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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록·재즈 마니아 “신촌에서 만나요”

    96년 우리 대중음악계에 뒤늦게나마 자리를 잡은 두 장르가 있다.록과 재즈다. 60년대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을 직설적 가사와 폭발적 리듬으로 풀어낸 록과 19세기말 노예해방이 진행되면서 흑인들의 울분이 아프리카 토속리듬에 섞여 형성되기 시작한 재즈.록은 너무나 젊은 음악이고 재즈는 한과 우울의 음악이다.이들은 유난히 사회적 제제와 검열이 많았던 우리 대중가요계 주류에서는 발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소수의 마니아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화·세분화가 거세진 최근 몇년사이에 록과 재즈의 수요층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다. 여기에 항상 문화의 첨병역할을 해온 서울 신촌이 올여름 두 장르를 그곳 젊음의 거리속에 끌어들였다.지난 4월 개관한 신촌의 라이브극장 「벗」과 관록있는 재즈클럽 「야누스」가 그 주역들이다. 잠재적 언더그라운드 수요층을 확인한 「벗」은 「언더그라운드의 도전」을 주제로 이달부터 9월초까지 「라이브 밴드 페스티벌」을 연다.먼저 록의 뿌리인 블루스밴드들이 등장한다.1편(7월9∼14일)은 지난 88년 활동부터 우리 블루스를 이끌어온 「신촌블루스」.엄인호,이정선,김형철,정경화가 지난 노래와 함께 블루스에 록적인 요소를 가미,일렉트릭기타로 연주하는 새로운 블루스를 시험해본다.2편(16∼21일)은 정통 블루스에 한국적 정서를 담은 「김목경 블루스 밴드」. 3편(23∼27일)은 록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음반을 발매한 「블랙신드롬」이 록콘서트를 열며 4편(8월2∼4일)은 헤비메탈의 선두주자 「시나위」가 「야 덤벼」등 사회비판기능을 한층 강화한 신곡들을 선보인다. 이어 5편(8월8일∼11일)은 「도원경과 메신저」로 여성로커 도원경의 색다른 샤우트창법을 들어볼 수 있다.6편(8월14∼18일)은 「부활」이 마련한다.이밖에 「윤도현밴드」,「천지인」,여성로커듀오 「미스 미스터」등이 일정을 협의중이다. 18년동안 재즈를 보듬어온 클럽「야누스」도 신촌을 다시 찾아왔다.「야누스」는 지난 78년 신촌에서 문을 연뒤 대학로로 갔다가 지난 4월 이대 후문쪽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10대부터 60대까지 8백여명의 동우회를가진 「야누스」는 매일 하오8·9·10시 정각에 즉흥 재즈공연을 마련한다.연주자도 관객도 몸과 마음을 풀고 그저 재즈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 된다.또 매월 첫째 일요일에는 동우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정기공연을 펼친다.언제나 그렇듯,보컬은 「야누스」하면 떠오르는 재즈싱어 박성연이 맡는다. 「벗」의 대표 이원영씨는 『개관이후 소극장을 찾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수용층을 조사해본 결과 20대후반 직장인이 절반을 넘어서고 여성이 70%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서울 전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어 최근 「벗」과 「야누스」,갤러리,문화카페,사물놀이마당이 들어선 신촌문화거리를 애써 찾아드는 적극적 문화향유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문화의 거리」 신촌의 부활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서정아 기자〉
  • “가요표절 막게 「민간 감시기구」 설립을”/강헌씨 음악평론가

    ◎「공륜 표절 방지 토론회」서 주장/음악문화 좀 먹는 독… 「당사자 해결」 실효없어/문화 보호 차원서 정부·언론 등 적극 관심을 우리 가요계의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인 표절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주의」의 민사소송 차원의 해결방안에서 벗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민간 자율감시기구가 설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 윤상철)가 「가요표절 문제와 사회윤리」라는 주제로 2일 하오 서울 예술의 전당 영상자료원 영사실에서 마련한 공청회에서 이같이 주장한 대중음악평론가인 강헌씨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표절은 저작권이라는 지적소유권을 침해하는 범법행위이며 당사자주의에 의해 해결돼야할 친고죄 영역에 속해 있다.그러나 당사자끼리 법정에서 해결을 보는 서구의 경우를 곧바로 우리 상황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우리나라에서 당사자주의에 해당되는 국내 작곡가간의 분쟁은 1%미만에 불과하며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 음악을 무단차용하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가장 심각한 것은 양적으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대중음악의 무단표절이다.일본 대중음악의 표절은 단지 민족적 자존심 차원이 아니라 문화시장 개방을 목전에 둔 현시점에서 문화종속이라는 새로운 식민지적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물질적 토대인 시장의 관점에서 볼때도 표절의 해악은 심각하다.만연한 표절은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구매동기의 저하를 불러온다.여기에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세계적 메이저산업과 일본 음반산업의 매니지먼트 노하우와 자본이 진출한다면 우리 음반시장은 남의 잔치판이 될 것이 자명하다.따라서 대중음악에 한정해 보더라도 표절은 양심불량의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음악문화 전체를 괴멸시키는 독이며 서구적 관점에 입각한 「당사자주의」의 민사소송 사안으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외국곡의 무단표절은 제도적 제재가 아닌 신속한 여론조성작업으로 척결해야 한다.이를 위해 수용자대중의 의견수렴 및 검토를 위한 창구가 마련되고 제도·언론간의 원활한 피드백 커뮤니케이션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의견수렴 및 검토창구의 실질적 기능수행은 공식 행정기구 보다는 대중음악 수용자층의 오피니언 리더와 대중음악 관계자들의 일상적인 결합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자국 문화보호의 관점에서 해당기관이 순수 민간자율창구의 개설과 운영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이 창구가 각 언론기관 및 민간사회단체를 통해 여론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아울러 현재 통용되고 있는 표절에 대한 공륜의 심의기준을 전면 재검토해 부분적인 악절의 표절 여부보다는 번안곡 수준의 전반적 표절을 가려내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여론 매체들도 표절문화 종식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서태지의 은퇴(외언내언)

    수많은 소녀 팬들의 가슴에 슬픔을 남기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요계를 떠났다.인기 절정에서 느닷없이 은퇴를 감행하고 거기에 잠적소동까지 겹쳐 세간의 화제를 더욱 만발하게 했다.은퇴소문이 보도된뒤 서태지의 집에는 수 백명의 여학생 팬들이 몰려들어 울부짖는 소동이 벌어졌다.그들의 인생이 다 무너져버린것 같은 오열과 몸부림을 보여주었다.고별회견 뒤 1일 하오 김포공항에는 10대 팬 3백여명이 출입국장을 메웠다.이른바 「서태지 신드롬」의 실상이다. 괴상한 옷차림에 폭발적인 춤과 랩음악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것은 4년전.그들의 노래와 춤은 강력한 파괴력으로 가요계를 강타하며 10대를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4년동안 이들은 4개의 앨범을 내놓으며 10대의 우상으로,황제로 떠올랐다.자생적인 팬클럽만 30개가 넘는다.이들의 인기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10대의 고독과 억압,소외와 좌절을 서태지라는 댄싱그룹이 어루만지고 함께 아파해 주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콱 막혀 있는 공간속의 10대에게 「서태지」의 「난알아요」는 구원의 메시지로 반향한 것이다.그리고 자신을 알아주는 대변자에게 「오빠부대」의 짝사랑이 시작된다. 10대 팬들의 이러한 열광은 세계적인 현상이다.60년대 영국의 비틀즈이후 수많은 록 그룹들이 출몰하여 신세대를 열광시켜 왔다.10대의 외로움이나 혼돈,소외감이나 사랑에 대한 감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열광은 항상 존속하는 법이라고 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한다.이제 「서태지」는 떠났다.그들의 고별인사에서 밝힌 은퇴이유에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대목이 있다.고통없이 편안하게,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경구적 발언이다.음악의 한계를 느껴 떠났다면 우리시대의 보기드문 양심선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 있을때 떠나 팬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는 또 하나의 철학적 이유도 여운을 남긴다.
  • 「서태지와 아이들」 “가요계 굿바이”/어제 유림회관서 은퇴 회견

    ◎“창작활동 너무나 고통스러워 은퇴 결심”/10대 팬들에 마음준비할 시간주려 “잠적” 지난 10일간 은퇴설과 잠적파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온 인기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31일 상오 10시45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유림회관 3층 대강당에서 고별기자회견을 갖고 가요계 은퇴를 공식선언했다. 서태지·양현석·이주노 등 팀 멤버 세명은 20분간 이어진 이 회견에서 A4용지 9장분량 「작별의 인사」를 번갈아 읽으며 은퇴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평소 무대위에서의 현란한 모습과 달리 단정한 차림새로 기자회견에 나선 이들은 『새 음반을 만들기 위한 창조의 고통이 너무나 힘겨웠으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었다』고 은퇴이유를 밝히면서 『은퇴는 4집음반 기획단계에서부터 결정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간 보내주신 팬들의 사랑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며 잠적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듯 『기자회견을 늦춘 것은 팬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또한 팬들의 안전을 우려해 고별콘서트도 갖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작별인사말 읽기를 마친 뒤 이들은 기자들에게 질문기회를 주지 않고 10여명의 사설경호원에 둘러싸여 곧바로 퇴장,대기시킨 자주색 봉고차를 타고 대학 후문쪽으로 빠져나갔다. 이날 회견장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1백여명의 소녀팬들이 모여 부둥켜 안고 울면서 『서태지』를 연호했으며 이들중 몇몇은 택시를 타고 「서태지와…」를 뒤쫓기도 했다. 서태지 일행은 기자회견후 부산 김해공항에서 괌으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고속도로가 빙판길로 얼어붙는 바람에 탑승시간을 놓쳐 대전부근에서 서울로 되돌아왔다.이들은 1일 출국할 예정이다.
  • 잃어버린 「우상」/서정아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이제 누가,누가 우리를 붙잡아 줄건가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식적으로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31일 이들을 「10대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받든 한 여학생팬은 이같이 하소연했다. 진짜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취재열기와 방송의 생중계가 반영하듯 「서태지와…」의 은퇴는 팬들의 아쉬움을 넘어 사회적 뉴스로 자리잡았다. 처음 은퇴소식이 보도된지 10일째,그동안 언론의 관심은 일제히 서태지라는 20대청년에게 쏠렸고 서태지는 영웅에서 돈맛을 안 탁월한 경영가로까지 오르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이제까지 기성인,특히 지식인들이 대중연예인에게 보여준 무관심이나 몰이해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었다. 음악을,그것도 어른들이 시끄럽다며 귀를 막는 록음악을 하겠다고 고등학교를 자퇴한 서태지,음악 이외는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여긴 서태지는 노래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으며 언제나 새로움과 파격을 추구했다.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장르와 춤,의상을 들고 나와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을 뿐아니라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사수정 요구에는 가사를 전면삭제하고 머리염색을 하지 말라는 방송사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이들의 특성은 90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곧 신화가 되었다.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것,자기를 옭아매는 구태와는 단호히 결별할 것,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성깔」을 부릴 것등. 교실에 갇힌 10대들은 「서태지와…」만이 자기들을 대변해준다고 확신했고 이들의 열광적인 지지자가 됐다.서태지를 통해 통일의식을 높였고(「발해를 꿈꾸며」),교육제도를 소리높여 비판해 보았으며(「교실이데아」),가출해서도 집에 돌아갔다(「컴백홈」)고 「서태지와…」의 팬들은 주저없이 말한다. 스스로 내세운 「대통령」을 잃어버렸다고 상심해하는 10대들.이들은 또 어떤 새로운 영웅을 맞이할 것인가.우리 「심각한 어른들」이 이들의 빈 가슴을 채워주는 일,그것은 「서태지…」처럼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것 아닐까.지금 그 때가 온 것 같다.
  • 음악세계와 10대 집단히스테리증세 진단

    ◎서태지… 사회성 짙은 메시지 춤·노래로 표현/램·록·리듬 앤 블루스서 재즈·힙합까지 구사/「교실 이데아」·「컴백홈」등 청소년 내면갈등 노래/기성세대와 대화단절 스타에의 열광으로 해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격적인 해체선언은 10대 청소년팬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에게도 충격을 안겨주었다.「서태지와…」를 잃은 10대 청소년들의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바라보며 그들의 부모들은 『도대체 「서태지와…」가 무엇이길래』하는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회문제화된 서태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음악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할것 같다. 「서태지와…」는 4집까지 앨범을 내는 동안 남다른 음악성으로 매번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해왔다. 92년 발표한 1집의 「난 알아요」와 이듬해 내놓은 2집의 「하여가」는 랩가사에 록을 연주곡으로 사용,당시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특히 2집앨범부터는 장르구분을 어렵게 할 정도로 독창적인 음악적 시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전통악기인 날라리(태평소)를 사용하는가 하면 리듬 앤 블루스,재즈등을 뒤섞어 댄스그룹이 군웅할거하던 국내 대중음악계 판도를 뒤바꾸며 장르가 허용하는 최고수준까지 자신의 음악영역을 넓혀갔다. 3집앨범부터 서태지는 통일·교육문제 등 사회현실에 대한 발언권을 높여가기 시작한다.노래와 춤을 단순히 반복하던 과거 댄스그룹들의 차원을 벗어나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거칠고 과격해 보일수도 있는 가사와 리듬을 바탕으로한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춤으로 표현했다.힙합으로 분류되는 3집의 「발해를 꿈꾸며」「교실 이데아」는 가요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정신적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청소년들의 내면적 갈등을 과감하게 가사속에 수용하려는 서태지의 음악적 편력은 4집앨범에도 이어진다.청소년 가출·염세적 배금주의가 주조를 이루는 4집 「컴백홈」은 가출했던 청소년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사회적 반향까지 낳아 「서태지와…」는 바야흐로 청소년 문화와 고민해결의 대변자로까지 떠오르게 된다. 「서태지와…」가 열광적인 인기를 유지해온 배경에는 또한 흥행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이미지 및 자기관리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인기유지를 위한 전략이라는 일부의 시각도 있으나 그들은 2∼3개월 활동하다 8∼9개월 정도의 휴지기를 가진뒤 새 앨범을 내놓음으로써 팬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을 고집해왔다. 또 인기인에게 흔히 따를수 있는 악성루머가 존재할 틈도 주지않았다. 『서태지를 알면 문화가 보인다』는 말에서 보듯 「서태지와…」는 청소년과 기성세대간 대화단절의 시대에 등장한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기성세대는 90년대 대중문화가 「서태지와…」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으며 10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새삼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같은 「서태지 신드롬」에 대해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서태지와…」는 원했든 원치않았건 간에 특유의 음악성과 사회현실 접근방식이 청소년층에 크게 어필함으로써 이 시대 독특한 「문화적 화두」가 된 것이 사실』이라면서 『음악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능성과 가치가 인정돼야만 이번과 같은 사회적 파장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가요계 폭력조직 있나 없나/「서태지 은퇴」 개입설 언저리

    ◎70∼80년대 밤무대 「연예부장」 깊이 관여/신세대 댄스그룹 등장하며 발길 끊어져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격적인 은퇴선언 배후에 조직폭력 세력이 개입돼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등 연예인 및 매니저와 폭력세력들간의 관계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70∼80년대 일부 대중가수들이 폭력세력들과 「공생」관계를 맺으며 가수활동을 벌였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폭력세력들은 주로 가수들의 매니저 겸 보디가드,또는 나이트클럽에서 연예인을 조달하는 이른바 「연예부장」등으로 가수들의 이면에 자리잡아 왔다. 폭력세력과 가요계의 공생관계는 무엇보다 밤무대 수입과 관련된 이권 때문이었다.TV스타로 떠오르면 음반판매등으로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지금 상황과 달리 가수들의 주수입원이 나이트클럽이었던 그 시절에는 나이트클럽 경영자들과 연관을 맺고있는 조직폭력배들이 가수의 뒤를 봐주거나 출연계약과 관련,협박을 가하며 큰 잇속을 챙겼다.나훈아,남진,김추자 등 왕년의 스타가수들이 밤무대에서 봉변을 당한 사건들이 이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신세대 댄스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가요시장을 좌우하는 층도 여학생 위주의 10대 청소년으로 바뀌었으며 댄스가수들은 요란한 복장과 춤으로 TV를 통해 10대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이다.따라서 가수들의 주수입원도 과거의 밤무대에서 CF나 음반수입으로 전환되고 가수가 직접 매니저를 선택하는등 매니저와 가수의 관계가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도 지방 군소도시에서는 나이트클럽을 낀 폭력조직이 특정가수를 내려보내라고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가수생활을 더이상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90년대초 가수 태진아가 지방 나이트클럽에서 계약조건을 위반했다며 폭력을 당한 사례가 그 경우다.이 사건이후 가수들은 지방에 내려갈 때 신변요청을 하거나 출연료를 선불로 받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가요계의 지배적 현상은 아니다.전적으로 TV에 의존하는 요즘 가수들과 매니저 사이에는 좀처럼 폭력세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요즘 추세로 보면 「서태지…」의 은퇴선언과 일부 가수들의 잇따른 자살배경에 폭력조직이 개입됐다는 소문은 근거가 분명치 않다.다만 최근들어 매니저나 소속 프로덕션의 배후에 조직폭력배가 다시 접근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가요계 주변의 얘기다.
  •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가수 잇단 죽음/폭력조직 개입 수사

    ◎경찰,첩보 입수… 매니저는 부인 최근 인기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은퇴선언에 이은 잠적과 인기가수의 잇따른 죽음에 폭력조직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나돌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청은 24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격은퇴에 조직폭력배가 개입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서울 마포·서대문·동대문·노량진경찰서에 전언통신문을 보내 사실여부를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가수 김광석과 김성재·서지원 등의 사망사건에 폭력배가 관련됐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이를 위해 ▲연예인 매니저및 소속 프로덕션과 조직폭력배의 관계 ▲조직폭력배의 연예인 이권개입 여부등을 캐는 데 수사력을 모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형사 1개반으로 전담반을 편성,서태지씨 가족을 상대로 서씨와 멤버들의 최근 행적과 잠적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매니저와 소속프로덕션 관계자도 불러 해체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돌연한 인기그룹의 은퇴등최근 가요계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대해 출연을 미끼로 한 협박등 조직폭력과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사실확인 차원에서 수사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한편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 김철씨는 이날 『팀의 해체는 이미 3집 앨범때부터 생각해온 것이며 폭력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조직폭력배 개입설을 부인했다.
  • 청소년 “충격”… 사회문제 비화우려/「서태지와 아이들」전격 은퇴

    ◎10대팬들 살던 집앞서 이름 부르며 통곡/방송 스케줄 등 차질… 가요계도 파장 클듯 인기 최정상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22일 전격적인 은퇴선언은 「X세대 대중적 우상의 퇴장」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10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최근 표절시비끝에 활동을 중단한 「룰라」에 이어 터져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선언은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해온 10대 팬들에게 일시적이나마 「심리적 공황」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23일 상오 서대문구 연희3동 서태지가 살던 집 앞에서는 새벽부터 30∼40명씩 떼지어 몰려든 학생들이 서태지의 이름을 불러대며 울음바다를 이루었으며 일부는 담을 넘어들어가 물건을 챙겨 나오기도 했다.10대 팬들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울분을 터뜨리는가 하면 PC통신에 은퇴번복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다투어 띄워 이날 하루 PC통신은 서태지 이야기로 가득 찼다. 또 지방 학생팬들이 대거 상경,「서태지와…」가 소속돼있던 기획사 앞에서 『서태지가 없는 세상 무슨 맛으로 사느냐』『학교에 다니기 싫어졌다』며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태지 은퇴저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어 방학중인 일선 여중·고 교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은퇴선언에 따라 25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핸드볼 대잔치」축하공연이 취소되는 등 이미 출연계약이 돼있던 각종 공연 및 방송스케줄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서태지…」의 정확한 은퇴이유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있다.다만 최근 4집앨범을 발표하면서 노래가사와 관련해 공연윤리위원회와 마찰을 빚고 형사고발 당하자 가수활동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서태지 자신이 음악성에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선택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또 서태지가 최근 새로운 록음악 세계를 시도하면서 다른 두 멤버 양현석·이주노와 갈등을 빚은 것이 은퇴이유가 됐다는 소문도 있다. 은퇴이유야 어떻든 「서태지…」의 은퇴선언에 충격을 받은 10대들의 걷잡을 수 없는 집단행동과 파행이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없지 않아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불안해 하고있다.
  • 「서태지와 아이들」 전격 은퇴/어제 활동 전면중단 선언뒤 잠적

    90년대 최정상의 인기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22일 가수활동 전면중단을 선언했다. 서태지(24·본명 정현철)가 대표로 있는 요요기획측은 이날 『「서태지와 아이들」이 오늘부터 가수생활을 비롯,음악에 관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가요계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히고 『이달말이나 다음달초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심경과 향후계획등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서태지는 팀해체선언으로 열성팬들이 연희동집으로 몰려들 것을 우려,20일 새벽 이사했으며 요요기획도 문을 닫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지난 92년 랩댄스곡 「난 알아요」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첫 앨범을 발표,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이래 지난해 발매한 4집 앨범 「컴 백 홈」까지 1∼4집 앨범이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 가요계 표절시비 왜 끊이지 않나

    ◎「룰라」소동 계기로 본 실태와문제점 진단/전문성 지닌 작사·작곡가 태부족/신세대 입맛 맛는 리듬·가사 조합/표절은 친고죄… 처벌제도 개선돼야 창작의 역사만큼 길다는 표절.어떤 예술문화장르에서도 표절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그룹 「룰라」의 표절시비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 가요계의 표절실태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몇년전 드라마 주제가로 크게 히트한 「질투」와 「마지막 승부」는 표절혐의가 짙다는 지적에 따라 작곡자가 중도에 멜로디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또 표절이라는 판정은 없었지만 PC통신이나 일부 언론등을 통해 표절의혹이 제기된 노래들은 숱하게 많다.룰라의 2집 「날개잃은 천사」,김원준의 「짧은 다짐」,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Ref의 「이별예감」,김현철의 신곡 「나를」 등 요즘 인기있는 웬만한 노래들이 「표절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들어 표절시비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제대로 된 작사·작곡자가 없는 가요계 풍토를 들 수 있다.하루에도 몇개씩 새 앨범이 쏟아지고음반판매 1백만장 시대에 돌입한,양적으로 팽창된 우리 가요계지만 전문성을 띤 작곡자를 보기는 힘들다.가요인기도가 10대들에 의해 좌우되다 보니 최근에는 가요프로덕션이 주수용자층인 신세대들의 입맛에 맞는 리듬·멜로디·가사등을 미리 설정해놓고 그에 맞는 작사·작곡자를 찾아내 노래를 조합해내는 현실이다.즉 「장인정신」은 없고 상혼만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90년대들어 「샘플링」이라는 새 기법이 가요계에 도입되면서 표절과 비표절의 경계가 흐트러진 이유를 들 수 있다.「샘플링」은 샘플러(Sampler)라는 컴퓨터 음악기기를 이용해 여러 노래에서 멜로디를 따오거나 이를 변조할 뿐 아니라 어떤 소리도 만들어내는 기법.이를테면 한 책을 쓰기 위해 다른 책들의 부분부분을 모아 만든 참고자료같은 것이다. KBS 「가요 톱 텐」의 이태옥PD는 『샘플링은 다른 노래의 리듬을 따 자신의 노래 전주나 간주부분에 원용하는 것으로 표절과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문제는 몇몇 가수들이 샘플링이라는 이름하에 그대로 베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같은 경우에는 표절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와 함께 최근들어 표절곡이 도마에 자주 오르는 것은 수용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점에 기인한다.특히 이들은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등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대중가요를 듣는 매니아집단으로 이번 룰라의 「천상유애」도 이들이 먼저 표절시비를 제기했다.대중문화의 전문가층이 얇은 우리 현실에서 이들은 표절감시단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표절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표절을 처벌하는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현행법상 표절은 「친고죄」다.어떤 노래가 표절시비에 붙었다해도 원곡의 당사자가 이를 법원에 고소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 공윤측은 『표절은 어디까지나 개인간의 저작권법 문제이기 때문에 공윤은 「제3자의 입장」을 고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다만 각 방송사의 심의실이 자체 판정으로 표절이라고 판단될 경우 이를 방송금지하는 경우는 있다. 사실 창작품을 놓고 『이건 표절이다,아니다』라고 자로 재듯 판정내리는 일은 매우 힘들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그러나 허약한 우리 가요계풍토를 감안할때 공윤의 「물러서기」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가요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가 폐지돼 앞으로는 사후심의가 실시된다.때문에 그동안 「사전검열」에 주력했던 업무를 음반출반후 「표절」여부를 가리는 쪽으로 전향하는 장치가 시급한 현실이다.
  • 가요계 「죽음의 그림자」 왜 잇따르나/신세대 스타 인기에만 집착

    ◎강박감에 자살유혹 못 벗어 12일 새벽 발생한 인기 댄스그룹 「룰라」의 리더 이상민의 자살기도 사건은 우리나라 가요계 메커니즘의 실상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성격은 조금씩 달라도 최근 잇따른 김성재의 죽음과 서지원·김광석의 자살에서도 보았듯이 인기인과 매니지먼트,그리고 극성팬이라는 3가지 요소가 낳는 비정상적인 행태에는 치유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오빠부대」로 상징되는 대중적 인기에 대한 젊은 가수들의 환상,이런 가수를 상품으로 삼아 눈먼 돈을 찾아가는 매니지먼트.최근들어 쇼프로나 CF 출연료로 수억원대가 오가는 현실에서 계산만 맞아떨어지면 이들은 단번에 돈방석에 앉게 된다. 그러나 본격적 영상시대를 맞아 가수 지망생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데 비하면 실제 인기를 얻는 대상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또 과거처럼 노래 한곡으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가수는 찾아볼 수 없고 잠시만 활동이 뜸해도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이 우리 가요계의 현실이다. 때문에 일단 어느정도 인기를 얻은 가수는인기 유지를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흔히 말하는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란 꿈도 꾸기 힘들다.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심각한 정신적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서지원이 유서에 남겼듯 인기유지에 대한 심적 부담이 나이어린 인기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된다. 10대 청소년 팬들의 맹목적인 연예인에 대한 환상,어린 팬들의 즉흥적 취향에 맞춰 상업주의에 지나칠 만큼 충실한 매니지먼트,그리고 허황된 인기를 위해 부나비처럼 날아드는 젊은 가수들.이 세가지 요소의 기형적인 혼합이 가요계에 계속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1995년에 사라진 별들

    ▷국내◁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 해방후 상공부차관과 한전부사장을 거쳐 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10대 선거에 낙선한뒤 10·26 이후 보사부장관으로 입각.11·12대 민정당의원으로 당선된뒤 대표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의학박사 장기려씨 지난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국의 슈바이처」.서울대·가톨릭대 의과대학교수를 역임했으며 68년 영세민을 위한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고 79년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민법학자 안이준씨 지난 3월19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향년 65세.안교수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경희대교수로 재직했으며 민사법학회장을 지냈다.주요 저서로는 민법총칙,채권법 등이 있다. ◎법조인 김성일씨 법관의 정도로 일컬어졌으며 10월31일 상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60세의 나이로 순직.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천안지원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제주지법원장을 역임했다.간결한 판결문 정착에 애썼다. ◎전 대법관 김갑수씨 강직한 대법관의 대명사로 꼽혀온 변호사.1월26일 하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향년 82세.김변호사는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와 평양법원판사를 거쳐 법무·내무차관을 역임했고 지난 60년 대법원장 직무대리 시절 군사정권에 맞서다 법복을 벗었다. ◎충남방적 이종성 회장 지난 70년 부실기업인 국안방적을 인수한지 10년도 안돼 오늘날의 충남방적으로 키웠다.81년에는 국민당에 입당,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국민당의 부총재·전당대회의장 등을 거쳤다.공직자·기업인·정치인으로 거듭된 변신을 하면서도 성공을 거뒀다. ◎명창 김소희여사 우리 시대의 소리꾼.지난 4월17일 78세로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로 우리 국악의 양갈래를 이루는 「동편제」소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창」.그의 소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제1회 한국국악대상,대한미국 문화예술상등을 수상했다. ◎추상조각가 문신씨 지난 5월24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한 추상조각의 거장. 국내보다 세계화단에서 더 명성을 떨친 추상조각가로 90∼92년 미술의 본고장 유럽을 순회하며 가진 회고전에서 호평을 받았고 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작곡가 윤이상씨 세계적인 음악가이면서도 끝내 이역땅에서 유명을 달리 한 비운의 예술가.지난 11월4일 78세를 일기로 독일땅에서 서거한 그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힐 만큼 큰 족적을 남겼다.67년 동백림사건으로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쓰고 71년 독일에 귀화했었다. ◎작곡가 길옥윤씨 지난 3월 17일 68세로 별세한 우리 가요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대표작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빛과 그림자」 「4월이 가면」. 가요생활 50년을 통해 작사·작곡·편곡한 노래가 3천여곡이 넘는다. 서울 세종로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건립됐다. ◎소설가 김동리씨 지난 6월 17일 82세로 별세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60여년 작품활동을 통해 「무녀도」「황토기」「사반의 십자가」「을화」등 1백여편의 장·단편소설을 남긴 현대문학의 증인.서라벌예대 교수,한국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레슬링선수 송성일씨 위암으로 1월29일 타계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백㎏급 국가대표선수.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번지는 것도 모른 채 위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걱정하며 혼신의 투혼을 발휘,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배구선수 김병선씨 대학졸업을 불과 4일 앞둔 2월21일 심장마비로 숨진 남자배구의 큰 별. 2m의 장신으로 성균관대학 1년 때부터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하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데 주역을 담당했다. ◎경제학자 고승제씨 함남 출신으로 학술원회원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일본 릿교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서울대·고려대·연세대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대림창업주 이재준씨 지난 39년 대림그룹의 모태인 부림상회를 세워 목재업과 건자재업에 진출한뒤 한평생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한국전쟁후 복구특수를 활용해 기반을 다졌고60년대 중반부터 해외건설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다.지난 88년 장남인 이준용 대림그룹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겼다. ▷국외◁ ◎반전기수 풀브라이트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설립자이자 베트남전 당시 「권력의 오만」을 출간,반전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인물.지난 2월10일 워싱턴 자택에서 90세로 타계했다.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맹비난,미군의 베트남철수에 기여했다. ◎전 일 총리 후쿠다 지난 7월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그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국제공항 개항등 현안을 처리했다.그는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뒤 90년 정계에서 은퇴했었다. ◎미 언론인 레스턴 미국 언론인들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언론인중의 한 사람.지난 12월6일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암으로 숨졌다.그는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레스턴 칼럼」을 연재,필명을 떨쳤다. ◎중 실용주의거두 진운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사후 중국정치를 요리해온 인물.지난 4월10일 노환으로 90세에 사망했다.모택동으로부터 「당내 제일의 경제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50년대부터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지향,모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동평화 상징 라빈 지난 11월4일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협상 지지집회에 참석중 극우파학생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그는 군생활 28년을 거치는 동안 아랍세계와의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모색한 평화노력으로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디 모친 로즈 1월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그녀는 19 14년 조지프 페트릭과 결혼,케네디가와 인연을 맺은후 대사의 아내로서,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의 어머니로서 최상의 영광을 누렸으나 9명의 자녀중 두명의 아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는 암살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전 영국총리 윌슨 60년대와 70년대초 영국 노동당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7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그는 29세때 하원에 진출한뒤 2년후 무역장관으로 취임해 최연소 입각기록을 세웠다.64년 총선에서 승리한뒤 총리 재임기간동안 줄곧 미국의 베트남 파병요청을 거부하고 반전무드를 조성해 영국노동당 시대를 주도했다. ◎전 일 부총리 와타나베 지난 9월 72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는 『한일합방은 원만하게 체결됐으며 36년간 통치했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는 망언을 남긴인물.63년 고향에서 중의원에 당선된이래 대장상·당정조회장등 요직을 거쳤고 대북한 쌀지원 협상에서는 막후조정을 벌였다. ◎영국시인 스펜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난 7월 86세로 타계했다.그는 20세기 영국의 인도주의적 사상을 대표한 강력한 자유주의적 운동을 펼쳤으며 30년대 비평가들로부터 이 시대의 가장 저명한 3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고의 양심 질라스 공산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저서 「새로운 계급」으로 유명한 티토치하 유고의 대표적 반체제인사.83세를 일기로 4월20일 심장병으로 사망.부통령에 올라한때 티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했으나 공산체제에 염증을 느껴 반체제 이론가로 변신했다. ◎백신개발 선구자 소크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인류를 불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의료계의 선구자.80세를 일기로 지난 6월23일 사망했다.뉴욕대학 의학부를 졸업,면역학및 세균학을 연구했으며 「소크백신」개발 후에는 샌디에이고 소크연구소에서 다발성 경화증과 암연구에 몰두했다.
  • 댄스음악열풍 너무오래간다/90년대들어 유행…발라드등 타장르 무력화

    ◎김건모·룰라 앨범 1백만장이상 팔려/평론가들 “가요계 균형발전 저해 걱정” 댄스음악이 너무 오래 춤추고 있다.지난 90년대부터 불기시작한 랩,레게 열풍이 절정에 이르면서 댄스음악은 상반기 가요계를 평정하다시피 하고 있다.해가 바뀌자 마자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음반시장을 달궈놓더니 이제는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무리 가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멜로디를 외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레코드가게마다 집중적으로 틀어대니 이 사이에 다른 분야의 노래가 끼어들 틈이 없다. 댄스음악 열풍을 그대로 반영하는 곳이 음반시장.김건모의 3집앨범은 2백만장 고지를 훌쩍 넘어 2백50만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룰라 2집이 1백만장을 넘어섰다.듀스의 최신앨범도 「굴레를 벗어나」를 빅히트시키면서 도매상 사전주문만 1백만장 고지에 올랐다.그러나 댄스음악 2백만장 시대의 한켠에서 발라드,록 등 다른 장르의 앨범은 20만장을 넘기기 힘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음반산업의 전반적인 불황속에서 댄스음악만 「공룡」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댄스음악앨범의 구매계층 대부분이 청소년층이라고 볼때 이런 기형적인 현상이 시장의 균형잡힌 발전을 저해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댄스음악의 과열장세는 가요계 전체를 놓고 볼 때도 우려되는 일.Re.f,피아노,팝콘 등 새로운 댄스그룹들은 쏟아지는데 신승훈,장혜진 등을 받쳐줄 발라드 가수로는 서지원,녹색지대 정도를 꼽을 수 있는 형국이다.폭발적인 댄스음악의 유행이 지나고 나면 뚜렷한 대안이 없는 가요계는 황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물론 댄스가 대중음악의 주체인 젊은이들에게 가장 친근한 음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또한 댄스음악이 호황속에 다채롭게 가지를 치며 자체적으로 발전한 측면도 없지 않다.정통 랩을 구사하며 청소년팬을 모으고 있는 듀스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그 음악성을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문제는 작년까지만 해도 조화롭게 공존하던 복고풍,리메이크,리듬 앤드 블루스 등이 올해 김건모 열풍을 기점으로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는데 있다.한 평론가는 『댄스음악 자체가 죄인이라기 보다 댄스만 극단적으로 편식하는 수용자의 자질이 문제』라면서 『가요의 고른 발전을 막는 이런 편애로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이 수용자들이라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 대중문화/TV극 소재로 인기/연예인,신세대 우상으로 각광

    ◎가수·배우·만화가 주인공으로 내세워 드라마에도 대중문화가 몰려온다.탤런트 선발대회의 경쟁률이 치솟고 가수·배우 등 연예인이 신종 인기직업으로 떠오르면서 대중문화를 TV 드라마소재로 끌어들이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 드라마속에 드라마 제작과정이 삽입되는가 하면 가요계의 숨은 얘기를 그리는 본격 가요드라마가 나왔다.영화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만화가의 일생이 극으로 만들어진다.뮤지컬 가수의 애환을 담는 드라마도 있다. KBS­2TV 미니시리즈 「갈채」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가요계의 메커니즘에 포커스를 맞춘 드라마.음반업계의 「스타제조」과정,톱가수의 인간적인 갈등 등을 그리며 이 세계를 동경하는 젊은층을 유혹하고 있다. SBS­TV 주말연속극 「이 여자가 사는 법」은 방송국 PD와 드라마 작가,주역을 맡으려는 탤런트들의 배역경쟁 등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 재미를 본 경우. KBS­1TV 「인간극장」에선 지난 1일부터 방송된 「고등어와 크레파스」를 통해 「공포의 외인구단」의 만화가 이현세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5월부터 방송할 KBS­2TV 새 주말극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여주인공 하희라가 영화배우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영화계 얘기가 눈요깃거리로 끼어든다.MBC­TV가 「호텔」후속으로 내보낼 「사랑을 기억하세요?」의 여주인공 이주영은 뮤지컬배우 지망생.KBS­2TV 「딸부잣집」 막내딸 소령역의 이아현도 뮤지컬 배우로 나와 귀여움을 받았다.SBS­TV는 「우리들의 넝쿨」후속으로 준비중인 「신비의 거울속으로」에서 아예 배우들의 꿈과 야망이 펼쳐지는 뮤지컬극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이같은 현상은 급속도로 일상생활에 파고든 요즘 대중문화의 인기를 그대로 반영한다.어디를 가도 대중문화 홍수속에서 한때 「딴따라」라고 하던 연예인은 신세대의 우상으로까지 상승했다.자연히 이들의 뒷얘기가 화젯거리가 되고 드라마소재로서의 「상품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 그러나 이같은 시도가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일부를 제외하고 이런 드라마들은 시청률면에서 오히려 고전하고 있다. SBS 운군일 드라마총괄부장은 『30여개의 드라마가쏟아지는 요즘,이채로운 소재라고 해서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는 어렵다』면서 『단순히 무엇을 다루느냐가 문제가 아니라,얼마나 완성도 있게 그려내느냐가 역시 드라마의 성공을 좌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가요 황제” 김건모/음반시장 달군다

    ◎3집앨범 「잘못된 만남」/두달만에 230만장 팔려 김건모가 가요계를 달구고 있다.지난해 방송3사의 가요대상을 모두 휩쓸며 순식간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던 김건모의 인기바람이 올들어 사그라지기는 커녕 새앨범 발매와 함께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월말 나온 3집 「잘못된 만남」은 지난 10일 2백만장을 넘어서 지금까지 2백30만장 정도 팔려 나갔다.이대로라면 2백50만장 고지도 눈앞에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음반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를 감안할때 2백만장,그것도 한달 반만의 2백만장판매는 거의 A급태풍 수준이다. TV 역시 김건모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있다.새앨범의 머리곡 「잘못된 만남」은 각 방송 가요순위프로 차트에 진입한지 3∼4주만에 정상을 휩쓸고 있다.토크쇼와 쇼프로그램에서 김건모는 가장 매력적인 초대손님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거리의 레코드 가게나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에서는 종일토록 「잘못된 만남」이 흘러나온다.가히 폭발적이라 할 인기다. 이런 현상의 비결로 많은 사람들이 우선 꼽는것이 김건모의 가창력과 감각.김건모가 뛰어난 보컬리스트이고 특히 댄스음악을 소화하는 탁월한 리듬감을 갖췄다는 데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거의 이론이 없다. 여기에 김건모의 음악외적 면모도 한몫 거들고 있다는 분석이다.재치있는 말솜씨에 신세대풍의 총천연색 옷차림 등으로 무장한 그는 요즘 팬들이 요구하는 토털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 이밖에 댄스음악이 주류를 이룬 최근 가요계 풍토에서 친구와 바람이 나버린 엣애인을 직선적으로 노래한 가사,금방 따라 부를수 있는 멜로디 등이 신세대 팬들에게 금세 어필했으리라는 점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벼락인기현상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새앨범이 2집에 비해 새로운 시도가 보이지 않는데다 완성도도 떨어져 음악적으로는 후퇴했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이 앨범발매 직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었다.이것은 물론 김건모의 탓만은 아니다.노래를 부르되 만들지는 않는 김건모는 작곡자한테 자신의 음악적 세계며 이미지를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지금의 김건모가 감각적인 쾌락을 바라는 대중정서에 편승해서 1등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의 의도와는 사실 별개의 것이라는 얘기다.그렇더라도 자기 음악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갈 역량이 없다면 김건모의 가능성은 「태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지적은 남는다. 이와 관련,한 평론가는 『대중의 고민과 고통을 짚어내 대신 말해주는 감각까지 갖추지 않고서는 진정한 우상이 될수 없다』면서 『김건모가 한 세대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대중정서를 복제해 읊어대는 앵무새를 넘어 창조적인 힘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기존의 노래 새롭게 해석/가요계에 리메이크 바람

    ◎새로운 분위기 연출… 리바이벌과 구별/015B·이승환·김건모 등 가요·팝 편곡 「요즘 가요에는 주인이 없다」 가수들 사이에 리메이크 음악이 주목받으면서 「이 노래는 누구 곡」이라는 식의 주인붙이기가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신세대 그룹 015B의 최근 앨범 타이틀 곡은 「단발머리」와 「슬픈인연」.원래 「단발머리」는 조용필의 곡이었고 「슬픈인연」은 나미의 곡이었다.그러나 센스있는 015B가 전자악기로 새롭게 편곡,「자신들의 노래」로 만들어냈다. 「하숙생」은 최희준이 30여년 전에 발표한 스탠더드 팝.이 곡을 최근 젊은 가수 이승환이 스윙감각으로 부르자 전혀 다른 노래가 됐다. 지난 92년 발랄한 댄스곡으로 나왔던 「낭랑 18세」는 광복 다음해인 46년 백난아가 불렀던 것.이를 신예가수 한서경이 신세대 감각에 맞게 리메이크헤 TV의 인기가요 순위 10위권까지 진입했다. 지난해 하반기엔 「깜보」 김건모가 스티비 원더의 「사랑한다 말하려 전화했어요(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라이브 앨범에다 실어 외국곡까지 리메이크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리메이크는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보편화된 현상.92년 빌보드 차트에서 14주동안 1위를 지켜 최장기 기록을 세운 휘트니 휴스턴의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할래요(I Will Always Love You)」도 컨트리뮤직 가수 달리 파튼이 먼저 불렀던 것이다.지난해 인기를 끈 셀린느 뒤옹의 「사랑의 힘(Power Of Love)」(제니퍼 러시)이나 올포원의 「맹세(I Swear)」(존 마이클 몽고메리)도 리메이크 곡.특히 「맹세」는 원곡이 나온지 한달여만에 재빨리 리메이크돼 빌보드 차트 1위까지 점령하는 성과를 올랐다. 그러나 우리 가요계에서는 그동안 리메이크가 『이미 있던 노래를 포장만 바꾸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품이 덜 드는 방법』으로 인식돼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해왔다.그럼에도 독창적인 멜로디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미 있는 노래를 가지고 손쉽게 새로운 분위기로 엮어낼수 있는 리메이크는 앞으로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리메이크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MBC 예능팀 주철환 PD는 『리메이크는 단순한리바이벌과는 다르다.노래하는 가수가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트로트를 랩으로 고쳐부르는 식으로 장르를 바꾸기도 하는것』이라면서 『옛날 노래를 요즘 감각에 맞춰 「새롭게」 해석해내는 것이 리메이크』라고 말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94 가요계/레게·소울 흑인음악 지속적 선풍

    ◎김건모·그룹 「마로니에」·「룰라」·「투투」 등이 레게붐 주도/트로트,지나해 이어 올해도 침체/「서태지…」 3집 사탄소동으로 곤혹 올해 가요계는 레게돌풍을 시작으로 블루스,소울,리듬 앤드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흑인음악이 선풍을 일으켰던 것을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레게뮤직의 선두주자는 김건모.지난 해 「잠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첫 인상」등으로 지지층을 확보했던 그는 올해초 2집 앨범에서 레게풍의 「핑계」(김창환 작사·곡)를 발표,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핑계」는 발표 3개월만에 음반 판매고 1백만장을 기록했다. 김건모의 인기는 젊은 층 취향에 맞게 경쾌한 댄스곡 위주로 앨범을 구성한데 기인하지만 그보다는 흑인음악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소화해내는 그의 가창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김건모가 일으킨 레게바람은 순식간에 가요계를 휩쓸어 레게뮤직을 전문으로 하는 그룹과 가수들을 양산해내며 올 여름 절정을 이뤘다. 닥터레게가 「어려워 정말」로 각광을 받은데 이어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가 부른 「칵테일 사랑」,임종환이 부른 「그냥 걸었어」가 큰 인기를 모았다.이밖에도 4인조 혼성 댄스그룹인 투투와 룰라가 「일과 이분의 일」과 「1백일째 만남」을 각각 발표하면서 레게붐에 편승했다. 하지만 레게음악의 인기는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렸다.자메이카의 흑인노예들이 부르던 노동요에서 비롯된 레게음악은 특성상 계절적 분위기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 하반기 가요계의 가장 큰 이슈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 발표였다.1집 「난 알아요」와 2집 「하여가」등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서태지는 수개월간 철저한 비밀을 유지한 채 3집작업에 몰두,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새음반은 빅히트를 예상한 음반 산매상들로부터 주문이 폭주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발해를 꿈꾸며」를 타이틀곡으로,헤비메탈과 얼터너티브 록을 주요 장르로 구성한 3집은 그들의 랩댄스음악에 열광했던 팬들로부터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감각적인 10대들에게는 음악이 너무 실험적인데다통일문제,교육제도 비판 등 사회성 강한 메시지 역시 부담이 됐던 것.여기에 「사탄의 노래」라는 괴소문까지 겹치면서 3집은 결국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을 이후 가요계는 사분오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발라드가수 신승훈(그후로도 오랫동안)과 변진섭(니가 오는 날)이 계절적 분위기에 맞는 신곡을 발표했고 탤런트 구본승이 댄스풍의 데뷔곡 「너 하나만을 위해」를 히트시켰다.신예 조관우는 리듬 앤드 블루스풍의 「늪」을 블루스 창법으로 소화,흑인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더클래식의 「마법의 성」,전람회의 「기억의 습작」등 음악성이 뛰어난 노래들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조용필의 「단발머리」등을 수록한 015B의 리메이크 앨범 「빅5」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처럼 다양한 장르가 나름대로 자기 영역을 확보했지만 트로트는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배씨에 가스총 쏜뒤 목졸랐다”/살해범 김영민 본사기자와 일문일답

    ◎“돈많은 배씨 집 털자” 전이 제의/어머니의 권유로 자수… 홀가분 연예인 매니저 배병수씨 납치,살해용의자인 김영민은 24일 하오3시40분쯤 서울 종로4가 C다방에서 자수에 앞서 서울신문 기자와 2시간여 단독으로 만났다. 짧은 머리에 사각 뿔테안경을 낀 김은 청바지차림의 앳된 모습이었다. ­왜 자수하기로 했는가. ▲23일 낮12시 고려대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와 고대 안으로 들어가 많은 얘기를 나눴다.당시 어머니가 두손을 잡고 울먹이면서 자수를 권유했고 그 뜻에 따르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 같아 자수를 결심하게 됐다. ­23일은 뭘 했나.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서울시내를 돌아다녔다.곳곳에 경찰이 있어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 곳이 없었다.자수를 결심하니 홀가분하다. ­범행당시 상황은. ▲11일 저녁때쯤 전용철이 『돈이 많은 배씨 집을 털자』고 제의하면서부터다.월급날이 됐는데도 전이 돈을 주지 않아 단순히 돈을 훔치려는 것으로 알고 응낙했다.배씨 집앞에 도착한 것은 밤11시쯤이었는데 주차장의 쪽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보니 갑자기 현관에서 여자가 나오는 바람에 기다렸다.12시쯤 배씨와 젊은 여자가 집을 나오는 것을 보고 몰래 들어가 안방 TV위에 놓인 배씨의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이때 배씨 집 정원에서 밖에 있던 전과 훔친 핸드폰을 이용해 통화를 했다.그 사이 배씨가 여자를 보내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고 정원에 숨어 있던 나는 겁이 나 밖으로 나와 전에게 『다음에 다시 하자』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왜 다시 배씨 집에 들어갔나. ▲집으로 돌아가던 중 차안에서 전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번 했으니 배씨가 핸드폰 분실신고를 하게 되면 핸드폰 번호가 추적돼 결국 경찰에 붙잡힐 것이라며 다시 범행을 하자고 해 새벽 1시쯤 배씨 집에 다시 들어갔다.이때 전은 들고 있던 가스총을 내게 주고 현관 앞에 배씨의 핸드폰을 놓아 전이 전화를 걸면 그 소리를 듣고 나온 배씨에게 가스총을 쏘라고 지시했고 10여분 뒤에 나온 배씨에게 가스총을 쏘자 배씨가 소리를 질렀다.이때 전이 배씨를 마구 두들겨패며 거실로 끌고 들어갔다. ­왜 살해했나. ▲처음엔돈만 훔칠 생각이었다.그래서 배씨의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두들겨패기만 했다.배씨는 처음 소리를 지르고 강하게 반항했으나 전이 손발을 묶고 침대에 뉘이자 『달라는대로 다 줄 테니 말로 하자』고 해 얼굴에 덮었던 수건을 벗겨주었다.전은 나를 고용한 건달이라고 소개했고 전을 본 배씨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나는 돈만 가져가면 되니까 내일 아침까지 여기 있다가 돈만 은행에서 찾아가자고 했으나 전이 『내 얼굴을 알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완강히 버텼다.내가 잠시 옆방으로 간 사이 전이 배씨의 몸에 올라 탄 채 커튼끈으로 목을 조르고 있었고 나에게 한쪽 끈을 잡아당기라고 지시,어쩔수없이 당긴 것이다. ◎배씨 피살 수사 스케치/범행사용 커튼끈 든 가방 길가서 발견/범인애인 뚜렷한 혐의없어 귀가조치 ○…서울지검 형사3부 홍효식검사의 지휘로 실시된 현장검증은 이날 상오8시30분쯤 배병수(36)씨 사체가 유기된 경기 가평군 설악면 지정부락 야산에서 전용철(21)등이 차에 싣고 온 사체를 내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보라색 파카에 청바지차림의 전은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차 트렁크에서 사체를 꺼내 자신과 김영민이 각각 사체의 팔과 다리를 잡고 5m 절벽아래로 던지는 장면 등을 2시간남짓 차분히 재연했다. 경찰은 전을 따라 사체유기장소에서 1.7㎞ 떨어진 청평댐 부근 도로변에서 배씨의 목을 조르는 데 쓴 커튼끈과 식칼 1개,입에 물렸던 커튼조각 4개,전기장판 전선 등이 들어 있는 옷가방을 발견. 전은 『배씨를 살해할 당시 사용한 범행도구는 물론 수사의 단서가 될만한 모든 물건을 수거해 청평호수 주변에 버렸으며 식칼 2개는 모두 호수 속에 던졌다』고 진술. ○…지정부락 야산중턱 5m 절벽아래 낙엽더미 위에서 발견된 배씨 사체는 쭈그린 채 엎드려 있는 상태였는데 얼굴이 다소 부패된 것 말고는 추운 날씨에 얼어붙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배씨는 회색 트레이닝잠바와 검정색 골덴바지차림에 맨발인 상태였으며 현장에서 실시된 사체검안결과 목을 졸린 흔적과 손목·발목을 결박당한 색흔,머리에 약간의 타박상 등이 있었다. 전은 『지난 여름 영화를 찍으러 온 최진실씨와 자주 와 지형에 익숙했기 때문에 이곳에 사체를 버렸다』고 진술. ○…서초서 관계자는 『범인들이 커튼끈·커튼조각 등 증거물은 물론 배씨집 전기스탠드 등 자신들의 지문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물건을 옷가방에 넣는 등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핸드폰을 실명으로 구입하고 은행 폐쇄회로 TV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등 범행이후 도주행적에서는 완전히 초보였다』고 한마디. ○…경찰은 범인들과 도피행각을 벌인 애인들에 대해 범인도피혐의를 적용,즉각 사법처리할 방침이었으나 뚜렷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일단 이들을 귀가조치. 경찰은 이들이 부산·제주 등지로 함께 도피해 다니기는 했지만 전·김의 범행사실을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데다 적극적으로 방조하거나 도왔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일단 이날 자수한 김을 조사한뒤 재소환할 예정. ◎매니저/연예인에 폭군처럼 군림/4백명 추산… 대부분 가요계서 활동/폭력배 출신 많아… 돈으로 PD매수도 탤런트 최진실양의 전매니저 배병수(36)씨 살인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매니저의 폭력실태와 구조적인 비리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예활동의 특성상 연예인과 이들의 모든 것을 관리해주는 매니저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연예인 매니저의 숫자는 모두 4백명선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매니저는 주로 가요계쪽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탤런트나 영화배우 등 연기분야에서는 스케줄상의 번잡함이 덜해 필요성도 낮기 때문에 숫자도 적은 편이라는 것. 연예계에 만연한 부정과 한탕주의 사고방식,그리고 매니저와 연예인 및 부하직원과의 주종관계를 야기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연예계의 폭력과 비리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입배분만 하더라도 매니저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70%까지 자신의 몫으로 챙기는 관행이 이어져오고 있으며 따라서 연예인의 드러난 「몸값」중 상당부분이 이들에게 들어가는 것이다. 매니저가 자신이 고용한 직원은 물론이려니와 인기연예인에게 폭군처럼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일부 방송PD및 광고대행사직원과의 돈으로 맺어진 유착관계 때문이다. 톱 클라스의 일부연예인을 빼고는 신인때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큼 인기를 얻더라도 영화·TV·CF에 출연하려면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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