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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성문 190여 차례 제출… 내연녀 살해·북한강 유기 ‘유부남 장교’ 무기징역 확정

    반성문 190여 차례 제출… 내연녀 살해·북한강 유기 ‘유부남 장교’ 무기징역 확정

    불륜 관계가 탄로날까 두려워 내연 관계였던 여성을 죽이고 시신을 북한강에 유기한 전직 장교 양광준(39)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190여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대법원은 너무나 잔혹한 범죄라며 중형을 그대로 인정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살인과 시체 훼손, 시체 유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광준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양광준은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나이와 성행,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동기와 수단, 결과 등을 따져봤을 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부남인 양광준은 같은 부대 미혼의 피해자와 교제 중이었고, 이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으려고 범행을 저질렀다. 2024년 10월 25일 오후 3시쯤 부대 주차장에 세워둔 자기 차 안에서 피해자와 다투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그리고 시신을 훼손한 뒤 다음날 밤 강원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했다. 범행 뒤에도 양광준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가족과 지인, 직장에 문자를 보내 마치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꾸몄다. 양광준 측은 ‘피해자가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아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시신을 훼손하고 숨긴 행위는 그 자체로 우발적일 수 없는 계획적인 범행”이라며 “범행 내용과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광준은 1심에서 반성문 7통, 항소심에서 136통, 상고심에서 51통 등 총 194통의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형량을 낮추지는 못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직업군인이었던 양광준은 사건 발생 후 군에서 파면당했다.
  • 정청래 “김병기도 25일 윤리감찰 지시…당, 지선 비상체제로”

    정청래 “김병기도 25일 윤리감찰 지시…당, 지선 비상체제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각종 의혹으로 사퇴한 김병기 전 원내대표에 대해 “(지난달) 25일 윤리감찰을 지시한 바 있다”고 1일 밝혔다. 정 대표는 이날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원내대표가 윤리감찰에서 배제됐는지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정 대표는 “당내 인사 누구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윤리 감찰 대상이 되면 비껴갈 수 없다”며 이같이 전했다. 앞서 김 전 원내대표는 대한항공에서 받은 호텔 숙박 초대권 이용 논란, 부인의 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 의혹, 보좌진을 통한 아들의 업무 해결 의혹 등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달 30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2022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강선우 의원과 관련, 금품을 오간 사실을 인지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정 대표는 강 의원에 대한 윤리감찰을 지시했지만 김 전 원내대표는 윤리감찰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전 원내대표는 공천 헌금 의혹이 아닌 자신 및 가족과 관련된 의혹과 관련해 윤리 감찰을 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6·3 지방선거와 관련해 “당은 지방선거 승리 비상 체제로 운영한다”면서 “조속히 종합 특검과 통일교·신천지 특검을 마무리하고 민생 속으로 달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 핵심 주요 정책인 ‘ABCDEF(인공지능·바이오·문화콘텐츠·방위산업·에너지) 정책’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당에서 선제적으로 국정 주요 과제에 대한 입법 절차를 2~3월에 마련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날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 ‘노무현의 꿈을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고 경남 양산을 방문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다.
  • 충북도 새해부터 의료비후불제 등 복지사업 지원대상 확대

    충북도 새해부터 의료비후불제 등 복지사업 지원대상 확대

    충북도 복지사업이 새해 들어 더욱 따뜻해진다.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신규사업도 마련해서다. 1일 충북도에 따르면 올해부터 의료비 후불제 지원 대상이 한부모가족까지 확대된다. 대출금액도 300만원에서 최대 500만원으로 늘어난다. 의료비 후불제는 큰돈이 필요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에 의료비를 빌려주고 무이자로 분할 상환하게 하는 전국 최초의 의료복지 제도다. 김영환 충북지사의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다. 해당 질병은 임플란트, 치아 교정, 심혈관, 뇌혈관, 척추, 암, 소화기, 호흡기, 산부인과, 비뇨기과, 골절, 안과 등 14개 질환이다. 초다자녀 가정 지원 대상은 5자녀 이상에서 4자녀 이상으로 확대된다. 지원 대상 확대로 가족관계등록부상 4자녀 이상이면서 주민등록상 1명 이상의 18세 이하 자녀가 부 또는 모와 함께 거주하면 18세 이하 자녀 한명당 100만원이 지원된다. 대학생 학자금 지원사업은 대학생과 졸업 후 2년 이내 미취업자에서 대학생과 졸업 후 5년 이내 미취업자로 지원 대상이 늘어난다. 도내 장기요양요원의 건강관리 등을 통합 지원할 충북도 장기요양요원 지원센터가 운영을 시작하고 도내 9~24세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학교 밖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소외가정 청소년 글로벌 연수가 신규사업으로 추진된다. 소득 기준과 관계없이 생계가 어려운 도민들이 푸드뱅크 등에서 1인당 2만원 상당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그냥 가져갈 수 있는 먹거리 기본보장 그냥드림 사업이 시행된다. 이 사업은 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시책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달라지는 제도와 시책을 적극 알려 도민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강남구 올해부터 90세 이상 보훈수당 월 15만원으로 인상

    강남구 올해부터 90세 이상 보훈수당 월 15만원으로 인상

    서울 강남구가 1일부터 90세 이상 보훈예우수당을 15만원으로 인상하고, 월 10만원의 참전유공자 배우자 복지수당을 새로 지급한다. 수당 지급 대상자는 지난해 말 기준 4838명이다. 이 중 90세 이상 560여명은 올해부터 인상된 지원을 받는다. 이에 따라 90세 이상이 연간 받는 지원금은 보훈예우수당, 설·추석·보훈의 날 위문금, 생일축하금을 모두 합해 총 145만원에서 205만원으로 오른다. 이는 서울 자치구 중에서 가장 많은 금액이다. 참전유공자는 법률상 자격이 유족에게 승계되지 않아 사망 시 배우자에게 보훈예우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이에 구는 조례를 정비해 복지수당 지급 근거를 마련했다. 또 구는 국가보훈부 사망일시금을 받더라도 강남구 사망위로금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중복 수혜 제한 조항을 삭제했다. 조성명 구청장은 “이번 제도 개선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보훈대상자와 그 유가족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라며 “보훈가족을 존경하는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유승민 “‘이재명입니다’ 문자에 답 안 해…총리직 제안 거절”

    유승민 “‘이재명입니다’ 문자에 답 안 해…총리직 제안 거절”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대선 이전 더불어민주당 측으로부터 국무총리직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가 직접 보낸 문자에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난해 2월 민주당의 한 의원이 ‘이재명 당시 대표가 집권하면 국무총리를 맡아 달라고 전달하라 했다’고 말했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 대표에게 전하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월에 이미 끝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도 민주당 쪽에서 여러 차례 연락이 왔고, 5월 초쯤엔 당시 의원이던 김민석 총리에게서 전화와 문자가 여러 통 왔지만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다음날 이 후보에게서 전화가 여러 통 왔고, ‘이재명입니다. 꼭 통화하길 바랍니다’라는 문자도 남아 있었다”며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갔고 괜히 오해받기 싫어 일절 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일을 하나. 이 대통령 밑에 총리 자리가 뭐가 탐이 나서 그걸 하겠느냐”며 “사람이 철학과 소신을 버려서까지 욕심낼 자리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임명직을 맡을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혜훈 전 의원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데 대해서는 “보수 인사를 빼가기 위한 전략”이라며 “이걸 통합이나 탕평, 협치라고 포장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보수를 위축시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라고 비판했다. 6·3 지방선거 출마 여부와 관련해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지금 우리 당의 모습으로는 지방선거를 해보나 마나”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경북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다 흔들릴 것”이라며 국민의힘의 참패를 예상했다. 한편 유승민 전 의원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연루된 ‘당원 게시판’ 논란에 대해서는 “법 이전에 정치적 문제”라며 “가족이 그런 글을 썼는데 본인이 몰랐다는 해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깨끗하게 사과하고 넘어갈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딸 유담씨의 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도 “법적·정치적·도의적·학문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며 “경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대학의 검증이 진행된다면 실컷 해보라. 결백은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 배현진 “제발 좀 조용히 고상하게”…한동훈 저격한 홍준표 직격

    배현진 “제발 좀 조용히 고상하게”…한동훈 저격한 홍준표 직격

    국민의힘 내 ‘당원 게시판 논란’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되는 가운데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향해 “제발 좀 조용히, 이제라도 고상하게 계셨으면 좋겠다”며 공개 반격에 나섰다. 배현진 의원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당원 게시판 논란을 비판한 홍 전 시장을 겨냥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수사 압박, 탈당, 하와이행, 정계 은퇴 선언. 이 단어들이 당원들 머릿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라며 “민주당 전매특허인 내로남불까지 보여주며 더 깊은 바닥을 파고 내려갈 이유가 굳이 있느냐”고 적었다. 배 의원은 “대단히 안타깝다”며 “참 정성 쏟고 응원했는데 결국 안 바뀔 걸 너무 기대했고, 보지 않아도 될 민낯까지 너무 많이 본 것 같다”고도 했다. 또 당무감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당감위원장이란 자가 감사 내용을 위조하고 꽁무니를 빼는 중인가 본데, 지엄한 법의 처분을 받게 될 듯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홍준표 전 시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한 전 대표의 해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 전 대표가 ‘익명이 보장된 당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글을 가족이 올린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해명한 데 대해, 홍 전 시장은 “가족 전원이 유치한 욕설과 비방에 동원됐다는데 본인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매일 집에 가지 않고 그때는 딴살림을 차렸었나”라고 직격했다. 앞서 한동훈 전 대표는 당무감사위가 자신이 윤 전 대통령 부부 등을 비방한 글을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한 데 대해 “익명이 보장된 당 게시판에 가족이 글을 올린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이 공개한 증거 자료에 대해서는 “동명이인 한동훈 명의의 상대적으로 수위 높은 게시물들을 가족 명의로 조작한 것”이라며 “허위 사실 유포를 통한 의도적인 흠집 내기 정치공작에 대해 민형사상 법적 조치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한 전 대표를 둘러싼 당원 게시판 논란을 계기로, 당내 인사들 간 공개 설전이 이어지며 국민의힘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 “일출 보기 힘들다했는데”… 병오년 새해 한라산 해맞이 장관에 탄성 연발

    “일출 보기 힘들다했는데”… 병오년 새해 한라산 해맞이 장관에 탄성 연발

    해돋이를 보기 어려울 것이란 예보와 달리, 새해 첫날 제주 곳곳에서는 구름 사이로 떠오른 해가 장관을 연출했다. 이른 아침부터 해맞이에 나선 관광객과 도민들은 예상치 못한 일출에 탄성을 자아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행사에 2만 2650여명이 참여했다고 1일 밝혔다. 특히 2026년 새해맞이를 위한 한라산 야간산행에는 정상 탐방 예약자 1500명을 포함해 2650여 명이 참여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관계자는 “사전 예약을 통해 한라산 야간산행에 나선 탐방객들이 구름 사이로 병오년 새해 해돋이를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다”면서 “전날(31일)부터 관음사, 성판악 등에서 세계유산본부 등 직원 120여명과 한라산 지킴이, 자원봉사자 등 200여명이 탐방객들의 저체온증 예방과 안전관리를 위해 힘쓴 결과 해맞이 행사를 무사히 치른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성산일출봉과 사계해안 등 제주 전역에서 해맞이 행사가 열리며 관광객과 도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계해안 일대는 끝없는 차량행렬로 도로가 마비되다시피 하며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사계해안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이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는 이 모(서울)씨는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 실망했지만 막상 구름 사이로 뜨는 해를 보니 감개무량하다”며 “병오년 새해에도 가족들이 모두 무탈하고 대한민국이 저 해처럼 다시 우뚝 서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지방기상청은 이날 “오전에는 산지를 중심으로 눈이 시작돼 점차 전 지역으로 확대되겠고, 3일까지 눈이 날리는 곳이 있겠다”며 “현재 서해상에서 유입된 낮은 구름대의 영향으로 제주도 전역이 흐린 가운데 일부 지역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고 예보했다. 특히 “이날 밤부터 순간풍속 시속 70㎞ 이상의 강풍이 불 가능성이 있어 강풍특보가 발표될 수 있다”며 “시설물 관리와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李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대도약 이뤄낼 것” [신년사 전문]

    李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대도약 이뤄낼 것” [신년사 전문]

    2026년 신년사 발표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첫날인 1일 “올해를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마음을 모아주신 덕분에 무너진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본 뒤 “그러나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이제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 주도 성장’,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 안전이 지켜지는 ‘지속 가능한 성장’,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 성장’ 등 대전환의 5대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개월보다 앞으로의 4년 5개월이 더 기대되는 정부가 되겠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붉은 말의 해,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정부를 믿고, 함께 위기의 파도를 건너 주신 우리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우리 모두에게 걱정과 불안을 이겨낸 회복과 정상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복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신속한 추경,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소비심리는 7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회복했고, 경제성장률 또한 상승 추세입니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4000을 돌파했고 수출은 연간 7000억 달러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려 섞인 좌절이 기대 섞인 전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어렵게 확보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150조원에 달하는 국민성장펀드, 여야가 합의한 ‘인공지능(AI) 시대의 첫 예산안’은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뒷받침할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민주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성장과 도약을 향한 우리의 지평을 크게 넓혔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핵 추진 잠수함 건조부터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까지, 르네상스를 맞이한 우리 한미동맹이 경제 부흥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변화는 ‘빛의 혁명’으로 입증된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추천제, 국민사서함, 타운홀미팅부터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의 생중계까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일상으로 만들고,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혁신을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신 덕분에 무너진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이제 더 빠르게 달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6년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특정 소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편법과 불공정을 확실히 없애고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겠습니다. 국가만 부강하고 국민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국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성장하는 대도약을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의 유일한 기준은 오직 ‘국민의 삶’입니다. 우리 국민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회복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결실의 시간’을 열어젖히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삶 속에서 직접 느끼실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어둠을 물리친 K민주주의의 찬란한 빛이 국민의 일상 속까지 따스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들어 내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표정이 더 밝아지는 나라,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더욱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초고속 산업화 시대의 ‘성공의 공식’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압축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자원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특정 지역, 특정 기업, 특정 계층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빛나는 성취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성장전략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도성장을 이끈 ‘성공의 공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성공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을 대도약의 새로운 미래로 이끌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대전환의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수도권 1극 체제’에서 ‘5극 3특 체제’로의 대전환은 지방에 대한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 필수 전략입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더 과감하게 지원하겠습니다. 지난해 완료한 해수부 이전은 시작일 뿐입니다. 서울은 경제 수도로, 중부권은 행정수도로, 남부권은 해양 수도로 대한민국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습니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입니다. 인재와 기술 양성을 위한 교육투자, 삶의 질을 높여줄 광역교통과 문화시설 투자, 여기에 관광 정책까지 하나로 잇는 집중 투자를 통해 ‘지방 주도 성장’의 기반을 촘촘하게 실현해 내겠습니다. 둘째, ‘일부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지만, 그로 인한 혜택이 일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방산, 원전 수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공동체의 역량과 국민 전체의 노력으로 이뤄낸 공동의 경제적 성과가 중소·벤처 기업까지 흐르고, 국민들의 호주머니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국민 누구나 나라의 성장 발전에 투자하고, 성장의 열매를 고루 나눌 수 있는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이끌었고 2000년대 정보기술(IT) 강국으로의 도약은 혁신하는 벤처 정신이 이끌었습니다. AI 시대부터 에너지 대전환까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 ‘창조적 파괴’를 이끌 혁신가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춰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마음껏 혁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자산이 되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어떤 아이디어도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셋째, 생명을 경시하고 위험을 당연시하는 성장에서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산재 사망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생명 경시에 대한 비용과 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일터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도, 나라의 지속적 발전도 요원합니다.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을 통해서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안전한 일터에서 이뤄낸 성장이야말로 국민 행복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네 번째로, 상품만 앞세우는 성장에서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K콘텐츠 수출이 이차전지도 전기차도 넘어서는 시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이제 필수 성장전략입니다. 문화가 곧 경제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이 됐습니다. K팝 팬덤이 K뷰티 마니아로 성장합니다. K드라마 시청률이 K푸드 판매율을 끌어올립니다. 문화를 매개로 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K컬처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지 않도록, 대중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초예술을 비롯해 문화 생태계 전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9조 6000억원까지 대폭 증액한 문화 예산을 토대로, K콘텐츠가 세계 속에 더 넓고 깊게 스며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전쟁 위협을 안고 사는 이 불안한 성장에서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굳건한 평화는 성장의 다른 말이고, 튼튼한 안보가 번영의 동력입니다. 적대로 인한 비용과 위험을, 평화가 뒷받침하는 성장으로 바꿔낸다면 지금의 ‘코리아 리스크’를 미래의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와 한반도 평화·안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 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입니다.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한 한미동맹, 강력한 자주국방을 토대로 한반도 평화 공존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세계를 향해 더 넓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고,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모델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대전환의 원칙은 낭만적 당위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성장 발전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한 호소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 실천과 행동의 시간입니다. 2026년이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오직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해 외교무대를 누비며 ‘국력을 키워야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국력이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굴곡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력의 원천은 언제나 국민이었습니다. 5200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수록, 저마다의 꿈과 희망, 도전이 넘쳐날수록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국민주권정부는 ‘국가가 부강해지면 내 삶도 나아지느냐’는 우리 국민들의 절박한 질문에 더욱 성실하게 응답하겠습니다. 지나간 7개월보다 앞으로의 4년 5개월이 더 기대되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각오로 작은 변화의 성과들을 하나하나 눈덩이처럼 키워나가겠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개혁의 과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인내심과 진정성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이 모든 지난하고 위대한 과업이 국민 통합과 굳건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절망의 겨울을 희망의 봄으로 바꿔내신 우리 국민들의 그 저력을 믿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여정에 함께해 주십시오. 지난해 힘을 모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낸 것처럼, 이제 전 세계가 따라 배울 ‘성장과 도약의 새로운 표준’을 함께 만들어 냅시다. 대한민국 대도약, 결국 국민이 합니다! 고맙습니다.
  • 끊이지 않는 케네디家의 비극… 35세 외손녀 혈액암으로 숨져

    끊이지 않는 케네디家의 비극… 35세 외손녀 혈액암으로 숨져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인 타티아나 슐로스버그가 30일(현지시간) 백혈병 투병 끝에 별세했다. 35세. 슐로스버그의 가족은 이날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박물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운 타티아나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인 캐럴라인 케네디와 디자이너 겸 예술가 에드윈 슐로스버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고인은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언론계에 진출해 과학·기후 분야 전문기자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뉴욕타임스(NYT)에서 활동했고, ‘눈에 띄지 않는 소비: 당신이 모르는 환경적 영향’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2021년 12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런던 지하철의 에너지를 활용해 가정에 열을 공급하는 지역 실험에 대해 보도해 주목받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뉴요커’에 실린 ‘내 피와의 싸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2024년 5월 둘째를 출산한 뒤 희귀 돌연변이를 동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진단과 함께 1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이 선고받다고 밝힌 바 있다. 슐로스버그의 죽음으로 케네디 가문은 또한번 비극을 맞이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3년 총격으로 암살당했고, 동생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도 1968년 유세 도중 총격으로 숨졌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1999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고인은 앞서 기고문에서는 케네디 가문의 비극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게 끼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적기도 했다. 그는 “나는 평생 착한 학생이 되고, 착한 여동생 되고,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면서 “이제 나는 우리 가족의 삶에 새로운 비극을 더했고,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썼다.
  • 한 가족 역사, 시간 압축 통해 전복한 작가의식 발군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심사평]

    한 가족 역사, 시간 압축 통해 전복한 작가의식 발군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심사평]

    202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는 122편의 작품이 문을 두드렸다. 고립된 개인의 역사를 통해 우리 시대 폭력의 기원을 탐색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시공간과 사건을 정교하게 구조화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별것이 다 대수다’는 강력한 메타포를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현실과의 충돌을 더 집요하게 벼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밤에, 그 밤에 좁아지는 도로 위에서’는 고립된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밀도 높은 연극성이 인상적이었지만 정서가 사건을 앞서가거나 이야기가 도식화되는 점들이 지적되었다. ‘0의 소비’는 애착을 느끼는 물건을 지키려는 인간과 인간성을 분석하는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가 매력적이었음에도 인간성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이 예측할 수 있는 결말로 이어졌다. ‘달리고 볼일’은 장애인 생존권을 전면에 다루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이 감동을 주지만 타자화된 시선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주저되었다. ‘곰, 문’은 곰 사육장에서 탈출한 곰이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을 배경으로 동물착취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비극성을 체감하게 했다. ‘포말’은 호텔 스위트룸에서의 하루와 한 가족의 지리멸렬한 역사를 대비시킨 강력한 역설이 안정적인 극적 구조를 만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궤적, 어머니와 딸이 처한 조건이 전형적일 수 있음에도 시간의 압축을 통해 전복시킨 작가의식이 발군이었다. 우리는 각 인물의 최대치를 이끌어 흩어짐의 미학을 보게 한 ‘포말’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 작가에게 축하를 건네며, 희곡 문학의 미덕과 희망을 다시 발견하게 해 준 후보작 작가들에게도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
  • 포말/이호영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포말/이호영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등장인물문익 60대  창현 30대응현 30대  현선 60대 무대 여름. 노을 지는 오후. 제주도 호텔 스위트룸. 블루와 화이트 톤의 고급 리조트로 세련된 분위기이다. 넓은 창으로 지중해 빛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고급 라탄과 실크 벽지가 럭셔리해 보인다. 화려한 다이닝 룸이 있고, 넓은 거실에 스트라이프 소파가 놓여 있다. 침실은 두 개로 킹사이즈 침대가 하나 있는 곳만 관객석에서 내부가 보이고, 한 곳은 내부가 보이지 않게 문으로만 존재한다. 호화로운 숙소에 비해 이들의 차림은 수수하고, 단출하다. 좋은 방향제 향기가 은은하다. 가끔 파도 소리가 들린다. 1장 문이 열린다. 문익, 창현, 응현, 현선 차례로 들어온다. 각자 자신의 짐을 들고 있지만, 현선은 빈손이며 어깨를 떨고 있다. 문익 엄마 눕혀 얼른. 창현 엄마. 이쪽이요. 창현이 현선을 내부가 보이는 침실로 안내하고, 현선은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응현이 창현과 현선을 따라 들어간다. 외투와 가져온 짐은 모두 내부가 보이는 침실로 옮겨진다. 응현 여기가 안방인가? 창현 호텔에 안방이 어디 있어. 그냥 침실이지. 응현 처음 와 봐서 그래. 오빠도 두 번째잖아. 현선 추워. 에어컨 좀 꺼 줘. 응현 이건가? (삑-삑-삑-삑-) 음? 창현 비켜. 에어컨이 꺼지는 소리가 난다. 응현, 머쓱한 제스처를 취하고 현선의 이불을 덮어 준다. 응현 엄마. 저희 마루에 있을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현선 응. 창현 마루 아니고 거실. 창현과 응현, 거실로 나간다. 문익, 창 바깥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현 좋죠? 문익 그러게. 끝내준다. 창현 밤에는 불꽃놀이도 옥상에서 해준대요. 문익 이렇게 비싼 방 냄새를 맡아 보네. 창현 앞으로는 자주 그래야죠. 문익 (등을 토닥이며) 아껴 써. 창현 좋아하시는 거 보려고 열심히 하는 건데요. 문익 룸서비스 시킨 건 언제 오는 거야? 가지러 가는 건가? 창현 가져다줘요. 올라오면서 주문했으니까 좀 걸리겠죠. 응현, 호텔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문익 소주도 시킬 수 있나? 창현 시킬 수 있죠. 문익 호텔에서 시키면 비싸잖아. 창현 상관없… (웃으며) 네, 그럼 그건 그냥 일 층 로비에 편의점 있으니까 사 올게요. 문익 그럴래? 창현 네. 다녀올게요. 문익 여기 카드. 창현 됐어요. 제가 사 올게요. 창현, 나간다. 응현 그렇게 좋으세요? 문익 시늉. 응현 네? 문익 오빠는 뿌듯함이 윤활제잖아. 맞춰 줘야지. (소파에 벌러덩 누우며) 아이고- 그래도 우리 아들 잘났다! 응현 근데 엄마는 감기가 맞는 거죠? 문익 그렇겠지. 병원 아직 안 가봤어. 응현 네? 문익 너랑 수영하고 나서 더 심해졌어. 그니까 오빠가 호텔 수영장 있다고 말했는데 왜 말도 없이 바다를 즐겨. 응현 이미 일주일째 골골댔다면서요. 제주도 여행을 취소하고 병원에 갔어야죠. 문익 엄마가 병원 안 가겠다는데 그럼 억지로 끌고 가냐? 그리고 그럼 니 오빠가 실망했을 거 아냐. 응현 못하실 것도 없잖아요. 아빠 성깔에. 문익 약 먹으면 나을 거라 그래서 지켜보는 중이야. 좀 기다려. 정 못 버티겠으면 근무하다가도 전화 주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 응현 아빠 일하는 곳에서 그런 게 가능해요? 그렇게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 문익 시끄러워. 응현 …엄마 성격에 아빠 일하는 시간대에 전화 안 할 텐데. 기어가더라도 혼자 가지. 문익 그만. 아빠 짜증 나려고 그래. 현선 추워… 추워…. 2장 해가 졌다. 소파에서 술 먹기 시작하는 문익, 창현, 응현. 건배. 셋 모두 앞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 틈틈이 멈추지 않고 마신다. 아주 조금씩 취기가 오른다. 창현 좋죠?! 문익 응현아, 엄마 먹을 것 좀 덜어서 문 안에 넣어줘. 응현 엄마가 먹을 게 별로 없어요. 죄다 고기라. 창현 과일 담아. 과일. 샤인머스캣 좋잖아. 응현, 접시를 꺼내 오고 냉장고에서 꺼낸 과일을 담고 방문을 연다. 응현 엄마. 엄마. 샤인머스캣 드실래요? 현선 …. 응현 엄마. 현선 … 안 먹어…. 응현 엄마.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요. 현선 물… 물…. 응현 아. 물. 응현, 거실에서 물을 떠서 가져다준다. 창현 여태 물도 안 드렸어? 응현 힘들면 부르세요. 현선 …. 응현, 문 닫지 않고 거실로 나온다. 창현 대체 어쩌다가 저런 거예요? 저 상태로 물에서 어떻게 논 건지 이해가 안 되네. 문익 요즘 계속 안 좋았어. 창현 자기관리를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문익 (땅콩 던져 먹으며) 집에서 쉬어야 했나? 응현 아빠랑 오빠가 계속 같이 와야 한다고 했잖아요. 창현 그럼 안 오냐? 이렇게 좋은 곳을 예약했는데. 이제 바쁘고 지은이 눈치 보여서 예전처럼 넷이 돌아다닐 수 없는데 힘쓴 거잖아. 응현 알았어…. 누가 뭐래. 문익 내가 봤을 땐 할머니 돌아가시고 힘들어서 그래. 이제 두 달 찼잖아. 응현 그런 것 같기도 해요. 3년을 긴장 상태로 매일 살았는데. 한계에 온 거겠죠. 창현 저 정도면 너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응현 나 잘살고 있어 혼자. 창현 아빠는 계속 일하시고, 엄마 심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무리하고 있는데, 너는 뭐 특별히 하는 것도 없잖아. 지금. 응현 오빠. 나도 생활이라는 게 있어. 이제 내 동네는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라고. 창현 자식 도리를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단 생각은 안 드냐? 너만 자유로우면 다 괜찮아? 주변 안 봐? 응현 그럼 오빠가 서울로 와. 부모님 계신 곳으로. 창현 지은이랑 이제 막 살림 합쳤는데 무슨 헛소리야. 내가 혼자냐? 응현 그니까 합칠 때 서울로 오지. 창현 내가 평생 모은 돈, 일하는 곳 거리, 지은이 기준 이 세 개 다 맞는 데가 어딘 줄 알아? 인천 저 끝. 거기 하나 나오더라.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조건이 거길 고른 거야. (짧은 사이) 넌 청약이 뭔지는 아냐? 문익 아무튼 할머니 일도 잘 마무리가 됐고, 이제 엄마는 건강만 잘하면 돼. 창현 (한숨)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문익 뭐. 창현 할머니 부동산은 뭐 그렇게 됐고, 현금 분배가 이상하게 됐다면서요. 문익 말하자면 너무 긴데, 하여간 엄마 태도가 제일 난감했어. 창현 또 왜요. 문익 엄마가 자기는 다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나만 황당하잖아. 창현 아빠 힘드셨겠네요. 응현 엄마가 필요 없다고 하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창현 엄마가 혼자냐? 그래서요? 이모들만 가져갔나요? 문익 내가 그렇게는 안 놔두지. 창현 역시 아버지! 아직 지혜로우셔. 보이냐? 아빠가 계셔서 엄마가 사는 거라니까. 응현 무슨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문익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야. 우리끼리니까. 응현 엄마 들리면 또 불편하게. 창현 그 돈 나중에 달라고나 하지 마라. 너 지금처럼 살면 무조건이다. 응현 내가 뭘…. 창현 그래서 말해봐. 니 인생을 이제 어쩔 셈이야? 응현 뭘…. 창현 뭐하면서 사느냐고. 하루 일과를. 평가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설명해 봐. 문익 에헤이. 부담 주지 마라 동생한테. 응현 걱정해서 물어보는 것도 아니잖아. 문익 (살피다) 오빠가 이런 데서 재워주니까 고맙다고 한 번 성의껏 해봐. 응현 그냥 나는…. 몰라. 엄마처럼은 살고 싶다. 창현 많이 망가졌구나. 내 동생. 응현 나? 창현 엄마처럼 사는 게 뭐가 좋냐. 이리 휘둘리고 저리 쫓아다니고. 평생을 가족들 무료로 간병이나 하고. 이번에 외할머니 돌아가시면서 겨우 종료된 거지. 아빠 면전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너무하신 거예요.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평일에는 대전에서 양가 할아버지들 집 왕래하면서 휠체어 두 개씩 끌고, 주말에는 아버지 반찬 챙긴다고 서울 왔다 갔다 하는 거 볼 때마다, 솔직히 내가 남자인 게 다행이더라. 문익 엄마가 자진해서 한 거야. 그때 양가에 추억이 얼마나 많다고 했는데. 창현 고모도 안 했잖아요. 남의 아빠 돌보는 게 편해요? 문익 그럼 너는, 너 바쁘고 응현이가 아빠 간호 못 하겠다. 그러면 고민 없이 요양원으로 보내버리겠다? 하하하. 사이. 문익 뭐야? 응현 아무튼 나는…. 나는…. 더 설명하기 싫어. 나에 대해서. 그거 하기 싫어서 서울에서 나온 건데. 문익 그래도 응현이는 엄마랑 다르지. 자기 직업이 있으니까. 창현 책 하나 냈다고 뭐. 그런 걸 누가 읽기는 하냐? 응현 인기 없어. 돈 안 돼. 아무도 몰라. 됐어? 창현 와 …. 이렇게 회피하는 거, 이거 딱 엄마잖아. 비슷한 줄만 알았는데 그냥 똑같네. 응현 당장 무슨 말을 해도 오빠는 만족 못 해. 모두가 오빠처럼 계획 세우고 준비된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참 웃겨. 오빠는 엄마를 말로는 딱하게 여기면서, 엄마처럼 사는 건 별로라고 깎아내리고 욕하네. 그건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게 아니야. 평가지. 창현 넌 여자고, 엄마랑 아예 똑같으니까,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게 없겠지. 응현 분명하게 말하는데 내가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같은 성별이어서가 아니라, 이 집에서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창현 그렇다고 네가 엄마한테 가장 잘한 사람도 아니지. 응현 … 오빠도 이제 용돈 좀 보낸다고…. 창현 용돈 좀? 용돈 조옴? 서른 먹고 처맞고 싶냐? 사이. 응현 저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문익 딸! 임신 안 돼! 응현, 퇴장. 창현, 응현이 나간 걸 확인한다. 문익 그래. 말 나온 김에 너희 집들이 한 번 해야지. 창현 나중에요. 문익 지금쯤 정리가 다 된 거 아냐? 창현 문제가 좀 생겨서 아직 입주 못 했어요. 문익 무슨 문제? 무리해서 구한 집이라고, 저번에 계약금까지 냈다고 자랑했잖아. 창현 자랑은 무슨. 창현, 소주를 세 잔 연속 들이켠다. 문익, 그 속도에 맞춰서 세 잔 들이켠다. 사이. 창현 아빠. 저 여쭤볼 거 있어요. 문익 뭔데 그래. 창현 엄마랑 응현이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문익 그래. 창현 얼마 전에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 집 보러 오셨거든요. 문익 그래서? 창현 놀라시더라고요. 문익 왜. 창현 너무 오래됐고, 좁다고. 문익 아니, 아니, 젊은이 부부가 그 정도 시작이면 훌륭하지 뭘! 창현 미국 가서 살면 어떻겠냐 그러세요. 문익 미국? 창현 프랜차이즈 장사 뭐 있냐 그러시던데요. 안 그래도 지은이가 대학원 가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다고 그러더니, 결국 부모님께 말했나 보더라고요. 문익 아니, 결혼했으면 그런 건 남편이랑 대화해야지. 누구 돈으로. 지은이 아버지가 아직 일을 하신댔나? 창현 네. 마취과 의사라 정년이 딱히 없으신가 봐요. 문익 …. 창현 자존심을 계속 긁어요. 사이. 문익 임신시켜. 창현 네? 문익 임신하고 일단 애 낳으면 부부는 하나가 돼. 창현 아니…. 문익 그땐 니 말을 더 믿고 싶게 될걸. 결국 부모는 늙어 사라진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테니까. 창현 …. 문익 공부고 뭐고, 기억도 생각도 안 날걸. 눈앞에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천사가 우는데 다른 걸 어떻게 보냐. 응현이 쟤도 좋아하는 남자만 생겨봐. 지금이야 뻐팅기지. 눈이 뒤집힌다고. 아무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가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야. 어깨 펴. 그딴 걸로 자존심 상하지 말고. 창현 …. 네. 문익, 한잔 들이켠다. 사이. 문익 (흥분하며) 하하하. 역시 넌 아직 멀었어 이 자식아. 자식아. 자식아! 결혼하든, 사업장에 직원이 몇 명이 늘든 간에 멀었다고. 이 자식아! 아빠는 인마. 네 나이 때 사장은 아니어도 내 밑에 사원이 100명이 넘었어. 그렇지. 그렇지. 여보! 얼른 나와 봐! 나와 보라고! 문익, 안방에서 아픈 현선을 질질 끌고 나온다. 문익 당신 아들이 지금 결혼이 아니라 입사를 했네! 하하하! 근데 대표가 장인어른! 나한테 다 물어봐! 어린애처럼! 어린애 처어러어어엄~! 문익, 아파서 쓰러진 현선의 손목을 질질 끌며 춤을 춘다. 응현, 들어온다. 응현 아빠. 왜 이래요. 미쳤어요? 뭐해! 아빠 말려! 창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익의 팔을 잡아끈다. 문익, 저항하며 힘겨루기가 잠시 이어진다. 문익이 손찌검하려 팔을 올린다. 창현, 문익의 양팔을 꽉 잡은 채 차렷 자세가 되게 한 뒤 놔주지 않는다. 문익, 당혹감과 굴욕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창현 진정하세요. 사이. 놓아 준다. 문익, 밖으로 나가려 한다. 창현 담배 피우러 가시죠? 다녀오세요. 문익, 퇴장. 창현, 널브러진 현선을 조심스레 안고 침대로 옮긴다. 현선 추워…. 추워…. 창현 엄마. 현선 추워…. 추워…. 응현, 식탁에 앉아 마른세수를 한다. 사이. 3장 창현과 응현이 거실에 있다. 창현이 소주를 계속 들이켠다. 응현 술 잘 못 마시잖아. 창현 까불지 마. 응현 안주 좀 같이 먹든가. 창현 네가 봐도 나 살 많이 쪘냐? 응현 모르겠네. 창현 뺀 거야. 백까지 갔다가 약간. 응현 조절하면 되지…. 창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응현 그럼 뭐가 중요한데. 창현 과식할 때라고 지금은. 늘어. 계속 마시면. 계속 먹으면. 거래처랑 먹다 보면 늘고, 스트레스 풀다 보면 늘고. 응현 …새언니는 뭐라고 해? 창현 몰라. 응현 모른다니. 창현 같이 안 잔 지 오래됐다? 응현 그 잠이 그 잠을 말하는 게 맞아? 창현 둘 다야. 안 자줘 같이. 계속 피해. 욕구가 안 생긴대. 양심도 없는 년. 빈손으로 온 게 욕구가 웬 말. 응현 뭐 그러냐…. 창현 나도 아빠처럼 은퇴할 때 되면 빠지겠지. 욕심도 빠지고…. 허벅지도, 팔도 얇아지고…. 그럼, 볼품도 없어지려나. 응현 너무 오래 남았잖아. 창현 금방이야. 응현아. 금방이라고. 언제까지 부모님이랑 이렇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냐. 사이. 창현 너희 동네에 탕후루는 있냐? 응현 갑자기 무슨 탕후루야…. 오빠 또 가게 바꿨어? 창현 관심도 없지? 벌써 2호점이다. 응현 대만 카스텔라…? 였잖아. 창현 그 중간에 세계 과자점도 있었어. 아, 도쿄 모찌도. 네가 멍할 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새로운 맛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 응현 오빠는 요리는 관심도 없고 하지도 못하면서, 유행 1년도 못 갈 거 뻔히 알면서도…. 권리금 받고 빠지는 것만 계속하네. 창현 뭐? 응현 따지고 보면…. 창업 초보자들 속이는 건 아니야? 창현 그 돈으로 이런 데 오는 거야. 응현 나는 오빠 일 조금도 모르지만…. 창현 속이는 거 아니고, 시장 흐름을 아는 거야. 지금껏 뺑이치면서 배운 게 그거고. 응현 …오빠가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 오빠 같은 초보자들 속인다고. 창현 그런 사소한 거 다 따지고 눈치 봐가면 돈벌이 못 찾아. 생존하겠다는 각오만 명확해지면 그런 건 금방 사소해져. 응현 가장 닮기 싫어했잖아. 아빠의 그런 말습관. 조절할 수 없다면 그건 과식도 아니고…. 폭식이라고. 사이. 창현 네 눈에는 내가 그냥 처먹는 거 같지. 창현, 일어난다. 응현 오빠. 창현 아빠 들어오시고, 엄마 눈 뜨면, 나 일 때문에 바빠서 먼저 간다고 전해. 다른 말 하지 마. 문익,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창현, 안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오려다, 현선 앞에 멈춘다. 창현 엄마. 긴장 좀 하고 살아요. 다 그렇게 살잖아요. 왜 본인만 삶에서 제쳐 둬요? 그런 식으로 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넘치는데, 엄마까지 그러지 말라고요. 이제 우리 겨우 잘살아 보려고 하잖아요. …엄마. 전화 안 받은 거 아니에요. 일할 때만 꺼놓는 거예요. 근데 일이 잘 안 끝나서…. 아버지가 잘 해줘요? 응현이는 자주 와요? 솔직히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더 악착같이 해서 몇 년 안에 근처로 이사 올게요.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아시죠? 내일은 더 커질 거예요. 내일은요, 더 커질 거라고요. 상상도 못 하실 만큼. 창현, 거실로 나온다. 창현 응현아. 응현 응. 창현 사회에서 일인 분도 못하면서, 잘 사는 사람 광인 취급하지 마. 응현 …응. 창현 그딴 태도로는 평생 이런 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얼마나 달콤한 향기가 배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또 그 잔향이 얼마나 끝내주는지도 모르고 살다 죽을걸. …하긴. 모르면 부러운 줄도 모른다는데. 근데 넌 이미 여기 들어왔고, 곧 하룻밤 자게 될 거고, 새벽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깨면 문득 저 큰 창을 보게 될 거고, 눈치채기도 전에 발이 먼저 옮겨지고, 처음 보는 시야로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거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생각하겠지. 이런 데서 하는 생각은 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말도 안 되는 고요함, 안정감, 편안함. 사치스러운 것들이 주는 풍족함. 만족감. 인상 깊지 않다고 스스로 되뇌어도 쉽지 않을걸. 못 해본 경험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그렇게 다르다는 너도 계속 여기가 생각날 거야.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데리고 오고 싶어지게 되겠지. 응현 …. 창현 돈은 그렇게도 좋은 거야. 창현, 퇴장. 문익 응현아. 응현 괜찮아요. 아빠. 문익 그게 아니라, 샤인머스캣 좀 먹자. 응현, 냉장고에서 샤인머스캣을 꺼내 온다. 문익 너도 좀 먹어. 응현 네. 문익 오빠도 내켜서 널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응현 네. 문익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오빠는 너무 조급해. 차라리 아빠한테 말해볼래? 응현 뭘요? 문익 관심사 같은 거. 소재? 응현 뭐에 관해 쓸 거냐고요? 문익 그래. 네 입으로 들려줘 봐. 판단력이 있잖냐. 너도 아빠한테 다 물어봐. 응현 (짧은 사이) 진짜로 말해요? 문익 잘하면 용돈도 준다. (지갑을 꺼내 놓으며) 격려금. 사이. 응현 제목은 ‘가족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문익 오케이. 응현 아버지가 잠든 엄마의 어깨를 발등으로 걷어찼다. 문익 …. 응현 그 모습에 진저리 난 아들은 엄마의 비명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리고, 딸은 아버지를 말리다 오래된 식탁의 들뜬 나무껍질에 목이 긁혀 피가 났다. 늘어진 흰 티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발길질은 계속됐다. 나가버린 아들이 부른 경찰이 곧 다섯이나 도착했고, 아버지의 핏발 선 눈이, 수치스러운 얼굴이 딸의 티셔츠처럼 물들었다. ‘이놈들. 나라 세금이 얼만데 이딴 일에 다섯이나 출동을 해? 다신 그러지 마. 다시는!’ 그 뒤로 아버지는 다시는 발등으로 엄마를 치지 않았다. 그때 딸이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내의 경련도 아니고, 딸의 애원도 아니고, 자신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 그래야만 비로소 온순해진다는 것. 딸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론 말할 수 없이 쓸쓸해졌다. 사이. 문익 제정신이냐? 응현 뭐가요. 문익 집에 펜 드는 사람 있으면 사생활이라는 게 없다더니. 응현 …. 문익 아빠는 다 갚았어! 그런 잘못 같은 거! 엄마랑 사이도 회복됐어. 그걸 이제 와서 꺼내는 저의가 뭐야! 응현 아직 나는 못 갚았어요. 문익 뭐가. 응현 나는 아직 한 대도 못 때렸다고요. 사이. 문익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응현 엄마는 단단한 사람이에요. 문익 나도 안다. 응현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버티고 있다고요. 아빠는 못 해요. 아빠는 가만히 있으면 죽을 테니까. 엄마는 잊은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가 지켜보지 않았다면 아빠 삶이 어떻게 됐을까요. 아빠는 혼자 밭을 다 갈았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울타리가 없었다면, 아빠는 땅이 끝나는 곳까지 곡괭이질만 하다 이미 죽었을 거예요. 왜 자꾸 무리해서 일을 찾는 거예요.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는데, 그렇게 죽도록 채우신 창고는 아직 열어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아까 엄마가 토할 때, 아빠가 등 문질러준 게 좋았대요. 엄마는 언제나 그런 걸 기다렸다고요. 사이. 문익 술 더 사 와야겠다. 문익, 현선의 침실로 들어가 외투를 챙겨 입는다. 현선에게 다가간다. 현선 추워…. 추워…. 문익 여보. 열 좀 볼까. 현선 추워…. 문익 병원 갈까? 병원 가고 싶어? 현선 안 가…. 안 가…. 문익 내일은 정말 업어서 가야겠다. 현선, 문익의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문익 술 냄새 심해? 사이. 문익 여보. 현선 …. 문익 여보. 내일 묻고 싶은 게 있어. 용서 없이도 같이 살 수 있는 건가? 여보. 내 세상은 안 오는 거지? 밟고 지나간 듯 이렇게 가는 거지? 분명 뭘 오랫동안 서둘렀는데 왜 이리 고요할까. 처참하게 무능력하고…. 아쉬워…. 요즘 잠만 들면 당신이 내 발목을 끌어당기는 꿈을 꾸네. 나를 끌고 물속으로…. 당신은 오래 살고 싶나? 당신도 그러고 싶어? 당신은 뭐가 제일 두려워? 나는…. 나는…. 현선 (잠꼬대하듯) 내가 끌어당긴 게 아니야. 당신의 꿈이야. 정말 어리석어. 정말 어리석지…. 사이. 문익, 침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온다. 문익 해 뜨면 엄마 데리고 병원 가자. 문익, 퇴장. 응현,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안이 보이지 않는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이. 잠시 뒤, 다시 문을 열고 나와 현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현선 옆에 몸을 던지듯 쓰러져 버린다. 3장 현선 아파…. 아파…. 응현 엄마? 119 부를까? 현선, 고개를 돌리며 거부한다. 현선 물 좀 줘…. 응현, 현선에게 물을 먹여 준다. 겨우 들이켠다. 현선 으으… 으으… 퉤… 퉤에…. 현선, 머그잔에 침을 뱉는다. 현선 헉…. 헉…. 헉…. 현선, 숨을 뜨겁게 연신 헐떡인다. 현선 나 살기 싫은가 봐. 으으… 으으… 퉤. 퉤에. 한심해…. 한심한 김현선…. 사이. 응현 낫게 해 달라고 빌었어? 현선 살게 해 달라고 빌었지…. 응현 …. 현선 침대에 누울래. 추워…. 응현이 머그잔을 받으려 하자, 현선이 응현과 멀리 놓고 눕는다. 현선 나가…. 나가서 자…. 응현 엄마. 현선 …. 응현 아까 그 일 때문에 더 심해지신 거죠. 아침에 제가 그렇게 해서…. 그렇죠? 문익,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온다. 말없이 소파로 걸어가 눕고 곧바로 잠이 든다. 응현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생생하니까 이상해요. 아무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분명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본 거예요? 그런 건 누가 미리 경고해 주긴 하는 거예요?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같이 죽을 것 같진 않은데, 어떻게 살 수 있을진 장담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내가 죽으면 엄마는 죽을 것 같아서. …그런 것도…. 누가 미리 경고를 해줄까요? 엄마가 날 만든 거 맞죠? 근데 왜 나한테는 엄마의 아량이 없을까요.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사이. 현선 내일 대답할게…. 가서 자…. 응현 내일이요…. 긴 사이. 현선 엄마…. 응현 네? 현선 그때 엄마가 바다에서 절 건져주었을 때…. 참 고마웠어요. 응현 …. 현선 분명 밤이라 안 보였을 텐데, 어떻게 본 거예요? 그런 건 누가 미리 경고를 해주는 거예요? 다시는 못 보는 건가요. 기다려주면 안 돼요? 들어오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요…. 사이. 응현 내일 대답할게요…. 현선, 부스럭부스럭 이불을 휘감는다. 응현 어제 하늘 되게 이뻤다는데 우리는 못 봤네…. 응현, 현선의 발을 정성껏 주무른다. 사이. 현선, 이불에서 나와 자세를 비교적 편히 눕는다. 응현 해 뜨는 거 아름답다. 보여요? 현선, 긴 숨을 내쉰다. 응현, 천천히 고개를 꾸벅이며 잠에 스며들려 한다. 현선 띄워 보내네. 저 멀리. 아주 멀리. 붙잡고 있던 것들. 스스로를 용서하여. 물길을 거스르는 듯하여도 머지않아. 이렇듯 얽혀 남아서. 같은 태양 안에 머물며. 서로의 파도를 견디며…. 현선, 천천히 잠이 든다. 응현, 고개가 떨구어지고 현선의 발을 꼭 쥔 채 이불 위로 포개진다. 아침 빛이 창을 타고 두 사람을 내리쬔다. 막.
  • 포기 안 한 집념의 시간에 대한 하늘의 감응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시조 당선 소감]

    포기 안 한 집념의 시간에 대한 하늘의 감응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시조 당선 소감]

    돌아보면 참으로 길고도 지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그만!’이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갈 데까지 가 보자’라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워야 했습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란 소리를 믿고 싶었습니다. 늘 빙판 위에 선 듯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아귀가 맞물려 돌아가는 정형의 말맛에 빠져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가야 할 길은 먼데 해는 벌써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버틴 날들이었습니다. 더딘 걸음을 다그치고, 부족함을 담금질하며 언어와 시간을 엮고 또 엮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열병의 시간이 마침내 평온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목마르게 갈고닦은 제 애착의 텃밭에도 환한 꽃이 피었습니다. 오늘의 영광은 그 포기하지 않은 집념의 시간에 대한 하늘의 감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뜻이 언 손을 잡아 주신 서울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두 손 모아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우리 고유의 숨결이 담긴 정형시의 바른길로 이끌어 주신 민족시사관학교 윤금초 교수님과 ‘지금_여기’의 시 정신을 일깨워 주신 임채성 시인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맞댄 다정다감한 글벗이자 멘토이신 선배 문우님들께서 느긋이 기다려 주신 덕분이기도 합니다. 삶의 윤활유처럼 위로와 공감이 되는 가슴 따뜻한 시조를 쓰고 싶습니다. 고집스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먼 길을 휘돌아올 때 후줄근히 지친 마음을 다독거려 주는 가족이 있어 이제껏 버틸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고맙고 느꺼울 따름입니다. 기쁨보다는 시인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44년 전남 장흥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지옥 같은 곳… 열심히 딴생각해서 된 詩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시 당선 소감]

    지옥 같은 곳… 열심히 딴생각해서 된 詩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시 당선 소감]

    그러니까 써야 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주로 울고, 마지못해 씻고, 먹고 먹이고, 후회하고, 보통은 딴생각을 합니다. 먼바다에 데이터센터가 가라앉아 있다는 걸 아나요. 바다를 한없이 뜨겁게 할 윙윙 돌아가는 기계들의 울림을 생각합니다. 데이터센터는 우주로도 나아갑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정보가 우주를 누비게 된다니. 우리는 이 시공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건조한 밤입니다. 종종 사는 곳은 지옥이 됐습니다. 그 고임을 잊기 위해 딴생각을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 시가 됐습니다. 제 잘못과 실수로 상처받은 모든 관계에 용서를 바랍니다. 속죄하듯 써가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색종이로 벌레를 만들어 소파 위에 올려두곤 했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엄마를 놀라게 하고 웃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팔·다리·눈·코·입과 날개·더듬이가 함께 달린 얄팍한 벌레들. 정전기 때문에 옷에 붙어 어디든 따라오던 조각들. 살다가 가끔 이상한 색종이 벌레 같은 시들을 발견하고 놀라고 웃어주시길 바라봅니다. 가장 소중한 두 아이. 그 생동이 지금 여기에 날 붙잡아 두고 살게 한다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절단을 알려 준 용감한 우리 도마뱀. 떨어질 수 없는 내 가족들. 제게 방향과 길을 주신 김지승, 김승일 선생님. 구혜영, 김근 선배의 선한 가르침. 감사 전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 고맙습니다. 불투수성은 댐이 가져야 할 성질입니다. 그렇지만 투수하는 댐과 도시가 있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 매일 저녁 몸을 코팅하고 잠들면 더는 건조하지 않을 텐데요. 마지막까지 열심히 딴생각을 하게 해 준 원고지 4매의 소감 지면에도 감사합니다. ▲1980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과정 중퇴
  • 쉬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동굴서 찾은 문학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당선 소감]

    쉬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동굴서 찾은 문학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당선 소감]

    나의 마을에는 바위그늘유적이 있다. 온갖 섬과 바다로 둘러싸인, 땅만 팠다 하면 패총이 나오는 이 도시에서 바위그늘유적이 발견된 것은 꽤 근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운하게도 이 최초의 그늘을 찾아주는 사람이 마땅히 없어 아쉬운 대로 내가 바위그늘을 찾아가 위로하곤 했다. 한때 이 산을 뛰어다녔던 발자국. 바위 틈새로 보였던 수천 개의 돌조각. 나는 그런 믿음을 쥔 채 걷고 있다. 세상은 미련한 사람을 욕하지만 그늘은 그러지 않는다. 그림자 아래에서 숱한 후회와 좌절을 반복해도 그늘은 그렇다. 그늘은 그냥 그늘을 준다. 어느새 내 얼굴 위에 있다. 쉬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 동굴 안에서 발견한 문학처럼. 한 줄기 빛을 머금은 시간이 있었다. 사랑과 애도의 의미를 알려 주신 함정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선생님 덕에 강의 유적을 헤매다 바다를 보았다. 인문학과 여행의 중요성을 알려 주신 백가흠 선생님, 문학을 보는 시선을 키워 주신 손정수 선생님, 매일 쓰는 삶을 알려 주신 장옥관 선생님, 작가는 고향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김민정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선생님들 모두 뜬금없이 타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놀라셨을 것 같다. 무엇보다 늘 나를 지지해 주는 엄마와 아버지, 양금 할머니, 동생과 가족, 함께 기뻐해 준 독도 씨에게도 깊은 사랑을 전한다. 대구와 부산, 서울과 프랑크푸르트, 괴팅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좀 더 먼 시간이 된 친부와 친조모, 광자 할머니에게도 안부를. 마지막으로 늘 단칸방에서 써 내려간 내 글을 호명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1995년 부산 출생 ▲계명대 문창과·문헌정보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대 대학원 비교문학 석사과정
  •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학과 필수모듈인 어학 파트에서 ‘초급 그리스어’를 들을 거라고 말했을 때, 홍은 조금 놀란 듯했다. 당장 졸업 작품부터 준비해도 모자랄 세 번째 학기였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쪽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차라리 일본어를 듣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홍이 종용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언어라 그런지 학생 수는 다른 수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원탁으로 빙 둘러앉은 좁은 강의실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학생들이 흘리는 땀내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났다. 교수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어 학습 동기를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리스 계통이지만 자신은 그리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아마 높은 확률로 거짓말일 것임이 분명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아마 수업 하나쯤은 먹고 들어가려는 심산이겠지. 사실 그런 학생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이쪽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저쪽은 할머니가 러시아인이고, 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삼촌이 루마니아인이래, 하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디흔해서, 그런 일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곧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인 내가 그리스어 수업을 들으려는 이유를 내심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 호기심 어린 미소에 힘입어, 그럭저럭 교수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가령,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어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에 희랍어가 등장한다는, 꽤 그럴듯한 말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학습 동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였고, 이들에게 그 이유ㅡ‘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을 읽기 위해서’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독일어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사람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보고 싶어서요. 금발로 덮인 두피 곳곳에 희끗한 새치가 돋아난 중년의 교수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빙긋 웃더니,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이 학생이 아주 ‘야심 찬 계획’(ambitionierten Plan)을 가져온 것 같다는 모호한 농담을 던졌다. 그는 말했다. 그 계획에 이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 방언을 익혀야 하는지.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고전 그리스어의 아티카 방언, 이오니아 방언과 아이올리아 방언까지.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같은 작자들을, 화자가 사라진 언어를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아냐면서. 시대와 지역별로 나눈 그리스어의 기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설명 방식은 내 어깨를 점점 짓눌렀다. 마치 모든 학생 앞에서 나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당장 밝혀내겠다는 듯. 그의 눈빛은 이제 처음 드러냈던 조소를 넘어 약간의 경멸마저 내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것, 그 사실에 관해서라면 이미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수업에서 학습 동기를 제대로 밝혔더라면, 어쩔 수 없이 나의 ‘계조모’(Stiefgroßmutter)라고 소개해야 했을, 적어도 내가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아오리스트(Aorist)인 나의 할머니 하나코 씨로부터 말이다. * 시제(Tense)는 시간(Time)과 시상(Aspect)과 함께 작동한다. 할머니의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 내가 그 노트를 처음 발견한 것은 라이프치히대학 문창과에서 석사 첫 학기를 보낸 직후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학기 과제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초봄이었다. 많이 아프셔? 출국하기 전에도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제 쓰러지셨어, 라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말했다. 또?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조금 지친 목소리로 첫 학기도 보냈는데 한국에 한 번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무 음악도 영화도 틀지 않은 채 맞은편의 화면을 응시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노란 경로를 따라 비행기 모형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반도 오른편에 있는 섬나라를 바라보았다. 문득 홍의 고향인 하코다테와 후추시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궁금했다. 엄지와 검지를 펼쳐 그 사이를 가늠해 보았다. 겨우 손톱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너비였다. 부모님은 대학에 합격한 후에야 유학에 대한 나의 의지를 인정했다. 엄마는 애초부터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왜 거기까지 가서 또 글을 쓰려고 하냐고. 대체 돈은 언제 벌 셈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내심 형과 함께 시장의 곡물 가게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로 도망간 형 대신 아버지의 쌀가게 일을 도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아 보였다. 불과 삼 주 뒤에 죽음이 임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혈색에,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나중에 병실 복도에서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부터, 할머니의 정신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뺨을 매만졌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애가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뱃가죽이 등에 눌어붙었느냐면서.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거울에 비춰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손길이 낯설기도 했고 멋쩍기도 했다. 할머니가 그 정도로 내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살며시 놓았다. 나는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할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반달 모양으로 일렁이면서 반짝였다. 그녀의 눈 밑에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았을 것임이 분명한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할머니는 해외 생활은 잘 맞는지, 음식은 어떤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약간의 시차를 둔 채 차분히 물어왔다.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잠시 창밖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그랬다. 할머니는 서른이 다 되도록 취업하지 않은 나의 처지를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묻는 것은 미래뿐이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현재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문학을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사람은 가족 중에서 할머니가 유일했다. 입원하기 전부터 종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끼고 살았던 할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는지, 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는지, 독일의 문학 수업에서는 정말 그리스 신화들을 중요하게 읽는지, 평소 자신이 궁금해했던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나로서는 평생 장사를 하면서 살아온 외할머니와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방향이나 밀도가 전혀 다른 할머니의 목소리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면서도, 가슴속에서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가족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궁금해진 것들도 많았다. 가령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 홍과 같은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의 발자국-그 삶의 궤적에 대해. 그러고 보니 너 마침 잘 왔다. 한참 동안 질문을 쏟아내던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다고, 혹시 집에서 노트 한 권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트요? 희랍어 노트 말이야. 요즘에도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계시냐고, 내가 깜짝 놀라 묻자,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옆에 앉아 있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지 어서 갔다 오라는 듯 문을 향해 조용히 턱짓했다. 나는 외투를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생긴 노트인데요? 아오리스트. 네? 표지에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라고 적혀 있어.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오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왜 이리 군말이 많아. 일단 가져와. 그러면 다 설명해 주겠다고, 할머니는 힘도 없으면서 내 엉덩이를 팡팡 내려치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냈다. 갔다 오면서 밥도 먹고 와. * 아오리스트(Aorist)는 무정시제이다. 아오리스트로 포착된 사건은 완결적으로 제시되며, 문맥에 따라 과거에만 묶이지 않고 다양한 시간으로 퍼져 나간다. α -(아니다) όριστος(규정된, 한정된)는 정해지지 않은(αόριστος)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όριστος는 ὅρος(경계)에 맞닿아 있다. ‘무정’은 ‘부정’(不定)일 수도 있고 ‘미정’(未定)일 수도 있다. ‘부정’(不定)과 ‘부정’(否定)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구별되어야 한다. * 사실 할머니의 일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그때 우리는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지도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시기여서,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같은 나이인데도 열 살은 더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외할머니에게선 느낄 수 없던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내게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건 그날, 내가 절반쯤 남겨 버린 짜장면을 할머니가 자신 앞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미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와 배가 부른 상태였다. 조금 전부터 할머니가 내 그릇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갑자기 그릇을 가져가 처음 보는 아이가 남긴 잔반을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가 입이 짧은 모양이구나.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부모님을 바라보자, 아버지가 아무리 그래도 잔반을 드시냐고, 아직 출출하시면 한 그릇을 더 시켜 드리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됐다. 그냥 딱 한 입 정도만 더 먹고 싶었어. 그리고 할미가 손주가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데. 그깟 잔반이 뭐가 대수냐. 할머니가 반대편 손으로 냅킨을 꺼내 들며 덧붙였다. 이제 가족인데. 당시, 나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마 아버지의 남동생 내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나이가 어린 엄마를 가족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분위기를 내심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할머니 사이의 감정적 거리는 꽤나 오랫동안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할머니는 구포동에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에 홀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분기 보고서를 쓰듯, 의무적으로 식재료를 잔뜩 사서 할머니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때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괜히 할머니의 방안을 둘러보곤 했다. 안방의 벽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할머니를 조금씩 알게 됐다.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이제 돈 쓰는 법도 좀 배우세요. 평생 고된 일만 하시고. 저희가 하지 말라고 해도 식당 일에, 식모 생활에… 몸 쓰는 일만 하셨잖아요-그녀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용돈을 줘도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저금하는 사람.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두 아들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 데 평생을 보낸 사람. 그러나 정작 두 아들은 일본식 반찬을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집에 두고 가고, 먼저 간 남편은 자신을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일생을 거부당한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상처받은 사람이 할머니였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한 시간이 지나 정해진 칭찬의 레퍼토리가 모두 소진되면, 마치 알람 시계라도 설정해 놓은 사람처럼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할머니의 기만당한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었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쏜살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아버지의 진심을, 아직 오지 않은 불편한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머니 인생도 굴곡이 많았지. 아버지는 종종 제사를 지낼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친모가 아니라 계모라는 사실, 친모는 아버지를 낳은 지 이 년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때 들었다. 구포동 할머니는 192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조선으로 넘어와 구포에 정착했다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조선인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병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고 했다. 일본인 송환 때 돌아가지 않으신 걸 보면 아는 친척도 없으셨던 모양이야. 우리한테는 아들을 조선에서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전쟁 중에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물세 살 때 할아버지를 만난 거라고 아버지는 덧붙였다. 아버지 바람기가 보통이 아니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 제사상에 할아버지의 영정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그 시절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포동 할머니를 들이기 전까지 집안에 몇 명이 거쳐 갔는지. 다들 하나 같이 화장이 진한 술집 여자들이었다고 했다. 구포동 할머니는 어린 아버지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다른 여인들처럼 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산만한 아버지를 따끔하게 혼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이 사람이 아니면 싫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싫다고. 어머니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어린 아버지의 고집에, 할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쌀가게 사모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참 박하게 사셨지. 같이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를 않나. 그때만 해도 말을 좀 어눌하게 하셨으니. 대놓고 쪽발이라고 부르는 못된 인간들도 많았어. 나나 동생도 사춘기 때는 참 못됐지. 길가에서 친구들이랑 걷다 어머니를 만나면 일부러 못 본 척하고 피해 다녔으니. 어머니도 숨통 트일 때라곤 가끔 일본인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게 전부셨을 거야. 거기 모임 이름이 뭐랬더라, 부영회였나?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나는 그 모임의 이름이 ‘부용회’(芙蓉會)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떼로 별난 할아버지 곁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할아버지의 권유로 이른 나이에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해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얼마간 가엾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하나코라는 인간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에게 할머니란 그저 어머니, 지극히 언어적인 의미로서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 무정시제 연습 55 지배하다 현재 시제 : 지배하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무정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지만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정 시제 연습 178 잃어버리다 현재 시제 : 잃어버리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현재에도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다 무정 시제 : 나는 과거에 잃어버렸으나,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으나, 그 일은 그때 한 번으로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만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미완료가 아니다. 과거에 발생한 그 일이 현재에 하나의 상태로 고정돼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완료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 영원히 재현할 수 없다. 늘 불완전한 중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死語(사어)로부터 비롯되었다. * 홍과 만난 것은 베를린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학원 친구의 소개로 시내에 있는 한식집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홍은 내가 살고 있던 사설 기숙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한 번 외식을 할 때마다 잔고가 추락하는 독일의 미친 물가 덕에, 우리는 제법 큰 공용주방이 있는 나의 기숙사에서 함께 요리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홍이나 나나 독일의 행정은 지긋지긋해했지만, 맥주만은 사랑했다. 홍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나 하코다테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것,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얼마간 비참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잦은 변화 속에서도 자상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홍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나의 친부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가와도 교류가 없었다. 친부는 고등학교 때까지 복싱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을 당한 뒤부터 구포시장의 도축업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심장병으로 죽은 그는 나에게 자랑할 만한 번듯한 직업조차 남기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 아들보다는 딸을 원해 내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어버려, 늘 사람들에게 나는 남자라고 해명하게 만든 사람.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들은 친부에 대한 전부였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 계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읊어 놓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재혼한 뒤부터는 나에게도 번듯한 아버지가 생겼으니까. 나는 새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곡물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모호한 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은근히 조장했다. 친구들과 격투기 시합을 볼 때면 우리 아버지도 복싱을 했었다고 말했고, 식당에서 시킨 소고기가 생각보다 적어 보일 때는 아버지가 축산업을 해서 아는데, 라는 말로 운을 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오류는 있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할머니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하시지 않았어? 언젠가 홍이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홍은 그 할머니가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그 말을 하려 했다. 때가 되면 홍의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다닐 나의 가족들을 구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일본인이셔. 술에 취한 그날에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말을 고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그럼 너, 어떻게 보면 일본인 혼혈인 거네?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한 그 미소가 좋았다. 그 미소가 나도 모르게 거짓을 사실처럼, 허구를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데 부모님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닌데…. 얘 좀 봐. 21세기에 무슨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야. 피곤함에 지쳐 있던 홍의 눈빛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됐고. 할머니 이야기 좀 더 해 봐. 혹시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즈음 홍은 소논문을 위해 일본 여성들의 이주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해명하는 일을 포기했다. 구포동 할머니가 도쿄도 후추시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오랫동안 부용회라는 재한일본인 처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사람이었다고 아버지에게 들은 그대로 말했다. 쌀가게에서 나오는 수익을 몇 번이나 빼돌려 해방 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들의 생계를 돕고, 홀로 이국땅에서 죽은 그들을 위해 손수 장례까지 치러 주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장례식 끝나고 할머니 노트 가져왔는데. 노트? 무슨 노트? 그게… 할머니가 좀 특이한 분이셨거든. 그리스어 공부가 취미셨어. 나는 서랍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의 노트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에, 엄마가 버리려던 것을 겨우 말려서 들고 왔다고. 구포동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썼던 수십 권의 노트들 중 하나라고 했다. εἰ μέν κ᾽ αὖθι μένων Τρώων πόλιν ἀμφιμάχωμαι 만약 내가 여기 머물며 트로이의 도시를 두고 싸운다면, ὤλετο μέν μοι νόστος, ἀτὰρ κλέος ἄφθιτον ἔσται 내게서 귀향은 사라지겠지만, 불멸하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필사하셨어, 라고 나는 말했다. ‘일리아스’의 문장이래. 왜? 그야 나도 모르지. 잠깐 줘 봐. 홍이 할머니의 노트를 들고 가더니 빠르게 뒤쪽의 페이지를 훑었다. 할머니랑은 한국어로 소통했어? 응.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어가 침투해오는 부산식 한국어긴 했지만. 너희 할머니 작가였어? 무슨 소리야? 너 뒷부분 안 읽어 봤어? 그냥 필사노트라 앞쪽만 읽었는데? 홍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노트를 건넸다. 그러고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서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말대로 뒤페이지에는 앞쪽의 시제 연습과는 달리 꽤 긴 산문이 있었다. 모두 그리스어로 기술돼 있었다. 할머니는 그 위에 일본어로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홍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국의 문자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 모든 아오리스트는 언어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존재다. 그러나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오리스트는 단일하고 완결된 사건이지만 지속성과 반복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아오리스트는 사라짐이 아니라 한순간의 존재다. 아오리스트는 불멸하는 명성을 추구한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 헤매고, 떠나왔으나 정주하지도 귀향하지도 않으며, 죽었으나 결코 죽음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치 나의 아이처럼. 마치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처럼. 알 수 없는 것으로 끊임없이 남겨 두려 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영원한 탐구가 가능해진다. 나는 무정시제이다. 나는 한 명의 아오리스트다. * 그리스어 수업은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끝났다. 홍의 말대로 나는 이미 수준급의 그리스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시간이 갈수록 기가 죽었고, 독일어로 작품을 써내느라 수업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날이 잦았다. 그리스어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졸업작품을 최종적으로 제출한 늦가을부터였다. 홍과는 그즈음을 전후로 헤어졌다. 나는 학업에 뜻이 없었고, 독일에 계속 체류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홍은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이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깔끔하게 돌아섰던 마지막조차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국에는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아직 잘 모르겠어. 교수님이 졸업 작품을 출간해 보자고 하시는데. 너는 마음에 안 들지? 홍의 즉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말 부분을 좀 더 고치고 싶어서. 신중하게 써야지. 홍이 말했다. 너희 할머니 얘기잖아. 나는 그 말에도 잠시 주춤했다. 이번에도 홍의 대답이 곧장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너희 할머니’라는 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일본에서 보고 싶은 게 있어. 겸사겸사 한국도 잠시 가고. 다른 계획은 있어? 그냥 친구들이나 만나겠지. 그간 미룬 성묘도 좀 가고. 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건 좀 궁금하네. 뭐가? 너희 할머니가 쓴 글들. 너는 마지막까지. 왜,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간 미국행 준비로 바빴는지 홍의 얼굴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아니, 라고 말하면서 홍이 미지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너만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래전처럼 화면 속의 경로를 응시했다. 홋카이도와 도쿄. 고료카쿠 타워와 도쿄 타워. 이제 나는 그곳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오쿠니타마 신사와 유쿠라 신사로부터. 내가 한때 가깝다고 느꼈던 공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소들에 대한 체감까지 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웅크려 있던 그 수많은 장소들의 생동감까지 잃고 있는지는. 언젠가 홍과 함께 하코다테시의 도심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홍은 유년을 보낸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 했고, 그해 여름, 우리는 홍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떠났다. 홍은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이 여기서 살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 시절이 자신에게 정말로 존재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때 이곳을 떠났고, 떠남에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이 지극히 아오리스트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고로 접근하니, 그 모든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건으로 남겨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모를 잃었고,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잃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친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기고 있지 않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이름 아래에는 ‘손자’라고 적힌 칸이 있었고,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버지는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기입을 맡았는데 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냐…. 작은아버지란 사람은 여전히 엄마와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 장례식장 구석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에서 몇 년 만에 내려온 형과 마찬가지로 몇 년 만에 만난 사촌 동생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에겐 애도할 권리조차 없구나. 그런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 학기에 교수가 기말과제를 내주며 했던 말-이번 학기에는 신화적 원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이 연이어 생각났다. 그때 느낀 박탈감은 이미 완결되었다. 그러나 그 박탈감이 아직까지 어딘가에서 지속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서…. 너는 이야기를 만들지. 그날 병원에서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왜 그러고 싶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져다준 노트를 유심히 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계속 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 없는 진심이었다. 엄마에게도, 한국에서 글을 쓰던 친구들에게도, 라이프치히 학우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심. 변주하다 보면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손을 덥석 잡아들었다. 그러지 마. 네?…. 나는 당황했다. 그런 신음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머니가 나보다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비록 할머니에게 나는 지극히 언어적인 차원에서의 손자에 불과했지만.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평생토록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사람은 그 부정조차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이중부정이 삶을 긍정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비타협의 상태로 남겨 둔다면 어떨까? 미정도 부정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왕복운동으로 인해 삶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비록 할머니의 글에 신화와 문법에 대한 오독이 있을지라도, 나는 할머니가 노년에도 조화나 타협을 포기한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예술가 하나코는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현재와의 연결성이 불확실한 아오리스트였다. 어쩌면 그래서 여전히 그리스어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오리스트를 쓰기 위해. 아오리스트로 말하기 위해. * 나는 무덤이 되고 싶다. 한때 무정시제라는 언어체계였으나 그 야성적인 규칙에서마저 빠져나가 버린, ‘정해지지 않았다’는 규정에서조차 탈출해 버린 야성의 시간이 묻힌, 어느 범박한 무덤*이 되고 싶다. * 후추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했다. 할머니의 노트를 넣은 백팩을 메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식당은 신사 근처였다. 신사 정문에서 본당까지는 꽤나 기다란 돌길이 일자로 뻗어 있다. 홍과 하코다테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유쿠라 신사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말끔하게 도색된 유쿠라 신사의 도리이와 달리, 이곳의 석조 도리이에는 검은 이끼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밝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단지 회색빛으로 수수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 길을 따라 양쪽에 늘어선 나무 도리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역의 기둥들은 차라리 무덤가에 꽂힌 묘목들에 가까워 보였다. 할머니의 소설은 이곳, 오쿠니타마 신사의 어둠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을 떠났던 어린 할머니와 같은 나이인 여덟 살 소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신사로 들어선 소녀. 그러나 어째서인지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안티고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얼굴 위로 노란 등빛이 번진다. 나는 할머니의 소설을 손에 쥔 채 그들의 맞은편에 쭈그려 앉는다. 이곳에는 빛이 없지만 저곳에는 빛이 있다. 그 빛 속에서 소녀는 부모님에게 신사의 전설을 듣는다. 대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부인의 순산을 기원했던 이곳에는 늘 행복과 결연의 신이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고. 앞으로 우리 딸은 어떻게 살려나. 그런 물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오로지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마치 미래를 단정 짓듯, 혹은 예언하듯 미래형의 아오리스트로 기술된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미래를 잃지 않는다. 비록 단발성과 완결성으로 끝난 사건일지라도, 아오리스트의 불확정성이 이미 완결된 운명적 사건에 대한 상상을, 그 미래에 관한 끝없는 고투를 가능하게 한다. 그 습작에서 할머니는 농사꾼이었던 남편과 다시 사별하게 된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헤어지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그를 더욱 극진히 간호했고, 사별하게 될 남편은 무려 일 년을 더 살게 된다. 그 일 년 동안, 할머니는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조선어가 서툴러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분명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할머니는 소설에서도 할아버지와 결혼한다. 시장 사람들에게 쌀가게 사모님으로 불리고, 결국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주사에 뺨을 맞고, 결국 이번에도 임신했던 아이를 유산한다. 그러나 유산할지언정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아이와 함께 육 년을 살게 된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던 해, 피란길에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그가 죽기 두 달 전,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향인 후추시에 방문한다. 바로 이곳에 와서 아이와 함께 밤의 축제를, 가부키극을, ‘거대한’(μέγα) 건물과 ‘넓은’(εὐρὺ) 하늘, ‘꺼질 줄 모르는’ (ἄσβεστον) 불빛들을 지켜본다. 어느새 그들이 바라봤던 집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하늘의 풍경도, 그들을 비추었던 불빛도 희미해진다. 시간은 아이를 잃고 하나코 씨를 잃는다. 돌길 한편에 쭈그려 앉아 그들을 바라봤던 나도 잃어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반대로 무언가 분명 거대하게 남을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하늘을 바라봤던 사람의 심장에 단발성의 고통이 있었고, 그것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넓었는지 미래의 자신은 분명 알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한때 이곳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들을 밝혔던 불빛, 한순간의 빛과도 같은 그 시간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순간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은 어느새 내가 될 것이며, 나는 미래에도 이곳에 있다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 회화·만화 속 말은 어떤 모습일까… ‘말의 해’에 열리는 전시회

    회화·만화 속 말은 어떤 모습일까… ‘말의 해’에 열리는 전시회

    2026년 말띠 해를 맞아 말의 의미를 짚어보는 다양한 전시가 열려 관객들을 맞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는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말띠해 특별전 ‘말(馬)들이 많네-우리 일상 속 말’을 연다. 매년 띠 전시를 통해 십이지 동물과 한국 민속 문화를 소개해 온 민속박물관은 이번엔 말 문화와 상징을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1부 ‘신성한 말’에서는 말이 교통수단을 넘어 신성한 존재로 인식된 문화와 함께 말방울에 담긴 벽사(귀신을 쫓거나 복을 구하는 것)의 의미를 살핀다. 2부 ‘우리의 말: 제주마’에서는 말의 고향 제주에 주목해 제주마의 역사와 특징을 조명한다. 조선 회화 속 말, 말과 관련된 의서와 안장, 왕의 행차에 등장한 말들의 풍경도 펼친다. 말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주는 3부 ‘말과 함께’에서는 마패, 마구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미국 해병대 소속으로 활약한 제주마 레클리스 이야기도 풀어낸다. 대표적인 말띠 인물인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이야기를 민속 유물을 활용한 4컷 만화 형식으로 풀어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 기간 몽골 전통 악기 마두금 연주와 탱고 공연, 닥종이 편자 만들기, 양모 말 장식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대구동구문화재단 아양아트센터 아양갤러리에서는 120여명의 지역 작가들과 함께 내년 1월 11일까지 ‘말 그림’ 전을 연다. 2009년부터 매년 새해 ‘띠’를 주제로 이어온 기획전이다. 붉은 말이 상징하는 열정과 도약, 창조성을 각자의 예술 언어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조명래 작가의 ‘같은 곳을 바라보다’, 방성희 작가의 ‘초원을 향한 갈기’ 등은 말의 역동성과 상승의 이미지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희망, 미래를 향한 의지를 담아낸다. 인천 미주사 주지 무현스님은 인천 중구 심산산방 갤러리에서 5일까지 개인전 ‘타오르는 말’을 연다. 국민이 말처럼 힘차게 달리며 소원을 성취하길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말 그림 30여 점이 전시된다. 지난해와 올해엔 용과 뱀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 바 있다. 민화 속 말을 즐길 수 있는 전시도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은은 박은주 작가 개인전 ‘사랑을 누비다’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민화를 통해 꾸준히 탐구해 온 길상의 의미와 개인적 서사를 집약한 자리다. 말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민화 본연의 기능인 ‘행복을 빌어주는 그림’에 주목해 가족의 건강과 안녕, 삶에 대한 소망을 따뜻한 필치로 담아냈다. 전시는 1월 5일까지.
  • ‘반이민 정책’ 저격수들 손잡은 맘다니… 트럼프와 대립각 예고

    ‘반이민 정책’ 저격수들 손잡은 맘다니… 트럼프와 대립각 예고

    법률고문에 ‘反트럼프’ 뱅크스·카셈진보 상징 샌더스는 취임 선서 주재보수 성향 정부와 마찰 가능성 전망 무명의 정치신예임에도 돌풍을 일으켜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가 1월 1일 취임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가운데, 뉴욕시 법률 담당 책임자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인사를 기용해 주목받고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맘다니 당선인은 진보 진영에서도 파격적으로 평가받는 공약을 내세웠던 터라 강한 보수 성향인 트럼프 행정부와 법적 분쟁 등 마찰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맘다니 당선인의 취임식은 미국 진보 진영의 상징인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이 주재하며 시민단체와 노조 관계자, 코미디언, 유튜버 등 다양한 계층이 취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맘다니 당선인은 30일(현지시간) 뉴욕시 법률 고문으로 반트럼프 인사인 스티브 뱅크스 전 뉴욕시 사회복지국장을 임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 매체는 “법률 고문은 법정에서 뉴욕시를 대표하는 직책”이라며 “맘다니 당선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에 반대한다는 공약을 냈던 만큼, 뱅크스가 상당히 바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맘다니 당선인은 지난 11월 4일 선거에서 승리한 후 당선 연설에서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로 남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뱅크스는 민주당에서도 진보 성향이 강한 빌 드블라시오 전 뉴욕시장 측근으로, 퇴직 후 대형로펌에 합류해 공익 부문 책임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해당 로펌이 지난 4월 백악관과 연관된 단체에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자 사임하는 등 반트럼프 인사로 꼽힌다. 맘다니 당선인은 이날 조 바이든 정부 시절 이민정책 고문을 지낸 람지 카셈 변호사도 뉴욕시 법률고문으로 임명했다. 카셈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대학생을 변호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대척점에 서 있는 인사다. 보수성향 폭스뉴스는 “카셈이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알카에다 인사를 변호한 이력이 있다”며 그의 임명을 비판했다. 맘다니 당선인은 31일 자정 무렵 1945년 폐쇄된 옛 뉴욕시청 지하철역에서 가족과 지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취임식을 한다. 그는 성명에서 “이 역은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위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고자 했던 도시의 용기를 보여주는 물리적인 기념비”라고 설명했다. 이어 1일 뉴욕시청 앞에서 공식 취임식을 하며 샌더스 상원의원이 취임 선서를 주재할 예정이다.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한국계 미국인) 작가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48명의 취임위원회 위원과 4만여명의 시민이 참석할 예정이다.
  • ‘국민 배우’ 안성기 위중… 중환자실서 치료

    ‘국민 배우’ 안성기 위중… 중환자실서 치료

    ‘국민 배우’ 안성기(74)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31일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안성기는 전날 자택에서 음식물을 먹다가 목에 걸린 채로 쓰러졌으며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자택 인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티스트컴퍼니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돼 현재 의료진의 조치 하에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배우와 가족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배우 박중훈과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등이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평소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박중훈은 “의지해왔던 분인데 최근 2년 동안 직접 뵙지는 못했다”면서 “늘 후배를 감싸 안고 품어주시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투병 생활 중에도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등에 출연했다. 또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참석하는 등 복귀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다.
  • 李 “지방주도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 대도약 원년 될 것”

    李 “지방주도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 대도약 원년 될 것”

    “경제·행정·해양수도 등 다극 체제로”안전한 작업환경·생명 존중도 강조‘K컬처 뿌리’ 기초 예술 등 대폭 지원남북 간 긴장 완화·신뢰 회복 추진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을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주도 성장으로 국정 방향을 전환하고 올해는 남북 관계 복원의 기회도 거듭 모색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31일 사전 배포한 ‘2026년 신년사’에서 “2026년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는 분명하다”며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지방주도 성장 ▲모두의 성장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성장 등 다섯 가지 대전환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지방주도 성장과 관련해 “서울은 경제 수도로, 중부권은 행정수도로, 남부권은 해양수도로 대한민국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다”고 했다. 또 모두의 성장에 대해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마음껏 혁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며 “어떤 아이디어도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강조했던 산업재해 철폐를 새해에도 주요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다”라며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을 통해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또 한반도 문제에 대해선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 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이라며 새해 목표로 ‘평화’를 강조했다. K컬처에 대한 정부의 대폭 지원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K컬처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지 않도록 대중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초 예술을 비롯해 문화 생태계 전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생중계로 진행한 것처럼 올해부터 47개 모든 부처를 대상으로 생중계 알림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국무총리와 각 부처가 시행하는 행사를 정책적으로 중요한 현안이나 국민이 관심 가질 만한 사안에 대해 모두 생중계한다”고 밝혔다.
  • 한동훈 “당게 감사 결과는 조작”… 김민수 “함께 가기 어렵다”

    한동훈 “당게 감사 결과는 조작”… 김민수 “함께 가기 어렵다”

    “엄중 책임 물을 것”법적 대응 예고배현진 “내용 위조하고 꽁무니 빼”장예찬 “사기꾼 용인해선 안 된다” 이른바 ‘당게(당원 게시판) 사건 감사’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내홍이 격해지고 있다. 당무감사위원회의 결과 발표 직후 사실을 인정했던 한동훈 전 대표는 31일 일부 내용이 “조작”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강경파에선 한 전 대표와 같이 가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다. 공을 넘겨받은 장동혁 대표는 일단 ‘대여 투쟁’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당무감사위원장) 이호선씨는 게시물 시기도, 물리적으로도 무관한 것들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다”며 “조작에 대해 이씨와 가담자들 그 배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친한(친한동훈)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박정하 의원은 “차라리 솔직하게 총으로 쏴 ○○고 싶다고 발표를 하지”라고 지적했다. 배현진 의원은 “감사 내용을 위조하고 꽁무니 빼는 중”이라고 했고, 박정훈 의원은 당 지도부에 이 위원장 경질을 요구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동명이인이라면서 ‘가족이 썼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사설과 칼럼 위주’라는 것도 거짓이다”라고 반박했다. 당내에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강명구 조직부총장은 SBS 라디오에서 “(한 전 대표가) 인정할 건 인정하고 해명할 건 하고 사과할 게 있으면 빨리 하고 털고 가면 된다”고 했고, 김용태 의원은 “한 전 대표가 계속 중언부언 말하는데 그런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낯 부끄러운 행동이었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제주청년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폭탄 돌릴 것이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강경파인 김민수 최고위원은 YTN 라디오에서 한 전 대표에 대해 “같이 가기 쉽지 않다. 당이 부피가 크다고 강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도 “국민의힘은 드루킹보다 심각한 여론조작 사기꾼을 용인하는 범죄 정당이 아니다”라고 했다. 징계 여부는 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다만 현재 공석인 윤리위원장 임명권을 가진 장 대표는 이날 당게 논란과 관련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당무감사위는 당과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기구”라고 선 긋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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