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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시론] 우리사회 터부와 시민문화

    우리는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여러가지 비판의 소리를 들어왔다.그 하나가 ‘패거리(Crony) 자본주의’란 지적이다.아마도 대표적인 대상은 재벌의 족벌 지배체제일 것이다.또 지연,학연,혈연으로 맺어지는 생활양식을 들수 있다. 그것은 속성상 파벌주의이며 가족주의이기 때문에 폐쇄적이다.농경사회에서는 혈연과 지연 및 신분의 연고를 통해 모인 폐쇄적 집단이 공동체를 이루어살았다. 그러나 사회는 변한다.농경 본위의 신분사회에서 산업화한 시민사회로 발전했다.농경사회의 신분윤리는 시민사회의 사회윤리로서 구실할 수 없게 됐다. 혈연공동체인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지배사회에서 통한 유교윤리인 ‘충효’는 시민사회의 인간존중과 공공정신 및 봉사의 정신을 대신할 수 없다.지금충성의 의미는 군주나 독재자에 대한 맹종과 헌신이 아니라 겨레를 사랑하는공공 봉사의 정신을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혈연,지연,학연의 파벌적 폐쇄적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물론 민주주의 지도자가 아닌 국부나 독재자들에겐 연고를 통한 파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 집권에 편리했다.그래서 해방후 독버섯처럼 퍼져 온 것이패거리 자본주의이고 패거리 정치 문화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구조와 정치문화로는 살아남지 못한다.봉건적 패거리문화는 이기주의이고 폐쇄적이며 이성을 외면한 감상주의를 기초로 한다.그런데시민문화에서는 공공정신과 봉사이고 공개와 비판 검증이며 이성에 따른 토론과 설득의 보장이다.이런 시민문화는 하루 아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루기 어렵다.그렇지만 우리가 시민문화가 주는 인간존중과 풍요와 협조를 누리려면 그 사회의 정신과 사회구조에 익숙해져야 한다. 천자문과 논어의 암송실력으로 합리적 비판과 검증을 대신할 수 없고,주역으로 컴퓨터를 배제할 수 없다.아무리 선현의 말씀이 훌륭해도 그 말씀을 익히는 목적이 출세하기 위한 것에 그치면 그것이 진리탐구의 학문정신과 시민적 정의를 배우는 시민정치교육을 대신할 수 없지 않은가.봉건적 시대의 고전을 연구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덕목으로 맹신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수입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해방후50년을 통해 체험했다.자유는 자유인이 되는 자질을 갖추고 결단이 있어야가능하며,민주주의는 민주방식으로 나라를 운영할 정치능력이 있어야만 되는것이다.우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총선시민연대 운동은 패거리 정치문화의 맹점에 기생한 구정치세력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나?패거리 문화로 얽히고 설킨 한국사회는 식민지배와 독재로 얼룩지며 왜곡굴절되어,비판의 터부(禁忌)가 엄연히 법률 이상의 제도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우리 사회의 법률은 거미줄 같아서 잠자리처럼 약한 것은 걸려서 거미의 먹이가 되지만,박쥐같은 힘센 악당은 흔히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그런데 이 묵시적 율법으로 통하는 터부는 위반하는 자에게 무서운 보복과 징벌을 가한다. 지연과 학연의 패거리에서 이탈한 자,재벌을 비판하는 신중치 못한 자,기득권 옹호의 언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항아,일제시대와 독재시대에 덕을 본기득권층을 부정하는 자 등은 이 사회의 터부를 침해한 것이 된다.그들에겐엄중한 보복과 처벌이 따른다는 현실이 있다.이것이야말로 현실에서 실제로효력이 있는 법률이고 제도인 것을 약삭빠른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이 터부가 그대로 있고선 아무 것도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개량이 아니라,개혁을 철저히 해야 한다.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 말조차도 꺼리고 있는 판국이다.왜냐하면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아직도 구시대의 터부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간디가 진리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했듯이 우리는진실을 통해 실상에서 눈을 뜸으로써 자기를 찾아야 한다.세상흐름에 맡겨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슬기롭다고 하는 것은 구시대의 전제폭군 밑에서 살아온 노예들의 처세술이다.우리는 자유인이어야 한다.세상이 달라졌다.달라지게 해야 한다. 현대에 있어서 노예 처세술의 답습은 우리를 자멸로 인도한다.그래서 우리는개량이 아니라 개혁을 위해 이 사회의 터부를 깨부수어야 한다.지난 총선에서 시민운동이 그 선례인데,그것은 한번만으로 그치는 것이 되어선 안된다. 韓 相 範 동국대교수·법학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1)17년 내전 스리랑카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간,종교간 반목과 무력분규가 갈수록 격렬해지고 그범위가 확산되고 있다.무력 분규는 코소보,체첸등 옛소련,동구지역에서 시작해 지금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등 지구촌 전역을 무대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제3세계 분쟁지역의 경우 무지와 가난,천재지변,질병등이 겹쳐 자체해결의 희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고 유엔이나 서방의 관심권 밖에 있어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주요 분쟁지역의 현황과 분쟁이 일어난 배경,해당 민족들의 역사,문제점등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긴급…,스리랑카 반군 자프나 탈환 임박’‘정부군 2만여명 자프나에 고립’,‘반군 150명 사망’.외신들이 남아시아 끝에 위치한 스리랑카로부터급박하게 전개되는 내전소식을 연일 전세계로 전송하고 있다. 타밀족 독립 무장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5년만에 옛 수도인 북부의 자프나 탈환을 눈앞에 두고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언한 반군이 자프나에서 1㎞ 떨어진 곳까지 진출,정부군에 “항복하거나수도를 즉각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4월말 자프나지역과 본섬을 잇는 길목인 ‘코끼리 통로’를 반군에 내주고 자프나 반도에 고립된 정부군 2만여명은 2,000여명의 반군에 대항,유일한 보급로이자 퇴각로인 팔라리 공군기지와 인근 항구를 사수하고 있다.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정부군에겐 이마저 힘에 부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를 비롯,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국내 언론의 보도를 전면 통제하고 전비충당을 위해 세금을 인상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다.인도가 개입 의사를 시사했고 평화협상 중재자로 나선 노르웨이 외무차관이 찬드리카 쿠라마퉁가 대통령과 만나 8만명의 사망자와 70만명의 난민을 낸 17년 내전을 종식시킬 방안을 논의중이다.쿠라마퉁가 대통령이 타밀족에 자치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야당과 정부내 반발,자치가 아닌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의 주장에 밀려 결실을 맺을 지는 미지수다. ◆분쟁의 역사 스리랑카는 16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아오다1948년 영연방 자치령으로 독립했다. 65년부터 소수 힌두계 타밀족(18%)은 다수 불교계 싱할리족(75%)으로부터분리독립운동을 펴왔다.이것이 민족·종교간 분쟁으로 내닫기 시작한 것은 72년 타밀족에 대한 차별정책에서 비롯됐다.싱할리족 정부가 싱할리어와 불교를 우대하는 등 타밀족에 불리하게 헌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영국식민지 시절 타밀족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이들의 지배를 받았던 싱할리족의 보복조치인 셈이다. 이에 반발,타밀족의 폭동이 77년,81년,83년 간헐적으로 일어났다.83년 7월타밀족의 본거지인 자프나에서 싱할리족 군인 13명이 살해되자 수도 콜롬보등에서 싱할리족에 의한 무차별 보복전이 시작됐다.전국적으로 1,000여명의타밀족이 살해되는 이른바 ‘대학살’이 자행됐고 콜롬보시에서만 10만명의난민이 발생했다.이를 계기로 타밀엘람해방호랑이가 결성되면서 무력대결로치달았다.90년부터 5년간 자프나 지역에서 사실상의 독립정부 역할을 해왔던반군은 그러나 95년 9월 정부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고 정글로 쫓겨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정부군과 반군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한 평화적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가 중재는 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밀접한 인도가 국내외 역학관계에 발목이 잡혀 적극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두차례 군대까지 파병했지만 이번에는 군사개입은 배제한 채 양쪽이 요청할 경우 중재 의사만 밝혔다.91년 인도군을 파병했던 라지브 간디 총리의 암살 악몽을 잊지 못하는 인도 국민들과 연정을 이룬 타밀 정당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지역 맹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도 아쉬워 인도 정부는 개입여부를 놓고딜레마에 빠져있다.그래서 사태가 진정돼 지친 반군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 분석까지 나온다. 김균미기자 kmkim@. *'엘람해방호랑이' 어떤조직. 83년 결성된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는 타밀족 분리독립을 주도하고 있는무장반군 조직이다. 병력은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0만명이 넘는정부군의 10%에 불과하다.이들은 자동소총에서부터 지대공미사일과 로켓포 등중화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세계에서 훈련이 가장 잘된 최정예 전사로불리운다.야포와 탱크 등으로 중무장하고 해군력까지 보유하고 있다.특히 포로로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몸에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다닌다. 반군 지도자는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46).인도 타밀족 출신으로 무자비하고 포악하기로 이름난 그는 18살때인 72년 자프나 시장을 살해하면서 반군활동에 참여했다.86년 LTTE의 유사 타밀 무장조직인 TELO의 지도자를 모두살해하고 89년 타밀 무장조직을 통합했다. 반군은 특히 ‘검은 호랑이’로 불리는 자살특공대로 악명이 높다.2차 대전때 일본 가미카제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연상시킨다.프레마다사 대통령(93년 5월),위저라튼 국방장관(90.12월),디사나야케 대통령 후보를 암살했다.91년 라지브 간디 인도총리도 자살특공대 소속 여성대원에게 암살됐다.95년스리랑카 해군에서 둘째로 큰 군함이 소녀대원 3명의 자폭공격으로 침몰됐으며,지난 3월10일 수도 콜롬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28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했다.지난해 12월대통령 선거 유세현장에서 자살테러가발생, 집권당 후보였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한쪽 눈을 실명했고 3명의 장관 등 38명이 숨졌다. 전사자가 늘면서 남성대원들의 자리를 여성들로 채우기 시작,현재 전체 병력의 30%를 차지하며 상당수가 자살특공대로 활동중이다. 인도 남부의 5,000만 타밀족과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수십만 동족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김균미기자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4)사다트 베긴 회담

    *77년 이집트·이스라엘 정상회담. “20세기 가장 위대한 외교적 승리의 하나이자 역사적 이벤트였다.우리는전혀 새로운 평화에의 여정을 창조했다” 1977년 11월19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외무장관으로 동행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UN사무총장은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남으로 촉발된 화해 기류는 누구도 녹일 수 없을 듯하던 중동의 얼음장 하나를 쩍 갈랐다.양국 정상간 대면은 최초의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져 중동평화 여정에 거대한 초석을 놓게 됐다. 애초에 사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4차례 전쟁을 통해 국토를 강탈해간 이스라엘에 아랍권은 유혈투쟁을 불사해왔다.이집트 역시 67년 전투에서 이스라엘에 시나이반도를 뺏겼고 73년 이를 둘러싸고 또한차례 격전에 휘말리는 동안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에선 초강경 테러리스트 출신 베긴 정권의 탄생으로 세계가 경악했다. 그러나 한편 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30년 무력충돌에 대한 넌더리가 중동 민중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었다.국제사회의 압력도 날로 거세갔다.이스라엘은무력점령한 땅을 반환하라는 UN 결의안 242조를 마냥 무시할수 만은 없었으며 극도의 민생 피폐상에 시달려온 이집트에는 미국이 ‘평화분담금’ 명목으로 제시해온 경제원조가 절실했다.이 시점에서 사다트는 결단을 내렸다.77년 자국 의회에서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어디든 간다.이스라엘 의회까지라도”라고 연설,강한 평화의지를 피력한 것.여기에 이스라엘이 즉각 초청장을 보내 화답했다.그리고 사다트가 무조건 이를 수락함으로써 아랍지도자 최초의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3차례 회담에도 불구,평화조약이 아닌 “평화를원하며 대화를 계속하자” 정도의 원론적 합의성명서 한장을 달랑 내는데 그쳤다.30년간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양국간 입장 차는 클 수 밖에 없었다.베긴 총리는 평화보장을 전제로 한 시나이반도 반환은 받아들였으나 요르단강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위와 관련된 사항에는 한치도 양보할수 없다고 버텼다.양국은 향후 1년여를 무수한 중재회담으로 소모하고서도 접점을 찾지 못해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여야 했다.78년 9월 카터 미 대통령은 양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협상조율에 들어갔다.2주만인17일 천신만고 끝에 역사적인 합의문이 엮어져나왔다.골격은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반환 및 이스라엘-이집트 수교 ▲5년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보장 원칙 등 크게 두가지였다.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그후로도 반년이 흘러야 했다. 어렵사리 싹튼 중동평화였지만 부작용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양국 모두 국내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렸으며 사다트는 동포를 버린 배신자로 아랍권에 낙인찍혀 리비아,시리아 등으로부터 단교당하기도 했다.미국을 불러들인 반쪽정상회담의 한계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자치권 회복까지는 문서에약속된 몇배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이스라엘-이집트 협정의 의미 자체를 희석할 수는없다.미국이 중도개입했으나 협상의 촉발점이 된 사다트의 예루살렘 방문이상당히 독자적 행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중동문제를 자력으로 인식한 최초의사례가 아닐 수 없다.유대-아랍간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 회담이 없었다면 93년 오슬로협정,98년 와이리버협정 등 향후 중동평화의 모든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나올 수 없었다.78년 사다트와 베긴은 그 공로로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러나 81년 사다트는 과격파 총탄에 희생돼 중동평화의 첫 순교자가 됐다. 손정숙기자 jssohn@.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반식민,반봉건주의자에서 중동평화 개척자로.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일생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1918년 영국 통치하 이집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카이로 사관학교에 입교,정치 역정을 시작한다.영국 통치에 저항한 자란,터키 오토만 왕정을 무너뜨린 케멜 아타투르크,비폭력운동의 간디,그리고 히틀러로부터 영향을받았다. 38년 졸업과 함께 배치된 후방에서 후일 이집트 초대대통령이 된 아브델 나세르를 만나 정치적 동지가 된다.52년 나세르가 이끄는 비밀조직이 왕정을무너뜨리고 집권하자 그 밑에서 18년간 홍보장관,집권당 사무총장,국회의장,총리 등을 지내다 70년 나세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72년 소련군 추방,73년 대 이스라엘 반격 등으로 외교적 성과를 쌓아가던중 77년 이스라엘과의 평화계획을 제시,전세계의 관심권 안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이에 대한 내부 반발을 철권통치로 억누르다 81년 자국군 내부 회교원리주의자 총탄에 숨졌다. *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또다른 축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한때 시오니스트 무장단체를 이끌며 테러를 자행,목에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 1913년 옛 소련(지금의 벨라루시) 브레스트-리토브스크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샤바 법대를 졸업했다.2차대전 홀로코스트에 부모형제를 잃은 뒤 과격분자로 변신,예루살렘의 영국군 사령부 숙소였던 한 호텔을 폭격,100여명을 사망케 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원내투쟁으로 선회,20여년간 극우 야당을 이끌다가 73년 리쿠드당을 창당했으며 77년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총리로당선됐다. 그는 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로 중동에 평화를 부른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81년 이라크 핵수로 폭격,82년 레바논 침략 등으로 강경 이미지를 재확인시키며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비난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83년 자진 은퇴한 뒤에는 92년 사망 때까지 정치를 등지고 칩거했다. 손정숙기자
  • 호주 영문학교수 릴라 간디

    ‘포스트식민주의’란 식민주의 문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이론적 작업으로 근본적으로는 ‘탈식민화’를 꾀하려는 담론이다.처음이 용어는 2차대전 후 역사가들이 ‘포스트 식민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한데서 연유하였다.그러다가 문학이론가들이 70년대말부터 식민화의 다양한 문화적 효과들을 논의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지금은 하나의 독자적인 비평이론이자 학문분과로 정착되고 있다. 최근 이영욱 전주대 교수가 번역 출간한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 펴냄)는 포스트식민주의가 80년대말 이후 포스트구조주의,정신분석학,페미니즘 같은 이론들과 더불어 인문학에서 주요한 비판 담론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과 배경,주요 주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이 책은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진정한 탈출구가 식민 과거에 대한 망각,혹은 포스트식민적 기억상실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주요 대상은 아프리카와 인도의 식민지 경험에 관한 것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 릴라 간디는 호주 라 트로브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포스트식민주의 대한다수의 논문을 발표해왔다.1만원.
  • ‘세계를 흔들흔들‘

    현대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인물 100명을 만화로 엮은 ‘세계를 흔들흔들 현대인물 100’(중앙M&B·전2권)이 출간됐다. 이 책은 국내외의 주요 신문과 잡지에서 선정한 ‘세기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100명의 현대 인물을 뽑아,△정치 △지식과 발명·발견 △경제 △문화·예술 △종교·사회 등 다섯 분야로 나누었다. ●정치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인 토머스 우드로 윌슨(1856∼1924)을 비롯해요시프 스탈린,더글러스 맥아더,마하트마 간디,넬슨 만델라,존 F.케네디,김구,이승만,김일성,박정희 등이 실려 있다. ●지식과 발명·발견 프랑스의 곤충학자인 장 앙리 파브르(1823∼1915)를 포함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우장춘,스티븐 호킹,토머스 에디슨 등이 소개됐다. ●경제 ‘강철 왕’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기업가 앤드루 카네기,헨리 포드,이병철,정주영,빌 게이츠,손정의 등이 나온다. ●문화·예술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찰리 채플린,어니스트 헤밍웨이,월트 디즈니,손기정,백남준,비틀스 등이 각각 수록돼있다. ●사회·종교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장애를 극복하고희망을 나누어 준 빛의 천사 헬렌 켈러,마더 테레사,김수환,마틴 루터 킹,달라이 라마 등이 실려 있다. 김명승기자
  • 잡지 ‘삼천리’ 11호 최초 공개

    1948년 12월 유엔으로부터 한국정부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개최된 제3차 유엔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유엔한국대표단 일행의 행적사진 등 희귀사진이 담긴 월간 ‘삼천리’ 제11호(1949년 3월호)가 처음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삼천리’ 제 11호는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이 해방후인 1949년 3·1 의거 30주년을 기념해 특별제작한 것으로 유엔한국대표단 일행이 유엔총회기간중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이준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진을 비롯,대표단 일행중 김활란,모윤숙이 정부승인후 외국의 귀빈들에게 우리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사진 등 사료가치가 우수한 자료가 상당수 포함돼있다.제11호는 그동안 원본이 전해오지 않아 ‘삼천리’영인본에도 빠져있는 것을 파인의 3남 김영식(金英植·67·사진)씨가 최근 개인소장가로부터 입수,공개한 것이다. 이 잡지에는 개화기부터 해방이후 정부수립 직후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담은 사진과 기사가 여러 건 실려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우선 1949년 2월경 ‘삼천리’ 기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재일거류민단장으로 있던 애국지사 박열(朴烈)과 함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영친왕 이은(李垠)을 단독 인터뷰한 기사를 비롯해 1920년 상하이서 발행된‘노스 차이나 데일리’지가 상해 임시정부 초대총리 이동휘(李東輝)를 인터뷰한 기사도 실려있다.또 제3차 유엔총회 참석차 프랑스 파리에 체류중이던모윤숙이 현지에서 쓴 시 ‘센 江의 밤’과 일기를 비롯해 고당 조만식과 민세 안재홍이 각각 인도의 간디와 의암 손병희의 사상·행적 등에 관해 쓴 글들도 포함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kadily.com
  • 하시나 방글라데시총리, 2회 펄 벅상 수상

    [린치버그(미 버지니아주) AP 연합]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제2회 펄 벅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랜돌프-메이컨 여자대학이 6일 발표했다. 대학측은 “하시나 총리가 각국간 문화이해 뿐만 아니라 인권 및 시민권 향상과 아동보호에도 노력해 왔다”면서 선정배경을 밝히고 “그녀는 이 상의적임자”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길을 따라 정치활동을 해오던 중 96년 총리직에 오른 하시나 총리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성 및 아동들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해 왔으며,이 결과 현재 방글라데시 지방 정부기구에진출한 여성수만도 1만4,000명이 넘게 됐다. 하시나 총리는 공로를 인정받아 간디 평화상과 테레사 수녀상도 수상한 바있다.14년 랜돌프-메이컨 여자대학을 졸업한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의유지를 받들어 인간 존엄성 및 상호이해에 이바지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이상은 98년 코라손 아키노 전(前) 필리핀 대통령이 처음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8일에 열리며 부상으로 1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 클린턴 딸, ‘퍼스트 레이디’대역 훌륭히 수행

    ■뉴욕 연합■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외동딸 첼시(20)가 어머니 힐러리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22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신문은 첼시가 서남아시아를 순방 중인 클린턴을 따라 함께 움직이며 대통령 부부가 참석해야 할 공식행사에서 힐러리가 빈 자리를 훌륭히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첼시는 21일 인도 대통령 관저 도착 공식행사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뒤에 서서 인도 고위 공직자들과 인사를 나눴고,간디 묘소참배에서는힐러리 여사가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에 서서 클린턴이 헌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대학에 재학중인 첼시는 힐러리 여사가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작년 말 뉴욕시 이웃 채퍼쿼로 이사한뒤 선거운동을 하느라 백악관 안주인 역할을 할 수 없어 대신 클린턴의 순방길을 동행하고 있다. 백악관측은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과의 공식 행사 이외의 첼시의 행적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등 첼시가 힐러리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대신하고 있는점을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 美 한국관련 인권보고서 요지

    청와대 공보수석실은 미 국무부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99년 국가별 인권현황보고서 가운데 한국관련 부분 전문을 1일 공개했다.일부 국내언론의 보도내용이 특정분야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인권상황 전체를 조망하는데 미흡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특히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특별브리핑 당시 발언내용도 공개했다.울브라이트장관은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기본적인 인권이 널리 존중되는 축복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이같은 진전은 루스벨트,만델라,간디,하벨,김대중,마틴루터 킹과 같은 지도자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며 김대통령의 기여를 직접 거론했다. ◆다음은 한국관련 보고서 요지 근년에 사법부의 독립성이 증대되고 있으나 최근 몇 건의 불법적인 외압과정실이 개입된 것으로 주장되는 스캔들이 발생,검찰과 재판부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국내 보안유지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정보원,경찰청,기무사의 일부요원들이 이따금 인권탄압을 저지른다는 신빙성있는 보고가 계속 있었다. 정부는 대체로 국민의인권을 존중한다.경찰이 수감 정치범에게 언어 및 신체학대를 가한 사례가 있었으나 인권단체들은 그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보고한다. 법무부는 연행시 피의자에게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알려주라는 지침을 계속 이행했다.대통령은 광복절 담화에서 국가보안법을 개정,인권을 보호하고 정부의 대북접촉 확대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선언했다.미전향 장기수 17명이 준법서약을 거부했는데도 석방했다.여성에 대한 폭력 및신체적 학대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고, 이 문제에 대한 법률보완이 아직 미흡하다.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을 해온 김대통령은 여권신장이 최우선목표라고 거듭 말했고,1월에는 고용평등법을 개정, 고용과 승진의 성차별에대한 처벌을 강화했다.7월에는 새로운 성희롱법이 발효되어 기업들은 직장에서의 성희롱을 막기 위한 지침을 세워야 했다. 전교조 활동을 합법화하는 법도 제정됐다.이것과 최근에 개정된 여타 노동법 등으로 한국노동법은 국제수준에 근접하게 됐다. 정부가 언론에 대한 직접 통제를 포기했지만,간접적인영향력 행사는 계속하고 있고 정부 관리들은 기자와 편집자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를 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잠재적인 세무사찰 위협과 광고주들에 대한 압력 때문에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약화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언론의 정부비판은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나 당국은 언론보도를 막기위해 억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디오와 TV방송국 상당수가 정부 지원을 받고 있으나 취재에서 편집의 독립성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다. 정부 자체 지침에 따라 언론의 폭넓은 북한보도를 계속 허용했다.섹스와 폭력영화를 심사하는 정부검열위원회는 최근들어 좀 더 자유로운 지침에 따르고 있다.정부는 대체로 학문의 자유를 존중했고,올 한햇동안 학술논문에 대한 사법처리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양승현기자
  • [김삼웅 칼럼] 불복종운동과 헨리소로

    여러 해 전 미국 보스턴에 머물때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통나무집을 짓고살았던 월든 호반을 찾았다. 보스턴에서 서북쪽으로 30마일쯤 달리면 콩코드마을이 있고 여기서 몇 마일 더 가면 경관 좋은 월든 호반이 천고의 옛 모습을 자랑하듯 고요히 자리잡고 있다. 소로가 인적이 없는 이곳에 오두막집을 지은 것은 28세 되던 1845년의 일이다. 미국독립 100주년인 7월 4일을 기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 집은 폭이10피트, 길이 15피트, 8피트 기둥들로 지어졌다. 총 비용이 29달러(당시) 들었고 나머지는 모두 직접 노동으로 이루어졌다. 소로는 이 집에서 2년여 동안 자연생활을 하며 살았다. 개간한 땅에서 심은콩을 주식으로 하였으며, 월든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부식으로 먹었다. 이런식생활로 1년 식비가 9달러를 넘지 않았다. 이곳 생활에서 그는 사색을 깊이 했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 순수한 말과행위의 시인이 되었다. 내가 찾았을 때는 원형대로 복원한 통나무집은 풍상에 바래고 안내원이나관리인도 없었다. 그렇지만 소로가 살았던 흔적은 곳곳에배어 있었다.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세속적 성공에 회의를 느낀 소로는 2년여의 짧은 ‘숲속의 생활’이지만, 그리고 하루동안의 감옥생활에 불과했지만 그는 적어도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두가지 사상적 조류를 남겼다. 20세기에도 ‘뜻있는’사람들에게 그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소로의 자유주의와 비폭력 불복종사상은 19세기 후반 영국 노동당의 이념적지표가 되고, 톨스토이가 비폭력주의를 내세우며 평화운동을 전개하게 되고, 간디의 인도독립운동의 지침이 되고,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흑인해방운동으로 전개되고, 일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절대반전운동·무교회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한국의 함석헌·김교신 등은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다. 소로의 사상은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양대 사상적 조류로 이어진다. 자연주의와 시민운동이 그것이다. 그는 무척 자연을 사랑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죽음을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월든) 우리가 요즘에야 자연보호운동에 나서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에 비하면 150여년 전 소로의 실천적 자연주의사상이 얼마나 앞선 것인가를 알게된다. 소로는 개인의 자유가 국가권력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다. 이같은 신념에서 미국의 멕시코 침략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고 인두세의 납부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콩코드감옥에 갇히고 짧은 감옥살이지만 값진 경험으로 ‘시민의 불복종’을 쓴 계기가 되었다. “지배하는 것이 가장 적은정부가 최상의 정부”란 명구로부터 이 책의 서두는 시작된다. 에머슨이 감옥에 있는 소로에게 “너는 왜 그곳에 있는가?”하고 물었을 때 “당신은 왜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다는 이야기에는 묵시적인뜻이 함축된다. “누구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투옥하는 정부밑에서는 의인을위한 참된 장소는 감옥이다”란 경구에서 우리는 소로의 실천적 자유인의 모습을 찾게 된다. 최근 낙천·공천철회 운동과 이를 봉쇄한 선거법에 대해 총선연대가 불복종으로 맞선것은 실정법과 시민권(천부인권)의 숙명적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시민불복종운동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 소로는 몇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부당한 법이 있다고 하자. 그때 우리는 이를 지키는데 만족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수정할때까지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즉시 그것을 어겨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정의에 준할만큼 법에 대한 존경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믿는유일한 의무는 언제든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이다. 즉 우리는먼저 인간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연후에 국민이어야 한다”는 것이 소로의 명쾌한 해답이다.
  • [대한광장] 민주당 정책위원장 이재정 신부에게

    자네의 요즘 직함이 민주당 정책위의장이라는 사실은 보도를 통해서 알고있네만 나는 지금 이 글을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아니라 공당의 정책위의장이된 나의 친구 이재정 신부한테 쓰고 있다네.그러니 성격상 이 글은 사신(私信)이지만 일간 신문의 지면을 빌려서 쓰고 있으니 굳이 가른다면 공개 사신쯤 될까 모르겠군.아무러면 어떤가. 30년쯤 전 박정권이 3선개헌을 시도했을 때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이병린변호사,천관우 선생 등과 함께 3선개헌 반대 국민운동을 이끄신 것은 자네도잘 알고 있겠지.그때만 해도 기독교 지도자가 정치 현실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일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낯선 일이었네.아니,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지.이승만씨를 비롯해 윤보선,장면,정일형 등 이 나라 정계를 이끌어온 인물들이 모두 기독교 신자였는데 기독교인들 정서에 기독교 지도자의 정치 참여가 낯설었을리 있겠는가. 그런데도 당시 기독교계에서는 김재준 목사의 정치 현실 참여를 두고 ‘정교분리의 원칙’을 거론하며 마땅찮은 눈으로 비판하는 소리가 자못 높았지. 그 무렵 어느 사석에서 들은 김재준 목사님의 한 마디는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네.그 분은 저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를 섞어이렇게 말씀하셨지. “현실에 살면서 현실에 참여 안할 수 있어? 문제는 현실에 참여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하느냐지.깨끗한 참여가 있고더러운 참여가 있을 뿐인 게야” 그토록 마틴 루터까지 들먹이며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는 자들이 이승만정권이나 장면 정권 때는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이런 얘기를 더길게 늘어 놓을 이유도 시간도 없네.나는 다만 자네가 공당의 정책위의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앉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짐작하고 그 고민이 낳은결단을 우선 지지하면서, 이왕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재야에 있을 때 품었던뜻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그런 말을 전하고 싶을 따름일세. 많은 경험자들이 그렇게들 말하더군.정치판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능하리라여긴 일들이 일단 들어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한두 사람의 뜻과 힘만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손써볼 수없을 만큼 굳어져 있고 썩어 있더라고.어떤가.자네도 혹시 그런 느낌을 벌써 받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그들의 말이 터무니없는 변명이나 핑계는 아니라고 보네.그러나 그런말을 들을 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 않았어.자네 생각엔 어떤가.마하트마 간디 같은 사람도 이 나라 정치판에 뛰어들면 그런 말을 할까.백범선생님이 환생하시어 오늘 여의도에 진출해도 한 사람 힘 가지고는 어림도없다고 고개를 저으며 맥없이 물러날까. 한두 사람의 뜻과 힘을 스스로 가벼이 여기니까 그 뜻과 힘이 맥을 못추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자네와 내가 유일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예수를보세.그 분 앞에서 누가 감히 한 사람의 뜻과 힘을 가볍다 말하겠는가.그러나 만일 그 분이 당시의 정치판에 (자의든 타의든) 발을 들여놓으신 뒤 일신(一身)의 살아 남을 구멍을 찾느라고 스스로 죽는 길을 외면했더라면,우리가또한 어떻게 한 사람의 위대한 길에 대하여 그것을 신뢰할 수 있겠나. 자네나 나나 어차피 그 분의 부르심을 입었으니 언제 어디서나 살아남을 길을찾을 게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일세.내가 굳이자네를 무슨 무슨 당 정책위의장 아무개 신부(神父)라고 부르는 이유를 깊이헤아려 주시기 바라네,친구여. 이현주 목사 아동문학가
  • 문예진흥원 기획공모전 선정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의 올해 기획공모전 윤곽이 드러났다.선정작품은 ‘0의공간,시간의 연못’(기획 김태곤)‘벽사전’(임영길)‘이미지 미술관전’(이근용)‘아닌,혹은 나쁜 징후들전’(김종호)‘불임전’(이필)등 5건.지난해 7월 마감한 응모작 40여건 가운데서 큐레이터·평론가·전시기획자들이 뽑은것이다.당선작을 낸 이들에게는 미술회관 전시장을 무료로 제공하며 각각 1,000만원도 지원한다.지난해 신설한 이 공모전은 기획전시를 활성화하는 ‘큐러토리얼(curatorial)프로그램’으로 미술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첫 전시는 현재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리는 ‘0의 공간,시간의 연못’전(8일까지)과 ‘벽사전’(9일까지).나머지는 3월부터 8월에 걸쳐 열릴 예정이다. 공간디자이너 김태곤와 현대음악 작곡가인 문성준이 함께 벌이는 ‘0의 공간,시간의 연못’전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시도했다.무엇보다 작품내용과 기획이 파격적이어서 시선을 끈다.김씨는 형광빛 환한 실줄을 이용해 다양한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낸다.수많은 실줄이 수직·수평으로 교차하지만 그것들이 서로 만나 폐쇄공간을 이루지는 않는다.이 작품은 관람객들을 정글과같은 빛의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문씨는 자작곡인 피아노음악 ‘연못’을 컴퓨터로 재합성해 들려준다.전시장(약 150평)안에는 스피커 6개를 설치해 다양한 전자음향을 점묘적으로,시차를 두고 재생한다.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울림통 구실을 한다. “이번에 사용된 곡은 시작과 끝이 없이 빙글빙글 돌며 순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시간의 순환성을 강조하는 동양사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문씨는 자신의 음악이 그저 메마른 정신의 기계음이 아님을 강조한다.빛이공간을 의미한다면 소리는 시간을 뜻한다.그런 점에서 김씨의 설치미술과 문씨의 음악은 시공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상징한다.‘0의 공간,시간의 연못’전은 실험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벽사전’은 문설주에 피를 발라 악귀를 쫓는 세시풍속을 현대미술의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한다.판화가·멀티미디어작가·비디오아티스트 등 16명이 무속적 소재를사이버 스페이스나 멀티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미술어법으로 표현해냈다. 서구일변도로 치닫는 현대미술에 대한 한국적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라는게 기획자인 임영길교수(홍익대 판화과)의 말이다. 김종면기자
  • 학술단체협의회 ‘낙선운동 왜 정당한가’ 긴급 토론회

    학술단체협의회(상임공동대표 박호성 서강대 교수)는 28일 서울 서강대 국제회의실에서 ‘낙선운동,왜 정당한가’라는 주제로 최근 정치권에서 ‘음모론’ 논쟁으로까지 비화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긴급 정책토론회를 벌였다.총선시민연대 후원으로 마련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낙선운동은 주권자의 직접적 주권행사이자 정당한 정치행위”라면서 “‘시민불복종’운동은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주장했다.이번 토론회에서 발표된 5편의 논문 가운데 ‘시민불복종과 낙선운동의 정치학적 정당성’‘시민불복종과 낙선운동의 법적 정당성’‘2000년 총선에서의 낙선운동의 필요성’‘낙선운동과 언론보도의 역할’ 등 4편을 요약한다. 정운현기자 jwh59@ *”낙선운동은 '고장난 정치' 의 심판” ◆‘시민불복종과 낙선운동의 정치학적 정당성’(오현철 학단협정책위원장) ‘시민불복종’은 독재국가의 권력을 정복하거나 정복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과는 구별된다.이는 권력의 오용이나 남용의 발단을 없앰으로써 예외적인불법사태가 오지 않도록 미연에 막는 일상에서의 법의 수호의지로 ‘제도화된 저항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불복종은 도덕적 정당성이 요구되며 사적인 신념이나 자기이해에기초해서는 안된다.또 시민불복종은 개별적 법규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기도하지만 전체 법질서를 문제삼지 않으며 규범위반의 법적 결과를 책임질 마음의 자세를 요구한다.시민불복종을 표현하고 있는 규칙위반이 상징적 성격을가지고 있으며,저항을 비폭력 수단으로 제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민불복종의 역사는 자신이 낸 세금이 노예제도 유지와 부도덕한 전쟁에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납세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수감된 H·D 소로로부터시작됐다. 간디는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읽고 남아프리카 인도인의 권리찾기,영국의인도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을 펼쳤다.1940년대 미국의 여성참정권 획득운동이나,1980년대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반대운동도 모두 이에 속한다.국내의 경우 1986년 전북 완주에서 시작된 시청료납부 거부운동이 첫 사례로꼽히고 있다.민주주의 시민들은 자신에게 부과한 법질서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현실의 부도덕한 정치행위와 부정의한 법조항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철회할 수 있다. 낙선운동은 권력에 대한 마지막 견제장치인 ‘시민불복종’의 한 유형으로서부도덕한 입법부에 대해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권이다. 시민불복종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 판단주체는 국민이다.낙선운동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적극적 행사 ◆‘시민불복종과 낙선운동의 법적 정당성’(박병섭 상지대 교수) 민주정치란 정치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뜻하며,참여정치의확립은 주권자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이런 점에서 현행 선거법 87조는 문제가 많다. 우선 이 조항은 시민단체가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헌법에 보장된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한다.헌법은 제11조에서 정치적 평등을,제116조에서는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따라서 후보자나 정당만이 아니라유권자 개개인은 물론단체의 선거운동도 공정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단체의 선거운동 금지는 정당결성의 규모를 갖추지 못한 소수 국민들을 정치형성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함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명백히 위반하고 있다.일부에서 선거법 87조가 완전폐지되면 관변단체나 사설 또는 사이비단체의 개입을 막을 길이 없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관변·위장단체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면 선거법상 다른금지조항을 두어 규제하면 된다.따라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국민주권원리에 입각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정당한 행사이며,이를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 87조는 위헌무효의 법률로서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과 관련된 논란은 선거법 제87조의 폐기만으로해결될 일은 아니다.87조는 선거운동기간에만 해당되는 조항으로 선거운동기간 이전의 문제가 생긴다.중앙선관위나 검찰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사전선거운동으로 해석,위법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87조는 물론 사전선거운동금지와 관련된 58·58·254조 등도 차제에 조정해야 한다. *개혁 걸림돌 '문제 정치인' 걸러내야 ◆‘2000년 총선에서의 낙선운동의 필요성’(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촉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정치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자 국민소환제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국회의원을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98년 국회는 총 296일이나 문을 열었지만 정작 회의가 열렸던 날은 54일에불과했다.99년에는 제199회 임시국회부터 제205회 임시국회까지 8월 31일 현재 179일이 열렸지만 회의가 열린 날은 34일에 불과했다. 회의가 열렸던 실시간은 모두 84시간 43분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하면 10일 남짓 일한 셈이다. 98년 1월부터 6월까지 처리된 의원발의 법안은 모두 296건인데 이 가운데 상임위에서 당일로 본회의 처리절차까지 마친 것이 절반에 가까운 124건(41.9%)으로 법안처리가 극히 부실했다. 정치개혁특위는 지난 2년간 7차례나 활동시한을 연장했으나 특위에 상정된 44건의 법안 가운데 단 2건만 통과시켰는데 통과된 법안은 중앙당 및 지구당후원회의 기부한도액을 2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청원도 마찬가지다.15대 국회에 접수된 청원은 모두 520건인데 이 가운데 135건만 처리됐다.여기서 채택된 것은 단 1건 뿐이며 119건은 본회의에 회부되지도 않았다. 국민들은 사회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썩고 낡은 정치라고 보고 있다.공천반대운동과 낙선운동은 ‘고장난 정치’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자구노력이다. 바른 투표를 하려고 해도 후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문제 정치인’들을 알려주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당연히 해야할일이다. *일부언론 이중적 보도로 혼란만 가중 ◆‘낙선운동과 언론보도의 역할’(백선기 성균관대 교수)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80% 이상의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언론의 협조를 얻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렵다. 경실련이 공천부적격자 166명을 발표한 1월 10일을 기점으로 총선연대가 공천부적격자 66명을 발표한 1월 26일까지 17일간의 중앙일간지와 방송사 주요 뉴스프로그램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 국내언론은 다음과 같은 보도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우선 국내언론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특정사안이 돌출할 때마다 보도태도에 변화를 보이면서 수용자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즉 초창기에는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기대를 걸다가 명단발표 후 국민들의 지지가 거세지자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으며,김대중 대통령이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다시 시민단체를 주목하더니 일부 정치인들이 ‘음모론’을 제기하자 일부 언론은 이를 거들고 나섰다.특히 언론은 시민단체와 현 정치권과의 관계를 갈등·대립구도로 접근하면서 언론 자신도 기득권세력의 하나로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결국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시민단체의 활동을 두고 법적 당위성·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모순적이며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였다.또 명단발표가 어느 정당에 유리한지 여부를 따지면서시민단체가 특정세력의 편에서 수행되고 있다는 ‘음모적인 측면’을 은연중에 부각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띠기도 했다. 그동안 여론형성을 독점해온 언론은 시민단체의 활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언론사에 따라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하여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적극 지지하거나 왜곡시켰다.
  • [외언내언] 불복종운동

    새해 초인 지난 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침 출근시간.운전자들이주요 고속도로에서 시속 20㎞ 미만으로 천천히 운전하는 바람에 교통체증이빚어졌다. 쿠바 난민 소년을 본국의 친아버지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미국정부에 항의,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참가자들이 실력행사를 한 것이다.미국에서 나타난 불복종운동의 종류는 이밖에 이라크 공격 반대,토성 탐사 로케트 발사 반대,유전자변형농산물 개발 반대 등으로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문제 있는 정치인을 낙천,낙선시키려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선거법 위반도 불사하겠다’고 주장,불복종운동이 일고 있다. 불복종운동은 ‘평화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뜻한다.체포를 당하는것이나 감옥행도 불사한다.물리적 힘에 호소하지 않고 비(非)폭력적인 점이특징이다.법과 정책의 부분적인 철폐와 개선을 겨냥하는 점에서 질서의 완전전복을 꾀하는 혁명과 다르다. 불복종운동은 타당한 이유가 있고 다수가 공감,참여할 때 힘이 실린다. 영국의 인도인 착취 등에 대항한 마하트마 간디와 1800년대 중반 미국의 멕시코 전쟁에 반대,6년간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불복종운동은 유명하다.마틴 루터 킹은 지난 1960년대 흑인을 차별하는 법의 철폐를 위해 불복종운동을 벌였다. 실정법이 왜 도전받는가.법은 흔히 ‘사회세력과 이해집단간 힘과 타협의산물’로 불린다.법을 만드는 국회가 각종 이익집단간의 로비 대상이 되며‘정치적인’ 의원들이 법을 제정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법 내용이 타당성과 실효성을 갖지 못하면?‘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할 것인가,아니면 거부할 것인가.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이다.가톨릭 교회는 실정법이 상위인 ‘하나님의 법’에 어긋날 경우 불복종을 허용한다.풀러라는 학자는 “복종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법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달라진 정치 현실과 시민 대다수의 저항은 법의 개정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이번 불복종운동의 열기는 지난 87년 6·10항쟁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특히 20·30대의 젊은 층이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자격도 없으면서 사회를 지배하겠다’는 무모한 정치인과 썩은 정치에 환멸감을 느껴 증폭된 정치 무관심과 개인주의에 변화가 감지된다. 정치판 개선을 통해 시민들이 무력감을 털고 국민의 힘을 다시 느끼길 기대해본다.‘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21세기 문화프론트라인](1)생태주의

    ‘문화의 세기’ 21세기가 힘차게 시작됐다.21세기의 첫 해인 올해는 문화관광부가 정한 ‘새로운 예술의 해’이기도 하다.변혁과 진보,신생의 기대 속에 출발한 새 세기 문화예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문화현장 최전선에 있는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21세기에 강세를 보일 문화계 새 조류를 전망해 보는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마련한다. 사례1.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3만평 규모의 공동체마을.태양열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한 자원으로 에너지를 충당하고,물은 자체 순환시스템을 이용한다.쓰레기는 퇴비화하거나 철저하게 분리수거한다.단지 안에는 마을회관 등 공동시설을 포함한 생태주거지역과 자급자족의 생산지역,그리고 휴식과교육을 병행하는 자연환경보전지역이 조화롭게 이웃한다. 사례2.서울 중구 중림동의 6층 건물.온실과 발코니의 활용,지붕과 벽면 녹화로 태양열을 최대한 흡수한다.지하정원을 만들어 빗물을 이용한 친수(親水)공간을 조성하고,천연도료·실내정원 등으로 쾌적한 실내환경을 유지한다. 건축은 인간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정복해왔다.그리고 그 폐해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지난 세기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떼어놓고,인간에게서 자연을 빼앗아온 건축.21세기에는 둘을 화해시킬 다른 얼굴의건축은 없는 것일까.1970∼80년대 이미 이런 고민에 빠진 유럽의 건축전문가들은 생태건축에 주목했다.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자연자원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건축.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친환경적인 방법을대안건축의 지표로 삼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를 ‘삶의 질’향상과 동일시해온 우리나라가 이 방면에 눈돌리기 시작한 건 불과 2∼3년전.그 중심에 98년9월 문을 연 생태건축연구소(공동대표 이윤하 김진택 이남수)가 있다.앞에 소개한 두 사례,간디학교의 생태마을과 서울 도심의 한 생태건축물이 현재 이 연구소가 진행하는 핵심 프로젝트이다.기본 설계는 모두 끝났고,착공 날짜만 기다린다. 연구소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이윤하씨(37·노둣돌건축사무소 대표)와 김진택씨(37·건설노동자공동체 우리건설 대표)가 IMF로 사무실을 합치면서 출발했다.생태건축에 관심이 많던 두사람은 이참에 일을 벌이기로 의기투합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이남수씨(38)를 동참시켰다.생태건축에 대한 설계와 시공,연구·평가가 한곳에서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건축도 생명으로 인식해야 합니다.수명이 다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어떤 건물을 지어야 할까요.생태계 순환고리안에 건축을 머물게 하는것,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건축의 핵심입니다.”(이남수)생태건축이 단순히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떤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태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막연히 시골에 내려가 흙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걸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자연환경과의 소통체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생태마을을 형성하기 쉬운 시골보다 오히려 도시에서의 생태건축이 더욱 중요한 과제입니다.”(이윤하)김진택씨는 “많은 사람들이 초기 투자비를 이유로 생태건축을 망설이는데,장기적인 유지·관리 측면에서 보면 일반 건축비보다저렴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무한정한 개발의 보고로만 여겨온 자연을 이제는 우리삶의 동반자로 끌어안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두 프로젝트외에서울 성내동의 건물,전남 영암의 유치원,경주 생태마을 등으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연구소는 앞으로 녹색운동연합 전국귀농운동본부 등 다른단체와도 인력네트워크를 형성할 계획이다.‘첨단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이들의 생태건축철학이 21세기 인류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그 해답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순녀기자 coral@ **생태건축 정부 지원속 환경보전·삶의 질 높여 독일 북부 도시인 킬의 주민들이 가꾼 킬하세 생태주거단지는 가장 성공적인사례로 꼽힌다. 재생 및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만으로 지은 이 주거단지는 환경의 질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경제적인 건축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86년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주정부로부터 불하받은 땅에건축가와 주민이 합심해 91년 착공한 이 마을은 건물 모두가 흙벽돌 목조종이솜 줄판지 등 자연재료를 사용했다.빗물은 자연경사로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며,주민들이 쓴 생활하수는 지하유수관을 통해 연못에서 자연정화한 뒤 다시 생활용수로 공급된다.음식물 쓰레기는 분뇨와 섞어 퇴비로 이용하며,자체 발전기를 통해 마을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한다. 마을은 주정부 환경청으로부터 에너지 절약에 관련된 시설비와 유치원의 경영비용을 보조받았다.85년완공된 하노버지방의 야생잔디지붕 주거단지와 샤프브릴 생태주거단지도 유명하다. 일본은 91년 말 민간기업으로 환경공생주택위원회를 구성해 환경보전형 주택건설을 주도하고 있다.키타큐슈에 조성된 지구마을의 집은 집주위나 통로 등의 지표면을 그대로 남겨두거나 투수성이 있는 재료로 포장해 빗물이 흙으로흡수되도록 했다. 또 부지내에 얕은 여울이나 연못을 만들어 물을 순환할 수있도록 하고, 태양전지 판넬과 풍력발전기를 지붕 위에 설치해 보조전원으로이용하게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20∼50%의 에너지소비를 절감하는 한편 이산화탄소(CO₂)의 배출량도 줄였다. 동경 외곽에 위치한 지구마을 역시 태양에너지 집열판과 풍력을 이용한 우수활용 등의 시스템이 적용된 첨단 환경보전형 집합주택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있는 빌리지 에이커마을은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다양한 인종과 직업을 가진 30여 주민이 태양집열판으로 전기와 온수를 공급받으며 공유건물과 2채의 복합건물에서 생활한다.샌디에고 동부의 하이메도우 주택단지는 수자원 이용을 최소화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춰 개발됐다. [이순녀기자] * 생태주의 문화조류 데카르트·뉴턴 등 17세기 자연과학자와 사상가들에 의해 확립된 서구의 근대적 자연관은 세계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그것은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와 물질의 무한한 이용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이론이되어왔다.이와 같은 자연관 위에서 진행된 근대화·산업화 과정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론 인간과 자연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지구적인 환경위기를 초래했다.그 어느 때보다도 환경의 파괴가 심각한 지금,인류에게 던져진 가장 절실한 화두는바로 생태주의다. 생태주의란 생태학의 기본정신을 말한다.19세기 중엽,생태학이라는 용어를처음 쓴 독일의 생물학자 겸 철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생태학을 “자연의 경제에 관한 지식의 총체”로 정의했다.이러한 생태학 혹은 생태주의는 근래모든 학문에 걸쳐 가장 주목받는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인문과학 쪽에서도 이미 생태주의 바람이 불었다.사회생태학,녹색정치학,녹색경제학,녹색사회학,녹색인류학,녹색법학,생태철학,생태윤리,생태 페미니즘,생태 아나키즘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문학예술가들은 지금까지 생태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여 왔다.서양문학가들은 자연을 정복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 세계관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고,동양문학가들은 주로 경제개발의 피해와 정치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문학생태학이라는 개념 틀 안에서 생태의식을 고취하거나 생태학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문학의 녹색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추세다.생태문학에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평론가 이남호교수(고려대)는 “굳이 녹색문학이라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모든 문학은 이미 녹색인 것이며,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녹색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 감수성과 생태학적 상상력은 미술분야에서도 예외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환경미술’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아직 학술적인 용어로 정리돼 있지 않다.생태환경미술,환경조각,환경조형물,환경설치미술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환경미술은 일단 도시환경을 보다 아름답고 조형적으로꾸미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품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국내에서는 최근 ‘환경기획전:동강별곡’이 열려 환경생태미술의 성가를 높였고,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99환경미술제-광화문 프로젝트’는 환경의 중요성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생태주의는 무엇보다 지구 생태계가 부분과 전체,개체와 환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유기적 통일체라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인간과 자연이 진정으로 화해하는 생태학적유토피아.21세기의 희망인 에코토피아(ecotopia)의 건설은 녹색 사유를 내면화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시론] 정직의 자본화

    전직 검찰총장이자 전직 법무부 장관이 그의 아내가 연루된 ‘옷로비’사건의 여파로 구속되었다는 뉴스는 충격적이면서 안타깝다. 공무상 비밀누설과공문서 변조혐의가 이전에도 그런 경력의 거물을 구속할만한 힘이 있었던지의아해하면서,들끓는 여론이 정당한 법 집행을 그르치지 않기를 기대한다.그의 구속이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함을 보여주기보다는 사법정의 실현의 한축을 담당하였던 검찰이 조롱거리가 되는 듯 해서 우려는 심각하다. 이 시점에서 전직 검찰총장을 구속토록 한 ‘옷로비’사건이 과연 1년여 가까이 세인의 관심을 끌면서 온갖 낭비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는지 자문하지않을 수 없다. 사직동팀과 검찰이 조사하고 국회의 청문회까지 거치는 동안,거기에 소요된 국력의 낭비는 금전으로 따질 수 없는 막대한 것이었다.거기에다 언론기관과 국민이 쏟아부은 시간과 정력은 말할 것도 없고,그로 인한국민 정서상 위화감의 조성은 또한 얼마나 컸던가.‘옷로비’ 사건은 경제외적 관점에서도 막대한 국력의 낭비를 가져왔다. 이 사건은 지금국가의 평상적인 검찰권으로 해결할 수 없어 특별검사까지동원하는 판국이지만,애초에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다. 가령 처음에 이 사건을 담당했던 사직동팀이 정직하게 조사·보고하여 정직한 조처를 취했다면이렇게 일파만파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권력의 정직성 문제가 핵심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정직하지 못한 정부의 처사와공권력의 부정직한 행태를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부정직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막대한 사회적 낭비와 국력의 소모를 직시하는 한편 정직이 가져다 주는 반대급부적 경제성도 냉철하게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정직하면 손해본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이통념은,정직이 공동체의 기본질서이기 때문에 “손해볼지언정 정직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어 왔다.공동체의노후문제를 보장하기 위해 안출된 국민연금이 자영업자들의 소득신고의 부정직성 때문에 좌초의 위기에 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옷로비’사건에서 보듯이,곧 드러날 진실도 우선은 거짓으로 포장한다. 때문에 정직하지못해서 물고 있는 사회적 낭비가 정직하게 일하여 생산한 공동체의 공익을상당부분 갉아 먹고 있다.정직을 증명해야 하는 그 많은 서류와 비용,부정직을 봉쇄하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기구와 인력들, 이런 낭비와 소모는 부정직이 가져다 주는 업보다. ‘정직과 신용,근면과 절제’를 바탕으로 출발한 자본주의사회가 이런 가치들이 무너졌을 때,바로 돈만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로 변질한다.정직은 자본주의가 산업화의 단계를 거쳐 정보화의 단계로 넘어가면 더욱 필요불가결하다.정보에서 정직이 빠지면,정보사회의 궤멸은 명약관화하다. 마하트마 간디가 “국가를 위하는 경우에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것이나,플랭클린이 ‘젊은 상인들에게 주는 글’에서 “신용(정직)이 곧 자본”이라고설파한 것은 세기말의 우리 사회가 이 시점에서 꼭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얼마전 필자는 한 성직자의 행위를 정직하지 못하다고 강하게 비판한 적이있다.그것을 듣고 있던 다른 한성직자는,“성직자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는말은 사망선고나 마찬가진데 이 교수의 비판은 지나치다”고 항변하였다.그항변이 마음속으로 반가왔던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정직문제를 심각하게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부정과 부패, 갈등과 투쟁은 거슬러 올라가면 부정직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원죄의 삼대요소 중의 하나가 ‘거짓’이라고지적한 신학자의 예지를 읽는다.난마와 같이 얽힌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단순화하여 풀어가는 지혜도 사실은 정직에 있다.정직을 생활화하기 위한 교육의활성화와 제도적인 장치는 그래서 시급하게 요청된다. 정직의 자본화,이것은새 천년기를 맞으며 우리 공동체가 꼭 다짐해야 할 과제다.구호의 진부한 반복이어서는 안된다.이것이야말로 거짓과 그 부산물로 얼룩진 지난 세기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으면서 정착시켜야 할 가치다. 다가오는 새천년기는 공동체의 따스함과 풍요로움이 정직함에서 시작된다는 소박한 염원이 실현되기를 기원해 본다. [李 萬 烈 숙명여대 교수.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대한광장] 민족의 안녕·행복·품위를 위해

    “나는 힌두이다.나는 모슬렘이다.나는 크리스천이다.무엇보다도 나는 인도인이다.” 간디의 말이다.종교와 이념의 분열을 막고 한 민족으로 독립국가체제를 유지하려던 그의 부르짖음이다.그는 과격 분열주의자의 총에 죽는다. “신이 한 인간에게 이렇게 고상한 정신을 내려준 예가 많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송사(頌詞)다.그의 비폭력,독립의 성취,인도주의는 인류 역사에 살아 남는다. 남북간 전쟁과 불행을 예견해 남한의 단독선거와 반쪽 정부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화해 통일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는 한 자객의 총에 죽는다.그의 정신은 민족사에 빛나고 있다.사람은 극적으로 타살돼야만 또는 사지(死地)에 몰려가야만 이념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 것일까.시저·이순신·안중근·링컨·루터 킹·박정희·만델라….그리고 격이 같진 않지만 특히 예수. 송도 3절(三絶).경관도 수려한 박연폭포,박식 심오한 도학자 화담(花潭) 서경덕,기생이면서도 애절한 시작품으로 국문학사에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명월 황진이. 그녀는 자기를 사모하다죽은 한 총각의 한(限)에 큰 충격을 받는다.정을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그래서 그는 남녀의 사랑을 섬세한 감각으로 느껴헤아린다.자기를 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남녀의 사랑에 투철한다.그녀가 지은 정한(情恨)의 시를 우리는 애송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명월이 만 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타여 보내고 그리난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남북관계를 남녀관계에서 본다.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남자는 상대에게 용서받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그는 진정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순수한 애정으로 결혼을 간청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또 속이고 결국은 버릴 것이라고 믿는다.무슨 소리를 하든 그건 속임수고 적화통일 노선은 불변이라고 믿는다.50년이 지난다.남자는 죽는다.그래서 황진이는 나섰다. 북은 1960년 남북연방제를 제안했다.그리고 80년에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방안을 제안했다.서로 상이한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각각의 정부와 군대를 유지하되 병력은 10만명으로 줄이자고 했다.통일된 체제와 국가는 다음 세대에 맡기자고 했다.중국과 홍콩의 예도 들었다.반공법·국가보안법 폐지,안기부 해체,주한미군 철수 등 단서를 달았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북한은 공식적인 대외 수사(修辭)와는 달리 여러차례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김일성,김영남,이삼로,북·미 장성회담 대표 이찬복중장 등.“주한미군의 지역안정 역할을 인식한다.남북통일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원하는 만큼 계속 주둔해도 된다.” 한국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년),민족공동체 통일방안(94년),김대중(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95년)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양측은 한번도 서로의통일방안을 놓고 책임자끼리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다.조평통의 허담 위원장은 지난 85년 필자에게 “남북이 제안한 통일안은 공통점이 많다.서로진지하게 상의하고 양보해 통일을 이룩하자”고 했다. 미국은 지난 9월17일 늦게나마 94년 북한과 제네바합의에서 약속한 경제제재 완화의 일부 조치 그리고 국교정상화 의향을 발표했다.페리는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남북 자체의 문제라고 했다.북의 곤경에 인도적인 동정을 표명했다.우리 정부의 총괄적 타결 주장과 설득을 미국·일본이 수용한 결과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식량·자원 부족,이념·종족 분쟁,환경오염 등 격변의 21세기를 앞둔 지금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이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의 멸시와 조소를 받지않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분단의 낭비와 비극을 하루속히 종결시켜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을 제창했다.국가연합·연방단계를 거쳐 완전통일의 3단계다.김대통령의 높은 뜻과 목표가 임기중에 달성될 것을 간곡히기대·기원한다.진정한 포용정책과 세계화는 “나는 친북이다.나는 친일이고 친미며 친중이며 친러이다.나는 세계 모든 국가와 인민에게 우애를 견지한다.나는 무엇보다도 이 민족의 안녕과 행복과 품위를 위해 일한다”일 것이다. 손장래 전말레이시아 대사
  •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이모저모

    아·태민주지도자회의(FDL-AP) 국제회의 및 3차총회 개막식이 열린 25일 서울 신라호텔은 모처럼 아시아 민주화를 주제로 한 토론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60여명의 토론자를 포함,25개국에서 500여명의 국내외 인사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세계 각국 지도자의 축하 메시지도 잇따랐다. ?메시지를 보낸 민주지도자들은 아웅산 수지 미얀마 지도자와 분데비크 노르웨이총리,코라손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레흐바웬사 전폴란드대통령,소냐 간디 인도 국민회의당 당수 등이었다.수지여사와 분데비크 총리는 비디오로 축하의 말을 전해왔다. ?수지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에 힘을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아시아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온 아·태민주지도자회의의 노고를 치하했다.분데비크 총리는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공로는 새천년을 앞두고 아시아 평화와 인간발전에 희망을 주었다”고 극찬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미래 미얀마 민주화를 비롯,세계 공동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벨 체코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를 언급,눈길을 끌었다.그는 “모든 문화에 접속돼 있는 공통적인 윤리가 있다”면서 아시아에서도 보편적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이어 “세계의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서울에서 오간 많은 말들을 절대 흘려듣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회의는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됐다.1부는 카말호세인 전 방글라데시 외무장관의 사회로 ‘민주주의와 인권,과거·현재·미래’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이 이뤄졌다.2·3부는 각각 ‘민주적 통치·사회적 불평등·생산적 복지’,‘지구적 평화로 가는 길’이란 주제로 6명씩 주제발표와 토론을 했다.동티모르 특별토론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 동티모르 독립지도자와 이미경(李美卿)의원 등이 참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은 회의개최 12일 전까지만 해도 참석해 특별연설을 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한 관계자는 “만델라 전대통령측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참석과 불참을 번복해 애를 먹었다”며 그의 불참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지운기자 jj@
  • [세계인구 60억 시대] 21세기 전망·문제점

    12일은 유엔이 세계 인구 60억 돌파를 선언하는 날.‘Y6B’(Year 6Billion)시대가 열린다.1900년 15억이던 세계 인구는 100년만에 4배 늘었다. 그러나 자축보다는 근심이 앞선다.이 지구가 과연 그만한 인구를 지탱할 수있는 여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21세기 지구촌 인구문제를짚어본다. 인구 전망 유엔인구기금(UNFPA)의 ‘99년 세계인구 현황보고’는 세계 인구가 해마다 7,800만씩 증가한다고 밝혔다.2050년이면 최대 120억,아무리 적어도 73억으로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인구 증가의 95%는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진다.60년 이후 인구가 3배로 늘어난 아프리카의 인구증가율은 연평균 2.4%로 지구촌 최고다.아프리카 인구는60년 유럽인구의 절반에 불과했으나 2050년에는 유럽의 3배에 이르게 된다. 아시아는 60년대 이후 2배 이상 늘어났으나 지난 몇년 사이 증가율이 연평균 1.4%로 낮아졌다.얼마전 10억을 돌파한 인도는 50년 안에 15억으로 늘어나세계 1위의 중국을 추월하게 된다. 식량은 충분한가 현재보다 갑절의 식량이 필요한데 낙관과비관의 전망이엇갈린다. 식량수요가 늘어나지만 곡물 재배지는 점차 줄고 있어 비관론자들의 근심을 더하고 있다.미 코넬 대학의 9월 보고서를 보면 83년 이후 1인당 곡물 경작지는 20% 감소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먹거리 걱정은 없다고 주장한다.미국 국제식량정책연구소는 “세계는 100년간 120억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유휴농지를 경작지로 전환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면 얼마든지 식량을 댈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미국 유럽은 남아돌지만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식량사정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식량의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환경과 자원은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구가 ‘총체적 긴급상황’에 처해있다고 경고했다.2050년엔 대기오염이 현재의 3배로 악화되고,지구촌 가족의 3분의 2가 물 문제로 고통받을 것으로 보인다.미국 전체 식물의 29%인 4,669종이 멸종될 위기에 빠져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해 8월 보고서에서 남극의 평균온도가 최근 50년간 2.5도 높아져 남극의 영구 빙하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인구폭발은 ‘지구의 허파’인 수풀도 파괴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한해 1,600만㏊의 삼림이 사라진다고 밝혔다.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도 마찬가지.98년말 전세계 석유매장량은 1조520억9,000만 배럴이나 41년이면 바닥이 난다. 인류의 공멸(共滅)을 막기 위해선 아프리카 등의 산아제한을 선진국들이 적극 돕고 식량이나 자원이 무기화되지 않도록 지구촌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인류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황성기기자 marry01@ *인구대국 中·인도 정책 각각 세계 1,2위의 인구대국으로 전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세계인구 최대의 위협국이다. 중국은 이미 12억8,000만명을 넘어섰으며 인도 역시 10억명선을 넘었다.실제로 이들 두나라의 인구억제만으로도 세계의 인구팽창은 어느 정도 숨통이트일 전망이다. 중국은 지난 80년대부터 혹독한 산아제한을 통해 출산율을 낮춰왔다.소수민족을 제외한 모든 한족에게 이른바 ‘한자녀 갖기 운동’을 강력히 펴오며초과자녀를 가진 사람에게는 영구피임시술까지 했다. 63년만해도 1,000명당 43명까지 치솟았던 중국의 인구출생률이 98년 16명까지 크게 떨어진 것도 이에 기인한다.자연증가율 역시 같은 기간중 2.608%에서 0.953%로 현저하게 하락했다. 중국정부는 2050년까지 인구성장 제로(0%)목표를 달성,전체인구를 16억 이하로 억제한다는 ‘인구 마스터플랜’을 짜놓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은 수치상 상당한 실효를 거뒀음에도 실제로는 ‘절반의 실패’라는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으로 남녀성비 불균형의 심화와 농촌지역 생산력저하가 초래됐다.또 한 자녀이다보니 이들이 응석받이 ‘소황제’로 자라나는 것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편 인도의 인구정책은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 몰라 정부에서도 아예 손을놓고 있는 상태.70년대 후반 인디라 간디 총리 재임시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폈으나 너무 강압적인 방법으로 국민적 반발을 사서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인도의 연간 인구증가율은 지난 81년 2.15%에서 지난해 1.68%로 많이 낮아졌다.하지만 여전히 유아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25.39명인데 반해 사망율은 8.5명으로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계속될 전망이다. 1명에도 못미치고 있는 선진국 여성들의 출산율에 비해 인도여성들은 지금도 한명당 보통 3.18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50년내 중국을 누르고 인도가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확신’을 심어주는 수치다. 이경옥기자 ok@
  • 시인·기자 출신… 부패스캔들 없어 국민신망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73)는 40여년간의정계활동 기간중 한번도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아 인도인들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96년 총리에 지명됐으나 연정구성에 실패하는 바람에 13일만에 중도하차한 그는 98년 BJP가 다시 제1당으로 부상,총리직에 올랐다. 26년 인도 중부 브왈리오르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42년 반영(反英)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으며,공산주의 학생운동에 몸담기도 했다.힌두교 부흥운동에 매료돼 정치에 입문한 그는 51년 BJP의 전신인 인도인민사회당(BJS)을 공동창당한 뒤 57년 총선에 당선돼 본격적인 정계활동에 들어갔다. 75년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의 비상조치 하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77년 데사이 총리가 주도한 연정에서 외무장관으로 기용돼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했다.시인이며 기자출신으로 유창한 언변과 재치를 겸비하고 있다. 미혼. 김규환기자 k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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