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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를 보다] 우주정거장 태양전지판에 내 모습이… ‘우주 셀카’ 화제

    [우주를 보다] 우주정거장 태양전지판에 내 모습이… ‘우주 셀카’ 화제

    전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셀카'를 촬영하지만 이 여성의 셀카는 세상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의 우주비행사 제시카 메이어(42)가 흥미로운 셀카 사진 2장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밖으로 나와 우주 유영 중 촬영한 이 사진(사진 아래)은 환하게 웃고있는 메이어의 모습을 담고있다.이중 흥미로운 사진은 전신이 드러나는 셀카다. 이 사진은 ISS의 상징과도 같은 태양전지판에 반사된 메이어 자신의 모습을 담고있다. 특히 그 뒤로는 '무려' 지구가 병풍처럼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지난해 9월 러시아 우주선인 ‘소유스 MS-15호’를 타고 ISS에 도착한 메이어는 특히 여성 우주비행사로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해 10월 18일 메이어는 동료인 크리스티나 코크(40)와 함께 사상 최초로 여성들만 참여한 우주 유영에 성공했다. NASA에 따르면 코크는 고장난 배터리 충전 장치를 교체하기 위해 ISS 밖으로 나갔고 이어 메이어도 공구가방을 들고 뒤를 따랐다.한편 인류 최초로 우주 셀카를 남긴 주인공은 ‘비운의 우주인’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따라다녔던 버즈 올드린(90)이다. 그는 1966년 11월 12일 제미니 12호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인류 최초의 우주 셀카를 남겼다.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1930 ~2012) 바로 다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남겨 항상 조연에 머무른 올드린이지만 우주 셀카만큼은 ‘인류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셈. 이에 대해 올드린은 “그냥 찍었을 뿐 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사진이 나올지 궁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군포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선제적 방역 강화

    군포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선제적 방역 강화

    경기도 군포시는 다중이용시설과 공공시설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선제적 방역조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의 이동경로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 이후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시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산본로데오거리 인근 아파트 일대와, 주민들이 요청한 지역에 초미립자 살포기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또 5일까지 어린이집, 유치원, 경로당과 관내 6개 지하철역 및 버스정류장 등 이동인구가 많은 주요시설과 학교 내 돌봄시설, 아동복지시설 등 모두 420여개 시설에 대한 방역소독을 마쳤다. 확진자의 이동경로와 접촉자들의 주변지역에 대한 방역도 병행하고 있다. 아울러 노인과 청소년 관련 시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주말에는 휴관 중인 지역 내 시설들을 중심으로 추가방역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대희 시장은 “시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시의 역량을 모두 총동원해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부산세관,짝퉁 명품·담배 등 120억원 밀수 업자 검거

    부산세관,짝퉁 명품·담배 등 120억원 밀수 업자 검거

    중국산 숯을 수입하는 것처럼 속여 짝퉁 명품과 담배를 밀수입한 업자가 세관에 적발됐다.A씨는 지난해 7월 중국산 숯을 수입하는 것처럼 세관에 신고하고 루이비통 가방과 카르티에 시계 등 짝퉁 명품과 국내에서 정상 수출된 국산 담배 등을 밀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세관검사에서 적발를 피하려고 수입용 컨테이너 앞면과 뒷면에는 숯이 든 박스를 쌓고 중간 부분에 밀수품을 숨겨 들여오는 일명 ‘심지박기’ 수법을 이용했다. A 씨는 세관 압수수색이 시작된 이튿날 해외 출국을 시도했으나 세관의 신속한 조치로 출국금지됐다. 세관 관계자는 “출국금지 이후에도 범행을 전면 부인했으나 계좌추적과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 등을 거쳐 확보한 증거로 밀수입 전모를 밝히고 구속했다”고 말했다. 세관은 수출입 자료와 외국환 결제 및 물류 자료 등을 활용해 시세 차익이 큰 밀수입 화물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차단할 계획이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대만 학술기행 현장에서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대만 학술기행 현장에서

    출국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만에 오게 됐다. 일정 및 예약 변경이 쉽지 않았다는 점, 개인 일정이 아니라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팀의 오래전에 예정된 일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만, 제주, 아일랜드 등 여러 섬과 본토를 둘러싼 저항과 교섭의 역사, 폭력과 지배·종속 관계에 대해 비교 검토하기 위한 현장답사가 이번 학술기행의 목적이다. 매일 중국을 비롯한 각 나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를 점검하며 하루 일정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마음의 불안과 책무감, 여행의 설렘이 수시로 교차하는 여정이다. 어제는 대만의 남부 도시 가오슝(高雄)에 있는 ‘시립역사박물관’과 ‘2ㆍ28 평화공원’을 탐방했다. 박물관 직원이 입구에서 방문자 모두의 체온을 재고 손 소독제를 뿌려 준다. 제주 4ㆍ3에 비견되는 대만의 비극적 현대사인 1947년 2ㆍ28 사건의 자료와 사진, 영상을 천천히 보았다. 가오슝에서만 약 2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2ㆍ28이 발생한 원인으로 국공내전의 와중에 공산당에 쫓겨 대륙에서 대만으로 진출한 외성인(外省人)이 원래 대만에 거주했던 본성인(本省人)에 대해 지녔던 편견과 차별을 들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즈음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서 초래된 한국사회에 팽배한 어떤 경향과 편견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물론 중국 정부의 대응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의당 필요하다. 그런 한편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불어닥친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통해 우리의 기구한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되짚어 보면 한인들이야말로 인종적·민족적 편견에 의해 누구보다도 상처받은 존재가 아닌가. ‘관동대학살’에서 일본인에게 희생당한 한인의 한(恨), ‘스탈린 시대의 강제이주’로 인해 연해주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카자흐스탄 등지의 황량한 오지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한인들의 비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미국과 유럽에 의한 인종적 편견의 대상이었던 일본이 다시금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삼았던 한인들, 그 통한의 운명은 지금도 일본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런 재일 한인들의 슬픔을 생각한다면, 우리야말로 편견과 차별에 대해 가장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타자에게 발산하는 조롱과 차별, 편견의 시선은 언젠가는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가오슝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동순 시집 ‘강제이주열차’를 읽었다. 시인은 ‘고려인’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일본 쳐들어오면/고려인들 일본에 붙는다고 했대/우리를 왜놈 간첩이라 했대/골치 아픈 믿을 수 없는/고려인에겐 추방이 상책이라 했대”라고 적었다.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는 시적 진술이다. 실제로 스탈린은 일본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한인들이 일본 편에 서는 걸 우려했는데, 이는 강제이주 명령을 내리게 한 중대한 요인이었다. 대만행 가방에 넣은 또 한 권의 책은 서승의 ‘옥중 19년’이다.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조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울에 유학을 온 서승은 동생 서준식과 함께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와 이어진 서슬 퍼런 군부정권하에서 간첩으로 몰려 19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설움을 피해 조국으로 향한 그는 더 가혹한 수인(囚人)의 운명에 처한다. 이 얼마나 통렬한 아이러니인가. 물론 이런 슬픔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대만에도 그 못지않은 양심수가 존재한다. 오늘은 타이베이로 가서, 대만 2ㆍ28 사건 및 민주화의 현장과 역사를 좀더 심층적으로 탐방할 계획이다. 도착 첫날과 비교하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대만에서의 남은 일정 동안 대만의 슬픔과 역사,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내가 태어난 땅의 운명과 역사, 설움에 대해 톺아보는 과정이기도 한 그 시간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용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이클 호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용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이클 호어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용병이라면 한낱 돈에 팔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아무에게나 총부리를 겨누는 무뢰한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그런 허접한 생각을 바꾸게 한 용병이 있었다. 보통 ‘미치광이 마이크’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마이클 호어가 남아공 더반의 요양원에서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아들 크리스의 성명을 영국 BBC가 3일 대신 전했다. 아들은 “마이클 호어는 위험하게 유지되는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겠다는 철학을 갖고 살아왔다. 그게 100년 넘게 산 것보다 훨씬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기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이었던 그는 말년을 남아공에서 지내며 세 권의 회고록 ‘용병’ ‘칼라마타로 가는 길’ ‘세이셸 사건’을 집필했다. 대관절 그가 누구인데, 한다면 로저 무어, 리처드 해리스, 하디 크루거 등과 공연한 1978년 전쟁영화 ‘지옥의 특전대(The Wild Geese)’에 앨런 포크너 대령으로 열연한 리처드 버튼을 떠올리면 된다. 포크너 대령이 바로 호어의 회고록 ‘용병’을 토대로 창조한 캐릭터였다.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복무한 뒤 대위 계급까지 달고 전후 회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남아공으로 건너가 작은 기업을 운영했다. 1961년 콩고의 정치인 겸 기업인 모아제 촘베와 안면을 텄는데 3년 뒤 콩고 총리에 취임한 촘베가 공산당이 뒤를 봐주는 심바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호어를 고용했다. 임무를 18개월 만에 마치자 호어와 그의 부대원들은 ‘기러기’란 별명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쳤다.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그의 신념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서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 사실상 콩고에 억류됐던 유럽인 수천명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부하들과 난 콩고에서 20개월간 반군 5000~1만명을 죽였다”면서도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콩고인 2000만명 중 절반은 한때 반란군이었던 걸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옛 동독 라디오에서는 그를 ‘미친 블러드하운드(냄새로 추적하는 사냥개의 원조 종) 호어’라고 불렀는데 고인은 생전에 이 별명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1960년대 콩고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으나 그 뒤 쌓은 명성을 모두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1980년대 초 군 경력을 끝내고 은퇴한 듯 보였으나 갑자기 1981년 세이셸 제도의 쿠데타 시도에 몸 담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경력은 황당하게 막을 내렸다. 그는 세이셸 제도를 잘 안다고 믿었지만 알베르 르네 대통령 치하의 사회당 정부를 끔찍하게 증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아공과 케냐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자 호아는 쿠데타 계획을 짰다. 1981년 10월 그는 숨어 지내던 남아공의 한 방갈로에 무기들을 보내달라고 하고 46명의 남성을 선발해 전직 럭비 선수로 뛰다가 지금은 은퇴해 술이나 마셔대며 기부하는 클럽으로 변장시켜 무기들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마헤 공항 세관을 통과한 뒤 한 부하가 엉뚱한 줄 뒤에 서 있다가 세관원과 말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가방을 뒤지게 만들었는데 분해한 AK 47 소총 등이 적발됐다. 그 바보 같은 부하는 너무 놀라 밖에는 더 많은 무기들이 있다고 고변했다. 호어는 근처에 계류해 있던 에어 인디아 여객기를 탈취해 남아공까지 달아났다. 공항 도착 후 엿새 동안 구금됐다. 그리고 “패키지 휴가로 벌인 쿠데타”란 각국 언론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일년 뒤 그들은 에어 인디아를 공중 납치하려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그는 20년 징역형에 10년 유예 판결을 받았다가 나중에 33개월만 복역하고 석방된 뒤 남아공으로 건너가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전남도의 이색 ‘실내박물관’에는 뭐가 있길래

    전남도의 이색 ‘실내박물관’에는 뭐가 있길래

    전라남도가 다양한 전시·체험을 즐길 수 있는 ‘목포, 무안, 순천 실내박물관’을 2월 추천 관광지로 선정했다. 순천 유명 관광지인 낙안읍성은 사계절 많은 여행객이 찾지만 인근에 위치한 ‘뿌리 깊은 박물관’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곳은 월간 문화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 고(故) 한창기 선생이 생전에 수집한 전통 유물 6500점을 전시중이다. 상설전시실은 토기, 옹기, 청자, 서화 등 세월을 넘나드는 다양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귀면무늬 기와, 굽다리접시 등 독특한 모양의 토기를 감상하다 보면 선조들의 지혜에 놀라게 된다. 이곳에서는 한복체험도 할 수 있어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 그만이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는 100여년 전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의 유물과 자료를 만날수 있다. 의료선교에 매진했던 애양병원 초대원장 맨튼윌슨이 탔던 포드 T모델과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사용했던 드럼통, 세탁기, 가방 등은 당시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순천 기독교 성장사 뿐만 아니라 여순사건, 6·25전쟁 등 각종 자료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3층에는 ‘ㄱ’자 형태의 과거 교회 모습도 재현했다. 유교 윤리인 ‘남녀칠세부동석’에 따라 남녀 예배실을 별도로 갖춘 특이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이와 함께 목포자연사박물관은 공룡화석, 광물 등 세계 희귀자료와 서남권 자연 생태자료를 수집·전시하고 있어 가족 여행지로 인기몰이 중이다. 입장권 구매 시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예역사관까지 모두 세 곳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천연기념물인 ‘신안 압해도 수각류 공룡알 둥지화석’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지질관, 육상생명관, 수중생태관, 지역생태관에도 지구의 역사와 생물체 등에 관한 광범위한 생태자료를 전시중이다. 대형갯벌 디오라마는 천연갯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생생하게 구현됐다. 목포생활도자박물관은 현대인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도자기를 접할 수 있다. 도자기의 역사, 만드는 과정, 미래형 산업 도자기의 쓰임까지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목포문예역사관 역시 남농 허건의 수석과 운림산방 4대 작품, 세계 각국 화폐가 있어 함께 관람해볼 만하다.또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은 현대미술의 거장 오승우 화백의 뛰어난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박물관도 있다. 바로 무안군 못난이동산이다. 이곳은 김판삼 조각가가 지역주민과 함께 만든 참여형 미술관이다. 주변에 쓰다 남은 건축자재, 나무 등을 기부받아 만들었다. 이광동 도 관광과장은 “전남 지역은 빼어난 자연 관광지로 유명하나 실내에서도 즐길수 있는 다양한 체험, 전시프로그램이 많이 갖춰져 있다”며 “날씨에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테마 관광 콘텐츠를 계속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돕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죠”

    “돕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죠”

    “반대 주민의 목소리만 부각돼 아산과 진천을 비방하는 글들이 쏟아져 속상했어요. 환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우리는 아산이다’(#we_are_asan), ‘우리는 진천이다’(#we_are_jincheon)라는 응원글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충남 아산에 사는 엄미영(47)씨가 시작한 인증샷 캠페인이다. 아산과 충북 진천은 우한 교민들의 임시생활시설인 경찰인재개발원과 공무원인재개발원이 있는 곳.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우려에 초기 일부 주민이 입구를 막는 등 격렬히 반발했지만, 이젠 상대적으로 환영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마스크부터 손 세정제, 도시락 등 현지 지자체와 주민들의 기부행렬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엄씨는 2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반대했던 분들도 지금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밝혔다. 캠페인에 참여한 아산 주민 강유정(28)씨는 “국가가 마련한 안전망도 있지만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 역시 사회안전망”이라면서 “지금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산 주민 장모(51)씨도 처음엔 임시생활시설이 아산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방에 걸려 있는 노란색의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세월호 참사 때 누군가 도움을 줬다면 어린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가 보듬지 않으면 누가 할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진천에 사는 김진혁(36)씨는 “임시생활시설로부터 1㎞ 안에 주민 2만 6000여명이 사는데 정부가 ‘문제없다’는 식으로만 말하니 서운한 마음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바라는 건 오신 분들이 편안히 계시다 건강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돕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죠”

    “돕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죠”

    “반대 주민의 목소리만 부각돼 아산과 진천을 비방하는 글들이 쏟아져 속상했어요. 환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우리는 아산이다’(#we_are_asan), ‘우리는 진천이다’(#we_are_jincheon)라는 응원글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충남 아산에 사는 엄미영(47)씨가 시작한 인증샷 캠페인이다. 아산과 충북 진천은 우한 교민들의 임시생활시설인 경찰인재개발원과 공무원인재개발원이 있는 곳.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우려에 초기 일부 주민이 입구를 막는 등 격렬히 반발했지만, 이젠 상대적으로 환영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마스크부터 손 세정제, 도시락 등 현지 지자체와 주민들의 기부행렬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엄씨는 2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반대했던 분들도 지금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밝혔다. 캠페인에 참여한 아산 주민 강유정(28)씨는 “국가가 마련한 안전망도 있지만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 역시 사회안전망”이라면서 “지금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산 주민 장모(51)씨도 처음엔 임시생활시설이 아산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방에 걸려 있는 노란색의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세월호 참사 때 누군가 도움을 줬다면 어린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가 보듬지 않으면 누가 할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진천에 사는 김진혁(36)씨는 “임시생활시설로부터 1㎞ 안에 주민 2만 6000여명이 사는데 정부가 ‘문제없다’는 식으로만 말하니 서운한 마음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바라는 건 오신 분들이 편안히 계시다 건강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AK플라자 수원점 3일 휴업…15번 확진자 배우자 근무지

    AK플라자 수원점 3일 휴업…15번 확진자 배우자 근무지

    경기 수원지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15번째 확진자의 배우자가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협력사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은 3일 임시 휴점하고 건물 전체 방역소독을 실시하겠다고 2일 밝혔다.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관계자는 “방역소독은 3일부터 이뤄지며 시민의 불안감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며 “정상영업 시기는 추후 공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국내 15번째 확진환자 A씨(43)의 부인 B씨는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2층 한 가방매장의 협력사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은 지난 27일 보건복지부의 감염병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함에 따라 즉시 사내 전수조사를 실시해 B씨가 15번째 확진환자의 배우자임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국내 12번째 확진환자 역시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과 인접한 수원역을 거쳐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백화점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지난 29일에 실시한 1차 방역소독에 이어 오는 3일 2차 추가 방역소독을 진행할 계획이다. B씨는 지난 27일부터 출근하지 않았으며 자가격리 상태로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의 검체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B씨에 대한 검체결과는 이날 밤 늦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A씨는 지난달 20일 중국 우한시를 방문한 후 국내 4번째 확진환자와 같은 비행기로 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이후 지난달 29일 질병관리본부는 A씨를 밀접접촉자로 분류해 자가격리 대상자로 역학 조사관의 집중 모니터링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난 1일 A씨가 발열(37.5도 이상)과 호흡기 증상(기침,인후통)으로 장안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았고 확진 판정돼 이날 새벽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는 본인 차량을 이용해 보건소로 이동했다. 수원시 감염병지원팀은 질본 즉각대응팀,경기도 역학조사관 및 감염병지원단과 함께 A씨의 접촉자, 방문지, 동선 등 심층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우한 교민 환영합니다”…주민들이 SNS 응원 나선 이유

    “우한 교민 환영합니다”…주민들이 SNS 응원 나선 이유

    아산·진천 주민들 우한 교민 환영 응원캠페인 제안자 “교민들 위로하고 싶었어”“반대 주민들도 실은 교민 돕고 싶었을 것” 지난달 31일 밤 충북 진천군에 사는 김진혁(36)씨 집 거실에서 밝게 빛나는 건물 하나가 보였다. 공무원인재개발원이었다. 같은 날 오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전세기를 타고 온 국민 368명 중 156명이 이곳에 입소했다. 김씨는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던 스케치북에는 ‘충북혁신도시 시민과 진천군민은 우한 교민을 환영합니다. 진천에서 안전하게 계시다가 건강하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반대 행동에 나섰던 분들도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우한 교민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진천·아산 주민들을 향한 오해가 심해지는 것 같아서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우한 교민들의 임시생활시설로 지정된 진천군 공무원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앞에서는 우한 교민 반대 집회가 열렸다. 언론 보도는 마치 아산·진천의 모든 주민들이 우한 교민이 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우한 교민들을 환영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소셜미디어에서 ‘우리는 아산이다’(#we_are_asan), ‘우리는 진천이다’(#we_are_jincheon) 캠페인이 일어났다. 서울신문은 2일 이 손피켓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한 주민 5명과 인터뷰를 했다.■“어려울수록 도와야…” 지금은 합심할 때 아산에 살고 있는 강유정(28)씨는 공책에 ‘우리는 서로의 안전망입니다’라고 적었다. 강씨는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도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도 사회 안전망”이라면서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한 교민이 전세기를 타고 1차로 입국한 지난달 31일 오전부터 우한 교민 반대 집회는 거리에서 사라졌다. 또 다른 아산 주민 장모(51)씨도 처음엔 우한 교민 임시생활 지역이 아산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특히 ‘정부가 처음에는 천안으로 정했다가 천안 시민들이 반발해 진천, 아산으로 변경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우리를 봉으로 보냐”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가방에 걸려 있는 노란색의 ‘세월호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세월호 참사 때 누군가가 도움을 줬다면 어린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복잡했다”면서 “지금 우리가 우한 교민들을 돕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이 캠페인을 처음 제안한 엄미영(47)씨는 “우한에서 힘들게 나온 교민들을 위로하고 싶었고, 교민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손피켓을 들고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게시물을 공유했다. 같은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에 제가 더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지역 이기주의로만 보지 않길” 지금은 우한 교민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더 커진 양상이지만, 한때 우한 교민들이 귀국 후 임시로 지낼 지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된 정부 관계자의 말은 진천·아산 주민들에게 상처가 됐다. 김씨는 “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부터 1km 반경에 주민 2만 6000여명이 살고 있다. 바로 옆에는 어린이집이 있고, 큰길 하나만 건너면 아파트 단지”라면서 “그런데 정부 관계자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주지와 많이 떨어져 있어 문제가 없다’는 식을 말을 하니까 당황스러웠고, 그런 말들이 하나하나 상처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이런 사정이 있는데 ‘진천 농산물 불매 운동을 하자’는 댓글을 보고 속상했다”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은 지역 이기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 그런데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입장도 함께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산 주민 임대혁(49)씨도 “트랙터와 농기계로 도로를 막았던 아산 일부 주민들도 원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라면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방역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우한 교민들이 임시생활시설에서 어떻게 지낼 예정인지 등을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난달 20일 첫 번째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이날 현재까지 확진 환자는 15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관련 인터넷 뉴스를 보면 우한에 다녀온 사람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임씨는 “신종 코로나가 발생한 것이 우한 교민들 잘못은 아니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강씨도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면서 “그런 비난은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과 전날 두 차례에 걸쳐 우한 교민이 전세기를 타고 입국했다. 1차로 귀국한 교민은 총 368명, 2차로 귀국한 교민은 총 333명이다. 정부는 우한에 남은 교민 200여명에 대해 귀국 수요에 따라 전세기 추가 투입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엄씨는 “우한 교민들이 임시생활시설에서 마음 편히, 건강하게 잘 머물다가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면서 “아직 우한에 있는 교민들도 걱정이 많이 되는데, 많은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으니까 용기를 잃지 말고 힘내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씨는 “전에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국민들이 힘을 합쳐 극복한 경험이 있다”면서 “지금은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취중생]중국 여성의 일기가 보여준 봉쇄된 우한 일주일

    [취중생]중국 여성의 일기가 보여준 봉쇄된 우한 일주일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의 개인은 자기 자신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국가 체제의 보호는 없다. 나는 다행히 어린 편이지만,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궈징(29)은 봉쇄된 우한에서 홀로 사는 여성입니다. 그는 중국의 미투 운동에 참여했고, 직장에서 성차별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법률 지원을 도왔습니다. 우한이 봉쇄된 지난 23일부터는 일기를 써서 페이스북 등에 올리고 있습니다. 우한 사람들에게 보낼 마스크를 전달받는 일도 했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우한에서 지낸 그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도시가 봉쇄되는 일은 전례가 없고,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사회활동가로서 봉쇄된 도시를 기록하고 싶었고, 나의 삶의 일부분도 담았다”고 밝혔습니다. 우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그의 일기 일부를 소개합니다. ● 1월 23일 나는 꽤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1월 20일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가 100명이 넘고, 다른 성에서도 확진자가 생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전까지 공표된 내용에서 은폐된 정황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한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여러 약국의 의료용 마스크는 몽땅 팔렸으며, 많은 사람은 감기약을 사들였다. 마침 이때 조금 감기 기운이 있었다. 평소였으면 약 없이 그냥 지나갔겠지만,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앞 사람이 감기약 4통 사서 나도 1통을 샀다. 1통에 62위안(약 1만원). 조금 비쌌다. 요 며칠 새 나는 계속 마음을 졸인다. 각지에서 들리는 확진 소식을 보면 대부분 15일 전에 우한을 방문했던 사람이었다. 우한은 전국에서 대학생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1월 중순이면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는다. 게다가 지금은 춘제를 앞두고 역을 오가는 인원이 많다. 그런데도 우한기차역은 엄격히 관리·감독 되지 않았다. 나는 춘절에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지내던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우한이 봉쇄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봉쇄를 얼마나 이어질까.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 모두 알 수 없었다. 최근 화가 나는 소식을 많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입원할 병원은 모자랐다. 열이 나는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했다. 후베이성의 고위 관료들은 1월 21일 함께 춘제 공연을 관람했다. 친구들은 내게 빨리 물건을 쟁여두라고 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기도 했고 아직 배달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배달이 언제 갑자기 끊길지 모른다는 겁도 들었다. 밖이 어떤지 한번 보자는 마음을 안고 문을 나섰다. 거리에는 대부분 중장년층이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근처 마트에 가니 계산대 줄이 길었다. 쌀은 이미 거의 동나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도 집어 들었다. 어떤 남자는 소금을 많이 샀다. 누군가 왜 그렇게 소금을 많이 사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혹시 1년 가까이 도시를 폐쇄하면 어떡하냐고. 난 별생각 없이 가방도 없이 나와서 물건을 많이 사지 못했다. 다시 집 밖으로 나오자 조금 전 물건를 사기 위해 경쟁할 때 웃음과 좌절이 떠올랐다. 조금 두려워졌다. 길거리에 보이는 노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더 힘겹지 않을까 싶어졌다. 일상용품은 도시가 봉쇄돼도 공급이 되겠지 싶기도 했다. 두 번째로 마트에 가서는 요구르트나 꿀을 사는 약간의 사치를 부렸다. 집에 가는 길에서는 약국에 들렀다. 약국은 출입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마스크와 알코올은 이미 다 팔린 뒤였다. 감기약도 부족했다. 내가 약국에서 나갈 때가 되자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 한 중년여성은 나를 붙잡고 알코올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말투에는 생명줄을 찾는 것 같은 절박함이 묻어있었다. 길거리에서 차와 행인은 점점 더 줄었다. 도시 전체가 멈춘 듯했다. 이 도시는 언제쯤 살아날까. ● 1월 24일온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혼자 사는 나는 이따금 건물 복도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다른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나는 별다른 돈도 인맥도 없다. 나는 아파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목표 중 하나는 내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게 됐다. 꾸준히 운동해야 했다. 살기 위해 음식도 필요했다. 생활필수품이 잘 공급되는지 알아야 했다. 정부는 도시 봉쇄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봉쇄한 뒤 도시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봉쇄가 5월까지 갈 거라고 예상했다. 생존을 위해서나는 내가 생활하는 주변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외출을 했는데, 근처 약국과 편의점은 문을 모두 닫았다. 1km 거리의 마트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직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봤다. 조금 위안이 됐다. 마트에는 여전히 음식 쟁탈전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게 팔렸다. 쌀은 조금 남아 있었다. 야채는 무게를 재기 위해 20, 30명씩 줄을 서 있었다. 소시지나 만두, 고기만 샀다. 약국에는 여전히 마스크와 알코올이 없었다. 대신 비타민과 요오드 소독약을 샀다. 평소에 아픈 적이 거의 없어서 집에는 상비약을 두지 않았다. 비타민을 꼬박꼬박 먹기로 했다. 계산하는 줄에서 보니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있었다. 다음에 나도 두 겹으로 마스크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앞에 선 부부는 뭘 더 사야 할지 한참 얘기를 하더니 일회용 의료용 장갑을 샀다. 외출할 때 끼겠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나도 한 상자 샀다. 조금 뒤에 의료용 마스크 재고가 왔다. 1상자에 100개. 2상자를 집었다가 1상자에 198위안(약 3만 5천원)이라는 말에 조용히 1상자를 내려놓았다. 계산할 때 보니 1상자에 99위안(1만 7천원)이어서 조금 후회가 됐다. 그래도 더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솟았다. 결핍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이렇게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서 말이다. 시장에 또 가니 매대가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파는 야채도 줄었다. 몇몇 채소와 계란을 샀다. 가게는 드문드문 열었는데, 국숫집은 오늘 안에 문을 닫겠다 했다. 꽃집이 문을 열어서 의아했다. 다음에도 꽃집이 문을 열면 화분을 사기로 했다. 집에 와서는 입었던 옷을 몽땅 빨고, 목욕했다. 깨끗이 생활하는 게 지금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루에 손을 20, 30번씩 씻는다. 반나절이 이렇게 지나갔고 점심밥을 지었다. 한번 외출을 하니 그래도 혼자가 아니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존 팁도 배웠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 개인은 자기 자신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시스템의 보호는 없다. 나는 다행히 어린 편이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개인들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월 25일우한의 날씨는 지금의 우한처럼 음울하다. 오늘은 춘제다. 원래 명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명절은 나와 더 상관없는 일이 됐다. 어제 이틀 동안의 경험과 느낌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내가 아직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에게서 우한에서 경험을 기록하라는 제안을 들었을 때 조금 망설였다. 나는 비극의 피해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 너무 안됐다’라는 인상만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은 내가 우한에 지난해 11월에 이사 왔다는 걸 몰랐다. 너무 많은 질문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평등을 외쳐온 사회운동가인 나는 잘 알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기록을 시작하고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받았다. 매일 발포 비타민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는 방법부터 감기약을 아무 때나 먹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마스크와 알코올을 보내줬고, 친구들은 돈을 보내줬다. 최근 이틀부터 나는 식사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평소의 절반 정도 양만 요리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라는 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우한 근처 도시에 사는 친구도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어떤 친구는 ‘죽음을 무릅쓰고’ 가족과 만났다. 어떤 친구가 통화 중에 기침을 하자, ‘나가라’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거의 3시간 동안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나니 밤 11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최근 일들이 뇌를 스쳤다. “나는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기력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죽음도 떠올랐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삶에 큰 미련은 없다. 페미니스트로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도왔다.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일이다. 그래도 내 삶이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도시 봉쇄가 풀리면 무슨 일을 하지 생각했다. 그건 어떤 행복일까. 이 시기가 지나면 내 인생도 한 단계 나아갈 것이다. 아침 7시에 잠이 깼다. 병에 대한 공포가 나를 짓누른다. 아침에 코를 풀었는데 약간 피가 나왔다. 무서웠다. 휴지는 버렸지만, 병에 대한 걱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12월 말에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12월 30일에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1월 9일에 구이린으로 여행을 갔다. 그때 친구에게 감기가 옮았다. 1월 13일에 우한에 돌아왔다. 약은 먹지 않았지만, 감기는 호전되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가 내 집에 며칠 머물렀고, 친구들은 아직 다 괜찮다. 집에서 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열은 나지 않았고 배가 고팠다. 운동을 하고 집 밖을 나섰다. 밖은 조용했다. 마스크를 두 겹으로 썼다.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마스크가 가짜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국수집이 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려고 하자 사장님은 손을 흔들며 영업이 끝났다고 알렸다. 꽃집은 문을 열었는데, 문밖에 국화가 있었다. 조의를 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꽃집과 5m 떨어진 골목 어귀에도 똑같은 국화가 놓여 있었다. 시장에는 야채는 거의 떨어졌고 만두와 국수도 얼마 없었다. 줄 선 사람도 적었다. 가게에 갈 때마다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집에 쌀이 7kg이나 있는데 2.5kg을 더 샀다. 참지 못하고 만두, 고구마, 소시지, 녹두, 팥을 샀다. 소금에 절인 오리알은 좋아하지 않지만, 만일을 대비해 샀다. 봉쇄가 풀리고도 오리알이 남으면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이다. 문득 병적으로 먹을 거리를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음식만으로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자책할 수 없었다. 똑같은 약국에 갔다. 알코올은 없다고 했다. 직원은 내게 어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맞아요.” 나는 어쩌면 매일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강가를 걸었다. 내 생활은 너무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길에는 개와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고, 강가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갇혀있기 싫었을 것이다. 매일 마트에만 갈 수는 없다. 해가 나면 강가를 걸어야겠다.   ● 1월 26일갇힌 것은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갇혀있다. 첫날 웨이보에 일기를 올릴 때 사진이 올라가지 않았다. 글도 쓸 수 없었다. 어제는 글을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이것도 보낼 수 없었다. 1월 24일 쓴 일기는 웨이보에서 5000명이 공유했는데 어제는 45명만 공유했다. 잠깐 나는 내가 글을 잘 못 썼나 고민했다. 인터넷 검열과 제한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잔인하다. 많은 사람은 도시가 봉쇄된 뒤 집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의지해 정보를 얻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한다. 스스로가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상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인 나날이다. 운동을 하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도 날이 추웠다. 길 양쪽의 가게는 모두 닫았다. 길에서 3명만 보였다. 1명은 환경미화원, 1명은 수위, 1명은 행인이었다. 국수 가게 앞까지 걸어가면서 8명을 만났다. ● 1월 27일 어제 저녁에는 국수를 먹고, 친구들과 3시간 동안 영상 통화를 했다.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는 아버지가 덤덤하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난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2003년에 우리는 사스를 겪었고, 2008년에는 쓰촨 원촨 지진을 겪었다. 어떤 친구는 내년 춘제는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고, 잘 모르는 친척들과 어색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다들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한을 풀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결혼도 재촉할 거라고. 올해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친척들과 만나지 못할 테니 내년에는 더 많이 만날 거라고. 오늘 우한 날씨는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흐렸다. 마트의 야채나 쌀은 거의 텅텅 비었고, 소금도 없었다. 줄 선 사람도 많았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물건을 샀고, 오늘은 잘 참아냈다.  약국에는 여전히 마스크와 알코올이 없었다. 정부청사 앞까지 걸어갔는데 자전거를 탄 중년 여성이 문 앞에서 크게 외치는 걸 봤다. 우한 말이어서 나는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20년이다” 정도만 알아들었다. 그는 여러 번 반복해서 외쳤다. 차 몇 대가 들어갔고, 경찰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계속 외쳤다. 아마 이날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100m 이상 떨어져도 내 뒤에서는 여전히 “지도자를 만나게 해달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경찰서 앞에서는 “힘을 합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방역 전쟁을 이겨낼 수 있다”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송은 계속됐다. ● 1월 28일봉쇄는 공포를 가져왔고, 사람 사이의 거리도 벌어졌다. 많은 도시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요구한다. 이 조치는 폐렴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권력 남용도 가져왔다. 어제 광저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이 지하철에서 끌어내려졌고, 최루액을 맞았다. 그들이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안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더라도 외출할 권리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정부에게는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독려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선택지가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시민에게 마스크를 줄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자가격리된 사람의 집 문을 막는 영상을 봤다. 후베이성 사람들은 외지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다. 끔찍한 일이다. 폐렴 예방이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외지에 있는 후베이성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살 곳을 마련해준다. 봉쇄된 상황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연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제 어떤 기자는 내게 다른 사람들과 만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도시 전체는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봉쇄는 사람들의 삶을 원자 상태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과 관계는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젯밤 8시쯤 창문 밖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함께 “우한 힘내라”를 외쳤다. 함께 외치는 일은 개인에게 힘을 준다. 사람들은 연대를 갈망하고, 그 속에서 힘을 얻는다. 생존에 대한 불안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매일 더 멀리 걷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많이 걷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 참여는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다. 사회적 역할을 맡으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야 삶은 의미가 있다. 오늘의 우한은 마침내 해가 보였다. 마치 나의 마음처럼. 길가에는 사람들이 좀 늘었는데, 2, 3명의 지역 사회복지사가 조사를 하는 듯 했다. 여성 복지사에게 마스크가 있는지 묻자, 없다고 했다. 다른 남자가 급하게 와서 마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8명의 환경미화원을 인터뷰했다. 6명은 여성이고 2명은 남성이었다. 그들은 매일 6, 7시간을 일한다. 월급은 2300, 2400위안이다. 세금을 떼면 2000위안(약 3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폐렴이 퍼진 뒤 월급은 그대로인지 물었다. 누군가는 춘제 3일 동안은 두 배를 받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은 매일 소독약을 받고, 보호장갑을 계속 쓴다. 일회용 장갑은 없고, 대부분 마스크가 부족했다. 사정이 나으면 마스크 20개를 받고, 다 쓰면 다시 받을 수 있었다. 봉쇄 이후 2개의 마스크만 받은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다. 어떤 사람은 일회용 의료용 마스크가 없어서 스카프로 입을 감쌌다. 나는 가지고 나온 3개의 의료용 마스크를 건넸다. 억양 때문에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어떤 이는 잠시 마스크를 뗐다가 곧바로 다시 썼다. 어떤 이는 스스로 마스크를 준비한다. 가족과 다른 이들, 국가를 위해서.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떤 여성은 걱정이 돼서 아들과 며느리는 따로 산다고 했다. 그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대신 그가 물건을 사서 문 앞으로 가져다준다. 자신도 두렵고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들은 적은 월급을 받고, 기본적인 보호 장구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직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3명의 남성 배달원도 만났다. 그들의 근무 시간은 유동적이었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받았다. 적어도 하루에 1, 2개를 받았고, 매일 배달 상자를 소독했다. 손 세정제를 받는 업체도 있었다. 월급이 늘었냐고 묻자, 배달업체나 배달량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어떤 곳은 배달 1건에 평소보다 3.5위안(약 600원)을 더 주고, 어떤 곳은 평소보다 1건당 4위안(약 700원)을 더 준다. 다른 배달 업체는 그대로였다. 편의점 한 곳은 오전 5시에 열고 밤 11시에 닫는데, N95 마스크를 하나 준다고 했다. 알코올은 부족한 편이라고 했다. 내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포인트가 되기로 했다. 내 위챗 코드를 공개했다. 연락을 환영한다. 당신이 우한에 있고 봉쇄를 끝내는 데 힘을 보내고 싶다면, 함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외지에 있다면 마스크나 필요한 물건을 보내줘도 된다. 받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겠다. ● 1월 29일2017년 말, 나는 직장에서 성차별을 당한 여성에게 법률지원을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어제 오후 임신으로 인해 받는 차별에 대한 전화 문의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성이었고, 그의 부인은 국가기업의 행정직원이었다. 임신 3개월째인 부인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의사가 휴식을 권했다. 휴가를 몇 번 쓰니 회사는 그에게 이 일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가 직접 휴직을 권하지는 않아서, 나는 그에게 일을 계속하면서 증거를 모으라고만 말했다. 마침 그들은 우한에 있는데 먹을거리를 쌓아뒀다고 했다. 봉쇄가 풀린 뒤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일자리는 많은 사람에게 걱정거리가 됐다. 춘제 연휴가 2월 2일까지로 늘어났지만, 만약 병이 계속 확산한다면 어떻게 안심하고 출근을 할 수 있을까. 큰 기업은 계속 운영할 여력이 있지만, 작은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는 휴일이 길어지면 입는 타격이 심각하다. 남는 이익은 많지 않고, 월세나 월급의 부담도 있다. 그럼 해고를 택할 수 있다. 여성은 보통 가장 먼저 해고된다. 개인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출근을 해야 할지 다들 고민 중이다. 집세를 내야 하고, 돌봐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감세 정책을 펴고,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생계 지원을 할 수 있다. 어제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간호사다. 그는 “너의 일기를 모두 보고 있어. 어떤 말로 너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무거워. 나는 오늘 (발병지역에 가겠다는) 신청서를 냈어. 갈 수 있다면 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싸우고 싶다. 네가 외롭지 않게. 국가의 지원이 부족한 지역도 있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네가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길 바라. 네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 믿는다.” 다 읽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어젯밤에도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어떤 친구는 광저우나 북경에서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우리는 환경미화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마스크를 쓰는 법을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이들은 내게 돈을 환경미화원에게 보내 달라며 돈을 부쳐왔다. 환경미화원을 위한 기부를 받을지 의견을 나눴다. 나는 개인일 뿐이고, 투명성과 공신력을 보장하기 쉽지 않다. 기부를 관리할 시스템도 갖추지 않았다. 일단 이미 받은 돈은 기부하겠지만, 더는 환경미화원을 위한 기부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기부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기부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들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환경미화원들과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물건을 사다 준다는 여성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 일을 한 지는 1년이 넘었다. 이전에 일하던 공장에서 45살에 퇴직했다.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심장병으로 2년 전 수술을 받았다. 아들은 아직 몸이 좋지 않아서 며칠 일하면 며칠은 쉬어야 한다. 그녀는 월급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들도 돌봐야 한다. 우한이 봉쇄된 뒤에도 그는 생계를 위해 계속 일을 한다. 아침 11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한다. 그는 198위안(약 3만 4000원)을 주고 마스크 100개를 샀는데, 쉬는 시간에 도둑맞았다. 나는 지나가면서 마스크 몇 개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게 고맙다 했지만, 나는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 2월 1일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데 닫힌 국수 가게 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2월 13일 자정까지 후베이성 각 기업은 영업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공고도 붙어 있었다. 믿을 수 없어 한참을 서성였다. 옆 가게는 ‘한 달 동안 쉽니다’는 안내가 붙었다. 마트가 오늘부터 입구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야채가 조금 늘었다. 약국 2곳을 갔는데, 마스크와 알코올은 없었다. 약국에서 사람들은 어떤 감기약을 찾았다. 약은 다 팔린 뒤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들이 판단력 없이 감기약을 찾는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인민일보도 웨이보에서 이 약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고 썼다. 사람들은 매일 끊임없이 늘어가는 확진 환자 수를 본다. 만약 특정 약물이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물론 인민일보는 나중에 억제가 예방이나 치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우한 정부도 치료된 환자가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완치됐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결국 이는 대중들이 특정 약이 있으면 치료가 된다고 믿게 했다. 알고 보니 완치됐다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연스레 나아진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의 면역력이 강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복잡해져서 강가로 갔다. 날이 흐렸다. 어제의 햇빛이 그리웠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18만~33만 시간이 덤으로, ‘80%의 행복’과 ‘고독력’ 키우자

    18만~33만 시간이 덤으로, ‘80%의 행복’과 ‘고독력’ 키우자

    공동 저자의 면면을 보자. 오영수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이수영 중앙노동위원회 사무처장, 전용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신재욱 에프엠 어소시에이츠 대표 컨설턴트 등이다. 경제학과 경영학, 행정학을 전공한 이른바 ‘가방 끈 긴’ 이들이다. 공직이나 연구소 근무 경력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게 사사한 이도 있다. 저자들의 이력만 보면 재무 설계에 치우친 딱딱하고 무거운 책이란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런데 서문을 봐도 그렇고, 책 곳곳에 숨겨놓은 영화, 예를 들어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영화 안내 등 딱딱함을 벗어나려고 애를 쓴 흔적이 뚜렷하다. 고령사회에 어울리는 행복의 항해도라고 저자들이 표현한 ‘백세시대 생애설계’(박영사 발간)다. 생애설계에 필요한 것은 재무적 측면과 비재무적 측면의 균형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먼저 재무적 측면으로는 지속적인 일자리, 다층 연금체계 구축, 든든한 자산관리를 준비해야 한다. 비재무적 측면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려면 풍성한 대인관계, 다양한 활동을 준비해야 하며, 노후 건강을 위해서는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행복감도 고루 갖춰야 한다. 이 책은 다양한 문헌과 통계, 사례를 활용해 행복한 100세 시대를 위한 구체적 실천전략을 7개 분야로 나눠 제시한다. 첫째 은퇴를 늦추고 가능한 한 오래 일하도록 해야 한다. 일은 재무적 측면에서 노후복지나 생활안정에 도움도 주지만 일 자체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게 하며, 건강을 유지하게 하기 때문에 생애설계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했다.둘째 은퇴 후에도 오래도록 기본 생활을 유지하려면 공적 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중층적 소득보장 체계를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제도가 선진국보다 뒤늦게 도입되고, 급여 수준도 낮으므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 부부의 평생 월 평균 적정 생활비를 243만원으로 상정하고 평생 생활설계표를 스스로 짜보라고 방법을 제시한다. 셋째 은퇴 후 자산관리 또한 중요하다. 특히 노후에는 큰 손실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각종 사기와 술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하고, 수익성과 과세 요건을 고려해야 하며, 긴급한 상황에 대비한 유동성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정기보험, 실손의료보험, 치매보험 등을 통해 질병 리스크에 대응하고, 갑작스러운 사망 등에 대비해 증여와 상속 계획을 미리 세우라고 권한다. 넷째 충만한 행복감은 인생 2막의 요체다. 1970년 기대 평균 수명 62.1세가 2017년 82.7세로 늘어 20년 6개월, 약 18만 시간이 덤으로 주어졌다. 100세까지 산다면 33만 시간을 더 선물 받는다. 선택과 준비, 실천에 따라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도, 불행하게 보낼 수도 있다. 저자들은 노후의 충만한 행복을 위해서는 긍정적 마음을 갖고,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찾으며, 80%의 행복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긍정적 관계를 만드는 삶을 살라고 권유한다.다섯 째 은퇴 후에도 든든한 사회적 관계가 절실하다. 은퇴하고 나면 직장을 중심으로 한 공적 관계망이 사라지고 친구 등 친밀 관계망과 가족 관계망만 남는데 부부끼리 존중과 배려, 사랑을 기반으로 소통을 잘해나가고, 친구나 지역사회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관계 형성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는 한편 꾸준한 독서와 사색, 산책 등을 통해 ‘고독력’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여섯 째로 다양한 여가활동으로 삶의 보람과 의미를 넓히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TV 시청이나 등산만으로 보내지 않고 취미활동, 예술문화활동, 자원봉사활동 등 경력을 쌓으며 성취감을 느끼는 일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망도 한껏 넓히라는 주문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노후와 웰다잉의 준비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 마음, 스트레스 관리, 적정한 운동, 건강한 식습관, 정기적인 건강 검진 등을 반드시 해야 한다. 나아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을 받고, 연명의료 거부 의향서 및 자신의 장례와 유산 정리 등에 대한 엔딩노트를 미리 작성할 것을 권한다. ‘다 아는 얘기’다 싶다가도 한 번쯤 정독하며 스스로가 누락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만들어졌다. 욕심을 더 낸다면 가벼운 영화 대신 인문학이나 정신건강학에서의 은퇴, 인생 2막, 죽음에 대한 연구 결과 등을 톺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조금 더 독자가 손을 뻗을 수 있도록 표지 디자인이나 꾸밈새에 신경을 쏟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중랑구, 대형 생활폐기물 배출도 스마트하게

    중랑구, 대형 생활폐기물 배출도 스마트하게

    서울 중랑구가 가구, 가전제품, 자전거, 전기장판, 여행가방 등 대형 생활폐기물을 간편하게 배출할 수 있는 스마트 청소 행정을 도입했다.중랑구는 대형 생활폐기물 인터넷 및 모바일 배출 신고 시스템을 구축해 이달부터 운영에 나섰다고 31일 밝혔다. 폐기물 신고부터 배출에 이르기까지 체계를 간소화해 주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구에 따르면 기존에는 기존에는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접수를 하고 계좌이체 방식으로 결제한 뒤, 신고필증을 출력해 대형 생활폐기물에 부착해야 했지만, 이번 시스템 도입으로 모바일 ‘중랑구 대형생활폐기물 인터넷 신고센터’에서 배출 신고 및 수수료 결제를 한번에 할 수 있게 됐다. 배출자 이름과 연락처, 배출 장소, 배출 품목, 배출일 등을 입력해 신고한 후 수수료를 결제하면, 신고내역과 접수번호가 문자메시지로 전송된다. 확인한 접수번호를 대형 생활폐기물에 기재해 수거일 전날 지정한 장소에 내놓으면 수거가 이뤄진다. 컴퓨터, 전자렌지 등 소형 폐가전을 비롯해 그동안 품목이 없어 신청이 불편했던 유아용 매트 등도 포함하는 등 배출 신청 품목을 대폭 늘렸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여기는 인도] 전교생이 단 1명인 학교와 ‘참교육’ 전하는 스승

    [여기는 인도] 전교생이 단 1명인 학교와 ‘참교육’ 전하는 스승

    인도 동부에 있는 비하르 주(州)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가야 지역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한 곳 있다. 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다. 전교생이 한 명에 불과한 이 학교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미국 CNN에 소개된 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은 잔하비 쿠마리로, 올해 7살인 여학생이다. 작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수줍은 얼굴로 등교하는 쿠마리를 맞는 사람은 이 학교에 단 두 명뿐인 교사 중 한 명인 프리얀카 쿠마리다. 이 학교는 1972년 개교해 약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엄연한 공립학교지만, 최근 공교육을 불신하는 학부모들이 늘면서 학생 수가 빠르게 줄었다. 인도 교육 당국은 학생에게 자전거와 교복, 신발과 책가방부터 무료 점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학생과 학부모를 공립학교에 머물게 하려는 노력을 펼쳐왔지만, 노력이 무색할 만큼 교실은 텅텅 비어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의 뜻에 따라 인근 대도시에 있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간 탓이다. 하지만 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인 쿠마리의 사정은 다르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은 쿠마리의 부모는 딸을 사립학교에 보내기는커녕 교육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마리는 배움을 원했고 올해 공립 초등학교 입학을 희망하자, 비하르주 교육 당국은 논의 끝에 이를 허가했다.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학교의 명맥을 잇고, 더 나아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하르주 가야 지역 대표인 다름라자 파스완은 “어떻게 우리가 학교 문을 닫을 수 있겠나. 만약 학교 문을 닫는다면 이 가난한 소녀에게는 정의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아이도 공부할 권리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쿠마르는 현재 두 명의 선생님과 함께 영어 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쿠마르는 “영어로 내 이름을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금은 영어로 과일의 이름이나 색깔을 말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함께 공부하거나 놀거나 이야기 할 친구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쿠마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는 “오랫동안 차별에 시달려 왔으며, 역사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최하층 카스트 출신의 학생이 헌신적으로 배우려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면서 “이 학생이 없다면 우리 교사들도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도 이 소녀를 매일 간절히 기다린다”고 전했다. 쿠마르의 어머니는 “학교가 딸을 위해 계속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면서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사립학교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만약 이 학교의 지원이 없었다면 내 딸은 문맹으로 살아가야 했을 것”이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벤츠 여검사’사건연루,전직 변호사 법률 자문료 받았다가 징역형

    ‘벤츠 여검사’사건연루,전직 변호사 법률 자문료 받았다가 징역형

    ‘벤츠 여검사’ 사건에 연루돼 변호사 자격을 잃은 판사 출신 전직 변호사가 법률자문 대가로 돈을 받았다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17단독 김용중 부장판사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57) 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법률자문 대가로 받은 800만원을 추징했다. A 씨는 2018년 4월 지인으로부터 민·형사사건 부탁을 받고 1천900만원을 받은 뒤 법무법인 한 변호사에게 사건수임을 맡기면서 1천900만원 중 1천100만원을 수임료 명목으로 주고 나머지 800만원은 자신이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변호사법 위반죄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이 사건 범행을 한 점,수사가 시작되자 800만원을 반환하고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택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 씨는 이 사건 판결에 앞서 지난해 4월 변호사 자격이 없으면서 형사사건 소송 서류를 작성하고 법률 조언 대가로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바 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였던 A 씨는 2011년 세간을 시끄럽게 한 부산 법조비리 사건인 ‘벤츠 여검사’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다. 벤츠 여검사 사건은 A 씨가 내연관계에 있던 현직 여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부탁하며 벤츠 차량과 법인카드,명품 가방 등을 건넸다며 A 씨와 또 다른 내연관계에 있던 사람이 검찰에 탄원하면서 법조 비리로 번진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벤츠 차량 등을 ‘사랑의 증표’로 판단하면서 A 씨는 무죄를 받았다. A 씨는 당시 다른 내연녀로부터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1천만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유죄를 받아 2015년 변호사 등록이 취소됐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똑똑 우리말] 검정과 검정색/오명숙 어문부장

    “녹색 채소가 건강에 좋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검정색 슈퍼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검정색’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의 효과 때문이다.” 윗글에서와 같이 ‘검은색’과 ‘검정색’을 혼동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검은색” 또는 “검정”을 “검정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검은색’은 ‘검다’의 활용형인 ‘검은’과 ‘색’으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검정’은 그 자체로 검은 빛깔이나 물감을 나타내는 명사다. 여기에 다시 ‘색’이란 말을 덧붙인 ‘검정색’은 바르지 않은 형태다. 색깔을 나타내는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다. 노랑색·빨강색·파랑색·하양색도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노랑색 티셔츠”, “빨강색 운동화”, “파랑색 가방”, “하양색 양말”처럼 사용하면 안 된다. 노랑·빨강·파랑·하양은 그 자체로 색깔의 의미를 지니므로 굳이 ‘-색’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노랑·빨강·파랑·하양으로 쓰거나 노란색·빨간색·파란색·하얀색으로 고쳐 써야 한다. ‘소라색’과 ‘곤색’ 역시 피해야 할 표현이다. 소라색은 하늘을 뜻하는 ‘공’(空)의 일본 발음 ‘소라’(そら)에 한자어 ‘색’(色)이 합쳐진 말이다. 우리말 ‘하늘색’으로 바꿔 써야 한다. ‘곤색’도 마찬가지다. ‘감’(紺)은 검푸른 빛을 띤 남색을 뜻하는 한자인데 일본어로는 ‘곤’(こん)으로 발음한다. 여기에 ‘색’이 합쳐진 형태다. 곤색 대신 감색으로 표현하는 게 바람직하다. oms30@seoul.co.kr
  • [안녕? 자연] 구조된 바다거북 배설물서 인간이 버린 쓰레기 ‘와르르’

    [안녕? 자연] 구조된 바다거북 배설물서 인간이 버린 쓰레기 ‘와르르’

    낚싯줄에 걸렸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바다거북에게서 생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가 발견됐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그 정체였다. 라이브사이언스 등 해외 매체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한 남성은 싼끌레멘떼 델 뚜쇼 해변에서 낚싯줄에 걸린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발견했다. 그는 과거 현지 해양동물보호단체로부터 훈련받은 ‘낚싯줄에 걸린 해양동물 구조 방법’을 떠올려가며 조심스럽게 바다거북을 구조한 뒤, 곧바로 인근 구조센터에 전달했다. 구조센터 수의사들은 이 바다거북을 보자마자 심각한 ‘건강문제’가 있음을 눈치채고는 정밀검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바다거북의 배설물에 각종 쓰레기가 섞여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다거북의 배설물 안에는 사람이 버린 딱딱한 플라스틱부터 나일론 재질의 가방까지, 온갖 쓰레기가 포함돼 있었다. 무게는 13g 정도로 무겁진 않았지만 부피는 상당했다. 엑스레이(X-ray) 검사 결과도 비슷했다. 바다거북의 뱃속에는 미쳐 배설물로도 나오지 못한 각종 쓰레기가 가득했다. 수의사들은 이 바다거북이 문제의 쓰레기들을 해파리나 해초 등으로 착각하고 삼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의사들은 약물 등을 투여해 뱃속에 가득 찬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제거하는 치료를 시작했고, 바다거북은 현재 건강을 회복해가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해양동물보호단체에 따르면, 바다거북이 구조센터로 이송된 것은 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12일에는 역시 바다거북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돼 구조센터로 옮겨졌는데, 이 바다거북의 소화기관 안에서도 다량의 쓰레기가 발견됐었다. 해당 단체의 한 수의사는 “해양생물이 쓰레기를 삼킬 경우 소화기관에 장애가 생겨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멸종위기의 바다거북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다거북의 개체 수가 위협을 받는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바다거북의 알을 과도하게 남획하거나 다 자란 바다거북을 사냥하는 사람이 늘면서 바다거북 개체수가 급감했고, 결국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통근자K] ‘신종코로나’의 엄습, KTX 안에서 마스크 안 썼더니

    [통근자K] ‘신종코로나’의 엄습, KTX 안에서 마스크 안 썼더니

    [편집자주] ‘통근자K’는 세종시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매일 역출퇴근하는 ‘통근자’ 강주리(K) 기자의 출퇴근길 공유하고 싶은 순간들을 취재수첩 형식으로 만든 공간입니다. 통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기침소리조차 낮게…너도나도 마스크서울역 의류매장 직원·약사 모두 마스크국내 잇단 확진자 발생에 감염공포 확산中발표 사망자 106명·확진자 4515명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돌아온 숨가쁜 출근길. 세종시를 벗어나 오송역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열차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뿔싸. 마스크. 전날 야근하면서 그리고 출근 준비 중에 인공지능(AI) 스피커가 떠들어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일명 ‘우한 폐렴’) 뉴스를 수차례 들었는데도 깜빡 놓치고 말았다. 기차는 출발했고 더 이상 갈 데는 없다. 창문조차 밀폐된 공간. 한 시간 정도를 민폐끼치지 않고 가는 게 나의 목표였다. 기차가 굴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 모습이 그대로 창문에 투영됐다. 내 앞뒤, 내 옆, 내 옆옆까지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내 주변에서는 내가 유일했다. 연휴 전 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중국에 다녀온 국내 신종코로나 확진자들이 잇따라 나오고 일부 확진자들은 보균 상태로 강남·일산·평택 등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닌 사실 등이 확인되면서 사람들의 감염 공포는 더욱 커졌다. 실제 28일 0시 기준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는 중국 내 30개 성에서만 ‘우한 폐렴’ 확진자가 4515명, 사망자는 106명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하루 전보다 확진자는 1771명, 사망자는 26명 늘어난 수치다. 홍콩·마카오·대만 등 중화권에서 20명, 미국·태국·싱가포르·일본·호주·한국·독일·말레이시아·프랑스·네팔·스리랑카 등 확진자가 나오는 나라들도 점점 늘고 있다.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기차를 탄 고객들은 기침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신종코로나가 감염자의 기침을 통한 침방울 등을 의해 호흡기나 피부 접촉으로 감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차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긴장감 때문에 기침은커녕 단 한번의 헛기침조차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소 들어왔던 기침 소리보다 훨씬 작게 혹은 아예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기침을 짧게 하고 그쳤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조금 앞자리서 기침 소리가 연이어 나오자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잠시 내렸던 마스크를 다시 올리는 옆자리 승객이다. 이날 내가 탄 칸은 8호차.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부르는 소리조차 이날은 더 뜸한 듯했다. 한번 감기에 걸리면 주로 독한 기침 감기를 앓는 나는 목의 건조함을 줄여줄 캔디를 항상 비상용으로 들고 다닌다. 가방에 있던 비상용 캔디가 오늘 내게 그토록 큰 위안이 될 줄은 집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역이 정차할 때마다 특수한 마스크를 쓰신 분들이 어렵지 않게 기차에서 보였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전화통화에서는(열차와 열차 사이의 통로칸에서 통화해야 하지만 8호차는 아이들이 많이 타서 그런지 실내에서 종종 어른들이 통화를 한다) ‘신종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들린다.행여나 진상·민폐 고객이 될까봐 눈치와 긴장의 끝을 놓치 못한 채 도착한 서울역. 내려보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더욱 많이 보인다. 서울역내 의류매장 외부 매대에 선 직원들도, 물건을 고르는 손님들도 모두 ‘마스크 가족’이었다. 마스크를 사러가기 위해 들렀던 서울역 내 약국에는 여행객들의 기다란 줄이 늘어섰고 약사들도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신속하게 마스크 상자를 비워내고 있었다. 마스크를 사서 코와 입을 가리자 특유의 마스크 냄새가 확 풍겨왔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가는 광화문 풍경은 너나 할 것 없이 하얀 마스크, 까만 마스크 등 마스크맨들의 행진이었다. 회사에 나와 일을 해야하는 직장인들의 통근길 전투가 신종코로나로 더욱 치열하지만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이집으로부터 감염성이 높은 신종코로나가 기승이니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원에 오기 전 병원에 꼭 들러 진단을 받고 마스크를 한 채 등원해달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이번 주 금요일 박물관 견학도, 다음달 현장 학습도 모두 취소 또는 연기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절에 시댁으로, 친정으로 장거리 이동 끝에 찬바람을 쐬어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아들이 어제 저녁 물었다. “엄마 마스크 언제까지 써요?” 집에서 회사까지(door-to-door) 왕복 5시간을 통근하는 워킹맘인 난 대답했다. ‘중국에서 대유행을 지나 6~7월쯤 잠잠해진다’는 홍콩 한 전문가의 무서운 분석 대신 “금방 지나갈거야. 그때까지 손 자주, 깨끗이 씻기. 약속~!”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정치DNA는 타고날까…세계의 세습정치인은

    정치DNA는 타고날까…세계의 세습정치인은

    문희상 아들 지역구 세습 논란으로 본 해외의 세습 정치일본은 세습정치 천국...日 고이즈미 아들, 차기 총리 물망트뤼도 加 총리 부친도 유명 총리, 美 케네디가家도 유명‘지역구 세습’ 비판이 불거진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의 공천 문제로 정치권 내 논란이 뜨거웠다. 문 부위원장은 앞서 23일 결국 출마를 포기하기로 했지만, 과거에도 이같은 논란이나 실제 대를 이어 정치에 도전하는 사례는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당장 우리는 세계에서도 흔치 않게 부녀 대통령을 낳은 국가이기도 하다. DNA를 물려받는 것일까, 단지 아버지의 후광을 덕본 것일까. 해외 사례들을 살펴봤다. ●日 세습정치 배경된 ‘3반’ 세습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국가는 바로 이웃인 일본이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최고회의 공개 발언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정치권력의 대물림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일본에서는 세습 정치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아베 신조 현 총리만 해도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중의원에 이어 대를 이어가며 정치를 하고 있다. 젊은 나이와 준수한 외모를 갖췄고, 차기 총리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은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그가 실제 총리가 되면 대를 이어 일본 내각을 이끄는 셈이 된다. ‘패밀리 비즈니스’ 같은 형태가 된 일본의 세습 정치는 해외에서도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는 ▲기반 ▲칸반(간판·지명도) ▲카반(가방·정치자금)등 ‘3반’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으로 꼽는데, 정치가문에서는 이같은 ‘3반’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정치신인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디플로마트는 “2세 정치인은 ‘고엔카이’로 불리는 후원회를 선대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면서 “세습 정치인의 승률은 80% 수준으로, 2대, 3대를 넘어 5대 정치인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고 전했다.●정치DNA 물려받나 해외뉴스의 단골손님들인 세계의 현직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정치 명문가 출신은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 진보의 아이콘이자 40대 젊은 총리로 주목을 받았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대를 이어 캐나다를 이끌고 있는 2세 정치인이다. ‘캐나다의 케네디’로 불리는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는 17년간이나 총리를 지낸 정치의 거목이었다. 2015년 아들 트뤼도의 총선 압승 배경에는 아버지의 후광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부자 총리’의 임기를 모두 합하면 이미 20년을 넘긴 셈이 된다.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외조부가 유럽인권위원회 의장을, 아버지 스탠리 존슨은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다. 영국의 경우 상원은 세습·지명되기 때문에 당연히 세습 의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제도적 배경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를 이어 국가를 이끄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부시 가문을 꼽을 수 있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는 각각 미국의 41대와 43대 대통령을 지내며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미국의 또다른 정치명문가는 케네디 가문이다. 존 F 케네디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의 2009년 타계 이후 미 정가의 혈통주의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최근 조 케네디 3세 하원의원 등 케네디가 젊은 정치인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바람의 시작/박준

    바람의 시작/박준

    며칠 전 경남 밀양을 지났습니다.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는 밀양이지만 이처럼 길 위로 지난 것은 여러 번입니다.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아무런 일도 없이 밀양에 와야지, 여행이라 할 것도 없이 밀양에 와야지, 와서 며칠이고 머물러야지’ 하고 말입니다. 이것을 두고 소망이나 소원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거창하겠지요. 그러니 바람이나 희망쯤으로 해 두겠습니다. 바라고 희망하던 그날이 오면, 저는 아마 밀양역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할 것입니다. 역 밖으로 나와서 가장 먼저 그동안 간판만 보며 군침을 삼켰던 밀면집에 들어갈 것입니다. 오후 두 시 정도 되는 늦은 점심이나 오후 다섯 시쯤 되는 이른 저녁에 들어서서 혼자 테이블에 앉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비빔밀면과 물밀면 사이에서 고민할 것입니다. 만두나 전병처럼 곁들일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혼자 왔다는 미안함을 핑계 삼아 함께 주문할 테고요. 밀면을 먹으면서 누구를 떠올리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난히 신맛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고, 면 요리를 먹을 때면 으레 들어 있는 삶은 계란을 남겨 두었다가 마지막 남은 면발과 함께 먹던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지금은 제가 생각하지 못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누가 되었든 그리울 것입니다. 누가 되었든 그리워서 더 좋아질 것입니다. 밥을 먹고 나온 후에는 천변을 걸을 것입니다. 밀양강은 조금 더 남쪽으로 흘러 삼랑진쯤에서 낙동강과 만나며 스스로의 이름을 숨기게 됩니다. 천변을 걷는 동안 상상력이 좋지 않은 저는 분명 ‘밀양 아리랑’의 노랫말을 더듬어 볼 것입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로 시작되었다가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으로 이어지는 노래 말입니다. 저녁이 깊어지면 숙소도 하나 구할 것입니다. 가방을 내려두고 거칠어진 몸을 씻을 테지요. 잠자리에서는 누워 한참이나 뒤척일 것입니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새벽쯤에야 깊은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뜰 것입니다. 눈을 뜨고 나서는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 탓에 아주 잠시나마 멍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의 이루어짐은 그것을 바라고 희망하던 사람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것이 혹은 계획이라는 것이 늘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바람과 희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진다는 말 자체는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요. 밀양에 머물고 싶어 했던 그간의 바람이 없었다면 어쩌다 그곳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를 그 음식 앞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결국 그 사람과의 만남을 부를 테고요. 그러니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이 많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생각 역시 저의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그리고 믿음이기도 합니다. 바람과 희망 그리고 믿음에 관해 제가 좋아하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기왓장에 흰 글씨로 자신의 소원을 적는 ‘기와불사’. 저는 그 기왓장에 적힌 사람들의 소원을 유심히 살펴보곤 합니다. 거기에 요행이나 무리한 소원을 적어놓은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의 기왓장에 가족이 서로 다른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으며 ‘행복’이나 ‘화목’ 같은 말들을 적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 글자들을 하나하나 눈에 넣으며, 사람의 바람과 희망에는 이미 자신이 이루어낸 것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이 아니었다면 그 깊은 산사까지 여행을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기왓장에 소원을 쓴 가족은 이미 소원을 이룬 셈입니다. 환하게 열린 한해의 시간들 속에서 어떤 바람을 품어야 할까요. 그 바람은 어떻게 현실이 될까요. 그리고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꺼내게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음의 바람과 삶의 현실과 인간의 말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멀지 않음의 힘으로 우리는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오래된 저의 믿음입니다.■ 박준 시인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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