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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야만의 역사” 홍준표 “방위시절 생각나”…‘D.P.’ 본 반응(종합)

    이재명 “야만의 역사” 홍준표 “방위시절 생각나”…‘D.P.’ 본 반응(종합)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D.P.’(군무이탈 체포조)가 대권주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군무이탈 체포조가 탈영병을 쫓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2014~2015년 제작된 웹툰이 원작으로, 당시의 병영 내 구타 등 각종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제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6일 페이스북에 ‘D.P.’를 시청한 소감을 올리면서 “가혹행위로 기강을 유지해야 하는 군을 강군이라 부를 수 없다”며 “청년을 절망시키는 야만의 역사부터 끝내는 것이 MZ정책”이라고 밝혔다. 이 지사는 “저는 산재로 군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수십년 전 공장에서 매일같이 겪었던 일과 다르지 않다”며 “야만의 역사다. 정신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묵인돼 온 적폐 중의 적폐”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전기드릴로 군대 내 가혹행위가 이뤄졌다는 뉴스에서 볼 수 있듯 현실은 늘 상상을 상회한다”며 “모욕과 불의에 굴종해야 하는 군대, 군복 입은 시민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을 반드시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D.P.’를 보면서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할 때가 됐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이날 홍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픽션이지만 군내 가혹행위가 아직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저도 군부대에서 방위소집을 1년 6개월 경험해 봤다. 고참들의 가혹행위는 그때도 참 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군부대 출퇴근하면서 방위라고 군인 대접도 못 받고, 매일 고참들한테 두들겨 맞고, 하루종일 사역하고, 군기교육대 들어온 사병들과 봉체조 하기가 일쑤였다”며 “나라를 지키려고 간 군대에서 젊은이들이 그런 일을 당한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그래서 젊은이들을 징병의 멍에에서 풀어줄 때가 이젠 됐다고 봐 모병제와 지원병제로 전환을 검토한다고 공약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방부는 ‘D.P.’에 나오는 군내 가혹행위 등 부조리 묘사에 대해 이날 처음으로 공식 반응을 내놨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금까지 국방부와 각 군에서는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현재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 탈영병 잡는 ‘D.P.’ 인기 끌수록 불편한 軍

    탈영병 잡는 ‘D.P.’ 인기 끌수록 불편한 軍

    전국 D.P. 100여명 실제 모습은 두발 자율·2인 1조·수갑 사용도 실화 ‘한때 인기’..탈영병 줄면서 보직도 감소 육군은 병사, 해·공군은 수사관이 담당 탈영병을 잡는 D.P.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Deserter Pursuit·탈영병 체포조)가 화제를 모으면서 군 안팎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D.P는 현역 군인들도 있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외부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보직인데, 원작 웹툰과 극본을 쓴 김보통 작가가 D.P. 출신이어서 리얼리티를 잘 살렸다는 평이다.6일 군에 따르면, 전국에는 육군 군사경찰(옛 헌병) 소속 100여명의 D.P. 병사가 있다. 사단급 이상 부대에는 대부분 D.P.가 있다는 얘기다. 육군에 비해 병사 숫자가 적은 해군과 공군, 해병대는 D.P.를 따로 두지 않고 탈영 사건이 발생하면 군 수사관이 나선다. D.P.는 민간인처럼 머리를 기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외출도 많이 할 수 있어 과거에는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보직으로 꼽혔으나, 요즘은 부대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D.P. 인기도 다소 시들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탈영 건수가 감소한 것도 D.P. 병사가 줄어드는 데 한몫 했다. 최근 5년간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군무이탈 입건 현황을 보면, 2016년 219건, 2017년 166건, 2018년 138건, 2019년 115건, 2020년 91건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군 관계자는 “최근 3년간 검거율이 100%”라고 전했다. D.P.는 군사경찰 부대장이 병사들 가운데서 인성과 체력조건 등을 고려해 선발한다는 게 군의 설명이지만, 활동비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아 대체로 금전적 여유가 있는 병사들이 지원했다는 D.P. 출신의 전언도 있다.드라마에서럼 실제 D.P.들도 2인 1조로 움직인다. 이는 체포 과정에서 탈영병이 도주하거나 저항 등 우발 상황에 대처하고, 탐문과 진술 과정에서 피의자가 번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갑이나 경찰봉, 전자충격기 등 장구도 군사경찰직무법에 근거해 사용할 수 있다. 부대를 이탈한 병사들이 주로 PC방에 있다가 검거되는 경우가 많아 D.P.들도 종종 게임을 하면서 탈영병의 접속 아이디를 추적하기도 하는데, 드라마에서처럼 전화 한 통으로 부대 내 컴퓨터에서 탈영병의 개인정보나 위치 추적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정식으로 군사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한다. D.P. 출신 작가...군 협조 없이도 리얼리티 극대화 군 당국의 협조 없이 제작된 군 소재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관련 문의가 빗발치자 군은 더욱 난감한 모습이다. 부대 촬영지로 알려진 경기 부천시 작동 군부대 이전부지는 40여년간 육군 부대가 있었던 곳이지만, 이미 2019년 9월 부천시가 국방부로부터 부지를 매입해 문화예술 창작 공간 및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추진중인 곳으로 군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연기자들의 군복 착용을 두고 현역 군인이 아니면 군복을 입지 못하도록 한 현행법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군인이 아닌 자는 군복을 착용하거나 군용 장구를 사용 또는 휴대해서는 안 되지만,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경우는 예외”라고 말했다. ‘D.P.’가 넷플릭스 국내 시청률 1위에 이어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아지면서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할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나온다. ‘D.P.’의 시대적 배경이 된 2014년은 선임 병사들의 폭행으로 사망한 ‘윤일병 사건’과 군대 내 따돌림을 당하던 병사가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한 뒤 탈영한 ‘임병장 사건’이 있었던 해다. 드라마에서는 코를 골면서 자는 병사에게 방독면을 씌어 물을 들이붓거나 성추행을 일삼는 등의 가혹행위가 수시로 등장한다. 남성 시청자들은 대체로 “실제 저 정도는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군 경험 사례들을 쏟아 내며 공감을 나타냈다.“(괴롭힘 당할 때) 왜 보고만 있었느냐”고 묻는 드라마의 메시지는 단지 군대 내 부조리를 들추어내는 것 이상으로, 사회와 구성원이 침묵하면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 부대변인은 “국방부와 각 군에서는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 ‘D.P’ 정주행한 이재명 “청년 ‘뭐라도 해야지’ 하기 전에 국가가 하겠다”

    ‘D.P’ 정주행한 이재명 “청년 ‘뭐라도 해야지’ 하기 전에 국가가 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군대 내 가혹 행위에 대해 “야만의 역사부터 끝내는 것이 MZ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종·충북 경선 일정을 마치고 넷플릭스 드라마인 ‘D.P.’를 단숨에 모두 시청했다고 밝혔다. ‘D.P.’는 군무 이탈 체포조가 다양한 사연을 가진 탈영병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로 군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가혹 행위와 부조리를 다뤘다. 이 지사는 “저는 산재로 군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공장에서 매일 같이 겪었던 일과 다르지 않다”며 “차이가 있다면 저의 경험은 40년 전이고 드라마는 불과 몇 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야만의 역사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정신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묵인돼 왔던 적폐 중의 적폐”라며 “최근 전기드릴로 군대 내 가혹 행위가 이뤄졌다는 뉴스에서 볼 수 있듯 현실은 늘 상상을 상회한다. 악습은 그렇게 소리 없이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뭐라도 해야지”라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언급하며 “한마디 한마디가 저릿하다. 가장 절박한 순간 함께 하지 못했던 ‘공범’으로서 죄스러움도 삼킨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이어 “청년들을 절망시키는 야만의 역사부터 끝내는 것이 MZ 정책”이라며 “가혹 행위로 기강을 유지해야 하는 군을 강군이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이 자신을 파괴하며 ‘뭐라도 해야지’ 마음먹기 전에 국가가 하겠다”며 “모욕과 불의에 굴종해야 하는 군대, 군복 입은 시민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을 반드시 바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청년들께 미안하다”면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 “’태양의 후예’와 다르네”…넷플 ‘D.P’ 해외 리뷰 모아보니

    “’태양의 후예’와 다르네”…넷플 ‘D.P’ 해외 리뷰 모아보니

    정해인, 구교환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가 공감과 재미를 선사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해외 시청자들의 다양한 리뷰도 쏟아지고 있다. 누적 조회 수 1000만 뷰 이상을 기록한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은 주인공 안준호(정해인)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헌병의 세계와 뛰어난 고증, 배우들의 열연이 호평받으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부상했다.해외 유튜버의 리뷰 채널을 찾은 한 네티즌은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친구는 매일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한국은 군대에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떤 미친 사람이 올지 모른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사람을 때릴 것”이라고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에피소드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시즌2로 돌아오길 바란다”, “2021년 최고의 넷플릭스 시리즈”, “벌써 3번이나 다시 봤다”며 호평을 남겼다. 이밖에도 “끔찍하다. 극은 매우 사실적이며 눈을 번쩍 뜨게 한다.”라는 댓글에는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났지만, 한국 군대는 이 드라마가 ‘너무 과장됐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또 다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D.P’에 대한 리뷰가 쏟아졌다. 레딧의 유저들은 “괴롭힘이 사람들과 학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자랑한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 군대의) 현실이 이 같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현재 한국 군인의) 한 달 월급이 500달러(58만 원)라고? 집에 가는 것(퇴근)도 아니고 동물 우리 같은 곳에 살면서 500달러를 받느니 탈출하겠다. 이 드라마가 소설이길 바란다”고 적었다. 군대 또는 군인이 등장했던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비교하는 댓글도 있었다. 레딧의 유저들은 “송중기가 나왔던 그 드라마(태양의 후예)와 너무 다르다. ‘사랑의 불시착’(현빈, 손예진 주연)과 비교해도 너무 다르다”, “‘사랑의 불시착’이 매우 스윗한 드라마였다면 이 드라마는 팝콘도 튀길 수 있을만큼 짰다”는 리뷰를 남겼다. 또 “가혹행위는 미군에도 많이 있다. 폭행과 성폭행, 언어폭력, 밥이나 물을 먹이지 않거나 햄버거를 토할 때까지 먹이거나. 간부들은 이걸 방조했다. 이 드라마를 보니 내 군생활이 생각나 너무 괴로웠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리뷰도 있었다.‘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은 작품의 해외 인기에 대해 “군대는 사회 축소판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 거기서 생기는 여러가지 갈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있는 것이 사회이며, 특히 징병제 국가 시청자들은 복잡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 군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가 잇따르자, 한국의 한 언론은 익명의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런 상황에서 극한의 가혹 행위 묘사가 판치는 드라마를 외국에서도 주목하고 있으니 난감하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2014년 일선 부대에서 있었던 부조리라고 보기에는 좀 심하다. 전반적인 느낌으로는 2000년대 중반 정도 일을 극화한 것 같다”는 내용의 기사를 전했다.
  • 후임병에 유사성행위 강요한 공군 병사 2명 ‘강등’ 전역

    후임병에 유사성행위 강요한 공군 병사 2명 ‘강등’ 전역

    후임병 유사성행위·구타, 女간부 성희롱 발언주요부위에 전기드릴 갖다대는 가혹 행위도A씨 특수폭행 혐의 부인 중…B씨 집행유예가해자·피해자 분리도 제대로 안 이뤄진 듯후임병 등에게 수개월에 걸쳐 유사성행위와 폭행 등 가혹 행위를 한 공군 병사 2명이 올해 상병으로 강등돼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군사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뒤에도 제대하기 전까지 부대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조교로 복무하다가 각각 지난 3월과 8월 전역한 20대 A씨와 B씨가 지난 2월과 6월 상병으로 각각 강등된 것으로 1일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수개월간 폭행, 유사성행위 강요 등의 방식으로 후임병을 지속해서 괴롭히다가 후임병의 신고로 같은 해 7월 이후 군사경찰의 수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조교 근무 당시 허리를 다친 훈련병에게 유사성행위를 강요한 의혹을 받고 있다. B씨는 이 훈련병을 구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A·B씨는 병사들 앞에서 여성 간부들에 대한 성희롱성 발언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가해자들이 지난해 8월 다른 대대로 전출됐으나 같은 공군교육사령부 소속이어서 서로 자주 마주치는 등 자신들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다고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공군은 A씨는 군검찰이 기소한 이후 전역함에 따라 민간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B씨는 군사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A씨는 모욕, 특수폭행,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고, B씨는 전역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씨는 특수폭행 혐의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조교 근무 시절 후임병의 신체 주요 부위에 전기드릴을 갖다 대는 엽기적인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A씨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공군 관계자는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따라 형사 처리 및 징계처분(강등)했다”면서 “현재 가해자들은 전역한 상태로, 이 가운데 한 명은 민간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내연남 딸·식솔 상습 폭행,인분까지 먹인 50대 여성 징역 5년

    내연남 딸·식솔 상습 폭행,인분까지 먹인 50대 여성 징역 5년

    내연남의 딸과 식솔 등에게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인분까지 먹인 50대 여성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창원지법 형사4부(장유진 부장판사)는 내연남의 딸 등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상습특수상해)로 재판에 넘겨진 A(55·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작년 2월 12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자택에서 당시 20살이던 내연남의 딸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머리,등,팔뚝을 쇠막대로 30∼50여차례 때렸다. A씨는 2018년 9월부터 작년 5월까지 14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내연남의 딸을 폭행했다. 또 지난해 5월 12일에는 자신이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과외교습,가사노동 등을 맡던 B(33·여)씨의 등,엉덩이 등을 쇠막대로 20여 차례 이상 가격했다. 당시 A씨는 이웃으로부터 ‘세탁기 수평이 맞지 않아서 작동되지 않는다’는 항의 전화를 받자 이에 화가 나 때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A씨는 2015년 2월부터 작년 5월까지 5회에 걸쳐 B씨에게 폭행을 가했다. 이밖에 인분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피해자들에게 먹이고,피해자들끼리도 가혹행위를 하게 시키는 등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혐의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A씨는 피해자들에게 부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심리를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폭행 및 가혹행위를 했고 강도와 시간,계속성,반복성의 측면에서 볼 때 폭행의 정도도 중하다”고 밝혔다.
  • “상습 폭행에 인분 먹이기까지...” 가혹행위 저지른 50대 징역 5년

    “상습 폭행에 인분 먹이기까지...” 가혹행위 저지른 50대 징역 5년

    내연남의 딸 등 피해자들을 상습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를 저지른 여성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21일 창원지법 형사4부(장유진 부장판사)는 내연남의 딸 등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상습특수상해)로 재판에 넘겨진 A(55·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12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자택에서 당시 20살이던 내연남의 딸에게 ‘뒤돌아’라고 명령한 뒤 머리, 등, 팔뚝을 쇠막대로 30∼50여차례 때렸다. 이같은 방식으로 A씨는 지난 2018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14회에 걸쳐 내연남의 딸을 상습 폭행했다. 지난해 5월 12일에는 자신이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과외교습, 가사노동 등을 맡던 B(33·여)씨의 등, 엉덩이 등을 쇠막대로 20여 차례 이상 가격했다. 당시 A씨는 이웃으로부터 ‘세탁기 수평이 맞지 않아서 작동되지 않는다’는 항의 전화를 받고 이에 화가 나 B씨를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5회에 걸쳐 B씨에게 폭행을 가했다. 이밖에 인분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피해자들에게 먹이고, 피해자들끼리도 가혹행위를 하게 시키는 등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사실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A씨는 피해자들에게 부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심리를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폭행 및 가혹행위를 했고 강도와 시간, 계속성, 반복성의 측면에서 볼 때 폭행의 정도도 중하다”고 판시했다.
  •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수용시설 ‘뺑뺑이’ 끝엔 형제원…탈출해도 못 지운 폭행 그림자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양재영(54)씨는 지난 날을 생각하면 억울함이 사무친다. 보육시설을 전전한 7년, 형제복제원에서 지낸 5년, 교도소에 수감된 9년…. 그의 어린 시절엔 가족의 울타리도 배움의 기회도 없었다. 양씨는 6살 때 시장에서 발견됐다. 이름 석 자도 누가 지어줬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은 그를 곧장 대구 희망원으로 보냈다. 이후 시설을 돌고 돈 끝에 그가 닿은 곳은 형제원이었다. 형제원에선 매일 맞았지만, ‘까바리 광대’ 기합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기합을 받다 다쳐서 의무실에 가면 상처에 소독약을 적신 신문지를 박아넣는 ‘심 박기’ 처치를 했다. 더럽다고 때리면서도 씻을 물을 주지 않아,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 손발을 씻어야 했다. 탈출 계획을 짠 적도 있지만 시도조차 못 했다. 굶주린 친구가 빵 한 덩어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계획을 밀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혹행위는 더 심해졌다. “대운동장 끝 낭떠러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용자들도 여럿 있었다. 13살에 입소한 소년은 18살이 돼서야 그곳을 벗어났다. 공장으로 팔아넘겨진 뒤 가까스로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오랜 형제원 생활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양씨의 방황은 계속됐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다 교도소에서 20대를 보냈다. 신체적 후유증도 짙게 남았다. 폭행에 고름을 달고 살았던 귀는 지금도 잘 들리지 않는다. 쇠 파이프로 맞아 함몰된 두개골 탓인지 때때로 길을 걷다가도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 기억상실 증상을 겪는다. 양씨는 법원의 판결로 고통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다린다. 아래는 양씨의 진술서 전문. 진술서는 양씨가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다.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양재영 진술내용: 저는 1973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미아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5~6살로 추정하는데 제 이름 양재영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장통에서 울고 있던 저는 근처 비산 파출소로 보내졌고 경찰은 저의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곧바로 대구 화원에 있는 희망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희망원에는 유아 시설이 없어 부산 마리아 수녀원으로 보내졌고 여덟 살쯤 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후 부산 소년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열 살쯤 되어서는 서울아동보호소로 보내졌고 79년에 다시 대구 희망원으로 보내졌다가 80년에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뒤 85년 4월경, 서울 고척동 라이터 제조공장인 S물산으로 보내지기 전까지 5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형제복지원은 돈을 받고 사람을 공장에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곪은 상처엔 ‘심 박기’…오줌 받아 손발 씻어 형제복지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먹는 것도 부실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맞아야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다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운동장에서 원상폭격(머리박기)은 너무 흔한 일상이어서 머리를 박은 채 졸기도 했습니다. 원상폭격을 심하게 시킬 때는 얼굴을 땅바닥에 박게 했습니다. 얼굴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발로 차여서 얼굴이 다 긁히기도 했습니다. ‘까바리 광대’라는 기합은 케첩 깡통을 땅에 세워두고 다리를 잡아 머리를 아래로 가게 해서 손을 놓아버립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히로시마’는 2층 침대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받는 벌인데, 히로시마를 타다가 발등에 심한 상처가 났고 바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서 덧났습니다. 상처가 곪아서 발이 열 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형제원에서는 죽을 만큼 맞아야 외부 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곪은 상처로 병원은 꿈도 못 꾸지요. 신문을 가늘고 길게 말아서 소독약을 묻힌 뒤 퉁퉁 곪은 상처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심 박는다’고 합니다. 의무실이란 곳에서 그런 처치를 해줍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내무사열을 하는데 청소가 안 되어 있거나 손톱, 발톱에 때가 있으면 기합을 받습니다. 씻어야 하는데 물을 언제나 쓸 수는 없었고 따뜻한 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저는 발보다 작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는데 고무신에 덮이지 못하는 발등은 늘 봉긋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그때 작은 고무신 때문에 발이 자라지 못한 것인지 지금 제 발은 몸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탈출 계획은 ‘빵 하나’에 수포로…죽어나간 사람도 여럿 같은 방에 있던 친구 열 명과 함께 탈출을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빵 하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를 고발해 버려서 중대장실과 원장실에 끌려가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고자질하면 같은 방에서 지내던 친구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줄 알면서도 빵 하나에 친구를 넘길 만큼 우리는 굶주려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해보지도 못했지만 도모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실에 끌려갔을 때 정신봉이라고 하는 빨갛게 칠해진 나무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그러다 정신봉이 부러지자 쇠 파이프로 맞았는데 그때 머리를 맞는 바람에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입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귀도 너무 많이 맞아서 피가 엄청 났고 형제원에 있는 내내 고름으로 고생했고 지금도 한쪽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늘 귀에 고름을 달고 살아서 ‘귀꼴레’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중대장실에서 맞고 다음은 원장실에 끌려가 목검으로 맞았습니다. 박인근(형제복지원 원장) 목검에 맞으면 기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 원장실에 끌려가서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탈출을 도모했던 우리 열 명은 그 뒤 몇 달간 밧줄에 엮어서 화장실 갈 때도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제식훈련을 받을 때도 기합을 받을 때도 다 같이 해야만 했습니다. 대운동장 끝은 낭떠러지였는데 그리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형제원은 찬송가 교육, 군가교육을 심하게 시켰는데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육헌장 등을 외우는 일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만약 외우지 못하면 기합 받고 무지하게 두드려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졸다가 맞은 적도 많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안 맞은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실수하면 120명이 전부 빠따를 맞습니다. 크리스마스 특사 때 원장이 줄 서 있는 원생들을 숫자로 끊어서 다른 수용시설로 보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형제원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할 줄 알았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습니다. 뛰어내린 사람의 머리가 땅에 부딪혀 두개골이 깨어지는 소리는 끔찍할 만큼 컸습니다. 죽는 사람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악대 선생한테 맞아 의무과로 갔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장 팔려갔다 ‘탈출’했지만…한 때 조폭 생활로 교도소 수감 85년 공장으로 팔려 갔을 때 저는 더 갇혀 있고 싶지 않아 공장을 뛰쳐나왔습니다. 공장 탈의실에 걸려 있던 작업복 주머니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훔쳐 나와 무조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으니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거라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면회를 왔었습니다. 다른 말은 없고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꿈결에 어찌나 울었는지 같은 방 사람들이 자고있는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 꿈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등 텔레비전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습니다. 그러나 끝내 부모님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힘든 시절을 보내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1살에서 30살, 참 아까운 시절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수용시설을 전전하며 크는 동안 윤리, 도덕, 올바른 가치관, 이런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랑보다는 폭력을 늘 당하며 살다 보니 사람들과 갈등을 대화로 푸는 것도 어렵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뒤 갈 데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폭행 후유증으로 병든 몸…“합리적 판결로 보상받길” 그렇게 저는 반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무속인이 저에게 엉뚱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참 고맙게도 2010년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더 이상 교도소에 가지 않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지금은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고있는 집이 잘못되어 몇 개월 뒤에는 이사를 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써주는 데가 별로 없습니다. 물류센터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기초수급자였는데 체격이 건장하다며 기초수급자에서도 잘렸습니다. 형제원에서 맞아 고름으로 고생한 귀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어 기압이 낮아지는 높은 작업 현장에서 일하기는 힘듭니다. 두개골 함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어지는 일이 자주 있어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기억이 끊어집니다.순간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오면 저는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물어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형제원에서 기합 받을 때 허리뼈를 맞아서 다친 뒤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 수가 없으니 몸을 쓰는 거친 일은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면 억울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부디 합리적인 판결로 저의 아픈 기억, 배우지 못한 시간을 만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한동훈 독직폭행’ 정진웅, 1심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

    ‘한동훈 독직폭행’ 정진웅, 1심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웅(52·29기) 울산지검 차장검사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 차장검사에게 징역 4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징역형에 대해선 1년 동안 집행을 유예했다. 정 차장검사는 지난해 7월 29일 법무연수원에서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그의 몸을 눌러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한 검사장은 당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다.정 차장검사 “증거인멸 시도해 불가피한 접촉, 폭행 의도 없었다” 재판부는 “압수수색영장 집행에서 피압수자의 신체 구속은 엄격해야한다”며 “피고인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유형력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폭행에 이르렀다”고 질타했다. 이어 “수사·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만 주장해 행동과 결과에 대해 반성하지도 않고 피해 회복의 노력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정 차장검사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처음부터 유형력을 행사할 의도는 없던 점,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하며 처벌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정 차장검사는 한 검사장이 증거인멸을 시도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신체적 접촉이 있었을 뿐, 폭행의 의도나 이유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재판부는 “폭행의 개념은 신체에 대한 물리력 행사”라며 “형법의 독직폭행 조항이 폭행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중심을 잃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나, 휴대폰을 빼앗으려는 의사뿐만 아니라 유형력 행사를 위한 최소한 미필적 고의의 폭행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증거인멸을 막으려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만약 피해자가 증거인멸 행위를 했다면 수사기관이 당연히 제지할 수 있지만, SNS에 접속해 삭제하는 등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만한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 검사장이 정 차장검사의 폭행으로 받은 병원 치료 내용과 기간을 살폈을 때 상해를 입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해당 부분은 무죄로 판결했다. 독직폭행은 검사나 경찰 등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해 피의자 등을 폭행하거나 가혹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단순 폭행보다 죄질이 무거워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 ‘고 최숙현 가혹행위’ 감독·주장에 항소심도 중형 선고

    ‘고 최숙현 가혹행위’ 감독·주장에 항소심도 중형 선고

    고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과 주장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구고법 형사1-1부(손병원 부장판사)는 9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42) 감독 등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김 감독에게 징역 7년, 주장 장윤정(32) 선수에게 징역 4년, 김도환(26) 선수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김 감독에게 4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수강과 5년 동안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을, 장 선수에게는 4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김 김 선수에게 40시간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 수강을 각각 명령했다. 재판부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가혹행위를 하고 각 범행으로 피해자들은 타박상 등 상해를 입었고, 고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 선택을 한 바 있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폭력 범행이 트라이애슬론 특성에 따라 필요한 체중 감량 등을 위한 훈육과 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그 범위를 일탈해 범행에 이른 측면도 있어 보이는 점,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해 그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팀닥터로 불리며 최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여성 선수들을 유사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년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운동처방사 안주현씨는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7년 6월에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됐다. 항소심 선고 직후 최 선수 유족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은 대구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주시장은 최 선수 유족과 피해 선수들에게 사과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계 폭력 등 가혹행위를 고발한 선수들에 대한 구제와 보호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 “아들 구타 사망 숨기기 급급한 軍, 국가에 책임 없다는 법원에 절망”

    “아들 구타 사망 숨기기 급급한 軍, 국가에 책임 없다는 법원에 절망”

    입대 120일만에 모진 구타로 사망軍 “만두 먹다가 질식사” 은폐 시도군 인권단체 의료기록 입수해 폭로 군사법원 1심서 ‘상해치사’만 유죄2심서 ‘살인죄’ 적용 대법원서 확정법원 4년만에 주범 배상책임만 인정“승주 죽음 헛되지 않게 계속 싸울 것”“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각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 중 원고와 피고 대한민국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가 부담한다.” 2013년 12월 9일 밝게 웃으며 군대에 간 스무살 막내아들 승주가 4개월 만인 이듬해 4월 6일 부모님과 다시 마주했다. 군 병원을 떠돌다 민간병원 병상에 누운 승주의 몸은 이미 뻣뻣하게 굳고 차갑게 식어 있었다. 군은 ‘윤승주 일병이 만두를 먹다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군의 말을 믿었다. 선임병들의 잔혹한 구타가 있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 전 3개월 동안 그저 ‘황망한 죽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는 사이 ‘윤 일병 사건’으로 분노했던 국민들은 기억 속에서 승주를 잊어 갔고, 사법부는 군 당국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음에도 지난 7월 22일 한 청년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 직후 “사법부는 죽었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라며 울먹였던 고(故)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66)씨를 지난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면회 오지 말라더니 이틀 뒤 주검으로 7년이라는 세월에 가슴이 제법 단단해졌는지 안씨는 질문을 조심스러워하는 기자에게 생각보다 담담하게 아들의 참혹했던 사건을 설명했다. 하지만 ‘윤승주 일병이 아닌 막내아들 승주는 어떤 아들이었나’라는 질문에 안씨의 말문이 막혔다. 깊은 한숨과 함께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던 안씨의 두 눈이 순식간에 붉게 충혈됐다. 어머니의 기억을 함께 더듬고자 나란히 앉은 둘째 딸이자 윤 일병의 누나 주영(31)씨의 마스크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옆에 승주 누나도 있지만, 집안의 막내면서도 어쩌면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였어요. 간혹 제가 딸들과 싸우고 서운해하거나 힘들어하면 늘 승주가 중간에서 양쪽을 다독여 주며 풀어 줬죠. 대학에서는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자취를 하고 과대표를 할 정도로 교우관계도 좋았던 그런 아이였어요.” 다정했던 아들이 선임병들의 모진 구타와 가혹행위로 의식을 잃고 세상과의 희미한 마지막 끈을 쥐고 있을 때, 그를 편하게 보내 준 이들도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2014년 4월 6일 밤 병원 후송 당시 이미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던 승주는 누나가 휴대전화로 들려주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자 마지막으로 짧고 미세한 심장 박동을 보인 뒤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승주는 입대 120일 만에 고인이 됐다. “4월 6일 그날, 남편한테 전화가 왔어요. 승주가 의식을 잃어서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그런데 저는 그때도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은 안 했어요. 원래 그 전날, 5일에 승주 입대 후 첫 면회가 예정됐다가 취소됐는데 그래서 저는 이렇게 병원에서라도 볼 수 있게 해 주려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죠.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어머니 안씨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승주가 선임병들에게 끌려다니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기 전인 2014년 4월 5일로 되돌리고 싶다. 식목일이자 토요일이었던 그날은 원래 윤 일병과 가족들의 첫 면회가 예정돼 있었다. 윤 일병은 첫 면회를 앞두고 ‘밖에서 먹던 과자가 먹고 싶다’며 들뜬 채로 가족을 기다렸다. 아들과의 통화에서 함께 생활하는 내무반 선임들의 수까지 확인한 안씨 역시 아들은 물론 선임들과 함께 먹을 음식과 과자까지 모두 마련하고 부대로 출발하는 날만을 손꼽았다. 그런데 면회 일은 다가오는데 아들에게 도통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면회 하루 전날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안씨는 부대에서 안내받은 비상연락망으로 전화했다. 전화는 부대 간부의 방으로 연결됐고, 어찌 된 영문인지 윤 일병이 그 간부와 함께 있어 바로 전화를 넘겨받았다. “엄마 왜 여기로 전화했어. 여기로 전화하면 안 돼. 안 돼 엄마… 내일은 안 돼. 내일 훈련이 잡혀서 산으로 가서 여기 없어. 4월은 안 돼. 오지 마.” 윤 일병은 자세한 설명 없이 그저 ‘훈련’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첫 면회가 무산되고 다음날, 이번에는 부대에서 윤 일병의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윤 일병이 만두를 먹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군 병원으로 후송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안씨는 당장 차를 몰아 부대에서 알려 준 연천의료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부대는 ‘윤 일병이 국군양주병원으로 이송 중이니 양주병원으로 오라’더니 이어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이송 중이다’라고 이송 상황을 알려 왔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승주는 이미 의식도 없고, 숨도 쉬지 않고 차갑게 굳어 있었어요. 이미 죽은 상태로 도착한 거죠. ”●몸 곳곳에 피멍에도 군은 ‘딴소리’ 병원에 함께 온 윤 일병의 두 누나는 동생의 몸 곳곳에 선명한 피멍과 긁힌 상처 등을 보며 “구타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사복 차림의 헌병대 관계자는 별 대꾸 없이 윤 일병의 사진만 찍어 갔다. 육군은 윤 일병의 사망이 선고된 7일 오후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사인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발생한 뇌손상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도 그대로 보고됐으나 정작 윤 일병 부검은 군의 공식 발표 이후인 8일 오후에 진행됐다. 윤 일병 사건은 당시 군의 발표 이후 잊혀져 갔다. 하지만 약 3개월 뒤 비영리 민간단체 ‘군인권센터’가 윤 일병의 의료기록과 군 내 사고 처리 기록 등을 입수하면서 군이 은폐하려 했던 내용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언론의 취재가 다시 집중되자 군도 그제야 진상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기도폐쇄성 질식사’라던 윤 일병의 사인은 ‘과다 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사’로 뒤집혔다. 자대 배치 직후부터 지속된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윤 일병의 사인이 명확함에도 군검찰은 애초 선임병들에게 살인죄가 아닌 처벌 수위가 훨씬 가벼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이들을 군사재판에 넘겼다가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재판 중 살인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그러나 1심을 맡은 육군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선임병들에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상해치사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그나마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선임병들의 살인의 고의를 인정해 살인죄를 적용했고, 이후 대법원은 2016년 8월 주범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가해자 처벌에만 3년, 국가 소송 4년 가해자 처벌에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윤 일병 가족들의 싸움은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됐다. 가족은 건강히 군에 보낸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책임은 물론 사건 초기 군의 은폐와 부실 대응의 책임을 물으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 또 4년, 자식을 잃은 가족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지난한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안씨는 “어차피 군이라는 조직은 군사경찰도 군검찰도, 군사재판부도 ‘한통속’이라 민간 법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부장 정철민)는 지난달 주범의 손해배상 책임만을 인정하는 ‘유족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안씨는 이를 두고 ‘사실상 전부 패소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의 잘못과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군사재판의 부당함을 민간 재판에 호소한 것인데 ‘군사재판부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니 국가의 책임은 없다’는 게 민간 법원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제 인생은 이미 2014년 4월에 끝났어요.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너무 아프고 무섭게 떠난 승주를 위해… 나중에 승주를 다시 만났을 때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 주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아들의 사건이 있기 전 이른바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었다던 안씨는 현재 군인권센터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비슷한 처지의 다른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 극단 선택 광주 고교생 괴롭힌 동급생 11명, 기소의견 검찰 송치

    극단 선택 광주 고교생 괴롭힌 동급생 11명, 기소의견 검찰 송치

    생을 마감한 고등학생의 학교폭력 가해자로 경찰에 입건된 동급생 11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5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등 혐의로 구속한 A군 등 광주 한 고교 재학생 2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나머지 9명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A군 등은 지난 6월 29일 오전 광산구 어등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급우 B군을 장기간 때리고 괴롭힌 혐의를 받는다. 기절할 때까지 B군 목을 조르는 등 동영상에 기록된 가혹행위가 주요 혐의로 적용됐다. B군은 숨지기 직전 작성한 편지에 자신이 평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을 성적 고민,가족과 친구 등에게 전하는 말과 함께 담았다.
  • 군부 총탄에 스러지다…미얀마 20대 여성의 ‘시신 없는 장례식’

    군부 총탄에 스러지다…미얀마 20대 여성의 ‘시신 없는 장례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림픽이지만 그나마 각국 선수들 활약으로 전 세계가 팬데믹 속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 6개월이 지난 미얀마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는 군부 총에 쓰러진 스물다섯 청년의 ‘시신 없는 장례식’이 거행됐다. 미얀마나우에 따르면 이날 만달레이의 한 공동묘역에서 뚜 뚜 진(25)의 장례가 치러졌다. 가족친지 등 10여 명은 전통에 따라 승려를 모시고 고인을 애도했다. 인근 군용차량 감시 탓에 장례는 단 몇 분 만에 서둘러 마무리했다.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른 것도 서러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유족은 이날 묘지에 시신 대신 유품만 묻고 왔다. 군부가 시신을 돌려주지 않아서이다. 고인이 된 뚜 뚜 진은 지난달 27일 만달레이 미야따웅 시위 선봉에서 민주화를 외치다 미얀마군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같은 날 미얀마 경찰도 그녀가 미얀마군 소속 공병대원에게 사살됐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유족은 시신조차 거둘 수가 없었다. 미얀마군은 그녀의 시신을 이미 화장했으며 유해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유족은 원통한 마음을 담아 유품만으로 장례를 치렀다. “오토바이 기름값이랑 전화 충전비라도 가져가렴”이라며 관 속으로 노잣돈을 던지는 집안 어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스물다섯, 평범했던 직장인 여성 뚜 뚜 진의 삶은 군부 쿠데타와 함께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화장품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주말이면 자선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그녀는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아예 직장을 관두고 시위에 뛰어들었다.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군부 쿠데타가 평범했던 직장인을 독재정권 저항에 헌신적인 운동가로 변모시켰다고 말한다. 한 지인은 “시위 활동을 말리려고 하면 내게 화를 내곤 했다”고 설명했다. 뚜 뚜 진은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 심지어 의사처럼 공부 많이 한 사람들도 목숨 내놓고 민주화운동을 한다. 내가 잃을 게 뭐가 있겠느냐’라며 반독재 시위에 전념했다고 한다. 가족 역시 그녀를 막지는 못했다. 유족은 “더는 시위 현장에 못 내보낸다고 했더니 거짓말까지 하고 나갔다. 어머니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면서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고 둘러대고 시위 현장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6월에는 승려들이 이끄는 미야따웅 지역 시위대에 합류했다. 시위대 탄압을 위해 군부가 가족 친지까지 위협하자 집을 나가 친구 집에 머물며 시위를 계속했다. 하지만 군부 탄압은 갈수록 무자비해졌고, 지난달 27일 뚜 뚜 진은 결국 군부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기 5일 전 마지막으로 집을 찾았을 때도 ‘걱정하지 말라’며 가족·친지를 안심시켰던 그녀다. 시위 현장에 같이 있었던 활동가는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시위대 선봉에서 깃발을 휘날리며 구호를 외치던 뚜 뚜 진이 쓰러졌다. 하지만 총알이 날아오는 시위 현장에서 우리도 목숨 걸고 달리느라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시신조차 되찾지 못했다”고 애통해했다. 그러면서 “목숨 바쳐 싸운 동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열심히 독재와 맞서 싸워야 한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미얀마군은 뚜 뚜 진의 시신과 함께 시위자 4명을 연행해갔다. 그중에는 총상자도 포함돼 있으나, 억류자들 상태나 소재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6개월 동안 시민 940명이 군경 유혈진압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5444명이 구금됐고, 1964명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휴먼라이츠 워치(HRW)에 따르면 어린이도 75명이나 희생됐다. 구금된 시민들에 대해서는 고문 등 가혹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됐으며, 성폭행 사례도 보고됐다.
  • 미얀마 쿠데타 6개월… 시민 940명이 군경에 살해당했다

    미얀마 쿠데타 6개월… 시민 940명이 군경에 살해당했다

    미얀마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6개월 만에 시민 940명이 목숨을 잃었다. 1일 현지 인권단체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지난 2월 이후 반군부 시위대를 향한 군경의 유혈 진압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이같이 집계됐다. 구금된 사람은 5444명이며, 1964명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그럼에도 현지 곳곳에선 여전히 군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날에도 2대 도시인 만달레이에서 대학생들이 반군부 시위를 열었는데, 이들은 오토바이를 탄 채 빨간색과 녹색 깃발을 흔들면서 군부와의 어떤 대화도 거부하겠다고 저항 의지를 다졌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성명을 내고 폭력적인 시위 진압과 저항 세력 체포는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유엔 및 각국 정부,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등이 공조해 미얀마 군부에 무기 금수와 자금줄 차단 등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HRW에 따르면 군경에 의해 사망한 이들 중 75명이 어린이다. 또 구금된 시민들은 고문 등 가혹행위를 겪고, 성폭행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래드 애덤스 HRW 아시아 담당 국장은 “군부의 폭력행위는 범죄나 다름없으며 관련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군부는 여전히 피해자의 수는 과장됐고, 쿠데타는 국가 안보 위협에 대처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이날 방영된 TV 연설에서 미얀마는 현재 안정이 필요하고, 저항 세력은 테러리스트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어 그는 향후 총선을 다시 치르겠다고 강조하며 “아세안이 사태 해결을 위해 지명한 특사와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이르면 2일 군부와 저항세력 간의 대화를 중재하고 폭력사태를 종식하기 위한 특사 지명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 군인권센터 “軍경찰, 공군 가혹행위 가해자는 조사 않고 피해자만 압박”

    군인권센터 “軍경찰, 공군 가혹행위 가해자는 조사 않고 피해자만 압박”

    군인권센터(센터)가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가스창고에 가두고 불을 붙이는 등 집단폭행·성추행·감금 등의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과 관련해 군사경찰이 아직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인권센터는 30일 “가해자들이 변호인을 선임하고 조사를 받겠다며 진술을 거부하고 있어 제18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은 신고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가해자들에 대한 소환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며 “가해자들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피해자를 압박하려 드는 정황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센터는 “가해자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군사경찰은 엉뚱하게도 피해자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으라고 소환을 통보했다가 연기했다”며 “가해자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거짓말탐지기 사용 운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 방문을 희망하고 있어 피해자의 부모가 29일 오후에 부대에 긴급한 병가 사용을 건의했으나 소속 부대는 절차상의 이유를 핑계로 휴가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부대가 피해자를 방치하고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적극 배려하는 와중에 피해자만 병들어가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센터는 “공군 측의 ‘철저한 수사, 엄중 조치’는 말 뿐이고 사건 초기 양상이 ‘20비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과 흡사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사안이 심각하고 가해자가 여럿이며 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어 진술을 맞출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긴급체포 등 즉각적인 신병 확보가 당연히 고려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센터는 6명의 선임병이 후임병을 지속적으로 괴롭혔지만 군 당국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센터에 따르면 후임병 A씨는 부대에 전입해 온 지난 4월 선임병 B씨와 C씨로부터 식단표를 외우라고 강요받았으며, 외우지 못하면 폭언을 당했다. 또 B씨와 다른 선임병 D씨는 지난 6월 일과 시간이 끝난 뒤 A씨를 부대 용접가스 보관창고로 데려가 감금했다. 또 상자 종이에 불을 붙여 창고 안으로 던진 뒤 “자물쇠를 따고 나와 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선임병들은 성추행도 일삼았다. B씨는 A씨를 구타하는 과정에서 중요 부위를 딱밤으로 때리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전투화에 손소독제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거나,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피해자의 다리를 지지는 등 지난 7월까지 4개월 동안 괴롭혀 온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가 군사경찰대대 수사관에게 직접 신고 내용을 제출했지만 부대는 가해자를 타 부대로 파견하는 대신 생활관만 분리시키는 등 피해자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가스 창고에 가두고 불붙인 공군 선임병들

    가스 창고에 가두고 불붙인 공군 선임병들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상대로 집단 가혹행위를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군 당국이 진상파악에 나섰다. 군인권센터는 29일 18비 소속 병사 A씨가 6명의 선임병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지만 군 당국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센터에 따르면 A씨는 부대에 전입해 온 지난 4월 선임병 B씨와 C씨로부터 식단표를 외우라고 강요받았으며, 외우지 못하면 폭언을 당했다. 또 B씨와 다른 선임병 D씨는 지난 6월 일과 시간이 끝난 뒤 A씨를 부대 용접가스 보관창고로 데려가 감금했다. 또 상자 종이에 불을 붙여 창고 안으로 던진 뒤 “자물쇠를 따고 나와 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선임병들은 성추행도 일삼았다. B씨는 A씨를 구타하는 과정에서 중요 부위를 딱밤으로 때리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전투화에 손소독제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거나,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피해자의 다리를 지지는 등 지난 7월까지 4개월 동안 괴롭혀 온 것으로 드러났다. 참다못한 피해자가 군사경찰대대 수사관에게 직접 신고 내용을 제출했지만 부대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부대는 확인된 가해자들을 생활관만 분리시킨 뒤 타 부대로 파견조차 보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법과 규정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 “후임 가스창고에 가둔 뒤 불 붙여”…공군부대서 엽기적 가혹행위

    “후임 가스창고에 가둔 뒤 불 붙여”…공군부대서 엽기적 가혹행위

    공군 부대에서 선임병들이 후임병 1명을 상대로 수개월간 집단폭행과 성추행, 감금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보 내용에는 선임병들은 피해자를 가스 보관창고에 가둔 뒤 불을 붙였다는 주장도 담겼다. 군인권센터는 29일 “제보를 통해 강릉에 있는 공군 제18전투비행단 공병대대 생활관·영내 등에서 병사 간 집단폭행, 가혹행위, 성추행 피해가 발생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가혹행위는 피해자가 올해 초 비행단에 신병으로 전입해 온 뒤 약 4개월간 지속됐다. 소속 부대는 동기생활관 대신 선임병 4명과 피해자를 같은 생활관을 쓰도록 편성했다. 주요 피해 내용은 ▲폭언·욕설 ▲구타·집단폭행 ▲감금 ▲위협 ▲성추행 ▲전투화에 알코올 소독제 뿌려 불붙이기 ▲공공장소에서 춤 강요 ▲헤어드라이어로 다리 지지기 등이다. 지난 6월 4일 오후 4시 30분쯤 선임병 A·C 일병은 일과시간 종료 뒤 피해자를 부대 용접가스 보관창고로 끌고 가 가두고선 “잘못한 게 많아 갇히는 거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며 밖에서 자물쇠로 잠갔다고 센터는 전했다. A·C 일병이 박스 조각에 불을 붙여 창고 안에 집어 던졌고, 피해자가 가까스로 자물쇠를 열고 나오자 “다음에도 잘못하면 또 가둔다”며 협박했다고 한다. D 병장은 지난 6월 5일 피해자를 자신의 침대 옆에 나란히 눕게 한 뒤 스마트폰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시켜 줄까”라고 계속 질문했고, 피해자가 괜찮다고 답변했음에도 “야, 얘가 내 여친 소개해 달라고 한다. 미친 거 아니냐”고 다른 병사들에게 소리친 뒤 주먹으로 구타했다고 센터는 전했다. 이어 A·C 일병이 구타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A 일병은 피해자의 두 다리를 잡고 생활관 바닥에서 이리저리 끌고 다녔으며, 피해자의 신체 부위를 딱밤으로 때리는 등 성추행을 가했다고 센터는 주장했다. 이들은 다른 병사들에게도 폭행에 가담하게 했고 이날 폭행이 1시간가량 이어졌다고 센터는 전했다. 그 밖에 ▲피해자를 토목장비창고에 가둔 뒤 탈출하라고 강요하고, ▲수시로 사무실에서 피해자의 전투화에 알코올 손소독제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으며, ▲피해자가 생활관을 잘못 출입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다리에 헤어드라이어를 몇 분 동안 갖다 대고선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도 공개됐다. B·C 일병은 피해자에게 식단표를 외우라고 강요한 뒤 메뉴를 틀리게 말하면 “그것도 못 외우냐. ×빡×가리 ××”라고 폭언과 욕설을 일삼기도 한 것으로 센터는 전했다. 참다 못한 피해자가 군사경찰대대 수사관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공병대대는 생활관에서만 피해자-가해자를 분리하고 가해자를 타 부대로 파견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고 뒤에도 피해자는 식당 등 편의시설에서 가해자들을 계속 마주쳐야 했다고 센터 측은 전했다. 센터는 “피해자가 겪은 가혹행위와 병영 부조리는 이전에 다른 피해 병사에 의해 신고된 바 있으나 결국 가해자들이 가벼운 징계만 받고 다시 본래 생활관으로 복귀하는 일이 반복해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해자 6명 중 선임병 1명(병장)은 이미 인권침해 가해 행위에 가담한 전적이 있는 병사인데 일벌백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센터는 “간부들이 보관 창고를 허술하게 관리하고 병사들에게 헬프콜 이용·군사경찰 신고 대신 간부를 찾아오라고 교육하는 등 가장 기본적인 신고창구를 이용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이어 “강력 범죄가 장기간에 걸쳐 다수 발생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신병을 확보하지 않고 그대로 둔 18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군검찰도 문제”라며 “공군 성추행 피해자 부실한 초동 수사 이후로도 반성도 쇄신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가해자들과 가혹행위를 묵인해 온 소속 간부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며 공병대대장과 18전투비행단 법무실장 등에 대한 인사 조치가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무슨 염치로’… 8살 딸에게 대·소변 먹이고 살해한 부부 항소(종합)

    ‘무슨 염치로’… 8살 딸에게 대·소변 먹이고 살해한 부부 항소(종합)

    초등학생인 8살 딸을 예사로 굶기고 대·소변을 먹이는 등 엽기적 가혹행위를 한 끝에 살해한 20대 부부가 징역30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28일 인천지법에 따르면 살인 및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친모 A(28)씨가 지난 26일 법원에 항소했다. 같은 형을 선고받은 계부 B(27)씨도 이날 변호인을 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도 항소했다. A씨 부부의 형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맞항소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항소했다”며 구체적 항소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A씨 부부의 항소심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전망이다. 앞서 A씨 부부는 지난 3월 2일 인천 중구 한 빌라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 C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사망 당시 C양은 얼굴·팔·다리 등 몸 곳곳에 멍 자국이 있었고,110㎝의 키에 몸무게는 또래 평균 26㎏의 절반인 13㎏에 불과했다. 부검 감정서에는 ‘온몸에 살이 없어 뼈대만 드러났고 지방층도 손실돼 없으며 위와 창자에 내용물도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 부부는 거짓말을 한다거나 대소변 실수를 했다며 주먹이나 옷걸이 등으로 C양의 온몸을 때렸고, 6시간 동안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등 확인한 것만 35차례나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부터는 딸에게 반찬 없이 맨밥만 주거나 하루나 이틀 동안 식사나 물을 전혀 주지 않고 굶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C양은 지난해 12월부터 밥을 스스로 먹지 못하고 얼굴색도 변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지난해 10월에는 또 대소변 실수를 했다며 C양을 화장실로 데리고 간 뒤 변기에 있는 대변을 먹게하고 소변을 빨대로 빨아 먹게 하고선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엽기적 가혹행위를 했다. 이들 부부는 딸이 사망하기 이틀 전에도 밥과 물을 전혀 주지 않았으며, 딸이 옷을 입은 채 거실에서 소변을 보자 속옷까지 모두 벗긴 채 찬물로 샤워를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2시간 동안 딸의 몸에 있는 물기를 제대로 닦아주지 않는 등 방치했고, B씨는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C양을 보고도 9살 아들과 거실에서 모바일 게임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부부는 1심 재판에서 딸을 학대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살인의 고의성은 전면 부인했다. A씨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C양과 아들을 낳았고 이혼 후 2017년 B씨와 결혼했다.
  • 8살 딸 학대 살해한 계부는 항소 포기, 친모는 항소

    8살 딸 학대 살해한 계부는 항소 포기, 친모는 항소

    초등학생인 8살 딸을 굶기는 가 하면, 대소변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 끝에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돼 징역 30년을 선고 받은 20대 친모(28)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같은 형을 선고 받고 받고 복역중인 계부(27)는 28일 현재 항소장을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지법에 따르면 살인 및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친모 A씨가 최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함께 기소돼 같은 형을 선고받은 그의 남편 B씨는 이날 현재까지 항소장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구형과 같은 형이 선고됐는데도 검찰이 항소함에 따라 B씨는 A씨와 함께 항소심을 받아야 한다. 이들의 항소심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전망이다.1심 법원이 소송기록을 정리해 서울고법으로 넘기면 항소심을 담당할 재판부가 결정된다. A씨 부부는 지난 3월 2일 인천시 중구 한 빌라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 C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C양은 사망 당시 얼굴·팔·다리 등 몸 곳곳에 멍 자국이 있었고,110㎝의 키에 몸무게는 또래 평균 26㎏의 절반인 13㎏으로 심한 저체중 상태였다. 부검 감정서에는 ‘온몸에 살이 없어 뼈대만 드러났고 지방층도 손실돼 없으며 위와 창자에 내용물도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 부부는 거짓말을 한다거나 대소변 실수를 했다며 주먹이나 옷걸이 등으로 C양의 온몸을 때렸고, 6시간 동안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등 올해 3월 초까지 35차례나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부터는 딸에게 반찬 없이 맨밥만 주거나 하루나 이틀 동안 식사나 물을 전혀 주지 않고 굶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C양은 지난해 12월부터 밥을 스스로 먹지 못하고 얼굴색도 변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A씨는 지난해 10월 또 대소변 실수를 했다며 C양을 화장실로 데리고 간 뒤 변기에 있는 대변을 먹게 했다. 소변도 빨대로 빨아 먹게 하고선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의 엽기적 행위를 했다.이들 부부는 딸에게 대변이 묻은 팬티를 1시간 동안 입에 물고 있게 하는 가혹행위도 반복했다. A씨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C양과 아들을 낳았고 이혼한 뒤인 2017년 B씨와 결혼했다.
  • “8살 딸에 대소변 먹이고 학대”...20대 母, 징역 30년 불복 ‘항소’

    “8살 딸에 대소변 먹이고 학대”...20대 母, 징역 30년 불복 ‘항소’

    초등학생인 8살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20대 엄마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8일 인천지법에 따르면, 살인 및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A(28·여)씨는 최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A씨와 함께 기소돼 같은 형을 선고받은 A씨의 남편 B(27·남)씨는 이날 현재까지 재판부에 항소장을 내지 않았다. 구형과 같은 형이 선고됐는데도 검찰이 항소하면서 B씨는 A씨와 함께 항소심을 받아야 한다. 이들의 항소심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전망이다. 1심 법원이 소송기록을 정리해 서울고법으로 넘기면 항소심을 담당할 재판부가 결정된다. A씨 부부는 지난 3월 2일 인천시 중구 한 빌라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 C(8)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사망 당시 C양은 얼굴·팔·다리 등 몸 곳곳에 멍 자국이 있었으며, 110㎝의 키에 몸무게는 또래 평균(26㎏)의 절반인 13㎏으로 심한 저체중 상태였다. 부검 감정서에는 ‘온몸에 살이 없어 뼈대만 드러났고 지방층도 손실돼 없으며 위와 창자에 내용물도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 부부는 C양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대소변 실수를 했다며 주먹이나 옷걸이 등으로 C양의 온몸을 때리는 등 지난 3월 초까지 35차례나 학대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부터는 딸에게 반찬 없이 맨밥만 주거나 하루나 이틀 동안 식사나 물을 전혀 주지 않고 굶기기도 했다. 이에 C양은 지난해 12월부터 밥을 스스로 먹지 못하고, 얼굴색도 변하는 등 건강이 나빠졌다. A씨는 지난해 10월 또 대소변 실수를 했다며 C양을 화장실로 데리고 간 뒤 변기에 있는 대변을 먹게 했다. 소변도 빨대로 빨아 먹게 하고선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이들 부부는 딸에게 대변이 묻은 팬티를 1시간 동안 입에 물고 있게 하는 가혹행위도 반복했다. A씨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C양과 아들을 낳았고 이혼한 뒤인 2017년 B씨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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