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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포 아파트서 불, 고층에서 화재 발생 ‘원인 조사중’

    김포 아파트서 불, 고층에서 화재 발생 ‘원인 조사중’

    9일 김포소방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20분경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불은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번 화재로, 아파트 내부와 가재도구 등이 타 30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아파트 주민 30명이 연기에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소방 당국은 김치냉장고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사진=YTN 뉴스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포 아파트서 불, 인명피해 없어..

    김포 아파트서 불, 인명피해 없어..

    9일 김포소방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20분경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불은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번 화재로, 아파트 내부와 가재도구 등이 타 30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아파트 주민 30명이 연기에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소방 당국은 김치냉장고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사진=YTN 뉴스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포 아파트서 불, 14층에서 불

    김포 아파트서 불, 14층에서 불

    ‘김포 아파트서 불’ 경기도 김포시 한 아파트에서 불이나 주민 30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9일 김포소방서에 따르면 8일 오후 5시 20분께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불이 났다. 불은 15분 만에 꺼졌지만, 연기가 퍼지면서 주민 30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불로 아파트 내부와 가재도구 등이 타 3천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신촌 모텔서 불…3명 부상, 40여 명 대피

    신촌 모텔서 불…3명 부상, 40여 명 대피 ‘신촌 모텔서 불’ ‘신촌 모텔 화재’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모텔에서 13일 오전 4시 24분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22분 만에 꺼졌다. 화재 당시 모텔에 있던 이모(30·여)씨 등 3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투숙객과 직원 40여 명이 모텔 밖으로 대피했다. 이 화재로 냉장고 등 가재도구와 탕비실 일부가 불에 타는 등 소방서 추산 4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모텔 지하 2층 탕비실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든 것이 멈췄지만… 구호는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멈췄지만… 구호는 멈추지 않는다

    “네팔 고르카의 산간마을은 해발 2000m 능선에 있어요. 계단식 밭들 사이로 전통 방식으로 지은 흙담집이 줄지어 있죠. 그러나 이번 참사로 모두 무너졌습니다.”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노경후(37) 네팔 지부장은 27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지진 사흘째를 맞는 고르카를 이렇게 묘사했다. ●진앙지 산간마을 고르카, 즐비한 전통 흙담집 와르르 “지진이 낮(25일 오전 11시 56분)에 일어나 사람들이 깨어 있어 다행이었지, 밤에 일어났으면 집들 구조가 워낙 취약해 잠결에 더욱 많은 사상자가 났을 겁니다.” 카트만두에서도 도심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지은 지 오래된 사원들과 탑 주변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다. 진앙에 가까워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심한 고르카는 산간지대라 차편이 드나들기가 쉽지 않다. 구호물품 조달이 늦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6일 밤에도 여진이 계속되는 한편 비까지 내려 주민들이 고통이 더욱 컸다. 노 지부장은 “조금 있으면 우기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날씨 탓에 헬기가 뜨지 않아 구호물품 전달이 늦어지고 있는데, 바깥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지원 또한 신통치 않다. 몇 안 되는 마을의 병원도 지진으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네팔 정부에 의해 의료진이 급파되고 의약품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환자들을 치료할 병실이 마땅치 않다. ●고산지여서 의료 혜택 여의치 않아 구호 손길 애타게 기다려 “마을 병원에 가 보니 지진 당일부터 지금까지 병원에 들렀다 간 환자가 100여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중 사망자는 10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곳보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지역의 상황은 어떨지 안심할 수 없어요.” 노 지부장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노 지부장은 “주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고르카도 네팔 내 다른 지역들처럼 청·장년층의 남성들은 인도 등지로 일을 하러 가고 남은 사람은 여성과 아이, 노인이 대부분이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집을 복구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관련 지원이 정부에서 이뤄질지, 스스로 방법을 강구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습니다. 집이 무너진 잔해 속에서 가재도구들을 하나씩 건지며 근근이 하루를 버티고 있어요.” 노 지부장은 26일 오후 고르카에 도착하자마자 굿네이버스 현지 직원들과 함께 현장 상황실을 꾸리는 한편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당장 필요한 천막, 담요 등 비를 피할 수 있는 것들과 라면 등의 식량을 어떻게 조달하고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죠.” 전화기 너머로 노 지부장의 다급함이 전해져 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포토] 네팔 지진피해 현장, 참혹한 모습들…사망자 3200명 넘어서

    [포토] 네팔 지진피해 현장, 참혹한 모습들…사망자 3200명 넘어서

    네팔 지진피해 현장, 참혹한 모습들…사망자 3200명 넘어서 네팔 지진피해, 네팔 지진 네팔 지진피해에 대한 구조작업이 사흘째 계속되는 가운데 사망자가 3200명을 넘어섰다. AFP통신 등 외신은 27일(현지시간) 네팔 재해당국 관계자를 인용, 대지진 사망자가 3218명으로 늘었으며 부상자도 6538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사망자는 26일까지 2500명 정도였으나 아침부터 수색작업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크게 늘어났다. 현재 진원지를 비롯한 외곽지역으로 구조 작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산사태와 도로, 통신망 붕괴 등으로 구조대원들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은 네팔 지진현장의 참혹한 모습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지진 피해현장. 건물이 쓰러지면서 벽돌, 판자 등이 떨어져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건물들도 창문과 문이 모두 깨져 있는 등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한 생존자가 건물 밑에서 물건을 찾느라 애쓰고 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있었던 한 시민이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나오고 있다. 구조되기 위해 필사의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타푸르에서 자원봉사자와 보안대원이 구호물품을 옮기고 있다. 이들 주변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과 벽돌 잔해 등으로 폐허가 되어 있다. 한 구조대원이 지진으로 갈라진 도로 위에서 땅을 바라보고 있다. 갈라진 아스팔트의 틈새가 지진의 위력을 가늠케 한다. 박타푸르에서 한 소녀가 지진으로 무너진 집 안에서 가재도구 몇가지를 챙겨 나오고 있다. 천장과 지붕이 모두 무너졌고 창문도 깨져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카트만두의 한 병원에서 부상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상처가 네팔 대지진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구조대가 부상자를 헬리콥터에 이송하고 있다. 지진으로 히말라야에는 눈사태가 일어나 5월 등반 시즌을 맞아 히말라야를 찾은 관광객 및 등반 대원들의 피해도 컸다. 한편, 네팔 대지진의 희생자가 걷잡을 수 업이 늘어나면서 세계 각국 정부 및 구호단체에서 네팔에 긴급구호 자금 및 물품, 구조대원 등을 급파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7일 네팔에 긴급구호를 위한 선발대를 이르면 이날 중으로 현지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진=ⓒ AFPBBNews=News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7. 총각 선생 신세 망친 미인계(美人計)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7. 총각 선생 신세 망친 미인계(美人計)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진수 판사는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모(38·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박씨는 2011년 1월 재력가의 딸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것처럼 속여 남편과 결혼했다. 이후에도 의사 행세를 하며 고급 수입차를 사는 등 사치스럽게 살았다. (후략) <남편까지 속인 ‘한국판 화차’ 사기범 징역 5년…의사 행세하며 사치 생활, 피해자 8명에 9억 챙겨>라는 제목의 올 1월 1일자 연합뉴스 기사입니다. 순진한 남녀의 순정을 이용한 사기범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입니다. 아래 45년 전 기사와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7. 총각 선생 신세 망친 미인계(美人計) (선데이서울 1970년 4월 5일자) 남편과 짜고 바람기와 미모, 춤솜씨를 재산으로 정조를 팔아 교사·공무원 등의 등을 쳐온 희대의 사기꾼 부부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남편은 돈을 위해 아내의 정조를 내놓았고, 아내는 남편의 묵인 아래 마음껏 육욕을 채운 치사한 부부의 행각은…. ‘정인숙 피살사건’으로 뉴스의 촉각이 온통 세브란스 병원으로 쏠려 있던 3월 19일 오후 서울 동부경찰서. 안모 형사가 앞에 앉아 있는 30대 여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달래기를 7시간. 미모의, 그러나 유들유들한 이 여인은 마치 외상값이라도 받으러 온 술집 마담 만큼이나 태연하게 앉아 윙크와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남편과 공모, 6세 연하의 고아 출신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 윤모씨(28)의 일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이모(34) 여인. 이 여인과 윤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28일. 윤씨가 직장에서 배운 어설픈 춤솜씨로 찾은 것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한강 카바레. 난생 처음 가본 카바레,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멍해있던 윤씨는 화사한 30대 여인의 프로포즈를 받고 들뜬 기분에 홀 내부를 몇 바퀴 돌았다. 그러자 이 여인은 홍조 띤 얼굴로 수줍은듯 사랑을 고백했다. “사랑은 첫눈에 느껴야 해요. 선생님 같은 남성미 100%의 남자는 처음 봤어요. 결혼했으면 정말 원이 없겠네요. 나이도 많은 과부가 참 염치 없는 부탁이죠.” 달콤한 말에 윤씨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도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 출신으로 고학으로 국민학교 교사가 된 윤씨로서는 그렇게 따뜻한 인정을 맛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난 지 딱 한달만인 12월 28일 이들 부부 아닌 부부는 서울 영등포에 살림을 차렸다. 윤씨가 모아둔 돈 중에서 10만원을 꺼내 전셋방을 얻었다. 30대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여체와 계획적인 교태에 윤씨는 완전히 녹초가 됐다. 둘이 춤추러 가는 일 이외에는 외출도 않고 방학 동안을 꼬박 그들의 밀실에서 보냈다. “그 여자가 필요 이상의 돈을 요구했지만 아까운 줄 몰랐습니다. 첫 남편과 헤어진 뒤 부유한 친정 덕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아내의 불편을 될 수 있는 한 덜어주고 싶었어요. 보시다시피 나한테 반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과부가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공허감을 자기한테 의지하는 것 같아 동정한 것이 사랑으로 변했다고 윤씨는 말했다. 이 여인은 자기 친정이 부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가끔 ‘친정’이라는곳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 여인과 결혼할 꿈에 젖어있던 윤씨는 TV, 전축, 선풍기를 집에 들여 놓았다. 하지만 이들의 꿈같은 행복은 개학과 함께 일장춘몽이 됐다. 외출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던 이 여인이 개학날인 2월 1일 친정에 간다면서 나갔다가 밤 늦게 돌아왔다. 2일에는 출근한 윤씨에게 청전벽력 같은 전화가 이 여인으로부터 걸려왔다. “사실은 본 남편이 있는데 우리 둘 사이를 알고 찾아왔으니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어 4일에는 이 여인이 학교로 찾아왔다. “남편이 가재도구를 모두 가져가겠다고 하네요. 우리 두사람의 행복을 위해 잠시 줬다가 조용해지면 찾아오도록 하지요.” 이 여인을 철석같이 믿었던 윤씨는 사흘 뒤인 7일 살림집으로 찾아가 보고 깜짝 놀랐다. 전셋돈 중 5만원과 TV, 일제 석유난로, 은수저 3벌, 식기, 선풍기 등 가재도구를 모두 갖고 도망해버린 것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운 윤씨에게 제2의 시련이 닥쳤다. 그로부터 5일 뒤인 12일 이 여인의 남편(39)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다방으로 달려나간 윤씨에게 남편은 윤씨의 살림집에 있던 책 한 권을 들이밀며 “이거 네 책이지? 내 처하고 간통했다는 물증이다. 내가 네 목을 자르고 말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나는 전에 군 기관에 근무했는데 앞으로 내 처와 만나지 않을 것과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한 소유권 일체를 포기한다는 각서와 간통사건을 재론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안 형사가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월 11일. 영등포 다방가가 이들의 이야기로 떠들썩 했을 때였다. 그 뒤 이 부부의 꼬리를 잡기 위해 꼭 35일을 보낸 안 형사가 이들의 집을 덮친 것이 3월 18일.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난 뒤인 아침 9시쯤 서울 남산 아래에 있는 2층집을 덮쳤을 때 이들은 태연했다. 오히려 “윤씨로부터 소유권 포기 각서까지 받았는데 경찰이 무슨 참견이냐”고 대들기까지 했다. 남편은 화장실에 간다고 핑계를 대고 줄행랑을 쳤다. 이 여인의 사기행각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이 여인이 구속됐다는 소문에 피해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모 부처에 근무하는 이모(37·서기관)씨, 정모(31·사무관)씨, 모 국민학교 교사 박모(31)씨 등. 이 여인의 음흉한 손길은 자기 딸의 담임교사에게까지 뻗쳤다. 맏딸(12)이 다니는 국민학교 5학년 담임 이모(34) 교사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가끔 학교로 찾아와 춤을 추러 가자거나 혹은 맥주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돈이 없다고 거절해 보내곤 했다”고 전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에볼라 바이러스 미국 첫 확진 남성, 주변인 10명 감염 고위험군 분류

    ‘에볼라 바이러스 미국’ ‘미국 에볼라’ 에볼라 바이러스 미국 첫 확진 판정을 받았던 남성과 접촉했던 주변인 10명이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미국 에볼라 확산 여부를 놓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의료당국은 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첫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은 토머스 에릭 던컨과 접촉했던 주변인 가운데 10명을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들이 던컨의 미국 입국 후 아파트를 함께 사용했던 4명과 병원에서 그를 진료했던 의료진이라고 보도했다. 의료당국은 또다른 40명에 대해서는 매일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에볼라에 감염될 위험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에볼라 징후가 나타난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격리 치료 중인 라이베리아 출신 40대 중반 남성 던컨은 미국 입국 후 에볼라로 확진되기 전까지 최다 80∼100명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첫 증상이 8∼10일 사이에 나타나지만, 최장 21일 후 발병할 수도 있다. 미 의료당국은 에볼라가 미국에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베스 P. 벨 박사는 NYT에 “환자와 가깝게 접촉했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에볼라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0일 미국 댈러스에 도착한 던컨의 경우, 처음 에볼라 증상을 느껴 병원에 갔던 24일부터 확진 후 격리수용된 28일까지 5일간 접촉했던 주변 사람들이 감염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텍사스 댈러스 카운티 측은 전날 던컨과 아파트를 함께 사용했던 4명에게 신속한 초기대응과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했던 데 대해 사과했다. 던컨이 머물던 아파트에서는 이날 오후부터 노란색 보호장구를 착용한 구호요원들이 투입돼 에볼라 바이러스가 있을만한 가재도구를 제거하는 작업이 실시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국 에볼라 바이러스 첫 확진 남성, 주변인 10명 감염 고위험군 분류

    ‘에볼라 바이러스 미국’ ‘미국 에볼라’ 에볼라 바이러스 미국 첫 확진 판정을 받았던 남성과 접촉했던 주변인 10명이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미국 에볼라 확산 여부를 놓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의료당국은 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첫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은 토머스 에릭 던컨과 접촉했던 주변인 가운데 10명을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들이 던컨의 미국 입국 후 아파트를 함께 사용했던 4명과 병원에서 그를 진료했던 의료진이라고 보도했다. 의료당국은 또다른 40명에 대해서는 매일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에볼라에 감염될 위험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에볼라 징후가 나타난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격리 치료 중인 라이베리아 출신 40대 중반 남성 던컨은 미국 입국 후 에볼라로 확진되기 전까지 최다 80∼100명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첫 증상이 8∼10일 사이에 나타나지만, 최장 21일 후 발병할 수도 있다. 미 의료당국은 에볼라가 미국에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지난 9월 20일 미국 댈러스에 도착한 던컨의 경우, 처음 에볼라 증상을 느껴 병원에 갔던 24일부터 확진 후 격리수용된 28일까지 5일간 접촉했던 주변 사람들이 감염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텍사스 댈러스 카운티 측은 전날 던컨과 아파트를 함께 사용했던 4명에게 신속한 초기대응과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했던 데 대해 사과했다. 던컨이 머물던 아파트에서는 이날 오후부터 노란색 보호장구를 착용한 구호요원들이 투입돼 에볼라 바이러스가 있을만한 가재도구를 제거하는 작업이 실시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자수 수집 40년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김문이 만난사람] 자수 수집 40년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보자기와 보따리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보자기는 물건을 싸고 다닐 수 있는 네모난 천이다. 보따리는 그 물건을 싼 뭉치이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다른 나라에 비해 보자기 문화가 발달했으며 보자기에는 깨알 같은 정성과 땀이 담겨 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옛날의 어머니들은 한밤중에 다듬이질을 하다가 소리 없이 조용히 바느질을 하곤 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요긴하게 쓸 보자기가 뚝딱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에 자수를 얘기해본다.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직물, 편물, 망, 피혁, 종이류 등의 표면에 실, 끈 종류, 천 조각, 피혁 등으로 누비고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수를 ‘실로 그리는 회화’라고 표현한다. ‘한국자수박물관’은 국내 대표적인 전통 자수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허동화(88)·박영숙(82) 부부가 공동관장이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시작된 이 박물관은 을지로를 거쳐 1991년 강남구 논현동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부부가 40년 동안 꾸준히 수집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다 보니 보자기, 자수, 다듬잇돌, 발, 화문석, 침장, 의상과 장신구 등 3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게 됐다. 그중 자수사계분경도(보물 제653호)와 수가사(보물 제564호)는 보물로 지정됐고 왕비보(중요민속자료 제43호), 다라니주머니(중요민속자료 제42호)와 대향낭(중요민속자료 제41호) 등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다. 이곳에 소장된 자수와 보자기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전시됐다. 1978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60여차례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외국인에게 한국 섬유예술의 우수성을 알려 왔다. 최근에는 터키와 일본 교토에서 보자기 전시를 가졌다. 지난 17일 논현동에 자리한 박물관에서 허 관장 부부를 만났다. 허 관장은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이가 88세였지만 아름다운 보자기 예술에 심취해서인지 동안이었고 낯빛은 밝아 보였다. 박물관장치고는 허 관장의 이력이 의외다. 육사 9기 출신으로 동국대 법정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쟁 참전공훈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56년 소령으로 예편한 후 한국전력에서 감사를 지냈다. 처음에는 도자기 수집이 취미였을 뿐 자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치과의사인 부인 박씨와 함께 자수 수집가로 변했다. 박씨는 남편보다 일찍 자수에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초반이었죠. 도자기를 보러 인사동에 갔는데 미국인이 화조(花鳥)로 수놓인 병풍을 헐값에 사가더라구요.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저 아름다운 물건이 제값도 못 받고 해외로 반출된다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병풍과 자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부인이 삼각지에서 치과병원을 차리자 옆에서 손님을 끌 요량으로 이색박물관인 자수박물관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반공방첩을 중요시했던 터라 자수하면(?) 돈을 3000만원이나 벌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수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혹시 간첩이 오면 자수라도 시킬 생각이었죠(웃음).” 이후 곳곳에서 자수를 가진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찾아왔다. 값어치가 없는 자수라도 사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집품이 점점 많아졌다.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자기에 물건을 싸고 왔습니다. 작은 천조각을 이어 만든 호남권의 조각보, 여러 색실로 무늬를 놓은 강원권의 자수보,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경기권의 모시보 등 귀중한 것들이 많았어요. 보자기는 한국과 일본, 터키에만 있는데 조각보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물건이 쌓여가던 어느 날, 박물관에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찾아왔다. 최 관장은 전시된 자수들을 보고 “사라져 가던 우리의 자수와 보자기가 여기에 다 보존돼 있다”며 감탄했다. 이를 계기로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 초대전을 갖는다. 무려 3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리에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듬해 도쿄에서 한국문화원이 개관할 때도 자수와 보자기를 전시했다. 해외 전시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동안 해외 전시를 통해 700만여명의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보자기를 보여줬습니다. 외국 문화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비구상 회화’의 아름다움이라고 극찬하더군요. 왜냐하면 100여년 전 것도 있었고 천지인의 철학이 담긴 것들도 있었으니까요. 독일 린덴 국립민속학 박물관장인 피터 틸레는 그의 저서에서 ‘색채 구성이 뛰어난 한국 조각보는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20세기 추상화 거장들이 한국 보자기를 본 적이 있을까’라고 썼을 정도였지요.” 독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초청이 계속 이어졌다. 1999년 프랑스 니스 동양박물관은 한국 보자기로 개관전을 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박물관 개관전에서 한국의 자수와 보자기를 초청해 전시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 박물관 전시는 주최 측의 요청으로 3개월 더 연장되기도 했다. 허 관장은 그동안 해외 전시의 성과해 대해 거듭 강조한다. 약 250억원의 전시비용이 투입됐으며 전통 규방문화의 국가브랜드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우수한 섬유예술의 독창성을 소개하고 교민들에게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해외관람객은 10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만 있는 조각보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현대 추상미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우며 쓰임새 또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여인들의 미적 감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여성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깃든 표현방법들은 세계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수 수집뿐만 아니라 지난 20여년간 보자기 1000여점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아울러 다듬잇돌 700여개를 수집해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도 가지고 있다. 허 관장은 인터뷰를 하면서 옆에 앉은 부인 자랑을 자주 했다. 부인 박씨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미국 그레이스 국제신학대학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을지병원 치과 과장을 거쳤다. 둘은 같은 황해도 출신으로 월남 후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다. 내년이면 같이 산 지 60주년을 맞는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조각보를 만들 정도로 관심이 많았으며 결혼 후에는 이런 부인의 영향으로 허 관장도 자수와 보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의 잊혀 있거나 내버리다시피한 것들이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여인들의 한 맺힌 사연들이 숨어 있음 직한 한 점 한 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같이 수집을 하게 됐다. 경제적인 문제는 주로 박씨가 치과를 운영하면서 해결했다. 이에 대해 허 관장은 “부부가 같이하다 보니 세계 제일의 자수 수집 가정이 됐다”며 웃는다. 또한 “해외 전시 때마다 한복과 장신구 등을 해당 박물관에 기증했으며 문화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모란훈장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허 관장은 1970년 자수에 대한 학술적 뒷받침을 위해 처음으로 전통자수 연구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자수사 연구, 조선시대 표장제도 연구, 궁중보자기 연구 등 수십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저술했다. 1979년에는 한국일보가 제정한 한국출판문화 저작상을, 2003년에는 김세중기념사업회가 시상하는 한국미술저작상(‘이렇게 좋은 자수’) 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여성문화의 세계화를 이룩한 공로로 5·16민족 학예상을 받았다. 허 관장은 자수뿐만 아니라 1990년대 중반부터 버려진 농기구와 어구, 가재도구 등을 수집해 오면서 오브제와 콜라주 작업으로 환경친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하남국제환경박람회, 대전한림미술관, 갤러리 시우터, 경기도 박물관 등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일본 메구로 미술관과 추계예술대, 아주대 등의 박물관에는 그가 기증한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허 관장 부부는 지금도 수집활동을 하면서 계속 보완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자수민속박물관을 지으면 모두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허동화 관장은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50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57년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한국전력공사에서 감사를 지냈다. 1974년 한국자수연구소 소장으로 있다가 1976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자수박물관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한국사립박물관장협회 회장(1976년), 방송심의위원(1981년), TV·영화검열심의위원(1981년), 한국기네스협회 부총재(1992년)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자수(1978년), 한국의 고자수(1982년), 옛보자기(1988년),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박물관 이야기(1997년), 우리가 알아야 할 규방문화(1997년), 이렇게 좋은 자수(2001년), 이렇게 소중한 보자기 역사(2004년), 이렇게 예쁜 보자기(2004년), 규방문화의 세계 여행(2008년) 등이 있다. 올해의 육사인상(2003년),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2003년), 한국미술 저작상(2003년), 우수 박물관 표창(2006,2007년) 등을 수상했다.
  • 포장이사 잘하는 곳 선정하는 방법, 꼼꼼하게 고르기 위한 체크리스트

    포장이사 잘하는 곳 선정하는 방법, 꼼꼼하게 고르기 위한 체크리스트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와 이사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시작되니 날씨가 더워도, 비가 많이 와도 마음은 초조한 상황. 무더위와 장마를 앞둔 이사 어떻게 해야 할까? 습기가 많은 우리나라의 여름은 굳이 이사라는 큰 이슈가 아니더라도, 집안 가재도구에 습기나 곰팡이가 쌓이는 것을 주의하고 신경 써야 하는 계절. 때문에 이사를 앞둔 이들도, 더욱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짐을 포장해서 하나 하나 옮기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포장, 운송 그리고 마무리 정리까지 모두 해 주는 믿을만한 포장이사 업체를 통한 서비스가 요즘 같은 여름철에 더욱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사 전에는 몰랐다가, 이사하고 나니 옷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되거나, 이사하는 과정에서 습기가 차올라 가전제품을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경우, 이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은 말로 다 하기도 어려울 정도. 때문에 믿을만한 포장이사 전문 업체를 선정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이삿짐센터를 통해서 이사 비용을 비교해보고 포장이사를 알아보게 되더라도 반드시 정부에서 허가한 관허 업체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점과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 이사에 대비해 방수 포장 등을 잘 해주고 있는지 여부도 꼼꼼히 해 보아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 외에 이미 포장이사 무료견적을 통해 가격 견적비교 후 이사를 해 본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아 포장이사 잘하는 곳을 추천 받는 것 또한 방법이다. 이 경우에는 먼저 경험한 소비자의 체험을 통해서 선택하기 때문에 더욱 확실한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 가정이사, 보관이사, 사무실이사, 공장이전은 물론 VIP이사 까지 종합이사 서비스 브랜드 GGK통운 두꺼비 이사는 “이사 시에 피해 보상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이사짐센터가 5톤포장이사 적재물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이 가능하다” 고 말했다. 또한 전화상으로는 정확한 짐의 양을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에, 꼭 무료 방문 견적을 통해 짐을 확인 후 요금을 산출 받아야 이후에 생기는 추가 비용 요구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GGK 통운 두꺼비 이사 (http://ggk24.co.kr)는 서울 (강동구포장이사, 송파구포장이사, 강남구포장이사, 서초구, 양천구, 강서구, 영등포구, 금천구, 강남구포장이사, 구로구포장이사, 동작구포장이사, 성동구포장이사, 동대문구포장이사, 노원구, 강북구, 성북구,)와 인천, 울산포장이사, 부산, 대구포장이사, 대전포장이사, 경기 (고양, 구리, 파주, 양주포장이사, 과천, 안양, 군포, 산본포장이사, 동탄포장이사, 별내포장이사, 수원, 용인, 수지, 분당, 일산, 의왕, 하남, 송도, 시흥, 화성, 안성, 오산, 평택) 지역과 더불어 전국 (천안, 아산포장이사, 청주, 전주, 군산, 익산, 김천, 칠곡)에 지점을 둔 포장이사 전문업체로 화물자동차 운송주선 허가증을 보유한 관허업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인천에서 부산 포장이사 비용? 장거리 이사할 때 가격만큼 전문성이 중요

    인천에서 부산 포장이사 비용? 장거리 이사할 때 가격만큼 전문성이 중요

    장마가 시작 되기 전에 서둘러 이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삿짐센터마다 문의 전화가 늘고 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되도록이면 저렴한 포장이사비용으로 가장 안전한 이사짐센터를 찾길 바라지만 해가 바뀌어야 한 번쯤 찾는 이사 서비스의 특성상 꼼꼼하고 알뜰한 소비자라도 그 많은 업체를 일일이 비교하기란 쉽지 않다. 근거리 이사라면야 이사비용이라도 적게 들지만 장거리이사일 경우에는 한 번 움직이는데 들어가는 금액이 크다 보니 허투루 알아봤다간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가정이사뿐만 아니라 기업이전, 사무실이사, 공공기관이전이나 관공서이사 같은 모든 유형의 이사에서 짐의 양 다음으로 포장이사 가격 산정방식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로 거리이기 때문에 짐이 적더라도 장거리 이사를 하게 되면 포장이사 가격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많은 이사업체의 견적을 받아보고 그 내용은 계약서에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입하는 것이 좋다. 얼마전 인천-부산 포장이사 서비스를 이용했던 주부 최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사 한달 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이사 후기 좋은 업체를 찾다가 포장이사 추천 업체로 소문난 곳이라는 업체를 알게 되었다. 방문견적 담당 사원의 친절한 말투와 인상에 어느 정도 업체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포장이사 업체 순위가 높은 곳이라는 말에 더더욱 신뢰를 가지고 이사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막상 이사 당일 전혀 다른 사람들이 와서 차량에 비해 짐이 너무 많다거나 장거리 이사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불평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웃돈을 요구하는 이사 업체 직원들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이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입장이라 달라는 대로 올려주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향한 최씨 가족. 먼저 출발해서 천천히 오시란 현장 팀장의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먼저 가서 청소라도 다시 한번 해 놓고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에 새집에 도착해 입주청소를 해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도착 예정 시간을 한참 지나고서도 나타나지 않는 이삿짐업체 직원들은 통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지나 도착한 현장 직원들은 시간이 늦어져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장거리를 오느라 배가 고프니 밥부터 먹자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5톤 포장이사 차에 실린 채로 꺼내지도 못하는 가재도구를 보면서 비용을 조금 더 주더라도 이런 비전문적인 사람들보다는 포장이사전문업체를 선정할 걸 하는 후회가 그제서야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참 뒤 나타난 직원들이 차량에 실린 짐을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을 때 최씨의 눈에는 이삿짐을 실을 때 다 보지 못했던 가구의 흠집과 소파의 긁힘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최씨와 이사짐센터는 각각 짐 파손과 짐 양에 따른 추가요금 문제로 한달이 넘게 분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피해를 예방하고 합리적인 포장이사 비용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유명 연예인의 인기나 지나친 광고에 의존하는 이사업체를 피하고 허가증과 책임배상 보험 가입 업체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작업자들의 평균 근속년수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이사를 진행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직원들의 전문성이라고 이야기 한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문성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이사 전에 할 일 중 포장이사당일 할일, 이사준비체크리스트, 이사업체 선정가이드 등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이사짐센터 선택이다. 파손이나 분실에 대한 보험 적용은 되는지, 정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1일 1팀으로 운영하는 곳인지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업체를 선정했다면 방문견적 사원이 왔을 때 요구 사항이나 구두 합의된 내용을 전부 계약서에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관허 업체 701호 이사의달인(http://1666-2423.com)은 “방문견적사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수년간 견적을 보고 이사를 진행해 온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이사간의 어려운 점이라든지 작업 환경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기 때문에 이들에게 궁금한 점을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필요한 사항을 서면계약서에 기입해 놓는다면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소비자의 피해예방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이사의달인은 포장이사와 보관이사, 명품이사, VIP이사 등 유형별 이사는 물론, 에어컨 이전, 입주청소, 홈케어 서비스까지 운영하고 있는 전문기업으로 서울(송파구,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금천구, 동작구, 구로구, 영등포구, 강동구, 양천구, 마포구, 성동구, 서대문구, 강서구, 노원구 등 전지역)과 천안, 아산, 군포, 안양, 안성, 평택, 김포, 고양, 의정부, 오산, 용인, 과천, 남양주뿐 아니라 광주, 인천, 울산, 대구, 대전, 부산 포장이사까지 전국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손녀 교복 꺼내러 불난 집 뛰어든 할머니…할머니 구하려다 참변당한 여고생 손녀

    10대 여고생이 할머니를 구하러 불이 난 집에 다시 들어갔다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지난 8일 오전 9시 26분쯤 충남 예산군 오가면 한 주택에서 불이 나 박모(17·Y여고 1년)양이 숨졌다. 박양은 이날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러 나간 뒤 할머니 이모(63)씨 방에서 아침을 먹다 불이 난 것을 발견했다. 이씨는 “손녀가 부엌에 가다가 ‘할머니 냄새 나’ 하고 말하길래 거실로 나와 보니 연기가 자욱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다시 들어가 손녀 방에서 박양의 교복을 꺼내왔다. 이씨는 “손녀가 보이지 않아 앞문으로 다시 들어가려다 연기가 지독해 못 들어갔다”면서 “손녀가 뒷문으로 피했다 내가 보이지 않으니까 다시 들어가 못 나온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데다 여 선생님이 담임이라고 좋아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박양은 어릴 적 어머니와 사별하고 아버지, 할머니와 셋이서 살았다. 불은 주택 내부 85㎡와 가재도구 등을 모두 태워 26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고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경찰과 소방서는 부엌의 주방기구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난 것으로 보면서도 “TV가 뻘겋게 타고 있었다”는 이씨의 진술로 미뤄 TV 과열이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정밀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인을 찾고 있다. 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50대 교수직 버리고 새 삶 찾은 인문학자 김경집 씨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50대 교수직 버리고 새 삶 찾은 인문학자 김경집 씨

    “그래도 힘이 있을 때 말을 갈아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누린 뒤 새롭게 변신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경집(55)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는 충남 서산 해미면 일락골길 15 아담아파트 4층에 산다. 집 앞에 성벽으로 둘러쳐진 해미읍성이 있으니 월스트리트에 사는 셈이다. 뉴욕 월가의 사람들처럼 돈은 많지 않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2013년 1월 이곳으로 내려왔으니 어언 1년이 된다. 26㎡(8평) 원룸에는 책이 가득하고 책상과 의자, 식기 등 가재도구는 단출하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 관리비는 5만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미읍성을 끼고 도는 둘레길 아라뫼길을 산책한다.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챙겨 먹고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쓴다.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산책 뒤 독서와 집필이다. 밤 12시쯤 잠자리에 든다. 가끔 개심사로 넘어가는 뒷길을 거닐기도 한다. 산책을 할 때에는 반드시 수첩을 챙긴다.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적기 위해서다. 그가 해미에 둥지를 튼 것은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을 쓰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30대 초반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40대 중·후반 다시 떠올랐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도 30대 때 5년 동안 오두막에서 책만 읽지 않았던가. “선배 교수들을 보니 정년 퇴직하고 나면 금방 늙더군요. 60~70 인생이면 모르겠는데 요즘은 수명이 주책없이 길어져 100세까지 사는 세상 아닙니까. 긴 노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전환점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2월 가르치던 대학에 사표를 냈다. 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삶을 4단계로 나눈다. 베다 등의 고전을 배우는 범행기(梵行期), 집에서 머무는 가주기(家住期), 산에서 지내는 임서기(林棲期),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유행기(遊行期)이다. 범행기가 사회에서 활용할 지식을 습득하는 기간이라면 가주기는 배운 지식으로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이다. 임서기는 집을 나와 숲속에서 명상을 하며 자아를 찾는 시기이며 유행기는 세상을 주유하며 깨달은 것을 전파하는 시기이다. 이에 대입하면 대학에서 인간학과 영성을 가르쳐 온 인문학자 김경집은 임서기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에겐 40대가 없었다. 아내가 위암에 걸려 7~8년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병수발에 두 아들 뒤치다꺼리에 경황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아파트가 외환위기로 반토막이 났다. 이마저도 치료비를 대느라 전세로 살게 됐다. 한창때 개인적 삶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는 다행히 병에서 회복됐다. “빚을 내 아내 치료비를 마련하고 간호를 할 때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이것도 살 만한 인생이구나,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내 할 일은 다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이 들었다. “평탄하고 순탄한 삶을 살았으면 대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닥까지 내려가 봤으니 더 이상 두려움이나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2011년 가족들에게 이젠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큰아들은 ‘아버지 원하는 대로 하세요’라고 했고, 둘째 아들은 ‘대학은 마쳐야 하지 않나요’라고 했다. 아내는 흔쾌히는 아니었지만 ‘원하면 하라’고 ‘암묵적’ 동의를 했다. ‘설마 그렇게 할까’라는 미심쩍은 생각과 함께 병수발을 들어준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대학시절 영문학도로서의 문학에 대한 열망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해미가 떠올랐다. 힘들 때 해미를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닐 때 온화한 미소가 일품인 마애석불을 보러 간 기억도 났다.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해미에 아파트를 구하고 책을 옮겼다. “책 읽고 원고 쓰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해미에 오니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강의나 채점 등 방해받거나 간섭받는 일이 적어졌기 때문입니다. 벌써 책을 세 권이나 냈습니다. 집중력도 높아졌습니다.” 그는 해미생활에 대만족이다. “제 연배의 동료들은 이제 하나 둘 현업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들이 그만둘 때 저는 새로운 분야에서 힘차게 시동을 걸고 있으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 50대 중반이지만 해미에 온 뒤 세상을 보는 안목과 폭은 오히려 넓어진 느낌입니다.”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40대 때의 경험으로 아침 저녁 등 끼니를 때우는 것은 혼자서도 거뜬히 해결한다. 그러나 얼마 전 급체로 5분 거리의 병원을 진땀을 흘리며 30분 동안 가야 했을 때는 조금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이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비상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책을 하면서 명상을 해서인지 번쩍이는 생각도 많다. 해미에서 할 일이 20~30가지는 된다. 해미읍성의 솔밭숲에서 달빛을 밟으며 시낭송회를 열면 환상적일 것 같다. 해미읍성에선 민속놀이만 하고 있는데 관악기 축제도 해봄 직하다. 대학에 있을 때 한 음대생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해 학교를 다니다 돈이 떨어지면 휴학을 하는 등 힘들게 공부하는 것을 봤다. 재주 있는 학생들을 불러 기업의 협찬을 받아 연주회를 개최하면 문화사각지대에 있는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어려운 음대생들의 부담도 덜어 줄 수 있다. 또 음대생들이 재능을 기부하면 이 곳 학생들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악기를 배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교화를 위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방식이 떠오른다.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구스타브 두다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됐다. 불모지인 해미에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대중 인문학을 전파하겠다는 그의 꿈이 영글고 있는 것이다. 해미생활은 예상보다 빨리 연착륙하고 있다. 책을 쓰고 인문학 강의도 다닌다. 처음에는 수입이 교수시절의 5분의1로 줄었으나 지금은 절반 정도로 좁혀졌다. 올해 말이 되면 3분의2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5년 정도 걸려야 안정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속도가 빠르다. 해미로 오면서 가훈을 바꿨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각자도생(各者圖生)으로 정했다. 이제 아빠의 인생을 살 테니 자식들도 자신들의 삶을 살라고 한 것이다. 혹시 책이 잘 팔려 인세를 많이 받으면 모르겠지만 물려줄 것도 없다고 했다. 물질적 도움은 줄 수 없지만 아이들이 세상을 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밑돌이나 발판은 될 수 있다. 평소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주부들에게 직업이 없어도 명함을 만들라고 권했다. 명함은 자존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명함을 만들지 못했다. 이름 뒤에 들어갈 마땅한 직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름과 함께 작업실·이메일 주소, 휴대전화번호를 적은 명함을 만들었다. 평소 갖고 싶었던 당호(堂號)도 지었다. 나무처럼 살고 싶어 수연재(樹然齊)라고 했다. 명함 뒤에는 ‘뜻은 높게 생각은 깊게 영혼은 맑게 삶은 소박하게’라는 글이 적혀 있다. 처음에는 해미에서 10일, 서울에서 20일을 지냈다. 여름이 되자 해미와 서울이 절반씩 균형을 이루다 가을이 되자 해미 20일, 서울 10일로 역전됐다. 아들이 한두 번 다녀가고 친구들도 찾아온다. 생활은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된다. 강연, 취재, 출판사 업무 등은 서울에 머물 때로 몰고 서울에 없을 때에는 경조사도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친구 모임 등도 서울에 있을 때로 조정한다. 그러다 보니 만남의 밀도도 훨씬 높아진다. 해미에는 아직 친구가 없다. 도서관 사서, 교육공동체 회원과 이를 후원하는 의사들과 교분이 있는 정도다. 시간이 지나면 주민들과의 만남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tslim@seoul.co.kr
  • 식물인간 된 아들 25년간 돌보다… 타는 가슴 못이겨 하얀재가 된 아버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25년간 돌보던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질러 아들과 동반 자살했다. 18일 오전 1시 35분쯤 충남 당진시 송악읍 김모(55)씨 집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김씨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둘째 아들(31)이 숨졌고 120㎡ 규모의 슬레이트 단층 집과 가재도구 등이 모두 탔다. 불은 1시간 20분 만에 꺼졌다. 김씨 부자의 시신은 식물인간 상태인 둘째 아들이 누워 있던 작은 방에서 발견됐다. 김씨는 불을 지르기 전 집 앞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 와이퍼에 ‘아들아 미안해, 미안’이라는 유서를 끼워 놓았다. 김씨는 전날 낮 아내와 둘째 아들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고 아내가 집에서 200m쯤 떨어진 큰아들네 아파트로 건너가 잠을 자는 사이 불을 질러 둘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집의 불행은 둘째 아들이 여섯 살 때 닥쳤다. 집 앞에서 놀던 둘째 아들이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됐다. 밥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눈동자만 껌벅일 뿐 말을 못해 취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들만 둘을 둔 김씨는 가스 배달로 생계를 꾸려오면서 25년간 둘째 아들을 한결같이 보살폈다. 주민 안모(60)씨는 “김씨 부부는 어렵게 살면서도 작은아들에게 극진했다”면서 “김씨가 이웃들과 어울릴 때도 작은아들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속이 문드러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씨의 시신이 발견된 방안에서 휘발유 냄새가 났고 아버지와 아들은 꼭 껴안은 채 숨져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소방관들이 불을 끈 뒤 ‘시신은 한 구’라고 보고했을 정도로 둘째 아들의 몸은 매우 작았다”고 전했다. 당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리 잘하는 배고령입니다.” “배고령? 바른말 잘한다는 그 배고령?” “어허, 세상일 알고도 모르겄네. 이 육실할 년이 하필이면 낼모레가 환갑인 배고령에게 가랑이를 벌려주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10년 과수로 독수공방하다가 고자 대감을 만난다더니… 이년이 숱한 남정네 놔두고 하필이면 몇 해 못 가서 환갑이 될 노닥다리 등짐장수와 배꼽을 맞추었네그래. 배고령이 언변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더니, 똥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재간까지 있는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이라더니 이런 봉패가 있나….” “봉패라니요? 구월이가 본데없는 산중 처자라고 모두 손가락질하는지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이 있습디다. 배고령이 구월이와 견주어 연세가 약간 지긋하다 하나 아직 허리도 튼튼해서 소금 짐을 지고 치받이길을 치고 오르는 데 아무런 구애가 없고, 양도가 절륜하답니다. 뿐만 아니라, 심성도 진국이어서 내자를 위하는 마음 한 가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오. 언변도 얼음에 박 밀듯 매끄럽고 언문에도 통달하여 장거리에 나가서 흥정을 해도 막힘이 없는 사람이오. 경위 밝고 보비위도 잘하여 장모님도 범절 차려서 깍듯이 모실 것입니다. 통도 크고 능갈치는 재간도 출중하여 조선팔도 어느 장거리에 내놓아도 남의 견모가 된 적이 없습니다.” “보비위 잘하는 놈치고 쓸개 안 빠진 놈이 없지…?” “배고령이 그처럼 데데한 사람이 아니랍디다.” “누가 그런 말을 하였소?” “이번에 접장이 된 정한조 도감이 그럽디다.” “도감 어른이 접장이 되었소?” “되다마다요. 사실은 혼례 치를 겸사해서, 접장이 된 축연도 해야 하오.” 월천댁은 다시 한번 까무라칠 뻔했지만, 정한조가 접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순간적으로나마 시름을 잊게 되었다. 사실 정한조가 접장이 된다는 소문은 파다했으나 아직 임소에서 통기는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소 마음속으로부터 정한조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내는 월천댁의 심사를 달래주는 데는 효험이 있는 말이었다. 월천댁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주선하고 숨어버린 구월이까지 찾아내어 모녀 사이에 손찌검이 오가지 않도록 달래주느라 사흘간 동분서주하는 동안, 말래 접소에는 그동안 빈자리로 있던 내성 임소의 접장에 정한조가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정한조가 감당했던 도감 자리에는 도공원이었던 곽개천이 천거되었다. 도감이 접장으로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떠들썩했던 그날, 해가 나절가웃이 될 무렵 말래 접소에는 생긴 것도 반반하고 입성도 단정한 한 상노아이가 찾아와 정한조에게 언문으로 쓰인 짧은 편지 한 장을 은밀히 전달하고 돌아갔다.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 두 발짝 앞에 있는 사람의 형용도 분별하기 어려운 한저녁, 베잠방이 차림의 정한조는 동배간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몰래 접소를 나섰다. “분복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형단영척(形單影隻) 의지할 곳이 없어 공규를 지키며 외롭기 그지없기는 접장 어른과 쇤네 역시 다를 바 없어 전전불매(輾轉不寐)입니다. 오늘밤 소찬을 마련하여 접장 어른 모시려 하니 허물하여 내치지 마시고 쇤네의 와실(蝸室)을 찾아 주십시오.” 작은 쪽지였지만 여인으로부터 난생처음 받아본 언문 편지였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았다. 연서라는 것이 애당초 그에겐 낯선 것이기도 했지만, 접소의 동배간들 몰래 울진 관내에선 명자(名子)가 떠르르하다는 기녀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도 분복에 겨운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행담(行擔) 짜는 놈은 죽을 때도 버들잎 입에 물고 죽는다 하지 않았던가. 분수에 넘치는 일을 대중없이 넘보다 보면 필경 화근이 되어 환난을 겪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나절가웃에 걸려 있던 해가 먼산주름 뒤편으로 껄떡 넘어가고 산허리에 저녁 이내가 어렴풋이 걸릴 제, 매미 소리 또한 숲속에서 지악스럽게 울어대면서 마음이 어느새 동하여 정한조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접소를 나서고 말았다. 향임의 집은 접소에서 흥부장으로 향하는 한길로 가다가 왼편으로 꺾어든 언덕 아래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발새 익은 길은 아니었지만,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집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단간 초옥에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데, 울바자 밖으로 정한조가 모습을 드러내자,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향임이가 몸소 뛰어나와 맞이하였다. 다가오는 궐녀에게서 지분 냄새가 설핏하였다. 외짝 지게문이 달린 휑뎅그렁한 방안에는 조선팔도 어느 고을 기방 풍속이 그러하듯 차려둔 가재도구는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빗자루 하나가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멍석 위에 등메가 덧깔린 방 가운데는 개다리소반에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산해진미가 차려진 것은 아니었다. 울진 흥부장 저잣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찬들이었다. 그처럼 조촐한 주안상이 정한조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딱 벌어진 다담상에 주과가 즐비하였다면 아마도 좌정하기가 거북했을 것이었다. 향임의 도량이 그만치 깊다는 것을 차려진 주안상에서 익히 엿볼 수 있었다. 향임이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무릎 위에 두 손을 포개 얹고 다소곳이 인사를 건네었다. “오늘밤 오시지 않으셨다면, 짧은 여름밤이었다 하나 이렇게 앉아 뜬눈으로 새웠겠지요.” 그 말에 정한조도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나 역시 편히 잠들지 못하고 조리를 치거나 등걸잠으로 밤을 새웠겠지요.” 향임이가 임기응변으로 둘러대는 정한조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거들었다. “성가시게 여기지 않으시고 편역을 들어주시니 고맙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향임의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소년 시절부터 기적에 올라 닳고닳은 계집이라 하지만, 속내는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궐녀가 정한조를 할끔하고 나서 에둘러 말했다. “작청에 있는 구실살이들이나 기녀들이나 돈 좋아하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고래로부터 있어온 일인데, 다를 데가 있겠습니까. 쇤네들도 정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세 가지 패물로 가리는데…. 사향이 든 향냥이 첫째이고, 둘째로 은장도가 있고, 셋째가 암여우의 음문입니다. 사향은 최음제이고 암여우의 음문은 정인으로부터 버림받는 액운을 막아 주는 주물(呪物)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질청의 구실살이들이 바라는 것은 한 잎에서 난 것처럼 오직 뇌물이지요.” 수세와 관련하여 이서배들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으나 많은 것들이 그들의 농간에 따라 결정되곤 하였다. 그래서 간악하지 않으면 이서배들로 생각할 수 없었고, 이서배라면 간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수령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꾸짖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을 꾸짖고 엄중하게 다루어야 할 수령의 목은 이서배들이 당겼다가 놓아 주기를 일삼는 목줄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울진 소금 상단에도 질청의 이서배들이란 멀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까이할 수도 없는, 불가근불가원의 애물단지였다. 내친김에 정한조가 물었다. “양반의 직첩도 사고파는 일에 거침이 없는 세상인데…. 하물며 고을의 이방 자리를 사고파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오. 그런데 요사이 이방 자리 두고 얼마에 거래들 한답디까?” 아주 툭 털어놓고 파고드는 눈치이자, 적지 않게 놀란 향임은 매우 불안한 눈으로 정한조를 똑 바라보다가 말했다. “쇤네가 수령의 수청이나 드는 비천한 몸이라지만, 도감 어른께서는 쇤네와는 초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토록 아금받게 파고드시면 어찌 도감 어른 심지를 거스르지 않고, 속시원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들리는 말로는…. 요로의 금싸라기 자리를 얻는 데는 얼추 500이나 600냥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외간에 소문만 파다할 뿐 누가 목도한 적은 없었겠지요.” “500냥이라면 내로라하는 소금 상단 원상들도 감히 만져 본 적이 없는 거관이오.” “쇤네들은 더욱 그렇지요.” “고을살이하는 수령들도 그만 한 돈을 한 손에 만져 보기는 어려울 것이오.” “그런데 작사청의 구실살이들은 그런 거관을 예사롭게 주고받는 모양입니다. 이방이나 호장을 하면 길거리에 나가도 행세가 깎이지 않을 뿐 아니라, 가문의 발흥을 꾀할 수 있으니까 너도나도 앞다투어 투식(偸食)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전답을 팔고 가재도구를 팔아 몽전하여 이방 자리를 차지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어서 자릿값이 천정부지로 솟곤 하겠지요. 수령들도 그것을 익히 눈치채고 있으나, 모르는 척할 뿐이랍니다.” “여부가 있겠소.” “오늘은 무슨 연유인지 쇤네가 대중없이 나불거렸습니다.” “나불거렸다면 모두가 내 탓이오. 그런데 초면인 나에게 이토록 흉금을 털어놓고 대접하는 까닭이 무어요?” “동병상련 탓입니다. 도감 어른이나 쇤네나 이런 소연이 없었다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긴긴 겨울밤을 혼자서 자는 외로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해마다 맞이하는 추석이나 설 명절에도 집에 돌아갈 엄두조차 못하고 부모처자를 생각하며 몰래 울면서 베갯머리를 적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토록 애끓는 사연을 내놓고 발설하지 못하고 애간장을 태우는 것도 도감 어른이나 쇤네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고초는 돈으로도 탕감받을 수 없는 신세이고 보면 그 또한 도감 어른과 동병상련이 아닙니까. 그런데 구실살이들은 그런 고초조차 겪지 않고도 애옥살이하는 고을의 백성들을 위협하여 갈취한 돈으로 자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습니까.” “녹록하게 볼 사람이 아니구려. 내게 그런 속내를 털어놓았다가 애매하게 뒤집어쓰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짓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말은 그럴싸하나, 상고배(商輩)들이란 지체를 자랑하는 위인이든 시생처럼 비천하고 미욱한 밥쇠든 골자를 알고 보면, 이서배들의 간사한 속내와 크게 다르지 않소이다. 행상인으로서 화식을 해서 팔자를 고치게 되었든 실패해서 신세가 고단하게 되었든, 이서배들처럼 간사한 심사와 성실한 속내는 언제나 함께 가지고 있기 마련이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식을 해보겠다고 간계한 속임수를 쓰는 것은 양심 가진 행상인이라 하더라도 한두 번쯤은 경험한 적이 없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정정당당한 돈벌이로 이문을 남겼다고 허풍을 떨었다면 그것은 필시 운명을 거스르는 거짓말일 것이오. 행상인들이란 시생과 마찬가지로 사고무친한 외톨이거나 아니면, 부모처자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 비바람을 무릅쓰고 괴로움을 감내하며, 이문을 좇아 떼 지어 달려가는 들개들과 같습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냉소적이고 노골적인 정한조의 탄식을 귀기울이고 듣던 향임의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지나갔다. 그리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들어 술을 따랐다. “쇤네 난생처음 가슴에 사무치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어찌 이런 소중한 말씀을 하찮은 소연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소연이라니 그럴 리가 있소. 시생은 황감할 따름이오. 우리가 가진 첩지에는 망언하지 말 것이며, 패악한 행위를 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지요, 이 네 가지를 삼엄하게 경계하지 않는다면, 감히 상인을 사칭하고 다니는 무뢰배나 다를 것이 없지요.”
  • 한전 수해복구 봉사활동

    한전 수해복구 봉사활동

    26일 경기 지역의 한 농가에서 한국전력의 ‘119재난구조단’ 봉사단원들이 폭우로 손상된 가재도구를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한전 봉사단 150여명은 지난 18일부터 중부지방의 폭우와 남부지방의 폭염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을 찾아 피해복구 활동을 펼쳤다.
  • 檢 전두환 사저 압수수색 “고가의 그림 여러점 확보”

    檢 전두환 사저 압수수색 “고가의 그림 여러점 확보”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해 16일 오전 시공사 등 10여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또 서대문구 연희동의 전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재산 압류 처분을 진행했다. 검찰은 시공사 등에 대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으며, 전 전 대통령의 자택의 경우 압수수색이 아닌 국세징수법에 따른 재산 압류 처분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3시간여 압류절차를 진행해 고가의 그림 몇 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1672억원이다. 지난 2003년 8월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가재도구 등을 압류해 경매한 뒤 1억 7000여만 원을 환수한지 10년 만이다. 검찰은 자금 출처를 확인한 뒤 전 전 대통령의 재산으로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곧바로 국고로 귀속시킬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전 전 대통령의 ‘차명 의심 재산’도 압수수색 및 압류 현장에서 중점 확보키로 했다. 검찰은 은닉 재산 확인을 위해 관련 문건, 회계자료, 금융거래 전표와 내역, 외환거래 내역 등을 압수해 재산 압류 및 미납 추징금 집행에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추징금 집행’ 전담팀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외사부(김형준 부장검사)와 국세청 등 관련 기관에서 지원받아 구성한 수사진 80∼90여명을 전 전 대통령의 자택과 시공사 등에 보내 내부 문서와 회계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압수수색 대상은 서초동 시공사 본사와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국내 최대의 허브 농장인 ‘허브빌리지’ 등이다. 도서출판 시공사는 페이퍼컴퍼니 설립으로 비자금 은닉 의혹을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1990년 설립한 회사이며, 허브빌리지는 재국씨가 소유한 야생화 단지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최근 독립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의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재국씨는 2004년 7월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시점은 그의 동생 재용씨에 대한 검찰의 조세포탈 사건 수사로 ‘전두환 비자금 은닉’ 문제가 불거진 때여서 비자금이 페이퍼컴퍼니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재용씨 수사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73억원이 재용씨에게 흘러들어 간 것으로 나타났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추징금이 법원에서 확정된 뒤 자녀들 명의로 부동산을 집중 매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지난 5월말 전 전 대통령의 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팀을 꾸려 과거 수사기록 등을 검토하면서 환수 대상 재산을 추적해 왔다. 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 선고됐으나 17년 동안 변제한 금액은 전체 추징금의 24%인 533억원에 불과하다. 검찰은 추징금 집행이 부진하자 2003년 그의 재산을 공개해 달라는 재산명시 명령을 법원에서 받아내 전 전 대통령 자택의 별채와 가재도구 등을 가압류해 경매 처분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이 재산명시 신청을 내자 전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예금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해 세간의 비난을 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9만원’ 전두환 사저에서 미술품·도자기 확보…금속탐지기도 동원

    ‘29만원’ 전두환 사저에서 미술품·도자기 확보…금속탐지기도 동원

    검찰이 16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해 압수수색과 재산 압류 절차에 전격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일부 압수수색 및 압류 장소에서 고가의 그림과 도자기, 미술품 등 수십 점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1672억원이다. 만약 압류품을 국고로 환수하게 되면 2003년 8월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가재도구 등을 압류해 경매한 뒤 1억 7000여만 원을 환수한지 10년 만이다. 특히 검찰은 이날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 전 전 대통령의 자택과 관련 인물들의 주거지, 회사 사무실 등을 샅샅이 확인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압수수색 장소에서 확보한 수십 점의 고가 미술품 등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특수수송 장비와 차량도 동원했다. 고가의 그림과 미술품 등은 특수 포장을 한 상태로, 운행 도중 진동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무진동 차량을 통해 운반될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은 이들 물품이 보관 과정에서 훼손·손상되지 않도록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조를 받아 국립 미술관 가운데 한 곳에 보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확보한 고가 물품 등의 자금 출처를 확인한 뒤 전 전 대통령의 재산으로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곧바로 국고로 귀속시킬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전 전 대통령의 ‘차명 의심 재산’도 압수수색 및 압류 현장에서 중점 확보키로 했다. 전 전 대통령은 본인의 비자금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되던 시기를 전후해 상당 규모의 은닉 재산을 아들 등 친족이나 인척 명의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은닉 재산 확인을 위해 관련 문건, 회계자료, 금융거래 전표와 내역, 외환거래 내역 등을 압수해 재산 압류 및 미납 추징금 집행에 활용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산하 ‘전두환 추징금 집행’ 전담팀 인력 등 수사진 90여명을 전 전 대통령의 자택과 장남 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 관련 업체 등 17곳에 보내 압수수색 및 재산 압류 처분을 진행 중이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공무원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늘리고, 제3자에게도 추징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켰다. 검찰은 지난 12일 이 개정법이 발효됨에 따라 전담팀의 수사인력을 대폭 늘리고, 외사부의 지휘를 받아 추징 관련 수사를 하도록 개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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