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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사출신 엘리트장교 범행에“경악”/“잦은사고”군기강해이 어디까지…

    ◎인격보다 성적위주 생도관리 주인/경비 허술한 육사 무기관리도 문제 육사출신의 현역중위 하기룡(25·육사49기)가 한낮에 총기를 들고 은행을 털려다 붙잡히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이 발생,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다. 건군이래 처음인 육사출신 현역장교 강도사건은 지난해 9월27일 53사단 장교 2명의 무장탈영사건에 이어 두번째로 빚어진 육사출신 엘리트장교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이날 사건은 물론 장교무장탈영사건때 제기된 초급장교의 선발과 교육·군기강등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다시한번 드러내주었다.그러나 이보다 우리 젊은 세대의 물질만능·향락풍조만연이란 사회적 병폐가 이 사건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경찰에서 범인은 『좋은 승용차에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서』라고 범행동기를 밝히고 경마에까지 손을 댔다고 말해 이같은 지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육사에 따르면 범인은 모범생이었고 따라서 임관과 동시에 육사의 추천으로 서울대 법대 2학년에편입했다. 법무병과를 받은 범인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법무관으로 임명될 자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는 지난해 졸업생 3명을 서울법대에,또다른 2명은 서울의대에 편입토록 했다. 따라서 이같이 우수한 자원이 상식밖의 범행을 저지른 데 대해 육사관계자들조차 아연실색하고 있다. 이번 범행의 배경으로는 정확한 인성파악과 인격도야를 외면한 성적위주의 육사생도관리가 첫번째 요인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육사생도는 통상 상오6시에 기상,2시간여 아침운동과 식사등을 가진 뒤 바로 학과교육을 시작,하오10시 취침하고 있다. 육사는 이런 꽉 짜인 환경속에서 잦은 시험을 통해 생도를 평가,생도끼리도 계급을 매겨 지휘와 복종 및 경쟁관계를 유지토록 하고 있다. 육사는 담밖에는 철저한 경계망을 펼치고 있으나 일단 내부로 들어서면 일체 경비가 없어 무기를 훔치기가 매우 용이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범인 주변/육사 49기… 전체 15등한 모범생/“승용차·여자친구 갖고 싶었다” 하기룡중위는 육사 49기로 93년3월 임관한 뒤군 위탁교육생으로 서울대 사법학과 2학년에 편입,현재 4학년에 재학중이다. 졸업때 법무병과에 배속된 하중위는 고시에 응시,법무관이 되기 위해 서울대 법대에 편입했다 하중위는 생도시절 전체 2백67명 가운데 15등의 우수한 성적에 럭비에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인으로서의 자질은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육사 생도로 입교하기 전에 받는 4주간의 교육평가에서는 「복종심이 부족하고 반발심이 강해 특수훈련을 시켰다」,1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적극성과 사교성이 부족하다」,3학년 기록부에는 「대인관계가 좁고 친화력이 부족하며 개인적 성향이 강해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라고 적혀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또 위탁교육생 평가서에는 「럭비 이외에는 무관심하다」고 적혀 있었으며 서울대에 편입한 뒤에도 사귀는 사람 없이 학교 도서관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해왔다는 것이다. 또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동기생들은 부유한 집안의 생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 과시욕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관계자는이와 관련,『머리는 뛰어나지만 단체생활에 적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하중위의 형(30)도 『평소 명석하고 사리분별을 잘했는데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중위는 위탁교육생들이 배속되는 학생중앙군사학교 소속으로 관악구 신림동에서 자취생활을 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범행동기는. ▲경마에 빠져 후배의 신용카드를 빌려 3백만원을 사용한 뒤 12만원은 갚았으나 나머지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해 범행을 결심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는가. ▲군에만 있다가 2∼3년 사회생활을 해보니 사회가 너무 물질만능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회의가 들기도 했으나 나도 모르게 그같은 사회풍조에 젖어든 것 같다.멋있는 빨간색 승용차와 예쁜 여자친구를 갖고 싶어 돈이 필요했다. ­학력과 가족관계는. ▲부산의 B고교를 졸업했다.도장업을 하는 아버지와 아파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울산의 큰누나집에 가 있는 어머니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다. ­군인신분으로 서울대에 다니는 이유는. ▲군에서 우등생으로 인정받아 국비위탁생으로 발탁된 뒤 서울대 사법학과에 들어가게 됐다.법무관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현재의 심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후회한다.
  • 기본개념·응용능력 종합평가/5개대 본고사 출제경향

    ◎문제풀이 과정 부분점수 인정 95학년도 대입에서 9일 처음으로 포항공대·동국대 등 5개대학이 본고사를 치러 본고사 출제경향을 가늠케 했다. 개교후 첫 본고사를 치른 포항공대는 교과과정 전반에서 기본원리와 응용능력을 묻는 종합적인 문제를 출제한 것이 특색이었다. 수학은 풀이과정이 간단하더라도 수학원리에 충실하고,수학적 응용능력을 갖추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됐지만 문제 유형이 흔히 보던 문제와는 다소 달랐다. 물리와 화학은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정도와 응용능력평가에 중점을 두었으며 객관식도 포함됐다. 포항공대는 문제풀이과정을 중시해 부분점수제를 채택하고 과학은 물리와 화학과목의 난이도차에 따른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표준점수제를 적용하며 본고사와 내신성적을 각각 50%씩 반영해 합격자를 선발한다. 논술고사만 치른 동국대는 60분의 제한시간을 주고 격변하는 사회 현실속에서 가치기준의 변화와 문명 발달에 따른 생활변화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가 나왔다. 인문사회계는 「도심지 횡단보도에는 보행자를 유도하기 위한 화살표가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횡단보도의 우측통행은 일반보도의 좌측통행과는 상반되는 경우이다.이와 유사한 예를 들어 상황에 따른 가치기준의 변화에 대해 논술하라」는 문제가 출제됐다.자연계는 「오늘날 교통·통신수단의 발달로 시간적 여유를 얻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생활이 더욱 각박해졌다.이를 통해 통신기기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술하라」는 문제를 냈다. 지원계열별로 영어와 논술(인문·사회대·의상학과),수학Ⅰ(경제학과),수학Ⅱ(이공대)를 치른 한성대는 각 과목이 고교교과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력과 기본 개념의 이해정도를 묻는 문항을 중심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출제됐다. 논술문제의 제목은 「세계화 흐름속에서의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대해 논술하시오」였다. 영어는 서술형과 단답형 등 주관식과 객관식이 각각 50%씩 출제됐으며 수학 Ⅰ·Ⅱ는 전 문항이 주관식으로 출제됐지만 비교적 평이한 편이었다. 한성대측은 『문제풀이 과정도 평가해 부분점수를 인정할 방침』이라면서 『과목별 평균점수가 60점이 돼야 무난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80년이후 15년만에 영어 1과목의 본고사를 실시한 동덕여대는 객관식 35문항과 주관식 15문항 등 모두 50문항에서 독해중심의 문제 대신 주어진 상황에서 묻고 답하기,전화받기,지도를 보고 길을 물어 찾아가는 방법을 영어로 쓰기,광고문안 해독하기,생활영어중심의 독해,가족관계 등 그림속의 상황을 영어로 표현하기,생활회화 테스트 등 거의 모든 문항이 실용영어중심으로 출제됐다.
  • “처제와 재혼한 「부모 내력」 아들결혼 결격사유 못돼”

    ◎서울 가정법원 판결 “화제”/부사취제 관습상 있을수 있는 혼인/결혼파탄 유발한 며느리·처가 패소 부인과 사별한뒤 처제와 재혼했다면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가. S대 석사출신의 엘리트 회사원인 A씨(34)와 명문 음대를 나온뒤 서울 강남에서 음악강습소를 운영하는 B씨(30·여)는 A씨의 아버지가 부인과 사별후 처제와 재혼한 것이 빌미가 돼 파경을 맞았다. 부유한 집안의 「수재」와 미모를 겸비한 「재원」은 중매로 만나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었으나 불과 7개월여만에 시아버지가 처제와 재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자쪽 집안에서 「짐승같은 집안」이라며 이혼을 선언했다. 신랑은 신부에게 물방울 다이아·블루사파이어·에메랄드 반지등 15가지 종류의 보석을 예물로 준비했다. 신부집안은 신랑이 장래가 촉망되는 수재인데다 모기업 사장을 아버지로 둔 일등 신랑감이어서 1억원대의 아파트를 팔아 전세집으로 옮기면서까지 혼수비용을 마련했다. 딸의 행복을 위해 신부측 부모는 자신들의 경제력을 넘어선 「출혈」을 감내했다.이들의 출발은 누가 보아도 호화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곧 불행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신부 부모들은 중매인으로부터 『딸의 시아버지가 신랑의 생모인 부인과 사별하고 처제와 재혼해 20여년을 살아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날벼락을 맞은 듯 했다. 그렇찮아도 신랑측의 과도한 혼수요구에 맞추느라 감정이 많이 상했던 신부 부모들은 『형부와 처제가 결혼을 하다니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다』,『진작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예 결혼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랑측이 가족관계를 숨겨온데 분노를 터뜨렸다. 이후 신부의 어머니는 수시로 딸집을 찾아 「불륜」의 시집식구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감시했고 신부도 시집의 대소사를 전혀 돌보지 않는등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두 집안은 결혼 7개월여만인 93년 12월 이혼과 위자료를 요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이태운부장판사)는 3일 『부인이 사망한 다음 형부가 전처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래의 관습상 얼마든지볼 수 있는 혼인형태인데도 신부측이 이를 문제삼아 집안의 불화를 야기했다』며 『두 사람은 이혼하고 B씨와 부모들은 연대해서 A씨에게 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 민법상 처제와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지만 재판부는 「과거지사」를 문제삼아 며느리와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B씨에게 파경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 하백의 딸들/명왕성은…/피어라 수선화/겨울문단에 3단편집 화제

    ◎판매부수 꾸준히 증가… 장편소설 아성에 도전/「하백의 딸들」·「…수선화」,삶에 대한 강한 애착 묘사/「명왕성…」,이유없는 살인·욕설 등 파격 소재 눈길 겨울 문단에 창작 소설집 바람이 거세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창작 소설집중 단편모음인 송하춘의 「하백의 딸들」과 「명왕성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공선옥의 「피어라 수선화」등 세편이 나란히 인기를 끌고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단편집이 흔히 장편에 비해 독자들의 주목을 덜 받는 일반적 경향과는 다른 이같은 인기는 의외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송하춘의 「하백의 딸들」과 공선옥의 「피어라 수선화」가 평범한 인물들의 삶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내 작가들의 호응을 얻은 작품이라면 박인홍의 「명왕성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독특한 소설쓰기 방식이 독자를 끌어모은 작품이란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작품속의 모든 인물들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가 송하춘의 창작집 「하백의 딸들」은 국민학생 고등학생 여공 오렌지족 회사원 노인 미국교민 일본교민등 우리시대의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작가특유의 「균형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지적한 「두럭산」이나 고교생의 임신과 낙태문제를 다룬 「하백의 딸들」,공장에 다니는 여직공들의 애환을 그린 「문」,회사 직원끼리의 반목과 이해관계를 담은 「청계천 가는길」,한국에 와있는 재일교포 여학생의 고민을 다룬 「진달래꽃」등 수록된 10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선하건 악하건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 인물들로 자리잡고 있다. 작가 송하춘은 따라서 자신이 작품속에 만들어낸 모든 인물을 논리의 잣대로 따지기보다 따뜻한 사랑과 애정으로 감싸안는 소설을 제시해 빛을 본 셈이다. 광주사태와 여성문제,상대적 빈곤등 우리시대의 문제점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다듬어내는 작가 공선옥의 「피어라 수선화」역시 주인공,특히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 부각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작품집이다. 광주사태의 희생자나 주역들이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 않은채 현재 그들이 짊어진 무게와 살아내려는 의지를 거칠지만 호소력있게 적어내고 있다.이번 창작집에서는 특히 「목숨」「목마른 계절」「흰달」처럼 광주사태의 희생자를 대부분 여자로 설정,그 후유증을 앓는 모습을 그리거나 비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생계를 책임지며 힘겹게 살아가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박인홍의 「명왕성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철저하게 파격적인 문장과 어휘의 집합으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전해주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일상적인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풀어가는 소설 형식에선 벗어나있지만 작가의 내적인 욕구를 솔직하면서도 튀는 글로 표현해 내 독특한 흥미를 창출해낸 작품들이다.사표를 낸 회사원의 이유없는 살인이나,소설쓰는 자신의 모습을 소설속에 담아내는등의 이례적인 소재말고도 작품속에 꾸준히 등장하는 욕설이나 배설행위 혹은 성관계등이 독자들에게 갇혀있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란 욕구를 대리충족시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파인 김동환의 문학·생애 총정리

    ◎아들 김영식씨,「아버지 파인 김동환」 펴내/친일·납북으로 묻혔던 문학성의 발굴/친필 편지·작품연보·교유관계등 수록/최정희와 전처와의 사이 자식도 공개 「국경의 밤」「북청물장사」「산너머 남촌에는」등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파인 김동환의 문학과 인생을 그의 아들 김영식씨(61)가 정리한 저서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책은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현재 도로교통안전협회에서 근무중인 김영식씨가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아버지 파인 김동환」. 이 책의 발간은 파인의 문학적 성과를 새롭게 밝혀내고 파인이 최정희여사(90년말 작고)와의 사이에 문인으로 활동중인 김지원·채원자매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리 저자인 김씨말고도 다른 생존 자손이 있다는 점을 함께 나타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우리 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행적과 납북의 이유로 그 평가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파인의 문학과 생애를 정리한 첫 저술이라는 점에서 문단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함경북도 경성출신인 파인은 일본 도요대학 영문학과를 중퇴하고 북선일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종합잡지 「삼천리」와 문예지 「삼천리문학」을 간행하다가 황국신민화운동을 벌이는등 친일행각을 벌였다.친일행적으로 인해 광복후 반민특위로부터 공민권 제한을 받다가 6·25전쟁때 납북된후 소식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씨는 8백4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파인이 방대한 시를 남긴 시인으로 뿐만 아니라 친일행위와 두 집살림을 했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자신의 추억과 자료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 파인은 시 4백26편말고도 4편의 소설과 86편의 수필,56편의 평론,7편의 희곡을 남겼음이 드러나 있는데 실제로 김씨는 파인이 발행한 「삼천리」 1백51권중 그동안 발견된 38권외에 50권을 더 찾아내 이 잡지에 수록된 파인의 작품을 소개했다.특히 처음 공개되는 사진자료와 파인의 친필편지,작품연보,교우관계를 상세히 정리해 앞으로 파인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파인의 가족관계와 친일부분 공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파인은 최정희여사와 만나기전 이미 신원혜여사(93년 작고)와 3남1녀를 두었으며 이 가운데 현재 이 책을 통해 아들로 나타난 저자인 김씨말고도 캐나다에 김영주시인이 살고있다. 김씨는 어머니 신원혜씨와 최정희씨등 두 살림에 얽힌 부분을 「약혼과 결혼에 따른 에피소드」「최정희여사와의 늦은 바람」「아내 신원혜여사의 한」등의 이야기를 통해 알리고 있다. 파인의 가장 큰 오점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친일. 파인은 자신이 운영하던 「삼천리」를 「대동아」로 개칭,황국신민화운동을 벌였지만 「33인의 송가」등 시를 발표해 친일행위를 참회하고 애국주의를 표방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친일행위와 관련해 파인이 사죄한 글과 함께 김영식씨가 아버지의 친일행각에서 받은 충격과 고백을 적은 글을 담고 있기도 하다.
  • 「에이즈 수혈」 3천명에/불정부,10억달러 보상

    【파리 AP 연합】 프랑스 정부는 국가보건기관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균에 오염된 혈액인줄 알면서도 수혈토록 방치했던 이른바 오염혈액 스캔들 피해자 3천2백여명에 대해 지금까지 50억프랑(10억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정부보험기금이 4일 발표했다. 지난 91년말 스캔들이 터진 뒤 피해보상문제 전담을 위해 특별설립된 보험기금은 또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신고가 모두 1만2천건으로 이중 4천명은 오염된 혈액을 공급받은 사람 또는 이들과의 성접촉을 통해 감염된 사람들이며 나머지 8천명은 그 가족들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합의를 본 3천2백명에 대한 지급보상액은 연소자 1인당 2백5만프랑(41만달러),80대 연령층은 30만프랑(6만달러) 등 연령,예상수입감소치,가족관계,피해자가 본인 또는 가족인가 등 종합적 판단에 따라 해결됐다고 보험기금은 설명했다. 오염혈액 스캔들로 당시 「미테랑의 황태자」로 불리며 촉망받던 로망 파비우스 총리 등 3명의 각료와 4명의 고위보건관리가 물러나거나 유죄선고를 받았으며 지난해 선거에서 집권 사회당에게 최악의 패배를 안겨주는 최대요인으로 작용했다.
  • SBS/전국방송 이미지 부각 “초점”

    ◎24일부터 개편… 네크워크화 본격 추진/「체험 삼천리」·「생방송 남자…」등 14개프로 신설 SBS­TV는 내년 봄 지역민방 출범과 함께 전국채널로 부상하게 될 것에 대비,전국 방송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공익성 강화에 역점을 둔 가을 프로그램 개편을 오는 24일 실시한다. SBS는 다음 주부터 기존 수도권중심의 「출발,서울의 아침」을 「생방송,출발 새아침」(월∼금 상오 6시)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용도 전국으로 확대했으며 지방의 문화유산 탐방 및 풍물기행으로 엮는 문화정보 프로그램 「체험 삼천리」(토 낮 12시10분)를 선보인다. 시청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됨에 따라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도 강화,가정에서 전화버튼을 이용해 게임에 참여하는 컴퓨터 게임프로 「생방송 달려라 코바」(월∼금 하오 6시55분)와 TV 미팅프로 「청춘은 아름다워」(화 하오 7시5분)를 신설했다. 이와 함께 SBS는 이번 가을 개편에서 가족대상 프로그램을 크게 늘렸다. 가족관계와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의식개혁 프로그램으로 「건강한 가정,건강한 사회­오늘 사람들」(월∼목 하오 10시50분,금 하오11시35분)을 신설하는 한편 형사 2명이 범죄사건을 풀어가는 개그드라마 「두 형사」(월 하오 7시5분),퀴즈프로 「청백 스튜디오」(수 하오7시5분) 등 가족 오락프로를 신설했다. 이밖에 30∼40대 남성들을 위한 「생방송 남자를 위하여」(월 하오 10시55분),가요와 클래식을 혼합한 고품격 음악쇼 「SBS콘서트 음악세상」(토 하오 11시55분)을 신설했고 70년대 KBS에서 방영됐던 「형사 콜롬보」시리즈를 일요일 하오 9시50분에 재방영한다. 아울러 시사·뉴스프로를 강화하는 방송사의 편성추세에 따라 일반 뉴스외에 현장뉴스와 기획보도를 주축으로 매거진 형식으로 진행되는 「뉴스 2000」(토·일 하오 8시)을 신설하고 기존 「시사기획」의 포맷을 다양하게 변형시킨 「시사진단」(목 하오 10시55분)을 마련했다.스포츠팬들을 위해서는 국내외 빅 이벤트를 집중 소개하는 「집중!스포츠 스포츠」(수 하오 10시55분)를 신설했다. 14개 프로그램이 새로 선보이는 이번 개편으로 「우리 집 이야기」「스타와 이밤을」「전격 테크노퀴즈」「내가 본 세상」「스타 다큐멘터리」 등 11개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시선집중 오늘」등 22개 프로그램의 시간대가 조정된다.
  • 범죄의 특성(신세대범죄 왜 흉악해지나:중)

    ◎거의 반인륜·충동적 범행/공동체의식 없고 「극단적 이기」 팽배/이유­대상 불분명… 막연하게 분풀이 최근들어 발생하는 20대 범죄는 크게 「패륜범죄」「사회저항형 범죄」「충동범죄」「보복범죄」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이들 범죄 가운데 80년대 중반부터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이 사회저항형범죄다.이유나 대상도 없는 「분풀이식 사회저항형 살인」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번에 발생한 연쇄납치살인사건도 똑같은 유형이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사회의 교육기능과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륜범죄」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핵가족화로 전통적인 효자상이 무너지고 가족간의 불화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범죄유형이다.평등사상이 잘못 반영돼 부모 형제도 이해타산 관계로 변질되면서 가족의 살상도 서슴지 않는 패륜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5월 19일 새벽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대한한약협회 서울지부장 박순태씨부부를 살해한 장남 한상씨(23)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박씨는 93년 8월 미국유학을 떠나 어학연수를 받던 도중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2천만원을 잃고 승용차 구입등으로 돈에 쪼들리자 귀국,1백억원대에 달하는 재산상속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했다. 살해방법이 너무나 끔찍해 경찰이 박씨를 진범이라 발표했을때 많은 국민들이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부모와 자식간의 신뢰붕괴,물질만능의 비뚤어진 의식등이 어이없는 폐륜범죄로 이어졌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92년 10월 24일 거실에서 잠자고 있던 아버지(50)를 공기총으로 살해하고 시체를 묶어 시멘트벽돌 4장과 함께 쌀자루에 넣어 한강에 내다버린 김진태씨(26·무직·절도등 전과9범)의 경우도 무너진 가족관계에서 빚어진 범죄로 분류된다.중3때 절도를 저질러 소년원에 갔다온 김씨는 이후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하고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때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사회저항형 범죄」는 그러나 불특정 다수등을 상대로 자신들의 그릇된 한풀이를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이번 「지존파」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사회에 대한 비뚤어진 불만,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인간을 잔혹한 범죄꾼으로 만들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이러한 범죄는 범의와 범행간에 아무런 인과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돼 사회불안의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91년 10월 훔친 프라이드 승용차로 서울 여의도 광장을 질주,2명을 숨지게 하고 21명의 어린이에게 부상을 입힌 김용제씨(21)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사례다. 선천적으로 시력이 나빠 국민학교 다닐 때 칠판글씨가 안보여 공부를 못했고 졸업뒤에도 직장마다 취직한지 한달도 채 못돼 내쫓겨 세상이 싫어졌다는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보니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었다. 김씨는 『국민학교때 어머니만 가출하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음독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전문가들은 어릴때부터 상처받은 영혼이 성년이 되어서도 치유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교육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동범죄」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경쟁심리가 이들의 인내력을 빼앗아간데다 극단적인 이기주의 팽배와 윤리교육의 부재등이 복합돼 감정폭발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21일 서울 송파구 잠실본동 모식당에서 이모씨(23·방위병)등 친구들과 술을 마신 김지훈씨(21·종업원)는 자리를 끝내고 택시를 잡으려다 정우진씨(20·재수생)를 칼로 찔러 숨지게 했다.먼저 택시를 잡으려 나와 있었는데 정씨가 가로채려 했다며 인근 포장마차에서 흉기를 들고와 휘두른 것이었다. 공중전화를 오래 건다고 시비가 붙어 생기는 「공중전화 살인」,술집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 일으키는 「우발적 살인」등 이러한 충동범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밖에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거리에서 발생한 영등포 「불출이파」행동대장 오일씨(23)피살사건에서 드러나듯 다른 조직과 이권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조직간 보복살인」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20대 범죄가 빈번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격적·폭력적인 것이 적극적이고 「사내답다」는 우리사회에 퍼져있는 잘못된 문화적 풍토와 무관치 않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실제로 지난해 발생한 1천20건의 살인사건 가운데 20대가 저지른 사건이 3백57건(35%)으로 가장 많았다.또 같은 기간동안 살인을 포함한 강력범죄도 전체 1만4천5백27건 가운데 20대의 범죄가 5천5백30건(38%)으로 가장 많아 20대 범죄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사회인으로 나서는 20대들에게 가족구성원들과 사회 주변의 모두가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갖고 건전한 가치관을 갖도록 지도하는 길만이 그들과 사회를 범죄에서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제언한다.
  • 말장난·폭력성·선정적/코미디프로 아직도 “저질”

    ◎YMCA,방송3사 11개프로 분석/인신공격·억지상황 연출·총기까지 등장/부적절한 애정묘사… 온가족이 보기 민망 각 방송사가 코미디프로그램을 주말의 가족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중복 편성해 시청률경쟁을 주도하고있으며 선정성과 폭력성이 빈번하게 등장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는 지난 6월28일부터 8월14일까지 방송3사의 11개 코미디프로그램을 모니터해 분석한 결과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SBS가 토요일 하오5시50분부터 8시까지 「기쁜 우리 토요일」·「웃으며 삽시다」를 연속으로 1백30분동안 방송하고 K­2TV가 일요일 하오 5시10분부터 7시까지 「폭소대작전」을 1백10분동안 ,M­TV가 일요일 하오6시부터 8시까지 「TV청년내각」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1백20분동안 내보내고있다.이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유사코너들로 구성되어 차별성이 거의 없는 중복편성인 것으로 나타났다.안방극장의 토요일과 일요일 가족시간대가 코미디 프로그램 일색으로 꾸며지는 셈이다. 이번 모니터결과 코미디프로그램이 각종 패러디,미니시리즈,역사및 시사 코미디,공포코너등 외견상으로는 다양한 장르와 기법이 많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장난과 억지상황 연출,과장확대,난센스수준의 코미디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함께 가족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에게 조차 부적절한 부부생활이나 애정관계를 소재로한 선정적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고있고 상식을 벗어난 가족관계 묘사나 그릇된 사제간의 모습등은 심각한 양상인 것으로 분석됐다. M­TV 「오늘은 좋은 날」의 「요지경가족」·「웃으면 복이 와요」의 「가시버시」코너,K­2TV 「폭소대작전」의 「살어리랏다」·「골방동네사람들」코너,S­TV 「열여라 웃음천국」의 「위험한 발상」과 「두아들」·「코미디 전망대」의 「미시박 이야기쇼」코너등이 부부간에 비하하는 내용,어머니에게 고함치는 장면등을 자주 방영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걸핏하면 치고받고 싸우는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총기등을 등장시킨 홍콩영화나 주먹세계등을 소재로한 폭력의 일상화 내용등이빈번하게 등장하고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K­2TV 「폭소대작전」의 「마지막 대부」,S­TV 「열려라 웃음천국」의 홍콩영화를 흉내낸 빈번한 총기사용 장면등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폭력성이 증가하고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재미를 위해 연예인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인격무시등 가학성과 마구잡이식 조어의 의도적 사용,비속어·외국어등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등도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 슈브니코프(전 평양주재 구소련대사)가 말하는 김정일 부자와 북정권

    김일성이 사망한지 40여일이 넘었으나 북한은 김정일체제 공식출범을 미룬채 핵관련 미­북대화만을 진전시켜나가고 있다.그들은 남북대화등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고있다.김일성사후 김정일의 위상과 그가 그리고 있을 남북관계 청사진등 북한의 향후 진로와 내부동향등에 대한 궁금증만 커가고 있다.또 김정일의 자질과 성격등에 관해서도 여러 엇갈리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본지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은 최근 북한사정에 정통한 미하일 슈브니코프 전평양주재 구소련대사(70)를 만나 김부자의 행적,향후 북한정권의 장래에 관한 그의 견해등을 들었다.통산 13년간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한 북한통인 슈브니코프 전대사는 특히 소­북한관계가 원만한 82∼87년 평양주재대사로 근무,김일성부자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24년 러시아 툴라시에서 출생한 그는 소련군사외국어학교를 졸업했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국제부 한국(남북한)과장을 역임했으며 외교관으로선 주로 북한관련 업무를 담당했었다.슈브니코프 전대사는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모스크바 비밀방문,김정일의 사생활과 주변인물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그러나 특별한 개인적 유대 때문인듯 그의 김부자 평가는 비교적 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사정에 밝고 특히 김부자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구소련고급외교관의 북한평가와 분석은 향후 「김정일 평양」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귀기울여 볼만 한 것들이었다. ◎평양식사회주의 미래가 없다/김일성 추모기간 끝나면 권력승계 무난/핵탄제조 능력… 플루토늄 보유량 적어 ­북한주재 대사로 근무했던 80년대는 소련과 북한관계가 밀월과도 같은 순탄한 시기였던 것으로 아는데 평양근무는 얼마나 했는지. ▲60년부터 3년간 첫번째로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했다.그리고는 본국으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에서 일했고 69년부터 73년까지 다시 평양근무를 했다.모스크바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장으로 일하다 82년 12월 북한주재 대사로 발령받았다.87년 12월까지 대사로 근무했으니 평양대사관에서만 13년을 일한 셈이다. ○13년간 평양에서 근무 나의 북한대사 재임기간이 소련­북한 양국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다는 점에 동의한다.이 기간중에 김일성주석이 모스크바를 두번 방문했다.나는 그중 한번은 김주석을 직접 수행,1개월에 걸친 기차여행을 함께 했다.60년 이후 그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일이 없다.주재국 대사인 나 개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김주석의 모스크바방문의 구체적 시기는 언제였는가. ▲첫번째는 체르넨코 서기장 재임시인 84년이었고 두번째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인 86년이었다.이중 84년 방문때 내가 모스크바까지 김주석과 동행했었다.1개월간 기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왔다가 귀국 때는 벨로루시,우크라이나,몰도바,루마니아를 돌아 평양으로 갔다.모스크바는 공식방문이었지만 나머지는 비공식방문이었다.86년 방문 때는 비행기편을 이용했는데 나는 동행치 않았다. ­김주석은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여행을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소공포증은 아니다” ▲그가 비행기여행을 피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것은 척추에 문제가 있으니 비행기여행은 피하라는 의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비행기 착륙시의 충격이 허리에 무리를 줄수 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그는 항상 허리를 똑바로 펴고 꽂꽂이 서 있었다.그것은 조금이라도 굽히는 자세가 되면 척추에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김주석은 말년에는 심장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사망원인도 심근경색으로 발표되었다.평소 그의 심장병 병세는 어느 정도였는가. ▲나이가 들면서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80년대 중반에 심장발작을 한차례 겪었다.내가 대사로 있을 때였는데 소련의사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자주 있었다.대부분 김정일이 직접 찾아왔고 외교부장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본국에 요청해 의사를 보내주었다.하지만 당시 러시아의사들의 최종진단은 『심장질환의 증세는 있으나 집무에는 지장이 없고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북서 모반 있을수 없다 ­김주석 사망과 관련,한때 자연사가 아니고 정치적 변고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1백% 불가능한 이야기다.자연사가 분명하다.김일성 주변을 보면 모반은 불가능하다.절대 불가능하다.김일성 주변의 인물은 김정일이 모두 통제하고 있다.그리고 김일성·정일 부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부자지간 이상이었다.김정일은 정실 소생의 장자다.김일성은 그를 끔찍이 아꼈다.김일성이 김정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때가 많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내가 아는한 그렇지 않다.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니 김주석 사망후 김정일의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됐던데 무엇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김주석 사망으로 받는 정치적 중압감도 큰 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추모기간 지나면 승계 ­김일성 사망 1개월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김정일이 주석과 당총서기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없다.다소 이상한 일 아닌가.후계구도에 진통이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 ▲김정일은 70년대 중반 공식 후계자로 확정되면서부터 실제로 국가경영 실습을 해왔다.70년대 당중앙위원으로 들어간 뒤 이후 정치국원,그리고 4∼6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임위원이 됐고 김주석 사망당시는 군최고사령관이었다.그리고 요로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놓고 있다.부친과 같은 세대인 원로들로부터 한결같은 지지를 받고있다.그래서 그의 권력승계는 별 문제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김일성 추모기간만 끝나면 주석직 승계와 함께 국가지도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당총서기는 정치국에서 이미 선출해놓고 발표만 미루고 있을수도 있다.당대회소집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김정일은 이미 「경애하는 지도자」였고 군통수권자였다.부친 사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1인자가 되도록 미리 치밀한 장치가 돼있었던 셈이다. ○김일성 음주 극히 자세 ­김정일이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도 없고 세습승계에 대해 일반주민은 물론 권력층 내부에도 반발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김정일은 과연 북한 최고지도자가 될만한 인물인가. ▲대사로 근무할 당시 김정일을 비교적 자주 만나 가깝게 지냈다.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 식사도 하고 술도 함께 마셨다.당시 그는 술을 아주 조금 마셨다.김일성도 술은 극히 자제했다.이점에 대해 외부에서는 잘못 알고있는 것 같다. ○카레이스·영화 큰 관심 내가 겪은바로는 김정일은 말이 적은편이다.지나치게 자기 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점이 특징이다.북한 같은 사회에서 2명의 지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부친의 그늘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때때로 『이 사람은 진짜로 권력 정상에 오를 생각이 없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김정일은 부친과 사진을 함께 찍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쓸 정도로 몸조심을 했다.소련대표단이 그렇게 북한에 자주 갔는데도 김부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젊었을 때 김정일은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특히 카 레이스를 좋아했고 영화·음악등에 관심이 많았다.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성격이 조용하고 신중한 쪽으로 바뀌었다.부친의 영향 때문으로 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사람들이 겪는 인격성장 과정과 같다고 할수 있다.김일성대학 철학부에 다닐때 성적은 좋은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외국에서 공부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손혜림,손성필의 친척 알콜중독자라느니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말을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다.그와 자주 낚시도 다녔는데 나라문제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있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교육받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그의 사생활등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의 경력은 물론 부친이 만들어 준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김일성이 5자녀중 그를 후계자로 택한 것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겠는가.나름대로 그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겠는가. ­김정일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몇차례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의 집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부인이 있고 자녀가 2명 있다는 사실만 안다.내가 평양에 대사로 있을 당시 그의부인 이름은 손혜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모스크바주재 대사 손성필과 친척인 것으로 안다.김정일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북한에서는 이것이 비밀사항으로 돼있다.그는 60년대초 부친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고 80년대 중반 북경에 간적이 있으나 그외 외국이라고는 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때 동독 방문설이 있었으나 루머임이 확인됐다. ­아웅산 폭파사건,대한항공기 폭파사건,그리고 여러차례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에 김정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대사가 그의 성격등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것 아닌가. ○소·동구 붕괴에 위기감 ▲솔직히 말해 그 사건들의 배후에 대해 나는 들은 것이 없다.한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저지른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당시 소련정보기관들은 추가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었다.북한 정보기관의 소행이었더라도 그들의 속성상 비밀사항이 외부에 새나오지는 않는다. ­앞으로 김정일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을 포함,모든 정책방향이 김일성생존시와 동일할 것으로 보면 된다.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 정책을 바꾼다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김정일은 소련,동구의 예를 지켜보았다.체제변화를 쉽게 용납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 때문에 결국 정책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올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김영주도 정일을 아껴 ▲북한은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는 것은 사실이다.북한경제는 소련에 의존한 체제였는데 지금은 그 관계가 단절됐다.지금 러시아지도자들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외부세계가 그들을 고립시킬수록 더 주체체제를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그들은 살아간다.북한은 지금도 철저한 분배사회다.그래서 사회안정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러시아보다 낫다고도 할수 있다. 예를들어 현재 러시아에서는 소비재가 상점에 넘쳐나지만 주민 90%가 이를 살 능력이 없어 불만이다.북한은 그렇지 않다.그들은 아예 가난하지만 주민 모두가 이를 참고 사는데 익숙해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은 좋은 결과를 낳기 힘들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물론 김정일은 한국과의 협력이 북한사회의 내부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보다는 이 개방을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북,내부붕괴 우려 개방 신중/“주석,정일 매우 아껴… 부자관계 이상”/후처소생 평일은 대권 넘볼수 없다/김정일 나이들며 술적게 마시고 신중/김일성 항공여행 기피,척추통증 때문/80년대 중반에도 심장발작… 자연사 확실 ­삼촌인 김영주,이복동생 김평일은 개인적 야심이 없겠는가. ▲그들은 김정일과 같은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김영주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그는 모스크바대학을 나왔는데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것으로 느껴졌다.김평일은 후처소생이어서 어차피 북한사회에서 김정일과는 격이 다르다.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내외,그리고 거기서 난손자들을 특히 귀여워하며 아꼈다. ○불만있어도 표현 못해 ­북한에 반정부,반체제세력이 있는가.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은. ▲심각한 반대세력은 없다.인텔리겐차,교육받은 계층가운데 다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짐작할수 있는것 아닌가.그러나 어떤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가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조심해야 한다.따라서 사회전반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군부의 김정일 지지는 확고하다.오진우는 김정일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고 그를 아주 좋아한다.오진우가 언젠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김정일이 직접 내게 찾아와 모스크바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해준일이 있다.후일 오진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는 김정일과 내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오극렬도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반정부 시위,주민들의 봉기가 일부 있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리는데. ▲북한은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김정일의 여성편력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사의 견해는. ▲물론 내가 그의 사생활을 다 안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런 유의 얘기는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사회주의국가 간부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들로 숨돌릴 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김정일이 오래전부터 실질적 국가경영을 맡아왔다고 볼때 방탕한 생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보는가. ▲영변의 핵단지는 연구·훈련용으로 규모도 매우 작다.물론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갖고 있고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핵폭탄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북한은 갖고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그들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화해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은 이론적으로는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지만 실제로 이를 현실화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핵탄 현실화 어려울것 ­대사의 평양근무 기간은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시기였는데 북한당국의 항의나 섭섭함의 표시는 없었는가. ▲공식적인 항의는 없었다.당시 소련지도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했다.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북한정부와 차이가 있었다.우리는 국제사회가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고수했다.소련지도자들은 주체에 대해 반대했고 이것이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북한당국이 주체사상을 굳이 고집하는 데는 우리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가까이서 본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66년에 조·소 정상회담 ▲ 그가 취한 정책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하자.우선 분단,남북대치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50년 가까이 집권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던 브레즈네프와 김일성간 양자회담을 4시간 가량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는 참모의 도움없이 회담을 잘 이끌어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런 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 초문인데. ▲외교비밀인데 실수로 발설한 것 같다.66년 그런 회담이 열렸었다.당시 소원했던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 두 지도자가 비밀리에 만났고 그후 양국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양국관계사에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이 자리에서 공식 협정체결 같은 것은 없었으나 주로 경제분야에서 많은 원조약속이 이루어 졌고 군사원조를 포함한 군사협력,기술지원 약속도 이뤄졌었다. ­공산주의,특히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러시아에서는 70년이나 되는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지금도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북한이 하고있는 사회주의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전혀 없다.남한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체제경쟁에서 북한이 졌다.그러나 그들이 굳이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놓아두고 그들이 스스로 변화를 택할 때까지 도와줄수 밖에 없지 않은가.
  • 강명도·조명철씨가 밝힌 「후계자의 사생활」

    ◎“김정일성격은 급하고 저돌적”/「곁가지」 제거에 신경… 도마다 「기쁨조」 운영/세여인 사이 3남3녀… 23살 장남도 방탕 김정일의 성격은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인 편이며 건강도 아주 좋다고 귀순자들은 밝히고 있다.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씨(36)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성격과 관련,『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며,시시때때로 성질이 왔다갔다해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패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김정숙)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 우는등 눈물도 많다고 했다. 전건설부장 조철준의 차남이자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인 조명철씨는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 졸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를 않는다고 강씨는 밝혔다. 83년 강씨의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는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밝혔다. 또 허답의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졸업뒤 선전선동부에 근무했으며 전문가 이상으로 피아노를 잘치는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그녀의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한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또 권력서열 2위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고 밝혔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40)이며 고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정일 후계 승계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를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다는 강씨는 당시 김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특히 전쟁시 사용하기위해 홍콩의 마카오를 비롯,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은행등에 외화를 넣어두고 있다고밝혔다. 강씨는 김정일 체제의 수명과 관련,『20년전부터 정치를 시작,85년부터는 사실상 정권을 총지휘해 온데다 당정의 조직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면서 『사실상 김정일은 총비서와 주석직을 다 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씨는 그러나 경제의 70%가 파탄에 이르러 경제및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주민들의 불만고조로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의 이종… 북 대표적 개방파/「사위 귀순」 강성산은 누구 귀순자 강명도씨(36)의 장인인 강성산정무원총리는 현재 북한 권력서열 3위에 올라있는 실세인데다 두번째 총리를 역임하고있는,김정일의 핵심측근.지난 8일 사망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의 큰 언니 아들이어서 김일성과는 이종사촌관계. 올해 63세인 그는 북한 경제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주자이며 김달현등과 함께 북한내 몇 안되는 개방파 인물.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으로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뒤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체코의 프라하공대에 유학하는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67년 자강도 당책임비서로 임명된데 이어 70년 39세에 평양시당 책임비서로 발탁돼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김일성부자의 각별한 신임으로 77년 정무원 부총리에 전격 임명된 이후 84년 최고인민회의 7기 3차회의에서 제1부총리자격으로 「남남협력과 대외경제활동을 강화하고 무역활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대하여」라는 주요보고를 한뒤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이해 9월 합영법과 외국인소득세법등 개방정책관련법들을 마련하는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개방준비에 박차를 가했다.그러나 경제개혁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86년12월 총리직에서 해임돼 당비서로 자리를 옮긴뒤 88년3월 전직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도 두만강개발계획을 창안하는등 개방을 계속 추진해왔으며 그의 이같은 경제개혁추진능력은 김일성으로부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았고 92년 12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사위의 귀순이 그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 귀순 강명도·조명철씨 기자회견 일문일답

    ◎북군부 오진우·오극렬파 암투 치열/김정일,85년부터 외교 제외 모든 권한 행사/전쟁 대비,마카오·스위스·일등에 외자 예치 27일 귀순 기자회견을 가진 강명도씨와 조명철씨는 『북한 김정일의 정치 체제에 회의를 느껴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귀순동기와 강성산총리에게 알렸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 ▲(강씨)89년 인민무력부 실장으로 있을때 군부고위계층의 권력다툼과정에서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된 적이 있었다.이때 죄없는 3만여명의 죄수들이 구타당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김정일의 정치체제에 불만을 품게 됐다. 부모친척중에 김정일의 측근이 많다.그래서 이들이 석방을 제의해 김의 지시로 석방된뒤 강성산의 도움으로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발령받고 작년 12월 강재수출관계로 중국으로 가게됐다. 그러나 강재를 못 팔아 자금회수가 어려워 1주일로 예정했던 체류기간이 한달로 길어졌다.북한에서는 내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돼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이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게돼 탈출을 결심했다.강성산이나 가족들은 탈출사실을 모른다. ­한달간 머문 행적은. ▲(강씨)중국에서는 겨울이 지나야 강재값이 오르므로 팔지 않고 있었다.돈을 돌리기 위해 심양과 북경등지를 왕래했다.김일성 사후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했다.오늘의 귀순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되면 강성산에 대한 대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군부내 권력다툼이 심각하다는데. ▲(강씨)북한 군부내의 권력다툼은 오진우·오극렬·이봉원파등 3개파로 갈라진다.그 밑으로 1군단과 2군단 출신파로 갈려 있다. 오진우파와 오극렬파가 갈려진 배경은 이렇다.87년에 오진우가 김정일과 함께 만찬에 참석했다가 대형 벤츠 승용차를 직접 몰고 돌아오다 가로수를 받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오진우는 거의 죽을 상태가 돼 후임을 오극렬이 대행하게 됐다.오는 이후 총참모부에 공군사령부 출신을 측근으로 기용하는등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가 무력부장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오진우가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1년만에 회복돼 복귀해 이봉원한테서 이런얘기를 듣고 분개했다.이봉원은 오극렬과 사이가 안좋았다. 원래 오진우는 혁명1세대이고 오극렬은 만경대학원 출신의 2세대인데 오진우는 오극렬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김일성에게 교체를 요구해 결국 오극렬은 물러났고 그의 사람도 다 나가게 됐다. ­김정일의 후배로서 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무원 간부들이 성향은.(강씨에게)김달현의 근황은.강성산이 88년 좌천이후 재발탁된 배경은.강성산과 김정일의 관계는. ▲(조씨)나는 북한에서 풍파를 격은 사람이 아니다.고스란히 자라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남산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고등반 인민반 유치원반으로 나눠져 있고 장차관급이상 자녀들만 따로 교육하는 곳이다.이 곳에서나는 김정일의 동생 김평일,영일과 함께 공부했다. 대학졸업후 김일성대학 교원이 돼 상류생활을 하면서 행복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그러면서 김정일체제와 북한 사회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김정일은 정치적 경제적인 업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남쪽의 소식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나의 행동이 북조선 통치자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김평일과 영일은 공부도 잘했다.김평일은 사람을 많이 끌었다.학교에서는 김정일을 치켜 세우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결단코 제거하자는 운동이 미사여구로 미화됐고 정당성으로도 연결됐다.이런일도 있었다.학생들은 김평일과 영일과는 대면하지 못하게 돼 있으나 어느날 축구를 하고 선생들이 평일 영일과 식당에 가 식사를 같이 했다.서로 불문에 부치기로 했으나 어느 선생이 노트를 두고 나와 탄로가 나 많은 선생들이 물러났다. 정무원 각료들은 파벌은 없다.그러나 이들은 개방을 원하고 있다.정무원의 모든 부장들은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강씨)김달현은 나의 친척이다.할아버지는 강선욱인데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와 6촌형제이며 전부주석 강양욱과 친형제이다.김달현은 강반석의 오빠 강진석의 손녀 사위이다. 김달현은 대외분야를 많이 맡아 92년 12월 강성산이 총리가 되면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에서 같이 승진했다.그런데 김은 강성산이 심장쇼크로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총리를 대행하면서 경제를 책임지게 됐다.그때 군수공장의 전기를 30% 삭감해 탄광등지로 보냈는데 그 때문에 군수생산계획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김일성이 받게됐다.김일성은 대노해 『정신 있는 사람인가』 하면서 질책을 했고 김달현은 사상검토를 받고 도청도 당했다.김달현은 강성산과 때로 맞서기도 했다.강성산이 내놓는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결국 김은 작년 12월 함남에 지도원으로 내려갔다. 강성산은 경제문제등이 꼬여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당뇨병이 심해졌다. 그래서 김일성이 쉬도록 권고해 88년에 함북으로 휴양을 갔다.91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는데 재기는 상상도 못했다.강성산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다.강은 중국 출신이고 아버지 강위련은 빨치산출신으로 김일성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강의 삼촌 강위룡은 아직 살아 있다.강위련은 기관총 분대장을 했는데 강이 죽자 김일성이 몹시 울었다고 한다.강은 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 이근모 연형묵등과 함께 체코에서 유학도 해 체계적으로 키워져 김일성이 등용했다.강은 김정일과도 가깝다.김정일과 사이가 나쁜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비리를 들춰 낸 것이 계기가 됐다. ­북한의 핵 상황은. ▲(강씨)김정일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핵이라 생각하고 있다.인민생활과 경제가 파탄상태인데도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핵이라고 여기고 있다.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민간공장보다 더 많다.핵이 개발됨으로써 군수공장의 투자를 민간으로 돌릴 수 있다는 논리이다.동구권국가가 허물어지면서 공격받지 않으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북한은 5개 정도의 핵폭탄생산을 완료했다.핵을 실어나를 로켓 생산은 실험단계이고 94년까지 완전 생산할 것이다.최소한 10개정도 확보한 다음에는 보유사실을 공개해 남북 대미 관계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핵폭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다만 갯수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이 이야기는 영변 핵단지에 있는 고위 간부가 아들 결혼식 때문에 나와 술과 담배 식료품등을 취급하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은 것이다. ­북한내 지식인이나 고위층주변의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어떠한가. ▲(강씨)북한의 지식인들과 일부 고위층 사이에는 김정일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이때문에 식량난과 경제난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평소 김정일은 지나치게 즉흥적인 정치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일부 원로들에 대해서까지 너무 편견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이러한 내막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나 고위층들은 그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조씨)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이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북한사회를 빠져 나올 경우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뿐 80년대 중반부터 노골화된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체제는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강씨)20년전부터 정치를 해와 권력기반은 튼튼해 수명이 길 것으로 본다.75년부터는 정권기반을 닦았으며 85년부터는 김정일이 외교권 행사를 제외하고는 총지휘했다. 당정의 지시를 받아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유일적 지도체제에서 당정은 사실상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또 기본권력수뇌부인 당정 조직 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 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총비서,주석을 다 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청진시의 화학석유공장이 91년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작년 9월 한달동안 김책제철소가 가동되지 못하는등 경제의 70%정도가 파탄지경이어서 김정일 체제 수명은 주민 불만고조로 짧아질 수도 있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총정치국장을 겸하고 있는가. ▲정치국과 참모부간의 갈등이 많아 오진우가 겸임하고 있다. ­94년을 잘 넘긴다는 뜻은 무엇이고 핵수출 가능성은. ▲지난해 김정일은 북미회담과 IAEA핵사찰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진의,핵사찰에 대한 중국의 입장등을 파악하느라 집에도 가지못하고 청사에서 자면서 북미회담을 지휘했다. 이때문에 김정일은 당시 내년(94)만 잘 넘기면 북미회담및 남북회담에서 유리하다고했다.핵수출여부는 잘 모르겠다. ­외화보유고는 얼마나 되나. ▲대성은행이 전쟁에 대비해 마카오,스위스,일본은행등에 외화유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사로청과 한총련과의 관계는. ▲사로청 산하 조선학생위원회는 사로청의 외곽지도를 받고있으나 사실상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지도하고 있다.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럴싸한 이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왜 남조선으로 오는 귀순자들이 있는지 학생들은 심각히 생각해봐야한다. 또 서강대 박홍총장의 얘기는 약과다.대남정보부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보다는 흥분하기 쉽고 혈기가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의 성격,지식,지도력,건강,가족관계는.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성질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뜻의 「패났다」는 소릴 들을 정도다. 피아노를 전문가이상으로 치는등 예술에 매우 조예가 깊다.매우 건강한편이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서 우는등 눈물도 많다. 김정일이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등 졸렬하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 않는다.83년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는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였다. 또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하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출신의 고영희씨(40)이며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송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 김군은 그러나 김정일 뒤를 이를 후계계승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김군을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을 때 김군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가. ▲(조씨)남산고등중학교 시절에는 남한 신문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가 건설부부장으로 일할 때 장관급 이상 고위직에게 보급되는 국제정세,남조선정세,과학기술정세등에 관한 참고통신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이 통신은 논평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기록돼 있다.또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같은 정보가 비밀히 나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사망으로 집단 통곡하는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조씨)북한의 주체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고 주민들은 세뇌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주민들은 주체사상이 대중과 민중을 위한 이론으로 알고 있어 이를 만든 김일성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또 주민들이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장인 강총리 숙청될것” 괴로운 표정/“북뉴스 접촉기회” 내외신기자 2백명 몰려/귀순자 기자회견장 이모저모 27일 귀순한 강명도씨와 조명철씨의 기자회견이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회견장에는 두 사람이 북한고위인사의 친인척이어서 폐쇄적인 북한 내부의 고급 뉴스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특히 일본의 교토통신과 유럽의 로이터통신등 외신기자가 보도진의 절반을 넘었으며 국내 기자들보다 앞서 질문공세를 펼침으로써 최근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강씨등은 시종 진지하고 또렷한 말투로 취재진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했으며 종래 귀순자들과는 달리 고위층 내부의 비밀스런 활동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 이날 회견에서 강씨는 여유있는 태도와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북한 내부사정을 조리있게 설명.반면에 조씨는 구체적인 답변보다는 학자풍의 원칙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해 대조적. ○…특히 강씨의 경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87년 음주교통사고를 낸 상황을 설명하면서 오의 대형벤츠 승용차 번호인 216­5555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도 해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이날 강씨는 3시간여동안의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나의 귀순과 기자회견으로 단기간내에는 강성산총리의 신변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숙청등 그 대가를 치르고 상당히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도중 땀을 훔치는 등 다소 힘든 모습을 보인 조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동료들은 북한의 모순된 체제를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달아났다고 비난할 것』이라면서 『다만 우리들의 귀순동기가 북한사회에 알려져 북한사회를 바로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인적사항 ▷강명도◁ ▲나이·생년월일:36세,58.12.4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1동7반 ▲직책: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 ▲학·경력 ­70.8∼76.9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6.10∼79.9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79.9∼82.7 중앙사로청 과외교양지도국 외사과 지도원 ­82.7∼85.10 조선인민경비대원,평양시당 39호실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7.6∼92.2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 *외국인 무단접촉으로 90.3∼92.2 평남 북창군 「18호관리소」수용 ­92.3∼ 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대외명칭 「릉라888무역회사)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부사장 ▷조명철◁ ▲나이·생년월일:35세,59.4.2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봉수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1동 8반 아파트 20층1호 ▲직책: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92.8부터 중국 북경언어학원·천진시 「남개」대학 유학 ▲학·경력 ­71.9∼77.8 남산고등중학교 졸 ­77.9∼83.8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자동조정학과 졸업 ­83.9∼87.10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 *기업관리 현대화 전공,준박사학위 취득 ­87.10∼92.7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경제수학·기업관리 현대화 강의 ­92.8∼93.7 중국 유학,북경 언어학원 중국어 연수 ­93.9∼ 중국 천진시 남개대학관리학부 연수 *경영합분야의 정책결정론 과정
  • 평등한 부부의 제1조건/상대방 의사결정권 존중

    ◎정무2장관실,여론선도층 510명에 설문/“민주적 대화자세 가장중요” 53.7% 응답/“전통적 성역할에 집착 말아야” 지적 많아 가정내 대소사때 의사결정과 부부간의 대화가 민주적으로 이뤄지느냐 아니냐하는 문제가 평등한 부부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척도인 것으로 드러났다.또 평등한 부부관계를 형성하는 주요인으로는 34.46%가 성격차이,27.14%가 가정의 경제적 안정도,19.86%가 아내의 취업여부,17.33%가 부모와의 동거여부,13.01%가 양가 집안배경을 손꼽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세계가정의해를 맞아 정무제2장관실이 최근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5백10명의 각계 여론선도층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민주적 가족관계 정립을 위한 평등한 부부에 대한 의견조사」결과에서 나온 것이다.응답자들은 평등한 부부의 기준으로 53.7%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면을 손꼽았으며 다음은 가사와 자녀양육 분담의 책임(17.4%)및 자신의 부모와 배우자의 부모를 동등배려하는 등의 심리·정서적인 유대(17%),부동산과 동산의 소유권과 관련한 가정내 경제관리(11.9%)면을 지적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부부의 평등성 확보를 위한 전제조건인 평등성 실태조사에서는 83.1%가 가정내 주요문제에 대한 의사결정권자를 남편이라고 응답한데 비해 아내는 9.4%,부부공동은 7.5%에 불과,남편들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동시에 아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에 대한 평등실태 조사에서도 가사노동의 경우엔 80%가, 자녀양육과 교육분담은 66.3%가 여성들의 일방적인 불평등을 인정했다.이 경우 응답자들은 「남편은 생계책임·아내는 가사책임」이라는 전통적 성역할을 고집하지 않는 성별분업에 대한 개방적 사고가 있어야 평등관계가 이뤄질 것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정내 경제관리의 영향력 행사에 대해선 72.7%가 아내에게 있다,23.1%만이 남편이라고 응답,아내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었다.한편 아내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경제권은 생활비 지출 등 일상적인 가정경제 운영권에 머물러 77.5%가 부동산 소유(48.3%)·동산소유(15.1%)·재산증식에 대한권한(14.1%)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무제2장관실은 이번 조사결과를 기초로 민주적 가족관계의 중요성과 평등한 부부관계를 확산시키기 위해 9월중 부산과 광주 서울 등에서 차례로 「평등한 부부」주제 토론회를 열고 평등한 부부 모델을 선정,시상할 계획 이다.
  • 천리안 통해 북한인명록 서비스/서울신문,오늘부터

    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소장 이재근)는 16일부터 데이콤의 PC통신망 「천리안」을 통해 북한 인명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북한 인명록에는 정치·군·관계·재계·언론계 등에서 활동중인 1만5천여명의 북한 저명인사에 대한 인적사항 및 경력,취미,가족관계,교우관계 등 프로필을 담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천리안 처음화면에서 「12·기업/무역/세무/물가/인물란」을 누르고 「43·북한인명록」을 선택하면 된다.서비스이용요금은 1분당 3백원이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20년전 유골 신원 밝혀냈다/고대법의학연구소팀

    ◎미토콘드리아 DNA 감식 성공/두집안의 소유권분쟁에 종지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전자감식을 통해 수십년이 지난 유골의 신원을 밝혀내는데 성공,앞으로 묘지소유권분쟁을 해결하거나 오래된 유해의 가족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의대 법의학연구소 황적순교수팀은 2일 두 가족이 서로 연고를 주장하는 20년 된 유골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인체내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을 이용,가족관계를 규명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황교수팀은 임모씨(72·여·인천시 북구 작전동)가 지난 92년 7월 인천지법에 낸 「유골 소유권 확인청구소송」과 관련,법원의 의뢰를 받아 가족관계 규명작업을 벌였다. 황교수팀은 「한 어머니의 자식들은 반드시 어머니와 동일하게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이루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오래된 유골의 소유권이나 가족관계의 규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국제유전학계의 최근 보고내용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용해 성공했다. 염기서열은 세포내의 유전자 구성성분인 질소를 함유하는 고리모양의 유기화학물인 염기가 배열된 모양을 말한다. 이 연구팀이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대포리 야산에 있는 무덤속 유골에 대해 이를 「남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원고 임씨의 가족들과,「부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피고 채모씨와 채씨의 형제·고모 등으로부터 혈액 속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피고 채씨측의 경우 채씨 고모와 유골은 염기서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 결국 유골과 채씨 고모는 같은 형제자매관계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유골의 소유권은 원고 임씨에게로 돌아갔다. 이제까지 친자확인및 범인검거 등에 이용되어 온 핵DNA 감식법은 사망후 10년이 지나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으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감식방법은 수백년이 지난 유골의 신원확인도 가능해 앞으로 유전자 감식분야에 적극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 “한­러 우호 신기원의 해” 공감(김 대통령 북방여로)

    ◎“러 개혁정책 향후 세계사 향방에 영향”/김 대통령/“한국 월드컵축구 유치 최대한 돕겠다”/옐친/2백여 교민 양국국기 흔들며 열렬히 환영 김영삼대통령은 1일 하오(이하 모스크바현지시간)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옐친대통령과 1차 정상회담을 갖는등 러시아방문 첫날부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번 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 꼽히는 옐친대통령과의 「다차만찬회담」을 위해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모스크바근교의 국영별장에 도착,셰브첸코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현관에서 옐친대통령내외와 반갑게 인사. ○러 정찬으로 식사 김대통령내외는 옐친대통령내외의 안내로 1층 응접실로 들어가 한동안 환담.두 대통령의 만남은 92년11월 옐친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서울 신라호텔에서 처음 만난 뒤 두번째. 두 대통령은 모스크바의 날씨로 화제를 열기 시작,김대통령일행의 비행기여행,서로의 건강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 김대통령은 89년6월 통일민주당 총재시절 한국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그것이 두나라의 관계정상화에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92년11월 대통령후보 때 옐친대통령과 만난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고 언급. 두 대통령내외는 다시 응접실 옆방인 만찬장으로 이동,순수 러시아식 정찬으로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계속. 두 대통령은 두 나라가 모두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점과 관련,서로의 경험을 소개하며 격려. 김대통령은 『러시아의 안정과 옐친대통령의 개혁정책성공이 향후 세계사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러시아의 개혁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협력을 재확인. 이에 옐친대통령은 사의를 표하면서 『김대통령의 신한국건설을 위한 변화와 개혁이 한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화답. 두 대통령은 취미활동과 가족관계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대통령은 『옐친대통령이 배구와 테니스를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친근감을 표시. 김대통령은 『한국국민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고 소개했고 두 대통령은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에 나란히 출전한 두 나라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서로 기원. 김대통령이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계획을 설명하고 러시아측의 협조를 요청하자 옐친대통령은 『최대한 돕겠다』고 다짐. 만찬 말미에 김대통령은 1854년 러시아 해군제독(푸티아친중장)이 조선에 입국하여 5일동안 체류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로부터 30년 뒤 한국과 러시아 두나라가 수교를 했고 올해가 수교 1백10주년이 되는 해임을 지적. 이어 김대통령이 『올해가 양국관계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해로 기억되도록 공동노력을 펴나가자』고 제의하자 옐친대통령은 흔쾌한 표정으로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 두 대통령내외는 만찬에 이어 2층 서재로 올라가 다시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계속해 김대통령내외의 다차체류는 3시간가량을 기록. ▷모스크바공항 도착◁ ○…김대통령은 서울공항을 떠나 10시간30분의 비행끝에 이날 하오3시30분 모스크바 세르메티예보 제1공항에 안착,3박4일동안의 러시아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공항에서 김석규주러시아대사와 체르니셰보 러시아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에 나서 태극기와 러시아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환영단 2백여명에게 손을 들어 답례. 이어 김대통령은 트랩을 내려와 쇼스코비치 러시아부총리내외와 쿠나제 주한러시아대사내외등의 영접을 받고 의장대사열위치로 이동. ○「다차」 만찬회담 김대통령은 러시아의장대장의 경례를 받고 애국가와 러시아국가 연주를 들은 뒤 국기에 대해 목례를 하고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파노프외무차관등 러시아측 환영인사및 우리 대사관간부들과 인사를 교환한 뒤 교민화동 신영은양과 김병수군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교민환영단으로 다가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러시아행 특별기내◁ ○…김대통령은 이날 특별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한 직후 가벼운 옷차림으로 기내를 돌며 공식·비공식수행원및 동승한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김대통령은 서울공항에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등 야당인사들이 많이 출영나왔더라는 수행기자들의 인사를 받고는 『다 큰정치를 하려고 그러는 것일 것』이라고풀이. 기내를 도는 김대통령의 표정은 매우 밝았으며 한 측근은 이번 여행이 마침 김대통령의 89년6월2일 첫 모스크바방문으로부터 만5년이 되는 시점이어서 더욱 설렘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 김대통령은 특별기가 한반도를 벗어나 일본영공을 지나는 동안 한승주외무부장관등 공식수행원들을 모두 집무실로 불러 잠시 환담.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이양호합참의장으로부터 『북한 때문에 항로가 포항∼니가타∼하바로프스크상공을 우회해 지나가느라 비행시간이 2시간 더 걸린다』는 설명을 듣고 『빨리 직선으로 갈 수 있어야 되는데…』라고 국토분단의 안타까움을 표시. ▷서울공항 출국◁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이하 서울시간) 손명순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출국. 상오9시45분쯤 승용차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내외는 이영덕국무총리와 황영하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공항청사 2층에 마련된 환송식장에 입장,3군의장대의 사열을 받은 뒤 곧바로 연대에 올라 출국인사. ○3부요인 환송 김대통령은 출국인사에서 미국·일본·중국순방에 이은 러시아방문을 통한 「4각외교」의 완결을 강조하면서 『나는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의 안보와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지구의 끝까지라도 가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국익외교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표명.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정재현군(5년)과 김지혜양(5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송나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 김대통령은 『잘 다녀오겠습니다.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했으며 특히 이기택민주당대표와는 반갑게 악수를 나눴는데 이대표는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환송.이날 환송식에는 이만섭국회의장·윤관대법원장·조규광헌법재판소장·이총리등 3부요인과 김종필민자·이민주당대표등 정당지도자들및 국무위원등 60여명이 나와 김대통령내외의 장도를 축원.
  • 이 무슨 패륜의 비극인가(사설)

    한약상 부부 피살사건의 범인은 미국 유학 6개월만에 돌아온 장남이었다.그 아들은 유학중에 도박으로 돈을 날린뒤 아버지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자 부모가 죽으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어떻게 자식이 이런 끔찍한 패륜행위를 저지를 수가 있단 말인가.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말문이 막힌다. 이번 사건이 충격의 도를 더하는 것은 범행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계획적인데다 부모를 살해했다는 점이다.살해수법도 흉기로 수십군데나 찌를 정도로 엽기적이었다.더구나 가증스럽게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니 어이가 없다.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은 잔악한 범행이었다.최근들어 존촉살해 사건이 증가추세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번과 같은 극악한 범죄는 전례가 없었다.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의 가정·학교·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병이현상을 다시한번 진단하고 그 치유대책을 강구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이번 사건을 따져보면 우선 우리의 가족관계가 붕괴된데서 가장 큰 원인을 찾아야 한다.전통적 대가족제 아래에선 엄한 위계질서가 있어 질서확립과 통제기능이 있었으나 그것이 핵가족사회로 옮겨 오면서 기능을 상실하기에 이른 것이다.그런 상황에선 가족윤리가 살아 남을 수가 없다. 두번째로는 우리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는 윤리와 도덕의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윤이성의 상실은 물질만능이나 배금주의사조가 넘친것에 따른 것이다.또한 인명경시 풍조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바로 우리 사회의 가치전도적인 요소들을 이번 사건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접적인 원인을 찾는다면 이번 사건은 명확한 목적의식과 사전준비없이 떠나는 현실도피성 유학풍조가 빚은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자녀의 능력이나 적성은 무시한채 부모들의 일방적인 기대충족을 위해 떠나보낸 유학이 이같은 결과를 가져오게된 것이다.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부유한 부모덕으로 유학은 갔으나 현지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환락가를 맴돌다 도박과 유흥으로 소일하는 탕아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아무튼 존속살인은 반인륜적 범죄다.그래서 형법상 가중처벌을 하도록 되어있다.그렇지만 그 효과는 사실상 미미한 실정이다.궁극적으로 사회와 가정이 교육을 통해 인륜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길 밖에 없다.그리고 자녀에겐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가정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인 것이다.시간이 걸려도 이를 적극 실천해 나가야겠다.
  • 흠집내기가 정치인가(사설)

    잔여임기를 3년 10개월이나 남긴 대통령의 권위에 야당이 이렇게 무분별한 흠집내기의 정치공세를 해도 되는 것인가.야당은 정통성과 도덕성을 갖춘 문민정부를 흔들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어제 민주당 이기택대표의 기자회견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않을수 없다.이대표는 어제 회견에서 상무대의혹사건과 관련,김영삼대통령의 해명을 주장하고 진상규명이 안될 경우 중대결단운운하면서 『대통령의 불행한 퇴임을 원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했다.또 민주당의 대변인은 여권이 김대중이사장등을 거론한데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가족관계등 대통령에게도 편치 않은 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대통령을 인신공격하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과격한 자세아닌가. 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다.국정운영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할 의무가 있다.그러나 아무리 야당이라도 대통령을 함부로 인신공격하고 협박까지할 권리와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그런 짓은 정치도의상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되는 파렴치한 일이다.더욱이 대통령에 관한 사안은 보통사람에 대한 경우보다도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충분한 근거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의 정당한 권위와 체통을 이유없이 해치는 것은 국정수행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문민정부는 과거정권과는 달리 국민이 직접선출하고 야당이 결과에 승복한 정통성과 도덕성을 갖춘,누구도 흔들수 없는 임기가 보장된 정부이다. 그러므로 충분한 근거도 없이 이정부와 대통령을 흔들어대는 것은 국정수행의 불안과 나아가 헌정질서의 혼란을 가져올 우려마저 있으며 그러한 일은 국민이 결코 용서할수 없는 일이다.지난 정권때 야당공세로 당시 대통령이 흔들려 무력해짐으로써 사회안정과 기강이 무너지고 국정이 표류했던 교훈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표는 그동안 국민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했다.이회창씨파동때는 느닷없는 거국내각주장을 내놓았다가 철회하는가하면 총리인준과국정조사를 연계해 국정마비를 가져오는등 국민의 불신만 가중시켜왔다.사사건건 국정수행을 방해하고 정치공세로 물고늘어지는 이런 구태의연한 행태는 국민의 지탄만 받는다.대통령의 국정수행의 본령을 존중함으로써 야당의 영역도 함께 넓히는 적극적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대통령이 일을 할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선거가 없는 금년에 개혁의 정착과 국가경쟁력강화라는 국정목표가 궤도위에 오르도록 정쟁은 제발 그만두기 바란다.
  • 조계종 산역사 「승적부」 일부 손실

    ◎총무원 점거 시도 북새통속에 “횡액”/중앙종회 회의록·속기록 훼손·분실/복원 불능… 광복후 불교사 단절 우려 조계종의 「산 역사」인 승적부가 이번 조계종 사태로 크게 훼손돼 광복후 불교 현대사 연구와 기록에 타격을 입게 됐다. 조계종 총무원 4층 입법부서인 중앙종회사무처와 종정 사서실장실,그리고 총무원장실이 이번 사태로 각종 기록을 보관하고 있던 캐비닛·서류함등과 함께 크게 파손 됐으며 그속에 있던 각종 서류들이 없어지거나 찢어지고,물에 젖는등 훼손됐다. 이 가운데는 60년대초 조계종의 탄생과 함께 역사를 기록한 회의록·속기록등과 원로스님들에게 보낸 참석요구장등 희귀한 중요서류들이 대부분 훼손되는 수난을 당했으며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승적부도 일부 없어지는등 피해를 입었다. 훼손·분실서류의 양과 종류는 사무실정리조차 되지않아 추정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한 원로스님은 종회회의록만도 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회의록이어서 캐비닛 6개 분량에 달한다고 밝히면서 『한국 불교의 현대사를 증언해 줄유일한 역사적 자료인데 훼손됐다』고 침통해 했다. 특히 승적부가 일부 없어진 것은 불가의 호적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불교 법통의 정통성의 두절의미와 다름없으며 앞으로의 사이비 불적승려가 나타나지 않을 보장이 없다는게 불교계의 중론이다. 승적부에는 출가전 속명·가족관계·법명·출가일·소속 사찰 이동관계·개인의 비위사실등이 기재되는 개인에 대한 일종의 종합신상명세서이다.여기에는 입적한 스님들의 기록도 포함돼 있어 불교사 연구에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됐다. 또한 중앙종회 회의록과 속기록에는 조계종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간접 자료로서 종헌·종규를 개정할 때의 만장일치 여부,몇대 몇의 의결,참석한 스님들의 발언내용들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이는 종헌·종규를 개정할 당시의 파벌과 세흐름을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앙종회사무처 이현숙계장(34)은 『훼손·분실된 서류들은 바로 조계종의 역사』라며 『다른 곳에는 없는 자료들인만큼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훼손사실에 대해 집행부측은 『개혁회의측의 점거시도로 비롯된 것』이라는 반응이고 개혁회의측 역시 『우리는 4층에 가보지도 못했다』는 책임없는 해명뿐이다. 결국 훼손·분실의 책임은 지난달 29일 개혁회의측의 점거시도를 막고있던 경찰이 사무실내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치면서 그 안에 있던 서류들을 아무데나 쏟아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종권고수를 위한 집행부측이나 불교개혁을 외치는 개혁회의측이 빚은 이번 사태로 조계종 역사의 단절은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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