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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영화]

    ●어둠속의 댄서(KBS1TV 오후 11시25분) ‘브레이킹 더 웨이브’,‘백치들’에 이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선의’(Golden Heart) 3부작 가운데 세번째 영화.비극적인 멜로 드라마와 할리우드 뮤지컬의 형식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200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 비요크가 주인공 셀마를 연기했다. 체코 이민자로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아들과 함께 사는 셀마는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도 뮤지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열심히 사는 셀마에게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시련이 닥친다.이젠 거의 모든 것을 기억과 더듬기에 의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게다가 아들마저 실명 위기에 처하면서 그녀는 수술비 마련을 위해 꿋꿋이 돈을 모아왔다.그러나 집주인 빌이 아들의 수술비를 훔치자 셀마는 다툼 끝에 빌을 죽이고 만다.법정에서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던 셀마는 뮤지컬의 환상을 보면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셀마는 끝내 가석방도 거부한 채 아들의 수술을 공장 동료인 캐시에게 맡기고 형장으로 향한다.139분. ●무서운 영화(SBS 오후 11시45분) ‘스크림’시리즈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 빅 히트한 호러물들을 줄거리로 패러디한 키넌 아이보리 웨인스 감독의 2000년작. 집에서 팝콘을 튀기던 미모의 여대생 드루에게 한 남자가 전화로 ‘공포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묻고는 갑자기 나타나 드루를 해치려 든다.달아나던 드루는 슈퍼모델인 양 포즈를 취하기도 하지만 칼에 찔린 뒤 차에 치여 죽는다.이 소식을 전해들은 드루의 친구들은 1년 전 핼러윈 축제 때 한 남자를 치어 죽인 사고를 떠올린다.88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양빈 前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 가석방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당국에 수감된지 1년 만에 양빈(楊斌) 초대 북한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의 ‘가석방설’이 흘러나오고 있다.마닝(馬寧),관산(關山) 등 양빈의 최측근들은 “오는 9월로 예상되는 4차 북핵 6자회담 전후로 석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4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끈질긴 석방촉구 노력이 주효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의 다른 소식통들은 양빈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이 이미 가석방돼 자신이 건설 중이던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내 허란춘(荷蘭村)에 가택연금 상태라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양빈의 노력없이 허란춘 청산 작업이 어렵고 특히 허란춘이 미납한 토지세 6000만위안(90억원) 추징을 위해 양빈이 청산 작업을 진두 지휘토록 조치했다는 것이다.마닝 등 측근들은 “오는 9월께 중국이 양 장관을 석방하고,북한은 중국 체면을 살려주면서 11월 대선을 앞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 선물을 주는 형식의 결단을 내려,북한 핵문제가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oilman@seoul.co.kr
  • [기고] 로버트 김과 보호관찰/노청한 서울남부보호관찰소장

    호국·보훈의 달에 로버트 김 문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국가 또는 조직을 위해 남이 모르게 기여를 한다는 것은 생각컨대 매우 의미 있다는 사실을 나이 먹으면서 절실히 느낀다.이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현충일 행사 노래의 가사를 되새기며 내가 속한 나라·조직에 대한 충정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밀려오는 감상까지 가지게 된다. 로버트 김의 흰 머리카락을 보면서 그가 8년간의 수감생활을 하면서 가졌을 황망함·답답함·이해·용서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상상해 본다.이제는 부인과 함께 따뜻한 행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로버트 김은 현재 가택연금 상태로 ‘한국은커녕 집 문앞에 신문을 가지러도 나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며 오는 7월27일 정식 가석방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석방이 되면 보호관찰 대상자가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가장 기본적인 사항으로 먼저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된다.교우관계·연설(대화)이 제한되고 수색허용·교육 등의 의무를 지는 등 준수사항은 매우 치밀하다.심지어는 전자감시 장치로 허가된 장소에서 이탈했는지도 감시 받는다.일체의 보호관찰 실시는 배리 레이먼드라는 보호관찰관이 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보호관찰 대상자에 대한 전자감시 장치 제도 도입을 준비하다가 인권 문제가 부각될 우려 때문에 법안 상정 직전에 보류한 적이 있다.그대신 우리는 야간 외출제한 명령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보호관찰 대상자의 음성을 인식 저장하여 전화기와 컴퓨터를 활용,본인이 집에 있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다.야간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주 대상이다. 미국의 보호관찰 대상자 수는 전체 범죄자의 약 70%에 이른다.우리도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보호관찰 대상자 수가 연간 14만여명이며 이 수는 재소자의 2배 반을 넘는다.7월1일이 되면 보호관찰소 개청 15주년이 된다.그동안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수는 무려 80만명을 넘는다. 이렇게 보호관찰 제도가 폭넓게 활용되고 발전하게 된 배경은 보호관찰이 기본적으로 범죄인 개개인을 인격 주체로 대하는 업무 환경 즉 개별처우,사회내 처우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사과정이나 교도소 수용시 답답하게 느꼈던 감정을 보호관찰관에게는 쉽게 토로할 수 있고 보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로버트 김의 경우도 비록 가석방 결정이 우리 국민의 염원에 비해 늦은 감이 있으나 그의 모범적인 수감생활과 보호관찰 제도가 있어서 그나마 가석방 결정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보호관찰 제도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범죄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구속과 석방의 경계에 있는 사건의 경우 보호관찰이라는 안전망을 감안,당사자로 하여금 가족과 결별하고 사회로부터 차단되는 수용생활 대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하면서 사회봉사 명령 집행,선행 등을 통하여 잘못을 속죄하는 기회를 갖게 함으로써 개인의 행복 추구는 물론 교도소 수용시의 또 다른 범죄감염 우려,수용비용을 크게 줄이는 등 이중삼중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보호관찰 직원 577명이 연간 14만여명의 보호관찰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보호관찰제 성과가 인정되어 그나마 다행이나 보호관찰 업무환경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이미 5년 전 정부부처에 대한 경영진단을 통하여 보호관찰 직원의 대폭 증원을 권고한 바 있으나 실천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범죄인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그 성과 또한 높음에도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비개혁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노청한 서울남부보호관찰소장˝
  • [분단 현실의 ‘이방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을것”

    ‘낮은 소리’는 사회의 그늘진 곳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다수의 큰 목소리에 가려 외면받고 있는 소외층의 목소리를 드러내 보이려는 것입니다.방치할 경우 사회의 대형 갈등요인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을 미리 공론화함으로써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제보를 기다립니다.서울신문 편집국 사회교육부(02)2000-9173,www.seoul.co.kr 또는 www.kdaily.com으로 연락 주십시오. 종교적 신앙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징집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분단 현실이 낳은 한국사회의 또다른 ‘이방인’들이다. 매년 600여명의 젊은이들이 이런 신념에 따라 징집을 거부,평생을 ‘병역기피자’라는 멍에를 쓰고 살아가고 있다.병역을 대신해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최근들어 이들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이어 국회의 ‘대체복무제 입법 추진’ 등 사회의 시각이 급속도로 바뀌고는 있다.그러나 최근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항소심을 헌법재판소 위헌심판제청 사건 결정 이후로 무기한 연기하는 등 이들의 고통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매년 600여명 군 대신 감옥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매년 600여명씩 생겨나고 있다.지금까지 1만명 정도가 형사처벌을 받았다.8일 현재 470여명이 전국 교도소에 복역중이며,300여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대부분이 종교적 교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지만 최근들어 정치적인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도 늘어나고 있다.정치적·사상적 이유로 입대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지난 2001년 불교신자인 오태양(30)씨를 필두로 김도형(25),유호근(29),나동혁(29·서울대 재학)씨 등 14명에 이른다. 스승의 날이자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인 지난달 15일에는 경북 문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최진(27)씨가 “사회에 뿌리내린 폭력을 없애겠다.”며 병역을 거부했다.최씨의 병역거부는 공무원으로서 최초의 사례를 기록하게 됐다.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할 경우 군형법상 항명죄에 해당돼 법정최고형인 징역 3년형을 받지만 입영 자체를 거부하면 민간 법원에서 보통 1년6월∼2년형을 선고받는다.최근에는 아예 입영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을 ‘병역기피자’라는 멍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본인뿐만 아니라 병역 거부자를 둔 가족들의 걱정과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오씨와 유씨 등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현재 재판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로 현재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릴 예정이던 3차 공판이 연기된 오씨는 “그동안 주변의 오해와 편견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면서 “자신의 양심적 결정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군사훈련이나 총을 들지 않는 대신 다른 형태의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병역 거부자들은 경축일 등 정기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가석방의 혜택에서 배제돼 왔으며,매년 몇차례씩 취해졌던 사면·복권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또 출소후 전과로 인해 공무원 임용 자격이 없으며,민간 기업 취업시에도 신원 조회에서 탈락하는 등의 사회적 차별을 겪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에서 활동하는 예비 병역거부자인 이용석(25·중앙대 졸업)씨는 “처음에는 병역거부에 대한 주변의 만류가 많았지만 지금은 이해를 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한 만큼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통해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을 없애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대체 복무제가 유일한 해결책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문제는 대체복무제 외에 별다른 해결책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현재로서는 헌법재판소 판결과 국회의 입법에 해결책을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3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지난 2002년 2월 출범,국회 입법을 겨냥한 대체복무제도 법안 마련과 입영을 앞둔 청년들에 대한 상담,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를 알려 나가는 작업,국제연대를 통한 여론화 작업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달 25일 이재승 국민대 교수와 이석태 변호사,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각계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대체복무 입법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서명운동과 홍보 캠페인에 돌입했다.이 단체가 제안한 ‘대체복무법안’에 따르면 병역거부자는 대체복무위원회의 판정절차에 따라 양심의 진정성이 인정되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연대회의 정용욱 상임활동가는 “대체복무제도만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살이라는 고통속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대체복무제도가 우리의 안보현실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외래풍조로 간주하는 시각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美 기밀누설 혐의’ 가석방 로버트 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8년간 옥살이를 했다고 믿기에는 표정이 차분했고 깔끔했다.미 해군정보국 공무원에서 기밀누설 혐의로 8년간 영어의 몸으로 전락했던 로버트 김.미국에서는 ‘스파이’,한국에서는 ‘애국자’로 불리는 한국명 김채곤(64)씨. 버지니아 애시번 자택에서 만난 4일은 공교롭게도 모친 황태남(83)씨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날이었다.50분간의 인터뷰 동안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했으나 모친을 언급하자 끝내 눈물을 떨구었다. 7월27일 공식적으로 가석방이 될 때까지 현관문을 나설 수가 없다.그래도 일요일 교회에 갈 수 있다는 데에 그는 만족한다.언론에 보도된 조국이나 동포에 대한 사랑이니 하는 거창한 말에는 손을 젓는다.같은 동포라면 누구라도 했을 일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손주를 볼 나이에 가족에게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준 점은 지금이라도 백배사죄한다고 했다.특히 백발이 성성해진 부인 장명희(61)씨와는 밤과 달을 새워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가족에게 피해준 점 백배사죄 억울하지 않으냐고 물었다.“만약 그사람(백동일 대령)이 한국 정부를 대신해 돈을 주고 나를 활용했다면 후회가 됐겠죠.그러나 내가 자발적으로,아는 한도에서 한 것이기에 후회할 수도 섭섭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어찌 아쉬움이 없겠는가.8년 전으로 돌아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면 같은 일을 반복하겠는가 했더니 “똑같이 할 수는 없다.지금은 그런 일에 빠지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다.”며 솔직함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이 스파이로 비쳐지는 것에 질색했다.“누가 나를 스파이로 부르느냐.미국 정부가 그렇게 유추할 뿐이지 기밀을 누설한 범법자일 뿐이다.미국 사람들도 나를 스파이로 보지 않는다.”다만 법을 어긴 점은 분명하다고 시인했다. 백 대령에게 건넨 정보가 지금도 기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해군정보국 규정을 어겼고 그에 맞는 형량을 달게 받았다고 했다.항소할 생각도 했지만 미국인 배심원들이 자기 말을 들으려 했겠느냐고 했다. 자신의 구명운동에 소홀했던 한국 정부를 탓하지도 않았다.이미 그런 문제는 달관한 듯했다.당시에는 조국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백 대령이 아는 것 있으면 전해달라고 해서 그냥 줬다.동포가 한 말을 듣고 공감했을 뿐이다.미국은 배신감을 느꼈겠지만 그에게 미국은 조국이 아닌 일종의 ‘입양국’이었다. ●스파이라니 너무 억울 그에게는 모든 게 새롭고 서툴다.한양대와 미 퍼듀대학원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지만 인터넷에 익숙하지가 않다.8년 전에는 인터넷이 막 시작단계일 뿐더러 직무상 외부와 통신하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주로 정보국 내부에서만 컴퓨터를 사용했다.휴대전화 사용도 일일이 부인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얻은 것도 많죠.바깥에서는 몰랐지만 그런 세상(교도소)이 있는지도 배웠다.모든 수감자가 시간당 16센트에서 49센트의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항소를 준비하느라 법률도 알게 됐다.”그는 교도소측이 컴퓨터 사용을 금지시켰으나 치과의사 보조공에다 비영어권 수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생활 등 다양한 경험을 접했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동포의 사랑,특히 한국에 사는 동포들의 끈끈한 사랑을 받은 점이라고 강조했다.“편지 왕래는 나의 상상을 넘어섰고 가장 큰 힘이 됐다.”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정신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그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후원회가 매달 보내는 자금에 의존해 생활하지만 조국이나 동포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생기면 적극 나설 생각이다.그 출발점은 용서와 이해다.교도소에서 집으로 온 첫날 백 대령이 전화했을 때 서로 우느라고 말도 못했지만 “지나간 과거는 다 잊어버리자.”고 했다.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김씨는 말했다. ●한국 공무원 바깥에 있으면 마음자세 달라질 것 1974년 시민권을 얻고 미국민이 됐는데 왜 한국을 도울 필요를 느꼈느냐고 하자 “조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그는 “나를 낳아주고 같은 문화로 엮어 간직해 줄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미국이 제2의 조국은 아닌가.그는 나를 입양한 나라일 뿐 문화와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른데 어찌 조국과 비교하겠냐고 되물었다. 한국의 젊은 공무원들이 나라를 생각하며 일하겠냐고 하자 “한번쯤 외국에서 일하면 마음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한국에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안들지 밖으로 나오면 조국 생각이 간절해지게 마련이다.”고 했다. 1996년 북한의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 미국에서 한국을 걱정하지 않은 교포가 없다고 했다.당시 백 대령의 요청도 있고 해서 해군 정보국에 들어오는 한반도 주변의 시간대별 자료를 분석해 줬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 모친상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가 빗발쳤다.귀국 요청이 거절됐기에 어머님한테 전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눈물을 쏟았다.“이틀 전만 해도 전화해서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못 가뵈니 애석하고 안타깝다.아버님(지난 2월 작고)이 어머님을 사랑했던 것 같다.하늘나라에서 혼자 살기 어려우니까 어머님을 부르러 온 것 같다.” 김씨는 3년간 보호관찰을 받지만 7월28일부터는 자유롭게 시내를 다닐 수 있다.기회가 되면 한국에 들를 계획이지만 미국을 떠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조국이래도 솔직히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다만 봉사할 기회가 있다면 정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을 위해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 해군 정보국에서 19년간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다 1996년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이듬해 미 알렉산드리아 연방법원에서 국가기밀누설죄가 인정돼 징역 9년형에 3년 보호관찰을 선고받고 복역 중 모범수로 15% 감형받았다.7월27일 가석방을 앞두고 지난 1일 가택연금 상태로 버지니아 자택에서 머물고 있다.여수 출신으로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김상영씨의 4남1녀 중 장남이며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의 큰형이다. mip@seoul.co.kr ●약력 ▲1940.1.21 전남 여수 출생 ▲1958 경기고 졸업(54회) ▲1965 한양대 산업공학과 졸업 ▲1966 도미,미 퍼듀 대학원 입학(산업공학) ▲1967 장명희씨와 미국 워싱턴서 결혼 ▲1968 퍼듀 대학원 졸업 ▲1970∼1974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 ▲1974 미국 시민권 획득 ▲1978 미 해군정보국(ONI)에 취직,19년간 컴퓨터 전문가로 근무,워싱턴 한인교회 장로 취임 ▲1996.9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구속 ■ 로버트 김 사건 일지 ▲1997.3.31 재판 시작 ▲1997.7.11 연방법원,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 선고 ▲1999.10.4 연방대법원,김씨 상고 기각,형 확정 ▲2002.2.1 여·야의원 46명 로버트 김 석방촉구 결의안 국회 제출 ▲2004.2.13 부친 별세 ▲2004.6.1 ‘가택수감’ 형태로 전환 ▲2004.6.4 모친 별세 ▲2004.7.27 가석방된 뒤 3년간 보호관찰˝
  • 로버트 김 “아… 어머니”

    “결국 부모님 두 분 모두 임종도 못 지켜본 불효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난 1일 버지니아주 교도소에서 출소해 가택수감 중인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은 4일 오전(현지시간)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김씨는 “오는 7월 가택수감이 풀리고 가석방 상태가 되면 어머님이 미국으로 오시겠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3일 저녁 한국의 동생으로부터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보호관찰관에게 전화해 메시지를 남긴 데 이어 어머님의 사망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한국 방문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김씨는 “5일장이라 오는 8일까지 한국에 가야 하는데 미 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해줄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에서 후원회가 미국 대사관에 방한을 요청할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도 이곳에서 한국에 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김은 지난 96년 미 해군정보국 컴퓨터 분석관으로 일할 당시 우리나라에 국가기밀을 넘겨준 혐의로 미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가 모범수로 인정받아 지난 1일 가택수감으로 형이 낮춰졌다.그는 오는 7월27일 공식 가석방될 예정이다. 로버트 김의 모친 황태남(83)씨는 지난 3일 오후 9시쯤 로버트 김과 안부전화를 나눈 뒤 2시간 뒤인 오후 11시쯤 수원 자택 근처 찜질방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4일 오후 4시20분쯤 숨을 거뒀다.유방암 등을 앓았던 황씨는 최근까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에덴요양병원에서 지내며 로버트 김의 가택수감 소식에 몹시 기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유족으로는 장남 로버트 김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 등 4남 1녀가 있다.김 의원은 “형님의 가택수감 이후 모친께서 어제 처음으로 형님과 통화했었다.”며 “형님에게 ‘큰아들이 나와서 기쁘다.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더 기뻐하셨을 텐데.’라고 말하며 많이 우셨다.”고 전했다.로버트 김은 지난 2월 사망한 부친 김상영씨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후원회측은 5일 주한 미대사관에 로버트 김의 일시입국을 허가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할 방침이다.황씨의 장례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치러지며,발인은 8일 오전 7시.장지는 익산 원불교 영모묘원.(02)3010-2235.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가택수감 로버트 김 “당장 한국 가고싶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기밀을 한국측에 넘겨준 일로 9년형을 선고받고 7년여 복역해온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씨가 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 자택으로 귀가했다. 김씨는 오는 7월27일 공식 가석방되기에 앞서 모범수로서 가택수감(home confinement) 생활을 한 뒤 3년 동안 더 보호관찰 대상이 된다.김씨는 “해방된 기분이나 완전히 나온 게 아니어서 마음에 부담은 조금 남아 있다.”고 말하고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격려해준 한국 국민의 사랑에 보답하려 한다.”고 말했다.김씨는 “지난 2월 작고했으나 임종도 못한 부친의 묘소를 찾기 위해 오늘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지만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가택수감 기간엔 자택에서 부인 장명희씨와 함께 생활하면서 외부인의 방문을 받고 서신 연락,전화통화를 할 수 있지만 집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보호관찰 기간에도 자택이 있는 버지니아주 경계선을 벗어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mip@seoul.co.kr˝
  • ‘부처님 오신 날’ 352명 특별사면

    정부는 석가탄신일을 맞아 26일자로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대북송금사건’ 관련자 6명을 포함한 352명을 특별사면·복권한다고 25일 밝혔다.또 심근경색 등 중병을 앓고 있는 오세응(71) 전 국회부의장 등 70세 이상 고령수형자와 모범수형자 등 1137명도 가석방된다. 이날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특별사면·복권된 대북송금사건 관련자는 임씨를 비롯,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 6명이다.항소심에 계류중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제외됐다.이로써 참여정부 초기 떠들썩했던 대북송금사건의 모든 법적인 절차가 사실상 일단락된 셈이다. 이부영 전 전교조위원장 등 전교조 관계자 3명,강성철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위 조직국장 등 노동사범 5명과 정순호 설악동지회 회장 등 북파공작대 관련자 55명도 사면·복권됐다. 참여정부 출범 전 경징계를 받은 공무원 283명도 대상에 포함됐다.정부는 또 인도적 차원에서 70세 이상의 고령자,병질환자,장애인 등과 각종 자격취득자 및 대회입상자 등 모범수형자 1137명을 가석방한다. 최재경 법무부 검찰2과장은 “남북 교류·협력이라는 상황적 특수성 등을 고려,대북송금사건 관련자들을 사면·복권해 국가발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
  • 큰손 장영자 “구형량은 多多益善 아닌데…”

    1982년 수천억원대 사기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 손’ 장영자(60) 피고인이 21일 세 번째 사기사건으로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국공채 투자 등의 명목으로 42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2000년 4월 함께 기소된 남편 이철희(79)씨는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이현승)심리로 열린 이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현재 서부지법에서 200억원대 사기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 피고인은 최후진술을 통해 “집사람은 80년대에 정치적 사건으로 구속된 뒤 2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면서 “여자로서 겪기 힘든 고통을 당했으니 더 억울한 일이 없도록 살펴달라.”고 호소했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정장 치마를 입은 장 피고인은 먼저 검사를 바라보며 “구형량이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구형량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닌데 (형량을) 많이 주셔서 감사하다고는 못하겠다.”고 비꼬았다.이어 돋보기를 꺼내 자신이 직접 써온 최후진술서를 10여분간 읽어 내려갔다.그는 재판과정에서 증인을 신문하는 등 직접 변론하기도 했다. 장 피고인은 “갑작스러운 금융실명제 실시로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이익금을 주지 못했다.그러나 돈을 의도적으로 가로챈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또 “80년대를 감옥에서 보내면서 시대에 낙오된 우리 부부는 피해자”라면서 “가해자는 시대의 변화”라고 눈물을 흘렸다. 올해 환갑인 장 피고인은 82년부터 구속과 석방을 반복해왔다.83년 희대의 어음사기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92년 3월 가석방됐다.94년 1월,140억원의 차용사기로 또다시 구속,4년형을 받았다.98년 8·15 특사로 풀려났으나 2000년 5월 200억원대의 구권(舊券)화폐 사기사건으로 다시 구치소에 갇혔다.구권화폐 사건의 재판은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중이다.선고공판은 다음달 18일 오전 10시다. 정은주기자 ejung@˝
  • [일요영화]

    ●아버지의 그늘(KBS1 오후 11시25분) 독일 안드레아스 클라이너트 감독의 2002년작.평생을 버스 운전사로 성실하게 살아온 리하르트는 어느날 기억력 장애로 해고된다.노인성 치매에 걸린 것.평소 리하르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 요흔은 아내와 어머니의 설득으로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온다.요흔은 직장까지 그만둔 채 아버지를 돌보지만,아버지의 증상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된다.행복하던 요흔 가족의 생활은 점차 무너진다.마침내 아내와 요흔은 리하르트를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양로원에 보내는데…. ●콘에어(SBS 오후 11시45분) ‘툼 레이더’를 만든 사이먼 웨스트 감독의 1997년 데뷔작.주연을 맡은 니컬러스 케이지가 리얼한 연기를 위해 최고의 흉악범 수감지인 폴섬 형무소를 방문하는 위험까지 무릅써 화제가 됐다.존 쿠색,존 말코비치,스티브 부세미 등 조연의 개성있는 연기가 돋보인다.라스베이거스 시내에 불시착하는 ‘콘에어’가 건물과 부딪치며 화염에 휩싸이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제작자인 제리 브룩 하이머가 만든 ‘더 록’에 비해 작위적이고 스토리 전개가 다소 엉성한 것이 흠이지만,오락 영화로는 A급 수준이다. 막 제대한 특전부대원 캐머런 포(니컬러스 케이지)는 아내를 희롱하는 불량배들과 싸우다 살인을 저지른다.이후 포는 교도소에서 복역한 지 8년을 기다린 끝에 모범수로 가석방된다.그런데 포와 흉악범을 태운 죄수들이 동승한 수송기 ‘콘에어’가 테러조직에 의해 납치되는 사고가 발생한다.정의감있는 포는 중간기착지에서 몇번의 내릴 기회가 있었지만,당뇨를 앓고 있는 동료와 여간수를 살리기 위해 흉악범들과 한판 승부를 겨룬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 [교정대상 수상자] 대상 윤달호 청주여자교도소 작업과 교위

    “마음이 어두운 이들에게 작으나마 빛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제22회 교정대상에서 영예의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청주여자교도소 작업과에 근무하는 윤달호(尹達鎬·50) 교위의 솔직한 소감이다.윤 교위는 직원들과 재소자들 사이에서 토종 ‘진돗개’로 불린다.자상한 인상과 달리 항상 일거리를 찾아 스스로 처리하는 성실성에다 한번 계획한 일은 반드시 이뤄내는 뚝심 때문이다. 지난 81년 2월 교도관으로 임용돼 23년 2개월째를 맞는 그는 수형자에 대해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이자 이웃이며 학생들”이라고 말한다.수형자들에게 죄를 연결시키면 마음이나 인격적으로 대하기 어려운 까닭에서다. 실제 충북 보은 출신으로 지금은 없어진 청주보안감호소와 청주여자교도소에서만 ‘반(半)재소자’로 생활해온 탓에 재소자들에게는 선생님이자 대화상대자이다. 98년 만난 김모(22·여)씨와는 사제지간이다.당시 기계자수 교육을 맡았던 윤 교위는 10대에 살인을 저질러 수감 생활중인 김씨의 소질을 알게 됐다.전문 강사를 초청하면서까지 지도한 결과 기능대회에서 입상,99년 가석방되자 친분이 있던 한 기능대의 교수에게 추천해 취업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줬다.“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생활해 가는 모습이 친딸처럼 대견스럽습니다.얼마전 자신의 보물 1호인 기계 재봉틀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지요.이런 게 제일의 보람입니다.” 윤 교위의 이웃 사랑은 각별하다.출산일이 다가온 수형자는 형집행 정지 처분을 받는데 보호자가 인수를 거부하면 오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된다.94년 이후 청주여자교도소는 미혼모 보호시설인 자모원에서 이같은 처지에 놓인 수형자들의 출산 및 산후조리를 맡아 주고 있다.자모원의 후원인인 윤 교위가 당시 원장을 설득해 이루어낸 ‘성과’이다.2002년 11월에는 벌금을 못내 어린 아이를 안고 교도소에 들어온 김모씨를 대신해 벌금을 대납하고 아이 옷을 사다 입혀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윤 교위는 술·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대신 나름대로 정한 그만큼의 용돈을 모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고 있다.나아가 어려운 이웃이나 수형자 소식을 들으면 모금도 하고 지인들을 통해 강제 징수(?)도 서슴지 않는다.“몇 만원,헌 모포,중고품들도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실제 마음이 따뜻한 주변 이웃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 누가 뭐라해도 윤 교위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부인 최옥희(49)씨이다.피아노학원을 운영하면서 대학생 아들과 고 3인 딸을 잘 키워냈고 직장일에도 적극 나서줘 큰 힘이 됐다고 자랑하면서도 쑥스러워했다. 청주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美­저항군 교전 수십명 사상 이라크 日人 인질2명 추가석방

    |도쿄 이춘규특파원 바그다드·나자프 외신|이라크 주둔 미군과 강경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간의 휴전 중재협상 결렬로 17일 미군의 나자프 공격이 임박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이라크와 시리아의 접경 도시 후사이바에서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미 해병 5명이 죽고 9명이 부상했다. 사드르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카이스 알 카잘리는 이날 휴전 중재협상 실패 직후 나자프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상 중재자들로부터 미군이 사태 해결을 가로막고 있으며 사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협상 결렬로 미군의 나자프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예상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연합군은 나자프와 인근 쿠파를 잇는 도로를 차단했다. 미군과 수니파 지도자들의 직접 협상이 진행되면서 팔루자가 오랜만에 조용한 하루를 보낸 반면 시리아 접경 도시 후사이바 인근에서는 미군과 저항세력 간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고 미국의 세인트루이스포스트디스패치 인터넷판이 17일 보도했다. 신문은 팔루자와 라마디에서 온 300여명의 저항세력이 이날 새벽 미 해병을 박격포 등을 동원해 공격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피랍됐던 일본인 프리랜서 야스다 준페이(30)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와타나베 노부다카(36) 등 2명이 17일 석방됐다.이로써 이라크에서 납치됐던 일본인 5명은 모두 풀려났다. 일본 정부는 미국 및 연합군 임시행정처(CPA) 등과 긴밀히 협력해 범행단체의 정체규명과 사건경위 등에 관한 조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인질 5명이 모두 무사히 석방됨에 따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도통신이 지난 16∼17일 전국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납치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평가한다.’는 응답자가 68.4%로 ‘평가하지 않는다.’(22.1%)를 압도한 것으로 18일 보도됐다.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인질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9∼10일의 조사에 비해 7.2%포인트 오른 55.6%에 달했다. taein@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퇴계선생은 로맨스나 스캔들이 없었나요?” “왜요,단양의 기생 두향(杜香)이 하고 연애한 것은 유명하잖아요.” “낮퇴계,밤퇴계가 달랐다면서요?” “그런 속전이 있지.” “자네 퇴계선생의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걸 들어봤나?” “아뇨.”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고 싶으면 매화에 관한 시를 읽어봐.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하셨고 내내 아무 말 없다가 저녁에 일으켜 앉히니 앉은 채로 서거하셨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저자와 한 퇴계연구가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이다. 혹자들은 100여년전에 ‘서유견문’의 유길준(兪吉濬)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견문’을 쓴 유홍준(兪弘濬·55·명지대 미술사학)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공교롭게도 둘은 이름의 ‘돌림자’도 같은 기계(杞溪)유씨 ‘충목공파’의 문장가 집안 출신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데가 없다.북한까지 다녀왔다.발품으로 일궈낸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권이 이를 입증한다.1,2권만 합쳐 250만부나 팔렸다.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는 생전에 그를 가리켜 ‘문화재급 역마살’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국토 박물관’으로 불려 그는 지난 10년동안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이하 답사기)를 비롯해 ‘완당평전’‘화인열전’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특유의 감각적 글솜씨로 ‘해방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살아 있는 국토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다닐 정도로 평판이 높다. 시인 박노해씨는 옥중에서 ‘답사기’를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제 눈을 맑게 열어준 운명같은 마주침의 책,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내 마음속 가장 은밀한 자리에 꽂아둔 우리 시대 고전같은 책입니다.…유 선생의 ‘답사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속에 갇혀 있던 나 아닌 것들이 벌떼처럼 살아나서 나를 깨뜨립니다.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자식이구나,조상님들이 내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답사기’를 읽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했다.“읽고 깨우친 바 기쁨이 하도 커서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다.기막힌 비경이나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풍기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심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말 명지대 행정관 4층 복도끝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노크했다.한창 집필중인 ‘답사기’ 4,5권의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연구실 문을 열자 ‘고색 창연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왔다. 산골 오지의 어느 노인이 밤새 새끼꼬아 촘촘히 기워만들었음직한 멍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그위에는 낡은 궤짝 하나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또 양쪽 벽에 쭉 늘어진 책꽂이에는 ‘답사의 노정’을 말해주듯 때묻은 고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만권은 훨씬 넘지요.이쪽은 한국미술사,저쪽은 중국미술사,저기 저쪽에는 서양미술사 책자들이지요.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중독처럼 사다놓은 결과물입니다.”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97년 이전에 3년정도 끊었으나 북한을 다녀오면서 다시 피우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네모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냥은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에서 만든것입니다.그런데 자동이래요.이렇게 열었다 놓으면 뚜껑이 저절로 닫히니까.나원 참….”답사도중에 얻어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일,책상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600자원고지와 만년필이 대신해 있었다.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 이쪽저쪽에서 글을 퍼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쓰다가 잘못되면 원고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써야 글이 살아 숨쉰다.”며 특유의 ‘원고지철학’을 늘어놓았다.컴퓨터는 인문적인 것을 쏙 빼버린 기계적인 빠름일 뿐,고뇌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다. 문득 독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취미는 여행이다.여행이라는 매체를 넣고 글을 썼다.마침 독자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학자인지 문필가인지 나도 몰라” “가끔 내 자신이 학자인지,문필가인지,평론가인지를 물어보곤 합니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문사(文士)가 없어요.고행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사말입니다.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문사일 수 없으며 지조있는 선비정신이 내재돼야 합니다.‘답사기’를 3권까지 썼지만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절반쯤 진행중인 4,5권 집필도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제주도를 답사했더니 4·3사건을 안 다룰 수가 없고,경상도를 갔더니 거창학살사건을 다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이런 과정을 거쳐 ‘답사기’의 완결편 2권을 올 상반기중 마무리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일생의 또다른 역작,즉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다짐이다.그것은 온국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일이다.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와 곧바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술사는 문화사의 꽃입니다.학식과 학덕을 쌓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관을 잘 반영했을 때 더욱 향기나는 꽃이 되겠지요.또 복잡한 현상을 단박에 단도질할 수 있는 깊이와 연구업적이 뒤따라야 합니다.영어로 쓰여진 한국미술사는 물론 번역할 수 있는 마땅한 텍스트도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 강해 이곳저곳 강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은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반면에 열등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결국 ‘짬뽕’식이 되다보니 단군 이래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적이 한번도 없이 중심부가 아닌,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적인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동아시아문화의 ‘주주’로서 다른 나라에 문화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필연이 도래했다고 역설했다.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이란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주도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네들만 살려고 해서 실패했습니다.더이상 도덕적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기는 틀렸습니다.중국사람들은 우리보다 5,6년 뒤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한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십시오.대중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미국의 문화가 오기전에 마를린 먼로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왔지 않습니까.이제는 세계에서 1등이 나와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도 동아시아물류중심국가를 외쳤는데 이는 반쪽에 불과합니다.물류와 문화가 합쳐진 그런 정책이어야 하지요.” 나이 40이 넘어가면 과거의 이력이 얼굴에 하나둘 새겨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파란과 곡절도 많았다.93년 이전까지는 정말 별볼 일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14년반만의 대학졸업,교수직 박탈,8년동안의 백수상태,운동권 이론가라는 제도권 교수의 따돌림 등만 떠올려도 그렇단다. ●고3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미대 진학 청운초·중학을 나온 그는 경복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중동고로 방향을 튼 그는 1967년 고3때 국문학과를 택하려고 했으나 담임선생의 권유로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그러나 ‘예술학개론’‘예술비평’ 등의 딱딱한 강의가 많아 연극회에 가입해 유치진의 ‘토막’,천승세의 ‘만선’ 등 민족극 공연에 적극 참가했다.공부는 뒷전이었다.연출은 주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대학시절 그의 서울 종로구 창성동 집에는 소위 ‘의식있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보안 경찰관에게 데모꾼 소굴로 인식됐다.결국 69년 4월 ‘3선개헌 풍자극’의 대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해 7월 무기정학을 받았다.시련을 호되게 겪은 그는 서둘러 군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한국미술사 연구에 필생을 걸고 뜻을 세우지만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상수배중이던 이철(전 국회의원)에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75년 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방황하던 그는 7개월 뒤 군복무중 미술관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원래는 장준하 선생이 주례를 맡기로 했으나 의문의 실족사로 리영희 교수로 바뀌었다.결혼 후에는 금성출판사,공간사 등에 다녔다. 80년 10월,입학한 지 14년 반만에 겨우 졸업장을 받고 이듬해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에 들어갔다.대학원을 마친 그는 건국대 교수로 채용됐으나 미복권 상태임이 밝혀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이때 그는 ‘미술속에서 현실을 찾자’는 구상 아래 그 유명한 슬라이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어 떠돌이 생활로 대중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답사기’라는 역마살도 이때 시작됐다. “인세요? 한 15억원정도? 세금 한 4억 냈을테고….집사람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줘요.장관이라도 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란가?(웃음)” ‘답사의 달인’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전문화의 진수는 경주,건축의 아름다움은 병산서원·부석사라고 했다.또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려면 제주가 으뜸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유홍준 교수는 ▲1967년 중동고 졸.80년 서울대 미학과 졸.83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98년 찰학박사(성균관대). ▲77년 공간 편집부.78년∼83년 중앙일보 계간 미술부 근무.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91년∼2002년 영남대 회화과 조교수.2002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2003년 문화재위원. ▲저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비평에서,정직한 관객,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3,나의 북한유산 답사기,완당평전,화인열전 등. ˝
  • 석재현씨 투옥 14개월만에 中서 귀국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한국 망명을 돕다 체포돼 옥살이를 하던 사진작가 석재현(35·경일대 강사)씨가 14개월 만에 석방돼 19일 귀국했다. 전날 중국으로 건너간 부인 강혜원(38·대구대 강사)씨와 함께 입국한 석씨는 “너무나 애절하게 기다린 시간이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아내를 포함한 주위의 격려와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큰 힘이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10분쯤 가석방 형식으로 강제 추방된 석씨는 “한국과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탈북자 문제에 굉장한 진통을 겪는다는 것을 재판 과정에서 느꼈다.”면서 “탈북자 문제와 그들을 돕다가 아직도 중국에 수감돼 있는 10여명의 활동가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석씨는 ‘통일이 되기 전 분단시절의 민족 기록을 남기겠다.’는 생각에 2002년부터 중국에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뉴욕타임스와 공동취재 작업을 진행했다.석씨는 “체포 직전까지 뉴욕타임스의 사진데스크와 접촉했다.”면서 “같은 동포인 탈북자 문제를 한국인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석씨는 지난해 1월 국제인권단체들이 주도한 탈북자들의 해상탈출 당시 배에 같이 있다 체포돼 중국법원에서 탈북브로커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외국인 전용 교도소인 웨이팡에서 복역했다.이후 국내외 단체들의 석방운동이 잇따랐으며,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국가 주석과 만났을 때 “인권적 차원에서 석씨를 석방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함께 활동하다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최영훈(41)씨도 석씨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석씨는 “최씨가 당뇨 등 지병으로 건강을 많이 상했다.”고 전했다.석씨도 수감 전 77㎏이던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석씨는 “웨이팡이 외국인 전용 교도소라지만 실제로는 10년 이상 중형을 받은 중국인이 많으며 15평 정도의 감방에 많을 때는 45명이 수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석씨는 오는 5월1∼15일 미국 워싱턴의 월드프레스센터에서 탈북자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영종도 안동환기자 sunstory@˝
  • 中, 석재현씨 19일 가석방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지난해 1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서 보트를 타고 한국으로 탈출하려던 탈북자들을 지원한 혐의로 공안당국에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은 프리랜서 사진기자 석재현(34·경일대 강사)씨가 19일 가석방된다. 정상기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은 18일 “중국 당국이 한·중 우호협력관계를 감안,석씨를 19일 가석방할 예정이라고 통보해 왔다.”면서 “19일 오후 3시 칭다오발 대한항공 편으로 귀국한다.”고 밝혔다. oilman@˝
  • [발언대] 보호관찰제도 제대로 정착하려면/김행석 광주보호관찰소 사무관

    얼마전 눈에 띄는 뉴스를 접하였다.부천에서 일어난 사건인데,청송보호감호소에서 가출소해 보호관찰을 받던 사람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못하자 술김에 화풀이로 어린이를 흉기로 위협하며 인질극을 벌이다 붙잡혔다는 것이다.이 뉴스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범죄자를 시설에 수용해 교정처우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죄지은 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하지만 모든 범죄자가 언제까지나 교도소와 같은 수용시설에 있는 것은 아니다.거의 모든 범죄자는 다시 사회에 나와 우리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보호관찰제도는 바로 이들을 지도·감독·원호해 사회에 원만히 적응하고 재범을 행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내 처우이다.범죄인 교정은 수용시설에서 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사회내 처우,즉 ‘사회에서의 범죄인 교화’라는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른다.그러나 보호관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사회내 처우는 수용시설내 처우와 성격이 다르다.일정한 준수사항을 지켜야 하긴 하지만 범죄자가 가정·직장·학교생활을 자유스럽게 해 사회와의 단절을 방지할 수 있다. 또 보호관찰이 사회안전망 구실을 함으로써 가석방·가출소를 확대하게 되어 수용시설 과밀화를 방지하고 범죄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무엇보다 이들의 재범 방지에 역점을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를 보호한다.따라서 보호관찰은 범죄자와 사회의 가교 노릇을 담당한다고 하겠다.이 때문에 보호관찰소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호관찰 대상자의 가정·직장 등을 현장방문해 이들의 사회적응을 돕는다. 사회내 처우에서는 지역사회와 시민의 관심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보호관찰제도의 특성상 대상자를 지도하는 데 다양한 지역사회의 자원이 필요하다.실제로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는 개인은 물론 각 사회단체·기관 등이 범죄자의 재사회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다만 범죄자를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차가운 인식은 여전하며,지역사회에서의 낙인은 이들이 재사회화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갱생 의지가 없는 범죄인은 지역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없지만 새로운 삶의 의욕으로 노력을 다하는 이들에겐 지역사회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한다.이들이 한 인격체로서 대우받고 일한 만큼 떳떳하게 보상받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그 지역사회에는 훨씬 밝은 빛이 비칠 것이라 확신하며,또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그 나머지 그늘은 보호관찰소의 몫이다. 김행석 광주보호관찰소 사무관˝
  •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사기 9단 ‘뻥순이’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사기 9단 ‘뻥순이’

    ‘그녀를 믿지 마세요’(제작 영화사 시선)는 ‘그녀를 믿고 싶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다.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사기꾼 영주(김하늘)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연신 웃음을 자아낸 뒤 끝날 무렵엔 잔잔한 감동마저 남기는 깔끔한 영화다. 거짓말에는 천부적 자질을 가진 사기범 영주.그녀는 특유의 연기력으로 가석방 심사위원을 감동시킨 뒤 풀려난다.하나뿐인 언니의 결혼식에 가려고 탄 열차에서 우연히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내려가는 희철(강동원)과 마주 앉는다.희철이 연인에게 줄 반지가 영주 자리 밑으로 굴러가고 잠에서 깬 영주가 반지를 줍는 희철을 치한으로 오해하면서 ‘우연과 오해의 도미노’가 열린다. 한바탕 소동 뒤 반지를 소매치기 당하는 것을 우연히 본 영주가 가석방 상태에서 도둑 누명을 쓸까 두려워 범인을 따라가 반지를 찾는 사이 가방을 두고온 기차가 떠난다.반지를 들고 희철의 동네를 찾아온 영주를 본 희철의 가족이 그녀를 약혼자로 오해하면서 시작한 이 ‘애정 빙자 사기극’은 거짓말이 꼬리를 물면서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진다. 하지만 지나친 우연성의 남발은 극적인 묘미를 반감시키는 법.‘그녀를’도 그런 에피소드를 너무 많이 삽입해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그러다 보니 희철이 연인을 만날 때까지 반지를 잃어버린 사실을 몰랐다는 것 등 전개과정에 약간의 비약도 보인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발상이나 엽기적 소재로 웃음을 쥐어 짜려는 작품에 견주면 이는 넘어갈 만하다.더구나 영화를 메우는 배우들의 연기가 작위스러운 인공미를 덜 거북스럽게 한다.‘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푼수기에 도전한 김하늘의 코미디 연기는 만개한 듯하다.능청·의뭉·감동 등 다양한 폭의 연기를 넘나들면서 부담없는 웃음과 상큼한 감동을 전해준다.영화출연은 처음인 모델 출신의 강동원도 순박·철부지·어리숙함 등이 뒤얽힌 시골 약사역을 너끈히 소화하면서 화답한다.여기에 송재호 임하룡 등의 개성있는 조연배우들이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고스트 맘마’‘찜’ 등에서 연출수업을 쌓은 신예 배형준감독은 욕심을 내지 않고 아기자기한 구성으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 것 같다.잘 맞는 옷을 걸친 작고 아름다운 소품을 보는 듯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이종수기자 vielee@
  • 국군포로 전용일씨 50년만에 귀환

    위조여권으로 한국행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됐던 탈북 국군포로 전용일(72)씨가 억류 41일 만인 24일 오후 중국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전씨는 공항에서 “50년 전 한국을 위해 복무하다가 잡혔었다.무산 광산에서 일했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지만 한시도 고향산천을 잊은 바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체포돼 전사·실종 처리된 뒤 50년4개월 만에 다시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된 전씨 사례는 무뎌져 가고 있던 우리 정부와 사회의 국군포로에 대한 처우 및 의식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북한을 탈출,귀환한 국군포로는 모두 34명.북한에 있는 생존 국군포로는 500여명으로 추산된다.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고 밝혔다. ●성의 보인 중국 전씨가 위조여권 소지 및 밀출입국 혐의로 중국 항저우 공항에서 체포된 것은 지난 11월13일.국방부 등 정부의 실책으로 전씨가 체포돼 북송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우리 정부는 뒤늦게 총력외교에 매달렸다.처음,북한과의 관계를 고려,“범법자일 뿐이다.”는 식으로 냉담하게 반응했던 중국은 시간이 가면서 상당히 성의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정부도 전방위 외교노력을 펼쳤다.노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국가는 마땅히 보호·지원할 책임 의무가 있다.”며 전 부처를 독려했다.중국도 전씨의 국내 실정법 위반 사실에도 불구,‘약식’사법처리했다.지난달 25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전씨의 신변 안전을 보장한다.”며 한국행을 시사했다.지난 16일에는 최종 송환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조용하게 일을 처리하자고 요구했고,전씨가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공개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탈북자를 도운 혐의로 중국에 수감중인 프리랜서 사진작가 석재현씨의 가석방을 요청하고 있다.정부 관계자는 “가석방 요건(형기의 반 이상 수감)이 되는 내년 1월 중순 이후 석씨도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전씨 송환 전말 전씨는 다른 탈북자 최응희(67)씨와 함께 한국에 왔다.전씨는 지난53년 7월 강원도 제암산 고지에서 국군 6사단 19연대 3대대 2중대 사병으로 근무 중 포로가 돼 실종·전사 처리됐다.북한탈출 직후엔 탈북 브로커에 의존,6월 우리 정부와 접촉했지만 국방부가 무시했다.함께 탈북한 아들이 북송된 뒤인 9월15일 주중 한국대사관과 접촉했지만 그것도 정부의 직무유기와 주먹구구식 처리로 무산됐다.기다리다 못한 전씨는 탈북자 최씨와 위조여권을 갖고 독자 입국하려다 검거됐고,이 사실이 우리 시민단체를 통해 전해지면서 외교당국이 나서게 됐다. 김수정기자 crystal@ ■동생 전수일씨 기쁨의 눈물 “가슴이 마구 떨려 말을 못하겠어요.꿈에 그리던 형님을 50년 만에 만난다니….” 24일 오후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72)씨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 수일(사진·64·경북 영천시 화산면 유성리)씨는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수일씨는 “방금 전 오전 10씨쯤 당국으로부터 형님이 돌아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이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대구에 사는 누님(영록·77),동생(분희·58)과 함께 단숨에 서울로 달려가 형님을 뵙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당국이 26일쯤 형님과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한시라도 빨리 상봉했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형님의 귀국을 위해 애써 준 정부와 민간단체,언론 등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전씨는 “서울에서 형님을 상봉한 뒤 곧바로 신령면 선산의 부모님 산소를 찾아 인사를 드리겠다.”며 “당분간 우리 집에서 형님을 편히 모신 뒤 여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도록 돕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영천 김상화기자 shkim@ ■전용일씨 어떤보상 받나 24일 귀국한 국군포로 전용일(72)씨는 정부로부터 어떤 보상을 받게 될까. 당국의 조사가 끝나야 보상금이 확정되겠지만 지원 근거인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추산하면 정착지원금을 포함,최소 4억 2000만원은 받을 수 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병사의 경우 연금지급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군 입대일로부터 3년이 지날 경우 하사로 특례임용,하사 4호봉의 보수와 군인연금을 받게 된다. 물론특별한 공적이 있을 경우 특별 진급도 가능해 중사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지난 53년 7월 강원도 김화지구 전투에서 일병 신분으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그는 최소한 하사로 특진,하사 4호봉 기준의 봉급지원분 2억 2000여만원을 받게 된다. 퇴직연금 명목으로 일시금 9000여만원 또는 매월 60만원도 수령한다.또 20평형 규모의 아파트를 구매가격으로 환산한 주택지원금 1억 100만원을 지원받게 되는데 이는 향후 정착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밖에도 전씨가 제공하는 특별정보나 지참장비가 있을 경우 그 가치에 따라 특별지원금조로 최대 2억 500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전씨가 군 복무를 끝낸다는 의미의 면역(免役)행사와 서훈추서도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공개 행사가 전씨의 재북 가족에 대한 신변위협 요인이 될 수 있어 전씨의 소속부대였던 6사단에서 간소하게 치를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착 지원금과 면역식 등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포로가 된 군인에 대해 여생을 편안하게 마칠 수 있도록 국가가책임을 진다는 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사회플러스/성탄절 모범수 1387명 가석방

    법무부는 성탄절을 맞아 모범수형자 1387명을 24일 오전 10시 가석방한다고 밝혔다.이번 가석방 대상에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18년2개월을 복역한 강모(46)씨 등 10년 이상 장기수형자 76명과 집시법 위반죄로 수용된 북파공작원 출신 설악동지회 회장 정모씨가 포함돼 있다.산업기사 등 각종 기능자격 취득자 225명,전국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29명,학사 및 검정고시 합격자 78명도 들어있다.
  • 20여년간 여성48명 연쇄살해/美 ‘희대 살인마’ 충격

    |시애틀 연합|미국 워싱턴주(州)에서 지난 1980년대 초부터 발생했던 이른바 ‘그린 리버(Green River)’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인 게리 리언 리지웨이(54)가 5일 여성 48명을 살해했음을 인정했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한때 트럭 도장공으로 일했던 리지웨이는 이날 시애틀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을 면하는 조건으로 48건의 살인사건을 자신이 저질렀음을 인정했다.그는 내년으로 예상되는 선고공판에서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리지웨이는 재판에서 “나는 주의 (희생자)명단에 있는 48명을 살해했다.”면서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몰랐고 너무 많은 여성을 살해해서 그들을 정리하느라 어려운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역사상 48명까지 살해한 혐의를 인정한 것은 리지웨이가 유일하다.그는 “잡히지 않고 원하는 만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희생자로)주로 매춘부들을 노렸다.”고 말했다. 그린리버 연쇄살인사건은 지난 1982년 시작됐으며 마지막 희생자가 84년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리지웨이는 90년과 98년에도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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