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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탐사보도-고학력시대의 그늘] 초등교육 못받는 아이 는다

    [서울신문 탐사보도-고학력시대의 그늘] 초등교육 못받는 아이 는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사무소는 지난해 1월 안궁2리에 주소지를 둔 1999년 1월생 한기중(7·가명)군에게 취학통지서를 보냈다. 하지만 이장 민흥용(61)씨가 통지서를 들고 주소지에 찾아 갔을 때 한군이 살던 무허가 주택은 텅 비어 있었다. 민씨는 “아빠는 트럭 운전을 하면서 이곳에서 3∼4년 살았는데 민방위 훈련에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면서 “한씨 가족은 채무관계가 복잡해서 떠돌아 다니는 외지인”이라고 했다. 성환읍은 지난해 7월 한 학기가 지나 한군을 취학시킬 수 없게 되자 이듬해에 취학시키려고 한씨 가족을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작년 2452명… 대상자의 0.3%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서는 지난해 취학 대상자 가운데 9명이 입학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두 명은 주소지에 실제 아동이 살고 있지 않아 취학통지서조차 전달하지 못했다. 동사무소 전입 담당자는 “두 아이 모두 연락할 방법이 없다. 조만간 주민등록 말소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감소에 따라 취학 대상 아동수는 줄어드는데 비해 생활고와 부모의 이혼, 가출 등에 따른 가정파괴로 헌법에 보장된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일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 대상자인데도 취학하지 못한 어린이가 2452명을 기록했다. 초등학교 취학 대상자는 69만 1550명으로 이 가운데 0.3%가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셈이다.2000년 1197명과 비교하면 5년 동안 두배 이상 늘었다. 2001∼2005년 5년 동안 주민등록 말소 등의 이유로 통지서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모두 1만 390명이었다. 취학대상자는 1999년 74만 4732명에서 2005년 69만 1550명으로 줄었다. ●“일일이 쫓아다닐수도… 대책없다” 교육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는 미취학아동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빈곤이나 이혼 등으로 가정이 해체돼 취학아동의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 정확한 이유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부모의 행방불명과 주민등록 말소 등으로 취학아동이 통지서를 받지 못해도 아동의 주거지만 분명하면 해당 교육청이 동사무소를 통해 취학 통지를 한다.”면서 “종적을 감춘 사람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통지서를 나눠줄 수도 없어 미취학 아동에 대해 특별한 대책은 없다.”고 밝혔다. 2004년 말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말소 사유별 현황에 따르면 말소건수 57만 8975건 가운데 주소지를 파악할 수 없는 무단전출은 45%인 25만 8913건에 이른다. 이유종 박경호 이재훈기자 bell@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거짓된 구조의 붕괴/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

    요한 바오로 2세 전임 교황은 1989년을 희망으로 가득 찬 사건들이 절정에 이른 해로 묘사한다.1989년을 기점으로 소련을 비롯하여 중부 및 동부 유럽의 여러 공산 위성국가들이 무너지는 등 인류 역사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1980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독재와 압제의 정권들이 무너져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교회가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자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교황은 당시 소련의 서기장인 고르바초프를 두 차례나 만났고 그후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원인을 ‘거짓된 구조들의 붕괴’에서 찾는다. 사유재산의 부정이라든가 인간 기본권으로서의 자유와 양심에 대한 억압, 나아가 인간 사회의 기본 구조인 가정에 대한 부정 등 인간다운 삶이 부정되는 국가 체제의 존속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경제적 평가의 측면에서만 이해될 수 없으며, 단순히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정의될 수 없는 존재이다. 만일 인간의 인간다움이 철저히 무시되고, 오직 유토피아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면 이는 결국 인간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거대한 거짓의 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거짓 위에는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교훈이다. 우리 국민은 이와 유사한 교훈을 불과 몇년전 뼈저리게 경험했다.IMF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 온 나라의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이는 단순한 외환위기를 넘어 온 국민의 실존적 위기로까지 가속화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고통의 원인 역시 거짓된 구조 때문이 아닐까. 분식회계로 성과를 부풀리기에 급급한 기업들은 엄청난 부채와 외화 유출로 빈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자살은 급증했으며, 나라 전체가 붕괴되어 가는 위기감과 절박함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 온 국민이 힘을 합친 결과 이제 그 위기는 어느 정도 극복된 것 같다. 거짓을 참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서서히 기업과 사회도 투명해지면서 거짓은 아예 발도 붙이지 못하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조금씩이나마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우리는 ‘황우석 교수 사태’를 만나 또다시 충격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과 거짓이 세계의 과학계와 우리 국민에게 준 정신적 쇼크는 실로 대단했다. 논문 조작과 거짓이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밝혀졌음에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국민들의 반응에서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조작과 거짓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올바로 설 수 없다는 점이다. 무너진 소련 공산주의가 다시 일어설 수 없고, 거짓으로 국민을 속인 기업들이 결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최근 몇년간의 교훈을 통해 배울 수 있지 않았는가. 과학계의 의도적인 조작과 거짓으로 파생되는 손실은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만큼 실로 엄청나며 과학이 거짓된 구조 위에 자리잡을 수 없는 절대적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마르크시즘적 공산주의의 몰락이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가시화했고,IMF의 위기가 투명사회를 이루려는 우리의 노력을 한층 더 앞당겼다면, 황 교수의 논문조작과 거짓 사태는 그것을 과감히 떨침으로써 새로운 신뢰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
  • ‘먹튀’ 서두르는 론스타

    ‘먹튀’ 서두르는 론스타

    미국계 사모펀드(PEF)인 론스타가 국내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외환은행을 재빨리 매각해 큰 차익을 남기고 떠나려는 전략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론스타는 최근 외환은행 매각을 위한 인수참여의향서(CA·컨피덴셜 어그리먼트)를 국내외 금융회사들에 무차별적으로 배포했다. 복수의 금융권 고위 관계자들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적인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는 물론 우리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에 CA를 발송했다.”면서 “특히 씨티그룹과 HSBC,SC제일 등 외국계 은행과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에까지 CA를 보냈다.”고 확인했다.CA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매각 주간사가 선정된 이후 매각 주체가 유력한 인수희망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각서다. M&A에 정통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도자가 매수 희망자와 물밑 협상을 한 뒤 선별적으로 CA를 보내는 게 관례”라면서 “무차별적으로 보낸 것은 전혀 의외”라고 말했다. 론스타의 행보를 놓고 금융권은 매각작업에 속도를 내는 한편 좀더 비싼 가격에 외환은행을 팔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인수에 별 관심이 없는 금융사에까지 일단 CA를 보내 놓고 향후 인수전 참여자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론스타는 또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근거한 오일달러 펀드와 계속 접촉하며 외환은행 인수 의사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의 새 주인이 국민은행이나 하나금융지주가 아닌 또 다른 사모펀드나 외국계 은행이 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인수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의 문제점을 지적할 만한 유일한 기관은 국회”라면서 “론스타가 현재 국회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어수선하다는 점 등을 이용해 가급적 빨리 팔고 한국을 떠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권에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시비조차 아직 가려지지 않은데다 탈세 의혹에 대한 사법당국의 판단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매각 작업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세청이 지적한 법인세 탈세 혐의가 입증되면 외환은행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면서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매각 작업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 문제점을 지적한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 등은 곧 소위원회를 구성, 론스타 문제를 집중 부각시킬 예정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빨리 매각한다고 하더라도 매각차익에 대한 과세를 놓고 또 한차례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현재 외환은행의 시가총액은 9조원 이상이다. 이 상태에서 팔린다고 가정할 때 1조 3800억원으로 지분 50.53%를 매입했던 론스타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4조원 이상의 차익을 얻게 된다. 사모펀드는 매각차익을 해당 투자자들에게 분배한 뒤 해체하는 성격이어서 과세 대상이 불분명한데다 한·미 조세조약상 주식 양도차익은 한국에서 과세할 수 없다. 그러나 당국이 론스타를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운영하는 법인으로 보거나, 외환은행을 매입한 투자자금이 조세회피지역 등 제3국에서 온 것으로 확인되면 과세할 수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발언대] 軍 자살 예방,사회가 함께 풀어야/이정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그동안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군내 자살 사건이, 얼마 전 입대한 조카의 자살시도로 인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오랫동안의 호주 생활로 한국 사회에 적응이 쉽지 않은데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순한 심성으로 각박한 사회 생활 적응을 걱정하던 부모는 자식을 ‘사람 만들어 주는’ 대한민국의 군 입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초기단계부터 군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던 조카는 간부의 감동스러울 정도의 관심과 보호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휴가를 받고 자대 복귀 중에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였다. 자살 실패로 몇 달간 병원 신세를 지고 자대로 복귀한 조카는 이제 밝은 모습으로 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입대하는 신병들을 보듬어 주고 있다. 최근 우리 군은 종전보다도 더 큰 사회적 짐을 떠안고 있으며, 전투력 강화라는 본질적 관심보다는 병사들의 자살 방지와 병영생활 적응에 더욱 안간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급격한 사회 구조의 변화로 가정해체 등 사회병리 현상이 심각해지고, 가정이나 학교에서조차 인성교육이나 시민교육이 포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군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이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자살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여지없이 군을 질타하는 언론이나 국민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군에서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1997년 이후 인구 10만명당 우리나라 20대 남성의 자살자 수는 14.1명(1997년)에서 17명(2004)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중 육군 병사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2.8명에서 8.8명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GP 총격사건과 JSA 익사사건에도 불구하고, 육군 자살자 및 사망자 수는 2004년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 우리 육군의 자살률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 육군의 2분의 1, 일본 육상자위대의 3분의 1, 주한미군의 3분의 2 수준에 해당된다. 군은 군내 자살률이 사회보다 낮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현재와 같이 군 간부의 열정이나 희생을 강요하면서 자살을 예방하거나 강한 군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직도 대다수의 병사들이 내무반에서 칼잠을 자고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열악한 병영 환경에서는 병사간 존중과 배려를 기대하거나 병사의 인권이나 자존감을 보장해 주기는 어렵다. 이러한 대책은 군의 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우며 국민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와 함께 상호 힘을 실어줄 때만이 가능하다. 이정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 서울 복지예산 5년새 72% 늘어

    서울시의 복지 예산이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2001∼2006년 서울시 예산의 부문별 증감 현황을 분석한 결과 복지부문 예산이 2001년 1조 1384억원에서 2006년 1조 9614억원으로 72.3%나 증가했다.환경(36%)이나 교통(13%), 주택(2%) 등 다른 주요 예산 증가율에 비해 훨씬 크다.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 예산은 20.8% 늘어났다. 복지 예산은 2001년에 35.3%로 크게 뛰어 오른 뒤 2002∼205년(1.9∼17.7%) 꾸준히 증가했다.그러다가 2005년 22.2% 다시한번 크게 불어났다. 게다가 내년 예산은 추경예산을 제외한 것이라 이를 포함하면 내년 가을쯤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 예산이 이처럼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7%로 커졌다.1위인 교통 부문(17.4%)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인구 고령화와 독거노인 증가, 높은 이혼율로 인한 가정해체, 빈부 양극화 등으로 복지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 진단했다. 이에 시 관계자는 “기부문화 육성과 자원봉사 활성화 등으로 민간 부문의 복지 지원을 늘려 공공부문의 복지 재원 부족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대한전선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모두 한뿌리 기업들이다.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설립했던 회사들로 장남인 설원식(83) 전 회장이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장 먼저 계열분리했다.3남인 설원량(작고) 회장은 1972년 인송의 실질적인 ‘경영 후계자’로서 당시 대한그룹의 주력사인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고 설원량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한때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오일쇼크의 충격과 가전사업 매각 등으로 사세가 크게 줄었다. 또 동생인 설원봉(57) 회장이 88년 대한제당을 갖고 분가하면서 옛 대한그룹은 사실상 대한전선만 남게 됐다. 지금은 고 설원량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58) 고문이 오너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임종욱(57)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고 설 회장의 장남인 윤석(24)씨는 대한전선 경영전략팀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1950년대 재계 서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그룹은 오늘날보다 과거가 더 화려한 기업이다. 혼맥도도 이와 비슷하다.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가(家)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재벌가(家)와 적지 않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4남2녀를 뒀던 인송은 1970∼80년대 욱일승천했던 국제그룹 창업주 양태진 회장가(家)와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가(家)와 사돈지간이다. 관계에서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과 임송본 전 대한석탄공사 총재가 사돈들이다. ●50년대 재벌가 인송 인송은 1901년 평안북도 철산군 인송리에서 부친 설흥업옹과 모친 조성녀 여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정동(鄭童)이었지만 서당 스승께서 ‘큰 인물로 대성하라.’는 뜻에서 경동(卿東)으로 지어줬다. 인송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는 부친을 세살 때 여의고, 모친을 따라 함경북도 부령으로 이사해 무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돌보던 인송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오쿠라 고등상업학교에 입학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인송은 이후 부령 군청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1921년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판매사업을 벌였다.1936년에는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청진 앞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이를 가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1940년대 초에는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북측에 공산군이 진주하면서 월남한 인송은 무역회사인 대한산업과 부동산 회사인 원동흥업을 세워 남쪽에서도 곧 거부 대열에 올라섰다.6·25전까지 그가 수원에 세운 성냥공장은 남한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인송은 53년 재벌의 터전이 된 대한방직을 인수해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했다.55년엔 대한전선 인수,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세워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섰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인송은 54년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60년대 초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송은 4·19 의거와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인송은 강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부친의 이같은 시련을 지켜봤던 설씨가(家) 4형제는 훗날 정치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꺼렸다. 인송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소홀히 버리지 않았다. 편지가 오면 칼로 봉투의 한 귀퉁이를 잘 도려내고, 그 뒷면을 이용해 한번 더 사용했을 정도였다. 인송이 송인상 효성 고문(당시 부흥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하던 대로 송 장관에게 소식지 ‘무역통신’ 뒷면을 이용해 서신을 보냈다. 이를 받은 송 장관은 대기업 사장의 검소함에 탄복해 서신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수년간이나 회의석상이나 강연회에서 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옛 영화가 가득한 혼맥 인송은 두번 결혼했다. 그는 첫번째 부인 이태하(작고)씨 사이에 원식과 원철(68)씨 등 2남을 뒀다. 두번째 부인 유인순(작고)씨 사이엔 원량과 명옥(59), 원봉, 영자(53)씨 등 2남2녀를 뒀다.4남2녀 가운데 여자 형제는 중매로, 남자 형제는 연애 결혼했지만 당시 재벌가의 통혼이 그러하듯 인송은 관·재계의 명문가를 사돈으로 맞았다. 장남인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와 대한석탄공사 5대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희숙(75)씨와 연애결혼했다. 당시 원식씨는 희숙씨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할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설 전 회장 부부는 설범(47) 대한방직 회장과 설경화(46)씨 등 1남1녀를 뒀다. 차남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은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딸 보경(66)씨를 미국 유학중에 만나 인연을 맺었다. 보경씨는 코리아헤럴드 출신의 언론인이다. 설한(39), 설훈(35), 설혜선(34) 등 2남1녀를 뒀다. 3남 설원량 회장은 1969년 동생인 명옥씨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귀애 고문과 결혼했다. 명옥씨와 양 고문은 친구 사이다. 양 고문은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이며,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 동생이다. 윤석(24), 윤성(21)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4남 설원봉 회장은 박용학 전 대농 명예회장의 장녀인 선영(56)씨와 혼례를 치렀다. 선영씨는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다녔던 설 회장과 선영씨는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만남을 가졌다. 윤호(30)와 혜정(25)씨 등 1남1녀를 뒀다. 장녀 명옥씨는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가문의 소개로 71년 김우기(63)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동철(33)과 승철(31)씨 등 2남을 뒀으며 장남은 의사, 차남은 대한제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영자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친구인 정근모 명지대 총장의 중매로 차동완(58)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진영(28)씨와 종현(25)씨 1남1녀를 두고 있다. 3세들도 속속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의 장남인 설범 회장은 한연나씨와 결혼했으며, 장녀 경화씨도 차정하씨와 혼인을 치렀다. 양 고문의 장남 윤석씨는 지난해 6월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심현진(24)씨와 연애 결혼했다. 현진씨의 부친은 심광일(52)씨로 중견 건설업체인 석미건설을 경영하고 있다. 양 고문은 “오랫동안 연애를 한 데다 아들의 판단을 믿었다.”면서 “설 회장도 생전에 둘의 결혼을 허락한 만큼 일찍 결혼을 시켰다.”고 말했다. 설영자-차동완 교수 부부의 장녀 진영씨는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 부사장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다. 진영씨는 대한전선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재벌가(家)와 통혼했다. ●일찍 시작한 분가 설경동 가문의 기업 분가는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일찍 시작됐다. 창업주 사후에 2세들의 분가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송은 생전에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등을 계열분리시켰다.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마저 겹치면서 인송은 어쩔 수 없이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등을 장남 원식에게 맡겨 2세 경영을 펼치도록 했다. 인송은 이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중심으로 경영을 해오다가 7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3남인 당시 설원량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74년 인송이 결국 타계하자 설 회장이 대한전선그룹을 이끌게 됐다. 대한전선은 88년에 또 한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창업주 인송의 유지를 받들어 설원량 회장이 계열사인 대한제당을 분가시킨 것이다. 설 회장은 동생인 설원봉 회장이 대한제당에 입사한 이래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아왔다고 보고, 대한제당 관련 주식을 설원봉 회장에게 모두 양도해 대한전선에서 완전 분리시켰다. 대한제당은 현재 식품소재사업과 레저, 외식업 등에 진출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송의 후계자 설원량 회장 고 설원량 회장 유족들은 지난해 9월 135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매출 2조원이 안되는 중견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하자 고 설 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상속이나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다른 재벌가(家)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했다. 그는 평소 “기업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되어야지, 불청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한토막. 대한전선 본사와 각 공장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한 끼 밥값은 80원이다. 공짜로 주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설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정해졌다. 설 회장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음식이 혹시라도 부실해지면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조치였다. 설 회장 본인도 줄곧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 역시 회장이 자주 이용하면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낸 것과 달리 설 회장은 부친인 설경동 회장 못지않은 ‘구두쇠’였다. 그는 양복을 한 벌 사면 소맷단이 해질 정도로 입었다.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는 잘 접어두었다가 화장실에서 다시 사용했다. 쉽게 쓰는 휴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휴지라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같은 성품 때문일까. 그는 4형제 가운데 부친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설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립대로 유학갔을 때, 인송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인송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설 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설 회장은 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으로 입사했다. 인송은 설 회장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호된 경영자수업을 받도록 했다. 설 회장은 68년에 상무,70년엔 전무 등 주요 사업부 수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72년 사실상 경영 대권을 이어받은 설 회장은 견실한 전선사업과 가전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70년대 중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대한전선을 키웠다. 후계자로서 연착륙했다는 주변의 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한전선과 금성사(현 LG전자)가 선점한 가전시장에 삼성전자가 후발업체로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70년대 후반부터 덩치에 밀린 대한전선은 자금난으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일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기업가로서 그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대한전선 가전사업에 관심이 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가전사업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대우에 협력제의를 해달라.”는 의중을 넌지시 전해왔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설 회장은 83년 3월 그룹 임직원들에게 가전부문 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2억달러 규모로 당시엔 그야말로 빅딜이었다. 가전사업과 생산직원 모두 대우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으로 바꿔타는 직원이 무려 6000여명. 대한전선에 남는 인원은 3000명 남짓이었다.24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대우에 속하게 됐으며, 남은 계열사는 통폐합 절차를 거쳐 7개사로 줄었다. ●‘풍운아’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50년대 국내 대표적인 재벌가(家)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55년부터 5년간 중앙대 문과대에서 강사(서양학)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이나 부친인 인송과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법적으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옛 대한그룹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설 전 회장은 70년대 대한종합개발을 설립해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아세아종합금융을 세워 금융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업 진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는 아세아종금 주가가 폭락하면서 퇴출위기에 몰리자 주식시세를 조종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세아종금은 이후 진승현씨에게 인수돼 한스종금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훗날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졌다. 설 전 명예회장은 98년 장남인 설범 회장에게 대한방직 경영권을 물려주며 현장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의 이력도 형에 못지않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 법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부친의 기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입사해 조사부 부장과 샌프란시스코 무역관 관장을 거쳤다.91년엔 형인 설원식 전 회장에 이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사장에 올랐다.2년 후에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3무 경영’ 설원봉 회장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미국 브루클린 공대대학원을 거쳐 1976년 대한전선 종합조정실 이사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83년 대한제당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88년엔 형으로부터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그는 형과 달리 부드럽다는 평이다. 그러나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다른 형들과 똑같다.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기고 동기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설 회장은 현장과 인재 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외환위기 극복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설 회장은 직원들의 신뢰속에 감원과 임금 삭감, 노사분규 없이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무감원, 무감봉, 무분규’라는 대한제당 특유의 ‘3무(無) 경영’은 이렇게 나오게 됐다. 대한제당은 현재 의약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그룹 나침반 임종욱 사장 대한전선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임종욱(57) 사장은 서울생으로 선린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95년 회장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후 9년간 설원량 회장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받들어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무관리를 해오고 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인수, 진로채권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임 사장은 설 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 경영의 나침반으로서 차세대 ‘먹을 거리’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미망인이 본 故설원량 회장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예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어요. 자제심도 대단했고요. 남편을 사회와 일에 빼앗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평생 일만 하다 간 분이에요. 그림이나 음악에도 대단히 조예가 깊었는데….” 양귀애 고문은 남편인 고 설원량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듯 설 회장을 언급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설 회장은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아직도 설 회장 사진을 안봐요.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남편 사진들을 다 치웠어요.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다고 해도 가끔은 가슴이 휑해요.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가지들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대기업 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와이셔츠 소매는 다 헐었고, 구두는 신기 민망한 수준이었어요.” 그는 일만 했던 남편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는 자주 했다고 했다.“설 회장은 사업이 꼬이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저를 불러요. 옆에 있어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만 해요. 그 때는 옆에서 말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그래서 저를 불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둘이서 남산을 자주 산책했고, 가끔은 골프도 둘이서만 치고 다녔답니다.” 그는 불임으로 꽤 고생했다. 장남인 설윤석 과장을 결혼 12년차에 가질 정도였다.“시댁식구들 눈치 많이 봤죠. 재벌가(家)로 시집와서 12년간 애기가 없었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그때마다 남편이 바람막이가 돼 줬습니다. 참 고마웠죠.” 양 고문은 시아버지인 인송 설경동 회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아버님이 저를 특히 예쁘게 보셨어요. 항상 자신 옆에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외출을 하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한복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해서 신혼 초에는 한복만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설 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남편은 아들들에게 절대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수입도 없는 애들이 돈 쓰는 버릇부터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비행기를 탈 때도 애들은 항상 이코노미석이었습니다.” 양 고문은 지금까지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군 대한전선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큰 오빠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근황과 관련,“건강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신다.”면서 “(국제그룹 해체로) 당시엔 심리적인 타격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막오른 3세 경영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창업한 대한전선과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은 모두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3세가 최고경영자(CEO)로 전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제 실무부서에 배치돼 첫 걸음마를 시작한 곳도 있다. 가장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은 대한방직. 설경동가(家)의 장손인 설범(47) 회장이 1998년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설씨가(家)의 3세 경영을 알렸다. 그는 85년 대한방직 이사로 출발해 91년 상무,95년 부사장,96년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설 회장은 2001년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만두라.’는 소액주주들과 주총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설 회장을 소탈하고 온화하다고 평한다. 집안 가풍대로 보수적이며, 사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업계에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배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더 뷰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지난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학업과 경영수업을 동시에 했던 장남 설윤석(24)씨는 올 들어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삼양금속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설 과장의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모친인 양귀애 고문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만큼 급하게 경영 대권을 잇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종욱 대한전선 사장이 전문경영인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후계자 교육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 고문은 “설 과장의 진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승진이나 유학 등은 상황에 따라 이뤄질 것이에요.”라고 했다. 동생인 윤성(21)씨는 중학교 3년때 미국으로 유학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다니고 있다.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의 장남인 윤호(30)씨는 경영 대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에 입사해 현재 제당식품사업부를 책임지는 전무로 일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설 전무는 경기고와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남자 전업주부’ 9년째 차영회씨

    ‘남자 전업주부’ 9년째 차영회씨

    “전업 주부(主夫)를 하겠다는 남성들, 진정으로 양성평등 의식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차영회(46)씨는 올해로 9년째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고 출판업에 종사했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의 칼바람에 직장을 잃은 뒤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돌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내가 회사에서 팀장이 돼 연 4000만원 이상을 벌어 오지만 당시만 해도 아내만의 수입으로 살림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어린 아들(현재 초등학교 6학년)을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놀 때 받았던 따가운 시선이 더 힘들었다. 강산이 한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로써 사람을 봐야 하는데 성별에 따라 일을 구분하고 있죠. 밖에서는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유독 집에서만은 남녀 역할이 고정돼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지만 9년간 느끼고 체득한 바가 크다. 집안일을 하면서 비로소 아내를 이해하게 됐고, 거기에서 우러나온 믿음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처음 방송을 통해 ‘살림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던 것은 동성애자의 ‘커밍아웃’과도 같았다. 요즘 젊은 남성의 상당수가 ‘나도 집에서 살림할 수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엄청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젊은 사람들이 그저 기특하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겠다는 생각이 양성평등 의식에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살림하겠다는 남자들 가운데 지금 집에서 직접 양말을 빨아 신고 설거지 하는 사람의 비율이 30%라도 될지 의문입니다. 지금도 안하는데 나중에 결혼에서 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허풍 아닌가요.” 이혼 사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성격차이’는 상당부분 가사분담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만 가사를 미루는 게 불씨가 돼 결국 이혼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가정의 일은 어느 한쪽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그는 “요즘 가정해체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면서 “속을 들여다보면 70% 이상이 남자로부터 문제가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전업주부로서 그가 얻은 것은 아내에 대한 이해, 나아가 여성에 대한 이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직접 키울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그 어떤 경험보다 소중하다. 요즘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대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그동안 함께 해왔기 때문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오징어로 만드는 요리 빼고는 웬만한 음식은 문제없다는 주부 차영회씨. 사회생활과 집안일 모두 경험해 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한테 가장 맞는 것, 상대방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돕는 것이 바로 함께 살아가는 법 아닐까요.”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발언대] 국정원 개혁,미래설계에 관심을/배일도 국회의원

    국가정보원에 대한 개혁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도청 사건이 계기가 됐다. 내부 개혁을 더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이래 국가정보기관은 누구로부터도 견제받지 않는 성역이었다. 권위주의 정권 해체 이후에도 ‘힘’만 조금 빠졌지 내부 개혁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이번에 밝혀졌다. 국민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국가폭력의 대명사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오명이 말끔히 가시기도 전에 전국민을 감시 통제하는 ‘빅 브러더’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가 국가정보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국가정보원을 감독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국회일 수밖에 없는데도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국회 본연의 역할과 권한에 맞게 국가정보원 예산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감시 수단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현재 국회 정보위원회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를 확대시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다각적인 검토를 국회가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국회가 견제와 통제수단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향후 국가정보원의 미래를 설계하는 차원에서 보자면 무엇보다 국가정보원 자체의 내부 개혁이 관건이다. 그동안 수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원장도 바뀌고 인적 물갈이도 있었지만 내부 시스템의 개혁에는 손도 못 댄 것이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국가정보원의 해체론까지 대두된 만큼 이번 도청 파문에 대한 대응이 일부 환부 도려내기식 처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해졌다.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다. 이제 다양한 진단과 해법이 나오고 있다. 국내 정보기능의 축소나 폐지, 기능별 조직 개편, 정보보안업무 기획조정 권한 축소, 대공수사권 폐지, 고위간부 임기제 도입 등이 주요 제안들이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고 제각기 각론대로 전문가들이 심도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혁이든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데서 개혁의 명분과 동력이 확보되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기관과 국민은 물고기와 물의 관계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국가정보원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게 급선무이다. 지식정보화 사회 도래와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이익과 정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국경없는 지구촌화도 현실이지만 국가간 ‘정보전쟁’의 양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정보가 국가의 이익과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안보개념도 기술정보, 문화, 인적자원 등의 차원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정보원 개혁논의는 단순한 기능적인 접근이나 존치·폐지 논의에서 탈피하여 국가발전의 전략적 목표와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감성적 호소나 극단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편향이다. 단순한 과거청산적 접근은 자칫 ‘외양간 고치려다 초간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간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을 바친 국가정보원 구성원들의 희생과 헌신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공공의 안녕을 지키고 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마도 공동체가 유지되는 데 공헌한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따뜻함이 시대가 요청하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배일도 국회의원
  • 종교와 문화의 ‘따뜻한 만남’

    종교와 문화의 ‘따뜻한 만남’

    지난 4일 경기도 고양 어울림극장에서는 작지만 뜻 있는 문화행사가 열렸다. 김포시 고촌감리교회가 15년 전 시작한 교육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악기 연주를 배운 청소년 60여명이 결성한 ‘김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정기연주회를 개최한 것. 매주 토요일 교회에 모여 연습해온 실력으로 클래식은 물론 캐럴까지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연말을 맞아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훈훈한 행사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대부분이 자선공연 형식으로 진행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선교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선교에는 영화가 최고’ 문화선교연구원은 오는 12∼16일 서울 종로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생명·소통·평화’라는 주제로 ‘제3회 서울기독교영화축제’를 연다. 경쟁부문인 단편영화제를 비롯, 애니메이션 상영, 특별기획전, 세미나 등으로 이뤄지며 기독교 관련 영화 20여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개막작으로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역사현장 조명을 통해 부흥의 본질적인 풍경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부흥’(김우현 감독)이 선보인다.(02)743-2535.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 노량진 CTS아트홀에서 꿈이 있는 교회(담임 하정완 목사) 주관으로 열린 ‘수요영화예배 아이즈’ 행사에는 수험생과 일반인 등 5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연극과 찬양공연, 영화 ‘주먹이 운다’ 상영 등과 함께 설교·영화묵상이 곁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이뤄진 것. 하 목사는 “청년 신자들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영화·연극 등 다양한 문화요소들을 예배에 적용, 교회의 문턱을 쉽게 넘기 위한 시도”라면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마다 영화예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악회에서 패션쇼까지 다양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옥한흠)는 오는 22일 오후 7시 서울 저동 영락교회 베다니홀에서 모자가정을 위한 자선음악회 ‘One 母 Time’을 개최한다. 불의의 사망 등으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경제적 능력이 없어 가정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자가정을 향한 관심을 촉구하는 행사다. 성악가 오현명 한양대 명예교수,CCM가수 소리엘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친다. 기독교 선교단체인 한시미션 코이디아연대는 9일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경남 함양군 어린이들을 초청, 자선 콘서트인 ‘제17회 다해사랑 콘서트’를 연다.‘피아노 치는 변호사’의 저자 박지영 변호사와 아침·김도현·타루·이어픽·티어즈 등 CCM·국악공연팀이 출연한다.(02)552-2449. 유니세프는 오는 13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씨의 사회로 ‘에이즈 고아를 위한 2005 유니세프 자선의 밤’ 앙드레김 특별패션쇼를 개최한다. 탤런트 이영애·김래원 등과 주한 외교사절 부인 등이 모델로 특별 출연한다.(02)735-2310. 앞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6일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2005 대한민국 불교음악 페스티벌’을 열고, 창작 찬불가를 선보였다. 크리스챤 뉴스위크는 1∼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싱가포르 최고 마술쇼인 ‘매직오브러브’ 초청공연을 개최, 호평을 받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4일 서울 혜화동 동성고 강당에서 휘성·장우혁·서지영·코요테 등 인기가수들이 공연을 펼치는 ‘생명의 밤’ 행사를 열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행정도시법’ 사실상 합헌

    ‘행정도시법’ 사실상 합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경일 재판관)는 24일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건설 특별법’(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청구를 각하했다. 이로써 정부는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 통일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12부 4처 2청을 충남 연기·공주지역으로 옮기는 행정도시 건설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게 됐다.177개 공공기관의 전국 분산 배치도 본격 추진된다. 헌재는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에 위반되지 않고, 헌법상 대통령제 권력구조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국민투표권이나 기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헌재는 또 “행정중심 복합도시에 소재하는 기관들이 국가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하는 정치·행정의 중추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따라서 이 법률에 의해 수도가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이전한다거나 수도가 분할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일부 행정기관들이 이전해도 화상회의와 전자결재 등 첨단의 정보기술을 활용하면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어떠한 지장도 없다.”면서 “서울은 여전히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고 수도의 기능이 해체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특히 “청구인들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에 소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관습헌법의 존재를 주장하나 이러한 관습헌법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각하 의견을 낸 재판관들 가운데 조대현·전효숙·이공현 재판관은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별개 의견을, 권성·김효종 재판관은 행정도시건설은 수도분할이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내지 않는 한 위헌결정은 내려지지 않는다. 앞서 서울시·과천시 의원과 대학교수, 기업인, 주민 등 222명의 청구인단은 지난 6월15일 “행정도시 이전은 국민투표권, 재산권, 평등권, 공무담임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홍희경 박경호기자 saloo@seoul.co.kr
  • [행정도시 ‘사실상 합헌’] 결정문 요지

    ●윤영철·송인준·김경일·주선회 행정중심도시로 이전하는 기관은 국무총리를 비롯한 총 49개 기관이다. 이전될 기관의 직무범위는 대부분 경제·복지·문화 분야에 한정되어 있고,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등의 기관은 제외되어 있다.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가 행정중심도시로 이전한다고 해도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 공간의 의미보다는 정보기술을 장악하는지 여부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나아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하나의 도시에 소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관습헌법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행정도시에 소재하는 기관들은 국가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하는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또 특별법에 의해 건설되는 행정중심도시는 수도로서 지위를 획득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고, 이 법률에 의해 수도가 행정중심도시로 이전하거나 분할된다고 볼 수 없다. 서울은 여전히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특별법에 의해 침해될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의 취지에 위반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회의 헌법개정에 관한 국민투표 시행 의무는 당초부터 발생하지 않았다.●전효숙·이공현·조대현 특별법에 따라 행정중심도시가 수도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거나 서울의 수도로서의 기능이 해체되지 않는다는 점을 수긍하지만,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설령 이를 인정하더라도 관습헌법을 변경하려면 반드시 성문헌법의 개정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권성·김효종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 등이 행정도시로 이전해도 서울이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수행하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정도시가 수행하는 정치·행정기능의 내용과 비중을 보면 행정도시 또한 수도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다. 행정 각 부처의 73%가 행정도시에 소재하고, 경제분야 행정을 관할하는 기획예산처와 국무총리가 행정도시로 이전한다. 또 예산의 70%가 행정도시권에서 집행된다.현대국가에서 행정국가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으며, 외교기능의 상당부분이 다양한 형태로 행정도시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특별법은 관습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존의 단일수도를 분할하여 복수의 수도로 변경하는 헌법개정 문제를 법률만으로 처리해 버림으로써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 참여할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
  • 학업중단 등 ‘위기의 청소년’ 170만명

    학업 중단이나 가정해체 등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위기상황에 노출된 ‘위기 청소년’ 수가 17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청소년 자살은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청소년위원회는 11일 오후 외교통상부 국제회의장에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공동으로 ‘위기청소년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이런 내용의 위기청소년 실태를 공개했다. 위원회가 한국청소년개발원에 의뢰, 조사 분석한 ‘한국의 위기청소년 지원정책 진단 및 정책과제’에 따르면 가출이나 폭력, 학업 중단 등 복합적인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놓인 고(高)위기군 청소년은 10월 현재 41만 8000명으로 나타났다.빈곤이나 부모 이혼, 학습부진 등으로 방치됐을 경우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는 중(中)위기군 청소년은 125만 8000명이었다.12∼24세 전체 청소년 770만명의 21.8%에 해당한다. 위기 청소년의 수는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었다. 생활보호대상 청소년은 지난해 93만여명으로 1997년 23만 9860명에 비해 288%나 늘었다.자살한 청소년 수도 1997년 908명에서 지난해 2560명으로 182% 늘었다.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청소년 수는 같은 기간 10만 5927명에서 15만 10명으로, 탈북청소년도 147명에서 1911명으로 늘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청계천에 다시 물이 흐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개발 위주, 편리함을 추구하던 우리사회가 삶의 질 향상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8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개,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청계고가도로는 개발주의 시대의 상징물이었다. 그 앞에서 600년 역사의 흐름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제 원래 모습을 되찾은 청계천은 사람과 자연의 행복한 만남의 상징물이다. 차량과 고층 빌딩이라는 도심의 ‘점령군’이 철수한 자리에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게 된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서울의 하수구’로 전락했던 청계천에 원래의 푸른 물결을 되돌려주자 벌써부터 버들치와 잉어가 돌아오고, 왜가리 등 새들이 날아와 도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조선왕도의 개국에서부터 일제 침탈까지의 굴곡의 역사를 지켜본 청계천이 잠시 호흡을 멈췄다가 다시 미래로 흐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화합의 표상이며, 미래를 여는 창인 셈이다. 서울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의의도 크다. 지금 서울에서 600년 고도(古都)의 흔적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그리고 압축성장을 겪은 서울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확장돼 왔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이 국적 불명의 상태에서 벗어나 한민족과 함께 어우러지는 ‘인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역사성을 되살리는 데 소홀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미완의 숙제로 남는다. 공기를 맞추다 보니 호안석축 등 문화재 복원 등에는 다소 미흡했다. 결국 청계천 100인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참여를 중단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결국 청계천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를 옮기는 등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복원을 빙자한 개발사업’이라는 오명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간과돼서는 안된다. 환경, 그 자체로 소중한 청계천을 가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청계천 주변을 고층 빌딩숲으로 만드는 것에만 급급하지 말고 남산, 종묘, 한강 등 도심의 자연·역사 환경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요구된다. 청계천은 이제 서울시의 전유물이 아닌, 서울시민과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역대 서울시장 ‘한마디’ 회색빛 청계천 고가도로와 함께한 역대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서울신문은 10월1일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에 맞춰 1970년 이후 15대 양택식 시장에서부터 이명박시장 전임인 31대 고건 시장에 이르기까지 13대 12명의 역대 시장에게 청계천 복원에 대한 촌평을 부탁했다. 역대시장들은 대부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염려하는 시장도 있었고, 접촉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건(67):제22대(1988.12.5∼1990.12.26),31대(1998.7.1∼2002.6.30) 두 차례나 서울시장을 역임한 고 전 시장은 “훌륭하고 잘 한 일”이라며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라고 호평했다. 그의 재임 중에도 청계천 복원문제가 거론됐었지만 ‘후임 시장들의 몫’이라며 미뤄뒀었다. 그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탓인지 말을 아꼈다. ●조순(77):30대(1995.7.1∼1997.9.9)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운영 과정의 문제점은 그때그때 보완해 나가면 된다.”조 전시장은 취임 직전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사건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재임 중 성수대교와 당산철교를 새로 놓았으며, 여의도 광장 등을 공원화해 시민의 시정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 ●최병렬(67):29대(1994.11∼1995.6) “서울을 바꿔 놓은 역작이다.” 최 전 시장은 “교통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대담하게 고가도로를 철거했는데 교통에 영향을 적게 미치면서 서울의 옛 모습을 복원시켜 시민을 즐겁게 했다.”면서 “경제적인 효과까지 거뒀으니 일거삼득이다.”고 극찬했다. 최 전 시장은 이어 “성수대교 붕괴로 시장을 맡은 이후 다리 고치고, 지하철 고치다가 임기를 보냈다.”며 자신의 재임시절을 회고했다. ●김상철(56):26대(1993.2.26∼1993.3.4) 7일 동안 서울시정을 맡았던 김 전 시장은 “청계고가를 해체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창조적인 발상의 소산”이라며 “도심에 물길이 흐르면서 도심의 생명력도 살아났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주변 상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명박 시장과 시청 직원들의 지혜와 추진력이 큰 역할을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상배(66):25대(1992.6.26∼1993.2.25) “92년에는 교통 혼잡을 극복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여서 복원 사업을 할 여건이 못됐다.” “그때 복원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전 시장은 “이제 정릉천 등 지하에 묻힌 다른 개천들이 복원될 차례”라면서 “삼청공원에서 시작되는 청계천 수원도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세직(72):23대(1990 12.27∼1991.2) 한 달 반정도 서울 시정을 맡은 박세직 전 시장은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당시 외국손님이 많이 왔을 때 도심에 산책코스가 마땅히 없어 아쉬웠었다.”면서 “이번 청계천 복원으로 도심에 산책코스가 생긴 것은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잘 된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공사 초반 교통문제 등의 우려와 달리 성공적으로 끝나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는 것은 건축·토목 분야 경험이 많은 이명박 시장의 공”이라고 말했다. ●김용래(71):21대(1987.12.30∼1988.12.4) 김 전 시장은 “과거 서울은 교통정책·도시재개발정책 등 개발정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지금은 문화와 환경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은 시대의 흐름을 잘 짚어낸 역작”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시장은 이어 “재임 당시 88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문화와 환경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좀더 인간적인 서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이 때부터 태동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당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고 소개한 뒤 “고가도로 자체의 설계가 정밀하게 되지 못해 일부 구간은 통행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성곤 이두걸 김유영 김기용기자 sunggone@seoul.co.kr ■ 숫자로 본 청계천 ‘연인원 69만 4405명이 동원되고, 돌 6만 9194t이 투입됐다.’ ‘콘크리트 20만 5280㎥, 철근 3만 5000t을 캐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대표하는 숫자들이다. 2003년 7월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첫 발을 뗀 복원공사는 823일 만인 2005년 9월30일 매듭이 지어졌다. 공사구간 3곳에 동원된 공사관계자들은 여름철 강우 때 물이 흘러들 것에 대비, 한겨울에도 모닥불을 쬐가며 하안 벽체를 조성하는 등 공기(工期)를 맞추려고 쉼없이 일했다. 청계천에 얽힌 숫자는 흥미진진하다. 청계천 복원구간 길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5847m. 시오리(里)에 조금 못미치는 거리다. 2년 3개월동안 10t,15t짜리 덤프트럭 13만 5182대가 투입됐으며, 하루 평균 165대가 북적댔다고 보면 된다. 공사에 들어간 인원은 하루 평균 850명이다. 청계천을 유지·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사용 용량은 2200㎾로,30W 전구 7만 3000개를 동시에 켜는 것과 맞먹는다. 전기요금만 연 8억 8000만원이나 된다. 가구당 연간 40여만원을 전기료로 낸다고 치면 2000여가구의 아파트단지가 쓸 전력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 공공 산업용 전기료는 ㎾당 기본요금 4500원, 사용료 당 50원으로 싸게 매겨지기 때문에 민간차원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21억 4000여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주택과 비교할 때 최고수준인 ㎾당 기본요금 1만 1000원과 비교하면 2.44분의1 정도다. 따라서 실제 요금으로 따지면 서민가정 5000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량과 비슷하다. 공사 때 쏟아부은 콘크리트는 레미콘 트럭으로 3만 4300대 분량. 바닥면적 300평 건물을 513층 높이로 지을때 들어가는 물량이다. 징검다리와 수경시설 등 구간 곳곳에 설치돼 청계천의 밤을 밝히는 조명등은 자그마치 8973개다. 가로등 464개, 산책로 조명등 818개, 수목 조명등 974개, 수로 조명등 1878개, 시점부 청계광장 등 기타 2529개 등이다. 말 그대로 푸른 청계천이 되도록 주변에 심어놓은 식물은 150만 4109본이다. 나무 19종 8만 9415그루, 초화류 17종 59만 4584포기, 물 위에 살도록 그물 모양의 매트로 엮어 띄워놓은 수상식물 12종 82만 110포기로 엄청난 숫자다. 복개된 구간을 파헤치면서 쓴 석재만 15t트럭 4600대분이다. 경사면 벽체를 맏드는 데 1만 5132t, 호안 조경석에 5만 4062t이 들어갔다. 독도를 알리는 돌을 포함해 제주도 등 우리나라 8도를 상징하는 시점부 폭포 아래의 ‘8도석’도 포함됐다. 청계천에는 하루 12만t의 물을 흘러보내는데, 보통 고지대나 재난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5t짜리 ‘물차’ 2만 4000대를 동원한 꼴이다. 고가도로 및 복개 구조물을 뜯어내면서 생긴 콘크리트와 아스콘, 철재 폐기물은 90만 7000여t이다.15t 트럭으로 6만 500대 분량을 실어날랐다. 이 가운데 콘크리트·아스콘 87만 2000t의 96%인 83만 7100여t은 도로 기층재나 성토용으로 복원구간에 고스란히 재활용됐다. 청계천을 가둬놓았던 폐기물은 돈까지 벌어줬다. 철근 3만 5000여t을 폐기물 재활용 업체에 팔아넘겨 t당 평균 8만 8000원을 받았다. 총액 30억 800여만원을 벌었다. 색다른 수치도 있다. 청계복원추진본부 남원준 총괄담당관은 “착공을 전후해 청계천 주변 상인들과의 원만한 논의를 위해 직원들이 일일이 이들과 면담한 건수만 4220회”라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계천 백서’는 내년 1∼2월쯤 나온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청계천 철거서 개통까지 청계천이 47년 동안의 어둠을 털고 1일 시민품에 안긴다.2년 3개월 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시오리 청계천 물길이 힘찬 약동을 시작한다. 숨이 막혀 청계천을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찾아온 버들치와 백로처럼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청계천은 600년 역사를 물길로 담아왔지만 언제부턴가 천(川)아닌 길로 바뀌었다. 하지만 잊혀졌던 청계천은 물고기가 뛰노는 생태하천으로,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청계천 새물맞이 서울시는 1일 오후 6시 청계천 복원의 주역인 이명박 서울시장 등 주요 인사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을 기념하는 ‘청계천 새물맞이’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청계천의 시작 지점인 청계천광장에는 전국 8도의 강과 못(池) 10곳에서 길어 온 물을 청계천에 흘려 보내는 8도의 물의 합수(合水) 의식이 진행된다. 이어 불꽃놀이와 조수미, 보아, 김건모 등 성악가, 가수의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청계천 산책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개방된다. 새물맞이 행사가 열리는 청계광장∼삼일교 구간은 행사 뒤인 오후 9시부터 개방되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방향으로만 진행할 수 있다. 새물맞이 행사를 하루 앞두고 30일 전야제 행사로 열 예정이던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기념음악회와 8도의 물 안치식은 비로 하루 연기돼 1일 오후 8시30분에 열린다.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 걸었던 이 시장은 취임 1년 만인 2003년 7월 청계고가도로 철거 작업과 함께 청계천 복원의 대역사(大役事)에 착수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도심부 교통체증은 교통체계의 개편과 시민 협조가 필요했고, 주변 상인들의 반발은 수많은 만남으로 해결했다. 복원과정에서 발굴된 문화재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악취, 화장실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청계광장∼고산자교에 이르는 5.84㎞의 청계천 물길이 열리게 됐다. 청계천의 복원으로 생태계는 물론 상권도 살아나고 있다. 청계천이 가져온 또 다른 혜택인 셈이다. ●미래로 흐르는 물길 청계천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점심 무렵에는 주변 샐러리맨들의 휴식처가 된다. 가로등이 켜지는 저녁에는 연인·가족·친구들이 삼삼오오 청계천을 찾아 청계천의 변신에 놀라워한다. 지난 29일 퇴근 후 도심에서 가족과 만나 청계천 구경을 나왔다는 한경준(42·광진구 자양동)씨는 “청계천을 보니 우리도 이제 명소를 하나 가졌다는 자부심이 생긴다.”면서 “앞으로 이를 잘 지키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동료들과 청계천을 찾은 황인규(32·양천구 목동)씨는 “청계천처럼 우리도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털고 밝은 미래를 지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청계천 우표 1만장 발행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우표첩(바람부는 청계천)’이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4일 발행된다. 판매량은 1만장이다. 서울·경기지역 우체국과 우리은행 창구에 주문하면 된다. 우표책자 제작업체와 서울시가 ‘나만의 우표’ 형식을 빌려 서울중앙우체국에 접수했다.‘나만의 우표’는 개인 또는 기관·단체가 신청하면 우정사업본부가 만들어 준다. 전지 1장(낱장 20장 묶음)당 판매가는 8000원이고, 선물용인 우표첩은 4만 9000원이다. 전지에는 1장당 220원짜리 우표와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공사 중인 사진 포함)의 사진 14장이 실려있다. 우표첩에는 1권당 우표 36장이 첨부돼 있고, 그림엽서가 1장씩 포함됐다. 서울중앙우체국(100.epost.go.kr), 서울시(www.seoul.go.kr)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전화는 (02)2278-0038,1544-3869.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중국 대륙 휩쓰는 대장금 열풍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중국 대륙 휩쓰는 대장금 열풍

    중국인들은 지금 ‘다창진(大長今·대장금)’에 푹 빠져 있다. 한국의 인기 드라마인 ‘대장금’이 중국 대륙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지난 1일 밤 10시 중국 후난(湖南)위성 TV가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외국 드라마 사상 14%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장금 열풍의 주역인 ‘장금(이영애 분)’의 ‘성공’은 문화대혁명기의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중국 여성상이 최근 개혁·개방 이후 ‘현모양처’ 형으로 바뀌는 추세와 무관치 않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유대인을 뺨친다.’는 중국 상인들은 발빠르게 ‘대장금 비즈니스’에 착수했다. 음식과 패션, 여행은 물론 중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장금 관련 상품이 무려 1300여종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장금 열풍’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은 식당가. 베이징 일부 중국 식당들은 약삭빠르게 상호를 발음이 똑같은 ‘대장금(大長金)’으로 바꿔달고 한국 요리를 선보이고 있으며 쓰촨(四川)성의 일부 훠궈(火鍋·사브사브의 일종) 식당에서는 ‘대장금 김치 훠궈’를 내놓기도 했다. 장금이의 개인적 인기에 힘입어 충칭 시내의 결혼 사진관에서는 7000위안(약 90만원)의 ‘장금이 드레스’ 코너를 만들어 톡톡히 재미를 봤다. 후난성에서는 이영애의 얼굴형으로 성형수술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을 정도다. 베이징에서 기계설계사로 일하는 뉴융(牛勇·30)은 “하루가 아무리 힘들어도 대장금을 볼 수 있는 밤 10시가 기다려진다.”며 “역경을 극복하는 주인공의 꿋꿋한 의지와 따뜻한 인정미는 중국 TV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식품회사 직원인 리메이(李梅·여·28)는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한국의 궁중요리와 한방 치료법이 재미있고 출연자들의 개성있는 연기도 인기의 비결”이라고 평했다. ●대장금 없이 못사는 중국인들 대장금 드라마로 인한 해프닝도 중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우한(武漢)에서 관절염으로 고생해 온 한 30대 남성이 장금이가 벌침으로 마비된 미각을 되살리는 것을 보고 모방 치료를 하다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신민만보(新民晩報)가 보도했다. 후베이성 중의병원 침구과 리자캉(李家康) 주임은 “대장금 방영 이후 벌침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대장금을 보지 못한 한 여성이 강물에 투신하는 소동도 있었다. 지난 24일 밤 10시 난징(南京)에서 아내 류(劉)는 축구광인 남편 장(張)과 TV채널 쟁탈전을 벌이다 “대장금을 못 보게 하면 강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남편이 “갈 테면 가라.”고 무시하자 류는 집 근처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홍콩의 미녀스타 천후이린(陳慧琳)도 대장금 열풍에 가세했다. 천후이린은 28일 대장금을 방영중인 창사(長沙)의 후난 위성 TV를 방문, 한복 의상을 입고 대장금 주제곡 ‘오나라’를 불렀다.‘한물 간’ 것으로 알려진 천후이린은 지난 3월 대장금의 홍콩 방영 당시 주제곡을 광둥어로 불러 단번에 과거의 인기를 되찾았다. ●한국 식당가도 특수 대장금 열풍으로 한국 요리가 관심을 끌면서 중국내 한국 음식점들도 덩달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한국 음식점들은 ‘대장금 특선요리’ 등 다양한 메뉴로 특수를 맞고 있다. 베이징의 한국 음식점 서라벌 허경욱 부장은 “대장금 방송 이후 20% 정도 중국 손님이 늘어났고 주로 드라마에서 선 보인 보양식 위주의 한국 요리가 잘 팔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행업계에도 장금이 열풍이 불고 있다.‘대장금 여행단’이 다음달 1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궈칭제(國慶節·국경절)에 맞춰 처음으로 ‘중국인 대장금 여행단’ 1진 200여명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이들 중국인 관광객은 경기도 남양주의 MBC 대장금 테마파크와 장금이가 유배갔던 제주도 촬영지 등을 돌아볼 예정이다.5000위안(약 85만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이지만 중국인 1000여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 절정이다. ●중국 안방을 점령한 한국드라마 중국에 처음 상륙한 한국드라마는 92년 ‘질투’였지만 중국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97년 ‘사랑이 뭐길래’였다. 이후 ‘인어아가씨’,‘보고 또 보고’,‘명성왕후’,‘노란 손수건’,‘상도’,‘목욕탕집 남자들’ 등 중국 대륙을 향한 융탄 폭격이 이어졌다. 대장금 상영 판권을 후난 위성TV에 빼앗긴 CCTV가 시청률 만회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상영중인 드라마(굳세어라 금순아)를 수입, 방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중국 국제TV 총회사의 청춘리(程春麗·여) 부장은 “한국 드라마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외국 드라마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친근해진 중국인들이 늘고 있어 앞으로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의 강세는 개혁·개방 이후 ‘가정 중시’의 중국 사회변화와 맥이 닿는다. 칭화(淸華)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한류’를 전공하고 있는 신혜선(박사과정·41)씨는 “1976년에 막을 내린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가족 해체 현상은 무척 심각했다.”며 “가족간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한국 드라마가 중국인들의 내재된 가정 회귀 본능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oilman@seoul.co.kr ■ “역경 이겨내는 ‘대장금 정신’ 中 사로잡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대장금 열풍의 이유는 중국인들의 가치관과 도덕성, 문화적 동질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칭화(淸華)대학교 영화전파연구센터(신문방송학원) 인훙(尹鴻) 주임교수는 중국에 몰아닥친 ‘대장금 열풍’은 한·중간 문화적 동질성에서 출발해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진실성과 당찬 의지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대장금의 주요 소재인 궁중 요리 문화와 한방 치료 등이 ‘음식과 건강’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아 떨어졌고 중국에서 접하기 힘든 창조적이고 탄탄한 시나리오도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서의 ‘한류 역사’에 대해 인훙 교수는 “1990년대 초에는 한국 유학생들의 역할이 컸고, 중반부터 한국의 TV 드라마가 한류를 선도하면서 한국 가수와 영화배우 등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 가세해 현재는 중국 문화 전반으로 확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경제의 발전 방향이 한국과 유사한 중국에서 당분간 ‘미국류’나 ‘구라파류’보다 ‘한류’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oilman@seoul.co.kr ■ “한·중 합작 제3시장 노려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류의 확대 재생산은 한국과 중국이 다양한 문화사업에 공동 투자해 제3의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중국내 ‘한류 전문가’로 불리는 주중 한국대사관 유재기 문화관은 “중국내 한류 붐을 계기로 199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한·중 문화 합작사업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양국 문화 생산비의 격차와 기술적 한계, 상이한 접근법 등으로 한·중간 문화교류 사업이 ‘겉돌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양국의 문화전문가·사업가들이 사소한 조건과 눈앞의 이익에서 벗어나 다소 모험적이지만 장기적인 윈-윈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문화 소프트웨어와 중국의 저렴한 하드웨어를 결합시키는 과감한 투자로 아시아 시장은 물론 미국·유럽 시장으로 진출하는 ‘윈-윈 전략’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국제박람회,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 등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있어 중국이 한류 등 외국 문화·예술의 수입을 당분간 규제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TV 드라마 ‘대장금’을 예로 들면서 “중국인들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예술성이 녹아 있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아이템을 발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중국에서 한류를 이어갈 수 있는 단초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중 문화산업을 공동 육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 재산권 보호 문제를 지적하면서 “중국내 해적판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거액의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oilman@seoul.co.kr
  • 위기가정 3000가구에 100만원

    경기도는 22일 경제불황의 여파로 해체 위기에 놓인 3000여가구를 선정,3개월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응급구호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도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제외된 가구 가운데 경제사정 악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가정을 시·군별로 100가구씩 모두 3000여가구를 선정, 가구당 100만원씩을 지원할 계획이다. 시·군에서는 이를 위해 최근 2개월 동안 사회복지사를 동원해 경제사정 및 각종 사고 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한 가구를 조사, 지원대상을 선정했다. 도는 올해 신용카드 포인트 적립금 6800만원을 활용, 안산 제부도 레저포트 해난사고로 가족을 잃은 구자영씨 가족 등 위기상황에 놓인 68가구에 100만원씩을 지원한 바 있다. 이들 가정을 대상으로 응급구호사업의 필요성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가정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추가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 관계자는 “최근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부모의 부도나 이혼 등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이들을 위한 응급구호사업을 펼치게 됐다.”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시론] 국방개혁안 보완 시급하다/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시론] 국방개혁안 보완 시급하다/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국방부는 지난 13일 지상군위주의 군 병력을 슬림화하고 지휘구조 단순화를 비롯한 군구조 개편과 전투력 제고 등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안을 공식 발표하였다. 이는 참여정부의 국방개혁안이자 2020년까지 미래 한국군의 청사진인 셈이다. 2020년 육군 17만 7000명, 해군 4000명 등 18만 1000여명을 감축해 총병력을 50만 수준으로 유지하고 전투력 제고를 위한 각종 조치를 준비함으로써 병력감축에 따른 전력공백을 크게 보강하게 된다. 이 개혁안이 성공하게 될 경우 2020년까지 우리의 병력은 50만 수준으로 줄어드는 대신 기동 및 타격능력이 대폭 보강된 첨단 정예군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참여 정부의 이 같은 국방개혁안은 우리의 군구조를 ‘양적구조’에서 미래지향적 ‘질적구조’ 즉, 정보화·과학화·경량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개혁안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여기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중반에 ‘2015년 신군사력 모델’을 제시하고 병력감축을 포함한 대대적 군사개혁을 단행한 바 있다. 프랑스의 군사개혁은 구소련 붕괴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이후 인접국경 지역에 상존해온 직접적인 군사위협 소멸이라는 실제적인 안보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향후 10년내에 북한으로부터의 직접적 군사적 위협이 소멸 또는 현저한 감소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양상은 크게 완화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지 확실한 현실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군사개혁은 핵잠수함 탑재 탄도미사일과 항공기 탑재 미사일에 기초한 핵 억지 전략이 가능한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 이와는 반대다. 북한은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체계를 구비하고 있고 향후 10년내에 대병력유지 군사정책을 변경할지도 의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병력감축, 전투력 강화 계획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될 경우 이는 남한의 전반적인 국방력 강화라는 부정적 인식을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북한의 군사력 강화라는 역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안정적인 전력투자비의 확보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전력투자비 확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이번 국방개혁안은 일방적인 병력감축으로 인한 전쟁억지력의 약화만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렵다. 훌륭하고 튼튼한 집을 가지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금이 없다면 이러한 집을 건축한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전력투자비 확보를 위해서 먼저 국민을 잘 설득하고 국회, 기획예산처 등 관련 기관과의 밀접한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급선무다. 때에 따라서는 예산확보를 위해서 특별법제정도 염두에 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국방개혁 관련 최고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 표명과 함께 이의 실천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방개혁 추진과정에서 배태될 수 있는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군 병력 슬림화에 따른 인력 조정문제가 불거지게 될 경우 군의 사기 저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군의 분열 또는 사기 저하는 우리의 군사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군의 사기를 고양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여 군의 신뢰와 화합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 [씨줄날줄] 가정대/이상일 논설위원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정치에 뜻을 둔 글라우콘이란 젊은이에게 충고했다.“국가는 수만 가구의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네는 그 중의 하나인 숙부(叔父)의 집을 부유하게 하도록 노력해보지는 않았는가? 한 가정에 도움도 못 되면서 어떻게 많은 가정에 도움이 되겠는가?” 또 “전쟁이 일어나면 가정학(家政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한 장군의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그럴 경우야말로 가정학이 가장 쓸모있다.”며 “개인 업무의 경영과 공공 임무의 처리는 양에 있어서만 다를 뿐 그외의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오랜 역사의 가정학(home econo- mics)이 대학에서 정식 학문으로 개설된 것은 1909년 미국에서다. 국내에서는 이화여대가 1929년 ‘가사과’를 만들었고 1965년 ‘가정대’로 승격시켰다. 의류환경학, 식품영양학, 주거환경학, 아동·가족학과 생활디자인학 등으로 연구대상이 확장됐고 웬만한 대학은 모두 가정대를 설치했다. 가정대의 원조격인 이화여대가 7년전 ‘생활환경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데 이어 다시 2007년부터 이마저도 해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즉 생활환경대학의 학과를 ‘건강과학대학’과 ‘예술종합대학’으로 분산시키는 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에 생활환경대까지는 수용했던 가정대 동문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일반인들은 여전히 ‘구 가정대’로 부르지만 서울대와 연세대 등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도 수년전 ‘생활과학대’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가정대’라는 이름이 퇴출된 주요 이유중 하나는 가정대학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여학생들의 코스’‘평생직장인 주부가 목표’라는 세간의 잘못된 인식 탓이다. 미국에서는 가정학을 보통 ‘Home Economics’외에 인간생태학, 인간발달학 등이라고도 부른다. 호텔경영학을 가정학부에 넣기도 한다. 국내에선 패션학과 식품경영학 등 구 가정대 학과가 인기다. 남녀공학 생활과학대(구 가정대)의 4분의1 정도는 남학생일 정도로 금남(禁男)영역의 담도 허물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가정학이 다시 부활하는가 싶다. 가정학이란 말을 피하지 말고 다시 쓴들 어떨까.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독자의 소리] 보다 실질적인 체험학습을/신달수(충북 충주시 성내동 155 경인빌딩 2층)

    며칠 있으면 올해 유치원에 들어간 딸아이가 여름방학 과제 중 체험학습 보고서를 내야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유명 사찰 같은 문화재 탐방이나 박물관 관람,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개최하고 있는 지역축제에 참가하여 사진을 찍고, 홍보물을 수집하며 느낌을 적게 하여 제출하면 될 것 같다. 나는 방학 중 가족과 함께하는 현장중심의 체험학습과 그 결과물을 과제로 제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주말에 부모가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힘든 가정이 매우 많다. 특히 IMF 사태 이후 실업자 증가와 이로 인한 가정의 해체로 소년소녀가장이나 편부·편모 자녀들이 많아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빈곤층이 총 716만명에 이른다.7명 중 1명이 빈곤층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다. 여름방학 과제가 부모들에게 경제적, 시간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기존의 체험학습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체험학습도 시도하여 보자. 예컨대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단 몇 시간이라도 장애인과 어울리며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계층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가까운 경로당에 찾아가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한 느낌을 적어 제출하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신달수(충북 충주시 성내동 155 경인빌딩 2층)
  • 국정원 첫 압수수색

    국정원 첫 압수수색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국가안전기획부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44년 동안 굳게 문을 닫아 걸었던 국가정보원이 19일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지난 2002년 국정원 도청의혹 사건 수사때 검찰이 국정원의 협조를 얻어 현장조사를 한 적은 있지만 압수수색은 아니었다. 안기부 및 국정원의 불법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이날 유재만 특수1부장을 팀장으로 검사 8명과 수사관, 외부전문가 30여명 등 모두 40여명을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 보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이날 장장 10시간여에 걸친 압수수색을 통해 감청장비 3세트와 이삿짐용 상자 6개 분량의 서류 등을 확보했다. 집중적으로 수색한 곳은 ▲도청담당 부서였던 과학보안국(2002년 10월 해체)이 있던 장소 ▲도·감청장비 설치 장소 ▲도청자료 및 장비 폐기 장소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예산관련 부서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 도·감청 장비 개발 등에 사용된 예산집행 내역 등도 조사했다. 앞서 검찰은 국정원 전·현직 직원 20여명에 대한 조사를 통해 국정원내 이들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 등을 확인하려 했으나 관련 진술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날 밤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 국정원내 특정 장소를 기재하지 못한 채 ‘도청 관련기기 압수를 위해’ 등으로 포괄적인 표현을 적어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검사 8명을 압수수색에 참여시킨 것은 전례가 없으며 감청장비 관련 외부전문가 10여명이 참여한 것도 이례적이다. 비록 예상됐던 일이긴 했지만 처음 겪는 압수수색에 국정원 간부 및 직원들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 이날 오전 9시쯤 유 부장검사를 포함한 검찰 압수수색팀이 승용차 4대와 승합차 및 소형버스에 나눠 타고 국정원 청사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던 국정원 직원 5명이 이들을 안내했다. 압수수색팀은 신분확인 절차없이 미리 준비해둔 방문증을 차량마다 1장씩 교부한 뒤 국정원 선도차량의 안내를 받아 국정원 내부로 들어섰다. 국정원 청사 안에서도 국정원 직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직원들은 압수수색팀의 청사 진입 장면을 촬영하려던 사진기자들에게 청사 건물은 찍지 말 것을 요구해 가벼운 승강이가 벌어졌다. 검찰 압수수색팀이 정문을 통과한 뒤에도 직원들은 내부 건물에 대한 보안 때문인지 취재진을 서둘러 민원실로 이끄는 등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4黨 ‘4色처방’

    ‘해체론에서 확대 개편론까지’ 옛 안기부와 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감청’이란 곪은 상처에 대해 여야가 내린 처방전은 다양했다.17일 국회 헌정관에서 열린 ‘국정원 개혁 토론회’에서다. 토론회를 주최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대수술’(해체론)을 주장했다. 노 의원은 “불법도청 인정 자체로 국정원은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며 “해외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외정보기관을 설립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국회의 예산통제권 강화해야”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반쪽 수술론자’였다. 최 의원은 “국내 정보 기능은 폐지하고 대신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위원회’를 신설해 국내 정보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며 “또 국정원에 감찰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감찰을 강화하고 국회의 예결산 심의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반면 국정원의 기능을 더 활성화하되 곪을 부위를 집중 치료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국내외 정보만이 아니라 산업 정보 등 모든 정보를 총괄하도록 확대 개편해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활동을 해야 한다.”며 “불법 도감청은 정보 수집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꿔 보완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도 “폐지나 국내외파트 분리는 테러·마약·국제범죄 등 안보위협 요소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 맞지 않다.”고 반박한 뒤 “국회의 예산통제권 강화 등 국정원 예산운용의 투명성을 제고하면서 첨단 기술의 해외유출 방지 등 산업 생산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조직 위상을 재정립하자.”고 맞섰다.●한나라, 국정원 도청금지법안 제출한편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도청 금지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징역 15년 이하로 강화한 것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국정원직원법·통신비밀보호법 등 3개법안 개정안을 이날 제출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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