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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관계 기상도-포용정책 약효 얼마나

    金大中대통령 취임이후 정부는 한햇 동안 일관된 대북 정책을 펴왔다.‘햇 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이 그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안팎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우리 사회 보수층의 반발 뿐만이 아니다.북한당국조차도 햇볕정책을 강력히 비난 하기도 했다.잠수정이나 간첩선 침투로 우리의 선의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북한내 강경파들이 남북간 교류 확대시 체제 동요를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국민의 정부’는 새해에도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할 방침이 다.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그 바탕에서 통일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인 셈 이다. 포용정책의 일차적 전술 목표는 북한의 변화 유도에 있다.남북간 각종 교류 협력의 활성화로 북한을 게임의 룰이 통하는 개혁·개방사회로 이끌어내겠다 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옥동자격인 금강산 사업이 시작된 지난해 11월18일부터 연말까 지 금강산을 다녀온 관광객수는 모두 1만여명.지난 89년 일반인의 북한방문 이 허용된 이후 지난해 11월18일까지 방북자수가 4,388명에 불과한 점을 비 춰볼 때 남북간 접촉면이 엄청나게 넓어진 것이다. 정부측은 포용정책이 경직적 북한사회를 긍정적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성공 적 시동을 걸었다고 본다.금강산관광 이후 북한이 남북경협에 더욱 적극적으 로 나오고 있는 사실이 그 반증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이 올 상반기중 중국식 개혁·개방을 선언할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그러지 않고선 북한이 식량난 등 갈데까지 간 경제위기를 견디다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다.마찬가지 맥락에서 금강산 이외 에 백두산·칠보산 등도 외화벌이 차원에서 남한관광객들에게 열어줄 것이라 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어쩔수 없이 문호를 열되 중국식과 는 다른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본다.개방은 곧 체제와해라는 등식을 두려워하 는 金正日체제가 ‘제3의 개방 유형’을 추구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경우 북한이 이른바 베트남식 개방을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 이다.위에서는 사상무장을 강조하면서도 하부에선 암시장 양성화 등 시장경제적 요소를 확대하는 등 이중적·제한적 개방이다. 북한은 이에 앞서 지난 98년 9월 개방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을 단행했다.개 인소유 대상 확대 등 시장경제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거나 거주·여행의 자유 를 보다 양성화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민족통일연구원측도 최근 “개정 헌법이 암시하는 북한의 개방정책은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한 정치적 통제 및 강경책과 함께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 다.‘북한헌법 개정에 따른 경제부문 변화전망’이라는 정세분석 자료를 통 해서였다. 통일부도 북측이 선별적인 대외 경제개방 조치를 확대 실시할 것 으로 보고 있다.이 과정에서 기존의 나진·선봉 이외에 남포·원산·금강산 ·신의주 등으로 경제특구를 확대지정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큰 틀에서는 ‘일면 대결,일면 교류·협력’의 이중구조 가 지속될 전망이다.국지 도발로 대남 긴장을 조성하는 한편 금강산사업 등 으로 실리도 추구하는 이중적 자세를 취할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具本永 kby7@ [具本永 kby@]
  • 나아갈 길-버려야 할 국민성, 세워야 할 참가치

    [姜 萬 吉]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경남 마산·65세 ●고려대 사학과졸·문학박사 ●고려대 중앙도서관장 ●월간 ‘사회평론’발행인 ●주요 저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민족운동사론’ ‘통일운동시대 의 역사인식’ 절충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나는 그것을 수렴이라고 부릅니다.우월성 으로 통일의 기반을 삼는 견해는 우려스럽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姜교수 통일문제는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냉전구 도는 다 무너졌는데 한반도에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력통일이나 독일식 흡수통일이 지정학적 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한마디로 남북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통일 방법론 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국민의 정부는 이 점에서 방향은 옳게 잡고 있습니 다.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서해안에 간첩선이 출몰하더라도 왜 동해안 에서 금강산 유람선이 뜰 수밖에 없는지,그리고 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 일이 이뤄져야하는 지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줘야 합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은 모든 것이 이질화됐다고 말합니다.남한의 거울에 비춰 같지 않은 것은 이질화라고 봅니다.그러면 남한은 이질화되지 않았는지 남한 자체를 객체화시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姜교수 지역대결 문제에도 역사적 원인이 있습니다.일제는 한반도 강점을 쉽게 하기 위해서 분열 요인이 별로 없는 우리를 두가지로 분열시켰습니다. 하나는 계급적 차이를 이용한 것이고,다른 하나가 지역갈등 문제였습니다.일 본이 지역갈등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분출되면서 지역문제는 그다지 불 거지지 않았지만,일본군 출신의 朴正熙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악용하기 시 작했습니다.정통성없는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대립을 조장한 것입니다.그같은 지역대립조장의 결과가 절정에 이른 게 광주민주항쟁이었습 니다만,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고질화돼 있는 형편입니다.최근에 겪은 하나의 어이없는 사례를 들겠습니다.제고향(마산)에서 한 관리가 부정 을 저질러 막상 사법처리되자,부정한 사실 그 자체는 간 곳 없어지면서 아무 개 정권이 우리 지역을 탄압하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부패 관 리 징치보다 지역감정이 우선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지역감정 문제 해결은 과거 피해를 입었던 쪽이 정권 차원에서 이것을 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과거 정권의 틀을 벗어나 모든 부문에서 공정하 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젊은 층이 지역감정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동서문제는 젊은 층이 민주사회의 주인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히 해소될 것으로 여겨집 니다.기성세대 중에서도 양심적 지식인들이 시민운동을 통해서 지역대립 문 제를 풀어가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의 지역 대립은 근대사회 들어 사회에서 피해적 존재를 만 들어내기 위한 파쇼의 통치전략입니다.19세기 말과 20세기초 독일,폴란드 등 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났는데,이 과정에서 600만여명의 유태인이 나치에 학 살당했습니다.유태인은 유럽에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그러나 파쇼 집단은 백인 부르주아사회의 반인간성을 유태인에 투영시켰습니다.유태 인으로 하여금 사회적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이같은 원리와 전략이 朴정권에 의해 호남에 적용됐습니다. 나는 철이 든 나이로 일제시대를 살아 잘 아는데,일제시대에는 지역 차별이 없었습니다.해방 뒤와 민주당 정권 때도 지역 차이 없이 정당을 구성했습니 다.지역 차별은 71년 대통선거를 계기로 구조화된 것이 분명합니다.유럽 파 시스트체제 생성과정의 유태인의 존재를 호남에서 찾은 것이지요.●姜교수 역사 교육 쪽으로 화제를 돌려보지요.현대사 교육을 제도교육 쪽에서 보더라 도 지금 2가지 문제가 잘못됐습니다.중·고 국사 교과서가 아직도 朴정권 때 결정했던 그대로 국정교과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이래선 일본에 역사교육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곤란할 지경입니다. 그중 국사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이 대단히 약합니다.정권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서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북대립적 입장에서 주로 역사를 기술하다 보니 남북화해적 교과 내용이 없습니다.통일된 독일의 경우 옛날 서독 교과 서를 동독지역에서 그대로 쓰고 있어도 문제가 안될 정도입니다.그만큼 객관 적으로 썼다는 얘깁니다.남북의 역사 교과서가 해방 이후 천양지차로 서술돼 있습니다만 민족 화해적인 내용이 더 크게 부각되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합 니다. ●李교수 역사교육의 잘못은 원죄에 속하는 부분이 있습니다.그리고 원죄는 해방 직후 일제 잔재를 토대로 한 새 국가 건설에서 출발합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45∼48년 군사정부를 만들어 통치하면서 일제시대 독 립운동가,혁명가,애국지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친일 반역행위를 한 개 인을 모아 요직에 배치했습니다.그리고 李承晩정부가 그것을 이어 12년간 통 치했습니다.李承晩 개인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 정권은 친일 반역자 에 업혀 새 국가를 건설하고 통치한 추악스러운 정권입니다.정부 수립 직후 반민특위법을 만들었지만 한 명도처단하지 못하고 거꾸로 애국지사가 처단 됐습니다.그래서 이같은 사실들이 국정교과서에 들어가지 못하고,또 ‘국정 ’으로 교과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朴正熙는 제 발로 일본군에 입대해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나라의 국정교과서가 어떻게 진실을 기술할 수 있겠습니까.朴正熙는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지성의 요구를 반공(反共)이라는 적대적 긴장을 조성해서 무마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늦었지만 교육을 다시 해야 합니다. ●姜교수 역사교과서를 국사편찬위에서 국정교과서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민 주주의 국가에서 어불성설이고 창피한 일이지요. ●李교수 21세기는 스스로 승리했다는 자본주의 안에 사회적,도덕적,인간적 가치를 재생시켜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나는 자본주의는 절반만 승리 하고 절반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는 끝났다” 고 말했지만 나는 21세기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봅니다.IMF는 자본 주의의 발작이자 경련입니다. ●姜교수 20세기에서 자본주의가 살아남게 된 것은 이른바 ‘케인스 혁명’ 이후 사회주의에 약간의 양보를 했기 때문입니다.케인스의 신이론에 따라 자 본주의가 계획경제의 장점을 일부 받아들인 것입니다.반면 국가사회주의는 7 0년대를 지나면서 무너져갔습니다.이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신자유 주의가 풍미하면서 각종 비인간적인 측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신자 유주의 체제하에서 비인간적인 사회적 상황이 점점 확대되면서 새로운 (경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도 더욱 적극화될 것으로 보입니다.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21세기에는 그런 새로운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그런 일에 당연히 관심을 가져 야 하며,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남다른 역사의 식을 가져야 합니다. ●李교수 여기서 올바른 언론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종교,언론자유(Freedom of Speech),출판(Pres s),집회,청원권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규정하고 있습니다.이 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문명국가가 헌법 전문에 규정하고 있는 문명사회의 원칙으로,호치민의 북베트남 헌법에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열에서 출판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 다음이라는 것입니다.언론의 자유는 시민과 개인은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합니다.또 언론기관보다 개인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것이 언론기관의 자유로 둔갑돼 있습니다. ●姜교수 崔章集교수 문제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고 참 불쾌했습니다.한 학자 가 자기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연구,이론구성을 해놓은 것을 가지고 언론 이 즉흥적으로 평가,시비를 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학술적 결과 물은 학계 내에서 소화하거나 비판해야 합니다.어떤 이유에서건 학자를 걸고 넘어져 학문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언론기관이 할 일이 아닙니다. ●李교수 우리는 역대 개발독재정권이 경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그동안 쌓 아온,권력집단의 노획물 같이 수탈할 수 있었던 가치구조와 관습 등 모든 면 을 수술해야 합니다.毛澤東정권이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鄧小平이 모든 체제를 바꿨던 예를 본받아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우리 국민은 타 락하고 부패한 지도자 밑에서도 뭔가를 이뤄냈습니다.하물며 새 지도자 밑에 서 혁명하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면 무엇이든 이루어내지 않겠습니까. ●姜교수 12월31일과 1월1일의 24시간은 다를 게 없는데도 굳이 구분하는 것 은 마음을 새로이 하자는 뜻일 것입니다.(시간의 흐름 위에서)마디를 만들어 새롭게 다짐하면 그것이 역사를 바꿔나가는 일이기도 하겠죠.앞서 언급했듯 이 국민의 정부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정통성을 갖는 정권입니다.새 정부는 올해 역사적 전환점에서 서서 이 정권의 성립 기반을 다시 돌아보고 이를 확실히 정착시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가진 역사관을 젊은이들이 다시 이어가게 하면 그 민족 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젊은이들의 역사관이 기성세대와 달라야 그 민족사회가 전진할 수 있습니다.기성세대들은 이 점을 인식하면서 젊은 층과 부딪쳐야 조화가 서로 이뤄질 것입니다. 나는 통일을 과정으로 보지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열매를 따려면 나무에 올 라가야 하고,첫 발을 내디디면 두번째 발을 옮기고,그러다가 가시에 찔리기 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같은 통치체제,또는 이념이나 인민의 자유,권리,창의력을 당이 독점 하는 흘러간 공산주의식 체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그렇다고 남한식으로 통 일의 기틀을 잡는 것도 찬동할 수 없습니다.남한도 해방 후 반세기 동안 친 일파,범죄,부패,타락,잔인성,비인간성,빈부 차이,자본주의가 가지는 주기적 경기변동으로 인한 인간의 재난과 불행 등을 청산하면서 새로운 국가를 지향 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는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져서 인간 위에 돈이 있 고,모든 가치 위에 돈이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돈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전면적·극단적으로 발동시켜 생산을 극대화시킨 것이 우리 사회의 우월성입니다.그런데 그것은 인간 파괴를 가져옵니다.
  • 정치팀기자 송년 방담

    ‘정권교체와 국민의 정부 출범’ 올 한해의 정치를 상징하는 ‘키워드’다.정부수립 후 처음으로 여야가 뒤 바뀌면서 정치권은 새 정치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느라 몸부림쳤지만 역부족이 었다.여당이 된 국민회의는 체제정비 미숙과 리더십의 부재 속에 한동안 비 틀거렸고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강력한 구심을 갖지 못 한 채 내홍에 시달렸다. 한편으로 정치는 ‘IMF관리체제’라는 국가홍역 속에 경제에 파묻혀버린 한 해이기도 했다.한해의 정치를 되돌아보고 새해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 지 취재기자의 방담으로 짚어본다. ●정권교체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 습니다.DJ정부는 개혁을 앞세워 사회 각 분야의 ‘총체적 개조’에 착수했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구여권과 보수층의 저항이 곳곳에서 만만치 않게 진행 되는 과정이지요. 새 정부 출범 초 여야의 ‘초보운전’으로 정국은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하지만 서서히 집권당과 수권야당으로서 제모습을 찾아가 는 분위기입니다. ●각종 선거 올해는 유난히 선거가 많았던 해이기도 했습니다.특히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던 6·4 지방선거와 7·21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수도권에서 ‘승리’를 거둬 한숨을 돌렸지요.여권은 “민심을 확인했다”며 곧바로 의 원영입 등 정계개편에 착수,여소야대 국회를 ‘여대야소’ 구도로 전환시켰 고 정국안정의 기틀을 구축했다는 평도 나왔습니다. ●식물국회 국회를 볼모로 전개된 여야간 ‘정쟁’은 ‘식물·뇌사국회’라 는 최악의 상황을 불렀지요.정치권 사정과 북풍(北風),세풍(稅風) 등 정국 고비마다 국회는 공전과 파행을 거듭했고 민생현안과 각종 경제법안들이 낮 잠을 자야했습니다.한나라당 李信行전의원 등 각종 비리혐의에 연루된 의원 들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탄국회’도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국민회의 趙世衡체제 순항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지난 1년 동안 무난하게 당을 꾸려왔다고 생각합니다.6·4지방선거,7·21 재·보궐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승리,주가를 올리기도 했죠.趙대행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의장 선거,총리인준 문제 등 어려운 문제들을 잘 극복했다”며 상당히 고무된 표정입니다.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으로 야당을 감싸안고 가는 식으로 의회민주주의의 기틀을 잘 다진 것으로도 평가됩니다.원내에 복귀,지도체제 를 대행체제에서 대표체제로 전환하려던 노력은 무산됐지만 상당한 권한을 확보하는 등 소득도 있었지요. ●의원영입 및 정계개편 후반기 원구성을 놓고 의원영입이 본격화되면서 국 회가 공전되는 등 구태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여권은 여소야대를 여대야소 로 바꾸는 소폭의 정계개편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후유증도 적지 않았습니다.언제까지 이런 일들이 되풀이돼야 하는지 에 대한 회의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우리 정치가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하지만 의원 영입방식은 과거에 비해 달라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의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 다 보니 지지부진한 느낌이 들었다”고 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 李會昌호(號) 출범 한나라당 李會昌총재는 지난 8월 31일 당권을 다시 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그러나 이후 내내 내우외환(內憂外患 )에 시달렸습니다.거의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지요.총재 경선 당시 李총 재를 적극적으로 밀었던 金潤煥전부총재가 스스로 비주류를 선언한 것 역시 아이러니입니다.내년에는 허주(虛舟)를 비롯한 비주류들이 어떤 식으로든 李 총재를 옥죌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정(司正)공방 정권 초기마다 겪는 일이지만 올해도 여야 정치인들이 사 정의 된서리를 맞았습니다.이 과정에서 ‘총풍’(銃風)·‘세풍’(稅風)이라 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의원들의 개인 비리도 속속 드러났습니다.체포 동의 안이 올라와 있거나,올라올 예정인 의원만 1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이러다 보니 “지금 국회는 범인도피처로 활용되었던 삼한시대의 소도(蘇塗)와 흡사 하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규제개혁법안 처리 올해 정치권이 파행국회 속에서나마 그래도 성과가 있 었다면 민생 및 규제개혁법안 처리를 들 수 있습니다.당초 정기국회에서 처 리를하려고 했습니다만 어려워지자 내년 1월 7일까지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법안심의를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30일 하루만해도 병역법개정안 등 규제개 혁법안 100여건이 통과됐습니다.하지만 일부 규제개혁법안은 이익단체의 로 비로 변질되고 여야간 입장 차이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행보 전직 대통령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도 올해의 주요 뉴스로 기록될 만한 일입니다.대구 경북의 민심을 겨냥한 全斗煥 전대 통령의 부지런한 물밑 행보가 여권의 정계개편 의도와 맞물린 것이 아니냐는 시각입니다.金泳三 전대통령이 연말 송년 모임 등을 통해 현 정권과 경제정 책에 대한 비판을 흘리며 정치적 입지 마련을 모색한 것에 대해선 “경제를 망친 전직 대통령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라는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정치개혁 정치개혁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와 정치권의 현 주소가 얼 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선거와 정치자금 등의 분야에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 급한 나머지 ‘개혁’이라는 시대적 대의명분을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내년 3월까지 정치개혁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여권의 의지가 신년 정국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두고 볼 일입니다. ●여여(與與) 공조‘여여’ 공조라는 첫 정치실험은 양면이 있는 것 같습니 다.공동정권을 출범시킬 때는 양당을 합해도 과반수 의석이 안됐잖아요.그래 도 결국은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정국운영의 안정기반을 구축한 것이지요.그러나 양당간 공조는 그다지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습니다.각종 정 책을 둘러싸고 부딪치기 일쑤였지요.심지어 국정협의회에서 합의한 사항을 자민련에서 뒤집기도 했구요.새해에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햇볕정책 논란‘국민의 정부’는 ‘햇볕정책’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성있게 적용해 왔습니다.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의 소떼 지원과 금강산 유람선관광사업이 상징적인 사업들이죠.물론 보수층의 반발과 북한 간첩선·잠수정 침투 등으로 이 정책이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북한에 대한 금강산 입산료 지불에 반대하며 ‘신판 조공 행렬’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동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교류협력 확대로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다”는 金大中대 통령의 지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햇볕정책에 힘입어 98년 한해 동안 방북 한 사람이 3,200명에 이르러 89년부터 97년까지 9년간 방북한 숫자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정치팀│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공직사회 유행한 말…말…말…

    올해 공직사회는 사상 유례없는 변화를 겪은 만큼 말도 많았다.공직사회의 유행어를 통해 변화상을 알아본다. ▒ 있는 집 머슴이 낫다 잘 사는 구청의 공무원이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구청 직원에 비해 한달에 최고 30만원 가량 월급을 더 받아 공직사회에도 부 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겼다. ▒ 교육계의 9판 교원정년 단축과 대입제도 개선 등 교육개혁의 후유증을 국회 咸鍾漢 교육위원장이 지적했다.“학생은 개판,학부형은 살판,교사들은 이판사판,교실은 난장판,교장은 죽을판,교감은 살얼음판,장학사는 닦달판, 학교는 무너질판”이라고…. ▒ 낙지부동 신토불이 개혁주체로 나서야할 공무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낙 지처럼 바닥에 달라붙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등 국민회의 崔在昇의원이 제기 한 ‘5대 부동(不動)론’.땅과 하나가 돼 있다는 신토불이,뒤에서 딴짓하는 입지반동(立地反動),꿈쩍도 않는 복지부동,눈치만 살피는 복지안동(眼動),시 늉만 내는 복지미동(微動)등. ▒ 공직사회의 ‘왕따’ 공무원들이 정치인 또는 전문경영인 출신의 장관 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고 따돌려 중도하차한 경우를 빗댄 표현이다. ▒ 눈물의 303호 연초 공보처 직원들은 갈 곳도 없어 정부 세종로 청사의 303호에 모여 부처 해체의 서러움을 달래야만 했다. ▒ 풀장이 싫다 정부 조직개편으로 보직을 받지 못한 공무원들은 인력풀 에 들어가야만 했고 이들은 인력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 경찰인사는 申昌源,군인사는 무장간첩 탈옥수 申昌源이 신출귀몰하게 경찰 포위망을 뚫고,북한 잠수정이 동·서·남해에 출몰했으며 문책인사도 뒤따랐다. ▒ 깨진 철밥통 정년 단축,인력감축 등으로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사상 처 음으로 무너졌다. ▒ 상호주의 통일부 직원들은 남북관계에 빗대 ‘오늘은 내가 점심을 샀 으니 내일은 당신이 사라’는 상호주의를 내세워 IMF 시대의 가벼워진 주머 니 사정을 반영했다. ▒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뭐 이런 장관이 다 있어 金正吉 행정자치부장 관이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는 책을 써 공무원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 자 공무원들은 ‘뭐 이런 장관이 다있어’,‘역대 최고저질 장관’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朴政賢 jhpark@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국내/대한매일 선정 1998년 10大 뉴스

    ◎국민의 정부 출범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룩한 金大中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2월25일 출범했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로 국가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정을 맡아 경제난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외환보유고와 주가지수,금리,환율 등이 회복·안정세로 돌아섰다. 새정부는 이와함께 정부조직 개편,행정규제 철폐,대기업 및 노사 구조조정 등 총체적인 국가 개혁작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햇볕정책과 금강산 관광 ‘국민의 정부’는 올해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을 일관되게 펼쳐 왔다. 인적·물적 교류 확대로 남북 화해를 앞당긴다는 취지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팎의 도전도 받았다. 보수층의 반발과 북한 잠수정과 간첩선 침투 등이 그 사례였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은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소떼 방북,50년만의 역사적 금강산관광 성사 등으로 마침내 대내외적인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北 인공위성발사 파문 북한은 8월 31일 낮 12시7분쯤 동해안 소재 대포동 미사일 시험장에서 사거리 1,700∼2,200㎞의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은 미사일이 아닌 ‘광명성 1호’로 명명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과 우리 정부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용 로켓발사를 통해 소형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대량실업과 노숙자 IMF 터널은 대량실업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몰고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현재 실업률은 7.1%,실업자는 153만6,000이지만 불완전고용자를 포함하면 200만명은 넘어설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량실업은 노숙자의 양산이라는 또다른 그늘을 드리웠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증가세는 주춤했지만 아직도 3,000여명의 노숙자가 거리를 헤메고 있다. ◎프로골퍼 박세리 돌풍 여자 프로골퍼 박세리 돌풍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5월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선수권에서 우승,혜성처럼 등장한 박세리는 7월 US여자오픈에서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메이저대회를 연속 제패했다. 이어 제이미파크로거대회에서 LPGA투어최저타 신기록을 세웠고 자이언트이글틀래식마저 거머쥐며 데뷔 첫해 4승의 신기록을 이룩했다. ◎대기업 빅딜과 금융개혁 98년은 경제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한해이다. 5대 그룹 ‘빅딜’(사업 맞교환) 성사와 은행 불사론(不死論)의 신화 붕괴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재벌 구조조정과 금융개혁을 차질없이 이뤄냄으로써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동화 경기 충청 대동 동남 등 5개 부실은행의 퇴출을 선언한 ‘6·29’ 발표와,5대재벌의 구조조정안에 합의한 ‘12·7 정·재계 간담회’는 경쟁력 있는 은행과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이 됐다. ◎미사일 오발 등 軍사고 빈발 12월4일 오전 10시35분 인천의 공군 방공포대에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1발이 훈련 중 오발돼 공중에서 자동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날 밤에는 군 영내에서 불발탄을 잘못 건드려 폭발해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이틀 후에는 조명탄 캡슐이 민가에 떨어지는 사고가 이어지면서 군 기강해이 문제가 정치권의 쟁점으로까지 확산됐다. ◎사상 최악의 水災 7월31일 지리산 폭우를 시작으로 20여일 동안 한반도 곳곳에서 기습적으로 쏟아진 게릴라성 호우는 240여명의 사망·실종자와 16만여명의 이재민,2조원의 재산손실 등 엄청난 피해를 냈다. 서울에서 18일동안 한해 강수량과 맞먹는 1,202㎜의 비가 내리는 등 새 강수기록도 세웠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중요성과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이웃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우쳐 주었다. ◎日 대중문화 개방 우리 대중문화가 보호막을 벗고 일본 대중문화와 경쟁하게 됐다. 정부는 지난 10월20일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해방 이후 53년만이며,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33년만이다. 영화,비디오,출판만화가 먼저 개방돼 지난 5일에는 영화 ‘하나비’가 국내에서 상영됐다. 가요, 애니메이션(만화영화)등은 ‘즉시 개방이후’로 분류돼 추후 적정한 시기에 개방되도록 늦춰졌다. ◎북풍·세풍·총풍 수사 올 초부터 이른바 ‘북풍(北風)·세풍(稅風)·총풍(銃風)’으로 이어진 ‘3풍사건’은 온통 나라를 뒤흔들었다. 지난 해 대선과정에서안기부와 국세청,한나라당 등이 국민회의 金大中 후보의 낙선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건들이다. ‘북풍’으로 權寧海 전 안기부장 등이,‘세풍’으로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李會晟씨 등이 구속됐다. 현재 ‘3풍 사건’과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며 검찰의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 모습 드러낸 청와대의 방송개혁 방향

    ◎‘공중파’ 공익성 되살리기에 초점/선정·소비적 향락프로그램 ‘퇴출’ 강한 의지/직접개입 않고 단속권 활용 언론계 자정 압박 방송개혁위원회가 출범한 것에 발맞춰 방송개혁의 방향이 드러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과 朴智元 청와대공보수석의 언급을 통해서다.金대통령은 큰 틀과 방향을 정리하고 있고,朴수석은 그 기조 아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개혁위가 앞으로 내놓을 개혁안의 대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의 강도 높은 방송개혁 촉구는 방송의 현주소에서 출발한다.金대통령은 최근 “얼마나 많은 언론들이 IMF라고 해서,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광고주에게 아첨하는가”라며 현실을 질타했다.상업성과 선정성에 치우친 언론현실을 매섭게 지적한 것이다. 朴수석은 이를 ●선정과 폭력적 내용을 무차별로 방송하는 상업성·시청률 지상주의 ●10대 취향의 소비적 향락 프로그램 만연 등 공익성 상실 ●역사·사회의식 및 개혁마인드 미약과 같은 공공성 결여 ●방향성 부재 등 4대 문제점으로 요약했다.특히 매일 사건·사고만 있는 나라로 보도하는 TV뉴스,연예인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각종 프로그램,무장간첩의 시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영태도 등 구체적 사례를 들며 문제점을 적시했다. 朴수석은 그 대안으로 KBS 2TV 광고 폐지와 시청료 인상,공중파와 케이블TV의 차별화,MBC와 SBS는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광고를 넣은 ‘중(中)CM’ 허용 등을 제시하고 있다.그렇게 되면 KBS 2TV가 소화해온 연 6,000억원의 광고가 방송과 신문으로 분산돼 언론상황도 나아지고 시청률경쟁 풍토가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朴수석은 정부의 직접 개입 가능성은 일축하고 있다.다만 “강제구독이나 광고강요 등에 대해 정부가 가진 단속권한을 행사하겠다”며 언론개혁의 간접 강제방침을 시사했다. 방송개혁에 대한 金대통령과 朴수석의 발언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최근에는 방송개혁이 작게는 언론개혁,크게는 사회 전체 개혁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라고 규정,언론 전체로의 확대를 기정사실화했다. 방송을 포함한 언론개혁의 ‘포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셈이다.주 목표는 족벌언론과 협조융자,재벌광고에 따른 폐해 축소이다.
  • 관심없는 열사 죽음/유가협,국회 주변서 두달째 ‘천막농성’

    ◎진상규명할 법제정 외면/추위보다 견디기 힘들어/민주화투쟁 공로 인정을 “세상이 너무나 무심한 것 같습니다.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일어섰다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저물어 가는 한해를 지켜보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 장기신용은행 앞길에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장 裵恩深) 회원 10여명은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25일로 52일이 됐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사망한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의문사를 규명할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쟁해 온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어색하기만 하다.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스티로폼 몇 장을 깔고 밤샘농성을 계속해 왔다.이불과 취사도구도 갖다 놓았다.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가 예사다. 천막 안에는 ‘열사력(烈士曆)’이 걸려 있다.그 달에 사망한 이들의 날짜와 얼굴사진을 담은 탁상형 달력이다. 한뎃잠을 오래 자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하지만 참기 힘든 것은 무관심이다.국회의원 몇 명이 다녀가긴 했지만 이들의 농성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낮에는 유인물을 돌리며 피켓시위를 하지만 반응은 냉담하다.“명예 때문만은 아닙니다.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을 정리하고 정당성을 재확인하자는 겁니다” 천막농성장에는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 朴鍾哲씨의 아버지 朴正基씨(69)와 고 李韓烈씨의 어머니로 유가협 회장인 裵恩深씨(58)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이들말고도 86년 간첩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가 7일만에 두개골 함몰상을 입고 의문사한 고 申虎樹씨의 아버지 申正鶴씨(62),지난해 3월 광주에서 시위 도중 사망한 고 柳在乙씨의 아버지 柳成烈씨(52)도 농성중이다. 이들의 요구는 국무총리 산하에 ‘보상심의회’를 설치하고 ‘열사’들의 유죄 판결에 대해 특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명예회복에 관해서는 법안이 상정돼 있지만 진상규명에 대한 입법 움직임은 없다.
  • 北 도발 대비 韓·日 연락망 개설

    ◎교도통신 “새달 국방장관 회의서 합의” 【도쿄 연합】 일본 방위청은 최근 북한 간첩선이 한국 남해안침투 도중 격침된 사건과 관련, 한국 국방부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긴급 연락망을 개설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공동)이 24일 보도했다. 통신은 오는 1월 초순 서울에서 개최되는 양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노로다 호세이(野呂田芳成) 장관이 한국의 千容宅 국방장관에게 이를 제안, 합의하게 될것이라고 전했다. 연락망은 ▲한국군이 일본 영해 부근 공해상이나 한국 영해에서 국적불명 선박과 무력 충돌할 경우 방위청에 긴급 연락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재발사 할 경우 방위청이 독자적으로 입수한 정보를 한국측에 전달하는 등 상호연락체제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 오늘 첫 해양의 날/조직과 역활

    ◎독립해양경찰 전문성 ‘준비완료’/96년 8월 경찰청서 분리… 인천·부산 등 12곳 4,240명 활약 지난 53년 11월 해상경비 강화와 일본어선 불법조업 단속을 위해 내무부 산하 해양경찰대로 출범한 해경은 96년 8월 경찰청으로부터 분리,해양수산부 외청으로 독립했다. 현재 인천에 본청과 부산·제주·목포·속초·포항 등 12개 지역에 경찰서및 정비창을 두고 있으며 직원은 모두 4,240명이다. 해경은 창설 초기 주로 해상경비 및 치안에 주력해 왔으나 해상교통 안전관리,해난구조,오염방제 등으로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지난 17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 북한 반잠수정이 출현했을 때에는 최초로 경비정을 투입,잠수정 확인작업과 도주로 차단작업을 벌인 뒤 해군함정이 출동하자 함께 통합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해양경찰이 23일 첫 ‘해양 경찰의 날’을 맞는다.지난 96년 경찰청에서 분리된 후 처음이다.이날 해양 경찰 헌장도 제정된다. 해양경찰관들은 ‘이제야 해경인으로 긍지를 찾을 수 있게 됐다’며 반가워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독립한 이후 해경은 독자적 위상 확보를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른 기관과 업무가 중복되는 해상경비 및 치안,해상교통 안전관리,해난구조,오염방제 등에 있어 독자적인 업무영역을 분명히 했다. 전문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난 8월과 10월 정보수사요원 24명과 행정고시 출신 중간간부 3명을 각각 공채했으며 최초로 여해경 30명을 선발하기도 했다. 특히 밀수·밀입국·불법조획 등 해상범죄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업무협조가 안됐던 공산권과 해상범죄 공동대응을 위한 협정을 맺은 것은 획기적 조치로 평가된다. 지난 9월 러시아 국경수비대와 정보교환과 수사협조를 위한 해양범죄 공조약정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 8일에는 중국 공안부와 약정을 체결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일본 해상보안청과도 약정을 맺어 인접국가간 공조체제를 완성하며 해양오염 방제와 범죄예방을 위한 4개국 합동훈련도 실시할 방침이다. 그러나 독립 당시 기대에 비해 현실은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 직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정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찰직’에서 ‘공안직’으로의 전환이 검토되는 등 수난을 겪은 해경이기에 독자적 영역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기능 강화를 위해 해결돼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긴급상황에 대비한 업무대행 체계와 정책업무의 효율적 수행체제 확립이 긴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1,000t급 이상 경비정과 구난함 등 장비 또한 업무영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해양오염 사고 빈발에 대처하기 위한 방제정과 해상구조에 필요한 위성통신장비도 부족하다. 해경은 2003년까지 ‘장비강화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가적 경제난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인터뷰/金大圓 해경청장/“안보현실 감안 해경기능 강화할터” 23일 해양경찰 독립 이후 처음으로 해양경찰의 날을 맞는 金大圓 해경청장은 “해양경쟁시대에 대비하여 국가 해양세력의 주체인 해경의 독자적 위상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바다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유엔해양법협약’ 발효를 계기로 세계 각국이 해양주권을 강화하려는움직임이 일고 있다.특히 중국의 20만 해양순찰군 창설 추진,일본의 해상보안청 제2해군화 등 주변국가가 전략적 차원에서 해양세력을 강화하고 있다.우리 정부도 ‘제2의 장보고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해양강국 건설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이를 위해서는 해경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논란이 벌어진 바 있는 해경 신분변화에 대한 입장은. 위와 같은 상황과 남북분단의 특수한 안보현실,취약한 해상치안 여건을 감안한다면 강력한 집행력을 갖는 경찰신분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해경이 당면한 현안은. 무엇보다 경비정 등 장비보강이 시급하다.특별회계 등 국가적 차원의 예산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해양경찰학교를 신설,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다. ●최근 북한의 해상침투 기도가 빈발하고 있는데. 바다가 북한 간첩침투 최일선 현장화되고 있는 상황이다.해군 등과 통합방위체계를 확고히 구축,해상경비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
  • ’98 정부업무 심사 평가­정책평가 의미와 문제점

    ◎격려… 채찍… ‘학년말 성적표’ 첫 공개/2차 정부조직 개편후 개각 자료로 활용/업무·성격 다른기관 상대평가 형평 논란/검찰청 빠지고 지자체 평가부족 아쉬워 정책평가위원회가 22일 발표한 ‘98년도 정부업무 심사평가 결과’는 행정기관을 상대로 한 최초의 본격적이고 포괄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업무 정기평가를 통해 국정의 단·중·장기 추진현황을 점검하고 미흡한 정책을 보완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또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연말에 한해 동안 수행한 정책의 공과를 낱낱이 평가받게 됨에 따라 장관 등 기관장이 앞장서 행정행위 하나하나에 좀더 성의를 기울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이번 평가에서 지적된 사항을 조속히 개선·보완하고 내년도 업무계획에도 대책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지시했다. 말하자면 평가에 구속력을 부여한 것이다. 또 이번 평가 결과는 내년 2월 제2차 정부조직개편 이후에 단행될 개각의 주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평가결과에는 각 부(部),처(處),위원회와 청(廳)의 고객만족도 순위까지 포함돼 기관간의 공개적인 상대평가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역시 첫 시도였던 만큼 평가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우선 서로 업무영역과 성격이 다른 각 기관을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데 따르는 기술적 어려움을 들 수 있다.각 부처는 위원회가 지난 8월 상반기 중간평가 결과를 발표하자 “그건 그게 아니라…”는 식의 활발한 ‘해명성 로비’를 해왔다.일부 부처는 행정규제 완화가 주요 평가항목이 되자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규제 철폐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대기업 사업교환 등 규모가 크고 민감한 부분은 어쩔수 없겠지만 같은 보고서 내에서도 잘잘못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또 이번 평가가 37개 기관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17개 부를 위주로 한 것이다.이 때문에 올해 중요한 정책결정을 많이 한 기획예산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제외되는 아쉬움을 남겼다.권력기관인 검찰청도 수사기관이라는 이유로 평가에서 빠졌다.또 지방자치단체 등 국민과직접 만나는 기관에 대한 평가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번 평가가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평가가 됐다고는 자신있게 말할수 없을 것 같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올해의 평가를 토대로 내년부터 평가방법을 한단계 발전시켜 ‘국정종합평가’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평가 대상을 전 중앙행정기관으로 확대하고 광역자치단체에 대한 평가도 실시할 계획이다.또 기관간의 비교평가가 가능하도록 평가를 계량화하는 방안도 연구해나가기로 했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각 기관의 조직·인사·예산·정보 등 경영평가적 요소를 더욱 확대하고 책임경영 행정기관,정부 투자·출연기관에 대해서도 자체평가 지침을 주는 등 지원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아울러 평가결과에 따라 예산을 차등지원하는 등 상벌을 분명히 하는 방법도 검토중이다. ◎잘된 정책­미흡한 정책/잇단 사고 기빠진 국방부 “엎드려 뻗쳐”/현대자 등 불법파업 경찰력 투입 조기해결/일 문화개방 적절 대응… 피해 최소화/공기업 민영화·출연기관 통폐합 기대 못미쳐 정부는지난 6월23일 국무회의에서 새정부 임기 중의 100대 국정과 제와 910개 실천과제를 확정한 바 있다.이 가운데 올해 수행이 완료된 과제는 356개. 평가위는 그중에서 우선 공공부문의 개혁이 국민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부처별로 자체 추진토록 한 교원,경찰,해양경찰,검사,공안직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 성과가 미흡하다는 것이다.또 공기업 민영화,출연기관 통·폐합 등 구조조정도 지연되고 있고 공직사회의 경영혁신과 부패척결 노력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동해안 무장간첩 남파 및 강화도 간첩선 출현과 관련한 군의 느슨한 경계 태세와 각종 군기사고는 국방부의 미흡사례로 지적됐다.태풍 예니호 발생으로 인한 집중호우 피해를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경보시스템의 사전점검 노력을 소홀히 하고 응급복구 지원,구호품 지급 등 사후 대처를 신속·적절히 하지 못한 것은 행정자치부의 잘못이었다고 위원회는 지목했다. 반면 위원회는 법무부가 지난 7월 현대자동차,8월 만도기계,9월 금융노련의 불법파업을 공권력 투입으로 조기 해결한 것이 기업구조조정과 산업평화정착에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화관광부는 일본문화 개방에 대비해 관련 단체 및 전문가 의견을 수렴, 대처 방안을 마련해 우리 문화사업의 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평가위는 밝혔다.이밖에 한·미,한·일,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미뤄온 한·일 어업협정,한·중 어업협정,한·미 항공협정,한·미 자동차협정,한·미 범죄인 인도협정을 일괄적으로 타결한 공로로 외교통상부와 법무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가 공동으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부처별 고객만족도 분석/햇볕정책·경제난 극복에 높은 점수/금강산관광 덕분 통일부 대통령표창 받아/민원 원스톱처리 병무청 ‘비리廳’ 오명 씻어/지방행정 취약 행정자치부 꼴찌 불명예 정책평가위원회가 22일 발표한 각 부처의 고객만족도 조사결과는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 및 경제난 극복 관련 부처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나타내고 있다.반면에 개혁의 속도가 더딘 사회 부처가 낮은 평가를 받았다. 조사는 민원인 가운데 3,340명을 면접조사해 행정의 접근성,편리성,신속성,정확성,대응성 등 7개 분야 33개 항목을 평가한 것이다. ▷부·처·위원회◁ 민원행정 최우수 부처로 선정돼 대통령으로 부터 기관표창을 받은 통일부는 의기양양하고 있다.통일부는 금강산관광 등 남북 교류사업,이산가족 재회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외교통상부도 4위를 차지해 대북정책 부서가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제부처는 해양수산부 3위,산업자원부 5위,재정경제부 6위,공정거래위 8위 등 중상위권을 차지했다.어쨌든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생분위기로 돌린 데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부처 가운데 최하위권은 행정자치부와 노동부 법제처 법무부 교육부 등 대부분 사회 관련 부처. 행자부가 꼴찌를 기록한 것은 취약한 지방행정과 지방자치단체의 중·하위 공직자들이 점수를 떨어뜨렸기 때문인 것으로 관계자들은 평가했다. ▷청(廳)◁ 병역비리 등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병무청이 민원인 편익시설 확충,원스톱 민원처리시스템 구축 등의 노력으로 청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병무청은 민원인을 친절하게 맞는 교육을 반복실시하고 있으며,경제난을 감안해 조기입영 등 입영대상자 입장에서 추진한 정책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李世中 정책평가위원장 문답/“공공부문 개혁 미흡” 李世中 정책평가위원장은 22일 ‘98 정부업무 심사평가 결과’ 보고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평가 과정을 결산했다. ●올해 정부업무 수행을 총평하면. 총론적으로 보면 만족할만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다.예를 들면,정부가 대기업간 사업교환을 종용한 것은 옳다.그러나 그에 따른 해고 등 고용조정,금융기관의 부채 처리 등 후속대책이 없었다. ●평가의 의미는. 민간에 의한 본격적인 정부업무 평가는 처음이다.과거에는 정부 내부에서만 평가를 주고 받았다.이번에는 민간인들이 참여해 본대로 평가했다.잘못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알렸다고 자부한다. ●가장 미흡한 정책은. 각 부처 업무가 달라 획일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공공부문 개혁에서 일반국민 느끼는 수준에 못미쳤다.금융구조조정이나 5대 그룹 구조조정도 새정부출범후 10개월이 지나도록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 ●부패 척결은. 하위직 공무원의 부정부패 사례가 빈발해 효과적인 대처가 필요하다.일반 국민은 하위직 공직자와 접촉하는데 그들의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 ●각 부처의 고객만족도와 정책능력이 일치하나. 이번에는 민원 행정서비스에 대한 고객만족도만 발표했다.사실 정책에 대한 만족도 지수도 측정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각 부처의 업무 내용과 성격이 달라 계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내년에는 이런것을 어떻게 어떤 기법으로 계량화할까 연구하고 있다. ●가장 훌륭하게 추진된 정책은. 경제위기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국가신용도를 다시 올리고 외환위기도 벗어났다.또 국내 실물경제에도 회복 요소를 제공했다.또 대북관계가 과거 어느 정권보다 활성화되고 있다.
  • 민족일보 조용수(金三雄 칼럼)

    기원전 399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새로운 다이모니온을 끌어들여 청년들을 부패 타락케 한 혐의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독배를 들기에 앞서 최후진술에서 “클리톤이여,아스크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마리 빚진 것을 갚아다오”라는 유언을 남긴채 권력의 제물로 사라졌다. 2,000여년이 지난후 한 청년이 비슷한 유언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민족을 위해서 할 일을 못하고 가는게 억울하다. 정규조(친구이며 민족일보상무) 동지에게 돈을 꾸어다 신문 만드는데 썼는데,갚아주지 못하고 가게돼 미안하다”는,민족일보 조용수사장의 유언이 그것이다. 1961년 12월21일 오후 서대문형무소 사형집행장에서 조용수는 32세의 짧은 생애를 접으면서 민족을 위해서 할 일을 못하고 가는 ‘억울함’과 친구에게 돈을 꾸고 갚지 못한 ‘미안함’을 유언으로 남겼다. 건국 이래 수 많은 언론인이 정치적 수난을 겪었지만 순수한 언론활동을 이유로 극형을 당한 사람은 조용수 사장이 처음이다. ○박정권의 이념적 희생양 친일언론인 출신으로 해방후 평화일보·국제신문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1949년 1월 반민특위에서 재판을 받고 석방되어 동양통신 편집국장을 지낸 정국은은 재일 조총련계의 국제공산당원이었다는 죄목으로 54년 2월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리고 월간 ‘청맥’과 관련한 김질락의 경우 간첩혐의로 박정희정권에 의해 72년 7월 처형되었다. 정국은과 김질락의 처형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간첩이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조용수 사장의 경우는 크게 다르다. 친일과 공산주의 경력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사상적 콤플렉스에서 ‘민족일보’를 희생양으로 삼고 마침내 유망한 젊은 언론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조사장은 61년 2월 4월혁명 공간에서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고,부정부패를 고발하며,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고,양단된 조국의 비원을 호소한다는 사시 아래 민족일보를 창간하여 진보세력을 대변하다가 5·16 쿠데타로 구속되어 이른바 ‘혁명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확인절차로 형이 집행되었다. 군사정부는 국제펜클럽과 국제신문인협회 등의 항의와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한 젊은 언론인을 처형하는 잔인성을 보였다. 민족일보의 자금이 조총련에서 나왔다는 혐의와 북한정권이 주장하는 평화통일론을 보도·선동하여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조총련계 자금유입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으며,평화통일론이 극형의 죄목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당시 검찰과 재판부가 유일한 ‘물증’으로 내세운 이영근씨는 민단계통의 인물이었으며,노태우정부는 1990년 그가 일본에서 사망하자 국가에 기여한 공적을 이유로 국민훈장을 추서하여 간첩이 아님이 입증됐다. 또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많은 인사들이 역대 정권의 요직에서 활동하고 더러는 정부가 훈장을 줌으로써 이 사건은 이미 정치적으로 사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조사장의 37주기에 즈음하여 지난 20일 낮 남한산성에 있는 묘소에서 추도식과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 발족식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그동안 검찰이 자료공개를 거부해온 민족일보 재판관련 자료를 찾아 진상을 밝히고,국회에서 특별법(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이 제정되면 재심을 청구하며,기념사업을 통해 평화통일의 유지를 잇는 것으로 뜻이 모아졌다. 조용수 사장을 죽음으로 몰아간 당시 검찰,재판관 등 생존자들은 증언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언론계도 건국 이래 최초의 필화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한 언론지도자의 억울함을 밝히고 신원(伸寃)하는데 뜻을 모았으면 한다.
  • 千容宅 국방 해임건의안 처리 이모저모

    ◎절묘한 찬·반 동수… 이변은 없었다/긴장감속 표단속 총력… 여권서 2∼4票 이탈/여·야 “결과에 만족”… 千 장관 “새출발 하겠다”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千容宅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이 표결처리되기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러나 부결된 결과에는 여야 모두 불만이 없었다. 여야는 표결에 앞서 해임건의안 처리를 앞두고 간부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결속을 다졌다.千장관은 표결이 끝난 뒤 여당 지도부와 국회의장을 방문,감사의 뜻을 표하고 “심기일전해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千장관의 해임 건의안 표결은 향후 정국 파장에 대한 여야의 우려와 기대감을 반영하듯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朴浚圭 국회의장의 사회로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된 ‘千장관 해임 건의안’표결에는 272명이 투표를 했다.결과는 찬성 135표,반대 135표,기권 1,무효 1표로 부결됐다.가결에 필요한 재적과반수 150표에는 15표가 모자랐다.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과였다. 한나라당은 소속의원 131명이 투표에 참석,2∼4명의 여권의 이탈표를 끌어모았다고 결과에 만족감을 나타냈다.반면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소수의 이탈표가 있었지만 불만이 없다고 밝혔다.의미를 부여할 숫자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千장관은 해임건의안이 부결되자 “엄한 질책으로 알고 무거운 마음으로 새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의원회관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千장관은 본회의가 끝난 뒤 국민회의 원내총무실에 들러 “반성하는 의미에서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韓和甲 총무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어 자민련 朴泰俊 총재실를 찾아 “국민의 준엄한 질책으로 생각하고 군기를 세우고 새출발을 하겠다”고 인사한 뒤 朴의장을 찾았다.千장관은 朴의장에게 “비장한 각오로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거듭 다짐.이에 朴의장은 “뜻밖의 일을 당해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격려했다. 千장관은 표결에 앞서 자민련 당사를 찾아 朴총재와 밀담을 나눠 눈길을 끌었다. ●국민회의는 표결에 앞서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부총재단회의를 연데 이어 오찬을 겸한 의원총회를 열고 막판 표 점검을 했다.趙대행은 “장관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가결되는 것 아니냐”면서 결과를 낙관했다.자민련도 예정에 없던 오찬을 겸한 의총을 갖고 부결키로 당론을 모았다.朴泰俊 총재는 소속 의원들에게 “어려운 가운데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이어 金龍煥 부총재도 “내년에 중요한 정치일정이 있는 만큼 오해가 없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통해 내부 이탈표 단속에 주력했다. 朴熺太 총무는 지난 8월 국회의장 선거 당시 당내 반란표를 의식한 듯 “고정간첩은 철새가 되어 날아갔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표결 직후 李會昌 총재는 총무단에게 표결 결과를 보고받고 “당이 단합해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며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받아들여 국방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민족일보 필화사건’/진상규명委 결성식

    5·16 군사정권에 의해 자행된 ‘민족일보’ 필화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추진위원회 결성식’이 20일 낮 12시 남한산성에 있는 趙鏞壽 전 민족일보 사장 묘소에서 열렸다. 추진위원장인 沈재택 전 월간 ‘말’지 사장은 “민족일보를 폐간하고 趙사장을 사형한 것은 4·19 혁명정신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중대한 범죄행위”라면서 趙사장의 죽음과 민족일보 폐간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趙사장은 61년 2월 혁신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민족일보를 창간한 뒤 4·19혁명 계승과 평화통일문제를 집중 보도하다 5·16 군사정권에 의해 간첩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준비위원장에는 金자동 민족화합운동연합 상임공동의장,부위원장에는 全무배·沈재택씨,위원에는 金三雄 대한매일신보 주필,姜信玉 변호사 등이 선임됐다.
  • 간첩선 ‘태풍’에도 금강호 ‘순풍’

    ◎장전항 정박중 CNN방송 통해 소식 알아/북한 소형경비정 배회에 관광객 다소 긴장/출입국관리소 직원 등 태도 변화없어 안심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북한 반잠수정 격침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은 아무런 차질없이 진행됐다. 장전항에 정박중인 금강호 선내에 CNN방송 등을 통해 이 사실이 전해진 것은 18일 아침.전날과는 달리 북한군 소형경비정 4∼5척이 금강호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 목격되면서 관광객들은 다소 동요했다.그러나 정작 북한 출입국사무소 직원들과 금강산 환경감시원들의 표정과 말투에 전혀 변화가 없음이 확인되자 관광객들의 긴장은 이내 풀어졌다.금강산 진입도로 곳곳에 배치된 북한군들도 지난달과는 달리 전혀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북한주민들의 고달픈 삶의 흔적은 관광객들의 눈에 그대로 노출됐다.17일 오후 4시 출입국 사무소 인근 방파제에서는 북한군 경비병 한명이 3번이나 연이어 쓰러진 끝에 결국 기절하는 광경이 목격됐다.쓰러진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북한군 3명이 달려나와 바닷물을 끼얹는 등 응급처치를 한 뒤에야 이 경비병은 깨어났다. 금강산 관광 한달을 맞아 문제점들도 차츰 드러나고 있다.사전 의무교육이 맨 처음 지적된다.이 교육은 서울에서 매회 2시간씩 평일 오전 10시,오후 2시부터 진행되고 있어 직장인들은 조퇴가 불가피한 상황.이 때문에 시간대를 조정하는 한편 내용도 대북정책 홍보를 지양하고 꼭 필요한 주의사항 위주로 축소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 北 반잠수정 인양 늦어질듯

    ◎수색 사흘째… 수심깊고 침몰위치 파악안돼 합동참모본부는 20일 해군 함정 30척과 P­3C 대잠초계기,링스 대잠헬기 등을 남해 및 동·서해상에 출동시켜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의 공작모선(母船)에 대한 수색작전을 계속했다.합참은 해군 함정 5척 등을 반잠수정이 침몰한 해역에 보내 사흘째 선체와 승조원 유해 등에 대한 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깊은 수심 등으로 반잠수정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중앙합신조는 “반잠수정은 북한 노동당 작전부 남포해상연락소 소속이며 간첩침투 또는 고정간첩 대동복귀를 위해 침투를 시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또 “야간추적장비(TOD)의 녹화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반잠수정은 18일 0시23분에서 오전 1시22분까지 59분간 포착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내륙침투나 고정간첩의 대동복귀는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 ‘千 국방 해임안 표결’ 여야 자체 결속 무게

    ◎국민:부결 자신감속 자민련과의 공조에 촉각/자민:군 기강해이 불만 의원들 표결 불참 유도/한나라:와병의원 이외 총동원령·여 이탈표 기대 여야는 千容宅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 표결처리를 하루 앞둔 20일 소속 의원 총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표점검을 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변이 없는 한 해임건의안이 부결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양당 공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반면 한나라당은 표결처리를 관철시킨데 만족하지 않고,결과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회의는=千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산술적으로 ‘재적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한나라당 의원수는 137명에 불과하고,여당이 158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결이냐’‘부결이냐’보다는 여당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본회의에 앞서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소속 의원 전원이 오찬 겸 의원총회를 갖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오히려 자민련이 부담감을더 느끼고 있다.한나라당이 자민련 소속 의원들의 이탈표에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이에 따라 이탈표를 막기 위해 나이키 미사일 오발사건 등 일련의 국방사건에 대해 ‘책임론’을 제기한 소속 의원들의 표결 불참을 유도하고 있다.여수 앞바다에 나타난 북한 간첩선의 격침은 소속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힘이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은=해임 건의안의 표결 처리를 관철시킨 데 그치지 않고 두 여당간 틈새 벌리기와 당내 결속이라는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노리고 있다. 소속 의원 가운데 와병중인 崔炯佑·鄭在文·諸廷坵 의원,구속중인 李信行 의원을 뺀 나머지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외유중인 朴柱千·李允盛·洪準杓 의원 등은 일정을 조정,표결에 참여토록 했다.지도부는 현실적으로 해임안 가결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표차를 최대한 좁혀 공동 여당의 정국 운영에 부담을 안긴다는 계산이다.특히 내각제 논란으로 국민회의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자민련내 이탈표를 주시하고 있다.여권내 일부 보수성향 의원의 ‘소신’에도 기대를 건다. 그러나 ‘함정’이 없지 않다.당내 비주류의 ‘숨은’ 반란표가 쏟아져 나온다면 해임 건의안이 뼈아픈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 北 반잠수정 南海 침투­발견에서 격침까지

    ◎육·해·공 입체작전 7시간35분/18일 새벽 함포3발에 “상황 끝”/17일밤 해안초병 여수앞바다서 괴선박 첫 포착/경비정·초계함·조명기 총출도에 2차례 교전끝 격침 긴박했던 7시간35분동안의 추격전.육·해·공군은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공동 입체작전을 펼치며 북한의 반잠수정을 격침시켰다. ▷발견◁ 17일 밤(음력 10월 29일) 11시15분쯤. 육군 31사단 95연대 1대대 여수 임포소초 초병 金泰完 이병(21)은 그믐밤의 칠흙같은 어둠을 실감했다. 해안경계 강화태세가 내려진지 7일째. 야간감시장비(TOD)를 확인하는 순간 두눈이 번쩍 떠졌다. 전방 2㎞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이 1.5m의 파도를 넘나들며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선박에 안테나와 해치 2개가 설치돼 있고 4∼5명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도 확인했다. ‘간첩선’임을 직감한 金이병은 인터콤을 통해 소초 상황실 林承煥 병장(22)에게 괴선박의 출현을 보고했다. 15분후 경비정 2척이 출동했으나 반잠수정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반잠수정이 다시 임포소초 TOD에 포착된 것은 18일 오전 1시40분쯤. 반잠수정은 발각됐다는 낌새를 채고 임포소초 전방 8㎞ 해상에서 공해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추적◁ 군은 레이더 추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오전 2시10분쯤 조업중인 어선이 정지토록 하는 선박경보를 발령했고 경비정 2척이 시속 40∼50노트(70∼80㎞/h)의 고속으로 반잠수정을 뒤쫓았다. 오전 3시7분,합참본부는 위기조치반을 소집했다. 3시18분 해군은 진해기지에 정박중이던 800t급 초계함 광명함(함장 孫민 중령)을 현장으로 출동시켰고 공군도 김해비행장에 있던 CN­235 조명기 3대를 급파했다. 함정 8대로 도주로도 차단했다. 오전 4시38분쯤 반잠수정과 첫 조우한 광명함은 경고 사격을 하며 정지할 것을 명령했다. 반잠수정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공해쪽으로 달아났다. 우리 해상을 침투한 괴선박을 좆던‘날치’작전이 괴선박으로부터 응사가 있은 이때부터 ‘망둥이’작전으로 격상됐다. 새벽 4시45분쯤 CN­235 조명기 3대가 도주하던 반잠수정을 발견,조명탄 175발을 투하,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또 기총과 2.7인치 로켓으로 무장한 F­5전투기 1대와 S­2E 초계기가 상공을 맴돌았다. 오전 5시35분쯤 거제도 남방 100㎞ 해상에 도달한 반잠수정은 35노트에서 8노트로 속도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격침◁ 5시48분쯤 반잠수정에서 갑자기 기관총이 발사됐고 나포하려고 접근하던 고속정 좌현에 ‘퍽’하는 파열음과 함께 7.62㎜ 총탄이 박혔다. 투항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남원함(함장 李순항 중령)은 오전 5시48분 76㎜,40㎜,20㎜ 함포로 집중사격을 가했고 10분 뒤인 5시58분 함포 3발이 반잠수정에 명중했다. 반잠수정이 가라앉으면서도 5노트(8㎞)의 속도로 움직이자 수중 도주에 대비,폭뢰 5발을 투하했다. 오전 6시50분쯤 반잠수정은 마침내 수면 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격침 시간대별 조치 ●17일 오후 11시15분=육군 00사단 여수 임포소초 초병,미상선박 접근 탐지 ●〃 〃 11시30분=해경정 육경정 1척씩 출동 수색 ●18일 오전 1시40분=임포소초 초병,도주중인 미상선박 2차 포착 ●〃 〃 2시10분=선박경보 발령,해경정 육경정 추적 ●〃 〃 2시46분=육군 레이더 미상선박 3차 포착 ●〃 〃 3시7분=합참 상황접수 ●〃 〃 3시20분=해군 광명함 출동 ●〃 〃 3시35분=공군 CN­235 조명기 출동 ●〃 〃 4시38분=해군 광명함 미상선박에 경고사격 및 응사 ●〃 〃 4시39분=북한 반잠수정 확인,F­5F 전폭기 출동 ●〃 〃 5시1분=P­3C 대잠 초계기 출동 ●〃 〃 5시10분=해군함정 8척 외해 차단 ●〃 〃 5시48분=북한 반잠수정 아군 고속정에 응사,도주 ●〃 〃 5시58분=해군 남원함 함포 사격,3발 명중 ●〃 〃 6시20분=추가사격 및 폭뢰 투하 ●〃 〃 6시25분=반잠수정 침몰 시작 ●〃 〃 6시50분=반잠수정 완전 침몰 ●〃 〃 8시7분=잠수복 차림의 북한군 시신 1구 인양
  • 동·서해 6곳 해상침투기지/北의 해상침투 전력 및 전략

    ◎특수요원 12만명… 60년대이후 2,800여차례 도발 북한은 동해와 서해에 모두 6곳의 해상 침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노동당 작전부 313연락소가 동해의 원산과 청진,서해의 남포와 해주기지 등 4곳을,인민무력부 정찰국이 동해의 퇴조와 서해의 비파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로미오급·상어급·유고급 등 잠수함정 92척을 비롯,60∼70t규모의 공작선박 80∼90척,70년대 이후 단골 침투선인 반잠수정,지난달 서해안 침투 때 사용했던 특수선 등을 배치,침투 도발에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침투 도발에는 노동당 소속 공작원 1,500명 및 인민무력부 특수전부대 요원 2만여명 등이 투입되고 있다. 북한군의 전시 대비 특수전 요원은 모두 12만명에 이른다. 노동당 작전부는 통상 2∼3개월씩 장기 체류하면서 고정간첩과 접선하고 지하망을 새로 구축하거나 기존 지하망을 확인·확장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북한의 경제난에 따라 고정 간첩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것도 최근 밝혀진 이들의 주요 임무의 하나다. 반면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1∼2일간 단기 체류하면서 침투지역의 군사표적을 정찰,첩보를 수집하고 무장공비 남파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북한은 분단 이후 60년대까지 2,187건,70년대 345건,80년대 205건,90년대 72건 등 모두 2,800여차례나 육상 및 해상을 통해 침투 도발했다. 북한이 집중 침투하는 시기는 달빛이 없는 음력 그믐을 전후한 심야 시간대. 특히 지난번 속초 침투 때는 원산 등 동해기지에서 출발한 소형 잠수정이 해안에서 5∼7마일(8∼10㎞) 밖에 떨어지지 않는 연안 해로를 따라 바다 밑을 잠행,고성에서 강릉사이 해저에 안착한 뒤 취약시간인 심야시간대에 공작조를 침투시켰다.
  • DJP 공조(정권교체 1주년:下)

    ◎‘역할분담의 미학’ 공동정권 순항/김 대통령 경제·외교­김 총리 규제철폐 심혈/‘예우와 배려’속 국정운영… 환란 성공적 극복 金大中 대통령과 金鍾泌 국무총리의 관계는 어떤가.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공동정권의 운영자라는 협조관계,대통령과 총리라는 상하관계,국민회의 총재와 자민련 명예총재라는 경쟁(?)관계….이처럼 복합적인 것이 새 정부에서의 두사람 관계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양김(兩金)은 다른 관계를 일단 접어두고 대통령과 총리로서의 관계에 충실해왔다. 金총리는 국가원수인 金대통령을 깍듯이 ‘모시는’ 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金총리는 보좌진과의 회의에서 “대통령께 윤허(允許)를 받아보겠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쓴다.매주 화요일 청와대 주례회동 전에는 보고할 사안 하나하나의 예산확보 여부까지 챙긴다.“대통령이 나에게 그런 것까지 묻지는 않지만,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金총리는 자료를 준비하는 실무진에게 말한다. 金총리에 대한 金대통령의 예우와 배려도 곳곳에서 나타난다.金대통령은 지난달 28일 金총리가 한·일 각료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 전용기를 내주기도 했고,최근 千容宅 국방부 장관의 거취문제를 결정할 때도 金총리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한다. 金대통령은 경제회생과 대북정책 등 핵심현안을 직접 챙겼고,金총리는 행정규제 철폐 등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작업을 다듬어왔다. 이런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분열과 반목으로 점철된 우리 헌정사에서 초유의 공동정권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몰락위기의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데는 양김의 역할분담을 통한 국정운영도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양김 관계를 흔들어보려는 시도도 없지 않았다.양김의 뜻과 는 관계없이 개인적,집단적,정략적 이익을 노린 갈등 부풀리기 현상도 나타났다.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도 내각제 추진 시기 등을 놓고 이따금씩 신경전이 있었지만,두 사람의 신뢰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金총리가 崔章集 정책기획위원장의 6·25 전쟁 시각을 비판했을 때도 청와대측에서는 “그만큼 현 정부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반증”이라고 받아넘겼다. 이제 99년을 맞으며 金대통령과 金총리의 관계에 다시 한번 시선이 쏠린다.대통령후보 단일화 당시 약속한 내각제 개헌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내각제 문제는 양김의 신뢰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변수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金대통령과 金총리가 적어도 국정을 담보로 정치게임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양김 모두 이미 내각제의 형태와 추진 시기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면서 “설령 그 생각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정치 9단인 두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충분히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지난 5일 청구동 자택을 떠나 삼청동 공관으로 이사했다.청와대 바로 옆이다.이제 金대통령과 金총리의 관계에 ‘이웃사촌’이 추가됐다.주변 시선의 부담을 던 상태에서 金대통령이 金총리를 청와대로 부를 수도 있고,金총리가 金대통령을 따로 ‘집들이’에 초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어쩌면 그런 만남이 벌써 시작됐을지도 모른다.◎정책 어떻게 바꿨나/‘실사구시’에 바탕둔 내외치/경제개혁­대북 포용 등 실용주의 정착단계로 정권교체는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도 새 바람을 몰고왔다.‘대북 포용정책’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경제정책’, 세일즈 외교는 새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정책의 변화는 자연스레 집회및 시위 문화의 변화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 정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은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의 화두다.안팎의 도전도 거셌다. 소떼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올라간 뒤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이,금강산 유람선이 뜨는 시점에 서해안 간첩선 침투사건이 발생했다.정권교체 1주년을 맞은 18일에는 남해안에 침투한 북한의 반잠수정이 격침됐다.야당은 대북포용정책의 수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확고한 국가안보과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대북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그 결과 경협이 잇따르고 경제인·종교인들의 방북행렬도 줄을 이었다.11월말까지 2,645명이 북한을 방문,과거 10년동안의 2,408명보다 많았다.지난 한달동안 6,000여명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금강산 관광은 대북포용정책의 대표적인 과실로 꼽힌다.하지만 북한의 대남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실사구시에 입각한 경제정책은 국내적으로는 금융·기업 구조조정 추진, 대외적으로는 신인도 회복과 환란 극복,경제회생 기반조성으로 나타났다. 세일즈 외교는 金大中 대통령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했다.金대통령은 취임후 미국,일본 등 기존 우방국가는 물론 중국,동남아,유럽 여러 나라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등 전방위 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했다.양보할 것은 양보하고,받을 것은 받으면서도 밑지지 않는 실용주의 외교를 펼친 셈이다.이는 최근의 베트남 방문때도 계속됐다. 사회분야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그 중 하나가 건전한 집회·시위문화의 정착이다.金대통령도 이와관련,정권교체 1주년 기념행사에서 “수십년 동안 최루탄·돌멩이·쇠파이프는 한국의 명물이었으나 국민의 정부 반년만인 지난 5월 이후 뿌리뽑혔다”고 말했다.이어 “가장 큰성공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자랑했다. 인권 존중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인권법이 제정 단계에 있으며 현 정부는 고문과 도청을 영원히 없어져야 할 사회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노조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도 있었다.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교원노조의 허용,노조의 정치자금 모금 및 기부행위 허용 등의 변화가 있었다.공직사회도 예외는 아니다.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부패방지법 제정이 추진중이다.이와함께 경쟁체제 도입등 공직사회 전반에 새바람이 일고 있다.
  • 北 강경파 ‘햇볕정책’에 불안감/北,왜 자꾸 침투하나

    ◎체제붕괴 우려… 한반도 긴장 조성 지난 6월23일 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유람선 10월 운항 합의’ 등 대형 남북합의를 이끌어낼 때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으로 침투하다 우리의 민간 어망에 걸렸다. 음력 5월28일이었다. 이어 지난 11월20일 金大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협의체(APEC)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북한의 특수침투선이 강화도 인근 해안에 침투하려다 해군에 적발되자 북으로 달아났다. 음력 10월2일이었다. 그리고 金대통령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을 방문하고 돌아온 17일 밤,북한 반잠수정이 전남 여수 앞바다에 침투했다가 격침됐다. 음력 10월 29일이다. 일련의 침투 사건에서는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남북간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순간 북한의 침투도발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둘째는 다분히 우리의 외교적 성과를 시기하는 인상이 짙은 도발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전술적인 사항으로 무월광(無月光)의 시기인 음력 그믐을 전후해 침투도발이자행됐다는 점이다. 이같은 공통점은 북한의 침투 도발이 왜 거듭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먼저 북한내 군부 등 강경파들은 우리의 햇볕정책에 따른 남북한 교류협력의 확대가 자칫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군사도발로 긴장국면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이중적 대남전략이 결코 포기되지 않았음을 천명함으로써 남한당국의 햇볕정책을 좌절시키고자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내 강경파들은 특히 평북 금창리 일대가 핵시설로 의심을 받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오히려 간첩선을 침투시켜 한반도의 안보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게 미국을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는데 보다 효과적이라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외국순방으로 전군에 경계강화령이 내려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침투한 것은 햇볕정책으로 대북 안보태세가 느슨해졌을 것으로 판단,남한사회를 교란시킬 목적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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