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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 한계 넘은 고려인… 정관계·예술계 활약

    0.5% 한계 넘은 고려인… 정관계·예술계 활약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을 잇는 끈은 18만여명의 고려인에서 비롯됐다. 전체 인구(3393만명)의 약 0.5%에 불과한 한계를 딛고 신 아그리피나 유아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장 발레리 민족우호협력위원회 부위원장, 박 빅토르·엠마 아슬로노바 하원의원, 펜 비탈리 주한대사, 리 드미트리 국가프로젝트관리청장 등이 정관계 요직을 맡고 있다. ‘동양의 피카소’로 불렸던 신 니콜라이(1928~2008) 화백 등 문화예술계 활약도 도드라진다. 고려인이 정착한 때는 1937년 겨울.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극동에 살던 이들의 강제이주를 결정하면서다. 그해 9~12월 50량가량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린 고려인들은 30~40일에 걸친 고통의 시간 끝에 황량한 중앙아시아에 도착했다. 강제이주를 결정한 것은 1931년 만주를 장악하며 턱밑까지 들어온 일본인과 고려인의 외모가 비슷해 간첩을 색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려인 사회 규모가 커 향후 자치 요구가 불가피한 데다 중앙아시아의 농업생산력 극대화를 위해서도 농사 기술을 가진 고려인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중 7만 6000여명이 우즈베키스탄에 자리잡았다. 대기근 직후였지만 현지인의 도움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고 이주 당시 품고 온 볍씨로 벼농사에 성공했다. 다수의 한인 콜호스(집단농장)를 성공시킨 김병화, 황만금 등은 ‘노동 영웅’ 반열에 올랐다. 우리 정부도 고려인 사회를 지원하고 있다. 2020년 10월 현지 고려인 1세대들의 요양시설인 ‘아리랑요양원’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의료팀을 급파했다. 한편 우즈베키스탄에는 교포 3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 50t급 함정서 2박3일 근무… 동해 최북단 NLL 어민 안전 지켜요

    50t급 함정서 2박3일 근무… 동해 최북단 NLL 어민 안전 지켜요

    북방한계선(NLL)이라고 하면 대부분 서해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NLL은 동해에도 있다. 서해와 다른 점이라면 휴전선을 따라 동서로 일직선으로 돼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 어선을 볼 수 없다는 점 정도다. 그렇지만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속초해양경찰서 소속 유세종 경위는 NLL 바로 남쪽에 위치한 강원도 저도어장과 북방어장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안전을 지키느라 거센 파도와 싸우는 50t급 경비함정 P21정을 이끌고 있다. 인사혁신처의 도움을 받아 7일 유 경위를 만났다.-P21정을 소개해 달라. “작년 7월 P21정장으로 취임했다. 그 전에는 509함에서 부함장을 했다. 50t급은 소형 함정이다 보니 경비와 구조에 최적화돼 있다. 연안에서 10마일 이내 범위를 순찰하면서 경비와 구조를 주 임무로 한다. 이 배는 2007년부터 운항을 시작했는데 장비나 시스템은 최신식이다. 스크루가 아니라 워터제트 방식으로 운항하고 GPS플로터 시스템도 갖췄다. 무장은 공용화기(M60)와 개인화기를 갖추고 있다. 이 배는 나한테는 사무실이나 다름없다.” -근무 여건이 많이 열악해 보이는데. “한 번 출동하면 2박3일 배에서 생활해야 한다. 2박3일 출동한 다음 3박4일 정박한다. 3교대다. 배가 작을수록 파도에 많이 흔들리는데, 동해는 파도도 높아서 근무 조건 자체는 열악한 편이다. 공간이 협소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배에 화장실이 딱 하나 있는데 거기서 용변도 보고 씻는 것도 다 해결해야 한다. 외부인이 올 때는 보여 주기 창피해서 일부러 화장실 문을 잠가 놓는다.” -탑승 인원에서 의경 비중이 큰데, 의경을 줄이는 추세다. “의경 제도가 없어지는 것에 대비해 복수승조원 방식을 시험운용하고 있다. 장점은 의경보다 숙련도가 더 높다는 것인데, 밥 먹는 게 가장 큰 골칫거리다. 통상 의경이 한 달씩 교대로 취사 담당을 한다. 의경이 없을 때는 집에서 반찬을 가져다 나눠 먹기도 하고 포구에 들러서 음식을 배달해 먹기도 한다.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해경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1996년에 순경으로 입직했다. 그 전부터 조직 생활이 적성에 맞았다. 남자다운 일을 해 보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군인이나 경찰을 꿈꿨는데, 고등학교와 대학을 모두 바다와 관련한 곳에서 다녔을 정도로 바다에 관심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해경과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는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여럿 있다. 고향과 친구들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해양경찰에 몸담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속초해양경찰서 소속으로만 일하고 있다.” -최근 기억나는 사건사고는 어떤 게 있나. “자살실종 신고가 있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해 보니 바닷가인 것 같다’는 얘기만 듣고 바닷가 수색을 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주문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견이 됐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솔직히 허탈하다. 소방청이나 경찰청과 달리 해경은 바다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들 눈에 잘 안 띈다. 그런 점 때문에 우리끼린 ‘해양경찰이 1년에 바다에서 사람 목숨 구하는 게 수백 명인데도 아무도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 소방대원들은 항상 국민들에게 칭찬받으니 부럽다’는 얘길 많이 한다. 그래도 우리 일이 그 자체로 보람 있는 일 아니냐고 말해 주곤 한다.” -어떤 점이 가장 보람 있다고 보나. “역시 생명을 구하는 역할이 으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1997년 신임 순경 때였다. 당시 날씨가 돌변해 어선 한 척이 전복됐다. 거진항에서 출항한 선원 두 명이 부이를 양쪽에서 맞잡고 버티고 있었다. 날씨가 아주 안 좋아서 경비정이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바다에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다행히 경비정이 다가갈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 구조에 성공했다. 한 명은 50대, 한 명은 70대였다. 70대 어민은 저체온증으로 부축하지 않으면 걷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거진항으로 귀항하니 이미 죽은 걸로 생각한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서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한다. ‘두 명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주니 경비정이 접안을 못 할 정도로 주민들이 몰려왔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주민들이 우리에게 고맙다며 큰절을 하더라. 그때가 지금도 기억난다.”-가장 안타까웠던 일이 있다면. “올해 9월쯤 속초 영금정이라는 갯바위에 남녀 두 명이 앉아 있다가 파도에 휩쓸렸다. 여자는 인근에서 조업하던 선박이 구조를 했는데 남자는 행방불명됐다. 5시간가량 수중 수색을 해서 남자를 건졌는데 이미 사망했다. 살려서 구조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안타깝다. 최근 강원도에선 해안 침식으로 인한 사고가 많아졌다. 낚시와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안전사고도 늘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밤에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스쿠버다이버들이 밤에 보면 꼭 군인 같아 보이니까 간첩이라며 신고하는 사례가 꽤 많다. 수색을 안 할 수도 없는데 막상 해 보면 허탕이다. 그것 때문에 직원들이 정말 고생 많이 한다. 안전 문제도 있지만, 사실 이곳은 접경 지역이다.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야간 스쿠버다이빙은 규제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해경 가족이라고 들었다. “1남1녀인데, 딸이 현재 여수 해경교육원에서 교육받고 있다.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해 전산 업무로 입직했다. 딸이 2~3년 전쯤 해경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해경이란 게 쉬운 직업은 아니니까 선뜻 권하지는 못하겠더라. 그래도 자기가 한다고 하니까 격려해 줬다. 바다와 배는 그 자체가 위험한 게 많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 제대로 배우라고 강조했다. 아들은 지금 의경으로 강릉파출소에서 일한다. 아들도 해경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자식들이 내 뒤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나중에 내 명함이랑 아들딸 명함 세 장을 다 모아서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톡 프로필을 만드는 게 꿈이다.”
  •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사죄 없이 사망하면서 국가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다시 조명받게 됐다. 역사의 법정엔 공소시효가 없다지만, 1948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한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고통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한(恨)으로 남길 수밖에 없을까.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이성아 작가의 장편 소설 ‘밤이여 오라’는 이처럼 국가 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려는 인물들의 분투를 그렸다. 2015년 독일어 번역가 변이숙은 자신이 번역한 작품의 저자 마르코의 초대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던 도중 잊고 싶은 20여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독일에서 짧은 유학생활을 했던 이숙은 대학 선배 현기표와 동거하게 됐고, 연락이 끊긴 기표를 찾으러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갔다. 이숙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북한 공작원으로 분류된 기표의 애인으로 낙인찍힌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이숙뿐 아니라 마르코의 입을 통해 1990년대 내전과 인종청소를 겪은 발칸반도와 한국의 상황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특히 제주 4·3 피해자의 후손이기도 한 이숙의 시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 시기까지도 이어진 간첩단 조작 사건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펼쳐보인다. “용서니 화해니 하는 것들이 정치적인 제스처일 뿐이라는 걸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해? (중략)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 가해자들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감수성이 없으니까”(188쪽)라는 마르코의 말은 확실한 단죄와 진상 규명 없이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분노와 탄식만 내보이지 않는다. 치유와 화해의 시각으로, 참극의 슬픔을 이해하는 연대가 필요할 때 우리는 그 폭력을 온전히 멈추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등한시한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인정해야 좀더 큰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목놓아 호소한다. 한 여인의 우수와 고독을 전하는 감수성 깊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 ‘공직선거법 위반’ 전광훈 목사 항소심도 무죄

    ‘공직선거법 위반’ 전광훈 목사 항소심도 무죄

    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집회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전광훈(65)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정총령·조은래·김용하)는 24일 오후 공직선거번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목사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전 목사는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광화문 광장 집회에서 “자유 우파 정당을 지지해달라”고 발언하며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또 “대통령은 간첩”, “대통령이 공산화를 시도한다” 등 발언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전 목사의 집회 발언은 우파 전체에 대한 추상적인 지지일뿐 선거에서 특정한 정당이나 황교안 개인을 비롯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보기 어려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간첩’ 발언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전 목사는 본래적 의미가 아닌 상징적 의미로서 해당 표현을 사용해 ‘사실 적시’보다는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의견 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의견이 논리 비약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형사처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전 목사는 이날 선고 직후 “감사하다. 대한민국이 이겼다”라고 말했다.
  •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군사반란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두 책임자가 사망함으로써 일그러진 역사의 한 페이지는 막을 내렸다. 전씨는 현재 진행 중인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변변한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단언컨대 전씨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과만 있고 공은 찾기 힘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그의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평생에 걸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오히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뻔뻔하게 주장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전 재산 29만원’ 운운으로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건 존재의 소멸을 통해 그 생애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전씨의 죽음을 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어두운 역사의 일단락을 깔끔하게 맺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식들을 통해 밝혔던 것처럼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일 또한 어느 정도 가능했을 터다. 피해자의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죄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화합은 거기에서 비로소 싹틀 수 있었으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를 단죄해야 할 법적 다툼의 실효성은 사라졌다. 오직 남은 자들이 판단하고 역사가 심판해야 할 과제가 됐다. 전씨는 비록 사죄·증언 없이 떠났지만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살아 있는 자들이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규명되지 않은 5·18 진상에 대해서도 끝까지 밝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부여됐다. 더디더라도 계속해서 화합과 치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이기도 하다.
  •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군사반란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두 책임자가 사망함으로써 일그러진 역사의 한 페이지는 막을 내렸다. 전씨는 현재 진행 중인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변변한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단언컨대 전씨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과만 있고 공은 찾기 힘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그의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평생에 걸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오히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뻔뻔하게 주장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전 재산 29만원’ 운운으로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건 존재의 소멸을 통해 그 생애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전씨의 죽음을 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어두운 역사의 일단락을 깔끔하게 맺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식들을 통해 밝혔던 것처럼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일 또한 어느 정도 가능했을 터다. 피해자의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죄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화합은 거기에서 비로소 싹틀 수 있었으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를 단죄해야 할 법적 다툼의 실효성은 사라졌다. 오직 남은 자들이 판단하고 역사가 심판해야 할 과제가 됐다. 전씨는 비록 사죄·증언 없이 떠났지만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살아 있는 자들이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규명되지 않은 5·18 진상에 대해서도 끝까지 밝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부여됐다. 더디더라도 계속해서 화합과 치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이기도 하다.
  • 간첩조작 억울한 옥살이 위자료 받는다

    간첩조작 억울한 옥살이 위자료 받는다

    군사독재 시절 조작 간첩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3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오재선 씨의 유족이 국가로부터 1억 6000여만원의 위자료를 받게 됐다. 제주지법 민사1부(류호중 부장판사)는 19일 2019년 오씨와 오씨의 동생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오씨를 대신해 오씨의 동생에게 국가가 위자료 총 1억 6712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위자료 액수는 재심 판결 이후 오씨가 지급받은 형사보상 결정 보상금을 제하고 계산됐다. 재판부는 “국가경찰의 불법 구금과 그에 기반한 위법한 증거 수집 등 행위는 별도의 불법행위가 존재했는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국가는 오씨 등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오씨는 46세이던 1986년 4월 28일 조총련 회원인 동거녀로부터 귀국 여비 명목으로 일본 돈 30만엔을 받았고, 1985년 목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2명에게 네 차례에 걸쳐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 당시 경찰은 체포 영장도, 사후 구속영장도 받지 않은 상태로 오씨를 45일 동안 구금하며 고문 등 가혹행위 등을 통해 오씨로부터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에 대한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오씨는 결국 1986년 12월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고, 총 1854일을 감옥에서 지냈다. 오씨는 결국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2018년 8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좌절한 자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좌절한 자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나의 꿈은 너의 꿈, 함께 꾸는 꿈”, “외로운 밤길에서 우리 서로 만나고 기쁨도 괴로움도 모두 함께 겪어 왔다”, “너와 나의 꿈은 사라져 가고 우리들의 갈 길 달라진 것은”, “그대 아는가 모멸을 이겨 내고 사랑을 쌓아 가는 우리들 내일”. 이 문장들은 김판수 창작곡집 ‘길동무’(작사ㆍ작곡 김판수)에 수록된 노래 가사들이다. 이 음반을 들으며 시대의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한 한 청년의 순수한 마음과 맑은 서정, 절제된 슬픔을 느꼈다. 모든 노래가 가슴에 깊이 박히지만, 특히 표제곡 ‘길동무’와 지은이가 직접 부른 마지막 곡 ‘서울길’의 깊은 여운과 사무치는 가사가 마음을 헤집었다. 이 노래들은 1969년 5월 김판수 선생이 스물일곱 살, 꿈 많았던 청년 시절 이른바 ‘유럽·일본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에 연루돼 5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는 대전교도소에서 밴드에 들어가 혼자 교본을 보고 기타를 익혔으며, 귀동냥으로 작곡 기초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길동무’에 수록된 노래를 만들었다(‘창살 갇혀 지은 노래들 50년 만에 길동무들에게 바쳐요’, 2021. 10. 10). 감옥에서 도금을 배운 그는 출옥 후에 도금 전문기업 ‘호진플라텍’을 창립해 뜻깊은 성취를 이루었다. 최근에는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익천문화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나는 ‘길동무’에 수록된 노래를 들으며, 발터 베냐민이 프란츠 카프카를 일러 표현했던 ‘좌절한 자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 음반을 접한 시간에 함께 읽은 책은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 편력을 유성호 교수와의 대담 형식을 통해 정리한 신간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이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이던 1974년 이른바 ‘문인간첩단(조작) 사건’과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5년여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고난과 형극의 길이었다. 이 책에는 기구한 가족사, 두 차례에 걸친 생생한 감옥 체험, 재일유학생 서승과 김남주 시인 등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 출옥 이후에도 이어진 사회와 문단의 편견과 생활고 등이 기록돼 있다. 또한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하고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을 통해 뒤틀린 현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분투했던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면모가 알알이 박혀 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하나와 여든에 이른 임헌영과 김판수의 인생은 자신이 마주한 불행과 고통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의미 깊은 결실을 이룬 역정이었다. 이들의 고투는 이 혼탁하고 어려운 시대에 그래도 희망이 존재한다는 상념을 키우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들과 함께했던 우정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들이 감옥에서 만난 동지들,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우정을 쌓았던 ‘길동무’들은 이후 이들의 인생에서도 ‘사람의 도리’와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나침반으로 작용했으리라. 아마도 이런 얘기가 치열한 생존 경쟁과 탐욕스러운 정치 싸움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어떤 구체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고난을 극복하며 말년에 의미 깊은 결실을 이룬 이들의 행보는 극히 드문 예외이리라. 이들보다 더한 불행과 아픔을 겪고도 아무런 보람과 보상 없이 세상을 뜬 사람도 무수히 많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비관이 우리 사회를 흐르고 있다. 하지만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유신정권의 억압적 체제에서 간첩으로 몰렸지만, 끝내 생존해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나란히 팔순을 통과한 이들의 행보는 희망 없이 묵묵히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생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가능성을 선사한다. 책 한 권과 음반 하나가 온통 마음을 뒤흔들었던 2021년 10월 가을의 어느 날 이야기다.
  • [단독] 與 ‘간첩 조작 피해’ 유우성 기소 검사 탄핵 추진

    [단독] 與 ‘간첩 조작 피해’ 유우성 기소 검사 탄핵 추진

    검찰개혁을 추진해 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했던 검사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를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법원은 지난 14일 유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26일 “피해자를 보복 기소한 검사들에 대해 국회가 탄핵 절차를 진행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28일 검사 탄핵 소추에 대해 “저희가 지금 고민을 하고 있다”며 “결론이 명확하게 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탄핵 소추 대상으로는 당시 지휘라인이었던 이두봉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현 인천지검장) 등이 거론된다. 민주당 박영순 의원은 “기소권 남용뿐만 아니라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몬 것인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사위 의원 몇 분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사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1 이상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 동의가 필요해 민주당 단독 처리가 가능한 사안이다. 다만 이재명 대선 후보와 민주당 지도부가 ‘검찰개혁 시즌2’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검사 탄핵 이슈를 대선 정국을 앞두고 전면에 띄우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김영배 최고위원은 “이두봉 검사장이 관련된 월성 원전 관련 고발 사주 사건도 쟁점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라며 “현재 있는 고발 사주 국면을 정리해 놓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개혁 관련 의원모임인 ‘처럼회’ 소속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이두봉 검사장의 보복 기소에 대해선 탄핵하는 게 맞다”며 “사건을 잘 아시는 분들이 모여 이제 시작하는 단계로, 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의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이 참여한 상태”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당론 채택을 꺼려 할 경우 개별 의원 설득을 통한 탄핵 소추안 발의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 美 CIA가 중국어 사투리 구사자 모집하자…중국이 보인 반응

    美 CIA가 중국어 사투리 구사자 모집하자…중국이 보인 반응

    중국이 미국 CIA의 중국어 구사 가능자 모집 공고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번에 공고된 CIA 인력 충원 공고문에는 중국 표준어인 푸통화 외에도 광둥어, 상하이어 등 지역 방언에 정통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중국 국방부 선전 매체 쥔정핑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행하고 있는 중국미션센터 건설과 중국어 구사 가능한 인재 선발 공고는 외부 적대 세력의 국가 안보에 대한 교활한 침략행위’라고 17일 규정했다. 쥔정핑은 지난 2016년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지시로 설립된 중국 국방부 선전 매체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중국 군 관련 여론을 강화하고 국방부의 선전 사상을 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를 인용, ‘미CIA가 공공연하게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방언 구사자를 모집한 것은 매우 대담한 공작원 모집 행위’라면서 ‘미국의 위협에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민을 믿고 인민을 의지해 대대적인 인민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외부 적대 세력의 간첩 행위가 국내에서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미 CIA는 지난 2017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미션센터와 동아시아태평양센터, 아프리카 대테러 센터 등을 운영 중이다. 지금껏 중국 관련 첩보 업무 대응은 동아시아태평양센터에서 담당해왔다. 이번에 공개된 CIA의 인재 선발 공고문에 따르면, 미 CIA 측은 기존의 동아시아태평양센터에서 관할 했던 중국 첩보 관련 업무를 분할해 별도의 중국미션센터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향후 중국미션센터는 CIA가 직접 관할하는 소수의 미션센터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CIA 측은 매주 한 차례 국장급 회의를 개최, 중국을 겨냥한 CIA 대중국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중국어 전문 구사자를 모집하게 된 것이다.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중국을 가리켜 “21세기에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위협”이라고 지적하고 “다만, 이 위협은 중국 정부로부터 온 것이며 중국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이번 중국미션센터 설립과 관련된 조치의 첫 번째 목적은 중국의 간첩과 공작에 맞서는 업무를 통합해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도발적인 북한과 적대적인 이란, 러시아 등과 함께 (중국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 내용이 보도되자,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미CIA의 행위를 겨냥해 ‘파리가 계란의 틈을 찾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행위’라면서 ‘미국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험악한 수단을 이용해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인민은 누구나 긴 스파이 전쟁에 참여해 싸울 의지를 키워야 한다’고 비난했다. 현지 누리꾼들 역시 ‘미국이 노골적으로 간첩을 모집해 대중국 전쟁을 시작했다’면서 ‘오히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언을 사용하는 중국인들이 CIA에 취업해서 가짜 이중 간첩으로 활동해야 한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을 반대로 이용해 역으로 공격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적었다. 한편 지난 2월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정보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참석해 “(중국의)약탈적 리더십은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라면서 “중국의 가장 큰 목표는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내부 분석에 따라, 향후 미 CIA측은 미국 본토에 설립한 중국미션센터 외에 추가로 전 세계 각국에 중국 전문요원을 양성해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 ‘간첩조작 사건’ 유우성 공소 기각… 공소권 남용 첫 인정

    ‘간첩조작 사건’ 유우성 공소 기각… 공소권 남용 첫 인정

    ‘간첩증거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에 대해 검찰이 이미 기소유예 처분했던 대북 송금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를 뒤늦게 추가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 기각한 윈심을 확정한 첫 사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는 14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유씨의 상고심에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씨는 2005~2009년 중국에 거주하는 외당숙과 공모해 북한에 25억원을 불법 송금한 혐의로 2010년 3월 서울동부지검에서 기소유예 처분됐다. 그러나 유씨가 2013년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자 서울중앙지검은 2014년 유씨를 불법 대북 송금 혐의로 재조사해 기소했다. 재북 화교 출신인 유씨는 자신이 탈북민인 것처럼 속여 서울시 공무원에 취업하고 탈북자 정착지원금을 받은 혐의(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도 받았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 7명 중 4명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지적했지만 1심 재판부는 유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유씨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에 대한 1심 판단을 뒤집고 공소 기각 판결했다. 이에 검찰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검사가 이 사건을 기소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이므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은 위법”이라며 원심을 확정했다.
  • 北고위급 탈북자 “남파간첩, 90년대 靑서 5~6년 잠입근무”

    北고위급 탈북자 “남파간첩, 90년대 靑서 5~6년 잠입근무”

    대남업무 30년 담당 뒤 현재 서울 상주테러대책반 꾸려 황장엽 암살 직접 지휘공작원들, 시민단체 등 주요기관서 활약국가정보원 “청와대 근무는 사실무근”북한 첩보기관에서 고위급으로 일하다 귀순한 탈북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공작원이 1990년대 초 청와대에 잠입해 근무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1일(현지시간) BBC는 ‘김국성’이라는 가명의 고위급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정찰총국에서 5년간 대좌(한국군의 대령급)로 일하고, 노동당 작전부와 대외연락부 등에서 30년간 일하며 대남 업무를 담당했다는 그는 자신이 공작 임무를 담당하며 ‘남조선의 정치 예속화’를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직접 대남 간첩을 만들고, 공작 임무를 여러 건 수행했다”며 특히 1990년대 청와대에도 남파 공작원이 근무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공작원은 청와대에서 5~6년 근무하고 무사히 복귀해 노동당 314 연락소에서 일했다”며 “공작원이 남한 구석구석 중요한 기관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황장엽 암살 작전에도 직접 관여했다고 했다. 김씨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리를 죽이기 위해 ‘테러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면서 “극비에 황장엽을 테러하기 위한 팀이 꾸려졌다. 내가 직접 지휘했다”고 했다. BBC에 따르면 김씨는 2014년 탈북해 현재 서울에 살며 한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고 있다. BBC는 그의 신원은 확인했지만 주장 전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정보원은 “탈북민 신상 및 주장에 대해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면서도 “다만 ‘90년대 초 청와대 5~6년 근무’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 北정찰총국 대령 출신 탈북자 “90년대초 청와대서 남파간첩 근무”

    北정찰총국 대령 출신 탈북자 “90년대초 청와대서 남파간첩 근무”

    “목표는 남조선의 정치 예속화” 주장“남한 사회 구석구석 남파공작원 맹활약”정찰총국 대좌 등 30년간 대남업무 담당“2009년 황장엽 암살 작전에 직접 관여”인터뷰 한 이유에 “北동포 독재 해방 위해”북한 첩보기관인 정찰총국에서 고위급으로 일하다 귀순한 탈북자가 “북한의 공작원이 1990년대 초 청와대에 잠입해 근무한 적도 있다”고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탈북자는 남한 사회 곳곳에 남파공작원이 맹활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靑서 5~6년 근무 뒤 복귀해노동당314 연락소서 일해” 11일 영국 BBC 방송 온라인판에 따르면 ‘김국성’이라는 가명의 고위급 탈북자는 자신이 공작 임무를 담당하면서 ‘남조선의 정치 예속화’를 목표로 일했다고 말했다. 정찰총국에서 5년간 대좌(한국군의 대령급)로 일한 것 외에 노동당 작전부, 35실과 대외연락부 등에서 30년간 일하며 대남업무를 담당했다는 그는 “직접적으로 대남간첩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공작적 임무를 수행한 것이 여러 건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청와대에도 남파 공작원이 근무하다 돌아온 적이 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그는 “청와대에도 북한에서 파견한 직파공작원 한 명이 근무하고 무사히 북한으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며 이것이 1990년대 초의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그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5~6년 근무하고 무사히 복귀해 들어와서 노동당 314 연락소에서 일했다”면서 “남파공작원이 남한 구석구석 중요한 기관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014년 북한 탈출…서울 거주한국 정보기관 위해 활동 중 자신이 황장엽 암살 작전에도 직접 관여했다고 했다. 김씨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리를 죽이기 위해 ‘테러 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면서 “극비에 황장엽을 테러하기 위한 팀이 꾸려지고 공작이 진행됐다. 내가 직접 이를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BBC 인터뷰에 응한 이유로 “북한 동포들을 독재의 억압에서 해방하고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려고”라고 답했다. BBC는 김씨는 2014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서울에 살며 한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의 주장을 독자적으로 확인할 순 없었지만, 신원은 확인했다고 BBC는 덧붙였다.
  • 북 첩보조직 일하다 6년 전 서울로 “90년대 청와대에까지 잠입했다”

    북 첩보조직 일하다 6년 전 서울로 “90년대 청와대에까지 잠입했다”

    김국송(가명) 씨. 30년 동안 북한의 막강한 첩보 조직에서 일해 최고 직위에까지 올랐는데 2015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서울에서 살며 국가정보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BBC의 서울 특파원 로라 비커가 단독 인터뷰한 내용을 11일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충격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쓴 채로 사진 촬영에 응했고 인터뷰 날짜와 장소를 잡기까지 몇 주 동안 논의를 했으며 그 전에 누구라도 인터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극도로 신경을 썼다고 했다. BBC 취재진 가운데 두 명만 그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고 했다.  비커 특파원은 그가 폭로한 충격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신원에 대해서는 일정한 검증 작업을 마쳐 일부 주장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과 뉴욕 주재 북한 공관에 북한 정찰총국에서 5년 동안 대좌(한국의 대령)로 근무했더 그의 신원 등에 관한 문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폭로한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90년대 초반 우리 청와대에 그가 파견한 요원이 잠입해 5~6년 근무하다 나중에 다시 북한으로 안전하게 돌아와 노동당의 314 연락실에서 근무했다는 주장이다. 90년대 초반이라면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다.  그는 “북한 공작원들이 남한의 중요 기관 뿐만아니라 각계 사회 조직에 침투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탈북민 신상 및 주장에 대해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면서도 “다만 ‘90년대 초 청와대 5~6년 근무’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은 간첩을 파견해 사회 조직에 암약하게 하는 것보다 6000명 넘는 사이버 해킹 요원들이 남측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1980년대부터 명령해 사이버전쟁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모란봉 대학에서 똑똑한 학생들을 선발해 6년 동안 특별 교육을 시킨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른바 라자루스 그룹이란 해커 집단이 2017년 영국 건강보험(NHS) 등 많은 나라의 기관들을 엉망으로 만든 사례가 있다. 이 그룹은 2014년에도 미국 영화사 소니 픽처스의 고급 자료들을 해킹한 바 있다.  김씨는 연락소 414가 이들 해커들을 모두 관리하는데 최고 지도자가 직접 전화로 연결된 유일한 연락소라고 주장했다.  “빨갱이 중의 빨갱이였다”는 그는 북한 지도부가 마약 거래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무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현금을 벌려고 필사적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전략과 한국 정권을 목표로 한 공격에 관해서 이야기했으며 북한의 첩보와 사이버 네트워크가 전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최고 첩보부대에서 김씨가 마지막으로 보낸 몇 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초기 자신이 세계에 어떻게 비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였다.  북한은 2009년에 ‘정찰총국’이란 새로운 첩보기관을 창설했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총국장은 김정은이 가장 신뢰하는 보좌관 중 한 명인 김영철이 맡았다. 김씨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리를 살해하는 ‘테러 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령이 “김정은으로선 ‘최고지도자’라는 전사된 입장에서 그것을 위안해주고 풀어주고 (김정일에게) 만족을 드리기 위한 하나의 행위”였다고 했다.  “극비리에 황장엽 선생을 테러하기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공작이 진행된 것이지요. 저는 직접 지휘, 공작을 수행하는….내 말에 따라서 이 사람들이 같이 협의하고 토론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황장엽은 북한 정권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었고, 김씨 일가는 복수를 원했지만 암살 시도는 빗나갔다. 북한군 소령 두 명이 한국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북한 당국은 관련 내용을 부인했고 한국이 암살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해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 당국은 늘 개입설을 부인해 왔다. 같은 해 11월에는 북한에서 날아 온 수십 발의 포탄이 연평도를 강타했다.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누가 그 공격을 지시했는지 논쟁이 크게 일었다.  김씨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작전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정찰총국 일정한 간부들 속에서는 비밀이 아니고 통상적인 자랑으로, 긍지로 그렇게 알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절대적으로 북한에서는 도로 하나 만들어도 최고지도자의 재가(허락) 없이는 할 수 없어요. 하물며 천안함 폭침이라던가 연평도 포격이라던가 이런 것은 충성심 경쟁으로 할 일이 못 된다”며 “이런 것은 반드시 김정은이 특별 지시에 의해 공작되고 이행된 군사작품이지요. 성과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김정은이 최근 다시 그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작전부서에 있었고 최고 지도자를 위한 ’혁명 기금‘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불법 마약 거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 과업을 제가 받고 해외에서, 밝혀야 되겠는지 안 밝혀야 되겠는지 일단 접어놓고, 3명의 외국인을 북한으로 들여와서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715 연락소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훈련관에 생산기지를 만들어 놓고 마약을 생산했죠.아이스(필로폰의 은어)라고 알죠? 그걸 달러로 만들어가지고 김정일 혁명자금으로 바쳤죠.”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일하다 망명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19년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북한 당국은 마약 밀매에 관여했고 북한 내부에 만연한 마약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마약으로 번 돈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다. 실제로 북한 인민을 위한 자금으로 쓰였을까?  “참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북한에는 모든 돈이 김정일이 김정은이 개인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자기 별장도 짓고 차도 사고 먹기도 하고 입기도 하고 향수(향응)를 누리는 거죠.”  김씨는 또 작전부가 관리하는 이란 불법 무기 판매에서 자금이 나왔다고 했다. 북한이 “특수소형잠수함, 반잠수함, 65잠수함급 이런 잠수함들을 아주 첨단화시켜가지고 잘 만든다”고 했다. 거래가 잘 돼서 북한 해운 부부장이 이란 총참모장을 자신의 수영장으로 불러들여서 판매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북한이 또한 장기간 내전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에 무기와 기술을 판매했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유엔은 북한이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수단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유엔은 북한에서 개발된 무기가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김정은의 고모에게서 받은 벤츠 차량을 사용했고 북한 지도자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희귀 금속과 석탄을 팔아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 돈은 여행 가방에 담겨 북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김씨는 결혼을 통해 강한 정치적 인맥을 형성해 여러 정보기관을 오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와 가족도 위험에 처했다. 2011년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은 숙부인 장성택을 포함해 그가 위협 요소로 여긴 사람들을 숙청하기로 결정했다. 장성택이 곧 처형되겠구나 알고 있었다고 했다. 2013년 12월 북한 관영 매체가 장씨의 처형을 알리자 김씨는 “신변의 위험을 확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북한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로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BBC 제작진은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그가 왜 지금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지를 가장 궁금해 했다고 했다. 해서 질문을 던졌더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라고 답했다. “북녘 동포들을 독재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앞으로 난 더 활발한 활동으로 북한 동포들을 독재의 억압에서 해방하고,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전심하려고 지금과 같은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10일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인민이익을 침해하는 일을 용납 안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에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는 등 남북,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김씨는 “전략에 따라 지금 흐름세가 가고 있는 거죠. 우리가 다시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이 지금까지 0.01%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설전 회담’ 이어… 나토, 스파이 혐의 러 외교관 8명 추방

    러 대표부 상주 인원도 또 절반 줄여CNN “살인·공격적 행동 우려에 대응”러 “근거 없는 비난… 보복조치 할 것”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언뜻 과거 동서냉전 구도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북미·유럽 군사동맹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 직원 중 8명이 비밀 정보요원으로 드러나 이들에 대한 외교관 자격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외교관을 가장해 스파이 활동을 해 온 러시아인들을 추방하겠다는 것으로, 해당 인사들은 이달 말까지 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떠나야 한다. 나토는 러시아 대표부 상주 허용 인원도 20명에서 10명으로 줄였다. 2018년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시도 사건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 대표부 인원을 30명에서 20명으로 줄인 데 이어 다시 절반으로 축소한 것이다. 나토는 성명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동에 대응해 억지력과 방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늘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인들이 어떤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CNN은 “러시아 스파이들의 살인 및 기타 공격적 행동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조치”라고 전했다.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나토의 이번 조치는 지난달 말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날카로운 설전 회담을 벌인 직후에 결정됐다. 당시 라브로프 장관은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극우 네오나치 세력을 지원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 공격으로부터 무책임하게 방치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해 반복적 위협, 독재국가 벨라루스 지원, 나토 회원국 선거 부당 개입 등을 지적하며 맞섰다. 레오니드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장은 국영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외교관에 대한 나토의 비난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은 양측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보복 조치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지만, 나토와 같이 외교관 추방의 형태가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서방과 러시아 간 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이번 추방 조치는 양측의 의사소통을 한층 더 냉각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간첩 혐의 전면 부인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간첩 혐의 전면 부인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조직원 3명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6일 청주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변호인은 “검찰이 주장하는 북한 공작원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첩혐의가 입증될지 의문”이라며 “피고인들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남북 통신 연락선이 복원된 점 등을 미뤄 볼 때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봐야 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날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있는 충북동지회 고문 A(57)씨와 부위원장 B(50)씨의 보석을 신청했다. 도주 우려가 없고 피고인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게 이유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A씨 등은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고 충북지역에서 이적단체를 만든 뒤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7년 8월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지시에 따라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결성한 뒤 중국 심양에 위치한 월마트 무인함을 통해 북측 공작금 2만달러를 수수하고 국내 정세수집 등 각종 안보위해 행위를 했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동일한 내용의 사상학습을 실시하고 북측 지령에 따라 2019년 8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청주공항 스텔스기 도입 반대투쟁 1인시위도 전개했다. 이들은 2019년 7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하위 조직원 영입을 위해 특정정당 충북도당 간부의 신원자료와 사상동향을 탐지하고 2020년 5월에는 충북지역 농민운동 실태 및 전망 자료를 북측에 보고한 혐의도 받고 있다. 60여차례 걸쳐 북한 지령문 수신, 대북 보고문 발송, ‘주체의 한국사회변혁운동론’ 등 이적표현물 1395건 소지 혐의도 추가됐다. 국정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이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포착해 지난 5월 이들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들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불구속된 C(48)씨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이 추가조사를 벌이고 있다. C씨를 제외한 조직원 3명에 대한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일 열린다. 국가보안법 폐지 공동대책위원회 회원 4명은 이날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를 근거로 조작되는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우린 깐부야”···‘오징어게임’ 오일남(오영수), 상남자 과거

    “우린 깐부야”···‘오징어게임’ 오일남(오영수), 상남자 과거

    ‘오징어게임’ 깐부할아버지 오영수이정재 “생각이 젊으시다”“호흡이 처음부터 잘 맞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국내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할아버지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78)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정재는 오영수에 대해 “연기가 뛰어나신 대선배님”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영수는 ‘오징어게임’에서 1번 할아버지 오일남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는 해맑은 미소로 게임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는 인물로 ‘오징어게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드라마에서 이정재와 ‘깐부’(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놀이를 할 때 같은 편을 의미하는 속어로, 딱지나 구슬 등도 공동관리하는 한 팀을 의미)을 맺고 호흡을 맞췄다.수 많은 작품에서 스님 연기···‘스님전문 배우’란 별명도 오영수는 1963년부터 극단 광장 단원으로 연극에 입문했다. 2009년 당시까지 출연한 작품만 200여편이나 된다. 오영수는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배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 등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또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스님을 연기하면서 ‘스님전문 배우’라고 불리기도 했다. 4일 온라인상에는 오영수의 젋은 시절 사진이 올라와 화제다. 그는 1981년 방영된 ‘제1공화국’ 12회에서 여간첩 김수임 군사법원의 군검사로 출연한 바 있다. 당시 38세였던 오영수는 뚜렷한 이목구비로 시선을 끌었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은 “드라마 스님 이미지와 정반대의 모습”, “오일남 할아버지 멋져요”, “오래오래 연기해주세요”등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이정재 “오영수 선생님, 생각 젊으시고 호흡 잘 맞아” ‘오징어게임’ 주연을 맡은 이정재는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오영수에 대해 “연기가 뛰어나신 대선배님”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정재는 “선생님과 작품을 같이 하게 돼 반가웠다. 워낙 나이차도 많이 나고 한번도 뵌 적이 없어 처음엔 어렵기도 했는데, 선생님 자체가 생각이 젊으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작품을 보시는 시각도, 사회 이슈나 뉴스에 대해 같이 얘기를 해봐도 생각이 굉장히 젊으셨다. 같이 출연했던 다른 배우분들과도 자주 만나서 저녁식사를 하시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연기적으로는 저하고 꽤 많은 부분을 함께 하셨는데, 호흡이 처음부터 잘 맞았던 것 같다. 워낙 일남이라는 캐릭터를 깊이 고민하고 오신 듯했다”며 “촬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인지라 배우들도 기훈은 기훈대로, 일남은 일남대로 캐릭터가 잘 정리돼서 와야 되는데, 너무나도 완벽하게 일남을 만을어 오셔서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한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현재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전세계 TV프로그램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통혁당 사건’ 연루로 13년간 옥살이…한명숙 남편, 52년 만에 재심받는다

    박정희 정권 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복역했던 한명숙(77) 전 국무총리의 남편 박성준(81) 전 성공회대 교수가 52년 만에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유영근)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산 박 전 교수 측이 낸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앙정보부 소속 수사관은 박 전 교수를 1968년 8월 4일부터 7일까지 영장 없이 체포하고 감금했다”며 “수사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음이 증명된다”고 판단했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중앙정보부가 남파 간첩이 지식인·대학생들을 포섭해 정당을 조직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하려 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사건에 연루돼 검거된 사람만 무려 158명에 달했다. 박 전 교수는 부인 한 전 총리와 고(故) 박경호씨 등을 포섭해 비밀조직을 꾸리고 공산주의를 찬양한 혐의로 1969년 대법원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확정받았다. 이후 13년간 복역한 뒤 1981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박 전 교수는 이후 2018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17일 열린 재심 심문기일에서 박 전 교수는 “트라우마가 커 그간 재심을 거부해 왔다. 당시 고문을 많이 당했다”고 흐느꼈다.
  • 북한 지령 ‘간첩 혐의’ 충북동지회 위원장 검찰 송치

    북한 지령 ‘간첩 혐의’ 충북동지회 위원장 검찰 송치

    북한 지령에 따라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47)씨가 검찰에 송치됐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전날 손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손씨는 앞서 구속 기소된 고문 박모(57)씨, 부위원장 윤모(50)씨, 연락 담당 박모(50)씨와 함께 2017년부터 북한 공작원과 지령문·보고문 84건을 암호화 파일 형태로 주고받고, 충북 지역 정치인과 노동·시민단체 인사 60여명을 포섭하기 위한 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는다. 앞서 국정원과 경찰은 손씨를 포함한 4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지난달 2일 손씨 외 3명의 구속영장만 발부했다. 손씨를 뺀 충북동지회 구성원 3명은 이달 16일 재판에 넘겨졌다. 손씨만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아 왔다. 이미 구속기소 된 3명에 이어 손씨까지 검찰에 송치되면서 국정원과 경찰의 충북동지회 수사는 마무리됐다.
  • 스캔들 증거라는 이재명 ‘점’…김부선 “1조 걸겠다”

    스캔들 증거라는 이재명 ‘점’…김부선 “1조 걸겠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과거 내연관계였다며 배우 김부선이 증거로 제시한 ‘점’. 이재명 지사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몸에 점이 없는 것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재산”이라며 이를 부인했고, 김부선은 연일 페이스북을 통해 관련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김부선은 29일 “재명씨는 ‘미신을 맹신’해서 그 점 절대 빼지 못한다”라며 “그 점은 대통령 운이 될 점이라는 말을 듣고 재명씨 입 찢어지게 좋아했었다. 절대 안 뺐다에 1조 조심스레 걸어본다”라고 말했다. 김부선은 “재명씨는 짝퉁 기독교 환자, 아니 신자다. 마누라가 교회에 미쳤다고 아주 죽겠다고 하소연했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부선은 2018년 이 지사와 내연관계를 주장하며 신체 특정 부위에 있는 점을 봤다고 했고, 당시 아주대병원 의료진은 “언급된 부위에 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김부선은 이 지사의 ‘집사부일체’ 방송 후 “남자 검사 앞에서 주요부위에 있는 점 위치 그림으로 그려 제출한 여배우는 전 지구상에 김부선뿐일 것”이라며 “앞으로 방송 관계자들은 점이 있냐, 없냐고 묻지 말고 점이 어디 있냐고 물어라. 그 점 눈에 잘 안 보이는 데 있으니까”라고 주장했다.김부선은 이 지사가 ‘몸에 점이 없는 것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재산’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이런 거짓말하면 부모님한테 안 미안할까? 하긴 형이나 형수한테도 그 대접하는 가족 관곈데 별로 안 미안하겠네”라고 비꼬았다. 친형 강제 입원, 형수 욕설 논란이 있는 이 지사는 방송에서 “형님은 제가 간첩이라고 믿었다. 돌아다니는 이야기 중 제가 북한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형님이 한 얘기”라며 “형님이 시정에 관여하려 했고, 제가 그걸 차단하자 어머니를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하다가 협박하고 그런 상황에서 다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당시는 시장을 그만둘 생각이었다”며 “언젠가는 화해를 해야 하지만 형님은 이미 영원히 가버렸다. 지우고 싶은데 지울 수 없는 게 삶이고 책임이다. 공직자로서 품격을 못 지킨 게 후회된다”라고 말했다. 김부선은 2007년부터 약 1년 동안 이 지사와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하며 지난 2018년 9월 이 지사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지사가 자신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본인을 허언증 환자와 마약 상습 복용자로 몰아가 정신적·경제적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25일 서울 동부지법 민사16부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3차 변론 기일에서 재판부는 김부선이 냈던 이 지사의 신체감정 신청을 인격권 침해 우려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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