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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동백나무를 심은 뜻은...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동백나무를 심은 뜻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독일을 방문하는 동안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동백(冬栢) 나무를 심으면서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숙 여사가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는 윤이상 선생의 묘소 참배에 앞서 한 그룹의 동백나무가 심어졌다. 길이 130㎝가량의 동백나무는 이날 베를린에 도착한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군1호기를 타고 한국 통영에서 공수됐다.경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 선생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전한다.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며 “그 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면서 저도 통영에 가면 동백나무 꽃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동백나무는 통영을 대표하는 나무로, 시목(市木)으로도 지정돼 있다. 사철 푸른 기상을 품고 있다. 김정숙 여사는 “다행히 검역도 통과된다고 해서 이렇게 큰 나무를 심어도 되나 물어봤는데 된다고 해서 ‘아 선생님하고 저하고 뭔가 마음이 맞나’ 하면서 심었다”며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어른 어깨높이의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된 윤이상 선생은 한국 출신 작곡가 가운데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 50년 전인 1967년 동백림(東伯林·동베를린의 한자식 표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이념 논쟁에 계속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받았다. 윤이상 선생의 향수를 달래줄 동백나무는 공교롭게도 동백림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실제 ‘윤이상평화재단’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김 여사는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경남 통영에서 가져갔던 동백나무는 세그루였다. 통영시 관계자는 6일 “지난 3일 급하게 연락이 와서 튼튼하게 잘 자린 10년생 동백나무 세그루를 통영시에 있는 조경업자에게서 사서 보냈다”고 말했다. 윤이상 선생 묘소에 한그루를 심었고, 나머지 두그루의 동백나무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숙 여사가 묘소 참배한 윤이상은 누구? “세계적 현대 음악가”

    김정숙 여사가 묘소 참배한 윤이상은 누구? “세계적 현대 음악가”

    독일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해 윤이상의 생애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윤이상은 한국 출신 작곡가 중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이념 논쟁에 계속 시달려왔기 때문. 재독 동포 오길남에 대한 탈북권유 논란, 북한 정권의 윤이상 추대 등까지 겹쳐지며 그의 음악은 한국 땅에서 연주되기조차 쉽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된 블랙리스트에 실제 ‘윤이상평화재단’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세계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시킨 현대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유럽 현대음악의 첨단 어법으로 한국적 음향을 표현하는 데 도전했으며 작품 속에 동양의 정중동(靜中動·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의 원리를 녹여내기도 했다. 그는 늘 고향 통영의 바다와 흙이 음악 세계의 기초가 됐다고 말했지만, 동백림사건 이후 끝내 고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김 여사도 이 때문에 참배에 앞서 통영에서 공수한 동백나무를 묘비 바로 앞에 심었다.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며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한 성악도 출신이다. 그는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음악계 이곳저곳에서도 그의 음악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코리안심포니는 오는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죽음에 관한 두 개의 교향시’라는 주제 아래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 등을 연주한다. 서울시향은 다음 달 15일 광복절 기념음악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윤이상의 ‘예악’을 선보이고, 첼리스트 고봉인은 오는 9월 14일 금호아트홀에서 윤이상 특별 무대를 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숙 여사가 독일 ‘윤이상 묘소’에 동백나무 품고 간 사연

    김정숙 여사가 독일 ‘윤이상 묘소’에 동백나무 품고 간 사연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고 윤이상(1917~1995년·음악가)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올해는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날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공수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윤이상 선생 묘비 앞에 심어졌다. 통영에서는 동백(冬柏)나무가 유명하다. 통영시목도 동백나무로 지정돼 있다. 윤이상 선생 묘비 앞에 새로 심어진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져 있다.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면서 “그 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면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는 윤이상 선생이 태어난지 100년이 됐다. 이 동백나무는 윤이상 선생이 고초를 겪었던 ‘동백림(東伯林)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사건은 50년 전인1967년 7월 8일 당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는 한국에서 독일·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의 유학생과 교민들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 교육을 받으며 대남 적화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동백림’은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音借)해 표기한 말이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윤이상 선생과 화가 이응로 선생이 포함돼 있었다.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했다. 1967년 12월 당시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2년 뒤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확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동백림 사건이 허황되게 부풀려진 간첩단 얘기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정숙 여사, 故윤이상 묘소 참배…통영→베를린 ‘동백나무’ 수송

    김정숙 여사, 故윤이상 묘소 참배…통영→베를린 ‘동백나무’ 수송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윤이상 선생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이날 참배에 앞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윤이상 선생의 묘비 앞에 심어졌다.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동백림(東伯林·동베를린의 한문식 표기)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으로 문화예술계의 윤이상 선생 등이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정부가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김정숙 여사가 동백(冬柏)나무를 가져간 것은 당시 동백림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나무는 이날 베를린에 도착한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군1호기를 타고 한국 통영에서 공수됐다. 통영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다.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며 “그 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면서 저도 통영에 가면 동백나무 꽃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다행히 검역도 통과된다고 해서 이렇게 큰 나무를 심어도 되나 물어봤는데 된다고 해서 ‘아 선생님하고 저하고 뭔가 마음이 맞나’ 하면서 심었다”며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어른 어깨높이의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김 여사가 헌화한 원형 모양의 꽃다발 리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김 여사는 “통영의 나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꼭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 여사는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김 여사는 이날 참배에서 사회자의 ‘묵념’ 구호에 따라 묵념을 하다가 ‘바로’라는 신호에도 혼자서 20여초간 더 묵념을 이어갔다. 이날 참배에는 발터 볼프강 슈파러 국제윤이상협회장과 박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피아니스트인 홀가 그로숍 등 윤이상 선생의 제자들이 함께했다. 그로숍은 “윤이상 선생님은 저희에게 음악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셨다. 매우 훌륭한 (한국을 알린) 대사이셨다”고 말했다. 박씨는 “윤희상 재단이 2008년 고인의 생가를 매입했지만, 예산 문제로 기념관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제자들이 김 여사께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고 김 여사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파업 업무방해죄 적용 반대”… 진보색채 학자

    “파업 업무방해죄 적용 반대”… 진보색채 학자

    박상기(65)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그동안 내놓은 논문에서 법 적용에 대한 진보적 색채를 뚜렷이 드러낸 것으로 확인돼 인사청문회에서도 집중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자는 2007년 쓴 논문 ‘간첩죄에 관한 소고’에서 “북한을 적국으로 단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판단”이라는 표현을 쓴 사실이 드러나 최근 곤욕을 치렀다.서울신문이 30일 박 후보자가 2010년 이후 내놓은 논문 10여편을 분석한 결과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반대, 화학적 거세의 이중처벌 가능성 등 쟁점을 두고서 명확한 입장을 보였다 ●노동쟁의시 노동자 권리 폭넓게 먼저 박 후보자는 2015년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노동쟁의에 대해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기소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지적한 뒤 “파업 기간 동안 발생한 기업의 손실만을 계산해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는 것은 대등한 노사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단체교섭의 대상에 대해서도 “부서의 폐지나 통폐합이 경영상 결단에 해당해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고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기관의 경우 경영상 결단은 이익추구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자가 폭넓게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만큼, 장관에 임명될 경우 새 정부의 파업 대응 방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화학적 거세 이중처벌 가능성 거론 2011년부터 시행된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를 두고서는 “이미 형벌을 선고받고 집행 중이거나 치료감호를 받는 자에 대해서도 사후적으로 약물치료를 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밝힌 것이 특징적이다. 더불어 박 후보자는 종교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논의와 관련해 2004년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형벌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종교적인 양심의 결정을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내용의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인간 중심의 국가”라면서 찬성 입장을 보였다. ●형정원장때 인건비 부당집행 인정 한편 박 후보자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시절 인건비 부당집행 및 겸직 논란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서면서 법무부 장관 인사 검증도 본격화되고 있다. 박 후보자는 원장으로 있으면서 결원 인건비를 성과급으로 부당하게 집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으로 지급했을 뿐 자신은 지급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감사원은 2008~2010년 사이 형정원이 9억 9800만원을 성과급으로 편법 집행한 사실을 적발했다.인건비 집행 잔액이 있을 경우 다음해로 이월하는 것이 원칙인 만큼,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은 박 후보자도 인정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 측은 “당시 감사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7개 출연연구기관에 대해 동일하게 지적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겸직 금지 위반엔 “학기 마무리 후 휴직” 2007년 11월 형정원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강의를 해 겸직금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학기를 마무리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불가피하게 학기 종료 후 휴직을 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다만 당시 원장 모집 공고에는 ‘재임 중 겸직 불가’가 자격 요건으로 명시돼 있어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바리케이드 치우다…시민 발걸음 채우다

    바리케이드 치우다…시민 발걸음 채우다

    사라진 검문, 촬영 OK… 걷는 재미 쏠쏠한 명품 산책로 삼엄한 검문검색으로 가까이하기에 멀게만 느껴졌던 청와대 앞길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 26일부터 앞길을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하면서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 주변을 도보로 관광할 수 있는 코스도 시선을 끌고 있다.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만난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 이현승(70)씨는 “청와대 주변과 서촌 일대에서 평생 생활하며 한국 근현대사의 곡절을 몸소 겪었다”고 했다. 이씨는 “종로구 부암동에서만 평생을 살았는데 1968년 김신조 간첩 남파 사건 이후 청와대 주변 불심검문이 강화되면서 이 동네를 걸어다니면 경찰이 500m에 한 번꼴로 붙잡고 ‘어디 가시냐’고 물었다”면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면서 걷는 맛이 생겼다”면서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를 하면서 서촌 일대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전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현대사 코스… 경복궁역~통의동~창성동~청와대 앞길~윤동주문학관 이씨는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통의동과 창성동을 거쳐 청와대 앞길에서 머문 뒤 창의문로를 따라 윤동주문학관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적 매일 오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국 근현대사를 반추할 수 있는 코스”라고 부연했다.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북쪽으로 걷다 스타벅스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고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면 ‘통의동 백송터’가 나온다. 추사 김정희가 중국에서 종자를 들여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송나무는 1908년 일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짓기 위해 월성위궁을 폐궁할 때 베어져 없어질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하지만 1990년 태풍으로 쓰러져 고사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백송나무의 솔방울 4개를 다시 심었고 지금은 그중 세 그루가 살아남아 궁터를 지키고 있다.백송터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옆 골목길로 들어가면 수십 채의 오래된 한옥을 만나게 된다. 일명 ‘창성동 한옥마을’이다. 골목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지만 미로를 빠져나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씨는 “북촌은 골목길 정비가 빨리 됐지만, 서촌은 골목길 정비가 늦었지면서 골목이 복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성동 한옥마을을 나와 자하문로 24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와대 사랑채가 나온다. 서쪽으로 향하면 청와대 앞길에 도달한다. 청와대 정문 건너편에서는 시민들이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청와대 앞길을 오가려면 청와대 경호원의 잇따른 제지와 물음에 시달려야 했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라 할 수 있다.#일품 야경 코스… 청와대 사랑채~무궁화 공원~창의문로~윤동주문학관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을 구경하는 코스와 청와대 앞길을 건너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코스도 있다. 하지만 탁 트인 서울 전경을 보고 싶다면 청와대 사랑채에서 무궁화 공원을 거쳐 창의문로를 따라 윤동주문학관으로 가는 것이 좋다. 특히 밤에 청와대 앞길에 와서 특별히 갈 만한 곳이 없다면 이곳에서 서울 야경을 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윤동주문학관은 2009년 청운시민아파트 터에 세워졌다. 청운시민아파트는 1969년 준공된 뒤 2005년 노후로 인해 철거됐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구 누상동의 소설가 김송 집에서 하숙하며 인왕산 자락을 타고 학교를 오가던 것에 착안해 이곳에 그의 문학관이 건립됐다. 문학관 2층에는 카페가 있어 창의문로를 직접 걸어온 시민들은 이곳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3층 시인의 언덕에서는 남쪽으로는 서울 강북 도심과 남산, 북쪽으로는 부암동과 평창동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 더 걷고 싶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다면 시인의 언덕에서 인왕산로를 타고 수성동 계곡까지 내려가 보는 것도 좋다.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수성동 계곡까지는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인왕산은 산세가 험하고 골짜기가 깊어 산책하는 것이 다소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산속을 걷다 보면 어느새 숲길의 정취에 흠뻑 빠져 힘들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인왕산 자락 끝에는 수성동 계곡이 흐른다. 물소리가 궁까지 들린다고 해서 수성동 계곡이라 이름 붙여졌다. 지금은 가뭄이 극심해 물이 흐르지는 않고 있지만 머잖아 비가 많이 내린다면 물이 거세게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더위를 쫓을 수 있다. 수성동 계곡을 벗어나면 누상동과 누하동 거리에 접어들게 된다. 최근 작고 특색 있는 음식점과 카페, 상점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 젊은 사람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누상동과 누하동에서 지친 몸을 달래며 식사를 해도 좋지만 이곳을 나와 통인시장에서 허기를 채워도 좋다. 통인시장에서는 음식을 도시락에 담고 엽전을 내는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 글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사진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재심 끝에 34년 만에 무죄

    이른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당하거나 옥살이를 한 당사자들이 34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고(故) 최을호씨와 징역 9년을 복역한 고 최낙전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82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갔다온 뒤 조카인 낙전·낙교씨를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며 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수사관들에게 40여일 동안 고문당하고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넘겨져 수사를 받았다. 당시 공안검사는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낙교씨는 1982년 조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가 기각됐다. 이듬해 3월 1심 재판부는 을호씨에게 사형을, 낙전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는 모두 기각됐다. 1985년 10월 을호씨가 형장의 이슬이 됐고, 낙전씨는 9년을 복역하고 나온 뒤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고문으로 인해 작성된 경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김성동·김홍신·이문열…거장들의 폭풍 같은 삼십대 훔쳐보기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김성동·김홍신·이문열…거장들의 폭풍 같은 삼십대 훔쳐보기

    1970년대 ‘문학 춘추전국시대’ 작가들의 인기 연예인만큼 높아 자서전 쓴 10인 꾸준하게 활동…대가의 치열한 삶·예술혼 발견1960년대가 김승옥으로 대표되는 천재 작가들의 시대였다면 1970년대는 문학계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천재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했고 베스트셀러 소설 목록에는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작가들 이름이 올라왔다. 독자들이 연재소설에 열광하던 시대였으며 작가들은 지금의 스타 연예인만큼이나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때는 군사정부 시절이기에 작가는 물론 언론사와 정치인들마저도 자유에 제약을 받던 어두운 역사의 터널 한가운데이기도 했다. 밤은 칠흑같이 깊었으나 새벽이 언제 올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던 때,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 주는 건 서점에 늘어서 있는 소설책들이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웃을 수 있었고, 때로는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아 함께 마음 아파했다. 연애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다. ‘고교얄개’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질 정도로 학생들의 낭만을 그린 영화가 엄청나게 히트하던 때도 1970년대다. 반면에 어떤 작가들이 쓴 소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린다는 이유로 금서(禁書)가 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그런 면이 더욱 뚜렷하지만, 그때도 문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했다. 읽히지 않는 책은 살아남지 못한다. 수많은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때 활동하던 작가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 버렸을까.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가장 치열하게 글을 썼던 작가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경력을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살아남은 대가들의 힘겨웠던 시절 당시엔 모든 작가들이 치열했지만 유독 그 중심에 서서 폭풍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이 있다. 수레출판사에서 1980년에 펴낸 책 ‘나의 이야기’는 그런 작가들이 살아온 내력을 보여 주는 책인데, 글을 쓴 이가 따로 있어서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 각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썼고 이를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책에 등장하는 이는 모두 열 사람으로 이 중 대부분이 여전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이름을 알린 수많은 작가들 중에 선택된 이들인 만큼 목차에 이름을 올린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가의 순서는 이름순으로 배치했는데 맨 앞에 등장하는 사람이 소설가 김성동, 그다음으로는 김홍신, 박범신, 박양호, 우선덕 순이다. 지금이야 다들 육칠십대 나이로 문학계 원로가 됐지만 책이 나올 당시에는 열 명 모두 삼십대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이들 중 누구도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사람들이 자신을 대가라고 부르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이 직접 쓴 ‘나의 이야기’는 더욱 날것 그대로의 싱싱한 느낌이 전해진다.●‘만다라’ 김성동 등단 후 승적 박탈 김성동은 장편소설 ‘만다라’로 등단과 동시에 대형 작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작품은 1981년 영화로 만들어졌고 외국에서도 문학성을 높이 평가받았지만, 그 작품을 내놓기까지 김성동의 삶은 끝 모를 번뇌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입산해 승려가 됐고 10여년 동안 전국을 떠돌다가 중편 ‘목탁조’로 문단에 나왔으나 이 작품 내용이 불교와 승려를 모독한다며 승적을 박탈당한다. 작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승적을 박탈당하고 유랑 잡승이 되어 발악적으로 소주를 마셔 댔고,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잡고 늘어져 여관잠을 구걸하고 술을 갈취했습니다.”(28쪽) 이런 번뇌의 삶 가운데서도 문학을 하겠다는 결심을 다진 것은 승려 시절 한 여대생으로부터 전해 받은 릴케의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가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여러 번 우리말로 번역됐고 지금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 익숙한데 김성동이 읽은 것은 박목월 시인이 번역해 1956년에 펴낸 범조사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김홍신 신춘문예 발표 전 당선 거짓말 김홍신은 소설가가 되기 전 몇 번이나 연애에 실패하고 대학입학시험에서도 번번이 낙방해 결국 자살을 결심했다. 수면제를 사 모았고 공책 열 권 분량으로 유서를 써 놓았다. 입학시험 합격자 스무 명 중에 어쩐 일인지 한 사람이 등록을 하지 않아서 21등이었던 김홍신이 턱걸이하듯 대학생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완전히 진흙탕이나 다름없었다. 글 쓰는 재주는 어릴 때부터 타고났는지 대학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일주일에 단편 하나씩 쓸 정도로 필력이 대단했다. 당연히 신춘문예에도 한 번에 당선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김홍신은 발표가 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신문에 자기 글이 실릴 거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물론 당선자 이름에 김홍신은 없었고 대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방황의 나날들이었다. ●이문열 결혼예물 팔아 신혼여행 떠나 그나마 이문열 같은 경우는 1977년에 대구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2년 뒤에는 중편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도 당선작을 올리게 돼 일찌감치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어 놓은 터였다. 같은 해에 펴낸 ‘사람의 아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작가로서 경력은 한층 단단해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결혼생활로 인해 한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전 재산이 5000원뿐이어서 결혼 예물로 마련한 아내의 목걸이를 신혼여행 떠났을 때 팔아야 했을 정도다.●이외수, 아내 산후조리 위해 월부책 장사 강원일보 기자, 학원 강사로 일하다 문단에 데뷔한 젊은 이외수는 첫아이를 받아들던 날 아내의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월부책 장사의 길로 나서야 했다. 작가가 되기 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방세가 석 달치나 밀려서 주인 아주머니가 자물쇠로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던 때도 있다. 신춘문예에 응모해 상금을 받으면 꼭 갚겠노라고 사정한 끝에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지만 서른 살 즈음 그에게 추운 겨울은 곧 공포의 계절이었다고 고백한다. 누추한 행색으로 다니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파출소에 끌려간 적도 있다. 날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으니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비굴함을 느껴야 했던가”(187쪽) 라는 말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 얘기를 들어 보면 이렇듯 하나같이 힘겨운 삶을 살아왔고 책이 나왔던 1980년 당대도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기 있는 작가이기에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저 똑같이 고통받는 민중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이들이 지금까지도 작가로, 사회 저명 인사로 남을 수 있는 생명력은 어려운 가운데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이라고 하는 예술 속에서 작게 타오르는 촛불 같은 희망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던 날카로운 감수성 덕분이다. 치열하게 삶과 부딪쳤던 대작가들이 풀어놓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통해 오늘 나는 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겸손히 되돌아본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시국 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42년 만에 무죄

    ‘시국 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42년 만에 무죄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1972년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한승헌(83) 변호사가 42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한 변호사는 국내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 이헌숙)는 22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한 변호사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 등을 살펴봐도 공소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내용이 없다”며 “한 변호사의 글이 북한 선전에 동조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1972년 여성동아에 ‘어떤 조사’라는 글을 발표해 김규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고, 2년 뒤 같은 글을 자신의 책에 다시 실어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1975년 구속 기소됐다. 한 변호사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을 변론하는 등의 활동으로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린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시국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재심 끝에 42년만에 반공법 ‘무죄’

    ‘시국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재심 끝에 42년만에 반공법 ‘무죄’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김규남(1929∼1972) 전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한승헌(83) 변호사가 재심을 통해 4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변호사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시국사건 첫 변호를 맡아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리는 인권 변호사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 이헌숙)는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한 변호사의 재심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유죄 근거로 본 한 변호사의 진술조서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작성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한 변호사의 글 어디에서도 반공법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나 다른 모든 증거를 살펴봐도 공소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내용이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 변호사는 자신의 글에서 사형 집행을 당하는 사람을 애도했을 뿐 반공법을 폐지하라는 내용을 담지 않았고 암시하지도 않았다”면서 “북한의 선전에 동조한 글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럽 간첩단 사건’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1967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김씨는 1969년 5월 1일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불법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도쿄대 대학원 유학 시절 알게 된 박노수씨를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 동베를린·평양 등에서 박씨와 함께 이적 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1969년 11월 1심은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박씨와 김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1970년 3월 열린 2심과 7월 열린 상고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결과로 1972년 7월 김씨와 박씨에 대한 사형이 각각 집행됐다. 한 변호사는 1972년 9월호 ‘여성동아’에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처형된 김씨를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을 발표하고, 1974년 12월 자신의 저서인 ‘위장시대의 증언’에 이 글을 넣어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동조했다는 혐의(반공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1심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2심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한 변호사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9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됐으며 8년 동안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박씨와 김씨 등이 중앙정보우의 불법 연행과 강압적인 협박·고문·가혹행위 등으로 허위자백했다는 조사 결과를 2009년 발표했다. 이에 김씨의 유족들은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을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2013년 10월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원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다”면서 2015년 2월 원심을 확정했다. 한 변호사도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 변호사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을 변론하는 등의 활동으로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린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에는 문 후보 선거 캠프의 통합정부자문위원단장으로도 활동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국정원, 개혁발전위 발족…위원장에 정해구 교수

    국정원, 개혁발전위 발족…위원장에 정해구 교수

    국가정보원은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켰다고 19일 밝혔다.이는 정치개입 논란 등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이고 역량있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조치다. 개혁위 출범은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 및 국정원 개혁을 위한 서훈 국정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국내정보 담당관제(IO) 완전 폐지에 이은 개혁조치라고 국정원 측은 설명했다. 개혁위원회 위원장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정치·행정분과 위원인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가 임명됐다. 민간위원으로는 이석범 전 민변 부회장,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오정희 전 감사원 사무총장, 허태회 국가정보학회장, 김유은 한국국제정치학회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7명이 위촉됐다. 이밖에 국정원 전직 부서장 출신 3명과 현 국정원 정무직 2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아울러 개혁위 산하에 ‘적폐청산 TF(테스크포스)’와 ‘조직쇄신 TF’를 설치해 운영키로 했다. ‘적폐청산 TF’는 그간 제기된 각종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고,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개혁위에 보고해 처리방안을 결정한다. 또 현직 검사 3명을 파견받아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조사대상 정치개입 의혹 사건으로는 ▲민간인 사찰 ▲국정원 댓글 사건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조직쇄신 TF’에서는 정치개입 근절, 해외 및 북한정보 역량 강화 등 국민적 요구를 반영해 국정원 업무 및 조직에 대한 쇄신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서훈 국정원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개혁위 출범은 제2기 국정원을 여는 역사적인 과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국내정치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개혁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PC방을 전전하며 댓글을 달아야 했던 직원들이 느낀 자괴감과 번민을 언급하며 “상처없이 다시 설 수 없는 상황이다. 팔이 잘려나갈 수 있다”며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위원들은 국정원 개혁의 핵심과제로 ▲정치개입 근절 및 적폐청산 ▲해외·대북분야 정보역량 강화 ▲권한남용·인권침해 방지 등을 제시하고, 세부 실천방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로드먼, 김정은 면담 여부에 “알게 될 것”

    北 도착한 날 억류 미국인 석방 金 선물로 트럼프 저서 전달 지난 13일부터 5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전직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은 17일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해 “멋진 여행이었다”며 이번 방북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 여부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로드먼은 이날 평양에서 베이징을 향해 출발하면서도 “매우 생산적인 여행이었다. 북한에 조만간 다시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로드먼은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자신이 북한에 도착한 13일 혼수상태로 석방된 것과 관련, “웜비어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고만 말했다. 로드먼은 다섯 번째인 이번 방북 기간 김일국 북한 체육상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과 셔츠 등을 전달하면서 “김 위원장을 위한 선물”이라고 밝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한 행사에서 웜비어가 의식불명 상태로 송환된 데 대해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로 꼽히는 빌 리처드슨 전 유엔 주재 미 대사는 이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웜비어 이외에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 등을 석방시키기 위해 방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이 같은 제안을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에 편지로 전했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1996년 북한에서 간첩 혐의로 3개월간 억류돼 있던 당시 26세의 미국인 에반 헌지커의 석방을 이끌어낸 바 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文정부 첫 대법관에 조재연·박정화 임명 제청… 성균관대·여성 ‘파격’

    文정부 첫 대법관에 조재연·박정화 임명 제청… 성균관대·여성 ‘파격’

    차기 대법관으로 조재연(왼쪽·61·사법연수원 12기) 대륙아주 변호사와 박정화(오른쪽·51·20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제청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후 첫 대법관 인선에 대해 대법관의 전형으로 불리는 ‘서울대 출신 남성 판사’라는 도식을 깬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양승태 대법원장은 16일 대법관추천위원회가 추천한 8명의 후보자 중 조 변호사와 박 부장판사를 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고 대법원이 밝혔다. 강원 동해 출신인 조 변호사는 ‘고졸 행원’에서 사법시험 수석 합격으로 판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덕수상고에 진학한 그는 한국은행에 다니다 성균관대 야간부 법학과에 진학한 뒤 제22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판사로 임관한 뒤에는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납북 어부 간첩 사건 등 시국 사건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거부하면서 ‘반골 판사’로 불렸다. 199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본사와 대리점의 ‘갑질’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을 이끌어내는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힘썼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박 부장판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지 1년 만인 1988년 사시에 합격했다.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서울행정법원 개원 이래 첫 여성 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사법부 ‘유리 천장’을 깬 법관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이다. 그는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 해고당한 쌍용자동차 직원에게 해고가 부당하다고 처음으로 판결하기도 했다. 그가 임명되면 김영란(11기)·전수안(8기) 전 대법관, 박보영(16기)·김소영(19기) 현 대법관에 이은 5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문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여 후보자들에 대한 임명 동의를 국회에 요청하면 국회는 청문회를 거쳐 동의 투표를 한다. 국회에서 가결되면 문 대통령은 이들을 새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이 과정은 한 달 정도 걸릴 전망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신임 대법관 후보 조재연 누구? “은행 다니다 사시 수석합격”

    신임 대법관 후보 조재연 누구? “은행 다니다 사시 수석합격”

    16일 신임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된 조재연 변호사(61·사법연수원 12기)는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취업했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성균관대)에서 공부해 198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법시헙에 수석으로 합격해 판사로 임관했다.1982~1993년 11년간 판사로 재직하고 1993년부터 현재까지 24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관 재직시절인 1985년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저항의식이 담긴 ‘민중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피의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된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유력 사회과학 출판사 ‘일월서각’이 12대 국회 첫번째 회기 종료 후 야당의원 13명의 국회발언 속기록을 책으로 출간했다. 그러자 국가안전기획부가 경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받게 한 뒤 경찰이 출판사 대표를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즉심에 회부한 사건에서도 조 변호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1987년 동해에서 어로작업 중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에 대한 간첩 혐의 사건의 주심판사를 맡아 무죄를 선고했다. 균형있는 시각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보호, 인권신장 등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수호에 이바지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는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자문위원, 2013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규제심사위원, 미래창조과학부 고문변호사를 지냈다. 2014년 경찰청 수사정책자문위원과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2015년 언론중재위원회 감사 등 공직 유관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했다. 조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장애인법률지원변호사단과 사법평가위원으로도 활약했다. Δ강원 동해 출생 Δ덕수상고 Δ한국은행 근무 Δ성균관대 법대 Δ사법시험 22회·연수원 12기 Δ서울민사지법 판사 Δ서울형사지법 판사 Δ춘천지법 강릉지원 판사 Δ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 Δ서울가정법원 판사 Δ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Δ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변호사 Δ대한변호사협회 장애인법률지원변호사 Δ경찰청 경찰수사정책위원회 위원 Δ언론중재위원회 감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문식 “저예산 영화라고 연기도 저예산은 아니잖아요”

    이문식 “저예산 영화라고 연기도 저예산은 아니잖아요”

    스크린에서 감초로 빛나는 연기자들은, 영화 개봉작이 그가 출연한 작품과 출연하지 않은 작품으로 나뉜다는, 그런 시기가 있다. 이문식(50) 또한 그랬다. 그러나 요 몇 년간은 좀처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었다. 그가 ‘미쓰고’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15일 개봉하는 ‘중독 노래방’이다.“이유는 간단해요. ‘공필두’, ‘플라이 대디’, ‘구타유발자’ 등 주인공을 맡은 영화들마다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어요.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줄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주연까지 했는데 설마 조연을 다시 할까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해요. 영화 쪽으로 일이 잘 안 풀리다 보니 쉬고 있는 것보다 연기를 이어 간다는 생각에 드라마를 많이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세월이 4~5년 훅 갔네요. 남들은 TV를 하면서 영화도 많이 하던데 전 아직 그 지점을 잘 모르겠어요. 허허허.” ‘중독 노래방’은,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막무가내로 들이켠 작품은 아니다. 미장센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판타지물이다. 고풍스럽고 비현실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외딴 지하 노래방에 세상에 상처받고 저마다 한 가지씩 중독에 빠져 세상을 등진 인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관객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대안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게 된다. 이문식은 노래방 주인이자 ‘야동 중독자’인 성욱으로 전혀 웃기지 않은, 진지한 연기를 펼친다. ‘복면달호’를 공동 연출했던 김상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 망설여지기도 했어요. 저예산 영화의 한계가 있어 겁이 나기도 했죠. 개봉 시기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예산 영화라고 연기도 저예산이 아니잖아요. 또 폭력적이거나 코믹하지 않은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항상 있었죠.” 무대를 주름잡다 TV나 영화에서 감초 연기자로 출발, 스타덤에 오른 뒤 맡은 주연작이 대박을 터뜨린 동료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7번방의 선물’(2013)의 류승룡, ‘럭키’(2016)의 유해진이 대표적이다.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비주얼적으로 썩 좋지 않더라도 연기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게 고무적이잖아요. 그런 작품이 터져 줘야 영화의 다양성도 늘어나겠죠. 저도 그러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배우로서 조연이든 주연이든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오겠죠.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1993년 말 대학 졸업 즈음 대학로에 뛰어들었으니 배우 길을 걷게 된 지 곧 사반세기다. 영화로는 자잘한 단역을 빼면 ‘간첩 리철진’(1999)이 출발점이다. 이문식은 스크린에서 보인 자신의 연기에 대해 60점을 주겠다며 웃었다. “누군가는 저를 보고 까다롭다고 하는데, 개런티를 따지면 이상하겠지만 캐릭터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배우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연극할 때의 반도 못하는 것 같아요. 연극은 한 캐릭터를 놓고 3개월 정도는 아파하고 고민하죠. TV나 영화에서는 그렇게까지는 못해요. 100점은 허상인 것 같고, 80점 정도는 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쟁 아닌, 평화를 노래하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쟁 아닌, 평화를 노래하라!

    “삼촌이 인민군을 따라 어디론지 쫓겨가 버리고 그때까지 대밭 속에 굴을 파고 숨어 의용군을 피하던 외삼촌이 국군에 입대하게 되어 양쪽에 다 각기 입장을 달리하는 근심거리가 생긴 뒤로도 겉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다.” 작가 윤흥길이 197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장마’는 한국전쟁 당시, 어린 ‘나’의 눈으로 본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국군 소위였던 외삼촌의 죽음 이후 인민군을 따라간 빨치산 삼촌을 저주하는 외할머니와 그 삼촌의 무사귀환만을 바라던 할머니와의 갈등이 전체 소설의 중심축이다. 바로 이렇듯 민족 간에 이루어진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넘어 가족 공동체의 운명마저 파괴한다. 이는 곧 민족 공동 운명체로서의 정체성을 각기 분리시켜 결국은 또 다른 반목을 만들게 되는 비극으로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호국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 전쟁의 교훈과 호국정신 배양, 선열들의 호국 위훈 추모’라고 하는 다분히 교과서적(?)인 느낌 가득한 목표를 가지고 1990년 9월에 착공하여 1993년 12월에 완공한 기념관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개관은 1994년 6월 10일에 하였는데, 서울 금싸라기 땅에 연건평이 2만 5000평에 달하는 건축물이 들어섰으니 우선은 규모부터가 남다른 전시관이다.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에 총 8500여점의 전시자료를 갖추고 있어 단일 전쟁 박물관 규모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임은 분명하다. 원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주둔했던 군영(軍營) 자리였다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본부로 사용되었던 장소다. 전쟁기념관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노태우 대통령으로 1988년 6월 국방부 순시에서 ‘전쟁기념관 건립계획’을 발표한 후 일사천리로 건립은 진행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친필인 ‘전쟁기념관’ 휘호탑(揮毫塔)이 입구에 있는 이유다. 그런데 요사이 이곳이 의외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한류관광코스가 되었다. 더구나 옥외에 전시된 한국전쟁 당시부터 최근까지 운용된 항공기, 전차, 대포, 군함 등 대형 전투장비는 다른 나라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들이라 쇼핑 위주 한류관광에 지친 남편과 아들들에게는 최고의 인기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창군 이후 17만 전사자들의 넋을 추모 전쟁기념관은 여타 다른 박물관들과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전시물들의 가짓수가 많다. 그러다보니 대강 둘러 보려 해도 족히 반나절은 걸리는 곳이다. 현재 호국 추모실, 전쟁 역사실, 6.25전쟁실 1,2,3, 기증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 대형장비실과 옥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입구에 있는 호국 추모실에는 창군 이후 산화한 17만 전사자의 명부가 보관되어 있다. 이 곳에서 제일 처음 묵념을 하고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호국 추모실을 벗어나면 전쟁 역사실이 나온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적 전쟁 사료(史料)를 보관하고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동검과 돌칼, 화살촉, 주먹도끼 등도 만날 수 있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이끈다. 다음이 전쟁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6·25전쟁실 1, 2, 3관이다. 이 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비밀문서, 전쟁의 과정, 당시 사용하였던 전쟁 물품, UN군의 활약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자료가 구비되어 있다. 특히 6·25전쟁실 3관에는 유독 외국인 노병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3년 1개월간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유엔군 3만 7000여 명이 전사하였는데 동료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짓는 모습이 참으로 숙연하다. 6·25전쟁실을 지나면 일반인들의 기증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 대형장비실이 차례로 나오는 데, 특히 기증실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수많은 노병들의 전쟁의 흔적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해외 파병실은 베트남 파병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약 8년 6개월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 파병되어, 우리나라 현대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베트남 파병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곡사포에서 나이키 미사일까지 만져볼 수 있어 실내 전시관을 나오면 옥외 전시실이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으로 외국인과 어린이들에게 신기한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또한 얼핏 보아도 군대를 제대한지 20 여년이 훌쩍 넘은 아저씨들도 침을 튀기며 탱크를 구석구석 어루만지는 모습은 흡사 어른들의 놀이터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현재 옥외전시실에는 민간인이 접할 수 없는 6·25전쟁 당시의 공산군과 유엔군 주요무기들과 베트남 전쟁과 대 간첩작전 등에서 국가안보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수송기 및 장갑차 등 일부 장비는 탑승체험도 가능해서 늘 한 줄 가득 길게 늘어서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 곳에는 에어보트, 40mm 4연장 함포, 수륙양용장갑차, KT-1 훈련기, 4,5인치 로켓포, 3인치 50 단연장 함포, 155mm 곡사포, 5인치 38함포, S-2 해상초계기, 나이키 지대지 미사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민족 간의 상쟁이었던 한국전쟁 당시 발생하였던 숱한 잊혀진 죽음들과 역사가 외면한 희생들에 대하여도 이데올로기의 잣대가 아닌 진실을 척도로 다가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 민족의 미래는 활짝 열릴 것이다. <전쟁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꼭 가보길 권한다. 서울 내에서도 접근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전시물들도 여타 박물관의 그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훌륭하다.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좋지만 현역 군인들이나 군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 남성분들 -어린이 체험관 시설이 아주 훌륭해서 가족 동반 나들이 장소로도 훌륭하다. 3. 가는 방법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용산동 1가) -대중교통이 가장 편하다. ⑥호선 삼각지역 11번, 12번 출구 (도보 3분)/ ④호선 삼각지역 1번 출구 (도보 5분)/ ①호선 남영역 1번 출구 (도보 10분) 4. 감탄하는 점은? -옥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실물 대포, 곡사포, 비행기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오히려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 체험거리가가 많고 다양한 행사가 늘 진행되고 있어 충분히 방문할 공간은 된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호국추모실. 이 곳에서 산화한 17만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은 기본!! 7. 먹거리 추천? -인근에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에 훌륭한 식당들이 많다.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warmemo.or.kr/newwm/main-new/main.j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이태원 거리, 국립중앙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라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기록, 보관하는 장소다. 무겁지는 않아도 되지만 너무 가벼운 발걸음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선열들에 대한 예의인 듯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김포 신곡수중보 수문 개방해야” 서울·고양·김포시민 60%

    “김포 신곡수중보 수문 개방해야” 서울·고양·김포시민 60%

    서울·경기 고양·김포시민 10명중 6명이 ‘김포 신곡수중보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 5일 서울·고양·김포 시민 1066명을 대상으로 ‘신곡수중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747명이 신곡수중보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곡수중보를 즉시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8.5%였다. 수중보 수문 개방의 가장 큰 이유로 녹조 예방을 꼽았다. 향후 개방시 신곡수중보 관리 규정을 개정해야 하고, 수중보 철거시에는 자연성 회복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서울·고양·김포 시민 61.5%가 먼저 수문을 개방한 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신곡수중보를 그대로 둬야 한다고 응답한 시민들은 15%에 불과했다. 또 신곡수중보 수문을 개방한다면 녹조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시민은 74%에 달해 수질개선을 위한 수문 개방기대가 높았다. 일부에서 신곡수중보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사유로 재해 예방을 꼽았다. 신곡수중보 수문을 개방할 수 있게 ‘수중보 관리 규정’ 개정에 대해서는 찬성 69.8%로, 녹조가 발생할 때 신곡수중보 수문을 열어 적극 대처할 것을 주문하는 여론이 높았다. 신곡수중보를 철거할 때 가장 역점을 둬할 점은 자연성 회복이(40.6%)이 시설 보완(25.6%)보다 높았다. 이번 조사는 서울환경연합이 전문여론조사기관 ㈜이너텍시스템즈에 의뢰해 ARS설문조사시스템에 의한 전화조사 RDD방식(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으로 서울(526명), 고양(310명), 김포(230명) 시민 유효표본 1066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신곡수중보는 한강유람선 운항과 간첩침투방지 등 목적으로 지난 1988년 설치됐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블랙리스트’ 확대 그친 안보리 새 대북 제재

    ‘中도 동의’ 경고성 의미에 무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 2일(현지시간)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한 응징으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 2356호를 채택했다. 2006년 이후 일곱 번째 대북 제재 결의안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이번 결의안은 제재 대상 블랙리스트를 확대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라 북한에 대한 실질적 타격이 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중국도 동의하는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경고적 의미는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안보리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뉴욕 유엔본부에서 15개 이사국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새 대북 제재 결의 ‘2356호’를 채택했으며 회의 시작과 동시에 진행된 거수 표결에서 15개 이사국 대사 전원이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강력한 언어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비난한다”면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포기하고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도 완전히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제재 결의는 자산 동결과 국외여행에 제한을 가하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 기관 4곳과 개인 14명이 블랙리스트에 추가됐다. 블랙리스트에 추가된 4개 기관은 고려은행과 북한 전략로켓사령부, 무기거래 관련 업체인 강봉무역과 조선금산무역 등이다. 개인은 국외에서 간첩 활동을 하는 조일우 정찰총국 5국장을 비롯해 김철남 조선금산무역 대표, 김동호 베트남 단천상업은행 대표, 박한세 제2경제위원회 부위원장, 백세봉 전 제2경제위원장,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박도춘 전 군수담당 비서,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이 제재 명단에 올랐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 유엔의 제재 대상은 개인 53명, 기관 46곳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번 제재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이나 북한 노동자 국외 송출 금지 같은 초강력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이 여전히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제재에는 미온적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다만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이 아닌 중·단거리미사일 발사의 누적만으로도 새 제재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는 정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조그마한 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한편 북한은 이에 대해 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과 유엔 안보리가 또다시 벌려 놓은 반공화국 제재 책동을 악랄한 적대 행위로 준렬히 단죄 규탄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비난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美, 인민군 포함 대북 독자제재… 정권 핵심부까지 겨눴다

    미국이 1일(현지시간) 새로운 대북 독자 제재안을 전격 발표했다. 올해 두 번째인 이번 제재는 북한의 군부와 헌법상 최고지도부가 포함됐으며 대상도 중국 기업뿐 아니라 러시아 기업으로까지 확대됐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인,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이번 제재에서 개인은 베이징 북한 고려은행 대표인 리성혁과 정부 관계자인 김광수, 이고리, 미추린(러시아인) 등이 명단에 올랐다. 단체로는 인민군, 인민무력성과 국무위원회 등 북의 군부와 핵심 정부기관, 조선대령강무역회사와 송이무역회사, 조선아연공업사, 조선컴퓨터회사, NHK 프리모르네프테프로둑트, 아르디스베어링스, 독립 석유회사 등이 포함됐다. 처음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인과 기업들은 “군수 연구개발과 조달 업무를 하는 북한의 단군무역과 연계됐다”고 미 재무부는 설명했다. 상징적이지만 ‘인민군’이나 ‘국무위원회’ 등이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과거에도 미국이 북한 통치자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을 제재한 적은 있지만 이런 형태로 북의 군부나 최고 핵심 기관 등을 제재했던 적은 없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이번 제재는 미국이 북한 정권의 핵심부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는 상징성을 갖는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에 맞춰 앞으로 북한 제재 대상의 수와 폭을 점점 넓히면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곧 표결에 부칠 새 대북 제재 결의안에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관여한 개인 15명과 단체 4곳을 추가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해외 간첩활동을 하는 조일우 정찰총국 5국장과 김철남 조선금산무역회사 대표, 김동호 베트남 단천상업은행 대표 등 개인 15명과 은행 1곳, 무역회사 2곳, 인민군 로켓부대 등 단체 4곳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포함한 상임이사국은 모두 결의안 초안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어 나간다는 원칙 아래 미·일·중 등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서울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국정원 1차장 서동구, 2차장 김준환, 3차장 김상균

    국정원 1차장 서동구, 2차장 김준환, 3차장 김상균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국정원 차장을 임명했다. 국정원 차장은 국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문 대통령은 1일 국정원 1차장에 서동구(62) 주파키스탄 대사를, 2차장에 김준환(55) 전 국정원 지부장을 각각 임명했다. 국정원 3차장에는 김상균(55) 전 국정원 대북전략부서 처장을 발탁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3명의 차장은 모두 국정원 출신”이라면서 “국정원과 정치권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국정원이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인사로 보면 된다. 이로써 국정원 역량이 강화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서울 출신의 서동구 1차장은 주 유엔 공사 및 주미 대사관 공사를 지낸 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주파키스탄 대사를 지냈다. 1차장이 대북 정보 및 해외 국익 정보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적임자로 평가된다. 대전 출신의 김준환 2차장은 3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국정원 지부장을 지낸 적이 있다. 2차장은 대공수사(간첩이나 이른바 ‘좌익사범’을 찾아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행위)와 대테러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사이버·통신 등 과학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게 될 김상균 3차장은 부산 출신으로 국정원 대북전략부서 처장을 역임한 대북통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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