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가석방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저임금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달러 유출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런던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낙뢰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71
  • [사설] 아동 성범죄자 장기격리 당연하다

    정부가 13세 미만의 어린이를 성폭행, 살해한 범인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게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오는 9월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또 살해범이 아닐지라도 아동 성폭행범에게는 집행유예로 조기 석방되는 일이 없도록 법정 형량을 7년이상으로 높이고, 가석방 또한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이같은 법 개정안은 아동 성폭행범을 영구히 또는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조치로,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 이번 혜진·예슬양 사건을 포함해 2006년의 서울 용산 허모양과 지난해의 제주 양모양 피살사건은 모두 성범죄 전과자에 의해 저질러졌다. 어제 구속된 일산 어린이납치 미수사건의 범인 역시 아동 성폭행 혐의로 10년동안 복역한 뒤 출소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자이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소아기호증은 정신질환의 일종이고, 따라서 재범률이 높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인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13세 미만인 성폭력 피해자는 2003년 642명에서 지난해 1081명으로 68% 증가했다. 반면 아동 성범죄자 구속률은 2003년 61.4%에서 해마다 낮아져 지난해에는 36.7%에 그쳤다. 어린 희생자는 늘어나는데 짐승같은 범죄자들은 더욱 많이 풀려나 활개를 치는 꼴이다. 혜진·예슬이와 그 부모들의 비극이 더이상 우리사회에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아동 성범죄자들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이들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임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아동 성폭력 살해범 사형·무기징역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혜진·예슬법’(가칭) 제정이 추진된다.13세 미만의 아동 성폭력범 등은 원칙적으로 가석방에서 제외된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1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아동 성폭력사범 엄단 및 재범방지 대책’을 보고했다.김 장관은 이날 “사회 일각에서 성폭력 사범 엄단 방안을 놓고 범죄자의 인권을 거론하지만 안양초등생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범죄자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는 현실인 만큼 형이 확정되고 재범우려가 농후한 동종 전과자에 대해선 강력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책은 아동 성폭력 사범들의 조기 출소로 인한 재범 방지를 위해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없도록 엄정 처벌하고 철저하게 격리시킨다는 것이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범을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있지만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한 경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법정형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오는 9월까지 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오는 10월부터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제도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재범 위험성이 있는 13세 미만의 아동 상대 성폭력범죄자 등에 대해 최장 5년간 전자발찌를 부착해 행적을 추적·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소아 성기호증 등 정신적 장애로 인한 범죄 예방을 위해서 아동 성폭력범죄자를 형 집행 후 일정기간 계속 수용·치료하면서 주기적으로 재범위험성을 심사해 석방여부를 결정하는 치료감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관련기사 8면
  • “박영선 의원이 김경준 도왔다”

    박영선 통합민주당 의원이 BBK 주가조작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을 통해 김씨를 도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박 의원과 김씨는 이같은 증언을 전면 부인했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윤경)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김씨의 LA연방구치소 수감동료였던 신모씨가 변호인쪽 증인으로 출석해 “김씨가 ‘한국에 송환되면 나는 불구속으로 호텔에서 수사를 받을 것이다. 누나 에리카 김이 박영선 의원과 국정원 등과 얘기를 해놨다.’고 자랑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나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국정원 직원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다. 이명박을 (대통령 선거에서)낙선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신씨는 주장했다. 신씨는 1998년 국내에서 강도상해를 저지른 뒤 미국으로 달아났다가 붙잡혀 2006년 10월부터 1년간 김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고, 김씨가 지난해 11월16일 송환되기 20일 전인 10월25일 먼저 국내에 송환됐다. 신씨는 또 당시 김씨가 “한국에 가서 김백준과 미국 검사 존 리가 나의 국내 송환을 방해했고, 내가 BBK가 이명박 후보 소유임을 입증하는 이면계약서를 갖고 있다고 폭로해 달라. 이명박 낙선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변호사도 선임해 주고, 가석방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교도소로 송환된 직후인 11월9일에는 이모 변호사가 교도소로 찾아와 “나는 대통합민주신당 사람이다. 무료로 변론도 해주고 2억원을 주겠으니 미국에 있을 때 김씨와 얘기했던 것을 말해주면 기자회견을 열어 외부에 알리겠다.”고 말했다고 신씨는 진술했다. 이 변호사가 3차례 찾아왔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의원쪽은 “에리카 김이나 김경준씨 등과 단 한 차례도 접촉한 적이 없다.”면서 “허위 증언한 신씨를 위증죄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도 “미국 구치소에서 개인변호사도 있고, 언론과도 자유롭게 인터뷰할 수 있는데 뭐하러 신씨에게 이면계약서 폭로를 부탁하겠느냐.”며 신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3월 독립운동가’ 장인환 선생

    ‘3월 독립운동가’ 장인환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및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0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외교관 D W 스티븐스를 처단한 장인환(1876∼1930)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평안남도 평양 태생인 선생은 1904년 미국 하와이로 노동이주자로 건너간 뒤 미국 본토로 옮겨 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선생은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있던 스티븐스가 일제의 지령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선전활동을 펴자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같은 달 23일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위해 부두에 도착한 스티븐스에게 전명운 의사가 권총을 발사했으나 불발하자 뒤이어 권총을 3발 발사,2발을 가슴 등에 명중시켜 절명케 했다. 미국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 선생은 법정에서 “스티븐스가 을사보호조약을 찬성해 죽이지 않으면 우리 동포가 멸망하게 되겠으므로 내가 신명을 내놓고 이 일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해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같은 해 12월 미 법정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그는 1919년 가석방된 데 이어 1924년 자유의 몸이 됐다.1927년 잠시 귀국했다가 같은 해 10월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 생활하던 중 병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이날 비무장지대(DMZ)에 침투한 무장간첩을 소탕하고 전사한 최병연(1948∼1971) 육군 상병을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정부는 최 상병의 전공을 기려 충무무공훈장과 함께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6일 유족과 육군·유관단체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 상병을 추모하는 현양행사를 갖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모범수 739명 3·1절 가석방

    법무부가 삼일절을 기념해 10년 이상 장기 수형자 38명과 고령자·환자·장애자 등 노약 수형자 34명을 포함해 모범 수형자 739명을 29일 특별 가석방한다.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10명, 기능자격 취득자 233명, 학력검정시험 합격자 28명 등도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수형생활 성적과 복역기간, 죄질, 재범 가능성, 출소 뒤 가족 보호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뮤지컬 후’ 리뷰

    ‘뮤지컬 후’ 리뷰

    이제 뮤지컬의 소재도 확실히 다양해졌다.‘뮤지컬후’(3월31일까지·대학로 문화공간 이다)는 연극적 성정이 강한 작품이다. 작품은 으레 웃음과 볼거리에 기대치가 놓인 뮤지컬의 영역에서 한발 더 용기를 냈다.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미스터리극에, 세 남자를 단출하게 무대에 세운다. 기억을 잃은 재우(최재웅)는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됐다가 가석방된다. 사랑하는 여동생 진희를 보기 위해 집에 가지만 자신을 치유했던 심리학자 장 박사(남문철)는 자신을 아버지라고 한다. 진희는 없고 남동생 준서(이훈진)가 인형을 안고 나타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셋은 실제로 실험자와 실험대상이라는 관계에 놓여 있다. 장 박사는 공포와 극도의 거부반응이 그의 기억을 없앤 것이라고 진단한다. 재우는 갈수록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재우는 왜 죽였을까, 혹은 정말 그가 죽였을까. 그의 유일한 기억, 여동생 진희는 어디간 것일까, 혹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일까. 극은 끊임없는 궁금증을 안고 미끄러진다. 극은 악∼하는 여자의 비명소리로 열린다. 무대는 핏빛 조명으로 번진다. 호흡은 피아노 선율이 조절한다. 배우 최재웅은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독백을 또렷한 발음과 섬세한 연기로 그린다. 인형을 분신처럼 끌어 안고 사는 준서는 “난 착해야 돼. 사랑받아야 돼.”라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극한에 몰리면 폭력성향을 드러내는 이율배반적인 캐릭터.‘맨오브라만차’의 산초로 재미를 줬던 이훈진은 일견 추리극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지만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순진한 외모에서 차가운 얼굴로 변하는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 낸다. ‘뮤지컬후’는 해리 장애(한 사람이 둘 이상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정신 질환)를 소재로 가져와 세 남자의 관계를 파헤친다. 그러나 탄력있게 조이고 극적으로 고조되어야 할 추리극 특유의 긴장이 뭉쳐지지 않는 건 아쉬운 점이다. 창작 뮤지컬에서 늘 거론되는 음악도 걸리는 부분.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주제곡을 중심으로 변주되는 16곡 중 형제의 이중창 외에는 두드러지는 넘버를 찾기 힘들다. 해답, 진실, 증거 등을 열거하는 관념적인 노랫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피아노가 긴장과 이완을 조절한다는 점, 미스터리 특유의 단순하고 음울한 성정, 세 남자의 알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쓰릴 미’와 비교하는 관객도 많다. 극의 마지막, 빛과 연기가 모여 드는 소실점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물의 뒷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02)762-0010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노란 리본/ 함혜리 논설위원

    가석방을 앞둔 한 남자가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며칠 뒤 버스를 타고 집 앞을 지날 텐데 아직 자신을 사랑한다면 노란 리본을 참나무에 매어달라고 했다. 리본이 없으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가겠다면서. 버스가 모퉁이를 돌자 누군가 소리쳤다.“노란 리본이에요!”그의 집앞 참나무 가지마다 수백개의 노란 리본이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실화인지, 픽션인지 알 수 없는 이 이야기는 1971년 뉴욕포스트의 컬럼니스트 피트 해밀이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했다. 이듬해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이 글을 다시 실었고,ABC-TV는 단막극을 만들기도 했다. 그룹 토니 올랜도 앤드 돈이 1973년 발표한 노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주오’가 히트하면서 노란 리본은 떠난 사람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상징이 됐다. 노란 리본 달기의 연원에 대해선 설이 많다. 존 포드 감독, 존 웨인 주연의 1949년작 서부영화 ‘노란 리본을 단 여인’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제목도 영국서 유래한 구전 가요에서 따왔다고 하니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노란 리본 달기가 사회적 현상이 된 계기는 지난 1979년 11월4일부터 무려 444일간 지속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이다. 당시 인질의 가족들이 집앞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맸고,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우리 주변에서도 노란 리본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지난해 여름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됐을 때 종교·사회·시민단체들이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을 벌였다. 안양YMCA도 동참해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아이들의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안양YMCA가 노란 리본을 다시 꺼내 달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날 안양에서 실종된 10살 혜진이와 8살 예슬이가 무사히 가족 품에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한해 평균 실종어린이가 3800여명에 이르고 그중 8%, 약 300명 정도가 장기 실종아동으로 남는다고 한다. 가슴아픈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란 리본이 사라지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포드 전 대통령 살인미수범 무기징역 30년 만에 석방

    ‘전 미국 대통령 암살 미수자인 죄수번호 04851180,3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다.’ CNN 등 외신들은 31일(현지시간) 1975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사라 제인 무어(77·여)가 샌프란시스코 더블린의 연방 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고 전했다. 회계원이자 이혼모로 네 아이의 엄마였던 무어는 이 해 9월22일 샌프란시스코의 성 프랜시스 호텔에서 연설을 끝마치고 나오던 포드 전 대통령을 향해 38-칼리버 권총 한 발을 쏜 직후 체포됐다. 당시 곁에 있던 베트남전 참전 상이용사 올리버 시플이 제지하는 바람에 총알은 대통령의 머리 위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무어는 급진주의에 심취해 포드 행정부가 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믿어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역사가 당시 재판장 심판할 것”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당시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재판장을 심판할 것입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가 12일 조작됐을 개연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린 ‘간첩조작 의혹사건’의 피해자인 김양기(57)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고문과 감옥살이, 그후 이어진 보안관찰로 인해 내가 겪었던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운수업을 하던 숙부의 초청으로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숙부 일을 도와준 뒤 국내로 돌아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1986년 갑작스레 보안사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당시 그는 설을 쇠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숙부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들렀다가 ‘재일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해 보고했다.’는 혐의로 보안사에 끌려갔다. 그는 “당시 중풍으로 몸이 불편했던 숙부도 연행돼 한달 동안이나 보안사 지하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영장도 없이 보안사에 43일간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온갖 가혹 행위를 이기지 못해 간첩 행위를 자백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이후 간첩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5년을 복역했고,1991년 5월 정부의 특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보안관찰은 1999년까지 계속됐다. 그는 “명예회복을 해야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이미 미치광이가 됐을 것”이라면서 “요즘도 고문 후유증에 따른 당뇨 등으로 약봉지를 달고 살고, 잠을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하소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8일 ‘교정의 날’ 739명 가석방

    살인으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30대 수형자 등 739명의 모범수가 28일 ‘교정의 날’을 맞아 가석방된다. 법무부는 62주년 교정의 날에 모범수를 가석방하고 교정공무원과 교정참여 외부인사 등 83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피랍 한달째…피말리는 기다림”

    “피랍 한달째…피말리는 기다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봉사단원 23명이 피랍된 지 16일로 한 달 가까이(29일째) 됐지만 추가 석방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가족들의 안타까움이 더해가고 있다. 이날 저녁 “인질 5명이 추가석방될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가족들은 “풀려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믿지 못한다.”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피랍 26일 만인 지난 13일 풀려난 김경자(37)씨와 김지나(32)씨가 16일 오전 11시55분쯤 아시아나항공 OZ768편으로 귀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족들도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당초 이들은 16일 귀국 예정이었지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연결 항공편이 원활하지 못해 하루 미뤄졌다. 공항에서 김경자씨와 김지나씨가 기자회견을 열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납치된 자식 위해 할 수 있는 일 없어” 16일 오후 1시 경기 성남시 분당타운 피랍가족모임 사무실에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피랍자 가족들이 하나 둘씩 모인 뒤 곧바로 건물 앞에 대기하고 있던 소형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집트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에 전달할 장미꽃 19송이를 손에 든 피랍자 김윤영(35)씨의 남편 류행식(36)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집트 대사관 방문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에 이어 여섯번째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UCC도 이날 네번째 시리즈가 공개됐다. ●희망은 보이지만… 늘어가는 고민들 지난 13일 김경자·김지나씨가 석방되면서 가족들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대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집안이나 직장 문제 등으로 고민은 더욱 많아졌다. 한 달 가까이 회사에도 나가지 못하고, 생계도 제대로 꾸리지 못해 수습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류행식씨는 “회사에 다닌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계속 못 나가게 돼서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가족 모임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이정훈씨도 며칠 전부터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고 차성민 대표도 사태 이후 이날 첫 출근했다. 이씨는 “회사에서 이해해 주기는 하지만, 무작정 안 나갈 수는 없지 않으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북 익산에서 중장비업에 종사하는 서명화(29)·경석(27)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는 부인 이현자(54)씨와 함께 사태 이후 딱 한번 고향에 다녀왔다. 서씨는 “자식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일이야 나중에 해도 되기는 한데, 걱정은 걱정”이라고 밝혔다. 일부 가족들은 언론과 주변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집을 비우고 친척집에서 지내고 있다. 가족들은 아프간에서 고생 끝에 돌아온 피랍자들이 받게 될 상처도 걱정이다. 한 가족은 “TV나 신문을 무조건 안 보여줄 수도 없고,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할 수도 없는데 그동안의 국내 여론을 알게 될까봐 걱정”이라면서 “사태가 마무리되면 공식적인 사과도 해야 할 것 같고, 감사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막막하다.”고 말했다. 성남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사설] 뇌물 먹은 단체장 중형선고 의미 크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강원도 고성군수가 1심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구형량 그대로 선고됐다. 이례적인 중형 선고다. 정치인들도 충격인 모양이다. 사법 당국이 정치인들에게도 엄격한 잣대와 도덕성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아울러 향후 수사나 재판에도 좋은 지침이 되길 기대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출직 공무원의 뇌물수수는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처리돼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치인 비위의 경우, 보다 엄정한 법집행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법원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동안 선거직 단체장이나 정치인은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등으로 기소돼도 솜방망이 처벌이 관행이었다. 재판진행이 늘어져 실형을 선고받아도, 형 집행의 의미를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새삼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 자체가, 정치인의 준법불감증에 관대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얼마 전 통계에 따르면 2005년 전체 형사사건 구속률은 87%에 이른 반면, 고위층·화이트칼라 범죄자 구속률은 34%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서도 보석·가석방 등으로 풀려나지 않고 온전히 죗값을 치른 사람은 19%밖에 안됐다. 지난해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은 대선 국면이고, 내년은 총선의 해다.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부패는 곧바로 국민과 지역 주민들의 불편과 피해로 연결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뒷거래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당국이 비리 감시에 더욱 신경쓰고 엄정한 법집행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이 이러한 분위기를 잡아가는 교훈과 더불어 법집행의 가이드라인이 되길 기대한다.
  •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1980년 8월21일, 석달윤(76)씨는 신군부가 장악한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47일간 고문을 당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고종 10촌 형님 박양민씨 탓이었다. 석씨가 간첩으로 남파된 박씨에게 전남 진도 해안 경비상황을 보고했다며 중정은 자백을 강요했다. 남파공작원 오모씨의 “박씨 간첩활동을 북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막연한 진술이 근거였다. 수사관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발로 배를 차고, 머리를 욕조에 담그고, 송곳으로 하반신 곳곳을 찌르고…. 잠은 안 재우면서 잠깨라고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고…. 당시 중정 조사실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석씨는 결국 “내가 형님의 간첩활동을 도운 게 맞다.”고 자백했고,1981년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47차 전원위원회에서 1980년 발생한 ‘석달윤 등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진실위 “반인권적 사건… 재심조치를” 진실화해위는 “장기간 불법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 및 재심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27년 만의 진실규명 결정이다. 석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떳떳하므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으로라도 자백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 땅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그런 고문을 받으면 김일성이라도 만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8년 복역… 지금도 보안관찰 대상 석씨는 무기수로 징역 18년을 살았다. 함께 누명이 벗겨진 박씨의 외조카 김정인씨는 이미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간첩’의 처자식은 생계가 끊겨 두 달 동안 고구마로 연명했고, 고향 진도에서 살지 못해 내쫓기듯 이사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석씨는 여전히 공안당국의 보안관찰 대상이고, 고문으로 굽은 허리는 지금도 하루 턱걸이 70개를 해야 펴진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석씨의 ‘법적’ 간첩혐의는 바뀐 게 없다. 석씨는 “당연히 재심 청구한다. 백번 천번이라도 청구해서 무죄를 인정받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서예솜씨로 석씨는 국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그는 안산에서 통일운동가와 서예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안락사’ 의사 케보키안 가석방

    ‘죽음의 의사’로 불려온 잭 케보키안 박사가 8년여만에 복역을 마치고 지난 1일(현지시간) 출감했다.130여명의 시한부 환자의 안락사를 도운 혐의로 미국 미시간주 순회지방법원에서 10∼2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나온 터였다. 케보키안 박사는 출감 후 3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늘 출감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일들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나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가석방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이상 안락사를 돕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가석방 조건에는 안락사와 자살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제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18년 복역하고도 또 성폭행

    강도와 성폭행을 저질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8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된 40대 남자가 또 수십차례 강도와 성폭행을 저질렀다 또다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천수 부장판사)는 1일 여성과 어린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돈을 빼앗아 성폭력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42)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지난해 20차례에 걸쳐 낮 시간대에 주로 혼자 있는 여자아이와 부녀자를 상대로 흉기를 이용한 강도 범행을 저지르면서 11차례나 성폭행을 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석탄일 648명 가석방

    법무부는 부처님 오신날(24일)을 맞아 모범 수형자 648명을 23일 가석방한다고 22일 밝혔다.이번 가석방에는 장기수형자 48명과 수형 생활이 어렵다고 판정을 받은 고령자·환자·장애인 등 74명이 포함됐다. 법무부는 또 각종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11명과 산업기사 등 기능자격 취득자 237명, 고졸 검정고시 등 학력 검정고시 합격자 41명, 외부통근작업자 51명도 가석방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오래된 정원

    [하재봉의 영화읽기]오래된 정원

    80년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모두 가슴 속에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면서도 두려움으로,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기적인 마음, 시대의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우리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숨져 간 그 사람들 앞에서 모두 죄인이었다. 80년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인 광주의 비극을 이야기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집단적 상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훗날 장선우 감독이 <꽃잎>으로 영화화 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 80년대 후일담 문학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황석영 원작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쓰라렸다.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가슴 벅찬 감동보다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에 소금을 뿌린 듯,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영혼이 쓰라렸다. 80년대를 비겁하게 살았던 회한이 온몸의 실핏줄까지 사무치게 말달려갔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십 몇 년 전 당시의 우리의 삶은 암울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과연 우리들 앞에 빛이 있기는 하는 것인지, 시계제로의 캄캄한 상황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지난 뒤 그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다.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 <오래된 정원>은 지나간 우리의 아픈 역사에 바치는 진혼가이다. 80년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자신의 지나온 삶과 무관하게 볼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 나의 삶들이 떠올랐다.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서 치열하게 싸우지는 못했지만 그 상처를 잊고 살지도 못했다. 광주라는 도시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던 시절,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던 것이 죄악이던 시절, 살아남은 자들이 느껴야만 했던 죄의식은 일종의 시대적 부채였다. <오래된 정원>은 그 부채의식을 멜로 장르 속으로 녹여서 표현한다. 영화는 머리가 희끗한 40대의 남자가 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상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6년 8개월 만에 풀려난 현우는 사회주의자였다. 자신이 감옥에 있는 그 긴 세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사회주의자 아들을 둔 어머니는 그러나 땅 투기를 해서 거대한 부를 획득했고, 풀려난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명품으로 외양을 바꿔 준다. 그리고 한 선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한윤희, 현우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 한윤희를 떠올리면서 영화는 현우가 감옥에서 있었던 16년 8개월보다 조금 더 이전인 1980년대 초로 플래시백 된다. 80년 5월, 진압군이 광주로 진입하기 직전, 전남도청에 마련된 시민군 지휘부에서 빠져나가 도피생할을 시작한 현우(지진희 분)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시골학교 미술교사인 한윤희(염정아 분)의 집에서 은거를 한다. 수배중인 사상범을 숨겨만 주어도 신상의 불이익은 물론 심각한 처벌을 받던 그 시절, 수배자의 연고지에는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인들의 소개로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집에서 은거를 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외딴 오지 갈뫼에서 두 사람만의 생활을 보내면서 그들은 뜨겁게 사랑한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야산 중턱에 있는 낡은 집. 그곳이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시대가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어도 사랑은 피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다. 현우는 동지들이 모두 붙잡힌 상황에서 자신만 안락하게 살고 있다는 죄의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한윤희 곁을 떠나 도시로 잠입한다. “숨겨줘 먹여줘 재워줘 몸줘. 그런데 왜 떠나니 이 바보야”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떠나는 현우를 보면서 윤희 역의 염정아가 던진 이 대사는 <오래된 정원>에서 가장 기억되는 대사다. 그러나 현우는 갈뫼를 떠나 도시로 들어오자마자 잠복근무하던 형사에 붙잡혀 감옥에 수감되고, 그 이후 한윤희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현우를 은닉한 죄로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건 연루자는 면회도 하지 못한다는 법에 의해, 다시는 현우를 만나지 못한다. 현우가 한윤희의 곁을 떠날 당시 윤희가 임신 상태였다는 것을 현우는 알지 못한다. 그는 17년이 지난 시간 동안 윤희를 만나지 못했고 풀려난 후 갈뫼에 다시 와서야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우가 풀려나기 얼마 전,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던 한윤희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갈뫼에 다시 온 현우는 회한에 사무쳐서 옛 생각을 하며 눈물 흘릴 뿐이다.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현우의 비극적 사랑에 우리 모두 공범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치열했던 시절,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저처럼 크고 많은 수많은 비극들이 만들어졌다.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후일담 영화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아픔이 개인에게 미치는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낸다. 임상수 감독은 10·26 당일의 이야기를 정치하게 묘사해 가면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그린 <그때 그 사람들>에 이어 그 바로 뒤 전개된 광주의 비극, 그리고 신군부가 지배하던 80년대 초의 암울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뜨거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교차되면서, 17년 뒤 감옥에서 풀려난 현우가, 한윤희와 함께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파편적으로 삽입된 편집은 대중적으로 불편한 양식이지만,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은 잦은 플래시백으로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차단하고 그들이 비판적 이성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를 원한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오래된 정원>이 단순한 멜로로 끝나지 않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원작과는 다르게 염정아의 너무나 세련된 도시적 이미지는, 사회주의자 청년을 숨겨주고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불길처럼 사랑하는 한윤희 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지진희도 너무나 인텔리적이다. 더 좋은 배우의 조합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캐스팅이 나쁜 것은 아니다. 두 배우 모두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각자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모자람 없이 전력투구하고 있다.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윤희의 생기와 도시적 이미지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겠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염정아가 창조한 또 다른 한윤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시대의 차갑고 무서운 공기가 더 느껴졌다면 역설적으로 그들의 절박한 사랑이 더 빛나지 않았을까? 현우의 체포 뒤 오랫동안 이어지는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이념적 사투와 위장취업 노동운동 등이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밀집도는 조금 떨어진다. 감독이 애정을 갖고 창조한 영작이라는 인물은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며 임상수 감독의 전작인 <바람난 가족>의 주영작과 이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도덕적 의지와 정열을 갖고 어두운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화면에 옮긴 감독의 노력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민운동 거듭나야”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민운동 거듭나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양심수, 구속 수감자, 복지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살아가는 이유인 사람이다. 달리 말해 권력과 독재와 불의와의 싸움에 평생을 건 사람이라고 하겠다. 시커먼 얼굴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말하는 박씨의 인생 밑바닥에도 6·10항쟁의 도도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87년 6월은 평생 노동현장을 지키고 싶었던 ‘촌놈’을 인권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박씨는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자마자 학생운동권이 됐고 강제징집을 당했으며 감옥을 갔다온 전형적인 투사였다. 그에게 87년 6월은 어떤 의미일까. 박씨는 86년 5월30일 해고 노동자 16명과 함께 한미은행 서울 영등포 지점을 점거농성한 죄로 2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다. 항소심 선고를 받고 지프차로 대전교도소에 이감될 때 4·13호헌조치를 듣게 됐다고 한다.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털어놨다.6·10항쟁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냈다. 안 그래도 감옥은 정치상황에 예민한 공간인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에는 더더욱 바깥의 정황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양심수의 희망까지 섞여 있던 때라 상황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박씨는 “박종철 사건 때문인지 교도관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메고 근무하기에 뭐가 있긴 있나 보다라고만 여겼다.”고 말했다. 좀 지나니 교도소 안으로 최루가스가 날아오는 걸 보고 박씨는 비로소 ‘4·19’때 보다 더 큰 시위가 있었다는 것을 체감했다.6·10항쟁에 굴복한 군부독재정권이 6·29선언을 내놓으며 백기를 든 덕에 박씨는 가석방됐다. 박씨는 6·10항쟁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시민운동가의 입장에서는 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영역이 확장됐다는 낙관적인 평가도 해봄직하다. 그러나 항쟁의 성과가 고스란히 자유주의 정권으로 넘겨지면서 시민운동의 밑바닥부터 다져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박씨는 “군사독재를 깼다는 승리감은 곧바로 대선분열로 이어져 노태우정권의 집권으로 드러났다.”며 몇달 사이에 승리와 좌절을 동시에 겪었던 경험을 들려줬다.88년 4월 치러진 총선결과도 여소야대였다. 박씨는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8년 6월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던 동생 고 박래전씨가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며 분신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박씨는 노동운동 대신 유가협을 택했다. 특히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에 몰두했다. 책임자 처벌과 배상 중심이던 의문사를 인권문제로 고민하던 시점이었다고 한다.93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국내 인권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국내 의문사를 알리는 성과도 이뤄냈다. 박씨는 “이 대회를 다녀온 뒤 인권운동이 반독재 민주화투쟁에만 매몰돼 독자적인 운동으로 존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박씨에게는 인권운동이 87년 6월정신이 남긴 민주화의 성과물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셈이다. ●6월정신 살려 ‘네트워크형´ 운동 필요 그는 6월 정신이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서도 대선을 앞두고 국본이 분열했던 불철저함과, 군사독재정권을 결국 막지 못한 점은 후회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항쟁의 기세를 몰아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과제를 뿌리뽑지 못했다는 반성이기도 하다. 그는 “집시법, 국보법, 노동악법이 여전히 살아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6월 정신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항변은 특히 정치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는 “6·10항쟁을 통해 제시했던 국민들의 꿈을 배신하고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단 채 개인적 출세만 다졌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6월 정신의 함의처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네트워크형’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한때 80년의 달력을 90년대로 바꿔 걸 수 있을지조차 의심했었다. 그때마다 89년 모교 ‘연세지’에 기고했던 “산 사람과의 약속은 바꿀 수 있지만 죽은 사람과의 약속은 바꿀 수 없다.”는 글을 보며 며 87년 6월과 열사들 앞에서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때만큼 벅차게 신뢰하며 그때만큼 승리의 기억을 가졌던 때가 없다는 말과 함께.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일요영화]

    ●진용(SBS 밤 1시5분) 중국 제5세대 감독 장이머우와 궁리가 주연을 하고 무술 영화감독인 칭시우퉁이 메가폰을 잡은 스펙터클 대작. 춘추전국의 천하를 통일하고 사냥을 즐기던 진시황은 뜻하지 않은 자객의 공격을 받는다. 이에 황릉 건설을 맡고 있던 장수 몽천방(장이머우)이 나타나 그를 구하고 진시황의 심복이 된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신하 서복에게 명하여 해동으로 불로장생 약을 구해오도록 한다. 몽천방은 서복과 함께 떠날 동녀 한동아(궁리)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동아는 서복과 함께 떠나지 않고 몽천방과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진시황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몽천방은 동아가 전해주는 불로장생 약을 먹은 후 진시황릉을 지키는 토용이 되고 동아는 내생을 기약하며 분신한다. 그로부터 약 3000년 후인 1930년 즈음, 출세를 꿈꾸는 3류 배우 주리리로 환생한 동아는 최고의 남자 배우인 백운비(위롱광)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실은 골동품을 노리는 조직의 두목인 백운비가 주리리를 염탐꾼으로 오해해 죽이려고 한다. 비행기를 탄 주리리는 우연히 몽천방이 있는 황릉 안으로 추락하여 몽천방을 오랜 잠에서 깨운다. 몽천방은 주리리를 알아보지만 주리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마리(MGM 오전 8시50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평범한 가정주부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마리는 테네시 출신의 평범한 주부다. 그러나 학대하는 남편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마리는 아이를 낳으면서 얻게된 병으로 인해 오랜 고통을 참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마리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남편을 떠나 대학으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한다. 졸업후 테네시주 공무원이 된 마리는 노력끝에 테네시 가석방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그러나 마리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많은 비리를 목격하게 된다. 마리는 주지사가 연관된 가석방 기관의 비리를 알게 되고 이에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주지사에게는 마리 같은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매장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 [PODS챔피언십] 전과자 캐디+그냥 산 퍼터=우승?

    12일 미프로골프(PGA) 투어 PODS챔피언십에서 2년 만에 통산 13승째를 일궈낸 46세 노장 마크 캘커베키아(미국)의 우승 뒷얘기가 화제다. 그의 백을 멘 캐디 에릭 라슨은 11년이나 감옥생활을 한 ‘마약 전과자´ 출신. 지난 1989년 브리티시오픈과 95년 벨사우스클래식 우승 등 캘커베키아와 전성기를 함께 한 라슨은 그러나 그 해 마약상의 부탁을 받고 코카인을 운반하다 적발돼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면회 당시 캘커베키아는 “출소하면 다시 너를 캐디로 쓰겠다.”고 라슨에게 말했고,11년 만인 2005년 12월 라슨이 모범수로 가석방되자 그 약속을 지켰다. 투어 생활을 재개한 첫 해인 지난해엔 ‘톱10’ 한 차례에 상금도 70만 5000달러로 신통치 않았지만 둘의 신뢰엔 변함이 없었고, 결국 올해 두 차례 ‘톱10’ 진입 끝에 우승을 합작해 냈다. 라슨은 “오랜 시련을 겪는 동안 마크는 언제나 좋은 친구였다.”면서 “나를 믿고 지켜준 그에게 감사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라슨과 함께 ‘챔피언 메이커’가 된 퍼터는 이미 3라운드 때부터 화제가 됐다. 캘커베키아는 1라운드 4오버파를 치고 난 뒤 컷 탈락을 예상, 짐을 꾸리던 도중 1주 전 혼다클래식 대회장 근처의 양판점에서 아무 생각없이 사 놓은 퍼터가 눈에 띄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2라운드에 나선 그는 버디 5개를 뽑아내며 4언더파 69타로 기사회생했다. 이튿날엔 버디 10개를 쓸어담으며 코스레코드(62타)까지 세웠다. 결국 첫날 36개까지 몰아(?)쳤던 퍼트 수가 2,3라운드 평균 23개로 뚝 떨어진 게 극적인 반전의 원동력. 퍼터 구입에 쓴 돈은 256달러18센트였고, 우승 상금은 95만 4000달러였다. 한편 디펜딩 챔피언 최경주(37·나이키골프)는 이날 1오버파로 부진해 최종합계 7언더파 277타, 공동 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