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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 독립국가 선포 11월 이후로 연기

    [카이로 연합]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중앙위원회는 9∼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회의를 열어 오는 13일로 예정됐던 독립국가 선포를 공식 연기한다고 살림 자눈 중앙위원회 의장이 밝혔다. 자눈 의장은 독립국 선포 날짜가 오는 11월15일이나 2001년 1월1일로 연기될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만일 독립국 선포가 내년 1월1일보다 더욱 늦춰진다면 자신은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도 8일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팔레스타인이 오는 13일로 예정된 독립국 선포를 연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캠프 데이비드 회담 이모저모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1일 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의 대통령 별장에서 역사적인 중동평화협상을 시작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정오(현지시간)아라파트 수반 및 바라크 총리와 각각요담한 데 이어 첫 3자 정상회담을 주재했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첫 3자회담이 끝난 뒤 “회담은 약 30분간 진행됐으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시작,심각한 논의들이 오갔다”고 전언.그는클린턴 대통령이 이날 오후 5시께 다시 두 정상과 각각 만날 것이라고 밝혀첫 회담 이견의 적극 조정에 나설 것임을 시사. ■클린턴 미 대통령 등 3정상과 백악관측은 이례적인 ‘입’조심에 나서는분위기.첫번째 3자회담이 끝난뒤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하지 말고 논평도 하지 말기로 약속했다”며 질문 공세를 피했고 백악관측도“합의 도출이라는 지상목표 달성을 위해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기로 합의했다”며 언론의 협조를 당부. ■미-팔-이 3국 정상은 첫 회동에 앞서 어깨동무를 한 채 캠프 데이비드 별장의 뜰을 거니는 모습을 연출.또 이­팔 정상은 회담장 문 앞에서 “당신이먼저”라며 장난기 섞인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라파트 수반의 체크 무늬 머리 장식이 바람에 날리기도. ■언론들은 3정상의 이같은 제스처는 이들이 공동으로 처한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바라크 총리의 경우 불심임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긴했으나 엄청난 국내정치 위기에 몰려있고 아라파트도 협상시한인 9월13일까지 평화와 전면충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할 입장.취임중 최대의 외교업적을 남기고자 하는 클린턴 역시 퇴임전 최대의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워싱턴에서 약 110㎞ 떨어진 메릴랜드주 캐톡틴 산자락에 자리잡은 캠프데이비드 산장은 78년 9월17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평화협정을 체결한 역사의 현장. 회담장 캠프 데이비드 별장 주변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으며 취재단은풀제로 운영돼 소수의 기자들과 사진기자들만 출입이 허용됐다. ■한편 예루살렘과 가자지구 등에서는 이스라엘 주민과 강경 팔레스타인 단체들의 찬·반시위가 동시에 벌어져 양 정상이 처한 어려움을 반영.팔레스타인의 무장 이슬람 단체 하마스도 이날 가자지구에서 캠프데이비드 회담을 ‘음모의 정상회담’이라고 비난하고 아라파트 수반이 영토에 관한 사항을 양보할 경우 캠프 데이비드 협상은 ‘무효’가 될 것이라고 경고. 캠프 데이비드(미 메릴랜드주)외신종합
  • 이 연정 와해 위기…중동평화회담 암운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미국 3자 정상회담을 불과 이틀앞두고 회담에 대한 이견 때문에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의 연정이 붕괴 위기에 처해 회담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과 관련,주목을 끈다. ■배경/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러시아이민당,국민종교당,샤스당의 연이은 연정탈퇴를 불렀다. 우파 정당들은 바라크가 국민들의 합의를 얻지 못한 채 팔레스타인에 지나치게 양보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해 왔다.바라크의 독단으로 팔레스타인과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이스라엘 국민들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가자지구 점령지의 최고 90%까지를 팔레스타인측에양보할 수 있다는 바라크 총리의 계획.특히 역대 이스라엘 정부 모두가 완충지대로 고집했던 요르단계곡까지도 넘겨준다면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할 수없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회담 전망/ 바라크 총리는 3당의 연정 탈퇴에 관계없이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 참석할 것이라며 반드시 국민들이 지지할 합의를 갖고 돌아와 국민투표를통해 승인을 받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9월13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포하겠다는 팔레스타인의 일방적 선언으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은 모두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태.“이번기회마저 놓치면 또다시 폭력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될 것”이라는 클린턴 미 대통령의 경고를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입장이다.이처럼 배수진을 친 형편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만큼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모두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도출해내겠다는 의욕은 어느때보다 강하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에서 논의될 문제들은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국경 획정 ▲팔레스타인 난민 처리 ▲유태인 정착민 문제 등 쉬운 문제가 하나도 없다.이처럼 어려운 문제들은 다루는데 반해 양측이 모두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타결을 위한 유연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비관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결국 미국이 얼마만큼의 중재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따라 회담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 유세진기자 yujin@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하)가자지구

    [가자지구 남정호특파원]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관문인 에레츠검문소는 ‘국경’ 통제가 삼엄하기 짝이 없다. 이스라엘의 황색 번호판을 단 차량들을 검문소 옆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에세워두고 이스라엘측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증명서를 교부받아야 한다.출국증명서를 다시 이스라엘군 검문소에 제시,통과 허락을 받고 300m쯤 되는 중간지대를 걸어가면 팔레스타인 깃발이 날리는 팔레스타인 입국관리사무소가나타난다. 이곳에서 입국사증을 발부받은 후 다시 경찰 검문소를 통과하면 팔레스타인인 택시기사들이 몰려 있는 정류장에 닿는다.외지인이 나타나면 10여명의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어 서로 손님을 차지하려고 아수라장을 연출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삼손과 데릴라의 도시.2,000년 전부터 이집트와 시리아간의 교역통로로 그리스인,로마인,아랍인,터키인,영국인,이집트인과 이스라엘인들의 발자취가 어지럽던 고장이다.1994년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된 가자지구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정부청사들과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집무실,관저가 있다. 가자지구엔 1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이 가운데 약40만명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요르단강 서안지역 등지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다.가자지구에서 에레츠 검문소를 통과,매일 이스라엘 땅으로 노동을 하러 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때 8만명이 넘을때도 있었으나 95년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측의 통제로 하루 평균 2만5,000명선으로 숫자가 격감했다.이들은 가자지구 경제의 기둥같은 존재들이다. 지난 50년 동안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가자지역의 생활상.“가자지구에는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가난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듯,그들의 분노는 격렬한 데모로 나타나곤 한다. 가자시내 중심부에 있는 재학생 1만6,000명의 알 아자르 대학교 교정에서만난 정치학 전공의 알와디 살나(23)군은 기자에게 “학교 앞 단식농성장에가보자”고 했다.섭씨 32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텐트 안에는 84명이 이스라엘군에 체포돼 구속당해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석방을 호소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농성자들의 가족과 친지들 100여명이 웅성거리는 속에서 대학생들은 “우리는 꼭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고 엄지손가락을 펴며 고함을 질러댔다.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천연의 관광도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호텔 시설의 태부족과 출입의 부자유 때문에 관광객 대량유치가 쉽지 않다.현재 해안에는 팔레스타인 호텔,아담,크립,비치호텔 등 고급호텔들이 이미 세워져 있고 미국계 자본으로 로얄가자,초이스,원맨호텔 등 고급호텔들이 현재건축중이다. 가자지역 안에는 현재 유태인 정착촌이 20여개 형성돼 약 4,000여명의 이스라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구쉬 카티프라는 가자시 남쪽 지역에 주로 조성돼 있는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선포되는데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가자지역 안의 행정과 경찰 업무 등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장하고 있지만 국경통제와 국방 등 안보 문제는 이스라엘측이 장악하고 있다.가자지구를 출입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출입허가를 얻어야 한다.같은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 일부나 예루살렘 방문시에도 마찬가지이다.“우리는 감옥속에 있는 신세와 같다”는 호텔 로비에서 만난 전직교사 출신이라는 한 팔레스타인 노인의 말은 전체 가자주민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의 산실인 이 지역에 젖과 꿀이 흐르는 날은 언제쯤 올 것인지,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창설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 (상)레바논 접경 이스라엘 표정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유혈사태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중동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까지 배출해냈지만 평화는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채 겉돌고있다.레바논주둔 이스라엘군이 22년만에 전격 철수하던 지난달 말 본사 남정호 프랑크푸르트 특파원이 이스라엘과 레바논,시리아 등지를 찾았다.중동분쟁의 배경과 쟁점,남특파원의 현지 르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메툴라(이스라엘) 남정호특파원] 예루살렘에서 90번 국도를 따라 레바논과접경한 이스라엘 최북단 마을 메툴라로 북상하던 지난달 20일 하늘엔 짙은먹구름이 깔려 있었다.곧 닥칠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지역 철군 후 다가올 북부 이스라엘 변경지역의 불안한 장래를 하늘마저 걱정하는 듯했다. 국경선 너머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가해지던 헤즈볼라 게릴라들의 카추샤 포격과 총성은 사라졌다.그러나 접경지대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불안감은도처에서 느껴졌다.메툴라와 인근 휴양마을인 키리야트 쉬모나의 중간지역키부츠 등지에는 새로운 ‘임시 난민촌’이 형성돼 혼잡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레바논 남부지역 민병대원 2,500여명과 그들의 일부 가족 등 6,000여명이이스라엘군의 철군 소식에 서둘러 도망쳐 나온 것이다.이들의 모습은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과의 접경지대에 사는 이스라엘 주민들중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으며 남은 사람들도 떠날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이스라엘군의 급작스런 철군으로 어느날 갑자기 헤즈볼라 게릴라들과 철조망을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게 됨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주민들의 마음을억누르기 때문이다. 키리야트 쉬모나에서 휴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예후다 샤비트씨(45)는 “이제는 이 마을이 관광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좀더 안전한 남쪽지방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부 유럽 지역에서 고국으로 이주해온 부모를 따라 이스라엘땅에 돌아와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왔다는 메툴라 주민 에풀라 추로프씨는 “이제 새삼스레 접적(接敵)지역에 살게 됐다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밝혔다.30년 이상을 살아온 메툴라는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가 이처럼장래에 대해 두려움을 내비치는 것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지역 철군이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쇼크를 주고 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메툴라나 키리야트 쉬모나 등 레바논 접경지대 주민들이 고향이나다름없는 정든 마을을 떠나려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지난 22년간 끊임없이무장공격을 감행해온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중동지역 최강인 이스라엘 군을레바논 영토에서 쫓아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마당에 언제 또다시 공격을감행해 올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24일 전격적으로 실시된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으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메툴라는 인구 350여명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접경 최북단 정착(定着)촌이자 관광 휴양촌.레바논과 접경된 ‘굿 펜스’라는 검문소에 레바논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있어 오랜 세월 관광객들이몰려들던 명소였고 남부지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끓어 관광수입이 짭짤했던 부촌이었다.그러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군당국이 신변 안전을 위해 이지역 출입을 통제할 방침이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을경제가 더욱 타격을받게 됐다. 지중해 연안의 레바논 접경지역 최북단 마을이자 관광 명소인 로쉬 하니크라와 모래사장,수영장으로 유명한 나하리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인근의 악지브 국립공원과 함께 로쉬 하니크라 해상 동굴은 연간 수만명의 관광객들을끌어모아왔던 관광명소.그러나 이제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게 된 마당이라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지중해와 접해있는 로쉬 하니크라에서 레바논과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의 899번 도로를 따라 북부지역의 키리야트 쉬모나로 향하던 중간중간에 들러본쉐툴라와 나투라라는 변경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남부지역 철군 이후 주민들의 불안감은 어느때보다 고조돼 있었다. 오랜 준비후에 이뤄진 철군이었지만 미국의 ‘사이공 철수’를 연상시켰던 ‘패주(敗走)’의 인상이 이스라엘 국민들 가슴에 깊이 심어졌다. 또 헤즈볼라 게릴라들에게 ‘짓밟힌 듯한’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회복하는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따라서 레바논 남부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의 철군과 맞바꾼 국경지대의 평화가 어떻게 이 지역 에서 정착되느냐는 세계가 지켜보는 ‘도박’이 됐다. jhn@. *이·팔 분쟁…50년간 전면전만 4차례.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팔레스타인.하지만 이곳은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로서 젖과 꿀 대신 피로 물든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반목은 과거 2,000년 동안 쌓인 역사적,정치적,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됐다.이 기간동안 유대인과 아랍인은 4차례의 전면전과 수천번에 달하는 교전을 하면서 최근 50년래 1만5,000여명이 죽고 3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만 갔다. ■분쟁의 배경/ 유대인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팔레스타인에 정착,나라를 세웠으나 기원전 100년경 로마제국의 박해를받자 대부분 국외로 이주했다.그뒤부터 19세기 말까지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이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그러나 나라없는 설움이 뼈에 사무쳤던 유대인은 19세기 말 반유대주의가대두되자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1917년 11월유대인의 국가건설을 지지하는 영국의 ‘밸푸어 선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그로부터 30년 뒤인 1948년 5월14일 유대인은벤 구리온을 초대 총리로 내세워 감격적인 독립선언과 함께 2,000년 동안의방랑생활을 끝내게 된다.반면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인의 수난은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국가 선포 다음날부터 시작된 1차 중동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주변 아랍국과 전면전을 치러야 했으나 모두 이겨 당초보다 국토를 4배나 넓히는 성과를 얻었다.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은 1차 중동전쟁때 발생한 난민을 포함,모두 35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국가에서 떠돌이 신세로 지내야하는 등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평화의 싹 /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되풀이되던팔레스타인에 평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93년 9월13일 양측이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대한 원칙에 합의하면서부터.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에 힘입어 이듬해 7월1일 자치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했다.96년 1월에는 아라파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이스라엘은 또 98년 11월 요르단강 서안내주둔군 일부를 철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유혈사태/ 이스라엘과 PLO는 평화정착의 노력이 진전을 보일 때마다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94년 2월 군복입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무차별 난사,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96년 3월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의 폭탄테러,99년1월 헤브론 총격전 등이 모두 평화의 악수를 나눈 직후에 나온 유혈사태였다. ■향후 전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로 지난 13일 평화협상을재개했으나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이다 14일에는급기야 협상을 일시 중단했다.또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10일갑자기 사망,중동의 중심축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시리아로넘어가 팔레스타인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지난해 5월 당선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차기이스라엘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시몬 페레스 전 총리가 평화정착에의 의지가강해 향후 전망은 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중동분쟁 일지.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 선언. ■〃 5월15일 1차 중동전쟁. ■1956년 10월 2차 중동전쟁.이스라엘,시나이반도 점령.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이스라엘,골란고원·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예루살렘 점령.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 ■1978년 9월 이집트-이스라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1982년 4월 이스라엘,시나이반도 이집트에 반환.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인티파타(봉기) 시작. ■1993년 9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양측상호 승인. ■1994년 5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 팔레스타인경찰에 이양. ■1995년 11월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1996년 1월 아라파트 PLO의장,초대 대통령 당선. ■1998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와이리버 평화협정 체결. ■1998년 11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내 주둔군 일부 철군. ■1999년 5월 에후드 바라크,이스라엘 총리로 당선. ■1999년 6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 재개. ■2000년 1월 이스라엘-시리아 골란고원 반환 관련 평화협상 재개. ■〃 5월24일 이스라엘,남부 레바논에서 완전 철수.
  • 이·팔 최악 유혈충돌…중동평화 또 암운

    [예루살렘·라말라(요르단강 서안)AFP AP 연합]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영토에서 15일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경찰이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팔레스타인인 4명이 숨지고 양측에서 500여명이 부상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져중동평화 앞날에 또다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4년만에 최악으로 꼽히는 이번 충돌은 52년전 이스라엘 건국으로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유민이 발생한 ‘알-나크바(대재앙)’를 기념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전역에서 나흘째 계속되면서 발생했다. 시위에 참가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1,600여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이날 충돌은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시(市) 북쪽 베이트-엘 마을 부근에서 발생했다.지붕위의 팔레스타인 경찰과 도로 주변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팔레스타인 기자 등 민간인 수십명이 부상했다다. 또 요르단강 서안 북부의 나블루스 마을에서 벌어진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도중 팔레스타인 10대 소년 1명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나블루스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이스라엘 관할지역에 있는 요셉의 무덤주변에서 행진을 벌이면서 심야까지 충돌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20대 팔레스타인청년 1명이 또 숨졌다. 이날 충돌로 이스라엘군 병사 6명이 부상하고 이 가운데 1명은 중상이라고이스라엘측은 밝혔다.이번 유혈 사태는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 인근 마을3곳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겨주기로 하는 등 일련의 유화 제스처를 취한 가운데 발생해 평화협상 전도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이스라엘 의회는 이날내각이 제출한 예루살렘 인근 3개 마을 이양안을 찬성 56,반대 48,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한편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충돌에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확산을 막아주도록 요구했다.바라크 총리는 또 팔레스타인측이 이날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밝힌 뒤에만 3개 마을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사태가 악화되자 데니스 로스 중동 특사를 다시 현지로 급파했으며양측에 폭력을 자제하도록 촉구했다.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6)라빈 아라파트 회담

    *93년 이스라엘 - PLO 오슬로협정 체결. “이미 너무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전쟁터에서 죽어간 동료와 가족들을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1993년 9월13일 미백악관.역사적 오슬로협정 테이블에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과 마주앉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축사라기엔 엄숙한 한마디를 던졌다.이날 양국 정상이 체결한 오슬로협정은 결코화해할수 없을듯 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랜 적대감을 끊고 이끌어낸 평화 총론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그러나 협정시효가 훨씬지난 지금까지도 그 각론이 합의되지 않은채 유혈충돌 역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동평화의 가시밭길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평화의 청신호는 80년대 후반부터 찾아왔다.국제사회 압력과 극심한 경제난이 옥죄는 가운데 90년대초 소련의 붕괴는 그 지원에 의존하던 아랍 투쟁기구들로 하여금 노선 수정을 불가피하게 했다. 70년대 내내 반이스라엘 테러의 선봉에 섰던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88년 임시 유엔총회 연설을통해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과 테러 포기를 선언,국제사회의 요구에 발맞췄다.이스라엘에도 92년 선거에서 라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강경 리쿠드당을 대체,화해분위기가 무르익었다.오슬로 협정은 양국정상의 평화의지 외에도 이같은 유화정세의 산물이기도 했다. 양국 대표단이 노르웨이 오슬로에 모여 오랜 물밑회담끝에 선보인 협정문은당시까지의 중동관계로 미뤄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협정원칙(Declaration of principles;DOP)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된 문서는 △99년 5월까지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의 이스라엘 철군△이 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자치 3년내 독립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지위 논의 등을 규정하고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돌려줄 뿐만 아니라 향후 독립국 건설까지도 인정하겠다는 것.협정문이 제시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 정신은 향후중동협상의 대원칙이 됐다. 오슬로협정 규정에 따라 라빈과 아라파트는 94,95년 1,2차 자치협정에 나란히 서명했다.양국 정상간에 직통전화가 놓이고 총선거를 거쳐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됐다.94년엔 요르단이 이스라엘과의 46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평화협정에 조인,중동평화 도미노에 대한 예감으로 지구촌이들떴다. 그러나 94년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사회 갈채의 안쪽에서라빈과 아라파트는 국내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려 진땀을 흘려야 했다.점령지에 정착중인 이스라엘인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역시 잊을만하면 폭탄테러를 자행,평화일정을 지연시켰다.결국 95년 11월라빈 총리가 반대파에 암살당하면서 한축을 잃은 중동평화호는 일탈이 불가피해졌다. 곧이어 집권한 강경 네타냐후 정권 아래서 오슬로 플랜은 19개월가량 정지되기도 했다.98년10월 와이리버 협정이 가까스로 체결됐으나 오슬로 시계에의하면 이미 이뤄졌어야 할 요르단강 서안 완전철군,팔레스타인 최종지위협정 등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이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또한번 정상간 회담에 의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손정숙기자 jssohn@. *라빈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 힘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그의 오랜 군경력 때문에 ‘철권을 쥔 평화의 병사’,‘미스터 안보’로 불렸다. 1922년 예루살렘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카두리 농업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곧바로 하가나부대, 팔마치 부대를 돌며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32세의 나이로 소장에 오르고 40세에 참모총장으로 진급, 67년의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68년에는 2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이끌어 내 대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73년 귀국,74년에는 골다메이어 총리정부에 노동장관으로 입각했으며 같은해 6월 메이어의 사임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자란 최초의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77년 부인의 미국내 은행 불법계좌가 드러나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84년에는 국방장관으로 복귀하여 레바논 전쟁을 종식시켰다. 92년 다시 총리가 된 뒤 주변 아랍국들과 평화협상에 힘을 기울여 93년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원칙에 합의하고 오슬로평화협정에 조인했다. 이공로로 페레스,아라파트와 함께 9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으나 95년 11월 4일 평화집회를 마친 직후 극우파 유태인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송하기자. *아라파트 당시 PLO의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는 1929년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4살 때 모친이 죽고 예루살렘의 삼촌 밑에서자랐다. 그러다 46년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무기밀매를 하며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아랍과 이스라엘의 첫 전투 이후 UN은 팔레스타인에게 자치 정부를 약속하지만 이행되지 않고 갈 곳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박해를 받는다.이후 팔레스타인 동료들과 연계하여 64년 군소 저항단체들을 통합해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를 창설한다. PLO는 게릴라전과 테러를 이스라엘에 행하여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길들이기에 나선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으로 요르단 본부를 빼앗기고 레바논으로 거점을 옮긴다.계속되는 테러와 마찰로 아라파트의 PLO는 세계의 불한당이 되었지만 72년 UN 옵저버 자격을 획득한다. 88년 모든 테러를 중지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 그해 70개국의 승인을 얻었다. 90년 걸프 전쟁으로 신뢰도에 위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93년 평화를 위한 기초 합의를 이스라엘 총리 라빈과 이루었다.96년 자치 수반으로 취임하여 98년 중동 평화의 결실이자 상징인 와이 리버 합의를 이끌어냈다. 황인철기자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4)사다트 베긴 회담

    *77년 이집트·이스라엘 정상회담. “20세기 가장 위대한 외교적 승리의 하나이자 역사적 이벤트였다.우리는전혀 새로운 평화에의 여정을 창조했다” 1977년 11월19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외무장관으로 동행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UN사무총장은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남으로 촉발된 화해 기류는 누구도 녹일 수 없을 듯하던 중동의 얼음장 하나를 쩍 갈랐다.양국 정상간 대면은 최초의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져 중동평화 여정에 거대한 초석을 놓게 됐다. 애초에 사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4차례 전쟁을 통해 국토를 강탈해간 이스라엘에 아랍권은 유혈투쟁을 불사해왔다.이집트 역시 67년 전투에서 이스라엘에 시나이반도를 뺏겼고 73년 이를 둘러싸고 또한차례 격전에 휘말리는 동안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에선 초강경 테러리스트 출신 베긴 정권의 탄생으로 세계가 경악했다. 그러나 한편 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30년 무력충돌에 대한 넌더리가 중동 민중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었다.국제사회의 압력도 날로 거세갔다.이스라엘은무력점령한 땅을 반환하라는 UN 결의안 242조를 마냥 무시할수 만은 없었으며 극도의 민생 피폐상에 시달려온 이집트에는 미국이 ‘평화분담금’ 명목으로 제시해온 경제원조가 절실했다.이 시점에서 사다트는 결단을 내렸다.77년 자국 의회에서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어디든 간다.이스라엘 의회까지라도”라고 연설,강한 평화의지를 피력한 것.여기에 이스라엘이 즉각 초청장을 보내 화답했다.그리고 사다트가 무조건 이를 수락함으로써 아랍지도자 최초의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3차례 회담에도 불구,평화조약이 아닌 “평화를원하며 대화를 계속하자” 정도의 원론적 합의성명서 한장을 달랑 내는데 그쳤다.30년간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양국간 입장 차는 클 수 밖에 없었다.베긴 총리는 평화보장을 전제로 한 시나이반도 반환은 받아들였으나 요르단강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위와 관련된 사항에는 한치도 양보할수 없다고 버텼다.양국은 향후 1년여를 무수한 중재회담으로 소모하고서도 접점을 찾지 못해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여야 했다.78년 9월 카터 미 대통령은 양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협상조율에 들어갔다.2주만인17일 천신만고 끝에 역사적인 합의문이 엮어져나왔다.골격은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반환 및 이스라엘-이집트 수교 ▲5년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보장 원칙 등 크게 두가지였다.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그후로도 반년이 흘러야 했다. 어렵사리 싹튼 중동평화였지만 부작용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양국 모두 국내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렸으며 사다트는 동포를 버린 배신자로 아랍권에 낙인찍혀 리비아,시리아 등으로부터 단교당하기도 했다.미국을 불러들인 반쪽정상회담의 한계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자치권 회복까지는 문서에약속된 몇배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이스라엘-이집트 협정의 의미 자체를 희석할 수는없다.미국이 중도개입했으나 협상의 촉발점이 된 사다트의 예루살렘 방문이상당히 독자적 행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중동문제를 자력으로 인식한 최초의사례가 아닐 수 없다.유대-아랍간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한 이 회담이 없었다면 93년 오슬로협정,98년 와이리버협정 등 향후 중동평화의 모든 괄목할 만한 성과들도 나올 수 없었다.78년 사다트와 베긴은 그 공로로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러나 81년 사다트는 과격파 총탄에 희생돼 중동평화의 첫 순교자가 됐다. 손정숙기자 jssohn@.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반식민,반봉건주의자에서 중동평화 개척자로.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일생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1918년 영국 통치하 이집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카이로 사관학교에 입교,정치 역정을 시작한다.영국 통치에 저항한 자란,터키 오토만 왕정을 무너뜨린 케멜 아타투르크,비폭력운동의 간디,그리고 히틀러로부터 영향을받았다. 38년 졸업과 함께 배치된 후방에서 후일 이집트 초대대통령이 된 아브델 나세르를 만나 정치적 동지가 된다.52년 나세르가 이끄는 비밀조직이 왕정을무너뜨리고 집권하자 그 밑에서 18년간 홍보장관,집권당 사무총장,국회의장,총리 등을 지내다 70년 나세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72년 소련군 추방,73년 대 이스라엘 반격 등으로 외교적 성과를 쌓아가던중 77년 이스라엘과의 평화계획을 제시,전세계의 관심권 안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이에 대한 내부 반발을 철권통치로 억누르다 81년 자국군 내부 회교원리주의자 총탄에 숨졌다. *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또다른 축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한때 시오니스트 무장단체를 이끌며 테러를 자행,목에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 1913년 옛 소련(지금의 벨라루시) 브레스트-리토브스크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샤바 법대를 졸업했다.2차대전 홀로코스트에 부모형제를 잃은 뒤 과격분자로 변신,예루살렘의 영국군 사령부 숙소였던 한 호텔을 폭격,100여명을 사망케 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원내투쟁으로 선회,20여년간 극우 야당을 이끌다가 73년 리쿠드당을 창당했으며 77년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총리로당선됐다. 그는 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로 중동에 평화를 부른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81년 이라크 핵수로 폭격,82년 레바논 침략 등으로 강경 이미지를 재확인시키며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비난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83년 자진 은퇴한 뒤에는 92년 사망 때까지 정치를 등지고 칩거했다. 손정숙기자
  • 이, 평화협정 최종안 제시 팔레스타인측 거부 의사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16일 팔레스타인과의평화협정 최종안을 공개,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를 허용할 뜻을 내비쳤다. 바라크 총리는 이날 주례각의를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최종 평화협정안을 제시하고 총리실 성명을 통해 언론에 공개했으나 팔레스타인측은 바라크총리의 제의가 자신들의 요구에 못미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최종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다음달부터 협상에 들어가 타결 시한을 올 9월로 설정한 최종 평화협정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측에 제시할 양보 가능하거나 양보 불가능한 영토 문제 등을 담고 있다. 바라크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필요한 영토적 통일성을 부여하기위해 요르단강 서안 영토의 최대 80%를 팔레스타인에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으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무장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타적 주권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말해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겠다는 동예루살렘을 절대 포기할수 없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했다. 바라크는 대신 예루살렘 인근과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 5만∼6만명은 팔레스타인에 넘겨주고 요르단강 서안내 유대인 정착민 대부분은이스라엘로 흡수하겠다고 밝혔으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67년 중동전쟁중 잃어버린 이스라엘내 고향마을로 귀환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수반의 보좌관인 나빌 아부르데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동예루살렘 전체지역에서 철수해야한다는 팔레스타인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바라크 총리의 평화협정 최종안을거부했다. 예루살렘 AFP 연합
  • 팔, 예수탄생지서 밀레니엄축제 개막

    [베들레헴 AFP 연합]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서 4일 밀레니엄 축제행사를 공식 개막하고 아울러 이 행사를 팔레스타인 독립을 향한 도약대로 이용했다. 아라파트는 이날 베들레헴 시청 밖에서 “3번째 밀레니엄의 도래에 즈음하여,팔레스타인국가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는 ‘베들레헴 2000 재건·혁신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고 쓰인 한 동판을 제막했다. 시청이 위치한 망게르 광장에는 “베들레헴 2000에서부터 독립까지,그리고야세르 아라파트의 지도하에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까지”라고 아랍어로 쓰여진 거대한 슬로건이 나붙었다. 아라파트의 고위측근인 타예브 압델 라힘은 이날 외교사절과 교회지도자들을 비롯한 약 2,000명의 군중에게 아라파트를 대리하여 행한 연설을 통해 축제행사의 시작을 공식 선포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당국은 외부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보낸다.우리의 모든 행정기관들과 시당국,기타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들이 베들레헴에서 손님들을맞을 수 있도록 라파에서부터 예닌에 이르기까지 밤낮없이 준비해왔다”고 강조했다.라파는 가자지구 남단 마을이며,예닌은 요르단강 서안의 북단마을이다. 한편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년초 방문할 것으로 보이는 중동의 기독교 성지들 가운데 베들레헴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당국과 이스라엘은 모두 2000년에 교황이 그들의 성지를 방문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 한국 Y2K대비‘잘 돼있다’

    우리나라는 Y2K(컴퓨터 2000년도 인식오류) 대비가 비교적 잘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일반적으로 컴퓨터 기술이 낙후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또한 ‘적정’ 수준의 대비가 돼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AP통신이 최근 보도한 영국 기술 컨설팅회사‘인터내셔널 모닝터링’(IM)의‘Y2K준비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뉴질랜드 프랑스 벨기에 독일 대만 스페인 등과 함께 Y2K 대비가 ‘비교적 잘돼 있는’ 국가로 평가됐다. 늦게 Y2K 대비에 착수한 일본의 경우 지난 몇개월간 상당한 성과를 거둬 관리들이 ‘대비 완료’를 선언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IM이 각국 정부가 제공한 발전·통신·금융 및 수송 인프라스트럭처 등 4개 부분에서의 컴퓨터 2000년도 인식오류(Y2K)평가 결과 드러났다. IM은 평가결과 Y2K에 따른 혼란사태의 10%는 내년 1월1일 발생하고 나머지는 며칠 또는 몇주 안에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IM는 또 Y2K에 대한 대비가 ‘가장 잘돼 있거나 혼란위험도가 가장 적은’그룹으로 미국과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 이스라엘을 꼽았다.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현금수요 증대에 대비해 ‘특별융자제도’를 마련했고 국방부는 콜로라도주 피터슨 공군기지에서 러시아 컴퓨터 오작동에 따른 핵공격 대비 훈련을 러시아측과 공동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적정 수준의 대비가 돼 있는 그룹으로는 이탈리아 폴란드 파라과이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 북한 케냐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등 개발도상국이대부분 포함돼 있다 중국은 무기와 핵발전소의 대비가 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서방 전문가들은 중국의 낙후된 기술수준을 감안,엄청난 혼란을 점치고 있다.선진국으로 이 그룹에 포함된 이탈리아는 Y2K 대비에 늦게 착수해 이같은 평가를 받았다는 지적이다.때문에 로마 일부 외곽지역에서는 정전사태 등이 우려되고 있다. 대비가 덜 돼 혼란위험이 있는 국가군으로는 러시아 콩고(옛 자이르) 에티오피아 나미비아 스와질랜드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터키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등이 지적됐다. 미중앙정보국(CIA)은시간대가 11개나 되고 자원 부족난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러시아 당국은 주요시스템에 대한 보완작업과 함께 발전소와 항공관제탑이 수동식으로 작동될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반 국민들이 식량 및 에너지난을겪을 가능성이 적지않다. 전혀 대비가 안돼 십중팔구 혼란을 겪게 될 그룹으로는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와 방글라데시 이집트 오만 카타르 등이 지적됐다. 한편 IM은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말리 우간다 쿠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우즈베키스탄 키프로스 리비아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없어 등급을 매기지 않았다. 박희준기자 pnb@
  • 중동평화회담 최종지위협정안 쟁점 논의

    새천년 독립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가름할 중동평화회담이 1,2일 양일간 오슬로에서 열렸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 및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일에 이어 2일에는 3자가 함께 참여하는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지난 93년 오슬로 협정과 지난해 10월 와이 리버 협정 등에서뒤로 미룬 이른바 ‘최종지위협정’을 시작하기 위해 오는 8일 열릴 협상의예비회담 성격이 강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내년 2월까지 ‘최종지위협정’ 초안을 작성하고9월 최종안에 합의할 계획이다. 최종 지위협정에는 ▲동 예루살렘이 분할돼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될지 여부▲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유태인 정착촌들을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남겨둘지 여부▲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의 국경선을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선으로 할지 여부 등이 포함돼 있다. 박희준기자 pnb@
  • 가자·西岸 안전통로 17일 개통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연결하는 팔레스타인 안전통로가오는 17일 공식 개통된다. 자밀 타리피 팔레스타인 내무장관은 이스라엘과 서명한 안전통로 개설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통과,요르단강 서안과 가지지구 사이를 통행할 수 있는 안전통로를 개통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이에 따라그동안 큰 불편을 겪었던 250여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보다 폭넓은 통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안전통로는 가자지구 북쪽의 에레즈에서 이스라엘을 거쳐 요르단강 서안 남쪽의 헤브론 인근 타라쿠미야까지의 44㎞구간.오전 7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방되며,유대교의 특정 공휴일에는 개방되지 않는다.두지역을 잇는 또다른 안전통로인 에레즈-라말라구간은 앞으로 4개월 안에 개설될 예정이다. 안전통로의 개통은 지난달 5일 체결된 샤름 엘-셰이크 평화협정의 주요 현안중 하나를 해결했다는 점 외에도 이산가족의 재회 등 팔레스타인인들에게주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가자지구와요르단강 서안을 지리적·인구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스라엘정부는 10일 요르단강 서안에 최근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중일부를 불법 거주지로 결정,철거하기로 함으로써 중동평화를 향해 한걸음씩나아가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영구 평화협정 체결…이·팔 최종협상 돌입

    [에레츠검문소(가자지구) AFP AP 연합] 이달초 ‘와이Ⅱ’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3일 영구 평화협정 마련을 위한 최종 협상에 돌입했다. 다비드 레비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2인자인 마흐무드 아바스는 이날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 6주년을 맞아 에레츠 검문소에서 협상에 들어갔다. 아바스는 양측 외교관과 관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면서 “지금은 고치고 재건할 때이며 평화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레비 장관도 “우리는 이제 영구 평화협정을 모색하기 위한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고 선언하고 “이 협정은 100년간 지속된 양측 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이·팔 ‘와이협정’ 이행 조인

    [예루살렘 가자시티 AFP AP 연합] 와이리버 평화협정 이행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해 막판 협상을 벌여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일 거의 모든 핵심쟁점들에 관해 합의에 도달했다. 양측은 2일로 예정된 합의서 조인식 하루전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여 팔레스타인 죄수석방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2개 현안에 관해 합의에 근접했다고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 사에브 에레카트가 밝혔다. 양측 협상 대표들은 특히 와이리버 협정 이행일로부터 1년 안에 팔레스타인 영구 평화협정을 매듭짓기로 했다. 에레카트 대표는 이날 저녁 회담후 팔레스타인 라디오 회견에서 “요르단강 서안 주둔 이스라엘군의 2단계 철수 일정에 관해 합의에 도달했으며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의)최종지위에 관한 협상이 오는 10일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은 또 ‘영토-안보’ 상호 보장을 골자로 하는 와이리버 협정이 본격이행에 들어간 지 1년 안에 팔레스타인 최종지위 협정을 마무리 짓기로 시한을 정했다.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아리에 아라지 이스라엘 대사

    아리에 아라지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21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한국형 구축함사업(KDX-Ⅱ)의 함대공 방어시스템 사업자로 이스라엘이 선정되면 상당부분을 한국에서 생산하는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현재 한국 국방부의 미사일 시스템 입찰을 위한 최종작업이 진행중이며독일과 미국업체 및 이스라엘이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중재로 팔레스타인측과 체결된 영토와 안보교환 협정인 ‘와이 리버’ 협정이 중단된 상태인데 이유와 전망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예컨데 가자지구의 경우 200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들이 살고 있는 반면 이스라엘 주민은 5만7,000명에 불과하다.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정착자들의 안전확보 방안을 강구중에 있다.이밖에 종교와 역사,안전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협정이행에는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협정 이행의 지연은 이스라엘 정부의 실행의지를 의심케하는데. 이스라엘정당들이 협정방안에대해 합의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이행할 것이다.협정은 이스라엘 정부가 맹방인 미국과 이집트 대통령,요르단 국왕에게 한 공약이다.게다가 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현재 의회의 강력한지지를 받고 있어 협정이행을 위한 정치적 지도력도 갖추고 있다. ■바라크 총리는 골란고원 반환과 관련,시리아와 직접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시리아는 이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어떻게 될것 같은가. 대(對)시리아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지난 67년이후 골란고원을 점령해왔다.원칙적으로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을 돌려주고싶다. ■그렇다면 과거 영토확장과 국가방위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유가족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그간 양측에 수천명의 희생자를 내는 5번의 전면전을 치렀다.그러나 유일한 해결책은 정치적 해법 뿐이라는 게 분명해지고있다.여론조사 결과 이스라엘인의 84%가 평화협상 과정을 지지하고 있으며 60%이상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른 아랍국가에서도 이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곧 중동을 방문할 예정인데 중동평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아랍권의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변화에 기여할 것으로생각하나. 우리는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남북한의 경우 양 정부가 직접 대화를 한 뒤 국제사회가 4자 회담이니 6자 회담이니 하는 지원노력을 한다.마찬가지다.도와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한-이스라엘간 협력은 어떤가. 이스라엘은 정보,장거리통신,우주산업 등에 있어 최첨단 국가이다.특히 인터넷 관련 기술중 15%가 이스라엘 기술이다.우리는 우리의 기술과 한국의 대량생산 및 마케팅 기술의 조합을 바라고 있다. 지난 95년 부임이후 13개 협력안에 합의했고 이중 9개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투자보장,관세협력,최혜국 대우 등등이다. ■이스라엘은 한국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구축함(KDX-Ⅱ)의 중거리 방공미사일 시스템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약 사업자로 선정되면 한국에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 현재 입찰을 위한 최종단계에 있다.이스라엘의 ‘바라크 시스템’은 지난 10년간 100% 성공률을 보였다. 이스라엘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미사일 시스템의 많은 부분을 한국에서 생산하도록 할 계획이다.한국 기업은 엔진,유도시스템 등에 있어 첨단기술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한국의 금융위기 전말(前末)을 목격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국이 지금까지 한 것은 거의 기적과 같다고 본다. 금융부분이 변화됐고 재벌개혁과 경쟁력 강화는 거의 달성했다고 본다.신용평가기관인 S&P가 한국의 투자등급을 상향조정한 게 증거다. 박희준기자 pnb@
  • 바라크-아라파트 오늘 회담

    [예루살렘 AP 연합]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11일 지중해변 가자지구 접경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취임 후 처음으로 회담을 갖고 평화협상 재개 방안등을 논의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 9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총리와의 회담에 이어 바라크 총리의 취임 이후 2번째 정상회담이며 아라파트 수반으로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만에 갖는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이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와이 리버 중동평화협정의 이행과 팔레스타인 국가 선포,팔레스타인에서 개최될 예정인 유엔 인권회의,유대인 정착민 문제등에 관해 논의했다. 한편 바라크 총리는 9일 이스라엘의 채널1 TV와의 회견에서 “팔레스타인국가는 이미 사실상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와이 리버 협정의 이행과팔레스타인의 최종적 지위에 관한 협상을 연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 ‘新정책’ 발표

    이스라엘 신정부가 5일 접경 아랍권과의 평화정착을 골자로 하는 정책지침을 발표,중동평화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신임 총리는 취임 하루전 집권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참석,신임각료와 의원들에게 배포한 정책지침을 통해 “100년간의 중동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안전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라크는 분쟁종식의 방안으로 우선 레바논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21년간 남부 레바논에 진주해온 이스라엘군의 철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96년 중단된 시리아와의 평화협상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의거,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골란고원 반환문제의 조기해결을 시사했다. 팔레스타인과의 관계개선과 관련해서는 그는 그간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씨앗이었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내 정착촌 신설은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라크의 이같은 평화제스쳐에도 불구하고 구체성이 결여돼 공약으로 끝날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시리아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이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했다.이스라엘 국민이 거절할 경우 언제든지 깨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둘째는 레바논 철군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정을 빼놓았다.아울러 이스라엘 북부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으름장도 놓고있다. 그리고 이는 팔레스타인측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그는 “팔레스타인과의 협정을 존중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운을 뗀 뒤 팔레스타인도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그리고 팔레스타인측의 협정위반도 눈여겨 보겠다는 전임정부의 어법도 그대로 사용했다.자국민에 대한 테러가 발생할 경우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것이다. 이밖에 팔레스타인측이 장래의 수도로 꼽고 있는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주권하에 예루살렘에 통합될 것이라고 말해 예루살렘과 관련한 양측의 협상여지를 제거해버리는 등 곳곳에 사족과 같은 조건이 붙어 있다. 박희준기자 pnb@
  • 협상 주요쟁점-유태인정착촌 최대 걸림돌

    골란고원문제 본래 시리아 땅으로 시리아 포병대와 저격병들의 잦은 발포로 이스라엘 민간인이 많이 죽자 67년 3차 중동전때 이스라엘이 강제 점령했다.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UN이 골란고원내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완충지대를 두었다.바라크 총리당선자는 안보만 보장된다면 골란고원을 시리아에 반환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문제 역시 3차 중동전때 요르단강 서안은 요르단으로부터,가자지구는 이집트로부터 빼앗았다.이들 지역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팔레스타인이 독립국 창설지역으로 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지역내 유태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독립국 수립에 반대하고 있지만 바라크 총리 당선자는 이스라엘의 안보만 위협하지 않는다면 독립국이든 자치정부 등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레바논 남부안전지대 이스라엘군이 지난 78년과 82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일방적으로 국경지대에 폭 15㎞로 설치한 안전지대다.이는 곧 레바논에서의 이스라엘군 축출을 목표로하는 이슬람 무장세력 헤즈볼라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헤즈볼라는 레바논 시리아 정부와 함께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점령지역에서 무조건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바라크 총리 당선자는 당선후 첫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1년내 레바논 철군을단행할 것이라고 밝혀 레바논과의 20년에 걸친 갈등을 마감할 계획이다. 동예루살렘 문제 예루살렘 구시가지 일대인 동예루살렘에 관한 지위문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가장 민감한 문제중의 하나다.이슬람교와 유태교의 성지인 이곳을 두고 양쪽은 한치 양보없는 입장이다.팔레스타인이 향후독립국 ‘수도’로 삼겠다고 한데 반해 이스라엘은 현재와 같이 통합수도로서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전망이다. 바라크 총리 당선자 역시 예루살렘은 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의 분할되지않은 수도’로 남겨두겠다고 공약했었다. 유태인 정착촌 문제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골란고원,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동예루살렘 등에 유사시에는 ‘전진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유태인정착촌을 건설해왔다.현재 점령지구의 유태인 정착촌에는 13만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이 거주하고 있다. 정착촌 문제에 대해 바라크 총리 당선자는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주민이 한지역에 거주하되 서로 다른 공동체를 이뤄 살도록 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정착촌을 이스라엘 관할로 두고 테러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선다는 입장이어서 팔레스타인측과의 협상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경옥기자 ok@
  • 중동평화 어디까지 왔나

    지난 93년 9월13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체결된 오슬로 평화협정은최초로 중동 평화의 전면적 청사진을 제시한 역사적 ‘쾌거’였다. 협정은 ‘평화와 영토의 교환’ 원칙아래 ▲상호 적대종식▲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팔레스타인 잠정자치를 거쳐 99년 5월 독립국가 수립의사실상 허용▲동예루살렘 지위 향후 협의 등을 규정하고 있다. 협정을 이끌어낸 노동당의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잇달아 시리아에 골란고원 반환을 구두약속하는 등 중동 전지역 평화무드 조성을 위한 행보를계속했다.협정에 따라 96년 1월 팔레스타인측은 총선을 통한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95년11월 협정을 주도했던 이스라엘 라빈 총리가 암살되고 이듬해리쿠드당의 강경파 네타냐후가 총리에 당선되면서 기류는 표변했다.네타냐후는 97년 1월 요르단강 서안 27%에서의 철군을 마지막으로 가자지구와 서안에서의 이스라엘 철군을 전격 중단하고 오히려 이 지역에 유태인 정착촌을 증설하는 등 오슬로 협정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시작했다.공식협정이 없었음을이유로 골란고원 반환도 백지화했다.오랜 진통끝에 지난해 10월 미국 와이밀스에서 극적으로 협상이 재개됨으로써 요르단강 서안 13.1%에서의 이스라엘추가철군 등이 도출됐다.이 와이리버 협정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서안 40%,가자지구 60%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협정진행속도가 너무 늦다는 국내 온건파와 팔레스타인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강경파 사이의 알력을 견디다 못한 네타냐후가 지난해 12월 조기총선을 선언함으로써 협정 효력은 일시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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