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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秋男…추남을 노린다

    秋男…추남을 노린다

    올가을 최고의 추남(秋男)은 누가 될까. 하반기 스크린에 남자 배우들이 대거 컴백해 영화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상반기에는 ‘댄싱퀸’의 엄정화를 시작으로 ‘화차’의 김민희,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 ‘도둑들’의 전지현 등 여배우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반면 하반기에는 한류 스타부터 꽃미남 스타까지 ‘흥행 킹’ 자리를 두고 남자 배우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류 스타 이름값 할까 올가을 극장가에는 오랜만에 스크린에 도전장을 낸 한류 스타들이 많다. 이들이 국내에서도 이름값을 할 것인지 관심을 모은다. 최근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꽃중년의 매력을 보여준 장동건은 스크린에서 플레이보이로 변신한다. 그는 다음 달 11일 개봉 예정인 허진호 감독의 신작 ‘위험한 관계’에서 중국 상하이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플레이보이 셰이판 역으로 출연한다. ‘위험한 관계’는 1930년대 상하이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의 치명적인 사랑과 비극적인 관계를 그린 영화로 장동건은 중화권 톱스타 장바이즈, 장쯔이와 호흡을 맞췄다. ‘소간지’라는 별명을 가진 소지섭도 다음 달 18일 신작 ‘회사원’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그는 살인 청부 회사에 다니는 청부살인업자로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가장한 지형도 역을 맡았다. 그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살인을 해야 하는 인물의 비애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했다. 이 작품에는 드라마 ‘유령’에서 소지섭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곽도원과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동준도 출연한다. 소지섭은 “살인 청부 회사의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마음에 들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출연을 결심했다.”면서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이 한다는 ‘시스테마’라는 액션을 했는데 아주 어려웠다. 실제 타격 위주로 연기해서 정말 많이 맞고 많이 때렸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악마를 보았다’ 이후 2년 만에 컴백한 이병헌은 13일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데뷔 후 첫 사극에 출연한 그는 ‘왕자와 거지’라는 익숙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왕 광해와 광대 하선을 오가며 1인 2역에 도전했다. ●연기파 남자 배우들 투톱 행진 연기파 배우들도 가을 스크린에 대거 컴백한다. 투톱 체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간첩’에서는 김명민과 유해진의 코믹 연기 대결을 볼 수 있다. ‘간첩’은 간첩 신고보다 물가 상승이 더 무서운 생활형 간첩들이 10년 만에 암살 명령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첩보극이다. 김명민은 이 작품에서 밀매를 통해 들여온 불법 비아그라를 판매하며 생활을 이어 가는 김 과장 역을 맡아 지난 7월 흥행에 성공한 영화 ‘연가시’와는 또 다른 연기를 시도한다. 유해진은 고정 간첩들에게 지령을 주기 위해 북에서 내려온 최 부장 역을 맡았다. 다음 달 18일에 개봉하는 방은진 감독의 신작 ‘용의자X’에서는 개성파 배우 류승범과 조진웅이 호흡을 맞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걸작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화한 것으로 천재 수학자 석고(류승범)가 자신이 남몰래 사랑하는 여자 화선(이요원)을 위해 그녀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감추려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하며 벌이는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이다. 수학만이 가장 완전하다고 믿는 천재 수학자 역을 맡은 류승범은 “최대한 류승범이 갖고 있는 생각과 습관을 버리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조진웅은 화선이 범인이라 확신하고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담당 형사 민범 역을 연기한다. 11월에 개봉할 예정인 스릴러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에는 정재영, 박시후가 투톱으로 나선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연쇄 살인범이 공소시효 만료 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액션 영화다. 이 작품에서 박시후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책으로 펴낸 뒤 잘생긴 외모로 대중의 인기를 얻는 두석을 연기한다. 정재영은 그런 두석을 15년 넘게 쫓다가 그를 벌하기로 결심하는 형사 형구 역을 맡았다.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로 호평받았던 정병길 감독의 신작이다. ●‘충무로 젊은 피’ 이제훈 vs 송중기, 승자는? 한편 누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꽃미남들도 스크린 컴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패션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제훈은 다음 달 3일에 개봉하는 ‘점쟁이들’로 돌아온다. 이 작품에서 공학박사 출신의 점쟁이 석현 역을 맡은 그는 그동안의 다소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몸 개그와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 등으로 코믹 연기에 도전할 예정이다.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여심을 흔들었던 송중기도 늦가을에 새 영화 ‘늑대소년’으로 스크린에 컴백한다. 송중기는 다음 달 31일에 개봉하는 이 작품에서 거칠고 야성적인 이미지의 늑대소년으로 변신했다. 세상에 없어야 할 위험한 존재인 늑대 소년(송중기)과 세상에 마음을 닫은 외로운 소녀(박보영)가 만나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밴쿠버국제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되는 등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올가을에는 티켓 파워가 강한 남자 배우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면서 “상반기에 이어 한국 영화 강세가 계속될 것인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北 안전보위부 소속 위장탈북 간첩 체포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로 들어온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을 체포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모(50)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 등 혐의로 지난 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에 들어온 김씨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신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의 탈북자 위장간첩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 국정원은 두달간에 걸친 추가 조사 결과 김씨의 진술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김씨는 15년전 국가안전보위부로부터 중국에 있는 남한 출신 주요인사 등의 동향을 파악하고 탈북자 정보 등을 수집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고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6월에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정보를 수집해 북한 당국에 보고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중국에서 동거하던 여성과 함께 입국한 김씨는 이 여성과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간첩혐의로 처벌받을 것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김씨와 함께 입국한 이 여성에 대해서도 위장간첩인지 를 조사하고 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반체제 인사를 색출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 관리하는 공안기구로 체제수호의 첨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관은 대간첩 업무와 해외정보 수집, 해외공작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약 5만여명의 요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민보안부, 정찰총국과 함께 북한의 3대 정보기관으로 불린다. 공안당국은 지난 5월에도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로 들어온 보위부 소속 이모(46·여)씨를 검거한 적이 있다. 하종훈·홍인기기자 artg@seoul.co.kr
  • ‘백골사단’ 영상 유튜브서 화제

    ‘백골사단’ 영상 유튜브서 화제

    3분 8초 분량의 군 부대 홍보 동영상이 세계적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육군 3사단(백골부대)의 홍보 동영상인 ‘천하무적 백골사단’은 이 사이트에 선보인 지 한달여 만인 10일 오후 조회 수 4만 1000건을 돌파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들의 평균 조회 수가 1만건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기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과 부대 관련 홍보 동영상이 이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동영상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모든 장면을 감동적인 메시지와 글, 역사적 화면으로 구성해 백골 부대를 홍보하고 있다. 1947년 12월 백골부대의 전신인 조선경비대 3여단 시절의 6·25전쟁 활약상, 대간첩 작전 등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6·25전쟁 초기 전투 현장을 시찰하던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3사단 소속 병사의 “죽는 순간까지 참호를 지킬 것”이라는 대답에 감동해 미 본토에 주둔해 있던 2개 사단의 긴급 증파를 건의하게 됐다는 일화도 삽입했다. 이재협 3사단 정훈공보참모는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국민이 흥미롭게 보지 않는다면 어떤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없다.”고 유튜브 동영상의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귀화 전 ‘억울한 옥살이’ 국가배상 첫 판결

    외국에 귀화했더라도 한국인이었을 때 국가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면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이원중 판사는 4일 간첩 누명을 쓰고 가혹행위를 당했던 일본인 허모(69)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허씨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 판사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허씨가 대한민국 국민이었을 때 발생한 만큼, 이후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고 해서 국가배상청구권을 잃는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국가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北에 군사기밀 넘긴 ‘자발적 간첩’ 2명 구속

    수원지검 공안부(부장검사 박용기)와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북한공작원을 찾아가 공작교육을 받고 군사기밀을 넘기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장모(58)씨와 유모(57·여)씨를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장씨는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한공작원을 스스로 찾아가 남한에서 ‘통일사업’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포섭돼 공작교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북한에 넘긴 기밀에는 우리 군 동해 해안초소의 감시카메라 성능, 제원, 설치장소 등 군사기밀뿐만 아니라 ‘국회수첩’(2010, 2011) ‘FTA활용 실무매뉴얼’ 등 국가 주요 정책자료도 포함됐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1954년 통일교 창시…194개국에 신도 300만

    1954년 통일교 창시…194개국에 신도 300만

    3일 별세한 문선명 통일교 총재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종교 지도자, 평화운동가,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 기업가…. 1991년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문 총재를 ‘20세기를 만든 1000명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이름을 떨친 문선명. 그의 생애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철학이자 신념은 다름 아닌 ‘통일원리’와 ‘통일사상’, 그리고 ‘참사랑’이다. 문 총재가 평생 꿈꿨던 세상은 ‘인간 조상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연의 평화이상세계’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문선명은 14세가 될 때까지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어릴 적부터 ‘세 개 이상의 박사를 취득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었던 그는 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리는 강한 사람이었다.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나와 덕흥·이언·연봉교회에서 목회를 했던 종조부 문윤국(1877~1958)을 비롯해 적지 않은 조상들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일까. 정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엔 교회 유년주일학교 반사로 어린이들을 지도했고 학생들 앞에서 설교할 때면 목사와 장로들이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세계 194개국에 300여만 신도를 거느린 통일교 교회를 세운 종교 지도자. 그의 종교 인생은 16세가 되던 해인 1935년 부활절 날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부활절 아침, 오랜 시간 눈물어린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셨습니다. 지상에서의 하나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사양했지만 결국 대명을 받아들였고 그 대명은 인류구원사업이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친 문 총재는 3년간에 걸친 일본 도쿄 유학(와세다대학 부속 와세다고등학교 전기과) 시절 ‘통일원리’ 구명에 모든 것을 쏟았다. 유학 길 부산으로 가는 열차에서 “학업을 마치고 오는 날 나라를 찾아 세우리라.”고 다짐했던 그의 실천은 해방 이듬해 평양행으로 이어진다. 공산체제하 종교인의 생활은 당연히 가시밭길. 이승만 대통령이 밀파한 간첩으로 지목돼 흥남형무소에서 2년8개월의 혹독한 수감생활을 마치고 월남해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해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사실상 통일교의 태동이다. 이후 그에게 이어졌던 시련은 통일원리가 씨앗이다. ‘태초의 이상세계는 모든 인류가 한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며 인간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부모, 부부, 자녀가 4위기대의 가정을 형성해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려드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통일원리에 바탕을 둔 통일사상은 바로 좌익과 우익의 대안인 ‘두익사상’이다. 인류의 참 평화는 좌익이나 우익으로는 안 되며 머리와도 같은 중심사상인 공생공영공의의 두익사상으로 남과 북의 가치관을 통일함으로써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일찍부터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했던 그가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고 평양으로 김일성 주석을 찾아간 것이나 민간예술단으론 분단 이후 처음인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평양공연을 성사시킨 것도 바로 그 통일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분열과 갈등, 전쟁으로 점철된 종교로는 세계평화와 인류 구제사업에 한계가 있다던 문 총재가 눈을 돌린 것은 참가정 운동이다. 인류시조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순결을 되찾아 참사랑의 역사를 출발시킨다며 거행해 온 국제축복결혼식은 국제적으로 눈길을 끈 세기의 이벤트이다. 그는 2007년 미수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불쌍하신 하늘을 위해, 그리고 사망 권에서 허덕이는 타락인류를 구해 주기 위해 혀를 깨물며 참고 살아온 비참한 생애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이런 심정의 내연을 들여다보고 한마디만 던져도 본인의 눈물은 폭포수가 될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그가 일군 통일교의 위상은 한국 기독교에선 이단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 우주굴기의 원천/민경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 우주센터장

    [열린세상] 중국 우주굴기의 원천/민경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 우주센터장

    중국의 우주굴기(宇宙?起)가 무섭다. 중국은 최근 자국 기술로 세계 세번째 실험용 우주정거장인 톈궁 1호와 유인우주선 선저우 9호를 발사, 자동·수동 도킹 실험에 성공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은 이미 1970년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개량한 창정(長征) 1호 로켓으로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둥팡훙’(東方紅)을 발사하며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계 다섯번째 위성 자력 발사 국가가 됐다. 이후 지속적인 우주 개발을 통해서 현재는 우주기술력 종합순위에서 일본을 제쳤고, 유인우주선 기술만으로는 세계 3위의 우주강국 반열에 올랐다. 중국이 어느 날 갑자기 우주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 수천만 아사자가 발생한 1950년대 대약진운동 시기의 경제적 후진과 1960년대 문화혁명기의 사회적 대혼란에도, 중국은 마오쩌둥이 주창한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 대륙 간 탄도탄, 인공위성)의 전략무기체계 개발을 꾸준히 추진하며 우주기술의 기초를 쌓았다. 이를 통해 로켓기술을 확보한 중국은 1992년 유인 우주계획인 ‘프로젝트 921’ 가동과 1993년에 항공우주 기술개발 전담 조직인 국가항천국(NRSC)을 설립하며 유·무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마침내 ‘신의 배’라 불리는 선저우(神舟) 우주선 발사와 함께 우주 유영에도 성공한다. 중국은 계속해서 우주정거장 건설과 유인 달탐사 계획까지 거침없이 밝혔다. 오늘날 중국의 우주기술 발전은 중국 지도부의 세대를 초월한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탄일성’부터 ‘프로젝트 921’까지 우주개발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실패와 인명 참사가 있었지만, 중국 지도부는 오히려 전폭적인 지원으로 뒤를 받쳤다. 우주기술을 포함한 중국의 과학기술 우대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중국의 우주기술 개발을 주도한 로켓 전문가 첸쉐썬(錢學森)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국방과학자문위원회를 이끌었고, 독일 미사일 기지 조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지만 공산당원이라는 혐의로 미국의 탄압을 받았다. 마오쩌둥은 1950년부터 천쉐썬 귀국 공작에 착수, 미국과의 5년간 담판 끝에 거물 간첩 맞교환 방식으로 1955년 그를 중국으로 데려왔다. 귀화 후 중국 우주 개발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지대한 역할을 한 그는 중국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국보급 과학자로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그가 병석에 있을 때 장쩌민 전 주석과 후진타오 주석이 수차례나 문병을 갔을 정도다. 그의 장례식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장으로 거행돼 중국 전·현직 최고지도부가 총출동하여 마지막까지 최고의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 과학기술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이 같은 애정은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차원 높은 이공계 중시정책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중국 내 과학자들의 사기 진작은 물론 세계 정상급 수준의 유학파 우수 과학자들의 유턴이 줄을 이었다. 지금의 과학기술 강국 중국이 만들어진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도 무방할 정도다. 승승장구하는 중국의 우주기술 발전과 이를 통한 국가적 위상 제고를 보며 우리의 과학기술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초지일관으로 견지한 과학기술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철학과 태도가 잉태한, 오늘날 돌돌핍인(??逼人·기세등등하게 상대를 압박한다)하는 자세의 중국을 보며, 이공계 기피현상이 가속화되는 우리의 현실을 쓰디쓰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인구와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만이 국가의 성장동력이라는 데는 반론이 없다. 차세대 성장동력이자 우리 국민의 먹거리가 달렸지만, 오로지 성공만을 좇아 일희일비하는 풍토가 지속하는 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은 주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면서 50년 이상 지속적인 우주 개발을 통해 황금의 결실을 보고 있는 중국이 보여준 과학기술에 대한 중단 없는 지원, 그리고 과학기술자 또는 전문 인력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그야말로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
  • “美, 위키리크스 마녀사냥 중단하라” 어산지, 두달만에 모습 공개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1)가 미국 정부를 겨냥해 위키리크스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어산지는 19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 1층 발코니에 나와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6월 영국 정부의 스웨덴 강제 송환을 피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한 지 두 달 만이다. 그는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라고 요구했다.”면서 “미국은 비밀 외교 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에 대한 마녀 사냥을 끝내라.”고 밝혔다. 어산지는 이어 위키리크스에 국무부 외교전문을 넘겨준 미 일병 브래들리 매닝의 석방을 촉구했다. 그는 망명을 허가한 에콰도르 정부와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자신의 망명 결정을 지지한 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도 “용감한 나라들이 정의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또 징역형을 받은 러시아 펑크밴드 푸시 라이엇을 들어 “자유를 탄압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는 단결되고 단호한 저항도 있음을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10분에 걸쳐 준비해온 성명을 모두 낭독한 어산지는 자신을 기다려준 지지자들을 향해 양쪽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앞서 영국 정부는 대사관에 들어가 어산지를 직접 체포하겠다는 뜻을 에콰도르 대사관에 전달했다. 이에 에콰도르 정부는 “영국의 위협은 국제법을 무시한 어리석은 행동”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고, 곧이어 남미국가연합(UNASUR)의 긴급 외무장관 회의가 열리면서 영국과 남미 간의 외교 갈등이 불거졌다. 한편 크리스틴 흐라픈손 위키리크스 대변인은 발표에 앞서 “스웨덴 정부가 어산지를 미국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그동안 자신이 스웨덴으로 추방되면 재판 없이 신병이 미국으로 넘겨져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앞서 어산지는 2010년 8월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같은해 12월 런던에서 체포된 뒤 스웨덴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보석허가를 받아 지난 6월 19일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신청했다. 2007년 개설된 위키리크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군사기밀 9만건을 포함해 수십만건의 비밀정보를 유출해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에콰도르, 어산지 망명 허용… 英은 “불허” 외교 갈등 고조

    에콰도르가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망명을 승인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에콰도르의 결정과 상관없이 어산지가 영국을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데다 스웨덴 정부도 자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외교 마찰이 고조되고 있다. 리카르도 파티노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은 16일 오전(현지시간) 수도 키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산지는 정치적 박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라며 “에콰도르 정부는 어산지의 망명을 승인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영국 정부가 어산지의 신병을 넘기지 않으면 런던의 에콰도르 공관에 진입하겠다고 협박한 점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영국 외무부는 “실망스러운 결정”이라면서도 “에콰도르의 결정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외무부는 트위터를 통해 “영국 정부는 어산지를 스웨덴으로 인계해 재판을 받게 할 법적인 책임이 있다.”며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 정부도 에콰도르 대사를 불러 “에콰도르가 스웨덴 법 절차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외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영국 정부가 어산지의 에콰도르행을 강력 저지할 방침임에 따라 그가 에콰도르 대사관을 나설 경우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고 BBC는 전했다. 런던 경찰은 이날 어산지의 지지자가 집결한 에콰도르 대사관 밖에서 3명을 체포했다. 앞서 파티노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영국 정부의 협박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면서 “이번 사태는 민주화된 문명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우리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파티노 장관의 기자회견 뒤 위키리크스도 즉각 항의성명을 내놨다. 위키리크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사관을 습격하겠다는 영국의 주장은 세계 모든 나라의 대사관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빈 협약을 무시한 조치이며 일방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이라면서 “영국의 협박을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2010년 8월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그해 12월 런던에서 체포돼 540일간 보석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 대법원이 그의 추방 거부 신청을 최종 기각하자, 같은 달 19일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신청했다. 어산지는 자신이 스웨덴으로 추방되면 재판 없이 신병이 미국으로 넘겨져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2007년 개설된 위키리크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군사기밀 9만건을 포함해 수십만건의 비밀정보를 유출해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자이니치 아닙니다 재일조선인 입니다

    “해방 뒤 일본에 남은 60만 조선인에게 국적은 없었다. 식민지 시절 강제된 일본 국적을 1952년 일방적으로 박탈당했는데, 당시 조국은 분단됐을 뿐 아니라 남북 모두 일본과 국교가 없었다. 그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은 처참한 무권리 상태에 빠졌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은 몹시 슬픈 얘기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하면 빠찡꼬업자, 사채업자, 간첩단, 조총련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극심한 차별 속에 먹고살 게 없어 그리 됐다곤 하지만 왠지 밝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정대세, 추성훈 같은 스포츠 스타의 등장으로 이런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다. 그럼에도 ‘한국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대세가 정작 국가대표로서는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택할 정도로 여전히 모호한 대상이 재일조선인이다. 저자는 이를 ‘자이니치’(在日) 같은 줄임말 말고 ‘재일조선인’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집약시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이니치라는 줄임말에는 ‘일본 사람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일본에 있지?’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의도적으로 ‘조선’이라는 표현을 피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바보 같고 멍청하고 게으르다.’라는 등식을 만들다 보니 조선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드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분명하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본다. 재일조선인을 차별하지 않을 때, 행복해지는 것은 재일조선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해 뒀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다 이런 말도 해 뒀다.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영환 “1박 2일간 전기고문·구타당했다”

    김영환 “1박 2일간 전기고문·구타당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30일 “중국 당국에 체포된 뒤 지난 4월 15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구타와 전기고문이 5~8시간 정도 지속됐다.”며 중국 구금 당시 받은 고문 및 가혹행위을 상세히 공개했다. 김씨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기 직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4월 10일부터 7일 동안 연속으로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했고 6일째 되는 날에는 물리적 압박이 시작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체포후 18일간 묵비권 행사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세부내용은 함구했던 김씨가 구체적으로 고문 정황을 밝히면서 이 문제가 한·중 양국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전기고문은 50㎝ 정도의 전기봉으로 이루어졌고 구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방식이었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얼굴에 엄청나게 심한 충격이 있었다.”면서 “30분~1시간 정도 구타를 하다가 얼굴에 상처가 심해 다시 전기고문을 하는 식이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김씨는 “전기고문을 하기 1시간 반 전에 복면을 씌우고 심전도 검사와 혈압 검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고문을 했다.”며 “위에서 결재를 받고 나서 계획적으로 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3월 29일 체포되고 나서 18일 동안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고문과 가혹행위 때문에 4월 16일 새벽에 묵비권을 풀었다.”고 말하고 “그 뒤에는 심한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안전부에서) 조사를 받는 한 달 내내 수갑을 채우고 의자에서 잠자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중국 당국의 조사내용에 대해서는 “우리의 북한인권 정보조사 활동을 조서에 포함시키면서 구체적인 혐의는 얘기 안 했지만 이런 것을 가지고 혹시 간첩죄나 이런 것으로 걸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와 중국 분들이 함께 활동을 했는데 그 부분과 관련된 조사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부 영사면담 지연 납득안돼 그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전기고문 등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 쪽에서 신중한 대응을 요구한 측면이 있고, 함께 활동하시는 분들, 특히 중국 국적을 가진 분들에게 위해가 갈 것을 우려했다. 그 부분은 지금도 제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정부의 초기 영사대응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1차 영사면담일인 4월 26일이면 제가 잡히고 29일째 되는 날인데 그 전에 영사면담을 왜 오지 않았는지 그 부분이 납득이 안 된다. 중국 안전부에서 허가하지 않아서 올 수 없었다고 했는데 영사 면담이라는 것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중국이) 허가하지 않고는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김씨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거나 유엔 인권이사회에 청원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을 포함해서 다른 것도 동료들과 상의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 등에 나설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반체제 운동을 하는 분들과 접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북한 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는 분을 지원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서도 북한 내 반체제 세력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함구했다. ●인권위, 본격조사 착수 예정 김씨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이용근 북한인권팀장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중국 당국의 고문과 가혹행위, 부당한 처우 등에 대해 1시간가량 상세히 진술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중국 당국의 김씨 고문 행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이날 ‘한국의 유명 반북 인사가 중국 정부를 기소하겠다고 위협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데 대해 외교가에서는 중국 당국이 정식으로 대응에 나서기 전 사전조치로 환구시보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연합뉴스
  • 무능한 인사·전략 부재가 ‘실패한 영웅’을 만들었다

    130권짜리 중국 통사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초패왕 항우를 ‘자고 이래 첫 번째 인물’로 평가했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승승장구해 천하 제패를 눈앞에 두었던 ‘역발산 기개세’(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의 영웅. 하지만 유방과의 4년간에 걸친 초한전쟁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삶에는 흔히 ‘크게 흥했다.’와 ‘크게 몰락했다.’는 상반된 묘사가 함께 붙는다. 엇갈린 평가와 달리 여전히 중국인들로부터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 항우. 그는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불굴의 패기와 의지로 진을 멸망시킨 항우는 당대의 숙적 유방보다 훨씬 앞서 간 난세의 영웅이었다. 진의 주력군을 완전히 평정한 그 유명한 ‘거록 전투’며 천하 제패의 꿈을 다졌던 ‘팽성 전투’만 보더라도 유방은 항우에게 한참 뒤졌었다. 그런데 마지막 ‘오강 전투’에서 ‘사면초가’란 최후의 말과 함께 항우를 패배와 자살로 몰아간 원인은 무엇일까. ‘항우 강의’(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김영사 펴냄)는 유년기부터 오강의 최후까지 ‘사기’에 바탕을 두고 항우의 모든 것을 훑어 패인을 해부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국내에선 ‘사기강의’로 유명한 저자가 명쾌하게 추려 세운 패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유방과 달리 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정치적 유치함과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도 군사를 수동적으로 썼던 군사전략의 부재, 그리고 제 능력을 과신한 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성격이 그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특출한 게 없었던 유방에 비해 항우는 탁월한 군사전문가였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유방의 곁엔 늘 모사가와 책사들이 모여들었다. 항우는 따르던 인재를 간수하지 못해 흩어지게 만들고, 심지어는 배반과 배신의 아픔을 거듭 맛봐야 했다. 유방 측에 붙어 간첩 행위를 한 삼촌 항백을 단죄하지 않은 것처럼 인정에 치우친 무능한 인사는 그 패착의 으뜸이다. 불같은 성격은 참모와 부하들을 두렵게 만들어 작은 잘못에도 부하들은 유방에 투항하곤 했다. 그에 비해 유방은 군사와 인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터럭 같은 미관말직의 의견도 기꺼이 수용하는 노회한 인물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패기, 용맹으로 단숨에 천하를 장악했지만 잇따른 측근의 배신과 정치력 부재, 정책 실패는 결국 그를 패자로 전락시킨 치명적 고리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구석구석에 배치해 놓은 항우의 색다른 인간미는 흥미롭다. 전투에 지친 군사와 백성을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자며 유방에게 일대일 결투를 제안한 것이며 오강 전투에서 패한 뒤 ‘재기’를 기약하자며 강을 건너 피하라는 부하의 말을 물리친 것, 자살 직전 현상금 붙은 제 머리를 옛 부하였던 유방의 장수에게 기꺼이 맡긴 일…. 그래서일까. 저자는 실패한 영웅인 그를 ‘겉과 속이 같은 타고난 영웅’으로 평가한다. 1만 5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간첩 혐의 재일교포 구말모씨 40년만에 재심서 ‘무죄’ 판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환수)는 23일 북한 지령을 받고 국내 정보를 빼돌리는 등 간첩 행위를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재일교포 구말모(75·재일전남도민회장)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구씨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어서 임의성이 없어 증거로 사용될 수 없고, 증거능력이 있는 일부 진술이나 압수 서류는 혐의를 인정하기 매우 부족하다.”고 밝혔다. 구씨는 1970년 월북해 지령을 받고 남파된 뒤 국내 정치정세 및 학내 동향을 보고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의 판결을 받았으며, 10년가량 복역한 뒤 1981년에야 가석방됐다. 구씨는 “석방 이후에도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며 “무죄 판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재일교포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건강 좋지 않지만 심각한 정도 아니다”

    “건강 좋지 않지만 심각한 정도 아니다”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114일 만에 귀국한 김영환씨는 지지자들의 환영에 밝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20일 선양발 대한항공편 KE834편을 타고 일행 3명과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씨는 승객이인 모두 내린 후 보딩게이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 소속 회원 10여명이 “환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박수를 치며 그를 맞았다. 김씨는 “3개월간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해 혈압이 높은 상태고 몸이 좋지는 않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체포 이유와 석방조건 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구체적인 것은 다음에 국민들께 알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국과 중국 당국 모두 김씨에게 적용된 국가안전위해죄의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함구하고 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중국 당국이 적용한 혐의 내용으로 미뤄 그가 단순히 월경방조죄 등으로 체포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를 체포한 주체가 우리의 국가정보원 격인 중국 국가안전청인 만큼 국가변란이나 간첩행위와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김씨의 혐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확인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의 중국 내 활동이 국가정보원이나 미국 자금과 관련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한 인사는 “김영환씨가 북한 내 민주화 조직을 구축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 쪽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한 것으로 안다.”면서 “자생적인 북한 내 반체제 조직과 인사들을 지원하는 역할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1980년대 민족해방(NL) 계열 주사파의 상징적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당시 주사파 운동권의 교본이 된 ‘강철서신’의 저자다. 1986년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6월형을 선고받았고 1989년 7월 북한노동당에 입당했다. 김씨는 1991년 밀입북 이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했지만 방북하여 김일성을 만난 뒤로 북한 현실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으며, 1999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전향문을 쓰고 풀려났다.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한 인사들과 공동으로 ‘시대정신’이라는 계간지를 만들고 북한 민주화와 탈북자 지원 활동 등을 하며 북한 비판에 앞장섰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무죄 확정 그 후/황성기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무죄 확정 그 후/황성기 문화부장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원 1호 법정. 대법관의 말을 자세히 들으려 귀에 양손을 대고 있던 그가 복받친 듯 눈시울을 붉힌다. 김동순(67)씨.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집회 와중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모의 여간첩 사건’ 원정화씨의 옛 의붓아버지다. 장맛비가 내리는 대법원을 빠져나오면서 김씨는 “꿈만 같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판결이 잘못돼 법정구속되지 않을까 전날 한숨도 못 잤다.”고도 했다. 악몽 같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하늘을 올려다본다. 4년 전 수원지검은 원씨와 김씨를 탈북자로 위장한 ‘부녀간첩’이라고 발표했다. 김동순씨는 원씨 구속 직후인 2008년 7월 2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이듬해 2월 김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거가 없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항소했으나 1심 판결을 뒤집을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2010년 7월 서울고등법원의 무죄판결. 결기라도 부리듯 거듭된 검찰의 상고. 지루하게 시간이 흐르고 2년이 더 지나 대법원의 무죄확정을 받았다. 수사당국이 원정화씨의 옛 의붓아버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01년 함께 탈북하고, 북한을 상대로 한 무역사업도 함께 했던 김씨의 정체가 실은 원씨를 관리하는 ‘고위간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상식적이다. 간첩 잡는 게 공안검찰의 임무니 거기까진 좋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에 낸 증거는 초라했다. 김씨의 노동당원증, 원씨와의 전화 감청 등이 고작이었다. 김씨는 탈북자들이 받는 합동신문에서 ‘노동당원’이었다고 진술했다. 북에서의 신원을 소명할 유일한 자료였던 당원증은 김씨가 검찰에 전해준 것이었다. 간첩이라면 당원증을 소지할 리도, 집에 둘 리도 없다는 게 김씨 주장이었다. 원씨와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는 딸과 아버지 사이였던 이들의 소소한 일상사가 전부다. 감청 내용을 법정에서 듣던 1심 재판장의 한심스럽다는 표정이 아직도 기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김씨가 대법원 판결 직후 “정의가 살아 있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판사라면 응당 내릴 무죄판결일 수밖에 없는 증거불충분의 기소였다. 의심이 들면 내사하고, 증거가 모이면 수사해 필요하면 인신을 구금하고, 기소를 하고 재판에 붙여서는 ‘유죄의 심증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검찰이, 의심만으로 덜렁 올가미부터 씌운 결과다. 형사사건 무죄율 2%의 사법현실에서 김씨 사건의 대법원 무죄 판결은 검찰로선 수치스러운 사례다. 후배들에게 고개 들기 어려운 ‘무죄의 공안사건’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안통 수원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낙마하긴 했지만 검찰총장 후보에도 올랐고, 수사검사들은 대체로 승진했다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건 김씨뿐이다. 김씨는 무죄로 풀려나고서도 따라다닌 ‘간첩’ 딱지, 탈북자정착지원금이 한동안 끊긴 것, 취업을 못하고 크고 작은 인권침해를 받은 건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치가 떨리는 것은 2008년 수사당국이 그의 당원증을 공개한 일, 그리고 압수됐던 가족앨범을 수사당국이 분실한 일이다. 2로 시작하는 7자리 숫자의 당원증 번호와 이름, 김씨 얼굴이 TV 등에 보도돼 신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래서 북에 두고온 자식들과 친척에게 일찌감치 북 당국이 위해를 가했을 거라는 게 김씨 생각이다.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브로커에 부탁할까도 생각했지만 괜한 의심을 살까봐 4년간 아무 일도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요덕 수용소의 수용자 신원까지 알 수 있다는 국정원이 내 가족의 안부를 확인해 주는 게 도리 아니냐.”고 했다. 통일이 되면 서로를 알아볼 증명사진 요량으로 갖고온 그 소중한 앨범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건지 분통을 터뜨렸다. “북이 싫어 탈출한 남한에서 이런 고초를 겪을 줄 알았다면 남에 오는 게 아니었어요.” 집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겁게 보였다. marry04@seoul.co.kr
  •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신춘문예보다 확실하게 거액의 상금을 챙겨 주는 신문·문예지의 당선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배고파하며 문단 데뷔를 노려온 ‘늙은 문학청년’들의 재기가 느껴진다. 특히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태식(왼쪽·40)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의 주인공 김영수는 마치 작가 자신 같다. 아니, 무서운 돈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기상청에 근무하며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오른쪽·43)의 역사 장편소설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세조라는 인물을 통해 비정하게 반복되는 역사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은 어떻게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를 돌아본다.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는 강태식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부터 우선 들여다보자. 일단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뒤를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15년 사이에 쌈지마저 탈탈 털린 한국인의 요즘 심사들이 대체로 울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1997년에 대대적인 명예퇴직이 있었고, 2008년에도 그러했다. 1997~2008년 사이에 ‘88만원 세대’라는 한국적 족보를 가진 신세대가 양산되기도 했으니, 명퇴를 당한 직장인이든, 한창 일할 나이에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20대든 이 문장에 마음이 쭉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빨간 대야 가득 마늘이 담겨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다시 1970년대가 상기된다. 김영수는 36살에 명퇴를 당하고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빈 곳이 없어 감정 처리를 어정쩡하게 한 탓에 마늘을 까면서 ‘마늘이 맵다.’며 울고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개시하고, 그는 반지하 방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빨간 대야에 담긴 마늘을 깐다. 마늘을 까다가 곰 인형 눈을 붙이고, 바비인형의 눈썹을 붙이다가 10대처럼 본드도 마신다. 본드에 취한 그는 아내가 ‘한번 하자.’고 간청을 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종이학은 더이상 정성이 아니라 1개당 20원인 상품이다. 사람처럼 살기 위해 그는 본드를 버리고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업한다. 직원으로? 아니, 마운틴고릴라로. 이 지경이 되면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동물은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사람답게 살기 위해 회사 구조조정의 악역을 포기한 사람, 1억원 포상금에 눈이 어두운 남파공작원을 피해 달아난 또 다른 남파공작원 등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의 흉내를 낼 뿐이다. 하마, 악어, 사자도 다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뒤집어 쓴 동물의 탈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마운틴고릴라인 김영수는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때때로 12m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올라가 파란 버저를 누른다. 5000원의 보너스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농사짓고 그 수확으로 배를 불리던 농경사회와 달리 돈 벌어 쌀을 사야 하는 화폐경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왜 이리 밥벌이가 눈물 나고 안쓰러우냐 말이다. 남파간첩인 연락원 동무는 사시미칼로 피칠갑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회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돈”이라고. 돈이 숭상받는 사회에 소속돼 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회색의 디스토피아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울컥울컥한데, 소설은 의외로 낙관하며 끝난다. 불필요해 보이는 대목들이 적지 않지만 군더더기가 많은 것이 또한 인생이고 보면, 소설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 작가는 소설책과 불교 서적을 즐겨 보다가 블로거가 됐고, 인기 블로거로 소설을 써 보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부응하다가 소설가로 데뷔한 경우다. 처음에는 원고지 100장짜리 단편소설을 준비하다가, 쓰면서 깨달음을 얻어장편소설로 개작하게 됐다고 했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즉위한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강원도 상원사에 갔던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허 작가는 “세조처럼 권력을 위해 혈육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초등학교 무렵부터 다 알게 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를 똑바로 알고 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충남 안면도의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내놓은 그의 역사 인식을 잘 살펴볼 일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박근혜의 인생역정… 현대사 담긴 ‘질곡의 삶’

    박근혜의 인생역정… 현대사 담긴 ‘질곡의 삶’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을 향한 재도전의 길에 섰다. 12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와 딸이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올해로 만 60세인 그는 나이만큼 흘러온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질곡의 삶을 살아왔다. 양친을 모두 흉탄으로 잃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비운의 공주’이자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과 14년간 이어온 의정 활동을 디딤돌 삼은 정치 지도자다. 박 전 위원장은 1952년 2월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9살이던 1961년 육군 소장이던 부친이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고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 전 위원장은 1979년까지 청와대, 권부의 핵심에서 정치와 권력을 배웠다. 성심여고를 거쳐 이공계인 서강대 전자공학과(70학번)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부국강병을 앞세운 선친의 영향이 컸다. 인생의 첫 굴곡은 22살 때 찾아왔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절명했다. 신문기사로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의 삶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퍼스트 레이디 대행’이라는 굴곡진 공인의 길로 들어섰다. 원칙주의자 박근혜의 모습은 이즈음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사소한 국정도 수첩에 일일이 기록하며 챙겼다. 폭설이 온다는 날씨 정보만 나와도 “전국을 빠짐없이 챙기라.”며 청와대 참모진 보고를 메모했다는 일화가 있다. 10·26 사태가 난 이튿날 새벽 1시, 유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의 첫마디는 “전방의 상태는 괜찮습니까.”였다. 이후 서울 중구 신당동 옛집에서 보낸 18년간의 야인 생활 동안 그는 아버지 저격범 김재규를 비롯해 박정희 체제를 누렸던 이들의 배신으로 인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저서인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에는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배신하는 사람의 벌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마음 안의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점이다.”라고 나와 있다.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박 전 위원장은 원칙 정치의 외길로 접어들었다. 당 대표 시절엔 ‘수첩공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세히 기록하는 면모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천막당사 2주년인 2006년 3월 한국 정당 최초로 ‘대국민 실천백서’를 출간한 것도 이런 소신의 방증이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가 주목받은 사건은 2000년 당 총재 경선 때다.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부총재로 당선됐으나 이듬해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해 당 개혁안을 요구하며 탈당, ‘미래연합’을 창당하는 강단을 보였다. 2002년에 재입당한 그는 불법 대선 자금 수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침몰 직전이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다. 국민 앞에 과거를 반성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에서 ‘천막당사’를 감행했고 직후 치러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1석이라는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면서 그는 ‘선거의 여왕’이 됐다. 2009년 9월부터 1년 넘게 이어진 세종시 수정 논란은 ‘박근혜 원칙론’의 대표 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했던 ‘행정복합도시’를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려 하자 박 전 위원장은 세종시 원칙론을 고수하며 정부 수정안을 무산시켰다. 원칙주의자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불통 이미지’라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권 주자로서 가장 큰 한계점이기도 하다. 이런 당 안팎의 비판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은 10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소신과 불통을 구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나 혼자 대한민국 짝사랑… 서운한 생각에 눈물만”

    “나 혼자 대한민국 짝사랑… 서운한 생각에 눈물만”

    “나 혼자만 바보같이 대한민국을 짝사랑했구나 하는 서운한 생각에 눈물만 납니다.” 싱가포르에서 1996년부터 12년 동안 수많은 대북 관련 첩보를 수집, 우리 정보당국에 전달해 오다 간첩혐의로 강제 출국당한 서동환(57)씨의 회한이다. ●YS 싱가포르 방문때 임시 경호요원으로 6·25 전쟁 발발 62주년일인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동구 길동의 한 낡은 빌라에서 만난 서씨에게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는 찾기 어려웠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싱가포르에서 대연자동차라는 중고자동차 판매업을 경영하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인과 3남 신일(20)씨를 돌보며 어렵게 살고 있다. 신일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1급 중증 장애인이다. 서씨는 2007년 12월 31일 영주권을 박탈당하고 강제출국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 시내 고급 콘도에서 가정부와 운전수를 두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5년 전인 2007년 6월 25일 오전 9시 30분 싱가포르 안전부(ISD)요원들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되면서부터다. 싱가포르 대사관에 파견돼 있던 정보당국 관계자의 부탁을 받고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은익돼 있는 북한 자금의 흐름을 조사해 보고한 것 등이 화근이 됐다. ISD는 “민간인이 왜 국가가 하는 일에 손을 대느냐, 정부 요원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며 영주권을 취소하고 추방했다. 한국 정부가 민간인 신분임을 확인만 해 줬더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게 서씨 주장이다. 그는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 임시 경호요원으로 발탁되면서부터 대북 관련 정보수집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북한 화물선에 다량의 잠수 기구가 있는 것을 알고 접근했다가 북 요원에게 적발돼 10~15m 높이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해상을 통해 탈출하기도 했고, 북한 요원들 사무실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 오기도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다. 서씨는 “아무런 대가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오로지 ‘조국을 위한 일은 공무원들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우울증 아내·정신질환 아들 돌봐 하지만 간첩혐의로 체포되면서 그는 고난의 길로 빠졌다. 부채가 급증해 개인 파산 선고를 받는 등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여러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무엇이 부끄러워 당신이 죽어야 하느냐.”며 붙잡는 부인의 만류로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재입국을 꿈꾸며 말레이시아에서 1년을 기다리던 중, 신일씨는 부모도 못 알아볼 만큼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 부모가 잠시라도 곁을 비울 수가 없다. 며칠 전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아들의 장애등급을 1급에서 3급으로 내리겠다고 통지해 왔다. 부인도 우울증이 심하다. 서씨는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며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생계기반인 싱가포르로 돌아가고 싶어” 서씨의 정부에 대한 바람이라면 생계 기반인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것이다. 서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싱가포르로 돌아가기 위해 청원서를 냈지만 거절당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경찰의 무리한 공안몰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군사용 안테나 계측장비 등 미국 방산업체의 첨단 군사장비를 북한에 넘기려 한 대북사업가 김모(56)씨와 이모(74)씨를 국가보안법상 간첩예비·음모죄로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7월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북한 관계자로부터 미국 NSI사의 군사용 안테나 계측 장비와 고공 관측 레이더, 전파 교란장비, 전파탐지기, 비행기 시뮬레이션, 조종사 헬멧 등 군사기밀과 관련된 장비를 입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이씨는 동업자이자 과거 군납 경력이 있는 김씨에게 장비 입수를 요청했고,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항공사 기술연구소 출신의 지인을 통해 장비 구매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앞서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달 30일 이씨 등을 구속하면서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간첩’ 혐의를 적용,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GPS 전파 교란장비 등 우리 군의 첨단 기술을 북한에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결과 이씨 등이 해당 장비의 팸플릿만 넘겨받았을 뿐 실제로 장비나 기술을 입수하지 못했고, 북한 공작원의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아 ‘간첩예비·음모죄’만 적용해 기소했다. 또 이씨가 ‘비전향 장기수’로 국내 고정간첩 가운데 최고위층이라는 경찰 측 설명과 달리 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장기수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경찰이 최근 정치권의 종북 논란을 이용, 무리한 ‘공안몰이’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이한구 ‘조갑제 종북백과사전’ 인용 논란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19일 야당 의원들을 겨냥해 “종북주의자, 간첩”이라고 언급하는 등 색깔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특히 이 원내대표는 대표적 보수 논객인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가 쓴 ‘종북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을 여과 없이 인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종북백과사전을 거론하며 “이 책을 보니 민주통합당 당선자의 35%, 통합진보당 당선자의 62%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전과자라는 내용이 있다. 국회 전체로 봐서는 당선자의 20%가 전과자라고 한다.”면서 “전과자 비율이 18대보다 2.5배나 증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이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간첩 출신까지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마당”이라고 말해 야권의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원내대표의 연이은 ‘종북 공세’에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이 뽑아 준 대표들이고 국회의 카운트 파트너가 돼야 할 제1야당에 종북이니 간첩이니 하는 도를 지나친 막말은 삼가 달라.”고 촉구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이어 “언제부터 조 대표가 국민들이 선출한 의원들에 대해 종북인지 간첩인지를 재단할 자격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면서 “게다가 여당 원내대표가 종북백과사전을 마치 경전이라도 되는 양 여과 없이 받아들여 제1야당을 무례하게 매도하고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낼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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