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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창덕궁 논에서 ‘모내기 체험’

    [서울포토] 창덕궁 논에서 ‘모내기 체험’

    서울 창덕궁 청의정 주변 논에서 농업진흥청과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청의정은 창덕궁 유일의 초가지붕 정자로 과거 임금이 그해 농사의 풍년을 가늠하기 위해 창덕궁 내 논에서 직접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면 수확한 볏짚을 이용해 지붕을 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2018.6.7.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환희 “브라이언과 불화설? 거의 안 만나지만 가족”[화보]

    환희 “브라이언과 불화설? 거의 안 만나지만 가족”[화보]

    새 솔로 앨범 ‘뻔해’로 색다른 보컬 매력을 선보인 가수 환희와 bnt가 남양주 펜션121에서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데일리미러, 프론트(Front), 네이버 해외직구 해외편집샵 막시마(MAXIMA) 등으로 구성된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 촬영에서는 편안하면서도 모던한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보 촬영이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가장 먼저 솔로 앨범 ‘뻔해’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항상 애절하고 딥했던 발라드만 해오다가 이번 앨범에서는 가사도 쿨하고 달콤한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직설적이게 표현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피처링을 도와준 비투비 멤버 정일훈과 함께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아이돌 멤버를 물색하던 중 저와 톤도 잘 맞고 음색이 독특한 친구를 찾던 중 음색도 좋고 톤도 잘 변형해서 하는 친구를 찾은 거다. 사실 아이돌 친구들이 스케줄도 워낙 바쁘고 그래서 같이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 했는데 고맙게도 처음 곡을 듣자마자 너무 좋아해 주고 만족스러워해서 신기했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트렌디하면서도 하고 싶은 음악을 대중적으로 잘 푸는 후배 가수들과 콜라보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는 그는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냐는 질문에는 “콜라보 작업에는 활짝 열려있는 편이다. 후배 동생들과는 한 번씩은 다 해보고 싶을 정도로 관심도 많고 욕심도 많다. 얼마 전 방송에서 함께 만났던 크러쉬와도 해보고 싶더라.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비슷하더라”며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 가수가 있냐는 질문에는 베이빌론과 에일리를 꼽기도 했다. 데뷔 초와 변함없이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가진 그에게 남다른 관리 비법이 있냐고 묻자 “목에 무리 되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때 헬스를 좋아해서 운동을 많이 했었는데 사실 목에는 좋지 않더라. 아무래도 운동하는 과정에서 목에 힘을 주게 되니까 성대에 좋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살살하고 있다. 목에 좋다는 걸 챙겨 먹지는 않고 목 건강을 위해서 자기 전에 마스크를 쓰고 잔다. 항상 목 부분은 따뜻하게 하려고 하는데 아마 이 정도의 관리는 다른 가수들도 할 거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2009년 이후 줄곧 솔로 활동만 해온 그에게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활동 계획에 대해 묻자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활동은 사실 가을 겨울 시즌에는 줄곧 하고 있다. 겨울 때 한 번씩은 앨범을 내고 있고 공연도 하고 있다. 내년에는 데뷔 20주년이라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색다른 무언가를 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라며 기분 좋은 소식을 전했다. 곧 데뷔 20주년을 맞는 그는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 했구나 싶다.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이수만 선생님께 감사하고 대중 분들과 팬들에게 참 감사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지금까지 오래 할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가요계도 많이 바뀌었는데 제가 시작할 때보다도 음악적으로 무언가를 더 많이 보여줄 수 있게 돼 좋은 것 같다”고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브라이언과는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는 “브라이언은 가수되기 전부터 숙소 생활할 때부터 함께 살았으니까 벌써 22년 된 친구다. 이제는 가족이라 하는 게 맞다. 워낙 자주 같이 있었다 보니 요즘에는 평소엔 거의 안 만난다. SNS로 소통하다가 앨범 작업할 때만 만나고 있다”고 답했다. 가수 활동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콘서트를 할 때 몸이 불편하거나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불화가 있었을 때 제 노래를 듣고 위로받는다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사실 오랫동안 노래를 해오다 보니 지쳤던 적도 많다. 근데 제 노래를 듣고 힘을 얻는다는 말 한마디에 정말 힘이 나고 그동안 제대로 해왔구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오랜 가요계 활동, 친하게 지내는 동료 가수들이 있냐고 묻자 “원래는 제 또래 친구들과 친했었다. 휘성, 린, 거미 등 많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자의 생활이 생겨버려서 막 불러내서 놀지 못하겠더라. 결혼한 친구들도 있으니까 프라이버시도 지켜줘야 하고 예전과는 생활이 아예 달라졌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숱한 노래를 불러왔던 그에게 가장 애착 가는 곡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래’라는 곡. 작년에 혼자 냈던 곡인데 그 당시엔 활동을 못 했는데 이 곡을 좋아해 주시는 마니아층이 있다. 제가 만든 것도 있지만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보통 발라드와는 다른 느낌이라서 많은 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활동을 못 해서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슴 절절하게 만드는 발라드 곡을 부르는 그에게 가슴 아픈 사랑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있다”라고 답하며 “몰입할 때는 모든 노래가 내 이야기는 아니니까 내 상황을 상상하면서 부르지는 않는다. 가사 속의 스토리에 빠져서 부르려고 한다. 사실 이 질문은 굉장히 많이 받는다. 워낙에 슬픈 노래를 많이 부르다 보니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사실 곡 자체로 해석해서 부르는 거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연애와 결혼 생각에 대해 묻자 “주위에서는 제가 연애하는 걸 보고는 의외라고 하더라. 서른 정도부터는 많이 바뀐 것 같다. 상남자라고들 많이 생각하시는데 사실 올인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굉장히 다정다감하고 기념일도 잘 챙긴다. 손편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자주 썼다”며 “전에는 결혼 안 한다고 말하고 다니고 그랬는데 친구들이 정말 많이 결혼했다.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도 있다”며 솔직한 대답을 전했다. 최근 플레이리스트에 대해 묻자 “2000년 초반에 유행하던 R&B 많이 듣는다. 힙합 노래도 좋아해서 켄드릭 라마 노래도 많이 듣는다. 특이한 건 발라드는 거의 안 듣는다.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이라 그런지 안 듣게 되더라. 발라드를 제외한 다른 장르들은 가리지 않고 듣고 있다”고 답했다. 음악을 제외한 최근 관심사에 대한 질문에는 ““요즘 배워보고 싶은 게 생겼다. 사실 어깨 탈골 때문에 수상 스포츠는 거의 못 하고 있는데 플라이보드는 정말 배워보고 싶다.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있다. 또 연예인 농구팀 신영이엔씨에 소속돼 있는 데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전했다. 예전 활동 때랑 사뭇 달라진 팬들과의 소통 방식은 어떠냐고 묻자 “20년 전에는 인터넷 발달이 지금 같지 않아서 요즘처럼 소통하는 방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더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여러 가지가 많이 발달해서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많아진 건 너무 좋지만 요즘 활동하는 친구들을 봤을 때 조금 안타까운 부분들도 있다”며 SNS 장단점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찾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팬분들이 있는데 사실 그런 걸 바라고 음악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만 전해주셔도 정말 감사하다. 잊지 않고 계속 응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노래 순위는 따지지 않기 때문에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콘서트도 할 예정이니 지속해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트럼프, 2차 북미회담 장소로 개인 별장 ‘마라라고’ 제안 검토 중”

    “트럼프, 2차 북미회담 장소로 개인 별장 ‘마라라고’ 제안 검토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별장인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가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후속 회담이 이어지면, 자신의 별장인 마라라고 리조트를 2차 회담 장소로 제안할 수도 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라라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 정상회담을 했던 곳으로 ‘겨울의 백악관’으로도 불린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후속회담을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하자고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뜻이 일치할 경우 2차 정상회담은 아마 가을에 열릴 것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번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무기 포기에 대한 시간표를 약속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회담장 밖으로 걸어나올 각오가 돼 있으며, 북한에 어떤한 양보도 제공하지 말 것을 조언받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고위험이 부담되는 이번 회담은 이틀간 이어지거나 아니면 불과 몇 분 만에 끝날 수도 있다”며 “회담이 잘 굴러간다면 12일 당일 추가 행사가 있을 수도 있고 13일에도 추가 일정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백악관 관계자도 비핵화 관련 후속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했다.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에 “한번의 회담, 한 번의 대화보다 더 있을 수 있다”며 “핵 협상에는 2번, 3번, 4번, 5번의 회담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고 의회전문매체 더 힐 등이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충일 추모헌시 낭송한 한지민…박근혜 정부 땐 현빈·이서진

    현충일 추모헌시 낭송한 한지민…박근혜 정부 땐 현빈·이서진

    배우 한지민이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추모헌시를 낭독했다. 한지민은 6일 오전 10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해인 수녀의 추모헌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를 낭독했다. 한지민은 “나라와 민족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님들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의 뜰에도 장미와 찔레꽃이 피어나는 계절 경건히 두 손 모아 향을 피워 올리고 못 다한 이야기를 기도로 바치는 오늘은 6월 6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서로 먼저 고백하고, 서로 먼저 배려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 땅에서 내가 먼저 길이 되는 지혜로, 내가 먼저 문이 되는 겸손으로, 깨어사는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지민은 “분단과 분열의 어둠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희망으로 물들어가는 이 초록빛 나라에서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선이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며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늘 우리 곁에 함께 계셔주십시오. 새롭게 사랑합니다. 새롭게 존경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추념식에는 군 복무 중인 지창욱, 임시완, 강하늘, 주원 등이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박근혜 정부였던 2015년 제60회 현충일 추념식에는 배우 현빈이 헌시 ‘옥토’를 낭송했다. 당시 현빈이 헌시를 낭독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생중계 방송화면에 잡혀 주목받기도 했다. 2016년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배우 이서진이 추모헌시 ‘무궁화’를 암송하며 순국선열들을 추모했다. 당시 군 복무 중인 가수 이승기는 특전사 군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다른 4명의 군인과 함께 애국가를 제창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지민, 현충일 추념식 헌시 낭독 “깨어 사는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한지민, 현충일 추념식 헌시 낭독 “깨어 사는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배우 한지민이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모 헌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를 낭독했다. 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이 개최됐다. 현충일 추념식이 서울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것은 1999년 이후 19년 만이다. 올해 ‘428030,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거행되는 현충일 추념식은 현충원부터 호국원, 민주묘지, 최근 국립묘지로 승격된 신암선열공원까지 10개 국립묘지의 안장자를 모두 합한 숫자로 주제를 정했다. 추념식은 국가유공자와 유족, 각계대표, 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추념행사,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식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추념식에서는 한지민이 이해인 수녀의 추모헌시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를 낭송했다. 한지민은 “나라와 민족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님들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의 뜰에도 장미와 찔레꽃이 피어나는 계절 경건히 두 손 모아 향을 피워 올리고 못 다한 이야기를 기도로 바치는 오늘은 6월 6일”이라며 낭독을 시작했다. 이어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서로 먼저 고백하고, 서로 먼저 배려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 땅에서 내가 먼저 길이 되는 지혜로, 내가 먼저 문이 되는 겸손으로, 깨어 사는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한지민은 “분단과 분열의 어둠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희망으로 물들어가는 이 초록빛 나라에서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선이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며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늘 우리 곁에 함께 계셔주십시오. 새롭게 사랑합니다. 새롭게 존경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감사합니다”라고 한 후 무대에서 내려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쟁기질하는 풍경

    [이호준의 시간여행] 쟁기질하는 풍경

    뜻밖의 풍경이었다. 지난 초봄 어느 산골 마을을 지나다가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나이 지긋한 농부가 소를 어르며 비탈밭을 갈고 있었다. 경운기나 트랙터가 들어가기 어려워 보이는 경사진 밭이었다. 어찌 보면 평범한 풍경인데, 생각해 보면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장면이었다. 마치 1970년대쯤의 흑백사진 한 장이 거기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 이곳은 아직도 소를 채근하는 농부의 목소리로 봄을 여는구나. 잊고 있었던 풍경들이 하나 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무들이 여린 연두잎을 내밀 무렵 들녘에는 소를 모는 농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는 했다. 봄은 쟁기의 보습을 타고 논으로 밭으로 춤추듯 왔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은 봄바람의 간지럼에 저도 모르게 눅지근하게 풀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 땅에 그대로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었다.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는 땅의 속살을 끄집어내어 햇볕과 바람 아래 널어 두는 것으로부터 한 해 농사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양분을 내어준 땅거죽을 갈무리하여 쉬게 하고, 힘을 비축한 속살을 불러내는 게 바로 쟁기질이다. 농부들은 추수가 끝난 늦가을부터 새 봄의 농사를 준비했다. 보습이 녹슬지 않도록 잘 챙겨 두는 것은 물론 겨우내 지극정성으로 소를 돌봤다. 쇠죽을 끓일 때마다 쌀겨를 듬뿍 넣고 사람도 아껴 먹는 콩으로 보신을 시키기도 했다. 겨울에 잘 먹여 둬야 봄에 힘을 잘 쓰기 때문이다. 남녘으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오면 농부는 살이 두둑하게 오른 소를 앞세우고 논밭으로 나갔다. 멍에를 얹고 쟁기를 지운 다음 “자! 올해도 잘해 보자” 하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겨울에 새끼를 낳은 암소는 안타까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엄마를 따라 밭으로 나온 송아지는 쟁기질을 하는 내내 따라 다니고는 했다. 아무 소나 쟁기를 끄는 게 아니듯이 농부도 아무나 쟁기질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쟁기질에 서툰 사람은 소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삐뚤빼뚤 땅거죽만 벗겨 놓고 말기 십상이었다. 보습을 적당히 대어 제대로 갈아엎지 않으면 쟁기질을 하나 마나다. 그렇다고 보습이 땅에 박혀 버릴 정도로 깊이 찔러 넣으면 힘만 빠지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와의 교감이었다. 좋은 농부는 소와 대화를 나눌 줄 알았다. 소를 구경하기 어려운 궁벽한 산골이나 놉을 사기도 어려운 집에서는 아내가 소가 되고 남편이 쟁기잡이가 되어 밭을 갈기도 했다. 원래는 작물 심은 밭의 이랑을 돋울 때 다른 작물을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람이 끌었던 것인데, 어느덧 가난의 상징이 된 것이다. 요즘은 사람이 끄는 쟁기질은커녕 소가 끄는 쟁기질도 보기 어렵다. 어지간한 벽지, 손바닥만 한 논밭도 기계가 갚아엎는다. 소를 거두는 것도 힘들지만, 쟁기질을 할 만한 근력을 가진 농부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경운기를 몰 능력마저 안 되면 눈물을 머금고 묵정밭을 만드는 수밖에. 이제 쟁기질하는 모습을 보려면 산골짜기 비탈밭이나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다랑논을 찾아가야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농촌에 갈 때마다 쟁기질이 사라진 풍경은 소나무가 빠진 산수화처럼 허전하기 그지없다. 세상은 앞으로 달려가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선천적 그리움증’이 더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 “태화강을 국가정원으로” 울산 시민의 염원

    울산 태화강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해 줄 것을 희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이 뜨겁다.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 범시민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0월 24일 시작해 22만 4000명으로부터 받은 서명부를 5일 울산시에 전달했다.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1960년대 중반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 부작용 탓에 1990년대 중반까지 죽음의 강으로 여겨졌다. 성장통으로 신음하는 태화강을 살리려고 지방자치단체, 시민, 기업, 시민·환경단체는 10여년의 세월을 환경 개선에 바쳤다. 이런 노력으로 태화강 수질은 1980년대 산소요구량(BOD) 6등급에서 1등급으로 좋아졌다. 자취를 감췄던 1급수종 동식물도 돌아왔다. 현재 어류 73종, 조류 146종, 포유류 23종, 양서·파충류 30종, 식물 632종 등 1000여종이 태화강에 살고 있다. 봄·여름·가을 꽃과 식물에서 내뿜는 향기가 태화강 일원을 뒤덮는다. 값진 성과에 힘입어 태화강은 지난해 대한민국 20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다. 한국인이 꼭 가 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엔 새 축제인 아시아버드페어(ABF)도 열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또 지난 4월 13~21일 열린 ‘2018 태화강 정원박람회’에는 55만 3000여명이 찾았다. 지난달에는 루마니아 대사를 포함한 24개국 주한 대사관 직원과 외신기자 40여명이 태화강을 둘러보며 생태환경에 감탄을 쏟아냈다. 산림청은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9월 안에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확정 땐 관리비를 연간 30억~40억원씩 지원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이영애 주연 ‘이몽’ 건국 100주년 기념 2019년 방송 확정 ‘첩보 멜로’

    이영애 주연 ‘이몽’ 건국 100주년 기념 2019년 방송 확정 ‘첩보 멜로’

    배우 이영애가 캐스팅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첩보 멜로 드라마 ‘이몽’이 2019년 방송을 확정짓고 건국 100주년 기념 드라마로 도약한다. 드라마 ‘이몽’은 일제강점기 경성과 만주, 그리고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펼치는 첩보 멜로 드라마로 독립투쟁의 최선봉이었던 비밀결사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과 일본인에게 양육된 조선인 외과의사 이영진(이영애 분)이 상해임시정부의 첩보요원이 되어 태평양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활약하는 블록버스터 시대극이다. 김원봉 역을 포함한 주요 배역들의 캐스팅이 진행 중이며 올 가을 몽골, 상해 등의 로케이션을 시작으로 본격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몽’의 촬영이 코앞에 다가오자 아시아 전역 및 미주, 이란과 중동 등에서까지 판권 문의가 뜨겁다는 전언. 더욱이 2019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민족영웅들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 ‘이몽’에 대한 국내외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태양의 후예’의 제작총괄로 최근 ‘이몽’ 프로젝트에 합류한 한석원 부사장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몽’은 다가오는 2019년, 글로벌 프로젝트의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건국 100주년 기념 드라마에 걸맞게 국내외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퀼리티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건국 100주년 기념 드라마 ‘이몽’은 현재 캐스팅 막바지에 있으며, 2019년 전 세계 방송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구래동의 역사·미관 한눈에 “가마지천 벽화향기 따라 걸어볼까”

    구래동의 역사·미관 한눈에 “가마지천 벽화향기 따라 걸어볼까”

    경기 김포시 구래동의 역사·미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마지천 교대 벽면의 타일벽화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김포시는 지난 31일 구래동 대표 산책로인 가마지천 내 교대 벽면에 “구래동”을 주제로 한 타일벽화 조성공사를 완료했다고 5일 밝혔다. 가마지천을 잇는 교량 4곳, 8개 벽면에 조성된 타일벽화는 색다른 테마로 타일을 구성해 볼거리가 다양하다. 가마지천을 찾은 인근 아파트 주민은 “자칫 우범지대가 될 수 있는 교량 하부에 벽화를 조성해 산책할 때 즐겁고 새롭다”며, “특히 구래동 역사와 아름다운 관광지 사진을 담은 1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규열 구래동장은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쾌적하고 아름다운 벽화조성을 통해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주고 있다”며 “주민들이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곳은 구래동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필름을 모티브로 과거와 현재를 구성해 표현했다. 과거 1970년대 시가지 모습부터 2008년 당시 구래리 모습과 2013년 구래동주민센터 개청 시기, 현재 도시화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 연탄이 그득하게 쌓인 골목길을 누비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반대편 교대 우측에는 문수산과 김포아트빌리지, 대명항 등 김포 주요 관광지 13곳을 담아 신도시주민들에게 가볼만한 곳을 알려주고 있다. 구래동 초·중·고 7개 학교 학생들의 작품 164점이 교대 좌우 벽면에 벽화로 조성돼 있다. 구래동의 가볼만한 곳과 김포의 큰 축제로 자리잡은 호수&락페스티벌, 구래동 대표 꽃인 해바라기 등 ‘구래동’을 주제로 한 다양하고 특색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특히 가마지천 3교는 호수공원과 연계해 가장 많은 주민들이 찾는 장소다. 벽화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기 그림을 발견하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가마지천4교는 봄·여름·가을·겨울 ‘4계’를 감각적이고 추상적인 아트타일 벽화로 표현했다. 새싹이 움트는 봄은 역동적인 붉은색, 초록 잎사귀로 뒤덮인 여름은 짙은 녹색, 곡식이 무르익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황금빛 갈색, 눈 덮인 겨울은 회색으로 꾸몄다. 가마지천 5교는 구래동의 대표 꽃인 ‘해바라기’를 주제로 활짝 핀 구래동과 아홉 번이라도 다시 와서 살고싶은 도시 구래동을 표현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하늘님, 하늘 좀 어떻게 해주세요-‘조율’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하늘님, 하늘 좀 어떻게 해주세요-‘조율’

    봄이 가는 게 아쉽지 않다면 이건 좀 비정상의 상황이다. 청소년들이야 봄이 간다고 뭐 그리 아쉬울 게 있을까마는 중장년들조차 그렇다면 이건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올해 처음으로 봄이 빨리 갔으면 싶었다.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때문이다.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이 되면 먼지 걱정은 좀 덜하지 않을까?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올겨울은 정말 ‘삼한사미’(三寒四微)였다. 사흘 춥고 난 후 날이 풀렸다 싶으면 여지없이 공기가 나빠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봄이 돼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기 상태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공기가 안 좋은 날 어쩌다 황사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고 나면 밤에 목이 칼칼해졌다. 외출할 때 옷을 입고 나가듯 마스크를 챙기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이 노래가 나오던 1990년대 초만 해도 20년 후에 내가 이런 걱정을 하면서 살 줄 몰랐다.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 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도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 그 옛날 하늘 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 드높았던 파란 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하략)-한영애 ‘조율’(1992ㆍ한돌 작사·작곡) 사실 이 노래는 한영애의 가창이 하도 화려해서 가사 내용을 잘 뜯어보게 되지 않는다. 이미 ‘누구 없소’나 ‘코뿔소’ 같은 독특한 가사의 노래로 인기를 모은 가수라 ‘잠자는 하늘님…’ 운운하는 가사도 그저 가수의 카리스마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아침마다 대기 질을 점검하는 시대가 되니 이 노래는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 ‘공해’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이 본격화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다. 1982년에 ‘공해문제연구소’란 환경운동 단체가 발족돼 경제성장과 산업화만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 사회의 기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정부 대책이 나온 것도 그 즈음이다. 1988년에 서울올림픽을 치르려다 보니 대기의 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됐던 거다. 하지만 ‘환경보전 5개년 계획’에도 불구하고 1988년까지 대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자가용 2부제, 공장 가동시간 축소 등 모든 대책을 총동원하고서야 겨우 국제 기준을 맞추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 정부가 인공강우로 매연을 씻어 낸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들이 슬슬 생겨나던 1990년대 초에 이런 노래가 충분히 나올 만했다. 물론 대중가요 판에서 이렇게 희한한 노래를 짓는 사람이 아주 희귀한 존재였다. 말하자면 민중가요 계열의 노래를 지어 온 한돌 같은 사람이었으니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동화 같은 발상이 정말 기발하다. 하늘이 예전처럼 맑지 않은 것이 하늘님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하늘님에게 빨리 일어나 하늘빛을 예전처럼 조율해 달라고 조른다. ‘터’, ‘개똥벌레’ 등 동요풍의 노래를 지어 온 한돌다운 가사다. 이 노래를 한돌이 직접 부르는 버전으로 들어 보면 가수치고는 지독하게 어눌하고 기교 없이 부르는 그 가창이 동요다운 질감을 더욱 확실히 느끼도록 해 준다. 한영애 버전의 ‘조율’은 한돌이 지은 원곡의 가사를 많이 수정한 것이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부분은 동일하지만, 빠르게 주워섬기는 부분은 한영애가 거의 다시 쓴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원곡에 비해 환경 문제와 생태주의적인 내용은 좀더 선명하게 강화됐다. 이래저래 이 노래는 명곡이 됐다. 특히 오늘 듣기에는 딱 좋다. 오늘은 환경의 날이다.
  • ‘판문점 선언’ 이행 본궤도… “개성공단 통해 상시 대화 가능”

    ‘판문점 선언’ 이행 본궤도… “개성공단 통해 상시 대화 가능”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이어 ‘新경제구상’ 남북 공동연구 의견 나눠 금강산서 적십자회담… 관광 재개 기대 북미회담 결과가 남북 관계 최대 변수 6·15 공동행사는 개최 않기로 가닥남북은 1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3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로드맵을 만들었다. 이날 양측은 3개 분야(장성급 군사회담 오는 14일, 체육회담 18일, 적십자회담 22일)의 회담 날짜를 나흘 간격으로 잡았는데, 모두 12일 열릴 북·미 정상회담 이후다. 당장은 북·미 회담 성패에 남북 관계 진전이 달려 있다는 의미다. 최악의 경우 이들 회담이 무산될 수도 있지만, 현재 북·미 간 우호적인 분위기대로라면 남북 관계도 순풍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설치하기로 합의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장소를 이번 회담에서 ‘개성공단 내’로 구체화한 것이 주목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재가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관련해 “상시적 대화가 가능하고, 남북 간에 긴급 연락채널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 오해를 줄이고 긴급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는 530여억원을 들여 2009년 말 완공된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 마련될 전망이다. 특히 오는 15일까지 남측 사전점검단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하면서 공단이 폐쇄된 2016년 2월 이후 1년 4개월 만에 남측 인력이 방문하게 됐다. 하지만 이곳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려면 역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 대북 제재가 완화돼야 한다. 적십자회담 장소가 금강산으로 정해진 것도 주목된다. 장기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 진전 상황에 따라 금강산 관광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남측은 이번 적십자회담을 통해 2005년 10월 ‘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의 상태 등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장성급 군사회담도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 비무장화는 양측이 합의할 수 있지만 북·미 간에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교환하는 가운데 군사적 긴장이 해소될 경우 한·미 간 군사훈련이나 미국의 전략자산(핵항공모함·핵잠수함·B2스텔스폭격기·F22스텔스전투기 등) 전개 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6·15 남북공동행사는 남북 모두 필요성을 공유했지만 촉박한 준비 일정을 고려할 때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보름간 정부, 정당, 민간단체, 종교계 등 참가 대상을 선전하고 공연·토론회·전시회 등을 준비하기는 힘들다는 예측이 많았다. 이에 대해 남북은 향후 문서교환 형식으로 다른 방안을 포함해 협의하기로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번엔 (6·15 남북공동)행사 자체는 개최하지 않는 방향 쪽으로 일단은 의견을 모았다”며 “구체적인 날짜, 내용,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6월 15일 전후해서 남이나 북이나 여러 가지 일정들이 있다. 구체적인 날짜나 장소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동해선·경의선의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산림협력, 북측 예술단의 가을 공연 등은 실무회담 날짜를 확정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특별한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며 시급한 일정부터 먼저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김우종 ▲인천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해병 6기로 참전·전사 (군번 9210662) 김우종(17세 참전·18세 전사)1933년 4월 10일 : 인천 영종도 중산리 출생1947년 : 인천영종국민학교 졸업(제24회)1950년 12월 18일 : 인천중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인천을 출발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감.1951년 1월 24일 : 마산에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해 참전.1951년 8월 31일 : 강원도 월산령 김일성고지에서 전사.아랫글은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월간 서해문화 2002년 1월호에 ‘불멸의 꽃!’으로 기고한 글이다. 고(故) 김우종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김우종 참전기’를 대신한다.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 학생 사연) 인천학생·스승 6·25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1996년 7월 15일 창립 이래로 그동안 제보를 받거나 혹은 기록을 찾아 많은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을 찾았으나 아직도 미확인 6·25 참전 전사 인천 학생들이 많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확인된 전사자의 묘지를 기록에 담기 위해 본 편찬위원회에서는 그 기록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여러 차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은 바 있으며 전사자 위패 또한 일일이 확인하였다. 인천 각지에 흩어져 잠들고 있는 6·25 참전 전사 학생들에 대하여 월간 서해문화에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학생’으로 연재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점차 잊혀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들이 한 번쯤 함께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하는 것이 뜻 있는 길이라 기록한다.고향에 돌아온 6·25 전사 인천 학생들 유골 1950년 6·25 사변 발발 후 전쟁이 한창일 때 전사한 전사자들은 그 당시 전투가 워낙 치열했기에 정부에서는 일정한 묘지를 정하지 못하고 유골을 직접 유가족에게 전하였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된 군대 갔던 아들들의 부모님들께서는 가슴이 베이는 마음으로 대성통곡하시고는 집 근처 아들이 놀던 양지바른 동산에 곱게 묻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들은 거의 모두 돌아가시고 그 전사자의 형제들마저 노년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전사자들의 형제들은 5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6·25 사변 때 전사한 동생이나 형의 무덤을 더 이상 관리하기가 어려워 자신들의 마음이 무겁다면서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길을 본 편찬위원회에 문의해 오는 것이었다. 육군본부 민원실에 알아보았던 바 이장(移葬) 양식(월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 게재)을 참고하여 대전 현충원까지 모시고 오면 대전 현충원 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첫 번째 6·25 전사 인천 학생 유골 이장 국방부 이장 양식에 따라 대전 현충원 문 앞까지 가기까지의 일은 유가족 입장에서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 유가족이 국립묘지에 이장할 수 없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다. 이에 본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원장은 국방부에 타진하여 이장 방법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에 자세히 게재한 바 있다.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에 있는 해병 6기 전사자 김우종의 묘를 2001년 5월 27일에 국립묘지로의 이장하는 첫 번째 이장 계획을 수립하였다.故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 고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12월 18일 새벽에 김우종이 인천 영종도 집을 떠날 때 김우종 아버지는 “그 무거운 책은 왜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때 김우종은 “아버지 염려 마세요. 우리들은 남하하더라도 공부는 계속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김우종은 영종 나루터까지 걸어가서,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대원들과 같이 나룻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가 인천축현국민학교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가서, 해병대 신병 모집에 응하여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였다.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묘 이장1953년 가을 아들의 전사통지서와 유골함을 받고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부친은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마을 뒷산(인천 영종도 중산리 월촌) 양지바른 곳에 묻으시고 해마다 아들을 기리는 제를 지내주셨다. 1998년 3월 29일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김우종 유가족의 협조하에 국방부와 대전 현충원 등에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이장하는 것에 대하여 승인을 받는 노력을 하였다. 2001년 5월 27일 인천광역시 영종도에 묻혀 있는 김우종 전사자의 무덤을 열어 유골을 수습한 후 대전 국립 현충원 제1 묘역 제27구역 16129에 안치하였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의 이장 사업 계획 인천 학생·스승의 6·25 참전 역사를 발굴하기 위하여 창립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김우종 전사자와 같이 아직도 고향 땅에 묻혀 있는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옮기는 이장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1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6년제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 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인천중학교 4학년 김우종은 마산까지 저의 아버지와 같이 내려가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여 전사하였습니다.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이 학창시절을 보낸 옛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의 넓은 운동장은 아직도 김우종을 기억합니다. 김우종과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입대하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김우종이 공부했던 제물포 고교 운동장 한편에 김우종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큰아들인 이규원 치과 원장(6·25 참전사편찬위원장)이 사비 4억원을 들여서 6·25 전사 인천학생스승 추모관을 건립하여 인천 중구청에 기부채납하려는 제안을 인천 중구청은 거절하였다. 추모관 기부채납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현 85세)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참전 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초대 관장
  • 가족에 다 주었던 77세 여중생의 ‘자유’…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가족에 다 주었던 77세 여중생의 ‘자유’…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감동 전달한 ‘조그만 사랑 노래’ “영어도 배우고 공부에 자신감”“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열린 ‘개교 66주년 시낭송 대회’에서 황동규 시인의 ‘조그만 사랑 노래’의 시구가 낭랑한 음성을 타고 울려 퍼졌다. 낭송 주인공은 중학교 2학년 5반 학생인 문숙자(77·여)씨였다.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시를 또박또박 읊어 나가는 문씨의 목소리는 묵직했다. 한편으로는 비장감까지 느껴졌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지만 실력은 시 낭송 전문가 못지않았다. 객석에서는 경외의 의미를 담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낭송이 끝나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행사 중에 절대 손뼉을 치지 말아 달라”는 사회자의 당부는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박수를 꺾지 못했다. 일성여중고는 성인 여성을 위한 학력 인정 2년제 학교다. 형편이 가난해, 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움의 때를 놓친 여성들이 이곳에서 중·고등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만 432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날 만학 여중생 16명이 시낭송 대회에 나섰다. 최고령은 77세인 문씨였고, 평균 나이는 62세, 최연소는 58세였다. 이들이 낭송한 국내 시는 한 소절만 들어도 제목을 맞힐 수 있는 익숙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60~70년 세월을 품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정갈한 시구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시 낭송에 앞서 만난 문씨는 마치 10대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문씨는 “오늘 무대를 위해 수백번도 더 연습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문씨는 시 ‘조그만 사랑 노래’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로 ‘자유’를 꼽았다. 그는 “언뜻 이별시처럼 보이지만, 박정희 군사정권 당시 자유를 말하지 못했던 세대였던 시인이 이 시에서 자신이 느낀 씁쓸한 한을 풀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석한 뒤 “한평생 자식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나도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며 시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다. 남편은 2016년 가을 무렵 떠나보냈다. 문씨는 10살도 채 안 됐던 1950년 6·25전쟁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공부’를 해 보질 못했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처음으로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문씨는 “여든이 다 돼 영어를 배우고 있다”면서 “이젠 공부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날 시 낭송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했다. 상장과 꽃다발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 문씨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서울포토] ‘누가누가 잘 심나~’…즐거운 모내기 체험

    [서울포토] ‘누가누가 잘 심나~’…즐거운 모내기 체험

    30일 오전 서울 도봉구 도봉동 무수골 논체험장에서 열린 ‘2018 전통 모내기 체험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즐겁게 모를 심고 있다. 도봉구는 매년 구민들에게는 추억여행, 어린이들에게는 농촌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내기 행사를 열고, 가을에는 벼를 수확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포토인사이트] ‘초딩들의 전통 모내기 체험!’

    [포토인사이트] ‘초딩들의 전통 모내기 체험!’

    30일 오전 서울 도봉구 도봉동 무수골 논체험장에서 열린 ‘2018 전통 모내기 체험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즐겁게 모를 심고 있다. 도봉구는 매년 구민들에게는 추억여행, 어린이들에게는 농촌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내기 행사를 열고, 가을에는 벼를 수확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발렌시아가 135만원에 내놓은 신상 티셔츠에 깜놀한 이유

    발렌시아가 135만원에 내놓은 신상 티셔츠에 깜놀한 이유

    사진을 보고 조금 당황했을지 모르겠다. 고급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무려 935 파운드(약 135만원)에 판매하고 있는 2018 가을용 남성 인디고 티셔츠-셔츠다. 앞에 체크 무늬 셔츠를 핀으로 꽂아 놓은 듯한, 그저 보통 티셔츠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난감한 반응을 소셜미디어에 쏟아놓고 있다. ‘madeyouthink.101’은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들이 인간을 놓고 사회적 실험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적었다. 코빈 텔리그만이란 이용자는 “고급 패션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구찌, LV 등이 이런 식으로 돈을 빼앗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고, 이렇게 하면”이라고 적으며 놀라워했다. 비키 히검이란 여성은 “이게 티셔츠라고? 이게 티셔츠라고? 발렌시아가는 스마트/캐주얼이라며 이 옷의 가격을 935 파운드로 내걸었다”고 경악했다. ‘에픽 이샤’는 “깜놀! 이건 독창성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다. 이런 거다. 800수 짜리 다기능 티셔츠라면, 투탕카멘왕이 사후에 입으려고 걸쳤던 옷에서 발견된 섬유 몇가닥에서 나온 이집트 순면 100%로 만들었다면 1300 달러 값어치가 있다”고 비아냥댔다. 발렌시아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티셔츠는 두 가지 옵션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드레이프(drape) 효과다. 해서 사람들은 큰 돈 안 들이고 나름의 패션을 재창조하겠다고 나섰다. 마이크란 유저는 “이봐 발렌시아가, 난 그냥 셔츠 두 벌로 수천 달러 안 들이고 만들었어용!”이라고 놀렸다. 애디 시오네란 여성도 “이봐 발렌시아가, 난 캐주얼로 진짜 멋을 만들었어요. 거의 공짜로”라고 비아냥댔다.영국 BBC의 뉴스비트는 발렌시아가가 정말로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며 회사와 접촉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박미경의 사진 산문] 풍경의 품에 건 사진

    [박미경의 사진 산문] 풍경의 품에 건 사진

    “사진이 바뀌었어요.”청운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교문에서 달려 나온 남자아이가 말을 건다. 건너편 갤러리 외벽에 걸린 사진을 말하는 거다.류가헌이 통의동 한옥 골목에서 청운동 청운초등학교 앞으로 이전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바로 교문 앞 갤러리를 바빠서 못 왔다는 건 서운하지만, 이 어린이에게 사진 전시장으로서의 정체는 알린 모양이다. 사진 한 장의 힘으로 일상의 속도와 거리의 정서를 흔들어 보겠노라 건물 외벽에 설치한 것이 이름하여 ‘풍경의 품에 건 사진’이다. 전체 6층 건물 외벽에서 가로 5미터의 커다란 사진이 일정 기간마다 바뀐다. 새삼 학교로 들어가 보니 사진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풍경의 품에 걸려 있다. 운동장에서도 보이고, 철봉에 매달려서도 보이고, 교문을 나설 때도 제일 먼저 보인다. 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바라보며 자란 ‘큰 바위 얼굴’처럼 아이들의 유년에 상(象)으로 맺힐 걸 생각하자 외벽의 사진을 다시금 올려다보게 된다. 사진의 내력은 이와 같다. 비스듬히 중절모를 쓴 초로의 농부와 멀찍이 소 한 마리. 1982년 10월 경북 안동에서 권태균 작가가 찍었고, 제목은 ‘소 주인’이다. 저 멀리에 하늘과 산의 능선, 강변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안개가 자욱하다. 강변의 나무 한 그루는 안개 속에서도 형상을 잃지 않고 또렷이 서 있고, 점층적으로 가까워지며 소도, 볏단도, 그리고 사내도 서 있다. 1980년대를 저리 주름진 초로의 얼굴로 서 있으니, 사내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을 것이고, 6·25전쟁을 지나왔을 것이고, 자신이 경작한 논의 고랑 수보다 더 숱한 삶의 고랑들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다다른 1982년 봄여름 내내 등 뒤의 순한 짐승과 말없이 일을 하고 이제 볏가리 쌓아 올린 가을의 시간을 맞았다. 점퍼에 중절모를 쓴 말쑥한 차림은 그가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음을 드러낸다. 냇가에 내려선 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표상과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한 구도 속에 지나온 시절 잃어버린 서정이 가득하다. 이 흑백사진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이유다. 사진의 장소가 경상도니 의령이 고향인 권태균 선생은 자신의 사진 속 인물과 같은 질감의 사투리를 썼다. 즐겨 쓰던 중절모가 역시나 잘 어울렸다.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에 관한 작업을 줄곧 해온 선생은 ‘노마드-변화하는 1980년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 전시와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 등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한국인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의 정서를 사진적으로 구현했다’는 평을 들었으나, 2015년 1월 갑작스런 타계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올해는 3주기가 되는 해로, 그를 기리기 위해 대표작인 ‘노마드’ 시리즈 중 한 점인 ‘소 주인’을 갤러리 외벽에 내걸었다. 당시에는 찍는 이를 바라봤을 사진 속 인물의 시선이 이제는 사진을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를 향해 있다. 교문을 튀어나온 아이와도 눈을 맞추고 거리를 지나는 행인도 내려다본다. 세월이 지우고 우리가 잊은 것들을 사진은 기어코 기억해 언제고 그 버내큘러(vernacularㆍ토속)의 언어로 제 기억을 들려준다. 사진을 찍는 순간 사진가도 그 사진 속에 찍힌다. 이 사진은 1982년에 경북 안동에서 사진가 권태균이 찍었으나, 동시에 권태균도 찍혔다. 그래서 어느 때고 이 ‘소 주인’ 사진을 볼 때마다 울컥 그가 그립다.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369년 임나 설치?… ‘일본서기’보다 빠른 ‘고사기’에도 안 나온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369년 임나 설치?… ‘일본서기’보다 빠른 ‘고사기’에도 안 나온다

    일제는 서기 369년 신공(神功)왕후가 신라를 공격해서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해 562년까지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를 한국 점령의 명분으로 삼았다. 한국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라는 논리다. 지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흘려들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세기 전 일제가 그랬던 것처럼 막강한 국력의 중국이 만에 하나 ‘과거사 복원’을 주창하고 나선다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는 기록은 ‘일본서기’에 나온다.●일본서기에만 나오는 내용들 의문은 이런 내용이 ‘일본서기’에만 나온다는 점이다. 서기 369년에 신라를 공격해서 깨뜨리고 가야 전역을 점령해서 임나를 설치한 것이 사실이면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일제가 이에 대응해서 만들어 퍼뜨린 것이 이른바 ‘삼국사기 불신론’이다. 삼국사기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도 임나 운운하는 말이 일절 나오지 않자 삼국유사도 가짜로 몰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국사기 불신론은 일제가 한국을 점령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의 주요 논거 중 하나였다. 역사에서는 369년에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369년에 야마토왜가 신라를 공격해서 깨뜨리고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를 설치한 일이 실제 있었다면 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본서기의 369년조 기사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해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임나일본부’설은 물론 ‘임나=가야’ 따위의 논리는 다 허구가 된다. 그럼 서기 369년조의 기사, 즉 ‘일본서기’ 신공(神功·진구) 섭정 49년(369년)조의 기사를 살펴보자.●369년에 생긴 일 일본서기에는 이렇게 나온다. ‘49년 봄 3월, (신공왕후가) 황전별(荒田別·아라타와케)·녹아별(鹿我別·가가와케)을 장군으로 삼고 구저(久·백제사신)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건너가서 탁순국(卓淳國)에 이르러 신라를 습격하려 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군사 수가 적어서 신라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사백(沙白)·개로(蓋盧)에게 다시 상표를 올려 군사를 더 청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신공왕후는) 목라근자(木羅斤資)와 사사노궤(沙沙奴·두 사람은 그 성씨를 알 수 없다.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 장수이다)에게 정병을 주어 사백·개로와 함께 보냈다. 이들이 함께 탁순에 모여 신라를 공격해서 깨뜨리고 이로 인해 비자발(比自)·남가라(南加羅)·탁국(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 7국을 평정했다,야마토왜에서 황전별 등의 장군을 보내 신라를 공격해서 깨뜨리고 이로 인해 가야 7국을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신라를 공격해서 깨뜨렸는데, 가야가 점령당했다”는 이상한 논리다. 일본서기는 야마토왜군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곳까지 무인지경으로 휘몰아쳐 점령했다고 말한다. “이에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서 고해진(古爰津)에 이르러 남쪽 오랑캐인 침미다례(彌多禮)를 정벌하고 백제에 하사했다. 이에 백제왕 초고(肖古) 및 그 왕자 귀수(貴須)가 또한 군사를 이끌고 와서 모였다. 이때 비리(比利)·벽중(中)·포미지(布彌支)·반고(半古)의 네 읍이 자연히 항복했다”고 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에 나온다. 일본과 남한의 ‘임나=가야’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들을 모두 경상도와 전라도로 비정한다. 예를 들어 탁순은 대구 또는 창원이고 침미다례는 제주도 또는 전라도 강진이라는 식이다. 이를 입증하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이들 지명을 한국의 옛 지명과 비교해서 한 글자라도 비슷한 글자가 있으면 갖다 맞추는 식이기 때문이다. ●근초고왕 부자의 충성 맹세? 일본서기 신공왕후 조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백제왕 부자의 충성 맹세다. 일본과 남한의 역사학자들은 이 백제왕 부자가 근초고왕과 태자 근구수라고 주장한다. 일본서기는 백제왕 부자가 야마토왜의 장수들과 고사산(古沙山)에 올라서 신공왕후에게 맹세했다는 충성 맹세문을 싣고 있다. “만약 풀을 깔고 앉으면 불에 탈까 두렵습니다. 또 나무를 잡고 있으면 물에 쓸려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반석 위에서 맹세하니 영원히 썩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천추만세까지 끊이지도 않고 다함이 없이 서번(西蕃·오랑캐가 사는 땅)이라 칭하면서 봄가을로 조공하겠습니다.” 근초고왕 부자는 실제로 신공왕후에게 이런 충성 맹세를 했을까. 일본서기는 2년 후인 신공(神功) 51년(371)에도 백제왕 부자가 야마토왜에서 온 사신에게 “귀국(貴國·야마토왜)의 큰 은혜는 하늘처럼 무겁습니다. 어느 날 어느 때인들 감히 잊겠습니까? 성왕(신공왕후)께서 위에 계셔서 해와 달같이 밝으며 신(臣)이 아래에 있어서 산악같이 굳습니다. 영원히 서번(西蕃)이 되어 끝까지 두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다”라고 땅에 이마를 대고 맹세했다고 나온다. 일본서기의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야마토왜는 황제국이자 신공은 황제고, 백제는 야마토왜의 제후국이자, 근초고왕은 신하다. ●너무 다른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 그럼 일본서기의 이런 내용이 사실인지 살펴보자. 임나를 설치했다는 369년과 백제왕 부자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다는 371년 백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삼국사기를 살펴보자. ‘삼국사기 근초고왕 24년(369)조’는 고구려 고국원왕이 기병 2만으로 치양(雉壤)까지 내려오자 백제 태자 근구수가 고구려 군사 5000명의 목을 베었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해 11월에는 근초고왕이 한수(漢水) 남쪽에서 군사를 사열했는데, 모두 황제의 색깔인 황색 깃발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백제왕 부자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는 371년에 삼국사기는 근초고왕과 태자 근구수가 3만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근구수왕이 태자 시절 고구려 군사를 수곡성(水谷城)까지 추격하다가 “금일 이후 누가 다시 이곳까지 올 수 있겠는가”라고 감탄했다고 말한다.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백제왕 부자는 야마토왜의 사신들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충성을 맹세하는 ‘못난 왕가’지만 삼국사기의 근초고왕 부자는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중흥군주 일가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내용은 너무 다르다. 둘 중 하나는 거짓임에 분명하다. 어떤 게 거짓일까.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비교검증 어느 것이 사실인지를 살펴보려면 일본서기와 삼국사기를 비교 검증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야마토왜에서 신라를 깨뜨리고 가라 7국을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는 369년조 기사를 보자. 369년은 신라 내물왕 14년인데, 삼국사기는 기사 자체가 없다. 이 해 신라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다. 삼국사기가 일부러 기사를 빼먹은 것도 아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왜(倭) 관련 기사가 49회 나오는데, 이 중 33회가 침략 기사다. 모두 기록했다. 그러나 369년에는 아무런 기사도 없다. 야마토왜군이 신라를 공격한 일 따위는 없었다는 뜻이다. 또한 369년에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면 그해 가야왕실이 망했든지 최소한 가야국왕이 바뀌었어야 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제5대 이시품왕이 346년에 즉위해 407년까지 왕위에 있다가 아들 좌지왕에게 물려주었다고 나온다. 369년에 나라가 망하거나 왕통이 바뀌는 일 따위는 있지 않았다. 그럼 371년의 삼국사기 기사를 보자. 삼국사기는 근초고왕 부자가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고 말한다. 중국의 ‘위서’(魏書)는 근초고왕이 이 사실을 위나라 효문제에게도 알렸다고 말한다.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사건은 삼국사기와 중국의 위서에도 나오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근초고왕 부자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다는 일본서기 기사는 일방적 넋두리일 뿐이다. 더구나 369년에 임나를 설치했다는 이 기사는 일본서기보다 8년 전인 712년 편찬된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이 중요한 내용이 ‘고사기’에 실리지 않았을 리 없다. 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를 정벌하고 임나를 설치한 일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371년에 백제왕 부자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일 따위는 더욱 없었다. ‘임나일본부’도 ‘임나=가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 한국의 역사학자들도 ‘임나=가야’라면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정설로 떠받들고 있다. 이해 불가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는 지면개편 등으로 21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 金위원장 정상회담 발언 전문

    오늘 이렇게 4차 북남 회담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만나게 됐습니다. 4·27 선언으로 중요한 내용이 강조되는 것이, 이때까지 많은 합의가 나왔지만 철저히 책임지고 이행해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 북남이 이런 조건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고, 정례화를 해서 많은 분들이 기대를 가지고 있고, 또 열렬히 환영해 주고, 국제사회도 다 같이 환영의 박수를 보냈는데, 우리가 여기서 교착돼서 넘어가지 못하면 안 되고, 또 못 넘어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충분히 자주 만나서 얘기도 하고, 같이 이렇게 한곳에 앉아서 풀어 가다 보면 (이것이) 그때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에 대한 아주 중요한 실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서 생각되는 것은 (문 대통령이) 정말 그래서 북쪽을 이렇게 찾아왔는데, 처음은 아니죠. 4·27 때도 외신들이 꼽아 놓은 명장면 중의 하나가 10초 동안 깜짝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좋은 자리에서 맞이하고 또 제대로 된 의전차량으로 맞이해야 되는데, 장소도 이렇고, 또 사전에 비공개 회담을 하고서 제대로 모셔야 되는데, 잘 못해 드려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이야기가 좋은 결실로 꽃펴야 하고, 좋은 열매를 키워 가을 초 평양으로 오시면 대통령 내외분을 성대하게 맞이하겠습니다. 대통령도 바쁘게 보내셨죠. 얼마 전에도 미국에 다녀오시고…. (남북 정상회담은) 우리가 다시 한번 더 재확약하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마음이 가까워지고, 평양과 서울을 더 가까워지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이렇게 제안을 해놓고, 하루 만이죠? 하루 만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 4·27 역사적인 상봉을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누구보다 가을에 (문 대통령이) 평양에 오길 기대하고 있고, 정말 노력할 것이라고, 하여튼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결과도 만들고 또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다 합해져야 우리 북남 관계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으니까, 이게 다 연결고리, 연결된 문제니까…. 오늘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문제를 위해 바로 오늘 오신 것입니다. 중요한 북남 문제를 우리가 앉아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또 직접 진지한 자리에 나와서 논의를 하자고 했는데, 오늘 직접 (문 대통령이) 넘어옴으로써 아주 많은 사람들한테도 깊이 대화를 한다고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우리가 각자 책임과 본분을 다해서 준비하고 된다고 봅니다.
  • 文대통령 정상회담 발언 전문

    제가 가을에 평양에 가는 약속이 돼 있는데, 그때 평양을 방문해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또 남북의 두 정상이 이렇게 쉽게 ‘만나자’, ‘좋다’ 이렇게 해서 북쪽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것도 남북 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4·27 판문점 선언 이후에 아마 우리 남쪽의 언론과 북쪽의 언론들을 많이 보셨겠지만, 우리 한국 국민들도 그렇고 세계인들도 그렇고 정말로 남북 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구나’ 하는 그런 기대가 한껏 높아지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또 북·미 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평화 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아주 높아졌습니다. 우리 김정은 위원장님은 우리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가 높아졌고, 아주 기대도 높아졌고, 요즘 남북 젊은 사람들은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절만 봤는데, 지난번 회담에서 굉장히 많이 개선이 됐죠. 앞으로도 (기회를) 잘 살려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한 달 전입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났는데…. 도보다리에서 함께하고…. 지난번 4·27회담 이후에 우리 남북 간 대화에서도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고, 또 이렇게 조·미 정상회담이라는 아주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그런 문제를 협력해 나가는 그런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 준다는 차원에서 오늘이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남북 정상 간 마주 앉으려면 긴 시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필요할 때 이렇게 연락해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남북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나의 징표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협력해 나가면서 김 위원장과 둘 사이에 함께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이뤄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번 조·미 정상회담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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