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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한길 신임 정책기획수석 포부

    신임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은 3일 “최근 몇몇 정책들이 혼선을 빚고 있다”며 “앞으로 정책기획수석실의 정책조정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석은 또 “정확한 비서실 직제개편에 대해 아직 설명을 못들었지만 역할과 책임져야 할 분야가 넓어진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그는 이와관련,“현재 공보수석실에서 맡고 있는 국정홍보기능을 정책기획수석실로 옮기고대통령 비서실장 직속의 행사기획비서관이 정책기획 수석실로 배치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김수석은 이어 “성공적인 국정을 위해 보좌가 필요하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적인 손해나 희생을 해서라도 사회가 나아진다면 나는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늘 다짐해왔다”고 말했다.소감에 대해서는 “아직 어리둥절하다.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자세를 낮추었다.발탁배경에 대한 질문에는 “나의 어떤 점을 높이 사서 중요한 자리에 앉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대통령에게 여쭤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소설가출신의 초선의원으로 ‘아이디어맨’으로 불린다.지난 대선 당시 金大中후보의 TV대책팀장을 맡아 ‘미디어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대선후에는 대언론 관계를 담당하는 공보팀장과 인수위 대변인을 맡아 수완을 발휘했고 최근 金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준비작업에도 참여했다.계속 요직발탁설이 꾸준히 나돌정도로 金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인기탤런트 최명길씨의 남편이다. ■일본 도쿄생·46세■건국대 정외과 ■미주한국일보 기자 ■중앙일보 미주지사장 ■15대 국민회의 의원崔光淑 bori@
  • [정직한 역사 되찾기] (26) 민족대표 33인중 1인 李甲成

    올해로 ‘3·1 만세의거’ 80주년이다.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전민족 차원의독립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는 ‘3·1의거’는 4월 하순까지 조선 8도에서 모두 1,214건의 시위에 참가자는 110만명에 달했다.또 당시 만세시위에 나섰다가 일경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자가 7,500여명,검거된 자는 4만7,000여명에달했다. 구한말 의병항쟁 이후 일제말기의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항일대열에 참가한애국지사는 수십만을 헤아린다.그러나 이들 가운데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받은 사람은 99년 2월 현재 8,524명이다.아직도 상당수 애국지사들이 훈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보훈당국이 야박해서만은 아니다.독립운동 공적은 인정되나 훈장급에는 미치지 못하거나 독립운동을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거증자료를 찾지 못한 때문이다.독립진영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경우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자료찾기가 어려운 것은 일제의 비밀요원인 ‘밀정’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93년 5월 국가보훈처는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재심사 대상자 8명의명단을 국회 비공개회으에서 공개하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3·1의거’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이갑성이 포함돼 있었다.그에게 씌어진 혐의는 ‘밀정’으로 요샛말로 하면 일제의 스파이노릇을 했다는 것이다.광복회장까지 역임하면서 81년 사망 당시 사회장이 치러졌던 그가 ‘변절자’였다는 의혹은 62년 이래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그동안 제기된 의혹과 논란을 통해 그의 친일혐의를 추적해보자.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은 1889년(명치 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대구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세브란스의전(醫專) 약학과 3학년 재학중 중퇴하였다.이 해부터 세브란스병원 사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남강 이승훈(李昇薰)의 권유로 기독교계 대표로 3·1의거에 참여하였다.당시 민족대표중 가장 어린 나이였던 그는 외국인및 학생측과의 연락,독립선언서 배부,해외연락 업무를 맡아 의거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1의거 당일 태화관에서 일경에 체포된 그는 재판과정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않았다고 한다.또 감옥안에서도 3·1의거 기념 만세를 주동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민족대표들이 가출옥한 뒤인 22년 5월 뒤늦게 출옥했다.출옥후 이듬해 세브란스 의약회사 지배인으로 재직하던 그는 그 해 11월 ‘민립대학 기성발기총회’에서 중앙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전국을 돌며 민립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선전·강연하다가 체포돼 다시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 24년 11월 이승만이 주도한 ‘동지회’의 서울지부격인 ‘흥업구락부’의간사로 피선된 그는 25년 조선중앙기독청년회(현 YMCA) 이사로 피선돼 활동했다.그는 또 좌우(左右) 민족운동세력의 통합체인 ‘신간회’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29년 11월 광주학생의거 직후 ‘신간회사건’으로 6개월간 복역하였다.출옥후 30년경 경성공업주식회사 지배인으로 있다가 이듬해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그를 둘러싼 친일의혹은 그가 상해행에 오른 후 37년 일경에 체포돼 본국으로 압송될 때까지 7년간의 행적이다.생전에 그는이 시기의 활동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편 이갑성에 대한‘친일논쟁’은 62년 그가 건국훈장을 수훈할 무렵 불거져 나와 65년 광복회장에 취임한 직후,그리고 81년 그의 사망직후 한 잡지에서 그가 일제때 사용하였던 명함을 공개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었다.그의친일경력을 처음으로 공식 거론한 사람은 임시정부 서무국장 출신의 임의탁(林義鐸·건국훈장 독립장)씨.그는 ‘대한일보’(67.5.11)에 게재한 광복회비상총회 명의의 ‘성명서’에서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으로 솔선하여창씨개명을 한 점 ▒상해에서 임정에는 출입을 못하고 상해 조선인거류민회회장이자 유명한 친일파인 이갑녕(李甲寧)만 접촉한 사실 ▒총독부 산업국장의 주선으로 일본 미쯔비시(三菱)회사 신경(新京)출장소장으로 임명된 사실▒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의 촉탁을 지냈다는 주장 등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하였다. 또 유관순(柳寬順)열사의 오빠로 3·1의거에 참여했던 유우석(柳愚錫·건국훈장 애국장)씨는 이갑성이 “일제말기 일본인도 하기 어려운 경성공업사(군사공업)의 중역을 지냈다”고 증언하였다.두 사람 모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애국지사들로 이갑성의 친일문제와 관련,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독립유공자 가운데는 같이 활동했던 동지들의 증언만으로도 훈장을 받은 사례도 있다.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은 사료(史料)가치를 인정받고있다. 한편 임·유씨의 증언에 대해 이갑성은 반박성명을 통해 두 사람의 증언내용을 모두 부인하였다.그러나 몇 가지 사항을 검토해보면 이갑성의 반박은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선 창씨문제.이갑성은 자신이 이와모토(岩本正一)로 창씨개명한 사실(호적서류 참조)을 두고 당시 자신은 해외에 있어서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창씨는 호주(戶主)만이 할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호주였던 그가 자신의 창씨 사실을 몰랐다는 얘기는 말이안된다.33인 가운데 그를 포함해 정춘수(鄭春洙,禾谷春洙),최린(崔麟,佳山麟)등 3명이 창씨개명을 했다. 다음으로 이갑성이 미쯔비시회사의 신경출장소장을 지냈다는 주장.현재로서는 확인된 바는 없다.그러나 그가 ‘주식회사 일만산업공사(日滿産業公司)전무취체역’을 지낸 사실은 확인됐다.(명함사진 참조) 또 이갑성이 상해 임정에 출입을 못했다는 주장.이에 대해 임정 총무과장 출신 K씨는 “당시 이갑성은 임정요인과 교류가 없었으며 임정 청사에 출입을 못했다”고 증언한바 있다. 독립운동가 김성수(金聖壽·건국훈장 독립장)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어 이갑성이 상해에서 제중(濟衆)약국을 경영하면서 밀정행위를 했다고 사망직전에증언한 바 있는데 이갑성이 약국을 했을 가능성은 크다.우선 그가 약학을 공부했고,서대문형무소 수감시절 일경이 작성한 자료에 그가 상해로 도피하여약종상(藥種商)을 했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그가 경무국장 마루야마의촉탁을 지냈다는 주장도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이밖에도 그가 친일을 했다는 증언은 수없이 많다.독립운동가 사회에서는 그의 ‘친일’이 공공연한 비밀로 돼 있다.다만 그가 생전에 역대 정치권력과 깊은 유대를 가지고 독립운동가 사회의 상징적인 인물로 행세해왔기 때문에 나서서 언급하기를 꺼려왔을 뿐이라는 것.해방 직후부터 정치권에서 활동하면서 한때 이승만을 추종하던 그는 1961년 5·16이 발생하자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크게염려하던 군인들에 의한 군사혁명이 일어난 것은 다행한 일로…군사혁명 정부가 완전히 성공하도록 물심양면으로 깊이 협조해 주기를…’ 호소하였다. 이듬해 62년 그는 해방후 첫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으며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발기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65년에는 초대 광복회장에 취임하였고 이어 3·1동지회 고문,이준열사기념사업회총재 등 민족단체의 대표적 인물로 활동하였다.또 63년 그는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에도 참여하였는데 당시 이름만 써내면 훈장을 주었다는,소위 ‘백지사건(白紙事件)’에 그가 깊이 관련돼 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갑성의 일제하 행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상당수 있다.33인 출신으로 일제당국에 신분이 노출된 상태에서 어떻게 상해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또 거기서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37년 국내에 압송돼 와서 1년만에 가출옥한 배경이나 이후로도 수 차례 투옥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33인중 최후의 생존자로 매년 3·1절이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이갑성은 81년 3월 타계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그의 공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진실규명 차원에서도 그의 행적에 관한 자료조사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 鄭雲鉉 jwh59@
  • 강북구, 3개월간 불우이웃돕기행사 전개

    ‘달동네의 겨울은 따뜻했네’ 서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강북구(구청장 張正植)가 지난해 11월 15일부터 3개월여 동안 어려운 이웃돕기를 위해 펼친 ‘따뜻한 겨울보내기 운동’에 전체 구민의 28%가 참여해 생활이 어려울수록 인정이 살아있음을 과시했다. 구의 전체 주민은 36만521명.이 가운데 10만940명이 행사에 참가했다.구는모두 5억1,400만원의 성금 또는 성품을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 전달했다. 현금이 2억1,200만원이었으며 쌀 7만6,310t(1억6,000만원 상당),라면 방한복 등 기타 성품이 1억4,200만원어치나 됐다.전체 참가자가 평균 5,000원씩의 성금 및 성품을 낸 셈. 구는 이렇게 구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에다가 예산 등 법정지원금 28억200만원을 보태 총 9,060가구에 평균 36만6,000원씩 지원했다. 구가 이처럼 따뜻한 겨울 보내기에 적극 나선 것은 관내에 생활보호대상자가 많기 때문.지난해 1월에는 생활보호대상자가 4,684명이었으나 2월 현재 7,669명으로 1년 사이에 64%나 급증했다. 구는 구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등을 통해 따뜻한 겨울보내기 운동에 주민들이 적극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고 이같은 노력으로 서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이 따뜻한 인정을 보여주었다. 구는 특히 아버지가 부도로 수감되고 어머니가 가출해버렸으며 집마저 경매에 넘어간 權모양(8)에게 모교회 지하에 있는 방2칸을 마련해주었으며,선천성 심장병을 앓고있으나 가정형편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는 郭모군(13)에게 수술비 300만원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구 관계자는 “서민 밀집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성금액이 기대치를 넘어 생활이 어려울수록 인정이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金龍秀 dragon@
  • 두레식 학급 운영 집단 따돌림 극복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도 집단따돌림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3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개최한 ‘학교에서의 집단따돌림(왕따) 실태와 대안’에 관한 정책토론회에서 朴춘애 교사(광주 치평중)는 자신이 한때 ‘왕따’ 학생을 방치해 자퇴하도록 했던 가해자였다고 반성하면서 두레식 학급 운영이라는 집단따돌림 극복방안을 발표했다. 朴교사가 순희(가명)라는 ‘왕따’ 학생을 만난 것은 담임을 처음 맡은 94년.朴교사는 다른 학교에서 전학온 순희가 ‘왕따’로 찍힌 사실을 알고 ‘제발 다른 반에 배정됐으면…’하고 생각했다.그러나 순희는 朴교사의 반에배정됐고,朴교사는 담임이라는 단순한 의무감에서 ‘잘 해보자.너를 이해한다’는 편지를 순희에게 보냈지만 朴교사의 마음 속에도 순희는 이미 ‘왕따’가 돼 있었다.결국 순희는 몇 차례 가출 끝에 학교를 그만두었고,朴교사는 ‘쓸 데 없는 파장만 일으키던 아이가 자퇴했으니 이제 편한 나날을 보내게 됐다’는 옳지 못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朴교사는 그러나 그해스승의 날에 반장으로부터 “순희가 ‘왕따’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자퇴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뉘우치고 있다”는 편지를받고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집단따돌림을 없애는 방안에 대해 고심한 끝에품앗이로 농사일을 서로 돕는 두레를 학급 운영에 접목하기로 했다. 朴교사는 자기 반을 8개 두레로 나누고 학생들을 놀이두레,환경두레 등 각자 원하는 두레에 참여시켰다. 두레식 학급 운영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말수가 적어 늘 소외됐던 명수는 친구들이 마련해준 생일잔치에서 “처음 생일잔치를 해 본다.생일을 기억해준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朴교사는 “나보다 부족하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이해하고 부추겨서 같이 나아가는 것이 서로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깨닫는 과정이 반복되면 타인의 인격을 비인간적으로 침해하는 집단따돌림이 일어날 수없다”고 강조했다. 李鍾洛 jrlee@
  • 미전향장기수 북송 검토…정부,생계형·시국사범등 8,812명 사면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22일 준법서약을 거부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들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특단의 조치에는 이들의 북송 또는국군포로 및 납북자와의 맞교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朴장관은 이날 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미전향 장기수를 포함,시국·공안사범,생계형 범죄·부정수표·노동 사범 등 모두 8,812명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朴장관은 “사면으로 풀려나는 禹용각씨(71) 등 미전향 장기수 17명은 서울 ‘만남의 집’이나 대전 ‘사랑의 집’ 등에서 기거하게 되며 보안관찰을받게 될 것”이라면서 “특단의 조치에 포함되는 대상자도 이번에 사면된 17명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禹씨 등 미전향 장기수17명을 포함,잔형집행 면제 및 가석방 혜택을 받는 1,508명은 오는 25일 전국 교도소에서 일제히 석방된다. 사면대상은 ◆잔형 면제 및 복권 170명 ◆형선고 실효 및 복권 3,331명◆잔형 면제 2,702명 ◆형집행 정지 49명 ◆가석방·가출소 1,455명 등이다. 또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은 뒤 벌금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됐다풀려난 2,693명은 벌금 잔액을 면제받는다. 시국 및 공안사범은 高永復 전서울대 교수(71)와 薛曾澔씨(27) 등 연세대 사태 관련자 17명,재일 조총련간첩단 사건의 趙相綠씨(53) 등 24명이 석방된다. 이미 풀려난 시인 朴노해씨(40)를 비롯,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白泰雄씨(36),밀입북 사건의 林秀卿씨(30),徐敬元 전 국회의원(61),소설가 黃晳暎씨(54)등 2,733명이 복권된다. 히로뽕 투약혐의로 치료감호중인 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志晩씨(41)는 형선고 실효 혜택과 함께 퇴원조치된다.
  • 외환銀, 獨서 2,600억 외자유치

    외환은행의 제1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은행이 외환은행에 2,600억원을 추가출자하기로 했다. 코메르츠은행은 5일 열릴 외환은행 확대이사회에 전무와 종합기획부장 등 2명을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참여시켜 추가 출자의 시기와 출자방식 등을 확정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4일 “유상증자에 따른 코메르츠은행의 추가 출자는 우선주를 사모(私募)형태로 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코메르츠은행 관계자들은 외환은행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출자(3,360억원)도 직접 결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가출청소년은 다 내동생”/충남서천 털보구두병원 홍원기씨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게 더 좋은데 결혼은 무슨…” 12년째 가출 청소년을 거둬 숙식을 제공하고 학교까지 보내고 있는 洪元基 씨(37).충남 서천군 장항읍 창선리 농협 앞에서 ‘털보구두병원’을 운영하 는 노총각 미화원(美靴員)이다.그의 한평 구둣방에는 한겨울에도 훈기가 돈 다. 그는 지금 가출 청소년 2명을 데리고 산다.병국(18)·승용군(17)이 한 식구 다.전세지만 전혀 구애받지 않고 형제처럼 다정하게 지낸다. 요즘은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3월이면 이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때문 이다.학원에도 보내는 등 어느 때보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병국군은 서울 영등포역 시절부터 같이 지내던 동생이다.가출 청소년 거두 기는 대전역에서 처음 시작했다.지난 94년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구두닦는 일과 함께 계속했다.많을 때는 식구가 7명이나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97년 3월 고향인 장항으로 낙향했다.지게차 회사를 운영하 던 큰형 부부가 교통사고로 숨져 업을 잇기 위해서였다.하지만 곧 부도가 났 다. 큰 빚을 얻어 책방을 차렸지만 잘 안됐다.미화원으로 돌아간 것도 이 때 다.지금까지 그가 거둔 가출 청소년은 대략 70명.“그중에는 대학을 졸업한 뒤 어엿한 회사에 다니는 아이도 많아 대견하다”고 洪씨는 말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워 불려갔을 때 “우리 덕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274”라는 상대 학생 부모의 말을 듣고 밖으로 뛰쳐나간 아이가 안돌아왔던 일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단다. 그 후로는 아이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게 두려워 정부 지원이나 무료급식을 거부하고 직접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서천 |李天烈 sky@ [서천 | 李天烈 sky@]
  • 무의탁노인·가출 청소년 혈육처럼 30년 뒷바라지

    “어려운 이웃들이 모두 부모같고 자식같은데 어떻게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29일 서울 중구 황학동 대한적십자사 중부봉사관 지하식당.오전 11시40분부터 200여명의 노숙자,장애인,무의탁노인들이 줄을 섰다.그들에게 봉사관의‘동학회’ 회장 南基男씨(65·여)가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정성껏 밥과 반찬을 나눠주고 있었다.南씨는 무료급식소의 살림을 도맡고 있다.빨래도 손수 해준다. 南씨의 봉사 인생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지난 68년 사글세로 시작한 중국음식점을 3년만에 120여평 규모의 큰 음식점으로 키워낸 南씨는 가출 청소년 30여명을 종업원으로 고용,돌보기 시작했다.잠자리와 식사,일거리를 주며 그들의 어머니가 됐다. 78년 11월에는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무의탁노인을 돌보는 일도 시작했다.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82년 이산가족찾기운동 때는 15일 동안 이산가족들에게 무료급식을 했다.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장애인올림픽 때는 빨래와 청소로 선수들을 뒷바라지했다.매년 현충일에는 국립묘지에서 참배객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줬다.95년 삼풍백화점 사고 등 크고 작은 재해 현장에서도 南씨는 피해자들을 위해 밤을 새워 일했다. 96년에는 모국을 찾은 사할린 동포 10여명을 자신의 집에서 1주일 동안 돌보면서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이들과는 지금도 안부를 주고 받는다. 南씨가 가장 열성적으로 하는 일은 무의탁노인 돌보기.1주일에 두세번씩 밥과 반찬을 들고 오갈데 없는 노인 10여명의 집을 찾아가 돌봐준다.친동생보다 더 소중한 말벗도 된다. 전신마비 상태의 혈혈단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적도 있었고 4년 동안 돌봐온 89세 할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요양원으로 옮겨 돌보기도 했다. “정들었던 노인들이 세상을 뜰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는 南씨는 “다음달에는 무의탁 노인 5명을 더 만난다”며 기뻐했다. 南씨의 소망은 계속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건강을 잃으면 봉사도 할 수없기 때문이다.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EU집행위 불신임 위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공금유용,정실인사 등 비리 의혹으로 집단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유럽의회가 오는 14일 위원들의 비리혐의를 들어 집행위 전체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실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불신임 투표에서 재적의원 3분의 2가출석해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20명의 집행위원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 자크 상테르 집행위 의장은 조직개편,예산집행에 대한 의회의 감시 강화등자체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불신임을 피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EU 집행위의 부정비리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 11월.의회 감사국이 지난 97년 예산의 5%에 해당하는 50억달러 이상이 낭비됐거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게 시발점이다. 스페인의 마뉴엘 마린과 프랑스의 전 총리인 에디트 크레송 등 두 사람이비리 의혹의 장본인이다.마린은 지난 93∼94년 EU의 인도주의 예산 280만달러를 허위집행했으며 크레송은 친구를 집행위 고위직에 앉힌 정실인사 혐의를 받아왔다. 그러나 올해 EU의 순번제 의장국인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신중을 기해줄 것을 EU 의회에 촉구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朴希駿 pnb@
  • “승준이 친엄마 어디계세요”

    “승준이가 친엄마를 만나 기뻐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85년 태어난 지 한달도 안된 한국 아이를 입양해 14년 동안 길러온 린 폭스(44·간호사·미국 코네티컷주)의 간절한 새해 소망이다. 승준이의 미국 이름은 데이비드 폭스(14).영리하고 활달한 아이였다.음악과 운동·컴퓨터에 재능이 있었고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을 정도로 학교생활도 잘했다. 그러던 승준이가 자라면서 변하기 시작했다.외모가 다르다는 데서 소외감을 느꼈고 폭스의 친딸인 누나 멜린다와 자주 다투고 가족들을 피했다.양엄마인 폭스와도 대화를 꺼렸고 “친엄마가 왜 나를 버렸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97년말 폭스는 승준이 친엄마 찾기에 나섰다.컴퓨터와 책을 통해 한국관련정보를 수집했고 인터넷에 ‘權씨’ 성을 가진 승준이의 친엄마를 찾는다는사연도 띄웠다. 지난해 가을에는 승준이와 함께 1주일 동안 한국을 찾아 입양자료를 확인하고 ‘권미경’으로 알려진 친엄마의 고향 충남 홍성군도 방문했다.승준이가출생한 춘천 한림대병원도 찾았지만 결국 친엄마를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돌려야 했다. 폭스는 “누군가 승준이가 친엄마를 애타게 찾는다는 것을 일러 줄 것으로믿는다”고 말했다.金美京 chaplin7@
  • “외환은행에 2,600억 추가출자”-獨 코메르츠銀 의향서

    독일 코메르츠은행이 외환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직접출자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외환은행에 2,600억원을 추가 출자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이에 따라 외환은행의 증자문제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한국은행의 우회출자 또는 정부의 직접 출자 형태로 매듭지어질 공산이 커졌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코메르츠은행은 지난 연말 “외환은행에 대한 한은의직접출자나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우회출자와 상관없이 외환은행에 연내 2,600억원을 추가 출자하겠다”는 내용의 의향서(LOI)를 외환은행에 보내왔다. 한은 관계자는 “코메르츠은행의 이같은 방침은 국내 주식시장 회복 등으로 은행주가 뛰면서 외환은행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며 “향후 외자유입이 봇물처럼 늘어날 신호”라고 말했다.
  • 무대에 오른 가출청소년문제/문화마을 ‘98 방황하는 별들‘

    “어른하면 생각하는 거…”“장인어른 동네어른”“그런 거 말구”“술 여자 돈 도박 권력 전쟁” 경찰서 보호실에서의 대화 장면이다. 단란주점에 나가는 여학생,공부말고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모에게 반발하여 가출한 청소년,비디오방 등 금지구역에 출입하는 학생들,그곳 호객꾼 등… 문화마을이 연말까지 정동 이벤트홀 무대에 올리는 ‘98 방황하는 별들 힙합 버전’(윤대성 작·이기진 연출)의 모습이다. ‘가출 청소년 찾기’라는 주제를 적절하게 옮기는 공간이다. 이 작품은 청소년문제의 원인이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고 ‘어른들 탓’이 더 크다고 본다. “우린 정말 갈 곳도,할 것도 너무 없어”“그래 규제 단속 금지,온통 안되는 것 투성이야”…. 시끌벅적한 대사나 노랫말은 아이들 스스로 밝히는 방황의 이유,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를 되묻는다. 80년대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농촌이나 벽지의 초등학교 분교에서 교육현장을 지킨 이오덕선생이 육성을 담아 교육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방황하는…’은 90년대 도시의 ‘이 아이들…’로 봐도 무난할 듯. 모델 김승현 이선진, 가수 이동건 김지현, 개그맨 홍록기 김경식 등 청소년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주요 배역을 맡아 설득력을 한층 높였다. 박진영 H.O.T 젝스키스 핑클 컨츄리꼬꼬 김현정 터보 디바 업타운 등도 뮤지컬가수로 바꿔가며 찬조 출연한다. 오후 4시·7시.(02)720­1466
  • 북한의 참상 ‘꽃제비’/張淸洙 논설위원(대한포럼)

    북한의 식량난은 그곳 사회에 심각한 문제점을 파생시키고 있다.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의 자살이 급증하고 청소년들의 가출이 늘어나는 등 가족관계가 파괴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집을 뛰쳐나온 가출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걸인이나 부랑자로 전락하고 있다. 나이는 대개 12∼15세이고 부랑아·소매치기로 전전하는 아이들을 통틀어 북한 당국은‘꽃제비’라고 부른다. 현재 약 20만명으로 추산되며 북한 어디서든지 쉽게 목격할 수 있을 만큼 급증하고 있다. 이들 ‘꽃제비’들은 역 앞이나 장마당(암시장)을 배회하면서 음식물을 절취하고 집단패싸움도 예사롭게 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여만명 걸인·부랑자로 배회 KBS TV가 지난 일요일 밤 방영한 북한 ‘꽃제비’실상은 북한 식량난이 빚은 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굶주림에 지친 어린 아이들이 장마당 진흙구덩이에서 음식찌거기를 주워먹는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절함 그대로 였다. 바로 북녘 동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목불인견의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충격과 경악을 감출 수 없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철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겪는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어린이의 3분의 1이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이들을 구호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국제 구호관계자의 증언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들이다. 한마디로 북한정권의 비정상적·비이성적 그리고 후안무치한 부도덕의 극치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지난 반세기동안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는 정치구호의 허구성이 입증됐다는 점에서 북한당국의 겸허한 반성이 요구된다. 국가가 국민에 대해 삶의 조건을 보장해 주는 것은 기본적 책무이며 국민이 국가로부터 행복권을 부여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이러한 국가적 의무가 포기된다면 국가의 존재가치는 소멸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주민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초보적 삶의 조건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북한 정권의 존재가치는 이미 상실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엄밀하게 보면 북한 당국이 민생을 위한 최소한의 국정을 운영했어도 오늘과 같은 불행한 결과는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경제가 지난 8년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파탄위기에 빠졌고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주민들의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보다는 정권유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현재의 연간 군사비 65억달러 가운데 10%만 줄이고 연 10억달러의 정치선전비만 줄여도 북한의 식량난은 해결할 수 있다. ○경제교류 통해 식량난 해결을 북한의 식량난은 이같은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외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미봉책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북한은 무엇보다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에서 총체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교류 및 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식량난 뿐만 아니라 경제전반에 걸쳐 회복할 수 있는 여력도 축적될 수 있다. 아무튼 북한의 죄없는 어린이들이겪는 눈물겨운 참상은 사상과 체제를 떠나 동포애적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적극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량문제에 대한 적극적 지원대책과 함께 올 겨울을 살아남기 어려운 북녘 “꽃제비”들에게 따뜻한 옷 한벌이라도 보내 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겠다.
  • ‘왕따’ 가해 고교생 첫 구속

    ◎몸아픈 급우 폭행·담뱃불 지지기·침뱉은 술 강요/대구지검 영덕지청 6명 수감·6명 입건 대검찰청은 22일 급우나 선후배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왕따’ 학생들을 구속수사하는 등 엄중 처벌키로 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몸이 아픈 급우를 상습적으로 괴롭혀온 ‘왕따’ 가해 학생 6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왕따’로 가해 학생이 구속되기는 처음이다. 대검에 따르면 대구지검 영덕지청(成永薰 지청장)은 지난 18일 경북 울진군 P공교 2년 金모군(17) 등 6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6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金군 등은 지난 3월 울산에서 전학온 金모군(17)이 허리가 아파 자주 결석과 조퇴를 하며 함께 어울리지 않자 지난 4월25일 ‘생일잔치’를 해주겠다며 인근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이어 ‘생일주’라며 침과 가래를 뱉은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고 ‘생일빵’이라며 번갈아 가면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했다. 이들 가운데 4명은 담뱃불로 金군의 팔과 다리를 지져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이들은 지난 8월에도 金군을 집단으로 폭행했다. 金군은 계속된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지난 9월23일 가출했다가 검찰과 부모 등의 수소문 끝에 귀가한 뒤 ‘왕따’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金군은 현재 휴학중이며 다시 전학을 갈 예정이다.
  • 저질방송 추방하자(사설)

    우리 방송의 저질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방송개혁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상업성 방송의 대수술을 예고한 것은 방송의 폭력·선정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방송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사명감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 이 경고가 우리의 방송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방송은 국민정신의 건전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철저한 자기반성이 요구된다. 우리의 TV는 그동안 10대들의 성폭행을 여과없이 내보내는가 하면 피에로나 꼭두각시를 방불케 하는 해괴한 옷차림,드라마 불륜과 범죄프로 등 저질을 범람시킨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한다. 또 범죄사건을 재현한답시고 매춘 도박 절도 강간 가출에 이르기까지 일그러진 사회의 일면을 사회 전체의 모습인 양 화면에 반영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얼어 붙은 사회를 부정적인 면으로 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로 인해 대민봉사등 업무수행에 바빠야 할 경찰들이 하릴없이범죄재현 카메라에 이끌려 다니거나,100만원어치 호화쇼핑에 소개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을 외면한 무신경한 프로그램을 보면 저 방송사는 어느 나라에 속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내용방송이 이처럼 정도를 벗어나 우왕좌왕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이다. 광고수입의 노예가 되어 광고주에게 끌려다니는 동안 만신창이로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서 추한 몰골로 전락해버린 탓이다. 공영방송의 경우는 광고주에 예속당하지 않는다는 자부심 때문에 방송만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을 텐데도 오히려 프로그램 경쟁에 앞장서는 느낌이다. KBS TV는 아예 광고를 없애는 방안을 이번 계제에 강구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방송은 모든 가족이 함께 본다는 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사회의 밝은 부분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면 사회가 건전하고 올바르게 흘러갈것을 알면서도 시청자에게 흥미를 제공하는 데 급급해서 부정적인 면을 과장 반영하는 일을 고집한다면 사회를 어두운 쪽으로 몰아가려는 고의로밖에 볼수 없다. 새로 발족한 방송개혁위도 잘못된 내용에 대해 전처럼 형식적인 징계나 ‘시청자 사과’에 머물지 말고 저질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두번다시 방송에 발붙일 수 없게 강력한 처벌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IMF체제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영향력이 가장 큰 공중파방송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방송이 건강하게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 어린이 무료급식 ‘신나는 밥집’ 운영 鄭博順씨

    ◎10년째 굶는아이 돌보는 ‘밥집 천사’/88년 밥 훔치는 아이들 얘기 듣고 봉사 시작/매일 40여명 보살펴… 컴퓨터·피아노 지도도/“후원 갈수록 줄어 월200만원 유지비 부족 걱정” “한창 자랄 나이에 가정형편 때문에 굶주리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10동 41 ‘신나는 밥집’ 주인 鄭博順씨(51·여)는 10년 동안 결식 아동들에게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있다.이름은 밥집이지만 불우아동을 위한 복지시설과 다름 없다.20여평의 공간은 컴퓨터 5대와 탁구대,피아노 등을 갖춘 놀이방과 급식소로 구분돼 있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하루에 한끼조차 먹기 어려운 40여명의 어린이들이 대상이다. 학교를 마치고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오후가 되면 이곳으로 몰려든다.鄭씨는 간식을 주고 저녁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의 학습도 도와준다.“부끄러워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라”는 따뜻한 말도 아끼지 않는다. 저녁식사는 오후 7시.공부를 마치고 함께 하는 식사는 여느 가정집 부럽지 않다.‘음식나눔 은행’ 등을 통해 들어온 재료를 鄭씨가 정성스럽게 요리한 것으로 고깃국을 비롯,4가지 이상의 반찬이 나온다. 부모의 실직으로 이틀에 하루는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한 어린이는 “여기에 오면 밥과 간식도 주고 공부도 가르쳐줘 좋다”고 말했다. 鄭씨가 ‘신나는 밥집’을 연 것은 지난 88년.옷을 만들어 시장에 납품하는 가내수공업 공장을 운영하다가 ‘밥을 도둑질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장을 개조,무료밥집을 시작했다.“88올림픽 개최로 선진국이 됐다는 마당에 밥을 훔쳐 먹다 경찰서에 잡혀와 울먹이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鄭씨는 7년 전 부모의 가출로 갈 곳 없던 郭모양(17·고등학교 1년)을 친딸처럼 데리고 산다.많을 때는 10여명이나 됐지만 모두 자립시켰다.郭양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郭양 이름으로 1,000만원짜리 적금에 가입,후원금에서 5만원을 매월 납입하고 있다. 鄭씨의 따뜻한 선행이 알려지자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미용실 4곳은 한달에 한차례씩 무료로 이발을 해준다.인근 약국과 병원에서는 무료진료로 도와준다.달마다 독지가들로부터 쌀과 후원금도 들어온다. 하지만 한달에 200만원이 넘는 유지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鄭씨는 “요즘 들어 후원자들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비록 조그만 정성이라도 상처받은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본인의 신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02)877­6908
  • “폭력남편 처벌” 요구 주부 크게 늘어(IMF 전과 후)

    IMF 1년은 가정 내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주부들이 폭행하는 남편을 처벌해 달라며 법에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가정폭력특례법에 근거한 변화상이다. 이번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사용했을 때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93.6%가 ‘알고 있다’고 답변,높은 인지도를 보여줬다. 남편이 ‘제왕’처럼 군림하며 부인을 학대했을 경우 이제 이혼만이 아니라 인신구속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5일에는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어긴 한 가장이 법제정 이후 처음으로 구속됐다. 구속된 朴모씨는 평소 아내를 자주 폭행하다 법원으로부터 ‘안방출입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받아놓고도 안방에 들어가 아내를 폭행하다 구속됐다. 물론 남편의 폭력이나 구속이 IMF가 가져다 준 현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IMF가 전통적인 가정의 모럴을 흔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생계형 주부매춘이 늘어나고 있는가하면 가출·이혼 등 가정의 도덕성이 급속히 해이해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장애 남편 돌보는 여인들/李春鎬(대한광장)

    중증 장애 남편의 고통과 절망을 조용히 가슴에 담으며 헌신과 봉사로 긴 세월을 벗삼아 살아온 따스한 여인네들….몸도 마음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정성스레 돌보는 이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한국을 지켜온 여인들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엔 450만명의 장애인이 있으며 또한 매년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그리고 나라를 지키다 10만명 이상이 갑자기 장애인이 되는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현상은 현대산업사회에서 문명의 이기로부터 오는 인간의 예기치 못한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내·희생으로 사랑 실천 장애인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장애 남편을 돌보는 여인네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여인들에게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IMF관리체제 이후 경제적 고통으로 아내들의 가출뿐만 아니라 이미 10만명의 청소년이 가출했고 매일 255쌍이 이혼하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장애 남편과 아이들을위해 인내와 희생으로 가정을 훌륭히 지킨 이들이야말로 인간승리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가장 숭고한 여인네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할 국가적 차원의 장애인 복지문제까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잘못된 것이며 정부를 직무유기로 고발해야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든다.왜냐하면 이들은 한 국민으로서 자유로운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신성함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몰지각한 일반인들의 멸시와 배타,그리고 소외정책은 그들의 마음까지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더 이상 정책적 대안 없이 이들을 훌륭한 아내와 자랑스런 어머니로 미화시켜 일방적인 희생과 삶의 포기를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일자리와 따뜻한 사랑일 것이다.정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은 이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와 진정한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 복지는 지금까지 법과 제도는 있으되 실천이 없었고,말은 무성하되 열매없는 정책으로 그들을 기만해왔다고 본다.실효성 있는 정책의 실현을 촉구하기 위해 중증 장애인 남편과 인고의 세월을 운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순박한 여인네들의 간절한 소망을 전하고자 한다. ○실효성 있는 복지정책 첫째,떳떳한 사회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주세요.둘째,아무도 장애인에게 전세도 월세도 주지 않기 때문에 주택지원을 확대해 주세요.셋째,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확충해 주세요.넷째,소득이 적어 의료비 부담이 크므로 의료비 지원대상과 범위를 확대해 주세요.다섯째,학비지원을 보다 확대하여 자녀교육문제를 해결해 주세요.그 누구보다도 장애인 자신들의 문제를 잘 아는 이들의 요구에 정책입안자들은 진실로 귀기울여 주기 바란다. 지금 우리는 수채화처럼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이 여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줘야 할 것이다.
  • 韓銀 “외환은행 증자 참여 어렵다”/‘NO’라고 말한 중앙은행

    ◎“한은법 규정상 곤란… 외국 사례에도 없다’/정부권고 불구 불참의사… 금통위와 조율 주목 ‘외환은행에 출자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정부 의도와 상관없이 외환은행에 대한 추가 출자(증자 참여)를 할 수 없다고 잠정 결론지어 귀추가 주목된다. 24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23일 외환은행에 대한 추가 출자는 현행 관련법 체계에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정리,금통위원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외환은행에 대한 한은의 추가출자 여부는 한은 내부에서 한가지의 안(案)을 마련,금통위에 올려 의결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한은은 금통위원들에 대한 보고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한은법 규정에 의해 중앙은행이 영리법인에 추가 출자하는 것은 곤란하며 외국의 예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한은은 대안으로 정부가 다른 은행에 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관련 법규를 고친 뒤 추가 출자를 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통위원은 “외환은행에 대한 한은의 추가 출자 문제는 외환은행과 대주주인 한은간 사안으로만 봐서는 안되며 금융기관 구조조정이라는 전체의 틀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그런 점에서 금통위에서 안건을 심의·의결하기 전 단계에서 한은총재와 재경부장관 및 금감위원장이 만나 사전협의를 거치야 할 사안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금통위 의결사항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빠르면 이번 주,늦어도 다음 주에는 금통위를 열어 최종 확정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으로 미뤄볼 때 금통위의 의결을 거치기 이전 전철환 한은총재와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등 3개 기관장간 의견조율 과정을 거칠 것으로 알려져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감위는 조건부 승인을 받았던 외환은행의 증자시기를 당초 지난 9월 말에서 올 연말까지 연장시킨 상태이며,재경부는 한은의 추가 출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었다.외환은행은 총 1조원의 증자계획 중 한은에 지분율(33.62%)에 해당하는 3,360억여원을 증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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