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면 문닫는 대학(朴康文 코너)
이름도 있고 역사도 긴,서울의 한 대학은 하오 다섯시만 되면 건물들의 출입문을 잠근다.한 푼이라도 경비를 줄이겠다고 하는 일이다.
방학 동안 쓰지 않는 강의실이야 문을 닫아도 되겠지만,연구실에 있던 교수들이 기나긴 여름해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책을 덮고 나와야 하니,이일 하나로도 학문 연구의 세계에도 경제의 주름이 이렇게 저렇게 적지않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헌절날 텅빈 의사당
그렇게 줄인다고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학문의 발전과 학생 교육,나아가 국가의 먼 장래까지 생각한다면,그런 절약이 진정 절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오히려 장기적으로 큰 손해일지도 모르지만,한편으로는 오죽하면 그러겠나,딱하고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런 어려운 때에 국회가 긴 여름잠을 자는 것에 대해 여론이 좋을 리 없다.웅장한 국회의사당이 비어 있고 국정은 여기서 논의되어 본 지 오래다.경비를 아끼려고 건물을 비어 둔 것이 아니다.국민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의사당 앞에서 이따금 얼룩송아지들이 이리 닫고 저리 뛰면서 축산농가의 분노를 대변할 뿐이었으니 국회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나라가 태평하여 할 일이 없어서 의원들이 논다면야 다행이련만,나라는 내우(內憂)에다 외환(外患)이 겹겹이다.국민의 대표들이 밤을 낮으로 삼아 지혜를 모두 짜 내어도 풀기가 어려운 일들이 쌓여 있건만,여야가 머리를 맞대지 못하고 있다.
50년전 제헌국회가 구성되어 민주 헌법을 처음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국회로서 가장 뜻깊은 날인데도,이날까지 국회의장이 없다는 것이다.여론의 압박에 밀려 행사용 대행자를 뽑아 이 경축일을 치러 나가기는 하지만,반세기 전의 제헌의원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다.
후반기초부터 ‘없던 국회’가 공헌한 것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는 말도 있기는 하나,이는 반어적(反語的)인 풍자일 뿐이다.“신문에서 정치 기사 덜보니 좋더라”는 것인데,대의정치에 대한 불만과 실망의 표현이다.그 동안 국회가 열렸다고 해 봐야,고함과 드잡이로 날을 지내다가 흩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을 되풀이했을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지난 6월에북한 잠수정이 꽁치 잡는 그물에 걸리더니 이달 7월에는 잠수복 차림의 무장간첩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일부 노조들의 연대 파업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경제 전망은 흐려지고 있다.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국회는 후반기 원 구성이 되지 않아 의사당이 정적(靜寂)속에 묻혀 있었다.
○국민 정치무관심 부채질
국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또는 냉소주의가 심해질 수 있다. 대의제도롤 통해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이 잃지 않게 하는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다.진지한 국회,고민하는 국회,국민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국회를 보고 싶다.
대학이 하오 다섯시에 교수들을 연구실에서 내쫓지 않고 늦은 밤까지 불을 켤 수 있게 하려면, 또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되찾고 공장들의 모든 기계를 다시 힘차게 돌릴 수 있게 하려면,국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라고 노래되는 제헌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