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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자와 함께 행복가정 배우자

    배우자와 함께 행복가정 배우자

    광진구가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혼과 별거, 가출 등 가정 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소통 부재 등으로 갈등을 겪는 가정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광진구는 오는 18일 구청 강당에서 김병후 행복가정재단 이사장을 초청, ‘천원의 행복-2013 제4회 광나루 아카데미’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선착순 30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며 수강료는 1000원이다. 네 번째 광나루 아카데미의 강사인 정신과 전문의 김 박사는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부부’라는 주제로 행복한 부부의 비결과 부부 사이 갈등 해결법 등에 대해 강의한다. 이날 강연에서 김 박사는 가정의 행복은 부부 사이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나’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나와 가장 많은 것을 공유하는 ‘너’인 배우자를 서로 이해하고 감싸 주는 ‘부부 역할의 중요성’과 ‘부부 사이의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 ‘부부·자녀 간 갈등 해결법’ 등을 본인의 체험담을 곁들여 생생하게 알려 준다. 김 박사는 2005년 행복가정재단을 설립하는 등 행복한 가정 만들기 전도사이며 KBS TV ‘아침마당’과 EBS TV ‘60분 부모’ 등 여러 방송 매체에 출연한 전문 강사다. ‘우리 부부 정말 괜찮은 걸까’, ‘여자는 절대 모르는 남자 이야기’ 등의 책을 쓰는 등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아울러 구는 나눔 문화를 확산하고자 강의실 입구에 ‘천원의 행복’ 모금함을 마련하고 입장 시 1000원의 기부금 모금을 통해 연말에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다. 김기동 구청장은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정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가정이 화목해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강의가 지역 모든 가정이 행복한 광진구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청소년, 커져가는 마음의 병… 아직도, 작기만한 치유의 손

    청소년, 커져가는 마음의 병… 아직도, 작기만한 치유의 손

    지난달 광주 북구 소재의 한 아파트 20층 옥상에서 고교 1학년인 A양과 B양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양은 이미 학교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지만 전문 상담기관이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일 결석까지 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A양은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해 12차례나 학교 내에서 상담을 받는 등 특별 관리를 받았다. 그러나 학교는 끝내 불행을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A양의 경우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전문 상담이나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관리나 돌봄은 사실상 방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는 ‘자살 척도 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검사 외에 치료나 전문 상담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과 전문 상담기관과의 연계는 상담 청소년의 5%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자살에 대한 충동이나 생각을 직간접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사춘기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받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종합 대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정신건강 관련 상담은 최근 5년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체 상담 중 우울증과 위축감의 비중을 보면 2008년 4.3%에서 지난해 12.6%로 뛰었다. 자살·자해 시도 상담은 2008년 0.5%, 2009년 0.7%, 2010년 2.8%, 2011년 1.0%, 2012년 3.1%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청소년 상담 대부분이 외부 기관과 연계된 전문적인 관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전화(1388), 문자 상담(#1388), 사이버 상담 등 지난해 이뤄진 총 71만 4525건의 청소년 상담 건수 가운데 외부 기관과 연계된 건수는 5만 2444건에 그쳤다. 항목별로 보면 병원이 1432건(2.7%), 정신병원 298건(0.6%), 정신보건센터 309건(0.6%), 보건소 226건(0.4%), 인터넷중독 예방 상담센터 166건(0.3%)이었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은 15일 “청소년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가면성 우울’(masked depression)의 형태로 표현돼 가출과 비행, 무단 결석, 게임 증상 등의 행동 문제 형태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면서 “때문에 오랫동안 부모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지나치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학교가 자살 척도 검사를 하고 있지만 우울증으로 진단된 학생들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상담 교사들의 전문성을 보강하고 전문 의료기관과의 연계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곡절을 묻는 거조가 길세만의 면목을 알고 있을 것 같아 냉큼 그렇다고 대답하고 얼른 봉당으로 다가서며 환원수작 나눈 뒤 어디서 온 상단이냐고 물었다. 행수로 보이는 자가 듣고 있다가 봉당 모서리에 대고 곰방대의 담뱃재를 툭툭 털고 나서, “봉당이나마 우선 좌정하시지요. 보아하니 종일 쏘다니느라, 고단하시겠소.” 나이는 사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허우대는 부상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였다. 역시 입성도 깔끔했다. 배고령이 다시 어디서 온 상단이냐고 물었다. “차차 아시게 되리라 믿소만, 우리도 한때는 뜨내기 행상으로 저잣거리에 당도하면 접소나 사처 잡는 숫막을 바로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으로 여겼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난해부터 선달산 아래에 있는 오동나무골(梧田) 생달이라는 마을에 정처를 두고 살면서 옥돌봉 아래에 있는 박달령을 넘어 내성이나 현동 저자, 구룡산 아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 태백의 물상객주로 드나들고 있지요. 여기서 150리에 상거한 충청도 단양은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수월하게 내왕하고 있지요.” 오동나무골 생달 마을이라면 곽개천이 지난날 포수 생활할 적에 발견한 약수터가 시오리 상거에 있는 곳이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게다가 지난번 화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차인꾼을 옥돌봉 기슭 노루막이에 묻어준 기억도 없지 않았다. “그곳에 약수터가 있지요, 아마?” “잘 알고 계십니다그려. 우리는 약수터와 시오리 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정처를 정해 살고 있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내려앉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근방에서는 그만 한 길지가 없겠다 싶어 골짜기에 띄엄띄엄 토담집을 짓고 접소로 쓰기도 하고 보행객주도 열어 그럴싸한 저잣거리를 찾아 헤매는 행상들이나 고단한 길손들이 쉬어가도록 주선하고 있습니다. 물도 귀하지 않고, 찬바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통팔달이어서 내왕 행보가 앉아서 떡 먹기보다 손쉽지요. 강원도의 영월과 태백, 울진의 흥부장, 충청도의 단양과 영주, 경상도의 내성과 안동의 경계를 멀어야 150여 리 내외 행보에서 드나들 수 있지요. 적어도 사방 200여 리에 상거한 고장에서 나는 토산품이나 유기 같은 물화의 시세를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 길미를 챙기기에도 가근방에서는 오동나무골 생달만 한 곳이 없지요. 그래서 시생들의 형세가 기운 적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모두 가솔을 거느리고 있겠군요?” “정착한 원상들이 열 안짝으로, 가솔들을 거느린 동배간도 있지만 대부분 엄지머리로 지낸답니다.” “언사가 매우 순박하십니다.” “정착하고 난 뒤 안정을 찾은 덕분이겠지요.” “오동나무골 얘기는 소문을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대면하기는 처음입니다. 거래하는 물목들은 무엇이오?” “곡물과 약초와 피륙입니다.” “시생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지요?” “이틀 전에 이곳 어물 도가 포주인을 회술레 돌리는 것을 보았고, 노형께서 동배간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소금 도가 포주인을 훼가출송시킨 것은 적당의 소굴을 섬멸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궐자뿐만 아닙니다. 십이령길 곳곳에는 신표도 갖지 않은 무뢰배가 원상 행세하며 창궐하여 장시의 풍속이 개차반된 지 오래지요. 십이령길 내왕 행보에도 그런 왈짜들이 들끓고 있지요. 이들 모두를 소탕해야 장삿길 소통이 원만해지겠지요.” “우리 행중도 얼마 전 검은돌 마을에 소금을 거래하러 갔다가 그곳에 박힌 돌 행세하는 무뢰배에게 둘러싸여 숫막의 술동이가 비도록 술을 사고 나중에는 전대까지 털려 거래는커녕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크고 작은 폐해를 설혹 내성 아니라도 많이 겪고 있지요.” “용모단자는 없습니다만, 시생의 동배간은 본 적이 없으시군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도 발 달린 짐승이긴 마찬가지인데…. 사정이 다급하다면 꼭 내성 저잣거리에서만 머물 까닭도 없겠지요.”
  • “범죄자 캐릭터 감정 알려고…” 영화감독이 날치기

    “범죄자 캐릭터 감정 알려고…” 영화감독이 날치기

    다음달에 개봉하는 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오토바이 날치기를 하고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붙잡혔다. 그는 범행 이유에 대해 “극 중 캐릭터의 (범행)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5시 10분쯤 영화감독 A(45)씨는 서울 지하철 교대역 8번 출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20대 여성의 핸드백을 낚아챈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추격팀을 꾸려 오토바이를 쫓았지만 A씨는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하고 순찰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골목길을 통해 도주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달아난 A씨는 오토바이를 버리고 모자와 옷을 갈아입고 변장했지만 도주 30여분 만인 오전 5시 40분쯤 경찰의 탐문 수사에 걸렸다. 검문을 요구하자 A씨는 “바쁜데 왜 그러냐.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검문해도 되는 거냐”며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주머니에서 오토바이 열쇠가 발견됐지만 A씨는 “바람을 쐬러 나왔을 뿐”이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이 반포동 일대 아파트와 상가를 뒤져 주택가 골목에 주차된 오토바이를 발견해 A씨의 오토바이 열쇠를 꽂자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렸고 A씨는 덜미를 잡히게 됐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다음 작품으로 가출 청소년을 주제로 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날치기 장면이 나온다”면서 “극 중 캐릭터의 (범행)감정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과거 크게 흥행한 영화의 촬영감독 출신이며 오는 8월 본인이 연출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배고령은 차인꾼 한 사람과 동행하여 길세만을 찾아나섰다. 정한조의 말대로 그의 성품이나 버르장머리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은 행중에서 배고령 한 사람뿐이었다. 행중 사람들이 짐작했던 것처럼 투전판보다는 색주가 갈보들에게 혼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갈보는 그의 전대가 완전히 거덜나서 먼지가 풀썩풀썩 날 때까지는 사타구니에 끼고 뱉어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평소 길세만은 장삿길보다는 간색에 정신이 팔려 실성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성품이었고, 장가도 들지 않은 형편이어서 고향에 공양할 사람도 없었다. 애틋하게 아끼는 계집사람도 없는 형편이어서 애써 번 푼돈이라도 아낄 줄 몰랐다. 필경 담벼락에 용수를 내걸고 떡 벌어진 술청을 차린 소문난 색주가보다는 고샅길 안쪽에 숨어 있는 허름한 선술집 뒷방에 계집과 함께 홀딱 벗고 누워 있을 게 분명했다. 보부상들은 자나깨나 한결같이 옷을 벗고 잠을 청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물것들을 몸에 달고 살아 옷 한 번 벗고 자는 것이 평생소원이기도 했다. 일행 중에서도 길세만이 걸핏하면 옷을 벗었다. 그러나 낮 동안 윤기호의 훼가출송으로 내성 저잣거리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그것까지 나 몰라라 하고 계집을 사타구니에 끼고 누워 있을 만치 그의 배짱이 두둑했을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으나, 배고령은 차인꾼을 데리고 색주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일로 길세만이 소금 상대에서 윤기호처럼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짓눌렀다. 계집을 좋아하는 병통이 있어서 곧잘 빈축을 사긴 하지만, 사람의 심덕 한 가지는 무던해서 남을 해코지하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날씨를 알아맞히는 재간은 일행보다 하루이틀이 빨랐다. 보통 비가 내릴 조짐이 있으면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온다든지, 고추잠자리가 낮게 난다든지, 개구리가 지악스럽게 운다든지 하는 징조가 보이지만 길세만의 한마디보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보게 배고령. 내 어깨가 결리는 것을 보니, 내일은 비가 오겠는걸.” 한마디하면 내일쯤은 반드시 비가 내렸다. 소금 섬이나 건어물과 미역 짐을 지고 다니는 소금상단에서는 언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지 하루나 이틀 전에 알아맞히는 사람이 행중에 있다면, 시세를 결단하고 점락(漸)이나 안매(安賣)를 막는 데 크게 한몫을 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정한조도 날씨가 수상해 보이거나 말래를 발행할 임시에는 반드시 길세만을 불러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도 길세만의 은신처를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만 내성에 떨어뜨리고 소금을 곡물로 바꾼 상단은 다시 말래로 떠난 지가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서캐 잡듯 내성과 현동 저자의 술청거리를 뒤졌으나 길세만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보통 울진의 흥부장 쪽에서 온 소금 상단이 떠나면 내성의 색주가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고 7, 8일 후에 소금 상단이 다시 회정하면 색주가는 다시 초파일의 절간처럼 야단법석이 되었다. 배고령은 이틀 동안이나 길세만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끝에 어떤 허름한 숫막 봉노에서 10여 명이나 되는 상대들과 마주쳤다. 면목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안면이 익숙한 사람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좁은 봉노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거동이 살얼음 밟듯 조용조용한 편이었는데, 입성들이 중구난방인 소금 상단들과 달리 매우 깨끗하고 언사도 차분했다. 그중 행수로 보이는 자가 문밖에서 궁싯거리며 숫막을 살피는 배고령을 보고 물었다. “노형께서는 사람을 찾으시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어물 도가를 경영하여 적지 않은 식산을 한 윤기호 같은 인물의 얼굴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회칠까지 하여 훼가출송(毁家黜送)을 한다는 것일까. 그것을 당하면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내성의 저잣거리에서는 두 번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회술레는 중화 무렵까지 온 저잣거리를 세 번이나 지나고, 그것도 모자라 숨어 있는 고샅길까지 찾아가며 수치를 안기었다. 해가 나절가웃이나 지났을 무렵 배고령이 곽개천에게 다가왔다. “성님, 이제 그만하고 돌려 보내는 게 어떻겠소?” “임소의 분부가 있었나?” “아니오.” “아니면 길을 가로막고 서서 작경하는 놈들이라도 있었나?” “그럴 리가 있겠소.” 곽개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기왕 시작한 것 된변을 보여주어야 하네.” “윤가의 걸음걸이를 보자 하니…… 쓰러지면 두 번 다시 기신을 차리고 일어나지 못할 것 같소. 게다가 윤가가 반정신을 차린다 한들 이제 무슨 반죽으로 어물 도가를 열 수 있겠소. 그 도가 자리에 연못을 파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개아들 놈이 그와 거래를 트려 하겠소. 이제 윤가는 있으나 마나한 위인이 아니겠소.” “어디 윤가놈 하나 때문인가. 이 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무뢰배들이 두 번 다시 장시의 풍속을 어지럽히려 들지 못하도록 혼찌검을 내자는 것이 아닌가. 건드리다 말면 애당초 거들지를 말아야지. 부리만 헐어서는 저들이 올곧은 정신을 차리겠는가.” “성님 말이 그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놈 저러다가 저승 구경시키겠소.” 곽개천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길바닥에서 죽기를 바라지는 않지 않습니까. 일이 커질 수도 있지요…… 게다가 항자불살(降者不殺)이라 하지 않았소.” “임자는 겁도 많군. 사람 목숨이 임자 생각보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뱃구레에 된불을 맞고도 100리를 가는 게 사람 목숨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람이 한번 죽고 나면 그만이지, 죽은 뒤의 일을 누가 알겠나. 먼 달구질을 하거나, 먼가래를 치거나, 까마귀밥이 되거나, 죽은 사람이 알게 뭐야. 이놈도 마찬가지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나나 이놈이나 달린 목숨이 하나뿐이란 것이지. 찬 서리는 가슴에 사무치고 매서운 겨울바람 뼈에 닿았던 지난겨울의 고초를 우린 꿋꿋하게 참아내었지 않나…… 왜 그 고초를 이겨내려 했을까. 단 몇 닢의 이문 때문이 아니었나? 재수가 좋아야 좁쌀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고개치 넘을 때 토악질해가며 우리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미행하는 짐승에 쫓기고 대처로 나서면 지악스럽게 짖어대는 동네 개들에 쫓기며 살아왔지 않나. 그런데 소문난 씹에 잔등이 부러지더라고 이런 도둑의 접주에게 우리의 하찮은 이문들이 오랫동안 유린되어 왔지 않았나.” “그런데 성님, 우리 행중이 저지른 과실은 어떻게 하렵니까?” “길세만이 저지른 일 말인가?” 배고령은 대꾸는 않고 곽개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선지 몰라도 곽개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호를 백방시키고 말았다. 소금 도가의 서사와 그의 아내가 허겁지겁 달려와 송장이나 다름없는 윤기호를 업어갔다. 곽개천의 고집대로 놓아두었더라면 그나마 거둘 것도 없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소임을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색주가에 파묻혀 투전 놀음에 빠졌을 길세만의 행방을 찾는 일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정한조는 평소 그와 자별한 사이인 배고령으로 하여금 가뭇없이 숨어버린 그의 은신처를 수소문해보라는 분부를 내리고 아주 오금을 박았다. “임자들…… 궐자를 찾아내어 대령시키지 못하면 우리 행중이 말래 접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야.”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부산 여대생 보름째 실종…경찰 공개수사

    부산 여대생 보름째 실종…경찰 공개수사

    부산의 한 여대생이 보름째 행방에 묘연해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섰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대학생인 김모(23·여)씨가 실종됐다는 김씨 가족의 신고가 접수돼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6일 오전 4시 48분쯤 자취를 하고 있는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 원룸 건물에서 나간 뒤 지금까지 소식이 끊겼다. 전날 오후까지 김씨와 연락을 했던 김씨의 어머니는 이후 딸과 연락이 닿지 않자 12일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 군포경찰서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군포경찰서에서 신고를 넘겨받은 부산 남부경찰서는 김씨가 살던 원룸의 CCTV 화면 분석 및 일대에 대한 수색을 벌이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휴다전화와 지갑, 카드 등 소지품을 모두 원룸에 둔 채 집을 나간 것으로 확인됐고, 집을 나서기 전에는 노트북으로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를 통해 영화제목을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모 대학교 3학년인 김씨는 불안장애 등 지병으로 지난해 초부터 학업을 중단하고 1년 동안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은 뒤 지난 3월 학교에 복학해 원룸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학기 김씨가 장학금을 받을 만큼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한 것으로 볼 때 정신질환에 따른 단순 가출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소지품을 두고 나간 것을 미뤄 납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씨는 163cm의 키에 마른 체형으로 계란형 얼굴, 갈색 긴머리에 치아 교정장치를 하고 있다. 집을 나설 당시에는 모자를 쓰고 물방울 무늬가 있는 붉은 계통의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계명대 장대규·조진리 잇따라 등단

    계명대 장대규·조진리 잇따라 등단

    계명대 학생들이 기성 문단에 잇따라 등단했다. 계명대는 이 대학 문예창작학과 3학년 장대규(왼쪽·21)씨가 단편소설 ‘돌아온 엄마에게’로 현대문학 2013 신인상을 받았다고 19일 밝혔다. 또 같은 과 4학년 조진리(오른쪽·21·여)씨는 시와세계 신인상 공모에서 ‘그런 거 있잖아’ 등 5편의 시로 당선됐다. 장씨가 쓴 단편은 무능력한 아빠가 가출하는 엄마의 손을 자르자 그 손이 움직여 평소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고, 아이들 때문에 엄마가 돌아오지만 아빠가 다시 엄마에게 도끼를 휘두른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알레고리와 유머 그리고 풍자를 통해 가족서사 변용의 새로움을 전달하는 작품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씨의 경우 “타인과의 관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 파고드는 작품들을 통해 새롭고 솔직하며 대담한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이정수, 개콘 무대 돌아온다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이정수, 개콘 무대 돌아온다

    개그맨 이정수가 10년 만에 ‘개그콘서트’ 무대로 돌아온다. 이정수 소속사 태풍코리아 관계자는 3일 “개그맨 이정수가 10년 만에 KBS2 ‘개그콘서트’ 700회 특집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5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되는 ‘개그콘서트’ 녹화에 참여하며 과거 인기를 끌었던 코너인 ‘우격다짐’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이정수는 지난 2002년 ‘우격다짐’ 코너로 ‘미남 개그맨’이라는 호칭과 함께 인기를 누렸고 그 해 KBS 연예대상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이정수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개콘 무대에 설 수 있어 대단히 감사드린다”면서 “팬들과 개콘 식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설레이며 가출했다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는 복귀 소감을 전했다. ‘개그콘서트’ 700회 특집은 오는 9일 오후 9시 15분에 방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그렇게 자랐나 보다.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다. 사람들은 철부지, 말썽쟁이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또 너무나 외로워 가출을 했다. 싸움도 하고 죽도록 매를 맞아 깊은 상처도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암울했던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꿈 많은 소녀로 변신해 보란 듯이 당당하게 살아갔다. 인생의 먹구름을 스스로 걷어내고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83개가 됐다. 그중 48개는 이미 이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작가, 배우, 요가 강사, 블로거, 기업인, 꿈쟁이 등이다. 올해 나이 32살의 김수영씨. 스타 강사로도 소문나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200여 차례의 강연에서 10만명을 만났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으로 30만명의 독자들과 만났고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책으로 20만명을 만났다. 그의 블로거에 찾아온 손님은 무려 150만명이다. 가출소녀였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꿈 멘토’, ‘꿈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길지 않은 인생에, 남달랐던 그의 인생 이력을 간단히 짚어보자. 중학교를 중퇴한 가출 소녀였다. 집은 가난했다. 폭주족과 어울렸고, 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기도 했다. 그러다 ‘아직 우린 젊기에, 미래가 있기에’라는 서태지의 노래 ‘컴백홈’을 듣고 ‘나도 열심히 살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검정고시로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다. 1999년 학교에서 진행된 ‘도전 골든벨’ 방송 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렸고 2000년 연세대에 합격했다.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지만 8개월 만에 암세포가 발견돼 회사를 그만뒀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어내려 갔다. 73개의 꿈 리스트. 첫 출발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2005년 무작정 영국으로 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7년 로열더치셸에 입사해 연 800만 달러의 매출을 책임지는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했다. 2010년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냈다. 30만부가 팔렸다. ‘사람들에게 영감 주기’도 73개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사이 암이 완치됐다. 2011년 6월부터 1년 동안 휴가를 내고 유럽·아시아 여행길에 올랐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365명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펴냈다. 20만부나 팔렸다. ‘드림 파노라마’라는 회사를 만들어 꿈과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2월엔 꿈을 이루도록 돕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버키 노트’도 출시했다. 오는 9월 다시 지구의 나머지 반 바퀴를 돌기 위해 떠난다. 이번엔 335명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인터뷰한 이들까지 합하면 700명이 된다. 70억 지구의 0.0000001%다. 나름의 인류학적 보고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짧은 인생에서 이러한 이력들이 정말 가능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 회관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미친(me-親) 꿈에 도전하라’는 주제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강연 내용이 뭔지 먼저 물어봤다. “오늘날 청년들, 대학생들은 너무 따지다 보니 결론을 잘 못내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일을 엄마가 결정해 주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나면 멘토를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멘토링 자체를 반대합니다. 멘토링 또한 그 연장선상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강연할 때는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는 강연할 때 가끔 인도춤과 요가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여, 요가강사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여러 가지 수식어 중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즉각 ‘꿈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꿈쟁이만큼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스타강사가 된 까닭을 물었다. “저는 연구를 많이 한 학자도 아닙니다. 더군다가 자기계발을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가 걸어왔던 ‘실천’만을 얘기할 뿐이지요. 다른 분들은 강의할 때 훌륭한 사람들을 예로 들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얘기만 합니다. 거기에서 다들 진정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꿈에다 영감과 씨앗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차별성도 있고요.” 그가 꿈쟁이, 꿈 전도사로 나선 계기는 무엇일까. 2005년 입사를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암세포가 발견됐다. 평생 건강하게 살 것만 같았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후유증이 너무 컸다. 방황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이젠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펼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적어 보았더니 73가지(지금은 83개)였다. 중매쟁이 같은 엉뚱한 꿈도 있었지만 모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73가지 목표 중 중요도와 긴급한 정도를 점수로 매겼고 이 두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정렬을 했다. 목록의 첫 번째는 한국을 떠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한번뿐인 인생,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야만 할까. 인생의 3분의1 가까이를 한국에서 살았으니 다음 3분의1은 세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3분의1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꿈쟁이’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했던 얘기는 그때부터 이어진다. “이스라엘에서 63세 할머니를 만났어요. 네 살 때부터 노래를 했는데 10년 전 후두암 판정을 받았대요. 그래도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꿈이란 그런 것이구나 새삼 느꼈지요.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는 ‘그동안 죽을 고비를 일곱 번이나 넘겼다. 독립이 되고 나면 반드시 의사의 꿈을 이룰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70여개국을 다녀 보니 우리나라처럼 꿈을 꾸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 좋은 나라는 별로 없었어요.” 그는 탈레반 사람들과도 꿈을 주제로 인터뷰했고 레바논에 가서는 TV에 출연해 아랍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꿈 리스트 가운데 48개를 이뤄냈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기가 불안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사고가 나려면 우리 집 앞에서도 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탓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생각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을 따라 여수에서 10세 때부터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소풍 가는 날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당시 TV에서 유행하던 ‘민지의 일기’를 패러디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 덩치 큰 학생한테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왕따’를 당했다. 학교생활이 싫어졌다. 때마침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마저 매일 술을 마시고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학교와 가정,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외롭고 괴롭던 시절,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바스콘셀레스가 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였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더욱 따가웠다. 소풍날 장기자랑 시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불렀지만 ‘까진 아이’라는 말만 들었다. 성질이 나서 담배도 피워 보고 술도 마시며 어설프게 호기를 부렸다. 선생님한테 찍혔다. 그래서 맞섰고, 돌아온 것은 매뿐이었다. 주먹으로, 발길질로, 몽둥이로 만신창이가 됐다. 학교 다니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결국 가출을 하고 말았다. 친구집, 주유소 등을 전전했다. 패싸움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다. 중학교를 자퇴한 지 1년 반 만에 검정고시를 거쳐 여수정보과학고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수능을 며칠 앞두고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등학생 최초로 골든벨을 울리면서부터였다. 얼마 뒤 여수 진입 도로에 ‘여수정보과학고 골든벨 김수영, 연세대 인문계열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미운 오리새끼가 어느 날 갑자기 백조로 둔갑한 느낌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50여개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그가 적어놓은 꿈 중에 부모에게 집을 사주고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는 약속도 지켰다. 가출 당시 함께 지냈던 친구들도 지금은 장사를 하면서 잘 살고 있단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냐고 물었다. “지금은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뭔가 나눠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소설도 쓰고 싶다며 웃는다. 앞으로 1년간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로 떠나 또 다른 꿈의 여정을 펼칠 예정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꿈쟁이’ 김수영은 광주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다. 여수정보과학고 3학년 때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골든벨을 울렸다. 연세대에 진학해 영어영문학과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5~2006년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교(SOAS) 중국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열더치셸 카테고리 매니저, 골드만 삭스 애널리스트 등을 거쳤다. 현재는 여행가, 작가, 사업가, 마케터, 강연가, 블로거, 번역가,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요가 강사, 인도 발리우드 영화배우, 예술가, 기획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꿈의 파노라마’ 대표 꿈쟁이다. 위촉사항으로는 여수시 명예홍보대사, 서울시 드림멘토, 한국장학재단&어린이재단 명예홍보대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2010년),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2년), ‘드림레시피’(2013년 6월 예정) 등이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 싱가포르, 네팔, 레바논, 중국, 타이완 등 25개국 해외 매체에서 그의 활약상이 보도됐다.
  • [미주통신] 16세 소녀 납치 살인범이 단짝 친구들이라니…

    [미주통신] 16세 소녀 납치 살인범이 단짝 친구들이라니…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지역에서 작년 7월 발생했던 16세 소녀의 실종 사건이 이들의 단짝이었던 여학생들이 납치하여 살해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들 여학생들의 범행 동기가 단지 피해 소녀가 자신들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고 25일(이하 현지시각)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작년 7월 6일경 이 지역에 살던 모범생이었던 스카일라 니스(16)는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집을 나선 후 승용차를 타고 갑자기 사라졌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가출로 판단했으나 이후 귀가하지 않자 몇 달간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올해 1월, 니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라첼 소프(16)로부터 자신과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니스를 납치해 칼로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조사관은 피해자가 사는 곳에서 50여km 떨어진 야산에서 실종 소녀의 주검을 발견하고 이들을 살인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다.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들 두 소녀들은 20년 이상의 징역에 취해질 수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이들 소녀들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태연히 2개월여 동안 실종 소녀를 찾기 위한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이 지역 사회가 충격에 빠져 있다고 언론들은 덧붙였다. 사진=피살당한 스카일라 니스(친구들이 만든 추모 페이스북)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ik@gmail.com
  • 고교생 아파트서 잇단 투신자살

    고교생들이 잇따라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7일 오전 6시 20분쯤 경기 안산시의 한 아파트 화단에 A(15·고1)군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화면과 14층 복도 난간에 손을 디딘 흔적 등을 토대로 A군이 14층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A군은 품에 지닌 수첩에 ‘엄마 아빠가 신경을 많이 써주셨는데 속 많이 썩여 죄송하다. 미안하다. 친구들은 운동 열심히 해라’ 등의 메모를 남겼다. 교내 야구부원 합숙소에서 주로 생활하던 A군은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지난 토요일(11일) 집에서 통학하도록 학교 측이 조치했으나 가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 16일 오후 9시쯤 부산 북구 모 아파트 뒤편 화단에서 A(16·고교 1년)양이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양이 옥상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양은 쾌활한 성격이어서 교우관계가 원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양이 고교 입학 후 밤늦게까지 학업에 매달렸는데도 최근 중간고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상심했다는 지인들의 말을 바탕으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안산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자사고·특목고 못 가면 대포”… 고3만큼 고달픈 중2 ‘나’를 버리다

    “자사고·특목고 못 가면 대포”… 고3만큼 고달픈 중2 ‘나’를 버리다

    #1. 중학교 2학년 박모(14)양은 인터넷 채팅으로만 이야기한다. 결혼 이주 여성인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크고, 시댁과 사이도 나빠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채팅만 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폭발하고 말았다.‘내가 힘들게 한국으로 시집와서 누구 때문에 험한 일을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노는 딸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든 어머니는 딸을 때리고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러자 박양이 갑자기 손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과호흡증상을 일으켰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양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라고 진단했다. #2. “상관없어요. 어차피 고등학교 안 가요”김모(14)군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찾는 곳이 상담실이다. 수업이 싫다며 상담실에 드러누운 김군에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결과란 상담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싫다며 결국 커터 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버린 김군은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쉬는 것을 봤어요. 저도 쉬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김군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지만 부모는 ‘운동선수는 부상당하거나 탈락하면 대안이 없고, 진학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며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부모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김군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혔다.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럭비, 승마,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을 추천받은 김군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중2병이란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2병이란 일본어 ‘추니뵤’(中二病)에서 나온 신조어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지난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김정일은 방위 때문에, 김정은은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요즘 중2는 무섭고 거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중2병은 인터넷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경쟁과 입시 교육이 낳은 병리 현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학생의 서열화가 낳은 비극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등 청소년 활동이 발달한 영국에서 청소년 교육을 맡은 수 워커(50) 국제청소년성취포상협회 사무국장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2병은 선진국 청소년들도 겪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중2병과 같은 청소년들의 사춘기 증상은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타난다. 부모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겹치면서 증세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중2병은 청소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부부 갈등, 직장 스트레스, 오춘기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모와 증폭되면서 심각한 가정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2병의 원인으로 양육 실패,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왜곡된 입시제도,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제도, 흔들리는 가정을 꼽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제 시간에 밥 먹이고 준비물 챙겨서 학교 보내기’와 같은 기본적인 훈육에 실패하면 아이들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사회성 발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개도 안 된다. 특히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중2병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학교부터 정식 입시 체제에 들어간다. 내신성적이 고입, 대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이의 부담이 커진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간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정책 등으로 중2병이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일제고사를 치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차례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은 고교 서열에 좌절하고 만다는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사실상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수직화를 가속했다는 게 교육 현장의 중론이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입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식으로 고교 진학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대포’(대학 포기) 증상이 중2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핵가족과 부모의 생활고로 충분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연과 친구들이랑 어울릴 기회 없이 학원 뺑뺑이만 돌다가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화 기회를 아예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며 그다음이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 익사 순서다. 청소년의 11.2%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그 원인은 성적과 진학문제,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청소년들은 도피처이자 정보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12~19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80.7%다. 전년의 40.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2.6시간이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6.4%로 가장 높았다. 중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순서였다.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중2병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라며 “사춘기 때는 다 불안하고 우울한데, 또래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입시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교과목에 예체능 시간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중2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2병은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교사인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최근 자사고가 늘어나고 일반고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학생들에게 입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심어 주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교육과 사회의 근본 환경은 변화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몇 가지로 중2병을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로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하위권 학생은 경쟁에서 처졌다는 생각에 미래가 불안하다. 그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교육부 말처럼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일 뿐”이라며 “고교 진학에 중학교 교육이 휩쓸리지 않아야 중학생들의 불안함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서 중2병 소녀는 같은 병을 앓았던 선배의 조언으로 중2병을 탈출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 상태 ‘중2병’ 급증

    [주말 인사이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 상태 ‘중2병’ 급증

    #1. 중학교 2학년 박모(14)양은 인터넷 채팅으로만 이야기한다. 결혼 이주 여성인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크고, 시댁과 사이도 나빠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채팅만 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폭발하고 말았다.‘내가 힘들게 한국으로 시집와서 누구 때문에 험한 일을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노는 딸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든 어머니는 딸을 때리고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러자 박양이 갑자기 손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과호흡증상을 일으켰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양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라고 진단했다. #2. “상관없어요. 어차피 고등학교 안 가요”김모(14)군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찾는 곳이 상담실이다. 수업이 싫다며 상담실에 드러누운 김군에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결과란 상담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싫다며 결국 커터 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버린 김군은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쉬는 것을 봤어요. 저도 쉬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김군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지만 부모는 ‘운동선수는 부상당하거나 탈락하면 대안이 없고, 진학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며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부모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김군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혔다.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럭비, 승마,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을 추천받은 김군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중2병이란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2병이란 일본어 ‘추니뵤’(中二病)에서 나온 신조어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지난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김정일은 방위 때문에, 김정은은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요즘 중2는 무섭고 거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중2병은 인터넷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경쟁과 입시 교육이 낳은 병리 현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학생의 서열화가 낳은 비극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등 청소년 활동이 발달한 영국에서 청소년 교육을 맡은 수 워커(50) 국제청소년성취포상협회 사무국장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2병은 선진국 청소년들도 겪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중2병과 같은 청소년들의 사춘기 증상은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타난다. 부모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겹치면서 증세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중2병은 청소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부부 갈등, 직장 스트레스, 오춘기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모와 증폭되면서 심각한 가정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2병의 원인으로 양육 실패,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왜곡된 입시제도,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제도, 흔들리는 가정을 꼽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제 시간에 밥 먹이고 준비물 챙겨서 학교 보내기’와 같은 기본적인 훈육에 실패하면 아이들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사회성 발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개도 안 된다. 특히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중2병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학교부터 정식 입시 체제에 들어간다. 내신성적이 고입, 대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이의 부담이 커진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간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정책 등으로 중2병이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일제고사를 치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차례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은 고교 서열에 좌절하고 만다는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사실상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수직화를 가속했다는 게 교육 현장의 중론이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입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식으로 고교 진학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대포’(대학 포기) 증상이 중2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핵가족과 부모의 생활고로 충분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연과 친구들이랑 어울릴 기회 없이 학원 뺑뺑이만 돌다가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화 기회를 아예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며 그다음이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 익사 순서다. 청소년의 11.2%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그 원인은 성적과 진학문제,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청소년들은 도피처이자 정보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12~19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80.7%다. 전년의 40.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2.6시간이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6.4%로 가장 높았다. 중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순서였다.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중2병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라며 “사춘기 때는 다 불안하고 우울한데, 또래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입시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교과목에 예체능 시간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중2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2병은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교사인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최근 자사고가 늘어나고 일반고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학생들에게 입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심어 주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교육과 사회의 근본 환경은 변화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몇 가지로 중2병을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로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하위권 학생은 경쟁에서 처졌다는 생각에 미래가 불안하다. 그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교육부 말처럼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일 뿐”이라며 “고교 진학에 중학교 교육이 휩쓸리지 않아야 중학생들의 불안함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서 중2병 소녀는 같은 병을 앓았던 선배의 조언으로 중2병을 탈출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류상 사망’ 70대 남성, 52년만에 ‘생존자’ 신분 찾아

    52년 동안 사망자 신분으로 살던 70대 남자가 부산변호사회의 도움으로 생존자 신분을 되찾았다. 부산지방변호사회는 10일 생존해 있는데도 가족관계등록부에 1961년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던 이모(72)씨가 최근 사망기록을 말소하고 생존자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이씨는 1961년 5월 7일자로 어머니에 의해 사망신고가 돼 사망자로 등록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을 나간 이씨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어머니가 사망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씨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 15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살았다. 지난해 부산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이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통해 사망자로 돼 있는 사연을 밝히며 생존자 신분을 회복하고 싶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이씨의 사정을 전해들은 부산변호사회가 지원에 나섰다. 인권위원회 소속 윤재철 변호사는 이씨의 신분을 살리기 위해 부산가정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뒤 관할 구청과 교정시설 등을 1년 넘게 뛰어다닌 끝에 지난 3월 말 법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을 허가한다는 결정문을 받았다. 이씨는 오는 9월 출소한다. 윤 변호사는 “사망자로 등록돼 주민번호가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할 수 없지만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쓰는 가상의 주민번호가 있어 이를 이용해 사건처리나 교도소 수감 등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아들 살해후 저수지에 버린 엄마 징역 7년

    운다는 이유로 36개월 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저수지에 버린 엄마에게 법원이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창원지법 제4형사부(부장 이완희)는 9일 폭행치사와 시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최모(38)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범행을 도운 서모(40)씨, 정모(43·여)씨 부부에게는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운다는 이유로 아이를 마구 때려 어머니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고 죽은 아이를 저수지에 버린 것은 인면수심의 행태와 다름없다”며 최씨의 범행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경찰에 붙잡혀서도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자백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면서 그러나 “어릴 때 부모를 여의는 등 불우하게 컸고 가정불화로 가출한 점” 등을 참작해 검찰 구형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25일 가출해 머물고 있던 서씨 부부의 집 거실에서 36개월 된 아들이 보채자 서씨와 함께 마구 때려 뇌출혈로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정씨는 최·서씨 두 사람과 함께 아이 시신을 주남저수지에 내다버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최씨에게 징역 10년, 서씨에게 징역 8년, 정씨에게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2007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의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009년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시급 4500원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세가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 남성 쪽에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커버스토리] 한국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꿈… 1년 만에 악몽으로

    [커버스토리] 한국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꿈… 1년 만에 악몽으로

    2006년 12월. 스무살이 되던 해 응우옌(26·베트남)은 얼굴도 모르는 남편을 만나려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응우옌은 TV 속 한국 드라마의 따뜻하고 자상한 한국 남자를 상상했다. 한국으로 시집가면 부자 남편과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고향 언니들의 말도 떠올렸다. 결혼할 사람은 서울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부자라고 했다. 그러나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 “내가 너를 얼마에 데려왔는데 이년아. 넌 평생 벌어도 만져 보지도 못할 돈이야. 뭘 그렇게 쳐다봐!” 18살 차이가 나는 남편은 외출 자체를 못 하게 했다. 한국어 교실에 나가고 싶다고 해도 “돈이 드니 안 된다. 어디를 도망가려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남편과 시어머니는 응우옌에게 걸핏하면 욕설을 퍼부었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손찌검을 했다. 비 오는 날 두들겨 맞고 거리로 내쫓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는 늘 못 본 체했다. 이국에서 응우옌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은 인터넷뿐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외출하면 응우옌은 베트남어로 채팅이 가능한 ‘깻방’에 접속했다. 베트남어로 누군가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됐다. 깻방은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응우옌처럼 맞거나 갇혀 살다 가출하는 등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응우옌은 깻방에서 새로운 꿈과 용기를 얻었다. 감옥 같은 집을 탈출하면 뭘 하든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식당 일을 하면서 베트남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07년 12월 응우옌은 잠옷 바람으로 가출했다. 결혼 1년 만이었다. 수중에는 단돈 800원이 전부였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 공장이 그의 새로운 터전이 됐다. 깻방에서 소개받은 일자리였다. 매일 12시간씩, 시급 4500원을 받고 일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이혼하면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게 됐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있게 됐다. 응우옌은 “현미경으로 휴대전화 부품을 일일이 점검하는 일을 해서 늘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갇혀 살았던 결혼 생활보단 낫다”면서 “7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2010년에 그는 공장을 나와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그땐 한국말도 서툴러서 맨날 벌벌 떨고 울었어요. 달려들고 소리 지르고 때리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출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글 사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친정 식구처럼 내 얘기 귀 기울여줄 곳 있었더라면…”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친정 식구처럼 내 얘기 귀 기울여줄 곳 있었더라면…”

    “친정 식구들처럼 제 얘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집 나갈 생각은 안 했을 거예요.”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 여성 A(35)씨는 지난해 집을 나와 경기도의 한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로 생활하고 있다. 시어머니,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이 원인이 됐다. 5년 전 결혼했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고립됐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가출할지 모른다”며 한국어학당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A씨는 “주변에 하소연할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면서 “도피밖에 방법이 없어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국내 결혼 이주 여성들은 “필요한 순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상담만 잘 이뤄져도 다문화 여성의 가출,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으로 이주민 인권활동가로 일하는 원옥금(38)씨는 “이주 여성은 금전 문제, 자녀 문제 등 시댁과의 갈등을 대화로 풀고 싶어 하지만 언어, 문화 차이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이 어려워 괴로워한다”면서 “결국 버티고 버티다 가출까지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주 여성들이 인터넷 채팅으로 이주 남성을 만나고 가출을 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원씨는 현재 이혼소송 중인 베트남 이주 여성 B씨를 예로 들었다. B씨는 2010년 한국 남편과 결혼해 국내에 정착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도 한국인과 결혼해 한 마을에 정착한 터라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B씨의 남편은 아내가 베트남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집에 갇혀 우울증에 걸린 그는 결국 가출했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는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오완희(42)씨도 “가정에서 겉도는 결혼 이주 여성들을 돕기 위해 심리 상담과 치료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다문화지원센터에서도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률이 낮다. 원씨는 “전국 204개 지원센터가 있지만 정작 센터를 찾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면서 “상담 직원이 대부분 한국인인데 이주 여성 입장에서는 이들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주 여성의 현실에 공감하고 눈높이에 맞춘 상담을 해줄 수 있는 다문화가정 출신 상담사를 늘려야 효과적일 것이라는 조언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결혼 7년차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 여성은 “남편에게 구타당하는데 이웃의 신고로 경찰관이 출동했지만 가정사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남편을 적당히 타이르고는 돌아갔다”면서 “남편의 폭력은 그후로도 쭉 이어졌다”고 말했다. 오완희씨는 “가정폭력은 특성상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강력한 처벌과 함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가정폭력을 ‘4대악’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예방·단속에 나선 것에 대해 “가정폭력을 당하고 신고조차 못하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울뿐인 다문화 교육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주여성지원단체인 생각나무 BB센터의 안순화(48·중국 출신) 대표는 “옷가게에서 가격을 좀 깎으려고 흥정하려 하자 ‘돈 없는 외국인이라 저렇게 꼭 깎으려고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한국인들의 편견을 꼬집었다. 그는 “다문화 교육은 다수자인 한국 아이들이 받아 포용을 배우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이주 여성의 출신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책자를 만들어 보급하려 해도 다문화센터나 다문화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초등학교 등에서만 가져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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