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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리우스 력’ 쓰는 푸틴, 정교회 ‘성탄절’ 맞아 36시간 휴전 명령

    ‘율리우스 력’ 쓰는 푸틴, 정교회 ‘성탄절’ 맞아 36시간 휴전 명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정오부터 7일까지 총 36시간 동안의 짧은 휴전을 선언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푸틴 대통령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모스크바 시간으로 6일 낮 12시부터 7일 24시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 중인 러시아 자국 군인들에게 휴전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은 러시아 정교회의 크리스마스 기간이다. 정교회는 가톨릭, 개신교의 성탄절보다 13일 늦은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해오고 있다. 정교회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달력인 ‘그레고리 력’ 대신 고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한 ‘율리우스 력’을 따르기 때문이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교회 역시 그동안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해왔다. 지난해 11월부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옮겨 기리는 것을 허용했지만 여전히 상당수 우크라이나 정교회 교도들 역시 1월 7일을 성탄절로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정교회를 믿는 수많은 시민들이 전장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휴전은 선언한다’면서 ‘휴전 기간 동안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우크라이나 측에 요청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 정교회 성탄절 휴전을 강력하게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가 이번 성탄절 휴전을 제안했고, 이를 푸틴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전격적인 휴전 명령이 내려졌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실제로 앞서 키릴 총대주교는 휴전 성명서를 통해 ‘정교회 성탄절 기간 동안 휴전이 이뤄져 크리스마스 이브와 성탄절 당일에 신도들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키릴 총대주교의 휴전 선언 요구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동참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앞서 지난해 12월 25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에 포진해 있는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 영면에 든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봉헌

    영면에 든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봉헌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묘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5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수만명의 인파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 등 한국 대표단도 현장에서 함께 추모했다. 그간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했지만 생전에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후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당시는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에 납치돼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이 지난 뒤 치러 지금 상황과는 달랐다. 배네딕토 16세는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뒤 명예교황으로 남아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생전에 밝혔지만 교황청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하며 전임 교황을 예우했다. 장례미사를 40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를 누인 목관이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으로 운구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관 위에는 복음서 한 권이 놓였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는 펼쳐진 복음서에 입을 맞추며 그를 추모했다.장례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성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 옆 의자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와 성직자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훔쳤다. 미사가 끝날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하신 하느님 베네딕토 전임 교황을 당신 자비에 맡겨 드리나이다. 간구하오니 그를 당신 천상 거처에 맞아들이시어 영원한 영광 누리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미사를 마친 관은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 수행원들의 어깨에 실려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운구 행렬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잠시 멈추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성호를 긋고 관 위에 손을 올린 뒤 잠시 묵상했다.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있던 바로 그 묘역에 안장됐다.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700명이 참석했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이탈리아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조르자 멜로니 총리·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독일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올라프 숄츠 총리,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등이 참석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토고, 가봉 등 유럽과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 귀빈석에서 장례미사를 지켜봤다. 대부분의 국가는 주교황청 대사가 자국을 대표해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 등 약 5만명도 광장에 운집했다. 수많은 신자들은 장례 미사가 끝난 뒤 “즉시 성인으로!”(Santo Subito!)를 외쳤고 같은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 [포토] ‘베네딕토16세 관’ 놓인 성베드로 광장

    [포토] ‘베네딕토16세 관’ 놓인 성베드로 광장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하며 가톨릭 역사를 새로 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5일(현지시간) 전 세계인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이날 오전 9시 30분(한국시간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숙하게 시작됐다.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장례 미사를 주례했다. 가톨릭 2천년 역사상 후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집전한 것은 1802년 비오 7세 교황(후임)과 비오 6세 교황(전임) 이후 이번이 역대 2번째다.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이승과 영원히 작별했다. 장례 미사가 열리기 40분 전인 오전 8시 50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누인 소박한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전 바깥으로 운구돼 광장의 야외 제단 앞에 놓였다. 삼나무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유럽 각국 지도자 등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이 한국 천주교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도 참석해 한마음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영면을 기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에 이어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이 라틴어로 “낙원으로 천사들이 그대를 인도할지니, 순교자들이 그대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인도할지”라고 노래하면서 장례 미사는 끝난다. 미사가 끝난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지하 묘지 안장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다시 들어간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 묘지에서 진행되는 안장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붉은 띠로 관을 둘러 닫고 아연으로 만든 두 번째 관과 참나무로 만든 세 번째 관에 차례로 모셔진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돼 있고,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안장돼 있던 바로 그 묘역에서 영면한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 신학의 연장선에서 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관계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지난달 31일 사임 후 지내온 바티칸시국의 한 수도원에서 95세로 선종했다.
  • 도움 주신 분들 경제 분야 20명(가나다순)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광주 SNE리서치 대표이사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본부장  서진형 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  임채성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최성락 SR경제연구소장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관치금융 벗어나야 금융 선진화 실현”

    “관치금융 벗어나야 금융 선진화 실현”

    정책이행 수단… 리스크 대비 미숙낡은 규제 혁파해야 공정경쟁 도모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금융 선진화를 위한 투자에 인색한 데다 정부의 정책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금융기관 사이 경쟁마저 실종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 시스템이 관치에서 벗어나 경쟁을 활성화하고 디지털화 등 금융 선진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국내 금융 시스템은 정부 정책에 의존적이어서 시장의 변화에 둔감하고 리스크 대비에 미숙하다”며 “주요 은행이 5개밖에 없으니 담합은 아니지만 담합한 것처럼 행동해 선진화된 시스템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 자금은 따지고 보면 예금주의 돈인데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 지원 등 정책적 목적으로 활용하며 정부의 리스크를 금융계에 떠넘긴다”면서 “정부는 금융권의 돈을 정책자금으로 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의 행태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은행은 기업이 자금을 잘 지탱하는지 감시하고 심사해야 하는데, 국내 은행들은 보증이나 담보에만 의존하며 땅 짚고 헤엄치고 있고 그러면서도 직원들은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는 “금융 선진국의 하이테크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게 선진화가 아니라 자금이 적재적소에 공급되는 체계를 만드는 게 국내 금융 시스템에선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낡은 금융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제언도 잇따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융 디지털화로 금융 환경이 많이 변한 만큼 금융도 빅테크 기업을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방침에 대해서는 “산업이 금융을 지배함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나 도덕적 해이를 고려하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 ‘로미오와 줄리엣’ 핫세와 휘팅 파라마운트에 5억달러 손배 소송

    ‘로미오와 줄리엣’ 핫세와 휘팅 파라마운트에 5억달러 손배 소송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던 올리비아 핫세와 레오나르도 휘팅이 10대 시절 자신들에게 침실 장면을 찍게 한 것은 미성년자 학대에 해당한다며 제작사 파라마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제 70대가 된 두 사람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샌타모니카 최고법원에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제출했다고 연예 전문 버라이어티가 3일 전했다. 영화가 개봉한 지 55년이 흘렀는데 이제야 걸고 넘어진 것이라 놀랍기도 하다. 2019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자신들에게 출연 제의를 했을 때는 나체 출연하는 장면이 없다고 설득해 출연을 결심했는데 처음에는 침실 장면에 얇게 비치는 속옷을 입도록 하더니 나중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가 망한다”고 압박하며 맨몸으로 찍었다는 것이 소송 이유다. 이에 따라 휘팅의 엉덩이, 핫세의 가슴 부위가 고스란히 노출됐고, 이 사진이 지금껏 돌아다녀 망신스럽다는 것이다. 촬영 당시 핫세는 열다섯 살, 휘틀링은 열여섯 살이었다. 소장에 따르면 제피렐리는 카메라 위치까지 알려주며 어떤 나체 장면도 찍히지 않을 것이며 영화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지만 두 사람은 알지도 못한 채 나체로 찍혔다는 것이다. 두 배우의 비즈니스 매니저라고 자신을 소개한 토니 마리노치는 “그들이 들은 내용과 실제 영화에 나온 것은 완전히 달랐다”면서 “그들은 제피렐리 감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열여섯 살이라면 자신들이 믿는 사람의 말을 거역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미투(MeToo) 운동 같은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55년 동안 분노와 우울증에 시달려 왔으며 이 일 때문에 많은 취업 기회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두 배우는 나란히 이 작품을 빼고는 이렇다 할 배우 활동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받아내려는 손해배상 규모는 5억 달러 이상이라고 마리노치는 전했다. 미성년자에 대한 인권 보호에 무관심했던 1960년대라지만 앞으로 영화 출연 때문에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순진한 10대 청소년에게 이런 행동을 강요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고, 이제와서 어쩌란 것이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두 사람이 소송을 낸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어린 시절의 성적 착취를 나이 들어 소송을 제기하는 일을 일시적으로나마 제한하고 있다. 미국 보이스카웃연맹과 가톨릭 교단에서 비슷한 악몽을 경험한 이들이 너무 많아 지난해 마지막날까지로 못박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전날 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파라마운트 사는 당장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핫세는 2018년 버라이어티 인터뷰를 통해 “그 전에는 내 나이 때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며 제피렐리가 자신의 취향을 좇아 촬영했으며 “영화를 위해 필요했던 장면”이라고 옹호했다. 또 폭스 뉴스 인터뷰를 통해선 문제의 장면이 미국에서는 “금기”였지만 당시 유럽 영화에서는 이미 늘상 있었던 일이라며 “큰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촬영 도중에 난 옷을 전혀 걸치지 않은 사실조차 잊어버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5년 만에 두 사람이 소송을 제기했다. 아무래도 옆에서 많이 부추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K리그 선수·20대 배우도 병역 기피 수사… ‘뇌전증 허위 진단’ 조직적으로 법망 회피

    K리그 선수·20대 배우도 병역 기피 수사… ‘뇌전증 허위 진단’ 조직적으로 법망 회피

    허위로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는 방법으로 병역 면제를 도운 브로커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병역 기피에 가담한 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미 혐의가 드러난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 외에 병역 기피 가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K리그에서 활동 중인 축구 선수, 영화·드라마 등에서 주목받는 20대 배우 등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3일 검찰 등에 따르면 브로커 구모(구속 기소)씨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전국에 군 전문 행정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처럼 홍보했다. 행정사 자격이 없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은 포털사이트를 포함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구씨 등은 뇌전증과 조현병이 병역 면제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알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법망을 피해 가려 했다. 다른 외상처럼 명확히 보이는 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허위로 진단서를 받는 수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얘기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임성철 교수는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일시적 과흥분 상태로 인해 발작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계 질환이다. 이상 뇌파 소견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뇌파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올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증상에 대한 문진”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실에 따르면 병역 판정 검사에서 뇌전증을 이유로 4급 이하 판정을 받은 경우는 2021년 633명, 지난해 578명이었다. 재검 대상자 중에서는 2021년 206명, 지난해 180명이 뇌전증을 이유로 4급 이하 판정을 받았다. 브로커들은 병역을 기피하려는 이들에게 병원 진단 전 뇌전증 증상에 관해 상세히 알려 주고, 가족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숙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뇌전증 진단을 받기 위해 문진에서 해야 할 답을 알려 줬다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병역면탈합동수사팀은 구씨가 특정 의료기관과 결탁해 허위로 진단서를 발급받은 사실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구씨는 뇌전증 외에 조현병 같은 다른 정신질환을 악용한 병역 비리도 시도해 군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들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병역 면제 방법을 문의하는 사람에게는 방문 상담으로 접근했다. 수사기관의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 문자메시지나 전화 통화 등 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무 전문 행정사는 “면제 방법에 대한 상담 자체가 불법이어서 문의가 많지 않다”며 “이번 사건은 전문적으로 병역 면제 방법을 알려 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검찰은 5일 혐의를 시인한 배구 선수 조재성을 불러 조사한다. 조재성은 지난해 2월 현역 입영 대상이었지만 뇌전증 진단을 받고 재검에서 사회복무요원(4급)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탈한 혐의를 받는다. K리그 1부에서 뛰고 있는 A씨도 최근 병역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지난달 30일 소속 구단에 신고했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오른 병역 기피 대상자는 7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 병역 면제 ‘패스트트랙’된 뇌전증·조현병…조직적으로 법망 회피

    병역 면제 ‘패스트트랙’된 뇌전증·조현병…조직적으로 법망 회피

    허위로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는 방법으로 병역 면제를 도운 브로커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병역 기피에 가담한 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미 혐의가 드러난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 외에 병역 기피 가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K리그에서 활동 중인 축구 선수, 영화·드라마 등에서 주목받는 20대 배우 등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3일 검찰 등에 따르면 브로커 구모(구속 기소)씨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전국에 군 전문 행정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처럼 홍보했다. 행정사 자격이 없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은 포털사이트를 포함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구씨 등은 뇌전증과 조현병이 병역 면제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알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법망을 피해 가려 했다. 다른 외상처럼 명확히 보이는 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허위로 진단서를 받는 수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얘기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임성철 교수는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일시적 과흥분 상태로 인해 발작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계 질환이다. 이상 뇌파 소견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뇌파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올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증상에 대한 문진”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실에 따르면 병역 판정 검사에서 뇌전증을 이유로 4급 이하 판정을 받은 경우는 2021년 633명, 지난해 578명이었다. 재검 대상자 중에서는 2021년 206명, 지난해 180명이 뇌전증을 이유로 4급 이하 판정을 받았다.브로커들은 병역을 기피하려는 이들에게 병원 진단 전 뇌전증 증상에 관해 상세히 알려 주고, 가족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숙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뇌전증 진단을 받기 위해 문진에서 해야 할 답을 알려 줬다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병역면탈합동수사팀은 구씨가 특정 의료기관과 결탁해 허위로 진단서를 발급받은 사실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구씨는 뇌전증 외에 조현병 같은 다른 정신질환을 악용한 병역 비리도 시도해 군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들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병역 면제 방법을 문의하는 사람에게는 방문 상담으로 접근했다. 수사기관의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 문자메시지나 전화 통화 등 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무 전문 행정사는 “면제 방법에 대한 상담 자체가 불법이어서 문의가 많지 않다”며 “이번 사건은 전문적으로 병역 면제 방법을 알려 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검찰은 5일 혐의를 시인한 배구 선수 조재성을 불러 조사한다. 조재성은 지난해 2월 현역 입영 대상이었지만 뇌전증 진단을 받고 재검에서 사회복무요원(4급)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탈한 혐의를 받는다. K리그 1부에서 뛰고 있는 A씨도 최근 병역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지난달 30일 소속 구단에 신고했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오른 병역 기피 대상자는 7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 [부고]

    ●이추묘씨 별세, 김상화(서울신문 전국부 국장)·상희(대한항공 사무장)·상길(대구동산병원 직원) 모친상, 임경숙(대구 북동초등학교 교감)·이정미·박은주(KCP 손해사정 과장) 시모상 = 2일 대구성서동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5일 오전 7시. (053)258-4444. ●한환수씨 별세, 양지선씨 남편상, 한재웅(청담러닝)·정우씨 부친상, 양은석·원석(시장경제신문 부국장)씨 매형상 = 2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4일. (032)517-0710
  • “믿음 안에 굳건히…” 수도원에 잠든 베네딕토 16세[포착]

    “믿음 안에 굳건히…” 수도원에 잠든 베네딕토 16세[포착]

    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 였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 사진을 그의 선종 하루 뒤인 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시신은 그가 2013년 교황직에서 사임한 이후 여생을 보낸 바티칸시국의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 수도원에 안치돼 있다. 교황청 공보실이 공개한 사진은 베네딕토 16세가 머리에 모관을 쓰고 전통적인 교황 제의를 입고 관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담았다. 포개진 손에는 묵주가 들렸고, 시신 뒤편에는 십자가와 촛불,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돼 있다. 다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상징인 팔리움을 착용하지 않았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두르는 복장이다. 은퇴한 대주교는 팔리움을 입지 않는다. 베네딕토 16세도 2013년 교황직에서 자진 사임했기에 팔리움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쇠약을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이었다.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물러난 후 ‘명예 교황’ 호칭을 받아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고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은 오는 2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돼 이후 사흘간 일반에 공개된다. 장례 미사는 5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명동성당 역시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고, 주한교황대사관도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염수정 추기경과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오는 5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사랑하는 명예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첫 미사에서 전날 선종한 전임자의 천국행을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례한 신년 미사 강론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기도로 시작했다. 교황은 성모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달라”고 간청했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을 굽어보는 사도궁 집무실 창을 열고 집례한 삼종기도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묵념을 올렸다. 교황은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과 교회의 충실한 종(베네딕토 16세)을 선물해준 하느님에게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감사하자”고 말했다.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결정에 대해 “용감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수 세기 만에 처음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가톨릭 신자에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유언에서 장례 절차나 시신이 안치될 장소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의 재산과 소지품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영적 유언은 베네딕토 16세가 즉위 후 1년 뒤인 2006년 8월 29일 독일어로 작성한 것으로, 2페이지 분량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먼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79세 때 작성한 이 유언에서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되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고 적었다. 그는 “먼저, 내게 생명을 주시고 혼란의 여러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며 “하느님은 내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마다 항상 나를 일으켜주고 얼굴을 들어 다시 비춰주신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돌아보면 어둡고 지치는 이 길이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보고 이해한다”고 덧붙였다.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는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해 복구 불능의 타격을 입은 독일에서 성장했다. 그가 겨우 7살일 때 독일 나치 정권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 베네딕토 16세는 부모님을 향해서는 “어려운 시기에 내게 생명을 주셨고,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사랑으로 멋진 집을 준비해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곁에 있던 많은 친구와 선생님,제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또한 자신이 태어난 고국 독일,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에도 감사한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신자들을 향해서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며 “자신을 혼란 빠뜨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그분의 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영생의 거처로 받아주실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 ‘생전 사임’ 택했던 ‘진리의 수호자’ 지다

    ‘생전 사임’ 택했던 ‘진리의 수호자’ 지다

    598년 만에 가톨릭 첫 중도사퇴정통교리 수호… 보수파엔 영웅韓과 인연… 김수환 추기경 스승5일 장례미사… 세계 추모 이어져 프란치스코 교황, 새해 첫 미사“하느님에게 가는 길 동행을” 기도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가톨릭 내 보수파에게는 영웅으로, 진보파에게는 교회 개혁을 거부한 인물로 꼽힌다. 변화의 시기에 교황에 올라 역사에 한 획을 남기고 떠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78세의 나이로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역대 최고령 교황에 이름을 올렸으나 재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가톨릭 역사상 교황의 중도 사퇴는 598년 만이었다. 요제프 라칭거라는 본명으로 1927년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젊은 시절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엔 가톨릭 교회 개혁을 앞장서 주장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신학자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유럽을 휩쓴 ‘68혁명’을 계기로 보수파로 돌아섰다. 교황청에 1981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입성한 그는 전통적인 신학관으로 교리 수호에 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2005년 4월 취임 미사에서 “저의 진정한 운영 계획은 주님께서 역사의 이 시점에서 교회를 이끄시도록 온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말씀과 뜻을 경청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원칙을 강조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시기에 교회의 권위자로서 지켜야 할 가치들을 엄격히 강조해 ‘진리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의 엄격함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슬람 및 가톨릭 내 진보 진영과 대립각을 세웠고, 어린이 성추행 사제 문제와 교황청 내부 부패 청산에는 엄격한 잣대를 대지 못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2012년 교황청 내부 편지와 문서가 유출되는 등 곤란을 겪었고 결국 이듬해 자진 사임했다. 퇴임 후엔 ‘명예교황’으로서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완고한 이미지의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피아노 연주와 맥주를 즐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는 연극과 영화로 제작된 ‘두 교황’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임기 중에 신었던 ‘빨간 구두’는 패셔니스타로서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는 2007년 패션지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을 정도로 멋쟁이 교황이었다.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뮌스터대에 교수로 발령받아 교회 쇄신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을 때 수강생이었다. 재임 시절 8명의 새로운 한국인 주교를 임명했다. 2007년 2월 1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제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도드리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50여 년에 걸친 분단의 결과로 고통받아 왔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기도드리겠다”고 하는 등 분단의 아픔에 공감하며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세계 각지에서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 새해 첫 미사에서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 달라”고 기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우리 시대 평화의 사도이고 영적인 스승이며 지도자”라고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셨고, 한반도 평화에 앞장서셨다. ‘주께서 내게 더 기도에 힘쓰라며 산에 오르라 하셨다’던 교황님의 마지막 삼종기도 말씀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명동성당은 이날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고, 주한교황대사관도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염수정 추기경과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오는 5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 [속보] 尹대통령, 베네딕토 16세 선종 애도…“한반도 평화에 앞장”

    [속보] 尹대통령, 베네딕토 16세 선종 애도…“한반도 평화에 앞장”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베네딕토 16세 명예교황님의 명복을 빌며, 거인을 잃은 슬픔에 잠긴 천주교인들에게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베네딕토 16세 명예교황님이 오늘 선종하셨다”며 “‘주께서 내게 더 기도에 힘쓰라며 산에 오르라 하셨다’던 교황님의 마지막 삼종기도 말씀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였던 그 분의 신앙과 학문, 인품과 신념의 깊이는 천주교인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였다”며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셨고, 한반도 평화에 앞장서셨다”고 평가했다. 앞서 교황청은 “전임 교황 베테딕토 16세가 오전 95세를 일기로 9시 34분 바티칸 내 마터르 에클레시아에 수도원에서 선종했음을 애도의 마음으로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 위독하다던 베네딕토 16세 “이틀째 안정적, 미사에도 참석”

    위독하다던 베네딕토 16세 “이틀째 안정적, 미사에도 참석”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이틀째 안정세를 보인다고 교황청이 30일(현지시간) 밝혔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재 그의 상태는 안정적”이라며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밤새 잘 쉬었고, 그의 침실에서 열린 미사에도 참석했다고 전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8일 수요 일반 알현 말미에 95세 고령으로 위독하다며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신자들의 기도를 요청했다. 이 때문에 선종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으나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이날까지 이틀째 안정적인 상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당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했다고 밝혔으나 AFP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실제로는 사흘 전부터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심장을 포함해 주요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그의 거처에 필요한 의료장비가 있어서 병원 입원 계획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으나,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더는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할 힘이 없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가 물러난 뒤 598년 만의 일이라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명예 교황(Pope Emeritus)’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후임 교황에게 무조건 순명(順命)하겠다고 언약했다. 그러면서 고국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시국 안의 마터르 에클레시아에(Mater Ecclesiae) 수도원에 머무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몰두해 왔다.
  • ‘명예 교황‘ 선종하면 의전은? 전례 없어 고심 깊어지는 교황청

    ‘명예 교황‘ 선종하면 의전은? 전례 없어 고심 깊어지는 교황청

    어쩌면 우리 생애에 생존하는 교황이 선종한 교황의 매장을 돕는 초유의 일을 목격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2013년 스스로 교황 직위를 내려놓은 베네딕토 16세(95)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황청이 ‘명예교황(Pope Emeritus)’의 선종에 어울리는 의전을 고심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30일 보도했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에 올랐으나, 8년 만에 고령 등을 이유로 자진 퇴위했다. 교황이 스스로 물러난 것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의 일이었다. 그 뒤 베네딕토 16세는 명예교황으로 불리며 프란치스코 현 교황과 함께 바티칸시국 안 마터르 에클레시아에(Mater Ecclesiae) 수도원에 머물러 왔다. 교황청은 통상 교황이 선종하면 각국 정상에 비공식적으로 관련 사실을 알린 뒤 라디오 방송으로 이를 공식 발표해 왔다. 교황 유고시 교황 직책을 대신하는 교황 궁무처장(Camerlengo)이 작은 은망치로 고인의 이마를 세번 두드리고 이름을 부르면서 교황의 선종을 공식 확인하고, ‘어부의 반지’로 불리는 교황의 인장반지를 파기하는 절차도 있다. 그 뒤 교황 궁무처장의 지휘 아래 장례식을 진행하고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 ‘콘클라베’를 준비한다. 하지만 명예 교황이 선종하면 이런 절차 가운데 상당수가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전례가 없는 점도 교황청의 고민을 깊게 하는데 현직 교황 선종에 대비해 만든 의전을 명예교황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좋은지 누구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돼 온 장례식도 추기경단 단장이 아닌 프란시스코 교황이 직접 주관할 수 있다고 BBC는 내다봤다. 가톨릭 역사학자 존 맥그리비는 “생존한 교황이 선종한 교황의 매장을 돕는 것은 여태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재임 중 퇴위한 첫 교황은 아니지만 과거 사례를 참고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레고리오 12세의 퇴위는 아비뇽 유수(유폐)를 계기로 두 명의 교황이 양립했던 ‘서방교회의 대분열’을 종식하기 위한 결단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참고할 대목이 없다고 BBC는 지적했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 선종 시 의전 절차와 관련해 구체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 전문가인 마시모 프랑코는 BBC 인터뷰를 통해 “(모든 절차가) 처음부터 다시 쓰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가 선종할 경우 전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성 바오로 대성당 지하에 안장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 지도자가 참석하는 국장으로 장례식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BBC는 예상했다.
  • 교황청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정신 맑다, 위중하지만 안정적”

    교황청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정신 맑다, 위중하지만 안정적”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상태가 위중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이라고 교황청이 29일(현지시간) 밝혔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명예 교황은 어제 밤에 잘 쉬었고, 정신도 완전히 맑고 의식도 깨어 있다”며 “여전히 그의 상태는 위중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브루니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어려운 시기에 그와 동행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고 전했다. 올해 95세인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즉위해 8년 동안 재임한 뒤 2013년 2월 건강을 이유로 교황 직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의 일로, 당시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직에서 물러난 뒤 명예 교황(Pope Emeritus)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며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하는 이유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수요 일반 알현 말미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매우 아프다”며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호소했다. 독일 출신으로 저명한 신학자였던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사임 후 바티칸시국 내 마터르 에클레시아에(Mater Ecclesiae) 수도원에서 지내왔다. 2020년부터 건강이 더욱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해 8월에는 전 교황의 고국인 독일 언론이 베네딕토 16세가 세균성 피부 질환인 단독(丹毒)을 앓아 극도로 쇠약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현 교황은 바티칸 정원을 건너 전 교황의 거처를 찾아 병문안하곤 했다고 했다. 지난 28일에도 신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간구한 뒤 전 교황을 찾아 병문안했다.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의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 “베네딕토 16세 건강 악화, 기도해달라” 프란치스코 교황 병문안

    “베네딕토 16세 건강 악화, 기도해달라” 프란치스코 교황 병문안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매우 아프다”며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28일(현지시간) 호소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바티칸의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 알현 말미에 서류를 들여다보며 갑작스럽게 호소하면서도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날은 교황이 올해 마지막으로 대중과 만나는 날이었다. 지난 4월 95세 생일을 맞은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건강 상의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다. 즉위한 지 8년이 채 안된 시점이라 가톨릭 신자들은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그레고리 12세가 스스로 물러난 1415년 이후 598년 만의 일로 기록됐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직에서 사임한 이후 바티칸시국 안 마터르 에클레시아에(Mater Ecclesiae) 수도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곳을 이따금 찾는다고 이달 초 소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침묵 속에서 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여러분 모두에게 특별한 기도를 부탁한다”며 “그를 기억하자. 그는 매우 아프다. 주님께서 교회에 대한 사랑의 증인으로 끝까지 그를 위로하고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뒤 교황청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건강이 최근 몇 시간 동안 나빠졌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오로 6세 홀을 떠나 바티칸 정원을 거쳐 베네딕토 16세가 머무르는 수도원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최근 몇 시간 동안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했다”며 “의료진이 돌보고 있으며, 상태를 계속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얼마 동안 말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2년 전 몰타의 추기경이 알현한 뒤 그가 “주님이 기쁘게도 침묵하도록 내 말하는 능력을 앗아가셨다”고 말하더라고 전한 일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자가 “다소곳하게 말하시면서도 대화를 따라가신다”고 스페인 일간 ABC에 털어놓은 일이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전임 요한 바오로 교황의 장례 미사에서 즉위했는데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가치관을 좇는 것으로 알려져져 있다. 해방신학을 대놓고 반대했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추문으로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 2009년 아일랜드 교단에서 소아성애 사제들의 추행이 추문으로 폭로됐고 교회가 앞장서 은폐한 행각이 드러났다. 2011년과 이듬해 교황에 의해 파문된 사제만 400명 가까이 됐다.  올해 초에는 독일 뮌헨의 추기경으로 일했던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성추문 사건들을 다루며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독일 조사위원회는 전임 교황이 잘못 다룬 사례가 네 건이라고 발표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어떤 “위중한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당시 뮌헨 주교였던 라인하르트 마르크스는 지난 9월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했다며 신도들에게 기도해달라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달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3년에 “건강이 나빠지거나 하면” 물러난다는 서류에 서명한 뒤 당시 바티칸 국무장관인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전달했다고 털어놓았다.
  • LiFE사업 일반대학협의회, 정시모집에 맞춰 퀴즈 이벤트 진행… ‘여러분, ㅇㅇㅇ하세요’

    LiFE사업 일반대학협의회, 정시모집에 맞춰 퀴즈 이벤트 진행… ‘여러분, ㅇㅇㅇ하세요’

    대학의 평생교육체제지원사업(LiFE사업) 일반대학협의회는 오는 29일부터 진행하는 ‘2023학년도 정시 신입생 모집’ 기간에 맞춰 퀴즈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27일 밝혔다.  퀴즈 이벤트는 LiFE사업의 홍보 키메시지의 일부 단어를 맞추는 형태로 이벤트 참여방법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 이벤트 게시물에 ‘좋아요’를 게시물 댓글에 정답을 입력하면 된다.  참여기간은 이날부터 내년 1월 2일까지며, 당첨자 10명을 선발해 신세계상품권 1만원권을 제공한다. LiFE사업 일반대학은 이달 29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5일간 내년도 정시 신입생 모집을 진행한다. 모집대학은 ▲충청권(청운대, 한국교통대, 한밭대, 호서대) ▲대구·강원권(가톨릭관동대, 경일대, 대구한의대, 상지대) ▲동남권(동명대, 동서대, 부경대, 영산대) ▲호남·제주권(순천대, 전주대, 제주대)으로 전국 23개교 중 수도권 7개교와 한라대학교를 제외한 15개교에서 실시한다. 모집은 성인학습자전형(정원내), 재직자특별전형(정원외) 등 2가지 전형으로 나눠 진행된다. ▲성인학습자전형 지원자격은 내년 3월 1일 기준 만 30세 이상의 고등학교 졸업 또는 동등 학력자이며 ▲재직자특별전형 지원자격은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졸업자, 일반고 직업교육과정(1년) 이수자,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에서 직업교육과정을 이수한자 중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산업체 근무경력이 3년 이상인 재직자다. 모든 전형에서 수능점수 없이 원서 및 면접으로만 학생을 선발한다. 대학별 모집 학과, 전형별 모집 인원 등 자세한 내용은 LiFE사업 종합포털 및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LiFE사업은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고 있는 사업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학령기 학생 위주로 운영되는 대학의 체제를 성인학습자 친화적 체제로 전환하고자 시행되고 있다. 사업 선정 대학은 ▲성인학습자의 학습 수요와 지역사회 및 산업체의 요구에 따른 현장 직무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야간, 주말 수업, 다학기제 및 집중이수제, 학습경험 인정제 등 성인학습자를 위한 학사제도 마련 ▲학비경감, 장학금 지원, 학비 납부방식 다양화 등 성인학습자를 위한 대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주에 서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은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기’다. 1970년 12월 추운 겨울날 서독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웃 나라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했다. 겨울비에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그의 모습은 ‘20세기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獨, 폴란드 서부 100년 이상 점령 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인 앙숙지간이었다. 18세기 말부터 독일은 폴란드의 서부 지역을 100년 이상 점령한 채 폴란드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조약(1919)으로 마침내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하면서 독일이 점령했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로 다시 귀속됐다. 그러자 양국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독일은 신생 국가인 폴란드를 ‘강도 국가’로, 폴란드인을 ‘늑대’나 ‘들쥐’로 묘사했다. 반면에 폴란드는 수복된 땅이 본래 폴란드 영토였다고 주장하면서 약탈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독일 역사를 부각했다.결국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1939년 ‘독일인의 고유한 영토’ 탈환을 구실로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렇게 ‘탈환된’ 지역에서는 재독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인 6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폴란드 전체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 잘 알려졌듯이 독일은 아우슈비츠 등에 집단 학살 수용소를 세우고 폴란드계 유대인 200만명 이상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폴란드군 포로와 민간인들이 고문당하거나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남북으로 472㎞에 달하는 새로운 국경선이 확정됐다. 그 결과 양국의 국경선이 옛 독일 영토 안으로 200㎞ 정도 옮겨지면서 폴란드는 한반도 남한 면적보다 넓은 땅을 패전국 독일로부터 추가로 얻어 냈다. 이곳은 곡창지대이자 공업지대로 철강·석탄의 주요 산지였다. 조상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던 독일인의 추방은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일인 강제 이주는 포츠담회담에서 연합국이 합의한 일로, 회담에서는 추방을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새롭게 폴란드로 귀속된 국경 지대에서 400만명 이상이 강제 이주되는 동안 독일인들은 폴란드인의 잔혹 행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나치 정권이 폴란드인 600만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행위였다.새로운 국경은 양국 모두에서 적개심과 민족주의의 부활을 부추겼다. ‘피추방민협회’를 결성한 독일의 강제 추방민들은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은 보수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의 주요 지지 세력이 됐고, 결코 무시 못할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중심이 돼 실지 회복을 정강으로 내세운 ‘피추방민’ 정당은 1953년 선거에서 5.9%를 득표했고, 서독의 초대 총리인 기독민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는 정당의 핵심 지도자들을 각료로 임명했다. 이들이 극우 세력화해 또다시 나치와 같은 집단이 등장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가해자를 움직인 피해자의 용서 이런 가운데 종전 20주년을 맞은 1965년 공산 치하의 폴란드 주교단은 서독 주교단에 서신을 보냈다. 서신은 지난 1000년간 양국 관계사에서 긍정적인 역사적 국면들에 주목했다. 두 나라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정치·경제·학문적으로 얼마나 서로 의존했는지, 이러한 초경계적 상호작용이 유럽의 평화공존 구축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기억해 낸 것이다. 서신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마무리됐다.“(양 국민 간의) 끔찍한 과거 때문에 괴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합시다. 극단을 지양하고 … 이제는 대화를 시작합시다. … 우리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자 합니다. … 우리는 여러분을 용서하며 또한 여러분으로부터 용서를 구합니다.” 나치 독일의 희생자였던 폴란드 가톨릭교회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이다. 훗날 ‘감동적인 화해 문서’, ‘폴란드와 독일의 대화를 이끈 편지’, ‘화해의 아방가르드’로 평가된 이 서신은 폴란드와 서독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이러한 화해 분위기는 서독 정부에도 영향을 주어서 19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하고 신동방 정책을 추진하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추방민들은 분노했고, 빨갱이들에게 독일의 영혼을 팔아넘긴 매국노라고 브란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잘못을 반복적으로 사죄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폴란드도 이에 화답했다. 폴란드의 지식인들은 독일인을 추방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반체제 세력들은 폴란드 공산당 지도부가 독일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고 국경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도구화했다고 비난했다. 양국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성인과 학자들은 서로를 초청해 화해와 공존을 위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용서라는 선물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와 화해 과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①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정의라며 극단적인 응징이나 보복을 하는 대신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되 미래를 위한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이 중시됐다. ②상호 관계를 개선하고자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불신을 극복하고 연대와 상호 신뢰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두 나라의 역사적 동질성과 같은 유럽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다시 소환했다. 두 나라가 국경을 넘나들던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은 ‘함께 살아감’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③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대도 언급됐다.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반나치 저항 운동에 경의를 표하고, 많은 독일인 역시 자신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됐음을 지적했다. ④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 수백만 명을 강제 추방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것이다. ⑤피해자의 용서는 마치 선물과 같아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정치의 장으로 가해자를 초대할 수 있었다. ⑥피해국 폴란드는 자신이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잊고 치유하기를 희망하면서 양쪽 모두 불행한 과거를 잊자고 제안했다. 용서는 사건 이전의 관계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고통의 기억에서 해방될 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용서라는 선물을 줄 수 있고, 이렇게 해야 양쪽 모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⑦화해 과정을 주도한 행위 주체다. 독일과 폴란드에서는 종교인·학자·지식인 등 비정치적 분야의 지도자 간 화해가 선행됐다. 역사의 도구화와 정치화를 비판했던 이들의 노력으로 국가 간 화해를 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논의가 진행됐다. ⑧용서는 대화와 화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서독과 폴란드는 ‘용서의 편지’ 이후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선 역사 대화를 진행한 결과 총 네 권으로 된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었다.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가까이 지내는 이웃으로 오랜 기간 서로 잘 알던 사람들이다. 너무 가까워서 불편한 이웃이었던 양국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 전쟁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역사교육을 시행 중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페시스’(aphesis)인데 이는 ‘빚을 면제해 줌’을 뜻한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얽매여 과거에만 머문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다. 따라서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빚에서 해방되게 해주는,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용서는 잘못으로 뒤엉킨 삶의 자리에 낡은 감정을 지워 버리고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선물이다. 강제할 수 없지만 주어지면 좋은 것이 선물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나를 위해 용서하자.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자. 중앙대 교수·작가
  • [부고] 이삼걸(강원랜드 대표이사)씨 부인상

    ●이정아씨 별세, 이삼걸(강원랜드 대표이사)씨 부인상, 이용준·이지은·이새롬 모친상, 최솔·임승진 빙모상 = 23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 발인 25일 오전 10시, 장지 시안가족추모공원. 010-2888-9790
  • [정승민의 막론하고] 눈물을 씻어 주는 크리스마스/‘일당백’ 유튜버

    [정승민의 막론하고] 눈물을 씻어 주는 크리스마스/‘일당백’ 유튜버

    크리스마스가 모레다. ‘하늘엔 영광, 지상엔 평화’를 상징하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변함없이 아수라장이다. 이 땅에 구세주가 내려왔다는 대사건이 판명하기 힘든 믿음의 영역에 속해서일까. 실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만든 주체는 로마 제국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뒤에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일을 만들었다. 그리스도와 미사를 합쳐서 크리스마스다. 밤이 가장 긴 동지 이후 태양이 부활한다는 풍속을 기독교의 신성을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마침 12월 25일은 로마의 동지였다고 한다.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에다 가축을 도살해서 고기도 많으니 ‘어린양’을 떠받드는 ‘작은 새해’로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말구유에서 난 갓난아기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극적 서사답게 성탄절의 주인공은 어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딴판이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신교도에게 크리스마스는 가톨릭의 날이었다. 예수가 아니라 포도주의 신 바쿠스를 추앙하는 폭음과 폭식의 향연이며 악의 축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중엽까지도 과식과 만취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를 위한 날은 없었다. 성탄절을 나눔과 베풂의 축일로 자리잡게 한 일등 공신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개과천선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패권국가로서의 물적 토대도 내부적 자원 배분에 여유를 갖게 했다. 아무튼 하나의 중편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축제를 만들었다. 하인에게는 상자에 음식이나 돈, 선물을 담아 주고 휴일을 줬다. 빈민들은 교회에서 기부품으로 채워진 박스를 선물받았다. 무엇보다 어른에서 어린이로 권력이동이 이뤄졌다.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카드가 도입되고 흥겨운 캐럴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물과 정찬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 행사로 위상이 승격된 것은 이때부터다. 오랜 관습으로 여겨졌던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소외된 아이와 가난한 이웃을 대접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전통’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크리스마스는 바쿠스에 가깝다. 종교 행사나 가족 모임이 아니라 환락의 파티로 변용되곤 했다. 광복 직후부터 1982년까지 실시한 야간 통행금지를 예외적으로 풀어 주는 드문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통제와 감시에 억눌렸던 감정들이 해방되다 보니 대규모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언론인 민병욱에 따르면 가장 떠들썩했던 성탄절은 1964년이다. 그해 서울 인구는 약 350만명인데 24일 오후부터 명동과 종로에 35만 인파가 흘러넘쳤다. 지금 고희를 훌쩍 넘긴 당시 청소년들은 뿔피리를 불고 기괴한 복장과 가면으로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수백년이 지난 만큼 19세기 영국처럼 성탄절을 새롭게 조명할 때가 아닌가 한다. 예수의 출생은 양극화와 다문화 문제가 대두된 오늘날 하나의 실마리다. 가장 낮은 곳, 마구간에서 독생자는 태어났다.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가 탄생을 축하했다. 약자와 이방인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예수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과 평화의 세상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있어야 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속인의 의무일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제7의 봉인’은 어떤 인생도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고달픈 삶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이 씻겨 준다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자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든 이슬을 닦아 주실 구원의 크리스마스에 다시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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