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더티 올드맨 & 앙팡 테리블/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어느 시대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과 충돌은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가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어 큰일이다.”라는 탄식이었다고 하니, 세대 간의 그 유구한 반목의 역사에 새삼 놀라게 된다.
오랫동안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추하고 타락한 인간들이라고 비난해 왔고,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버릇없고 건방지다고 비판해 왔다.
예컨대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발하는 ‘반문화(counter-culture)’를 만들어낸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모토는 ‘30세가 넘은 사람들은 믿지 말자.’였다.
반면, 당시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상징적 저항수단이었던 가출과 마약과 프리섹스를 정면으로 비난했다.
세대 간의 충돌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딸의 일본인 친구 모리 도모코가 대학졸업 기념으로 한국에 놀러왔다. 하루종일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귀가하기 위해 퇴근 길 지하철을 탄 두 사람은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남자가 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며 호통을 쳤고, 두 젊은 여성들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삽시간에 자리를 빼앗겼다.
그 후, 도모코는 아무 말 없이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짐작컨대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은 나이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횡포를 부리는 후진국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이가 많다고 남의 자리를, 그것도 남자가 여자의 자리를 빼앗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의 나이든 세대는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젊은 사람들에게 전례 없는 모욕과 수모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운동권 젊은이들은 독재정권에는 순응하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군림했던 나이 든 사람들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원래 정치이데올로기 앞에서는 나이나 서열, 또는 부모나 스승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이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왜곡된 평등의식이 결합되면서,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나이 든 세대는 조직에서 밀려났고,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가정과 사회에서 힘을 잃었다.
그 결과, 나이 든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은 무서운 ‘앙팡 테리블’이 되었고, 젊은 사람들에게 늙은이들은 추잡한 ‘더티 올드맨’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젊은이들은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연장자들을 보수주의자, 기득권자, 특권향유자로 비난했고, 연령과 신분에 걸맞은 예우를 거부했으며, 노인들의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무시했다.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시류를 틈타 하루아침에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된 우리의 젊은이들은 안하무인으로 어른들을 무시했으며, 살벌한 태도로 한국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다.
그러자 조직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면서 한국사회는 급격한 혼란에 빠져들어 갔다.
노무현 정권의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는, 젊은 세대의 문화와 기성세대의 문화를 의도적으로 대립하고 반목하게 함으로써, 두 세대 모두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던 노 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두 세대 사이의 화해와 신뢰회복이며, 벌어진 상처의 치유이다.
지난 세월의 악몽이었던 세대 간의 불신과 불화는 앞서 말한 지하철 에피소드의 교훈처럼 우리의 인간관계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국제망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