영토·영해·영공은 단호하게 지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에 대해서는 “20년 가까이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는 길은 아직 진행 중”이라면서 “강한 경제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강력하게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지난해 닛케이 평균지수는 56.7% 상승해 41년 만에 연간 상승률로는 최고 수준을 보였고, 엔화 가치는 18% 떨어져 34년 만에 엔저 기조가 유지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몸이 붙어 태어난 쌍둥이, 분리 수술후 ‘무럭무럭’

    몸이 붙어 태어난 쌍둥이, 분리 수술후 ‘무럭무럭’

    서로 몸이 붙어 태어난 기형 쌍둥이 여아들이 성공적인 수술 후 새 인생을 살게됐다. 최근 미국 ABC방송의 간판 아침 프로그램 ‘굿모닝아메리카’에 귀여운 쌍둥이 여아의 사연이 소개됐다. 부모님과 함께 뉴욕에 사는 이들 쌍둥이의 이름은 아멜리아와 앨리슨 터커. 오는 3월이면 두살이 되는 쌍둥이 자매는 그러나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고비를 수차례나 넘겼다. 이들 자매의 사연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신 5개월이었던 엄마 셸리와 아빠 그레그는 산부인과 의사로 부터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듣게됐다. 배 속의 쌍둥이 딸이 몸이 붙은 기형아로 그대로 출산할 시 아기는 물론 산모도 위험하다는 것. 의사는 쌍둥이를 무사히 출산한다 해도 성공적인 분리수술을 장담하지 못한다며 넌지시 낙태를 권하기도 했다. 엄마 셸리는 “의사의 충고를 듣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배 속에서 발길질 하는 아기들을 느꼈다. 결국 그대로 낳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2012년 3월 무사히 쌍둥이를 출산했지만 예상대로 아기들은 가슴과 신체 일부 기관을 공유한 채 태어났다. 이후 쌍둥이 분리수술을 놓고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 40명의 의사들이 투입된 의료팀이 구성됐고 현지언론의 관심 속에 생후 8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 성공적인 수술을 마쳤다. 최근 ‘굿모닝아메리카’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 쌍둥이는 수술의 여파를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엄마 셸리는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하루하루를 감사해하며 살고있다” 면서 “아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기적 그 자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소니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몸을 숙일 때마다 등의‘보호외국인’이란 흰 글자가 형광등 불빛에 번쩍거렸다. 흔들림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근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자 보호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당직실로 연락하라고 이 반장은 말했었다. 소니가 요란하게 몸을 떨더니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직실 내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반장은 밤새 직원이 당직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히 소니만 바라봤다. 소니는 비린내를 맡은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니가 말했다. “언니, 제발, 소니 물 줘.” 소니의 일그러진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눌한 소니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소니도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보호소를 안내해주던 이 반장은 말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니한테 물어보라고. 저래 보여도 사무소에서만큼은 나보다 선임이니깐.” 이 반장은 소니를 가리키면서도 내 쪽을 흘끔거렸다. 철장 안의 소니보다 나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며 항상 마주쳐야 했던 눈빛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면 많은 혼혈을 봤을 텐데.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해서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봤다. 아마도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혼혈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이 가리키고 있는 소니를 쳐다봤다. 내 옅은 커피색 피부보다 소니의 피부는 희었다. 소니의 피부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 부르는 옅은 귤색에 가까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니가 언니, 하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아름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렸다. 나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지만 왜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다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대야 한가득 담긴 물을 본 소니는 구역질을 멈췄다. 소니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면 위를 내려다봤다.‘후훕 후훕’소니의 날숨과 들숨소리가 보호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소니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대야에 담갔다. 넘쳐난 물이 바닥을 적셨다. 정수리까지 잠기자 찰랑대며 흘러넘쳤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소니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보호소는 파도가 멈춘 바닷가처럼 고요해졌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얕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소니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소니는 미동조차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철창을 열려는데 소니가 대야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다. 소니가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소니 땅 멀미했다. 이젠 괜찮다.” 땅 멀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뭍에 올라오면 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소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온전히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니는 지금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쇠창살에 기대앉은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바다에 살았다. 발, 땅에 안 디뎠다.” 물방울이 소니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형광등 불빛이 반사됐다. 소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소니 여러 여름 전, 바다 떠났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선 땅은 흔들렸다. 바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울렁거림을 겪어야 했다. 바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녀가 설명했지만 어눌한 발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땅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서도, 쪽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 순간 속은 메슥거렸다. 나는 며칠 전 봤었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소수종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다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와 주변 국가의 압력 때문에 땅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녀의 국적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피부색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온 저들처럼 바다와 강렬한 해가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소니의 피부색은 그들이나 나보다 옅었다. 지하층 계단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등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은 갈아주지 않고 있었다. 흐릿한 빛에 의지해 현관문을 열었다. 안은 말라버린 우물 속처럼 컴컴했다. 벽을 더듬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스위치를 찾지 못한 나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과 정강이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찔끔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퀴퀴한 지린내가 밀려왔다. 나는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기어가 누웠다. 첫 밤샘근무였고 한밤중에 소동까지, 피로에 찌든 몸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잔 걸까? 알 수 없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다행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눈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는 걸. 무슨 꿈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기억상실증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깨어날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엄습해왔다. 더듬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통증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 먹고 난 냄비를 싱크대에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빈 냄비 속으로 물이 쏟아졌다. 냄비 속 옅어진 갈색 국물이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쳤다. 밥풀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다 넘쳐나는 물을 따라 개수대로 흘러갔다. 땅멀미를 한다는 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할 때처럼 속이 울렁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울렁임은 더욱 심해졌다. 배를 채우면 이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듯이 넘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보호실 철문이 열리고 이 반장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이런 곳이 처음인지 창살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린이 팔뚝만 한 쇠봉이 한 뼘 간격으로 세워진 창살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마루 형식으로 된 바닥에 국적별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소니만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아닌 듯 남자는 관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검은색 쟈켓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특징 없는 인상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십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 반장이 소니를 조사실로 호출했다. 남자는 조사실로 들어갔다. 둘은 삼십 분 정도 조사실에 있었다. 가끔 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끈적끈적하니 교태가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조사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어그러뜨렸다. 황당하다는 웃음 같기도, 싱겁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남자와는 다르게 뒤따라 나오는 소니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이 반장에게 짧게 말을 전한 후 돌아갔다. 나는 이 반장에게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라는 내 물음에 이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순순히 돌아갔다. 내 태도에 이 반장은 당황한 듯싶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소니가 진짜 이름일까?” 나는 그제야 이 반장이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최대한 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피부색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는 바로 꼬인 가방끈을 고쳐 매듯 낯을 바꾼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어떤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나로서는 더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 반장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말했다. “당연히 진짜 이름 아니지. 소니 들어봤잖아. 워크맨 만드는 전자회사” 작년 겨울, 한 베트남인이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십분 정도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 톱을 차지했다. 첫눈이 오기 전날 대대적인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이 벌어졌다. 그날 밤 노래방을 덮친 경찰은 손님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고 있는 소니를 붙잡았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첫눈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그녀의 지문과 일치하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넘겨진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에 임시로 수감된다. 제일 먼저 그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가끔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아예 한국어를 모르는 척했다. 여러 언어의 통역사들이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연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협조하지 않는 한 그녀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소니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수거된 소지품에서 신원의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신분증부터 휴대폰, 수첩, 메모 등. 그러나 그녀의 소지품이라고는‘SQNY’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휴대용 라디오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발각되었지만, 그녀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신원의 실마리가 될 이야기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문에 잘 대답하다가도 신분이 노출될 만한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거나 딴소리를 해댔다. 그 엉뚱한 말들 때문이었을까, 심문했던 직원들 중 몇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그녀의 사진이 포함된 협조문도 보내졌다.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과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몇몇 국가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보호실은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임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을 눈치챈 외국인 보호소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름이 없으니 불편함을 느낀 직원 하나가 그녀를 소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을 소니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근무 첫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 반장에게 했다. 소니가 바다에서 왔다는 내 말에 이 반장은 껄껄대며 웃었다. “소니는 신입이 오면 꼭 한 번씩 골탕을 먹이더라고.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냥 맘 편하게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해.” 이 반장은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 반장은 말했다. “나도 올 초 여기 사무소로 발령받아 왔을 때 감쪽같이 속았다고. 소니가 자기는 동생한테 이름을 빼앗겼다는 거야.” 소니는 자신이 일 가구 일 자녀 정책을 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이 반장에게 말했었다. 소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첫아이가 소니이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던 그녀의 아버지는 앞으로 태어날 남동생을 위해 그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미리 지어 놨던 남자 이름, 남동생에게 주어질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태어난 남동생이 가져가 버렸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서류상으로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 반장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중국대사관에 동생 이름을 문의해 봤더니 그런 자는 없다는 거야.” 소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해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만난 적 없는 엄마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떠올렸다. “아마도 소니는 여기서 두 번째 겨울은 나지 못할 것 같아.” 이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나 보다. 내 반응에 이 반장은 신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윗분들이 그녀를 풀어주려 한다고 했다. 어차피 더는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혹시 간첩이 아닐까 ’누군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방금 전 소니를 조사했던 남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남자가 지었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간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창살 사이로 소니를 바라봤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터운 쌍꺼풀에 불거진 광대뼈, 두꺼운 입술 위로 큼지막하게 자리한 뭉툭한 코.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 사람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속으로 삼키듯 소니를 발음해 봤다.‘SONY’라는 글자를 전 세계 사람 모두 소니라고 발음한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는 소니라는 어감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비록 ‘SQNY’라 적힌 그녀의 라디오는 짝퉁이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팔을 뻗어 보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낮에는 앓는 사람처럼 곯아떨어져 버렸다. 벨소리는 곧 끊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 제사 때는 집에 올 거지?’ 동생의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꿈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추억처럼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자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이 보였다. 차가운 치킨을 데우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는 푸석댔고 닭 껍질은 질겼다. 차가울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씹을 뿐이었다. 접시 위의 치킨은 모두 없어졌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것을 찾아 수북이 쌓인 닭 뼈 사이를 뒤적였다. 손에 닭 목이 걸려 올라왔다. 튀김가루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닭 목을 통째로 씹었다. ‘빠드득’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엄마의 제사는 연극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낳았는지, 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단속에 걸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보호실로 들어올 때마다, 엄마 또래의 외국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쏘기 직전의 활처럼 소니와 나이지리아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제 들어온 금발의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커다란 눈망울로 둘의 눈치만 살폈다.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들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벌써 외국인 보호소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민신청 문제로 이송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니는 그동안 보호실의 터줏대감처럼 행동했었다. 워낙 오래 있었고 기가 셌기 때문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여자는 자신의 덩치를 믿고 그녀를 무시했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가 결국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소니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금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니의 영역은 티브이 맞은편 창가 아래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호실이 붐벼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소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그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낮잠을 청했다. 소니가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다. 소니의 주먹이 정확히 나이지리아 여자의 얼굴을 때렸지만, 나이지리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이지리아 여자가 성큼 달려들어 소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보통의 남자보다 몸무게도 더 나갔으며 몸도 더 우람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소니는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소니의 머리를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 기세에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구석으로 도망쳤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도 멈칫했다. 아직 이 반장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뭉치로 뽑혀 휘날리는 소니의 머리카락을 보자, 큰일 나겠다 싶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파리를 쫓듯 팔을 휘젓자 나는 그대로 날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에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깨물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소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소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눈초리는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흰자위로 금이 가듯 붉은 실핏줄이 섬뜩하게 번져 갔다. 이 반장이 도착했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는 제발 놓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나와 이 반장, 우즈베키스탄 아가씨가 달려들어 겨우 소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소니의 입은 거품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뚝은 처참하게 살점이 뜯겨 있었다. 소니는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이를 드러내며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이 달려왔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김 실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소니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다음 날 아침,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들어왔다. “같이 병원 좀 가줘야겠는데.” 이 반장은 소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싸움을 보고 김 실장이 특별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여자 수감자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직원이 동행해야 했다. 소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선지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번 왔었는지 이 반장은 간호사와 아는 척을 했다. 대기 순번을 보니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이 반장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펴들었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당장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대기실에 울렸다. 이 반장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뿐 대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티브이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밖으로 나간 이 반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어스레했었는데 어느새 대기실은 햇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슬 데워지기 시작한 볕은 커피 잔의 온기처럼 따스했다.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 왔다.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집요하게 따라 붙는 졸음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쩍 소니를 쳐다봤다. 소니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처럼 아침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었다. 열중했는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이 스르륵 풀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에 있었다. 작은 모래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모래 구릉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예상대로 모래벌판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모래 속에서 한참을 달렸지만, 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멈춰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격양된 노인의 언성과 가는 아이의 음성, 사투리도 들려왔고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도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감에 빠져 주저앉는데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쫓았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으세요?”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진료실로 들어오시라는데.” 옆을 보니 소니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 있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뒷줄에 새로 온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달려가 봤지만, 소니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니를 봤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이 탁 막혀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 반장이 들어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소니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이 반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 반장을 쫓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반장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소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뿐,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많은 목소리와 거리의 소음들이 한꺼번에 귀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득 스쳐 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옆모습은 소니와 닮아 보였다.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경을 쓴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소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 사과한 후 무턱대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소니와 닮은 여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누구를 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가방을 멘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는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니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국말은 너무나도 유창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반장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옅은 커피색 피부의 손등이 보였다. 보호소 철장 안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망쳐 나온 게 내가 아닐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간판의 글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빈 석상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던 걸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소니를 찾았으니 집으로 퇴근하라 했다. 소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내 기분은 가을비처럼 오락가락했다. 도망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고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다. 소니는 도망친 지 네 시간여 만에 자기 발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몸이 달 정도로 궁금해했다. 하지만 소니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 반장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병원 근처 지하철역의 개찰구와 그 앞 대합실을 찍은 CCTV 영상이었다. 하단의 숫자는 소니가 도망친 날의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반장이 ‘저기다. 저기’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화면 끝에서 소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이었다. 병원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졸자마자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대합실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단의 숫자가 열두 시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눈길을 보내지도 않았다. 이 반장이 비아냥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무 데도 못 가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사람을 속여서라도 갈 사람이었다. 이 반장은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며 한 번 더 비디오를 틀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소니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반장과 나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의 도주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소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자신의 영역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소니가 또다시 겨울을 보호소에서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 예보가 있던 날 소니의 석방이 통보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자신의 몸에 자해를 했다. 결국, 소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단호했다. 그런 소동을 부렸음에도 다음 날로 석방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새로 온 소장은 골치 아픈 문제를 빨리 치우고 싶어 했다. 이 반장은 병원에서 돌아온 소니를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첫날처럼 보호실에는 나와 소니 둘만이 남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다른 수감자들은 일찌감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니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걸을 때 참 무서운 얼굴을 한다. 그런 얼굴로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니는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봤다. 소니의 눈동자는 마치 갓난아기의 눈처럼 샛말갰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흰 얼룩 같은 눈송이가 쌓이고 있었다. 어제 내릴 거라던 첫눈은 오늘 아침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석방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송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니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니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지럽혀 있었다. 무작정 소니의 흔적이라 짐작되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뭉개졌다. 나는 발자국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 앞이었다. 나는 역으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부딪히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망친 소니가 앉았던 지하철역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로 가 앉았다. 소니의 말대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지듯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 갔다. 결국,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고 역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소리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주변 소음은 오히려 증폭되어 귓전을 때렸다. 전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전차는 A시 공단역으로 갈 것이다. 엄마는 A시 공단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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