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가재도구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 119구조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 조수미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전력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 프로농구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30
  • 이주성 前국세청장 구속

    이주성 前국세청장 구속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서부지검 형사5부(부장 노승권)는 12일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특가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서부지법 정인재 영장전담판사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하던 2005년 11월쯤 건설업자 기모(50·구속)씨의 소개로 만난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으로부터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 힘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19억여원짜리 아파트 및 5800여만원의 가재도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전 청장은 2006년 5월쯤 백 회장에게 신도림테크노마트 시공의 하청공사를 맡은 기씨 업체의 토목공사비를 증액해 주면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말해 13억 7000여만원의 공사비를 더 지급받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 차장 시절이던 2005년 2월쯤엔 지인들의 주소지로 굴비 등 명절 선물을 배송해 줄 것을 요구해 500여만원씩 모두 3차례에 걸쳐 1500만원 상당의 선물을 제공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청장은 수감되기 직전 취재진에게 “(검찰 수사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전 국세청장으로서 국세청 직원들에게 죄송하고 모든 것이 내 부덕의 소치다. 아파트 부분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프라임그룹의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 전 청장의 구속으로 본격적인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서울광장] 위기대응 속도조절 필요하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위기대응 속도조절 필요하다/우득정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한미재계회의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정부의 금융위기 대책에 대해 “10년 전에 비해 지금은 돈을 얼마나 푸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조속히, 그리고 충분하게 시장에 풀고 자신감을 회복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국발 핵폭풍이 글로벌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선제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기관 외화차입 지급보증, 은행채 매입, 건설업체와 자산운용사 유동성 지원, 금리 전격 인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등 금융시장 불안-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심리 해소를 위해 ‘유동성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어제 재정 확대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 내수진작을 위한 종합대책도 내놓았다. 청와대가 채근하며 앞장서 달려가고 각 부처가 허둥대며 뒤따르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강 건너 먼 산에 불이 났는데 지붕에 물을 끼얹고 가재도구를 옮기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위기국면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한 예방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선제대응이라고 내놓는 대책을 보면 지레 겁을 먹고 과잉처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시중은행장의 한마디에 금융기관 지급보증에 1000억원을 쏟아붓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펀드 런’ 걱정에 뭉칫돈을 왕창 대주고 있다. 책임 소재 규명없이 돈 보따리부터 풀다 보니 ‘위기 부풀리기’로 한몫 챙기려는 부류까지 나타나고 있다. 조급증과 ‘올 인’ 대응이 낳은 부작용이다. 곳간을 활짝 열어제쳐 우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내년에 다시 풍년이 든다는 기약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부터 우리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장담했던 전문가들은 점점 줄어들고 내후년 이후에나 햇살이 비칠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해 몽땅 털어먹었다가는 내년과 내후년의 춘궁기에는 쫄쫄 굶주리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침착성을 되찾아야 한다. 금융시스템이 망가진 미국이 한다고 멀쩡한 우리까지 흉내내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과거 수도 없이 경험했듯 지나침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유동성의 무차별 공급과 부동산의 과도한 규제 완화에서 벌써 그런 걱정이 앞선다. 과잉 유동성은 소비자들에게 비용 둔감을 유발하고, 또다시 버블 양산을 초래한다. 부동산 거래 실종과 건설업계의 자금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부실화 가능성 등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수년에 걸쳐 꽁꽁 묶었던 부동산 관련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헤치는 데서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된다. ‘글로벌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정부는 뭣 하고 있나.’라는 질책에 초연하기는 어렵다. 출범 이후 줄곧 경제성적표가 곤두박질친 이명박 정부로서는 뭔가 보여줘야 하는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거에 만회하겠다는 식으로 달려드는 것은 문제다. 각 부처가 앞다퉈 ‘면피성’ 대응책을 쏟아내니 시장이 소화불량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따라서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좌표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대외 개방을 지향하는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의 종속변수라는 굴레에서 벌어날 수 없는 만큼 인내하며 내실을 다져나가는 길밖에 없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상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상편)

    □상편=그곳에 칭기즈칸은 없었다 □중편=“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하편=잊혀진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몽골-문명과 전근대가 만나는 곳=상편 거친 황무지는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지평선에서 떠오른 태양이 다시 지평선으로 지는 나라.그 불모지에는 생명이 없는 듯 보였다.멀리서 보면 눈부신 초록의 초원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이미 살아있는 땅이 아니었다.바짝 말라붙은 대지 위에는 만지면 바삭거리며 부서지고 마는 사막의 마른 초지식물들만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을 뿐 들쥐 한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초록의 초원’은 햇볕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은 ‘풀의 미라’가 남긴 착시일 뿐이었다. 생명의 흔적은 오직 하늘에만 있었다.까마귀 무리는 나무 한 그루 남아있지 않은 야트마한 구릉 위를 힘겹게 날고 있었고,들 가운데 앉은 독수리의 눈빛은 황무지의 끝없는 갈증을 말해주고 있었다.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태양은 작열하고 있었고,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었다.황무지 몽골의 이런 풍경이 이방인에게는 한없이 낯설고 막막해 보였다. 11일 이른 오후.공익법인 아시아 사랑나눔회(ACC·Asia Children Charity·회장 김종구)가 꾸린 카톨릭의료봉사단원과 봉사요원 등 30여명은 몽골의 항공 관문인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수도 울란바타르 시내로 곧장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울란바토르의 교외 풍경은 혹독한 자연 조건이 인간의 삶을 통째로 지배하는 모습 그대로였다.곳곳이 웅덩이처럼 패인 도로 위를 마치 야생마처럼 질주해 가는 버스,그 버스 뒤를 자욱하게 뒤덮는 흙먼지와 바람,그런 것들로 몽골은 이미 내게 아주 낯설게,그러나 아주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유목의 도시 울란바토르 이런 풍경은 울란바토르 시내도 크게 다르지 안았다.사람이 좀 더 많이 모인 곳일 뿐 그곳도 틀림없는 사막이었다.도심의 낮고 낡은 건물,덕지덕지 가난이 묻어나는 빈민들의 지향없는 배회와 그들의 삶을 무질서하게 비집고 오가는 차량들.그런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경적 소음은 우리의 개발연대를 돌이키게 하기에 충분했다.그곳에서는 우리가 거쳐온 과거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차선도 없는 거리를 열에 들뜬 듯 내달리는 차량은 태반이 한국산이었다.그게 한국에서 폐차된 차량을 가져온 것인지,아니면 도난 차량인 지는 알 길이 없지만 틀림없는 것은 이런 풍경이 항용 그렇듯 우리가 예전에 겪어온 어두운 잔상,예컨대 배고픔과 풍요에 대한 열망,소음과 무질서,더러움과 절망감,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 등속을 떠올리게 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앞으로 닥칠 고난이 예견됐다.파리가 들끓는 로비에는 한국말이나 영어를 아는 직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냉방 대신 호텔 현관에 설치된 에어 커튼이 전부였다.방에 들어서자 더 막막했다.벌써 콧잔등에 땀방울을 매달고 있는데 냉방이 되지 않았다.살펴보니 객실에 아예 냉방기 송출구가 보이지 않았다.에어컨 시설이 없는 것.목을 축일 요량으로 물을 찾았으나 흔한 물 한병도 비치되지 않았다.그러니 객실에 냉장고형 미니바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도리없이 훌훌 벗어부쳤다.답답한 호텔방에서 이 더위를 이기려면 우선 씻는 게 상책이라고 여긴 까닭이었다.그러나 고난은 욕실까지 이어졌다.깔깔한 비누를 문대가며 씻긴 했는데 이번엔 물이 바닥에 고여 빠지지 않았다.프론트에 알릴 요량으로 전화기를 들었으나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P&###*!%$”였다.난감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욕실 바닥엔 고인 물이 첨벙거렸다.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그래도 이 방은 오후엔 햇볕이 비치지 않으니 다행이네.” 하기야 몽골에서 호의호식하려 했던 건 아니니 다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한낮의 햇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20∼25도나 뚝 떨어지는 일교차가 만드는 밤의 추위와 먼지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 이런 방도 천국이려니 여기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해가 지자 금세 기온이 떨어져 창문을 열어두면 오싹 추위를 느낄 만큼 서늘해졌다는 점.‘엎어진 김에 자고 간다.’고 잘 됐다 싶어 현관문과 창문을 마주 열어놓으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방을 쓸고 지나갔다.그러나 거기에도 문제는 있었다.‘꺅!’하는 비명과 함께 옆방에 짐을 푼 일행 한명이 놀라 뛰어왔다.가보니 열어둔 창문으로 몸통이 엄지손가락만 한 나방들이 날아들었다.보기에도 흉칙했지만 어찌 할 수가 없었다.저게 뭔지 모르니 두고 볼 밖에.전등불빛을 보고 달려든 크고 작은 나방이 걸려 잠을 청할 수 없었다.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다.다행인 것은 사막지대라 모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매연이 심했다.몽골 전체 인구 300만명 중 100만명이 몰려 사는 이 도시는 사막이라는 혹독한 자연조건을 이기기 위해 도심 곳곳에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가동하고 있었다.우리의 체험으로 보자면 이 화력발전소라는 게 전력 생산량은 신통치 않으면서도 매연으로 인근을 서서히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그 굴뚝에서 쉼없이 뿜어져 나온 매연이 자욱하게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거기에 원래 있었던 사막의 먼지바람과 차량의 배기가스가 더해져 숨길을 턱턱 막아댔다. 옛적 칭기스 칸이 물길 좋은 평원(분지)에 터(울란바타르)를 닦고서 “이곳에서 하늘을 보며 동과 서로 멀리 땅 끝까지 나아갈 것을 다짐했노라.”고 되내었던 제국의 심장이 이미 아니었다.끝없이 쇠락해가는 옛 영화의 상징일 뿐이었다. ■의료봉사-일회성이 아쉬운 ‘아름다운 베풂’ 어디에서든 지평선이 보이는 나라,대지를 달구는 태양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삶을 억압하고,정의하고,설명하는 곳. 이곳에 여장을 푼 의료봉사단은 생각보다 진료가 어려울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우선 아직도 여전한 유목 생활 때문에 주민들이 한 곳에 정주하지 않아 의료봉사가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많은 봉사인력이 초음파 진료기기 등 무거운 장비를 갖고 끝없는 초원을 옮겨다니며 진료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고작 200만명의 주민들이 광활한 몽골 초원 곳곳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집단 취락지를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봉사단으로서는 현지 국가기관의 협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게다가 뜨거운 태양이 봉사단의 걸음을 막았다.습도가 10%에 불과한 건조한 사막기후 때문에 햇빛 아래서는 여지없이 살갗이 따갑게 졸아드는 느낌이었다.낮기온이 36∼38도가 예사였지만 걱정만큼 땀이 많지는 않았다.그렇지만 햇빛과 건조한 기후에 피부가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햇빛에 노출된 살갗이 금세 지직거리며 타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전에 몽골 ACC를 통해 진료 대상 지역과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과연 그들이 문명세계의 의료를 이해하고 모여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첫날 울란바타르 시내 항올지구에서 진료가 실시되자 기다렸다는 듯 진료 희망자들이 줄을 이었다.종일 접수창구에서는 아우성과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진료희망자들 가운데는 공무원과 이 징역 보건소 및 병원 관계자의 가족들이 적지 않았다.이런 진료 티켓을 얻는 것도 그들에게는 잡기 어려운 특권으로 통하는 듯 했다.그러니 미리 진료를 받겠다고 신청한 저소득층 주민들이 특권층의 새치기를 보다 못해 왁왁대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료진은 가능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진료하기로 했고,이튿날까지 연인원 800여명이 내과(김예원·주승행) 외과(이용배) 소아과(김예원·주승행) 피부·비뇨기과(신민석) 산부인과(이용오) 정형외과(이용배) 신경외과·통증의학과(김광희) 및 진단방사선과(양우진) 진료를 받았다.의료진들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강행군을 한 결과였다.김광 김지은 노미란 김혜선 박정옥 이명숙 김민주 김삼단 박미리 최종숙 김은자 문미래 손송희씨 등이 약사 및 간호사와 안내 등 진료 보조업무를 맡았다.여기에 이승구(안드레아) 신부와 행정지원팀 배용민,방송취재팀 3명 등이 동행했다. 한 의사가 푸념을 했다.“한국에서 진즉 이렇게 진료를 했으면 벌써 빌딩을 사도 여러 채 샀을 건데….” 진료 후 의료진들이 털어놓은 후일담은 몽골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환자들 대부분은 만성 성인병 질환자들이었다.육식을 주로 하는 섭생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싼 채소류와 곡류보다는 양고기 등 육식을 하는 게 쉬운 일이었고,그런 까닭에 비만,고혈압·뇌졸중 등 순환기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많았다.이런 몽골인들의 비만이 머잖아 당뇨 대란으로 이어질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만은 그들의 문화가 낳은 고질이지만 최근들어 특히 심해지고 있었다.과거처럼 힘겨운 유목생활을 하면서 육류를 섭취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 정주(定住)하면서 육식을 즐기는 탓에 잉여 열량이 고스란히 비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비만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두드러졌다.적지 않은 주민들이 초음파를 포기해야 했다.두꺼운 복부 지방 때문에 초음파의 영상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의외로 피부질환과 알레르기 질환이 많은 것도 특이했다.서울중앙클리닉 신민석 원장은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사막지대의 뜨거운 햇볕과 건조한 기후,강한 바람과 20도를 넘나드는 일교차 때문에 아무리 적응했다 해도 피부질환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알레르기 질환도 마찬기지로 보인다.아마 이곳에 자생하는 식물류의 꽃가루가 원인일텐데 이런 질환을 한번의 진료나 처방으로는 치료하기 어렵다.그래서 생활수칙을 반드시 일러주곤 했는데 그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다.” 산부인과팀이 털어놓은 고충도 간단치 않았다.물이 부족한 까닭에 대다수 환자들이 기본적인 청결을 유지하지 못해 심각한 부인과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덫에 걸린 몽골 전사들의 비육지탄 그리고 가난 노마드의 유전자를 가진 그들이 허벅지에 군살이 붙고,불거져 나온 배를 보며 어찌 비육지탄의 소회가 없겠는가.그러나 그들은 지금 변하고 있다.말들은 피빛 땀을 쏟으며 초원을 가로질러 달릴 일이 없고,큰 눈을 내리 깐 채 초지에 누워 뒹구는 낙타들 역시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널 일이 없으며,사람들도 더는 절박한 생의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초원 가운데 자리잡은 소도시 쫑머드의 진료 현장에서 만난 노인 두르그발(71)씨는(사진 참조)은 “개방 이전만 해도 몽골에는 옛 전통이 남아 유목생활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많은 유목민들이 이 일을 힘들다고 여긴다.머잖아 초원이 텅 빌 것”이라며 “몽골 사람이 초원을 버리면 초원도 몽골을 잊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어디가 불편해 진료를 받으려 하느냐고 묻자 “아픈 곳은 없다.모르는 병이나 생기지 않았는지 알아보려고 왔다.”고 했다.깡마른 얼굴에 골 깊은 주름의 이 노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러자.”며 흔쾌히 진료를 위해 벗었던 전통 쇠가죽 옷과 말장화를 껴신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이방인을 낯설어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순수함이 그득 배어있었다. 기후가 역사를 만든다는 말은 몽골에서 극명하게 입증되고 있었다.연간 강우량이 100∼150㎜에 불과한 몽골에서 저소득층 주민들이 우리처럼 샤워를 일상화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특히 이들에게 피부 질환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의료진이 한 가정에서 조사한 결과 이 집의 아이들은 1년 동안 고작 한두번 씻고 산다고 했다.아이들의 몸통에는 땟국이 엉겨 켜를 이루고 있었다.전신에 부스럼이 생겨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청결하게 해서 그걸 낫게 하기는 애당초 어려워 보였다.그만큼 물이 귀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도 수돗물이 공급되는 곳은 도심지역 뿐이고 외곽 빈민촌에는 아예 수도나 배수시설이 없었다.그들은 땟국에 전 물통을 들고가 한 통에 10토그르기씩을 주고 물을 사서 먹는다.물값이 금값이니 벌이가 없는 빈민들이 씻지 못하는 사정이 이해되기도 했다.비교적 고소득층의 한달 급료는 25만 토그르기(한국의 25만원 정도)이지만 그나마 일할 곳이 없어 저소득층은 유리걸식이 예사다.집 지을 경제력을 갖지 못한 그들은 꾸역꾸역 울란바토르로 몰려들어 외곽의 구릉지에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를 짓고 산다.집 짓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게르에는 젖과 마유주(말젖을 발효시킨 전통술),양고기가 있었을테지만 우리가 찾은 빈민촌의 낡은 게르에는 ‘약에 쓸려도’ 양고기 한 조각이 없었다.이미 초원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한 까닭이다.벌써 몇달째 거리에서 주워 온 뼈를 삶은 물만 먹고 산다고 했다.피골이 상접한 그들을 지켜보자니 가슴 깊은 곳이 동통처럼 아려왔다. 보다 못해 ACC 김종구 회장이 나섰다.그는 몽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다.벌써 10여년 동안 몽골,필리핀,인도네시아 들을 오가며 어린이 돕기와 황무지 나무심기 사업 등을 계속해오고 있다.울란바토르 시장은 그런 김 회장의 공로를 인정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를 ‘울란바토르 홍보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그런 김 회장이 “안 봤으면 모르지만 저걸 보고 어떻게 발길을 돌리느냐.”며 직접 게르를 지어주는 사람을 찾아나섰다.울란바토르 시내를 뒤진 끝에 한 게르 업자를 만났다.새 게르 한 채를 짓는데 150만 토그르기가 필요하다고 했다.우리돈 150만원 가량이다.봉사단원들의 경비도 빠듯한 터에 거기에서 150만원을 덜어낸다는 것이 무모해 보였지만 김 회장은 “뒷일은 우리가 감당하자.”며 그 자리에서 게르 비용을 전액 지불해 버렸다.거기에다 따로 50만 토그르기를 전해 우선 먹을 식량과 가재도구 등을 준비하도록 했다.봉사단원들이 직접 시장을 돌며 침구 등 가재도구와 먹을 것을 챙겨줬다. 처음엔 봉사단의 방문을 의아해 하던 게르의 여주인도 한참 나중에야 자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린 듯 “고맙다.”며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처음엔 경계하던 그가 직접 아이들을 불러 몸통이며 팔다리 곳곳에 번지고 있는 부스럼을 의료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몽골 주민들의 고통은 우리가 과거에 겪었듯 근대화의 피할 수 없는 여정인지도 몰랐다.울란바타르 등 몽골의 곳곳에서는 사회주의적 개방정책 이후 서구형 근대 문명과 전통의 유목정신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예컨대 좀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번듯한 서구형 저택에 산다.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그들의 전원에는 어김없이 전통가옥인 게르가 지어져 있다.여름 더운 철에는 게르에서 생활을 하는 게 그들에게는 새로운 습속이 됐다.그들이 집안에 게르를 따로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서구식 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달리 말하면 아직도 전통의 유목 습성을 그리워 한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중’편에 계속)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 신청하려는데 지급명령이…

    Q개인 빚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연체한 지 3년 만에 채권추심기관인 S회사에서 신청한 지급명령을 어제 P지방법원으로부터 송달 받았습니다. 파산을 신청하려고 준비하던 중인데 이의를 제기해야 하나요. 저쪽에서 혹시 가재도구를 압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파산을 신청할 때 금지명령을 신청해야 하는 건가요. - 임정미(가명·43세) - A지급명령은 금전이나 쌀 같은 대체물의 지급채무에 대해 적당한 증빙을 첨부한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법원이 발부하는 약식 결정입니다. 채무자가 송달 받은 후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판결과 마찬가지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권원(權原·어떤 행위를 법률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이 됩니다. 물론 이의를 제기하면 정식 소송절차로 이행해 변론기일을 지정 받아 재판을 받게 되지만, 범법행위나 금융기관의 계산 착오 같은 사유가 없으면 지급명령과 같은 판결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채권기관에서 주장하는 금액이 채무자의 기억과 맞는 경우라면 이의제기를 권하지 않습니다. 이의를 제기하면 채무자도 법정에 출석해야 하고 준비도 해야 합니다. 어려운 처지에 생업에 종사하는 귀중한 하루를 버린 결과로 얻는 것이 지급명령과 똑같은 판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의가 있으면 법원은 채권자에게 그 사실을 통지하고 인지 보정(補正·바로잡음)을 명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관공서에서 하는 일이 모두 그렇듯이 사건을 순서대로 처리해야 하는 관계로 사건이 많은 법원의 경우에는 판결까지 6개월, 어떤 경우에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만일 그 사이에 파산을 신청해 면책까지 받게 된다면 채권자인 원고가 패소판결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파산 절차에서 면책을 받게 되면 아무리 확정된 지급명령이나 판결도 집행력을 잃게 되니 이의 제기로 시간을 끄는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재도구 압류에 대해서는 초연하게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생활에 필수적인 식기 등 도구와 의류, 책 같은 것들은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면제재산입니다. 또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집행관들은 예를 들어 장롱 속까지 뒤지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텔레비전 정도가 실무상 집행 대상이 됩니다. 유행과 기호에 따라 새것을 추구하는 소비자들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 중고품의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한 가정의 것을 전부 경매해 보았자 그 가격이 70만∼80만원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며 여기에서 집행비용을 공제하고 나면 실제로 회수되는 채권은 거의 없을 수 있습니다. 유체동산(有體動産·채권과 재산권을 제외한 가재도구와 집기, 비품 등) 압류로 채권자가 얻는 이익은 크지 않기 때문에 채권기관이 지급명령을 신청한다고 해도 곧 가재도구가 압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입니다. 오히려 유체동산 압류는 심리적인 압박과 강제를 통해 자발적 변제를 이끌어내는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극도로 회피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근심하며 노심초사합니다. 추심인들은 가재도구를 압류하겠다고 위협하면 마음이 약한 채무자가 무리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다른 곳에서 돈을 마련해 자발적으로 변제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압류의 위협에 반응해 자발적으로 연락하는 채무자가 유체동산 압류의 집행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래 파산은 채무자가 압류를 피하기 위해 인정된 것이 아니며,720만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된 면제재산을 빼고 채무자의 모든 재산을 환가(換價·값으로 환산함)해 채권자에게 나눠주는 공동의 추심제도로 발달해 왔고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법률상으로는 파산이 선고되면 다른 강제집행이 금지되고 파산절차에서 채무자의 일반 재산을 모두 수집해 채권자에게 나눠 주게 되고 이를 위해 강제집행을 중지할 수 있습니다. 은행 등 금융기관, 기타 대기업이 파산하는 경우에는 전형적으로 적용됩니다. 소비자파산에서도 이론상으로는 파산을 신청하고 강제집행을 금지해 달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 파산선고와 동시에 절차를 종결하는 현행 실무에서는 강제집행절차를 계속 진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파산절차의 역할을 일반의 강제집행이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파산법원의 자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입니다.
  • 후쿠다 왜 총리관저 꺼리나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총리 관저에 총리가 없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지난 9월25일 취임한 이래 관저로 이사를 하지 않고 있다.9일로 취임한 지 75일째다. 후쿠다 총리는 현재 사택에서 관저까지 경호를 받으며 총리 전용차로 20분씩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 특히 후쿠다 총리는 지난 10월13일 관저를 둘러본 뒤 “(기자들에게) 여러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며 조만간 이사할 의사를 밝혔었다. 관저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떠난 뒤 벽지를 바꾸고 필요한 가재도구를 새로 들여놓는 등 후쿠다 총리를 맞을 준비를 끝낸 상태다. 때문에 후쿠다 총리의 관저 이사를 둘러싼 추측이 무성하다. 총리 주변에서는 “(총리가) 기분 전환 차원에서 직무와 생활을 가까이 두는 것을 싫어해서”,“(총리 부인) 기요코 여사가 관저의 생활을 걱정하는 것 같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자민당 안에서는 “위기 대처에 바람직하지 않다. 총리직을 길게 맡을 생각이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후쿠다 총리의 속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총리가 반드시 재임 중 관저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입주 시기도 총리의 결정 사항이다. 독신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취임 12일째 의원 숙소에서 관저로 이사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사망을 배려해 취임 114일 만에 관저에 입주했다.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취임과 동시에 관저 생활을 시작했다.hkpark@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결혼전 빚으로 가재도구 압류되나

    Q빚이 있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였습니다. 저는 혼수 없이 몸만 들어왔고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이나 가재도구는 모두 남편이 시댁의 도움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최근 유체동산을 압류하겠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제 것이 아닌데도 압류할 수 있나요. -이현정(가명·32세) A부부라도 재산은 각자 취득, 처분, 관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민법은 부부 중 한 사람이 혼인 전부터 가진 재산과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합니다. 토지, 건물과 자동차같이 정부기관에 등기, 등록을 하는 재산은 누구의 것인지 분명하게 공시되므로 이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동산인 경우에는 누구의 명의로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물건에 누구의 것이라고 써 놓는 것도 소용없고, 다만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 즉 점유라는 관념적인 평가가 동산 소유권을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제3자로서는 부부가 같이 살면서 사용하는 동산을 부부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민법은 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은 부부의 공유로 추정하는데, 부부가 같이 살면서 사용하는 동산에 관한 한 이 추정이 상당히 강력합니다. 즉 혼인 전에 부부 일방이 샀다든가, 제3자에게서 빌렸다든가 하는 항변을 받아들이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부부공유에 속하는 동산 중 채무자인 부부 일방의 지분에 관하여 채권자는 압류, 경매를 통하여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민사집행법은 채무자인 부부일방이 혼자서 점유하거나 배우자와 공동으로 점유하고 있는 동산에 대하여는 채무자의 지분뿐만 아니라 유체동산 전체를 압류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지분만 경매하면 현저히 그 가치가 떨어져서 강제집행의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우선매수청구권과 배당청구권으로 채무자가 아닌 배우자의 이익을 배려하며 배우자의 지분까지 집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경우 배우자는 매각기일에 출석하여 우선매수할 것을 신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매기일에 경매참여자가 제시하는 매수가격 중 최고가 매수신고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매수하겠다는 배우자가 하는 것입니다. 한편 이와 같은 방식의 매각은 채무자가 아닌 배우자의 지분까지 매각한 것이 되므로 강제매각된 배우자의 지분에 대하여는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집행관은 압류, 경매 이후 회수한 금액 중에서 집행비용을 공제한 나머지 2분의1은 채무자가 아닌 배우자에게 인도하게 되며, 이것은 배우자가 배당을 신청하든 하지 않든 배우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 어느 초등생의 안타까운 죽음

    생활고로 어머니와 함께 여관에 장기투숙하던 초등학생이 숨진 채 발견돼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9시쯤 경기 광명시 광명동 A여관 객실에서 김모(8·초등1년)군이 숨져 있는 것을 여관 주인 방모(52)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군의 시신은 부패가 많이 진행돼 숨진 지 상당 시간이 경과한 것으로 추정됐다.2평 남짓한 방에는 취사 도구, 옷장 등 기본적인 가재도구조차 없었고 냉장고에도 식료품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김군은 어머니(35)와 함께 지난 4월28일부터 A여관에 투숙했으며,1주일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여관주인 방씨는 전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28일 오전 6시쯤 여관을 나간 뒤 행적이 묘연한 상태이며, 휴대전화의 전원도 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군 모자는 김군 아버지(37)의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려 월 30만원을 주고 A여관에 장기 투숙했다.광명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쓰레기장이 된 시장… 상인들 망연자실

    “지옥 같은 하루였습니다.” 하루 500㎜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제주시내 곳곳은 도로가 군데군데 파이고 급류에 휩쓸려 내려온 차량이 뒤엉켜 폐허를 방불케 했다. 전날 바다 수면처럼 평평해 보일 정도로 물에 가득한 시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심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곳곳에 널브러진 쓰레기와 뿌리째 뽑힌 가로수, 흙탕물 등이 태풍과 ‘수마’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이날 “가재도구를 햇볕에 말리고 지하실에 가득찬 물을 119 구조대에 신고해 겨우 빼냈다.”며 “비가 조금만 더 내렸어도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몸서리쳤다. 제주지역은 한라산 일대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병문천·한천 등 4개의 하천이 바다쪽으로 흐른다. 폭우 하루 뒤인 17일 이들 하천은 이미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건천으로 변했다. 물 빠짐이 좋은 현무암지대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수마가 할퀴고 간 용담1·2동 일대 한천 복개구간 교량이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공중으로 솟아 있다. 주변엔 차량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주변 100여가구 주민들은 물에 잠긴 가재도구를 말리거나 펌프를 이용해 집안으로 밀려든 물을 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제주시 직원 고모(48)씨는 “침수지역 위주로 거리 정비와 물 빼내기 작업·차량 정리작업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며 “군경과 자원 봉사자·주민 등이 한마음으로 복구에 나서 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원상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풍의 경로에 직접 노출된 전남 고흥군 일대도 물난리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고흥천이 범람해 읍내 5일장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상인들은 이를 복구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좌판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생선상자가 몽땅 사라져 부렀어요.” 17일 추석 대목을 앞둔 고흥읍 재래시장은 초토화, 폐허 그 자체였다. 대목을 노려 물건을 바리바리 쌓아둔 상인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망연자실했다. 전날 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시간당 110㎜ 쏟아진 폭우가 고흥읍 재래시장 뒤편 남계천을 넘어 시장을 덮쳤다. 거센 물살은 어시장과 건어물시장, 야채시장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물살이 얼마나 셌던지 시장 안쪽 전자대리점의 셔터문이 휘어졌다. 이 충격으로 안쪽 유리창이 깨졌고 소용돌이 물보라가 모든 것을 하천으로 쓸어갔다. 장복상회 주인 박정자(63·여)씨는 “어른 키보다 높은 대형 고기냉장고가 넘어지고 문이 열려 생선이 모두 쓸려 내려갔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옆집 잡화가게는 흙더미를 방불케 했다. 대목에 맞춰 들여놓은 화장품, 천일염 자루, 화장지 등이 물에 젖거나 흙더미 속에 나뒹굴었다.시장 가운데 큰 길로는 생선과 뜯겨진 상자, 야채, 옷가지 등 온갖 쓰레기가 산을 이뤘다. 군청 공무원 30여명이 아침부터 트럭에 실어 나르지만 쓰레기는 쌓이고 또 쌓였다. 시장 앞 축협농산물판매장 안에서는 남녀 직원 10여명이 물범벅이 된 각종 상품을 치우면서도 발을 동동 굴렀다. 유선진(53) 판매소장은 “지하 냉장고에 한우 9마리, 돼지 20여마리분 고기를 보관 중이었는데 순식간에 물이 들어차 도대체 대책이 안 선다.”고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다.제주·고흥 최치봉·남기창기자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보증채무로 가족에 피해 줄까 걱정

    Q1997년도에 친구 빚 보증을 섰는데 주채무자가 망해서 저의 주택이 법원 경매로 넘어갔습니다.2003년에는 저의 집 가재도구 또한 경매로 넘어갔고요. 갚지 못하면 자식도 나중에 불이익을 받는다는데 궁금합니다.8000만원가량 남은 금액은 저의 형편으로는 갚을 수 없습니다. 파산신청으로 빚을 면할 수 있는지요. 학교 교사인 아내와는 5년 정도 별거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같이 살고 있고, 아내는 작은 아파트를 갖고 있습니다. 아내의 아파트를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을까요. - 김정석(가명·57세) A현대 사회는 원칙적으로 개인주의를 추구합니다.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개인의 문제일 뿐이며 부모, 형제, 친족의 공과로 인하여 개인이 법률상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해도 자녀에게 어떤 지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상속법에 의하면 사람이 죽는 바로 그 순간에 재산상의 권리, 의무를 상속인들이 포괄적으로 이어 받기 때문에 채무를 남긴 채 사망하면 상속인이 되는 자녀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만 이는 상속을 거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019조에 의하면, 상속인은 상속 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단순승인은 채무를 포함하여 모든 재산상 지위를 이어받겠다고 인정하는 것, 한정승인은 이어 받는 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채무를 이행하겠다고 하는 것, 상속의 포기는 아예 상속인이 아닌 것으로 보아 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빚이 있다는 것을 자녀들이 알고 있는 한, 빚을 진 부모가 사망한 후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함으로써 부모의 빚을 갚아야 하는 불이익이 자신들에게 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상속인들이 부모의 빚이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어느날 갑자기 청구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와 같이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하였던 경우에는 그것을 안 날부터 3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의 빚을 자식들이 물려받는 일을 피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현재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노년의 은퇴자인 경우라면 채무를 면하기 위한 파산의 신청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나중에 자녀들에게 상속 포기의 번거로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파산신청을 선택하기도 하며, 아직 취업을 할 여지가 있는 채무자에게는 파산신청의 이익이 충분히 있습니다. 의술의 발달과 출산율 저하로 노년 취업의 가능성과 필요성이 확보된 현대에는 나이가 많아도 파산 신청을 할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진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듯이 배우자가 진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가사에 관하여 진 채무라면 부부가 같이 갚아야 합니다만, 보증을 선 것은 결코 일상가사에 해당할 리 없습니다. 또 채무자 자신이 빚을 늘리면서 그것으로 배우자의 재산을 늘린 사해행위를 한 경우가 아닌 한 파산·면책을 받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인이 작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사로서 소득이 있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파산절차에서 이상 없이 면책을 받으면, 재정적으로 새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채무를 갚을 개인적인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므로 앞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을 모두 자신의 생활비와 저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새로이 재산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으며, 과거 파산신청 이전에 진 채무는 물려주지 않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겨 송덕비까지 세우게 되자 모문룡은 기고만장했다. 그는 조선에 군량을 비롯하여 전마(戰馬), 조총, 병선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휘하의 장졸(모병:毛兵)과 요민들이 끼치는 민폐였다. 모병과 요민들은 청북으로 밀려들었고, 후금을 자극했다.1627년의 정묘호란은 그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밀려드는 遼民과 毛兵들 조선 조정은 모문룡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두 가지 난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모문룡의 진영에 막대한 양의 군량을 보내주어야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시로 조선으로 들이닥쳤던 모문룡 휘하의 명군과 요민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모문룡은 수시로 차관을 서울로 보내 양곡을 공급하라고 요구했다. 인조반정 직후 조선 조정은 그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었다. 책봉 과정에서 모문룡의 ‘은혜’를 입었던 데다 그가 내세운 ‘요동 수복’이라는 슬로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1623년에만 6만석 이상의 양곡이 가도로 운반되었다. 조선을 길들여 모문룡을 지원하는 배후기지로 삼으려 했던 명 조정의 계산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시 요동의 한인들은 계속 가도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철산 등지로 상륙했다.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 청북 지방의 방어가 허술해지자 요민들의 유입은 극에 이르렀다. 요민들 가운데는 가재도구나 청람포(靑藍布) 등을 가져와 조선 사람들과 식량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빈 손으로 무작정 몰려왔다. 조선은 후금을 탈출해온 요민들을 가달(假 )이라 불렀다.‘가짜 달자( 子-오랑캐)’를 줄인 말로 한족 가운데 후금에 귀순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머리를 깎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향을 떠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들은 거칠고 난폭했다. 1624년 3월 의주부윤(義州府尹) 유비(柳斐)의 보고 내용은 끔찍했다. 당시 날마다 수많은 가달들이 청북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수십명씩 떼를 지어 들녘에 흩어져 봄갈이 한 곡식과 보리 싹을 죄다 캐 먹었다. 마을로 들이닥쳐서는 약탈하거나 밥을 지어달라고 떼를 썼다. 어느 가난한 백성이 음식을 내어주지 못하자 그들은 가달의 시체를 가져다가 그 집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조선인들이 그를 때려죽였다.’고 한 뒤 온 마을 사람을 죄다 묶어놓은 뒤 재물을 빼앗아 갔다. 유비는 심지어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면 서로 뜯어먹는다.’는 내용도 보고했다. 철산, 가산, 선천, 정주, 곽산 등 청북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가달뿐 아니라 가도에서 상륙한 모문룡 휘하의 장졸들이 끼치는 민폐도 심각했다.1625년 2월, 모병들의 작폐를 참다 못한 의주부윤 이완(李莞)은 실력 행사에 나섰다. 그는 난동을 피운 모문룡의 부하 주발시(朱發時) 등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모문룡의 부하들은 ‘이완이 상국인을 몰라보고 재조지은을 배신했다.’며 그를 잡아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조선 조정은 결국 이완의 직급을 한 단계 강등하는 조처를 취했다. ●모문룡의 불장난 모병들은 때로는 청북 지역을 벗어나 함경도 지방까지 몰려들었다.1623년 4월 모문룡은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회령(會寧)을 경유하여 오랑캐 지역으로 원정할 것’이라며 군량을 제공해줄 것과 길 안내를 위한 향도(嚮導)를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회령 너머 두만강 건너편의 여진 부락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일찍이 누르하치가 조선과의 접경에 살던 여진인들을 포섭하여 내지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 며칠 동안 깊숙이 들어가야만 여진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문룡이 그럼에도 원정 운운했던 것은 진짜 후금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제스처’이자 ‘쇼’였다. 당시 명 조정에서 조선으로 사신이 올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문룡은, 가도에 들를 사신 일행에게 자신이 가만히 앉아 군량만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후금 원정’을 내세워 조선으로부터 군량 등을 얻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모병들을 접대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군하는 도중에 민폐를 자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장만(張晩) 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함경도 행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우려에 귀 기울일 그들이 아니었다.4월16일, 이미 모병들이 함흥까지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5월15일에는 군량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경도 수령들을 포박하고 구타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수령들은 그들의 협박에 못 이겨 민간에서 곡물을 징색하고, 승사(僧舍)까지 뒤지는 형편이었다. 조선 조정의 예상대로 모병들은 후금 지역으로 원정은커녕 함경도 각지에서 노략질만 자행했다. 그들이 왕래했던 행군로 주변에 거주하는 조선 백성들은 민폐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모문룡 휘하들이 보였던 이 같은 행태는 1637년 가도가 청군에게 함락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들은 ‘오랑캐 지역 정탐’ 등을 내세워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후금의 점령 지역까지 출몰했고, 그곳에 살던 요민들을 불러모았다. 더욱이 청북의 곳곳에는 모문룡이 설치한 둔전까지 널려 있었기 때문에 요민들은 계속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조정은 후금의 보복을 우려했지만 모문룡을 견제할 이렇다 할 방도가 없었다. ●‘해외천자(海外天子)’의 사기 행각 모문룡은 ‘요동 수복’을 표방했지만 사실 그는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그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후금으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산해관(山海關)의 울타리’ 역할을 할 뿐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모문룡은 그저 ‘군량을 축내는 존재’,‘밀수 왕초’로 변해갔다. 가도는 척박한 섬이었지만 해상 교통의 요충이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산동(山東), 절강(浙江) 등지에서 상선들이 몰려들었다. 해로는 험난했지만 명 조정이나 조선 조정의 감시가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이는 밀무역의 이익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조선 상인들은 가도에서 은과 인삼으로 비단과 생사(生絲), 청람포 등 중국 물화를 구입했다. 조선 상인들은 그것을 후금 상인들에게 넘기거나, 부산의 왜관으로 가져가 일본 상인들에게 전매하여 이득을 챙겼다. 한족 상인들과 후금과의 사이에 밀무역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문룡은 가도에 세관(稅關)을 설치하여 왕래하는 상인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했다. 때로는 그 자신이 직접 무역을 벌였다. 모문룡의 창고에는 은을 비롯하여 중국의 비단과 직물, 조선 인삼, 후금의 모피 등 온갖 물화들로 넘쳐났다.1624년 3월, 모문룡은 사람을 보내 이괄의 반란이 평정된 것을 축하했다. 그런데 그가 인조에게 보낸 예물 가운데는 춘의(春意)라 불리는 여인의 나체상도 있었다. 조선은 그것을 도로 반송했지만 당시 가도로 온갖 물건들이 유입되고 있었던 실상을 보여준다. 모문룡은 때마다 환관 위충현(魏忠賢)에게 두둑한 뇌물을 보냈다. 천계(天啓) 연간 명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였던 위충현은 그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모문룡은 한 번에 오륙십 가지로 차려진 성찬(盛饌)을 들고, 식사 때마다 여덟 아홉 명의 미희(美姬)들로부터 시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바다 밖의 천자(海外天子)’였다. 명 조정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수군을 갖추지 못한 후금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했다. 더욱이 조선은 그를 ‘은인’으로 섬기고 있었으니 그의 ‘현실 안주’는 어쩌면 당연했다. 모문룡은 노회한 인물이었다. 평소 안락을 즐기다가도 명 조정으로부터 ‘모문룡을 감사(監査)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움직였다. 조선 땅에 상륙하여 후금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에 민폐를 끼쳤고, 궁극에는 후금을 자극했다. 정묘호란 직전, 모문룡은 분명 후금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인계철선’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결혼전 빚으로 남편 재산 압류되나

    Q첫 결혼에서 위자료, 재산분할이라고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이혼했습니다. 전남편 때문에 생긴 빚은 그쪽에서 갚기로 했는데 갚지 않아 빚 독촉을 받았습니다. 직장에 나가면서 알게 된 사람과 최근 결혼했는데, 얼마 전에 채권추심회사에서 신랑 소유의 가재도구를 압류했습니다. 저는 신랑 집에 몸만 들어와 살고 있고 빚도 결혼 전의 것인데 가능한 일인지요. 전남편이 갚기로 한 빚을 전남편에게 가서 받으라고 할 수 없나요. 주민등록을 따로 해 놓거나 서류상 이혼을 해 놓으면 막을 수 있나요. 어렵게 결혼해서 평온하게 살고 있는데 두렵습니다. - 이정민(가명·37세) A우리 민법은 부부별산제를 원칙으로 합니다. 즉 부부가 각자의 재산을 각자 소유, 관리하는 것입니다. 다만, 혼인생활 중에 취득한 재산은 공유로 추정합니다. 그 결과 누구의 것이라고 표시가 될 수 있는 물건은 각자의 재산으로 취급하게 되는 반면, 가재도구와 같이 일일이 꼬리표를 붙일 수 없는 동산에 대해서는 부부 공유라는 추정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이정민씨 신랑 명의의 집은 공유가 아니므로 채권자가 압류할 수 없지만 가재도구에 대하여는 이정민씨가 2분의1을 가진 것으로 추정돼 채권자가 권리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방 배우자가 혼자의 힘으로 마련한 것이라거나 혼인 생활 중에 취득한 것이 아니고 그 전에 이미 취득한 고유재산이라는 입증을 해서 이와 같은 압류집행에 대해 이의를 하여 막을 수 있고 이미 이뤄진 압류에 대해서는 제3자 이의의 소를 제기해 압류해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무상 ‘추정’의 효과는 제법 강력해 이같은 사정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얼마 가치가 나가지 않는 동산에 대해 다툴 이익도 크지 않기에 채무자의 배우자가 억울하게 강제집행을 당하는 예가 있습니다. 공유의 동산에 대해서는 관념적인 지분이 아니고 동산 전체를 압류해 경매할 권리가 인정됩니다. 물론 채무자가 아닌 배우자의 지분까지 경매해 버리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배우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배우자가 최고매수가격에 우선매수할 권리가 있고 또 배우자는 매각대금에서 자기 몫인 2분의1만큼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동산의 경매는 현장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회수하려는 채권자와 물건을 지키고 싶은 채무자, 현장에서 낙찰 받아 즉석에서 채무자에게 다시 팔아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 사이에 눈치보기 게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동산 경매가 끝나면 채무자의 2분의1 지분은 소멸하게 되므로 더 이상 가재도구에 대한 압류는 효력이 없습니다. 물론 다른 채권자들은 이 사실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어차피 가재도구에 ‘누구 것’이라고 표시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집행관들도 모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채권자가 또다시 압류하러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이전에 행해진 가재도구 경매때 받은 동산경매 조서를 집행관에게 제시하면 압류를 시행하지 않습니다. 이전의 결혼생활 도중에 채무를 늘려나갈 때에는 서로에 대해서가 아니고 제3자에 대해 서약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생활을 청산하면서 외부적으로 발생한 빚을 당사자들이 약속해 누가 갚기로 하는 것은 채권자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남편이 갚기로 한 빚이니 전남편에게 가서 받으라고 채권자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 혹시 갚게 되면 그것을 전남편에게 구상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공유의 추정은 같이 산다는 것이 아니고, 같이 부부라는 신분관계에 묶여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효과이니만큼 주민등록을 달리하든 같이하든, 살든 살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민등록을 따로 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물론 이혼을 하게 된다면 다르겠습니다만, 아무리 가장 이혼이라고 하더라도 이혼 효력이 발생하므로 혼인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부부에게는 결코 권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 “18일간 물과 음식도 없이…” 태평양 건넌 고양이

    “18일간 물과 음식도 없이…” 태평양 건넌 고양이

    18일동안 물과 음식도 없이 컨테이너 상자에 갇혀 태평양을 건넌 고양이가 있어 화제다. 미국의 CBS방송은 지난 4일 “고양이 ‘스파이스’가 컨테이너에 갇혀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까지 18일간 배로 이동했다.”며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보도했다. 고양이 스파이스가 컨테이너에 갇힌 것은 지난달 15일. 하와이에 사는 주인 에스카밀라가 컨테이너에 가재도구를 옮기는 동안 호기심을 주체 못하고 이곳에 숨어버린 것. 이를 알지 못한 주인은 컨테이너를 닫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배로 선적했다. 이후 고양이의 실종을 알게 된 주인은 스파이스가 어디서 비명횡사한 것으로 생각해 심각한 우울증세에 빠졌다. 그러나 고양이 스파이스는 이 컨테이너의 목적지인 샌버너디노(캘리포니아주 남부) 에스카밀라의 부모 집에서 발견됐다 . 에스카밀라의 아버지 에드워드는 “컨테이너 문을 열자마자 가재도구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스파이스를 발견했다.”고 놀라워 했다. 즉시 수의사에게 스파이스를 데려가 진찰을 받은 결과 놀랍게도 고양이의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에스카밀라는 “옛날 속담에 고양이 목숨이 9개라는데 스파이스도 그런 것 같다.”고 기뻐했다. 사진=CBS 뉴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산동네/손승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산동네/손승의

    중천에 환한 달빛이 ‘아가’하고 부르는 할머니의 음성처럼 들일 데 없어 벽 밖에 흐트러진 허름한 가재도구들을 지나 처마 안으로 고개 숙이며 들어와 낮은 사람들의 슬픔을 환히 비춥니다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과소비로 진 빚도 면책되나요

    Q감당할 수 없는 빚 때문에 파산 신청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재판을 하시는 판사님들은 나름대로 기준에 따라 면책 허가 여부를 결정하실 텐데, 가장 중요하게 보는 사유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주제넘은 소비를 몇 달 하다가 빚이 늘어났는데 그 후 실직하여 감당 못하게 된 경우라 낭비라고 면책도 못 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장미주(35) A좋은 질문입니다. 본래 파산 제도는 지급을 할 수 없게 된 채무자가 자기 재산을 전부 채권자들에게 내놓고 채권단을 구성하여 이를 채권자 사이에 공평하게 나누어 갖고, 그 대신에 채무자에게는 면책을 부여하는 상인들 사이의 관습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불운해 망했지만 자기 가진 것을 다 채권자에게 내놓은 정직한 사람에게 빚을 면해주어 새로이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파산제도가 개인에게 확장된 것은, 현대의 대량소비사회에 일반화된 할부구매나 신용카드와 같은 소비자신용이 개인채무자를 실질적으로 구속하는 면에 주목하여 자영업자가 아닌 소비자라도 채무로부터 면책함으로써 사실상 강제노역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파산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실제로 처분하여 금전을 회수할 만한 재산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재도구라고 해야 일상적인 생활용품의 중고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무상으로는 파산절차에서 무시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의연히 파산제도의 기본적인 규칙입니다. 그리하여 첫째, 채무자가 파산 신청 이전에 재산을 감추거나 가족과 친지에게 양도하거나 허위의 채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이 나중에 채권자의 몫이 될 재산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둘째, 채무자는 법원과 채권자들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재판이 열리면 성실하게 출석하여야 하며, 불리한 사항이라고 해서 감추거나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여서는 안 됩니다. 재산을 드러내고 파산 절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채무자가 이런 규칙을 위반하면 파산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채무자의 면책을 허가하지 않을 사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 인하여 침해된 이익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채무자가 파산 신청 전에 재산을 감추었다고 하여도 민사상의 사해행위취소제도나 파산법상의 부인권행사로 쉽게 회복될 수 있으며, 채무자의 진술을 심사할 장치가 있기 때문에 채권자의 이익이 크게 영향받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채무자가 이와 같은 위반사항을 저지른 경우에는 면책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밖에 낭비를 한 경우, 채무를 변제하지 못할 상황에서 더 불리한 채무를 부담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경우,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모두 법원은 면책을 해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채무자가 진실한 진술을 하여 정직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법원은 자주 면책을 부여합니다. 흔히 이 경우를 재량면책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선 채무자가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동정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경우에는 파산법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틀 즉, 채무자가 채권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놓는다는 원칙을 깨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실무입니다. 파산법은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를 위한 것입니다. 정직한 채무자라면 과거 약간의 과오를 저지른 바 있더라도 파산제도의 규칙을 깨지 않는 한 면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파산을 신청함에 있어서 채무자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보다도 정직함입니다.
  • [딸자랑] 엄마없는 집안일 도맡은 은성(恩成)양

    [딸자랑] 엄마없는 집안일 도맡은 은성(恩成)양

    대성(大成)교통 대표이사 권필주(權弼周) 씨(57)의 1남(男) 3녀(女) 중 맏딸인 은성(恩成)양(24)은 올 봄 서울여대(女大) 식품가공학과(食品加工學科)를 졸업한 앳된 아가씨.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과 같이 알뜰살뜰 엄마없는 가정생활을 도맡아 하고 있는 보기드물게 착실한 아가씨이다. 『아이가 원래 성격이 조용하고 차분해서 어떤 일을 맡겨도 서두르거나 실수하는일이 없어요. 대학을 다닐때는 기숙사에 있느라고 집을 떠나 있었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하루종일 집에서 식사준비, 집안치우기, 화초가꾸기로 시간을 보내는군요』 따라서 이 가정에서는 응접실의 「커튼」에서부터 마당에 가꾸는 화초, 동생들의 도시락 반찬에 이르기까지 은성양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집안일을 맡아 처리하는 솜씨는 어느 집 주부가 부럽지 않을 정도. 겉으로 보기에는 결코 주부(主婦)가 없는 집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없게 살림살이며 가재도구가 정돈되어 있다. 아버지 권필주씨는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집안에 들어앉아 아무런 불평없이 살림살이를 돌보는 맏따님의 대견하면서도 한편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학을 선택할 때는 여자도 뭔가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학문을 택하는게 좋겠다 싶어 식품가공학과를 권했읍니다. 별 불평없이 따라주었고 지금도 외국유학을 권하고 있어요 』 여자도 능력만 있다면 사회적으로 진출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하다는 것이 아버지 권필주씨의 평소의 주장. 이러한 아빠의 주장을 받들어 은성양은 지금 새로운 배움을 닦으러 떠나기 위한 준비에 또한 분주하다. 『「골프」를 시작한지는 한 3년 됩니다. 은성이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지난 가을에는 몇번 같이 다녔어요. 올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번 가르칠 생각입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몇번인가 상을 타기도 했고 요즈음은 상품으로 곧잘 옷감을 타오기도 해서 따님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세 딸들이 순번을 정해놓고 차례를 기다릴 정도. 『은성이는 어릴때에도 기특한 데가 있었어요. 6·25때니까 4살 때였어요 제가 미처 피난을 못가 이리저리 피해다녔읍니다. 평소에는 아빠 아빠 귀찮을 정도로 부르고 쫓아 다녔는데 괴뢰군이 집 수색을 할때는 입을 다물고 일절 말을 안하더군요』 아버지는 지금도 그때의 은성양을 생각하면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때 부터 은성양은 아빠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와왔던것이 아닌가 하고 아빠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은성양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음악감상. 고등학교때는 미술 성적이 가장 뛰어나서 한때는 그 쪽으로 전공을 택할까 고려했을 정도라는 것. 국민학교때부터 동생들과 함께 익힌 「피아노」솜씨도 수준 이상이라는 아빠의 자랑. 그러나 은성양 자신은 『단지 여러가지를 조금씩 건드리다 말았을 뿐이에요』- 겸손해 한다. 좋아하는 곡은 「드비시」의 초기 작품들. 우울할때는 「모짜르트」의 소품(小品)을 연주하고. [선데이서울 70년 4월 12일호 제3권 15호 통권 제 80호]
  • 총각선생 신세망친 미인계(美人計)

    총각선생 신세망친 미인계(美人計)

    남편과 짜고 바람기와 미모, 춤솜씨를 재산으로 정조를 팔아 교사·공무원 등의 등을 쳐온 희대의 사기꾼 부부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남편은 돈을 위해 아내의 장조를 내놓았고, 아내는 남편의 묵인 아래 마음껏 육욕을 채운 치사한 부부의 행각은. 강변3로 정(鄭)인숙양 피살사건으로 「뉴스」의 촉각이 온통 「세브란스」 병원으로 쏠렸던 3월 19일 하오 서울 동부경찰서 형사과 안(安)모형사는 앞에 앉아 있는 30대 여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달래기를 7시간. 미모의, 그러나 유들유들한 이 여인은 마치 외상값이라도 받으러 온 술집 「마담」만큼이나 태연하게 앉아 「윙크」와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남편과 공모, 연하의 고아 출신 국민학교 교사 윤(尹)모씨(28)의 일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이경자(李慶子) 여인(34). 李여인과 尹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28일. 직장에서 배운 어설픈 춤솜씨로 찾은 것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한강 「카바레」. 난생 처음 가본 「카바레」,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멍해있던 尹씨는 화사한 30대 여인의 「프로포즈」를 받고 들뜬 기분에 「홀」안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자 李여인은 홍조된 얼굴로 수줍은듯 사랑을 고백했다. 『사랑은 첫눈에 느껴야 한다』- 정말 선생님 같은 남성미 1백%의 남자는 처음 봤다면서 결혼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나이도 많은 과부가 염치 없는 부탁이죠』 하는 달콤한 말에 尹씨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도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가 고학으로 국민학교 교사가 된 尹씨는 그처럼 따뜻한 인정을 맛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난지 한달만인 12월 28일 이들 부부 아닌 부부는 서울 영등포에 尹씨가 모아둔 돈중에서 10만원을 꺼내 전셋방을 얻고 살림을 시작했다. 30대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여체와 계획적인 교태에 尹씨는 완전히 녹초가 됐다. 둘이 춤추러 가는 일 이외에는 외출도 않고 방학동안을 꼬박 그들의 밀실에서 보냈다는 尹씨. 『그 여자가 필요 이상의 돈을 요구했지만 아까운 줄도 몰랐읍니다. 첫 남편과 헤어진 뒤 부유한 친정 덕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아내의 불편을 될 수 있는한 덜어주고 싶었어요. 보시다시피 나한테 반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과부가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공허를 자기한테 의지하는 것 같아 동정한 것이 사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여인은 친정이 부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가끔 친정이라는곳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두 거짓이었다. 李여인과 결혼할 계획이었던 尹씨는 TV, 전축, 선풍기를 들여 놓았다. 이들의 꿈같은 행복은 개학과 함께 일장춘몽. 외출이라고는 않던 李여인이 개학날인 2월 1일 친정에 간다면서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2일에는 출근한 尹씨에게 청전벽력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은 본 남편이 있는데 둘 사이를 알고 찾아왔으니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4일에는 학교로 찾아왔다. 남편이 가재도구를 모두 가져가겠다니 『두사람의 행복』을 위해 잠시 줬다가 조용해지면 찾아오자는 것이었다. 李여인을 알토란 같이 믿었던 尹씨는 사흘 뒤인 7일 살림집으로 찾아가 보고 깜짝 놀랐다. 전셋돈 중 5만원과 TV, 일제 석유난로, 은수저 3벌, 식기, 선풍기 등 가재를 모두 가지고 도망해버린 것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운 尹씨에게 제2의 시련이 닥쳤다. 5일 뒤인 12일 李여인의 남편인 모장(毛章)씨(39)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다방으로 나갔다. 모(毛)씨는 尹씨가 살림집에 놔둔 책 한권을 가지고 나와 『이것이 네 책이지, 내 처하고 간통했다는 물증이다. 네 목을 자르겠으니 저녁6시에 종로 S다방으로 나오라』 고 사뭇 위협했다. 자리에서 毛씨는 『나는 전에 군기관에 근무했는데 앞으로 내 처와 만나지 않을 것과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한 소유권 일체를 포기한다는 각서와 간통사건을 재론안겠다는 각서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安형사가 이사건을 처음 안것은 지난 2월 11일 영등포 다방가가 이들의 이야기로 떠들썩 했을 때. 그 뒤 이들 부부의 꼬리를 잡기 위해 꼭 35일을 보낸 安형사가 이들의 집을 덮친 것이 3월 18일.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난 뒤인 아침 9시쯤 서울 중구 도동53 남산 아래 있는 2층집을 덮쳤을 때도 이들은 태연했다. 오히려 『尹씨로부터 소유권 포기 각서까지 받았는데 경찰이 무슨 참견이냐』고 대들기까지 했다. 남편 毛씨는 화장실에 간다고 핑계, 뺑소니까지 치고. 李여인의 기나긴 사기행각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李여인이 구속됐다는 소문에 피해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모부처에 근무하는 이(李)모씨(37·서기관), 정(鄭)모씨(31·사무관) 그리고 모국민학교 교사 박(朴)모씨(31) 등…. 李여인의 음흉한 손길은 딸의 담임교사에게까지 뻗쳤었다. 맏딸 금옥양(12·가명)이 다니는 OO국민학교 5학년 O반 담임 李모교사(34)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가끔 학교로 찾아와 춤을 추러 가자거나 혹은 맥주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돈이 없다고 거절, 보냈던 여인. <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4월 5일호 제3권 14호 통권 제 79호]
  • ‘앵포르멜의 선구자’ 장 뒤뷔페 회고전 덕수궁 미술관

    2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세계 미술의 중심축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이후 세계 미술은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 등으로 대변되었고, 미국은 바로 이들의 무대였다. 이런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후 유럽미술의 자존심을 지켜왔다고 평가받는 거장이 한 사람 있다. 바로 ‘앵포르멜의 선구자’로 불리는 장 뒤뷔페(1901∼1985)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장 뒤뷔페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파리에 있는 뒤뷔페 재단 및 퐁피두센터, 도요타시 미술관 등 3개국 16개 소장처와 개인 소장품을 더해 회화와 조각, 드로잉, 석판화 등 총 235점을 선보이는 초대형 전시다. 뒤뷔페는 파리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6개월간 공부한 것이 정규 미술교육 수학의 전부다.‘아카데믹한 교육에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한 그는 41세까지 가업을 이어 포도주 상인으로 반평생을 살았다. 이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84세로 작고하기 전까지 수천점의 작품을 쉼없이 그려냈다. 그는 처음부터 어떠한 전통적 관습과 규준을 거부했고, 서구문명이 맹목적으로 좇던 가치에 의문을 나타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실험과 파격 그 자체였으며, 작업 내용도 변화무쌍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가 전통적 미술교육에 회의를 보이면서도 간간이 지속했던 초창기 작업들로부터 앵포르멜의 시기인 50년대, 그리고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았던 ‘우를루프’시기,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넘는 새로운 차원의 실재를 모색했던 말년의 대표작들을 1∼4전시실에 시기별로 구분해 선보인다. 이중 미술사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시기는 50년대 작품들이다. 뒤뷔페는 이때부터 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신 물질 자체가 만들어내는 마티에르 효과를 온전히 드러내는 ‘앵포르멜’(비정형) 작업에 몰입한다. 생활 주변의 기이한 자연물, 광물, 심지어 머리카락이나 못 쓰는 스펀지, 오물들이 작품의 재료로 쓰이는데,‘적토’‘기념비’‘풀’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뒤뷔페의 작품은 무질서적, 해체적 추상작업에 몰입했던 잭슨 폴록, 버려진 구두뒤창 등 일상 허드렛것들을 미술 소재로 끌어들였던 필립 거스턴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그리고 낙서나 기호 등으로 이루어진 그래피티 미술 등 미국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미술 흐름에 강력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우를루프’는 뒤뷔페가 지어낸 단어로 실상 어떠한 규정된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불어 어감으로 뭔가 환상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인물을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실제 작품 또한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우를루프 안에 집과 사람, 탁자와 의자, 가재도구 등을 꼼꼼히 챙겨넣은 듯한 작업을 통해 낯선 인식과 뜻밖의 시각적 경험으로 관람객들을 인도한다.‘앉아있는 남자가 있는 풍경’‘집지키는 개’‘도시의 일요일’ 등 평범한 제목이지만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보듯 시선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전시는 내년 1월28일까지. 관람료 일반 1만원. 청소년 5000∼7000원.(02)2022-0612.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발언대] 산 소중함 되새기자/손봉영 산림청 구미국유림관리소장

    국토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산에는 나무와 풀뿐 아니라 그 밑 땅 속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각종 동물들이 먹이사슬을 이루면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명을 유지해간다. 모든 동·식물들이 산을 생명의 축으로 한 하나의 생태계 속에서 인간과 공존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의 균형을 무시한 무자비한 산림파괴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지구환경은 재생 능력을 상실해 가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이상징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자 유엔은 지난 2002년을 세계 산의 해로 정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10월18일을 산의 날로 정하고 산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산행인들이 머문 자리에는 아직도 산림훼손과 함께 쓰레기가 쌓여 있고, 가재도구마저 버리고 가는 등의 무질서한 행락질서가 계속되고 있다. 산을 찾는 목적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성장과 보람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면 올 단풍 나들이부터는 행락질서를 지키고 남이 버린 휴지라도 주워오는 선진시민이 늘어났으면 한다. 또한 대규모 아파트단지나 위락시설 등을 조성하기 위해 산림 곳곳이 파헤쳐지는 광경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인간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산을 파괴한다면 자연은 더 이상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산에 대한 인간중심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숱한 동·식물들이 인간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등 이미 생태계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자연환경과 생태계는 한번 파괴되면 좀처럼 복구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으기를 당부한다. 손봉영 산림청 구미국유림관리소장
  • 평택철거 큰 충돌 없이 마무리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의 빈집 철거가 13일 주민과의 큰 충돌 없이 완료됐다. 국방부와 경찰은 이날 오전 7시쯤 용역업체 직원 400여명과 굴착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도두리를 시작으로 대추리와 동창리, 내리 등 4개 마을의 빈집 90채 철거 작업을 끝냈다.이주를 완료한 130가구가 철거대상이지만 철거에 반대하거나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이하 범대위)’ 회원 등이 살고 있는 40가구는 이번 철거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은 철거에 앞서 철거대상 가옥을 일일이 돌며 빈집임을 확인한 뒤 가재도구를 밖으로 들어낸 뒤 굴착기로 집을 허물었다. 철거가 시작되자 마을 주민 일부와 범대위 회원 등 20여명이 철거대상 빈집 옥상이나 지붕에 올라가 밧줄로 몸을 묶은 채 철거작업을 저지하기도 했다. 대추리 C구역에서는 주민들이 길가에 트랙터를 세워놓아 굴착기 이동을 막기도 하고 도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과 철거용역원의 인원이 워낙 많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철거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한편 대추리 평화공원 인근 빈집 옥상에는 문정현 범대위 공동대표 등 10여명이 올라가 ‘강제철거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천을 몸에 두르고 철거작업에 반발하기도 했다. 경찰은 164개 중대 1만 5000여명을 동원해 철거대상 가옥 주변을 에워싸 주민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한편 4개 마을로 진입하는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고 외부인의 마을진입을 차단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외국 재해보험 경우는

    외국 재해보험 경우는

    외국에서는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보험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처럼 재해때마다 국고를 털어 피해민들에게 지원하는 연결고리를 끊고, 보험회사를 통한 보상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췄다. 미국에는 홍수보험과 캘리포니아주 지진보험이 대표적인 재해보험으로 꼽힌다. 홍수보험은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120여개의 민간보험사에 위탁 판매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개인용 건물의 경우 최대 25만달러(2억 8000억원), 상업용 건물은 최대 50만달러(5억 7500억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지진보험은 정부 지원없이 민간보험사가 직접 운영한다. 주택은 최대 2만 5000달러(2800만원), 가재도구는 최대 5000달러(570만원)의 지원을 받는다. 일본의 지진보험도 정부의 개입없이 민간 보험사의 화재보험 특약 형식으로 운영된다. 주택은 최대 5000만엔(5억 2500만원), 가재도구는 최대 1000만엔(1억 500만원)까지 지급된다. 프랑스의 자연재해보험은 화재보험의 의무 특약으로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보험 가입 금액도 제한없이 계약자의 선택에 따라 정해진다. 민간 보험사 형태로 이뤄지는 것은 다른 국가와 같지만 국영 재보험회사(CCR)를 통한 국가재보험을 제공하고 있는 게 차이점이다. 스위스의 자연재해보험은 주정부가 운영하는 공영보험과 민간보험사의 민영보험이 공존하는 복합 형태다. 공영보험은 정부보증하에, 민영보험은 보험협회(SIA)에 의해 위험 분산을 꾀하고 있다. 개인이 소유한 건물과 동산에 각각 최대 3만 스위스프랑(27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