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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아들은 데이트도 남달라”…‘이 건물’ 한 층 폐쇄한 트럼프 아들

    “대통령 아들은 데이트도 남달라”…‘이 건물’ 한 층 폐쇄한 트럼프 아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내아들 배런(19)이 최근 뉴욕의 상징물로 유명한 트럼프타워 한 층을 통째로 폐쇄한 채 데이트를 즐겼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미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배런은 데이트를 위해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한 층을 폐쇄했다. 배런은 보안상의 이유로 가문 소유 건물에서 데이트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생인 배런은 지난해 9월 뉴욕대 스턴경영대에 입학했다. 현재 백악관에 거주하며 워싱턴DC 캠퍼스 수업을 듣고 있다. 정치·공공정책·역사·경제·언론학 등을 수강 중이라고 한다. 일부 매체는 배런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배런은 확실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키가 크고 잘생겼다. 많은 사람이 그를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학생은 배런에 대해 “키가 크고 어색해 보였지만 그는 정말 멋진 남자였다. 그를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배런은 트럼프와 멜라니아 여사 슬하의 유일한 자녀다. 4명의 이복형과 누나가 있으며, 이들은 트럼프가 앞선 두 번의 결혼에서 낳은 자녀들이다. 배런은 트럼프 가문의 정식 후계자라는 평가와 동시에 2m가 넘는 큰 키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빼닮은 외모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부모님을 따라 열 살 나이로 백악관에 입성한 배런은 아버지의 연설 도중 하품을 하며 졸음을 참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선 젊은 남성 유권자 표를 끌어모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 조성환 경기도의원 “병역의 자부심, 다음 세대로”

    조성환 경기도의원 “병역의 자부심, 다음 세대로”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성환 위원장(더불어민주당, 파주2)은 9월 26일, 연천 전곡리선사유적지에서 열린 ‘2025 병역명문가 초청행사’에 참석해 “병역명문가의 헌신은 국가와 지역사회를 지탱해 온 소중한 자산”이라며, “병역의 자부심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병역명문가 11개 가문이 참석해 인증패 수여, 오찬, 안보 견학 등을 함께했다. 특히 구택환 가문과 정중은 가문 등 세대를 잇는 헌신과 지역사회 봉사를 실천해온 모범 사례가 소개되며 큰 공감을 얻었다. 조성환 위원장은 축사에서 “연천은 오랜 시간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었고, 그만큼 지역 주민과 병역명문가에게 요구되는 책임도 막중했다”며 “최근 연천이 기회발전특구 지정 논의 등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에 매우 고무적”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조 위원장은 병역명문가에 대한 예우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대표 발의한 「경기도 병역명문가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소개했다. 지난 6월 통과된 개정안은 병역명문가 지원 대상을 주소지와 무관하게 전국 단위로 확대하고, 여성 의무복무자도 예우 대상에 포함한 것이 핵심이다. 조 위원장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병역명문가도 경기도 내 문화시설 이용 시 같은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병역에 대한 사회적 예우는 지역이나 성별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조 위원장은 “병역을 성실히 이행한 가문이 정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의회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 순수성 지닌 혁명가이자 시대의 이상 품은 ‘황제의 화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순수성 지닌 혁명가이자 시대의 이상 품은 ‘황제의 화가’[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佛 왕립 아카데미 수상 뒤 로마 유학고대 예술의 애국심 등 고전적 가치화면 구도·인물 동작·절제된 색채로혁명의 파고 앞 시민들에게 되새겨나폴레옹 즉위 뒤 황제 제1화가로알프스 산맥 넘는 ‘전쟁 영웅’ 묘사펜을 든 헌신적 통치자로 그리기도권력·예술 오가며 시대적 언어 창조프랑스 신고전주의 미술을 확립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가장 정치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탁월한 화풍과 압도적인 실력으로 파리 아카데미를 장악했던 그는 프랑스 대혁명기에는 혁명의 화가로, 나폴레옹 제국 시기에는 황제의 화가로 불리며 예술과 권력이 교차하는 가장 뜨거운 자리에 서 있었다. 다비드는 단지 권력에 복무한 화가였을까? 그가 남긴 편지와 명언, 당시의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다비드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이념적 순수성을 지닌 혁명가이자 동시에 고전의 엄격함과 시대의 이상을 함께 품은 예술가였다. 다비드의 삶과 역사화들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시대의 언어로 써내려간 한 화가의 실험이자 선언이었다. 첫 번째 명언 “예술에서 아이디어가 표현되는 방식은 아이디어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문장은 신고전주의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는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회화의 구성과 형식이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을 바꾸고 사회 전체의 도덕적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그의 생각은 1775년부터 1780년까지 이어진 로마 유학 시절에 결정적으로 형성된다.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다비드는 26세에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최고 영예인 로마 대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다. 고대 로마의 조각과 벽화에서 신화 속 영웅들을 마주하게 된 순간 그는 깨달았다. 미술이 이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고대 예술에서 애국심과 영웅주의, 도덕적 미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읽어냈다. 그것이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간결한 구도, 명확한 선, 인물의 당당한 자세는 그 자체로 도덕적 교훈을 전달한다”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다비드는 고대 예술의 개념과 형식미를 빌려와 프랑스 시민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예술을 펼쳐나간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①는 고대 로마 공화국의 덕성과 희생 정신을 시민들에게 되새기려는 시도가 가장 생생하게 구현된 작품이다. 다비드의 첫 왕실 의뢰작인 이 역사화는 1785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돼 대중과 비평가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신고전주의 미술의 전형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 직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작품이 전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메시지는 혁명가들과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림 속 장면은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가 아버지 앞에서 알바 왕국과의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맹세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화면의 구도, 인물의 동작, 빛의 분할, 절제된 색채 사용 모두가 작품의 메시지인 도덕적 이상을 관객에게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 고대 조각처럼 절제된 남자들의 자세, 강직한 수직 구도와 기둥은 결연한 각오를, 슬픔에 젖은 여성들의 곡선형 구도는 감정과 연약함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의 영웅담을 재현한 역사화가 아니다. 프랑스 시민들에게 로마 공화국의 가치인 희생, 책임, 공동선을 회화를 통해 일깨우려는 도덕적 제안이었다. 두 번째 명언 “가장 행복하고 경이로운 혁명의 역사를 영광되게 할 애국심과 고귀한 감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을 나의 의무로 삼았다.” 1790년,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의 열기를 안고 지방 도시 낭트로 향하며 이런 말을 남긴다. 공화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초상을 그려 달라는 요청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시기, 그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의 측근이자 국민공회 의원이었고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진 자코뱅당원이었다. 혁명은 그에게 예술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혁명의 이상을 전파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위한 영웅적 서사를 창조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했다. 다비드가 혁명이념을 현실에 구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마라의 죽음’②이다. 다비드는 혁명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던 장폴 마라가 1793년 7월 암살당한 직후 국민공회의 요청을 받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붓을 들어 마라의 죽음을 영웅 신화로 승화시켰다. 화면 속 마라는 고통도 분노도 없는 얼굴로 고요히 잠들어 있다. 단순한 구성, 극적인 빛의 처리, 욕조 안에서도 국민의 편지에 답장을 쓰기 위해 펜을 쥔 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연출한 모든 요소가 혁명 정신의 순결함을 강조하며 관객을 감동시켰다. 현실의 죽음을 순교의 모습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혁명가의 죽음조차도 정치적으로 활용한 다비드의 역사화 전략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 그림을 발표한 지 1년 후 다비드는 혁명의 희생자가 된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함께 다비드는 공포 정치의 책임자로 몰려 체포되고, 두 차례 감옥에 수감된다. 그가 형무소에 있는 동안 많은 제자와 동료 화가들이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의 간절한 노력 덕분에 다비드는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는 한동안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나 조용히 작품 활동에 집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권력의 부름에 응하게 된다. 다름 아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세 번째 명언 “나는 내 영웅의 그늘 속에서 후세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의 예술적 유산이 나폴레옹의 영광과 함께 기억되길 바랐던 다비드의 야심을 보여 준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다비드에게 또 다른 영웅상을 제공했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 것은 다비드의 공화주의적 신념과 맞지 않았지만, 그는 황제의 카리스마에 매료됐다. 그에게 나폴레옹은 예술로 신화화될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다비드는 황제의 제1화가로 임명됐다. 그의 붓은 이제 혁명의 이상이 아닌 제국의 전설을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③은 다비드가 황제의 위대함을 홍보 선전하는 탁월한 연출가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이 1800년 5월,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은 전설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하지만 이 장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능숙하게 말을 탈 수 없었고 실제로는 노새를 타고 험준한 산을 넘었다. 하지만 다비드는 평범한 행군을 한 편의 신화로 바꾸었다. 그는 황제를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전장을 향해 돌진하는 전쟁 영웅으로 묘사했다. 화면 아래 한니발, 샤를마뉴, 보나파르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을 위대한 정복자의 계보에 올려놓은 의도적인 장치다.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에게 직접 포즈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황제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위대한 고대인들의 초상화가 그들과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중요한 것은 특징의 정확성이 아니라 성격이다.” 다비드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자신의 아들을 말에 태워 포즈를 연출하고 나폴레옹의 군복과 흉상을 바탕으로 신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 다비드는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에서 보여 준 영웅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택한다. 이번엔 칼이 아닌 펜을 든 황제④다. 나폴레옹은 군복을 입고 서재에 서 있지만 그는 군사적 영웅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밤새워 일하는 헌신적인 통치자다. 시계는 새벽 4시 13분을 가리키고, 촛불은 거의 꺼져 가고 있으며, 책상 위엔 펜과 잉크, 법전과 초안 문서들이 흩어져 있고, 황제의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스타킹은 구겨져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관객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황제는 쉬지 않고 일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다.” 특히 책상 위에 막 초안된 문서가 프랑스 최초의 민법전, 즉 나폴레옹 법전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나폴레옹은 국민을 위한 법과 제도의 창시자이며 헌신적이고 이성적인 근대적 군주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사실적인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치밀하게 구성된 정치적 이미지다. 당대 권력자가 어떻게 미술을 여론 형성의 도구로 활용했는지, 예술가가 권력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굳혔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1815년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나폴레옹 제국이 무너지자 다비드는 정치적 보복을 피해 1816년 68세의 나이로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한다. 벨기에 왕은 프랑스의 거장을 따뜻하게 환영했고 다비드는 남은 생을 작품 활동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며 유럽 전역에서 존경받는 예술가로 남았다. 물론 다비드에게는 정치적 화가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그러나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이상을, 인간을 담는 것이다”라는 다비드의 명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은 권력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낸 거장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삐!삐!” 금속탐지기 울리자 고대 금화 쏟아졌다…“주인이 숨겨두고 못 찾았을지도”

    “삐!삐!” 금속탐지기 울리자 고대 금화 쏟아졌다…“주인이 숨겨두고 못 찾았을지도”

    이스라엘 갈릴리호 인근의 고대 로마 도시 히포스에서 금화 수십개와 귀금속 수십점이 발견됐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라이브 사이언스 등에 따르면 하이파 대학 마이클 아이젠버그 박사가 이끄는 발굴팀은 갈릴리호 인근 히포스 유적지에서 1400년 전 비잔틴 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순금 주화 97개와 진주, 준보석, 유리 장시 귀걸이 등 귀금속 수십점을 발굴했다. 아이젠버그 박사에 따르면 이 유물은 사산 제국이 614년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기 불과 몇 년 전 도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의 정복으로 이 지역이 크게 재편되기 불과 몇 년 전이다. 발굴팀은 이 유물들이 사산 제국 군대가 도시로 진격해 올 때 어느 부유한 주민, 아마도 금 세공인이 숨겨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 보물들은 약 1400년간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되다가 우연히 발견됐다. 발굴팀은 약 6년 전부터 이 인근 발굴에 나섰지만 당초 발굴 목표는 보물이 아니었다. 지난 7월 조사 당시 팀원 중 금속탐지기 조사를 맡은 에디 립스먼은 발굴 현장을 돌아다니다 실수로 돌을 건드렸다. 그때 갑자기 탐지기가 “삐!삐!삐!”하고 격렬한 신호음을 냈다. 립스먼은 “장비가 미친 듯이 울렸다. 그곳에서 금화가 계속해서 발견됐다. 믿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유물들은 과거 이미 한 차례 발굴이 진행됐던 구역의 두 벽 사이에서 발견됐다. 금화에 남아 있는 직물 잔해로 보아 천 주머니에 담겨 숨겨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발굴팀은 전했다. 아이젠버그 박사는 “누군가 적이 오는 것을 알고 가문의 재산을 모아 숨겼고, 위험이 지나가면 되찾으려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발견된 금화들은 로마 제국의 유스티누스 1세(518~527) 황제부터 헤라클리우스 황제(610~613) 초기까지 약 1세기에 걸쳐 주조된 금화로 분석됐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주화가 섞여 있어 화폐 연구 측면으로도 중요성이 크다고 발굴팀은 전했다. 고액 주화인 ‘솔리두스’뿐만 아니라 그 절반 가치인 ‘세미시스’, 3분의 1 가치인 ‘트레미시스’가 함께 발견됐는데, 트레미시스는 이스라엘 지역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주화라고 아이젠버그 박사는 설명했다. 이번 발견은 히포스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도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발굴팀은 전했다. 아이젠버그 박사는 “이전까지는 로마나 초기 비잔틴 시대에 비해 비잔틴 말기의 히포스의 건축 유물이 덜 웅장해 도시가 쇠퇴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상당한 양의 황금 보물은 당시 히포스에 여전히 부유한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도시가 충분히 번영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고 설명했다. 유물에 포함된 다양한 귀걸이 조각들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동일한 디자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발굴팀은 보물의 주인이 보석상이나 금 세공사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앞서 다른 연구에서 히포스의 한 교회에서 발견된 556년 명문(금속이나 돌에 새긴 글씨)에 기부자로 ‘금 세공사 시메오니오스’가 언급된 바 있다. 다만 아직은 추측의 영역이라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히포스는 7세기 아랍에 정복된 뒤 한동안 존속하다가 749년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뒤 쇠퇴해 지금까지 버려졌다.
  • 승리 뒤의 고뇌, 다니엘 체스터 프렌치의 ‘애도하는 승리’ [으른들의 미술사]

    승리 뒤의 고뇌, 다니엘 체스터 프렌치의 ‘애도하는 승리’ [으른들의 미술사]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에 자리한 다니엘 체스터 프렌치(Daniel Chester French)의 ‘애도하는 승리(Mourning Victory)’는 단순한 조각상을 넘어, 남북전쟁의 영광 뒤에 가려진 깊은 슬픔과 희생을 웅변하는 역사적 기념비이다. 이 대리석 여인상은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 가지와 성조기를 높이 들고 있지만, 고개를 숙이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어 제목처럼 ‘애도하는 승리’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개인의 비극이 빚어낸 숭고함 이 조각은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출신 멜빈 가문의 세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막냇동생 제임스 멜빈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전쟁에서 홀로 살아남은 제임스의 죄책감과 형제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프렌치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동기가 되었다. 프렌치는 하버드 동상과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링컨 좌상을 제작한 미국의 거장이다. 프렌치는 전사한 이들을 애도하는 슬픔과 국가에 헌신한 숭고함을 조형적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대리석 덩어리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인물의 형상은 죽음을 넘어 다시 태어나는 듯한 재탄생의 순간을 암시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 희생된 이들의 정신이 영원히 살아있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두 가지 몸짓, 하나의 이상 ‘애도하는 승리’는 원래 콩코드의 슬리피 할로우 묘지에 세워진 멜빈 기념비의 일부로, 메트가 소장한 작품은 그 복제품(레플리카)이다. 그러나 이 복제품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프렌치가 처음 구상했던 예술적 이상을 더 충실히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묘지에 설치된 초기 버전은 지형적 제약 때문에 월계수를 든 손의 위치가 수정되었지만, 메트 버전은 월계수를 든 오른팔을 뻗은 초기 설계안을 따랐다. 이는 한 인물이 같은 작품에서 다른 몸짓을 취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메트 버전에서 빅토리를 의인화한 이 여인상은 오른팔에 월계수 가지를, 왼팔에 성조기를 들어 ‘승리’를 상징하면서도,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표정은 엄숙해 ‘슬픔’과 ‘애도’의 무거운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처럼 공적인 기념비의 역할과 예술적 이상 사이의 긴장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것이 이 조각의 가장 큰 특징이자 힘이라 할 수 있다. 슬픔과 위엄의 조형적 공존 ‘애도하는 승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미덕은 상반된 정서의 공존이다. 숙연한 표정과 고개를 숙인 자세는 개인의 상실과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높이 든 성조기와 월계수는 국가적 영광을 상징한다. 죽음과 영광, 애도와 승리가 대립하지 않고 서로 맞물려 개인의 비극적 희생이 국가적 영웅주의로 승화되는 미국의 기념 조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용기, 헌신, 희생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으며, 미국이 지닌 힘과 책임이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 이러한 고통과 애도의 기억 위에 세워져야 함을 상기시킨다. 고개 숙인 채 성조기를 들고 있는 ‘애도하는 승리’처럼, 이 작품은 영광과 상실을 한 몸에 담아낸 숭고한 예술적 성취로 평가받고 있다.
  • 중독, 혐오, 부패… ‘팬의 미로’에 갇힌 진실

    중독, 혐오, 부패… ‘팬의 미로’에 갇힌 진실

    ‘숲의 신’은 심술궂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방향감각을 어지럽혀 자기 위치는 물론 사고력마저 잃게 만든다. ‘숲의 신’의 그리스식 이름은 팬(Pan), 여기서 나온 단어가 ‘패닉’이다. 숲은 자연에 있지만, 인간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종교나 신념, 성의 차이 등이 만든 숲이다. 그 숲엔 ‘팬의 미로’가 펼쳐져 있다. 누구도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천라지망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여자아이가 있다. 새 책 ‘숲의 신’은 바로 그 여자아이 이야기다. 1975년 8월의 어느 날 아침, 미국 뉴욕주 애디론댁산맥 자락의 청소년 숲 캠프에 참가한 바버라가 실종된다. 바버라는 평범한 13세 소녀가 아니다. 캠프는 물론 그 일대 광대한 삼림 보호구역을 소유한 반라(Van Larr) 가문의 딸이다. 지역 사회의 무수한 사람들이 반라 가문에 고용돼 살고 있다. 이 숲에서 실종된 아이는 또 있다. 바버라의 오빠 베어다. 14년 전 할아버지와 함께 하이킹을 떠난 베어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애먼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다 심장마비로 죽었고, 베어의 시신은 여태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뉴욕 최초의 여성 수사관인 26세 형사가 급파되는 등 한바탕 법석이 펼쳐지고 본격 수사가 시작된다. 누구나 짐작하듯, 이 숲은 범상한 공간이 아니다. 197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여성 인권에 관한 시각이 급변하던 때였고, 환경주의 정책이 계층 간 불평등의 그늘을 짙게 드리웠던 시기였다. 작가는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 갈등하는 인물들을 숲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 이야기를 엮어 간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 여성 혐오와 학대, 돈의 부패 방식 등 사회의 뒷면과 인간성의 균열 등이 낱낱이 드러난다. 애디론댁은 실제 1970년대에 로버트 개로라는 살인마가 연쇄 살인을 벌이던 곳이다. 책의 모티브도 이 사건에서 가져왔다. 작가는 사건이 벌어진 애디론댁의 오두막에서 기거하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숲과 등장인물 등이 매우 정교하고 단단하게 그려진 건 이 덕이다. 책은 슬로번 스릴러(slow-burn thriller) 장르로 분류된다. 그러니까 ‘천천히, 그러나 뜨겁게 불이 붙는’ 스타일이다. 초반에 뿌려진 밍밍한 ‘떡밥’들은 후반에 충실하게 회수된다. 책을 덮고 나면 아마 두 가지 영화를 짬뽕해서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싶다.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판(팬의 라틴어 이름)의 미로’, 그리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말이다. 책의 분위기가 딱 그렇다.
  • 가을엔 말과 함께 달린다… 한국마사회, 맞춤형 승마 프로그램 풍성

    가을엔 말과 함께 달린다… 한국마사회, 맞춤형 승마 프로그램 풍성

    마사회, ‘도심승마축제’ ‘재활·힐링승마’ 등으로 승마 대중화 앞장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어우러지는 가을은 승마를 즐기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한국마사회는 계절적 특성과 국민적 수요에 맞춰 다양한 승마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국민에게 새로운 여가문화를 제안하고 있다. 우선 렛츠런파크 서울 포니랜드에서는 가을 나들이 시즌을 맞아 매주 주말 ‘포니 승마체험’을 운영한다. 키 100cm 이상 어린이부터 초등학생까지 참여 가능하며, 걷기·꾸미기·빗질 등 교감 프로그램 ‘포니랑 놀기’도 함께 진행된다. 또 마사회 대표 캐릭터 ‘말마프렌즈’와 함께 즐기는 놀이공간 ‘포니 창의존’도 마련됐다. 어린이 중심의 포니체험 외에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도심승마축제’가 렛츠런파크 서울을 비롯해 안산, 세종, 울산 등의 시민공원을 중심으로 지역축제와 연계해 열린다. 특별한 승마체험도 있다. 소방관, 해양경찰, 가축방역직 등 공익직군과 범죄피해자·자살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힐링승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437명이 참여했으며, 올해는 일반 국민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강습비의 40%를 지원해 승마 대중화를 꾀한다. 65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 힐링승마’ 역시 올해부터 전국 단위로 운영 중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재활승마’는 신체 능력 고도화와 자신감 향상에 기여해 왔는데, 최근에는 가족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 돌봄 부담과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가족 간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고 있다. 청소년기 승마 교육도 눈에 띈다. 한국마사회는 학교체육승마 지원사업을 통해 지난해 52개교, 올해는 70여개 초·중학교에서 승마수업을 운영 중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승마 관련 내용이 반영돼 단위학교에 보급됐다. 승마장이 부족한 서울지역에는 ‘돌봄승마’를 새롭게 도입했다. 민간승마장 대신 우리동네 키움센터와 협업해 아이들에게 말과 교감할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마사회는 이처럼 지역·대상별 맞춤형 승마 지원사업을 통해 국민과 말산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는 동시에 승마를 국가적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가을은 승마를 즐기기에 최적의 계절인 만큼, 국민이 말과 함께 자연 속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승마를 통한 삶의 질 향상과 말산업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도쿄의 빛, 그 너머의 이야기 속으로

    도쿄의 빛, 그 너머의 이야기 속으로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가 어디인지 챗지피티(ChatGPT), 코파일럿(Copilot), 재미나이(Gemini)에게 물어보았다. 흥미롭게도 인공지능(AI) 모두 제일 먼저 언급한 곳은 도쿄타워였다. 오늘날 도쿄타워는 방송 송신탑의 역할도, 도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도 스카이트리에 넘겨줬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에게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전후 일본의 재건과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국가적 랜드마크로 남아있다. 희망을 쌓아 올린 빛 1953년 2월 1일, 공영방송 NHK가 일본 최초로 텔레비전 정규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초기에는 전파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민간 방송국이 생겨나면서 도쿄 지역의 방송 전파를 통합하고 도달 범위를 확대할 송신탑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건축가 나이토 타추(内藤多仲)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도쿄타워는 1957년부터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완공되었다. 에펠탑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도쿄타워는 처음부터 방송 송신탑이라는 명확한 ‘기능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도쿄타워의 또 다른 특징은 핵심 자재인 철강 조달 방식에 있다. 도쿄타워에 들어간 막대한 양의 철강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의 전차와 군함 등 군수 자산을 재활용한 것이었다. 역사가들과 건축가들은 파괴의 상징인 전쟁 무기가 국가 재건과 기술 발전의 상징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도쿄타워를 ‘일본이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의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허 속에서 살아가던 보통의 일본 사람들에게 도쿄타워가 희망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흔한 사진은 이제 그만! 특별한 도쿄타워 인생샷 명소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있다. 하지만 장소마다 가진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를 담고 싶은지 미리 정하고 간다면 더욱 특별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조죠지(増上寺) 600년 역사의 사찰인 조죠지에서는 고즈넉한 사찰의 모습과 도쿄타워를 함께 카메라 앵글에 담을 수 있다. 에도 시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쇼군 6명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해, 일본 사찰에 관심이 있다면 도쿄타워 사진이 아니더라도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푸른 하늘과 붉은 탑의 조화: 시바공원(芝公園) 조죠지와 도쿄타워를 둘러싼 시바공원에서는 푸른 하늘과 녹색 잔디가 선명한 붉은색 도쿄타워와 대비되어 매력적인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새로운 시선: 아자부다이 힐스 도쿄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자부다이 힐스는 초고층 주거시설과 최첨단 인프라로 구성된 신흥 부촌이자 새로운 랜드마크다. 이 곳 모리JP타워 34층에 있는 ‘힐스 하우스 스카이 룸 카페 앤드 바’는 도쿄타워를 가장 가깝고, 가장 매력적인 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른 장소들이 도쿄타워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곳이라면, 이곳에서는 눈높이보다 살짝 아래에 있는 도쿄타워를 볼 수 있다. -SNS에서 핫한 비밀의 장소: 토후야 우카이(とうふ屋うかい) 도쿄타워 바로 앞에는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된 고급 두부 요리 전문점인 토후야 우카이가 있다. 이곳 식당 앞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도쿄타워 SNS 맛집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있기 때문에 이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1시간 이상 대기는 기본이다.
  • 도쿄의 빛, 그 너머의 이야기 속으로 [한ZOOM]

    도쿄의 빛, 그 너머의 이야기 속으로 [한ZOOM]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가 어디인지 챗지피티(ChatGPT), 코파일럿(Copilot), 재미나이(Gemini)에게 물어보았다. 흥미롭게도 인공지능(AI) 모두 제일 먼저 언급한 곳은 도쿄타워였다. 오늘날 도쿄타워는 방송 송신탑의 역할도, 도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도 스카이트리에 넘겨줬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에게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전후 일본의 재건과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국가적 랜드마크로 남아있다. 희망을 쌓아 올린 빛 1953년 2월 1일, 공영방송 NHK가 일본 최초로 텔레비전 정규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초기에는 전파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민간 방송국이 생겨나면서 도쿄 지역의 방송 전파를 통합하고 도달 범위를 확대할 송신탑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건축가 나이토 타추(内藤多仲)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도쿄타워는 1957년부터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완공되었다. 에펠탑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도쿄타워는 처음부터 방송 송신탑이라는 명확한 ‘기능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도쿄타워의 또 다른 특징은 핵심 자재인 철강 조달 방식에 있다. 도쿄타워에 들어간 막대한 양의 철강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의 전차와 군함 등 군수 자산을 재활용한 것이었다. 역사가들과 건축가들은 파괴의 상징인 전쟁 무기가 국가 재건과 기술 발전의 상징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도쿄타워를 ‘일본이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의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허 속에서 살아가던 보통의 일본 사람들에게 도쿄타워가 희망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흔한 사진은 이제 그만! 특별한 도쿄타워 인생샷 명소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있다. 하지만 장소마다 가진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를 담고 싶은지 미리 정하고 간다면 더욱 특별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조죠지(増上寺) 600년 역사의 사찰인 조죠지에서는 고즈넉한 사찰의 모습과 도쿄타워를 함께 카메라 앵글에 담을 수 있다. 에도 시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쇼군 6명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해, 일본 사찰에 관심이 있다면 도쿄타워 사진이 아니더라도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푸른 하늘과 붉은 탑의 조화: 시바공원(芝公園) 조죠지와 도쿄타워를 둘러싼 시바공원에서는 푸른 하늘과 녹색 잔디가 선명한 붉은색 도쿄타워와 대비되어 매력적인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새로운 시선: 아자부다이 힐스 도쿄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자부다이 힐스는 초고층 주거시설과 최첨단 인프라로 구성된 신흥 부촌이자 새로운 랜드마크다. 이 곳 모리JP타워 34층에 있는 ‘힐스 하우스 스카이 룸 카페 앤드 바’는 도쿄타워를 가장 가깝고, 가장 매력적인 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른 장소들이 도쿄타워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곳이라면, 이곳에서는 눈높이보다 살짝 아래에 있는 도쿄타워를 볼 수 있다. -SNS에서 핫한 비밀의 장소: 토후야 우카이(とうふ屋うかい) 도쿄타워 바로 앞에는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된 고급 두부 요리 전문점인 토후야 우카이가 있다. 이곳 식당 앞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도쿄타워 SNS 맛집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있기 때문에 이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1시간 이상 대기는 기본이다.
  • 시립노인복지관 ‘스크린파크골프장’…용산 어르신들, 활기찬 노후 즐긴다[현장 행정]

    시립노인복지관 ‘스크린파크골프장’…용산 어르신들, 활기찬 노후 즐긴다[현장 행정]

    한남점, 스크린 타석·퍼팅장 갖춰“날씨 상관없이 할 수 있어 좋아”연내 삼각지점·남산점으로 확대 서울 용산구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는 실내 연습장이 문을 열었다. 서울 시립 노인복지관 가운데 파크골프장을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 18일 ‘용산스크린파크골프 한남점’ 개장식에서 “복지관에서 복지 정보도 얻고 파크골프장에서 친구분들과 어울리면서 활기찬 노후도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며 “생활 체육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 앞으로 삼각지점 등 스크린파크골프장을 추가해 나가겠다”고 했다. 파크골프는 저렴한 비용과 간편한 접근성 때문에 고령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생활스포츠다. 일반 골프와는 달리 채 하나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특히 실내 스크린파크골프는 날씨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다. 용산스크린파크골프 한남점은 스크린 타석 2곳과 퍼팅장 1곳을 갖추고 있다. 타석당 최대 4명이 동시 이용 가능하다. 각 타석에는 무료 대여용 골프채 2개가 비치돼 있다. 초급반 강좌 개설도 예정돼 있어 처음 접하는 어르신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안전한 운동환경을 위해 퍼팅장에는 스트레칭 밴드를 비치해 충분한 준비운동을 돕는다. 이용 요금은 1인당 3500원이다. 복지관 1층 키오스크에서 예약 후 1시간 50분 동안 이용 가능하다. 개장식에 참가한 어르신들은 실내스크린파크골프장 개장을 반겼다. 구재운(86)씨는 “파크골프를 날씨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실외 파크골프장도 늘려달라”고 했다. 용산구는 생활체육 인프라 확장을 위해 주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여가문화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용산 동부권의 첫 공공 수영장인 이태원초등학교 수영장은 리모델링 후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서울시 최초로 동 생활체육 파크골프 교실을 개설해 동호인 저변을 넓혔다. 오는 11월에는 용문동에 파크골프 퍼팅연습장을 선보인 뒤 연내 용산스크린파크골프 삼각지점과 남산점을 마련할 예정이다. 어르신들의 체육 활동 참여 확대를 위해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65세 이상 주민에게 스포츠시설 이용료도 지원하고 있다.
  • 219조 부호 아르노의 분노…프랑스 부자세 두고 나라 들썩

    219조 부호 아르노의 분노…프랑스 부자세 두고 나라 들썩

    초부유층 겨냥한 ‘부자세’ 논란프랑스가 추진하는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 도입 문제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제안은 자산 1억 유로(약 1637억 원) 이상을 보유한 약 1800가구에 매년 2%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검토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 파괴” vs “조세 정의 실현”유럽 최고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1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부자세는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아르노 가문은 포브스 기준 1570억 달러(약 219조 원)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LVMH는 루이비통과 디올 등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다. 그는 “나는 이미 프랑스에서 최대 납세자 중 한 명”이라며 “추가 세금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와 자본 유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자세 제안을 주도한 가브리엘 쥐크만 교수는 “나는 연구자일 뿐이며 조세 회피와 부의 집중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부자세를 통해 연간 최대 200억 유로(약 32조7000억 원) 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쥐크만의 멘토로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아르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제자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적 압박과 마크롱의 딜레마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준비하면서 사회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반영하지 않으면 불신임 표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86%가 부자세 도입에 찬성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친기업 기조를 흔들지 않으려 하지만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를 방치하기도 어렵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우리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부자세가 아니라 국가 지원은 받으면서 연대 의무를 거부하는 초부유층의 애국심 부재”라고 직격했다. 마린 톤들리에 녹색당 대표도 “부자세 논의가 막바지에 왔다는 증거”라며 “아르노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자본 이동의 불확실성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프랑스 내부 갈등을 넘어 글로벌 자본 이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부유층과 기업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 투자 환경은 약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부유층이 프랑스를 떠날 경우 예상 세수는 50억 유로(약 8조2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아르노 회장이 실제로 ‘탈프랑스’를 선택한다면 파급은 더욱 커진다. 아르노 개인과 LVMH 계열사가 내는 세금이 사라지면서 정부가 기대하는 세수는 크게 줄 수 있다. 파리 증시 1위 기업인 LVMH의 본사 이전은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리스크’를 각인시키며 증시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애국심 없는 거부”라고 공격하는 반면 우파는 “과도한 증세가 기업 탈출을 불렀다”고 반격하며 정국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단기적으로 좌파 논리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과 성장 둔화를 체감하며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스위스나 모나코,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프랑스 모델은 더 이상 부자와 기업을 붙잡아둘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할 수 있다. 전망: 경제와 정치의 시험대 이번 논란은 조세 정의 실현과 경제 경쟁력이라는 두 축의 충돌을 상징한다. 아르노는 “경제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쥐크만은 “조세 정의 실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맞선다. 마크롱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프랑스의 경제 정책뿐 아니라 유럽 자본 시장에도 파장이 일 수 있다. 다만 LVMH 같은 럭셔리 그룹이 생산 기반까지 프랑스를 떠날 가능성은 작다. 루이비통·디올·셀린 등은 ‘메이드 인 프랑스’(프랑스산)를 브랜드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장인 공방과 기술은 수 세대에 걸쳐 축적돼 해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 본사나 지주회사의 주소는 옮길 수 있어도 루이비통 가방에서 ‘프랑스산’ 표기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부 화장품이나 주류처럼 해외 생산이 가능한 품목은 예외지만 핵심 제품군은 프랑스 생산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 219조 부호의 분노…루이비통 제국, 부자세에 반기 [핫이슈]

    219조 부호의 분노…루이비통 제국, 부자세에 반기 [핫이슈]

    초부유층 겨냥한 ‘부자세’ 논란프랑스가 추진하는 초부유층 대상 ‘부자세’ 도입 문제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제안은 자산 1억 유로(약 1637억 원) 이상을 보유한 약 1800가구에 매년 2%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검토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 파괴” vs “조세 정의 실현”유럽 최고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1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부자세는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좌파 이념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아르노 가문은 포브스 기준 1570억 달러(약 219조 원)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LVMH는 루이비통과 디올 등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다. 그는 “나는 이미 프랑스에서 최대 납세자 중 한 명”이라며 “추가 세금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와 자본 유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자세 제안을 주도한 가브리엘 쥐크만 교수는 “나는 연구자일 뿐이며 조세 회피와 부의 집중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부자세를 통해 연간 최대 200억 유로(약 32조7000억 원) 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쥐크만의 멘토로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아르노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제자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적 압박과 마크롱의 딜레마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준비하면서 사회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반영하지 않으면 불신임 표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86%가 부자세 도입에 찬성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친기업 기조를 흔들지 않으려 하지만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를 방치하기도 어렵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우리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부자세가 아니라 국가 지원은 받으면서 연대 의무를 거부하는 초부유층의 애국심 부재”라고 직격했다. 마린 톤들리에 녹색당 대표도 “부자세 논의가 막바지에 왔다는 증거”라며 “아르노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자본 이동의 불확실성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프랑스 내부 갈등을 넘어 글로벌 자본 이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부유층과 기업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 투자 환경은 약화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부유층이 프랑스를 떠날 경우 예상 세수는 50억 유로(약 8조2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아르노 회장이 실제로 ‘탈프랑스’를 선택한다면 파급은 더욱 커진다. 아르노 개인과 LVMH 계열사가 내는 세금이 사라지면서 정부가 기대하는 세수는 크게 줄 수 있다. 파리 증시 1위 기업인 LVMH의 본사 이전은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리스크’를 각인시키며 증시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좌파가 “애국심 없는 거부”라고 공격하는 반면 우파는 “과도한 증세가 기업 탈출을 불렀다”고 반격하며 정국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단기적으로 좌파 논리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과 성장 둔화를 체감하며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스위스나 모나코,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프랑스 모델은 더 이상 부자와 기업을 붙잡아둘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할 수 있다. 전망: 경제와 정치의 시험대 이번 논란은 조세 정의 실현과 경제 경쟁력이라는 두 축의 충돌을 상징한다. 아르노는 “경제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쥐크만은 “조세 정의 실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맞선다. 마크롱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프랑스의 경제 정책뿐 아니라 유럽 자본 시장에도 파장이 일 수 있다. 다만 LVMH 같은 럭셔리 그룹이 생산 기반까지 프랑스를 떠날 가능성은 작다. 루이비통·디올·셀린 등은 ‘메이드 인 프랑스’(프랑스산)를 브랜드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장인 공방과 기술은 수 세대에 걸쳐 축적돼 해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 본사나 지주회사의 주소는 옮길 수 있어도 루이비통 가방에서 ‘프랑스산’ 표기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부 화장품이나 주류처럼 해외 생산이 가능한 품목은 예외지만 핵심 제품군은 프랑스 생산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 제주 ‘돌담쌓기’ 전통기술, 제주도 무형유산 공식 지정

    제주 ‘돌담쌓기’ 전통기술, 제주도 무형유산 공식 지정

    천년 넘은 ‘제주 돌담 쌓기’ 전통기술이 제주도 무형유산으로 공식 지정된다. 제주도는 제주의 자연환경과 생활방식이 결합된 독창적 전통 축조방식인 ‘제주 돌담 쌓기’에 대해 도 무형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주도 무형유산으로 22일 지정 고시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화산섬 제주도에서 돌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돼 왔다. ‘제주 돌담 쌓기’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제주의 자연환경에 적응해 형성된 전통적인 돌쌓기 기술로, 틈을 두고 쌓는 구조적 특징을 지녔다. 농경지 경계 담장 및 바람막이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돼 공동체 생활 가운데 자연스럽게 전승돼 왔다. 또한 지역적 특성과 기술 양상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도 도내 각지에서 지역 기술자인 일명 ‘돌챙이’들에 의해 돌담 쌓기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관련 기술과 용어, 시공 방식 등에 대한 정리와 체계화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제주 전역에서 이어지는 지역 생활문화로서 제주문화의 정체성과 대표성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주 돌담 쌓기’는 자연환경에 적응한 축조 방식과 공동체 중심의 전승 양식을 갖춘 점에서 역사성·대표성·지속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무형유산으로서 지정가치가 높다고 인정됐다. ‘제주 돌담 쌓기’는 보유자 및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됐다. 돌담 쌓기가 제주 특정 지역에 한정돼 전승되는 생활관습이 아니라 제주 전역에서 이뤄진 전통 기술이기 때문이다. 고종석 세계유산본부장은 “제주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전승돼 온 제주 돌담 쌓기를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게 돼 매우 뜻깊다”며 “신청기관인 돌문화공원관리소와 함께 제주 돌담 쌓기 기술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에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의 전통적 혼례 방식인 ‘제주 가문잔치와 음식문화’가 2026년 국가유산청 미래 무형유산 발굴·육성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소멸위기의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전승체계를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제주도는 예부터 결혼식을 3일동안 치렀다. 결혼식 하루 전날을 ‘가문잔치’라 하고, 결혼식 다음날을 ‘사돈잔치’라 했다. 결혼식 이틀 전 날은 돗(돼지)을 잡는다. 보통 5~7마리의 돼지를 잡으므로 동네 사람들과 많은 친지, 친구들이 모여 들어서 남자는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음식 장만을 시작한다. 결혼식 전날은 하객을 받는 날이다. 전날 마련한 음식을 친지와 하객들에게 대접한다. 가문잔치는 과거처럼 가문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요즘은 신부집에서 잔칫날처럼 손님을 대접하는 날로 변하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제주 가문잔치와 음식문화’에 대한 전통적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8월 국가유산청에 공모 신청을 했고, 17일 사업 선정 통보를 받았다.
  • 경북도, 조선시대 경북지역 조리서 유네스코 아태기록 등재 추진

    경북도, 조선시대 경북지역 조리서 유네스코 아태기록 등재 추진

    조선시대 경북지역에서 전해오던 조리법을 기록한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16일 경북도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등재 국내 후보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세계기록유산인 ‘한국의 유교책판’, 아태기록유산인 ‘한국의 편액’ ‘만인의 청원 만인소’ ‘내방가사’ 등에 이어 경북의 문화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도는 국가유산청,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이 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등재소위원회 신청서 사전심사를 대비할 예정이다. 등재 여부는 내년 6월 개최 예정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MOWCAP) 총회’에서 최종 결정 및 위원장 승인이 이뤄진다. 수운잡방은 안동 광산 김씨 문중에서 전해오는 조리서로, 음식을 만드는 여러 방법을 의미한다.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저술했다. 조선 중기 양반 가문의 음식 조리법과 술 빚는 방법 등 122개 항목을 담고 있다. 민간에서 쓰인 최초의 조리서로, 2021년 조리서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됐다. 음식디미방은 재령 이씨 석계 이시명의 부인인 장계향이 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한글 조리서다. 146개 항목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면병류, 어육류, 주국방문(주류), 식초 담그는 법 등 4개 영역으로 나눠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조리서는 16세기~17세기 경북 북부 지역의 식생활과 음식문화 등 실용적 지식체계를 보여주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철우 도지사는 “우리 전통 음식문화의 정수인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이 아태기록유산 국내 후보로 선정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이번 성과를 계기로 전통음식을 계승·발전시키고 지역특유의 색깔 있는 음식 브랜드로 육성해 식품․콘텐츠 산업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서울광장] 조총 전래 현장을 찾아갔더니

    [서울광장] 조총 전래 현장을 찾아갔더니

    일본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로 늦은 휴가를 떠났다. 중앙역과 번화가 텐몬칸을 지난 공항버스의 종점은 화산섬 사쿠라지마가 눈앞에 펼쳐진 여객선 터미널이다. 다네가시마(種子島)로 가는 카페리 이름은 ‘프린세스 와카사’. 일본에선 뎃포(鐵砲)라 부르는 조총의 전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와카사라는 이름이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네가시마는 섬 모양이 볍씨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외래 종자가 이리로 들어왔다고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탄 명나라 상선이 다네가시마에 표착했다. 도주(島主) 다네가시마 도키타카는 이들이 가진 화승총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 새로운 무기가 당시 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는 큰돈을 주고 두 자루를 사들였다. 도키타카는 대장장이에게 똑같은 총을 만들 것을 명령했지만 실패만 거듭한다. 결국 포르투갈인들에게 다시 부탁해 기술자를 초빙하고 나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조총이 일본 통일의 결정적 수단이 되고 임진왜란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와카사 이야기는 도키타카의 아들 히사토키가 1606년 펴낸 ‘철포기’(鐵胞記)에 자세히 적혀 있다. 대장장이 야이타 칸베이는 조총을 분해해 구조를 살펴봤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격발장치 나사산을 파는 방법을 알 수 없었으니 시험 과정에서 번번이 부서지는 것이었다. 다시 다네가시마를 찾은 포르투갈인은 야이타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16세 딸 와카사를 달라고 했다. 조총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다네가시마의 뎃포칸(鐵砲館)에는 당시 포르투갈인이 처음 전해 줬다는 조총과 대장장이 야이타가 만들었다는 최초의 조총이 전시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거짓말쟁이’라고 했다는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낭 멘드스 핀투의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핀투 여행기’는 자신의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수집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다네가시마 도주로 짐작되는 ‘왕자’는 ‘해적선’을 타고 온 포르투갈인들의 조총이 “모든 부귀 영화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고 감탄했다. 이 무기가 장차 어떤 역할을 해낼지 단번에 간파한 것이다. 탄금대전투에서 참패한 신립 장군이 조총을 두고 “그게 쏜다고 다 맞는답디까” 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다네가시마는 사쓰마번에 속했던 만큼 조총 제작 기술은 자연스럽게 번주 시마즈 다카히사에게 상납됐다. 시마즈가문은 이 위력적인 무기를 신속하게 실전에 배치했고 규슈 전역에 보급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가고시마 성터까지 부지런히 걸으니 25분 남짓 걸렸다. 가고시마성은 사쓰마번의 번청(藩廳)이자 시마즈 가문의 거성(居城)이었다. 내부엔 지금 가고시마 역사자료센터 레이메이칸(黎明館)이 들어서 있다. 당연히 조총과 사쓰마번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코너도 있었다. 사쓰마번은 1만 남짓한 군사를 보냈다. 그런데 전시 제목은 뜻밖에 전공(戰功) 자랑이 아닌 우리식 표현으로 ‘임진왜란과 사쓰마 도자기’였다. 물론 처참한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겐 오십보백보다. 가고시마엔 왜군에 납치된 조선 도공 후손이 이어 가는 심수관요가 있다. 사쓰마 수군을 이끈 시마즈 요시히로는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퇴로를 열어 주는 돌격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일본 역사는 찬사를 보내지만 요시히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해 어쩔 수 없이 동원된 무의미한 전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레이메이칸 전시도 다르지 않은 인식을 반영하는 듯하다. 공항버스를 비롯한 가고시마 시내버스 대부분은 난고쿠코우츠우(南國交通) 소속이었다. 지역에선 사쓰마를 중앙정권과는 다른 ‘남쪽 나라’로 인식했다고 한다. 막부와 지방 번의 역사 인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흥미로웠다. 가고시마엔 젊은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사철 연기를 내뿜는 사쿠라지마와 흑돼지고기, 고구마소주도 명물이다. 여기에 우리 역사와 연관지으니 즐길거리는 더욱 많아졌다. 여객선 터미널 옆 기온노스공원에는 1549년 예수회 신부 하비에르의 상륙기념비도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에 전해진 천주교가 조선에도 들어왔다. 서동철 논설위원
  • 탄소 감축·기후위기 대응… 목조 건축, 지속 가능한 도시 만든다

    탄소 감축·기후위기 대응… 목조 건축, 지속 가능한 도시 만든다

    스웨덴, 세계 최대 ‘우드 시티’ 건설2035년 아파트 2000가구 등 공급친환경 목재 활용 ‘탄소 중립’ 선언오스트리아, 목재 가공 기술 혁신그 지역 목재 사용해 물류비 절감고부가가치 산업, 일자리도 창출 유럽이 목조 건축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파리올림픽 유도·레슬링 경기장인 ‘샹 드 마르스 아레나’를 목재로 건축해 탄소 저감과 친환경 정책 선도 국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각국은 탄소 감축을 위해 친환경 소재인 목재 활용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산업이 활성화되고 고부가가치 제재목 개발 등 시장 확장에 나서며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토의 63%가 산림이지만 목재 자급률이 18.6%에 불과한 우리와 대비된다. 우리나라는 산림의 32%(202만㏊)를 목재 생산을 위한 경제림육성단지로 지정했지만 ‘산림 경영’ 논란 속에 매년 목재 수입에 7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탄소 흡수원’인 산림은 성장하며 탄소를 흡수하고 목재로 활용하면 탄소를 저장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중립 실현에 기여하고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소리 없는 경쟁이 시작됐다. ●목조 건축, 공사 기간·인건비도 줄여 스웨덴 스톡홀름주 나카시 시클라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도시인 ‘우드 시티’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알티리움 융베리사가 25만㎡ 부지에 25억 달러를 투자해 2035년까지 목조 주택 2000가구와 7000실의 비즈니스 공간을 공급할 예정이다. 시클라는 융베리사가 1998년부터 개발한 도시이며 우드 시티는 기존 도심의 신축 건축물과 추가 개발지를 목조로 조성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착공했다. 지난 7월 학교가 처음 완공됐고 연말 3개동 80가구의 아파트가 입주할 예정이다. 목조 건축이 상징적 건축물이나 최고층 경쟁을 넘어 도시를 조성하는 수준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드 시티는 2021년 도시 설계 당시와 완공되는 2035년의 탄소 배출량이 같은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콘크리트와 철강은 생산 과정에서 목재보다 각각 791배, 191배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30평(100㎡)의 목조 건축물은 40t의 탄소를 저장하는데, 이는 자동차 한 대가 서울과 부산을 400번 왕복하며 배출하는 양이다. 2022년 스톡홀름 하가스타덴에 조성된 첫 목조 아파트인 세더후젠은 그해 스웨덴 ‘올해의 건물’로 선정됐다. 세더후젠은 10~13층 규모의 4개동 245가구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주택이자 새로운 도시 주택 모델로 주목받았다. 스톡홀름시는 선정 당시 “목조 주택의 가능성과 도시 경관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세더후젠에는 교차 적층 목재(CLT) 8798㎥가 사용됐는데 약 5만그루의 나무로 생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란다까지 목조로 만들고 내부 뼈대(목재)를 보호하기 위해 열처리한 제재목으로 외벽을 마감했다. 마감재는 기왓장처럼 겹치는 방식으로 처리해 건물 속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목재산업연구과 이수연 박사는 “목재는 가볍고 가공성이 뛰어나며 공장 제작 방식이어서 공사 기간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며 “우드 시티와 세더후젠은 앞선 목조 제재 기술과 방식을 통해 다양한 활용과 확장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비 와도 작업 가능한 코팅 기술 개발 목조 건축의 확산은 목재 공급 기반과 가공 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120여㎞ 떨어진 입스 안 데르 도나우에 위치한 스트라엔소 제재소는 중·대경목을 이용해 원목 가공부터 제재목·집성재·CLT 등을 생산한다. 제재·건조·가공·제품화까지 가능한 시설로 제재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처리 설비도 갖춰 생산된 열을 목재 건조에 활용하고 있다. 하루 3교대, 24시간 가동하는 제재소에서 생산하는 목재는 연간 100만㎥로 우리나라 연간 생산량 530만㎥의 18.9%에 달한다. 제재소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실천한다. 가문비와 소나무의 70%는 반경 200㎞ 이내, 80%를 오스트리아에서 공급받는다. 생산 목재는 75%를 국내에 공급한다. 제재목은 가슴 높이 지름(흉고 직경)이 25㎝ 이상으로 현장에서 길이 3~4m로 정리해 공급한다. 생산하는 제재목 규격은 100여개로 다양하며 강도와 습도 확인 후 표면을 처리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목재는 외부에 장기간 노출되면 품질 문제가 발생하는데, 비가 내려도 2주간 작업이 가능한 외부 코팅 기술도 개발했다. 안드레아스 쇼러 스트라엔소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산지소로 물류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건조 비용은 부산물을 활용해 줄였다”면서 “제재소 주변에 CLT 공장이 세워져 쉽고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시연이 가능해졌다”고 소개했다. 스톡홀름에서 170㎞ 떨어진 세트라 제재소는 지름이 작은 ‘소경목’ 등을 1차 가공해 다른 제재 공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곳에서는 흉고 직경 11~21㎝인 소나무와 전나무를 공급받는다. 소경재 제재 수율이 46%로 생산 목재의 60%는 국내에서 소비한다. ●산림 ‘지속 가능한 자원’ 인식이 관건 유럽 국가들은 목조 건축물 신축과 증축, 다층 주거용 건축물 등 다양한 목재 이용 촉진에 보조금을 활용한다. 스위스는 지역 목재 사용 건축물, 프랑스는 저평가된 수종의 공학 목재 사용, 슬로바키아는 에너지 효율 등급 충족 목조 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의 4.8%인 44만여명이 임업 분야에 종사하는 오스트리아는 임업 육성을 위해 4억 5000만 유로의 예산(산림 기금)을 확보해 2027년까지 지원한다. 수종 전환과 탄소 저감, 환경 보호, 산림 피해지 복구와 임도 조성, 제재소 건설 등 목재의 이용 증대도 대상이다. 전체 산림의 42%(160만㏊)인 보호림은 보존하되 적극적인 산림 경영으로 탄소 중립과 산업 육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획이다. 목재 자급률이 90%인 것은 CLT·집성재 생산·수출(세계 1위)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목재 가공 수출을 위한 세계 2위의 목재 수입국이기도 하다. 조지 라폴드 오스트리아 산림국 목재정책과장은 “산림 경영은 안전한 탄소 보관 방법이자 지속 가능한 자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면서 “임도와 기계화는 산림 경영의 필수 조건이며 훼손 논란을 극복하려면 임도와 목재 수확 방식 등의 엄격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 아버지는 6·25참전, 아들은 주한미군…‘한미동맹명문가상’ 수여

    아버지는 6·25참전, 아들은 주한미군…‘한미동맹명문가상’ 수여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한국을 지킨 미군 가족이 ‘한미동맹명문가상’을 받는다고 국가보훈부가 12일 밝혔다. 총 다섯 가문이 한미동맹명문가상의 최초 수여자에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를 비롯한 주한미군 복무장병과 가족 등 총 87명이 14~21일 한국을 찾는다고 이날 전했다. 3인의 참전용사와 주한미군 복무장병 46명, 가족 38명이 대상이다. 이반 방한 대상 중에는 대를 이어 한국을 위해 헌신한 다섯 가문도 포함됐다. 국가보훈부는 오는 19일 부산에서 개최하는 감사 만찬에서 장관 명의로 한미동맹명문가상을 수여한다. 버른 위트머 참전 용사는 1951~1952년 미 육군 상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낙동강 유역 등에서 공수 강하 작전에 참여했다. 그의 아들 브라이언 T.스미스(65)는 주한미군으로 1980~1981년 복무했다. 레이몬드 버질 데일리 참전용사는 1951~1953년 미 공군 제623 항공통제 및 경보 비행대대 병장으로 참전했다. 그의 아들 제임스 E.데일리(60)는 1985~1986년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춘천에서 복무한 호워드 아고스타의 아들 리차드 H. 아고스타(72)는 세 차례에 걸쳐 한국에서 군 생활을 했다. 1978년, 1989년, 1994년에 걸쳐 총 5년간 용산에서 미 육군 의무중대와 의무대대에서 의무후송 헬기 조종과 지휘관으로 복무한 이력이 있다. 이번 방한 행사를 계기로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루디 B. 미킨스 시니어(94) 참전용사가 7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미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한 그는 장진호 전투에서 두 다리와 팔 등 총 열세 곳에 부상을 입고도 투혼을 발휘해 네 개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그는 6·25전쟁 당시 한국인 소년에게 받은 피에 젖은 태극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1953년 1월 인천항에 정박한 미 해군 병원선 ‘헤이븐’에서 해군 간호사로 복무하며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정전 협정 이후에는 전쟁포로를 미국으로 이송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로이스 R. 귄(98) 참전용사와 1953년 미 육군 하사로 참전했던 로버트 M. 마르티네즈(94) 참전용사도 72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이들은 14일 인천공항에 입국해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식 참석을 시작으로 캠프 험프리스 방문, 한미동맹컨퍼런스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헌신한 유엔참전용사와 주한미군 복무장병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재방한 초청과 현지 감사·위로 행사 등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을 통해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다지면서 참전국과의 연대 역시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고려 국난 극복 의지 담긴 500폭 오백나한도 중 한 폭 보물된다

    고려 국난 극복 의지 담긴 500폭 오백나한도 중 한 폭 보물된다

    13세기 몽고의 고려 침입이 끝나기를 기원하며 제작된 500폭의 오백나한도 중 한 폭이 보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13세기 불교의 힘을 빌려 국난을 극복하고자 제작됐던 고려 오백나한도를 12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또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유항선생시집, 휴대용 앙부일구 역시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고려 오백나한도는 500폭 중 한 폭으로, 2016년 보물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오백나한도와 함께 제작된 것이다. 지정 예고 대상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계승해 깨달음을 얻은 수많은 수행자 중 한 명인 ‘제329원상주존자’다. 오백나한도는 한 폭에 한 존자만을 담은 형식으로, 존자가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화면 상단 왼쪽에 있는 용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존자의 얼굴과 자세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역동감, 필선의 능숙한 구사, 자유롭고 다양한 농담 표현 등 뛰어난 화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화면 상단 좌우에 쓴 그림의 제목을 통해 존명을 명확히 알 수 있으며, 하단 중앙에 그림 제작과 관련한 기록을 담은 화기를 통해 제작 배경, 제작 연대(1235년), 발원자(김희인), 시주자(이혁첨)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고려 불화의 특징인 품격 높은 예술성과 신비로운 종교적 감성을 담고 있으며, 남아 있는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고려 불화 중 조성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성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 및 조각한 승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불상에서 보이는 얼굴과 이목구비의 표현, 신체 비례, 활달한 선묘 등 양식적 특징상 16세기 중엽 경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나무로 개략적인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흙으로 대부분의 상을 완성하는 일반적인 소조불 제작 방식과 달리, 나무로 윤곽까지 만든 후 소량의 흙으로 세부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다른 조선 전기 불상과 마찬가지로 높은 육계(부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를 지니고 있고, 낮고 넓은 무릎에 비해 장대한 상체를 가지고 있으며, 양감이 풍부하다. 이 작품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현존 수량이 극히 적은 16세기의 불상으로 희소성이 있으며, 과학적 조사를 통해 제작 기법이 명료하게 밝혀져 있어 불교조각사, 특히 조선 전기 소조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또 다른 유산인 ‘유항선생시집’은 고려 말 문신이자 문장가인 한수(1333~1384)의 시집이다. 한수의 시 외에도 권근(1352~1409)의 서문, 이색(1328~1396)이 지은 묘지명, 우왕의 교서(국왕이나 신하가 관청 등에 내리던 문서)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한수의 생애, 사상, 학문과 인품까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시집은 1400년 전라도관찰사였던 성석용과 금산현감 이균이 금산에서 목판으로 처음 간행했다. 이후 1602년 한수의 후손 한준겸, 1856년 한진정, 1863년 한재익 등이 간행한 바 있다. 이번에 지정 예고 대상이 된 유물은 초간된 목판본이다. 옮겨 적을 때 근본으로 삼는 ‘저본’으로서 형태 서지학적으로 귀중한 자료다. 현재 동일판본의 초간본이 국내외에 총 3책만이 전하고 있다. 이 중 지정 예고 대상인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본이 온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 내용에 부족함이 없으며, 비교적 온전하고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휴대용 앙부일구’는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그 중심에 영침(앙부일구 안쪽 뾰족한 바늘로 북극을 향해 있다)을 세웠고, 그 옆에 나침반을 붙여 남북을 정확하게 맞춘 후 시간을 측정하도록 제작됐다. 반구면이 정확히 절삭돼 명확한 절기선과 시각선이 제작됐고, 백동으로 제작된 영침을 은도금하는 등 제작 기법이 우수하다. 또한 다수의 해시계를 제작한 진주강씨 가문이 가장 근대에 제작한 해시계로 밑면에 제작연대(융희 2년, 1908년)와 제작자(강문수)를 새겨 놓아 과학사적 자료로 가치도 높다. 이 유물들은 30일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보물로 지정된다.
  • 머독 ‘미디어 제국’ 장남에 상속한다

    머독 ‘미디어 제국’ 장남에 상속한다

    세계적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94)이 법적 분쟁 중이던 자녀들과 합의해 보수 성향의 장남에게 미디어 권력을 몰아주기로 했다. 이로써 수십 년에 걸친 머독 가문의 상속 분쟁이 마무리되고 머독이 일군 ‘미디어 제국’은 기존의 보수 노선을 계속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망했다. 폭스 코퍼레이션은 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회사 최대 주주인 머독 가족 신탁의 수탁자와 수혜자들이 분쟁을 종결 짓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머독이 후계자로 지명한 장남 라클런(54)이 폭스 코퍼레이션과 뉴스 코프 산하 주요 방송·언론사의 경영권을 이어받는다. 라클런은 이 대가로 장녀 프루던스(67), 차녀 엘리자베스(57), 차남 제임스(53) 등 형제자매 3명에게 각각 11억 달러씩 총 33억 달러(약 4조 5800억원)를 지불하게 됐다. 이는 가족 신탁 주식 가치의 80%에 이르며 가족 신탁은 이후 해산된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라클런과 형제자매들이 벌여 온 소송도 중단된다. 해산되는 가족 신탁을 대신해 라클런의 가족 신탁이 새로 설립되며 이 신탁이 머독 가문의 폭스 코퍼레이션과 뉴스 코프 지배 지분을 보유한다. 머독은 그간 정치적으로 중도 성향인 다른 자녀들의 간섭 없이 장남 라클런이 회사를 운영해야 보수적 노선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를 위한 신탁 구조 변경을 시도하다 격렬한 소송에 휘말렸다. 애초 신탁은 머독 사망 후 네 자녀가 지분과 발언권을 동등하게 나누도록 설계돼 있었기에 프루던스와 엘리자베스, 제임스는 부친의 일방적 수정 시도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호주 출신의 머독은 폭스뉴스와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물론 영국·호주의 주요 신문·TV·방송을 거느린 미디어 제국을 건설, 전 세계 여론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 [열린세상] 인도네시아 시위와 동남아 위기

    [열린세상] 인도네시아 시위와 동남아 위기

    인도네시아가 심상치 않다.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서민 월급의 10배에 달하는 주택수당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들이 분노했다. 지난 8월 25일 시작된 시위는 연일 무서운 기세로 확산됐다. 아마 최근 인도네시아 정치가 마주한 가장 커다란 도전일 것이다. 실제 이번 시위는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2억 8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지닌 인도네시아는 연평균 5%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며 가장 유망한 개발도상국으로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내부적으로 불만 요인은 계속 축적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중국계 재계와 몇몇 정치 가문이 장악하고 있으며 대다수 서민에게는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상태다.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으로 ‘중국 문제’를 알아야만 한다. 세계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의 팽창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 드넓은 국토에서 나오는 석유, 광물, 목재는 중국으로 향하며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중국은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와 같이 인도네시아에 시급한 인프라 사업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활발한 경제 교류가 인도네시아 다수 국민이 만족할 만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문제는 제조업이었다. 현재 중국은 발전된 해안 지역에 축적돼 있던 기존 제조업을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 내륙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이 정책이 너무 성공적이었기에 ‘중국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후발 국가들에 제조업 성장의 기회가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정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도네시아의 정치 구조도 문제가 컸다. 국가의 부가 산업 발전에 체계적으로 투입되는 대신 소수의 상류층에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다수 국민은 상승하는 물가와 고착화된 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다. 급팽창하던 인도네시아의 도시 중산층 형성도 이제는 상승세가 꺾였을 정도다.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만연해 있던 이러한 불만이 이번 8월에 대규모 시위로 폭발한 것이다. 당연히 이야기는 인도네시아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동남아시아 전반에서 정치 위기가 빈발하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분쟁은 탁신과 훈 센이라는 양국 정치 가문의 대립에서 촉발됐다. 태국 역시 제조업 발전의 부진과 농업, 관광업 위주 경제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더욱 열악한 캄보디아는 중국의 영향력이 정치부터 조직범죄와 지하경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드리우고 있다. 내전 중인 미얀마 그리고 가문 정치가 일상인 필리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위기는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중국은 ‘이웃’ 동남아시아에서 정치적, 경제적 존재감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정치권과 대중의 갈등이 심해지며 자본과 안보를 제공해 주는 원천으로서 중국에 더 기대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반면 중국과 지정학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이에 맞서 자신들의 수를 어떻게 둘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최근 경제, 문화적 영향력을 필두로 동남아시아에서 숨은 강자로 급부상했다. 특히 한국과 동남아시아가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임은 이미 베트남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입증되고 있다. 정치적 안정을 자랑하는 베트남과 달리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은 정치 불안이 특징이라는 점에서 난도가 더 높다. 그러나 정치 불안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어쩌면 바로 그러한 혼란과 역동성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국이 동남아시아의 정치 위기에 돌파구를 마련할 종합적 지역 전략을 설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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