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간첩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공항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호적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이다희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잠실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59
  • 자이니치 아닙니다 재일조선인 입니다

    “해방 뒤 일본에 남은 60만 조선인에게 국적은 없었다. 식민지 시절 강제된 일본 국적을 1952년 일방적으로 박탈당했는데, 당시 조국은 분단됐을 뿐 아니라 남북 모두 일본과 국교가 없었다. 그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은 처참한 무권리 상태에 빠졌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은 몹시 슬픈 얘기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하면 빠찡꼬업자, 사채업자, 간첩단, 조총련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극심한 차별 속에 먹고살 게 없어 그리 됐다곤 하지만 왠지 밝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정대세, 추성훈 같은 스포츠 스타의 등장으로 이런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다. 그럼에도 ‘한국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대세가 정작 국가대표로서는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택할 정도로 여전히 모호한 대상이 재일조선인이다. 저자는 이를 ‘자이니치’(在日) 같은 줄임말 말고 ‘재일조선인’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집약시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이니치라는 줄임말에는 ‘일본 사람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일본에 있지?’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의도적으로 ‘조선’이라는 표현을 피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바보 같고 멍청하고 게으르다.’라는 등식을 만들다 보니 조선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드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분명하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본다. 재일조선인을 차별하지 않을 때, 행복해지는 것은 재일조선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해 뒀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다 이런 말도 해 뒀다.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영환 “1박 2일간 전기고문·구타당했다”

    김영환 “1박 2일간 전기고문·구타당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30일 “중국 당국에 체포된 뒤 지난 4월 15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구타와 전기고문이 5~8시간 정도 지속됐다.”며 중국 구금 당시 받은 고문 및 가혹행위을 상세히 공개했다. 김씨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기 직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4월 10일부터 7일 동안 연속으로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했고 6일째 되는 날에는 물리적 압박이 시작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체포후 18일간 묵비권 행사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세부내용은 함구했던 김씨가 구체적으로 고문 정황을 밝히면서 이 문제가 한·중 양국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전기고문은 50㎝ 정도의 전기봉으로 이루어졌고 구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방식이었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얼굴에 엄청나게 심한 충격이 있었다.”면서 “30분~1시간 정도 구타를 하다가 얼굴에 상처가 심해 다시 전기고문을 하는 식이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김씨는 “전기고문을 하기 1시간 반 전에 복면을 씌우고 심전도 검사와 혈압 검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고문을 했다.”며 “위에서 결재를 받고 나서 계획적으로 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3월 29일 체포되고 나서 18일 동안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고문과 가혹행위 때문에 4월 16일 새벽에 묵비권을 풀었다.”고 말하고 “그 뒤에는 심한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안전부에서) 조사를 받는 한 달 내내 수갑을 채우고 의자에서 잠자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중국 당국의 조사내용에 대해서는 “우리의 북한인권 정보조사 활동을 조서에 포함시키면서 구체적인 혐의는 얘기 안 했지만 이런 것을 가지고 혹시 간첩죄나 이런 것으로 걸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와 중국 분들이 함께 활동을 했는데 그 부분과 관련된 조사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부 영사면담 지연 납득안돼 그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전기고문 등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 쪽에서 신중한 대응을 요구한 측면이 있고, 함께 활동하시는 분들, 특히 중국 국적을 가진 분들에게 위해가 갈 것을 우려했다. 그 부분은 지금도 제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정부의 초기 영사대응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1차 영사면담일인 4월 26일이면 제가 잡히고 29일째 되는 날인데 그 전에 영사면담을 왜 오지 않았는지 그 부분이 납득이 안 된다. 중국 안전부에서 허가하지 않아서 올 수 없었다고 했는데 영사 면담이라는 것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중국이) 허가하지 않고는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김씨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거나 유엔 인권이사회에 청원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을 포함해서 다른 것도 동료들과 상의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 등에 나설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반체제 운동을 하는 분들과 접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북한 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는 분을 지원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서도 북한 내 반체제 세력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함구했다. ●인권위, 본격조사 착수 예정 김씨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이용근 북한인권팀장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중국 당국의 고문과 가혹행위, 부당한 처우 등에 대해 1시간가량 상세히 진술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중국 당국의 김씨 고문 행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이날 ‘한국의 유명 반북 인사가 중국 정부를 기소하겠다고 위협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데 대해 외교가에서는 중국 당국이 정식으로 대응에 나서기 전 사전조치로 환구시보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연합뉴스
  • 무능한 인사·전략 부재가 ‘실패한 영웅’을 만들었다

    130권짜리 중국 통사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초패왕 항우를 ‘자고 이래 첫 번째 인물’로 평가했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승승장구해 천하 제패를 눈앞에 두었던 ‘역발산 기개세’(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의 영웅. 하지만 유방과의 4년간에 걸친 초한전쟁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삶에는 흔히 ‘크게 흥했다.’와 ‘크게 몰락했다.’는 상반된 묘사가 함께 붙는다. 엇갈린 평가와 달리 여전히 중국인들로부터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 항우. 그는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불굴의 패기와 의지로 진을 멸망시킨 항우는 당대의 숙적 유방보다 훨씬 앞서 간 난세의 영웅이었다. 진의 주력군을 완전히 평정한 그 유명한 ‘거록 전투’며 천하 제패의 꿈을 다졌던 ‘팽성 전투’만 보더라도 유방은 항우에게 한참 뒤졌었다. 그런데 마지막 ‘오강 전투’에서 ‘사면초가’란 최후의 말과 함께 항우를 패배와 자살로 몰아간 원인은 무엇일까. ‘항우 강의’(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김영사 펴냄)는 유년기부터 오강의 최후까지 ‘사기’에 바탕을 두고 항우의 모든 것을 훑어 패인을 해부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국내에선 ‘사기강의’로 유명한 저자가 명쾌하게 추려 세운 패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유방과 달리 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정치적 유치함과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도 군사를 수동적으로 썼던 군사전략의 부재, 그리고 제 능력을 과신한 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성격이 그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특출한 게 없었던 유방에 비해 항우는 탁월한 군사전문가였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유방의 곁엔 늘 모사가와 책사들이 모여들었다. 항우는 따르던 인재를 간수하지 못해 흩어지게 만들고, 심지어는 배반과 배신의 아픔을 거듭 맛봐야 했다. 유방 측에 붙어 간첩 행위를 한 삼촌 항백을 단죄하지 않은 것처럼 인정에 치우친 무능한 인사는 그 패착의 으뜸이다. 불같은 성격은 참모와 부하들을 두렵게 만들어 작은 잘못에도 부하들은 유방에 투항하곤 했다. 그에 비해 유방은 군사와 인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터럭 같은 미관말직의 의견도 기꺼이 수용하는 노회한 인물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패기, 용맹으로 단숨에 천하를 장악했지만 잇따른 측근의 배신과 정치력 부재, 정책 실패는 결국 그를 패자로 전락시킨 치명적 고리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구석구석에 배치해 놓은 항우의 색다른 인간미는 흥미롭다. 전투에 지친 군사와 백성을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자며 유방에게 일대일 결투를 제안한 것이며 오강 전투에서 패한 뒤 ‘재기’를 기약하자며 강을 건너 피하라는 부하의 말을 물리친 것, 자살 직전 현상금 붙은 제 머리를 옛 부하였던 유방의 장수에게 기꺼이 맡긴 일…. 그래서일까. 저자는 실패한 영웅인 그를 ‘겉과 속이 같은 타고난 영웅’으로 평가한다. 1만 5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간첩 혐의 재일교포 구말모씨 40년만에 재심서 ‘무죄’ 판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환수)는 23일 북한 지령을 받고 국내 정보를 빼돌리는 등 간첩 행위를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재일교포 구말모(75·재일전남도민회장)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구씨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어서 임의성이 없어 증거로 사용될 수 없고, 증거능력이 있는 일부 진술이나 압수 서류는 혐의를 인정하기 매우 부족하다.”고 밝혔다. 구씨는 1970년 월북해 지령을 받고 남파된 뒤 국내 정치정세 및 학내 동향을 보고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의 판결을 받았으며, 10년가량 복역한 뒤 1981년에야 가석방됐다. 구씨는 “석방 이후에도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며 “무죄 판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재일교포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건강 좋지 않지만 심각한 정도 아니다”

    “건강 좋지 않지만 심각한 정도 아니다”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114일 만에 귀국한 김영환씨는 지지자들의 환영에 밝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20일 선양발 대한항공편 KE834편을 타고 일행 3명과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씨는 승객이인 모두 내린 후 보딩게이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 소속 회원 10여명이 “환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박수를 치며 그를 맞았다. 김씨는 “3개월간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해 혈압이 높은 상태고 몸이 좋지는 않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체포 이유와 석방조건 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구체적인 것은 다음에 국민들께 알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국과 중국 당국 모두 김씨에게 적용된 국가안전위해죄의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함구하고 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중국 당국이 적용한 혐의 내용으로 미뤄 그가 단순히 월경방조죄 등으로 체포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를 체포한 주체가 우리의 국가정보원 격인 중국 국가안전청인 만큼 국가변란이나 간첩행위와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김씨의 혐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확인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의 중국 내 활동이 국가정보원이나 미국 자금과 관련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한 인사는 “김영환씨가 북한 내 민주화 조직을 구축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 쪽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한 것으로 안다.”면서 “자생적인 북한 내 반체제 조직과 인사들을 지원하는 역할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1980년대 민족해방(NL) 계열 주사파의 상징적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당시 주사파 운동권의 교본이 된 ‘강철서신’의 저자다. 1986년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6월형을 선고받았고 1989년 7월 북한노동당에 입당했다. 김씨는 1991년 밀입북 이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했지만 방북하여 김일성을 만난 뒤로 북한 현실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으며, 1999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전향문을 쓰고 풀려났다.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한 인사들과 공동으로 ‘시대정신’이라는 계간지를 만들고 북한 민주화와 탈북자 지원 활동 등을 하며 북한 비판에 앞장섰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무죄 확정 그 후/황성기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무죄 확정 그 후/황성기 문화부장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원 1호 법정. 대법관의 말을 자세히 들으려 귀에 양손을 대고 있던 그가 복받친 듯 눈시울을 붉힌다. 김동순(67)씨.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집회 와중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모의 여간첩 사건’ 원정화씨의 옛 의붓아버지다. 장맛비가 내리는 대법원을 빠져나오면서 김씨는 “꿈만 같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판결이 잘못돼 법정구속되지 않을까 전날 한숨도 못 잤다.”고도 했다. 악몽 같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하늘을 올려다본다. 4년 전 수원지검은 원씨와 김씨를 탈북자로 위장한 ‘부녀간첩’이라고 발표했다. 김동순씨는 원씨 구속 직후인 2008년 7월 2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이듬해 2월 김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거가 없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항소했으나 1심 판결을 뒤집을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2010년 7월 서울고등법원의 무죄판결. 결기라도 부리듯 거듭된 검찰의 상고. 지루하게 시간이 흐르고 2년이 더 지나 대법원의 무죄확정을 받았다. 수사당국이 원정화씨의 옛 의붓아버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01년 함께 탈북하고, 북한을 상대로 한 무역사업도 함께 했던 김씨의 정체가 실은 원씨를 관리하는 ‘고위간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상식적이다. 간첩 잡는 게 공안검찰의 임무니 거기까진 좋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에 낸 증거는 초라했다. 김씨의 노동당원증, 원씨와의 전화 감청 등이 고작이었다. 김씨는 탈북자들이 받는 합동신문에서 ‘노동당원’이었다고 진술했다. 북에서의 신원을 소명할 유일한 자료였던 당원증은 김씨가 검찰에 전해준 것이었다. 간첩이라면 당원증을 소지할 리도, 집에 둘 리도 없다는 게 김씨 주장이었다. 원씨와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는 딸과 아버지 사이였던 이들의 소소한 일상사가 전부다. 감청 내용을 법정에서 듣던 1심 재판장의 한심스럽다는 표정이 아직도 기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김씨가 대법원 판결 직후 “정의가 살아 있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판사라면 응당 내릴 무죄판결일 수밖에 없는 증거불충분의 기소였다. 의심이 들면 내사하고, 증거가 모이면 수사해 필요하면 인신을 구금하고, 기소를 하고 재판에 붙여서는 ‘유죄의 심증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검찰이, 의심만으로 덜렁 올가미부터 씌운 결과다. 형사사건 무죄율 2%의 사법현실에서 김씨 사건의 대법원 무죄 판결은 검찰로선 수치스러운 사례다. 후배들에게 고개 들기 어려운 ‘무죄의 공안사건’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안통 수원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낙마하긴 했지만 검찰총장 후보에도 올랐고, 수사검사들은 대체로 승진했다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건 김씨뿐이다. 김씨는 무죄로 풀려나고서도 따라다닌 ‘간첩’ 딱지, 탈북자정착지원금이 한동안 끊긴 것, 취업을 못하고 크고 작은 인권침해를 받은 건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치가 떨리는 것은 2008년 수사당국이 그의 당원증을 공개한 일, 그리고 압수됐던 가족앨범을 수사당국이 분실한 일이다. 2로 시작하는 7자리 숫자의 당원증 번호와 이름, 김씨 얼굴이 TV 등에 보도돼 신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래서 북에 두고온 자식들과 친척에게 일찌감치 북 당국이 위해를 가했을 거라는 게 김씨 생각이다.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브로커에 부탁할까도 생각했지만 괜한 의심을 살까봐 4년간 아무 일도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요덕 수용소의 수용자 신원까지 알 수 있다는 국정원이 내 가족의 안부를 확인해 주는 게 도리 아니냐.”고 했다. 통일이 되면 서로를 알아볼 증명사진 요량으로 갖고온 그 소중한 앨범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건지 분통을 터뜨렸다. “북이 싫어 탈출한 남한에서 이런 고초를 겪을 줄 알았다면 남에 오는 게 아니었어요.” 집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겁게 보였다. marry04@seoul.co.kr
  •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신춘문예보다 확실하게 거액의 상금을 챙겨 주는 신문·문예지의 당선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배고파하며 문단 데뷔를 노려온 ‘늙은 문학청년’들의 재기가 느껴진다. 특히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태식(왼쪽·40)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의 주인공 김영수는 마치 작가 자신 같다. 아니, 무서운 돈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기상청에 근무하며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오른쪽·43)의 역사 장편소설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세조라는 인물을 통해 비정하게 반복되는 역사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은 어떻게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를 돌아본다.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는 강태식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부터 우선 들여다보자. 일단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뒤를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15년 사이에 쌈지마저 탈탈 털린 한국인의 요즘 심사들이 대체로 울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1997년에 대대적인 명예퇴직이 있었고, 2008년에도 그러했다. 1997~2008년 사이에 ‘88만원 세대’라는 한국적 족보를 가진 신세대가 양산되기도 했으니, 명퇴를 당한 직장인이든, 한창 일할 나이에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20대든 이 문장에 마음이 쭉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빨간 대야 가득 마늘이 담겨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다시 1970년대가 상기된다. 김영수는 36살에 명퇴를 당하고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빈 곳이 없어 감정 처리를 어정쩡하게 한 탓에 마늘을 까면서 ‘마늘이 맵다.’며 울고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개시하고, 그는 반지하 방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빨간 대야에 담긴 마늘을 깐다. 마늘을 까다가 곰 인형 눈을 붙이고, 바비인형의 눈썹을 붙이다가 10대처럼 본드도 마신다. 본드에 취한 그는 아내가 ‘한번 하자.’고 간청을 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종이학은 더이상 정성이 아니라 1개당 20원인 상품이다. 사람처럼 살기 위해 그는 본드를 버리고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업한다. 직원으로? 아니, 마운틴고릴라로. 이 지경이 되면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동물은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사람답게 살기 위해 회사 구조조정의 악역을 포기한 사람, 1억원 포상금에 눈이 어두운 남파공작원을 피해 달아난 또 다른 남파공작원 등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의 흉내를 낼 뿐이다. 하마, 악어, 사자도 다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뒤집어 쓴 동물의 탈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마운틴고릴라인 김영수는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때때로 12m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올라가 파란 버저를 누른다. 5000원의 보너스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농사짓고 그 수확으로 배를 불리던 농경사회와 달리 돈 벌어 쌀을 사야 하는 화폐경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왜 이리 밥벌이가 눈물 나고 안쓰러우냐 말이다. 남파간첩인 연락원 동무는 사시미칼로 피칠갑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회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돈”이라고. 돈이 숭상받는 사회에 소속돼 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회색의 디스토피아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울컥울컥한데, 소설은 의외로 낙관하며 끝난다. 불필요해 보이는 대목들이 적지 않지만 군더더기가 많은 것이 또한 인생이고 보면, 소설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 작가는 소설책과 불교 서적을 즐겨 보다가 블로거가 됐고, 인기 블로거로 소설을 써 보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부응하다가 소설가로 데뷔한 경우다. 처음에는 원고지 100장짜리 단편소설을 준비하다가, 쓰면서 깨달음을 얻어장편소설로 개작하게 됐다고 했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즉위한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강원도 상원사에 갔던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허 작가는 “세조처럼 권력을 위해 혈육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초등학교 무렵부터 다 알게 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를 똑바로 알고 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충남 안면도의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내놓은 그의 역사 인식을 잘 살펴볼 일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박근혜의 인생역정… 현대사 담긴 ‘질곡의 삶’

    박근혜의 인생역정… 현대사 담긴 ‘질곡의 삶’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을 향한 재도전의 길에 섰다. 12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와 딸이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올해로 만 60세인 그는 나이만큼 흘러온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질곡의 삶을 살아왔다. 양친을 모두 흉탄으로 잃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비운의 공주’이자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과 14년간 이어온 의정 활동을 디딤돌 삼은 정치 지도자다. 박 전 위원장은 1952년 2월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9살이던 1961년 육군 소장이던 부친이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고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 전 위원장은 1979년까지 청와대, 권부의 핵심에서 정치와 권력을 배웠다. 성심여고를 거쳐 이공계인 서강대 전자공학과(70학번)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부국강병을 앞세운 선친의 영향이 컸다. 인생의 첫 굴곡은 22살 때 찾아왔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절명했다. 신문기사로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의 삶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퍼스트 레이디 대행’이라는 굴곡진 공인의 길로 들어섰다. 원칙주의자 박근혜의 모습은 이즈음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사소한 국정도 수첩에 일일이 기록하며 챙겼다. 폭설이 온다는 날씨 정보만 나와도 “전국을 빠짐없이 챙기라.”며 청와대 참모진 보고를 메모했다는 일화가 있다. 10·26 사태가 난 이튿날 새벽 1시, 유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의 첫마디는 “전방의 상태는 괜찮습니까.”였다. 이후 서울 중구 신당동 옛집에서 보낸 18년간의 야인 생활 동안 그는 아버지 저격범 김재규를 비롯해 박정희 체제를 누렸던 이들의 배신으로 인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저서인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에는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배신하는 사람의 벌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마음 안의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점이다.”라고 나와 있다.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박 전 위원장은 원칙 정치의 외길로 접어들었다. 당 대표 시절엔 ‘수첩공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세히 기록하는 면모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천막당사 2주년인 2006년 3월 한국 정당 최초로 ‘대국민 실천백서’를 출간한 것도 이런 소신의 방증이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가 주목받은 사건은 2000년 당 총재 경선 때다.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부총재로 당선됐으나 이듬해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해 당 개혁안을 요구하며 탈당, ‘미래연합’을 창당하는 강단을 보였다. 2002년에 재입당한 그는 불법 대선 자금 수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침몰 직전이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다. 국민 앞에 과거를 반성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에서 ‘천막당사’를 감행했고 직후 치러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1석이라는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면서 그는 ‘선거의 여왕’이 됐다. 2009년 9월부터 1년 넘게 이어진 세종시 수정 논란은 ‘박근혜 원칙론’의 대표 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했던 ‘행정복합도시’를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려 하자 박 전 위원장은 세종시 원칙론을 고수하며 정부 수정안을 무산시켰다. 원칙주의자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불통 이미지’라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권 주자로서 가장 큰 한계점이기도 하다. 이런 당 안팎의 비판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은 10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소신과 불통을 구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나 혼자 대한민국 짝사랑… 서운한 생각에 눈물만”

    “나 혼자 대한민국 짝사랑… 서운한 생각에 눈물만”

    “나 혼자만 바보같이 대한민국을 짝사랑했구나 하는 서운한 생각에 눈물만 납니다.” 싱가포르에서 1996년부터 12년 동안 수많은 대북 관련 첩보를 수집, 우리 정보당국에 전달해 오다 간첩혐의로 강제 출국당한 서동환(57)씨의 회한이다. ●YS 싱가포르 방문때 임시 경호요원으로 6·25 전쟁 발발 62주년일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동구 길동의 한 낡은 빌라에서 만난 서씨에게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는 찾기 어려웠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싱가포르에서 대연자동차라는 중고자동차 판매업을 경영하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인과 3남 신일(20)씨를 돌보며 어렵게 살고 있다. 신일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1급 중증 장애인이다. 서씨는 2007년 12월 31일 영주권을 박탈당하고 강제출국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 시내 고급 콘도에서 가정부와 운전수를 두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5년 전인 2007년 6월 25일 오전 9시 30분 싱가포르 안전부(ISD)요원들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되면서부터다. 싱가포르 대사관에 파견돼 있던 정보당국 관계자의 부탁을 받고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은익돼 있는 북한 자금의 흐름을 조사해 보고한 것 등이 화근이 됐다. ISD는 “민간인이 왜 국가가 하는 일에 손을 대느냐, 정부 요원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며 영주권을 취소하고 추방했다. 한국 정부가 민간인 신분임을 확인만 해 줬더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게 서씨 주장이다. 그는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 임시 경호요원으로 발탁되면서부터 대북 관련 정보수집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북한 화물선에 다량의 잠수 기구가 있는 것을 알고 접근했다가 북 요원에게 적발돼 10~15m 높이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해상을 통해 탈출하기도 했고, 북한 요원들 사무실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 오기도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다. 서씨는 “아무런 대가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오로지 ‘조국을 위한 일은 공무원들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우울증 아내·정신질환 아들 돌봐 하지만 간첩혐의로 체포되면서 그는 고난의 길로 빠졌다. 부채가 급증해 개인 파산 선고를 받는 등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여러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무엇이 부끄러워 당신이 죽어야 하느냐.”며 붙잡는 부인의 만류로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재입국을 꿈꾸며 말레이시아에서 1년을 기다리던 중, 신일씨는 부모도 못 알아볼 만큼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 부모가 잠시라도 곁을 비울 수가 없다. 며칠 전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아들의 장애등급을 1급에서 3급으로 내리겠다고 통지해 왔다. 부인도 우울증이 심하다. 서씨는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며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생계기반인 싱가포르로 돌아가고 싶어” 서씨의 정부에 대한 바람이라면 생계 기반인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것이다. 서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싱가포르로 돌아가기 위해 청원서를 냈지만 거절당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경찰의 무리한 공안몰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군사용 안테나 계측장비 등 미국 방산업체의 첨단 군사장비를 북한에 넘기려 한 대북사업가 김모(56)씨와 이모(74)씨를 국가보안법상 간첩예비·음모죄로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7월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북한 관계자로부터 미국 NSI사의 군사용 안테나 계측 장비와 고공 관측 레이더, 전파 교란장비, 전파탐지기, 비행기 시뮬레이션, 조종사 헬멧 등 군사기밀과 관련된 장비를 입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이씨는 동업자이자 과거 군납 경력이 있는 김씨에게 장비 입수를 요청했고,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항공사 기술연구소 출신의 지인을 통해 장비 구매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앞서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달 30일 이씨 등을 구속하면서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간첩’ 혐의를 적용,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GPS 전파 교란장비 등 우리 군의 첨단 기술을 북한에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결과 이씨 등이 해당 장비의 팸플릿만 넘겨받았을 뿐 실제로 장비나 기술을 입수하지 못했고, 북한 공작원의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아 ‘간첩예비·음모죄’만 적용해 기소했다. 또 이씨가 ‘비전향 장기수’로 국내 고정간첩 가운데 최고위층이라는 경찰 측 설명과 달리 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장기수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경찰이 최근 정치권의 종북 논란을 이용, 무리한 ‘공안몰이’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이한구 ‘조갑제 종북백과사전’ 인용 논란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19일 야당 의원들을 겨냥해 “종북주의자, 간첩”이라고 언급하는 등 색깔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특히 이 원내대표는 대표적 보수 논객인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가 쓴 ‘종북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을 여과 없이 인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종북백과사전을 거론하며 “이 책을 보니 민주통합당 당선자의 35%, 통합진보당 당선자의 62%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전과자라는 내용이 있다. 국회 전체로 봐서는 당선자의 20%가 전과자라고 한다.”면서 “전과자 비율이 18대보다 2.5배나 증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이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간첩 출신까지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마당”이라고 말해 야권의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원내대표의 연이은 ‘종북 공세’에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이 뽑아 준 대표들이고 국회의 카운트 파트너가 돼야 할 제1야당에 종북이니 간첩이니 하는 도를 지나친 막말은 삼가 달라.”고 촉구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이어 “언제부터 조 대표가 국민들이 선출한 의원들에 대해 종북인지 간첩인지를 재단할 자격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면서 “게다가 여당 원내대표가 종북백과사전을 마치 경전이라도 되는 양 여과 없이 받아들여 제1야당을 무례하게 매도하고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낼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열린세상] 전자기파 공격 철저히 대비해야/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전자기파 공격 철저히 대비해야/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3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해 위성위치 확인 시스템(GPS) 교란 공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항공기 676대, 선박 122척의 GPS가 불통돼 운항에 커다란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북한의 이러한 GPS 교란 공격은 항공기 추락 등 대형 참사를 유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10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북한에 GPS 교란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위산업체 직원들이 최첨단 GPS 교란 장치와 레이더 장비 기술을 북한에 유출하려다 적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력, 가스, 석유, 원전, 통신, 항공, 철도 등 대부분의 국민생활 기반 시설은 자동화 및 네트워크화돼 있다. 이러한 기반 시설의 관리·운영에 필요한 기술은 복잡하고 다양하겠지만, 핵심적 공통 기술은 시스템 또는 장치 상호 간에 ‘시각’(時角)을 맞추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반 시설은 시스템 또는 장치 상호 간에 ‘시각’을 동기화함으로써 서로 약속된 상태에서 프로그램화돼 있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갑자기 시각이 서로 달라지거나 자신의 시각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시스템은 가동이 중단되거나 마비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각을 맞추는 작업이 GPS 신호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GPS 신호가 자신의 위치를 식별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각의 동기 신호로 사용된다. 북한은 이러한 GPS 신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간첩 활동을 통해 우리의 GPS 재밍(jamming) 기술을 탈취해 갔으며, 이를 기반으로 2010년 8월과 지난해 3월, 올해 4월 등 세 차례에 걸쳐 GPS 교란 전파를 남쪽으로 발사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볼 때 북한은 GPS 재밍 무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북한은 지난달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이 일단 개시되면 3∼4분,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지금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수단으로 초토화해 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재밍 기술을 한 단계 높여 고출력 전자기파를 만들었을 것으로 관측되는 점이다. 이러한 고출력 전자기파 무기를 이용하면 대한민국의 주요 기반 시설에 대한 일시적 서비스 중단 차원을 넘어 시설을 직접 파괴할 수 있다. 최첨단 정보 시스템은 예민한 전자기파 공격에도 쉽게 망가질 수 있으며, 이러한 전자기파 공격은 다른 사이버 공격과 달리 누가, 언제, 어디에서 공격했는지 증거가 남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도 전자기파 공격의 파괴력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지만 보안 대책은 초보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자기파 공격을 탐지하고 차폐 시설을 만드는 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지만 상대적으로 위협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국민생활 기반 시설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돼 있어 북한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북한의 값싸고 조잡한 전자기파 공격 장비만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전자기파 공격에 대한 대응대책이 매우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 대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현행 ‘정보통신기반보호법’은 정부가 고출력 전자기파에 대한 취약점 분석, 평가 및 보호대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출력 전자기파에 대한 보호대책은 전문기관의 부재, 예산 및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공격에 대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과제이다. 북한의 GPS 교란 공격이 잠시 주춤해졌다고 해서 이 문제를 가볍게 넘기려는 안이한 자세는 버려야 한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전자기파 공격에 대한 대응대책을 철저히 수립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왜곡한다. 종북세력들은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며, 이를 방해한 미국은 민족의 원수라고 규정한다. 누굴 위한 조국해방전쟁이었으며, 누굴 해방했단 말인가?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북한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 달 만에 남한의 92%를 적화했다.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북한군과 남한 내 좌익세력은 친미·친일·우익세력 등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당시 남한에는 세 부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12만 2000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이는 난징 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hetto)의 유대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다. 혁명의 주력군이라며 치켜세웠던 하층민도 마찬가지였다. 머슴은 악덕 지주의 앞잡이로, 노동자는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하급노동자는 지식계급의 주구(走狗)이자 무산 대중 착취에 앞장선 반동이라는 이유로 죽였다. 공산주의 원로인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으로, 서울시 인민위원장이자 김일성의 수족이었던 이승엽도 실정과 간첩 혐의로 숙청했다. 조국해방전쟁의 은총을 입은 자는 김일성을 민족의 영도자로, 어버이 수령으로 죽을 때까지 받들어 충성하는 자, 소위 ‘김일성 민족’뿐이었다. 적 치하에 놓인 수도 서울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 농지 분배의 대가로 시민들의 재산을 몰수했고, 젊은이는 의용군으로 끌고 갔다. 노인과 아녀자들은 전쟁지원사업으로, 저명인사는 체제선전용으로 북으로 끌고 갔다. 이때 피랍자가 12만명이라니 이산가족의 상처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대한민국 국민이 경상도의 좁은 모퉁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김일성은 “고양이 낯짝만 한 땅에 버티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하루빨리 남해에 쓸어 넣으라.”며 동족의 수장(水葬)을 다그쳤다. 당시 나이 어린 소년들까지 의용군으로 징집해 국군과 맞싸우게 했다. 형제가 마주 서서 총을 겨누게 한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잔인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인민을 해방하겠다며 저지른 조국해방전쟁의 실체다.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 중에는 북한군을 해방군이나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공산당 이념을 맹종해 자유대한민국을 침략한 적구(赤狗)이며, 같은 하늘에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북한군을 규정했다. 전쟁 발발 63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참화를 딛고 일어나 사상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10위권의 수출, 정보기술(IT)산업과 철강, 조선, 자동차는 세계 최고수준이며, 의학과 생명공학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러나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해야 할 식민지라고 호도하고, 종북주의자들은 앵무새처럼 이에 동조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전쟁을 ‘6·25 남침전쟁’으로 명명하고,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좌익세력들이 해방이란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상을 똑똑히 알리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 여야 종북 공방 언제까지…

    여야의 종북 공방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종북주사파의 국회 입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야권은 여권의 공세를 색깔론으로 규정하고 이념 공세를 거둘 것을 주장했다. 특히 야권은 여권의 이념 공세에 공동으로 맞서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종북 논란이 정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1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종북주의자나 간첩 출신까지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그건 (실체가) 차츰차츰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그러나 ‘간첩 출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는 간첩 출신이고 누구는 종북주의자고 이러면 또 쓸데없는 말이 번진다.”면서 더 이상 언급하기를 꺼렸다. 이날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종북주사파 국회입성 방지 대책’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통진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해 “새누리당은 종북 성향을 문제 삼아 두 의원을 제명하라는 뜻을 밝히고 있으나 통진당은 선거부정 건을 문제 삼고 있다.”면서 “제명의 취지와 의도가 다른데 여야 합의로 국회법에 따라 제명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야권은 대여 색깔 공세를 부쩍 강화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종걸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 여권의 국회의원 자격 심사론에 대해 “종북주의를 논의의 중심으로 놓고 간첩이다 아니다 하는 것은 결국 부메랑이 돼서 새누리당에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은 이날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국가관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이 땅을 온통 케케묵은 색깔론으로 물들이고 있다. 대통령이 부추기고 여당 대표까지 나서서 협박하고 있다.”고 여당을 비판했다. 대여 색깔 공세에 잠잠하던 통진당도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색깔론 잔치의 의도는 바로 야권 분열이지만 작은 산이니 준비운동 삼아 함께 넘어가자.”면서 “진보당의 경선 파문은 빠른 시일 내에 수습할 것이지만, 이를 빌미로 벌어지는 색깔론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진당 노회찬 의원도 한 라디오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부친인 박 전 장군이 남로당 핵심 당원으로 가입한 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1949년에 군에서 파면된 사람 아니냐. 원조 종북이라면 박정희 장군”이라며 공세를 강화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탈북자 신분 노출 경찰… 인권위 “징계조치” 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간첩일 수 있다.”며 탈북자의 신분을 노출한 경찰관에게 징계 조치를 내릴 것을 경찰에 권고했다고 6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울산시에서 근무하는 A경관 등은 지난해 3월 10일 자신이 신변보호를 맡고 있는 탈북자 B씨의 집주인을 만나 “탈북자인 B씨가 나쁜 일을 많이 저질렀다.”면서 “거짓말을 워낙 많이 하는 데다 간첩일 수도 있으니 하는 말 중 30%만 믿으라.”고 말했다. 당시 B씨는 위장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A경관 등은 B씨를 강제 연행하는 과정에서도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 얼마 후 혐의는 풀렸지만, 집으로 돌아온 B씨에게 집주인은 “방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경찰 말대로라면 B씨를 세입자로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B씨는 “경찰이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주변에 공개하는 등 인권침해를 저질렀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A경관이 조사 배경 설명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이 다녀간 뒤 집주인이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B씨에게 방을 비워 달라고 한 사실이 있다.”면서 “A경관의 행동으로 B씨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탈북자 위장 女공작원 검거

    북한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하는 정보기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성 공작원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다가 공안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국가정보원 등 공안 당국은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 이경애(46·여)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중순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이씨는 국내 입국 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받은 조사에서 “탈북 이후 중국에서 한국인 남성과 동거를 했는데 그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돼 나도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왔다.”고 입국 이유를 진술했다. 그러나 이씨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고 현재의 북한 실상과 다른 내용이 많아 수상히 여긴 합동신문센터 측이 그를 추궁해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합동신문센터는 탈북자들이 국내 입국 이후 위장 탈북 여부를 가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첫 관문이다. 국정원은 5월 중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구속해 구체적인 임무 등을 조사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씨가 2000년대 초 보위부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돼 위조지폐를 중국 위안화로 교환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동안 이씨가 위안화로 교환한 위조지폐는 100만 달러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같이 직파 간첩을 검거한 사례는 흔하지 않다.”며 “검찰에 송치할 때 정식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동부연합 핵심 전략가’ 김영욱…‘일심회 對北창구 역할’ 이승헌

    ‘종북성향’ 논란을 빚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등 구당권파 당선자들이 30일 국회의원 신분이 됨에 따라 이들과 함께 일할 경기동부연합 출신 보좌진도 대거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구당권파 최대 40여명 포진 국회의원이 채용할 수 있는 보좌 직원은 인턴 2명을 포함, 총 9명으로 통합진보당의 경우 당 차원에서 비정규직 신분인 인턴 직원 채용을 지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구당권파의 친북성향 보좌진은 최대 4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구당권파의 배후 정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실세 이석기 의원은 김영욱 전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을 정무보좌관으로, 당선자 때부터 언론을 담당한 이준호씨를 공보비서관으로 임용했다. 이 의원 측은 “당내 여러 사정으로 아직 보좌진을 모두 꾸리지 못했다.”며 “언론에 수행비서로 거론된 홍순석 전 경기도당부위원장은 합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당에 통보한 보좌관은 김 전 부소장뿐이다.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전략가인 김 전 부소장은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포진한 성남시 청소용역업체 ‘나눔환경’의 설립 과정에도 관여했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이 “우리도 통보받은 김영욱 보좌관 외에 누가 이 의원실에 합류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나머지 보좌진은 베일에 가려 있다. ●3~4명외 아직 베일에 가려져 김재연 의원이 당에 통보한 보좌진은 총괄 보좌를 맡은 김배곤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과 수행비서인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유지훈씨 정도다. 이 외에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석미화 보좌관이 김 의원의 보좌진으로 들어갈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석 보좌관은 18대 국회 초반부터 강 위원장과 함께해 왔지만, 경기동부연합 출신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배곤 보좌관은 지난 12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때 단상에 올라갔던 사람으로, 공동대표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간 뒤 구당권파 당원들을 모아 결의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중앙위 단상 폭력 김배곤도 포함 당원비대위원장인 오병윤 의원의 보좌관 정우수씨도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후신 격인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을 지냈다. 이상규 의원의 보좌관 이승헌 전 민주노동당 대외협력실장은 2006년 간첩단 ‘일심회’ 판결문에서 경기동부연합의 대북(對北) 창구로 지목된 인물이다. 김미희 의원의 보좌관 김기창씨는 경기동부연합의 ‘학맥’인 한국외대 85학번으로, 민노당 성남시협의회의장을 지냈다. 국회사무처는 보좌관 임용 서류 접수를 완료한 뒤 5급 이상 보좌관은 국정원에, 6급 이하는 경찰청에 신원조회를 의뢰할 계획이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GPS 교란장치 北에 넘겨…北 전파도발 관련성 조사

    북한 대남 공작기구의 지령을 받고 첨단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교란장치 등 군사기술을 수집한 비전향 장기수 출신 무역회사 대표 등 3명이 공안 당국에 검거됐다. 서울경찰청 보안부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공조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GPS 전파 교란장치 등 국내 첨단 군사기술을 수집한 이모(74)씨와 김모(55)씨 등 2명을 국가보안법(간첩)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전직 레이더제조업체 대표 정모(61)씨를 같은 혐의로 입건, 조사하고 있다. 이씨와 김씨는 지난해 7월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첨단 군사기술 수집 지령을 받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정씨에게 접근해 GPS 기술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뉴질랜드 교포로 알려졌다. 이씨는 지난 1972년 2월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90년 2월 가석방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라고 공안 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공안 당국은 이씨 등이 GPS 전파 교란장치 등의 군사기술을 실제 북한에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북한 측은 이와 관련, 부인했지만 공안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16일동안 우리 측 영공과 해상에 시도한 GPS 전파교란 공격과의 관련성을 조사 중이다. 공안 당국은 또 이들이 탄도미사일 위치추적 안테나(NSI 4.0)와 고공 관측 레이더 기술 등을 추가로 확보해 북한에 빼돌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 25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이번 사건을 송치했으며, 검찰은 이씨 외에 또 다른 관련 업체가 기술을 유출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中·日 영유권 이어 ‘외교 스파이’ 갈등

    중국과 일본이 영토·해양 주권 등을 놓고 연이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외교 스파이’ 논란이 번질 조짐이다. 2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간첩 의혹이 있는 일본 주재 중국 대사관의 외교관이 일본 사법당국의 출두 요구를 거부하고 귀국했다. 일본 경시청과 공안당국은 주일 중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1등 서기관(45)이 외국인등록증명서를 부정 사용해 은행계좌를 튼 뒤 일본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출두를 요청했지만, 이 서기관은 이에 응하지 않고 돌연 귀국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1등 서기관은 세계 각국에서 첩보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인민해방군의 정보기관인 총참모부 제2부 출신이다. 일본 공안당국은 이 외교관이 총참모부의 지시를 받고 외교관으로 위장해 일본 내에서 스파이 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고 그가 접촉한 인사들을 상대로 일제 조사에 나섰다. 그는 인민해방군 산하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에는 후쿠시마대 대학원에서 지방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 외교관은 2007년 7월 경제담당으로 주일 중국 대사관에 부임했으며 일본 정치인의 산실인 마쓰시타정경숙에도 적을 두고 있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이 외교관은 2008년 도쿄대 연구원이었을 때 허위 주소 등을 기록한 신청서로 외국인등록증명서를 부정으로 취득했다. 그는 외교관 신분을 속이고 이 증명서로 은행계좌를 개설했으며, 중국에 진출하려던 건강식품판매회사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매달 10만엔(약 150만원) 안팎을 입금받았다. 또 이 건강식품판매 회사가 홍콩에 설립한 관계회사의 임원으로도 취임해 2009년에는 보수로 수십만엔을 받았다. 이는 외교관이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상업활동을 금지하는 빈 조약에 저촉된다. 일본 공안당국은 이달 중순 이 외교관을 외국인등록법위반 혐의로 입건하는 방안으로 출두를 요청했지만, 중국 대사관은 출두할 수 없다고 회신했으며, 같은 날 이 외교관은 중국으로 일시 귀국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치고받는 中] 서방 겨냥 ‘막말공세’ 언론전

    “공안은 즉각 서양 쓰레기들을 몰아내라. 중국에서 혹세무민하는 서양 실업자들과, 한·미·일을 위해 중국 지도를 측량해가는 외국인 간첩들을 잡아내라. 알자지라 방송의 중국 지사를 폐쇄해 중국을 욕하는 나쁜 놈들의 입을 닥치게 하라.”(중앙CCTV 앵커 양루이(楊銳)가 웨이보에 올린 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스캔들과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사건 관련 기사들이 서방 언론들을 통해 쏟아지는 데 대해 중국이 정면 대응으로 나서고 있다. 관영 언론을 내세워 외신을 상대로 ‘막말 공세’를 펴고 있다. 최근 베이징에서 발생한 일련의 외국인 범죄를 겨냥해 웨이보에 과격 발언을 올려놓은 중앙CCTV의 유명 앵커 양루이를 해고하라는 외국인 네티즌들의 주장에 외신이 동조하자 중국 언론들이 외신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양루이가 중국내 외국인 범죄자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비난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를 문제 삼아 외신들이 그의 해고를 요구한 것 역시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가 24일 주장했다. 인민일보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인민망도 ‘서방 매체가 중국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제목의 평론에서 “서방매체들은 자국의 입맛에 맞는 부정적인 중국 뉴스들을 양산해내기 위해 불공정한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인민일보 등 중국 주요 언론들은 중국의 해외문화원인 공자학원의 중국인 강사진에 대해 미국이 비자 연기 신청을 거부한 것을 문제 삼아 미국의 반중(反中) 행태를 비난하는 기사를 일제히 주요하게 다뤘다. 신문은 “지난 17일 공자학원이 미 정부의 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J-1비자를 소지한 공자학원의 중국인 교사들에 대해 6월 말까지 미국을 떠나라고 미 국무원이 통보했는데, 공자학원은 학위를 수여하는 기구가 아니어서 다른 문화교류 기구처럼 정부 인증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뒤 “이는 미국 사회에 반중 정치세력이 전부터 공자학원을 눈엣가시로 여겨온 결과다.”고 성토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