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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길고 깊은 경기침체에 대비하는 자세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길고 깊은 경기침체에 대비하는 자세

    지난 7일 유럽중앙은행의 드라기 총재는 유럽 경제에 대해 불확실성이 퍼지고 취약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유로 지역의 부정적인 경기 전망을 반영하며 유럽중앙은행은 적어도 2019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통화정책을 취할 것이라 밝혔고, 금융기관에 저렴한 금리를 제공하는 제3차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시행도 발표했다. 이러한 금리 동결과 추가 경기부양책은 경기 악화를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지난 1월 전미경제학회에서 미국중앙은행 총재인 파웰 현 연준 의장은 버냉키와 옐런, 두 명의 전직 의장과 함께 인터뷰에서 물가가 안정적이라면 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긴축 발작에 대한 공포를 완화시켰는데, 이 발언 역시 그동안 강한 성장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의 둔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중국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지난해 실질경제성장률 수치인 6.5%보다 낮은 6.0~6.5%를 올해 전망치로 제시하며 경기하강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마저 과대평가된 것으로 현재 중국 경제가 경험하는 생산성 부진을 고려하면 실제는 더 낮은 성장률이 전망된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경제성장률이 5%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더구나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최근 나온 ‘중국 국민계정에 대한 포렌식 검사’라는 올해 3월 콘퍼런스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수치도 과대 보고된 것은 아닌지 신뢰도 문제가 제기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16년 중국의 GDP 성장률은 평균 1.7% 포인트(명목), 2% 포인트(실질) 높게 산출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경제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우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권역들이 모두 전반적인 침체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나쁘거나 경제 여건이 취약한 신흥국 중심이던 2018년의 부정적인 상황이 이제는 경제 규모가 큰 주요 국가를 향하고 있다. 현재의 글로벌 경기 침체는 여러 대표적인 경제권역들이 함께 휘말리고 있어서 생각보다 단기에 끝나지 않는 긴 어려움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가해진 강력한 노동비용 상승의 충격으로 이미 국내 경제주체의 활동성이 떨어져 상태이다. 경직적인 경제 구조에 대한 개혁이 지연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의 재편과 효율적인 자원 재배치가 진행되지 않아 경제의 내부 적응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글로벌 경제 침체라는 외부 위협 요인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경기 회복을 위한 우호적인 외적 환경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각오로 대비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경기가 회복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은 버리고, 어려운 현실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베트남 전쟁 포로 생활을 견디고 생환된 후 미국 해군대학 총장을 지낸 스톡데일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시기를 버텨 낸 이유로 ‘언젠가 그곳을 벗어나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되 지금의 가장 가혹한 현실은 직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그 상황을 이겨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기 전 석방될 것이라고 믿다가 부활절이 지나면 다시 크리스마스 전에 나갈 것이라고 믿었고, 반복되는 낙담 속에 세상을 떠났다’고 회고한 바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경기침체는 길고 험난한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여름이 되면 나아질 것이다. 하반기에는 좋아진다. 내년에는 개선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와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는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반복되는 실망과 좌절만 안겨 줄 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들은 끊임없는 구조개혁과 생산성 향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비용 절감, 비핵심 사업의 정리 등 혹독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 역시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를 경계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해 가기 위해, 경쟁력 있는 신산업이 탄생하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정책과 규제 환경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 끝모를 양진호의 범죄혐의…청부살인 이어 회삿돈 횡령까지

    끝모를 양진호의 범죄혐의…청부살인 이어 회삿돈 횡령까지

    전직 직원을 무차별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상습적으로 일삼은 혐의 등으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에게 과거 청부살인을 시도한 혐의뿐만 아니라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가 새로 추가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양씨를 최근 추가로 형사입건하고 수사 중이라고 연합뉴스가 9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씨는 자신이 소유한 한국인터넷기술원의 자회사인 ‘몬스터’의 매각 대금 40억여원을 포함한 회삿돈 170억여원을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차명통장 등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빼돌린 회삿돈으로 부동산과 고급 수입차, 고가의 침향, 보이차를 구매하는 등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양씨는 ‘회계담당자가 처리해 나는 잘 모른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양씨에게는 살인예비음모 혐의도 적용됐다. 양씨는 2015년 9월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스님 A씨에게 당시 아내의 형부를 살해해달라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양씨가 자신과 이혼소송 과정에 있던 아내에게 형부가 변호사를 알아봐 주는 등 소송을 돕는 것에 불만을 품고 A씨에게 돈을 주며 그런 요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양씨가 A씨에게 3000만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하고 A씨로부터 “양씨가 ‘옆구리와 허벅지의 대동맥을 흉기로 한 차례씩 찔러달라’고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양씨가 A씨에게 사진과 주소 등 아내의 형부와 관련한 정보를 넘긴 것을 양씨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등을 통해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예비음모 등 혐의에 대해 보강할 부분이 있지만, 횡령 등 대부분 혐의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단계여서 이달 중으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양씨가 그가 실소유한 영상 파일 유통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가 유명 콘텐츠 회사인 B사와 저작권법 위반 문제로 송사를 벌일 때 서울중앙지검에 2000만원을 제공했고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5000만원을 제공할 예정이었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집 문제의 시작

    집 문제의 시작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피터모나 숄레 지음/박명숙 옮김/부키/496쪽/1만 9000원 당신에게 집은 어떤 곳인가. 간단한 질문이지만 선뜻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달리 해 보자.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이제야 머릿속에 여러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궁전처럼 크고 내부가 넓은 집이라든가, 잡지에서 본 화려한 인테리어, 멋진 나무로 가득한 정원, 혹은 눈 내리는 겨울의 벽난로와 같은 감성적인 아이템이 있는 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이자 에세이 작가 모나 숄레는 이런 질문에 좀더 명확한 답을 찾고자 스스로 일곱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집에서 시간 보내는 일은 좋은가”, “혼자 살아도 될까”, “집이 너무 비싼 게 아닐까”, “힘들게 일 안 해도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힘든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할까”, “가족과 꼭 함께 살아야 행복할까”, “이상적인 집은 어떤 집일까”. ●‘집콕족’ 나무라는 사회… 가족이라고 같이 살아야 할까? 자신을 집에 콕 박혀 있길 좋아하는 이른바 ‘집콕족’이라 소개한 그는 신간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우선 집에만 틀어박히는 일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저자는 되려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 것을 요구하고, 효율성만 너무 따진다고 반박한다. 혼자 사는 일에 관해서도 집에서 즐기는 여러 재밌는 일을 소개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인터넷에 중독되다시피 했지만, 결국 적절한 수준에서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당연히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독신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부부라도 각방을 쓰는 일을 고려해 보라고. 이 정도면 너무 신변잡기 에세이가 아닌가 싶은데, 집과 관련한 사회적인 이슈를 점차 녹여 낸다. 예컨대 2011년 미국 뉴욕 월가에서 성난 시민들이 주장한 ‘우리가 99%다’에 관해서는 집이 부자들의 소유물로 전락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급락하는 혼인율과 출산율, 이에 반해 상승하는 이혼율을 집과 연결하기도 한다. 노동 시간이 과도해 집에서 제대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지금 현실을 살피라는 의미다. ●집주인 갑질·대출에 월급 올인… 거의 모든 사회문제와 관련 집주인의 ‘갑질’은 또 어떤가. 집에 공짜로 사는 대신 여성에게 섹스를 요구한 남성을 비롯해 전세금을 부당하게 올리는 사례 등은 한국이 당면한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집안일에 관해서는 페미니즘과도 연결한다. 19세기 이전까지 하녀가 하던 집안일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남았다. 특히 지금처럼 일하는 여성이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지도 의문을 던진다. 대출을 갚느라 허덕이는 이들을 위해서는 정부가 일정 소득을 지원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해 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한다. 이른바 ‘스타 건축가’들이 제안한 집에 관해서도 날 선 비판을 가한다. 부자들을 위한 근사한 집을 짓는 것보다 난민이나 극빈층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문제가 모두 ‘집’에서 시작했거나 크게 관련이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상적인 집이란 무엇일까… 완벽한 집찾기 ‘가이드 북’ 저자는 질문에 관한 답을 내놓으면서 탁월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한다. ‘오디세이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공간의 시학’, ‘자기만의 방’과 같은 책을 비롯해 영화 ‘아멜리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위기의 주부들’ 등을 종횡무진한다. 문학, 예술, 철학, 사회학, 영화, 잡지, 드라마, 다큐멘터리, 신문 기사, 통계 등 온갖 자료로 답을 엮어 낸다. 한마디로 ‘집 인문학’쯤 되겠다. 인문학적 사고로 단단히 무장한 글을 읽어내면 이상적인 집에 관한 저자의 답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집은 잠자고, 게으름 피우고, 공상에 잠기고, 읽고, 곰곰이 생각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놀고, 혼자 고독을 즐기거나 지인들과 어울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곳이다.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원하는 진짜 집의 모습을 머릿속에 지어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책이다. 자신의 집을 찾는 여정의 참고서적이라 할까. 책 제목대로 ‘우리는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사는지’ 돌아보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해 봄 직하다. 그 고민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면 더 가치 있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트럼프 통제에도… 지난달 불법 이민자 7만 6000명 국경 넘었다

    11년 만에 최고… 자녀 동반 가족들 많아 100명 이상 함께 적발 사례도 70건 넘어 “제도적 수용 한계… 안보·인도주의 위기” 미국에서 지난달 멕시코와 인접한 남서부 국경을 허가 없이 넘어온 불법 이민자수가 7만 6000명을 넘어섰다고 AP통신 등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케빈 맥알레넌 미 국토안보부 세관국경보호국(CBP) 국장은 이날 “적법한 절차 없이 국경을 넘은 이민자수가 11년 만에 최고치”라며 “제도적으로 더이상 수용할 수 없는 한계점에 와 있다. 이것은 분명 국경 안보와 인도주의 둘 다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 건설을 추진하는 한편 불법 입국자를 전원 기소해 구금하는 등 강경책을 펴고 있지만 가족 단위 불법이민 시도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인 것이다. 당국은 그 이유에 대해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더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인식이 중미 전역에 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 국경에서 체포된 이들 대다수는 멕시코 남성이었으나 이제는 중미 각국 출신들이 가족 단위로 집단을 이뤄 국경을 넘다 체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집단으로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의 수도 급격히 늘었다. 100명 이상이 함께 국경을 넘다 적발된 사례는 지난 몇 달 사이에만 70건에 달했다. 이런 사례는 지난해 13건, 2017년 2건에 불과했다. 미 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도 가족 단위 불법 이민자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현 정부의) 기소 강화, 망명, 그리고 더 가혹해진 구금 정책이 폭력과 가난을 피해 고국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하려는 이민자들의 의지를 누그러뜨리진 못한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MB, 어차피 한달 뒤엔 자유의 몸… 법원 “조건 어기면 재수감”

    MB, 어차피 한달 뒤엔 자유의 몸… 법원 “조건 어기면 재수감”

    새달 9일 0시 구속만료로 석방 불가피 미리 풀어준 대신 거취 제한해 재판 진행병보석은 허용 안 해 주거지에 병원 불허“피고인, 과거 한 일 찬찬히 회고하기를”‘황제보석’ 비판 의식한 듯 이례적 당부법원은 6일 항소심 구속기간을 한 달 남짓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이례적으로 장황한 설명과 함께 피고인과 검찰 측에 여러 당부를 덧붙였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이 전 대통령에게 보증금 10억원 납입과 주거지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1곳으로 제한하고 배우자와 직계 혈족 및 그의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아무도 연락하거나 접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보석 조건을 제안했다. 또 매주 보석 조건 준수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가혹한 조건”이라면서도 법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보석을 허가한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아 다음달 8일까지인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구속기간 안에 재판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심문하지 못한 증인수를 감안하면 구속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구속기간은 기본 2개월로 두 차례 연장이 가능해 최대 6개월이다. 이 전 대통령은 추가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혐의가 없어 보석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다음달 9일 0시에 석방될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은 구속기간 내 심리를 마치지 못하면 석방 후 심리를 계속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구속만기로 석방할 경우 주거 또는 접견을 제한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인멸의 염려가 더 높다”고 지적했다. 한 달 뒤 아무 제한 없이 풀려나는 것보다는 거취를 제한한 상태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석방 관련 논란을 더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다만 ‘황제 보석’ 논란을 의식한 재판부는 보석 허가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보석제도는 무죄추정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불구속 재판의 기초 제도인데, 국민의 눈에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면서 “자택구금과 유사한 정도의 보석 조건을 부가하고 이를 어기면 재수감하겠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새로 구성된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 돌연사 가능성까지 언급한 건강문제를 보석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점도 보석 결정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측에서 주거지로 추가 신청한 서울대병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입원 진료가 필요하다면 구치소 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장인 정준영(52·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에게 “형사재판은 현재의 피고인이 과거의 피고인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라면서 “자택에서 기소된 범죄사실 하나하나를 읽어 보고 찬찬히 회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보석 조건을 어겨 보석 취소로 재구금되지 않도록 하라”면서 “매일 1시간 이상 운동해 건강을 유지하고 성실하게 재판에 임해 달라”고 덧붙였다. 검찰엔 “피고인이 보석 조건을 잘 지키는지 감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이명박 ‘조건부 석방’…변호인 “가혹하지만 못 지킬 조건 아냐”

    이명박 ‘조건부 석방’…변호인 “가혹하지만 못 지킬 조건 아냐”

    다스 돈을 횡령하고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 법원에서 징역 15년 및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법원의 보석 결정 직후 이 전 대통령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는 보석 조건이 까다롭다면서도 이 전 대통령이 못 지킬 조건은 아니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조건부로 6일 허가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에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그의 구속 만기 시점은 오는 4월 8일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을 풀어주는 대신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통신 대상도 제한했다. 또 10억원의 보증금을 납입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오히려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다”면서 “보석을 허가하면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진료를 받을 서울대병원도 ‘제한된 주거지’에 포함할 것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병 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진료를 받을 때는 그때마다 진료 이유와 병원을 기재해 보석 조건 변경 허가 신청을 받고, 복귀한 것도 보고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만약 입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보석을 취소하고 구치소 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이 전 대통령이 배우자와 직계 혈족, 변호인과는 자택에서 자유로이 만나고 연락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사람과는 접견하거나 통신을 할 수 없다는 조건도 달았다. 강 변호사는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조건이 많긴 했다”면서도 “재판부가 이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우대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석 조건이 엄중해도 (이 전) 대통령이 못 지킬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 변호사는 또 이 전 대통령이 법원의 보석 결정을 예상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예상했는지는 모르겠고, 기대는 했을 것”이라면서 “(전직) 대통령일수록 오해를 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을 몸으로 보여달라는 뜻으로 재판부가 조건을 가혹하게 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이 전 대통령에게) 말했고, (이 전 대통령이)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구속 만기일인 오는 4월 8일까지 구치소에 있다가 풀려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법이 인정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 방어권을 보장해달라는 입장에서 한 보석 청구이므로, 가혹한 보석 조건이지만 감수하자고 결정한 것”이라고 강 변호사는 설명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PD수첩’ 방용훈 사장 아내 故 이미란 죽음 의혹 추적.. “살아보려 애썼는데”

    ‘PD수첩’ 방용훈 사장 아내 故 이미란 죽음 의혹 추적.. “살아보려 애썼는데”

    ‘PD수첩’이 조선일보 대주주이자 코리아나 호텔 방용훈 사장의 부인 이미란 씨의 죽음에 대해 재조명했다. 지난 5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는 방용훈 사장의 부인 고(故) 이미란 씨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다고 보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미란 씨는 지난 2016년 9월 1일 한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인이 사망 전 친오빠에게 남긴 음성메시지에는 남편 방용훈의 이름이 언급됐다. 고인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조선일보 방용훈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겁은 나는데 억울함을 알리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방용훈 사장은 고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 둘째 아들이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동생이다. 그는 코리아나 호텔 사장이면서 조선일보 4대 주주다. ‘PD수첩’ 보도에 따르면, 이미란 씨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전 4개월 동안 지하실에서 지냈다. 고인은 유서에 “4개월 간 지하실에서 투명인간처럼 지냈고 강제로 끌어내 내쫓긴 그날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썼다. 또한 자녀들에 의해 사설 구급차에 실려 집에서 쫓기듯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 시도가 실패할 경우 방용훈이란 남편이 어떤 가혹한 행위를 할지 죽기로 결심한 두려움보다 그게 더 무섭다”고 말했다. 방용훈 사장이 고인에게 폭행을 해 온 사실도 적었다. 이 상황을 목격한 전 가사도우미는 “사모님이 안 나가려고 소파를 잡자 (자식들이) ‘도둑년아 손 놔’, ‘손 잘라버려’라고 외쳤다”면서 “자기네는 1층에서 파티처럼 밥 먹고 깔깔댔지만 사모님은 지하실에서 아침에 고구마 2개, 달걀 2개 먹고 나중에는 입에서 썩은 내가 올라올 정도로 속이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용훈 사장은 ‘PD수첩’ 측에 “우리 마누라가 애들을 얼마나 사랑한지 아세요? 우리 애들이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부인이 죽고, 이모가 고소를 하고, 할머니가 애들을 고소하고. 그 이유는 왜 안 따져보는가? 제 입장이 한번 돼 보시라. 저는 한가지로만 말씀드리고 싶다. 사람하고 이야기 하고 싶다”고 반박했다. ‘PD수첩’의 보도에 따르면, 고인과의 가정 불화는 유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방용훈 아들 방모씨는 경찰 조사에서 20년 전 방용훈 사장이 어머니 이미란 씨에게 50억원을 맡겼는데 그 돈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미란 씨 언니는 “동생이 죽기 세 달 전쯤 너무 놀랐다고 말하더라. 남편이 자기한테 준 돈이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다시피 했다. 그런데 (방용훈 사장이) 아들 돈이라고 말했다는 거다. ‘네가 알아서 (돈을) 찾아서 가져라. 엄마가 돈을 다 썼기 때문에 유산이 한 푼도 없다’고 (방용훈 사장은 아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친정에서 돈 빼돌렸다는 말 밖에 할 얘기가 없을 것”이라며 “그래서 우울증으로 죽었다고 밖에는 할 얘기가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란 씨의 친오빠는 “이혼을 생각 안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몸을 사렸다. 자신들에게 이야기한 내용도 없애라고 하더라. 법무법인이 망한다고”라고 했다. 경찰은 이 씨의 큰 딸과 큰 아들을 공동존속상해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강요죄로 죄명을 변경해 기소했다. 이미란 씨의 사망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PD수첩은 2016년 11월 1일, 방용훈 사장과 아들이 각각 얼음도끼와 돌멩이를 들고 고인의 친언니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들기고 현관을 걷어차는 등 모습이 담긴 CCTV를 공개했다. 당시 방용훈 사장은 아들을 말리기 위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CCTV에는 오히려 아들이 방용훈 사장을 말리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용산경찰서는 방용훈 사장에게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을 냈다. CCTV 자료에서 방용훈 사장이 아들을 말리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 CCTV 내용과 다른 결론에 제작진은 당시 수사를 했던 용산경찰서 이 모 경위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 경위는 CCTV 확인 요청을 거부했다. 외압이나 청탁이 있었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PD수첩’이 이 사건에 대해 방용훈 사장에 묻자 그는 오히려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게 쉽다”면서 “녹음하고 있을 테지만 편집하지 말고 확실히 해라. 살면서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이건 협박도 뭐도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방송된 ‘PD수첩’은 6.2%(이하 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올해 방송분 중 가장 높은 시청률 기록이다. 사진=MBC ‘PD수첩’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길섶에서] 특수성의 오판/문소영 논설실장

    정치사회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은 ‘한 나라만 알고 있는 연구자는 하나의 나라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적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고대·중세·현대를 국가 단위로 나눠 비교·분석한 ‘정치 질서의 기원’이란 책에서 립셋의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최소 두 나라를 비교하지 않으면, 한 사회의 정치사회적 양상이 그 사회 특유의 것인지 아니면 일반화된 어떤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고 했다. 지리나 기후, 기술, 종교, 사회적 갈등 등을 비교하면서 정치 특수성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이라고 배우지만, 온후한 온대지방을 경험하고 나면 한국의 ‘뚜렷한 4계절’ 중 여름은 열대, 겨울은 툰드라처럼 가혹하고 혹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의 보편성을 한국만의 특수성으로 흔히 오판한다. 한국인의 ‘민족 대이동’은 중국의 춘제나 서양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도 나타난다. 한국의 ‘세대 간 갈등’도 보편성이 있다. 의료의 발전으로 동서양 모두 100세 시대가 된 탓이다. 인류의 보편성에 기초해 한국의 문제를 발견한다면 문제 해결 방식도 보편적이어야 한다.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문제 해결에서도 마찬가지 과제다. symun@seoul.co.kr symun@seoul.co.kr
  • 위세 떨치던 IS 최후의 점거지역 시리아 바구즈에서 마지막 교전

    위세 떨치던 IS 최후의 점거지역 시리아 바구즈에서 마지막 교전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국가 수립을 선포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에 위세를 떨치던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연합군과 지난 2일(현지시간)부터 시리아에 남은 최후의 점거 지역에서 마지막 교전을 치르고 있다.알자지라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민병대와 시리아민주군(SDF) 연합이 포탄과 공습 등을 이용해 마지막 남은 IS 전투원들과 시리아 북동부 데이르에조르 지역의 작은 마을인 바구즈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3일 전했다. 앞서 열흘 이상 여성과 아이들을 난민수용소로 대피시킨 연합군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공격에 들어갔다. IS무장 조직원들은 스나이퍼와 자살 폭탄 차량, 부비트랩 등으로 응수하고 있다. 바구즈에 있는 SDF 지휘관은 이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무장 세력이 2일 밤 폭탄이 장착된 차량을 끌고 공격에 나섰다”고 전했다. 무스타파 발리 SDF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이틀 동안 미국 연합군이 IS전투원들의 공격을 저지했다”면서 “SDF를 공격하려는 3대의 폭탄 차량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IS 전투원들은 밤에는 야간 투시경이 없어 제대로 공격에 나서지 못했고, 연합군은 이 때를 틈타 반격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연이은 폭발로 불길이 일자 마을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연합군에 따르면 IS 전투원들 가운데 지하에 매복해 있는 이들도 있어 정확한 수를 가늠하긴 힘든 상황이다. 연합군 측은 현재 1000~1500여명의 남성들을 비롯해 9000여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마을에 남아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IS는 2014년 전성기 시절 시리아 서부에서 이라크 동부에 이르기까지 8만 8000㎡에 이르는 영역을 장악했다. ‘이슬람 왕조’ 탄생을 주장하며 800만명의 지역주민들을 가혹하게 다스렸던 IS는 석유와 갈취, 절도, 납치 등을 통해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시흥 3·1만세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성별·연령·계급 뛰어넘은 시흥 최대 만세운동지

    [시흥 3·1만세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성별·연령·계급 뛰어넘은 시흥 최대 만세운동지

    온 국민이 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비폭력·평화를 표방한 전국적인 항일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며 민족 독립의 초석을 놓았다. 경기도 시흥은 3·1운동이 발생한 서울과 가까이 있어 시위 초기부터 열기가 고조됐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 단발적 만세 시위였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로 15일간 지속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흥시가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지사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펼쳐진 시흥지역 최대 만세운동 1919년 3월 30일, 통문을 전해 들은 수암면 주민들이 수암리 비석거리로 모여들었다. 당시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윤병소(1893~미상) 지사는 이 소식을 듣고 수암리로 갔다. 그는 각 리에서 모인 2000여명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요구했지만 계속해서 면사무소 근처까지 진출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수암면 비석거리에 울려 퍼진 ‘만세’는 시흥일대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이 지역은 현재 안산시 수암동이지만 군면통폐합 이전에는 시흥군 수암면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시흥시 북부지역은 부천군 소래면, 중남부는 시흥군 수암면, 서남부는 군자면이 각각 설치됐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촉발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던 시기에 시흥도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 3월 24일 소래면 주민들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수암면 비석거리와 군자면 장곡·선부·죽율리, 군자면 구장터 등 곳곳에서 독립의 열망이 피어올랐다. 윤병소 지사와 더불어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투쟁 시위를 이끈 또 한 명의 위인은 바로 윤동욱(1891~1968) 지사다. 흥분한 군중들이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려 했지만 “독립하면 관공서는 국가의 재산이 되니, 국유재산을 털끝만큼이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며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그는 시위를 진압하러 온 순사 임건호에게 오히려 시위 동참을 촉구했으나 임건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태형 90대의 가혹한 형벌을 받은 윤동욱 지사는 경찰 신문 과정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조선독립을 꾀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며 민족 자긍심을 높였다. ●일제에 맞선 군자면 김천복 지사 징역 1년형 선고로 옥고 해마다 시흥시 군자초등학교에서는 3·1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지금의 군자초등학교와 군자파출소 인근은 시흥의 3·1운동이 활발히 이뤄진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3월 29일 군자면 장곡리와 월곡리, 31일 군자면 선부리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4월 4일 거모리에 수백명이 운집하면서 확대됐다. 특히, 군자면 죽율리(현 죽율동)에 거주했던 김천복(1897~1968) 지사는 당시 군자면사무소 앞에서 만세 시위에 합류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를 이유로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군자면 구장터(서안산나들목 부근, 석곡산대장)도 기억해야 할 역사적 현장이다. 장현리에 거주하던 스무 살 서당 생도 권희(1900~1955) 지사는 그해 4월 7일 구장터에서의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비밀통고를 작성했다. 장수산(1900~1981) 지사가 이를 마을 구장의 집 앞에 두고 주민들이 서로 돌려보게 하는 등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계획했지만,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모의는 무산됐다. 가슴에 품은 태극기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숭고한 그들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내년까지 장수산·윤동욱·권희·윤병소 지사 기념비 건립 시흥시는 시흥의 3·1운동을 돌아보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3·1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1995년 8월 15일 군자초등학교에 ‘독립운동 유적지’ 비를 건립한 이래로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시흥시 삼일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워 시흥지역 만세운동 참여자들의 고귀한 독립정신을 알리고 있다. 그날의 함성을 주도했던 독립유공자의 고귀한 희생도 기린다. 시는 지난해 7월 17일 시흥시 죽율동에 김천복 독립지사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장수산·윤동욱·권희·윤병소 지사의 기념비가 역사적 현장에 들어설 예정이다. 기념비에는 무력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내던졌던 항일 열사 다섯 분의 애국정신을 기록한다. 2012년 윤동욱 지사 묘에서 처음 시작된 시흥시 3·1절 기념행사는 2013년부터 군자초등학교에서 진행 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원년인 올해는 3·1절 기념식과 더불어 주민이 일상 속에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시흥지역 3·1운동 소책자 발간, 유적지 탐방, 독립유공자 힐링캠프 등 3·1정신을 이어가는 행사가 준비돼 있다. 시흥지역 3·1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찾는 여정은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흥시는 독립유공자 유족들로 구성된 광복회 단체를 설립해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정기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또 시흥지역 3·1운동 기초조사를 통해 3·1운동 관련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힘쓴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성별과 나이·계급을 뛰어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쳤던 100년 전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시흥을 만든 초석이 됐다”며 “시흥시는 역사를 기억하고 독립지사를 예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이종걸, 45년 지기 황교안에 “메멘토모리”로 축하 인사

    이종걸, 45년 지기 황교안에 “메멘토모리”로 축하 인사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28일 45년 지기 자유한국당 황교안 신임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친구로서 ‘메멘토 모리’(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란 말을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종걸 의원은 황교안 대표와 경기고등학교 72회(1976년 졸업) 동창이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축하인사를 하기엔 한국정치가 너무나 녹녹치 않다. 친구로서 그에게 ‘메멘토 모리’란 말을 해주고 싶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로, 로마시대에 승전한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겸손해지라고 누군가 뒤를 따라가면서 외쳤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은 또 2009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정치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글을 추천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해보고, 검사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황 대표가 정치를 순진하게 바라보거나 호락호락 여기고 도전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황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글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통찰력이 담겨 있다”며 일독을 권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썼던 ‘정치하지 마라’ 전문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나 명성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을 위하여 쏟아야 하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 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 이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거짓말의 수렁 -거짓말을 좋아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유권자나 참모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거짓말, 근거 없는 보도, 풍문에 상처를 입고 진실을 밝혀 보겠다고 발버둥치기도 하지만, 곧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보면 거짓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차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거짓말에 익숙해집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소재로 우스개꺼리를 만들어 웃고 즐기고 돈벌이까지 합니다. 단지 그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저 농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분노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양심도 인격도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돈의 수렁 -돈정치는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에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조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후원회 제도가 많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지역을 관리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는 한참 부족합니다. 원외 정치인의 사정은 참담하다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가끔 뭘 먹고 사느냐? 세금은 얼마나 냈느냐? 이런 질문이라도 받는 날이면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원외 정치인은 둘러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를 할 방법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에게는 연금제도도 없습니다. 결국 노후는 대책이 없습니다. 원외 정치인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돈이 많은 부자이거나 샘이 깊은 후원자라도 있는 복이 많은 정치인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해당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어디 많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만 정치를 하는 나라 정치가 과연 잘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언젠가 정치와 돈에 관한 이야기도 글로 써볼 작정입니다.- 사생활의 노출 -정치인은 사생활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인 일도 정치인에게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의 자유도 없습니다. 연극을 보러 가는 일도, 골프를 치는 일도 세상 분위기와 언론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농담도 함부로 하면 사고가 납니다. 실수가 아니라도 실수가 됩니다. 저격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인으로서 검증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사생활보호의 한계가 너무 모호하여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이전투구의 저주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민주주의 정치 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당을 서로 나누어 싸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치는 무너집니다. 정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독재 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이 전쟁이었습니다.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워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 직장생활도 못하게 했습니다. 야당은 정치는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도 힘들게 했습니다. 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인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었습니다. 패자라도 정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싸움입니다. 민주주의라고 싸움이 항상 규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 지기 마련입니다. 욕설, 몸싸움, 거짓말, 중상모략, 뒷조사 이런 악습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 지고 국민들로 부터는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과 가난 -좀 막연한 짐작입니다. 이미 그런 처지에 빠진 정치인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돈을 좀 모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통의 정치인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형편이나 관계도 과거와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생각과 정서도 달라지기도 하고, 손을 자주 벌려서 귀찮은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치인들은 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저의 말대로 정치할 사람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정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정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90년 3당 합당 이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자고 권유를 하고 다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을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옥 같은 터널을 겨우 빠져 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어떤 정치인이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변명으로서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도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별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 상한다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해답이 아니라 문제제기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저의 이 이야기는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좋은 조건에 있지 않은 보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해당 없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日, 세계 평화주의 흐름 오판해 동아시아를 수렁에 몰아”

    “日, 세계 평화주의 흐름 오판해 동아시아를 수렁에 몰아”

    진보적 언론으로서도 이례적 보도 평가 아베 개헌 추진·군비 확장에 경종 의미 “조선 전역서 비폭력으로 日군경에 맞서 독립선언서는 아시아의 미래도 통찰” 마이니치신문도 “日에 저항한 독립운동”‘3·1운동에 대한 일본 군경의 탄압은 극도로 가혹했다. 강덕상(재일사학자)의 ‘현대사 자료 조선2편’에 따르면 ‘3분간 사격에 51명 즉사’라는 내용이 군 보고서에 적히기도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27일 1개면을 할애해 100년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3·1운동의 역사와 의미, 당시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 등을 다룬 특집기사를 실었다. 아사히는 ‘기로의 1919년…동아시아 100년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1919년 1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딛고 세계에는 평화주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 흐름을 잘못 파악해 오판을 함으로써 동아시아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아사히가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고는 해도 일본 언론으로서는 이례적인 보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막대한 방위비를 지출하며 군비 확장을 꾀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던 100년 전을 상기시킴으로써 아베 정권에 반성과 각성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 민중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빼앗긴 채 헌병의 감시 아래 침묵을 강요당했다”며 “이에 1919년 3월 1일 서울 중심부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됐고 수십만명이 거리에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전했다. 이어 “독립운동은 조선 전역으로 확산됐고 민중들은 비폭력 정신을 내걸고 일본 군경에 맞섰다”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 그해 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희생자는 사망 7509명, 부상 1만 5961명에 달했다고 박은식 선생의 ‘조선독립운동지혈사’를 인용해 전했다. 아사히는 독립선언서를 일본 정치인과 학자에게 보낸 독립운동가 임규(1867~1948) 선생에 대해서도 다뤘다. 임규 선생은 3·1운동 당일 밤 자신이 일본어로 번역한 독립선언서를 들고 도쿄역에 도착한 뒤 이를 200통 복사해 당시 총리 등 정치인, 학자, 언론사, 대학 등에 보냈다. 아사히는 독립선언서 내용 중 ‘2000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니다. 4억 중국인들이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동양 전체를 함께 망하는 비극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는 대목을 들며 “독립선언서는 아시아의 미래도 통찰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는 “그러나 조선의 이런 외침이 일본 사회에 퍼지지는 못했다”며 ‘역사평론’이라는 잡지가 독립선언서를 게재해 일본의 독자들에게 알린 것은 패전 후인 1948년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사히는 동아시아를 전화에 빠뜨린 일본의 책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1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에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고양되고 ‘부전(不戰)조약에 의해 전쟁을 불법화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러한 신조류를 잘못 읽었고 결국 그것이 동아시아를 불행에 빠뜨렸다”고 썼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날 문답형 기사를 통해 “한국의 3·1운동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저항해 전국적으로 퍼진 독립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3·1운동 100년] 평화행진 첫날부터 발포한 日, 만행·사망자 조직적 은폐·축소

    [3·1운동 100년] 평화행진 첫날부터 발포한 日, 만행·사망자 조직적 은폐·축소

    “서울에서 발생한 일이다. 어린 학생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자 일본 헌병이 칼로 그의 오른손을 잘랐다. 오른손이 잘린 학생은 다시 왼손에 국기를 들고 더욱 높은 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헌병은 그의 왼손마저 잘랐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한 서양인이 사진을 찍어 남기려다가 헌병에게 끌려갔다.”(1919년 4월 12일자 중국 국민공보) “체포된 한인들은 밤낮으로 잔인한 고문을 당한다고 한다. 한인 가운데 죽은 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서울에서 50마일(약 80㎞) 이내 무수한 촌락이 불탔다. 시체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1919년 5월 19일자 국민공보)●시위 확산 3월 말부터 조준 발포… 희생 급증 일제는 3·1운동에 나선 조선인들을 총칼로 탄압했다. 그들의 눈에 태극기를 든 시위대는 식민지 체제를 전복하고자 선량한 조선인들을 선동하는 폭도에 불과했다. 만행과 학살이 일상이 됐다. 총을 든 일본군과 경찰, 시위 주동자에게 다가가 몸에 색분필을 발라두는 조선인 밀정까지 뒤섞이면서 만세운동은 시작과 동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곤 했다. “파리채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단호한 처치만 필요할 뿐”이라던 한 일본 경찰의 외침 속에 3·1운동을 대하는 일제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26일 국사편찬위원회의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3·1운동 참가 인원 가운데 사망자는 최대 934명으로 집계된다. 일제가 파악한 사망자 553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내놓은 7483명, 박은식(1859~1925)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분석한 7509명에는 크게 못 미친다. 이와 관련해 국편 측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망자수가 최소 934명이라는 것”이라며 “자료의 오류 수정과 추가 발굴 등의 연구가 진행되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자수에서도 알 수 있듯 일제의 만행은 도를 넘었다. 3·1운동 첫날인 1919년 3월 1일부터 발포가 이뤄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 최근 연구에서 드러났다. 만세운동이 격화된 3월 말~4월 초 사이에 사망자가 집중됐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실제로 3월 1일 평양에서 주민 5000여명이 참가한 시위를 기록한 외국인 자료에는 “총상 환자 5명이 병원에서 숨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같은 날 평북 선천에서도 시위 중 체포된 11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들은 가혹한 태형으로 중상을 입고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시위 첫날부터 무자비한 폭행이 가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이계형 국민대 특임교수는 “아무래도 서울 시내는 외국인이나 선교사 등 보는 눈이 많아서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도 발포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라면서도 “(더는 서양인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 3월 말부터 사람을 직접 조준 발포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국편이 파악한 3·1운동 관련 사망자 934명 가운데 47.6%(445명)가 3월 28일~4월 6일 사이에 몰려 있다. 서울에서는 사망 추정자가 3명에 불과하지만 외국인이 거의 없던 평안도에서는 423명이나 됐다.●日軍 4만여명 준계엄체제… 2만 6713명 검거 3·1운동이 대부분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진행됐음에도 시간이 갈수록 사상자수가 늘어난 것은 시위가 사그러들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총독부가 강경 대응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수시로 총독 명의의 유고(諭告·담화문)를 발표했다. 3월 7일에는 “허튼소리로 인심을 흔드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4월 10일에는 “지방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중앙정부에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으니 화를 입지 말도록 하라”고 최후통첩성 발언을 내놨다. 일본 군경의 총기 사용을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일본측 발포가 없는 날은 7~8일에 그쳤다. 이양희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1919년 3월 11일쯤 일본 육군성 차관이 만세운동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것을 두고 조선총독을 질책했다”면서 “무력 탄압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내각의 명령에 의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3·1운동 기간 중 최악의 사태로 꼽히는 ‘제암리 학살 사건’도 일본의 강경 진압이 최고조에 달한 1919년 4월 15일 발생했다. 보병 79연대 중위 아리타 도시오는 “화성 발안장 만세운동의 주동자를 검거한다”며 제암리 마을에 들이닥쳤다.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뒤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 밖으로 내놓으며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일본 군경은 아이마저 찔러죽였다. 일제는 만행의 증거를 없애고자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으로 제암리에서만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근 지역 참살까지 포함하면 사망자가 30명을 넘는다. 고주리에서는 일가족 6명의 목을 쳐서 죽인 뒤 시신을 토막 내 짚가리 위에 올려놓았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조선군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우쓰노미야 다로가 쓴 일기에는 “일본군이 약 30명을 가두고 학살과 방화를 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처분하면 간단하지만 이렇게 되면 학살을 자인하는 꼴이 돼 제국의 입장에서 불이익이 크다. 이 때문에 간부회의에서 조선인들이 저항해 살육한 것으로 하고 학살은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혀 있다. 일본 스스로도 정당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제 여론이 나빠지자 사건을 일으킨 아리타 중위는 재판에 회부됐지만 4개월 뒤 무죄로 풀려났다. 4월 초 일본에서 조선으로 추가 파견된 ‘임시조선파견보병대대’도 조선 민중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3·1운동 확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병력 부족으로 본 일본 내각과 조선총독부의 이해가 맞물린 것으로, 6개 대대 4200명 규모였다. 3·1운동 발발 당시 일본군 2개 사단이 상주해 3만~4만명가량 군이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1919년 4월 일본군은 최대 4만 5000명까지 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임시파견대대는 1905년에 개발된 근접 전투용 무기인 ‘38년식보병총’과 기관총,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양희 연구원은 “임시파견대대는 시장에서 무장을 한 채 훈련을 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려는 조선인들에게 겁을 주는 행동이 잦았다”며 “일제가 3·1운동에 대해 준계엄 체제로 대응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내부 자료를 보면 3·1운동 시작부터 4월 30일까지 약 두 달간 검거된 조선인은 2만 6713명이었다. ●3·1운동 약화 유화책 펼쳐… 단속·감시 체계화 일제는 3·1운동을 약화시키고자 무력 진압 외에도 의료선전 활동, 시장 개시(開市) 독려 등 유화책을 썼다. 당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가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부상당한 이들을 무료로 진료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 서울시내 유력 상인 40여명을 설득해 상점을 다시 열게 하는 등 조선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뒤로는 경비인력을 늘리면서 3·1운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이어갔다. 3·1운동 이전 1만 3230명 수준이었던 경찰 수는 1921년 2만명을 넘어섰다. 일제의 단속과 감시가 더욱 체계화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이게 바로 신”..‘아이템’ 김강우, 절대 악이 된 비결은?

    “이게 바로 신”..‘아이템’ 김강우, 절대 악이 된 비결은?

    MBC 월화미니시리즈 ‘아이템’(극본 정이도, 연출 김성욱)의 조세황 역을 맡은 김강우가 매 회 짜릿함을 선사하며 안방극장을 접수했다. 기존의 소시오패스 역할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한 김강우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1. “나는 평범하지 않다” 그가 지닌 특별함! 극 중 조세황(김강우 분)은 “난 특별한 거 맞아요. 내가 바로 대한민국이니까요”, “나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등의 대사를 통해 타인과 나를 구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개미굴에 물을 붓던 순간을 회상하며 “아 이게 바로 신이구나, 난 이 세상이 짜릿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자신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이상을 밝힌 바 있다. 그도 그럴 법이 조세황은 국내 굴지 기업의 회장이자 세계에서 인정받는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자신의 기업을 넘어 검찰 고위 관계자들과 언론까지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이처럼 돈, 명예, 권력을 모두 가진 그의 이유 있는 자신감은 그를 더욱 두려운 존재로 느끼게 하고 있다. #2. ‘아이템’ 프로 현질러, 막강한 힘! 조세황의 힘은 재력이나 권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는 더 이상 성취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모든 걸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초능력을 지닌 아이템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가 현재 지니고 있는 아이템은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사진첩,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향수, 미래를 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이다. 조세황은 이를 이용하여 강다인(신린아 분)과 이정현(고대수 분)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 강곤(주지훈 분)을 옥죌 음모를 설계하고 있다. 또한, 위기 상황에서는 향수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최면에 빠뜨리는 등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힘을 이용해 더욱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3. 無감정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 자신의 악행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적인 부분은 조세황을 더욱 오싹하게 보여준다. 조세황은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비서의 따귀를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하는 것은 기본,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지금처럼 똥 오줌 가리며 사세요”라며 인정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애원하는 운전기사를 해고하는 순간에는 어딘가 모르게 처연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조세황은 사이코패스와는 달리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다인의 눈앞에서 가족사진을 깼던 것처럼 그들의 약점에 파고들어 더욱 잔인하게 괴롭힌다. 특히, 이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잔인해질지 예측할 수 없어 더욱 큰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조세황이라는 인물의 거대한 아우라를 온몸으로 뿜어내며 시청자들에게도 그 무게감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 김강우. 본격적으로 주지훈(강곤 역)과의 대립을 시작한 그가 앞으로 어떤 활약으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이템’은 매주 월, 화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어린이 책] “만세 부른다고 달라졌나” 그러던 12살 꼬맹이가…

    [어린이 책] “만세 부른다고 달라졌나” 그러던 12살 꼬맹이가…

    그날 아이가 있었다/윤숙희 글/홍하나 그림/아이앤북/188쪽/9500원 이봉창,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의 위인전을 읽으면 성인이 된 그들의 행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가혹했던 시절에 평범한 십대 꼬맹이는 뭘 했을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뿐더러 알려 주는 책 또한 많지 않았다.책 ‘그날 아이가 있었다’는 12살 아이 재경이의 시점에서 일제강점기를 그렸다. 인쇄소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은 재경이는 어른들이 밤샘 작업도 불사하며 부쩍 바빠진 것을 봤다. “넌 알 거 없다”며 한사코 무슨 일인지를 말하기 꺼리는 어른들. 그러나 어린 재경의 눈에 인쇄된 종이 사이에서 ‘선언서’라는 글자와 함께 빼곡히 적힌 이름들이 들어왔다. 3·1독립선언서였다. 100년 전의 어린아이는 3·1운동을 겪으며 급속히 달라졌다. “만세 부른다고 달라진 거 없잖아” 하던 재경은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으면 그러는지를 알게 됐다. 아이에게 나라의 독립이란 나라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 터다. 의병을 일으키려다가 탄로 나서 도망친 아버지가 숨어서 백지 편지를 보내 와야 하는 사연, 이웃 마을 고등학생인 창환이형이 만세를 외치다 일본 순사의 총탄에 맞아 죽는 것처럼 가슴에 사무치는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재경은 아이의 몸으로 용감한 길을 떠난다. 달 밝은 밤에 보따리 하나 들고 먼 길을 가는 재경의 등을 토닥여 주고 싶은 동화다. 그런 시절을 건너 오늘이 있다는 것이 슬프고 또 고맙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명퇴 거부로 ‘면벽 근무’ 직장 내 괴롭힘 입니다

    기존과 관련없는 업무로 인사 발령 나이·성별·학벌 이유로 따돌림 포함 A씨는 회사의 명예퇴직 권유를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A씨에게 사물함만 바라보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이른바 ‘면벽 근무’다. 하루종일 사물함만 바라보며 일하는 A씨에게 내려진 처분은 가혹했다. 1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무조건 상급자에게 보고가 올라갔으며 쉬는 시간 이외에는 흡연이나 개인 전화 사용도 모두 금지됐다. 잠시 개인 노트북을 사용한 A씨는 보안규정 위반으로 감봉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가 맡던 사무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재관리 업무로 인사를 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7월 16일부터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됨에 따라 각 사업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21일 발표했다. 매뉴얼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예시를 비롯해 예방·대응 조치들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괴롭힘이 발생한 장소가 꼭 사업장일 필요는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 발생한 사용자나 근로자의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 괴롭힘 가해자가 반드시 직장 상사일 필요도 없다. 회사 내에서 나이·학벌·성별·출신지역 등의 이유로 특정 근로자를 따돌리는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부분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는지 여부다. 고용부는 어떤 행위가 사회 통념에 비춰 봤을 때 적정 수준을 넘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한다고 봤다. 고용부가 든 예시로는 개인적인 심부름을 반복적으로 시킬 때, 업무 지시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폭언과 욕설을 동반할 때 등이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7월 16일까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발생 이후 조치 등을 반영해야 한다. 반영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세종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시민·환경단체 출신까지… ‘내 사람’ 챙기려다 화 자초한 환경부

    시민·환경단체 출신까지… ‘내 사람’ 챙기려다 화 자초한 환경부

    “김은경 전 장관, ‘외풍’에 전혀 대응 못해” 임원까지 낙하산 내려오면서 내부 반발 환경공단 임원 7명 중 5명 외부서 임명 일부인사 자격 논란·특정인 지원설 돌기도 “보고받은 적 없다→장관이 감독권 행사” 청와대 안이한 리스트 대응도 논란 키워환경부 산하기관의 임원 동향을 분석한 ‘환경부 리스트’에 청와대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관여 의혹이 제기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관가에서는 환경부의 과유불급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하기관 임원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은 직무에 가깝다고 한다.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임원들을 교체하는 것은 관행이었고, 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교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 이후 환경부만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인사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적폐 청산을 내세운 현 정부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 정권의 행태와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수위가 강해졌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환경산업계 관계자는 “블랙리스트가 ‘비정상의 정상화’ 수단이 됐다면 칭찬받을 일이지만 자신들의 ‘자리 챙기기’ 자료로 활용돼 논란이 커지게 됐다”며 “현 정부 들어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출신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마저 생겼다”고 토로했다. 장차관에 시민단체 출신이 임명되면서 예견됐던 ‘인재’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김 전 장관이 환경부 공무원에겐 가혹했지만 ‘외풍’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아 내·외부에서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환경부 산하기관에서는 기관장뿐 아니라 임원 자리에도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면서 노조와 내부 반발이 거셌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 퇴직자는 산하기관 취업이 배제됐다. 규모가 큰 한국환경공단은 이사장을 포함한 임원 7명 중 5명이 외부에서 임명됐다. 정준영 이사장은 시민단체, 유성찬 감사는 정치권 인사로 분류된다. 조강희 기후대기본부장은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내부 인사로는 최익훈 물환경본부장이 유일하다. 환경부 리스트에 ‘반발’로 표기된 자유한국당 출신 감사와 경영기획본부장 후임에는 노무현재단과 환경부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이 각각 임명됐다. 또 환경단체 출신인 서주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임명 때에는 자격 논란이 제기됐고, 국립생태원장 공모에서도 특정인 지원설이 나돌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예전엔 공단 이사장만 ‘윗선’에서 관심을 가졌는데 지금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며 “전문성은 차치하고 조용히 임기를 마치기만을 바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안이한 대응도 논란을 키웠다. 지난해 12월 환경부 리스트가 불거지자 “누구도 자료를 보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김 전 장관이 출국 금지된 19일에는 “산하 공공기관 관리와 감독 차원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한 ‘체크리스트’”라면서 “장관은 산하기관 인사와 업무 등 경영 전체에 대한 포괄적 관리·감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설명과 달리 김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 수리에 대한 질문에 “임명 권한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산하기관 임원 공모엔 김 전 장관과 친분이 있는 시민단체 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인사 검증에서 탈락했다. 또 다른 공기업 임원 공모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점수 미달로 탈락하자 공모 자체가 무산됐다. 되레 임원추천위원회에 들어간 환경부 공무원들이 눈 밖에 나 고초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단독] 장애아 학대 발뺌하던 유치원 교사… 증거 나오자 “합의하자”

    [단독] 장애아 학대 발뺌하던 유치원 교사… 증거 나오자 “합의하자”

    언어장애 6세 아동에 벌세우고 가혹행위멍자국 수상히 여긴 부모 CCTV 요구에 “부딪힌 것·모른다” 석연찮은 변명 일관 보다 못한 동료 실무사가 증거 촬영 ‘덜미’ 제보 후 전근 압박… 피해 아동 불안 우려 서울 강남의 한 공립유치원에서 특수 교사가 장애 아동을 학대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학대 사실을 모른 척하던 교사는 증거가 드러나자 때늦은 합의 시도를 하는 등 아이에게 두 번 상처를 줬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소속 교사 A씨에 대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최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과 유치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A교사는 지난해 이 유치원에 다니는 B(6)군을 수차례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언어 장애가 있는 B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A교사는 B군에게 무거운 책을 머리 위로 들고 서 있도록 벌세우거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시키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 또한 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다녀오는 사이 1시간 동안 따로 혼내기도 했다. B군 가족들은 아이 몸에 난 상처로 미뤄볼 때 폭행도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교사의 학대 행위는 B군 가족들이 아이 얼굴과 발바닥 등에서 멍과 손톱자국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또 B군이 유치원 가길 꺼리고 A교사만 보면 놀란 듯 부모 뒤로 숨으려고 한 점도 수상히 여겼다. 가족들은 원감과 A교사에게 폐쇄회로(CC)TV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CCTV가 없다”고 둘러댔다. 아이 상처에 대해서는 “아이가 책상에 부딪힌 것 같다”, “모른다”고 답했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경륜 있는 특수반 실무사 C씨의 용기로 드러났다. 그는 A교사의 대응을 보다 못해 증거 사진과 녹취 등을 경찰과 학교에 제공했다. 실무사는 “둘만 두고 나갔다 온 사이 아이 얼굴에 멍과 상처가 생겨 학대 사실을 알았다”면서 “A교사가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며 상식 밖 행동을 하는 것을 자주 봤다”고 전했다. B군 가족들은 “학대 교사가 형사처벌 위기에 처하자 그제서야 접근해 무마하려 했다”며 분노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A교사는 집까지 찾아와 “합의하자”고 말했고, 꽃바구니를 보내는가 하면 아파트 현관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도 했다. B군은 교사가 보일 때마다 옷장에 숨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가족은 A교사에 대해 접근금지 신청을 했다. B군 가족들은 결정적 증거를 제공한 C씨가 최근 전근 대상자로 정해지자 근심이 더 깊어졌다. 상처받은 아이를 보듬어 줄 어른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 아이가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C씨의 전근은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교육지원청 측은 “실무사 인력이 부족한 특수아동 과밀 학교나 중증장애 아동이 있는 학교로 C씨를 배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씨는 “정년까지 1년 남았다”면서 “계속 B군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B군은 교육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심리·신체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안정시켜 주던 대상이 사라지면 아이는 유치원에 다시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면서 “친근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제때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단독]장애아 학대 발뺌하던 유치원 교사…증거 나오자 “합의하자”

    [단독]장애아 학대 발뺌하던 유치원 교사…증거 나오자 “합의하자”

    아동학대 혐의 병설유치원 교사 검찰로언어장애 6세 아동에 벌세우고 가혹행위멍자국 수상히 여긴 부모 CCTV 요구에“모른다”로 일관하다 석연찮은 변명 늘어놔보다 못한 동료 실무사가 증거 촬영 ‘덜미’제보 후 전근 내정…피해 아동 불안 우려서울 강남의 한 공립유치원에서 특수 교사가 장애 아동을 학대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학대 사실을 모른 척하던 교사는 증거가 드러나자 때늦은 합의 시도를 하는 등 아이에게 두 번 상처를 줬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소속 교사 A씨에 대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최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과 유치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A교사는 지난해 이 유치원에 다니는 B(6)군을 수차례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언어장애가 있는 B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A교사는 B군에게 무거운 책을 머리 위로 들고 서 있도록 벌세우거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 또한 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다녀오는 사이 1시간 동안 따로 혼내기도 했다. B군 가족들은 아이 몸에 난 상처로 미뤄볼 때 폭행도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교사의 학대행위는 B군 가족들이 아이 얼굴과 발바닥 등에서 멍과 손톱자국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또 B군이 유치원 가길 꺼리고 A교사만 보면 놀란 듯 부모 뒤로 숨으려고 한 점도 수상히 여겼다. 가족들은 원감과 A교사에 폐쇄회로(CC)TV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CCTV가 없다”고 둘러댔다. 아이 상처에 대해서는 “코는 코피가 나 지혈해주다가 그랬다”, “아이가 책상에 부딪힌 것 같다”, “모른다”고 답했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경륜 있는 특수반 실무사 C씨의 용기로 드러났다. 그는 A교사의 대응을 보다 못해 증거 사진과 녹취 등을 경찰과 학교에 제공했다. 실무사는 “둘만 두고 나갔다 온 사이 아이 얼굴에 멍과 상처가 생겨 학대 사실을 알았다”면서 “A교사가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며 상식 밖 행동을 하는 것을 자주 봤다”고 전했다. B군 가족들은 “학대 교사가 형사처벌 위기에 처하자 그제서야 접근해 무마하려 했다”며 분노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A교사는 집까지 찾아와 “합의하자”고 말했고, 꽃바구니를 보내는가 하면 아파트 현관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도 했다. B군은 교사가 보일 때마다 옷장에 숨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가족은 A교사에 대해 접근금지 신청을 했다. B군 가족들은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던 C씨가 최근 전근 대상자로 정해지자 근심이 더 깊어졌다. 상처받은 아이를 보듬어 줄 어른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 아이가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C씨의 전근은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교육지원청 측은 “실무사 인력이 부족한 특수아동 과밀 학교나 중증장애 아동이 있는 학교로 C씨를 배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씨는 “정년까지 1년 남았다”면서 “계속 B군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B군은 교육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심리·신체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안정시켜 주던 대상이 사라지면 아이는 유치원에 다시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면서 “친근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제때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日유명 사진가 ‘성폭행’ 폭로…추악한 과거에도 뻔뻔한 모습으로

    日유명 사진가 ‘성폭행’ 폭로…추악한 과거에도 뻔뻔한 모습으로

    체르노빌 원전사고, 레바논 전쟁, 팔레스타인 난민 등 취재로 유명한 일본의 70대 사진 저널리스트가 그동안 여성들에게 저질러 온 성폭력, 성추행 등 추악한 과거가 피해자 증언들을 통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 사진가는 목숨을 걸고 위험한 현장에 접근해 감춰진 진실을 전달하며 자유와 평화를 호소함으로써 많은 사진 저널리스트의 우상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당사자는 사진잡지 ‘데이스 재팬’(DAYS JAPAN)의 전 발행인 히로카와 류이치(75). 도쿄신문은 18일 “모두 5명의 여성이 히로카와로부터 성폭력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히로카와는 지난해 12월 주간문춘의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자신이 창간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데이스 재팬에서 해임됐다. 약 10년 전 데이스 재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성(당시 20대)도 이번에 증언에 동참했다. 이 여성은 “히로카와가 나를 크게 질책한 날 택시에 함께 탈 것을 요구했고 결국 호텔에 끌려갔다”고 밝혔다. 이 여성은 “성관계를 요구받고 두려웠지만, 데이스 재팬에서 쫓겨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말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히로카와는 “성관계까지 이른 기억은 없다”고 부인했다.한 전직 여기자는 “15년 전 처음 만난 히로카와가 식사를 마치자 갑자기 성관계를 맺자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10여년 전 자원봉사를 했던 여성은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만 누드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2014년 겨울에 채용됐던 미야타 지카(31)는 자신의 실명을 밝히고 증언을 했다. 그는 “입사를 하면서부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미야타는 히로카와로부터 “너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말에 정신적 압박이 컸다고 했다. 특히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마우스를 쥔 내 손에 히로카와가 자기 손을 포개 얹는 순간 공포에 질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여성들은 또 히로카와가 사소한 일에도 쉽게 격노하며 직원들에게 노발대발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여성은 “히로카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보도 관련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히로카와는 “여성들과의 성관계는 모두 합의하에 이뤄졌다”, “무조건 사죄를 하기에 앞서 기억을 되살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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