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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50개 업소에 낸 총비용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 이용수 할머니와 오해 풀기 위해 만날 것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부모님·시어머니 재산 다 합쳐서 8억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다가 돌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 엠바고였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그는 또 “외교부가 15차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상의했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며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정대협 간사를 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실제론 430만원을 써 놓고, 이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3339만원은 2018년 50개 업체에 지급된 총 비용이고 그 중 대표업체 한 곳만 표시한 것”이라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 있나’ 걱정 미국 UCLA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 해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행사 모든 비용 합친 것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 이용수 할머니와 오해 풀기 위해 만날 것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부모님·시어머니 재산 다 합쳐서 8억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다가 돌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 엠바고였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그는 또 “외교부가 15차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상의했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며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정대협 간사를 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실제론 430만원을 써 놓고, 이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3339만원은 감사패, 현수막 등 행사 준비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며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 있나’ 걱정 미국 UCLA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 해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행사 모든 비용 합친 것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라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고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일본 정부의 진전된 태도가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에도 엠바고 상태로 공유된 내용이었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나”라며 “정대협 간사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이며 횡령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일부 언론은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430만원을 썼는데, 마치 해당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윤 당선자는 “감사패, 현수막 등 행사 준비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UCLA에서 피아노 전공을 공부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윤미향 “기자가 딸 다니는 UCLA까지…조국 생각나”

    윤미향 “기자가 딸 다니는 UCLA까지…조국 생각나”

    “한일합의 사전인지 의혹은 음해” 12일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이 언론의 의혹 제기를 향해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페이스북에 최근 자신의 딸이 다니는 UCLA 음대생들을 기자가 취재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은 “딸이 차를 타고 다녔냐, 씀씀이가 어땠냐, 놀면서 다니더냐, 혼자 살았냐 등을 묻고 다닌다더라”며 이렇게 밝혔다. 윤 당선인은 딸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했다가 남편의 간첩조작사건 피해보상금으로 유학비를 마련했다고 말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 번도 딸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 적이 없다”고 연합뉴스를 통해 해명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에 모인 기부금과 성금 약 49억 원 중 9억 원만 피해자에 지급했다는 비판에 윤 당선인은 “직접지원은 피해자 운동을 위한 사업들 중 일부”라고 설명했다. 또 외교부와 피해자 할머니들 간 접촉을 막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음해이자 가짜뉴스”라며 “외교부가 합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팩트”라고 반박했다. 2018년 정의연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의 한 주점에 3000여만 원의 경비가 지출됐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선 “참석자들에 대한 식사 준비와 제공 등에 드는 경비다. 관련해 정의연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최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과정에 함께한 가자평화인권당 최용상 공동대표를 향해 “피해자의 상처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할머니가 얘기하지 않은 것도 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말하며, “지난 일요일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지역을 6시간 헤맸는데, 만나주지 않아 돌아왔다. 최근 한 시간 넘게 통화했는데, ‘위안부 문제를 다 해결하고 가라’고 하시더라. 서운하신 것 같다”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3년간 기부금 41% 피해자 지원”… 정대협 회계 섞여 비율 들쑥날쑥

    “3년간 기부금 41% 피해자 지원”… 정대협 회계 섞여 비율 들쑥날쑥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논란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기부금 중 피해자 지원금이 41%를 차지한다고 공개하는 등 해명에 나섰다. 쓰임새가 달라진 ‘고(故)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은 김 할머니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사회구조적 피해자들을 위해 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시간을 넘긴 기자회견에도 기부금 사용처 등 일부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의연은 11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사람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원금 사용 세부 내역을 공개했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이 후원금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1 정의연 후원금 왜 다른 데 썼나 정의연은 이날 후원금 사용 내역을 공개했다. 정의연은 피해자 후원금 논란이 단체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연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수요집회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단체라는 것이다. 이날 정의연이 공개한 사업수행비용에 따르면 2017~2019년 목적지정 기부금을 제외한 일반 기부금 22억 1900여만원 중 피해자 지원 사업 지출은 9억 1100여만원으로 약 41%를 차지한다. 목적지정 기부금은 김복동센터 건립 등 후원자가 특정 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지정해서 기부한 금액이다.2 2년간 피해자 지원 비율 6% 미만 연도별로 보면 지난해 전체 사업비 13억 6300여만원 중 피해자 지원금은 37%다. 2018년은 12억 2600여만원 중 5%, 2017년은 15억 7500여만원 중 75%에 해당한다.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금 비율이 들쑥날쑥한 것에 대해 “2018년에는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피해자 지원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정의연 회계에는 5%만 나타난다”고 밝혔다. 다만 정의연은 일부 회계 표기에 대한 잘못은 인정했다. 정의연은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정의연 기부금 활용 내역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혜 인원 ‘999명’, ‘9999’명 등에 대해 “부족한 인력으로 실무편의적 태도를 보인 결과”라며 사과했다. 3 진보진영 자녀 김복동장학금 혜택 정의연은 정의연 관련 인사 및 진보사회 단체 자녀들이 ‘김복동 장학금’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복동 장학금은 2016년 김 할머니가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하며 시작됐다. 김복동 장학금을 운영하는 단체 ‘김복동의 희망’은 김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별세한 후 같은 해 3월 장학금을 개편하면서 ‘국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로만 한정한 장학금을 추가로 만들었다. 장학금 지급 대상이 확대되면서 당시 정의연 이사의 자녀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장학금 수혜자들이 진보계열 시민단체 활동가의 자녀들로 밝혀졌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당초 취지와 달라진 부분이다. 정의연은 이에 대해 “김 할머니는 평소에도 쌍용차 노동자들, 사드 반대 시민 등 재일조선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사회구조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면서 “그 뜻을 받들어 시민단체 자녀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4 윤미향 당선자 자녀 유학자금 출처 이날 정의연 전 이사장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윤미향 당선자는 딸의 미국 유학 비용 출처 논란에 대해 “간첩조작 사건으로 고통받은 남편과 가족의 배상금”이라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딸의 꿈을 향해 가는데 사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아빠의 배상금만이라도 내어준 것”이라며 “결국은 온 천하에 이야기를 하게 하는 지금의 작태가 ‘너무나 반인권적이구나, 너무나 폭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윤 당선자의 남편인 김삼석씨 남매는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14년 재심을 청구해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8년에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윤 당선자 남편이 받은 형사배상금은 1억 9000만원, 남편의 가족들에게 지급된 민사배상금은 8900만원이다. 현재까지 지출된 윤 당선자 딸의 학비·생활비는 약 8만 5000달러(한화 약 1억원)로 배상금 총액보다 적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3년간 기부금 41% 피해자 지원”… 정대협 회계 섞여 비율 들쑥날쑥

    “3년간 기부금 41% 피해자 지원”… 정대협 회계 섞여 비율 들쑥날쑥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논란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기부금 중 피해자 지원금이 41%를 차지한다고 공개하는 등 해명에 나섰다. 쓰임새가 달라진 ‘고(故)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은 김 할머니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사회구조적 피해자들을 위해 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시간을 넘긴 기자회견에도 기부금 사용처 등 일부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의연은 11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사람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원금 사용 세부 내역을 공개했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이 후원금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1 정의연 후원금 왜 다른 데 썼나  정의연은 이날 후원금 사용 내역을 공개했다. 정의연은 피해자 후원금 논란이 단체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연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수요집회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단체라는 것이다.  이날 정의연이 공개한 사업수행비용에 따르면 2017~2019년 목적지정 기부금을 제외한 일반 기부금 22억 1900여만원 중 피해자 지원 사업 지출은 9억 1100여만원으로 약 41%를 차지한다. 목적지정 기부금은 김복동센터 건립 등 후원자가 특정 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지정해서 기부한 금액이다. 2 2년간 피해자 지원 비율 6% 미만  연도별로 보면 지난해 전체 사업비 13억 6300여만원 중 피해자 지원금은 37%다. 2018년은 12억 2600여만원 중 5%, 2017년은 15억 7500여만원 중 75%에 해당한다.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금 비율이 들쑥날쑥한 것에 대해 “2018년에는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피해자 지원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정의연 회계에는 5%만 나타난다”고 밝혔다. 다만 정의연은 일부 회계 표기에 대한 잘못은 인정했다. 정의연은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정의연 기부금 활용 내역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혜 인원 ‘999명’, ‘9999’명 등에 대해 “부족한 인력으로 실무편의적 태도를 보인 결과”라며 사과했다. 3 진보진영 자녀 김복동장학금 혜택  정의연은 정의연 관련 인사 및 진보사회 단체 자녀들이 ‘김복동 장학금’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복동 장학금은 2016년 김 할머니가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하며 시작됐다. 김복동 장학금을 운영하는 단체 ‘김복동의 희망’은 김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별세한 후 같은 해 3월 장학금을 확대개편하면서 ‘국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로만 한정한 장학금을 추가로 만들었다.  장학금 지급 대상이 확대되면서 당시 정의연 이사의 자녀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장학금 수혜자들이 진보계열 시민단체 활동가의 자녀들로 밝혀졌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당초 취지와 달라진 부분이다.  정의연은 이에 대해 “김 할머니는 평소에도 쌍용차 노동자들, 사드 반대 시민 등 재일조선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사회구조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면서 “그 뜻을 받들어 시민단체 자녀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4 윤미향 당선자 자녀 유학자금 출처  이날 정의연 전 이사장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윤미향 당선자는 딸의 미국 유학 비용 출처 논란에 대해 “간첩조작 사건으로 고통받은 남편과 가족의 배상금”이라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2018년 자녀 유학을 고민할 당시, 남편의 배상금 지급이 이뤄졌다”며 이같이 소명했다고 시민당 제윤경 대변인이 전했다.  윤 당선자의 남편인 김삼석씨 남매는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14년 재심을 청구해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8년에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윤 당선자 남편이 받은 형사배상금은 1억 9000만원, 남편의 가족들에게 지급된 민사배상금은 8900만원이다. 현재까지 지출된 윤 당선자 딸의 학비·생활비는 약 8만 5000달러(한화 약 1억원)로 배상금 총액보다 적다.  시민당 관계자는 “윤 당선자 가족은 지급받은 배상금을 (간첩조작 사건) 당시 뱃속에 있던 딸의 몫으로 보고 학비로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윤미향 “간첩사건 배상금으로 딸 유학 지원” 해명

    윤미향 “간첩사건 배상금으로 딸 유학 지원” 해명

    딸 유학 비용 출처 관련 해명2018년 국가 상대 손배소송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는 11일 최근 논란이 된 딸의 미국 유학 비용 출처에 대해 “간첩조작 사건으로 고통받은 남편과 가족의 배상금”이라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2018년 자녀 유학을 고민할 당시, 남편의 배상금 지급이 이뤄졌다”며 이같이 소명했다고 시민당 제윤경 대변인이 전했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 기부금 운영이 불투명했다고 주장하자 기부금 일부를 딸의 유학비용으로 쓴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이 일었다. 연간 수입이 많지 않은 윤 당선자가 딸의 미국 UCLA 유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점에 근거해 의혹이 제기되자 배상금을 활용했다고 해명한 것이다. 윤 당선자의 남편인 김삼석씨와 그 동생 김은주씨는 1993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표한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14년 재심을 청구해 간첩 협의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8년에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윤 당선자 남편이 받은 형사배상금은 1억 9000만원, 남편의 가족들에게 지급된 민사배상금은 8900만원이다. 현재까지 지출된 윤 당선자 딸의 학비·생활비는 약 8만 5000달러(한화 약 1억원)로 배상금 총액보다 적다. 시민당 관계자는 “윤 당선자 가족은 지급받은 배상금을 (간첩조작 사건) 당시 뱃속에 있던 딸의 몫으로 보고 학비로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 당선자가 정의연의 성금·기금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았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윤 당선인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소명이나 해명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당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윤미향 “딸 유학자금은 남편 간첩무죄 보상금”

    윤미향 “딸 유학자금은 남편 간첩무죄 보상금”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기금 유용 의혹에 대해 자녀 유학 자금은 남편의 간첩조작 사건으로 받은 형사보상금을 통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더불어시민당 측은 11일 윤 당선자는 자녀의 유학자금 관련 기금 유용 의혹이 일자 남편의 형사보상금 등으로 유학자금을 마련했다며 관련 자료를 당에 제출했다고 공개했다. 윤 당선자의 딸은 지난 2016년 미국 시카고주의 한 음악대학원을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고 2018년부터 2년 과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음악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윤 당선자의 남편 김삼석씨와 시누이 김은주씨는 1994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남편 김씨는 2017년 대법원으로부터 간첩혐의가 없고 불법구금 등 국가의 불법행위가 있다고 판단받았으나 국가보안법 위반은 인정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일부 무죄가 나온 결과 김씨는 1억 9000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또 2018년 서울고법은 김씨와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김씨의 어머니와 윤 당선자, 윤 당선자의 딸 등에게 국가가 89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남편 김씨는 2005년 경기도 수원에서 인터넷 언론사를 창간해 운영하고 있다. 윤 당선자의 정의기억연대 성금 유용 의혹은 이용수(92)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주장에서 불거졌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부금을) 할머니들한테 쓴 적이 없다”며 정의기억연대의 기금 운용이 불투명하며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는데 기금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자는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후보로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의 반응을 긴장하며 기다렸고 ‘잘했다’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 또 다른 제 의정활동 계획에 대해 ‘그래 그래 그러자’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에 정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며 국회의원 출마는 이 할머니 지지를 받은 일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할머니의 지지가 지금은 ‘우리문제 다 해결하고 가라’란 목소리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자는 국회의원 출사표에서 정대협(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활동 초였던 1993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남편이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생활을 4년 동안 하게 되어, 홀로 딸을 낳았고 딸은 친정에 맡기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정대협 활동을 이어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탈북 아이들 10명의 ‘아빠’ 김태훈씨 “모두 집에 있으니 힘들죠”

    탈북 아이들 10명의 ‘아빠’ 김태훈씨 “모두 집에 있으니 힘들죠”

    북한을 탈출한 10~22세 사이의 청소년 10명과 한집에 살며 아빠 노릇을 하는 한국인 김태훈(45) 씨의 사연이 영국 BBC에 2일 소개됐다. 서울에 사는 김씨 사연을 BBC 여기자 이윤녕 씨의 기사로 보니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22살 맏형 뻘인 대학생 근성을 비롯해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김씨는 요즘 홈스쿨링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온라인 수업 첫날 김씨와 10명의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가장 잘 터지는 2층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화상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육청이 빌려준 장비가 애를 먹였다.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로그인을 잘못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고, 1년 전에 북한을 탈출한 금성(15)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어려움을 겪어 도와줘야 했다. 온라인 과제를 제출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막내 준성(10)은 태블릿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다 꾸지람을 들었다.하지만 김씨는 이틀 만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덟 아이는 부모 없이 혼자, 다른 피붙이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남녘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어릴 적 그런 모험을 감행해야 했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부모 없이 조부모와 살아가다 조부모가 연로해 함께 탈출할 수 없거나 온가족이 모험을 감행할 경비를 충당할 수 없어 부모들이 브로커에 돈을 쥐어주고 아이만 떠나보낸 경우도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3만 3658명의 북한탈출 주민이 남쪽에 살고 있는데 15% 정도가 19세 이하 청소년들이다. 2017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96명의 어린이가 부모 없이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김씨 역시 탈북 아이들을 돌보게 될지 전혀 상상하지조차 못했다. 15년 전 출판 일을 하다 남은 시간, 하나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갓 입소한 하령이란 소년을 만났는데 어머니의 새 직장이 멀어 아들을 혼자 집에 남겨둘 처지였다. 열 살이 된 하령을 돌보기 시작했고 한 명씩 늘어났다. 부모는 완강히 반대하다 몇년 동안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었다. 김씨와 가장 오랜 기간을 산 아이는 철광인데 열한 살이던 2012년 성탄절에 남쪽에 도착했다. 누이, 어머니와 함께 탈출했는데 붙잡혀 구금됐다. 혼자 석방된 뒤 3개월 뒤 누이가 풀려나자 다시 탈출을 감행해 성공했다. 돌보는 가족이 늘자 김씨는 보건복지부에 그룹홈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진짜 집으로 생각하지, 시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도 이제는 김씨의 결심을 인정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고 아이들을 입양한 손주로 대한다. 금성은 처음 김씨를 봤을 때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북한의 고위직처럼 김씨가 뚱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먹을거리 등을 대기가 벅차지만 혼자 힘으로 해나간다고 했다. “가장 힘든 점은 식료품 쇼핑이다. 커가는 아이들이라 말처럼 먹어댄다. 엄청난 양의 식품을 카트 가득 싣지만 하루만에 동이 날 때도 있어 낙담한다”고 털어놓았다. 냉장고만 6개이고, 세탁기 두 대가 쉴틈없이 돌아간다. 그는 늘 진공청소기를 돌려야 한다.그는 아이들에게 도와달란 얘기도 하지 않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돌봄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중한 자세를 갖추고 자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 부모가 날 기른 방식이다.” 일이 너무 많아 김씨는 정규직을 얻을 수가 없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재정적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해 최근에는 가계에 보탬을 주려고 작은 카페를 개업했다. 재정적 어려움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다. 김씨는 처음에는 전셋값 상승이나 더 넓은 집이 필요해 이사를 자주 했는데 달갑지 않은 시선과 마주했다. “이사할 때마다 이웃들은 어떤 식으로든 알아내더라. 일부는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탈북자들은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고, 한 아이의 급우는 북한에서 온 간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기죽거나 그러진 않는데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전쟁 일으키는 놈들”같은 식으로 불리곤 했다. 김씨는 “남쪽 사람들은 북한에서 누가 왔다고 하면 아래로 내려보거나,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 아이들은 10대인데 너무 슬픈 일이다. 그들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는데”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많은 어린 탈북자들이 주류 학교를 그만 둔다. 그는 “대안학교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난 집에서 아이들을 충분히 지원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것뿐이다. 정규학교에서 남한 친구들을 사귀고 기억을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7년 전 진범은 학생회장 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담임 선생은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외려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진범이 더 상처를 입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범은 당선됐다. 해마다 가족은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고른다. 미술전시회나 뮤지컬을 한다. 최근에는 남한의 관광명소를 돌아본 여행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하나원에 있을 때 두 가지가 궁금했다고 얘기한다. 하나는 남한의 모습, 다른 하나는 남쪽 사람들이 날 좋아할까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한국의 관광명소를 기록하기로 했다.” 하나원의 아이들이 갖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라고 책을 기증하고 있다. 아이들의 꿈은 만화작가부터 건축가, 운동선수 등 다양하다. 하령은 이미 집을 떠나 대학 사회학과 졸업반이다. 김씨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의 문은 늘 열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일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전광훈 측 ‘선거법 위반’ 혐의 부인 “맥락 보고 판단해야”

    전광훈 측 ‘선거법 위반’ 혐의 부인 “맥락 보고 판단해야”

    광화문 집회 등에서 특정 정당 지지를 호소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 측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9일 전광훈 목사 변호인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허선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사실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은 맞지만 피고인이 했던 무수한 발언 중 몇 개만 집어 편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 취지와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하니 전체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 목사 측은 “행위가 능동적이거나 계획적이지 않고, 그 이후 일련의 과정을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선거운동이 아니다”라며 “(지지 정당이) 특정되지 않았으니 법리적으로도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이 적한 부분은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이라며 “이 전제 사실은 전부 진실이고, 대통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비판이 가능해야 하니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 목사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변호인은 “증거가 광범위한데 굳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피고인의 건강도 좋지 않으니 고려해 방어권도 보장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의 증거 수집 등 수사 절차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다”며 “수사가 적법했는지 판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어 전 목사는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한편,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총괄대표인 전 목사는 총선을 앞두고 광화문 광장 집회 등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자유 우파 정당들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집회에서 전 목사가 ‘대통령은 간첩’,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보고 명예훼손 혐의도 추가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탱크 사진 올렸다가 간첩으로 조사받은 김일성대 호주유학생

    탱크 사진 올렸다가 간첩으로 조사받은 김일성대 호주유학생

    “트럼프나 폼페이오가 널 구해줄 거 같아?” 지난해 6월 북한 당국에 의해 억류됐다가 추방됐던 호주인 북한 유학생 알렉 시글리(30)는 당시 신문을 받으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김일성종합대학 유학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당국에 붙잡혀 9일간 고초를 겪은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시글리가 ‘조선문학 석사과정’ 3학기 과정을 다니던 작년 6월 25일,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에 한 남성이 나타나 자신을 검은색 벤츠 차량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후 다른 탑승자들이 자신의 눈을 가리고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범죄 혐의’들을 읽어내렸다고 시글리는 회고했다. 그는 곧장 신문 시설로 이송돼 9일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방에서 지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신문관들은 끝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북한에 온 이유를 묻는 말에 시글리가 “북한 소설에 진심으로 관심 있고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답하자, ‘호주인이 그런 동기를 가진 것은 이상하며 아무도 그 논리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돌아왔다.시글리는 이후 매일 자백서를 쓰도록 강요받았으며, 혐의를 부인하면 신문관들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총살될 수 있다”고 윽박질렀다. 하루는 신문관이 “당신의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쌓여 있다. 관대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자백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압박하면서, 시글리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북한군 탱크 ‘모형’의 사진을 들이댔다고 한다. 신문관은 모형 사진을 소셜 인터넷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 ‘간첩행위’라고 주장했다. 시글리는 풀려나기 전 “세계 평화 위협”, “북한 주권 침해” 등 혐의를 자백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읽도록 강요받았다.그는 “그들이 내 인권을 존중했다는 점을 인정하도록 내게 강요했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내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과문 낭독 모습을 녹화하자 신문관은 나에게 농담을 하는 등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며 “스톡홀름 신드롬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남성이 꽤 마음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시글리는 험악한 신문 과정을 털어놓으면서도 북한에서 지내는 동안 접한 주민 대다수는 예의 바르고 정직하며 성실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또 김일성대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여러 북한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들 가운데는 시글리가 들려주는 힙합 음악을 듣고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한’의 정서를 읽어내는 학생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시글리는 한이 한국적인 슬픔이라고 설명했으며, 자신은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항상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들었는데 북한 학생이 그가 듣는 노래를 먼저 들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은 세계에서 외국인 혐오증이 가장 심한 국가이지만, 이런 혐오증은 주민이 아닌 국가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일성대에서 유학하면서 통일투어도 운영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울광장] ‘윤석열 사퇴’가 필요한 이유/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윤석열 사퇴’가 필요한 이유/박록삼 논설위원

    불과 몇 달 전인 지난해 여름과 가을의 일이다. 오랫동안 진보적 가치를 주장해 온 이조차 강남 부유층으로서 계급·계층적 이해관계 아래에서 살아왔음을 온 국민은 목도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계층적 기반과 상반된 실존적 삶을 살기 어려운 법이다. 이제 개별 행위에 대한 죄와 벌은 법원에서 판가름나게 됐으니 그저 지켜볼 일이다. 지난해 여름 목도했던 것 중 더욱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등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검찰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언론을 쥐락펴락할 줄 알았다. ‘정의감’에 들끓는 기자의 귀에 누군가의 부정을 침소봉대해 속삭일 줄 알았고, ‘단독’ 기사에 목말라하는 기자에게 적절히 피의사실을 흘릴 줄 알았다. 또한 기소권, 수사권을 양손에 쥔 채 국회의원의 절반 가까이를 일렬종대로 세우는 방법을 알았다. 이뿐 아니다. 법무부의 외청이지만 똘똘 뭉쳐 청와대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결기 또한 보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3~4년 동안 국회 청문회, 국정감사, 취임사 등에서 늘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살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국민들 다수는 검찰의 법과 원칙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지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는 검찰의 모습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9월부터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을 검찰에 10차례 고발했지만 검찰은 묵묵부답이었다. 나 의원이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회장 재임 시절 저지른 15건의 비리 등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결과로 밝혀졌고, 자녀입시 관련 비리 혐의가 속속 확인되고 있지만 정작 피고발인인 나 의원은 서초동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고발인 조사만 다섯 차례 했을 뿐이다. 법무장관 일가족에게 그랬듯 소환조사도 없는 기소, 먼지털이식 압수수색 70회 이상, 별건의 별건으로 꼬리물기 수사, 광범위한 피의사실 유포 등의 수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검찰의 법과 원칙이 대체 무엇이기에 최소한의 책무조차도 방기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시민단체들이 나 의원에 대한 11번째 고발을 검찰 아닌, 경찰에 한 것은 검찰 불신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BBK 주가 조작 사건’ 수사에는 불기소로 기꺼이 면죄부를 줬다.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계엄령 문건’ 수사도 미온적이었다. 수차례 고소·고발된 ‘김학의 별장 성폭행 사건’은 법원에서 무혐의로 결론 났다. 그 원인으로 검찰의 부실기소를 의심한다. 검찰과거사위에서는 검찰이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 조작 수사를 묵인·방조한 것에 대해 “검찰총장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은 ‘검찰의 법과 원칙’을 이렇게 스스로 무너뜨렸다. 검찰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윤 총장 장모 사건’이다. 윤 총장 장모가 2013년 ‘350억원 잔고증명을 위조했다’는 사건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가 나흘 남았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면 기소 먼저 한 뒤 철저히 수사하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별건수사로 공소시효쯤은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이미 증언들은 차고 넘친다는 평가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 의지다. 윤 총장의 장모는 그 사이 몇 차례 고발됐지만 검찰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뒷배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장모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까지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된 배경이기도 하다. 윤 총장으로서는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검찰총장을 포함한 장모, 부인까지 수사해야 하는 후배 검사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에겐 개인 윤석열의 억울함 이전에 검찰총장으로서 갖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다. ‘자신에게 보고하지 말라’는 발언 한마디에 후배 검사들이 선배인 검찰총장을 수사하는 부담을 떨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빠질 테니 마음껏 수사해서 검찰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윤 총장의 입장 표명이다. 가뜩이나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이 높은 때 아닌가. 결국 ‘윤 총장의 결단’만이 바닥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 법과 원칙을 회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윤 총장의 용퇴를 권한다. ‘피고발인 윤석열’을 포함한 일가족에 대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검찰 구성원들의 결기가 그 완성의 필요조건이다. 윤 총장이 검찰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youngtan@seoul.co.kr
  • 日 육사 출신으로 조국 독립 위해 헌신한 ‘전설적인 항일 영웅’

    日 육사 출신으로 조국 독립 위해 헌신한 ‘전설적인 항일 영웅’

    김경천은 김좌진, 홍범도를 뛰어넘는 전설적인 항일 영웅이다. 백마를 타고 일본군을 무찔렀고 ‘진짜 김일성 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나경석은 “조선의 유지 청년이 노령에 수천수만이 출입하였으나 김 장군같이 위대한 공적을 성취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김경천은 백범일지에 버금가는 ‘경천아일록’(擎天兒日錄)이라는 친필 수기를 남겼다. 늦게서야 발견된 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시영이 보고 싶다. 신동천이 보고 싶다. 신용걸이 보고 싶다. 안무가 보고 싶다.…” 독립군 전우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김경천은 1888년 6월 5일 함남 북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정우는 구한말 군기창장 등으로 일한 고위인사였다. 1900년 10월 김경천 가족은 서울 사직동으로 이사했고 김경천은 1904년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그의 진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서점 주인이 건네준 책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었다.1905년 9월 김경천은 도쿄 육군유년학교 예과 학년에 입학했다. 65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예과를 마치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23기생으로 들어가 1911년 일본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사 재학 중에 나라는 일본으로 넘어갔고 김경천은 엄청난 심적 갈등을 겪었다. 김경천은 그래도 실력 양성을 위해 기병학교까지 마친 뒤 1919년 2월 귀국했다. 2·8 독립선언이 선포되던 때였다. 귀국하자마자 3·1운동이 일어났고 시위 현장을 보면서 김경천은 피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자동차에 우리 청년 4~5명이 실려 있다. 모두 죄수복을 입었다. 그 근방에 나이가 40가량 되는 부인이… 그 뚫어지고 더러워진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는 것이 보인다. 아, 나도 가슴이 막히면서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함남 북청서 태어나 서울 사직동 이주 김경천은 더는 일본 군인으로 살 수 없었다. 일본 육사 후배 이응준, 지대형(지청천)과 함께 서간도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응준은 중간에서 길을 달리했다. 김경천은 1919년 6월 6일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수원으로 내려가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간 뒤 압록강을 건넜다. 일본 육사 출신 군인이 망명하자 일제는 충격에 빠져 현상금 5만엔을 내걸었다. 부인 유정화를 체포해 고문했지만 부인은 남편의 행방을 발설하지 않았다. 김경천은 일단 중국 안동에서 활동하던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했다. 그러나 활동이 어려워지자 하루 20㎞ 넘게 보름 동안 걸어 봉천성 유하현 신흥무관학교에 도착, 교관으로 일했다. 그곳에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인 신팔균도 있었다. 경천(擎天) 김광서, 동천(東天) 신팔균, 청천(靑天) 지석규 세 사람은 남만주 삼천(三天)이라 불렸다. 1919년 9월 중순 김경천은 길림 서간도 군정서에서 무기구입 위원으로 선정돼 연해주로 출발, 이듬해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달 12일 소비에트 적군과 한인 빨치산부대가 아무르강 하구 니콜라옙스크의 일본군을 전멸시킨 전투가 있었다. 일본 시베리아 주둔군은 보복으로 4월 4일 연해주 신한촌을 공격, 한국인 빨치산과 민간인 5000여명을 학살한 ‘4월 참변’을 일으켰다. 독립운동가 최재형도 이때 살해됐다. 김경천은 간신히 피신했다가 한인 빨치산 근거지인 내수청 대우지미로 이동했다. 당시 간도나 연해주에는 중국 마적이 날뛰었다. 마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민가를 습격해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납치했다. 일제는 마적단에 무기를 대주고 한인들을 괴롭히도록 했다. 김경천은 마적을 일본군과 동일시하고 대우지미에서 마적토벌대를 만들어 토벌에 나섰다. 4월 8일 마적 380여명이 침입하자 김경천의 토벌대 45명은 소비에트 적군 600명과 연합해 360여명을 몰살시켰다. 이어 창해청년단을 조직, 총지휘관을 맡아 1920년 5월 다우지미 전투에서 마적 300여명 중 60명만 살려 보냈다. 1921년 1월 김경천은 블라디보스토크 임시정부 격인 대한국민의회에 참석하라는 공문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김경천은 “독립을 하자는데 너무도 희생이 없다. 너무도 정치에만 눈이 팔리고 실천력이 적다. 너무도 자칭 영웅이 많다. 너무도 당파가 많다”고 한탄했다. 군인인 그에게는 오직 무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었고 자리다툼만 하는 임정은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1921년 4월 트레치푸진에서 혈성단 강국모의 요청으로 한인 빨치산부대 사령관이 됐다. 더불어 ‘수청의병대’를 조직했다. 각지에서 모인 한인 빨치산 병력이 800여명이었고 소총과 군마로 무장했다. 김경천은 트레치푸진에 설립된 사관학교 교장도 맡아 사관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시베리아 내전서 가장 위대한 ‘이만 전투’ 그해 8월 수청의병대는 연해주에 있는 러시아 적군(赤軍·혁명군)과 연합했다. 일본군은 러시아 백군(白軍·반혁명군)과 연합해 의병대와 적군을 공격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혁명 이후 극동 지역이 혼돈에 빠지자 시베리아를 차지할 기회라고 판단해 17만여 병력을 배치했다. 1921년 11월 수청의병대와 적군은 일본군과 백군에 포위돼 퇴각했고 카르톤 마을에서 적군 대대장이 항복하고 말았다. 이듬해 1월 김경천은 적군 패잔병과 의병대의 혼성 부대를 이끌고 이만(달레네친스크) 지역의 백군을 공격했다. 200여명의 혼성부대는 700여명의 백군과 6시간 동안 전투를 벌인 끝에 이만을 정복했다. 이 전투는 시베리아 내전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라는 극찬을 받는다. 김경천은 그때의 상황에 대해 “(군사들이 지나가는) 발자국마다 피가 고이었다”고 썼다. 1922년 여름 이후 김경천은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러시아 육사에서 교관을 초청해 급여를 주며 교육시켰다. 김경천의 목표는 조국의 독립이었다. 러시아 땅에서 독립운동을 펼쳤기에 러시아인들과 협력했고 적군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로 진공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패퇴를 거듭하던 일본군이 시베리아에서 철수하자 러시아는 빨치산부대도 해산하라고 명령했다. 김경천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김경천은 이후 1932년부터는 하바롭스크 합동국가보안국 통역으로 일했고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사범대에서 군사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5년 무렵 스탈린의 강압정치가 한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김경천은 간첩죄로 체포돼 1936년 9월 3년형을 받았다. 1939년 2월 일단 석방됐다. 그 사이 가족은 카자흐스탄 카라간다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재회도 잠시 그해 12월 간첩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김경천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이런 점이 이유가 됐을 것이다.●광복 못 보고 유배지서 심장질환 사망 김경천은 2년 동안 철도 건설 노역에 동원됐다가 1942년 1월 2일 소련의 북동쪽 끝 코미자치공화국으로 유배돼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스탈린이 죽은 뒤 김경천은 무죄 선고를 받았고 사후 복권됐다. 김경천은 수용소 근처에 집단으로 묻혀 별도의 묘소가 없다. 김경천은 2남 4녀를 두었다. 아내와 자식들은 밀항선을 타고 연해주로 가 같이 살았지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강제 이주는 더욱더 큰 고난을 주었다. 가족들은 국영농장에서 힘든 노동에 동원됐고 인민의 적으로 박해를 받았다. 후손들은 현재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1998년 정부는 김경천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막내아들 김기범(1932년생)씨와 막내딸 김지희(1928년생)씨는 정부의 초청으로 아버지 사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2015년 8월 정부는 모스크바에 사는 의학박사인 김경천의 손녀 옐레나 필랸스카야 등 후손 7명의 특별귀화를 허가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檢 ‘공직선거법 위반·대통령 명예훼손’ 전광훈 구속 기소

    檢 ‘공직선거법 위반·대통령 명예훼손’ 전광훈 구속 기소

    4·15 총선거를 앞두고 광화문 집회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 구속된 전광훈(6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23일 전 목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전 목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5차례에 걸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확성장치를 사용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자유우파 정당들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고발됐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우려 속에서 집회를 강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또 “대통령은 간첩”,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시도했다” 등의 발언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전 목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 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4일 전 목사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가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검찰, 전광훈 목사 구속기소…선거법 위반·문 대통령 명예훼손

    검찰, 전광훈 목사 구속기소…선거법 위반·문 대통령 명예훼손

    광화문 집회 등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 구속된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2부(부장 김태은)는 23일 전광훈 목사를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총괄대표인 전광훈 목사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광화문 광장 집회 또는 기도회 등에서 수차례에 걸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자유우파 정당들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또 코로나 19 확산 우려 속에서 집회를 강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법원은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가 소명된다며 전광훈 목사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광훈 목사 측에서 여러 차례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가 ‘대통령은 간첩’,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보고 명예훼손 혐의도 추가했다. 전광훈 목사와 함께 고발된 고영일 기독자유당 대표에 대해서는 선거법 위반 혐의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전 목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 등도 수사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전 목사가 지난해 10월 3일 광화문에서 열린 범보수 진영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파악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집회에서는 일부 참가자가 청와대 방면으로의 행진을 저지하는 경찰관을 폭행하고 차단선을 무너뜨리는 등 불법행위를 해 46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해군 고속정 훈련 중 수류탄 폭발… 7명 부상

    해군 고속정 훈련 중 수류탄 폭발… 7명 부상

    3일 남해상에서 훈련 중이던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1척에서 수류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해 승조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해군에 따르면 오후 1시쯤 경남 거제 인근에서 해상사격 훈련 중이던 해군 3함대 소속 참수리급 고속정(PKM·130t급) 함미에서 해상용 수류탄이 폭발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중상, 5명이 경상을 입었다. 중상자는 간부급으로 추정된다고 해군 측은 밝혔다. 당시 고속정에는 30여명이 승선했다. 참수리급 고속정의 승선 인원은 30명 정도지만 보통 25~28명이 탑승한다. 사고 직후 중상자는 해군 헬기를 통해 경남 민간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시 앰뷸런스로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전문센터로 이송됐다. 경상자는 다른 민간 병원으로 후송됐다. 해군은 “중상자 1명은 손과 얼굴 부위를 다쳤고, 다른 중상자는 치아와 몸에 손상이 있다”면서 “현재까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는 소병기 훈련을 하고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 수류탄이 선박 함미에서 터지면서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고속정은 정비 차원에서 단독 훈련을 하고 있었다. 군 당국은 사고 원인이 수류탄의 문제인지, 주의 미숙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해군 관계자는 “모든 해·육상 사격훈련을 중지하고 사고 원인을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참수리급 고속정은 해군이 운용하는 함정 중 가장 규모가 작다. 기동성이 뛰어나 북한 간첩선 침투를 막는 역할 등 연안 경비와 보안을 담당한다. 1999년 서해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靑 ‘한기총 해산 촉구’ 청원답변 “종교의 자유 따른 행위도 법질서 안에서만 보호”

    靑 ‘한기총 해산 촉구’ 청원답변 “종교의 자유 따른 행위도 법질서 안에서만 보호”

    청와대는 25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해산 및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구속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종교의 자유에 의한 행위라 하더라도 법질서 안에서만 권리로써 보호된다”며 수사 및 사법 당국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국가는 헌법에 따라 종교활동에 관여할 수 없지만, 폭력집회와 ‘대통령이 간첩’ 등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구속된 전 목사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처벌 절차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이날 이런 내용의 청원 답변을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올라온 해당 청원은 한달 동안 답변 기준 20만명을 넘어선 26만 4000여명이 서명했다. 청원인은 “한기총이 법인 설립목적 및 헌법을 위반했기에 철저히 조사해 문제가 있다면 사단법인을 해산하고, 전 목사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에서 조사 중인 사건을 조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원인은 “전 목사는 언론보도를 통해 ‘나라가 망한다’, ‘대통령이 간첩이다’ 등 목회자로서는 안 될 언행을 자행하고, 정교 분리를 명시한 헌법 제20조 2항을 위반했다”며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 발언은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신성모독이자 반종교적 망언인데, 관계당국은 종교단체라는 이유로 위반 사항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목사는 앞서 전날 광화문 집회 등에서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강 센터장은 “한기총은 비영리사업을 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설립을 허가받은 사단법인”이라며 “헌법에 의하면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는 종교단체에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의 자유에 의한 행위라 하더라도 제한 없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법질서를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권리로써 보호될 수 있다”며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을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률에 따라 설립허가 취소 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재까지는 한기총 설립허가 취소를 검토할 정도의 사법당국의 조치가 진행된 바 없다”고 말했다. 강 센터장은 “정부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을 준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청원인이 전 대표회장에 대한 조속한 수사 및 구속을 요구한 점에 대해서는 “현재 기부금품법 위반, 사문서위조, 선거법 위반, 횡령 등 현행법 위반 혐의로 고발에 의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수사기관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법적 절차를 준수하며 수사하고 있다. 사법적 판단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으로 답변할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유엔 “북한, 1969년 KAL 납치사건 실종자 11명 송환해야”

    유엔 “북한, 1969년 KAL 납치사건 실종자 11명 송환해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1969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납치 당시 강제 실종된 11명의 송환을 촉구했다. OHCHR은 1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유엔 내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의 위원들은 50년 전 대한민국 국내선 항공기 납치 당시 강제 실종된 11명의 송환을 북한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1969년 12월 11일 김포에서 출발해 강릉으로 향하던 KAL 여객기는 이륙 10분 만에 간첩에 장악돼 북한으로 항로를 바꿨다. 당시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북한은 1970년 2월 14일 승객과 승무원 50명 가운데 39명을 송환했으나 승객 7명, 승무원 4명 등 11명은 돌려보내지 않았다. OHCHR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들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불확실성 속에 50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렸다는 점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이 시급히 이들의 생사와 행방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과 친척 간 자유로운 소통을 허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OHCHR은 또 “위원들은 일부 납치 대상자가 고문 및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에 우려를 표했다”면서 “북한이 국제 의무에 따라 요구되는 납치, 실종 또는 고문 혐의에 관한 독립적 수사를 현재까지 진행한 바 없다고도 위원들이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실무그룹의 데이터베이스에는 북한 내 강제 실종 미제 사건이 275개 등록돼 있다”면서 “실무그룹은 이전에도 해당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고려할 것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촉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해당 11명뿐 아니라 기타 실종자의 생사와 행방을 밝히기 위해 진정한 협력을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다. OHCHR은 “위원들이 해당 문제에 관한 우려를 표하기 위해 북한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OHCHR은 북한이 납치자 일부를 송환한 지 50년이 되는 오는 14일을 맞아 이번 성명을 발표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씨줄날줄] 탈북자 지역구 출마 1호 태영호/이지운 논설위원

    [씨줄날줄] 탈북자 지역구 출마 1호 태영호/이지운 논설위원

    “일 없다”는 북한 말은 ‘괜찮다’는 중국말 표현, ‘메이스’(沒事)를 옮긴 것이다. 우리는 이해(理解)하지만, 북한은 료해(了解)한다. 료해 역시 중국말을 쓴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 말은 영어와 일본어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북한 말은 중국, 러시아말과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북한의 고유한 사투리에, ‘사회주의’적 언어습관까지 더해져 남북 간 언어는 많이 달라져 있다.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였던 태영호씨가 “지역구 인민들의 선택을 받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21대 국회의원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다. 그는 ‘주민’이라는 표현도 썼지만, ‘인민’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태씨를 사석에서 만난 뒤 깜짝 놀란 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태씨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호’의 번호와 연도, 내용을 정확히 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전후 사건과 국제사회의 흐름까지 꿰고 있더라는 것이다. “협상 당사자도 아닌데, 저렇게 외울 수 있는 외교관이 남쪽에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고 한다. 태씨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북한 관련 지식과 정보가 권위를 갖게 됨으로써, 얼치기 정보와 분석은 앞으로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태씨의 지역구 출마에 반응이 엇갈린다. 그를 “남파 간첩”으로 규정한 한 울트라 극우인사는 지금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일부 극좌 인사들은 “북의 배신자”라며 극혐을 표현한다. 우파 중에서는 “정파성이 충돌하는 현장보다는 본인 이름이 갖는 브랜드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일을 하는 게 낫다”고도 한다. 탈북자 가운데 첫 국회의원은 조명철 전 통일교육원장으로 2012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태씨는 유권자들과 만나 일일이 악수하는 지역구에 출마한다. 경찰은 그래서 울상이라고 한다. 태씨는 신변 보호 ‘가급’으로 24시간 경호를 받는다. 불과 10년 전인 2010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암살 미수 사건을 겪은 경찰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북한 정찰총국 소속의 암살조 2명이 일반 탈북자들에 섞여 입국했다가 국정원에 적발됐다. 그해 7월 징역 10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일거수일투족이 대중 앞에 그대로 공개되는 만큼 “정당인으로든, 지역구 주민으로든 장기 남파 간첩 가운데 하나가 얼마든 그의 주변에 다가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탈북자가 3만명을 넘어선 게 3년 전이다. 서울에서 탈북자 모자가 굶어 죽는 일도 생겼다. 사회복지망으로든, 북한이탈주민 지원 체계로든 큰 ‘구멍’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태씨가 ‘출사표’에서 이들 탈북자를 대표하고, 통일도 준비하겠다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jj@seoul.co.kr
  • 이순신이 쓴 ‘약무호남 시무국가’ 편지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순신이 쓴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다)’ 편지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국보 제76호 서간첩 내용에 있는 충무공 친필 ‘약무호남 시무국가’ 가 쓰여진 편지가 진위여부에 휩싸였다. 충무공이 현덕승에게 보낸 1593년 7월 16일자 편지가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의 종이인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어서다. 전남도의회는 12일 제337회 임시회를 열어 임종기 의원(더불어민주당· 순천2)이 대표 발의한 ‘국보 제76호 서간첩 충무공 친필 확인 관련 감사청구안’을 채택했다. 국보 제76호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작성한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로서 총 9권으로 구성돼 있다. 임 의원은 “국보 제76호는 지정일부터 명확하지 않다”며 “문화공보부 장관 명의로 된 국보지정서에는 1959년 1월 23일로 기재돼 있지만 문화재정보에는 1962년 12월 20일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서간첩에 실린 편지 또한 현충사 진열대에는 6편이라고 돼 있지만 현충사 리플렛에는 8편으로 돼 있다”며 “서간첩 중 1593년 7월 16일자 편지 수신인인 정5품 지평 현덕승의 관직은 선조실록에 의하면 정5품 지평이 아닌 정8품 승문원 저작에 불과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약무호남 시무국가’ 다음에 시이(是以)란 접속사를 사용한 뒤 문단으로 이어졌지만 충민사기에는 ‘약무호남 시무국가야(也)’로 문단이 끝나고 뒤 문단은 새롭게 시작한다”고 했다. 임 의원은 ‘약무호남 시무국가‘ 문구가 쓰여진 1593년 7월 16일자 충무공 편지가 400여년 전 종이인지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문화재청장에게 보냈으나 “관계 전문가 의견 수렴 및 조사 후 회신할 예정임을 말씀드립니다”는 문화재청장 회신만 받았다고 했다.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답변이 없어 재요청을 하자 “정확한 제작연대를 밝히는데 한계가 있사오니 이점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밝혔다. 임 의원은 “그후로도 세 차례에 걸쳐 서간첩에 대한 의문사항 40개를 구체적으로 적어 순차적으로 회신 요청했으나 답이 없어 전남도 이순신리더십 캠프 운영과 문화재 지정 및 해제사무와 관련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다”고 말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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