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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대통령 연천지역 위로방문

    “비가 언제 그쳤지.지금 비가 내리는 곳은 어디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 7호 태풍 ‘올가’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빠져나간 4일 아침 관저를 찾은 박준영(朴晙瑩) 공보수석에게 던진 첫 마디다.휴가에서 돌아온 이후 내내비 피해가 김대통령의 최대 고민거리로 자리한 것이다. 지난 2일 재해대책본부 방문 때와 3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TV에 나온 한 젊은 주부의 “재기할 힘조차 없다”는 ‘하소연’을 인용한 것도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단초다. 실제 김대통령은 휴가에서 돌아온 1일부터 밤늦게까지 신문,TV 등을 보고빗줄기가 조금 굵어진다 싶으면 재해대책본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받고 조치를 지시했다.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지난 2·3일이틀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 4일 오전 1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김대통령은 당초 5일쯤 수해현장에 들를 계획이었으나 이날 날씨가 개자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에 서둘러 경기 연천·문산지역을 찾았다.김대통령은 먼저 연천 어린이집을 찾아 물에 젖은 어린이 놀이기구를 닦고있는 주민,군가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생많다”고 격려했다.이어 연천 읍내로 통하는 37번 국도로 이동하다가 길거리에서 가재도구를 말리고 있는 주민들과 군장병을 보고는 차에서 내려 등을 두드리고 악수를 나누는 등 위로의말을 아끼지 않았다.김대통령은 “다시는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내년 여름전까지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연천 방문에는 조성태(趙成台)국방·김기재(金杞載)행정자치부장관이 수행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오전 박공보수석과 박선숙(朴仙淑)부대변인을 KBS 이재민돕기 성금모금행사장에 보내 수재 의연금을 전달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수해복구현장 이모저모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처참한 폐허 속에서도 수해지역 주민들은 용기를잃지 않고 본격 복구작업에 나섰다. ■연천군 백령천의 범람으로 240여가구가 침수됐던 백학면 주민들은 4일 진흙으로 범벅이 된 가재도구를 씻고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일부 주민들은 물이 부족해 계곡에서 흐르는 물로 설거지를 했다. ■복구에 여념이 없는 틈을 타 일부 고물상들이 멀쩡한 물건까지 마구 가져가는 바람에 주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연천읍 차탄2리에 사는 조찬규씨(63·여)는 “군청 대피소에서 돌아와보니밤새 싱크대와 리어카,자전거,식기 등 밖에 내놓았던 물건들이 전부 없어졌다”며 애를 태웠다. ■수해지역 어린이들은 교과서와 학용품 등이 물에 젖거나 구호품이 없어 큰불편을 겪고 있다. 경기도 연천초등,연천의 군남중,백의초등,파주의 문산북중 등 4개 학교 30개 교실은 완전히 물에 잠겨 개인사물함에 넣어두었던 학용품과 과학실험도구 등이 모두 훼손됐다. 또 구호품은 모두 어른용이어서 학생들 대부분이 집에서 나올 때 입었던 속옷 등으로 버티고 있다. 연천군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의류 구호품 7,000여점 가운데 어린이용은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태풍 ‘올가’로 쓰러진 가로수를 복구하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대구시에서는 400여그루가 쓰러지거나 뽑혔고,경북지역은 경산시 남천면 면사무소 마당에 있던 120년된 은행나무가 강풍에 쓰러지는 등 500여그루가 쓰러졌다. ■제주공항은 4일 오전부터 항공기 운항이 정상화되자 태풍 ‘올가’로 발이 묶였던 1,500여명의 승객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승객 300여명은 부산행 좌석이 부족하자 ‘부산’을 연호하며 1시간여동안 농성했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최모씨(41)는 100여평의 창고가 침수돼 안에 있던책 2억여원 어치가 못쓰게 됐으나 최근 1억1,000만원 한도의 손해보험에 들어 억세게 ‘운좋은’ 사람이 됐다.96년 수해를 경험한 최씨는 20여일 전에보험에 가입했다. ■태풍 ‘올가’가 사라지자 동해안을 찾는 피서차량 행렬이 다시 줄을 이었다.영동고속도로는 4일 오전 10시쯤부터 피서차량이 몰리면서평창 월정∼강릉간 하행선이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경포해수욕장도 이날 하루 5만7,800명의 피서객이 몰려 올해 최대인파를 기록했다. 특별취재반
  • 水魔가 할퀸 파주일대‘삶의 터전’복구현장

    또다시 재기의 삽질이 시작됐다. 수마가 할퀴고 간 파주지역 수해현장은 4일 아침 모처럼 환한 햇살이 비치면서 이내 복구의 열기로 가득했다. 문산읍 문산초등학교 등 62개 대피소에 피신했던 주민 5,194명은 이날 아침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때우고 집으로 달려가 가재도구를 꺼내 말리고 흙더미를 삽으로 퍼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에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극심한 어려움을겪고 있다. 파주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금촌2동 7통 마을의 아침. 이곳은 이미 거푸 3차례나 수해를 겪은 탓인지 주민들의 복구 손놀림이 남달랐다. ‘네집 내집’ 할 것 없이 이웃간의 긴밀한 공조체제로 작업이 이뤄지고 지원나온 군부대 장병들과의 역할분담도 미리 연습을 한듯 매끄러웠다. 장정들이 힘을 합해 장롱 등 무거운 가재도구를 꺼내놓으면 부녀자들이 달려와 세간을 종류별로 분류한뒤 버릴 것과 쓸만한 것들을 골라냈다. 노인들은 물에 젖은 옷보따리를 나르고 어린이들은 청소일을 도왔다. 주민 김동순(45·여)씨는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면서“힘을 합하니 작업이 훨씬 빠르고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물이 그야말로 보배다.한 양동이로 그릇 등 잔물건을 1차로 씻은뒤 걸레를 빤다. 이어 이 허드렛물도 가구의 흙때를 벗겨내는데 쓰기 때문에 말 그대로 단 한 방울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한켠에서는 하원식(15)군과 정다혜(15)양 등 봉사활동 나온 고양시 백석중학생 5명이 여린 손을 놀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은 급수차가 오면 물을 날라주고 화장실청소와 가재도구 정리를 도왔다. 집에서 빨래라곤 해본 적이 없은 정양은 팔을 걷어붙인채 흙빨래를 전담했다. 하군은 “봉사활동을 수해현장에 나가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버지의 제안에친구들과 기꺼이 자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웃 김순임(65)씨 집은 화장실이 넘쳐 악취가 코를 찔렀고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은 찔찔거리기만 했다.학교로 대피한 부모를 대신해 수원에서 달려온아들 손영일(37)씨 내외는 발목까지 차오른 마루의 물을 퍼내느라 경황이 없었다. 손씨는 “작년에도 갑작스런 폭우로 어머니가 방에 갇혔으나 다락방으로 대피하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며 “이번에는 아예 이사시켜드릴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큰 길가는 공터마다 급수차를 기다리는 빈그릇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고 가게 앞에는 물건들이 황토흙을 뒤집어 쓴채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상가 한편에서는 음식점을 하는 손영민(54·여)씨가 서울에서 달려온 딸과 사위 외손자 등과 함께 물에 잠겼던 가게 안의 물건중쓸만한 것들을 골라 고지대에 마련된 공동 보관창고로 실어 나르느라 여념이없는 모습이다. 이 마을 통장 양원일(47)씨는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주민 모두가 내일처럼 서로 의지하고 합심해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며 “식수와 전기만 공급되면 복구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주 박성수기자 songsu@
  • 민·관·군 수만명 수해복구 투입

    집중호우의 기세가 꺾이고 제7호 태풍 ‘올가’가 북한을 거쳐 중국쪽으로빠져나가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 4일 경기·강원 북부 등 수해지역에서는 민·관·군 합동 수해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산읍 시가지 전체가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를 입은 경기도 파주에서는문산초등학교 등 62곳에 대피해 있던 수재민 5,200여명이 집으로 돌아가 흙범벅이 된 가재도구를 닦는 등 집안을 정리했다.군 장병,민방위대원,소방공무원,경찰관,자원봉사자 등 6,500여명은 적성면 설마리 323번 지방도 복구에힘을 쏟았다. 연천군에서는 장병과 공무원 등 1만5,000여명이 시가지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파손된 도로를 복구했으며,동두천시는 공무원,농협 직원,경찰관 등 2,000여명이 굴삭기 등 180여대의 중장비를 동원해 신천 주변에서 복구작업을펼쳤다. 김포시와 강화군에서는 공무원,해병대 장병,주민 등 3,400여명이 중장비와양수기 등을 동원해 유실된 도로와 제방을 복구했으며,포천군은 창수면 등침수됐던 480여㏊의 논에서 병충해 방제에 주력했다. 강원도 철원군은 중장비 250여대와 민·관·군 3,000여명이 피해가 집중된서면 자등리와 근남면 육단리,갈말읍 정연리·신철원3리,김화읍 생창리에서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양구군도 공무원과 주민들이 동면 임당리 골말천 제방을 응급 복구했다. 한편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4시 현재 37명이 숨지고 26명이 실종됐으며 7,991가구 2만3,910명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기상청은 전국 육·해상에 내렸던 태풍 경보 및 주의보를 이날 새벽 4시30분을기해 해제했다.그러나 태풍에서 떨어져 나온 비구름대가 머물고 있는 영남과 제주에 호우경보,전남 남해안과 동부 내륙에 호우주의보를 각각 발령했다. 특별취재반
  • 서울 노원마을 자원봉사 현장

    “이웃들의 고통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서울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 주민 180여명이 대피 중인 수락초등학교는팔을 걷어붙인 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분위기 만큼은 따스하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약 100명.가족이 모두 자원봉사자로 나서 구슬땀을 흘리는가 하면,지난해에 이어 2년째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중평중 수학교사 이도희(李導熙·49)씨는 부인 김순희(金順姬·43)씨,딸 혜경(惠敬·16·상명여중 3년)양,질녀 윤지영(尹智榮·14·상원중 1년)양과 함께 3일 날이 밝기 무섭게 수락초등학교를 찾았다.이씨는 딸,질녀와 함께 청소를 하고 부인은 식사와 설거지를 도왔다.이씨는 “어제 TV 뉴스를 보다 아내가 봉사를 하러 가자고 해서 가족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면서 “아이들에게 이웃사랑의 정신을 심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노원구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또 봉사에 나섰다.이 때문에노원마을 주민들은 부녀회원들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어려운일이 당할 때마다 달려오는 부녀회원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부녀회원 박경희(朴暻熙·45)씨는 “지난해에도 한 달여 동안 대피소에서 불편을 겪었던 이웃들이 다시 피해를 당해 안타깝다”면서 식사 준비를 위해 바쁜 일손을 놀렸다. 대한적십자사 노원협의회 회원 40여명은 물이 빠진 노원마을에 들어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엉망진창이 된 가재도구를 물로 닦는 일을 도왔다. 특별취재반
  • 진흙·오물더미 아수라장…그러나 “절망은 없다”

    3일 오전 비가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무릎까지 차오른 진흙더미를 뚫고 들어선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과 파주시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백학면은 지난달 31일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고립됐었다. ■연천 백학면은 온통 진흙과 오물투성이였다.거리에는 온갖 쓰레기가 풀과뒤엉켜 나뒹굴고 있었다.논과 밭은 붉은 진흙으로 뒤덮였다.집들은 간신히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분뇨는 집안에까지 넘쳐 흘렀다.마당 가득내놓은 가재도구에서는 분뇨냄새가 진동했다. 주민들은 사투(死鬪)를 벌이다시피했다.기계설비 가게에서 열심히 기계부품을 닦던 김상범(金相範·41)씨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하나라도 건져보려고 빗물로 열심히 닦아보지만 허사였다.발에는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가재도구를 치우다 찢어졌다.김씨는 “치료할 곳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흙탕물이 쏟아지는 계곡에는 설거지를 하는 주부들로 붐볐다.설거지 마무리는 빗물로 했다.빗물을 받아놓은 양동이 앞에서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주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하지만 비누가 없어흙만 닦아내는 정도였다. 주변 하천의 범람으로 고립된 뒤 4일 만에 외부와 접촉이 된 장남면에서는70대 남자 등 6명이 두통과 고열 등 말라리아 유사증을 호소해 군용 헬기로이송됐다.먹을 것도 떨어졌지만 주민들은 무엇보다 말라리아를 걱정했다.고열과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집단 폐사된 뒤 들판에 버려진 가축들을 매립해야 다른 전염병도 막을 수있지만 손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오물이 제대로 치워지지 않아 수인성질병도 염려됐다.하지만 이재민들은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어려워 보였다. ■파주 최악의 홍수대란을 겪고 있는 파주시 수재민들은 3일 아침 물이 빠지자 “태풍이 비켜가기를 바랄 뿐”이라며 또다시 범람이 우려되는 지역에 서둘러 삽질을 했다. 수재민들은 2일 밤 빗줄기가 약해지자 대피 시설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재도구를 닦아내고 진흙탕으로 변해 버린 방을 청소했다.또 금촌과 봉일천 등으로 나가 생필품과 식수 등을 구해 오는 등 밤새‘공수작전’을 폈다.전기조차 들어오지않아 차량 불빛과 손전등·촛불 등을 켜놓은 채 수마에 할퀸 상흔을 닦아 냈다. 하지만 3일 오후 바람을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지자 “하늘도 무심하지”라며 장탄식을 토해 냈다.문산시장 의류 가게에서 4일째 갇혀 있다가 이날 오후 2시쯤 해병대에 구조를 요청,침수지역을 빠져나온 안기호(安基鎬·58)씨는 “촛불을 켠 채 빗물로 밥을 지어 먹으며 나흘을 견뎠는데 옷가지가 모두태풍으로 날아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 역경서 더 빛나는 미담 주인공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긴급상황을 타전하며 활약하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자신의 아픔을 뒤로 하고 남을 돕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파주 아마 무선사 심황섭씨]■경기북부지역 폭우 피해 현장에서도 무선사들은 눈부신 활약을 했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경기지부 파주사무소 소속의 심황섭(沈晃燮·47·문산읍 이천2리)씨도 수해기간 내내 무전기와 씨름하고 있다. 심씨는 문산에 전화선이 불통된 지난달 31일부터 문산초등학교에서 무전으로 홍수 피해상황과 고립상황을 파주시 재해대책본부에 수시로 알려 피해 규모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씨의 하루 근무시간은 24시간.하루 걸러 잠을 자기는 하지만 편안히 눈을붙일 수 없다. 자신의 토마토 농장이 인근 하천의 수위가 불어 위험하다는소식을 재해대책본부로부터 2일 아침에 들었기 때문이다. 심씨는 “위급상황을 알리기만 하는 나는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면서 “전화가 불통된 침수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훌륭한 동료 무선사들이 많다”고 겸손해 했다. [파주 공무원 이동원씨]■“주민들의 아픔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된다고 여겼습니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환경미화차 운전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동원(李東源·45·문산읍 문산1리)씨는 자신의 집이 침수되었는데도 이재민 대피소인 문산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다.매일 20시간씩 수재민들의생필품을 대피소로 운반하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1일 오전 폭우로 인해 월세로 살고 있는 집과 방앗간이 모두물에 잠겼다.가재도구도 대부분 못쓰게 됐다. 그는 문산 시내가 물에 잠기기 전인 지난달 31일 83세인 노모를 성남 누나집에 긴급히 대피시켰다.한성대 축구선수인 장남 성철군(22)에게는 서울의친구집에 머물며 일절 문산에 들어오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이씨는 부인 김영희(金泳姬·43)씨도 대피시키려 했지만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부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부인 김씨는 적십자 단원으로 대피소에서수재민들의 배식에 여념이 없다. 특별취재반
  • [중부 물난리] 문산·동두천 대피소 표정

    2일 수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초등학교에서 대피첫날밤을 지낸 수재민들은 물 부족,잠자리 불편,통신 두절 등 ‘3중고’에시달렸다. 박모씨(22·여·회사원)는 “하루종일 한 번도 씻지 못해 너무 불편하고 화장실에도 물이 없어 불결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고,딱딱한 교실 마루바닥에서 ‘새우잠’을 청해야 했다. 동두천 보산초등학교에서 대피 첫날밤을 지낸 수재민들은 식사마저 제대로하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당장 마실 물도 귀하지만 복구작업을 벌이던 손발마저 제대로 씻지 못해 빗물에 의존해야 했다. 식음료 뿐 아니라 라면과 이불,화장지 등 생필품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재민 김덕주씨(55)는 “작년 수해때는 구호물자가 제때 공급돼 큰 불편이 없었으나 올 수해는 마실물 한 컵도 제때 지원되지 않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한 공무원은 “수해지역이 한곳이 아니라 워낙 여러 지역이라 외부 단체 등의 물품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아쉬워 했다. 수재민들은 이날 어둠이 걷히기가 무섭게 대피소를 빠져나와 집 근처로 달려왔다.지난밤 약해진 빗줄기로 신천이 위험수위를 벗어나자 잠시 집안에 들러 가재도구를 손질하던 주민들은 이날 새벽 4시30분부터 다시 시간당 30㎜가 넘는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하천 수위가 높아지자 서둘러 대피소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이곳에 수용된 이재민은 전날 55가구 200여명이었으나 이날은 120가구 400여명을 넘어섰다.동두천시 이재민 대피소에는 전날 2,400여명이었던 수용인원이 이날 오후 4시가 되자 6,000명으로 늘었다. 특별취재반
  • [중부 물난리] 지역별 수해종합

    사흘째 계속된 집중호우로 중부지방의 인명·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다.제7호 태풍 ‘올가’를 동반한 이번 호우는 2∼3일 계속될 것으로 보여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2일 현재 강원도 화천·철원,경기도 동두천·연천·파주 등 곳곳의 크고 작은 하천이 범람,주민들의 피해는 더욱 컸다.서울 중랑천도 한때 범람위험 수위까지 다다라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산사태로 인한 매몰 사고도 잇따랐다.도로 및 통신 등의 복구작업은 물이 빠지지 않아 늦어지고 있다. ■철원·화천 800여가구 2,346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철원군 근남면 서면 자등리 6개 마을은 지난 달 31일 이래 접근도로 및 교량이 침수되거나 부서져피해상황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남대천과 와수천의 수위가 상승하자,김화읍 청양 3·4리 195가구 637명과 서면 와수 2·3·4리 1,533가구 4,831명에게 대피준비령이 내려졌다.신철원리 용화저수지도 만수위에다 제방의 일부가 유실돼 위험한 상태다. 철원 6개교와 화천 1개교 등 모두 7개 학교의 담장이 무너지는 등 1억200여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화천군 사내면 삼일 1리 삼일계곡에서는 이날 오전 산사태가 일어나 방갈로에 있던 피서객 김동호씨(52) 등 10명이 매몰,실종됐다. ■연천 평균 757㎜의 강수량을 기록하면서 지금까지 사망 2명,실종 4명 등 6명의 인명피해를 냈다.2,300여가구가 침수돼 4,3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농경지 2,400여㏊가 유실되거나 물에 잠겼다. 젖소,닭,돼지 등 가축 27만여 마리가 폐사했다.백학면 324번 지방도로등 많은 도로가 침수되거나 물에 휩쓸려 교통이 두절됐다.청산면 백의리와 연천읍시가지 일부가 2일 내린 폭우로 다시 침수됐다. ■동두천시 시가지 한복판을 흐르는 신천이 범람,이날 오전 9시 소요동과 생연1동 일대 1,260가구 5,000여명의 주민들이 인근 마을회관 및 교회 등으로대피했다. 신천 수위가 한때 낮아지자,대피해 있던 동광교 주변 2,800여명의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가재도구 등을 정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하천의수위가 오르자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파주·문산 파평면 늘노천,파주읍 갈곡천,조리면 고산천,광탄면 보광천 등이 범람,늘노리와 금촌역 앞 등 곳곳이 물에 잠겼다.파평면 늘노리 등 3곳의주민 192명은 고립된 상태다. 문산과 적성·파평 등지의 아파트 주민들이 장기 침수에 대비,이재민 구호소로 대피하면서 이재민은 3,249명으로 늘었다.교하면 교하벌 등 농경지 침수도 잇따라 1일보다 1,000㏊가 늘어난 5,440㏊에 달했다.탄현면 갈현리 양어장도 침수돼 가물치·잉어·붕어 등 85만마리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강화 길상면 길직리 송순철씨 집 축사가 물에 잠겨 닭 2만3,810마리가 집단폐사했다.화도면과 길상면 등 강화군내 6개소의 수산 양식시설(1만7,105㎡)의 메기·붕어·황복 등이 물에 떠내려갔다. 특별취재반
  • [중부 물난리] 연천군 이재민 표정

    96년과 98년에 이어 다시 찾아온 수마.차탄천 일부가 붕괴되면서 물에 잠긴 경기 연천읍 백학·군남·미산·왕징면 일대는 수돗물과 전기는 물론 외부인의 접근마저 끊겨 말 그대로 암흑과 절망의 도시였다.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대피소가 차려진 연천군청 대회의실로 피신해온연천읍 차탄리 주민 300여명은 거듭되는 악몽에 몸서리를 치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재민들은 연천군청의 대피 안내방송 등을 듣고 부랴부랴 대피하느라 변변한 세간을 챙기지 못했다.연천군이 구호물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콘크리트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첫날밤을 보냈다. 계속 내리는 비로 습기가 차 눅눅해진 바닥,덤벼드는 모기떼,무더운 실내온도에다 앞으로도 수재 악몽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겹쳐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이재민들은 날이 밝으면서 대한적십자사 연천군부녀회 20여명이 준비해온 밥과 미역국으로 허기를 면했다. 날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 등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이재민들은 그러나 1일에도 폭우가 계속되자 실망한 채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피워물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이재민들은 특히 교통 두절로 외부와 고립된 가운데 구호품은 물론 생필품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지난 6월 경기도로부터 구호세트 200개를 받았지만 모두 교통이 끊긴 양주군청에 보관돼 있어 이들에게는 정작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재민들은 “96년 대홍수에 이어 지난해에도 피해를 입었고 올해도 장마가 코 앞에 다가와 있었는데 군청에 구호품 하나 비축돼있지 않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연천군 당국을 집중 성토했다. 김모씨(57·자영업·차탄2리)는 “96년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천만원의 재산피해를 본 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또다시 피해를 보게 됐다”며 “연천군이 구호물자 등을 제대로 비축하지 않는 등 평상시 재난관리가 허술해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당국의 준비부족을 꼬집었다. 특별취재반
  • 안양·용인경찰서장의 해명 불구 쟁점될듯

    “살림집은 서울에 있고 관사에는 가재도구가 거의 없어 돈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김치냉장고와 꽃병에 ‘비상금’을 숨겼다가 ‘고위층 절도범’ 김강룡(金江龍·32)씨에게 800만원과 200만원을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배경환(裵京煥·48) 안양경찰서장과 유태열(兪泰烈·47) 용인경찰서장의 해명이다. 김씨는 지난 달 1일 저녁 7시쯤 배 서장의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관사문을뜯고 들어가 김치보관용 냉장고 안에서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뭉치를 훔쳤다. 지난해 7월에는 유 서장의 집에서도 꽃병 속에 감춰져 있던 봉투뭉치를 훔쳤다. 김씨는 배서장의 집에서는 지역유지들의 이름이 적힌 현금 5,800만원이 든봉투뭉치를,유서장의 집에서는 800만원이 든 봉투뭉치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반면 배서장과 유서장은 도난당한 액수는 800만원과 200만원이며,이는 서장에게 지급되는 수당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경찰서장이 봉급외에 받는 각종 수당은 한달 평균 350만원 정도.판공비 220만원에 지휘정보비와 보안수당이 각각 100여만원과 28만원 정도다.판공비는대체로 경무과에서 보관,운용한다.각종 경조사비와 부하직원 회식비 등으로충당한다. 봉급 외에 경찰서장의 주머니로 돌아가는 돈은 지휘정보비와 보안수당 130여만원과 연간 한두 차례 나오는 효도휴가비,연말정산비 등이다.산술적으로따진다면 5∼6개월 정도만 모으면 이들이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800만원,200만원은 충분히 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서장과 유서장은 하필이면 김칫독과 꽃병에 돈을 감춘이유를 시원스럽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검찰의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전영우기자 ywchun@
  • 노숙자 이대로 둘순 없다­천막촌 일가족의 하루

    ◎“아빠 집에 가요” 아이는 보채는데…/바닥에 비닐 깔고 새우잠 “밤새 덜덜”/“가을 가기전 월세라도” 일감은 없고/말수 적어진 아이 “겨울잠 잤으면…” “겨울잠을 자서 따뜻한 봄에 깨면 좋겠어요” 29일 새벽 4시 서울 서소문공원 노숙자 천막촌. 새벽 단잠을 청하던 노숙자 成모씨(41)가 문득 천막을 들추고 나왔다. “얼마나 추웠으면…” 成씨는 며칠전 아들(11·서울 S초등학교 4년)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남대문 새벽 인력시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해서든 가을이 가기 전에 월세방을 얻어야지” 거듭 다짐해 보지만 일감이 없다. 새벽 6시. 천막으로 되돌아와 아침을 준비했다. 아들을 깨워 공원 화장실에서 세수를 시키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아침 저녁으로 추워지면서 아들이 감기까지 걸려 기침을 많이 한다. 활달했던 아이가 부쩍 말이 줄었다. 成씨는 “지난 91년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진 뒤 아이를 혼자 키워왔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노숙 생활 4개월째. 천막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길에서 주운비닐 장판을 덮었다. 3장의 담요를 깔고 덮어 추위를 쫓고 있다. 成씨는 지난해 10월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6개월간 입원했다. 산재 보험비를 받았지만 병원비를 대느라 모아둔 돈까지 다 썼다. 그동안 월세 20만원짜리 방값을 내지 못했다. 주인의 독촉이 심해져 몇 점 되지도 않는 가재도구를 담보로 맡기고 지난 5월말 집을 나왔다. 하지만 되돌아갈 기약이 없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지요. 그래야 방도 얻고…” 저녁 9시쯤,낮에 일감을 구하지 못해 하루종일 담배만 태웠던 成씨와 李씨는 아이들을 재우고 천막에서 나와 이렇게 말하며 재기의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공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10월 중으로 서소문공원에서 천막을 치지 못하게 한다더라”는 소문에 이들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 귀순자 자립 지원/의무고용제로 직장 보장을(탈북 그 이후:4)

    ◎자격증 등 인정 못받아 단순 직종으로/절반이상이 월수입 100만원 못미쳐/적응교육 강화… 안정된 삶 부축 시급 지난 95년 북한을 탈출한 朴모씨(36)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지만 낯선 남한 생활에 후두암까지 겹쳐 또다른 죽음의 고비를 맞고 있다. 朴씨는 “한달에 40만∼5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비는 고사하고 30만원이 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면서 “처음 귀순할 때의 환영 분위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해지는 주변의 시선에 야속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해 94년 귀순한 韓모씨(38)도 버거웠던 지난 4년간의 남한 생활을 털어놨다. 韓씨는 “한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개인 한방병원에 취직했지만 ‘북한자격증을 어디에 쓰느냐’고 면박을 주며 잔심부름만 시켜 그만 두었다”면서 “죄인이나 무능력자 취급받는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韓씨는 “한의학 서적을 출간해주겠다고 찾아 온 남자에게 산삼 두 뿌리를 사기당한 적도 있고 한 독지가가 귀순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준 돈을 중간에서 가로 챈 사람도 보았다”면서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하지도 않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마구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념과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꾸려가는 제2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이들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 문제와 생활고를 꼽았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북한에서의 경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과 지적 열등감,언어의 차이,외로움 등으로 수시로 좌절감을 느낀다. 이들은 97년 제정된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에 따라 귀순 후 통상 6개월간의 관계기관 합동심문과 사회적응 교육절차 등을 거친 뒤 귀순전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어 정착금 및 주택,보조금 등을 받는다. 가족이나 지위가 없는 경우 받는 지원금은 평균 1,400만원 정도. 하지만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거의 다 쓴다. 정부기관의 주선으로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만 전문직 보다는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올 초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700여명 가운데 매월 1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314명에 불과하다. 월 50만원 이하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86명이나 되며 병약자나 노약자 등 생계곤란자도 40여명이 넘는다. 또 절반이상이 정부에서 알선한 직장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金熙辰 사무국장은 “탈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보장받는 것”이라면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응교육과정 및 법정 의무고용제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설마했는데…” 물바다에 망연자실/충북 보은·경북 상주 폭우현장

    ◎보은­지붕만 남긴채 잠겨 하늘보며 원망.도로·논밭 흔적없는 황토물만 넘실/상주­철도 침수·전기-전화 끊겨 완전 고립.“낙동강 넘친다” 고지대로 맨몸 대피 “원망스런 물,물,물….” 게릴라성 폭우가 갑자기 쏟아진 충북 보은일대와 경북 상주지역은 온통 흙탕물 뿐이었다. 시가지 전체가 물에 잠긴 두 지역 주민들은 서울과 경기지역을 휩쓸었던 수마의 상처를 떠올리며 하늘이 원망스러운듯 치를 떨었다. 외부로 통하는 곳곳의 도로는 물에 잠겨 고립됐으며 수확을 앞둔 농경지는 대부분 물에 잠겨 시름을 더했다. ▷보은◁ 각 면소재지의 농경지는 대부분 황토바다로 변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수한면 율산·광촌·호평리 농가들은 지붕만 남긴 채 물에 잠겼다. 농경지 곳곳에서는 농작물의 피해를 막아보려고 물빼기 작업에 나선 농민들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띄었으나 손을 써볼 겨를이 없어 한숨만 짓고 뻥 뚫린 하늘만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보은으로 통하는 상당수의 도로도 인근 하천 등지에서 범람한 물에 잠겨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고일부 도로구간은 낙석과 토사유출로 흉칙하게 변했다. 보은읍을 가로지르는 보청천은 살인적으로 불어나는 빗물로 금방이라도 범람할 기세를 보여 주민 1만8,000여명이 고지대로 긴급대피해 시가지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대피했던 주민들은 대부분 물이 빠지면서 귀가,복구에 나섰으나 일부는 마을회관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밤을 보냈다. 군청 지하실에 대피중인 이평리 吳금순씨(47)는 “군청에서 컵 라면을 주었으나 따뜻한 물이 없어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주◁ 최고 5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상주지역은 도로와 철로가 두절되고 전화와 전기마저 끊어져 외부와 완전히 고립됐다. 김천∼상주 3번 국도와 상주∼보은 252번 국도 등 주요 도로가 침수 또는 유실돼 두절됐고 경북선 상주∼함창구간 등 철로 20곳이 침수되거나 매몰됐다. 낙동강 상류지점인 함창읍과 낙동·중동면 3개 지역은 낙동강 범람에 대비해 긴급 대피령을 내려 주민들은 가재도구 하나 챙기지 못하고 서둘러 대피하는 등 최악의 물난리에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12일 하오 1시 낙동강 상류(상주시 낙동면) 지역의 수위가 위험수위인 9m에 육박한 8.15m를 기록하자 상주시는 전 공무원을 동원,이 지역 주민들을 인근 고지대 등으로 대피시켰다. 폭우로 통신이 완전 두절되자 상주시 재해대책본부는 휴대폰을 이용해 각 읍·면에 주민들을 대피시킬 것을 지시하는 등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은척면과 모서면 등 10개지역은 저지대 가옥 600여 가구가 침수돼 2,000여명의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 빗줄기·진흙탕속 복구 강행군/중부 물난리­軍 지원 현장

    ◎흙탕물 퍼내고 흙더미·쓰레기 치우고/가재도구 하나라도 더 건지려 쉬지못해/“우리고생은 약과” 누구하나 불평없어 10일 상오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 또다시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수해복구에 나선 군인들의 발길을 돌리지는 못했다. 지난 7일부터 나흘째 수해복구를 위해 투입된 101여단 장병들. 지상 1층까지 차올랐던 물이 빠지기가 무섭게 자기일처럼 피해복구에 나섰다. 상가 골목과 아파트 마당 곳곳에는 흙더미와 함께 물에 젖은 가재도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냉장고, 장롱,식기 등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온몸은 진흙으로 뒤범벅이 됐고 군화는 이미 흥건히 젖어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땀과 빗줄기가 흘러 내렸지만 어느 누구도 쉬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비라도 피했다가 하자”고 주민들이 말했지만 장병들은 “한시라도 빨리 손질해야 가재도구를 다시 쓸 수 있다”며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일 새벽 인근 공릉천이 범람,지상 1층까지 물이 차올라 주민들은 잠옷바람으로 대피했었다. 비가 그친 뒤 집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주민 朴仁淑씨(29·여)는 “피해가 너무 심해 정말 막막했다”면서 “군인들이 오고 난 뒤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상가 골목은 흙더미와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다. 이것들을 치우는 것도 군인들의 몫이었다. 퀴퀴한 악취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朴濟雄 대위(29)는 “상오 7시30분부터 하오 6시까지 복구 강행군을 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장병이 없다”면서 “피해를 입은 주민에 비해 우리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물때문에 독이 올라 피부병에 걸린 장병들도 있지만 간단한 치료만 한 뒤 다시 복구작업에 열중했다. 주민들이 가장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아직도 지하실에 남아있는 진흙탕물을 퍼내는 일이었다. 양동이로 흙탕물을 퍼내느라 장병들의 온몸은 진흙으로 범벅이 됐다. 간간이 주민들이 건네 주는 커피와 수박은 고단했던 장병들의 몸을 일시에 풀어주었다. 鄭在浩 상병(23)은 “이번 비로 전국민이 크나큰 피해를 봤다”면서 “우리들이 여기서하는 일이 곧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부 물난리­줄잇는 온정의 손길

    ◎퇴직사원도 달려와 ‘회사 살리자’/라면·침구류 등 구호품 11t 트럭 30대분 답지/서울대병원 등 의료지원… 대학생 복구 참여 절망은 없다.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자리에 따뜻한 동포애가 피어나고 있다. 수해 현장마다 복구작업과 구호활동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있다. 중랑천 범람으로 20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낸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섬유회사 ‘라점모방’에는 정년·명예퇴직한 직원 20여명이 복구 작업을 도왔다. 침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들은 7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폐허가 된 공장 안의 진흙을 걷어내고 쓰레기를 치웠다. 흙탕물에 젖은 섬유를 볕에 말리고 기계도 손보았다. 이들은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회사가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서울 수락초등학교에서는 상계1동 새마을부녀회 10여명이 닷새째 300여 수재민들의 식사와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를 돕고 있다. 동국대생 20여명도 새벽부터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을 찾아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들어내고 방안을 뒤덮은 황토흙을 치웠다. 의정부 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金相雨씨(43)는 이날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배영·경의초등학교와 발곡중학교를 찾아 이재민들에게 한식 1,000인분을 제공했다. 서울 은평구 진관내·외동 새마을부녀회원 30여명도 신도초등학교 등에 수용된 이재민 200여명에게 매일 따뜻한 밥과 국을 제공하고 있다. 손수 담근 김치와 김밥, 속옷 등 생필품을 전달하는 시민들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대병원,고대 안암병원 등 21개 의료기관의 의사와 간호사 321명은 서울과 경기북부 지역의 수해 현장에서 무료 진료활동을 펼쳤다. 전국재해대책협의회에는 이날까지 의류,라면,침구류 등 11t트럭 30대분의 구호품이 접수됐다. 대상그룹은 고추장·된장·간장을 비롯한 식료품 17.5t을 보냈다. 고합그룹은 담요·이불 2,000여장을,샤니에서는 빵 7만봉지를 구호품으로 전달했다. 수재의연금도 사흘만에 40억원을 넘어섰다. 다음 달 6일 마감때까지는 300억원의 성금이 접수될 전망이다. 安秉學 사무국장(47)은 “지난 96년 홍수때보다 훨씬 많은 성금과 구호품이답지하고 있다”면서 “어려운 때이지만 이웃사랑은 식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땀에 절은 옷… 끼니는 라면으로/고통받는 이재민들

    ◎부녀자들 갈아입을 속옷 없어 큰 불편/스티로폼위서 모기와 싸우다 잠설쳐 창가에 줄지어 널린 빨래,구석 한켠에 앉아 손부채질로 더위를 쫓는 노인,스티로폴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에 골아떨어진 아이들…. 9일 상오 서울 노원구 수락초등학교에 마련된 수재민 대피소.노원구 노원마을 등 상계1동 400여가구 1천여명의 수재민이 수용된 18개의 교실마다에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지친 듯한 표정이 가득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의·식·주 문제로 큰 곤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갈아입을 옷이 없어 가장 불편해했다.노원마을의 경우 지붕까지 물이 차올라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기 때문에 대부분이 땀에 전 티셔츠와 운동복 등 탈출 당시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崔吉龍씨(47)는 “4일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면서 “특히 여자들이 속옷 등이 없어 크게 불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해대책본부를 찾아가 “속내의가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 낮 대책본부가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헌 옷 박스를 풀어놓자 몇점안되는 옷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잠자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25평 남짓한 교실에 평균 50여명이 몰려 칼잠을 자야 했다.요는 스치로폴로 대신했다.이불은 무조건 한 가구에 한 장씩만 배정돼 새벽마다 이불싸움이 벌어진다.베개가 없어 스치로폴을 쪼개 만든 베개가 교실마다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끈적끈적한 한여름밤 모기와 싸우다 보면 새벽 4∼5시나 돼야 잠이 들기 일쑤다.일부는 복도에 나와 잠을 자거나 아예 운동장에서 서성거리며 뜬 눈으로 밤을 새기도 한다.이날 낮에도 밤잠을 설친 듯한 주민 일부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먹거리는 많이 나아졌다.인근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끼니를 제공하고 있다.첫날에는 하루 세끼를 구청에서 제공한 컵라면만 먹었다.마실 물은 항상 부족하다. 피부병도 주민들을 괴롭힌다.쓰레기와 오물이 발목까지 쌓인 곳에서 복구작업을 하느라 대부분의 주민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무엇보다 막막하다.張明三씨(54)는 “집이며 가재도구며 모두 망가져 원상회복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결실 앞둔 들판 황토로 뒤범벅/당진군 수해 현장을 가다

    ◎볏논 4,500㏊·상가 200곳 싹쓸어/진흙뻘엔 장롱·차량 뒤엉켜 참혹/끊겨진 도로 곳곳 토사더미 가득 가도 가도 끝없는 흙탕물 뿐이었다. 전날 밤 늦게 마을을 가로지르는 당진천이 범람,읍내리 상가 200여곳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장롱이며 스티로폴 조각들이 진흙과 함께 어지럽게 널려져 간밤의 참상을 짐작게 했다. 특히 당진천 둑 50여m가 터지면서 구두 2리 일대 논 4,500여㏊가 거대한 호수로 변해 어제까지만 해도 바로 이곳이 논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뒤엉킨 차들 사이로 가재도구 등을 챙기려는 주민들은 실종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미친 듯 헤매고 있다. 서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은 곳곳에서 흙더미가 내려 앉았다. 당진읍 용현리 용현초등학교 앞과 용현가든 앞 도로는 산사태로 교통이 모두 끊겼다. 삽교천을 거쳐 서산과 태안 방면으로 향하는 차들은 꼬리를 길게 문 채 당진군 면천면으로 우회하고 있다. 당진읍 채운리 채운평야도 물속에 잠겨 푸르던 들판이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췄다. 자연부락 ‘북창’은 아예 물속으로 사라졌다. 일부 물이 빠진 논바닥에는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벼가 덩그렇게 누워 있다. 당진중학교 뒤에 있는 집 한채는 뒷산이 무너지면서 완전 파괴돼 흉칙한 몰골이다. 흐름이 막힌 하천 물이 이 일대 논을 휩쓸어 자갈과 흙더미가 논바닥을 뒤덮고 있다. 마을 뒷산 밑에는 산사태로 인해 집 한채가 부서져 있다. 이 평야는 폭우에 항상 잠기는 상습침수지역이어서 최근 농지개량사업까지 마쳤으나 이번 폭우에 또 다시 망가졌다. 송악면 한진리도 마찬가지다. 평소 비가 오면 아산만으로 곧 바로 빠져 피해가 없었으나 이번 ‘살인폭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30여가구가 침수됐다. 주민 金貞卿씨(70)는 “폭포처럼 쏟아진 비로 손쓸 사이도 없이 안방 물이 금방 허리까지 찼다”며 “승용차를 타고 7㎞쯤 떨어진 송산면 큰아들 집으로 피신하는데도 도로 곳곳이 무너지고 다리가 물에 잠겨 죽을 고비를 몇번 넘겼다”고 말했다.
  • 수재복구 함께 나서자(사설)

    나흘간 서울과 경기북부를 강타한 기습폭우가 경기남부와 충청지역으로 이동,도시와 농촌 모두를 폐허의 현장으로 바꿔 놓았다.지리산 참사에 이은 이번 중부지방 재해를 보면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아직도 서울과 경기지역을 강타한 국지성 집중호우대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상태에 있어 복구작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졸지에 집과 가재도구를 잃은 도시주민은 물론 논과 밭이 온통 침수된 농민과 가축을 홍수로 떠내 보낸 축산 농가들의 실의와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더구나 부모와 자식을 잃은 수재민의 아픔과 시름은 형용하기조차 어렵다.대자연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하늘을 원망하면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수재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정부는 지난 9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호우피해 지역 주민과 기업에 대해 금융과 세제상의 지원을 하고 학자금과 영농자금 감면혜택을 주기로 했다.이번 재해는너무도 엄청나 정부지원만으로는 수재민들이 재기하기가 힘들 것이다. 당국은 우선 식수·식량·전기·가스 등 이재민들에 대한 생활필수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무너지고 끊긴 교량·도로·철로·전기 통신 시설을 조속히 복구할 것을 당부한다.당국뿐 아니라 전국민이 나서 재해를 당한 도시민과 농민을 도와야 할 것이다.도시지역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 치우기와 수인성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을 위해 당국과 민간기업의 인력과 장비지원이 신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농촌지역은 집과 논 및 밭이 침수피해를 입어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태이다.벼 병충해의 경우 비가 잠깐 갠 사이에 방제하는 것과 하루를 미루는 것과는 수확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올해는 기상이변으로 벼멸구 발생이 지난해보다 5배이상 늘어난 상태에서 이번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잎도열병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조생종 벼는 이미 벼가 패었고 중·만생종은 이삭이 막 패기 시작하고 있다.이삭이 팰 때 목도열병에 걸리면 벼농사가 결정적인 피해를 보게된다.병충해 방제는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밭작물 피해 또한 심각한 상태이다.그러나 노인과 여성이 주축인 농촌의 가족 노동력만으로는 집과 가재도구를 챙기기도 일겨운 실정이다. 농촌지역 수해피해를 줄이기 위한 도시민들의 일손돕기가 절실한 때이다. 도시의 유휴인력과 방학중인 학생들이 농촌을 찾아 폭우로 쓰러진 벼를 세우고 논과 밭의 병충해를 방제하는 일에 나설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 “어디부터 손대나” 한숨만/상계동 노원마을

    ◎“남은건 밥그릇과 숟가락” 부녀자 울먹/언제 무너질지몰라 집밖서 발만 동동 한바탕 격전을 치른 전쟁터 같았다.진흙속에 처박혀 있는 바퀴 빠진 자전거,마당 한 구석에 쓰러져 있는 냉장고,찌그러진 창틀에 덩그렇게 걸쳐져 있는 양파와 감자…. 터진 중랑천 제방에서 흘러든 흙탕물에 잠겼던 서울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9일 상오 물이 빠지자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집으로 돌아온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서지고 더럽혀진 집과 엉망진창으로 나뒹구는 가재도구들이었다. 주민들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골목길은 움푹움푹 패어 보도블록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담벼락은 거센 물살에 구멍이 뚫려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 옆에 있는 수십동의 비닐하우스도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애써 가꿔왔던 호박이나 고추도 시커먼 흙 속에 묻혀 있었다. 주민 金尙恰씨(67)는 “이곳에서 36년을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면서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중년의 주부는 처참하게 훼손된 방이며 부엌을 보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온통 더럽혀진 좁은 방에서는 오물 묻은 달력만이 주인을 맞았다.어머니를 달래려던 중학생 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모녀는 서로 얼싸안고 한동안 울었다. 집이 심하게 파손된 주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몰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金모씨(50·여)는 “집안에 있던 쌀 15가마니와 연탄 1,000여장이 흔적도 없이 물에 쓸려가버렸다”면서 “쓸 수 있는 것은 밥그릇과 숟가락 뿐”이라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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