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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전국노래자랑’ 34년 함께 울고 웃다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전국노래자랑’ 34년 함께 울고 웃다

    34년간 매주 일요일 시청자들의 안방을 밝은 웃음과 감동의 눈물로 가득 채운 원조 국민 MC, 죽는 날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은 프로 방송인, 영원한 현역이자 만인의 오빠. ‘전국노래자랑’의 상징이자 한국 방송사의 산증인이었던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피란 대열에 섞여 부산으로 내려왔다.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경험을 살려 1955년 창공악극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넌 경험 때문에 예명으로 ‘바다 해’자를 썼다. 가수로 연예 활동을 시작한 만큼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고, 방송 초기엔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도 활약했다.  그를 영원한 ‘송해 오빠’, ‘일요일의 남자’로 우뚝 서게 해 준 KBS ‘전국노래자랑’과의 인연은 1988년 5월 시작됐다. 공연을 진행하며 남다른 입담을 발휘한 게 평생 직업으로 이어졌다. ‘딩동댕동’ 하는 프로그램 시그널과 “전국~ 노래자랑~”으로 시작하는 송해의 목소리는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의 귀에 생생히 남아 있다. 1994년 개편 때 잠시 하차한 걸 제외해도 국내 단일 프로그램 진행자 중 최장수, 최고령이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 누구보다 큰 애정을 보였다. 현장 녹화 전날 촬영지를 찾아 식당, 목욕탕 등에서 주민들과 대화하고, 무대를 통해 수백만명을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밀고 당기듯 재치 있는 진행, 참가자에게 친구처럼 다가가는 모습은 그를 국민 MC를 넘어 만년 오빠로 거듭나게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안고 살던 그는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고향 땅을 밟고 2003년엔 ‘전국노래자랑’ 평양 편도 촬영했다. 당시 모란봉공원 평화정 앞 무대에 오른 송해는 “평양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꿈이 이뤄졌으니 여한이 없다”며 감격했다.  기력이 떨어져 힘들어하다가도 카메라 불만 켜지면 작두를 타는 무당처럼 기운이 펄펄 솟아나는 것 같다 해서 방송가에서는 ‘작두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지역, 직업, 장애, 성별, 세대로 인한 갈등이 ‘전국노래자랑’에서는 해소된다”며 “이 프로그램은 내 인생의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임 MC를 누구에게 맡기겠냐는 질문을 받고는 “아직도 이렇게 또렷한데 누굴 줘”라고 말할 정도였다.  송해는 생전 구수한 입담으로 대중을 울리고 웃겼다. 사람을 워낙 좋아한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고, 최근까지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소탈한 삶을 살았다.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이 ‘딴따라’다. 나는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는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머니를 북에 두고 온 아픔과 장성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슬픔, 사별한 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묻고 늘 웃음을 전하려 애를 썼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참가자를 심사하는 실로폰의 ‘땡’과 ‘딩동댕‘ 소리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설 연휴 대기획으로 방송된 KBS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며 “나 역시 ‘전국노래자랑’에서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부쩍 건강이 나빠지며 프로그램 진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송해는 지난해부터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도 확진돼 걱정을 샀다. 별세 직전인 지난 4일엔 코로나 이후 2년 만에 현장 녹화가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재개됐지만, 장거리 이동 부담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 9일 호국음악회, 솔지가 무대를 달군다

    9일 호국음악회, 솔지가 무대를 달군다

    가수 솔지가 무대를 달구고 해군 군악대가 칼같은 공연을 펼친다. 해군제7기동전단(이하 ‘7전단’)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9일 오후 7시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제주도민과 함께하는 2022 대한민국해군 호국음악회’(이하 ‘호국음악회’)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호국음악회’에는 이현애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임종석(대위) 해군작전사령부 군악대장이 지휘하는 해군 군악대 장병들을 비롯해 성악가 이예니, 가수 솔지(EXID 출신)가 출연한다. 매년 제주도민의 곁으로 찾아오는 이번 호국음악회는 바다에서 힘으로 뒷받침하는 ‘필승해군, 정예해군’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대한민국해군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해군 군악대 연주, 성악공연, 타악기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특히 호국음악회를 축하하기 위해 초대된 가수 솔지가 열정적인 무대를 통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호국음악회를 찾은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오후 6시부터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다.
  • 바다환경까지 함께 지키며… 제주국제모터서프페스티벌 열린다

    바다환경까지 함께 지키며… 제주국제모터서프페스티벌 열린다

    서핑보드에 엔진을 장착해 파도와 바람이 없어도 바다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제주국제모터서프페스티벌이 새달 3일 개막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27회 바다의 날 기념행사와 2022년 제주국제모터서프페스티벌을 6월 3~4일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열린다고 30일 밝혔다. 도는 5월 31일 바다의 날을 기념해 바다의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해양레저산업의 새로운 트렌드인 모터서프 체험형 페스티벌을 열어 제주 해양레저 산업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특히 2019년(포스터 사진) 처음 열린 이후 사실상 3년만에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은 코로나19 여파로 각국 선수들과 레이스를 펼치는 대회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체험형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된다. 제주해양레저협회 관계자는 “부모동반 어린이까지 참여가 가능한 체험이다 보니 엔진 장착으로 소음이 큰 모터서프 대신에 친환경적인 전동서프를 이용한 체험을 준비중”이라며 “초등학생 이상 700명이 참가할 예정이어서 속도 제한을 통해 안전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모터서프는 보드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길이 1.8m, 넓이 0.6m, anrp 19.5㎏이다. 최대속도는 45~60㎞/h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동서프는 1대당 1000만원을 웃돈다. 고급레저에 속하기 때문에 이번 체험형 페스티벌이 저변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다의 날 행사와 함께 열리는 페스티벌에서는 ▲사우스카니발 등 제주도내 가수들 공연 ▲모터서프 체험프로그램 ▲모터서프 장비용품 전시 ▲윈드서핑, 딩기요트, 패들보드, 카약 등 각종 해양레저체험프로그램 ▲해양정화 이벤트 등이 진행된다. 특히 참가자들이 쓰레기를 주워오면 물과 간식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좌임철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이번 행사가 제주 해양레저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낸 도민 및 관광객에게 즐거움과 위로도 선사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보수정권 당정 인사 이례적 봉하 집결… 文, 5년 만에 추도식 참석

    보수정권 당정 인사 이례적 봉하 집결… 文, 5년 만에 추도식 참석

    尹 “盧 서거는 한국 정치의 비극”韓총리 “尹, 權여사에게 위로 전해”文, 트위터에 “약속 지켰다” 글 올려이준석·박지현, 강성파 항의로 곤욕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엄수됐다. 한덕수 국무총리 등 보수 정권 인사가 처음으로 총집결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5년 만에 추도식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봉하마을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1만 8000여명(노무현재단 추산)의 추모객이 줄지어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다. 전국 단체 버스도 올해부터 재개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추모객들은 저마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바람개비와 풍선을 들거나 노란색 스카프와 모자를 걸치며 노 전 대통령을 기렸다. 노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하거나 묵념하는 참배객들도 보였다.추도식은 오후 2시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잔디동산에서 ‘나는 깨어 있는 강물이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추도식에는 여권에서 한 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의 김대기 비서실장과 이진복 정무수석,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정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등 야당 지도부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야권 인사도 대거 참석했다. 다만 이 대표와 박지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추도식에 참석하던 도중 일부 추도객의 거센 항의로 곤욕을 치렀다. 추도객들이 “집에 가라”, “꺼지라”고 외치면서 이 대표를 둘러싸 인파가 뒤엉키며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 대표에 앞서 추도식장에 입장하던 박 비대위원장에게도 강성 지지자들은 “박지현 물러나라”, “내부 총질이나 하느냐”고 야유를 보냈다. 추도객들은 문 전 대통령과 이 선대위원장에게는 환호를 보내 대조를 이뤘다. 참석자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추모식을 지켜봤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추도사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거론하면서 박수가 나오자 “이 박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보내 달라”고 했고, 즉시 ‘문재인’ 연호와 박수 세례가 터져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일어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토록 바랐던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말했다. 추도식 중간에 가수 강산에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을 부르자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김정숙 여사가 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추도식 말미엔 노 전 대통령이 평소 즐겨 부른 ‘상록수’가 울려 퍼졌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해 한 총리를 통해 추모의 뜻을 대신 전했다. 한 총리는 추도식 이후 취재진에게 “권양숙 여사에게 각별한 위로라고 할까, 건강 (등) 문제에 대해 좀 각별히 대통령의 뜻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청사 출근길에도 “(노 전 대통령 서거는) 한국 정치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추도식이 열리기 4시간 전인 오전 10시쯤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문 전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은 2017년 취임 첫해 이후 5년 만이다. 지지자들은 전시관을 찾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사랑합니다”를 연호했다. 문 전 대통령은 추도식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권 여사와 이 위원장, 윤호중·박지현 비대위원장 등과 권 여사가 준비한 도시락으로 오찬을 함께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추도식을 마치고 트위터에서 “약속을 지켰다. 감회가 깊다”며 “우리는 늘 깨어 있는 강물이 되어 결코 바다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처럼”이라고 했다.
  • 이정은 “영화에 노출 장면 있어…몸매가 하마, 은근히 귀여워”

    이정은 “영화에 노출 장면 있어…몸매가 하마, 은근히 귀여워”

    배우 이정은이 tvN ‘우리들의 블루스’, 영화 ‘오마주’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소감을 전했다. 18일 오후 방송된 SBS 파워FM ‘두시 탈출 컬투쇼’(이하 ‘컬투쇼’)에는 영화 ‘오마주’ 공개를 앞둔 배우 이정은이 출연해 DJ 김태균 유민상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이정은은 “‘컬투쇼’는 지방 촬영을 갈 때마다 자주 듣던 프로그램”이라면서 “처음 출연하게 돼서 너무 좋다”라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그는 “최근에 종암동으로 이사했다, 강아지를 끌고 돌아다니고 있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이정은은 영화 ‘오마주’에서 노출하는 장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주 노출을 했다”라면서 “첫 번째 장면에 수영복을 입고 나온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제)등판이 그렇게 넓을 줄 몰랐다”라고 웃었다. 김태균이 “영화 시사를 하고 어땠냐”라고 묻자, 이정은은 “몸매가 하마”라며 “하마가 은근히 귀엽다”라고 답했다. 이어 “영화 ‘옥자’ 때 하마를 많이 봤는데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에 유민상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라면서 “내가 옆에 있어서 뭘 해도 요정같이 보인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최근 열연 중인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태균이 “드라마 주인공 같다”라고 하자 그는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있는데 제가 연결고리가 돼서 그래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태균이 극중 이정은이 맡은 은희 역에 대해 “(은희는) 인연을 못 만나냐”라고 묻자 이정은은 웃으면서 “(방)호식(최영준 분)이랑 잘 해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면서 “번외편을 만들어주시면 한 번 (해보겠다)”라고 답했다. 호식 역을 맡은 최영준은 2000년대 초반 보컬그룹 세븐 데이즈 소속이기도 했다. 이정은은 “평소에 노래를 진짜 잘 하셔서 가수 아닌가했는데 진짜 가수였다”라고 했다. 이어 “(최영준씨가) 진짜 웃기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정은은 영화 ‘오마주’의 신수원 감독 덕분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영화할 때 화면에 비쳐도 계속 새로운 모습이 나온다고,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길게 나와도 되겠다고 하셔서 용기가 많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들의 블루스’ 에피소드 5편에 주된 역할을 맡았는데, 겁이 났지만 (신수원 감독님 덕분에)할 만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정은은 역류성 식도염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는데 트림이 조절된다”라면서 현장에서 트림을 선보여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한편 이정은이 출연하는 ‘오마주’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 가수이자 투사이자 친구였던, 정태춘의 43년

    가수이자 투사이자 친구였던, 정태춘의 43년

    버스터미널 식당에서 메밀국수를 시키니 판에 담긴 메밀과 육수가 나왔다. 어떻게 먹는 음식인지를 몰라 육수를 판에 부었다. 당연히 판에 뚫린 구멍으로 국물은 줄줄 흘러나왔고, 허둥대다 식당을 빠져나왔다.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서 가수 정태춘(68)은 이런 에피소드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돌아본다. 서울의 복잡한 터미널과 큰 식당, 수많은 사람과 낯선 환경, 그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나. 17일 서울신문과 만난 그는 “내가 초기에 세상과 부딪히는 방식을 잘 드러내는 일”이라면서 “불편하고 낯선 것에 적응하지 못하며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은 어떤가’, ‘세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결국 음악의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올해 데뷔 43년을 맞은 정태춘은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노랫말과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한국형 포크의 대명사로 꼽힌다. 1978년 데뷔 앨범 수록곡 ‘시인의 마을’과 ‘촛불’이 큰 인기를 얻었고, 1980년대에는 아내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박은옥과 함께 ‘저항가수’의 길을 걸었다. 영화는 2019년 데뷔 4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실황 영상을 바탕으로 정태춘의 음악 인생을 꼼꼼히 되돌아본다. 경기 평택 시골 마을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배운 소년, 큰 성공을 거둔 청년과 시대의 불의에 저항한 중년을 거쳐 까다로운 손녀와의 대화를 읊조리는 노년의 모습이 28곡의 음악과 어우러졌다.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한 정태춘은 “나는 특이한 가수, 시대와 불화한 가수”라며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끊임없이 발산했고, 음악적으로도 여러 시도를 했다. 그게 대중음악사에서 내가 조금은 다른 역할을 한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창작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비주류였다. 약자와 함께 살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회, 일말의 연민도 없는 주류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멀리 비켜서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상의 낮은 곳에서 함께 손잡고 연대한 그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청계피복노동조합 후원부터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2003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 등 역사의 현장엔 늘 그가 있었다. ‘우리들의 죽음’은 신문 사회면에 나온 기사를 보고 쓴 노래다. 정태춘은 “요즘도 각종 사건·사고를 보면 마음이 아픈데, 감정의 판막이 많이 얇아져 그걸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더라”며 “그래도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상황, 절망하는 사람, 아픔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음반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곡 작업도 새로 시작했다. 그는 “당시 여러 사회문화적 변화 탓에 내 노래는 독백에 불과한 것 같았다. 더이상 음악 활동을 하지 않고 소진될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 기간 붓글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전을 열었다.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꾸준히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셈이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무뎌지면 끝이 없다”며 끝없이 고민한다는 정태춘은 “나이가 들면서 더 정밀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과거 발표한 ‘아, 대한민국’의 가사 일부가 여성 비하적 표현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을 삭제한 게 한 예다. 그는 “여전히 약자들의 얘기를 담고 싶고, 그러려면 나 역시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더 예민하게 살피고, 공부도 많이 해서 잘 다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좋은 노래를 하고 싶어요. 조금씩 변화를 주되 내 이야기를 담담하고, 재밌고, 신나게 하려 합니다. 늘 그랬듯이.”  
  • 돌아온 정태춘 “무뎌지면 끝이 없다…여전히 약자 얘기 노래하고파”

    돌아온 정태춘 “무뎌지면 끝이 없다…여전히 약자 얘기 노래하고파”

    버스터미널 식당에서 메밀국수를 시키니 판에 담긴 메밀과 육수가 나왔다. 어떻게 먹는 음식인지를 몰라 육수를 판에 부었다. 당연히 판에 뚫린 구멍으로 국물은 줄줄 흘러나왔고, 허둥대다 식당을 빠져나왔다.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서 가수 정태춘(68)은 이런 에피소드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돌아본다. 서울의 복잡한 터미널과 큰 식당, 수많은 사람과 낯선 환경, 그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나. 17일 서울신문과 만난 그는 “내가 초기에 세상과 부딪히는 방식을 잘 드러내는 일”이라면서 “불편하고 낯선 것에 적응하지 못하며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은 어떤가’, ‘세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결국 음악의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올해 데뷔 43년을 맞은 정태춘은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노랫말과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한국형 포크의 대명사로 꼽힌다. 1978년 데뷔 앨범 수록곡 ‘시인의 마을’과 ‘촛불’이 큰 인기를 얻었고, 1980년대에는 아내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박은옥과 함께 ‘저항가수’의 길을 걸었다. 영화는 2019년 데뷔 4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실황 영상을 바탕으로 정태춘의 음악 인생을 꼼꼼히 되돌아본다. 경기 평택 시골 마을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배운 소년, 큰 성공을 거둔 청년과 시대의 불의에 저항한 중년을 거쳐 까다로운 손녀와의 대화를 읊조리는 노년의 모습이 28곡의 음악과 어우러졌다.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한 정태춘은 “나는 특이한 가수, 시대와 불화한 가수”라며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끊임없이 발산했고, 음악적으로도 여러 시도를 했다. 그게 대중음악사에서 내가 조금은 다른 역할을 한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창작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비주류였다. 약자와 함께 살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회, 일말의 연민도 없는 주류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멀리 비켜서 있다”고 말했다.특히 세상의 낮은 곳에서 함께 손잡고 연대한 그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청계피복노동조합 후원부터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2003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 등 역사의 현장엔 늘 그가 있었다. 1990년 3월 신문 사회면에 나온 기사를 보고 쓴 노래 ‘우리들의 죽음’은 당시 한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아프게 짚는다. 맞벌이 부부가 출근한 사이 잠긴 방 안에서 놀던 다섯살, 세살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 숨진 비극을 노래는 이렇게 읊조린다.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이제 안녕.”정태춘은 “요즘도 각종 사건·사고를 보면 마음이 아픈데, 감정의 판막이 많이 얇아져 그걸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더라”며 “그래도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상황, 절망하는 사람, 아픔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음반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곡 작업도 새로 시작했다. 그는 “당시 여러 사회문화적 변화 탓에 내 노래는 독백에 불과한 것 같았다. 더이상 음악 활동을 하지 않고 소진될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대신 그 기간 붓글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전을 열었다.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꾸준히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셈이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무뎌지면 끝이 없다”며 끝없이 고민한다는 정태춘은 “나이가 들면서 더 정밀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과거 발표한 ‘아, 대한민국’의 가사 일부가 여성 비하적 표현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을 삭제한 게 한 예다. 그는 “여전히 약자들의 얘기를 담고 싶고, 그러려면 나 역시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더 예민하게 살피고, 공부도 많이 해서 잘 다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좋은 노래를 하고 싶어요. 조금씩 변화를 주되 내 이야기를 담담하고, 재밌고, 신나게 하려 합니다. 늘 그랬듯이.”
  • 싸이 ‘흠뻑쇼’ 한 회당 물 300톤 쓴다

    싸이 ‘흠뻑쇼’ 한 회당 물 300톤 쓴다

    가수 싸이와 성시경이 ‘라디오스타’에 동반 출격한다. 오는 4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는 싸이·성시경·전소연·이승윤이 함께하는 ‘공연의 민족’ 특집으로 꾸며진다. 방송에서 싸이는 지난 2011년부터 시작한 콘서트 ‘흠뻑쇼’ 준비과정을 전격 공개한다. 그는 “물 값이 많이 나간다. 공연 한 회당 300t 사용한다”고 밝히며 남다른 클래스를 자랑한다. 이어 공연 도중 공중에 매달리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싸이는 “행복한데 아프다”고 웃픈 순간을 회상한다. 또 싸이는 과거 성시경 콘서트의 게스트로 참석했던 에피소드를 꺼낸다. 그는 ‘흠뻑쇼’와는 극과 극인 분위기를 전하며 “미술관에 ‘이것’ 풀어놓은 느낌”이라는 찰떡 비유를 남겨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든다. 이와 함께 싸이와 성시경은 공연장에서 겪었던 황당한 사건들을 대방출한다. 특히 싸이는 과거 한 공연장을 방문했던 일화를 공개해 자신의 노래 대신 무반주 트로트를 열창했다고 밝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런가 하면 성시경은 콘서트 도중 자신과 신체접촉을 노린 관객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어 그는 “무대 밑에서 나를 잡으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호기심을 자아낸다.
  • 바다 “슈, 4년 동안 많이 뉘우치고 반성”

    바다 “슈, 4년 동안 많이 뉘우치고 반성”

    가수 바다(본명 최성희)가 걸그룹 SES로 함께 활동했던 슈(본명 유수영)를 응원했다. 25일 오후 바다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4년 동안 많이 뉘우치고 반성했을 슈에게 부디 용기를 허락해 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슈의 셀카 한 장을 게재했다. 이어 “수영아 힘내”라면서 “팬여러분 함께 해주세요”라고 이날 오후 7시 진행하는 슈의 라이브 방송 시청을 독려했다. 슈는 같은 날 도박 논란 이후 방송 복귀를 예고했으며 직접 인터넷 방송을 통해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슈는 “저에게 쓴소리를 하시는 분들,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 모두 저에게는 소중한 분들”이라면서 “이런 팬분들과 4년 만에 용기를 내어 만나보려고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슈는 지난 2016년 8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마카오 등 해외에서 수차례에 걸쳐 수억원대 규모의 상습 도박을 한 혐의로, 지난 2019년 2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함께 사회봉사 명령 80시간을 선고받았다. 사기와 국내 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슈는 도박 빚으로 빌린 3억 4000만원대 규모의 대여금을 갚지 못해 지난 2019년 5월 고소당하기도 했다. 해당 소송은 지난 2020년 11월 조정을 거쳐 합의로 마무리됐다.
  • 10살 연하와 결혼한 바다…붕어빵 딸 공개

    10살 연하와 결혼한 바다…붕어빵 딸 공개

    SES 출신 가수 바다가 딸의 모습을 공개했다. 바다는 2017년 10세 연하 비연예인과 결혼, 딸 루아 양을 두고 있다. 바다는 12일 SNS를 통해 “L U a ♥준비됐어?”라는 글과 함께 한 편의 영상을 게재했다. 바다는 곱게 차려 입은 딸 루아 양에게 “준비 됐어?”라고 물었고 루아 양은 힘차게 “응”이라고 답했다. 올망졸망한 이목구비와 귀여운 단발머리가 귀여움을 더했다.
  • [아하! 우주] 다른 별에서 온 그대…외계 천체, 2014년 지구에 떨어졌다

    [아하! 우주] 다른 별에서 온 그대…외계 천체, 2014년 지구에 떨어졌다

    지난 2017년 10월 마치 시가처럼 길쭉하게 생긴 특이한 외형을 가진 천체가 발견돼 전세계 천문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에이브러햄 러브 석좌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이 천체의 이름은 ‘오무아무아‘(Oumuamua)로 태양계 밖 곧 '외계에서 온 첫번째 손님'으로 발표됐다. 당시 오무아무아는 베가(Vega)성 방향에서 시속 9만2000㎞의 빠른 속도로 날아와 태양계를 곡선을 그리며 방문한 후 페가수스 자리 방향으로 날아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매체들은 오무아무아보다 3년 앞선 지난 2014년 외계 천체가 지구로 날아와 대기권에서 폭발해 바다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름도 명명되지 않은 이 천체는 지름이 0.45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로, 지난 2014년 1월 8일 시속 21만㎞ 이상의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와 파푸아뉴기니 북쪽 남태평양 상공에서 폭발했다. 만약 대기권에서 다 타지않고 남아있다면 남태평양 어딘가에 외계 운석이 떨어진 셈이다.이같은 사실은 최근 미국 우주사령부(USSC)의 자료가 기밀 해제되면서 뒤늦게 확인됐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19년 하버드 대학 천체물리학 연구팀이 이미 이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당시 연구팀은 이 천체의 속도와 궤적 등을 분석한 결과 태양계 너머에서 온 것을 밝힌 논문을 썼지만 동료 심사를 받거나 과학 저널에 발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논문에 반드시 필요한 일부 데이터를 미 정부가 기밀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당시 논문의 주요 저자인 천체물리학자 아미르 시라즈 박사는 "과학계가 이 천체의 연구를 다시 진행할 수 있도록 연구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라면서 "당시 운석이 바다에 떨어져 사실상 찾기 불가능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이를 회수하기 위한 탐사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천체가 외계에서 온 것으로 과학계의 공식 인정을 받는다면 지구 대기권에 들어온 최초의 인터스텔라 천체가 된다. 물론 이는 오무아무아처럼 인류가 발견한 첫번째일 뿐, 실제로는 지구 역사상 이같은 일이 많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 봄의 수도… 천년의 시간 넘어, 황리단 꽃길 따라 [이우석의 미시 여행]

    봄의 수도… 천년의 시간 넘어, 황리단 꽃길 따라 [이우석의 미시 여행]

    명랑 고도… 벚꽃 터널 따라 BTS 노래 흥얼흥얼봄비 내린 지난주, 봄맞이에 한창인 경북 경주를 다녀왔다. 경주는 지금 거대한 컬러링북이다. 이 근사한 옛 도시는 봉긋한 고분에 연둣빛 수채물감을 채색하는 중이며 가녀린 가지마다 새하얀 꽃망울을 틔울 준비를 마쳤다. 곧 천지에 흩날리며 명경 같은 호수에 고혹적인 네일팁처럼 떠다닐 연분홍 꽃 이파리를 떠올려 본다. 과연 ‘봄의 수도’가 따로 없다.봄꽃이며 바다, 즐거운 체험과 재미 가득한 박물관, 맛난 음식, 향긋한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아이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무엇하나 빠뜨릴 게 없다. 누가 뭐래도 완벽한 관광종합선물세트 경주다. 요즘은 어떤지 살짝 들여다보고 왔다. 꽃샘이 나서 심통을 단단히 부리던 봄날의 초입이었다. 경주시. 미추홀(인천)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도시다. 경주에 있었던 사로국(斯盧國)만 계산에 넣어도 2100여년에 이른다.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신라의 불변 수도로 보낸 기간만도 약 1000년이다. 신라와 경주를 ‘천년’으로 수식하는 이유다. 잉카 마추픽추(페루)의 역사와 비교하면 깜짝 놀랄 게다. 마추픽추는 조선 세조 초인 15세기 말에 건설됐으며 고작 80여년 후에 멸망했다. 경주에 비하면 ‘신도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경주엔 집(戶數)이 약 18만채 있으며 최대 90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바그다드(아바스), 장안(당), 콘스탄티노플(동로마제국)과 함께 세계 4대 메트로폴리스였다. “절이 별처럼 이어지고 탑은 기러기떼처럼 몰려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 실크로드의 궁극적 종착지이자 불교가 융성했던 부자 왕국의 수도에 대한 삼국사기의 설명이다. 환경 때문에 숯을 연료로 쓰라고 했을 만큼 당시 서라벌은 풍요롭고 호화로웠다. 서울 보라매공원만한 절터(40만㎡)에 무려 81m 높이의 건축물(황룡사지 9층 목탑)을 지었다. 645년 완공한 이 ‘당대 최고 랜드마크’는 1238년 몽골의 침략으로 불탔다. 이후 한반도에는 1319년 동안 이보다 높은 건축물은 없었다. 1967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 83m짜리 한진빌딩(KAL빌딩)이 세워지며 그제야 신라인의 기록이 깨졌다.조선 때는 계림부(鷄林府) 또는 경주부로 불리며 영남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전 대의 불교와는 별개로 유교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양동마을에서 조선 중·후기 양반 문화를 오롯이 지켜 오고 있다. 대한민국 10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더니 600년 전통 양동마을도 과거에 비해 외양이 조금 달라졌다. 우선 마을 어귀에 탐방객용 문이 따로 생겼다. 양동마을 박물관을 거쳐 입장할 수 있다. 박물관을 먼저 둘러보면 양동마을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마을 역사는 600여년 전 혼인으로 맺어졌다. 풍덕류씨가 명문가 여주이씨를 만나 처가에 장가를 들며 시작됐다. 당시는 조선 전기로 양반 남자가 처가로 장가를 드는 처가입향(妻家入鄕)이 관례였다. 다음, 경주손씨가 풍덕류씨에 장가를 들고, 또 여주이씨가 경주손씨에 장가를 오며 씨족사회를 만들어 갔다. 양동은 여주이씨와 경주손씨 등 양성의 세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영남 남인의 종장이자 성리학의 거두였던 이언적(1491~1553)이 여주이씨로 양동 서백당에서 태어났다. 이언적의 이름은 원래 이적이었지만 ‘훗날 등장할 가수 탓에 검색이 안 될까 염려한’(?) 중종에 의해 피휘자로 선비 언(彦)자를 가운데 넣었다고 한다. 양동마을은 이후에도 문과 31명 포함, 과거 급제자를 총 116명이나 배출했고 근현대에 들어서도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등 명문 마을로서 그 명성을 전국에 떨쳤다.양동마을은 경제활동과 제례 등을 자체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 구조로 이뤄졌다. 양반과 평민이 주변에 붙어서 살 수 있도록 기와집과 초가집이 공존하고 있다. 가운데 흐르는 개천을 중심으로 뒤편 문장봉으로부터 물(勿)자 형 산줄기가 뻗어내려 온다. 풍수에서 길지로 꼽는 지형이다. 각각의 언덕 줄기에 올라 보는 지형지세가 모두 다르다. 마을 내 수많은 고택들은 이런 자연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배치되어 있다.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문화재로 지정된 기와집의 수는 단일 마을 기준 전국 최다(26점)이다. 이언적이 지은 무첨당(無堂)은 별채가 유명하다. 역사 속 수많은 선비와 관인이 이곳을 찾아 남긴 현판과 죽편 등이 보물에 보물을 더하고 있다. 의병장 이의잠이 지은 수졸당, 양동에서 가장 먼저 지은 손소의 종가 서백당(송첨고택),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이정덕이 살았던 상춘헌 등과 해저고택(물 밖에 있다) 등 우리 역사 이야기가 서린 건축물이 ‘옛 마을의 새봄’을 무심히 지켜보고 섰다. 인근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함께 들르면 졸졸 이끼를 굴리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더욱 봄에 가까워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경주는 국내에서 2번째로 면적이 넓은 시다. 주요 강만 해도 4개가 흐른다. 형산강 지류 서천과 북천, 기계천, 낙동강 수계인 동창천이 경주를 누비며 물을 공급한다. 덕분에 차를 달리는 재미가 있다. 굳이 감포 해변까지 가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시원한 물 구경을 할 수 있다. 교동 교촌마을이나 보문관광단지에도 나지막한 실개천 둔치 트레일 코스나 보문호를 돌아 나가는 수변 산책로를 즐길 수 있다.요즘 전국에서 가장 뜨는 ‘핫플’ 여행지가 바로 ‘황리단길’이다. 대릉원 뒤쪽 황남동 일대, 포석로 쪽 한옥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천마총, 대릉원, 포석정 등 관광지와 명물 황남빵 가게가 있어 원래부터 관광객들이 몰리던 곳인데 요즘은 특유의 고전적 감성에 현대적 인테리어가 결합돼 독특한 분위기의 편의 상업지구로 발전한 경우다.비슷한 느낌의 전북 전주 한옥마을과 비교해도, 최근에 조성된 곳이라 뭔가 세련된 분위기가 더하다. 예쁜 카페에서 쉬다가 근사한 한옥 레스토랑에 들러 맛있는 것 챙겨먹고 돌아오는 여행이 가능해졌다. 경주 관광이 ‘문화재만 보고 오는’ 유적관광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젠 이런 즐길거리가 킬러 콘텐츠가 됐다. 특히 도심, 버스터미널 등과 가깝고 사진찍기에 좋아 MZ세대 여행객의 주목을 단단히 받고 있다. 500번 버스가 지나는 도로를 중심으로 약 700m 정도의 상점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대릉원 담벼락을 돌아 제과점과 기념품 숍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황리단길이 시작된다. 한옥호텔 황남관까지 이르는 길가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 개성 있는 카페와 빵집, 기념품이나 신기한 물건을 파는 잡화점, 사진관 등이 이어진다. 책꽂이처럼 군데군데 좁은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골목 안에는 여러 술집과 레스토랑, 사주카페, 한옥 게스트하우스, 서점 등이 나오는데, 이를 찾아 혈관처럼 고불고불한 골목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일본 규슈의 유후인 마을이나 동유럽 옛 도시의 플라자 마켓 거리를 닮았다.경주 동쪽에는 관광 특구로 유명한 보문단지가 있다. 인공호 보문호를 가운데 두고 호텔과 리조트, 상업지구로 빙빙 두른 형태로 조성됐다. 진입하는 길부터 호반 산책길, 어디서나 봄의 매력에 한껏 빠져들 수 있다. 50년 이상 수령의 벚나무가 길가에 도열해 4월이면 온통 벚꽃 터널을 이룬다. 호반에는 화사한 신록의 수양버들이 가느다란 가지를 늘어뜨리며 봄바람에 산들산들 흩날린다. 호숫가 산책로를 이용하면 어디나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자전거길도 잘 닦아 놓았다. 보문단지 안에만 있어도 며칠 잘 쉬어갈 수 있다. 공연과 컨벤션을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부터 골프 코스, 레포츠 시설, 테마파크, 워터파크, 다양한 사설 박물관, 체험장 등 즐길거리가 빼곡히 들어섰다. 몇몇 리조트에는 온천수도 나오니 휴양에 최적화된 곳이다. 요즘은 식물원과 조류 동물원을 겸한 동궁원, 미디어 파사드를 즐길 수 있는 정글의 법칙 등이 들어서는 등 좀더 다양한 놀거리가 생겨나 재방문객을 불러들이고 있다.이 중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방대한 자료와 수집물, 멀티미디어 전시기법으로 우리 대중음악을 즐기며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1925년 발매된 최초의 음반 ‘내 고향을 리별하고(안기영)’ 앨범, 최초 걸그룹 ‘저고리 씨스터즈’와 최초 아이돌 ‘아리랑 보이즈’ 등 희귀 음반부터 가왕 조용필, 들국화, 소방차, 현재 대중음악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까지, 그 오랜 시간을 스치듯 한번에 만날 수 있다. 장르별 시대별로 총망라한 여러 음반 자료를 해설과 함께 실제 들어볼 수 있다. 3층 오디오 전시관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하이엔드 앰프와 초대형 스피커를 통해 신청곡을 들어볼 수 있는 오디오 감상실이 마련되어 있어 ‘음악세계’에 푹 빠져들 수 있다.필자가 경주와 처음 맺은 인연은 35년 전 수학여행 때였다. 서울 서부역에서 출발과 동시에 낱낱이 기록된 그 여행의 각인은 우루루 몰려다니며 유적과 유물을 훑듯 돌아다닌 ‘시찰’에 불과했다. 1987년 봄의 경주는 2022년 봄의 문턱에서 만난 인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천년 고도는 좀더 젊어졌고 더욱 화사해졌다. 게다가 올해는 스마트 관광도시 사업 대상지에 선정됐으니 이후 만나는 경주는 지금보다 똑똑하고 명랑할 듯하다. 이번엔 때가 일러 꽃바람을 맞아보진 못했지만, 조만간 편안한 휴식 속에 수많은 즐거움을 찾으러 갈 테다. 경주에서 찍은 사진을 뒤척이며 즐거운 상상을 한다. ‘고도(古都)를 기다리며’. 놀고먹기연구소장■ 여행수첩 ●황리단길 오스테리아 밀즈는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고풍스러운 기와집에 입점한 레스토랑은 분위기도 그 맛처럼 근사하다. 블랙트러플을 넣은 크림 파파델리는 넓적한 면에 농후한 송로버섯 향이 진하게 배어있다. 면도 쫄깃하니 제대로 삶았다. 감칠맛 깃든 한치먹물리조토도 전국 어느 곳에서 맛보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풍미를 뽐낸다.●안강할매고디탕은 경주에서도 특별한 음식이다. 전형적 농촌 문화가 녹아든 다슬기탕인데 들깨가루를 넣어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낸다. 투실한 고디(다슬기의 지역 방언)에다 배추, 부추 등을 썰어 넣고 끓여 든든하다. 곁들인 젓갈과 봄동김치, 더덕무침 등도 자꾸 젓가락이 가는 별미다. 양동마을과 가깝다.●천년한우는 한우 맛있기로 소문난 경주에서도 좋은 고기를 취급하는 식육식당이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상차림비(5000원)를 내면 숯과 반찬을 가져다 준다. 서울에선 등심을 선호하는 데 비해 경주 지역에선 보통 갈빗살을 많이 먹는다. 갈빗살 이름은 같지만 평소 보던 부위가 아니다. 이외에도 채끝, 부채, 업진 등 다양한 부위가 있다.
  • ‘아빠의 청춘’ 부른 원로가수 오기택 별세

    ‘아빠의 청춘’ 부른 원로가수 오기택 별세

    1960년대 ‘저음의 마법사’로 불린 원로가수 오기택이 23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83세. 전남 해남 출신인 고인은 산업화가 시작되던 1963년 ‘영등포의 밤’을 발표해 인기를 누렸다. 이 곡은 산업 현장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 가던 당시 서민의 꿈과 애환이 담긴 노래로, 1966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고인은 1996년 바다낚시를 갔다가 사고로 다쳐 건강이 악화했다. 이후 지병으로 치료를 받다 최근 증세가 악화해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기택은 ‘고향 무정’, ‘아빠의 청춘’, ‘충청도 아줌마’ 등 대표곡을 남겼다. 매년 10월 그의 고향인 해남에서 ‘오기택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빈소는 26일쯤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 바다, 10살 연하 남편과 결혼…3살 딸 공개

    바다, 10살 연하 남편과 결혼…3살 딸 공개

    가수 바다가 7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다. 10살 연하 남편과 결혼 6년차인 바다는 “사람들이 웅성댈 것 같아서 처음엔 거절했다”라며 “처음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고, 3개월 후 어느 가게에 들어갔는데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데 뛰어오는 느낌이었다. 팬인줄 알았다. 오자마자 인사하고 아는 척 하더라. 기억하냐고 묻더니, 기억한다고 하니까 번호를 달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바다는 “제가 그날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날이었다. 그날 남편이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누나는 오늘 이 옷을 입었구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근데 그 화면 속의 제가 현실에서 보였던 것”이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바다는 3살 딸의 사진도 공개했다. 김구라는 “3살 딸이 목청을 닮았다고?”라고 질문했다. 바다는 “제가 노래하면 딸이 더 크게 노래를 부른다”고 답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김구라는 “DNA가 있나 보다”고 응수했고, 서장훈은 “딸이 엄마가 ‘암 쏘 매드’ 하는 거 봤냐”고 딸이 바다의 노래 무대를 봤는지 질문했다. 바다가 “아직 안 봤다”고 답하자 서장훈은 “둘이 하는 것 보고 싶다. 아기가 하면 너무 귀여울 것 같다”고 호응했다.  
  • ‘多多益山’ 이리저리, 거닐수록 빠져든다… ‘一喜一味’ 요리조리, 먹을수록 입맛돈다 [이우석의 미시여행]

    ‘多多益山’ 이리저리, 거닐수록 빠져든다… ‘一喜一味’ 요리조리, 먹을수록 입맛돈다 [이우석의 미시여행]

    미륵도 탐냈을 사통팔달의 도시… 기름진 땅만큼 걸음마다 보물… 이리역 폭발 아픔 뒤로하고 보석처럼 반짝반짝전주 뺨치는 황등비빔밥·칼칼 낙지곱창볶음 일품… 40년 노포 안줏거리·곰돌이 호두파이에 ‘훈훈달달’전북 익산시는 도내에서 두 번째, 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 기준이다. 약 28만명으로 광주광역시, 전주시, 전남 순천시에 다음간다. ‘다다익산’(多多益山)이다. 철도와 도로 교통도 좋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교차하고 충남 천안부터 이어진 장항선이 이곳에 종착한다. 호남고속도로를 비롯해 1번과 23번 등 국도와 지방도가 사방팔방 얽혀 있다.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는 너른 땅이다. 옥토의 드넓은 곡창지대 호남평야가 펼쳐졌다. 1970년대엔 이리수출자유지역이 생겼다.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익산군과 이리시는 1995년 통합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리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유명했던 까닭이다. 이리는 산짐승 이름과 같아 기억하기 쉽다. 이리는 원래 솜리, 솜니, 솝리 등으로 불렸다. 이리(裡里)의 뜻이 ‘속 마을’이란 뜻이라 그랬다. 작은 농촌 마을이던 솜리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 계획에 따라 갑자기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며 부쩍 성장했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차례로 놓이고 군산항까지 연결해 호남평야의 쌀을 깡그리 거둬 일본에 실어날랐다.●옛이름 ‘이리’와 지금의 ‘익산’ 하지만 익산이 중요한 지정학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사실 그보다 2000년 이상 먼저 일이다. 마한과 백제의 여러 유적으로 미뤄 볼 때, 이 지역은 일찌감치 발달한 고도(古都)였다. ‘익산 출신’인 무왕이 사비성(충남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까지 시도했을 정도다. 앞서 기원전 청동기 시대에는 고조선 준왕이 내려와 건마국을 세웠고 이는 마한의 첫 수장국(수많은 소국 중 맹주 역할을 하는 국가)으로서 국력을 과시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된 미륵사지를 비롯해 왕궁리 궁성 유적, 익산 쌍릉 등은 한반도 고대사에서 익산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지를 알려 주는 유적이다. 익산(益山)의 뜻은 ‘첩첩 산이 많다’는 의미지만 실제 익산에는 그리 높은 산이 없다. 오히려 김제와 더불어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광활한 들이 많다. 북부 함열과 동부 금마 쪽이 원래 익산의 중심이었는데 이리역이 생겨난 이래 시내 중심이 바뀌었다. ● 지역 역사 송두리째 바꾼 ‘폭발사고’ 살기도 좋은 땅이다. 큰비도 눈도, 심지어 태풍도 거의 없고 강이 둘이나 지나니 가뭄 걱정도 없는 곳이다. 폭염과 혹한도 없다니 얼마나 좋은가. 재해라고는 딱 하나, 굉장히 유명한 ‘인재’(人災)가 있었다. 1977년 11월 11일 일어난 이리역 폭발 사고는 사망 59명, 부상 1158명에 이재민 1647가구 7800여명이 발생한 국내 최악의 화약 폭발 사고였다. 당시 한국화약의 화물열차에 실려 있던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 폭발물 40t에 호송 책임자가 켜 놓은 촛불이 옮겨붙어 대형 폭발로 이어졌다. 반경 500m 이내 건물이 깡그리 무너지고 폭발 지점인 이리역에는 지름 40m에 깊이 15m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날 정도였다. 초대형 폭격을 맞은 정도의 규모다. 기관차가 700m 떨어진 민가까지 날아갔다. 이 사고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라진 역사(驛舍)는 물론이며 지역의 역사(歷史)까지 달라졌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도 이 사고와 인연이 깊다. 사고 현장과 가까운 삼남극장 지붕이 무너졌다. 이날 ‘가수 하춘화 리사이틀’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하춘화를 당시 무명이던 이주일이 들쳐업고 구해 낸 것. 이 인연으로 이주일은 하춘화 전속 사회를 맡게 됐고 이후 국내 최고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공중분해된 이리역은 1년 후 당시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지었다. 인근 창인동 익산군청은 건물에 금이 가 2년 후 함열읍으로 이전했고 남성여중과 남성여고, 남성고도 영등동 소라산으로 옮겨야 했다. 건물 9000여 채가 무너졌으니 한마디로 폭발 사고 한 방이 도시 자체가 재건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통합시가 익산시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에도 당시 재난이 연상된다는 여론도 한몫했다고 한다. ●고대사 품은 ‘국보급 도시’ 풍요의 땅 익산에는 보물도 많다. 앞서 언급한 고대 한국사의 국보급 문화재는 국가가 공인한 보물이다. 여기에다 ‘보석 도시’란 예명에 맞게 금은보석 세공 등 보석가공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석재로 유명한 황등석도 보석이다. 국가 공인 4대 종단 중 하나이자 국내 최대 토종 종교인 원불교를 열고 익산 땅에 잠든 소태산 대종사, ‘원불교의 바티칸’ 격인 익산 중앙총부도 익산시의 보석이라 할 수 있고, 호남에서 가장 큰 사학인 원광대학교도 미래의 보석이 아닐 수 없다.● 대각의 종교 ‘원불교’ 성지 익산을 설명하며 원불교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현재 국방부에서 군종 병과를 인정하는 종교는 가톨릭, 불교, 개신교, 원불교뿐이다. 원불교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대각(大覺)의 종교로 1916년 소태산 대종사가 창시해 100여년의 역사를 지켜왔다. 이 원불교의 중앙총부가 익산 신룡동에 있다. 원불교의 교법을 편 전법성지(傳法聖地)인 이곳엔 중앙총부뿐 아니라 영모전, 대각전, 박물관, 원음방송 등이 함께 있다. 소태산 대종사 성탑, 정산종사 성탑, 성비 등도 자리하고 있다. 주변엔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상주선원, 문화원, 퇴임 교무 정양소 수도원, 원로원 등이 갖춰져 있다. 일반인도 언제나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이라 익산시 관광 스탬프 코스로 지정돼 있다. 익산 시내 중심가와 가깝고 탁 트인 가람의 경내 분위기나 박물관, 솔숲 산책로 등이 좋아 이른 봄기운을 받으며 둘러보기에 딱이다. 원불교가 창시된 4월 28일 대각개교절에 맞춰 시민 참여 행사도 열 계획이다. 원광대가 시작된 ‘유일학림’ 등 건축물들은 조선 말기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소태산 대종사가 설법에 사용했던 탁상과 수첩, 교전 등 성품, 물품들이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원광대 교정은 봄꽃과 건축물, 인공호수 등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인터넷과 언론 등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로 여러 번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상징인 봉황탑을 재치 있게 해석해 ‘닭다방’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호수 위 카페와 산책로, 오솔길, 대학박물관 등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있어 교정을 둘러보다 쉬어 가기 안성맞춤이다.●모양도 이야기도 빛나는 보석박물관 국정교과서에 익산이 여러 번 나온다. 국사 교과서엔 마한·백제·미륵사지·원불교 등이, 지리 교과서엔 보석산업이 나온다. 보석 광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석 가공업체가 몰려 있다. 백제의 귀금속 가공술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석박물관에는 11만점의 보석과 원석, 공예품 등이 있다. 옆에는 보석을 보고 구입할 수 있는 보석산업센터가 함께 위치했다. 보석이라 하면 그저 반지, 목걸이와 왕관에 붙이는 형형색색의 돌덩이만 연상했는데 둘러보니 참 많은 종류가 있다. 식물성 호박부터 동물성 산호, 여러 광물이 보석의 범주에 든다. 다이아몬드, 수정, 옥 등 다양한 보석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보석은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다색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색조차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던 필자가 매우 똑똑해져서 나올 수 있었다. 얼마나 현명해졌는지 살짝 자랑하자면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슈퍼맨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북극으로 부모의 유물을 찾아갈 때 등장하는 크립토나이트는 수정이 아니라 집섬(Gypsum)이나 녹주석의 일종인 아쿠아마린을 닮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또한 영화에서 마녀들이 요술이나 예언을 행할 때 쓰는 둥근 구슬은 호랑이 눈알을 의미하는 호안석(虎眼石)이 분명하다.● 익산의 상징 ‘미륵사지’ 익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보물은 역시 미륵사지(사적 제150호)다. 백제 사찰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무려 3탑3금당 방식으로 다른 절터에 비해 2~3배 이상의 규모와 형식을 자랑한다. ‘서동’ 백제 무왕이 639년 창건했다는 기록까지 등장하니 이래저래 익산의 상징이다. 신라 황룡사와 고구려 금강사에 대응할 만큼 백제 대표 호국사찰로 꼽히는 절이며 백제의 가장 거대한 석탑을 품은 옛 절터다. 무너져 내려 반만 남은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더할 익(益)자를 모티브로 한 익산시 로고로도 쓰일 만큼 강력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서동요’의 진실은 과연 실제 보물도 쏟아졌다.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 과정에서 첫 번째 심주석 안에 봉안된 사리병과 금제사리봉영기, 구슬 등 사리장엄구 9900여점이 나왔다. 세세하고 정교한 조각과 문양으로 가득한 사리병은 백제금동대향로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걸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금판에 붉은 글자를 새긴 사리봉영기는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이로써 미륵사가 백제 무왕 재위 시절인 기해년(639년)에 창건됐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무왕의 왕후가 신라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인 사택씨 가문임도 함께 드러나 ‘서동요’ 이야기가 허구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백제판 남자 신데렐라’ 서동의 성공담이 사라질 수 있는 ‘불상사’를 낳은 셈이다. 이후 일부다처설, 후처설 등이 대두되며 아직까진 서동 설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사리봉영기에 선화공주 이름이 정확히 기록돼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무왕릉으로 추정되는 익산쌍릉에선 신라제 토기가 출토돼 서동·선화공주 결혼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아무튼 미륵사는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조선 중후기까지 건재했지만 숭유억불책과 자연재해,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17세기 들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1990년대 초반 동탑을 서탑의 모양에 상상을 더해 복원(?)했지만 고증에 대한 근거도 없고 너무 급조해 만든 티가 난다. 21세기 들어 복원에 들어간 서탑만큼은 원래 석재를 최대한 사용하며 없는 형태를 상상해 만들지 않기로 했다. 젠가(블록빼기 게임)를 하다 망한 것처럼, 그나마 무너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형식으로 복원을 마친 후 2019년 일반에 공개한 서탑에 더 많은 이들이 몰린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로, 미륵사지당간지주는 보물로 지정돼 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위원회가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5층 석탑 등 유적, 공주·부여의 유적들을 ‘백제역사 유적지구’란 이름으로 묶어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난해 초 미륵사지 지하 공간에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은 미출토 유물과 백제의 여러 유물을 모아 전시 중이다. 내부엔 다양한 전시기법을 사용해 한눈에 익산의 여러 유적과 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세대불문 미각 깨우는 맛의 고장 물산이 풍요롭고 도시 규모가 제법 되는 익산이라 ‘먹는 보물’도 많다. 전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황등비빔밥을 파는 여러 노포를 비롯해 푸짐한 인심이 돋보이는 부송국수, 칼칼한 낙지곱창볶음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동서네 낙지, 수제만두로 유명한 태백칼국수, 매콤한 콩나물국밥을 파는 별미집 등이 유명한 식당들이다.곰 얼굴 모양의 귀여운 호두파이와 다양한 종류의 타르트를 만들어 파는 ‘빵곰언니와 호두파이 공장’은 전국적으로 젊은층에게 널리 알려진 디저트집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입소문을 타고 순례객을 양산하고 있다. 1982년 ‘역전할머니맥주집’에서 출발한 ‘호프 노포’ 엘베강도 익산역 앞을 지키고 있다. 맛집들은 창인동 중앙시장과 영등동, 원대입구(대학로), 모현동, 부송동, 황등면 등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이동하기 편리하다. 마한의 첫 수장국으로 시작,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 됐을 곳. 그리고 근대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 이리로부터 지금의 보석 도시 익산. 역사를 거슬러 봐도 언제나 풍요로움이 넘쳐나던 곳이다. 이리저리 돌아보며 ‘다다익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가기 전에 이건 꼭! -미륵사지와 익산박물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춘 전시물부터 다양한 체험까지 가능한 어린이박물관도 함께 있다. 왕궁리 유적 박물관은 현재 휴관 중이다. -서동공원 경내 마한박물관에는 율촌리 고분 출토 옹관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 중이다. 웅포면 입점리고분전시관은 익산 지역에 살았던 백제 귀족의 무덤에서 발굴한 금동관모와 장신구 등의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원광대 박물관도 알짜배기다. 마한과 백제 유물부터 옹기, 회화, 민속, 불교 예술 등을 모아 놓은 종합박물관이다. 천주교 유적지도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모신 나바위 성지가 익산에 있다. 백제의 석불로 국가 중대사에 앞서 땀을 흘린다는 익산석불좌상도 삼기면 석불사에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열린세상] 새장에 갇힌 한반도, 바다가 위험하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새장에 갇힌 한반도, 바다가 위험하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가수 조미미가 부른 유행가의 한 구절이다. 먼 나라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바다에 막혀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바다가 육지라면 어떨까.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럴 일은 없으니까. 노랫말과 유사하게, 국제해양법을 연구하는 필자는 가끔 ‘해양영토’(Maritime Territory)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해양영토에 대한 학술적 정의는 없다. 법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원래 영토(territory)는 육지를 말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제법상의 핵심 요건이다. 해양영토를 법적으로 해석하자면, 바다와 연관이 많은 육지영토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섬과 암석, 간출지 등이다. 영어로는 ‘insular formation’ 정도로 표기될 수 있다. 이 개념에도 여전히 해양은 포함되지 않는다. 바다가 땅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해양영토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해양과 영토를 동일하게 병기함으로써 바다가 육지만큼 중요하다는 강조의 의미일 것이다. 사실 용어의 제도적 사용이 없다고 그 해석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다. 섬과 암석, 영해,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수역은 모두 대한민국의 일부다. 국민 정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직접 통제하지는 않으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해역도 이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공해와 심해저 등 해양자원 확보가 가능한 곳을 ‘해양경제영토’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모든 국가가 바다를 차지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약 2억 3100만㎢의 공해(바다의 약 64.2%), 자원 없는 대한민국에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바다는 이미 육지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소위 패권을 꿈꾸는 국가는 21세기 들어 더욱 바다에 대한 전략을 새롭게 하고 있다.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 국가, 좁은 바다에 갇힌 국가는 현대 과학기술과 무기체계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바다를 어떻게 통제하고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의 성장뿐 아니라, 절대적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중국해와 대만해협,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등이 전형적인 전략충돌의 예다. 지역해 통제권과 대양 진출, 해상세력 간 충돌에 대비한 지정학적 거점으로 부동항을 선점하려는 조치다. 대한민국 또한 적어도 한반도 주변 해역 해양상황에 대한 통제력과 대양진출 전략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안보와 국제관계에서 살아남을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해양전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양은 여전히 육지의 셈법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바다는 이미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독립변수가 됐다. 오히려 21세기 국제관계에서 기존 질서의 균열은 해양에서 시작될 확률이 높다. 미국의 동북아 동맹은 전형적인 해양동맹이다. 미국과 중국이 극한의 충돌을 지속하는 이유다. 패권경쟁과 국제관계의 모든 전략적 이합(離合)이 바다로 향하고 있는데, 우리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 해양전략은 부재한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만일 우리 앞에 놓인 바다가 육지라면, 다른 나라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그 육지에 의해 대한민국은 ‘새장에 갇힌 나라’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흔히 지금을 정치의 시간이라고 한다. 표가 가는 곳에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정치의 시간은 짧다. 그러나 해양전략 부재의 효과는 누적된 총합으로 영향을 준다. 해양수산부는 해양강국이라는 비전을 위해 ‘거꾸로 세계지도’를 배포하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해양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 땅도 金도 빼앗겨도 한바탕 웃음… 슬프도록 신명 나는 ‘치유의 가락’

    땅도 金도 빼앗겨도 한바탕 웃음… 슬프도록 신명 나는 ‘치유의 가락’

    원제목은 김용환의 ‘눈깔먼노다지’수탈된 아픔, 신명으로 치환한 ‘만요’38세 요절할 때까지 가수·배우 활약 동생 김정구가 이어 부르며 알려져‘서울구경’ ‘오빠는 풍각쟁이’ 등 계승감내하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겪었을 때 그것을 오히려 웃음으로 풀어 내는 슬기는 우리 한민족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특히 국권을 강탈당한 일제 강점기에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치유 형식의 가요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만요(漫謠)다. 만요는 1930년대에 나타난 익살과 해학을 담은 노래로, 웃음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코믹 송 장르다. 음악적으로는 트로트와 신민요는 물론 재즈 등 다양한 형식을 갖췄으며, 노랫말에 해학 및 골계적 성분이 있어 다른 장르와 변별된다. 이 같은 만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노래가 김용환이 처음 부른 ‘노다지 타령’이다. ‘노다지 노다지 금 노다지/ 노다지 노다지 금 노다지/ 노다진지 칡뿌린지 알 수가 없구나/ 금 당나귀 나올까 기다렸더니/ 칡뿌리만 나오니 성화가 아니냐/ 엥야라차 차차 엥야라차 차차’‘노다지 타령’은 빅타레코드에서 1939년에 출반한 곡으로 ‘정어리 타령’과 함께 실렸다. 김용환이 곡을 쓰고 김성집이 가사를 붙인 이 곡은 출반 당시 ‘눈깔먼노다지’라는 제목이었지만, 김용환이 세상을 뜬 1949년 이후부터는 동생 김정구가 부르면서 대중에게는 김정구의 ‘노다지 타령’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노다지’는 풍부한 광맥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 확장해 금이나 재물 또는 행운을 뜻하기도 한다. 조선 말기 서세동점하는 열강들에 밀려 조선은 광물채굴권, 삼림벌목권, 철도부설권 등 자원에 대한 권리를 속속 외국에 내줬다. 이때 미국은 금광 사업에 관한 이권을 차지했다. 미국은 평안도 운산 광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금 채굴에 조선인 노동자를 고용했다. 노동자들이 금을 발견하고 일제히 “금이다”를 외치면, 미국인 감독이 달려와 눈을 부릅뜨고 만지지 말라며 “노 터치!”(No touch)를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운산 일대의 주민들이 미국 금광회사의 철조망으로 모여들자 이를 제지하려는 미국인들의 ‘노 터치’를 ‘노다지’로 알아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운산 금광에 노다지가 쏟아진다는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조선인 사업자들도 운산 금광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근대식 광산 기술자와 채광 기계를 갖춘 미국인들과 달리 전근대식으로 금맥을 찾는 조선인 사업자는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집 팔고 논 팔아서 모조리 바쳤건만’이란 가사에서 보듯이 전 재산을 금광에 투자했지만 ‘나오라는 노다지는 안 나오고 칡뿌리나 도라지만’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조선인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미국인에게만 보이는 노다지. 그래서 ‘눈깔먼노다지’인 것이다. 그래도 화자는 자신의 노다지 사업을 ‘하룻밤 흥망춤’에 비기며, ‘물레’처럼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와 같이 곧 대운이 터질 것을 꿈꾸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노다지 타령’은 굿거리 장단의 신명 나는 신민요이지만, 우리 땅에 묻힌 금을 남이 파 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수탈의 아픔이 녹아 있다. 그러나 원통하고 분하다고 해서 외세에 무작정 대항하면 혹심한 탄압을 받는 것은 물론 조선의 존립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리하여 골계적으로 외세의 수탈행위가 부당함을 고발하고, 내적으로는 슬픔을 한바탕 웃음으로 치환한 만요라는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강홍식의 ‘유쾌한 시골영감(서울구경)’,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 이종조·이진진의 ‘영감타령(잘했군 잘했어)’, 김용환의 ‘장모님전 항의’, 김정구의 ‘왕서방 연서’ 등에서도 볼 수 있듯 만요에는 풍자와 낭만, 해학이 서려 있다. 이 같은 만요의 전통은 해방 이후에도 한복남의 ‘빈대떡신사’, 김용만의 ‘월급날 맘보’, 최희준의 ‘엄처시하’로 이어졌다.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문희옥의 ‘천방지축’, 김용임의 ‘서울은 가고 있다’ 등도 만요 장르를 계승하는 노래들로 볼 수 있다.김용환은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가수 김정구의 형이며, 소프라노 김안라의 오빠다. 1912년생인 그는 38세에 사망할 때까지 음악인으로서의 재능을 펼치며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줬다. 1930년 무렵 원산 지역 극단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배우 겸 가수로 활약했다. 1933년 ‘이팔청춘’을 발표했고 왕수복과 듀엣으로 ‘최신 아리랑’을 냈다. 1943년 나운규의 극영화 ‘아리랑’을 악극으로 해석해 주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악극 ‘심청전’에서는 심봉사 연기를 펼쳤고, 아세아가요단을 운영하며 ‘심청전’으로 전국을 순회했다. 작사와 작곡에도 능해 ‘눈깔먼노다지’ 외에도 ‘장기타령’, ‘정어리타령’, ‘꼴망태 목동’, ‘가거라 초립동’, ‘어머님 전상서’ 등 작품이 있다.김정구는 그의 형 김용환 사후 한평생 ‘노다지 타령’을 그의 무대에서 불렀다. 1936년 뉴코리아레코드에서 김용환 작곡의 ‘삼번통 아가씨’를 최선과 듀엣으로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1938년 만요 ‘왕서방 연서’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김정구는 ‘왕서방 연서’를 노래할 때면 이를 까맣게 칠해, 마치 이가 빠진 우스꽝스러운 중국인처럼 분장하고 노래를 불러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어린아이들도 ‘띵호와 띵호와’를 합창할 만큼 대단한 인기였다. 무대에 가만히 서서 정적으로 노래하던 당시 기발한 만요에 파격적인 제스처와 코믹한 율동을 곁들여 부르며 최고의 스타로 각광받았다. ‘앵화폭풍’, ‘총각 진정서’, ‘모던 관상쟁이’, ‘복덕장사’, ‘십삼도 총각회의’ 등이 당시 대표곡이었다. 이후 국민가요가 된 ‘눈물 젖은 두만강’과 ‘바다의 교향시’로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1975년 가요계 사상 처음으로 회갑 기념 쇼를 열었다. 1980년 대중 가수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고, 1998년 미국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작곡가·문학박사
  • 박종수, 伊 산레모 신인 가요제 동양인 첫 우승

    박종수, 伊 산레모 신인 가요제 동양인 첫 우승

    성악가 겸 팝페라 가수 박종수(33)가 이탈리아 산레모 신인 가요제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다. 7일 종합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디지엔콤에 따르면 박종수는 지난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안드레아 보첼리가 1994년 불렀던 ‘고요한 저녁 바다에’(il mare calmo della sera)를 불러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그는 성인가요상까지 거머쥐어 2관왕에 올랐다. 박종수는 부상으로 2만 유로(약 2700만원) 상당의 제작비를 지원받아 데뷔 싱글을 발표한다. 올해 72회째를 맞는 산레모 음악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대중음악 ‘칸초네’를 바탕으로 매년 2월 초 개최된다.
  • 2월 볼만한 클래식 공연은…박혜상·김두민·하르덴베리에르 등 대기

    2월 볼만한 클래식 공연은…박혜상·김두민·하르덴베리에르 등 대기

    설 연휴가 끝나고 봄을 준비하는 2월에 접어들면 각종 클래식 공연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유명 성악가와 숨겨진 고수의 첼로 연주 등 다채로운 연주회가 2년 넘게 지속한 코로나19로 지친 영혼을 달래줄 것으로 보인다.우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마술피리’ 주역으로 데뷔한 소프라노 박혜상이 오는 5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랑과 삶’(Amore & Vita)을 주제로 한 리사이틀을 가진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박혜상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대표적 작곡가들인 존 다울랜드,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헨리 퍼셀에서부터 프랑스의 낭만을 대표하는 에릭 사티, 루치아노 베르오, 쿠르트 바일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랑과 인생에 대한 다채로운 감정을 담은 노래들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은 오는 10일과 11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자크 메르시에의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공연을 진행한다. 프랑스 지휘자 자크 메르시에와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를 만날 수 있는 이번 공연에서는 브리튼 ‘피터 그라임스’ 중 4개의 바다 간주곡,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등을 들을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은 페렌데스가 직접 선곡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서울시향은 24~25일 오후 8시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텅취창과 브람스 교향곡 3번’ 콘서트를 연다. 대만 출신의 텅취창이 지휘하고 서울시향이 ‘2020년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한 세계적 트럼펫 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베르크 서정 모음곡, 노이비르트 미라몬도 멀티플로 등을 들려준다.2월에는 클래식 음악계의 젊은 스타를 만나보는 금호라이징 스타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10일 오후 8시에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피아니스트 박재홍을 만날 수 있다.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과 4개 부문 특별상을 석권한 박재홍은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를 위한 아라베스트 C장조·피아노 소나타 1번과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 등을 선보이게 된다.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한국인 바리톤 최초로 베를린 도이치 오퍼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한 바리톤 이동환의 독창회가 열린다.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인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동환은 ‘열정’이라는 부제에 맞게 토스티의 ‘너를 더 사랑하지 않으리’와 푸치니의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중 ‘민니, 나는 집을 떠났다오’ 등을 보여줄 계획이다.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오는 1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1회 KSO국제지휘콩쿠르 우승자인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이 지휘하는 ‘해방’ 콘서트를 개최한다. 첼로의 숨은 고수로 꼽히는 김두민이 협연하는 이 콘서트에서는 임영진의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이 연주되며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들을 수 있다.이밖에 26일에는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제775회 정기연주회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예정돼 있다. 바딤 레핀의 협연으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를 선보이는 이번 연주회에서는 시벨리우스의 축제풍 안단테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F단조도 선보일 예정이다.
  • 실용음악 전공 6명의 ‘조선팝’… “국악 색깔 담은 팝으로 다가갈게요”

    실용음악 전공 6명의 ‘조선팝’… “국악 색깔 담은 팝으로 다가갈게요”

    지난해 12월 종영한 국악 크로스오버 서바이벌 프로그램 JTBC ‘풍류대장’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팬심을 고백한 밴드가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송가인이 음악을 듣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메시지를 보내고, 박정현과 이적이 앞다퉈 칭찬한 서도밴드다. 무대를 본 박칼린 공연 연출가는 “지구를 구했다”며 극찬한 이들은 쟁쟁한 국악인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JTBC 사옥에서 만난 서도밴드는 “첫 녹화 때 기대가 너무 높아 놀랍기도 하고 부담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우승 욕심보다 “우리 음악을 잘 보여 주자”는 마음으로 출연했는데 너무 뜨거운 관심을 받아서다. 무대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구전 민요를 바탕으로 한 ‘뱃노래’, ‘사랑가’와 결선곡 ‘바다’ 등 자작곡은 물론 커버곡 ‘매일매일 기다려’까지 낯설지 않은 신선함이었다. 가요와 판소리 창법을 넘나드는 보컬에 양악기와 국악기가 결합돼 새로운 장르로 탄생했다. 자작곡을 많이 선보인 데 대해 멤버들은 “우리 음악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눈을 빛냈다. 서도(보컬), 김성현(건반), 연태희(기타), 김태주(베이스), 이환(드럼), 박진병(퍼커션) 등 멤버 여섯 명은 모두 실용음악 전공자다. 2018년 제12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 출전하기 위해 대학 동문들이 모여 팀을 꾸렸다. 다섯 살부터 판소리를 배우다 작곡 전공으로 진학한 서도가 “국악을 기반으로 팝을 해 보자”고 제안한 게 시작이었다. 김태주는 “국악이라는 틀이 아니라 멋있고 좋은 또 다른 음악으로 받아들였다”며 “지금도 ‘좋은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힙합, 록, 가요 등 각자 즐겨 듣는 음악 취향도 다르고 국악과 대중음악의 차이도 크지만 이질감 없이 결합하는 건 “음악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고민하며 연습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서도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을 ‘조선팝’으로 규정한다. 국악과 팝의 느낌이 섞여 있는 새 장르를 개척한다는 의미다. 김성현은 “국악의 색깔을 담을 수 있는 팝이라고 보면 된다”며 “아이유 하면 국민 여동생이 떠오르듯 조선팝 하면 서도밴드가 떠오를 수 있도록 대중에게 잘 다가가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풍류대장’ 이후 변화도 크다. 데뷔 4년 만에 팬 카페가 생겼고, 무엇보다 조선팝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연태희는 “전에는 댓글에 ‘조선팝이 뭐냐’는 비아냥이 있었는데, 무대를 거듭하며 ‘이건 조선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글들이 올라온 점이 뿌듯했다”고 돌이켰다. 지난해 11월 단독 공연은 물론 지난 15일까지 열린 ‘풍류대장’ 콘서트도 매진 행렬이다. 조선팝 선구자들의 목표는 세계로 향한다. 서도는 “국악은 본능을 자극하는, 엄청난 몰입감과 힘을 가졌다”며 “그 멋과 흥을 세계에 널리 알려 우리 전통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인 요즘 국악 크로스오버가 어엿한 장르로 자리잡을 날도 머지않았다는 확신 어린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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