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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조단 중간조사 결과] 희생·실종 46명중 30명… 해군 부사관 누구?

    천안함 침몰사고로 숨지거나 실종된 승조원들 46명 가운데에는 ‘함정 엔지니어’로 불리는 해군 부사관이 무려 65%(30명)를 차지한다. 해군 부사관은 장교와 수병 간 징검다리 역할은 물론 함정 운항에 필수적인 각종 기술을 오랫동안 습득한 전문가로 해군의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한 명의 숙련된 부사관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년의 시간과 엄청난 교육 비용이 투입된다. 그만큼 이번 희생에 따른 해군의 전력손실이 엄청나다. 특히 희생된 부사관들 가운데에는 부모 등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기 위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입대한 ‘효자 가장’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16일 해군에 따르면 부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9주의 기본 양성교육을 시작으로 1~5개월간의 직별·병과별 전문 기술보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직을 배치받기 전 최신 전투함 보직 예정자들은 1개월가량의 실전·이론교육에 들어간다. 즉 최대 8개월이란 긴 시간을 조타, 음파탐지, 사격통제 등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을 받는 셈이다. 통상 해군은 ‘기술군’으로 불린다. 육군은 물론 공군에 견줘 전문적인 함정 운용기술을 오랜 시간 교육 받기 때문이다. 또 장교부터 사병까지 모두가 함정뿐 아니라 항공, 잠수함 등의 장비를 다루는 기술까지 습득해 담당한다. 결국 이번 사고로 군은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을 보유한 인적 자산을 한꺼번에 잃은 셈이다. 기술병인 해군 부사관들 대다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했다. 장진선(22)하사는 강원 동해시 광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항공전문학교 항공정비과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정비 기술을 배워 가스터빈을 정비하고 보수유지 임무를 담당하는 내기(가스터빈) 하사로 복무했다. 장 하사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인 박동호씨는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이었다.”면서 “기술을 배우겠다며 스스로 학교를 결정했다.”고 기억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김종헌(34)중사도 부산 기장군 장안종합고등학교를 나와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바로 해군 부사관 163기로 입대해 동생들의 학비를 책임졌다. 손수민(25)하사도 울산 연암동 무룡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통기하사로 임관했다. 해군 관계자는 “육군은 사병, 공군은 장교 중심이라면, 해군은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부사관 체제로 움직이는데 이번 참사로 가정은 물론이고 국가에서도 손실이 크다. 해군 측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백민경 이민영기자 white@seoul.co.kr
  • [합조단 중간조사 결과] ‘돌아오지 않은 8人’ 어디에

    [합조단 중간조사 결과] ‘돌아오지 않은 8人’ 어디에

    16일 추가 수색에서도 이창기 원사 등 8명의 천안함 실종 장병들을 찾을 수 없었다. 군은 전날에 이어 오전 8시부터 함미 내부에 대한 정밀 수색을 벌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틀간의 정밀수색에도 나타나지 않은 8명의 장병들을 찾을 수 있을까. 군은 현재 인양 속도가 더딘 함수쪽에서도 실종 장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갖고 있다. 15일 시신으로 발견된 36명의 장병들 중 상당수가 당초 추정했던 장소와 다른 곳에서 발견된 점을 고려할 때 나머지 장병들도 예상 외로 함수쪽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하고는 있다. 그러나 생존 장병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함수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발견되지 않은 장병들은 대부분 선체가 두 동강 난 장소인 기관조종실과 가스터빈실 등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외부 폭발에 따른 선체 분열’이라는 잠정결론을 종합하면 이들은 산화(散華)했거나 유실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종 장병의 가족들도 산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람의 몸이 외부의 엄청난 폭발 충격을 버텨낼 수 없다는 점도 산화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이 경우 시신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실종자 수색에 나선 군도 신체 일부를 발견했거나 산화 연관성을 밝혀낼 증거를 찾지 못했다. 선체가 절단되면서 급속한 물의 유입과 함께 바다로 휩쓸려 갔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에는 먼 바다로 시신이 떠내려갔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에 휩쓸렸다면 중국해나 북쪽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발견된 고(故) 남기훈 상사나 고 김태석 상사의 경우 인양되기 전 함미 주변 수색에서 선체 일부에 몸이 걸린 상태로 발견된 점을 고려할 때 유실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선체가 침몰하면서 주변의 물을 끌어들이는 현상 때문에 함미 침몰해역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을 가능성도 있다. 백령도 일대가 부유물이 많고 지질이 펄인 점을 고려하면 펄 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백령도 일대 수온이 낮기 때문에 시신의 훼손은 심하지 않아 군의 정밀 수색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해군 관계자는 “서해 지역은 부유물이 많아 일단 가라앉으면 순식간에 펄로 뒤덮인다.”면서 “바닥에 대한 정밀 수색 과정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부유물·전선 뒤엉켜 아비규환… 곳곳에 싸늘한 시신

    [천안함 함미 인양] 부유물·전선 뒤엉켜 아비규환… 곳곳에 싸늘한 시신

    15일 천안함 함미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미귀환’ 승조원들의 주검은 생존 동료들이 앞서 풀어 놓은 사고 순간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그들은 오랜 시간 물속에 있었던 터라 부은 모습이었지만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폭발과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암흑 속에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물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격 때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 타박상은 그것을 강력히 방증한다. 온기 하나 없이, 말 한마디 없는 시신들이었지만 그들이 머무른 장소와 입고 있던 복장은 폭발 직전까지 평온했던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이날 실종자 수색작업 진행 중 기자실을 찾아 “해저에서 볼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선체 내부의 모습을 설명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위해 들어섰던 함미 내부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고 했다. 차가운 금속 파편들이 복도를 가리고 있고 을씨년스러운 부유물들과 각종 전깃줄이 뒤엉켜 통로 개척조차 쉽지 않았다. 어두운 내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실내 작업등을 설치했지만 어둠의 그림자를 쫓아내기엔 부족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아무 장비도 없이 들어간 SSU 대원들은 부서지고 넘어진 초계함 장비들 사이를 비스듬히 눕다시피 몸을 숙여 움직여야 했다. 우리 해군의 주력 초계함인 천안함은 그렇게 부서져 있었다. 이날 밤늦게까지 SSU 대원들과 해군 수중폭파팀(UDT) 대원들은 불을 밝혀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찾아 헤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했다. 처음 발견된 서대호 하사는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채 자신의 근무지로 연결되는 사병식당 입구 쪽에서 발견됐다. ‘그날’ 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동료들과 담소를 나눴을 이상준·방일민 하사, 이상민(1988년생) 병장은 승조원 식당에서 사선(死線)을 넘은 전우애를 남겨 두고 떠났다. 서승원 하사도 자신의 근무지인 디젤기관실에서 창백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근무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의 유도무기를 관리하는 유도장 안경환 중사, 전투 능력을 담보하는 병기 담당 박석원 중사, 디젤기관 담당 정종률 중사, 병기병 이상민(1989년생) 병장, 보건대학에서 의약학을 전공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주던 이재민 병장, 그리고 나현민 일병, 동료들의 깨끗한 머리 정돈을 맡았던 이발병 안동엽 상병, 기관부 소속인 박정훈·김선명 상병은 기관부 침실에 삶의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천안함의 ‘막둥이’로 모든 승조원들의 동생으로 기억되고 있는 장철희 이병도 함께였다. 특별한 점호시간이 없는 함선에서 근무를 마쳤거나 또는 근무를 앞두고 취침하거나 쉬던 박 중사 등은 순식간에 발생한 침몰로 탈출의 기회도 없었던 모양이다. 침대보가 어지럽게 엉켜 있던 기관부 침실에서 그들은 그렇게 세상에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기관부 침실과 후타실 사이에는 탄약고가 있다. 혹시 모를 폭발의 위험 때문에 SSU 대원들도 최대한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진입했다. 바닷물 탓인지 충격 때문인지 문은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하지만 평소 관리가 잘돼 있던 터라 폭발의 위험은 없었다. 대신 2명의 장병들이 왜 이리 늦었냐고 원망하듯 대원들을 향해 누워 있었다. 중사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던 임재엽 중사와 신선준 중사였다. 탄약고는 중간에 76㎜ 함포의 탄약이 장전되는 원형의 약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넓은 방처럼 돼 있다. 평소 이곳은 종교활동을 하거나 바둑을 두고 전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됐다.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서로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승조원 104명에게 어머니 같은 손맛을 전해 주던 조리병 강현구 병장은 기관실에서 발견됐다. 갑판 담당인 차균석 하사는 유도 행정실에서, 가스터빈 담당인 김종헌 중사, 전기하사 김동진 하사, 이용상 병장, 김선호 상병은 체력단련실로 이용되던 후타실에서 각각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생존 장병들이 예측했던 장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통신담당 문영욱 하사는 제독소에서 발견됐다. 또 전자전병 정범구 상병은 전기창고 입구에서 발견됐다. 정 상병은 평소에도 전자전과 관련된 조언을 함정 장교들에게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관부 침실 뒷부분의 승조원 화장실에서는 민평기·최정환 중사, 김경수·심영빈·손수민 하사, 조지훈 일병 등이 운동복 등 편한 차림으로 발견됐다. 몇몇은 옷도 제대로 걸치고 있지 못했다. 승조원 화장실이 샤워실과 세탁실을 겸하고 있어 이들은 근무를 준비 중이거나 마치고 들어와 개인정비를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침몰 당시 생존한 장병들 중 샤워를 하다 선임병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고 말했던 상황대로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이들에겐 작은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세탁실과 침실, 식당, 휴게실에서 발견된 천안함 승조원들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했던 사고 직전 모습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밀어닥친 대규모 폭발로 튕겨진 이들은 생사의 갈림길을 채 알아채지도 못하고 선체에 부딪혀 생의 마지막을 흘려보냈을 것이라고 해군은 추측했다. 지난 4일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함미에서 발견된 고(故) 남기훈 상사, 지난 7일 역시 주검으로 돌아온 김태석 상사가 익사 흔적 없이 몸 전체에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고 있었다는 것도 급박했던 함미 상황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침몰 당시 선체가 뒤집히고 물이 거꾸로 역류해 들어오면서 실종됐던 승조원들이 순식간에 선체 아래쪽 디젤기관실 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수색을 벌여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우리의 임무이자 먼저 보낸 승조원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선체 정밀촬영… C자형 파손 외부타격 다각분석

    15일 인양된 천안함 함미(艦尾)는 곧바로 민·군 합동조사단에 넘겨졌다. 인양까지는 합동참모본부 책임이지만, 인양 뒤 사고원인 조사는 합조단의 지휘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합조단은 과학수사와 선체구조·관리, 폭발유형 분석, 정보·작전분석 분과 등으로 나눠 사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우선 합조단 38명이 인양된 함미가 실린 운반용 대형 바지선에 올라 곧바로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현장조사팀은 군 인사 26명과 민간인 10명, 미국 조사요원 2명이 포함됐다. 민간은 공동조사단장인 윤덕용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를 포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 2명, 함정구조 전문가 4명, 폭발유형분석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다. 조사팀은 절단면을 포함해 함미 전체를 정밀 촬영해 증거 기록을 남긴 뒤 절단면의 찢겨진 흔적과 선저(배 밑바닥)의 파손 흔적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또 선체에 외부 공격물의 파편 등이 남아 있는지도 조사하게 된다. 희생자의 위치와 선체내 다른 폭발 흔적도 찾아본 뒤 폭발 순간을 재구성해 볼 예정이다. 합조단은 함미를 실은 바지선이 평택 2함대사령부에 도착하는 17일 오전까지는 선상에서 조사를 계속할 것으로 전해졌다. 함미가 2함대사령부에 도착한 뒤에는 정밀 조사가 이뤄진다. 지난 11일 입국한 미국 해군안전센터와 해군조함단 소속 전문가 8명과 호주 전문가 3명에 이어 이날 합류한 영국 조사팀 등 다국적 조사단은 선체구조와 폭발 유형 분석 과정에 참여한다. 공개된 함미의 우현쪽 절단면이 C자형으로 크게 파손된 이유와 함께 가스터빈실 위쪽 복도 바닥을 상갑판까지 들어올린 힘의 정체, 선체 구조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도 조사를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합조단 관계자는 “군사보안 문제 등을 감안해 다국적 조사단과 민간 분야 전문가들은 과학 수사와 분석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조단은 다양한 분석결과 등을 시뮬레이션화해서 모의실험을 할 계획이다. 합조단은 또 천안함의 최초 폭발 지점 둘레로 500m 이내 해역에 대한 정밀 탐색과 파편 수거 작업에도 착수했다. 파편의 재질이 선체 구성 합금과 일치하는지, 어뢰나 기뢰의 파편이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합조단은 파편을 찾기 위해 청해진함도 동원했다. 심해구조정(DSRV)과 심해 탐지 장비가 있는 청해진함과 옹진함·양양함 등 기뢰탐색함 4척은 음파탐지기(소나)와 가변심도음탐기로 해저 바닥에 떨어진 파편들을 찾게 된다.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무인탐사정인 해미래호도 백령도 해역에 투입됐다. 수심 6000m의 심해까지 탐사가 가능한 해미래호는 로봇팔과 함께 4m 이상 떨어진 곳에서 2.5㎝짜리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는 음탐기와 수중에서 30㎝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중카메라가 달려 있다. 이렇게 확인된 파편들은 미국 해군 잠수사 10명을 포함한 잠수사 38명이 수거하게 된다. 합조단은 또 함수(艦首) 인양까지 끝낸 뒤에는 저인망 어선들을 동원해 바닥을 훑어가며 파편을 찾을 예정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인양 4시간만에 첫 시신… 가림막뒤엔 ‘그 순간’ 뚜렷

    [천안함 함미 인양] 인양 4시간만에 첫 시신… 가림막뒤엔 ‘그 순간’ 뚜렷

    천안함을 삼킨 뒤 줄곧 무섭게 일렁이던 바다는 15일에는 다행히 잠잠했다. 취재진을 실은 인천 옹진군 소속 517호 행정선 선장은 “하늘이 이제서야 돕는 모양이야.”라고 말했다. 두 달에 한 차례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갈매기 몇 마리가 작업 현장을 맴돌며 무심하게 울어댔다. 행정선은 18노트(시속 33.3㎞)의 속력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함미(배 뒷부분)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인양작업 현장 근처에 다다르자 7노트(시속 13㎞)의 최저 속력으로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돌았다. 실종자 가족들의 타들어 가는 기다림과 전 국민의 염원, 하늘의 보살핌으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양 작업 시작 옹진군 백령도 남방 1370m 지점 해역에 가라앉아 있던 천안함의 함미 인양 작업은 15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앞서 8시44분에는 침몰 해역 주변에 있던 독도함에서 유가족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모든 실종자를 무사히 수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주변에 있던 해군의 모든 함정은 15초간 애도의 기적을 울렸다. 2200t급 크레인에 매달린 함미는 1분에 1m씩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 시작 10분 남짓 만에 갑판 위의 사격통제 레이더실과 하푼미사일 등이 보였다. 9시22분부터는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크레인과 연결된 사다리를 통해 함미 갑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9시28분부터는 자연배수가 시작됐고, 9시58분부터는 인공배수 작업이 진행됐다. 군(軍)은 “자연배수로 430t, 인공배수로 504t의 물을 뺐다.”고 밝혔다. 함미 곳곳에 설치된 배수펌프는 하얀 바닷물을 쉴 새 없이 토해냈다. 펌프 한 대당 한 시간에 1.5t의 해수를 뿜었다. 다행히 기름유출은 거의 없었다. 유류탱크가 격실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기름이 유출됐다면 주변의 까나리 어장이 큰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었다. 10시쯤부터 바람이 좀 거세지고, 해무가 끼어 보는 이들을 긴장시켰다. 배수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수색작업도 시작됐다. 인양팀 요원들은 10시30분쯤 함미 바닥인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해수를 뺀 함미 무게는 955t으로 추정됐다. 승용차 1000대의 무게다. 선체 무게가 625t이고, 330t은 기름 무게다. 크레인이 늘어뜨린 대형 쇠사슬 한 개가 끌어올릴 수 있는 무게는 최대 400t이다. 안전하게 함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3개의 쇠사슬이 설치됐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공중 부양 10시55분쯤 함미를 올려 놓을 3000t급 바지선이 함미 쪽 가까이 접근해 탑재 작업을 준비했다. 독도함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도 바지선에 올랐다. 11시20분쯤 배수 작업은 90% 이상 진행됐고, 11시25분부터는 공중 부양을 위해 함미 주요 부분에 고정 케이블을 설치했다. 함미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옮기는 역할을 한 바지선은 자체 추진력이 없어 예인선 2대에 의해 이동했다. 선체가 해수면에서 빠져나올 때는 강력한 표면장력이 작용하고, 부력이 사라져 엄청난 무게가 한꺼번에 쇠사슬에 실리게 된다. 3개의 쇠사슬에 선체 무게가 고루 퍼져 공중에서 수평을 이루는 게 관건이었다. 낮 12시11분. 드디어 함미가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스크루와 추진축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더니 배의 밑바닥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상되지 않은 채 깨끗한 상태였다. 그러나 절단면을 중심으로 오른쪽 부분은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듯 ‘C자(字)’로 파손됐고, 녹색 그물에 가려진 절단면 쪽 기관조종실, 가스터빈실 등도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였다. 쇠사슬의 균형을 맞추면서 1분에 1㎝씩 선체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동안 엔진 냉각수가 들어가는 해수관을 통해 함미 안에 남아 있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참한 절단면 바지선에 옮긴 함미의 처참한 모습에서 끝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장병들의 고독한 시간이 짙게 묻어났다. 절단면이 여러 겹의 녹색그물로 가려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절단면의 실루엣은 곳곳에서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었다. 절단면에는 세 곳이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가운데는 높이 솟은 왕관과 같았다. 절단면을 정면으로 봤을 때 가운데 날카롭게 솟은 부분이 오른쪽(좌현)으로 밀려 올라가 있어 함미의 우현에서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했다. 그물망 안쪽으로는 갖가지 색상의 통신선, 배수관 등이 끊어진 채 늘어져 있었다. 척추가 잘려 두 동강 난 천안함의 끊어진 혈관들처럼 보였다. 상갑판 위 마주했던 연돌을 잃은 추적레이더실은 앞쪽 가운데 천장 부근이 움푹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상갑판 곳곳도 출렁이듯 평형을 잃은 채였다. 그래도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처럼 갈갈이 찢긴 절단면과는 달리 함미 상부는 그럭저럭 멀쩡했다. 함미의 뒷부분에는 ‘천안’이라는, 해군을 상징하는 하얀색 글씨가 회색 바탕에 외롭게 새겨져 있었다. 바닷속 21일간은 함미 곳곳의 페인트를 벗겨 냈다. 대신 선체는 서해바다 뻘과 같은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레인선 주변에 띄운 소형 크레인선인 유성호에서는 민간 인양업체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탑재 차질 부양 작업 시작 15분 정도가 지나자 함미를 탑재할 바지선이 서서히 움직였다. 함미는 그대로 공중에서 균형을 맞춘 채 그 아랫부분으로 바지선이 이동했다. 함미를 탑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함미는 25m쯤, 건물 10층 높이로 들어올려졌다. 들어올릴 때와 마찬가지로 함미는 평행을 이루며 천천히 바지선 쪽으로 내려갔고, 오후 1시12분 바지선에 착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인양 작업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함미를 바지선의 거치대에 오차 없이 정확하게 탑재하는 마지막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바지선에 안착된 것처럼 보였던 선체가 다시 살짝 들어올려졌다. 선체를 고정시킬 거치대 10여개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파손됐기 때문이다. 함체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바지선 이동이 불가능하다. 결국 거치대를 고치는 작업과 함미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됐다. 1시21분쯤 함미 기관조종실에서 서대호 하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10분 뒤에는 시신 몇 구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수색팀이 더욱 분주해졌다. 수색팀은 3시5분쯤 함내 진입을 위한 작업등 설치와 통로개척을 끝냈다. 거의 동시에 과학수사팀 4명이 승조원 식당에 진입했다. 3시14분쯤 무너진 거치대 한 곳의 보수작업이 마무리됐다. 군은 함미 내부의 실종자 신원 확인을 위해 해군 관계자 9명과 수사요원 4명, 실종자 가족 4명을 바지선에 탑승시켰다. 실종자 수색은 4개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수사요원 1명, 해군 관계자 2명, 가족대표 1명 등 4명이 한 팀을 이뤘다. ●시신 수습 시신은 15척의 고무보트를 통해 헬기가 배치된 독도함으로 옮겨졌다. 이어 이름표와 군번줄,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알코올 세척을 비롯한 세부 수습을 거쳐 영현함에 안치한 뒤 태극기로 덮어 순직 장병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과정을 거쳤다. 1차로 수습된 시신은 헬기를 이용해 임시 안치소가 있는 제2함대사령부로 운구됐다. 함미를 탑재한 바지선은 실종자 수색을 모두 끝낸 밤늦게 2함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지선의 속도가 시속 5~7노트(9.3~13㎞)여서 평택항에는 17일 새벽에야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허백윤 김양진기자 window2@seoul.co.kr ●특별취재팀 정치부 김상연차장 오이석기자 사회부 김효섭 정현용 백민경 이민영 김양진 윤샘이나기자 사회2부 김병철부장 김학준차장 박건형기자 사진부 이호정차장 정연호기자
  • [천안함 함미 인양] 배 밑바닥은 말끔했다… 힘 받는 어뢰·버블제트說

    15일 물 밖으로 나온 천안함 함미(艦尾)를 보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외부충격, 특히 어뢰 공격이 침몰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선체 노후화로 배가 쪼개지는 ‘피로파괴’나 암초 충돌을 원인으로 꼽는 견해는 찾기 힘들었다. 내부 폭발 가능성도 사실상 배제되는 분위기다. 물론 육안으로 원인을 100% 단정하긴 힘들다는 점에서 함수(艦首)를 마저 인양, 함미와 절단면을 맞춰 보고 여러 증거들을 수집해 조사한 뒤에야 정확한 원인을 단정할 수 있다는 신중론은 여전하다. 어뢰가 침몰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절단면이 뭔가에 강타당한 듯 매우 지저분하게 너덜너덜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절단면의 철판이 위로 휘어져 있는 것도 아래에서 위쪽으로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어뢰가 배를 직접 때렸거나, 배 바로 아래에서 어뢰를 폭발시켜 배를 두 동강 냈거나 둘 중 하나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먼저 직격(충격식) 어뢰에 의한 침몰이다. 침몰 당시 물기둥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에다 절단면을 제외한 배 밑바닥이 비교적 말끔하다는 점이 직접 타격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다. 절단면이 수직이 아닌 사선으로 쪼개진 것도 직격 어뢰 가능성을 높이는 근거로 제시된다. 사고 당시 “쿵”, “쾅” 하는 폭발음이 연달아 들렸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미뤄 어뢰 2발이 선체를 잇달아 때렸을 가능성이 있다. 직격 어뢰는 배 안에서 폭발하기 때문에 안에 구멍(파공)이 생기고 폭발지점에서 방사선 모양으로 철판이 휘어져 나간다. 따라서 앞으로 정밀 조사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직격 어뢰로는 배에 구멍은 낼 수 있어도 두 동강 내기는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 물 위에 띄워 놓은 나무젓가락을 아무리 세게 후려쳐도 부러뜨리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결국 배 아래에서 폭발형 어뢰를 터뜨려 가스거품을 일으킴으로써 배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버블제트’ 이론이다. 절단면이 사선의 모습을 띠긴 하지만 선체 재질에 따라서 버블제트도 그런 단면을 충분히 빚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폭발형 어뢰는 배에 닿기 직전에 ‘인공지능’ 식으로 스스로 알아서 터져야 하기 때문에 성능이 매우 우수해야 하고 발사 기술도 상당히 정교해야 한다. 북한 잠수정이 그런 고급 무기와 실력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다. 어뢰뿐 아니라 기뢰도 버블제트가 가능하다. 하지만 함미의 스크루가 멀쩡하고 침몰 당시 저속운행으로 배 중간 부분의 가스터빈실이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음향 감응형 기뢰’로 보긴 힘들다는 시각이 있다. 접촉형 기뢰도 있지만 사고 해역의 조류가 빠르다는 점에서 설치가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실험실이라면 몰라도 변화무쌍한 환경이 지배하는 실전에서 그렇게 단번에 배 중간 부분을 정확히 명중시켜 두 동강을 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어뢰라면 인간이 몰래 배에 헤엄쳐 가서 배밑에 장착해 터뜨린 것일 수도 있다는 다소 황당한 가능성까지 일각에서는 거론한다. 절단면 철판이 위로 치솟은 반면 아래로는 꺾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부 폭발은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 배 꼬리 끝 부분의 탄약고 윗부분 갑판이 멀쩡한 것도 내부 폭발 가능성을 희박하게 하는 대목이다. 천안함은 가스터빈실(엔진) 쪽에서 절단됐는데 엔진 폭발로 배가 침몰한 경우는 전무하다고 한다. 피로파괴는 절단면 부분에 균열이 점차적으로 진전된 흔적, 즉 울퉁불퉁한 조개껍데기 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암초 역시 배에 찢어진 표시가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배제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석들은 어디까지나 육안 판독일 뿐 정확한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사고 해역의 빠른 조류 탓에 어뢰 파편 등 증거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만만치 않다. 자칫 영구미제가 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다행히’ 유력한 증거물을 수집, 정밀 조사한 결과 침몰 원인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처럼 어뢰 공격으로 최종 판명된다면 다음 국면은 발포자가 누군지로 전개될 것이다. 어뢰 한 방이라도 목표물에 대해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하는 작업이 사전에 이뤄져야 하다는 점에서 아군끼리의 오폭은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발포 혐의자는 북한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과연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무력 보복은 전면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보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제재가 우선 검토될 수 있다. 물론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어야 한다. 북한은 부인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반대할 수 없는 확증이 필수적이다. 만일 이 작업이 여의치 않을 경우엔 우리가 개별적인 제재에 나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북 지원을 끊고 양자외교를 통해 다른 나라도 대북 교류를 끊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금융, 수출 등의 제재에 나선다면 북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우리에게 비상한 각오를 요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진실 규명의 순간이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운명으로 다가오고 있다. 김상연 정현용 윤샘이나기자 carlos@seoul.co.kr ■도움말 주신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현엽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 노인식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 김명현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박치모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교수
  • [천안함 본격 인양] “찢긴 선체 공개는 기밀·사기·안전 위협”

    군(軍)이 15일 인양되는 천안함 함미(艦尾) 절단면을 공개할지를 놓고 고심 끝에 국민의 알권리와 군사기밀보호의 중간지점을 선택했다. 인양 뒤 배수 작업을 마친 뒤 그물망을 쳐둔 상태에서 부분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함미에서 300야드(274m) 떨어진 거리에서만 볼 수 있게 했다. ●완전 비공개땐 의혹 부추길 우려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14일 “군사기밀 유지와 군의 사기, 초계함 장병의 안전,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과 희생자에 대한 예우 등을 고려해 부분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건 원인을 놓고 갖가지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완전 비공개로 하면 또다른 의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공개는 하지만 온전히 드러내 보이진 않겠다는 뜻이다. 군이 부분적이나마 함미를 공개하기로 한 이유는 그 동안 이번 사건을 숨기는데 급급하다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그 동안 군은 천안함 침몰 이후 사건 발생 시각부터 많은 부분에서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여러 차례 입장 발표를 통해 논란을 수습했지만 군을 바라보는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매서워져 있다. ☞[사진]17일만에 드러난 모습…톱니바퀴처럼 찢어진 절단면 이렇다보니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함미를 국민의 눈 앞에 올려놔야하는 일은 군 입장에선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셈이다. 군은 ‘부분 공개’라는 절충안을 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절단면은 침몰사고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를 위한 현장보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무기·취약부분 등 노출 봉쇄 또 절단면 너머로 가스터빈실 등 군사보안 시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체의 두 동강난 부위는 초계함의 무게중심 축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셈이고 초계함의 탄약고와 연료탱크 등 핵심시설이 어느 부분에 있는지 노출되면 적 어뢰의 표적이 될 수 있어 군 입장에선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무기 탑재 방법과 무장 수준이 드러날 수도 있다. ●실종자 가족·희생자 예우도 고려 원 대변인은 “천안함 내부구조와 무기탑재 상황 등에 대한 전면 공개는 이와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20여척의 함정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또 다른 해군 장병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절단면이 온전히 공개될 경우 또다른 의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비공개 결정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함미뿐 아니라 함수(艦首)까지 들어올려 절단면 형태와 외부 공격 흔적 등을 파악한 뒤에야 비교적 진실에 가까운 사건 원인을 밝힐 수 있는데도 함미의 절단면만을 놓고 각종 추측과 의혹이 쏟아진다면 앞으로 나올 최종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시 희생자의 모습이 낱낱이 보여진다면 실종자 가족이나 이를 지켜본 국민에게 또다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군이 망원렌즈로 당겨봐야만 촬영이 가능한 270여m를 포토라인으로 설정한 것도 너무 자세한 공개에 따른 군의 여러 손실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읽힌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연돌’ 안보여… “절단면 강한 충격” 방증

    [천안함 침몰 이후] ‘연돌’ 안보여… “절단면 강한 충격” 방증

    천안함이 침몰한 지 17일 만인 12일 함미(艦尾·배 뒷부분)의 일부분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크레인과 연결된 체인 두 가닥으로 수면 위까지 끌어올려진 채 45m의 깊은 수심과 풍랑을 피해 백령도 연안 4.6㎞, 수심 25m 지점으로 온 천안함 함미는 폭발로 함수(艦首)를 잃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체를 두동강 낸 대규모 폭발과 빠른 물살에도 76㎜ 주포와 40㎜ 부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 17일만에 드러낸 천안함 함미…어떤 모습? 천안함 전체 길이 88m 가운데 39m쯤만 남은 함미에는 가스터빈실 윗부분에 달렸던 연돌이 떨어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절단면 바로 옆에 우뚝 솟아 있어야 할 연돌이 보이지 않은 것은 절단면에 강한 충격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갑판 2층 연돌이 있던 바로 뒤편 불뚝 솟은 추적레이더실과 40㎜ 부포 사이에는 함대함 미사일인 하푼미사일 발사대 2문이 고스란히 위용을 품고 있었다. 또 40㎜ 부포와 하푼미사일 사이에는 회색빛으로 칠해진 기다란 어뢰 3기가 침몰 전 그대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주갑판 모습은 물속에 가라앉아 확인되진 않았지만 주갑판 뒷부분에 있는 76㎜ 주포가 파도에 부딪혀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선체의 절단면 부분은 해상크레인인 ‘삼아 2200호’와 마주하고 있어 안쪽을 들여다 볼 순 없었지만, 끊겨나간 듯한 지점의 윗부분이 녹색 그물로 감싸여 있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군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함미에 실종자 44명 전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함미서 김태석상사 시신 추가수습

    천안함 인양작업에 나선 민간 인양 전문업체 잠수사들이 7일 오후 4시쯤 함미(艦尾)쪽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을 추가로 발견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이 김 상사의 시신을 인양했다. 김 상사의 시신은 이날 밤 평택의 2함대사령부로 옮겨졌다. 함정의 가스터빈 정비 및 보수유지 임무를 맡았던 김 상사는 작업복(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이었다. 시신 발견장소가 함정 기관조종실인 것으로 미뤄볼 때 근무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일 남기훈 상사의 시신이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4일만에 시신이 또 발견됨에 따라 실종자는 44명으로 줄었다. 군은 SSU 요원 10명을 수중으로 긴급 투입해 절단면 부근에서 추가로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색 작업을 벌였다. 한편 민·군 선체 인양팀은 이날 오후 3시부터 파도가 잔잔해진 틈을 타 함수(艦首) 와 함미 인양을 위한 쇠사슬 설치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합참 관계자는 “인도줄 설치를 위한 터널 작업을 시작하면서 인양작업에 속도가 나고 있다.”면서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저녁 3000t급 바지선 ‘현대프린스 12001호’가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8일에는 3600t급 인양크레인인 ‘대우3600호’도 합류할 예정이다. 인양팀은 1차 작업이 끝나는 대로 체인을 함체에 연결하는 2단계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사고 해상에서는 미 해군 함정 1척을 포함한 9척의 함정과 고무보트 16척, 해병대 병력 480명이 부유물 탐색 작업을 하고 있다. ☞[포토]세딸과 함께 단란했던 故 김상사 가족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故 김태석상사 누구

    [천안함 생존자 증언] 故 김태석상사 누구

    7일 천안함 함미 절단면 부근에서 발견된 고 김태석(37) 상사는 경기 성남 출신이다. 성남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해군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전주함, 강원함, 제천함, 청주함 등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4월부터 천안함에서 근무했다. 김 상사는 가스터빈엔진 정비담당으로 근무해 왔다. ☞[포토]세딸과 함께 단란했던 故 김상사 가족 군 복무 중 전대장상, 함장상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천안함 근무시 단 한건의 장비사고 없이 매사에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는 모범적인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상사는 천안함 사건 이후인 지난 1일 상사로 진급했다. 부인 이수정씨가 천안함 침몰 이후 2함대사령부에서 남편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려 왔다. 유족으로 부인 이씨와 어린 세 딸이 있다. 해군 장교출신으로 지난 4일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고 선체 인양에 나서자고 말했던 김태원(44)씨가 친형이다. 김 상사는 형이 해군 중위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해군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3형제 모두 해군 출신이다. 태원씨는 이날 “우리 가족들은 실종자 모두가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고 있다.”고 눈물을 훔쳤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합동조사단 5대의혹 해명

    [천안함 생존자 증언] 합동조사단 5대의혹 해명

    민·군 합동조사단은 7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의혹과 해명을 짚어 본다. 합조단은 발생시간을 “3월26일 오후9시22분”으로 확정했다. 생존자와 실종자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해군 전술지휘체계(KNTDS) 기록시간, 천안함과 해군 2함대사령부 간 국제상선공통망 교신내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기상청의 지진파 감지 시간 등을 근거로 내놓았다. ① 천안함 침몰시각은 합조단은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통해 오후 9시16분쯤 침몰했다는 일부의 의혹을 일축했다. 실종자 한 명이 사고 당일 오후 9시16분에 가족과 통화하던 도중 “지금은 비상상황이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했다는 진술과 관련, “통신사실 확인자료 분석결과 통화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차모 하사의 문자메시지 중단 의혹에 대해선 “실종자인 차 하사가 여자친구에게 오후 9시16분42초에 마지막 문자를 보냈으나 여자친구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합조단은 오후 9시16~22분에 통화한 내역도 새로 공개했다. 생존자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 결과 A상사와 그의 부인이 오후 9시14분11초에서 오후 9시18분52초까지 4분41초간 통화한 사실이 나왔다. B하사에게 그의 대학후배가 오후 9시14분31초와 사고 직전인 오후 9시21분25초에 문자를 발송한 기록도 찾았다. 통화 기록 조회 내용 중에는 실종된 C상병의 동생이 집전화를 이용해 오후 9시17분19초~21분47초 실종된 D중사의 휴대전화로 3차례 전화를 걸어 C상병과 통화했던 기록도 나왔다. KNTDS 기록은 보다 논리적인 정황 증거 역할을 했다. 합조단 조사결과 천안함으로부터 발신되는 자함 위치신호가 오후 9시21분57초에 중단됐다.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가 진도 1.5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한 오후 9시21분58초, 백령도 기상대 관측소가 지진파를 탐지한 오후 9시22분쯤도 KNTDS의 기록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천안함과 2함대사령부가 국제상선공통망으로 오후 9시19분30초에서 오후 9시20분3초 사이 33초간 교신한 내용도 공개됐다. 당시 2함대사는 “갈매기232(천안함), 여기는 갈매기200(2함대사) 감도 있습니까.”라고 호출했고, 천안함은 “여기는 갈매기232 이상”이라고 답신했다. 또 2함대사가 “여기는 갈매기200, 감도 양호 감도 양호 이상”이라고 통신망 유지상태를 물었고, 천안함은 “귀국 감도 역시 양호 교신 끝”이라고 답신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② 섬엔 왜 가까이 갔나 천안함이 수심이 얕은 백령도 남쪽 1.8㎞ 해안을 이동한 것과 관련, ‘정상적인 운항’이 아니라는 의문들이 제기됐었다. 수심이 낮아 암초에 걸려 좌초되거나 물 흐름이 빨라 초계함이 운항하기에는 위험한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백령도 어민들도 “사고 지점은 까나리어장 안쪽으로 바다 위에 흰색 부표를 띄워 어장을 표시하기 때문에 해군 함정은 항상 어장 남쪽으로 다녔다.”는 진술들이 잇따랐다. 합동조사단은 사고 발생 지점을 백령도 남쪽 2.5㎞라고 고쳐 발표했다.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 KNTDS 기록 등을 근거로 군의 최초 발표보다 남쪽으로 700m 더 아래쪽이라고 밝혔다. 또 천안함은 지난해 11월10일 대청해전 이전에는 백령도 서북쪽 경비구역 안에서 기동했으나, 같은 달 24일 2함대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백령도 서남쪽 지역으로 조정된 경비구역에서 작전하게 됐다고 한다. 합조단은 “천안함의 기동수역은 홍합여, 연봉 등 암초가 있는 백령도 남쪽지역으로부터 9~10㎞ 떨어져 있다.”고 밝혀, 운항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혔다. 천안함 함장으로 부임한 지 20개월 된 최원일 함장이 그동안 사고발생 지역에서 16차례 임무를 수행해 지리적으로 익숙했다는 판단과 함께다. ③ 당시 작전중이었나 지난 3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군 상황일지’에 따르면 해경의 보고 일지에는 ‘3월26일 오후 9시15분’ 천안함의 위치를 위도 37도50, 경도 124도36으로 기록돼 있다. 군이 당초 ‘오후 9시22분’을 기준으로 천안함의 사고 지점을 위도 37도55, 경도 124도37로 밝힌 것과 비교할 때 천안함이 7분사이에 9.4㎞쯤 북상한 것이 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천안함이 가스터빈 엔진까지 가동하며 시속 40노트(시속 74㎞) 이상으로 빠르게 북상한 게 북한 잠수정 등에 의한 긴급한 작전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다. 이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이날 “천안함은 사고 당시 정상기동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합조단에 따르면 사고 전날인 지난달 25일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경비구역을 빠져나와 대청도 동남쪽으로 피항했던 천안함은 사고 당일 오전 8시20분부터 정상 경비 구역에서 정상적인 작전 임무를 했다. 또 “지난달 26일 오후 8시 이후 야간 당직근무자 29명을 제외한 인원이 휴식이나 정비활동을 하고 있었다.”면서 “비상 기동하고 있었다면 전원 근무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합조단은 “천안함은 사고 발생전 백령도 북서쪽으로 시속 6.3노트(시속 11.3㎞)로 정상 기동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④ 침몰원인 좌초였나 천안함 사고 뒤에 일부 공개된 해경 보고서에 따르면 해군 2함대사령부 당직사관이 해경정 지원을 요청하며 ‘백령도 서쪽 우리 함정에서 좌초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천안함이 암초에 걸려 물이 새고, 피항(避航)하기 위해 빠르게 기동하다가 결국 두동강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하지만 합조단은 “상황 전파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합조단은 “사고 당일 오후 9시28분 천안함 포술장에게서 휴대전화로 최초 상황보고를 받은 2함대 상황장교는 ‘포술장이 다급해하며 빨리 구조해 달라는 뜻의 말을 하면서 좌초되었다고 보고했고, 다시 좌초되었냐고 묻자 포술장이 좌초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안함 포술장은 “당황해 빨리 구조해 달라는 말을 했지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한다.”고 진술했다. 합조단은 “급박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정확한 용어 사용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⑤ 5명 후타실 왜 갔나 해군 2함대사령부는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사건 뒤 생존자들의 진술을 통해 실종자들의 당시 선내 위치를 설명하면서 “후타실에 5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초계함 승조 경력자들은 “일반적으로 후타실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5명이나 있었다는 건 조타장치에 문제가 있어 후타실에서 배를 조종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합조단은 “후타실에 있던 5명은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후타실에는 배의 엔진과 스크루가 연결되어 방향을 잡는 조타장치가 있다. 예전에는 후타실이 개방되지 않았지만 최근 승조원들의 선내 체육활동을 위한 운동기구를 후타실에 갖다 놓으면서 체력단련실로 활용됐다. 생존 승조원들도 “후타실에 휴식시간 때 운동을 하려고 자주 들어갔다.”는 진술도 나왔다. 합조단은 “만약 긴급상황이었다면 장교와 함께 병력이 투입되는데, 사고 당시 하사 3명과 수병 등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긴급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남기훈상사 시신으로 추정해 본 상황

    [천안함 침몰 이후] 남기훈상사 시신으로 추정해 본 상황

    고(故) 남기훈 상사는 3일 오후 상의는 얼룩무늬 전투복, 하의는 속옷만 입은 상태로 천안함 내 원·상사 식당 통로쪽에서 발견됐다. 이는 침몰 상황이 매우 갑작스러웠다는 것을 방증한다. 남 상사가 발견된 곳은 함미 원·상사 식당으로 추정되는 부분의 절단면 근처다. 이곳은 원·상사들이 휴식을 하거나 식사를 하는 곳이지만 속옷 차림으로 출입할 수는 없다. 바로 아래층은 원·상사 침실로 남 상사가 사고 전 옷을 갈아입으며 취침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생존자들도 내복을 입거나 샤워를 하던 중 탈출했다는 점과 같은 맥락이다. 군도 남 상사가 원·상사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준비하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남 상사를 발견했던 해군 해난구조대(SSU) 요원 송하봉(32)·석규주(34) 중사는 “남 상사의 시신이 원·상사실 통로에 끼여 있었다.”고 말했다. 남 상사는 사격통제 책임자로 근무지는 함미쪽 1층 포사무실이다. 이 포사무실은 원·상사 침실에서 원·상사 식당 통로를 지나갈 수 있다. 남 상사가 입고 있던 얼룩무늬 전투복은 병기 및 장비관련 업무와 정비를 담당하는 장병들이 입는 작업복이다. 함상 근무가 3교대 근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오후 9시를 넘긴 시간에 남 상사가 작업복을 입거나 벗을 이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해군의 한 장교는 4일 “작업복을 입고 있던 상태와 (시신이) 발견된 위치를 고려할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해 급히 포사무실로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남 상사가 바지를 벗어 간이 튜브를 만들려고 시도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천안함이 어뢰에 피격된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장교는 “천안함 같은 함정은 단지 배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샌다고 바로 침몰하거나 두동강 나지 않는다.”면서 “어뢰와 같이 직격탄에 맞았으면 두 동강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함미 쪽에 가스터빈실 등 큰 공간이 많아 절단될 경우 해수의 유입이 매우 빨라 바로 침몰한다.”면서 “상대적으로 격실이 더 많아 부양력이 높은 함수는 오래 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군이 오인해 새 떼에 함포를 발사했다는 것에 대한 반박의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철새전문가인 경희대 유정칠 교수는 “사고 당일 기압이 매우 낮고 파도가 높아 철새들이 먹이활동이나 저공 이동할 상태가 아니었다.”면서 “야간에 이동할 때는 가능한 한 높이 날아 체력을 아껴야 되는데 저기압 기상에서 저공 비행은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사진]쌍끌이어선 금양호 실종… ‘침통’
  • 軍 “北잠수정 개입 가능성 낮다”

    軍 “北잠수정 개입 가능성 낮다”

    국방부는 1일 북한군의 잠수함 또는 잠수정이 천안함 침몰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 관련 국방부 입장’이라는 보도자료에서 “국방부는 다양한 정보자산을 활용해 북한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고, 특히 잠수함(정), 반잠수정 등과 같은 선박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추적 관리하고 있다.”면서 “사고 당일의 움직임 여부도 당연히 파악했으며, 당시 사고 인근지역에서 북한의 잠수함(정) 활동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투입 가능성도 매우 낮은 것으로 현재는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사고 당시 천안함은 승인된 정상적인 경비구역 내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백령도에 다소 근접해 기동한 것은 북한의 새로운 공격형태에 대응하여 경비작전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국방부는 사고 직후 인근 속초함에서 발포한 것과 관련, “천안함 침몰로 2함대사령부가 해상경계태세를 A급으로 격상 발령한 상태에서 북방한계선(NLL) 남단에서 경계를 서던 속초함의 사격통제 레이더에 백령도 북방에서 42노트(시속 77.7㎞)로 고속 북상하는 물체가 포착되자 이를 적 함정이 천안함을 공격한 뒤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 2함대사의 승인을 받아 경고사격 후 격파사격을 5분간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천안함의 사고발생 시각을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쯤으로 다시 정정했다. 군은 26일 밤 사고 직후 해병부대에서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한 40분 분량의 침몰 장면 영상을 전부 공개했다. 영상에 따르면 천안함은 선체 중앙 부분에 있는 가스터빈실이 칼로 잘린 듯 곡선형태로 절단됐다. 처음부터 함미는 바닷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함수만 보였다. 영상은 사고 당일 백령도 기지에서 TOD 운용병이 폭발음을 듣고 상급부대에 보고한 뒤 오후 9시23분46초부터 녹화한 것이다. 군은 천안함의 사고 당일 교신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상연 오이석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배에 물 들어와 3번 수리했다는데”… 함장은 부인”

    [천안함 침몰 이후] “배에 물 들어와 3번 수리했다는데”… 함장은 부인”

    “함장님, 중사 김경수를 기억하십니까. 늘 집에 와서 함장님을 존경한다고 했던 중사 김경수를 모른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두 번째 같이 근무하시는 것이니까요. 함장님 저희 가족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무런 문제 없는 배였습니까?” “모든 장비, 선체 문제 없었습니다.(최원일 중령)” “주변에서 배에 물이 3번이나 차서 수리를 했다기에 제가 남편에게 천안함 타다가 배 갈라져 물 들어와서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쓸데없는 얘기라고 화를 냈지만, 진짜 배가 가라앉지 않았습니까. 3번이나 수리를 했다는데.” “심정은 알겠지만 사실 확인이 안 된 얘기입니다. 물이 찬 적 없습니다.(최 중령)” “물이 들어와서 수리한 적 있잖아요. 솔직히 말해 주세요.”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27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진행된 함장 최원일 중령과 실종자 가족 간 질의응답 시간. 실종자 가족들은 침몰된 천안함의 선체에 애초부터 결함이 있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언젠가부터 배가 너무 낡아 물이 새는 바람에 수리가 잦았고, 위험한 배라서 부대원들이 승선을 기피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종된 김경수(35) 중사의 아버지 김석우(57)씨는 “배가 출항하면 보통 10~15일 이상 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번에는 무슨 결함이 있었는지 귀항했다가 2일 만에 다시 나간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면서 함선 결함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 천안함 등에서 근무한 해군 전역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90년대 중반 천안함과 비슷한 규모의 신천지함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한 최모(41)씨는 “20년 넘은 배라면 오래된 축에 속한다.”면서 “해군 함대는 오래돼도 수선해서 다시 쓰는 방식이라 노후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보통 1~2년에 한 번 정도 함대를 정기점검하는 ‘오버홀(Overhaul)’을 하는데 그때 결함이 발견되면 수리를 자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실종자 가족들 말대로 수리를 자주 했다면 함대에 큰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역자 임모(39)씨도 “함선 수명은 20년이 훨씬 넘지만 자동차도 중간에 고장 나는 것처럼 배도 마찬가지다.”라면서 “유류통 근처에 가스터빈이 달려 있는데 이로 인한 폭발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한편 천안함은 1999년 ‘1차 연평해전’ 당시 선체 뒷부분에 북한군으로부터 피격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6~98년 천안함에 승조해 군대생활을 한 박모(35)씨는 “제대한 직후 일어난 1차 연평해전 당시 천안함 승조원으로 근무했던 후임병으로부터 ‘당시 천안함 후미가 포에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작지만 강력한 화력 보유했던 ‘침몰’ 천안함

    작지만 강력한 화력 보유했던 ‘침몰’ 천안함

    26일 밤, 원인 모를 폭발과 함께 해군 2함대 소속 초계함인 ‘천안함’(PCC-772)이 침몰했다. 천안함은 고속정을 제외하면 해군에서 수적인 주력을 담당하고 있는 포항급 초계함의 14번째 함정이다. 포항급 초계함은 1984년부터 10년간 총 24척이 대량으로 건조됐으며 사업기간이 길었던 만큼 도중에 개선점이 반영돼 초기형과 중기형, 후기형으로 나뉘어 건조됐다. 사고가 난 천안함은 후기형으로 분류되며 오토브레다사의 76㎜ 함포, 40㎜ 쌍열포를 각 2문씩 장비하고 있으며, 대잠무장으로 Mk32 3연장 어뢰발사기 2문과 MK9 대형폭뢰를 12발 탑재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사정거리 130㎞의 RGM-84C 하픈(Harpoon) 대함미사일 4발을 추가로 장착해 크기에 비해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수상 레이더로 미국 레이시온사에서 제작한 AN/SPS-64를 탑재하고 있으며 함포를 조준하기 위한 사격통제레이더(FCR)로 WSA-423과 ST-1802를 각각 마스트 위와 함미에 장착한다. 그 밖에 적외선 탐지장비와 TV카메라, 레이저 거리측정계 등이 장착된 광학조준장치도 갖추고 있어 함포 사격 시 뛰어난 명중률을 보여준다. 소나(Sonar, 음파탐지기)로는 AN/SQS-58을 탑재하고 있어 물속의 잠수함을 탐지할 수도 있다. 포항급은 북한의 고속정과 간첩선 등을 상대하기 위해 건조됐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동급은 독일 MTU사의 디젤엔진 2기와 미국 GE사의 가스터빈 엔진 1기를 탑재하고 있으며 저속시 디젤엔진을 사용하고 고속으로 달릴 때는 가스터빈 엔진을 사용하는 CODOG방식을 채택해 최대 32노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천안함은 만재배수량 1200t, 길이 88.3m, 폭은 10m로 해군에선 비교적 작은 전투함에 속한다. 해군은 초계함 전력으로 1982년부터 동해급 4척과 포항급 24척을 건조했으며 이 중 동해함과 포항함은 지난 2008년 6월 퇴역해 현재는 26척이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획 한국군 무기 21] 국군이 보유한 러시아 전차 T-80U

    [기획 한국군 무기 21] 국군이 보유한 러시아 전차 T-80U

    1996년 9월, 우리나라는 세계최초로 ‘T-80U’ 전차를 수입했다. 이 전차는 러시아의 주력전차로 개발국인 러시아조차 그때까지 400여 대밖에 도입하지 못했던 최신 장비였다. 아무리 냉전이 끝났다고는 해도 러시아의 최신 전차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미국의 동맹국에 수출된 것은 전례가 없는 큰 사건이었고, 실제로 도입 직후 전차를 분해해 그 성능이 연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일은 당시 러시아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냉전이 끝난 직후 소련에 경협차관을 제공했으나 소련 붕괴 후 이를 승계한 러시아가 경제난을 겪으면서 차관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차관을 현금이 아닌 방위산업 물자로 돌려받는 ‘불곰사업’이 계획된다. 1995년부터 진행된 1차 불곰사업의 결과 ‘BMP-3’ 장갑차와 ‘메티스-M’ 대전차 미사일 등 러시아제 무기가 대량으로 도입됐고 30여 대의 T-80U 전차도 이때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 서방 측을 긴장시킨 T-80 전차 T-80U 전차의 원형인 ‘T-80’ 전차는 1976년 최초로 등장했다. 이때는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전차의 성능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간간이 습득된 정보를 통해 이 전차의 성능이 조금씩 드러나자 서방측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T-80 전차가 ‘T-64’ 전차를 개량한 전차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T-64 전차는 125㎜ 활강포와 강력한 장갑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다른 무기와는 달리 전혀 수출이 되지 않고 소련군만을 위해 배치됐다. T-64 전차의 기계적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려졌기 때문에 서방 측은 이 전차를 두려워했다. 실제로 T-80 전차는 T-64 전차의 신뢰성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돼 명중률이 향상된 신형 사격통제장비, 신형 장갑, 1000마력의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해 동시기의 서방측 전차보다 우수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소련은 중동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포탑을 완전히 새로 설계해 방어력을 대폭 향상시키고 사격통제장비 등을 개량한 T-80U 전차를 개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러시아 고문단도 놀란 T-80U 1991년 걸프전 당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부대를 보유하고 있던 이라크군은 미군 전차부대를 맞이해 전투다운 전투조차 벌이지 못하고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T-80 전차에 비해 성능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동급의 화력을 지닌 ‘T-72’ 전차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이라크군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미군조차 예상치 못했다. 나중에서야 이라크군의 T-72 전차가 러시아의 전차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수출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기를 사오는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진국들이 흔히 취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T-80U 전차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수출형이 별도로 개발되지 않은 T-80U 전차였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쓰기 위해 생산해 놓은 전차가 그대로 도입됐다. 기술자문을 위해 초빙된 러시아 고문단조차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별도의 조치 없이 전차가 수출됐다는 점에 놀랐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또 적성 장비연구를 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기관총은 물론 승무원들의 헬멧까지 러시아제가 그대로 들어왔다. 다만 무전기만 국산 장비가 탑재됐다. ◆ 육군, T-80U에 만족하다 T-80U전차 도입 직후 기계화학교에서 연구용으로만 운용됐다. 성능이 떨어진다기보다 북한의 전차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실전 상황에서 피아식별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T-80U 전차를 경험해본 전차병들은 이 전차의 우수성에 대해 입을 모은다. 3세대 전차 중에서는 가벼운 축에 속하는 46t의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엔진 출력은 가장 높은 1250마력에 달해 시속 70㎞라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자동장전장치를 탑재해 흔들리는 와중에도 신속하게 포탄을 재장전 할 수 있으며 사정거리가 5㎞에 달하는 포발사 대전차 미사일인 ‘9M119’도 사격할 수 있어 공격력도 우수하다. 또 K-1A1 전차에도 없는 양압장치와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특수장갑을 갖추고 있어 화생방 상황에서도 작전을 계속할 수 있다. 양압장치는 실내의 기압을 약간 높게 유지해 외부의 오염된 공기가 유입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이는 T-80U 전차가 냉전 당시에 개발된 까닭에 핵전쟁 상황에서도 작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T-80U 전차의 우수한 성능과 기계적 신뢰성에 만족한 육군은 2차 불곰사업을 통해 지휘용인 T-80UK 전차 2대를 추가로 도입, 2005년 무렵 동부전선에 실전배치하기에 이른다. ◆ T-80U 전차 제원 길이 : 9.66m 폭 : 3.6m 무게 : 46t 주무장 : 2A46M-4 125㎜ 활강포(포탄 45발) 보조무장 : 7.62㎜ PKT 기관총 1정   12.7㎜ NSV 중기관총 1정 엔진 : GTD-1250 가스터빈 엔진(1250마력) 항속거리 : 약 340㎞(보조연료통 추가시 450㎞) 속도 : 최대 약 70㎞/h 도하수심 : 약 5.5m 승무원 : 전차장, 조종수, 포수 등 3명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태안에 IGCC 발전소 추진

    충남 태안지역에 2013년까지 신 발전기술인 석탄가스화복합화력(IGCC)을 이용한 발전소 건립이 국내 최초로 추진된다. 21일 태안군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은 원북면 방갈리 태안화력발전소내 7만 6443㎡의 부지에 발전용량 380㎿ 규모의 IGCC 발전소를 건립할 예정이다. IGCC란 석탄을 가스화해 합성가스를 제조한 뒤 먼지와 황을 제거해 가스터빈의 연료로 사용하는 신 발전기술로 미국 등 5개국에서 상용화돼 있다. 서부발전측은 IGCC는 석탄을 연료로 쓰는 기존 화력발전에 비해 오염물질 배출량이 10분의 1에 불과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이 크게 줄고 발전효율도 높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11월 공사를 시작해 2013년 말까지 발전소를 준공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역 환경단체는 IGCC가 친환경 기술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데다 세계적으로도 5개국에서만 소규모로 상용화된 상태라는 점을 들어 발전소 건설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환경오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냉각탑과 돔형 설비 등 근본적인 보완설비 마련을 요구하고 있어 실제 사업 추진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요르단 2억弗 발전소공사 수주

    한화건설은 요르단 국영 전력 회사인 세프코(SEPGCO)가 발주한 2300억원(약 2억달러) 규모의 가스터빈 발전소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공사는 암만 북동쪽 40㎞에 총출력 140㎿급 가스터빈 발전소 2기를 2011년까지 건설하는 사업으로 한화건설이 설계, 구매, 시공까지 일괄 수행한다. 김현중사장은 암자드 알 라와시데 세프코사 사장과 계약을 맺은 뒤 두 업체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 [모닝브리핑] 소말리아에 문무대왕함 새달 중순께 파견

    [모닝브리핑] 소말리아에 문무대왕함 새달 중순께 파견

    합참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 등 납치단체에 의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선박 피랍을 막기 위한 국제적 호송 임무에 동참하기 위해 한국형 구축함(KDX-Ⅱ) 2번함인 ‘문무대왕함’을 파견키로 했다고 6일 밝혔다. 함정이 파병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KDX-Ⅱ 5번함인 ‘강감찬함’ 파견이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최수용(해군 준장) 합참 작전지원처장은 이날 “우리 함정이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돼 원활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최근 현지 협조단을 바레인과 지부티에 파견, 임무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견 시기는 국방부가 제출한 소말리아 파견 동의안이 이달 말쯤 국회에서 통과되면 3월 중순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4500t급인 문무대왕함은 길이 150m, 폭 17.4m로 가스터빈과 디젤엔진 각 2대씩으로 선체를 추진하며 최대 속도는 29노트다. 하푼 대함 유도탄과 5인치 함포와 30㎜ 속사포 등으로 무장돼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고유가시대 에너지를 다시 보자] 신재생에너지 현황과 문제점

    [고유가시대 에너지를 다시 보자] 신재생에너지 현황과 문제점

    태양열과 태양광, 조류, 조력, 풍력, 지열 등 무공해·무한대 천연자원을 이용한 발전소가 대체에너지 생산지로 뜨고 있다. 대체에너지의 규모는 국내 전체 발전량 대비 0.2% 정도로 아주 작다. 전국의 자치단체는 지난 2003년부터 민간자본을 유치, 관광사업 등과 연계해 대체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밖으로는 태양광 발전소 부품 값 폭등, 안으로는 영세 시공업체 난립에 따른 사후관리 부실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태양빛은 자연의 선물 국내 대체에너지 주류는 태양 빛을 전지판에 모아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발전소이다. 전국 1154개 업체의 발전 설비 용량은 703㎿이다. 전남에는 전국 태양광발전소의 절반이 있다. 청정지역에 일조량이 많아 태양광발전소 가동률(17.1%)이 전국 평균(14∼15%)보다 높아 최적지로 손꼽힌다. 전남에서 가동 중인 태양광 발전소는 156개(83㎿)이고 71개(19㎿)는 공사 중이다. 허가를 받은 업체만 618개(345㎿)이다. 경기 안산시 등 시화호 일대도 2010년까지 국내 최대의 신재생에너지 집적화단지가 조성된다. 국내외 8개 태양전지 생산업체가 참여한다. 안산시는 시화지구 간척농지(대송지구)를 신재생에너지 바이오연구지구로 지정했다. 안산시청과 시의회 옥상에서도 하루 74㎾의 태양광 전력을 생산한다. 대구시는 연말까지 9개 관공서 등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운다. 대구시의회와 서구청 청사의 태양광 발전소는 가동 중이다. 내년에 세계육상경기장, 안심환경공원 등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추가한다. 나아가 대구혁신도시에도 20㎿급 태양광 발전소를 만든다. 충남 이원·원북면 일대는 포스코 등이 4880억원을 들여 2012년까지 해풍을 이용한 풍력과 태양열·광, 지열 발전소를 건립한다. ●조력, 지열 발전소도 대체에너지 한국수자원공사는 2009년 말까지 안산 시화방조제 중간에 조력발전소를 건설한다. 물의 낙차를 이용해 발전 용량만 25만 2000㎾이다. 세계 최대인 프랑스 랑스 조력발전소(24만㎾)보다 더 크다. 전남 진도 울돌목 해상에는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조류 발전소가 시험 설치 중이다. 서해도시가스는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안 삼성토탈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메탄가스를 지난 4월부터 도시가스로 자원화해 인근 공장에 판매하고 있다. 연간 4200만㎥를 팔아 200억원가량을 벌어들인다. 광주시도 2005년 북구 운정동 옛 광역위생매립장에 파일을 박아 나온 메탄가스로 가스터빈을 돌려 2㎿의 전기를 생산한다. 대구시는 신천 등 6개 하수처리장의 슬러지를 이용해 메탄가스 발전소를 만든다.2010년까지 슬러지 회전 장치를 설치해 하루 4만 4300㎥의 메탄을 생산한다. 대구 서부수질사업소에서는 소수력 발전소 등을 만든다. ●무분별한 투자는 금물 목포대 문채주(50·전기공학과) 신재생에너지기술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은 태양광과 해상 풍력, 조류 발전소를 짓기에 아주 적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9월 말에 정부의 발전차액 지원제도가 끊겨 한전 납품 단가가 하락하면 태양광발전소도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대체에너지 발전소 설치와 관련,“환경 훼손을 우려한 환경단체와의 마찰,800여개에 이르는 영세 태양광발전소 시공업체, 부실한 사후관리 등이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전국종합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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