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간첩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국수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잔해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경총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거위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49
  • 토종·수입영화 주말 격돌…간첩 리철진-매트릭스

    국내영화와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주말을 맞아 한판 승부를 벌인다.‘간첩 리철진’과 ‘매트릭스’. 간첩 리철진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뽐낸 장진감독(29)의 두번째 작품.그는 순박하고 진지한,그러면서도 웃기는 간첩상을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배꼽잡게 만든다.택시강도를 만나 공작금과 권총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긴 ‘한심한’ 간첩이라니….간첩 리철진은 이후6박7일간 서울에 머물며 남파임무인 ‘수퍼돼지 유전자 샘플의 확보’에 나선다. 묵직한 표정의 유오성이 순박한 간첩으로 나오며 택시강도 역을 맡은 정규수 등 연극배우 4명이 영화 곳곳에서 웃음을 준다.장감독은 ‘택시드리벌’등 희곡 6편과 ‘엘리베이터’등 시나리오 2편을 쓰고 ‘개같은 날의 오후’ 등 영화 4편을 각색한 팔방미인.스토리를 어렵지않고 가볍게 풀어나가는재주꾼이다. 매트릭스 예측불가능한 스토리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야심작.SF와 홍콩 느와르,정통 무협영화를 기막힌 상상력으로 조합시켰다.‘터미네이터’‘맨 인 블랙’ ‘블레이드 러너’ 등을 뒤섞은 듯한 스토리는 미래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초고속촬영 기법이나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액션에 새로운 맛을 불어넣고 있다.대부분의 영화에서 빠르게 처리하곤 하는 장면을 이 영화는 오히려천천히,거의 정지화면에 가깝게 처리함으로써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지막 장면은 미국 할리우드의 액션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편 데이콤은 매트릭스의 포스터를 담은 전화카드 ‘데이콤 시네마카드’를 시판중이다. 박재범기자
  • 김 대통령 르 몽드 인터뷰 내용/포용정책 현재론 최선의 선택

    프랑스의 최고 권위지 르 몽드는 6일자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다음과 같은 회견내용을 게재했다.회견은 지난 4월9일 이뤄졌다. 유고 사태를 보면서 한반도의 안보에 어떤 교훈을 얻는가. 유고사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개입이 불가피해졌다.나토가 유엔의 결의없이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은 유감이지만 상당한 변화이며 이는 국제기구내에서 논의돼야 할 것이다.한국은 모든 도발을 억제하고 도발이 일어나면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태세를 갖춰야 한다.그러나 무력사용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전쟁 위협성을 우려하는데. 위협성은 있다.그러나 전력을 다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결심이다. 얻는 것도 없이 경계를 완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포용정책은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간첩선 침투나 미사일 생산 등 아직 부정적인 조짐이 있지만 4자회담 등 고무적인 변화도많다. 김정일(金正日)과 만난다면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평화를 보장하라는 것이다.인도적 측면에서는 남북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왔나. 금융위기의 고비는 넘겼다.이런 리듬이 계속된다면 금년말에 다시 튼튼한산업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시위 사태가 일어나는데. 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노동자는 법을 지키고 폭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충동적인 파업노동자들이 폭력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어떤 나라에서도 이를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경제원칙은 소외계층을 낳는데,보호방안이 있는가. 자유시장경제는 사회정의를 동반해야 한다.실업보험·의료보험 등 실업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정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도운기자
  • 崔仁基경찰개혁위원장 일문일답-”경찰 수사권 독립…”

    “내년 7월1일부터 자치경찰제를 시행한다는 목표아래 일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15만 경찰의 숙원인 자치경찰제 도입의 산실인 경찰개혁위원회 최인기(崔仁基) 위원장은 4일 그동안의 강행군에 따른 피로도 잊은 채 자치경찰제 도입의 필요성 등을 하나하나 힘주어 설명해 나갔다. 다음은 최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가 제기됐다.어떤 취지인가. 수사권 독립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검찰총장도 만났다.수사권을 경찰에 줘야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 형벌권을 인권보호,사법 서비스 개선,범죄예방및 검거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해 보자는 취지다.지금까지 이에 대한 공개 토론이 없었다.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토론을 해 그 결과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수사권 독립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1차적 수사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대신 경찰의 인권침해 소지,법률 소양 부족이나 업무처리 미숙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대륙계 국가도 (경찰이 수사권을)다 갖고 있다.지휘를 받으면 자율과 창의성이 생기지 않는다.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면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자치경찰제의 형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인사·예산에 있어 완전한 자치인 미국식으로 자치경찰을 할 수는 없다.남북분단 상황에다 국토도 좁다.절충형을 택해야 한다.우리나라 지방자치는 분할지배구조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미국식으로 지방경찰이 시·도지사 밑으로 들어가면 큰 일 날 것이다. ●국가 공무원의 범위에 대해 경정 이상이라든지 총경 이상이라든지 말들이많은데. 경정 이상으로 결론났다.시·도에 근무하는 경감 이하는 지방직이 된다.물론 본청에 근무하는 직원은 경감 이하라도 국가직이다. ●국가 차원의 공조체제가 잘 될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완규정을 뒀다.지방청장은 국가비상사태나 대간첩 작전등 국가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나아가 경찰청장에게 특별조치권을 부여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한 일선 경찰의 반응은 어떤가. 경찰들은 좋아한다.일선 경찰관의 전화와 편지를 많이 받았다.인사제도의공정성과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에 대한 것들이었다.자치경찰은 경찰에 크게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사설] 자치경찰에 거는 기대

    지방자치시대의 숙원인 자치경찰제도가 내년중 도입된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같은 방침을 지난 1일 있은 전국지방의회의장단과의 오찬석상에서밝혔다.이어 경찰청은 자치경찰제시안(試案)을 확정 발표했으며 최종법안을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자치경찰제는 김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또한 그것이 자치시대 지역주민들의 숙원이라는 것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시안의 골격은 국가경찰제에서 완전히 독립하는 순수 미국식은 아니다.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역할과 기능을 나눠 갖고 유기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일본식 절충형이다.전국적 업무인 공안·대규모집회시위·대간첩작전·광역사건사고 등은 국가경찰 몫으로 돼 있다.방범·교통 일반수사는 자치경찰 업무다.우리는 국토가 좁아 지역주민의 하루 생활권역이 전국에 걸친다.따라서시안과 같은 절충형이 현실적이라 보여진다. 그렇다고 처음 도입되는 제도에 쟁론이 없을 수 없다.무엇보다 경찰의 지휘와 통제권을 누가 쥐느냐가 가장 민감한 쟁점이다.시안에서는 경찰위원회제도를 도입해합의제로 운영토록 하고 있다.그런데 경찰위원회 위원과 지방경찰청장 임면권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못내렸다.사실 이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며 어려운 문제다.합의제 운영은 어느 누구의 독점적 통제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가 함축돼 있다.특히 자치단체장의 직접적이며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경찰권 행사를 각별히 경계한 듯하다.분명히 어느 누가 과도하게 권한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하지만 중앙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 고수 논리가 반영돼서는 안된다.그 해법은 두말할 것 없이 자치수요(自治需要)에 충실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돼야 한다. 민감한 쟁점은 또 있다.경찰의 수사권 독립 여부다.경찰이 자치경찰제 도입을 계기로 해묵은 숙제를 다시 끄집어냈다.경찰이 이번에는 작심하고 벼르는 것 같다.논리에 빈틈이 없다.이를 반박하는 검찰도 한치의 양보가 없다.어떻든 이번에는 두 기관 사이의 우격다짐 같은 싸움은 아니어야 한다.공론에부쳐 공명하고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함을 강조한다.국민에게 밥그릇 싸움같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그랬다간 얻으려 하는 것은 얻지 못할 것이며 지키려 하는 것은 지키지 못할 것이다.경찰은 국민의 경찰,검찰은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어주기 바란다.자치경찰제 도입은 경찰사에 큰 획을 긋는 개혁적 사안이다.그에 맞게 경찰의 책임의식과 복무자세도 변혁돼야 한다.국민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민중의 지팡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그렇지 않은 개혁은 공허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 [제2공화국과 張勉](16)혁신계의 浮沈/4·19이전의 상황

    4월혁명후 새 세상이 열렸다고 믿은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가 혁신계다.이승만(李承晩)정권 12년 동안 철저히 탄압받은 혁신계 인사들은 ‘4월혁명이 완수해야 할 과업이야말로 혁신세력이 책임진 역사적 과업의 주요한 일부’라고 판단했다.그리고 4월혁명이 열어놓은 정치적 공간에 그들의 활동무대도포함된다고 확신했다. 이 무렵 혁신계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혁신계’로 규정된 제(諸)정치세력의 노선·뿌리가 다양한데다,사회적으로 공인받은 정당으로서 맥을이어온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조봉암(曺奉岩)이라는,카리스마와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인물을 잃은 점도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4월혁명 후 혁신정당 창당은 명망가들의 이합집산에 좌우됐다.첫 단계로 이들은 4월30일 부산에 모여 ‘한국혁신세력집결촉진회’를 구성한다. 이어 통합신당인 ‘사회대중당’을 결성키로 하고 5월17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갖춘다.민주혁신당의 서상일(徐相日)이 대표를 맡고 진보당계의 김달호(金達鎬) 윤길중(尹吉重)과 혁신계 원로인 장건상(張建相) 이동화(李東華) 정화암(鄭華岩) 등이 참여한다. 그러나 통합을 주장하던 혁신세력은 곧 핵분열을 한다.사회대중당이 창당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건상이 혁신동지총연맹을 만들어 갈라서는가 하면 전진한(錢鎭漢) 김철(金哲)의 한국사회당,고정훈(高貞勳)의 사회혁신당 등 군소 혁신계 정당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이같은 분열이 이념이나 정강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장건상 스스로 회고록에서 밝힌 것처럼 “혁신계가 통일되지 못하고 분산된 근본적인 원인은 이론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의 파벌에 의한 것”이었다. 4월혁명을 맞아 혁신계가 창당을 서두른 까닭은 그해 7월29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해 제도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그런데도혁신계는 통합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채 후보를 내는 바람에 후보자가 233개 선거구에서 156명에 달했다.혁신정당 후보가 2명 이상 출마해 서로 다툰선거구도 24곳에 이르렀다. 혁신정당에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점도 각 당이 나름대로 자신을 가진 요인이 됐다.예컨대 사회대중당은 창당준비 단계인데도 대구 5개 선거구모두에 ‘반(反)이승만독재 투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공천했다. 제헌의원을 지낸 혁신계의 대표주자 서상일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혁신계 원로인 이동화,대구매일신문사 주필 최석채(崔錫采),월간 ‘사상계’ 편집위원 출신인 양호민(梁好民),훗날 국회의장을 지내는 김수한(金守漢) 등이 그들이다.부산에서도 역시 독립운동가에 혁신계 원로인 장건상이 혁신동지총연맹 공천으로 출마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사회대중당 공천자 121명 중에서 서상일·윤길중(강원도 원성)·박권희(朴權熙,경남 밀양)·박환생(朴煥生,전북 남원) 등 4명이,한국사회당 공천자 18명 가운데 김성숙(金成淑,남제주)만이 원내에 진출했다.이 5명을 제외한 나머지 혁신계 후보는 전멸한다. 함께 치른 참의원 선거에도 58명이 나서 사회대중당의 이훈구(李勳求,충남)와 혁신동지회의 정상구(鄭相九,경남) 2명만 당선됐다. 혁신계는 이처럼 선거에서 참패한 까닭을 ▲유권자들이 아직도 금력·권력에 영향받는 상태였고(申相楚 주장) ▲혁신계를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반면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는 저서에서 “국민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독재적인 지배를 거부한 것이지 반공·보수주의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지도부 거의 전원이 원내 진출에 실패함에 따라 혁신계는 원외 세력으로 남아 장외투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그 와중에서 혁신계는 민주당의 신·구파 싸움과 다름없는 주도권다툼 끝에 갈라서게 된다. 먼저 혁신정당 통합을 목표로 창당을 준비하던 사회대중당은 김달호를 중심으로 한 진보당계만으로 축소 형성됐다.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방조직을 선점(先占)하는 데 성공한 진보당계는 사회대중당 창당을 진보당의 재건으로 여겼다. 이에 반발해 서상일·윤길중·이동화·정화암 등 비(非)진보당계는 김성숙·고정훈과 손잡고 통일사회당을 형성한다.사회대중당은 60년 11월24일,통일사회당은 61년 1월20일 정식 출범한다. 사회대중당과 통일사회당은 혁신정당의 두 기둥으로 떠오르지만 그 성격에는 차이가 있었다.사회대중당이 급진적인 반면 통일사회당은 온건한 서구의민주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사회대중당은 61년 들어 일선조직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民自統)’을 만든 뒤 통일과 한·미관계를 이슈로 대대적인 실력행사를 벌인다.‘민자통’의 통일론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며 북한과의 무조건적인 협력을 주장했다. 이에 견줘 통일사회당은 민자통의 경쟁세력인 ‘중립화통일연맹(中立統聯)’을 지지했다.중립통련은 남북한 전역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해 통일을 이루고,통일된 한국에는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장면(張勉)정부가 반공임시특례법과 데모규제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혁신계는 61년 3월2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대 악법 반대 궐기대회’를 연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시위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난동으로 변했고 횃불을 든 시위행렬이 중앙청에서 혜화동까지 서울시가를 누볐다. 횃불시위는 제2공화국 최후의 대규모 시위였다.장면 정부는 곧바로 김달호·고정훈 등 주요 혁신계인사들을 체포한다. 장면 정부하에서 혁신계는 국회 진출에 실패해 장외 세력으로 남게 된다.그들은 급진적인 학생들과 일부 소외계층의 지원을 받아 거리투쟁에 나서지만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5·16쿠데타를 맞아 다시 기나긴 잠에 빠져든다. - 4·19이전의 상황-曺奉岩 중심 진보당 두각 대한민국 출범후 국내 정치무대에서 ‘혁신계’는 항상 소수파 또는 이단이었다.남북에 분단정부가 각기 들어서 ‘6·25전쟁’까지 치른 뒤 이 땅에는‘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우익 정당 아니고는 발붙이기 힘든 것이현실이었다.따라서 이에 속하지 않는 사회주의자,민주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조합주의를 따르는 노동운동가 들을 구분짓지 않고 통틀어 혁신계라고 불렀다. 4월혁명 이전 혁신계를 대표한 지도자는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이다.조선공산당 창당멤버인 조봉암은 1946년 박헌영(朴憲永)을 비판한 서신 ‘존경하는 박헌영 동무에게’를 신문에 발표하고 공산당과 결별한다. 48년 제헌의회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되며 이승만(李承晩)정권에는초대 농림장관으로 참여한다.이어 2대 국회에서 부의장이 된 조봉암은 52년대통령선거에 진보적인 강령을 내걸고 출마해 79만표를 얻는다.비록 이승만의 523만표에는 크게 못미쳤지만 그로서는 정치적 입지를 굳힌 계기가 됐다. 55년 통합야당(민주당) 결성 움직임이 일자 조봉암은 참여를 강력하게 희망하지만 신익희(申翼熙) 장면(張勉) 등으로부터 거부당한다.이에 서상일(徐相日)계와 합쳐 혁신정당인 진보당 창당에 나선다.55년 12월22일의 창당준비위원회에는 조봉암·서상일 말고도 이동화(李東華) 박기출(朴己出) 윤길중(尹吉重) 등이 동참한다. 진보당은 창당에 앞선 56년 3월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부통령 후보에 박기출을 선출한다.이들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신익희·장면과 야당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이지만 두차례 만에 결렬된다.조봉암이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는 조건으로 ▲부통령 후보를 진보당에 양보하고 ▲집권시 조병옥(趙炳玉)김준연(金俊淵)을 중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진보당 강령 일부를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들이었다. 56년 3대 대통령선거는 신익희가 급서한 가운데 이승만과 조봉암의 싸움으로 진행됐다.결과는 이승만 504만표,조봉암 216만표로 나타났다.이후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에게 실재(實在)하는 위협이 된다. 한편 정·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서상일계가 진보당에서 이탈한다.노선상의차이보다는 대통령후보 선출 당시의 주도권싸움 탓이었다.서상일이 후보로추대받기를 원한 반면 조봉암은 투표로 뽑을 것을 주장했고 선출 결과 부통령후보로 지명된 서상일이 고사해 박기출이 대신 후보가 된 것이었다. 진보당은 56년 11월10일 창당대회를 열어 조봉암을 위원장으로,박기출 김달호(金達鎬)를 부위원장으로,윤길중을 간사장으로 각각 선출했다.정치강령으로 ▲책임있는 혁신정치 ▲수탈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을 내세웠고 특히 ‘공산독재를 배격한다’고 강조했다.서상일계도 57년 10월15일 민주혁신당을 창당해 독립한다.58년 5월의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그해 1월13일경찰은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 전원을 간첩죄 등의혐의로 검거했다. 아울러 자유당 정권은 2월25일 진보당을 등록취소한다. 조봉암은 1심에서 징역 5년을,2·3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북한 지령에 호응해 진보당을 결성하고 10여차례 자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는 판결이었다.대법원이 재심청구를 기각한 다음날인 59년 7월31일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진보당과 비슷한 정강정책을 내건 서상일계의 민주혁신당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진보당 사건’의 성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조봉암의 죽음으로 혁신계는 치명타를 입어 4월혁명까지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한다. 이용원기자
  • 與 “인권거론 자격있나” 野에 반격

    인권문제 거론 ‘자격론’을 둘러싸고 여권의 대야 공세가 거세다.시민 사회단체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이 정형근(鄭亨根)의원을 비정부기구(NGO) 대표자격으로 이신범(李信範)·김영선(金映宣)의원과 함께 17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55차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내겠다고 발표한게 발단이 됐다.한나라당 인권위는대표단을 통해 김대중(金大中)정부 아래에서의 인권탄압사례를 국제인권단체들에 공표하겠다는 자료를 냈다. 국민회의가 발끈했다.14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안기부 수사국장,차장출신의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을 집중 성토했다.정의원에 대한 ‘정계추방론’까지 제기했다. 국민회의는 전력과 자질,윤리적 측면 등 어떤 면에서도 정의원이 국제인권기구에서 현정부의 인권상황을 비판하겠다는 것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시각이다. 한 간부는 “국제인권기구에서 규탄받아야 할 인물은 바로 정의원 자신”이라며 정의원을 비판했다.또다른 참석자는 “국제기구에서 정의원이 연설을한다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없을 것”이라며 그 의미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바깥세계에서 이같은 행태가 계속되면 국익에 심대한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약발’은 없지만 나라 전체로 봐 국익에 피해를 주는 ‘중대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과 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정의원은 고문을 당한 피해자로부터 고문혐의로 피소돼 있다”며 “정의원의 전력을 볼때,꿈에서도 인권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 등 각계도 ‘정의원 선정’에 곱지않은 시각이다.경실련 김영재(金英材)간사는 “정의원은 과거 우리나라 인권을 유린해온 책임자로 활동해왔던 사람”이라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부분을거론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명지대 신율(申律)교수(정치학)도 “검증되지 않은 (고문)얘기를 나라 밖에서 공표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인권유린행위”라며 “국익을 고려하는 정치인의 신중한 행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의원과 한나라당도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정의원은 “현 정부가 (인권)문제가 많아 겁이 나서 그런 것”이라며 “인권문제에 당당히 응할 것”이라는 반응이다.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은 정의원이 서경원전의원으로부터 피소된 것을 겨냥,“국가보안법으로 복역한 서씨의 고소는 적반하장이며 서씨에게서 간첩꼬리는 뗄래야 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스크린에 ‘남북관계’ 새바람 분다

    영화 ‘쉬리’의 성공에 힙입은 것인가.최근 영화계에는 남북관계의 한 현상인 남파간첩을 다룬 ‘간첩 리철진’이 조만간 개봉될 예정인가 하면 군사력의 날카로운 대치현장인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소재로 한 새 영화가추진중이다. 이들 영화는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간첩이나 대치 현장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햇볕정책’에 따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풀이된다. 타이타닉이 세운 국내영화 최고흥행기록 197만명을 최근 돌파한 쉬리 역시종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북한요원을 나름대로 인간적인 고뇌를 안고 있는 청년으로 그렸다. 우선 오는 5월15일 개봉되는 간첩 리철진은 남파간첩의 ‘남반부생활 6박7일’을 그린 국내 최초의 휴먼코미디물.지난해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한장진 감독의 새 영화로,간첩을 ‘머리에 뿔이 돋은 붉은 괴물’이 아닌 ‘체제와 사상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MBC 미니시리즈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주연을 맡아 두각을 보인 유오성이 리철진으로 출연해 웃음을 준다.리철진은 북한식량난 해소를 위해 슈퍼돼지 유전자 샘플을 확보하는 게 맡은 임무.그러나 서울에 들어온 직후 택시강도를 당하는 등 ‘간첩’답지 않은 어수룩한 모습을 보인다.끝없이 이어지는 코믹한 사건을 통해 ‘간첩 리철진’이 ‘인간 리철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작사인 씨네월드의 한 관계자는 “남북한 관계의 변화 조짐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간첩의 눈을 통해 남북한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돼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JSA를 무대로 삼은 ‘JSA(가칭)’도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1월1일 개봉목표로 한창 시나리오 작업중이다.이 영화는 남북관계의 화해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물. 영화는 JSA의 남측 초소병이 극도의 긴장 속에 우발적으로 북측초소에 총격을 가해 북한군이 죽는 상황을 설정한다.이어 반공포로의 딸인 스위스이민 2세대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중립국감독위 조사관으로 파견된다. ‘접속’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등을 히트시킨 명필름이 18억원을 들여 찍는 이영화는 박상원의 소설 ‘DMZ(군사분계선)’를 각색했으며 현재여자주연 연기자를 찾는 중이다. 관계당국에서도 쉬리 때와 마찬가지로 “잘해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것으로 전해졌다. 명필름의 한 관계자는 “분단은 전쟁세대와 전후세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면서 “이데올로기를 넘어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분단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새천년을 맞아 화해와 공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金대통령, 해병대 50돌 축하메시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0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축하메시지를 보내 “국민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성장해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해병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해병이 한국전쟁과 월남전,그리고 대간첩작전을 통해 쌓아올린 혁혁한 전공은 국민의 방패다운 자랑스러운 것”이라며 “그 고귀한희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17)

    한국판 ‘주홍글씨’라 평가받는 ‘순애보(殉愛譜)’의 작가 박계주는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민족주체성의 추구자세를 바탕삼아 대중소설을 계몽의 도구로 활용했다.만주의 간도 용정 출생답게 그는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분단현실을 어느 대중소설가보다 더 많이 다뤘으며,6.25 때는 박영준,김용호,김수영 등과 같은 문인처럼 납북 도중 탈출한 경력이 있다. 장편 ‘여수’는 1961년 6월 11일부터 같은 해 11월 28일 게재 중단 당할때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정치 이데올로기가 문제되어 신문 연재소설이 중단되기는 아마 이 작품이 처음일 것이다.시기적으로는 5·16군사쿠데타 직후의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이 소설이 정면으로 주장했던 남북한 교류와 반공정책의 허울 아래 빚어진 독재권력의 부패상,여기에다 치명적인 쟁점이 된 8·15직후의 모스크바 삼상회담 결정안(세칭 신탁통치안)에 대한 비판은 당시 정치·역사학계에서도 미처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민감한 이데올로기적인 금지구역이었다.문제의 신탁통치에 대한 언급은 11월 28일자에대학교수이자 작가로 자유당 독재를 비판하는 소설을 써서 반정부 작가로알려진 이춘우가 유럽 여행 중 오스트리아에 들렸을 때의 착잡한 사념들을서술한데서 발단되었다.오스트리아는 제2차대전 후 미·영·불·소 4강국의분할통치라는 비운을 맞았으나,한국과는 달리 이를 수용하여 1955년 7월 분단이 아닌 통일 독립국가로,11월엔 영세중립국이 된 나라이다.이런 나라를여행하면서 작가 이춘우는 분단 조국을 떠올리며 아래와 같은 상념에 빠져든다. “춘우는 문득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를 생각했다.그는 신탁통치를 찬성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던 것이다.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 송진우의 의견대로 오년간의 국제신탁통치를 받았던들 오년 뒤엔 국제기구인 유엔에 의해 오스트리아처럼 통일되었을 것이다.국제신탁통치를 하게되면 북한남한으로 양단되지 않은채 몇 개 통치국가들이 남북을 공동감시하며 공동통치하게 되기 때문에 양립된 불가침의 군정은 없었을 것이다.그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승만 김구 이시영 등의 인사들은독립투쟁을한 애국자이기는 하지만 앞을 내다보거나 앞을 저울질할 줄 아는 정치가가못되는 반면 송진우는 독립투쟁은 하지 못하였을망정 앞을 내다보는 구안(具眼)의 정치가라 할 수 있다.대체 해방직후 아무런 경제적 지반도 없고 경찰력도 군대력도 없고 행정적 정치적 훈련도 없고 산업도 마비상태였는데 ‘돈립국가’라는 문패만 붙잡고 어쩌자는 것이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아닐수 없다” 마지막 부분의 ‘돈립국가’란 ‘독립’의 오자인지 ‘돈으로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풍자인지는 모르겠으나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었다.물론 이 서술이 역사적인 진실과 일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나 그 당시구전되어오던 금기사항을 이렇게 문자화 해 버리자 반격은 의외로 빨랐다.‘동아일보’ 29일자 1쪽에는 아래와 같은 2단 상자 사고(社告)가 실렸다. “ 사고.그간 본지 조간 4면에 연재해 오던 박계주씨 집필인 소설 ‘여수’는 비록 소설이라할지라도 지난 27일자 조간 게재 내용이 본사의 견해와 현저히 상이하므로 본사는 해 소설을금후 게재 중지하기로 결정하였음을 독자 제현에게 알리오며 아울러 사전에 발견하여 시정치 못하였음을 송구히 여깁니다.이 점 독자제현의 양찰을 바라마지않습니다.동아일보사” 이 소설은 비판적인 작가 이춘우의 유럽일대(프랑스·영국·독일·오스트리아 등)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북한에서 모스크바까지 다녀와 최승희 무용단에서 활약 중 6·25 때 서울로 위문공연차 왔다가 도주한 김미전은 고모네 마루 밑에서 몇 달 동안 피신할 때 만났던 이춘우를 사모하게 된다.그녀는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갔으나 간첩으로 몰리는 등 갖은 수모와 고생을 하면서도 무용가로 활동 중 춘우의 도움으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김미전을 비롯한 주변 여인들과 남편의 관계를 의심하던 춘우의 아내 의숙은 홧김에 춤바람으로 놀아나면서 남편의 불륜을 기사화시켜 교수직에서 쫓겨나도록 만드나 후회코 자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다.국내 망명자 신세가 된 춘우는 먼저 프랑스에 들러 미전을 만나야 하지만 미적대다가 6·25때 백마고지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둔 파리의 창녀 이본느를 만나게 된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해군 참모총장 李秀勇씨

    정부는 30일 해군 참모총장에 李秀勇 해군 작전사령관(57·해사 20기)을 임명했다. 또 해군 참모차장에는 金武雄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55·해사 21기),해군사관학교장에 宋根浩 합참전략기획부장(53·해사 22기),합참차장에 張正吉 해군사관학교장(55·해사 21기),해군 작전사령관에 徐榮吉 국방부 정보화기획부장(54·해사 22기)이 각각 중장 진급과 함께 임명됐다. 신임 李 참모총장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했으며 호남 출신으로는 창군 이래 두번째로 해군 참모총장에 올랐다. ?프로필 활달한 성격에 업무 추진력이 강한 작전통.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며 95년1함대사령관 재직 때 사상 처음으로 함대를 이끌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방문,군사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군 작전사령관으로 임명돼 동·서해안 간첩 침투사건 당시 경계 및 나포작전 실패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지난해말 북한 반잠수정 격침 및 인양작전 성공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해군내 유일한 호남출신 3성 장군으로 金東信 육군 참모총장이 광주일고 1년 선배이며 마사회장인 吳榮佑(육사 20기)전 1군사령관은 매제이다.부인 석금선씨와 사이에 1남 2녀. ?전남 나주(57) ?광주일고 ?해사 20기 ?합참 무기체계과장 ?해군 정훈감 ?1함대 사령관 ?해군 군수참모부장 ?해사교장 ?해군 작전사령관
  • 다시보는 이응노의 한국화

    올해는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이 프랑스 파리에서 작고한지 10주년이 되는 해.그의 서거 10주기를 기리는 추모전이 4월 2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가나아트센터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린다. 현대 동양화의 사의적(寫意的) 추상을 개척한 화가,동양정신을 유럽에 전파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거장.고암은 지난 67년 동베를린 간첩사건 등에 연루돼 결국 85년 프랑스로 귀화하고 말았지만 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식과 함께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고암의 조형기반은 수묵화에서 찾을 수 있다.그의 ‘수묵추상’연작의 전형적인 양식은 굵고 강한 선과 담채와 점묘를 통해 중첩된 산의 이미지를 드러낸다.그러나 그는 수묵화 본연의 여백의 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화면 전체를가득 채우는 전면회화의 양상을 보여준다.파리로 건너간 뒤 고암은 콜라주작업에 손대는 등 실험성을 추구했으며,후기에 들어서는 동양의 서예정신을토대로 한 기호론적인 작품경향을 보였다.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변화해온 그의 조형세계를 살피는데 초점을 맞춘다.묵죽화,산수화,수묵추상,종이콜라주,문자추상,군상 연작 등 120여점이 선보인다.이밖에 고암의 부인인 박인경 여사와 아들 이융세씨,그리고 64년 고암이 파리에 설립한 동양미술학교 제자들의 작품 30여점도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
  • [대한광장]심각한 한자문맹

    ”그건 그래도 많이 봐준 거네요.” 장일순(張壹淳)선생의 '조한알사상'을 그리워하는 자리에서였던가. 생태계파괴문제를 놓고 구느름에 지나지 않는 한담 끝에 누군가 강원도 홍천에 가면 '서울사람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더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서울사람만 드나들지 말라는 것은 그래도 많이 봐준 것이고 어느 곳엔가 갔더니 숫제 '사람'이라는 동물은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책 권이나 읽었다는 그 여성이 “사이 간, 사람 인, 말 물, 들 입”하고 글자의 뜻까지 새겨가며 들려준 팻말의 글귀는 '간인물입(間人勿入)'이었다. 자연생태계를 결단내버리는 인간의 독선과 이기심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런 팻말을 다 내걸었겠느냐면서도 '인간'을 '간인'으로 뒤집어놓은 그 익살스러움이 재밌다며 쓰게 웃던 그 팻말의 글자는, 그러나 '한인물입'으로 읽어야 한다. '일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뜻으로 間·閒·閑은 다같이 '한'으로 통용된다. '간'(間)의 正字가 한(閒)인 것이다. 간인(間人)은 '염알이꾼' 또는 '발쇠꾼' 곧 '간첩'을 말한다. “'황철영의 용지'를 읽어 보셨나요?” 70년대 말쯤 필자가 어떤 여대생한테 받은 질문이었다. 소설 권이나 읽었다고 생각하는 필자였지만 '황철영'이라는 작가와, 그 작가가 썼다는 '용지'라는 소설은 금시초문이어서 벙벙해 있는데, 들이대듯 그 여대생이 다시 물어오는 말인 즉 “직직옥수는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작가요, 작품들인지라 짧은 독서량을 부끄러워하고 있던 필자는, 곧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으니, 아하, 알겠다. 네가 시방 나한테 명색이 작가라면 그런 민중소설, 또는 노동소설을 써야지 한갓지게 불교소설이 다 뭐냐며 종주먹을 대어오는 그것이 그러니까 황석영(黃晳映)의 '객지(客地)'와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말하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훌륭한 소설들을 아직 못 읽어 봐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만 뒀지만 영 쓴 훗입맛인 것이었다. 한자(漢字) 실력들이 너무 형편없다. 영자(英字)는 그려 게들 기를 쓰고 배우려들면서도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자에 대해서는 거들떠도 안 본다. '황철영의 용지' 또는'각지'나 '직직옥수'는 고전에 속하고 지금의 50대 이상 되는, 이른바 문화인들이 우스게 말로 흔히 '무답회(舞踏會:무도회)의 권수(勸言+秀:권유)'나 '호시침침(虎示+見耽耽)'같은 말들은 너무 어려우서 그런지 숫제 웃지도 않는다. '파탄(破綻)'이 '파정'이고 '촌탁(寸度)'이 '촌도'며 '진지(眞摯)'는 '진집'으로, '도야(陶冶)'는 '도치'로, '상자(上梓)'를 '상재'로, '일체(一切)'를 '일절'로 읽는 등 보기를 들기로 하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지식인들이 '인지(人質)'를 '인질'로, '지권(質權)'을 '질권'으로, 그리고 사람의 성(姓)을 일컬을 경우에는 '진'으로 읽어야 옳은 '진훤(甄萱)'을 '견훤'으로 읽고 쓰는데는 할 말이 없다. 어떤 국회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이재민(羅災民)'을 '나재민'으로 줄대어 말한 적이 있었다. 전국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의 한자능력이 평균 30점 이하라고 한다. 중학생 수준이면 충분히 쓸 수 있는 한자 여덟문제를 순서에 따라 쓰도록 하는 문제 가운데 '수(水)자를 제대로 쓴 사람이 63%로 가장 많았고 '력(力)'자 60%, '구(九)'자 45%, '화(火)'자 41%, '생(生)'자 28%, '모(母)'자 23%, '방(方)'자 11%, '유(有)'자는 5%에 지나지 않았다고 어떤 표본조사 결과는 보여주고 있다. 영어가 이른바 '세계어'라면 한자 또한 '세계문자'이다. 한자문화권에 사는 인구만 20억이 넘는다. 한자는 그리고 동이족(東夷族), 곧 우리의 옛 조상들이 만드신 문자이기도 하다. 김성동 작가
  • “日침투 괴선박은 北공작선”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 해역을 침범한 괴선박은 선체의 특징 등을 근거로 북한 공작선으로 확인됐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지난 21일 괴선박을 최초로 발견,이틀간 선박의 무선교신을 해독한 뒤 나포키로 결정했다”고 전하고 24일 오후 괴선박 1척이 북한 나진(羅津)항으로 입항한 사실이 미군 정보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일본정부는 괴선박을 인도받기 위해 베이징(北京) 주재 대사관과 뉴욕 유엔대표부를 통해 북한측에 접촉을 요청했으나 북측은 25일 밤까지 응답이 없었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방위청장관도 이날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괴선박이 고도의 통신기능을 갖추고 있었다”면서 간첩행위 가능성을 지적했다. 산케이는 또 북한 공작선이 일본해를 침범한 목적에 대해 배 위에 덮개를씌운 화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입수한 군수 기자재를 몰래 북한으로 운반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관측했다.한편 24일 오전 북한의미그 21 전투기와 일본 자위대의 F15기가동해상에서 공중전을 벌이기 직전상황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아침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괴선박에 경고사격을 하고 있을 때 북한은 미그 21 전투기 2대를 출격시켰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이를 레이더로 포착,북한 미그기가 일본의 공중 방위경계선을 표시하는 방공식별권에 접근하고 있어 F15기 2대를 긴급 발진시켰으나 곧 미그기가 모습을 감춰 F15기도 귀환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marry01@
  • 국정개혁 보고-국방부·통일부

    ▒위기관리 및 대비태세 전면전에 대비,대북 조기경보 및 감시태세를 강화하고 미군 신속억제전력과 증원전력의 적시전개를 보장하는 등 한·미연합방위 태세를 확고히 구축한다.주한미군에 화학대대를 증편하는 등 화생전 대비전력을 증강하고 아파치헬기를 교체하는 등 육군항공전력을 개선한다.북한의침투 및 국지도발에 대비, 한·미연합 정보공조체제를 유지한다.후방지역 침투를 방비하기 위해 대잠(對潛)전대를 창설,운영하는 등 해안경계를 강화한다.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비해 오는 6월 화생방방호사령부를 창설하고 미사일 요격용 방어전력(SAM-X)을 확보한다.다목적방독면을 개발,민방위대원에게 100% 보급하고 접적지역과 수도권주민에게 구매토록 권장하는 등 유사시 민·관 대비태세를 공고히 한다. ▒국방개혁 추진과제 미래전에 대비,2003년까지 온라인 정보통신망 및 컴퓨터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북한 등 외부세력의 정보침투 방어를 전담할 해커대응팀을 오는 12월까지 창설,운영한다.장군의 계급정년을 2001년까지 1년 이내에서 단축하고임기제 진급제도 및 명예진급제도를 확대시행해 2003년까지 육군 소장 12명 등 초과인력을 완전히 해소한다.다음달 대북정보수집부대와 정보사령부를 정보본부로 통합하고 2000년 이후 지상작전사령부와 후방작전사령부를 창설하는 대신 후방군단을 해체한다.다음달 중순까지국방개혁추진위원회 내에 군사혁신기획단을 설치,미래전에 대비한 한국적 군사혁신 방책을 수립한다.병영생활의 명랑화,합리적 부대관리로 신바람나는한국적 병영문화를 창출하고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통신 등 95개 분야 특기교육을 실시하는 등 제2건국운동과 연계,병영을 건전한 민주시민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킨다. - 통일부 ▒대북 경협 활성화 여건 조성 북한항만의 설비지원을 통해 물류체계 개선을 추진한다.민간경협 방식으로 속초∼나진∼훈춘간 해륙연계 교통로 개설을추진한다.특히 1만t급 카페리의 주 2∼3회 운항을 추진한다.북한 서해안 시범공단(100만평) 개발을 위한 기본계획을 북측과 협의한다.국수공장·공동목장 운영 등 협력사업 방식의 대북 지원 활성화를 유도한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추진 대북 지원의 지속적 추진을 통한 적십자 협의채널유지 및 적십자회담 개최 분위기를 조성한다.적십자회담으로 이산가족문제의 최우선적 해결을 추진한다.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추진하되 생사확인·서신교환 실현에 역점을 둔다.국군포로·납북자와 출소 남파간첩 등의 송환문제는 포괄적 이산가족 문제 해결차원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 ▒하반기 남북대화 돌파구 마련 실무차원의 접촉창구 마련을 위해 남북관계현안문제의 타개점을 모색한다.공개·비공개 등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추진한다.‘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을 남북대화체제 정상화 조치의 일환으로 운영한다.남북당국간 대화창구를 특사교환,장·차관급 상설대화기구로 발전을유도한다. ▒농·어업 협력사업 활성화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차원의 농업협력을 지속 추진한다.국제옥수수재단의 북한내 시험재배지역을 지난해 83개지역에서 1,000개 지역으로 확대한다.한국담배인삼공사의 잎담배 시범포(3㏊) 운영 및 1,000t 계약재배를 추진한다.감척(減隻)어선 등 국내유휴장비와북한의 어장·인력제공을 활용한 어업협력사업을 추진한다.어획물은 가공수출 또는 국내반입하는 협력방식을 추진한다.북한이 확보한 해외어장에서 공동어로를 추진한다.
  • 北공작원 사체 6구 발견

    지난해 12월18일 남해상에서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은 핸드폰 크기의 위성위치확인기(GPS)를 장착,항해 위치를 정확히 계산하며 수심 20m까지 완전 잠수해 은밀히 침투할 수 있는 최신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합동참모본부는 23일 지난 17일 인양된 북한 반잠수정에서 수거한 체코제기관권총과 수류탄,미제 초콜릿과 쇠고기통조림,일화 100만엔과 한화 56만8,000원 등 노획품 80종 724점 및 합동신문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반잠수정은 북한노동당 작전부 남포연락소 소속이며 승조원과안내원 공작원 등 6∼8명 정도가 탑승했던 것으로 분석됐다.반잠수정에서는사체 6구가 발견됐다. 길이 12.8m,폭 2.95m의 반잠수정은 엔진 3개를 장착,40∼50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으며 남파간첩선 중 처음으로 GPS를 장착했다.
  • 대학생 84%“對北 포용정책 찬성”

    젊은 지식층인 대학생들은 북한의 잇따른 대남 도발에도 불구,대북 포용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21일 전국 245개 대학 2,042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국민의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지난 2월 1∼12일 실시됐다. 조사에서 金大中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적극 찬성’이 15.0%▒‘찬성하는 편’이 69.3%로 84.3%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반면 ▒‘반대하는 편’ 13.8% ▒‘적극 반대’ 1.9% 등 부정적인 견해는 15.7%에 그쳤다. 북한이 잠수정과 무장간첩을 남파하는 등 대남 도발을 자행하더라도 정부가 인적·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계속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1.1%가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대학생들은 또 당국간 회담 개최시 우선적으로 다뤄야할 의제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35.9%) ▒남북이산가족 상봉(23.6%) ▒남북한 경제교류협력확대(18.7%) ▒남북기본합의서 이행(11.8%) ▒북한의 핵의혹 투명성 보장(10.0%) 순으로 꼽았다.
  • [해외 저명인사가 본 ‘한국의 국난극복’]스칼라피노 교수

    金大中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외에서의 시각이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문화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해외 저명인사들이 ‘국민의 정부’를 평가한 글들을 묶어 ‘해외 지식인들이 본 국민의 정부 1년’이라는 책으로 엮었다.대한매일은 이들의 시각을 시리즈로 소개한다.다음은로버트 A 스칼라피노 미 UC버클리대 롭슨연구소 연구교수의 ‘김대중시대,그첫해’라는 제목의 기고문 요지. 金大中대통령은 취임 당시 엄청나게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한국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돼 있었고 정치는 과거의 실정과 감정대립으로 얼룩져있었다. 한·미관계는 여러문제에 대한 의견차에 시달리고 있었고 남북한 관계도 어느 때보다 적대적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金대통령의 업무수행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우선,경제는 몇가지 청신호가 보이고 있다.외국인투자가 증가했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섰으며 환율은 안정을 되찾았다.앞으로의 과제는 재벌이 약속을 실천에 옮기도록 하는 것,사회적 문제로 발전할 정도로 실업률이 증가하지 않도록 하는 것,금융기관들이 대출정책에 있어 실질적 개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정치도 역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이제 약 10년을 넘어선 한국의민주주의는 그 기반을 굳건히 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도적 정치와 개인간 정실위주의 정치간에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개인간 정실위주 정치는 종종 과거 권위주의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한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금권정치와 깊이 뿌리박힌 지역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러나 과거에 비해 국민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많이 반영되고 있고 언론도 자유를 회복했으며 군부의 정치장악 위협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새로운정치체계가 수립된 지 얼마 안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성과다. 한국 외교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은 한마디로 한·미관계를 종속적인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한·미관계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철강 및 자동차 수입과 관련한 통상마찰이 제재 위협을 불러왔으나 해결의실마리를 찾았고 북·미관계에 대한 한국의 새로운 견해는 대북정책에 있어첨예한 내부적 의견차를 보이고 있는 미의회의 반발에 봉착해 한국은 대표단을 보내기도 했다.그러나 대체적으로 한·미관계는 근년에 비해 긍정적인 발전을 이뤘으며 양국간 상호방위체제도 굳건하다.또 다른 강대국들과도 균형적,긍정적인 관계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과의 관계개선에도 역점이 두어지고 있다.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는 98년 전체를 통해 가장 큰 역점을 둔 분야다.북한은 때때로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도전하는 듯한 정책을 펼쳤지만 그는 이에굴하지 않았고 모두에게 흔들리지 말도록 당부했다.그 결과는 적지 않았다. 문화,스포츠,종교 분야의 교류가 확대됐다.무엇보다 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과 金正日의 만남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관광 및 투자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의 지지는 이런 노력의 가장 큰 성과였다.새해에 들어선 지금,남북관계에있어 金대통령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멀다.한국 내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상당한 의견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간첩활동에도 불구하고 金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있어 새로운 첫발을 내디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金대통령의 취임 첫해는 국내적으로는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불안에 직면해 있는 소란스런 한해였으나 여러분야에서 성과를거뒀고 국제적으로는 한국이 아시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넓게 인정된 1년이었다.
  • 61년 ‘교원노조’사건“명예회복” 재심청구 준비

    5·16 직후 현직교사 1,500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교단에서 추방한 ‘교원노조사건’의 진상규명·명예회복을 위해 당시 교원노조총연합회 대표였던 姜基哲씨(74)가 최근 姜信玉 변호사를 통해 재심 청구를 준비중이다. “40년 가까이가 지난 사건으로 법률적 시효는 이미 지났습니다.그러나 새 세기를 앞두고 지난 역사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교원노조사건’의 진상규명과 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1960년 5월 결성된 한국교원노동조합은 최근 합법화된 전교조의 원조격으로 ‘4·19때 희생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자유당시절 교사들이 3·4인씩 조를 짜서 부정선거에 가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학생들의 피로 4·19혁명이 성공하자 교사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싶은 심정이었죠.그래서 교사들이 다시는 비리나 부정을 저지르지 말자는 취지로 결성한 것이 교원노조입니다.” 60년 7월 전국조직을 갗춘 한국교원노조는 한 때 조합원 수가 4만 명에 달했다.당시 초·중·고 교사와 대학교수 등 전체교원 수가 10만명이 채 안됐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규모였다. 한편 5·16 직후 쿠데타 세력은 교원노조 조합원 1,500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체포,교단에서 추방하였다.이들중 간부급 54명은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됐는데 이 숫자는 당시 정당·사회단체의 피체자 가운데 가장 많은숫자였다.이들은 혁명재판에 회부돼 모두 징역15∼10년을 선고받았는데 강씨는 이들 가운데 최고형인 징역15을 선고받고 7년 넘게 복역했다.민주당 정권을 전복한 장본인인 쿠데타세력들이 이들에게 갖다 붙인 죄목은 놀랍게도 ‘민주당 정부전복음모’.그러나 조사결과 혐의사실이 발견되지 않자 다시 ‘간첩사건’으로 몰아 붙였다. “당시는 통일문제를 언급하거나 한미경제협정·2대악법 반대투쟁에 나서면 모두 용공단체로 규정했습니다.당시 교원노조는 강령에서 ‘반공’을 명시했었고 한미경협문제는 거론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2대악법은 노동탄압과 직결된 것이어서 다른 사회·언론단체들과 함께반대운동을 했지요.그런데 그게 ‘이적행위’로 둔갑하더군요” 68년 7년만에 출옥한 그는 정치정화법으로 6년간 묶여 있다가 10월유신 이후에는 보안처분대상자로 분류돼 이후 20년 가까이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3공시절 3선개헌반대 33인준비위원,민주수호국민협의회 기획운영위원,엠네스티한국위원회 이사 등을 지낸 강씨는 그동안 ‘토인비와 문명’등 역사·문명사 관련 저술과 연구에 몰두해 왔다. 강신옥 변호사는 “상식적으로는 재심의 사유가 충분하나 법 논리상 제한점이 많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사건은 역사적·정치적 차원에서 꼭 해결돼야할 역사적 문제”라고 밝혔다.
  • 일부 재야인사들 鄭亨根의원 과거 고문 사실 폭로

    徐敬元 전의원 등 일부 재야인사들이 대공수사국장 등 안기부 요직을 거친한나라당 鄭亨根의원의 과거 고문사실 등을 폭로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89년 밀입북사건으로 8년7개월의 수감생활을 하다 3·1절 특사로 풀려난 徐전의원이 폭로에 앞장섰다.그는 지난 10일 ‘고문 국회의원 鄭亨根을 심판하는 시민모임 준비위’도 발족시켰다.徐전의원은 “당시 鄭씨가 직원들을 다내보내고 러닝셔츠와 군복바지만 입힌 상태에서 밤 9시15분부터 새벽 1시45분까지 주먹으로 구타했다”면서 “이렇게 직접 당한 사람이 10여명이고 모임에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도 20명이나 된다”고 소개했다.그는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鄭씨가 구두를 신은 채 맨발인 (나의) 발등 위에 올라서서 밟고,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때렸다”고 주장했다.“당시 金大中 평민당 총재가 金日成에게 친서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鄭의원은 이에 대해 여권의 사주에 의한 ‘鄭亨根 죽이기 음모’라며 고문사실을 부인했다.鄭의원은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을 어떻게 고문했겠느냐”며 “국정원이 徐전의원 주도 모임에 자금을 지원하고 제휴해서‘정형근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고 반격했다. 이에 정치권은 신중한 반응이다.국민회의는 “모든 것은 진실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고 한나라당은 “徐씨가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된 것처럼鄭의원을 물고늘어지는데, 오히려 자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黨政, 정부 직접지원방식…새달부터 北에 비료지원

    정부와 여당은 지난 95년 이후 WFP(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간접지원 방식과 함께 정부 차원의 직접지원 방식도 검토키로 하고 우선 북한의 농업개발 차원에서 비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대북 비료지원은 빠르면 4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며 지원 규모는 한달에 3만∼5만t,연평균 50만t 정도로 추산된다. 당정은 특히 장기수(출소 남파간첩) 교환 문제를 오는 22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55차 유엔인권위 회의에서 洪淳瑛 외교부장관이 공식 거론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과 康仁德 통일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관계 당정회의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고 金의장이 전했다. 당정은 장기수 송환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일방적인 송환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납북자 및 국군포로를 포함한 포괄적인 이산가족 문제 해결차원에서 남북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당정은 남북간 회담 등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되 올 상반기 중 ‘남북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를 통한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고,‘남북이산가족교류협의회’를 통한 교류 창구의 개설도 추진할 방침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