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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시대] 인도의 사례로 보는 ‘금수저’ 현상/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인도의 사례로 보는 ‘금수저’ 현상/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

    지난해부터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일종의 사회풍자로 거기엔 기회균등이 박탈된 젊은이들의 깊은 자조와 절망이 들어 있다. 금수저는 부모의 재력과 능력으로 풍족하게 살거나 비교적 쉽게 성공 가도로 들어가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반면에 이른바 흙수저는 좋은 배경에서 태어나지 못해 아무런 사회적 자본을 갖지 못한 채 금수저들과 경쟁해야 하는 계층을 지칭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갈등의 일면을 드러내는 이런 표현을 언어의 유희라고 가볍게 웃어넘길 순 없다. 가족주의와 지연, 학연 등 연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우리 현실에서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전자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사회적 장치까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 희망과 동기 부여를 박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없는 젊은이들이 미래에 무엇을 이루겠는가.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로 불리며 선진국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일궈온 인도의 사례를 통해 이런 경향을 들여다보자. 인도는 불평등이 기반인 식민통치를 마감하고 홀로 서면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교육과 기회의 균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이루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중단 없는 보통선거를 실시하며 70년간 민주주의를 지켜온 인도에서도 능력주의와 부모의 부, 권력을 세습하는 신봉건주의의 갈등이 키를 키운다. 2004년 4월 12일 자 한 시사주간지는 정치인 부모의 후광으로 대를 이어 정치에 입문한 세습정치의 사례가 전국에서 100건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지방에서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의 한 통계를 보면, 40세 미만 하원의원의 60%가 유명 정치인의 후손이었고, 30세 미만의 의원은 세습의 비율이 100%에 이르렀다. 나이가 많은 의원일수록 세습의 비율이 낮았다. 시간이 갈수록 금수저 정치인이 증가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초대 총리를 지낸 네루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 네루의 손자 라지브 간디가 모두 총리를 지낸 것이다. 정치 세습은 지금도 큰 영향력을 가진 라지브 간디의 아내 소냐 간디, 오래전부터 미래의 어느 날에 총리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그의 아들 라훌 간디로 이어진다. 각 지방의 사정도 비슷해서 아버지의 명성을 잇거나 남편의 자리를 물려받은 금수저 주수상들과 주의원들이 수두룩하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지의 세계인 영화계에서 더욱 심하다. 볼리우드의 대스타를 부모로 둔 아들과 딸들이 다시 유명배우로 자리매김한 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렇게 정치인이나 영화배우의 대물림이 용이한 건 경제력과 네트워크, 인지도와 언론의 조명 등 여러 면에서 그들이 유리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평등한 민주사회에서 개천 출신의 ‘용’이 나오지 않는 불평등의 역설이 생겨난다. 인도보단 덜 뚜렷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행인 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선거란 금수저든 흙수저든 모두 1인 1표의 권리만 갖기 때문에 불리한 좌표를 차지하는 다수의 유권자가 금수저의 위상과 영향력이 지속 가능한 세상이 되지 않도록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곧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야 모두 공천룰을 갖고 주류, 비주류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선거권뿐 아니라 피선거권의 기회가 공정한지도 따져볼 때다.
  • [긴급 진단 문학 권력] 문학계 자성 목소리

    [긴급 진단 문학 권력] 문학계 자성 목소리

    소설가 신경숙(52)씨의 표절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표절 논란을 넘어 한국 문학권력 문제로 확산되면서 문단의 자정 운동을 촉발했다. 문단 내에선 표절은 신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출판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한국 문단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를 주제로 열린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긴급 토론회에서는 한국 문학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향한 날 선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15년 전에 생산적인 성찰을 통해 매듭지었어야 할 문제였는데 당시 억압된 채로 지금까지 남아 있던 것이 과거로의 회귀를 초래했다”고 통탄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까지 표절, 문학 상업주의, 폐쇄적 매체권력, 문학권력과 언론권력의 결탁, 비평적 심의기준 붕괴 등 여러 문제가 불거졌지만 공론화되지 못하고 묻힌 게 지금의 사태를 낳았다는 인식이다. 발제자로 나선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된 한국 문학이 신경숙 사태를 낳았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신경숙은 환금성이 탁월한 작가였고 백낙청 교수는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 문학의 보람’이라는 말로 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창비와의 미학적 연결망을 찾아내고자 했다”며 “치매 상태에서 집을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건 신경숙 소설(엄마를 부탁해) 속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 문학’”이라고 꼬집었다. 문학비평가 집단의 문제에 대해서도 칼을 겨눴다. 이 교수는 “현재의 비평 공간에서 이견을 지닌 비평가 대부분은 한 줌의 중심 질서 바깥에 ‘비체제’ 지식인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며 “(문학비평의 기능이) 비평적 담론과는 완전히 무관한 산업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는 문학권력의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1990년대 출판 상업주의와 동인과 에콜 중심으로 작동하는 문학권력의 폐쇄성에서 신경숙 사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20년이 지났지만 변화가 없고 그 폐쇄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신경숙 표절에 대해 창비가 대응했던 게 한국 문학이 얼마나 갇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신경숙 표절 사건으로 민낯을 드러낸 건 한국 문학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단의 건강한 질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부상하는 전복적 흐름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문학적 신념에 따라 작가들의 이합집산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신경숙 표절 사건은 한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학에 작동하는 문학권력에 대한 중요한 문제 제기의 촉발점이 돼야 한다”며 뼈아픈 성찰 속에서 새로운 혁신의 계기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토론자인 심보선 시인(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은 “이윤지상주의와 한국문학지상주의가 기이하고 모순적인 방법으로 결탁해 있다. 이 결탁 속에서 특정 작가에 대한 애정이 하나의 조직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특정 작가들을 거의 가족처럼 돌보는 무한 애정 유사가족주의 문화 속에서 표절을 끝내 표절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표절과 표절 은폐 가능성은 잠재돼 있다”고 비판했다. 다양한 대안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표절과 관련해 법적 기준까진 아니더라도 윤리규정, 원칙과 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등단 시스템, 문학매체 발간 시스템, 문학상 수여 시스템, 문학출판 관행 등 일련의 문학 질서를 전복할 문학권력의 외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 시인은 “비평 자체가 아니라 권력화된 비평이 문제”라며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다. 에이스 발굴과 육성이라는 비평적 강박에서 벗어나 한국 문학의 다양한 글쓰기와 활동의 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열린세상] 가족의 시장화/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가족의 시장화/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아이는 셋 정도 두고 싶어요.”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학생들의 답이었다. 새 학기 서두에 던진 결혼과 가족 구성에 대한 질문에 예상과 달리(?) 학생들은 대부분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고 자녀도 꼭 둘 것이라고 했다. 삼포 세대, 88만원 세대라고들 하지만 가족 공동체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었다. 1990년대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한인들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한인들은 100여년에 가까운 국가 사회주의의 압력 속에서도 가족 공동체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 니콜라이, 박 루드밀라 같은 식이었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에 우크라이나 곡창 지대로 떠나 파종에서 수확까지 임시 텐트에 거주하면서 고본질(상업적 농업)을 주저하지 않은 것도 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했다. 국가가 해체되고 불안할 때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가족뿐이라는 믿음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게 한 것이다. 남북 관계 냉전의 얼음을 잠시나마 녹이는 것도 이산가족의 재회의 눈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족주의 전통 중에서 가부장제를 도려내고 싶어 했던 것이 한국 여성 운동의 방향이었다. 호주제 폐지, 돌봄노동·양육노동의 사회화, 가정폭력에 공권력을 도입하는 것, 여성의 취업을 위한 지원, 여성의 정치 참여 강조 등을 통해 여성을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개인으로서의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매진해 왔다. 가족끼리 계산 없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고 여성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가부장제는 나쁜 전통일 것이다. 그런데 전통은 한 덩어리로 뭉쳐 나쁜 전통과 좋은 전통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과 여성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하고 국가의 책임을 요구했지만 늘 요구는 높고 제도 개혁의 응답은 느리다. 가족을 대신할 사회 공동체는 빠른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에 수몰된 지 오래였다. 이 틈새를 채우는 것이 시장의 논리다. 편리함 또는 ‘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청소, 식사 준비, 자녀 돌봄, 세탁 등 가사 ‘노동’이 상품화되는 것까지는 별 저항이 없었다. 그런데 ‘시장’은 성의 상품화, 결혼 시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대학생들이 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결혼하는 것을 사설 입시학원 다니는 것만큼 당연하게 여기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러다가는 간통제 폐지도 자유 선택권의 보호 대신 성 상품화 시장에 대문을 열어 주는 격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 학대 문제와 관련해 곧바로 폐쇄회로(CC)TV 설치가 해답인 양 제시되는 것을 보고 최종 수혜자는 CCTV 업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주의는 재벌가의 ‘상속’으로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재산 상속뿐 아니라 근대적인 지위인 교수, 목회자, 사립학교 경영 등도 물밑에서 상속되고 있다. 그러나 보통 서민들의 현실에서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해체 일보 직전이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 정말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직업 이산가족, 교육 이산가족까지 합치면 실제로 혼자서 먹고 자는 1인 가구는 통계 숫자보다 더 늘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세 가족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가족 공동체의 울타리 밖에 던져진 개인들은 소비의 자유라는 환상으로 도피하고 있다. 1인 가구는 점점 더 소비시장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상상 속 또는 드라마 속의 가족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희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가족의 시장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끈끈한 가족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시장이 아니라 시민사회공동체, 복지국가의 비전이 돼야 한다. 최근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다중 인격을 우리도 활용해 보자. 각 개인은 시민이라는 아이덴티티도 포함하고 있고 유권자로서의 권리도 확보하고 있다. 소비자보다는 시민과 유권자로서의 ‘인격’을 끌어낼 때다. 손익 계산의 시장 논리가 가족 공동체에 대해 남아 있는 기억과 상상 그리고 희망마저 지워 버린다면 복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출발하면서 많은 가족 사회학자들은 가족을 험한 세상의 피난처 그리고 안식처라고 불렀다. 마지막 안식처마저 무너진다면 인간다운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고 모두 패자가 된다.
  • [열린세상] 저출산 원인이 만혼?/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저출산 원인이 만혼?/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사회 저출산의 징후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시작된 듯하다. 1983년만 해도 2.06을 유지하던 출산율이 1988년엔 1.55로 떨어졌다. 출산에 관한 한 빨간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한 시점이었건만 당시 정부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의 명품 표어 뒤를 이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만원”이란 표어를 내걸었다. ‘땅덩어리는 좁고 부존자원도 부족한데 인구가 너무 많다’는 고정관념에 오래도록 젖어 온 관습적 사고의 결과였음은 물론이다. 정부의 표어 앞에서 1980년대 후반 대학생이었던 386세대 여성들은 “가족계획은 이웃집과 상의해서 두 집 건너 하나씩”이란 조크로 응대했다. 최근 10년 동안 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1.18~1.19 수준에서 요지부동하고 있다. 답답한 나머지 일부에선 ‘통행금지 폐지 이후 출산율이 급락(急落)했으니 통행금지를 부활하자’는 기발한 의견을 내걸기도 했고, 정말 진지하게 ‘독신세 부과를 추진해 보자’는 절박한 제안도 등장했다. 정부가 새삼 저출산의 원인을 만혼(晩婚)이라 규정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저출산 반등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대하자니 ‘인구절벽’ 앞에 서 있는 정부의 대응치곤 지나치게 ‘낭만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정부에서도 정책 제안에 앞서 선진국 경험 및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보았으리라 믿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저출산을 타개해 온 방식으론 유럽형 모델과 미국형 모델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유럽은 ‘결혼과 출산의 분리 정책’을 택하고 있고, 미국은 ‘이민 정책’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3쌍 중 1쌍이 동거 커플인 프랑스에선 동거 커플의 자녀에게도 합법적 부부의 자녀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 주면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스웨덴에선 아예 혼외 자녀를 의미하는 ‘일리지터머시’(illegitimacy) 개념 자체를 폐기함으로써 여성 혼자 자녀를 출산하건, 동성 부부가 입양한 자녀이건 국가가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이후 역시 출산율 증가를 경험한 바 있다. 이들 획기적 정책에 힘입어 유럽의 대다수 국가가 1.6~1.8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하지만 출산과 결혼을 분리하는 유럽식 모델은 한국인의 가족 정서나 가족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저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책의 성공 가능성 또한 희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민 정책을 고수해 온 미국의 경우는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출신 이민 가족의 고출산에 힘입어 2.2~2.4 수준의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해 가고 있다. 물론 미국도 내심 고민이 있다. 백인 출산율이 매우 낮아 2040년이 되면 백인 비율이 49%가 되고 유색인종 비율이 51%가 돼 머지않아 백인 국가 범주에서 벗어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만혼이 초저출산에 일정 부분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혼을 조금 앞당긴다 해서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나이브한 진단이다.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 자체를 원치 않는 ‘적령기 세대’의 증가 현상은 저속 성장으로 인한 계층 구조의 공고화나 장기적 경기 불황 등의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개인화 및 ‘결혼의 사치품화 현상’ 등의 규범적 요소와 맞물려 있기에 만혼 내지 비혼(非婚)의 해결을 위해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그리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국가 후원 가족주의를 표방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로맨스 싱가포르’를 기치로 국가가 맞선도 주관하고 신혼 부부에겐 주택을 우선 배정하는 등 인센티브를 적극 동원했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대표적 초저출산 국가로 남아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미국식 모델이 거의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지금의 제한적 결혼이주 정책을 뛰어넘어 미국식 이민정책을 추진할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문제는 과연 무엇인지 다각도로 분석해 보고 이의 해결 및 완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저출산 해법의 골든타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정공법이 되리란 생각이다.
  • [김주혁 선임기자의 가족♥男女] 혼례 문화

    [김주혁 선임기자의 가족♥男女] 혼례 문화

    ‘하나, 가까운 분만 모시고 의미 있게 혼인식을 올리겠습니다. 둘, 예물과 예단은 정성껏 그러나 간소하게 마련하겠습니다. 셋, 신혼집과 혼수를 마련하는 비용은 신랑, 신부 양측이 형편에 맞춰 나눠서 내겠습니다.’ 여성가족부가 고비용 혼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추진하는 ‘작은 혼인식 릴레이 약속’ 내용이다. 혼례 비용의 지속적인 증가는 혼례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혼인을 늦게 하거나 안 하는 원인이 되며 하객 부담도 가중시키는 등 사회 문제로 작용한다. 미혼 남녀들은 혼인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부모들은 자녀 결혼을 위해 노후 대비를 포기하고 빚을 지는 경우까지 생긴다. 혼인식이 부모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돼 위화감마저 조성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작은 혼인식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 확산과 더불어 공공시설 예식장 개방을 통한 건전한 혼례문화 정착,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자녀의 혼인을 부모가 책임지고, 자녀는 부모에게 기대는 것을 당연시하는 가족주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통해 독립심 향상과 혼인 비용 절감, ‘신랑=집, 신부=혼수’라는 도식 탈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뿌린 것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의식의 사슬을 끊으면 축의금 문화 개선은 덤으로 찾아온다. 작은 혼인식은 의미도 모른 채 결혼예식업체가 제공하는 예식 절차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절차마다 자신들이 의미를 찾아 스스로 준비해 치르는 혼례다. 하객을 150명 내외 초청하고,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총혼례비 1000만원 내외에서 치르되 부족한 부분만 양가가 형편에 따라 분담하고, 하객 접대 음식은 1인당 2만원 내외로 하며, 혼인서약은 본인들이 의미를 담아 작성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 캠페인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양승태 대법원장, 정홍원 국무총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를 포함해 217명이 서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남은 지난해 직계가족 30여명만 모인 가운데 비밀리에 전통혼례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김숙자 여가부 가족정책과장은 “신랑 신부를 잘 모르는 부모의 직장 동료 등은 제외하고 잘 아는 친구, 친척만 양가 수십명씩으로 예상해 작은 결혼식 하객을 총 150명 정도로 계산했다”면서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매장문화가 20년 만에 화장문화로 완전히 바뀐 것처럼 혼례문화도 머지않아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여가부는 공공시설 예식장 개방을 확대하고 이용 정보를 혼례종합정보센터를 통해 제공한다. 무료 또는 실비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공시설 예식장은 현재 청와대 사랑채와 서울시민청,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 청남대 등 전국 149곳이다. 경기도지사 공관을 9월부터 혼례시설로 개방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건전한 혼례문화 확산을 위한 예비 부부와 그 부모에 대한 교육도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하고 있다. 올해 7개월 동안 1000명이 혼례와 혼수의 의미 등을 교육받았다. 올해 예비 부부 4000명을 더 교육한다. 합리적인 결혼 모형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10월) 등 비용 절감 효과가 큰 ‘작은 결혼식 모형’도 개발, 보급한다. 작은 혼인을 위한 웨딩 콘서트, 나만의 아름다운 결혼식 사진 공모 및 전시회, 작은 결혼식 시연회와 심포지엄 등도 올해 연다.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는 22명을 대상으로 작은 혼례 웨딩 플래너 양성 교육을 하고 있다. 무료인 청와대 사랑채 작은 혼인식을 신청하고자 하는 사람은 혼인 비용 등 간단한 사연을 적어 혼례종합정보센터로 신청하면 된다. 올해 신청자 50쌍 중 22쌍을 선정해 하반기에 혼례를 치른다.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최미정 실장은 “좌석 80석에 식당도 없고 드레스 등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있지만 경관이 좋고 작은 결혼식에 의미가 있어 만족도는 높다”고 말한다. 서울시 시민청 지하 2층 태평홀은 혼인식 6개월 전 신청하면 10일 이내에 통보하며 이용 요금은 6만 6000원이다. 2012년 7월 작은 결혼식을 치른 김기욱씨는 “보여주기가 아니라 우리 커플이 만족할 수 있는 작은 결혼식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예단과 예물 비용을 대폭 축소했는데 커플링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웠고 부모님께 전혀 손 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결혼식을 치르니 진정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며 뿌듯해했다. 김씨는 “신혼집도 부모님 도움 없이 전월세로 시작했기 때문에 내 집 장만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지만 내 손으로 일궈 가는 오늘과 내일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작은 결혼과 함께 결혼 비용도 양성이 평등하게 남녀가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랑 측이 먼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신부 측이 제의하는 게 좋다. 당장은 손해 보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것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박모(63)씨는 지난해 아들이 결혼할 때 신혼집을 포함한 결혼 비용을 양측이 분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어렵사리 사돈에게 말을 꺼냈으나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돌아온 답은 “나중에 집 살 때 보태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유모(55)씨는 20대 후반인 딸 둘이 결혼할 때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결혼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신을 실천에 옮길 생각이다. 성미애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 교수는 “이제까지 혼인은 가문 대 가문의 문제로서 혼주인 부모가 주체였기 때문에 지위 과시용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이제는 신랑 신부가 혼인 주체가 돼 준비하도록 의식을 변화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되면 간소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소박한 신혼 출발을 당연시하는 의식 변화를 위해 부모 및 예비 부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선 서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혼하는 당사자들이 하고 싶은 것과 보유 자금을 비교한 뒤 차액에 대해서는 규모 축소나 대출, 부모 지원 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남녀 간 의사소통을 이뤄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happyhome@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삼대’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삼대’

    염상섭의 ‘삼대’하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중·고등학교와 대입 논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이 책은 학교 시험에도 자주 출제된다. 몇 년 전 한 중학교의 3학년 국어시험에 ‘삼대’가 출제됐다. 이 책의 등장인물인 이필순이 1년간 다녔던 공장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였다. 워낙 두껍고 1920~30년대 사용하던 서울 문체가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중학생이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다. 그런데 자세히 읽지 않으면 찾지 못할 세부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출제된 것이다. 치열한 내신 서열화를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내야만 했던 국어 교사의 고민이 느껴졌다. 이 문제의 정답은 ‘고무공장’. 전체 500쪽이 넘는 책에서 한두 번 언급된다. 아이들은 메리야스 공장, 벽돌공장, 철공장 등등 다양한 공장을 만들어냈다. ‘삼대’는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문학으로 손꼽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사실주의 문학이란 개성보다는 객관적 인식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며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염상섭은 근대의 본질을 성숙한 안목으로 통찰하고 식민지 시기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해 낸 사실주의의 대가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삼대’는 1920~1930년대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중산층 집안인 조씨 일가에 대한 가족사 소설로 3대에 걸친 갈등을 통해 당시 식민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27일까지 조선일보에 215회로 연재됐다. ‘삼대’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구세대를 대표하는 조의관, 타락한 개화주의자 조상훈, 식민지 세대의 중도적 인물인 조덕기다.(가계도 참고) 조의관은 한말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구세대 인물이다. 자수성가해 재산가가 된 그는 돈을 주고 옥관자를 붙여 양반이 되고, 대동보소를 맡아 족보를 치장하는 데 거액을 들인다. 그는 식민지 시기라는 위기상황 속에서도 가문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가치관을 고집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자이자 전통적인 가치관을 무시하는 아들 조상훈과의 대립에서 더욱 강조된다. 조의관의 일생을 지탱한 것은 ‘사당’과 ‘금고 열쇠’였다. 이를 손자 조덕기에게 물려줘 구시대의 가치관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아들 조상훈은 기독교인이며 학교 교원으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인 홍경애의 부친을 돕다가 아들 조덕기의 동창이기도 한 어린 홍경애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갖자 연락을 끊는다. 이후 김의경이라는 몰락한 양반의 딸과 정을 통하고 노름을 일삼는다. 처음에는 봉건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이념을 폈지만 좌절을 겪으면서 그릇된 길로 가는 과도기적인 인물이다. 염상섭은 그를 통해 좌절한 개화주의 지식인의 정신적·도덕적 타락을 보여줬다. 반면 조덕기는 조상훈의 아들로 일본 유학생이다. 조부와 부친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보여 주며 사상적으로는 사회주의에 심퍼사이저(동조자)의 입장을 나타낸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고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점은 조부를 닮았고, 이필순에 대한 이성애적 이끌림은 아버지를 닮았다. 그는 집안의 가족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고 한다. 진보주의자로 등장하는 김병화는 친구 조덕기와 대조적인 인물로 사상과 행동에 급진적인 모습을 나타내지만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는 관념적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홍경애를 통해 피혁을 만나고 ‘산해진’이라는 반찬가게를 꾸려 사회주의 지하당 조직을 재건하는 아지트로 사용하며 실천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홍경애는 기독교인이자 독립유공자였던 아버지를 보살펴 주던 조상훈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타락의 길을 걷다가 김병화를 만나 간접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며 김병화와 동지애를 확립해 나간다. 필순은 자신에게 친절한 덕기에게 끌리지만 그의 재산에 대한 거부감과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다잡는다. 삼대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갈등은 조의관과 조상훈의 대립이다. 그들은 증조부의 제사를 둘러싸고 갈등한다. 그리고 조의관이 아들인 조상훈을 배제하고 손자 조덕기에게 재산상속권을 주면서 관계는 더욱 뒤틀린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관계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돈’에 대한 욕망이다. 조의관과 수원집, 조상훈과 홍경애, 김의경 등 각 인물의 돈에 대한 욕망이 서로를 할퀴며 몰락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젊은 첩 수원집의 수작으로 조의관이 비소에 중독돼 사망하게 된 것이라든지 조상훈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금고를 턴 것은 돈에 의해 몰락해 가는 가족의 윤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이념 갈등이다. 부르주아 출신의 조덕기는 봉건주의나 서구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식민지 지식인의 전형이다. 당시 수용된 사회주의의 동조자인 그는 김병화를 물심양면 돕는다. 반면 김병화는 조덕기의 현실 타협적인 자세를 비판하지만 수시로 물질적인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이는 장훈과 피혁 같은 직업적인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삼대’는 식민지 시기 변화하는 각 세대의 가치와 의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살던 개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해답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속에서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삼대’의 비극은 자신의 욕망을 다음 세대에까지 존속시키고 강요하고 집착한 데 있다. 요즘에도 부모의 가치관을 자녀세대에게 강요하는 일이 많다. 특히 가장 심각한 현상은 과열된 교육열이다. 이것은 ‘삼대’의 조의관이 보였던 집착과 같은 색깔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욕망을 추종하게 된 아이들은 학업 부담을 안고 끝도 없는 경쟁에 노출된다. 요즘 중2병이나 사춘기가 심한 것도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고 강요된 삶을 사는 학생들의 절규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부모나 자녀 모두가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그 과정을 존중하며 소통해야 한다. 건강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개인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확대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삼대‘의 욕망이 아닐까.
  • [탐사보도-공익제보 끝나지 않은 싸움] (3) 부정에 눈감은 사회

    [탐사보도-공익제보 끝나지 않은 싸움] (3) 부정에 눈감은 사회

    “대학이라는 조직은 공룡처럼 거대하고 문제가 생겨도 개선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박사 논문을 표절하는가 하면, 정부 예산을 눈먼 돈으로 여기는 등 교수 사회에 만연한 비리를 잘라내지 않는다면 대학의 권위가 무너질 것입니다.” 2004년 1월 모교인 연세대 홈페이지에 독문과 교수 5명의 학술진흥재단 연구비 횡령 등의 의혹을 폭로한 A(56)씨(당시 연세대 독문과 강사)는 공익 제보를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학계를 보면 아직도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익 제보자들이 좌절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비리 혐의자들이 면죄부를 받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친 반면 제보자들은 되레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이다. 특히 제보를 받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거대 조직의 벽에 부딪혀 좌절감을 느끼는 사례가 많다. 서울신문의 설문 조사 결과 35명 전원이 우리 사회는 아직 내부 고발을 단행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답한 점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A씨가 모교 독문과 교수들의 비리 혐의를 폭로하자 법원은 이 가운데 3명의 연구비 유용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학 측은 이듬해 해당 교수들에게 정직 2개월, 경책, 구두경고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들 교수들은 징계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A씨는 제보 이후 연세대에서 강의를 맡을 수 없었다. 2013년 12월 현재 피고발인 5명 가운데 2명은 2007년과 2009년 정년퇴임했고, 나머지 3명은 아직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강사와 비슷한 처우인 연구 교수 직함을 갖고 있는 A씨는 16일 “제보 이후 교육부나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연구윤리강령을 제정하는 등 개혁의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대학에서는 여전히 실명으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2004년 1월 고성군수가 민원인의 땅을 직접 사들이기 위해 서류까지 위조해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은 사실을 폭로했던 군청 공무원 이정구(42)씨도 공무원법상 비밀누설죄로 되레 직위해제 조치를 당했다. 이씨는 “강원도청에 군수의 비리에 대한 조사 요청을 했는데도 고성군청이 제일 먼저 1차 조사를 하더라”면서 “복직하자마자 해당 업무에서 배제되고 면사무소로 좌천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징계무효 소송을 내 대법원까지 갔지만 군수의 죄를 폭로한 것이 공무원의 비밀누설 죄라는 이유로 패소했다”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당시 고성군수는 이씨의 고발에도 자리를 지켰으나 2007년 다른 아파트 인허가 비리 혐의로 결국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호루라기재단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부패방지법 시행 이후 부패혐의 조사기관 이첩 사건 822건 가운데 44.5%인 366건이 공익 제보에 의한 적발로 조사됐다. 하지만 고발된 비리혐의자에 대한 사법당국의 수사는 여전히 미흡하고 공익 제보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불이익이 가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공익 제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감각한 인식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공공성보다 사적 관계를 우선하는 유사 가족주의적 집단의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의의 이름으로 자기 집단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마치 가정을 허무는 것과 동일시되고 배신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집단문화 정서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탐사보도팀
  • 北, 수산물 등 경제이권 사업 군부로 대거 이동

    北, 수산물 등 경제이권 사업 군부로 대거 이동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북한의 각종 경제이권 사업들이 장성택 숙청 이후 군부 경제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장성택 세력이 포진한 당 행정부가 장악해 왔던 수산물 사업권에서부터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장성택 처형 이후 동해안 제313군부대 관하 ‘8월 25일 수산사업소’를 방문하고, 평양에서 건군 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회의’를 개최하는 등 군부의 수산물 사업에 집중적으로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를 두고 김 제1위원장이 수산물 사업권을 다시 군부에 쥐여 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수산물 수출은 전통적으로 군부가 관할해 왔지만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당 행정부가 인수했다. 일부에서는 수산물 사업권을 둘러싼 장성택 라인과 군부의 이권 갈등이 장성택 숙청을 촉발했다는 설도 나온다. 그만큼 첨예한 문제였다는 얘기다. 장성택 숙청 이후 경제 자원의 재분배를 위해 김 제1위원장이 가장 먼저 챙긴 곳이 군부라는 점에서 앞으로 군부에 경제 이권의 상당 부분이 몰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성택 세력과 군부의 치열한 이권 투쟁이 결국 군부의 승리로 귀결된 셈이다. 장성택 세력과 군부는 2011년 말부터 경제 이권을 놓고 첨예하게 다퉈 왔다. 김정은 권력을 등에 업은 장성택 세력이 군부의 금광개발권, 외화벌이 사업 등 핵심 사업권을 차례로 빼앗자 군부는 리영호 총참모장을 내세워 저항했다. 그러나 리영호마저 외화벌이를 놓고 당과 갈등을 벌이다 지난해 7월 15일 해임되면서 군부는 급격히 쇠퇴했다. 올해 2월에는 군에 파견된 ‘당 생활지도소조’가 전면 감찰을 벌여 상당수 군 간부들이 비리 혐의로 해임 또는 철직됐다. 3월 춘궁기에는 당의 지침에 따라 주민 배급을 위해 최후의 보루인 군량미 창고까지 열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군이 앙심을 품고 이 시점부터 당의 강경 세력과 손잡고 장성택의 종파행위와 각종 비리를 치밀하게 조사하며 장성택 숙청을 준비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지난 4월 개성공단 사태는 장성택 세력을 압박하기 위한 당과 군의 합작품이라는 설도 나온다. 김 제1위원장도 장성택 숙청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6월 19일 노동당과 군, 내각 등의 고위 간부를 모아 놓고 새로 개정한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에 대한 연설을 직접 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원칙의 제6조 5항에는 “당의 통일단결을 파괴하고 좀먹는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 요소와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는 현상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로 명시됐다. 이 대목은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당으로부터 출당·제명하기로 결정한 지난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비판에 적극 활용됐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화목하십니까

    화목하십니까

    가족주의가 2013년 대중문화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가족은 그동은 꾸준히 TV 드라마와 예능, 영화의 소재로 다뤄져 왔지만 올해처럼 가족주의가 대중문화계 트렌드 전면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가족의 해체, 붕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한 요즘 가족주의가 주목받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족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깨진’ 가족 구성원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주말연속극 ‘내 딸 서영이’와 ‘7번방의 선물’은 공통적으로 부성애를 다루고 있다. 관객 1000만명을 넘고도 무서운 속도로 역대 한국 영화 1위 ‘괴물’의 아성마저 위협하고 있는 ‘7번방의 선물’은 지적 장애인 아버지가 7살짜리 딸에게 보여주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부성애를 통해 진한 감동을 줬다. 이번 주 종영을 앞둔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딸과 그 딸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아버지의 화해를 소재로 내세워 45%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드라마’로 인기를 모았다. ‘내 딸 서영이’처럼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SBS ‘야왕’의 주인공 하류(권상우)의 주된 복수 동기도 딸 은별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다해(수애)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됐고, MBC 주말연속극 ‘백년의 유산’은 이혼하고 어려움을 겪는 딸 채원(유진)을 보듬는 아버지 효동(정보석)의 따뜻한 부성애가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침체 일로에 있던 MBC 예능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은 ‘일밤’의 ‘아빠! 어디가?’도 어머니에 비해 친밀도가 덜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접목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회사 일로 가정에 소홀했던 아빠를 예능에 끌어들여 소원했던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어머니 한쪽으로 기울었던 가족 관계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대중문화계의 가족주의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아이리스 2’ 후속으로 4월 방송되는 KBS 수목드라마 ‘천명’은 인종 독살 음모에 휘말려 도망자가 된 내의원 의관 최원이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사극으로 방송 관계자들은 “부성애 코드 드라마의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능계에서도 연예인 스타와 2세가 등장하는 SBS ‘붕어빵’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KBS가 지난 1일 새롭게 편성한 가족 토크쇼 ‘가족의 품격-풀하우스’가 시청률 두 자릿수를 눈앞에 두는 등 순항하고 있다. 다음 달 개봉을 앞둔 신하균 주연의 영화 ‘런닝맨’은 아들과 18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철부지 아빠가 살인 누명을 벗고 당당한 아버지가 되기 위한 좌충우돌 소동을 담고 있다. 평균 연령 40세가 넘는 가족들의 온갖 사건 사고를 유쾌하게 그린 ‘고령화가족’도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밋밋하다 못해 진부하게까지 느껴졌던 가족주의가 대중문화계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 관계자들은 사회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편리해졌지만 오히려 관계의 단절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 대중이 가족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힐링의 주체가 개인이었다면 올해는 가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모성애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됐지만 부성애는 상대적으로 덜 다뤄져 신선함이 있다. 투박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족 이야기로 귀결된다”면서 “빠른 속도에 얹어져 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관계가 단절되고 절대적인 가치가 무너지는 데 불안감을 느낀 대중이 가족 관계의 회복을 통해 감성을 회복하고 힐링을 하고자 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인 가족 관계가 IMF 이후 수평적으로 바뀌면서 미국식의 가족 중심주의가 부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버지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선 이후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극단적인 인식 차이를 보이는 데 대해 일종의 반작용으로 가족 내 배려와 화합이 뜨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네트워크의 속도와 편리성은 좋아졌지만 정작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면서 생각과 느끼는 것이 좁아졌다”면서 “대세는 개인주의이지만 분절되는 세대에 대한 아픔이나 외로움으로 가족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경제적인 불안 심리가 가족주의를 화두로 떠오르게 한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7번방의 선물’의 흥행을 일군 이환경 감독은 “경제적인 상황도 좋지 않고 정권 교체기에 정치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대리 만족하고 어려움을 돌파하려고 했던 것 같다”면서 “스스로 홀로 서야 하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심리도 반영됐다”고 흥행 요인을 설명했다. 또한 대중문화계의 주요 소비층이 20대에서 30대로 이동하고 중장년층이 새로운 관객으로 떠오르면서 가족주의가 더욱 공감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홍보사 퍼스트룩의 강효미 실장은 “지갑이 얇아진 20대 대신 경제적으로 안정된 30~40대가 문화 주체로 떠올랐고 그들이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나 영화에 공감하고 소비하면서 이와 관련한 제작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30대 자녀 사표까지 내주는 ‘헬리콥터 맘’

    30대 자녀 사표까지 내주는 ‘헬리콥터 맘’

    자녀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면서 일일이 간섭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가 직장까지 날아들었다.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라지만 과잉보호가 초중고와 대학을 넘어 회사생활까지 연장돼 파고든 것이다. 결근 전화통보부터 사직서 제출, 취업탈락 항의까지 대신해 주는 부모들의 극성에 직장동료들까지 황당함을 호소한다. 대기업 A사 상품기획부장 조모(46)씨는 3년차 부하직원 오모(31)씨의 사직서를 당사자가 아닌 그의 아버지를 통해 받았다. 얼마 전 당당하게 사무실로 들어온 중년 남자는 조씨에게 “우리 애가 일을 그만두게 됐다. 월급쟁이는 미래가 안 보여서 미국으로 유학 보내 공부시킬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그 아들은 일주일 휴가를 낸 상태였다. 조씨는 “3년을 일했는데 인사조차 없이 부모를 시켜 그만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아버지가 어느 대학 교수라는데 솔직히 한심하더라.”고 했다. 경기 분당 B유치원에서 일하는 최모(27·여)씨는 지난달 갑자기 다른 반 수업을 메우느라 진땀을 뺐다. 신입교사인 정모(26·여)씨가 연락도 없이 결근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그날 오후 1시쯤 한 중년 여성이 유치원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애가 오늘 너무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다.”고 했다. 정씨는 이후에도 전화를 계속 안 받더니 이틀을 더 쉬고서야 나왔다. 최씨는 “성인이 아프다는 전화를 엄마한테 시킬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니냐.”면서 “책임감도 없고 근무태도도 불량해 이달 초에 권고사직을 했다.”고 전했다. C백화점 인사팀에 근무하는 이모(27·여)씨는 최근 신입사원 지원자 부모의 항의전화에 30분 넘게 시달렸다. 다짜고짜 “우리 애가 서류전형에서 왜 떨어졌는지 설명하라.”고 윽박지른 중년 여자는 “명문대에서 의상디자인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했고, 토익 950점에 학점도 3.92나 되는데 탈락이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다. 이씨는 “하소연도 아니고 화만 냈다.”면서 “각 전형 발표 때마다 이런 부모님들의 전화에 인사팀 전체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통적 가족주의가 현대 경쟁사회 속에서 비뚤어진 사랑으로 변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변화순 팸라이프가족연구소장은 “사람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고민을 통해 성장하는데 부모가 다 해주면 늘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다.”면서 “모든 걸 대신 해주며 끼고 도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식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부모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18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 보바리라는 여인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 발표되었다. 작품은 즉각 가족주의와 금욕적 도덕관을 내세우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다음 해, 제2제국의 권위주의적 재판부는 풍기 문란과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이 작품을 기소한다. 유부녀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종부성사를 장님의 상스러운 노랫소리가 화답하는 등 작품 전체가 간통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마담 보바리’와 작가 플로베르는 예술 창작을 암암리에 규제해 오던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를 폭로했다. ●아버지, 나는 부르주아가 싫어요 플로베르는 1821년 소도시 루앙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장력 있던 조숙한 소년은 자신의 재능이 문학으로 꽃필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방 부르주아였던 닥터 플로베르가 보기에 이 똑똑한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딴 데 있었다. 파리의 법대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 1820년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떤 체제가 되었든, 사회의 주인공은 부르주아였다. 온갖 정치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이 계급은 금융과 산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소년 플로베르는 루앙의 시민들이 각자의 이권과 보신을 위해 질투에 찬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온순하고 근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정한 야욕이 도시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트거나. 청년 플로베르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해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 안에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 있는 가문과 결혼하고, 사교계에 나가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부르주아의 삶이 하나의 꿈으로 확실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란 재정상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이름이어야 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는 미덕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부르주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써 보냈다. 플로베르는 1843년과 1844년 연이어 일어난 치명적인 신경발작을 겪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예 부르주아적 삶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법대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포기하고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계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태도가 판 치고 있었다.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잡지나 아카데미를 부와 명예를 향한 도약대로 삼아 그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의 격변기마다 부화뇌동하면서 사회문제, 대중의 교화, 진보, 민주주의 같은 판에 박힌 소리만 되풀이했다. 사실주의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하층민들을 동정할 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은 분명했다.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버릴 것!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플로베르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문학에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했다. 나중에 카프카는 이런 플로베르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평생 그의 작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보바리다”-자살 장면 쓰면서 구토 플로베르는 본격적인 첫 작품을 구상하면서 안토니우스라는 성인에게 끌렸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무렵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초기의 성자다.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며 각종 이교도의 신들과 자기 안의 탐욕, 질투, 회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끊임없이 유혹을 마주하면서 수도해야 하는 성인처럼, 그 자신도 계속해서 부르주아적 태도와 취향을 마주하며 글을 써야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그런 적극적 대결이 필요한 일이었다. “진주는 조개의 병에서 생기는 것이라지만 문체는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을 통해 나오는 것일 거요. 예술가의 삶, 아니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렇지 않겠소? 거대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말이오. 얼마나 집요한 의지가 필요하겠소! 그 산 정상은 창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그 엄청난 높이는 공포를 가져다주지. 우리는 더듬더듬 바위에 손톱들을 찢겨가면서, 외로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걸어가지. 우리는 욕망의 백색 고통 속에서 소멸하는 거요. 정신의 격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얼굴을 태양으로 향한 채!”(편지, 1853년 9월 16일) 제목은 ‘성 앙투안의 유혹’. 그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이야기는 서정, 인물의 움직임, 구성 어느 것도 새롭지 않았다. 초고를 본 친구들은 상투적인 반복과 무질서한 구도에 진저리를 쳤다. 플로베르는 성 앙투안을 쓴다면서 결국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자신도 타인의 삶, 다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여느 부르주아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개성과 정념이 지배하는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이 제2의 자연과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불가해한 것. 숲 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초록의 속삭임처럼 무한하면서도 준엄하게 존재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작가란 자신의 경험과 정념을 지움으로써 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여야 했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기술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작가 주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는 나밖에 모를 거요. 주제, 인물, 효과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바깥에 있거든.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오.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편지, 1852년 7월 26일) 그렇게 해서 플로베르는 자신과는 출신도, 성(性)도, 교육 배경도 완전히 다른 시골 유부녀 에마 보바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에마와 그녀 이웃들의 속물주의가 주는 혐오감을 견디며, 작품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6년 동안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에마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쓰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종종 “나는 에마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철저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에마 보바리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시대의 허위와 대결 생애 마지막에 플로베르가 도전한 것은 두 명의 필경사 이야기다. 최신의 근대 학문을 다 섭렵해 보기로 한 부바르와 페퀴셰. 하지만 저명하다는 원예학, 지질학, 의학, 고고학, 심리학, 교육학 안에는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각각의 지식들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근대 지식의 한계에 대항하면서 진리와 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부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전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위해 1500권이 넘는 학술서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근대적 학문에 맹종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신봉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인생에는 그 어떤 극적 드라마도, 감동적인 사건도 없다. 오직 실험과 논증이 백과사전처럼 한없이 펼쳐진다. 오락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논리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사소설, 연애소설과 같은 소설의 전통적 구분은 이 작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미완으로 붙이게 된 뒷부분 개요에서 서술 방법과 작품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해석하다니! 상상물인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 최후의 싸움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면서 근대 학문의 어리석음과 부르주아 문학의 허위와 대결했다. 오선민(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SOS 10대들의 性] (하) 전문가 좌담

    [SOS 10대들의 性] (하) 전문가 좌담

    요즘 청소년들의 성문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행동 수위는 높아졌지만 성문화는 왜곡돼 있는데, 원인은 사회와 어른들에게 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했다. 지나친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 어른들의 성 상업화가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청소년들의 성문화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더디지만, 학교와 가정,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별개의 인간일 뿐 아니라 성적 욕구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동 아하!서울시립성문화센터(아하센터)에서 여섯 명의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청소년 성(性)문화’를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모임에는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이명화 아하센터장,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정유성 서강대 학생처장(교육학 교수),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대표, 이명선 인디여성연구소 소장이 참석했다. ●“청소년 성행동 수위 높아졌지만….” 김찬호(이하 김) 최근 10년, 한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변화가 지체된 영역이 존재하며,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성(性) 영역이 아닐까 싶다. 이명화(이하 화) 과거에는 성이라는 주제가 감춰야 할 것이었지만 요즘은 중학교 2학년이 성관계를 할 정도로 성 행동 수위가 높아졌다. 우리나라 성교육이 그동안 성폭행 예방, 10대 임신문제 등 이슈 중심의 캠페인에다 순결교육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성적 의사결정능력을 키우는 쪽이어야 한다. 이윤상(이하 상) 지난 10년, 성을 둘러싼 변화 중 가장 큰 것이 법제화다. 성폭력, 성매매 등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공감대가 생겼고, 그 결과 성폭력특별법, 성매매특별법 등 많은 법과 정책이 마련됐다. 하지만 인식이 제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헤픈 여자가 강간당한다.’는 인식 등의 이중적인 성적 잣대는 여전하다. 청소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기도 하고, 성적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진 주체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사회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정유성(이하 정) 현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실제 아이들의 삶과 관련이 없다. 학교는 청소년들의 삶과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데, 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겠나. 화 청소년 성문화, 나아가 한국 성문화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상업적이다. 청소년들끼리 몸을 찍어서 휴대전화로 보내거나, 음란물을 모방하는 성폭력이 늘어나는 현상 등을 보면 과거와는 또 다른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우옥영(이하 우) 10년 전 당시 교과부에서 일선 학교에 성교육 지침을 내렸지만, 성교육 교과서도 제작되지 않은 데다 관련 교사 교육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냥 각자 알아서 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했다. 그때보다야 낫지만 지금도 부족하긴 하다. 지난해 조사결과를 보면 중·고등학교에서 보건과목을 선택한 학교가 10%밖에 안 된다. 선택하지 않은 90% 학교에서 성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명선(이하 선) 사회 전체적으로 섹슈얼리티는 개방됐지만 청소년들은 성적 욕망을 인정받지 못한다.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 혹은 있어도 통제 돼야 하는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청소년이 성을 주장하거나 실천하면, 위기청소년으로 묶여버린다. 과거라면 이들이 성 행동을 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을 나이인데…. ●“부모·자녀 사이 성 인식 간극 줄여야 화 현장에서 보면, 학부모와 자녀들 사이의 성 인식에 대한 간극이 너무 크다. 외출한 부모들이 집에 갔더니 아이들이 성관계를 하고 있더라는 상담 사례가 없지 않다. 아이는 학교도 계속 잘 다니고, 이런 상황이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는데 부모한테는 이게 심각한 문제다. 그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 우리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야. 그러니까 너희는 ‘No.’ 할수 있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Yes.’라고 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못한다. 성행동을 두고 “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라고 유예를 시키지만, 그럼 책임은 언제부터 질 수 있나, 애매하다. 그래서 저는 딸에게 “법적으로 19세”라고 말해주고 만다. 정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사유화한다. 자식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새끼만 괜찮으면 좋다는 완강한 가족주의를 보인다.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도 학교도 청소년들의 존재를 대상화하고 수단화하고 있다. 그러니 청소년들의 욕구, 특히 성적인 욕구는 당연히 무시된다. 우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경제활동이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애들이 “나 성적으로 자유롭고 싶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없다. 타이완에서는 학생이 임신해도 학습권이 보장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지원책이 없다. 김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삶의 주인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성교육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 ‘Yes’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어른들이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내지 못한 데 대한 질투가 아닐까(다같이 웃음). ●“청소년 성문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선 성에도 남녀 청소년의 권력관계가 있다. 남학생들의 경우는 성경험을 해도 별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여학생들은 성관계에서 ‘No.’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을 겪는다. 왜냐하면 남자친구가 심리적으로 불편해 하고, 상처를 받을까 봐, 또 가출한 여학생은 의지할 곳이 없어질까 봐…. 정 남자 아이들도 몸이나 욕망, 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하다. 매체에서 말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욕망이라던가 하는 것밖에 모른다. 걱정이다. 우 스웨덴은 청소년들이 실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지원해 주는 나라다. 청소년들이 언제든 성 상담은 물론 진료까지 무료로 할 수 있는 병원이 있다. 의료인, 보건교사, 상담사, 심리사 등이 팀을 이뤄 아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놀라웠다. 화 청소년의 성행동 수위는 높아지고, 우리 사회의 성폭력 등 성에 관한 문제는 심각하지만 지원 시스템은 부족하다. 아하센터와 같이 청소년성교육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곳은 전국 38곳, 서울 6곳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정부가 현장의 성교육 전문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 앞으로는 새로운 성문화를 위한 물적 토대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평등성이나 젠더 감수성까지 포함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여기에 어른들의 반성과 각성이 더해져야 한다. 상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하지만 성교육 의무화 등 여러 가지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 공교육 현장은 진지하지 않았다. 매번 초등학생 성폭력사건이 일어나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서로를 탓하지만 10년, 20년 전에 정말 진지했다면 오늘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을 것이다. 김양진·김진아기자 ky0295@seoul.co.kr
  • [영화리뷰] ‘스위치’

    [영화리뷰] ‘스위치’

    “결혼은 싫어. 하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 요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꽤 많다. 고학력 여성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여 자신만의 생활을 희생하기는 싫고, 종족보존(?)은 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한 넋두리다. 그만큼 결혼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하지만 마냥 넋두리만은 아니다. 여기 정말 그런 여자가 있다. 잘나가는 미국 뉴욕의 커리어우먼 캐시(오른쪽·제니퍼 애니스턴)는 우월한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 임신을 결심한다. 임신 성공을 기념하는 파티에 절친한 친구인 윌리(왼쪽·제이슨 베이트먼)를 초대하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윌리는 캐시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캐시가 다른 도시로 이사 가면서 기억 속에 묻힌다. 7년 뒤 다시 재회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윌리는 캐시의 아들 세바스티안(토머스 로빈슨)에게 유난히 끌린다. 자신을 꼭 빼닮았기 때문이다. 새달 2일 개봉하는 영화 ‘스위치’다. 영화는 결론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다.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두 남녀가 사랑에 성공하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의 공식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구조에 참신하게 첨가된 양념이 바로 ‘인공수정’이란 소재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미국 사회의 ‘체제적 자신감’을 보여준달까. 특히 인공수정의 매개가 정자의 체외 배출(!)인지라, 성(性)적 코미디가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도 별미다. 차세대 할리우드 스타로 불리는 아역 배우 토머스 로빈슨의 시니컬하면서도 엉뚱한 연기도 유쾌하다. 당차고 발랄한 미국식 유머가 인상적이다. 줄리엣 루이스, 제프 골드블럼 등 명품 조연들의 활약도 기막히다. ‘스위치’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가족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윌리와 캐시의 연인 관계보다 윌리와 세바스티안의 부자(父子) 관계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스위치’의 한계는 이 지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애초에 영화는 미혼 여성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미혼모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듯 했으나 결론은 ‘정상 가족’을 옹호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캐시와 윌리, 그리고 세바스티안이 온전한 가족이 되면서 그간 제기했던 참신함을 뒤덮어 버리는 까닭이다. 미국 사회 특유의 기독교적이고 보수적인 가족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치’의 대담함은 여기서 퇴색돼 버린다. 결국 진보적인 소재로 새로운 시각을 전하는 듯하면서도 케케묵은 할리우드 가족 영화의 경로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최근 원색적인 영화가 넘쳐 나는 올겨울 영화판에서 훈훈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나쁜 선택은 아닐 듯 싶다.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102분. 15세 이상 관람가.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철천지원수라도 좋은 상상력은 빌려라”

    “철천지원수라도 좋은 상상력은 빌려라”

    국내에서 아직 개봉은 안 됐지만 세계적으로 ‘토이스토리3’의 열기가 뜨겁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28일 현재 7억 3040만달러(약 8628억원)를 벌어들이며 미국 할리우드 역대 흥행수익 37위에 올랐다. 픽사 역사상 최고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쌍두마차인 픽사와 드림웍스의 관계도 조금씩 지각변동이 생기고 있는 것. 픽사와 드림웍스의 관계를 통해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판도를 읽어본다. ●디즈니 손잡은 픽사와 反디즈니 드림웍스 전쟁 픽사와 드림웍스는 모두 미국 애니메이션 원조격인 월트 디즈니와 연을 두고 있다. 픽사는 월트 디즈니의 자회사다. 1979년 컴퓨터 그래픽 회사로 출발, 1986년 애플에서 쫓겨난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사들이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경영난이 일자 월트 디즈니와 손잡고 토이스토리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고 2006년에는 디즈니에 정식 합병됐다. 반면, 드림웍스는 디즈니에서 쫓겨난 애니메이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가 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창업했다. 당연히 디즈니와는 철천지원수. 어찌됐든 디즈니의 두 ‘파생상품’은 세계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양대산맥이 됐다. 그리고 1998년 이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픽사는 ‘벅스라이프’를, 드림웍스는 대항마 ‘개미’를 내놨다. 당시 개미는 벅스라이프에 비해 독창적인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디즈니의 아성을 무너뜨리긴 쉽지 않았다. 3배 이상의 수익을 남기며 벅스라이프 완승. 하지만 드림웍스는 2001년 반(反) 디즈니로 무장한 ‘슈렉’을 통해 현실 비틀기와 패러디로 화제를 모으며 반격에 성공한다. 비록 픽사의 ‘몬스터 주식회사’가 흥행 면에서 근소한 차이로 앞서긴 했지만 슈렉의 파급력은 2004년 슈렉2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슈렉2의 대항마였던 픽사의 ‘인크레더블’은 완패. 2006년부터 3년간은 엎치락뒤치락 시절이다. 픽사의 ‘라따뚜이’, ‘카’, ‘월-E’는 각각 드림웍스의 ‘헷지’, ‘슈렉3’, ‘쿵푸 팬더’와 맞붙는다. 흥행은 드림웍스가 다소 앞섰지만 평단은 픽사의 손을 들어줬다. 튼실하고 기발한 스토리, 독특한 캐릭터와 색다른 유머 코드에 많은 점수를 줬다. 여세를 몰아 픽사는 지난해 ‘업’을 통해 드림웍스의 ‘마다가스카2’에 흥행 및 평단 점수에서 모두 우세승을 거둔다. 요약하면 이렇다. 드림웍스가 슈렉을 앞세워 반 디즈니 정서로 무장, 풍자와 패러디로 돌풍을 불러일으켰지만 ‘약발’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반면 탄탄한 스토리와 기발한 유머로 무장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평단과 관객에게 큰 호응을 받으며 드림웍스와의 격차를 넓혀가고 있다. 토이스토리3의 성공은 이런 흐름을 방증하며 ‘굳히기’를 하고 있는 셈. ●차별성 퇴색… 경계가 허물어진다 하지만 최근 두 회사가 내놓는 스토리 라인의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토이스토리3만 봐도 그렇다. 영화는 견고한 공동체와, 이 공동체에 진입한 이방인들의 권력 관계를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이미 대학생이 돼 장난감을 멀리하는 앤디. 불안에 떨던 장난감들은 우여곡절 끝에 탁아소에 기증되는 신세가 된다. 처음엔 놀아줄 친구가 많아 천국인 줄 알았던 어린이집. 하지만 알고 보니 신참들은 난폭하고 험한 말썽꾸러기 어린이들에게 배치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영화는 이처럼 공동체 속 ‘신참’의 위상에 대해 고민한다. 군대에 가면 왜 이등병이 ‘갈굼’을 당해야 하는지,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에게 왜 그리 일을 떠넘기는지,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일 수도 있겠다. ‘훈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가차없이 폭로하는 것이다. 픽사가 새롭게 시도하는 일종의 사회학적 발칙함이다. 소수(마이너리티)를 향한 이 같은 감수성은 전통적인 픽사의 화법이라기보단 드림웍스의 상상력을 일부 차용한 결과로도 풀이된다. 토이스토리3 이전부터 낌새는 감지됐다. ‘업’(2009)은 78세 고집불통 노인과 한 아이의 세대를 뛰어넘는 일탈 여행을 통해 세상을 뒤집고 싶다는 욕망을, ‘월-E’(2008)는 황폐화된 지구에 홀로 남겨진 청소 로봇의 사랑 찾기를 통해 불편한 인류의 미래를 역설한다. 드림웍스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해학, 더 나아가 현실 비판을 야무지게 녹아낸 것.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최근 개봉한 슈렉 포에버만 보더라도 ‘영원히 행복했다’는 가족주의가 진하게 묻어난다. 드림웍스 특유의 해학과 풍자는 메말라버리고, 대신 전통적인 디즈니식 화법을 따랐다.”며 “이젠 드림웍스나 픽사나 예전만큼 뚜렷한 차이가 없다.”고 분석했다. 기술적인 이유도 있다. 3차원(3D) 영화가 대세가 되다 보니 두 회사 모두 콘텐츠보다 3D 사실성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강 평론가는 “이런 구도 아래서는 이야기 차별성이 결국 퇴색되기 마련”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영화리뷰] 모성에 대한 두 영화

    [영화리뷰] 모성에 대한 두 영화

    ‘엄마….’ 듣기만 해도 짠해진다. 엄마의 사랑이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다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엄마의 사랑을 본능의 영역으로 귀속시켜 ‘모성 본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성 본능은 여성의 굴레가 돼 버렸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은 너무나 당연하게 따라다닌다. 여기 모성에 대해 조금 다르게 접근한 두 영화가 있다. 하나는 프랑스의 유명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레퓨지’이고, 다른 하나는 전수일 감독의 ‘영도다리’다. 두 영화가 바라보는 모성 본능은 어떤 것일까. ■레퓨지 : “모성은 죄책감이다” 파리의 아파트에서 두 연인 무스(왼쪽·이자벨 카레)와 루이(멜벨 푸포)가 헤로인을 맞고 있다. 다음날 루이는 마약 과다복용으로 목숨을 잃고 무스는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간다. 무스는 루이의 죽음과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진다. 무스는 루이의 동생 폴(오른쪽·루이스 로낭 슈아시)과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무스는 루이와 함께 마약을 했지만 자신만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임신은 죄책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출산을 결심하는 건 무스의 애도 방식이며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폴과의 만남으로 생각이 흔들린다. 폴은 루이의 동생이지만 입양아였다. 그는 친어머니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도 없다. 다만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상처를 갖고 산다. 무스는 이런 폴을 보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함께 상처를 치유한다. 결국 무스는 죄책감을 빼면 자신의 모성에 남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말한다. 우리 사회는 모성을 높은 가치로 이상화시키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란 것을. 어쩌면 가족주의자들에게 무척 불순한 코드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 15일 개봉. ■영도다리 : “모성은 성장통이다” 영도다리 밑에서 혼자 사는 열아홉살 여고생 인화(박하선)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미혼모가 되고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기관에 넘긴다. ‘혹’을 떼어내 가뿐할 줄 알았던 삶. 하지만 점점 무거워진다. 인화는 외부 환경에 무관심하다. 으슥한 골목에서 어린아이가 위협을 당하고 있어도, 영도다리 밑에서 패싸움이 나도, 취객이 물에 빠져 죽어도 멍하니 지켜본다. 하지만 입양기관을 찾아가 아이를 돌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생떼를 쓰는 모습을 대비시킨다. 영화는 인화의 모성애를 뼈대로 진부한 미혼모의 이야기를 다룬 듯 보이지만 모성애와 성장통을 같은 맥락에 놓고 있다. 인화는 미숙한 존재였다. 세상과 단절된 삶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존재로 재탄생된다. 아이를 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날 정도로. 떠나 보낸 아이와 엄마와의 재회로 마무리한 설정은 모성애 관점에서 마냥 진일보한 영화로 평가하긴 어렵다. 다만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아닌 엄마에 포커스를 맞춰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은 신선하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슈렉, 이젠 안녕~

    슈렉, 이젠 안녕~

    ‘슈렉, 이제 안녕’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슈렉’이 끝났다. 새달 1일 개봉하는 ‘슈렉 포에버’를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의 슈렉 시리즈는 나오지 않는다. 숱한 화제를 뿌렸던 슈렉의 성공은 흥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궤적을 한바닥 정리해 주는 게 대작에 대한 예의일 터. 슈렉의 10년사(史)를 되짚어본다. 슈렉 1편(2001):새로운 어젠다 슈렉의 혁신성에 대해 무슨 찬양이 더 필요할까. 처음 이 시리즈가 나왔을 때 영화계가 받았던 충격은 컸다. 너무나 신선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이면서 할리우드를 조롱거리로 삼는 풍자, 특히 애니메이션을 지배했던 영화 제작사 월트 디즈니식 동화에 대한 과감한 전복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슈렉은 꾸짖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백마탄 왕자의 첫 키스를 받아야 존재감이 부여된다는 식의 수동적 여성상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여자 주인공이 자기보다 나은 ‘스펙’의 꽃미남과 결혼한다는, 기존 동화의 진부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수술대 위에 올려 낱낱이 해부했다. 피오나 공주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이면서도 한편으론 날렵한 무술을 자랑하는 ‘엽기녀’이기도 하다. 슈렉을 위기에서 구해낼 줄도 안다. 마지막엔 슈렉과 사랑에 빠지면서 슈렉처럼 괴물이 되길 원하고 궁이 아닌 늪에서 살아가길 선택한다. 이는 자연히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며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교훈을 남긴다. 사람들은 외쳤다. “슈렉의 혁명은 이제 시작됐다.” 슈렉 2편(2004):어젠다의 심화 전편이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해 관객을 놀라게 했다면, 두 번째 시리즈는 그 어젠다를 심화하고 확장한다. 1편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자칫 재탕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흥행만 봐도 시리즈 역대 최강이다. 전세계적으로 9억 1980만달러(1조 1194억원)를 끌어모으며 역대 할리우드 영화 흥행 순위 13위에 올랐다. 2편은 전편이 강조했던 할리우드에 대한 조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을 기본 골격으로 유지하지만 이를 조롱하는 수위는 훨씬 농염해졌다. 특히 슈렉과 피오나 공주를 제외한 조연급 ‘기쁨조’들은 패러디의 진수를 선보이며 현실을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슈렉의 외모와 대척점에 있는 프린스 차밍은 비단 같은 머릿결을 흔들며 자기 과시와 겉멋에 취한 할리우드 스타를 비웃는다. 순수함의 상징 피노키오는 여자 속옷이나 탐내는 변태로, 살인청부업자인 장화 신은 고양이에게는 ‘순수한 눈망울’을 부여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리의 위선을 야유한다. 특히 신데렐라 게이 언니의 출현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에서 금기나 다른 없었던 성(性)문제를 포용한 선례는 없었다. 그만큼 슈렉2는 공격적이었다. 슈렉 3편(2007):어젠다의 퇴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전편에 쏟아냈기 때문일까. 슈렉3은 그만 퇴보하고 만다. 1편과 2편의 비판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풍자의 날도 무뎌져 버린다. 슈렉은 왕이 되길 거부하고 아빠가 되는 걸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유가 없다. 전편의 맥락상 권력에 회의적이었던 슈렉과 피오나의 성향을 전제한 때문이었겠지만, 아무래도 궁색했다. 슈렉 마니아들의 실망스러운 목소리도 커졌다. 이들은 슈렉3이 “뭘 비꼬는지도 불명확했다.”고 입을 모았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를 패러디했지만 왜 패러디했는지 풍자적 시선이 없었다. 그냥 복제로 끝났다. 상투적인 연설로 악당을 교화시키고, 다시 숲의 구석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조차 지양하는 진부한 이야기 방식이었다. 슈렉답지 않은 식상한 교훈만이 날카로운 풍자가 머물다 간 자리를 꿰차버렸다. 대중적인 재미도, 어젠다의 진보도 없다 보니 “슈렉에 힘이 빠졌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래서일까. 드림웍스는 대미를 장식할 슈렉의 마지막 시리즈를 만들고 슈렉 신화를 접기로 결정한다. 슈렉 4편(2010):어젠다의 재확인 전편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힘이 빠진 슈렉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 슈렉 포에버는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던 슈렉이 ‘겁나 먼 왕국’을 차지하려는 악당 럼펠의 마법에 속아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떨어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전편과 연결되는 이야기라기보다 “과연 슈렉이 (1편에서) 피오나를 구하지 않았다면?”이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일단 슈렉 포에버에서 대중적 재미를 회복한 것은 큰 성과다. ‘마법에서 벗어나는 길=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라는 디즈니식 기본 골격은 유지되지만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다시금 자신들이 했던 ‘전통의 전복’을 꾀한다. 왕자를 기다리다 지쳐 성을 탈출한 피오나는 현상금이 걸려 있는 괴물 해방 운동의 지도자가 돼 있다. 역시 피오나는 마이너리티를 고민(?)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럼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처럼 엽기적이면서도 정이 가는 캐릭터로 분했다. 마냥 밉상이 아닌 악역이란 점에서 할리우드식 권선징악과는 선을 긋는다. 결론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피오나와의 진실한 사랑과, 누추하지만 평범한 숲속의 삶에 대한 긍정이다. 슈렉 시리즈의 공통된 주제를 최종적으로 재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3차원(3D) 영화라 생동감도 배가됐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슈렉의 한계는 뚜렷해졌다. 디즈니의 반(反) 여성주의와 식상한 스토리를 비꼬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서민 가족 공동체의 일상을 미화하는, 이른바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를 벗어나진 못했다. 이는 1편부터 4편까지 모든 슈렉 시리즈가 지닌 한계였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라.”는 미국적 보수주의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슈렉 시리즈는 ‘미완의 혁명’으로 명명하는 게 딱 적당할 듯싶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헬리콥터 부모’ 늘었다

    ‘헬리콥터 부모’ 늘었다

    심현순(52·서울 신사동)씨는 대학생 딸 김수연(25)씨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시키기 위해 지난 1년간 ‘고3 엄마’가 되다시피했다. 딸을 학원에 보낸 뒤 각 대학별 로스쿨 설명회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하루 종일 관련 정보 수집에 시간을 보냈다. 시험 당일에도 딸의 주민등록번호와 수험표 등을 챙겨주고, 시험 결과도 자신이 먼저 확인하고 딸에게 알려줬다. 심씨는 “딸에게 맡겨두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 절반이 자녀 취업준비 관여 은행 상품개발부에 근무하는 안모(27·여·부천 송내동)씨는 올 초부터 부서 회식에 참여하지 않는다. 아버지(58)가 회사에 전화를 걸어 “딸은 술이 약하니 회식에 데려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안씨는 사내에서 놀림도 받았다. 아버지는 딸이 입사 3년차임에도 직장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긴다. 회사 업무가 동료에 비해 과중하지는 않은지 노심초사한다. 늘 자녀 곁을 맴돌며 조언과 간섭을 멈추지 않는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들이 늘고 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한 욕망에서 출발한 부모의 과잉보호 세태가 심화되고, 갈수록 취업난도 고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 부모들은 성인 자녀의 취업 전선에까지 뛰어드는 것은 물론 취업후에도 직장 생활에 끼어들어 관리와 통제를 멈추지 않는다. 25일 취업 포털사이트 인쿠르트가 취업준비생을 둔 부모 2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자녀의 취업 준비에 관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자녀 대신 취업 정보를 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함께 작성하거나 취업 박람회·면접장까지 따라가기도 한다. 입사시험 출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기본이다. 이광선(57)씨도 전형적인 헬리콥터 부모이다. 이씨는 “스물여덟살 짜리 아들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을 힘들어해 매일 아침 수원 집에서 서울 역삼동 회사까지 태워다 준다.”면서 “해외영업파트에 근무하는 아들의 영어실력이 부족할까봐 회화학원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통 가족주의가 경쟁사회에 변질 전문가들은 가족 간 유대를 중요시하는 전통적 가족주의가 현대 경쟁사회를 만나면서 헬리콥터 부모란 개념으로 변질됐다고 분석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대학원생 학부모도 전화해 ‘자식 잘 봐달라.’고 부탁할 정도”라면서 “부모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넘어서 자녀가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의존하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미영 서울가족문제상담소장은 “부모들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심리적으로 자녀를 지배하고 싶은 것”이라면서 “자녀가 부모의 판단만 따라가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부모에게 책임을 돌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민영기자 남상헌 수습기자 min@seoul.co.kr
  • “신유교주의·선진경영 접목… 삼성이라는 독창모델 창조”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신(新) 유교주의를 바탕으로 일본과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경영 기법을 종합해 삼성이라는 독창적인 기업 모델을 창조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도미닉 바흐조 프랑스 소르본대 교수와 이 대학 극동연구센터 랑리 박 바흐조 연구원은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경제연구소 주최로 서울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열린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공동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신유교주의는 1960년대 이후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뿌리를 유교의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공동체주의에서 찾는 사조이다. 이들은 “호암은 한국의 신유교주의와 일본식 경영시스템, 독일식 생산방식, 미국의 관리방식을 종합했다.”면서 “그의 리더십을 통해 삼성은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독창성을 보이면서 한국 대기업의 상징이자 표본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 미국과 서유럽의 기술 장벽을 넘기 위한 인재양성 투자와 실천 중시 사고, 조직을 통한 관리 등도 이병철 경영의 두드러진 점으로 꼽았다. 호암의 ‘인재 제일주의’에 대한 재조명도 이뤄졌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과제는 무형 자산과 핵심 인재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호암의 인재 제일과 기업가 정신, 창조 정신, 공존공영의 경영 철학이 계승·발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나기마치 이사오 일본 게이오대 교수도 “삼성은 인재 채용과 육성 등에서 체계적인 제도를 구축, ‘삼성 사관학교’로 불린다.”면서 “호암의 인재경영은 초기부터 우수한 인재의 스카우트와 육성에 관심을 가졌던 미쓰비시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와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집단(재벌)의 공과에 대해 발표한 타룬 칸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기업집단은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새 회사를 창업, 잠재적으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외 재계·학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이 개회사와 축사를 한 뒤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이 ‘호암의 추억’을 주제로 특강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입 연 미네르바 “공익 해칠 의도 없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모씨는 9일 자신이 실제 미네르바가 맞지만 허위사실을 유포한 적이 없고 공익을 해칠 의도도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9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을 찾은 민주당 법률지원단 소속 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자신이 포털 다음의 토론 게시판 ‘아고라’에 글을 올린 이유에 대해 “소파상,가구상,원자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 환율,주가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느냐.”며 “되도록 정확한 사실과 의견을 알려줘 손해를 줄이려고 했다.”고 말했다고 접견한 이종걸 의원이 전했다.  이 의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씨는 검찰이 지난달 29일 자신이 쓴 글 ‘정부가 금융기관의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를 영장 청구의 사유로 삼은 데 대해 “아고라 등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기획재정부가 협조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정부가 사기업에 막대한 힘을 미치는데 정부의 협조요청은 금지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이 의원은 말했다.  다른 접견인은 박씨가 “오히려 내 글을 둘러싼 논란이 생기면서 글도 덜 올리고 자제해 왔는데 구속하겠다는 것이 황당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박씨는 ‘민유성 산업은행장을 낙하산 인사로 표현한 글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허위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또 정부를 향해 “이 정부에서는 정부를 비판만 하면 다 ‘좌빨(좌익 빨갱이)’이 되는 것 아니냐.”,“나치 때를 봐라.국민 입부터 막는 것 아니냐.이명박 정부가 미디어를 잡는 것은 예상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실제로 주식을 매매하거나 외환을 거래한 적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작성했고 주변 사람에게 한번도 자신이 미네르바인 사실을 말한 적이 없어 부모도 이 사실을 모를 정도라고 밝혔으며,함께 살던 동생은 인도에 선교활동을 나가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인터넷에서 ‘경제대통령’이란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데 대해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전문대 졸업 후 직장에 두 차례 근무했었고,검찰에 체포되기전 물류·마케팅 쪽의 한 중소업체에 출근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 의원은 “박씨는 검찰이 자신을 무직으로 밝힌 데 대해 불쾌해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유명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이것을 통해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며 “이젠 조용하게 내 사업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박씨가 기사를 뒤지는데는 전문가 같았지만 본인의 경력이나 학력 등을 종합하고 박씨가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부정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박씨가 글을 게재한 본인인가 하는 의심이 있다.”며 “박씨가 글 전부를 쓴 것 같지는 않고 공동저작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법률지원단은 박씨의 법률지원에 나서기로 했고,박씨는 “억울하다.많은 분들이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씨는 이날 오후 검찰 조사를 받고 휴식을 취하던 중 SBS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제위기로 인한 가정파괴를 막기 위해 글을 썼다.”며 “의도하지 않게 혼란을 줘 죄송하다.”고 심경을 밝혔다.그의 육성이 공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박씨는 “개인적 차원에서 피해를 줄이고, (경제적 위기에서) 가정을 보호하고자, 전통 가족주의 파괴를 막고자 했는데, 의도하지 않게 혼란을 줘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했다는 문제의 지난달 29일 글에 대해선 자신이 쓴 것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굳이 말하자면, (12월29일 글은 확대했다고) 그렇게 보시면 되겠죠.”라고 인정했다.수사로까지 이어진 것은 지나치다는 억울한 감정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검찰에서) 확대한 측면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서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이해 관계 대립이 있으니까 생긴 차이죠.”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사설]미네르바 사법처리 지나치다 ’미네르바’ 박씨를 소개합니다 노인들의 성…“죽어도 좋아, 아직 설렌다” 김형오 의장 “강경파 득세정치 희망 없어 국회 폭력고발 취하 않을 것” “행정인턴요? 차라리 ‘알바’가…”
  • ‘미네르바’ 활동 초기 글 삭제

    검찰이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모(31)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 대부분의 인터넷프로토콜(IP)을 파악, 박씨가 ‘e경제 대통령’으로 활동해온 미네르바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박씨를 직접 만난 변호인들끼리도 ‘짝퉁’ 여부를 놓고 엇갈린 판정을 내놔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9일 검찰에 따르면 수사팀이 지난 7일 박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을 당시 박씨는 인터넷에 게재한 미네르바의 글 원본 대부분을 PC 하드디스크에 보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서 이메일 등을 통해 글을 전달받은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하드디스크에 있던 내용을 포함,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협조를 받아 박씨가 지난해 10월1일 이후 작성한 글 280여건을 확보했다. 10월 이전의 기록은 하드디스크에서 모두 지워진 상태였지만, 검찰은 그 기간 네티즌들이 모아 놓은 미네르바의 글이 박씨가 사용하던 IP와 동일한 IP로 작성된 점 등을 확인, 모든 글을 박씨가 올렸다고 결론내렸다. 박씨는 검찰조사에서 ‘올해 경기예측을 써보라.’는 주문에 그 자리에서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40여분 만에 A4용지 2쪽 분량의 올해 경기 예측을 뚝딱 만들어 냈다. ‘리사이클링의 피드백 반복효과’ 같은 일반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단어를 섞기도 했으며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8~11월 월별 서비스업 생산증가율을 그린 꺾인 선 그래프도 삽입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하지만 문장력이 서툴러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박씨는 이날 방송과의 통화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피해를 줄이고, (경제 위기로 인한) 가정을 보호하고 전통 가족주의 파괴를 막고자 했는데 의도하지 않게 혼란을 줘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료변론에 나선 변호사들과 접견한 자리에서 “월간지 ‘신동아’의 송문홍 편집장을 만나거나 그를 통해 지난 12월호에 기고한 적이 없다.”고 말해 짝퉁 논란이 더 가열됐다. 민주당 법률지원단 소속 이종걸 의원은 “접견을 통해 확인한 박씨의 경제 지식은 기대 이하였다.”면서 “박씨는 신동아 기고 사실도 부인했는데 진짜 미네르바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5선 의원 출신인 박찬종 변호사는 “박씨에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어떻게 예견했는지 등을 물어봤는데 경제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진짜 미네르바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성규 홍지민 유지혜기자 coo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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