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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아비 되기’를 바라보는 이중의 시선-박민규 소설 다시 읽기/허진

    1 아들은 아버지가 된다 ‘오감도’ 시 제2호에서 이상은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라고 토로했다. 이상의 토로는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한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을 보여 준다. 그 고민은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이 제시한 규범에 자신을 맞추고,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포괄한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자아를 억압하고 순치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아가 찢기고 쪼개지고 일그러지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러한 ‘아비 되기’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아비 되기’의 관점에서 박민규 소설의 서사를 재배열하면, 세상에게 “닥쳐 개새끼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던 ‘나’(‘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50쪽)가 학창 시절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맞벌이를 해서 “한국의 표준이라 봐도 무방한 34평 아파트”를 마련하고(‘코리언 스탠더즈’, 183쪽), 그 집을 팔아 자식들에게 돈을 마련해준 뒤(‘누런 강 배 한 척’) 요양원에 들어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아버지… 일어나요, 예?”라는 말을 들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낮잠’, 200쪽) 시간적 스펙트럼이 도출된다. 그 시간적 스펙트럼을 아비의 질서와 규율을 내면화하고, 그에 맞게 자아를 변형시키는 ‘아비 되기’의 과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러한 ‘아비 되기’의 과정에서 분열되고 일그러지는 주체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은 ‘아비 되기’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아비 되기’를 받아들이고 아비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비의 세계를 부정하며 그 세계의 전복을 꿈꾼다. 박민규가 종종 구사하는 모순적인 문장은 그러한 분열의 징후를 보여 주는 단서이다. ⑴ 서늘한 창에 이마를 맞대고서 나는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빨리 핼리가 와 주기를 바랐다. 다행할수록,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래서 짧게, 나는 가혹해지고 싶었다. (‘핑퐁’, 95쪽) ⑵ 죽어간 이들의 진실을 보았고, 살아 진실을 논하는 자들의 거짓을 참아야 했었다. 변질과 변절, 변이와 변태…, 적도 동지도 사라진 세상 속에서 그는 홀로이 외롭고 외로웠다.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 다시 만난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龍龍龍龍’, 108~109쪽) 인용문 중 굵게 표시한 부분은 하나의 문장 안에 모순되는 두 가지 내용이 담긴 경우이다. 여러 작품에서 박민규는 이러한 문장을 빈번하게 구사하는데, 이를 우리는 ‘아비 되기’를 바라보는 화자의 복잡다단한 심경과 관련해서 읽을 수 있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기를 바라거나 상징세계의 아비가 되었을 때, 그들 내면의 다른 쪽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에너지가 추동된다. 아비가 된다는 것은 박민규 식으로 말하면,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에서 “갸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는 일”이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72쪽), “세상이 변하기보다는 직급이 변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코리언 스탠다즈’, 184쪽). 그것은 한때 몸담았던 학생운동 판을 “운동권(運動圈)이란 단어가 있다.”고 낯설게 말하게 되는 것이며(‘코리언 스탠다즈’, 182쪽), 록 음악을 하던 청년이 남색(男色) 취향을 가진 부장의 추행을 “잠깐만 참으면 돼”라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62쪽). 요컨대 ‘아비 되기’는 아들의 자아가 찢기고 쪼개어져 아비의 문법에 맞게 재배치되는 손상 혹은 훼손의 과정이다. 박민규의 모순적 진술은 그러한 맥락 속에서 ‘아들의 세계’와 ‘아비의 세계’가 충돌한 끝에 생겨난 불가피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인용문 ⑴에서 ‘핑퐁’의 ‘나’는 중학생이다. 아직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지 않은 이 중학생에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는 일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또래집단이 행사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점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소년에게 “무난한 옷을 입고… 무난한 취미를 가지고… 절대 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바람직한 얼굴로 살아가”(87쪽)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다행”한 삶을 오히려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핑퐁’의 ‘나’가 아직 소년인 상태에서 ‘아비 되기’를 모순적인 진술로 표현했다면, ‘龍龍龍龍’의 이장록은 어른의 입장에서 ‘아비 되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해준다. 이장록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징역 20년을 언도받고 복역을 마친 변호사이다. 이장록에게 세계는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109쪽) 곳이다. 아비가 되기 전 세계는 ‘싸워야 하는 곳’이었지만, 아비의 세계에 진입해 변형되고 일그러진 주체에게 세계는 ‘싸울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장록은 그가 ‘지향했던 세계’와 ‘지금 사는 세계’의 간극을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라는 모순적인 어법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박민규의 소설에서 ‘아비 되기’는 아들이 ‘아버지’라는 상징의 옷을 덧입어 변형되고 일그러지는 일이며, “뜨고 싶은”(‘龍龍龍龍’, 115쪽) 일인 동시에 “할 일이 더 많아”지는(‘龍龍龍龍’, 115쪽) 모순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아비 되기 : ‘잔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기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는 과정에서 자아와 세계의 충돌을 경험한다고 할 때, 이 인물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세상에 순응하든가, 혹은 거부하든가. 놀랍게도 박민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순응을 선택한다. 그들은 일흔세 번이나 이력서를 낸 끝에 유원지의 직원이 되어 오리배를 관리하기도 하고(‘아, 하세요 펠리컨’),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고시원을 떠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도 한다(‘갑을고시원 체류기’). 또 운동권이던 선배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의 애인과 결혼을 하는가 하면(‘코리언 스탠다즈’), 253명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헤드록을 감행하다가 나중에는 순백의 얼굴을 가진 아이를 낳고 교회의 집사가 되기도 한다(‘헤드락’). 하지만 그 ‘순응’의 과정은 눈물겨운 것이어서, 그것은 ‘실존(實存)’이라는 말보다는 ‘생존(生存)’이나 ‘잔존(殘存)’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고단한 과정이다. 그러한 생존 혹은 잔존의 간난신고가 여실하게 드러난 작품이 있는데, 바로 ‘헤드락’이다. ‘헤드락’에서 ‘나’는 평화롭게 산책을 하다가 헐크 호건에게 린치를 당한다. 이 린치는 소설에서 ‘헤드락’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 ‘헤드락’의 정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헤드락’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호두’로 우회하도록 하자. ‘헤드락’은 <호두나무 아래에서>와 <호두까기 인형>, <마지막 호두과자를 먹은 것은 언제였나?>, <다시 호두가 열린다면>이라는 네 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장을 이루는 소제목은 모두 ‘호두’를 키워드로 삼고 있는데, 이 ‘호두’의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 ‘헤드락’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호두가 인간의 ‘뇌’를 닮은 과실임을 기억하면서 다시 ‘헤드락’의 소제목을 따라가 보자. <호두나무 아래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헤드록을 당한 뒤 <호두까기 인형>이 된다. ‘인간’에서 ‘인형’으로 전락한 ‘나’는 <마지막 호두과자를 먹은 것은 언제였나?>를 생각하며, 다른 인간들의 ‘호두’를 파먹기 위해 고심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심은 나무를 보며, <다시 호두가 열린다면>이라는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갖는다. 이상의 서술로 미루어 보면, 인간의 뇌를 닮은 과실인 ‘호두’가 ‘헤드락’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한 상징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다시 헤드락으로 돌아오자. 어 헤드락이네? 그리고 직장에서, 도처에서 나는 종종 습격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헤드락 강좌, 헤드락 세미나, 헤드락 부흥회, 헤드락 워크샵, 헤드락 클리닉에 이르기까지 - 아무튼 헤드락도 이젠 한국의 보편적인 생활문화가 되었지만 나로선 쓴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헤드락’, 264쪽) 인용문을 보면 레슬링에서 상대의 ‘머리’를 붙잡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인 헤드록이 아비의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민규는 소설의 다른 부분에서 “이 세계가 어느 정도 헤드락을 묵인하거나 권장한다”(262쪽)고 쓰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헤드록이 아비의 세계가 아들에게 가하는 폭력, 혹은 아비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아들이 견뎌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나’가 ‘헤드록의 세계’, 즉, 아비의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258쪽)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충분한 수면과 영양제로 체력을 보충하는 과정을 통해 “폭력의 대상”에서 “폭력의 주체”(259쪽)로 다시 태어난다. 헤드록의 상처를 내장한 채, “건강”하고 “건장”한 “완전히 다른 생물”(259쪽)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후 ‘나’는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갖고, “순백의 얼굴”(263쪽)을 한 아이를 낳고, 심지어 교회의 집사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나’가 아비의 세계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하듯 ‘나’는 다른 상대들에게 253번의 ‘헤드록 습격’을 감행하고, 마침내는 “헤드록의 쾌감 같은 것을 깨쳐나가기”(263쪽)에 이른다. 이처럼 박민규 소설의 인물은 한편으로는 아비의 질서에 상처받고,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반복, 재생산하는 상징 세계의 ‘아비’가 된다. ‘아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을 우리는 박민규의 다른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인물들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아버지의 회사에 다녀온 뒤 ‘나의 산수’를 생각하게 된 고등학생,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취업과 결혼을 해 고시원을 떠나는 ‘나’, ‘아, 하세요 펠리컨’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재수생, ‘누런 강 배 한 척’에서 이십구 년을 영업사원으로 근무한 끝에 자살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등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3 아비부정 : ‘배제’된 자들의 세계 교란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고 해서 박민규가 ‘아비 되기’를 긍정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박민규의 인물들은 아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아비 되기’에 대해 뿌리 깊은 반발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발심은 어른보다는 주로 소년에게서 잉태된다. ‘핑퐁’은 세상으로부터 ‘배제’당한 ‘못’과 ‘모아이’라는 두 중학생의 이야기이다. 소위 ‘왕따’인 이들은 치수 패거리에게 불려 다니며 매일 얻어맞는데, 맞으면서도 “그냥, 사는 게 이런 것 같다.”(12쪽)고 생각할 뿐, 저항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폭력적인 세계에서 잔존하기 위해 탁구 치는 것을 선택한다. 이들에게 탁구는 “이상하리만치 경쾌한”(23쪽) 것이었고, “국경 따위 없는 거”(43쪽)였으며, “지루하지 않은”(186쪽) 유일한 것이다. 그러한 소설의 진술로 미루어 우리는 탁구가 폭력적이고 지루한 세계, 즉, 인종과 국경이라는 상징계적 질서(아비의 세계)에 대립되는 어떤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못’과 ‘모아이’는 탁구를 치면서 비로소 소심하나마 “이것이 나의 의견이다”(47쪽)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고 “맞은 자리의 통증 같은 것이 땀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가는”(23쪽) 해방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핑퐁’에서 박민규는 ‘탁구’와 ‘핑퐁’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탁구’가 대타자의 세계에서 배제당한 소년들이 즐기는 소심하지만 전복적인 오락이라면 ‘핑퐁’은 보다 중립적인 용어이다. 핑퐁은 “인류가 깜박해 버린 것과 절대 깜박하지 않을 것 간의 전쟁”(219쪽)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탁구를 즐기는 자(못과 모아이)와 조건반사 훈련을 통해 연습한 자(쥐와 새)가 벌이는 한판 ‘대결’을 의미한다. 이 ‘핑퐁(대결)’의 결과 ‘탁구(유희)’를 즐겼던 못과 모아이가 승리하고, 이들은 인류의 ‘언인스톨’(전복)을 선택한다. 이 소설의 전복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사한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핑퐁’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다른데, 우선 폭력적인 상황을 종식시키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담임선생’이라는 상징세계 내의 합목적적인 권위를 빌려 엄석대의 만행과 폭력에 안녕을 고한다면, ‘핑퐁’에서는 상징계로부터 ‘배제’당한 못과 모아이의 선택(언인스톨)에 의해 인류의 폭력적인 삶이 종결된다. ‘핑퐁’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결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교실이 결국 안정과 평온을 찾는 것과 달리, ‘핑퐁’에서는 인류가 생활을 지속해 왔던 모든 공간이 언인스톨되고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처럼 박민규의 ‘핑퐁’에는 이 세계의 문법이 아닌, ‘핑퐁’이라는 상상적 대결을 통해 아비의 세계를 뒤집어엎는 발칙함이 도사리고 있다. 허구적인 방법으로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경향은 ‘대왕오징어의 기습’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나’는 어렸을 때 잡지에서 몸길이가 150미터에 이르는 대왕오징어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결국 그 기사는 오보인 것으로 판명이 나지만, ‘나’와 ‘B’는 각각 ‘대왕오징어로부터 인류를 지키겠다.’는 꿈과 ‘외로운 괴수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가졌던 꿈과는 달리 “해변의 모래알처럼 평범한 인류”(230쪽)가 되고, 대왕오징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쯤에서 이 소설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대왕오징어’의 의미를 점검하도록 하자. 소설에 따르면 대왕오징어는 “심해에서만 활동하는”(219쪽) “신비의 대상”(219쪽)이고, 고등학생이 된 뒤(예비 성인)로 ‘나’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기도 하다. 또 대왕오징어는 “순식간에 뭍으로 올라”(232쪽)와, “일시에 모든 것을 마비시”(232쪽)키는 파괴적인 에너지라고도 묘사된다. 그러한 단서를 통해 ‘대왕오징어’의 의미를 유추하면, ‘대왕오징어’가 상징계 너머에 있으면서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괴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대왕오징어는 사우나로 향하던 샐러리맨, 자녀의 도시락을 걱정하던 주부, 속도위반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 잡지 ‘사상계’를 버리기로 결심한 교육자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유년의 판타지 속에 존재했던 괴수가 장년의 현실 앞에 모습을 드러내 아비의 세계를 위협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전복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현실에서는 ‘핑퐁’을 통해 세계를 ‘언인스톨’할 수도 없고, ‘대왕오징어’가 나타나 일상의 공간을 교란해주지도 않는다. 아비의 세계는 견고하고, 그 세계의 진입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설혹 그 세계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 ‘잔존’의 과정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박민규의 가련한 주체가 떠올리는 방법이 바로 ‘죽음’이다. 4 경계에 선 아버지들 최근 발표한 소설집 ‘더블’에서 박민규는 ‘죽음’이라는 다소 묵직한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핑퐁’ 등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들에서 박민규가 보여 주었던 중요한 코드가 ‘유머’ 혹은 ‘블랙코미디’라는 점을 상기할 때, ‘죽음’이라는 테마가 다소 이질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박민규 소설의 유머 이면에 생(生)에 대한 씁쓸함, 분노, 반박, 체념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박민규의 ‘죽음’이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말하자면 박민규의 소설은 지금까지 묶여 나온 작품집에서도 ‘죽음’의 징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치’는 자살을 기도하는 사내와 그를 말리러 출동한 경찰관의 이야기이다. 사내의 신세한탄과 그에 대한 김 순경의 동조로 이루어진 소설의 서사는 역시나 ‘아비 되기’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한다. ㈀ 노력해 봤냐고…… 그런 얘기 나한테 하지도 마. 나처럼 열심히 산 사람 있음 나와 보라 해! 손 다치기 전까지…… 나 백수 같은 놈 아니야. 그래, 별 볼일 없는 일거리지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아? 월급 못 받은 적은 많아도 일 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응? (‘아치’, 262쪽) ㈁ 딸들 이제 시집보내야 돼. 곧 그럴 나이야. 이것들 공부시킨다고 돈도 별로 못 모았어. 줄줄이…… 이제 겁나. 요새 딸 시집보내려면 돈 얼마나 드는지 알아? 겁나 죽겠어. 그래, 또 대출받아야겠지. 그때 가서 옷을 벗든가, 퇴직금을 또 어떻게 하든가. (‘아치’, 263쪽) 인용문 ㈀과 ㈁은 각각 사내와 김 순경의 독백이다. 사내는 자신이 아비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음을 강변한다. 사내는 열심히 살았고, 별 볼일 없는 일거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를 위무하고, 죽음의 의지를 철회하도록 종용하는 김 순경의 삶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비’로 살기 위해 김 순경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김 순경에게 돌아온 현실은 양로원에 갈 돈도 안 남은 답답한 상황뿐이다. 김 순경은 사내를 설득해 아치에서 내려오게 하지만, 설득의 근거가 빈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오십 년을 더 살아도 여전히 이 아치에 뒤엉켜 있겠지”(269쪽)라는 자조 섞인 독백은 김 순경이 그 스스로에게도 살아야 하는 당위를 설득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한 속사정으로 김 순경은 “나도 한 번쯤, 이곳에서 뛰어도 좋겠다는 생각”(269쪽)을 하고, 검은 강물을 내려다본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중년의 가장(家長)이 치매에 걸린 아내와 자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십구 년을 같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한 ‘나’는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65쪽)에 지쳐 “더는 살고 싶지 않다”(65쪽)고 생각한다. ‘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지나온 수십 년과는 다른, 한 달”(68쪽)을 보내기 위해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 이를테면 자살 여행인 셈이다. 하지만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나’와 아내에게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사가 중노인 두 명이 묵고 있는 호텔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다소 이상한 결정이었지만, ‘나’는 마사지를 받기로 결정하고, 아내에게 먼저 마사지를 받게 한다. 아 아내가 신음을 지른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담배를 나는 떨어트릴 뻔했다.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그런 성격의 신음이었다. 아…… 낮은 신음이 또다시 아내의 입에서 새 나왔다. (‘누런 강 배 한 척’, 74쪽) 이 소설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나’에게 죽음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상징의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벗어나려는 순간 출현한 아내의 신음 소리는 상징계의 기표로는 포획되지 않는 ‘어떤 것’을 암시한다. 아내의 신음 소리는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그런 성격”(74쪽)의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아비’, ‘남편’, ‘가장’, ‘영업사원’의 이름(상징)으로 살던 수십 년 동안 ‘나’가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이다. 상징계의 질서와 영원한 안녕을 고하려는 순간, 돌연히 출연한 이 신음 소리가 ‘나’를 착란에 빠지게 하고, 확고했던 ‘나’의 자살 의지를 유예시킨다. 이 소설은 끝내 ‘나’가 자살을 결행했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소설은 “냉장고에는 아직 한 캔의 맥주가 남아 있었다”(75쪽)라는 모호한 문장으로 종결된다. 박민규의 ‘죽음’이 가진 미덕이 여기에 있다. 박민규는 그의 소설에서 성급하게 ‘죽음’을 실현시키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다. ‘아치’의 마지막 문장(“이제 아치를 내려선다”)과 ‘누런 강 배 한 척’의 마지막 문장(“냉장고에는 아직 한 캔의 맥주가 남아 있었다.”)은 그 자체로 화자가 죽음을 실행에 옮겼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두 문장은 화자가 죽음의 세계를 넘겨다보고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박민규의 인물들이 이보다 앞서 삶의 순간을 되돌아보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치’의 경찰관은 죽겠다고 아치에 올라간 사내에게 “당신 진짜 이러면 안 돼.”(258쪽)라고 말했고, ‘누런 강 배 한 척’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삶을 즐긴 후 아내와 함께 죽고 싶었다.”(67쪽)고 생각하며 여행을 떠났다. 이처럼 박민규의 인물들은 삶의 순간에서 죽음을 동경하고,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삶을 넘겨다보는 딜레마 속에 위치한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나는 나와 내 아버지와 동료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신용불량을 면하기 위해 대리 운전을 하고(‘별’), 차를 팔기 위해 고객의 택배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으며(‘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하늘에 떠 있는 직경 10킬로미터짜리 아스피린을 보고도 “자, 일해야지”라는 부장의 말에 “예”라고 대답한다(‘아스피린’). 또 그들은 12년간 용역 사원으로 근무한 끝에 마침내 괴물이 되어 버린 사내이기도 하다(‘루디’). 그래서 나는 박민규의 인물들이 손쉽게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에 나는 그들이 삶의 긴장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외롭고 고단한 곡예를 계속해주기를 바란다. 삶을 이어 나가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의 소설을 읽으며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끝>
  • 軍의문사 소멸시효 ‘엇갈린 판결’

    #사례 1. 최모(75·여)씨의 아들 임모씨는 1985년 보병 3사단 GP 경계병으로 근무하던 중 수류탄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은 단순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24년 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자살이었다고 규명했다. 최씨는 국가를 상대로 3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에서 소멸시효(5년)가 이미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사례 2. 권모(89·여)씨의 아들은 1978년 육군 21사단에서 동계훈련을 받다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아들이 군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처리했다. 권씨는 아들이 자살이 아닌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군의문사위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권씨 주장을 인정, 국가로부터 2억원의 배상금을 받도록 판결했다.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잃은 부모들이 뒤늦게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소멸시효 인정 여부를 놓고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이 나와 ‘자식 잃은’ 부모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최씨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군이 아들 사인을 은폐하거나 왜곡했다고 보기 어렵고 유가족들의 권리행사를 곤란하게 했다고 할 수도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권씨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적극적으로 사인을 다시 규명했다. 군의문사위도 명확한 아들 사인을 가려내지 못했지만, 재판부는 ▲군 간부들이 책임 추궁을 우려해 사망경위를 사실과 달리 보고할 가능성이 있고 ▲아들 시신을 본 병사 대부분이 “동사한 모습”이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할 경우 국가의 소멸시효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를 세웠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달리 나오고 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송년기획] 이재오는 오늘도 지하철 출근중

    4년 전쯤 한나라당의 한 지역위원장을 만났다. 정치자금법상 규제가 과도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그는 “이런 식으로 하면 이재오처럼 ‘지역구 관리의 신’이란 소리를 듣는 정치인은 앞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마크맨으로서, 또 지역구 주민으로서 이재오 특임장관을 지켜본 결과 그는 틀렸다. 어딜 가도 이 장관이 “매일같이 찾아와 줬다.”는 이야기는 해도 “돈 많이 쓰고 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한 주민은 “이 동네에서는 시장통 개도 이재오를 안다.”는 농담으로 이 장관이 어떻게 지역구를 관리하는지 말해 줬다. 가끔 출근길을 ‘감시’하러 가 봐도 새벽 5시 4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는 이 장관을 보면, 참 피곤하게 정치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행보는 어김없는 서민인데, 그래도 그는 실세다. 거친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럴 때마다 그는 트위터 등에 “부덕의 소치”라며 반성문을 올리지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여권 잠룡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 장관에게 2011년은 매우 중요한 해다. 정치인의 ‘진심’을 쉽게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줄 진심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박희태 미뤄진 太和爲政의 꿈 ‘국회 스피커’(Speaker). 국회의장의 영문 직함이다. 4년 반짜리 최장수 대변인을 지낸 현직 박희태 의장과 잘 어울린다. ‘완급’ ‘타협’ ‘노련’이라는 이미지로, 그를 필적할 만한 정치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원내총무 3회 역임 경력이 대변하는 정치 스타일은 지난 6월 취임 이후에도 잘 구현됐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직권상정과 뒤이은 국회 유혈 충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비난이 쏟아졌지만,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행보로 심경을 대신하는 듯하다. 최근 황희 정승의 생가와 묘소를 잇따라 다녀왔다.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정치의 달인’을 찾은 뜻은 무얼까. 박 의장의 신년사가 ‘태화위정’(太和爲政)이 될 것이라고 하니, 황희가 실천한 화(和)를 좇겠다는 뜻일까. ‘크게 화합하는 정치’, 그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이 문구를 사무실에 걸어 두었다. 전에도 그의 태화위정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지난해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려다 실패했을 때다. 그때 “태화(큰 화합)의 미수(未遂), 진행(進行)”이라고 표현했다. 2010년 그의 태화는 미수에 가까울 듯싶다. 2011년, 태화의 걸음걸이에 국회의 운명이 달렸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김무성 예산안 통과 ‘뚝심·눈총’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정치권에서 뚝심 있고 추진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신중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상황’과 ‘타이밍’을 포착하는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게 중평이다. 친이·친박 간 첨예한 대립 속에서 원내대표로 추대된 것이나, 취임 이후 야당과의 원만한 관계가 유지된 것은 이런 그의 장점에 힘입은 바 크다. 당내에 계파색을 줄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김무성은 꼼꼼한 사람이다. 실무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사업체를 운영한 사장 출신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에서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는 김무성스러우면서도 그렇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8년 만에 정기국회 회기 중 예산안 통과’에서는 뚝심이 엿보인다. 그의 원칙이었고 소신이었다. 야당과의 협상에 더 이상 진전이 없자 빠른 판단을 내렸다. ‘충돌’을 피해 왔지만, 발생한 충돌에는 앞장서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예산 누락’ 대목에서 스타일이 구겨졌다. 스스로도 이 대목에서 가장 괴로워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다득점 끝에 연말 막바지 ‘실점’, 만회의 기회는 2011년으로 넘겨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지지율 최고 박근혜 인내의 ‘무게’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사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 있을까. 더구나 ‘말을 먹고 산다.’는 정치인이. 그것도 차기 대권 주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거물 정치인이 할 말을 참는다는 것,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 쉽게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입은 올해도 신중했다. 세종시 문제가 정국을 달구던 올해 초가 박 전 대표의 속내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던 때였다. 이후 소득세 감세 문제,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입을 연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측근들의 말이고 보면, 그 인내의 크기는 더 커 보인다. 말의 양도 길지 않다. 일상적 대화가 아니고는 즉석 발언이라는 게 없다. 설화(舌禍)를 겪지 않는 비결인 것도 같다. 한번 꺼낸 말은 꼭 지킨다는 원칙 덕분에 과거의 말로 지금의 생각을 유추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새해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인다고 하니 직접 생각을 나눌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실수 잔혹사… 제 색깔 못낸 안상수 독자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진지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정치인이다. 자기 자랑에 약하고, 거짓말을 못한다. 편한 술자리에서조차 농담보다 진담을 많이 한다. 이런 안 대표에게 2010년은 가혹했다. 발버둥 치면 더 깊이 빠져 드는 늪과 같았다. ‘좌파 주지’ 발언으로 소원해진 불심(佛心)을 잡으려고 템플스테이 예산을 공언했지만, 단독처리한 예산에서 하필 그 부분이 빠져버린 것처럼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옆집 개 짖는 소리를 둘러싼 소송, 군 기피 의혹 때문에 붙은 ‘행불상수’라는 별명, 연평도에서 생긴 ‘보온병 포탄’ 발언, 치명타가 된 ‘룸(살롱) 자연산’ 발언은 집권당 대표를 개그 소재로 전락시켰다. 원내대표 시절 강한 추진력을 보인 ‘매파’ 안상수는 친이계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 대표에 올랐지만 지명직 최고위원을 5개월 동안 임명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만의 정치를 드러내지 못했다. 민간인 사찰 재수사 문제, 감세 논쟁 등 민감한 사안에서는 주로 ‘사견’(私見)을 전제로 입장을 밝혔다. 지켜보기 안타까웠던 그의 시련은 한 정치인이 강단 있는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대법, 종교적 軍훈련 거부 피해 첫 국가 배상판결

    종교적인 이유로 집총 훈련을 거부하다가 폭행을 당해 숨진 군인 피해자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군대에서 집총을 거부했다가 구타당해 숨진 정모씨의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자를 포함해 모두 4억 5000여만원을 지급하도록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대법원이 종교적인 이유로 훈련을 거부했다가 군대 내 폭력으로 숨진 사람에 대해 배상을 인정한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1976년 2월 입대한 정씨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단체의 교리에 따라 집총을 거부했다가 가혹행위를 당했고, 다음 달 방위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피를 토하며 숨졌다. 군은 당시 정씨의 사인을 병사(病死)로 발표했지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8년 정씨가 가혹행위를 당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고 확인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동화 구연’은 말재주가 아니라구요

    요즘 부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만 옛 어른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책을 읽어주는 것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뭐가 다른가 싶지만 ‘옛이야기 들려주기’(사 진·보리 펴냄)의 저자 서정오씨는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20년 넘게 옛이야기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 온 저자는 이야기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들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을 보면서 글을 읽을 게 아니라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려줄 때 옛이야기의 교육 효과는 극대화된다는 얘기다. ‘옛이야기 들려주기’는 제목 그대로 옛이야기를 잘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다. 들려주기는 우선 왜 좋을까. 시중에 나와 있는 전래동화 책들은 딱딱하고 억지스러운 글말로 쓰여진 것들이 많다. 들려주기는 보통 때 말하듯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함으로써 살아 있는 입말의 묘미를 전할 수 있다. 이야기꾼의 개성을 살릴 수 있고, 아이 반응에 따라 이야기를 조금씩 조절하면서 청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말주변이 없어서 아이가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저자는 “옛이야기를 하는 데 큰 재주가 필요하지 않으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꾼이 먼저 이야기에 푹 빠져 즐겨야 아이도 재미있어 한다.”고 조언한다. 말투를 억지로 꾸며내거나 막힘 없이 줄줄 외울 필요도 없이 아이 반응을 살피면서 함께 즐긴다는 느낌으로 하면 충분하다는 것. 부모 입장에선 권선징악의 천편일률적인 주제를 가진 옛이야기가 꼭 좋은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가혹한 현실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면 언젠가 복이 오겠지 하는 절실한 희망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니 문학적 관점에서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남보다 뛰어난 ‘동화 구연’ 기술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저자는 “이야기는 입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귀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기술이 아니라 감동과 흥겨움으로 하는 것이며, 말재주 있는 몇 사람 것이 아니라 땀 흘리며 일하는 보통 사람들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995년에 나온 초판을 수정 보완했다. 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10 베스트&워스트 어워즈] (6) 영화

    [2010 베스트&워스트 어워즈] (6) 영화

    올해 베스트 영화는 ‘시’, 워스트 영화는 ‘무적자’.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낭보를 전했던 이창동 감독의 ‘시’가 7명의 영화 전문가 가운데 5명에게서 최고라는 평을 받으며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시’는 칸에 가기 전에도, 갔다 온 뒤에도 내내 화제였다. 배우 윤정희의 16년 만의 은막 복귀작이라 더욱 그랬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에서 탈락한 사실을 놓고도 설왕설래했고, 이러한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을 휩쓸었다. ●심사위원 압도적 지지 받은 ‘시’ “주저 없이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창동의 영상 철학”(강유정), “삶의 남루함과 비루함 속에서 도드라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 무거운 생의 그림자 위에 핀 이창동 최고의 작품”(심영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의 환부를 보여주며 삶에 대한 태도를 각성시킨 빼어난 작품”(심재명), “폭력적인 시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성찰”(이상용),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돌아보게, 여린 듯 단호한 작품”(조혜정)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들은 22만명에 그친 흥행 성적에 못내 아쉬워했다. ●홍상수 감독 영화 2편 베스트에 올라 개인으로 놓고 보면 홍상수 감독도 단연 돋보였다. 5전 6기 끝에 홍 감독에게 칸의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안긴 ‘하하하’와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 오리종티 섹션 폐막작으로 선정된 ‘옥희의 영화’가 나란히 베스트로 뽑혔다. 각각 2표를 얻었다. “‘하하하’는 흉내 낼 수 없는 연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장철수),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감독인 홍상수의 새로운 변화를 주목하게 만든 ‘옥희의 영화’”(이용철) 등의 호평이 나왔다. 스폰서 검사 등 우리 사회 이면을 잘 드러내며 인기를 끈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도 “한국 사회의 부정과 부패, 불의한 공생의 사슬에 대한 적나라한 까발림”(조혜정), “류승완 스타일의 일보 전진”(강유정)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이름 올려 독립영화 가운데에는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교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홍형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가 2표를 확보하며 이목을 끌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해주는 사건을 담아낸 치열한 기록이자 시대의 생생한 증언”(이상용), “경계인 송두율을 통해 한국 사회를 제대로 냉정하게 보여주는 작품”(심재명)이라는 지지를 받았다. 올해 최고 흥행작(623만명) ‘아저씨’도 1표를 받았다.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는 관객들과 행복하게 만난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 작품”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기대 이상의 작품’을 묻는 번외 설문에서 자주 언급됐다.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나홍진 감독의 신작 ‘황해’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엄청난 에너지,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잔혹하고 쓰디쓴 ‘코리안 드림’의 실체를 지켜보는 것은 전율과 서글픔을 동시에 선사한다.”(조혜정)고 극찬받기도 했지만, “큰 스케일 속에 비루한 삶을 다뤘지만 정작 소외된 인물을 소외시켜 버리는 영화가 됐다.”고 저평가받기도 했다. ●화려한 캐스팅·제작비 100억 물량공세 나선 ‘무적자’ 실망 안겨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워스트는 작품 자체의 질적인 수준보다는 투입된 물량에 견준 결과물, 어긋난 기대 등이 표심을 좌우했다. 톱스타가 나오거나 대작일수록 더 냉정한 잣대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망을 금치 못했던 작품 1위에는 ‘무적자’가 꼽혔다. 3표가 집중됐다. 우위썬 감독의 대표작 ‘영웅본색’을 100억원가량의 제작비를 들여 처음으로 공식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한류 스타 송승헌을 비롯해 주진모, 김강우, 조한선 등 캐스팅도 화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쓰디썼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스크린에 걸려 바람몰이 홍보·마케팅으로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결과적으로 155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한 평론가는 “홍콩 누아르의 전설이 너무 버거웠는가. 감독은 홍콩과 한국 사이에서 강박적으로 길을 잃고, 배우는 스스로 아우라를 창조하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제대로 리메이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건만, 우스갯거리로 취급받았을 따름”이라면서 “송승헌은 ‘무적자’로도 모자라 ‘고스트’ 리메이크에도 출연하는 만용을 부렸는데, 한국에서는 영화배우로서 별 가치가 없음을 기어코 확인하고 말았다.”고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이끼’ 기대치 충족 못해 워스트에 ‘이끼’ ‘악마를 보았다’ ‘포화 속으로’ ‘하녀’는 각각 2표를 받아 워스트 공동 2위군을 형성했다. 인기 웹툰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끼’는 강우석 감독이 새로운 연출 스타일을 시도했지만 “원작이 갖고 있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쓴소리를 들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잔혹한 게 아니라, 선정적”이라는 냉소에 직면했다. ‘포화 속으로’와 ‘하녀’는 “단순한 목표를 향해 가느라 정작 영화적 재미는 놓쳐버린 작품”, “너무 에로로 흘렀다.”는 비판을 각각 받았다. 충무로 최고 블루칩으로 등극한 뒤 올해 입대한 강동원의 작품 ‘전우치’와 ‘초능력자’가 각각 워스트 1표를 받은 점도 눈에 띈다. 홍지민·이경원기자 icarus@seoul.co.kr ■심사위원 영화평론가 강유정·심영섭·이용철·조혜정 심재명 명필름 대표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장철수 영화감독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재치만점’ 통큰치킨 장례식…송혜교 세계미인 18위 뽑혀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재치만점’ 통큰치킨 장례식…송혜교 세계미인 18위 뽑혀

    ‘통큰치킨’이 지난주에도 인터넷을 달궜다. 이번엔 장례문화(?)와 접목되며 ‘통큰치킨 장례식’(왼쪽)이 네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의 판매를 중단하자 네티즌들이 패러디물을 게재한 것. 게시물들은 ‘통큰치킨’의 영정사진을 만들고, 드라마를 패러디하는 등 재치가 반짝였다. 2위는 ‘지하철 폭행남’. 지하철 1호선에서 20대 여성의 머리와 뺨을 세 차례 때리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면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이 여성을 때린 남성은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몸을 부딪친 여성이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자 홧김에 주먹질했다고 진술했다. 이 남성은 사건 직후 체포돼 불구속 입건됐다. ‘원양어선 침몰’ 소식은 네티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13일 남극 해역에서 원양어선 제1민성호가 침몰,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실종됐다. 침몰 어선에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해 다른 국적 승조원 42명이 타고 있었으며, 한국 선원 8명 가운데 1명만 구조되고 2명은 사망, 5명은 실종됐다. 4위에 오른 ‘김길태 감형’ 소식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을 야기했다.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길태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15일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논란이 일었던 것. “사형은 국민 여론을 의식한 가혹한 처벌이었다.”는 의견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탤런트 김성민의 마약 복용 여파가 전창걸에게로 옮겨갔다. 개그맨 전창걸이 검찰에 구속된 소식이 5위에 올랐다. 김성민과 전창걸은 서로 집을 오가며 대마초를 나눠 피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구속수감된 두 사람을 상대로 마약 공급책과 함께 흡연을 한 인물들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연예인 마약 후폭풍이 어디까지 불지 관심이 모아진다. 6위는 ‘송혜교, 가장 아름다운 얼굴’(오른쪽)이다. 미국 영화 전문 웹사이트가 발표한 ‘가장 아름다운 얼굴 100’에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18위에 이름을 올린 것. 1위는 미국 섹시스타 카밀라 벨이, 2위는 엠마 왓슨이 차지했으며, 3위는 탐신 에거튼이다. 가수 김장훈의 기부 소식이 또 인터넷을 달궜다. 연말을 맞아 총 7군데의 사회 단체에 10억원을 나눠서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 김장훈은 “일부 기부재단의 비리가 기부 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무척 안타깝다.”면서 “하지만 기부는 재단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이 밖에도 한 만화가가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대해 자신의 웹툰을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 이에 드라마 제작사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시크릿가든 법적대응’이 8위에 올랐다. 박지성이 새해 1월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뜻을 비친 소식도 네티즌의 광클을 이끌어 냈으며, 가수 아이유가 SBS 인기가요에서 좋은 노래 실력을 보여 ‘ 아이유 인기가요’도 순위권에 들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성북署 피의자 가혹행위 의혹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성북경찰서 강력팀 형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자백을 받으려고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A(33)씨는 지난 3월 중순 절도 혐의로 체포돼 조사받을 때 성북서 강력팀 소속 형사가 수갑을 채운 채 손목을 죄고 주먹과 발로 구타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양측 진술이 엇갈리는 등 수사 의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청렴도 꼴찌’ 검찰 내부비리 척결 나서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대검찰청이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에서 최하위등급을 받았다. 이래서야 우리사회의 각종 비리를 척결해야 할 검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뿐 아니라 법무부 경찰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이 모두 ‘보통’ 또는 ‘미흡’ 평가를 받았다니 범법자들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랄 수 있느냐고 묻더라도 별 할말이 없을 듯싶다. 이렇게 검찰의 청렴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내부의 치부부터 도려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법 앞의 평등 정신은 물론 균형 감각마저 잃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랜저 검사’ 사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검찰은 사건 관계자에게 그랜저승용차를 받은 검사를 무혐의처분했다가 언론과 정치권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재수사를 통해 구속했다. 방송 등에서 향응 및 성 접대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스폰서 검사’ 사건은 특검까지 동원됐지만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 현재 검찰은 도덕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은 내부 비리가 적발되면 가혹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엄중한 징계나 사법처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아울러 감찰 기능과 청렴 교육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그런 뒤에 외부의 비리도 성역 없이 근절해 나가야 한다. 우리사회에는 요즘 공정사회가 화두가 됐다. 공정사회를 이끌 수 있는 핵심 기관은 공익의 대변자로 형벌을 집행하는 검찰이다. 검찰의 신뢰가 낮으면 검찰뿐 아니라 국가가 불행해진다. 국민이 공권력 행사를 정당한 것으로 믿지 못하면 국가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 검찰은 스스로 예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는 훨씬 높아졌다. 그 괴리를 좁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청렴도 등급을 높이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 철도공단, 공기업 최초로 직급 폐지

    철도공단, 공기업 최초로 직급 폐지

    한국철도시설공단(철도공단)의 인사 실험이 계속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철도공단은 합리적인 인력 운용과 공기업 연봉제 도입 등에 대비해 직급을 폐지하고, 고위직 임기제를 시행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이와 관련, 철도공단은 오는 21일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 후 대규모 후속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직급 폐지에 따라 현재 9단계인 계급운영체계가 6단계로 축소된다. 1~6급으로 나뉜 직급이 사라지고 ‘사원-과장-차장-부장-처장-실·단·지역본부장’ 형태로 전환된다. 국내에서는 민간 기업 일부가 이를 채택하고 있다. 사원과 대리는 사원으로 합쳐지고 3급 및 2급을 임명했던 팀장과 2급 또는 1급이 맡던 처장은 평가를 통해 부장과 처장으로 각각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실적과 역량이 떨어지는 처장이 부장으로 떨어지는 극약처방도 예상된다. 철도공단은 직위 체제 전환에 따라 ‘직급 인플레’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또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처장이라도 직급에 따라 연봉 차이가 발생하는 ‘불합리’ 개선도 가능해졌다. 최고위직인 실·단·원장·지역본부장 등 10개 자리에 대해서는 임기제가 도입된다. 2년 임기에 1년을 연임할 수 있는 상임이사와 동일한 형태다. 직급상한제와 임금피크제도 그대로 적용받는다. 대신 상임이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10개 자리 중 하나는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보직경로’도 구축했다. 철도공단은 10개 자리를 내부 공모로 선발할 방침이다. 단 정년이 3년 남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전문직은 지원할 수 없다. 계급상한제에 들어간 간부가 공모를 거쳐 임명되면 매년 10%의 임금 삭감을 적용받으면서 최대 3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 7월 시행된 직급상한제와 임금피크제 보완책으로 해석된다. 철도공단은 당시 전문직으로 전환된 간부들의 대거 퇴직을 예상했지만 대부분 그대로 잔류하면서 ‘인력 선순환’ 효과가 미미했다. 이에 따라 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부담은 커지게 됐다. “가혹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철도공단은 직급상한제 취지를 유지하겠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기형적인 조직으로 출발하면서 간부가 많고 하위직이 적은 항아리형 구조가 심화됐다.”면서 “최근 3년간 차장 승진인사가 사라지는 등 하위직의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쟁체제 도입 및 능력에 따른 보상(승진) 등의 활력소가 마련됐다.”면서 “최소 2년 후면 효과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철도공단은 지난 7월 공기업 최초로 직급상한제 및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간부 30명을 보직해제하고 전문직으로 전환했다. 직급상한제는 한 직급 장기 근무자로 1급은 10년, 2급은 12년 이상이 대상이다. 직급상한제에 걸리면 매년 10%씩 임금이 깎여 최대 50%까지 감액된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이 3년 남은 3급 이상 간부가 대상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아일랜드 850억 유로 구제금융 승인

    아일랜드 정부의 재정 긴축 정책 약속에 따라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85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EU 재무장관들이 28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850억 유로(약 130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승인했다고 BBC가 전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는 그리스(1100억 유로)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로 구제금융을 받는 EU 국가가 됐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아일랜드 야당과 노동계의 긴축안 반대가 커지고 있어 정치적 불안 속에 ‘아일랜드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2014년까지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3% 이내로 낮추겠다.’는 강도 높은 긴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연립 정부 붕괴와 조기 총선이 이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탓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2014년까지 150억 유로의 정부 재정을 감축하는 긴축재정안을 반영한 2011년 예산안을 다음 달 7일 의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노동계의 긴축안에 대한 반대가 거세다. 지난 27일 수도 더블린에서 10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벌어진 긴축재정 및 구제금융 반대 시위도 한 예다. 살기 힘들어진 국민들에게 더욱 가혹한 대가를 요구하는 긴축안에 대한 불만이 사회 불안과 정치적 혼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연립여당은 84석을 확보, 하원에서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82석)보다 2석 많지만 연립 참여 군소 정당들의 동요로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복지예산 14% 삭감, 최저임금 시간당 1유로 인하, 공무원 일자리 2만 4750개 감축 등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노동계와 시민들의 반발 속에 아일랜드 위기가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으로 번져갈지도 우려된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꼴찌는 울지 않았다… 꿈이 있기에

    꼴찌는 울지 않았다… 꿈이 있기에

    239점을 내주고 15점을 얻었다. 6전 전패. 8개팀 가운데 꼴찌. 숫자가 말하는 결과는 참혹했다. 1승 꿈을 안고 광저우에 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 여자 럭비대표팀이 23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최종전이던 7·8위 순위전에서 인도에 10-21로 패했다. 지난 6월 급조된 한국 사상 첫 여자 럭비 대표팀은 처음 나선 국제종합대회를 이렇게 마쳤다. 보잘 것 없이 시작했고 가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여자럭비 선수들은 대회 내내 단 한번도 울지 않았다. 지난 21일 A조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중국전에서 0-51로 패한 뒤 분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섰던 선수들이다. 이후 태국에 0-48, 홍콩에 0-36으로 져 조별리그 3전 전패를 당했다. 마지막 날 오전에 열린 B조 1위 카자흐스탄과 8강전도 0-52로 졌다. 그래도 선수들은 경기 시작할 때마다 “이번엔 좀더 나을 거다.”를 외쳤다. 어깨를 두드리고 서로 격려했다. 실력은 꼴찌라도 파이팅은 금메달감이었다. ☞[아시안 게임 화보] 광저우 정복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5~8위 순위전이던 싱가포르전. 경기 양상이 조금 변했다. 5-31로 졌지만 한국은 전반 4분 18초 첫 득점을 했다. 최혜영이 수비수를 제치고 트라이에 성공했다. 마지막 경기였던 인도전에선 선취점도 뽑아냈다. 민경진이 트라이를 해 5점을 먼저 가져왔다. 5-21로 뒤진 경기 종료 직전에는 박소연이 트라이에 성공했다. 최종 스코어는 10-21이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웃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봤다. 박수치고 서로 포옹했다. 오히려 바라보던 사람이 눈물 흘렸다. 여자 럭비대표팀 문영철 감독은 “그동안 힘든 시간을 참고 견뎌준 선수들이 정말 고맙다. 1승은 못했지만 1승에 맞먹는 경험을 챙겼다.”고 말했다. 문 감독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난해 6월 대한럭비협회 선발전을 통해 급조된 여자럭비 대표팀 11명은 단 5개월 훈련시간을 가졌다. 민경진과 이민희를 뺀 9명 선수들은 럭비공을 처음 잡아봤다. 이들이 한국 여자럭비의 시작이다. 현실은 열악하지만 희망은 크다. 한편 금메달을 기대했던 남자 럭비대표팀은 동메달에 그쳤다. 준결승에서 일본에 15-28로 패했고 중국과 3·4위전에서 21-14 승리했다. 광저우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영화리뷰] ‘두 여자’

    [영화리뷰] ‘두 여자’

    소영(신은경·오른쪽)은 행복했다. 잘나가는 산부인과 의사에, 남편 지석(정준호)은 대학 교수다. 남편과의 사랑도 완벽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내연녀 수지(심이영·왼쪽)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소영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소영은 수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살핀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관계는 이상해진다. 처음 품었던 적개심은 점차 수지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변하고, 어느새 수지를 보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반적인 불륜 드라마의 특징은 감정선이 심하게 편향돼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이분화된 구조 속에서 드라마가 편드는 캐릭터에 감정선을 집중시킨다. 내연녀 편을 들면 본처가 악녀고, 조강지처 편을 든다면 정부(情婦)가 팜므파탈이다. 최근 막장 열풍 탓에 복수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감정선은 더욱 단순하고 노골화된다. ‘감정선 양극화’는 최근 대중문화 콘텐츠의 심각한 문제다. 이런 면에서 18일 개봉한 영화 ‘두 여자’는 발전적이다. 감정 분배에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칼자루를 쥔 소영은 내연녀와 남편 가운데 누구의 심장을 찌를지 고민하는 원초적 캐릭터로 보여질 듯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악역을 누구로 만들지, 누구에게 복수를 해야 더 효과적일지 혈안이 된 영화는 아니란 얘기다. 특히 영화는 감정선을 다양한 층위로 엮어내고 있다. 복수에 대한 갈망은 물론 남편을 빼앗은 여자로부터 자신에 대한 남편의 가혹한 품평을 듣고야 마는 피학적 관음증, 여기에 수지에 대한 동정 등 수많은 감정이 뒤엉키면서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또 수지의 감정에 대해서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관객의 심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누구에게 욕을 해야 하는지 강요하는 억지가 없는, 조금은 사려 깊은 불륜 영화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감독의 면면을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아내가 결혼했다’(2008)의 정윤수 감독이다. 그의 말로 메시지를 대신한다. “우리는 욕망의 표현이 자유로워지는, 위험한 관계가 만연한 곳에 살고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근본적 질문 없이 제도의 껍데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적하고 싶었다.” 하지만 독특한 설정과 섬세한 심리 묘사는 결국 영화 후반부에서 한계에 부닥치며 빛을 발하지 못했다. 갑작스레 극단으로 치닫는 어색함이 전반부와 뚜렷이 대비되면서 균형을 잃는다. 파국이 기다리고 있는 치정극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역시 피로 마무리되는 설정. 야한 통속극에 그치면 안 된다는 의무감은 강해 보이는데, 황급한 걸음으로 인해 개연성은 추락한다. 마케팅이 너무 에로티즘에 편향된 점도 아쉽다. 물론 노출 수위만 봤을 때 최근 나온 한국 영화 가운데 손꼽을 정도로 강한 편이지만, 그 이외의 메시지가 퇴색돼 버리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청소년 관람불가.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지방세 추심위탁 인권침해 아니다”

    신용정보협회 김석원 회장은 1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간 추심업체가 체납 지방세 징수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탁받더라도 인권침해의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체납 지방세 징수업무를 신용정보업체에 위탁하는 경우 업체가 수익을 올리기 위한 불법적, 강압적 징수활동으로 납세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왔다. 김 회장은 “체납자의 권익은 현행 규제와 감독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면서 “위탁업무도 편지안내, 전화독촉, 방문컨설팅, 재산조사, 변제 촉구 등이어서 인권침해 소지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신용정보협회는 추심업체와 신용평가사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으며, 현재 지방세 미정리 체납액에 대한 추심업무를 위탁받기 위한 지방세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신용정보회사는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금융 및 상사 거래에서 발생한 채권을 80조원 이상 회수해온 경험을 축적했다.”면서 “체납자와 접촉할 경우 녹취 등 보완방법을 적용하는 것도 인권침해 방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오해는 추심업무의 사각지대인 심부름센터 등 사설 추심업자와 신용정보회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됐다.”면서 “금융위 허가를 받은 신용정보회사는 개인정보 보호와 가혹한 추심행위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간 위탁시 체납정리는 물론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덜고 성실한 납세자와 미납자 간 불공평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1조원을 위탁받으면 2000∼3000명의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한낮 기온 60도… 열사의 땅 ‘다나킬’

    한낮 기온 60도… 열사의 땅 ‘다나킬’

    그곳은 낮 기온이 60도에 육박한다. 겨울밤에도 3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영하 30도가 아니다. 영상 30도다. 물도 거의 없다. 화산 폭발과 지진도 자주 일어난다. 해발고도는 해수면보다 120m나 낮다. 지구 상에서 가장 낮은 지대다.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은 염분 퇴적층의 두께가 10㎝에 달한다. 말하자면 소금 사막이다. 지구 상에 그런 곳이 있다. 아프리카 북동부 내륙 에티오피아의 북부에 있는 다나킬 사막이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10개국은 언젠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 곳이다. 이런 척박한 다나킬 지대에도 과연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물론 산다. 동물, 곤충, 물고기가 살아가고 있다. 사람까지 산다. 불모지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은 아파르 부족이다. 그들은 ‘용감한 전사’라 불린다. 지질학적으로나 기후적으로나 독특하고 가혹한 환경의 다나킬이지만 정보는 많지 않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거부로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곳이다. EBS가 ‘다큐 10+ 과학 다큐’ 시간을 통해 3부작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다나킬’(The Hottest Place on Earth)을 내보낸다. 16일 시작해 3주 동안 매주 화요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한다. 영국 BBC가 제작·방송한 다큐멘터리다. 방송은 약 700만년 전 화산 활동과 지각 변동이 만들어낸 다나킬을 찾아간다. 첫 방문지는 달로 광산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하루 2000만 마리의 낙타들이 이곳과 시장을 오가며 소금을 날랐다. 가스와 유황천을 내뿜고 있는 화산 지대에선 미지의 생물을 찾아본다. 수천년 전부터 다나킬에서 가축을 기르고 소금을 채취하며 살아온 아파르 부족도 만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행정 잘못 전임시장에 구상권 청구

    전남 나주시가 전임 시장을 상대로 손실된 국고보조금을 회수하기 위해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전임 단체장의 행정 행위 잘못에 따른 재정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9일 나주시에 따르면 공산면 화훼생산단지 추진 과정에서 국고보조금을 부당 지급했다가 낙마한 신정훈(46) 전 나주시장과 이모(44·5급)씨 등 4명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다. 신 전 시장은 화훼생산단지를 조성하면서 자부담금과 부지 등을 확보하지 못한 N영농조합에 12억 3000여만원의 국고보조금과 시 지원금을 지급한 혐의(업무상 배임 등)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원예과 공무원 3명도 같은 혐의, 같은 형량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뒤 직권 면직 조치됐다. N조합이 추진한 화훼단지 조성 사업도 보조금 부당지급 사실이 드러나면서 좌초됐다. 나주시는 이후 이 조합법인 대표로부터 보조금 3300만원을 회수한 뒤 지난 1월부터 화훼단지에 대한 공개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팔리지 않고 있다. 시는 나머지 보조금을 회수하기 위해 신 전 시장의 구상액 범위 결정을 감사원에 요청하는 한편 재산 조회와 가압류 등을 통해 일부 채권을 확보했다. 해임된 관련 공무원 3명의 재산에 대해서도 가압류 조치했다. 그러나 신 전 시장은 부당 지급된 보조금을 충당할 만한 재산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실효성 논란도 일고 있다. 또 이미 사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관련 공무원들에게 변상조치까지 하는 것은 가혹한 처분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美 중간선거 공화당 승리] 오바마, 경기침체에 무릎꿇고 ‘티파티’에 얻어맞다

    [美 중간선거 공화당 승리] 오바마, 경기침체에 무릎꿇고 ‘티파티’에 얻어맞다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은 가혹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2일(현지시간)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2년 만에 민주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거둬들이고 공화당에 60석 이상을 몰아주며 공화당 손을 들어줬다. 2012년 재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개혁 정책들에 대한 수정과 공화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작은 정부와 재정지출 축소를 요구해온 보수 성향의 유권자운동인 티파티 후보들의 약진과 함께 미 의회의 보수화가 두드러졌다. 상원에 도전했던 민주당의 흑인 후보 3명이 모두 고배를 마시면서 상원은 다시 흑인 의원 ‘제로 시대’로 돌아갔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침체와 10%에 육박하는 실업률, 향후 경기전망에 대한 불안감이다. 경제 위기 와중에도 건강보험 개혁 등 1조 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비싼’ 정책들을 밀어 붙인 오바마식 개혁에 유권자들이 불안해 하면서 결국 의회에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부여한 것으로 정치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 내 선거전략가로 꼽히는 에반 바이 상원의원은 “경제위기 동안 고용 창출보다 1조 달러의 새로운 지출을 유발하는 건강보험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게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민심은 출구조사 결과에 잘 나타난다. 응답자의 86%가 향후 경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논설위원 킴벌리 스트라셀은 “오바마와 민주당의 오만이 오늘 선거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국민에게 많은 말을 하려 했을 뿐 국민들 말을 들으려 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간선거의 최대 승자는 티파티다. 티파티 위력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미국 정치의 태풍으로 자리잡았다. 켄터키와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유타, 위스콘신주에서 상원의원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주지사를 배출했다. 하원선거에서도 다수의 티파티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티파티는 의회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가 됐다. 더욱이 공화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고, 건강보험 개혁법안의 무효화를 최우선 과제를 제시해 향후 돌풍을 예고했다. 이번 중간선거는 역대 가장 돈을 많이 쏟아부은 선거라는 기록과 함께 혼탁선거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민주·공화 양당 후보들은 선거기간 동안 약 40억달러를 뿌렸다. 이는 2004년, 2008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인신 공격성의 비방 TV광고를 융단폭격식으로 퍼부으면서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이 하원 주도권을 빼앗긴 주요 원인으로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흑인과 젊은 유권자층의 낮은 투표율이 부각됐다. 전체 투표자 가운데 18~29세 유권자 비율이 10%로 2008년 대선 때의 18%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흑인 비율도 10%로, 2년전의 13%보다 떨어졌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목포 ‘마담 2차노트’ 성매매 292명 입건

    전남 목포경찰서는 ‘마담 2차 노트’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목포 유흥주점 성매매 사건 수사를 마무리짓고 모두 292명을 무더기로 입건했다. 단일 사건으로 200명이 넘는 성매수자 등이 입건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목포경찰서는 2일 목포 H주점 성매매 사건과 관련해 성매수남 252명 등 관련자 29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성매매 혐의로 입건된 292명은 업소 사장 등 업소 관계자 3명, 성매매 여성 37명, 성매매 남성 252명이다. 경찰은 성매매 사실을 부인한 86명은 성매매 여성과 대질 조사를 통해 불입건 조치했다. 성매수 남성 중 공무원 및 공기업체 직원은 37명, 회계사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자영업자는 94명이며 나머지는 일반 회사원이나 무직자로 밝혀졌다. 경찰은 “여성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한 업주의 협박과 감금 등 가혹행위 여부 및 조직폭력배의 자금지원이나 업소비호 여부와 관련해 특별한 불법행위는 없었다.”며 “공무원과 업소간 유착 여부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의 통화내용과 금융계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조사했으나 혐의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목포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버티는 千… 속타는 檢

    버티는 千… 속타는 檢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천신일(67) 세중나모 회장이 신병 치료를 이유로 귀국을 미루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검찰은 ‘반발’하는 천 회장에 대해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 2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천 회장은 1일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검찰에 “치료 날짜를 잡았다.”며 귀국해 검찰 조사에 응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치료에 관한 구체적 병명이나 치료기간, 귀국 가능일 등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병치료보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천 회장은 자신이 연루된 임천공업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9월 초 해외로 나갔다. 이후 미국 하와이 등을 거쳐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천 회장은 해외 체류 기간 중 이미 검찰로부터 세 차례 출석 통보를 받았으나 모두 신병 치료 등을 이유로 불응한 바 있다. 천 회장의 귀국이 당분간 불투명해지자 검찰 수사도 자연스럽게 난항을 겪게 됐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천 회장 신분은 피의자”라고 밝힌 이후 천 회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천 회장의 세중나모여행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전방위로 천 회장을 압박했다. 그러나 천 회장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검찰이 오히려 나를 가혹하게 단죄하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천 회장이 일본에서 치료를 끝마치면 다시 귀국 일정을 조율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천 회장이 귀국을 거부하고 버틸 경우는 귀국을 강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미리 체포영장을 발부 받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일본에는 알선수재 처벌 조항이 없어 범죄인 인도 요청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 안팎에서는 천 회장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자진 귀국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로서 더 이상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으며 회사 경영도 계속해서 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천 회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이수우(54)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금융권 대출 로비 등 명목으로 40억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체벌 전면금지 사실상 불가능”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내 초·중·고교의 체벌을 전면 금지한 첫날, 교내 체벌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으로 알려진 운동부 선수들의 학부모와 감독은 “체벌 전면 금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전면적인 체벌 금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감독과 코치들은 체벌 대체 방안을 마련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가벼운 수준의 체벌마저 봉쇄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운동효과 높이려면 불가피” 서울시내 A초등학교 축구부를 지도하는 김모(29) 코치는 “운동부의 특성상 적당한 수준의 체벌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면서 “가혹한 체벌은 퇴출돼야 하지만 운동효과를 높이거나 팀워크 등을 위해서는 단체기합이나 체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B초등학교 축구부의 김모(37) 코치도 “학생들이 운동을 할 때의 기합도 그렇고, 운동을 한다는 핑계로 수업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등 나태한 모습을 보일 때는 체벌이 필요하다.”면서 “아이들에게 왜 체벌을 하는지 명확히 설명하고, 정해진 도구를 이용한다면 오히려 교육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C초등학교 태권도부의 최모(33) 코치는 “운동부에서 해오던 단체기합이나 운동량 늘리기 같은 교육차원의 체벌도 금지한다는 것이냐.”면서 “체벌 대신 학부모 면담이나 학생 상담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심각한 문제로 생각한 적 없 어” 운동부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체벌 전면 금지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운동부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우리 애가 맞는 건 알고 있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했다. 낮은 수준의 체벌이나 단체기합 등은 용인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서울 D초등학교 태권도부 선수의 학부모인 석모(33·여)씨는 “아이가 코치한테 벌을 받았을 때 집에 와서 억울하다고 얘기한 적은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서 “나도 우리 아이에게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맞는 것’이라고 교육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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