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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안 해빙무드… 수감 첩보원 첫 맞교환

    중국과 대만이 지난 7일 정상회담에 이어 양안에서 수감 중인 첩보원들을 맞교환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양안 언론과 영국 BBC 등이 30일 보도했다. 양안 간 간첩 교환은 이번이 처음으로, 해빙 무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됐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에 구금됐던 추쿵순(朱恭訓) 전 대만 군사정보국 4처 부처장과 수창쿼(徐章國) 전 조장이 지난달 석방돼 대만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뤄사오허(羅紹和) 대만 국방부 대변인은 “이들은 2006년 중국에서 공식 임무를 수행하다 간첩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대만 언론들은 이들이 군사정보국 후방 업무에 복귀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대만 정부 역시 홍콩 영주권을 지니고 대만 정보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70세 고령의 중국 간첩 리즈하오(李志豪)를 지난달 말 조기 가석방했다. 찰스 천(陳以信) 대만 총통부 대변인은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향후 양안 간 우호적인 교류가 지속되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대만 언론 역시 “중국에서 복역 중인 대만 첩보원이 100명이 넘는다”면서 “지금이 첩보원 석방 노력을 기울일 절호의 기회”라고 촉구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유출자 간첩죄에 준하는 처벌… 신뢰받는 기무사로 조직 개혁을

    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보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SNS 가이드라인과 같은 보안 지침을 남발하기보다 내부자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보안방첩 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무사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2001년 미국 FBI 방첩담당관인 로버트 한센이 러시아에 포섭돼 간첩행위를 하다 체포된 이후 미국 정보기관들이 내부자 감시 시스템을 강화한 전례를 참조해야 한다”면서 “기밀 취급 당사자가 확고한 보안 의식을 갖출 수 있게 계좌 입출금 현황과 지출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특이 동향 감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보안 유출 관련 형량도 간첩죄에 준해 처벌할 수 있도록 대폭 높여야 한다”면서 “현재 기무사가 국민에게 낯설고 부정적 이미지인 만큼 신뢰를 회복하고 자부심을 갖도록 이를 ‘국군헌법보호사령부’로 개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정열 안보통일연구원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장병들이 SNS에 글 올리는 것을 일일이 차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무조건 이를 막으려고만 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기무사가 신뢰받고 제 역할을 하는 조직이 되도록 재정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 원장은 “보안·방첩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도록 헌병과 중복된 업무는 조정하고 지휘관의 지휘권을 침해하는 조직은 과감히 해체할 필요가 있다”며 “국방 비리를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무사 인원의 비리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종성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예비역 육군 소장)는 “장병들의 보안 사고와 보안 불감증은 정말 보안이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뒤섞여 모두 보안 사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라며 “질적으로 필요한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을 재분류해 필요하지 않은 보안 사항은 해제하고 정말 중요한 기밀을 누설했을 때는 좀 더 엄격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철저한 보안 의식은 간부들이 사소한 데서 모범을 보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친북은 숨고 국정원은 힘 빠져… ‘일감’ 없어진 검찰 공안부

    친북은 숨고 국정원은 힘 빠져… ‘일감’ 없어진 검찰 공안부

    북한 간첩조직과 국내 동조세력 등이 연루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최근 크게 줄면서 검찰 공안부의 조직과 기능 재편 필요성이 검찰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대남공작 전술 및 국내 사정의 변화를 들어 대테러 업무 등으로 공안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도 변화하는 사건 수요에 맞게 업무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3일 서울신문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검찰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보법 위반 사범은 기소사건 기준으로 2013년 70명에서 지난해에는 절반 수준(34명)으로 줄었다. 올해도 10월까지 33명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늘지 않았다. 전국 국보법 위반 사건의 90% 정도를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의 올해 대표적인 대공 기소 사례는 ‘황장엽 암살 미수 사건’이다. 하지만, 검거된 남한 공작원 일당이 북한 공작원과 공작금 규모로 갈등을 빚고 사기로 보일 만한 행적도 드러나는 등 기존의 ‘간첩 사건’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검찰 내부인사는 “전통적인 공안 영역의 사건이 줄어들면서 황교안 국무총리,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공안통 선배 검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현직 공안검사들은 ‘끼니’ 걱정을 할 정도라는 말도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은 최근 대공 사건이 줄어든 원인으로 북한 측을 따르거나 동조하는 국내 세력들의 약화를 꼽고 있다. 한 검사는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친북·종북 세력의 합법적인 활동 공간을 없애는 결정타가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친북 세력에 대한 국민 여론이 돌아서면서 이들은 당분간 수면 밑에서 암중모색에 들어간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보안수사대와 더불어 일선 현장 대공 수사의 양대 축인 국가정보원의 힘이 약화된 것도 공안당국이 관련 사건 감소의 이유로 보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과 그 협력자가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 ‘조직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것이 ‘소극적 활동’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검찰 내에 퍼져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과 협력자가 유씨의 출입국 기록 등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중국 공안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국정원의 중국 내 ‘촉수’(중국 내 정보통)가 다 잘리면서 공안 수사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귀띔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최근 검거된 남파간첩의 경우 훈련을 받지 않은 비정예요원이 공작금이나 특별한 지령 없이 탈북자로 위장해 내려온다”면서 “소속 역시 대남 공작업무를 총괄하는 정찰총국이 아닌 국경수비대 격인 보위사령부 소속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공안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엄격해지면서 검찰의 기소가 소극적으로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테면 검찰은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에서 반국가단체 혐의를 적용했지만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관련 인물의 컴퓨터 등에서 찾아낸 ‘대남 지령문’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안사건 감소에 대해 검찰은 해결책으로 법원행정처에 ‘공안전담재판부’의 신설을 요청한 상태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공안사건의 경우 반부패 사건과 유사하게 전담 재판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최근 파리 테러 등을 계기로 공안 업무의 무게중심을 대테러 대응 등으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도 시민사회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전쟁에 동맹국으로 포함돼 있는 우리나라는 더이상 ‘테러 청정국’이라고 안심할 수 없는 만큼, 공안 조직은 이름 그대로 ‘공적 안전을 도모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한 검사는 “이미 검찰 공안 조직이 대공 중심에서 선거나 집회·시위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한 변호사는 “달라진 시대에 맞게 공안 인력을 축소하고, 대공 대신 대테러 등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대도무문’의 반세기… 군부 통치 끝내고 문민 시대 열었다

    ‘대도무문’의 반세기… 군부 통치 끝내고 문민 시대 열었다

    88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DJ·1926~2009)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쌍두마차’였다. 바른길로만 가겠다며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정치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는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로 ‘정치 9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아호인 거산(巨山)은 자신의 고향인 거제의 ‘거’와 정치적 고향인 부산의 ‘산’을 따 지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통영중 재학 시절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했고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였다. 이어 경남고를 거쳐 1947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 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으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과 손 여사는 장녀 혜영(63), 차녀 혜정(61), 장남 은철(59), 차남 현철(56), 삼녀 혜숙(54)씨 등 2남 3녀를 뒀다. 이 중 현철씨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의 활동상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거제에서 출마해 최연소 의원(27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9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7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을 쏟아냈다. 그의 정치 행보는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해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고, 이는 야당 정치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지만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되고 이듬해에는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며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고,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자택 앞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도 당했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줬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헌정 사상 최초로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 투쟁으로 맞섰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한 것이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선 후보로 탈바꿈했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퇴임 후에도 부산·경남(PK)을 기반으로 한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리더로서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독재정권 시절 민주화투쟁 주도 ‘정치9단’

     86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1926~2009)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쌍두마차’였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그가 ‘정치 9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이기도 했다.    ●유년기-거제도서 출생, 한인학생 차별 일본인 교장 골탕먹이다 정학 처분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초등학교를 나온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경남 지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던 동래중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으며, 1년 뒤 통영중에 진학했다. 통영중 재학 시절에는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하는 등 골탕을 먹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한 것은 해방을 맞은 1945년 11월이다. 대통령의 꿈은 이 때부터 비롯됐다.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이고 뜻을 키운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고를 거쳐 만 20세인 1947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우익 학생단체인 ‘순학회’를 결성하는 등 정치 입문을 위한 사전 준비에도 힘을 쏟았다.    ●청년기-한국전때 학도의용대 가담,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와 맞선 한달만에 결혼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5·30 총선에서 경북 칠곡에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김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하기로 했던 목사가 날짜를 착각해 결혼식장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주례를 즉석에서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 당시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생이었던 손 여사는 당시 교칙에 따라 결혼하면 퇴학을 당할 처지였지만,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쳐 무사히 졸업했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이 있는 거제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에서 “내 인생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민주화를 이뤄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손 여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했고, 이에 손 여사는 “좋아서 살았지예”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정치적 성장기-26세때 최연소의원에, 최연소 원내총무 최다선 의원등 숱한 기록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 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고향인 거제로 낙향했다.  그는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 공천을 받아 최연소 의원(26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8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6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이 같은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고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으며, 이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30여년 동안 고난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으나,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5·16 쿠데타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는 등 시련이 잇따랐다.  1963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민주화 투쟁기-3선개헌 반대하다 초산테러, 10·26 신군부시절 가택연금 단식투쟁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으며, 19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김대중 후보에 밀렸다.  김 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유신 체제에 대한 정면 돌파로 이어졌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주기도 했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그의 결단은 정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대권 도전과 성공-1990년 3당합당, 1992년 대선 당선 ‘문민정부’ 시대로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김 전 대통령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른바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듬해 4월 13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의 자리마저 DJ의 평민당에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했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권 주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등 굵직굵직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임기 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서민적인 청와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칼국수가 당시 청와대 대표 메뉴가 되면서 대통령의 영양 관리라는 뜻밖의 고민거리도 생겼다. 청와대 방문객들이 한번쯤 맛보는 별미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기 내내 칼국수로 점심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감의 정치인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는 ‘뚝심의 정치’를 보여줬다. 정치적 고비마다 국민 여론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해 ‘감(感)의 정치인’으로도 불렸다.  김 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 명료했다. 돌려가며 얘기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말실수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표현을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결식 아동’ 문제를 언급하려다 ‘걸식 아동’이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차씨’라고 발언한 사례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말실수에 핑계나 변명을 하지 않았기에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김 전 대통령과 DJ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민주화 동지에서 1987년 대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며 불편한 관계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DJ의 서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병원을 전격 방문, 22년간의 반복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고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 ‘국민 안내양’ 넘어 ‘행사의 여왕’ 되고 싶어요”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 ‘국민 안내양’ 넘어 ‘행사의 여왕’ 되고 싶어요”

    “세월길 따라 인생길 따라 시골버스 달려갑니다.”“기쁨도 싣고 행복도 싣고 우리 함께 달려갑니다.” 실물을 보니 첫인상이 국민안내양 이미지보다 훨씬 젊고 곱다. 전국 방방곡곡 시골마을에서 “국민안내양 김정연” 석자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란다.누구보다도 편안한 옆집 딸 같아서 어르신들은 죽은 영감이 살아온 것보다 반갑다고 눈물까지 흘리신다나. 김정연은 리포터· 라디오진행· 가수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만능탤런트다. 일명 ‘국민 안내양’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정연은 KBS에서 활약한 리포터다. 근데 그녀는 놀랍게도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한국에서 활동한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일명 ‘노찾사’ 출신이란다. 그리고 이후 푸근한 우리음악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민중과 서민들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결혼반대로 한동안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살아오다 얼마전 엄마와 조우하는 가슴 찡한 가족이야기가 전국에 알려졌고, 가수 김정연은 4집 앨범 ‘세월네월’ ‘어머니’를 대중 앞에 선보이며 가수활동에 재시동을 걸었다. ‘국민 안내양’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녀의 희로애락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 “국민안내양”이라는 애칭이 생긴 사연은. 아마 지난 6년간 전국방방곡곡 10만킬로는 넘게 다녔던 것 같다. 지구 2바퀴를 돈 셈이다. 2010년 1월19일 경북 성주군내버스로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100곳 넘게 시골을 다니며 군내버스를 탔다. 처음 시작할 땐 시골버스를 타고 가다가 끼니도 못먹고 멀미도 나고 해서, 촬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오면서 서러워 남몰래 운적이 적지 않았다. 버스만 타는 것이 아니고 처음 뵙는 어르신들하고 얘기도 하고 짐도 들어줘야 했다,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여간 만만찮았다. 하지만 시골 버스를 타는 횟수가 늘어가고 버스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과 살갑게 대화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어느덧 내가 버스타는 날만을 기다리는 상황으로 바뀌어갔다. 이후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를 이끌며 수년간 ‘고향버스’와 함께했다. 이때부터 ‘국민 안내양’ 애칭이 따라붙었다. ‘고향버스’의 인기와 함께 상복이 터졌고, “최단기간 최다지역 시군내 버스탑승기록”을 가진 연예인으로 2012년 3월28일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 “노찾사” 멤버였다는데 트로트가수를 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엔 뭔가가 있었나보다. 어느날 학교 합창단 선발대회가 있다고 해서 나갔는데 바로 합격했고, 대학시절 연합노래서클 “쌍투스”에서 활동하다가 “노찾사” 멤버에 들어가게 됐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노찾사 멤버로 활동했고, 이듬해부터 라디오 리포터를 했다. 2008년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이후 노래와 방송을 병행해왔다. 라디오가 TV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면, 노찾사는 트로트 가수 데뷔를 위한 준비였던 셈이다. 그러다 KBS 리포터로 인기를 얻다보니 30대 후반에 라디오 DJ를 맡기도 했다. 이후 공연 기획사를 운영하는 남편의 권유로 트로트 가수를 시작했다. 허나 2008년 가수로 데뷔했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가수로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2009년 ‘6시 내고향’ 출연 기회를 잡았고 ‘시골버스’를 탑승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20대에는 “노찾사”, 30대에는 “라디오”, 40대에는 “트로트”를 하게 된 셈이다. ⇒ 46살에 늦둥이를 낳았다고요? 결혼 초엔 애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선물이 왔는데 그애가 46세에 난 “태현”이다. 시골을 다니다 보면 어르신들이 자식들 주려고 일흔, 팔순, 아흔이 지났는데도 농사를 짓는다. 아기를 낳고 보니 부모님 맘을 그제서야 알겠더라. 우리 태현이는 46세에 낳는데도 4킬로로 완전 자연산으로 아주 건강하다. 우리에겐 가장 큰 인생선물이다. ⇒ 6년동안 시골마을을 다녔는데 고향버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다. 버스를 2009년부터 6년동안, “태현”이 낳으러 갈 때 100일 빼고는 지금도 계속 타고 있다. 수많은 어르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승객으로 신발을 팔아 번 돈으로 백혈병 환우를 돕는 노부부가 기억난다. 슬하에 3남매 중 아들과 딸을 1년새 잃은 뒤, 딸과의 약속 때문에 환우들을 돕게 된 사연이다. 이때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순간순간 각자의 인생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 하나, 부인은 국민학교 졸업, 남편은 문맹인데 18번을 면허시험에 응시한 후 결국 운전면허를 딴 어르신도 가끔 뇌리에 스쳐간다. ⇒ 출산후 첫 새앨범 트로트댄스곡이 나왔다는데 어떤 노래인가. ‘세월네월’, 슬로우 고고풍 ‘어머니’를 동시에 냈다. 이번 신곡 ‘세월네월’의 가사는 빠른 세월을 의인화해 ‘세월 너 빠르다고 소문났더라’인데 가사가 재미있고 신나는 디스코풍이다. 특히 버스안내양다운 “스톱~스톱~” 하는 구성진 콧소리는 가는 세월이 브레이크를 밟듯 끼익 소리를 내는 기타소리와 어우러져 세월 붙드는 운전기사인 양 트로트 곡의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사실 ‘세월네월’도 좋은 노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봉선화 연정’과 ‘둥지’를 만드신 김동찬 선생님께서 자신의 이야기, 또 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만들었는데 음악을 만들면서부터 울음이 너무 쏟아져 몇 번을 다시 녹음해야 했다. 작곡가 선생님도 작업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셨단다. 엄마가 된 게 정말 다행이인 것 같다. 만약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이 노래를 못 불렀을 것 같다. 22개월 된 아이를 키우다보니 더욱 절절해지더라. 더욱이 이번에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았는데 정말 애착이 가는 노래다. 아마 이 노래를 들어본 분들은 고향어머니에게 안부전화 한 통은 꼭 하게 될거다. ⇒ “고향버스”를 계속 탈건지,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김정연” 하면 따뜻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첫 느낌을 드리고 싶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변치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혜자 선생님이 ‘국민 엄마’라면, 고향어르신들에게는 제가 바로 ‘국민 딸’이지 않을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어르신들과 가까이에서 만나는 김정연이 되고 싶다. “앞으로는 저 김정연을 ‘국민 안내양’을 넘어 ‘국민 딸’이라고 불러주세요.”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행사의 여왕으로 불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단다.(웃음) ■ “국민안내양” 가수 김정연은 가수 김정연은 1969년 11월20일생으로 엔터테인먼트 “제이스토리” 소속이다. 부모님은 전북 익산이 고향이며, 가수 김정연은 대전에서 소녀시절을 보냈고, 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노찾사” 멤버로 활동하다 KBS 라디오 및 6시내고향 프로의 리포터로 인심좋은 시골동네를 누비며 지역 어르신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뒤늦게 2008년 트로트가수를 시작해 “고향버스” 등 여러 히트곡을 내며 가수활동을 하다 46세에 늦둥이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산후 100일이 지나 바로 가수활동에 전념하면서 최근 새앨범 ‘세월네월’ ‘어머니’를 내고 본격적인 가수인생에 재시동을 걸었다. ● 1991~1994년 그룹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 1999년 연천재해방송 KBS 재해방송 진행자상● 201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10대가수상 ● 2011년 문화봉사자 대상 수상 ● 201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최고 인기가요 대상● 2013년 충남 당진시 명예홍보대사 ● 2014년 KBS 6시 내고향 공로패● 2015년 환경부 주관 환경대상● 2015년 4집앨범 ‘세월네월’ ‘어머니’ 발표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울릉도 간첩단 조작’ 무죄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박모(80)씨 등 5명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울릉도 등지에 거점을 두고 간첩 활동을 하거나 이를 도왔다며 전국에서 47명을 검거한 공안조작 사건이다.  재판부는 “박씨 등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구타와 물고문 등 가혹행위 끝에 자백했다”는 1·2심 판단을 유지했다.  박씨는 ‘울릉도 간첩단’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전영관씨를 자신의 울릉도 집에 숨겨주고 공작금을 보관한 혐의(반공법 위반 및 간첩방조)로 기소돼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전씨와 남파공작선의 접선을 도운 혐의 등을 받은 나머지 4명도 각각 징역 1년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5명 가운데 3명은 이미 숨졌다. 전씨는 1977년 사형이 집행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김학민·이창훈 지음, 푸른역사 펴냄) ‘북한의 간첩’ 황태성은 1963년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간첩이 아닌, 북한의 밀사였다는 사실을 생생한 증언과 함께 담았다. 412쪽. 2만원. 도올의 중국일기1, 2, 3(김용옥 지음, 통나무 펴냄) 김용옥 교수가 최근 1년 동안 중국 연변대학에서 강의하는 동안 중국의 역사, 철학, 문화에 대해 문명사적 변환의 사유를 담아냈다. 전체 6권으로 예정됐다. 각권 352쪽. 각권 1만 9000원.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전만복 지음, 지필미디어 펴냄) 30년 공직에 있던 저자가 한국사회 속 공무원의 모습과 역할, 공직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체험적 사유와 문화적 고찰과 함께 곁들였다. 358쪽. 1만 5000원. 교사독립선언(실천교육교사모임 지음, 에듀니티 펴냄) 지난 7월 세종시 한 초등학교에 모인 전국 교사 300명의 얘기다. 몇몇 교사가 온라인 공간에서 제안한 모임이 며칠 만에 엄청난 행사가 됐다. 교사는 과연 교육의 주체였나. 280쪽. 1만 5000원. 순구(이지현 지음, 황종욱 그림, 봄봄 펴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장사를 하면서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귀분 할머니, 다운증후군을 앓으며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란 순구 등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이들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그렸다. 80쪽. 9500원. 문학사는 어디로(조동일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세계문학사 연구 결정판. 문학사의 본질을 밝히고 그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세계 문학사를 정리하고 고찰했다. 592쪽. 3만 5000원. 일주일(김라임 글·그림, 키다리 펴냄) 꽃이 피어나길 묵묵히 기다리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담아냈다. 지루해하지 않고 기다림의 모든 순간을 즐겁게 여기는 고양이들을 통해 조금 느려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48쪽. 1만 2000원.
  • [뉴스 플러스] ‘간첩누명’ 유우성 동생 국가에 소송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가려씨를 대리해 국가와 원세훈·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30일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민변은 북한 화교인 가려씨가 2012년 11월~2013년 4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 불법 구금된 상태로 가혹 행위 등을 당했다며 인권침해 재발 방지를 위해 소송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 대법, 유우성 ‘간첩 혐의’ 무죄… 국정원 ‘증거 조작’ 유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인 유우성(35)씨가 검거된 지 2년 9개월 만에 간첩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반면 유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중국 공문서까지 위조했던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9일 간첩·특수잠입 탈출·편의제공 등 유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사기·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과 여권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원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중국 국적의 재북 화교였던 유씨는 북한 탈북자로 위장해 2011년 6월 탈북자 대상 서울시 특별전형에 2년 계약직으로 합격했다. 이후 국내 탈북자 신원정보를 수집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전달한 혐의 등으로 2013년 1월 국정원에 붙잡혔고, 서울중앙지검은 그를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국정원과 검찰이 간첩 혐의의 핵심 증거로 활용했던 유씨 여동생 진술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씨의 여동생이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을 당시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했고, 국정원이 위법하게 진술을 받아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1심에서 패소한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는 간첩 활동의 증거라며 유씨의 중국 출입경 기록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는 국정원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당시 유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유씨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이 위조됐다’는 사실조회 회신을 받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이 진상조사팀을 꾸려 수사한 결과 일부 국정원 직원들과 중국의 국정원 협조자가 관련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지난해 4월 항소심에서도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유씨는 선고 직후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를 대리한 김용민 변호사는 “조직적인 위법 행위에 대해 차근차근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유씨를 강제 추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금고 이상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외국인은 법률상 강제 퇴거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대상에 해당하는지, 필요성이 있는지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유씨 재판의 증거문서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김모(49) 과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충돌] 與 “공무원 감금당해” 野 “5공 보는 듯”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충돌] 與 “공무원 감금당해” 野 “5공 보는 듯”

    ‘역사교과서 국정화 태스크포스(TF)’에 대한 정부와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장 대치가 이틀째 이어진 가운데 정치권이 26일 정면충돌했다. 여당은 야당 의원들의 TF 사무실 진입 시도를 ‘공무원 감금 행위’로 규정하고 총공세에 나섰다. 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으며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보이콧 가능성도 열어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젯밤부터 야당 의원들이 들이닥쳐 공무원들을 감금하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이런 일을 해도 되는지 정말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그래서 야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못 얻는다”며 “야당이 ‘화적 떼’는 아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서 최고위원은 “집필도 않은 역사교과서를 두고 친일·독재라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난신적자(亂臣賊子·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세작(간첩)과 같은 공무원도 이번 기회에 찾아내야 한다”며 TF 존재를 야당 의원에게 제보한 인사도 겨냥했다. 여당 일각에선 “2012년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도 거셌다. 초·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에서 이노근 의원은 “불법 감금, 불법 주거침입, 공무집행 방해, 불법 집회·시위에 대해 검·경이 조속히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강력한 법적 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반면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여당의 ‘감금’ 주장에 대해 “국정원 불법 댓글사건에 대해 한마디 반성도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온당한가”라고 반문하며 “(새누리당은) 비밀조직이 적발됐다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정화 TF는 청와대가 직접 관할한 팀으로 추정된다”며 “정책 지원 조직보다 5공화국 시절 관계기관대책회의와 비슷한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27일)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 교문위와 운영위 소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참석 여부와 연계 의사도 내비쳤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교문위와 운영위 소집 요구에 새누리당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도 시정연설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데 참고사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TF가 위치한 서울 대학로 국립국제교육원 앞에서 이날 오후 3시까지 18시간 넘게 경찰과 대치를 벌인 새정치연합 유기홍·도종환, 정의당 정진후 의원 등 교문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자료를 통해 “비밀 TF 운영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도 의원은 “(TF에) 교육부 직원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확인했고,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무실에 오기도 했고, 어제는 차관이 왔다는 제보가 있다”며 “TF 단장인 오석환 충북대 사무국장이 정식 파견·발령이 아닌 출장을 이유로 2주간 합류한 것도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입을 닫았던 교육부는 이날 오후 적극 해명에 나섰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선 조직을 운영했다는 의혹에 대해 “기존 6명이었던 역사교육지원팀 인원을 근무 지원 형태로 늘린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 이후 6명→14명→21명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인원을 보강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일일보고 의혹에 대해서도 “통상적으로 중요 현안은 당연히 (청와대에)수시로 보고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야당 교문위원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전날 TF팀 일원의 컴퓨터 폴더를 보면 ‘역사지원팀(인계용)’이라 돼 있는데 이는 인수인계를 이미 마쳤다는 뜻”이라면서 TF팀이 역사교육지원팀과는 별도 조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中, 아베와 정상회담 개최 묻자 “여전히 소통 중”

    한·중·일 정상회담이 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국과 일본 간의 정상회담 일정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차 오는 31일부터 2박3일간 방한한다고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밝혔다. 리 총리의 방한은 2013년 총리 취임 후 처음이다. 중국 총리의 방한 역시 2010년 5월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 이후 5년 만이다. 리 총리는 이번 방한 기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서울에서 제6차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리 총리는 31일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지만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 일정은 확정하지 않았다. 화 대변인은 리 총리가 이번 방한 기간 아베 총리와 별도의 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리 총리가 방한 기간 아베 총리와 양자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 문제로 소통하고 있다”며 실현 가능성을 열어뒀다. 즉 중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에 올릴 과거사 및 영토 문제, 일본인 간첩혐의 구속 등의 난제에 대해 다소 이견이 있지만 한창 조율 중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중·일 정상회담은 양국이 서로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회담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미루다가 일정을 여태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새달 1일 개최가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일본에는 일정만 제안하고, 중국과의 수뇌회담을 먼저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행태라고 일본 지지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적과 싸우다…일과 싸우다…시대 변해도 계속되는 ‘숭고한 희생’

    적과 싸우다…일과 싸우다…시대 변해도 계속되는 ‘숭고한 희생’

    2013년 3월 1일 밤 11시 24분. 인천 강화경찰서 내가파출소 소속 정옥성 경위는 외포선착장에서 바다 쪽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를 전력을 다해 뒤쫓았다. 그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었다. 정 경위는 물가에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거친 물살에 발이 묶여 앞으로 넘어지며 풍덩 빠졌지만 자꾸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남자에게 손을 뻗으며 한 발, 한 발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밤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커멓게 출렁였다. 정 경위는 그렇게 밤바다의 별이 됐다.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경찰관이 매년 수십명씩 나온다. 서울신문은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아 경찰청으로부터 순직 경찰관 1만 3542명의 사망 경위가 담겨 있는 명단을 23일 입수, 분석했다. 70년간 순직한 경찰관들의 이야기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을 보여 준다. ●광복 후 극심한 좌우 대립… 1562명 잠들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경찰 순직자는 1562명이었다. 이들 중 90% 이상이 ‘폭도’, ‘반도’, ‘좌익 불순세력’, ‘공비’와의 교전이나 작전 중 사고로 숨졌다.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나눠 점령했던 시기, 북쪽에서 들어온 무장공비와의 잦은 교전 탓이었다. 1946년 10월 1~3일 대구, 경북 영천시, 칠곡군 등에서 44명이 순직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대구에서는 10·1사건이 일어났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10·1사건은 미 군정의 친일관리 임용과 강압적인 식량 공출 정책에 반발한 민간인과 일부 좌익 세력이 경찰, 행정 당국과 충돌한 사건이었다. 1948년 제주에서는 4월 3일 5명, 4월 12일 1명, 5월 13일 8명, 5월 22일 4명, 6월 16일 2명의 경찰관이 공비와 교전하다 사망했다. 이들은 ‘제주 4·3사건’의 초기 경찰 사망자들이다. 제주 3·1절 기념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숨지고 민심이 들끓자 남로당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경찰을 공격했다. 미 군정은 제주도민 토벌 작전에 나섰고, 이로 인해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4·3사건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명령을 일부 부사관이 거부하면서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20~24일 전남 여수, 순천, 고흥, 장흥 등지에서 270명의 경찰이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반란은 10여일 만에 진압됐지만 이후에도 계속된 교전으로 이 지역에서 수백명의 순직자가 더 나왔다. ●6·25전쟁 발발부터 휴전까지 8823명 순직 1950년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까지 8823명의 순직자가 명단에 올랐다. 경찰은 이들이 모두 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일 전투로 가장 많은 경찰 희생자를 낸 것은 1950년 7월 19일부터 치러진 강경 전투였다. 83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었다. 휴전협정 뒤에도 전사자는 속출했다. 휴전 직후부터 1955년까지 469명 중 60.3%에 해당하는 283명이 크고 작은 교전 중에 숨졌다. ●1962년 간첩 수색하던 25명 한꺼번에 숨져 1960년 4월 19~20일에는 6명의 경찰관이 4·19혁명 현장에서 진압 중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간첩을 체포하거나 수색하는 과정에서 습격을 받거나 폭발물이 터져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1962년 4월 1일에는 울산에서 간첩 수색을 위해 출동하던 경찰관 25명이 자동차 사고로 한꺼번에 사망했다. 1963년 6월 25일엔 장승포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 61명이 사망했다. 이때 18명의 경찰관이 주민 대피를 돕다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3명의 목숨 앗아 간 김신조·실미도 사건 1966년부터 1975년 사이 순직자 중 주목되는 사람은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검거 작전 중 적탄에 전사’라고 기록된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과 1971년 8월 23, 24일에 인천에서 각각 순직한 두 명의 순경이다. 1968년 1월 21일 게릴라전 특수훈련을 받은 김신조 등 북한 124군부대 무장간첩 31명이 당시 서울 세검동 자하문초소까지 진입해 경찰과 교전을 했다. 현장을 지휘하던 최 서장이 전사하고 경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뒤 우리 군은 124군부대와 똑같은 규모로 북파 부대를 창설했다. 인천 중구의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실전과 똑같은 훈련을 받은 북파 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서울로 향했다. 인천의 경찰관 두 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됐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하다 스러진 순경 4명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민주화운동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1980년 5월 18일 시작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191명이 숨지고 852명이 부상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 기간 중 전남 함평경찰서 소속 순경 4명이 사망했다. 순직자 명단엔 ‘80년 5월 20일 데모 진압 중 자동차에 밀려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1989년 5월 3일에는 ‘동의대 사건’이 일어났다. 시위대로 위장한 사복경찰 5명이 학생들에게 발각돼 도서관에 감금됐다. 경찰은 도서관에 진입했고 학생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 4명이 사망했다. 공식 서류에는 ‘동의대 학생들에게 납치된 전경 5명의 구출 작전을 벌이던 중 학생들이 석유 등을 뿌리고 화염병을 투척, 화재로 인한 화상 및 질식하여 사망’이라고 나와 있다. ●시간 지날수록 경찰 ‘과로사’ 점점 늘어 전쟁과 휴전 직후엔 교전으로 인한 전사자가 많았지만 이후 과로로 순직하는 경찰이 크게 늘었다. 시기별 순직자의 사망 경위 중 과로·졸도 사망은 전쟁 직후에는 15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6~1965년엔 전체 사망자의 28.9%로 급증했다. 1966~1975년에는 42.3%로 껑충 뛰었다. 1976~1985년 37.1%, 1986~1995년 40.1%에 이어 1996~2005년에는 과로 순직이 58.4%로 급등했다. 최근 10년간은 경찰 149명이 순직한 가운데 53.7%인 80명이 과로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과로로 숨진 경찰관들의 사망 경위를 살펴보면 밤새 당직을 서거나 잠복근무를 한 뒤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근무에 투입된 경우가 많았다. 1998년 말엔 탈옥수 신창원 검거를 위한 특별근무 등으로 업무가 과중돼 간경변이 재발한 순직자가 있었다. 2000년엔 전년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뒤 유해업소 특별단속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철야 근무를 계속한 경찰관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숨지기도 했다. 2010년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을호 비상근무 등으로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이송범 광주지방경찰청장 등 2명의 경찰관이 쓰러져 숨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경제 블로그] 禁女부처 기재부의 여풍 주도하는 ‘장 트리오’

    [경제 블로그] 禁女부처 기재부의 여풍 주도하는 ‘장 트리오’

    기획재정부에서는 ‘장 트리오’를 모르면 간첩입니다. 장문선(43·행시 39회) 행정예산과장, 장윤정(41·행시 43회) 규제개혁법무담당관, 장보영(40·행시 43회) 미래사회전략팀장이 주인공입니다. 세 명 모두 여자입니다. 장씨 성을 가진 여자 과장이 무슨 대수냐고 여길 수도 있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는 밥 먹듯 하는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남자도 버티기 힘든 곳으로 정평 나 있습니다. 그래서 금녀(禁女) 부처로 불립니다. 여성 비율이 50%가 넘는 공무원 조직이지만 유독 기재부는 전체 1004명 중 여성이 276명(27.5%)에 불과합니다. 간부급(4급 서기관 이상)에서는 여성 비율이 6.6%로 뚝 떨어집니다. 이 중에서도 보직을 맡고 있는 여성 과장과 팀장은 6명뿐인데 공교롭게 그 절반이 장씨입니다. 기재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장씨 여자가 기가 세다. 장희빈이나 장녹수만 봐도 알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장 트리오는 업무 능력과 품성을 모두 인정받는 선두 주자입니다. 맏언니 장문선 과장은 예산실 예산관리과장, 문화예산과장 등을 거친 예산통입니다. ‘예산실 첫 여성 과장’ 수식어도 갖고 있죠. 기재부 안에서도 기피 부서로 통할 만큼 업무량이 많은 예산실에서 과장까지 올랐으니 얼마나 일벌레인지는 짐작이 갑니다. 주량도 웬만한 남자보다 세다고 합니다. 장윤정 과장은 미래사회정책국 일자리제도개선팀장, 미래사회전략팀장 등을 맡아 핵심 국정 과제인 일자리 확충과 저출산·고령화 정책 등을 주도했습니다. 지난 연말 행시 선배들을 제치고 과장 자리에 올랐죠. 워낙 일 처리가 야무져 승진에서 ‘물먹은’ 선배들도 이렇다 할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장보영 팀장은 ‘주형환 1차관이 인정한 후배’라는 말로 설명이 끝납니다. 업무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주 차관이 인정했으니 부연 설명이 필요없다는 거지요. 기재부는 얼마 전 국장급 첫 여성 간부(김경희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기획단 부단장, 행시 37회)를 배출했습니다. 아직 고위공무원(3급 부이사관 이상) 대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김 부단장이 끌고 ‘장 트리오’가 밀면 기재부의 높은 유리천장도 머지않아 깨질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50대 일본인 여성 中서 스파이혐의로 구속

    일본인의 중국 내 스파이 활동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까지 중국에서 구속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이 4명으로 늘어났다. 교도통신은 11일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올해 6월 50대 일본인 여성이 중국 국가안전부에 의해 구속됐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스파이 활동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남성 3명이 올해 5, 6월 중국에서 각각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중국 당국에 구금된 일본인 수는 모두 4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일본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구속된 여성은 도쿄도 신주쿠에서 일본어학교 경영에 관여하고 있으며 최근 간간이 중국을 방문했다. 아사히신문은 이 여성이 원래 중국 국적자였다가 나중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고 평소에는 중국에 살지 않는 민간인이라고 전했다. 이 여성이 어떤 혐의로 구속됐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국외 정보 수집을 하거나 중국 내 스파이 활동을 감시, 단속하는 국가안전부가 체포한 점에 비춰 볼 때 중국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가 스파이 혐의로 붙잡혔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마이니치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부 언론은 이 여성이 스파이 행위에 관여한 혐의나 스파이 혐의로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일본, 중국 양국 정부는 일본인 2명이 올해 5월 중국 랴오닝성과 저장성에서 각각 중국 당국에 구속됐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들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 정부는 스파이를 중국에 보내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반세기 만에… 정부 훈장 크기 남녀 차이 없앤다

    반세기 만에… 정부 훈장 크기 남녀 차이 없앤다

    정부에서 준 훈장이나 포장을 수상자 말고 다른 사람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목에 걸거나 옷에 달면 처벌 대상이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절대 금지다. 어기면 6개월 이하 징역을 살거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상훈법 제8조엔 ‘공적이 허위로 판명되거나 형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해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 서훈(敍勳·나라를 위해 일한 데 따라 포상을 내림)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상훈법에서 말하는 서훈에는 훈장은 물론 포장과 대통령 및 국무총리 명의로 수여되는 표창까지 총망라된다. 지금까지 228명에게 수여된 서훈 406점이 취소됐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각각 9개와 11개의 훈장이 취소됐다. 2006년 5·18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두 대통령에게 취임 때 수여된 무궁화대훈장의 경우 취소하면 대통령 재임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빚게 돼 제외했다. 친일 행적이 드러난 독립유공자의 훈장 19점도 기록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상훈법은 아주 엄격하다. 무엇보다 영예를 앞세우는 훈·포장이나 표창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법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시행령은 반세기 가까이 그대로여서 시대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이따금씩 받았다. 8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1967년 제정된 시행령에는 꽤 흥미로운 대목이 숱하다.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훈장의 크기를 남녀에 따라 달리했던 점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여성에게 수여하는 훈장의 크기에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다고 한마디로 말할 순 없다”며 “1960년대만 해도 체격 차이를 감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궁화대훈장과 1등급 훈장의 경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비스듬하게 띠처럼 두르도록 돼 있어 체구에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법률엔 상훈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친수’(親授)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영전(榮典·국가에 공헌한 사람을 치하하기 위해 인정되는 영예)의 수여를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규정한 헌법 제80조에 따라 직접 수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 위임받은 사람에게 맡기는 ‘전수’(傳授)도 허용한다. 또 상훈의 영예성을 지키도록 동일한 공적에 대해 거듭 수여하지 않으며 전투에 참가하거나 간첩 수사로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경우를 빼고는 이미 받은 상훈과 같은 등급 또는 아래 등급을 수여하지 않는다. 훈장과 포장, 표창에 대한 혜택은 법률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징계 때 수위를 낮추거나 같은 서열일 경우 우선순위에서 배려하는 정도다. 특히 가장 명예롭게 여겨지는 훈장의 가격은 20만~100만원 사이다. 주재료는 은(銀)이다. 훈장증서는 재발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휨 현상을 보이지 않고 통풍이 뛰어난 전통 한지를 사용한다. 행자부는 이런저런 부작용을 안은 상훈법 시행령에 대한 개정안을 이날 입법 예고했다. 처음 제정된 이후 반세기 만이다. 남녀 훈장의 크기와 도형을 통일하고 전수권자에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시켰다. 공적심사위원회를 강화하고 지침으로 된 서훈 추천 절차를 명문화하며 보통 국민에게 가장 많이 수여되는 국민훈장과 국민포장의 도형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바꾼다는 내용도 들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반세기 만에… 정부 훈장 크기 남녀 차이 없앤다

    반세기 만에… 정부 훈장 크기 남녀 차이 없앤다

    정부에서 준 훈장이나 포장을 수상자 말고 다른 사람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목에 걸거나 옷에 달면 처벌 대상이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절대 금지다. 어기면 6개월 이하 징역을 살거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상훈법 제8조엔 ‘공적이 허위로 판명되거나 형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해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 서훈(敍勳·나라를 위해 일한 데 따라 포상을 내림)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상훈법에서 말하는 서훈에는 훈장은 물론 포장과 대통령 및 국무총리 명의로 수여되는 표창까지 총망라된다. 지금까지 228명에게 수여된 서훈 406점이 취소됐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각각 9개와 11개의 훈장이 취소됐다. 2006년 5·18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두 대통령에게 취임 때 수여된 무궁화대훈장의 경우 취소하면 대통령 재임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빚게 돼 제외했다. 친일 행적이 드러난 독립유공자의 훈장 19점도 기록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상훈법은 아주 엄격하다. 무엇보다 영예를 앞세우는 훈·포장이나 표창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법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시행령은 반세기 가까이 그대로여서 시대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이따금씩 받았다. 8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1967년 제정된 시행령에는 꽤 흥미로운 대목이 숱하다.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훈장의 크기를 남녀에 따라 달리했던 점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여성에게 수여하는 훈장의 크기에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다고 한마디로 말할 순 없다”며 “1960년대만 해도 체격 차이를 감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궁화대훈장과 1등급 훈장의 경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비스듬하게 띠처럼 두르도록 돼 있어 체구에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법률엔 상훈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친수’(親授)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영전(榮典·국가에 공헌한 사람을 치하하기 위해 인정되는 영예)의 수여를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규정한 헌법 제80조에 따라 직접 수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 위임받은 사람에게 맡기는 ‘전수’(傳授)도 허용한다. 또 상훈의 영예성을 지키도록 동일한 공적에 대해 거듭 수여하지 않으며 전투에 참가하거나 간첩 수사로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경우를 빼고는 이미 받은 상훈과 같은 등급 또는 아래 등급을 수여하지 않는다. 훈장과 포장, 표창에 대한 혜택은 법률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징계 때 수위를 낮추거나 같은 서열일 경우 우선순위에서 배려하는 정도다. 특히 가장 명예롭게 여겨지는 훈장의 가격은 20만~100만원 사이다. 주재료는 은(銀)이다. 훈장증서는 재발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휨 현상을 보이지 않고 통풍이 뛰어난 전통 한지를 사용한다. 행자부는 이런저런 부작용을 안은 상훈법 시행령에 대한 개정안을 이날 입법 예고했다. 처음 제정된 이후 반세기 만이다. 남녀 훈장의 크기와 도형을 통일하고 전수권자에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시켰다. 공적심사위원회를 강화하고 지침으로 된 서훈 추천 절차를 명문화하며 보통 국민에게 가장 많이 수여되는 국민훈장과 국민포장의 도형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바꾼다는 내용도 들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뉴스 플러스] “中 구속한 일본인 중 1명 탈북자”

    지난 5월 스파이 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속된 일본인 2명 가운데 1명이 탈북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은 중국 랴오닝성에서 붙잡힌 일본 가나가와현 거주 50대 남성은 재일조선인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60년대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1990년대 후반 탈북해 2000년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30일 “일본인 2명이 간첩 활동을 해 온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 “하오카 같은 암투 없다”

    “하오카 같은 암투 없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2일(현지시간) ‘험난한’ 방미 일정을 시작했다. 우선 첫 방문지인 시애틀 웨스턴 호텔에서 만찬 연설을 했다. 미·중기업협회가 주최한 이 만찬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 정·재계 인사 650여명이 참석했다. 시 주석은 미국이 제기하는 중국의 해킹 의혹과 관련해 “중국 역시 해킹의 피해국”이라면서 “중국은 해킹에 연관돼 있지 않고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부인했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정부 개입에 대해서는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추지는 않을 것이며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부패 드라이브가 정적 제거를 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한 듯 시 주석은 “반부패 투쟁은 공산당을 더 단련시키라는 인민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백악관 권력 암투를 다룬 정치 드라마)와 같은 권력투쟁은 없다”고 단언했다. 시 주석은 또 “중국인은 2000년 전 이미 ‘강한 나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망한다’는 진리를 알았다”면서 “중국은 역대로 방어적 군사전략을 신봉해 왔으며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읽혔지만, 미국의 전쟁 개입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측면도 엿보였다. 시 주석은 중국의 최신 스마트폰을 만찬 테이블에 슬쩍 올려 놓아 이목을 집중시키는 ‘간접 판촉활동’도 벌였다. 시 주석의 이름이 적힌 초청장 옆에는 ZTE(중싱통신)가 최근 발매한 액슨(Axon)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는데, 이 장면을 한 수행원이 찍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렸다. 시 주석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페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트 휘트먼, 잭 런던 등 미국의 저명한 작가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미국과의 인연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이기도 했다. 시 주석의 노력에 비해 미국 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만찬에 참석한 페니 프리츠커 미국 상무부 장관은 “우리 정부와 기업은 중국의 불투명한 법과 변덕스러운 지적재산권 보호, 차별 정책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시 주석의 면전에서 직격탄을 날렸다. 백악관은 이날 중국이 간첩 혐의로 체포한 중국계 미국인 여성 사업가 샌디 판길리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여러 경로로 판길리스의 상태를 문의했으나 당혹스럽게도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이 25시간 동안 금식하는 유대 명절인 욤 키푸르와 겹쳐 일부는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한 유대계 인사들을 위해 시 주석의 연설시간도 조정했다. 오후 5시 56분에 연설을 시작해 20분 만에 끝냈다. 저녁 식사를 서둘러 마치면 유대계 인사들이 오후 7시 7분에 시작하는 예배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호텔 연회장 바로 옆에서 랍비를 초청해 예배를 봤다. 만찬 참가비는 3만 달러(약 3600만원)였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교황에겐 열광 시진핑엔 냉랭

    교황에겐 열광 시진핑엔 냉랭

    미국이 2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같은 기간 방문으로 들떴다. ‘빅 2’인 이들의 경호와 교통 체증에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이들의 행보는 닮은 듯 다른 꼴이다. ●NYT·WSJ 머리기사는 모두 교황 쿠바를 방문한 교황은 이날 오후 수도인 동부 워싱턴DC에 도착한다. ‘신권의 상징’으로 국가 정상급 예우를 받으며 언론의 조명이 집중된다. 반면 글로벌 리더십의 정점에 선 시 주석은 취임 이후 처음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같은 날 정오쯤에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에 닿지만 미국 정부나 언론이 인권과 사이버 해킹 문제 등으로 벼르고 있는 중이다. 미국 신문에서는 교황이 판정승을 거뒀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호 아래 주요 기사로 교황을 다뤘고 시 주석에 대해선 비판이 주류였다. 교황의 발길에는 지지자들이 몰려 열광하지만 시 주석 방문지에서는 시위대가 ‘수행 시위’를 벌인다. 시 주석이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4박 5일간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직 생활 시작 이후 7번째인 이번 방미는 시 주석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중국을 미국과 동급의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고 ‘호랑이 굴’에서 약점만 노출하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시 주석의 방미를 ‘신뢰를 증진하고 의심을 해소하는 여행’(增信釋疑之旅)이라고 규정하며 결과를 낙관하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신경전보다는 서부 시애틀에서 펼쳐질 각종 경제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관영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시애틀은 ‘서부의 워싱턴’이자 미국이 중국에 열어 놓은 기회의 창”이라고 전했다. ●中, 중국계 미국인 체포… 양국 긴장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방미 기간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협약을 포함해 40개 이상의 합의와 협정을 도출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7년째 교착상태가 이어진 양국 간 투자협정(BIT)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군축협정’이 처음으로 논의될 예정이며 미국 여객기 구매 및 보잉사 중국 공장 건설, 미국 고속철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합의할 전망이다. 경제협력은 뜨겁지만 시 주석은 25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돌직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당국이 최근 중국계 미국인 판 판 길리스를 간첩 혐의로 정식 체포했다고 WSJ 등 미국 언론이 21일 보도하면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간 긴장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교황·시진핑 만날 일은 없을 듯 22일 워싱턴DC에 방미 첫발을 내딛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는 분위기가 열광적으로 변하고 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내외에게서 최고 의전의 환영을 받으며 생애 첫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한다. 백악관은 “2008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베네딕토 16세를 직접 영접한 전례를 따르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백악관 행사에서는 교황이 밟을 레드카펫과 21발의 예포, 군악대 연주 등이 마련된다. 교황은 시 주석이 워싱턴DC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뉴욕으로 떠나 이들의 조우는 성사되지 않는다. 시 주석과 교황은 비슷한 시기에 워싱턴에서 각각 2박 3일 머문다. 교황이 먼저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시 주석은 하지 않는 미 의회 합동연설까지 하면서 이목이 더 집중된 상황이다. 가톨릭 교계 언론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평론가 마이클 숀 윈터스는 WSJ에 “시 주석의 방문이 신문 (1면이 아닌) 경제면으로 밀릴 것 같다”며 “교황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방미가 교황의 후광에 가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미 공화당, 특히 대선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미·중 간 갈등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교황처럼 너무 두드러지기보다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돌아가는 것도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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