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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대 추정가 70억 보물 겸재 화첩, 경매 유찰됐다

    최대 추정가 70억 보물 겸재 화첩, 경매 유찰됐다

    최대 추정가 70억원으로 관심을 모았던 겸재 정선(1676~1759)의 보물 화첩이 경매에서 유찰됐다. 15일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에서 열린 경매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796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이 시작가 50억원에 출품됐으나 아무도 응찰하지 않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 화첩은 금강산과 주변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 8점과 송나라 유학자들의 일화와 글을 소재로 그린 고사인물화 8점 등 총 16점을 수록한 작품으로, 2013년 보물로 지정됐다. 우학문화재단 소유로 용인대가 관리해왔다.당초 화첩의 추정가는 50억~70억원으로 역대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할지 주목됐었다. 기존 최고가는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 2000만원에 낙찰된 보물 제1210호 ‘청량산괘불탱’(淸凉山掛佛幀)이다. 코로나19사태로 미술시장이 경색된 데다 기존 최고가의 두 배에 달하는 높은 추정가 때문에 낙찰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 속에 경매에 큰 관심이 쏠렸으나 결국 낙찰에 실패했다. 지난 5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간송 전형필의 후손이 내놓은 보물 불상 2점이 모두 유찰된 데 이어 또다시 보물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한 데 대해 국가지정문화재의 권위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온다.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은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출품됐으나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모두의 관심이 부담됐나… 새 주인 못 찾은 ‘간송불상’

    모두의 관심이 부담됐나… 새 주인 못 찾은 ‘간송불상’

    재경매·박물관 등과 매매 협의 지켜봐야 재정난에 경매 출품 알려져 여론 들끓어 지정문화재는 비과세… 상속세 부담 의문 금동보살입상 진위 여부까지 제기 ‘몸살’간송 전형필 선생의 후손이 재정난을 이유로 경매에 내놓은 보물 2점이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27일 열린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경매에서 간송미술관이 관리하는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은 각각 시작가 15억원으로 출발했으나 응찰자가 아무도 없어 유찰됐다. 간송이 경매에 내놓은 첫 국가지정문화재인 데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 경매 참여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다.금동여래입상은 7세기 중반 통일신라 불상으로, 높이 37.6㎝다. 비슷한 시기 제작된 국내 금동불상 중에선 드물게 크다. 금동보살입상은 6세기 말∼7세기 초 불상으로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진다. 높이는 18.8㎝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두 불상 모두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간송이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바쳐 수집하고, 지켜 낸 유물이 재정난으로 경매에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가 예산을 투입하거나 국립중앙박물관 등 공공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이 개별 협의로 유물을 구입하는 방안을 타진하면서 경매 취소 가능성도 나왔다. 하지만 “이미 공개 시장에 나온 만큼 민간 참가자도 존중해야 한다”는 위탁자 의견에 따라 예정대로 경매를 진행했다고 케이옥션 관계자는 전했다. 연간 유물구입비 예산이 40억원인 국립중앙박물관은 민간후원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가 비용을 보태겠다는 의향을 밝히면서 불상 구입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매에서 유찰되면서 보물 2점은 일단 간송미술관으로 돌아가게 됐다. 간송미술관이 금동불상들을 다음 경매에 다시 출품할지, 아니면 국립중앙박물관 등과 개별적으로 매매 협의를 벌일지 관심이 쏠린다. 경매 출품과 유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간송 일가와 간송미술관은 80여년간 쌓아 온 명성과 자존심에 흠집을 입게 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지난 21일 공식 입장문에서 2013년부터 대중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해 재정적인 압박이 커졌고, 2018년 간송의 장남인 전성우 전 재단 이사장 별세 후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비용이 상속세로 해석되면서 문화재 상속세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관련법상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없고, 공익법인에 출연한 비지정문화재도 과세 대상이 아니어서 실제로 간송 일가의 문화재 상속세 부담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간송 컬렉션 중 국보와 보물은 간송 후손 개인 소유이고, 비지정문화재는 재단으로 이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폐쇄적인 운영 탓에 외부에선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구조다. 일각에선 금동보살입상의 출토지가 경남 거창으로 신라 지역인데 백제 양식이 섞인 점을 두고 진위에 대한 의문마저 나왔다. 간송미술관은 지정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정을 운영해 오다 2018년부터 수장고 신축 건립비 등 48억원의 정부 예산을 받았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모두의 관심이 부담됐나… 새 주인 못 찾은 ‘간송불상’

    모두의 관심이 부담됐나… 새 주인 못 찾은 ‘간송불상’

     간송 전형필 선생의 후손이 재정난을 이유로 경매에 내놓은 보물 2점이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27일 열린 케이옥션 경매에서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은 각각 시작가 15억원으로 출발했으나 아무도 입찰에 응하지 않아 유찰됐다. 금동여래입상은 7세기 중반 통일신라 불상으로, 높이 37.6㎝다. 비슷한 시기 제작된 국내 금동불상 중에선 드물게 크다. 팔각 연화대좌 위에 정면을 보고 당당한 자세로, 살짝 오므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금동보살입상은 6세기 말∼7세기 초 불상으로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진다. 높이는 18.8㎝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두 불상 모두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간송이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바쳐 수집하고, 지켜 낸 유물이 재정난으로 경매에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가 예산을 투입하거나 국립중앙박물관 등 공공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실제로 경매가 열리기 전 국립중앙박물관은 불상을 구입하는 방안을 타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연간 유물구입비 예산이 40억원인 국립중앙박물관은 민간후원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가 비용을 보태겠다는 의향을 밝히면서 유물 구입을 진지하게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경매에서 유찰되면서 보물 2점은 일단 간송미술관으로 돌아가게 됐다. 간송미술관이 다음 경매에 다시 출품할지, 아니면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공립이나 뜻이 있는 사립미술관과 매매 협의를 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격적인 경매 출품과 유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간송 일가와 간송미술관은 80년간 쌓아 온 명성과 자존심에 적지 않은 흠집을 안게 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지난 21일 공식 입장문에서 2013년부터 대중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해 재정적인 압박이 커졌고, 2018년 간송의 장남인 전성우 전 재단 이사장 별세 후 상속세 등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련법상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없고, 공익법인에 출연한 비지정문화재도 과세 대상이 아니어서 실제로 간송 일가의 문화재 상속세 부담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간송 컬렉션 중 국보와 보물은 간송 후손 개인 소유이고, 비지정문화재는 재단으로 이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폐쇄적인 운영 탓에 외부에선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구조다. 아무리 간송의 상징성을 감안하더라도 개인 재정난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게 옳으냐는 반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금동보살입상의 출토지가 경남 거창으로 신라 영역인데 백제 양식이 섞인 점을 두고 진위에 대한 의문마저 나왔다.  간송미술관은 지정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정을 운영해 오다 2018년부터 수장고 신축 건립비 등 48억원의 정부 예산을 받았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책 속 한줄] ‘문화독립운동가’ 간송의 유산/이순녀 선임기자

    [책 속 한줄] ‘문화독립운동가’ 간송의 유산/이순녀 선임기자

    1930년대,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친일파는 계속 늘어났다. 심지어는 3·1 만세 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육당 최남선까지 친일로 돌아서지 않았는가. 전형필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민족의 문화를 지키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독립운동이라는 생각을 다잡았다.(218쪽) 스물네 살 청년이 물려받은 재산은 막대했다. 800만평 논에서 나오는 한 해 수입이 기와집 150채 값이었다. 일제 강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시대. 전형필은 스승 고희동과 위창 오세창, 외종 형 월탄 박종화의 조언에 따라 민족의 예술혼이 응집된 문화재 수집에 전 재산을 바쳤다. 문화독립운동 유산은 그의 호를 딴 간송미술관에 오롯이 남았다. 수천점 간송 컬렉션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금동불상 2점이 오늘(27일)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는다. 재정난 때문이라니 안타깝다. 이충렬이 쓴 ‘간송 전형필’(김영사)을 다시 읽는다. coral@seoul.co.kr
  • 문병훈 시의원 “간송미술관에서 경매 나온 보물 서울시가 품자”

    문병훈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초3)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재정적자의 이유로 보물 두 점을 경매로 내놓은 것과 관련해 서울시가 앞장서서 매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문 의원은 “현재 서울시가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구입과 유물구입이 이루어지며, 10월 개관예정인 서울공예박물관은 유물구입을 위해 2년 간 총 약 86억 원의 예산이 편성되는 등 시민문화향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반해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작품 및 유물도 상당하다”라며 “간송미술관의 보물과 같이 역사적 의미와 공공성이 높은 작품을 매입해 시민들에게 상시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면서 서울시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작품 및 유물 매입을 촉구했다. 또한, 문 의원은 “간송미술관의 경우 서울시유형문화재도 4건을 보유하고 있고, 1년에 평균적으로 약 1~2회 정도만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서울시가 역사적 의미가 큰 미술품을 매입해 상시적으로 시민들에게 전시한다면 시민들의 문화향유권 증대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문 의원은 2018년 행정사무감사 때부터 지속적으로 미술관의 미술품 매입은 다량의 미술품 보다 소량이라도 시민들에게 필요하고 소중하면서 귀한 작품들을 매입하는 것이 서울시의 역할임을 주문하면서, 서울시가 기금 조성이 필요하다면 의회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더불어 문 의원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박물관 등에서 실시하는 유물 매입 과정에서도 역사적 의미와 공공성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서울시가 역사적 의미가 큰 유물들을 적극적으로 매입해 시민들에게 상시적으로 전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했다. 문 의원은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간송미술관의 다량의 작품들을 보존 및 전시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수장고 건립을 지원하는 것은 환영한다”라며, “지금은 간송미술관의 사례만 부각되었고, 이와 같은 사례는 곳곳에 널리 퍼져 있으며,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과 개인의 수장고에 들어가면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서울시는 역사적 의미와 공공성이 높은 미술품과 유물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간송미술관의 보물 경매/장세훈 논설위원

    [씨줄날줄] 간송미술관의 보물 경매/장세훈 논설위원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이 다음주 경매에 나온다. 삼국·통일신라시대 불상의 경매가는 각각 15억원으로 추정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경매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보물은 1938년 건립된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 소장품이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 넘어갈 국보급 문화재 5000여점을 사들였고, 후손들은 간송의 유지를 받들어 미술관을 운영해 왔다. 국보 12점과 보물 32점 등을 소장해 문화재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특히 간송미술관은 지난 82년 동안 소장품을 내다판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경매가 문화예술계에 주는 충격은 적지 않다. 그 이면에는 간송의 아들인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2018년 별세한 뒤 후손들에게 부과된 상속세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에 한해서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지만 후손들은 그동안 국가 지원은 물론 입장료도 받지 않고 미술관을 운영해 왔다는 점에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우려는 이번 경매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대를 이어 영속하는 과정에서 상속세와 각종 운영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프랑스 파리 피카소미술관의 방식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피카소 사후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할 처지에 놓인 상속인들은 프랑스 정부에 상속세를 작품으로 대납(대물변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고, 프랑스 정부는 법을 개정해 이를 수용했다. 그 덕분에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상속세 논란은 세금탈루나 편법상속 등 악용 사례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그러나 선의의 기부 행위마저 ‘세금 폭탄’으로 이어져 논란을 낳는다. 지역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황필상 창업주는 2002년 177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 90%와 현금 2억원을 기부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수원세무서는 현행법상 주식 기부는 증여세 부과 대상이라며 140억 4000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대법원은 2017년 공익 차원의 기부금에 거액의 증여세를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백범 김구 선생의 일가는 국내외 재단에 총 42억원을 기부했는데, 국세청은 증여세 18억원과 상속세 9억원을 내라고 고지서를 보낸 것이다. 과세 당국은 “공익재단을 통한 기부가 아니기 때문에 세법에 따라 정당하게 과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간송미술관의 국보 경매건이나 선의의 기부문화 장려 차원에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 간송이 목숨 걸고 지켰는데… 재정난에 문화재들 흩어지나

    간송이 목숨 걸고 지켰는데… 재정난에 문화재들 흩어지나

    거액 상속세·신관 마련 등 어려움 겪어 미술계 “오죽했으면 경매에 내놨겠나” 국보·보물도 개인 소장품은 매매 가능 외국인도 구입할 수 있지만 반출 안 돼 간송 측 “불가피하게 매각 결정… 송구” 간송미술관이 보물로 지정된 불상 2점을 처음으로 경매에 내놨다. 일제강점기에도 꿋꿋이 우리 문화재를 지켜 온 미술관이 재정난으로 소장품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화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경매사 케이옥션은 오는 27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옥에서 여는 정기 경매에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을 출품한다고 21일 밝혔다.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원으로 알려졌다. 경매에 앞서 이날 오후부터 사옥 전시장에서 실물이 공개됐다. 간송미술관은 사업가 간송 전형필(1906~ 1962)이 1938년 보화각이란 이름으로 세운 우리나라 첫 사립미술관이다. 간송은 사재를 전부 털어 문화재를 수집하고 수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훈민정음,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 12점, 보물 32점을 비롯해 소장 문화재는 1만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사후 9년 만인 1971년 보화각에서 이름을 바꾼 뒤 2013년까지 매년 봄가을 단 두 차례만 기획전을 열어 일반에 공개했다. 2014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5년 협업으로 외부 전시를 펼치고, 성북동 보화각 옆에 신관 신축과 대구에 분관을 추진하는 등 오랜 은둔 이미지를 벗고 변화를 꾀했으나 재정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2대인 간송의 맏아들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2018년 별세한 뒤 그의 아들이자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미술관장이 거액의 상속세 부담을 안으면서 재정난이 가중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으나 적절한 방안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소장품 매각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송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가피하게 소장하고 있는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을 상징해 온 서화와 도자, 그리고 전적이라는 중심축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보나 보물이라도 개인 소장품은 문화재청에 소유자 변동 사항을 신고하면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다. 외국 국적자도 구입할 수 있지만 문화재 해외 반출 금지 조항에 따라 나라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해외 유출 우려도 없지만 우리 민족문화 수호의 상징인 간송미술관의 유물이 흩어진다는 점에서 문화계는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오죽했으면 간송이 목숨 걸고 지킨 보물을 경매에 내놨겠느냐”면서 “간송미술관의 위상이나 자긍심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더 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정을 운영해 왔다. 그러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지정문화재 보수정비 비용으로 3억 2000만원, 비지정문화재 보존 지원금으로 2억 500만원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수장고 신축에 44억원을 서울시와 함께 지원하는 한편 지난해 말 보화각 건물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해 보화각의 원형 복원도 도울 예정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현금 없는 사회 익숙한 中… 코로나로 ‘디지털 위안화’ 앞당긴다

    현금 없는 사회 익숙한 中… 코로나로 ‘디지털 위안화’ 앞당긴다

    중국이 다음 달부터 종이돈을 대신할 디지털 화폐 유통 실험에 착수한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세계인들과 함께 쓰기 위해서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디지털 위안화’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디지털 화폐는 발행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돈세탁’ 등 금융 비리 추적이 가능하다. 중소기업 지원금이 부동산 투기 등으로 흘러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도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꿈의 지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규모로 인해 디지털 위안화 보급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미중 두 나라가 ‘디지털 화폐전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모바일페이 주도권 회복 의도 “2020년은 두 가지 사건 덕분에 역사적인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감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과 디지털 화폐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이죠.” 중국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부교수이자 디지털금융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인 쉬위안은 최근 경제매체 시나재경과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화폐 도입에 속도를 내는 자국의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황치판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 부회장도 “누구나 쓸 수 있는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최초의 국가는 바로 중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언론을 통해 자신감을 피력해도 될 만큼 중국 내 디지털 화폐 유통이 가시화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7일 중국중앙(CC)TV 등에 따르면 최근 인민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사업을 공식화하고 일반 소매점을 대상으로 테스트에 들어갔다. 선전(광둥성)과 쑤저우(장쑤성), 슝안신구(허베이성), 청두(쓰촨성), 동계올림픽 개최지(베이징 일대)에서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슝안신구 지부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등을 상대로 디지털 화폐 설명회를 가졌다. 슝안신구는 베이징 인근에 건설 중인 신도시로 우리나라의 송도(인천)와 비슷한 미래형 자족도시다. 쑤저우시도 공무원들에게 교통비 등을 디지털 위안화로 지급할 계획이다. 중국 4대 국유은행 가운데 하나인 농업은행 역시 디지털 화폐를 결제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시험 중이다.쉬 연구원은 “디지털 화폐는 암호화폐들과 달리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장해 현금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화폐는 본원통화(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의 독점적 권한을 갖고 공급한 통화)의 일부를 대체한다.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것이어서 종이돈과 견줘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쉬 연구원은 “시중은행이 인민은행에 현금을 예치하면 이에 상응하는 디지털 위안화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유통한다”면서 “이렇게 하면 총통화량이 변하지 않아 (화폐 과다공급 등)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위조 지폐가 성행하다 보니 상점에서는 현금보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나 텅쉰(텐센트)의 ‘위챗페이’(텐센트)를 선호한다. “걸인도 QR코드로 구걸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모바일페이는 중국인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모바일 결제가 안착했음에도 중국 정부가 굳이 디지털 화폐를 추가로 보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모바일페이는 은행 지불 계좌에 연동된 ‘제3자 전자결제’ 방식을 활용한다. 사용자가 은행 계좌에 일정 금액을 충전했다가 구매를 원하는 제품이 있으면 모바일 앱으로 결제한다. 그러면 페이 업체가 사용자가 물건을 수령했는지 확인한 뒤 판매자에게 금액을 지급하는 식이다. 알리바바나 텅쉰은 사용자가 계좌에 예치해 놓은 돈이 빠져 나갈 때까지 수일~수십일의 시간차를 이용해 운용 수익을 창출한다. 덕분에 이들 업체는 신용카드사보다 낮은 수수료로 사업을 꾸릴 수 있다. 반면 기존 은행들은 모바일페이용 계좌를 발급하고 실시 간송금 업무를 대행하는 등 허드렛일을 해 준다. ‘재주는 은행이 부리고 돈은 모바일페이 업체가 챙겨 가는’ 구조다. 기존 금융권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알리페이나 위챗페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인민은행의 화폐 주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결국 당국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통해 이를 제어하고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디지털 화폐는 모바일 결제 플랫폼 간 지불 장벽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알리페이로 계산을 하고 싶지만 찾아간 가게가 위챗페이만 지원한다면 그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는 종이돈과 똑같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앱을 써도 결제가 가능하다. 시중은행 앱으로도 지불할 수 있다. 두 모바일 업체가 장악한 결제 주도권을 기존 금융권이 어느 정도 되찾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종이돈, 감염병 옮길 수도” 비접촉 수요 커져 모바일페이가 편리하기는 하지만 ‘진짜 돈’을 대체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는 현실도 한몫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위안화 국제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주요 2개국’(G2)이라는 경제 규모에 걸맞게 위안화의 위상을 끌어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려면 화폐 유통의 호환성과 투명성이 필수인데, 모바일페이는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 이들 페이는 은행계좌에 연동돼 있어 중국은행망을 거치지 않는 해외 결제에 어려움이 크다. 일부 페이는 동남아 지역에서 불법 거래에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통한 탈세 사례가 증가하자 중국 앱을 통한 결제를 금지하기도 했다.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인민은행의 디지털 화폐를 보면 실물 위안화 화폐처럼 마오쩌둥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일련번호가 표기돼 있다. 돈에 꼬리표가 달려 있어 사용처를 쉽게 알 수 있다. 최소한 디지털 화폐를 통한 돈세탁이나 ‘장롱 쟁여두기’ 등은 막을 수 있다. 연구개발(R&D)에 쓰라고 기업에 준 돈이 유흥업소 등에서 허투로 낭비되는 지도 지켜볼 수 있고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면 부동산 가격만 폭등하고 사그러드는 악순환도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비접촉 결제’ 수요가 커지면서 디지털 화폐가 더욱 각광받고 있다. 종이돈에 바이러스가 달라붙어 감염병을 옮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전 세계 수십 개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 발행 여부를 검토 중이다. 중국은 2014년부터 이 연구를 시작해 디지털 화폐가 본원통화의 일부를 대체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내다봤다. ●일대일로 국가중심 ‘디지털 위안화’ 유통 야망 다만 인민은행은 “최근 테스트는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 과정의 일부일 뿐 디지털 위안화가 정식으로 발행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중심 디지털 화폐가 도입되기 전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를 드러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미국은 달러 가치를 금과 동일하게 유지하던 금본위제를 1971년 폐지했다. 이후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위협받자 1975년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공식 합의를 체결했다. 원유 결제 화폐로 오직 달러화만 써 주는 대가로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의 지위를 보장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다. 이에 반기를 든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은 예외 없이 미국의 제재나 군사행동 대상이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CBDC를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해 공식화한 뒤 ‘일대일로’ 지역 국가들을 중심으로 CBDC 유통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최종 목표가 원유 등 주요 원자재 수입에 디지털 위안화를 쓰도록 해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얻으려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을 내세워 디지털 위안화 세계화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미국도 달러화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위협 상황을 지켜만 볼 리 만무하다. 페이스북과 애플, 아마존 등을 통해 ‘화폐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커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괴의 미학’ 추사체… 글씨 갖고 노는 유희의 경지

    ‘괴의 미학’ 추사체… 글씨 갖고 노는 유희의 경지

    작년 中 전시회때 30만명 관람 큰 인기“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기존 형식을 깨는 파격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기 십상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개성 넘치는 글씨도 당대 사대부들로부터 백안시당했다. 추사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고 일갈했다.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는 ‘괴의 미학’으로 대변되는 추사체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자리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등 여러 기관이 소장한 추사의 현판,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을 중심으로 옹방강(翁方綱·1733~1818), 완원(阮元·1764~1849) 등 추사에게 영향을 준 청나라 문인 작품까지 총 120점이 나왔다. 지난해 6~8월 한·중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로 중국 베이징에서 먼저 열렸던 동명의 전시회는 30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추사의 글씨는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다. 초년과 말년 글씨가 완전히 다르고, 같은 시기라도 서체가 제각각이다.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번 전시는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과 학예일치’, ‘해동통유와 선다일미’, ‘유희삼매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3부로 나눠 보여 준다. 추사는 24세 때 아버지의 청나라 방문에 동행해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머물며 옹방강, 완원 등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고증학에 일가견이 있던 추사는 왕희지, 구양순으로 대표되는 정법(正法) 서체 외에 옛 한나라 비석에 새겨진 예서체를 알게 된 뒤 한예(漢隷)의 필법을 해서에 응용해 소위 추사체를 만들어 냈다. 전시에는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 등 추사와 청조 문인의 교유 관계를 보여 주는 핵심 작품들이 두루 소개됐다. ‘괴의 미학’과 더불어 이번 전시가 주목한 추사 학예의 또 다른 특질은 현대성이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는 “‘계산무진’과 ‘무쌍·채필’에서 보듯 글씨를 갖고 노는 듯한 ‘유희’의 경지는 추상표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조각은 추사에서 나온다”고 했던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과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 서예가 손재형(1903~1981) 등 추사체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마무리한 배경이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도봉 ‘문화재지킴이’ 정신 잇는 간송기념관 세운다

    도봉 ‘문화재지킴이’ 정신 잇는 간송기념관 세운다

    하나 남은 전형필 선생 옛집 일대 개발 내년 5월 기본계획… 2022년 착공 목표 학예연구사 채용…전시·교육공간 활용 창동아레나 이어 역사·문화 콘텐츠로지난 19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간송옛집 앞마당에는 낙엽 쌓인 가을 정취가 가득했다. 이곳을 관리하는 도봉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이미실 실장은 “간송옛집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역사와 문화가 왜 중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지키고 활용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송옛집은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신윤복의 ‘미인도’,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이 경기 북부와 황해도에서 오는 소출(논밭에서 나는 곡식)을 관리하고 부친인 전명기 공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간송옛집은 성북동 북단장 한옥건물이 소실되고 종로4가에 있던 본가 건물이 재개발로 사라져 간송 선생이 생전에 거주했던 유일한 건물이다. 역사·문화적 가치뿐 아니라 100여년 된 전통 한옥으로서 건축적 가치도 매우 높다. 베일에 가려졌던 간송옛집의 존재는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2011년 가을 도봉산 원통사 산행 중 우연히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구는 이후 유족과 협의를 거쳐 간송옛집의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그 결과 간송옛집은 2012년 12월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됐다. 구는 종로 본가에서 나온 자재들을 활용해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퇴락한 본채와 부속건물의 원형을 살려 간송옛집을 복원해 2015년 9월 개관했다. 가옥 서쪽에는 간송 선생(1962년 사망, 왼쪽)과 부친(1919년 사망, 오른쪽)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는 이에 멈추지 않고 간송옛집 일대를 간송 정신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클러스터로 조성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간송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간송기념관은 간송옛집 인근에 사업비 56억 8000만원을 투입해 지상 3층, 연면적 990㎡ 규모로 조성된다. 이 실장은 “간송기념관은 간송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이자, 전시·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이달부터 내년 5월까지 간송기념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한다.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에 간송기념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신청해 국비를 확보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사업 부지를 매입하고 학예연구사를 채용할 예정이다. 이후 설계공모와 실시설계를 거쳐 2022년에 착공해 2023년에 개관한다. 이 구청장은 “간송기념관은 구가 문화도시로 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면서 “도봉구가 창동아레나 케이팝 공연장으로부터 시작해 간송옛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유흥 걷어낸 방학천, 청년 예술이 흥한다

    유흥 걷어낸 방학천, 청년 예술이 흥한다

    “매일 아침마다 유치원 아이들이 방학천 주변에 산책을 나와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요.” 지난 2일 서울 도봉구 방학천 인근에 조성된 늘품글씨문화연구소에서 만난 조진경 대표는 확 달라진 방학천 일대 공방거리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연구소에서는 인근 고등학교 특수학급 장애인 학생들에게 공방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조 대표는 “장애인 학생들이 만든 도자기, 캘리그래피, 양초 등이 정말 독특해 상품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면서 “이들이 진로를 고민하거나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소가 자리잡은 방학천 일대는 지난 20여년 동안 밀집된 유흥업소들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방학천 일대를 청년작가들을 위한 문화예술거리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세우고 지난 3년간 지속적인 노력을 추진해 왔다. 이 구청장은 “방학천 주변에 있던 유흥업소들 때문에 밤에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지나가기조차 어려워 업소들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이를 위해 구는 2016년 4월부터 민관이 합심해 ‘유흥음식점 이용 근절 캠페인’을 추진했다. 구 관계자는 “주민대표, 경찰들과 함께 1년 반 동안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유흥업소를 단속했다”면서 “업주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폐업하는 업주들에게는 주거지원과 전업지원 등을 제공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17년 11월 방학천 주변 유흥업소 31곳이 모두 문을 닫는 쾌거를 이뤘다. 구는 2017년 2월 ‘방학천 문화예술거리 조성계획’을 수립했다. 이 사업은 방학천 일대에서 문을 닫은 유흥업소 15곳을 구에서 직접 임대해 공방거리로 만드는 도시재생사업이다. 구는 지난해 1월까지 3차에 걸쳐 입주작가를 모집해 리모델링 비용과 임차료 등을 지원했다. 올해 8월에는 주민커뮤니티시설인 ‘방학생활’을 리모델링해 지원센터인 ‘방예리143 아트 스퀘어’를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사업 홍보, 입주작가 작품 전시, 공방 체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구는 앞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방학천 일대에 예술거리를 확대 조성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 공모해 공방 8곳의 입주작가를 선정한다. 아울러 내년에는 한글과 관련된 문화시설이 밀집된 방학천의 특징을 살려 발바닥 공원~김수영문학관~정의공주묘~간송옛집 간 2.5㎞ 구간을 한글문화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이 사업을 통해 도시공간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게 지역사회에 상당한 활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지역의 특색에 맞는 공간혁신을 통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조선후기 화원들의 역작 ‘10폭 백납병풍’ 첫 공개

    조선후기 화원들의 역작 ‘10폭 백납병풍’ 첫 공개

    정선·조영석·심사정·김두량 작품 등 42점 간송 소장본과 다른 ‘사문탈사도’도 담겨서울 강서구는 오는 28일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한국회화사 전문가·연구자 등을 초청, 최근 수탁관리로 소장하게 된 ‘10폭 백납병풍’을 최초 공개한다고 25일 밝혔다. 10폭 백납병풍엔 16~18세기 조선과 중국에서 이름을 떨친 작가들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겸재 정선의 작품 7점을 비롯해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남리 김두량 등 조선 후기 대표 화가들 작품과 중국 명나라 시대 절파계 대가인 소선 오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10점 등 42점이 수록돼 있다. 겸재 작품 중엔 간송미술관 소장본 ‘사문탈사도’와는 다른 새로운 ‘사문탈사도’가 담겨 있다. 학계에선 그간 사문탈사도 관련,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어느 사찰이 배경인지 등에 대해 논의해왔지만 자료가 많지 않아 추가 작품이 발견되길 고대해왔다. 구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되는 사문탈사도는 기존 작품과 확연하게 비교되는 특징을 지녔고, 완벽한 조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미술사적 작품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0폭 백납병풍은 내년 5월 열리는 ‘제6회 겸재문화예술제’ 때 학술세미나와 특별기획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10폭 백납병풍의 역사적·미술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대중 관람에 앞서 전문가들을 초청해 공개하게 됐다”며 “내년 특별기획전 때 수록 작품들 의미와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성북동 그 많던 차들은 어디에 주차했을까

    성북동 그 많던 차들은 어디에 주차했을까

    서울 성북구는 성북동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성북구립미술관 인근에 ‘성북동길 공영주차장’을 조성, 지난 5일 준공식을 가졌다고 6일 밝혔다. 구는 사업비 17억 5000만원을 투입, 공영주차장을 지었다. 주차면수는 58면으로 노외주차장 26면과 노상주차장 32면으로 이뤄졌다. 노외주차장은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고 카드 전용 결제 시스템을 구축, 24시간 유료로 운영된다. 노상주차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시간제로 운영되며 이외 시간은 무료로 개방된다. 성북동은 간송미술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혜곡 최순우 옛집 등 우리나라 근현대 대표 인물들의 삶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성북동 유적지를 찾는 방문객들이 늘면서 주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한 식당주인은 “구에서 의지를 갖고 성북동 주차 문제 해결에 나섰다”며 “재방문이 아니라 삼방문, 사방문 하는 손님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성북구 성장 동력의 한 축”이라며 “주차 공간 확보로 성북동의 문화관광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최초 사립 간송미술관 ‘서울 보화각’ 문화재 된다

    최초 사립 간송미술관 ‘서울 보화각’ 문화재 된다

    문화재청은 1938년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건물 ‘서울 보화각’을 문화재로 4일 등록 예고했다. 미암 유희춘의 서적 보관 시설인 ‘담양 모현관’, 윤동주 시인이 생활했던 ‘연세대 핀슨관’, 송기주씨가 개발한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도 문화재가 된다. 서울 보화각은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우리 미술품 보존과 활용을 위해 건립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낸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담양 모현관은 보물 제260호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 목판’을 비롯해 미암 유희춘(1513∼1577) 관련 서적을 보관한 수장시설이다. 미암 후손들이 한국전쟁 이후인 1957년 혼란한 분위기에서도 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건물을 세운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연세대 핀슨관은 1922년에 준공했다. 윤동주 시인을 포함한 근현대 주요 인물들이 생활한 기숙사 건물이다. 20세기 초반 건축 형태·구조·생활환경을 보여 주는 드문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송기주씨가 개발해 1934년 공개한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는 현존하는 한글 타자기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한글 기계화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 주는 자료다. 한편 문화재청은 경북 영덕군 성내리 일대 1만 7933㎡에 이르는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762호)을 이날 문화재로 등록했다. 한국인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장터거리로, 주민 3000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곳이다. 1899년 군산항 개항, 1914년 동이리역 건립 등을 거쳐 번화했던 전북 익산시 주현동·인화동 일대 2만 1168㎡ 규모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763호)도 이날 문화재로 등록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문화재청장 “상주본 소장자, 거액 요구…45회 면담 성과 없어”

    문화재청장 “상주본 소장자, 거액 요구…45회 면담 성과 없어”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 직원들이 훈민정음 혜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를 45회 면담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강제집행을 포함한 상주본 회수 계획에 대해 묻자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소장자의 심리 상태를 짚어내려 했으나 돌려받을 합리적 방법이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청장은 이 의원이 상주본 훼손 상태에 대해 묻자 “실물을 보지 않아 얼마나 훼손됐는지 정확하기 설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소장자가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해 회수를 못 하고 있다”며 “날짜를 못 박을 수 없지만, 검찰과 법원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다각적으로 회수 조치를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훈민정음 상주본은 경북 상주에 거주하는 배씨가 2008년 7월 간송본과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냈다며 일부를 공개해 처음 존재가 알려졌지만 1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는 지난 7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재청과 본인의 요구 조건(보상 금액)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라며 “조건을 타결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씨는 2008년 집을 수리하다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며 공개했다. 그러나 상주지역에서 골동품을 판매하는 조모씨가 “배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훔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논쟁이 벌어졌다. 조씨는 배씨를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1년 5월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조씨는 이듬해인 2012년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숨졌다. 이에 따라 상주본 소유권은 국가에 있는 상태다. 대법원은 올해 7월 상주본의 법적 소유자인 문화재청이 서적 회수를 강제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조속한 유물 반환, 배씨는 형사 사건 관련자 사과와 보상금 1000억원을 각각 요구하며 맞서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훈민정음,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창제가 아니라 보급에 이바지했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훈민정음,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창제가 아니라 보급에 이바지했죠”

    ‘훈민정음학 박사’ 김슬옹 원장이 전하는 한글 창제 전후“훈민정음을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신미대사 그분을 욕뵈는 일입니다. 훈민정음을 누가 창제했는지 모르거나 불분명할 때 소설이나 영화에서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상상예술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신미대사는 훈민정음 창제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교 지식으로 불경의 한글화 등을 통해 훈민정음에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신미대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영화와 소설이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훈민정음학 해례본 간송본 원본을 최초로 직접 보고 해설한 훈민정음학 박사 김슬옹(58)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여러모로 답답해 한다. 인터넷에도 신미대사 창제설이 넘쳐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하면 훈민정음에 대해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있는 연구실로 찾아갔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실록·해례본 기록 명확세종, 신미대사 창제 후 이름 들어… 문종 실록불경을 먼저 한글로 낸 이유?… 소헌왕후 명복”- 신미대사는 허구의 인물인가? 아니면 조선왕조실록, 특히 세종실록에 등장하는 사람인가. “신미대사는 당연히 왕조실록에 나오는 실존 인물입니다.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기록은 세종실록에 나옵니다. 1446년 5월 27일, 운명한 왕비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재암에서 금으로 베껴쓴 불경 봉정식을 할 무렵 세종이 신미대사를 만났을 겁니다. 금사 불경 봉정식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승려 2000여명이 모였답니다. 불사는 7일간 계속됐습니다. 세종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문종도 훗날 ‘대행왕(세종)께서 병인년(1446)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다’고 증언합니다.” - 세종이 신미대사를 처음 만난 게 1446년 5월이면, 훈민정음 창제 이후이고 반포 직전의 시기다. “그렇죠. 세종은 훈민정음을 1443년 완성하고,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 9월 상순에 반포했습니다. 그 사이 즉 반포 6개월 전인 1446년 3월 소헌왕후가 운명합니다.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금사했고, 그때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것이 실록의 기록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비밀리에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세종 대신 섭정을 했던 문종이 이런 주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문종 실록 1450년 4월 6일자 기록에서 문종이 직접 말하기를 ‘대행왕께서 병인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었는데…’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 창제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신미대사는 무슨 역할을 했나. “운명한 소헌왕후를 위한 대법사가 있은지 4개월쯤 뒤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됩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불경을 통해 훈민정음 보급을 시도하자 사대부들의 반발에 부딪칩니다. 최만리, 하위지와 같은 많은 학자들의 반대로 훈민정음 보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세종이 내세운 논리를 요약하면 ‘왕비가 죽었지 않느냐. 괴롭고 외로운 내 처지를 이해해 달라’며 감성적으로 호소하면서 한글로 풀어쓴 언해 불경을 낸 것이지요. 명복도 더욱 빌고, 세종 자신도 위로하고, 새 문자도 보급하는 다중 포석을 놓은 겁니다. 불경 언해를 펴내기 위해서는 불경과 관련된 산스크리트말에 능통하고 훈민정음 취지를 잘 아는, 이미 불사를 통해 검증된 신미대사와 그의 동생 김수온이 있어 마음 든든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 이후 가장 먼저 나온 한글 보급서가 1447년 완성되고 1449년 간행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입니다. 불교지식이 넓은 신미대사가 불경의 한글화를 통해 훈민정음 보급에 앞장 섰지만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훈민정음 산스크리트 모방?…한글은 차원 달라범어·파스파·티벳 곡선… 한글은 점과 직선 위주문자 비슷해?… 해례본서 자모 모양 근거 밝혀”어려서 천자문을 배웠던 그는 학교에서 ‘한자 박사’로 통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영향을 받아 한글과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교시절 부모님이 주신 이름 김용성에서 ‘슬기롭고 옹골차다’는 뜻의 우리말 ‘슬옹’으로 이름지었다. 대학교 2학년때 법적으로 개명했다. 대학시절인 1984년 당시 흔히 부르던 ‘서클’을 ‘동아리’로 바꾸는데 앞장섰다. 새내기(신입생), 해오름식(창단식) 등도 그가 앞장서 보급한 우리말이다. 유별난 한글 사랑에 인터뷰 당일 훈민정음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 신미대사가 범어 전문가라고 하는데 훈민정음에 범어 흔적이 남아있지 않나. “신미대사가 범어 즉 산스크리트말에 능통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뛰어난 스님이니까 불경을 공부하면서 범어를 익히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창제할 당시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문자가 다 나와있었습니다. 세종은 소리문자를 만들고 싶어하셨고, 소리문자인 산스크리트 문자, 티벳 문자, 파스파 문자를 당연히 참고했겠지요. 그렇다고 모방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문자는 도형(모양)과 음가(소리)가 중요한데, 이들 문자는 곡선 위주입니다. 곡선은 쉽고 간단하게 쓸 수가 없습니다. 배우기 어려워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사어나 다름없게 됐어요. 그러나 한글은 점과 직선 위주입니다. 곡선은 동그라미, 즉 이응(O) 밖에 없어요. 그리고 산스크리트 문자와 마찬가지로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으로 되어 있지만 산스크리트 문자는 모음이 어떤 자음과 대응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요. 한글은 그런 게 없잖아요.” - 그러면, 훈민정음이 산스크리트 문자를 모방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 아닌가. “모방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큰 근거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글자 모양이 왜 그런 형태가 되었는지를 해례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음은 발음기관, 모음자는 하늘과 땅, 사람의 상형이라고 분명히 밝혀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방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서로 닮은 사람을 보고 형제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은 그 기원이 같고, 그 차원이 같다는 것이지만 한글은 그 어떤 문자와도 차원이 다릅니다. 민족주의 차원에서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과학입니다.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 용비어천가,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 등 관련 책을 보면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은 얼마나 컸나. “훈민정음은 세종이 주도적으로 창제한 것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과정에서 자료를 찾아주거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겠지만, 창제 아이디어, 직접적인 연구는 절대로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증좌로 집현전 학자 8명이 개인적으로 훈민정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동 창제라면 안 쓸 리가 없잖아요. 당시 집현전 학자 대다수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에 힘쓸 때 이들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10대였을 겁니다. 굳이 도왔다고 한다면 정인지와 최항 정도였을 겁니다. 하기야 소통을 중시했던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과 18~19세기 실학자들도 한글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한자 이외의 문자를 상상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창제에 개입했겠습니까.” “배익기 소유 해례본… 몇쪽 남았는지 밝혀야상주본 공개사진 보니 글자 획 간송본과 같아상주본 주석은 경상도 방언에 18세기 표기법조선시대 훈민정음 연구사·소장자 규명길 열려”한글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칭송하지만 정작 훈민정음 해례본 전공자는 국내에서 5명이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대학의 국문과 및 국어교육과 과정에서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그는 우리말과 관련해 80권의 책을 냈고 12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어교육학 및 훈민정음학 2개의 박사학위 취득자인 그는 20여개 대학에서 40여차례 임용에서 퇴짜를 맞았다. 대학에서 훈민정음 전공자를 뽑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책을 내고 두 달 간 강의하는 강좌를 개강했다. 유튜브로 훈민정음대학교 채널을 만들어 방송도 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본 손바닥책을 만들어 학생신문사와 함께 온국민 읽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해 배익기씨가 보관하고 있다는 상주본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실물을 본 적이 있나. “2016년 11월 배익기씨를 경북 상주에서 한글운동 단체 대표로 이대로, 최기호 선생님과 같이 만난 적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실물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배씨가 소장한 해례본을 통상 ‘상주본’이라고 하는데, 절반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66쪽 전체 갸운데 30~40쪽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정확히 밝혀주면 좋은데…, 배씨가 공개한 일부 사진 등을 보면 남아있는 상태가 비교적 좋고, 주석 같은 기록이 여백에 쓰여 있습니다. 글자에 삐친 획이라든지, 계선이 간송본과 똑같아요. 여백의 주석은 경상도 방언으로, 18세기 이후 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경상도 선비가 소장하면서 연구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 배씨 소장본 가치가 1조원이라는데,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을까요. “해례본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해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합니다. 서울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해례본이 2016년 40일간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루 보험료가 1억원이었습니다. 이는 보험회사가 평가한 것으로 유럽의 고문서나 대가의 그림 작품 등의 가치를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 1억원의 보험료라면 최소 1조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상주본이 간송본과 같다면 가치가 그렇겠지만, 남아있는 상태가 같지 않으니 가치가 꼭같지 않을 겁니다. 다만 서지학적으로 상주본은 위아래 여백이 간송본보다 온전히 남아 있어 해례본의 원래 크기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상주본의 여백에 남은 주석 기록이 조선시대 한글 연구 및 소장자의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해례본, 세종 당시 딱 한번 발행돼간행 50여년만에 희귀서적으로 변해문자 기득권, 해례본 빨리 폐기한 듯”- 해례본, 왜 이렇게 귀한 책이 됐나. “지금까지는 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의 존재가 확인됐습니다. 1446년 딱 한번 인쇄되었지요. 해례본은 간행 후 50여년 만에 희귀 서적으로 변했습니다. 당시 목판으로 500권 정도를 발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만큼 빨리 책들이 사라진 것지요. 이는 아마 문자 기득권층인 양반들이 해례본을 보고 하층민들이 문자 공부하는 것을 싫어해 폐기하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합니다. 어딘가 또 해례본이 나올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세종대왕 서문이 온전히 남아있는 해례본이 발견되면 빅뉴스가 될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삼성전자 ‘QLED 8K 간송 문화 강연’

    삼성전자 ‘QLED 8K 간송 문화 강연’

    삼성전자가 전국 주요 삼성 디지털프라자 9개 매장에서 ‘QLED 8K로 만나는 간송 문화 강연’ 이벤트를 23일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한다고 4일 밝혔다. 삼성은 첫 번째 행사로 지난 3일 신세계백화점 광주점에 주요 고객을 초청해 QLED 8K TV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국보급 소장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혜원 신윤복의 대표적인 풍속화 ‘미인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해례본’ 등 국보급 미술 문화재 10점을 초고화질 QLED 8K TV로 감상할 수 있다. 행사 참여를 원하면 삼성 디지털프라자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9일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10일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부산 본점, 11일 삼성대치점, 16일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17일 연수송도점, 23일 롯데백화점 부산점에서 행사가 열린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안민석 “배익기씨 훈민정음 13장뿐…가치 10억 불과할 수도”

    안민석 “배익기씨 훈민정음 13장뿐…가치 10억 불과할 수도”

    전문가 제보 인용…“재감정 평가 시급하다”1000억 고집 배씨 “소유권 진상 밝혀달라”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익기(56·고서적 수입판매상)씨가 소유한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상주에서 발견돼 붙여진 이름)이 전체 33장 가운데 13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31일 밝혔다. 안 의원은 만약 사실이라면 상주본의 문화재적 가치가 크게 훼손돼 실제 가치가 10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놨다. 이에 대해 배씨는 상주본의 정확한 장수를 밝히기 거부하면서도 “13장보다는 많을 것”이라고 애매하게 말했다. 상주본의 감정가 1조원의 10분의 1인 1000억원을 주지 않으면 국가에 내놓지 않겠다고 고집했던 배씨는 미묘한 입장변화도 보였다. 진상조사를 통해 자신이 상주본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어준다면 상주본의 재감정평가에 응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배씨와 안 의원이 출연해 훈민정음 상주본의 국가 귀속 조건에 대해 논의했다. 배씨는 지난 2008년 조선 세종때 쓰여진 훈민정음 해례본을 언론에 공개했다가 소유권을 둘러싼 송사가 벌어지자 모처에 상주본을 숨긴 채 소장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배씨는 상주본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2015년 3월 화재로 불에 그슬리는 등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상주본의 법적 소유자인 문화재청이 서적 회수를 강제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상주본의 소장처를 모르는 상황에서 강제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배씨가 자진 반납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안 의원은 상주본의 보관 상태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초기부터 직접 상주본을 보고 연구한 전문가의 제보를 받았다”며 “배씨는 전체 33엽(장)의 해례본 가운데 29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이 제보자는 13엽밖에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2011년 문화재청이 상주본을 감정하면서 1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으나 화재로 크게 훼손되고 실제 13장밖에 남지 않았다면 평가 가치가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는 게 안 의원의 생각이다. 그는 “13엽뿐이라면 10억원 정도밖에 가치가 안 될 수 있다”며 “배씨가 추천하는 전문가, 문화재청과 국회가 각각 추천한 전문가를 포함한 객관적인 감정평가 위원회를 구성해 상주본을 재감정하자”고 제안했다. 배씨는 즉답을 피하면서 “모든 것이 순리적으로 풀리고 원칙적인 일이 해결되면 자동으로 될 것”이라고 둘러 말했다. 안 의원은 “정부가 상주에 국립박물관 분점을 세워 배씨에게 명예 관장 기회를 주고 한글 세계화를 위한 한글세계문화재단을 만들어 적절한 수준의 예우를 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배씨는 좀처럼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1000억원의 보상액을 고집하던 입장에는 다소 변화가 감지됐다.10년간 훈민정음 소유권을 둘러싼 송사에 시달리면서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즉 자신이 상주본을 훔치지 않았고 개인의 욕심을 위해 이 일에 매달린 게 아니라는 것을 국가가 나서서 입증해달라는 것이다. 배씨는 2008년 집을 수리하던 중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며 공개했다. 그러나 상주지역에서 골동품을 판매하는 조모씨가 “배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훔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논쟁이 벌어졌다. 조씨는 배씨를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1년 5월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조씨는 이듬해인 2012년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숨졌다. 소유권이 국가에 있는 상태다.안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 소유의 문화재를 불법 은닉하고 훼손할 경우 강력 처벌할 수 있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할 것”이라면서 “한글날 전에 상주본이 국가로 반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세계적 보물 훈민정음 상주본, 국민 품에 돌려놓아야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국가가 강제로 회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그제 확정됐다. 이로써 문화재청이 상주본을 소장한 배익기씨 집 등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해졌다. 배씨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 달라며 소송을 냈었다. 상주본은 2008년 배씨가 집수리를 하다 발견했다고 해서 세상에 공개됐으나, 경북 상주의 골동품상 조모씨가 “내 가게에서 훔쳐 간 것”이라며 소송을 내고 법원이 조씨 손을 들어 주면서 11년간 갈등을 빚었다. 문제는 상주본이 공개되고, 소유권 분쟁이 일자 배씨가 상주본을 감췄다는 데 있다. 조씨는 2012년 실물을 확보하지 못한 상주본의 소유권을 국가에 넘기고 사망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문 해설서로 간송미술관의 간송본(국보 제70호)과 상주본 딱 2권만이 존재한다. 상주본에는 한글 발음에 대해 붓으로 글씨를 써 놓고 공부한 흔적이 있으며, 간송본에는 없는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다섯 음으로 만든 글자에 대한 고찰)라는 표지가 있어 간송본을 뛰어넘는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된다. 이미 대법원 판결과 원소유자의 기증에 의해 국가 소유가 확정돼 있는 문화재를 한 개인의 어처구니없는 소유권 주장으로 행방조차 모르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배씨는 1조원짜리 상주본을 받아 가려면 1000억원은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문화재청은 판결 취지를 배씨에게 설명하고, 안전한 회수를 위해 강제집행 대신 배씨 설득을 우선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배씨가 30장짜리 상주본을 3개로 나눠 보관하고 있다지만 믿을 수 없다. 전문성을 요하는 고서적의 보관이 제대로 되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간의 과정을 보면 배씨의 선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법적 절차를 마쳤으니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상주본이 더 훼손되기 전에 국민 품에 돌려놓아야 한다.
  • 훈민정음 상주본 강제회수 길 열렸다

    훈민정음 상주본 강제회수 길 열렸다

    문화재청 “설득 후 거부 땐 압수수색” 문화재 은닉·훼손 등으로 고발 계획도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56)씨가 문화재청의 반환 요구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 이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배씨가 소장한 상주본은 한글의 원리가 소개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당초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해례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8년 배씨가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중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골동품 판매상인 고(故) 조모씨가 “배씨가 고서 2박스를 30만원에 구입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가져갔다”고 주장하며 소송전으로 번졌다. 민사소송은 조씨의 승소로 확정됐다. 소송에서 이긴 조씨는 2012년 상주본 소유권을 국가에 기증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배씨의 상주본 절도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1심은 배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뒤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면서다. 이후 배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근거로 상주본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며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은 배제돼야 한다는 소를 제기했다. 1·2심은 “형사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것만으로 상주본 소유권이 배씨에게 있다고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손을 들어 줬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이었다. 이날 배씨에게 회수 공문을 보낸 문화재청은 이틀 뒤인 17일 배씨를 직접 만나 설득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3회 정도 회수 공문을 보낸 뒤에도 배씨가 거부하면 법원에 강제집행을 요청해 압수수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씨가 상주본을 집이 아닌 곳에 숨겨 뒀을 가능성도 크다. 문화재청은 강제집행 시 배씨를 문화재 은닉 및 훼손죄로 고발할 계획도 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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