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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네디家 슈라이버 “오바마에 한표”

    “정치에도 남편은 남편, 나는 나…. 오바마를 밀겠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질녀이자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부인인 마리아 슈라이버(52)가 미 대통령선거 양당 경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지지를 선언했다고 시카고트리뷴이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케네디 가문의 유력 인사들로부터 잇달아 지지를 이끌어낸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당내 양강 구도에서 한층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이같은 케네디 집안의 오바마 지원은 ‘슈퍼 화요일’인 5일 최대 격전지 매사추세츠주 경선에서 오바마에게 큰 힘을 보태줄 뿐만 아니라, 나머지 21개주 경선에도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오바마 측은 기대하고 있다. 방송인 겸 작가인 슈라이버의 어머니 유니스 케네디는 케네디 전 대통령과 남매 사이다. 슈라이버는 이날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에서 열린, 오바마를 지지하는 모임에 참석해 “오바마는 꿈을 불어넣고 있고, 열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가수 스티비 원더,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 등이 함께했다. 앞서 슈라이버의 남편 슈워제네거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지지를 발표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책꽂이]

    ●렘브란트 반 라인(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미국의 신예 작가인 저자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렘브란트 생애를 동시대인들의 눈을 통해 재구성한 작품. 당대 최고의 화가였으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렘브란트의 모습을 생생히 복원해냈다.1만 3000원. ●은밀한 유산(이명인 지음, 대교베텔스만 펴냄) 4대에 걸쳐 얽힌 두 집안간의 숙명적인 인연을 통해 가문과 혈통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 뿌리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함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족보’를 가공하는 세태를 통렬히 풍자한다.9000원.●목숨(김상렬 지음, 나남 펴냄)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에 초점을 맞춘 장편.1762년 음력 윤 5월13일 사도세자는 아버지인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힌 지 아흐레만에 죽음을 맞는다. 이 기간을 7일로 줄여 날짜 별로 사도세자의 관점에서 처절한 고통과 번뇌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9500원.●쉬 러브스 유(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작가정신 펴냄) 도쿄 변두리에서 90여년간 대대로 헌책방을 운영하는 훗타 가족의 봄·여름·가을·겨울 1년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도쿄밴드왜건’의 속편. 별난 훗타 가족 외에도 고민을 들고 헌책방을 찾는 다양한 인물 군상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냈다.9800원.●베네치아와 시인들(클라우스 탈레-도르만 지음, 정서웅 옮김, 열림원 펴냄) 바이런이 ‘내 푸른 환상의 섬’이라고 찬양한 곳, 헤밍웨이가 사냥하고 글을 썼던 곳,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매혹됐던 서양의 문학 거장들이 이곳에 머물던 생의 한 시절을 추적하며 그들의 삶과 문학, 그리고 베네치아에 대한 찬가를 담았다.1만 2000원.●책도둑(전2권,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듣는 작가의 장편소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배경으로 전쟁의 비극과 공포 속에서도 말(言)과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각권 1만 1000원.
  • [씨줄날줄] 검은 케네디/함혜리 논설위원

    미국 최고의 정치가문인 케네디가(家)의 역사는 1848년 패트릭 케네디가 보스턴에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난 1961년 패트릭의 증손자인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JFK)는 43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가톨릭 신자로서 미국의 35대 대통령에 오른다.‘뉴 프론티어’ 정신을 외치며 젊고 활기찬 미국식 자유주의의 세계화를 주창했던 그는 미국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1963년 11월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자의 흉탄에 치명상을 입고 절명한다.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사랑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케네디 가문의 이어지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케네디 가문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신화가 되고 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막내동생으로 케네디가의 좌장 격인 에드워드 케네디(매사추세츠주)상원의원이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해 지지를 선언했다.‘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오바마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케네디가의 지지선언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미국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후손은 아니다. 아버지의 부족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후세인’이라는 이슬람식 이름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는 주로 하와이에서 성장했고,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몇년동안 생활하기도 했다. 이같은 인종적·다문화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가 백인 우월주의 전통이 여전한 미국에서 ‘흑인’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자기만의 힘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미국 사회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를 원하며 자신이 우연히 흑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외쳐온 키워드는 ‘희망’이다.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미국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고 타협하는 미국에 대한 희망이다. 미 대선에서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검은 케네디’ 오바마의 ‘희망’이라는 출사표가 얼마나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한승수 총리 지명] 청주 韓씨 3대째 총리

    ‘청주 한(韓)씨’집안이 내리 3번 연속 국무총리를 배출하는 ‘가문의 영광’을 안게 됐다. 한승수 총리 지명자는 참여정부 후반기에 기용된 한명숙(37대), 한덕수(38대) 총리 등도 같은 청주 한씨다. 한 집안에서 ‘재상’자리를 내리 3번이나 꿰차는 진기록을 세운 셈이다. 한씨는 국내에서 70만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1.5%(12위)에 불과한 소수 성씨다.특히 이 가운데 청주 한씨가 64만여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3연속 총리가 배출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라는 평가다. 한덕수 현 총리와 한승수 지명자의 경우 돌림자도 ‘수(洙)’자로 같아 눈길을 끈다. 청주 한씨 종친회에 따르면 생존인물 중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한갑수 전 농림장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있다. 같은 성씨가 연속으로 총리직에 오른 최장 기록은 김영삼 정부 시절 이회창(26대), 이영덕(27대), 이홍구(28대), 이수성(29대) 전 총리 등 이씨 총리들이었다.그러나 ‘이씨’는 ‘김씨’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성씨인데다 이회창, 이홍구 전 총리는 본관이 전북 전주, 이영덕 전 총리는 강원도 평창, 이수성 전 총리는 경기 광주로 각각 달랐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한국의 침엽수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한국의 침엽수

    바늘처럼 길쭉하고 뾰족하게 생긴 잎을 가진 나무를 침엽수 또는 바늘잎나무라고 한다. 전 세계에 살고 있는 3만여 종의 식물 가운데 겨우 600여 종만이 이런 종류에 해당한다. 종 수는 적지만 열대지방에서 한대지방까지 넓은 영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북반구의 온대지방에서는 숲을 이루는 우점종으로서 산림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침엽수는 은행나무, 소철 등과 함께 나자(裸子)식물로 분류한다. 나자식물은 홀씨가 아니라 씨를 만들어 번식하지만 꽃이 피지 않는 식물 무리로서, 밑씨가 밖으로 드러나 있는 식물이라 정의할 수 있다. 진화 관계를 따져보면, 홀씨로 번식하는 양치식물과 꽃을 피워 씨로 번식하는 피자식물과의 중간에 위치한다. 식물의 범주에 들어가는 생물은 하등한 것부터 이끼류, 양치식물, 나자식물, 피자식물 순인데, 나자식물은 이끼류나 양치식물보다는 진화한 것이고, 피자식물보다는 하등한 식물인 셈이다. 이끼류와 양치식물은 씨를 만들지 않지만 나자식물과 피자식물은 씨를 만들므로, 이 둘을 합쳐 종자식물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종이 모두 나무라는 것도 나자식물의 한 특징이다. 현재 지구에는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로 이루어진 피자식물, 즉 꽃 피는 식물이 번성하고 있지만, 나자식물은 고생대 석탄기에 생겨서 중생대 쥐라기에 번성하였던 식물이다. 지금으로부터 3억년 전쯤에 생겨서 1억 5000만년 전에 번성하였던 것인데, 공룡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생대 백악기보다도 앞선 시기에 양치식물과 함께 지구를 뒤덮었던 식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나자식물은 소철류, 은행나무, 침엽수류 등이다. 소철은 아열대 원산으로 제주도 등 남부지방에서 심어 기르고 있으며, 은행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오래 전에 도입되어 전국에서 심고 있다. 침엽수에는 솔방울이 달리는 소나무류와 가짜 씨껍질이 있는 주목류에 속하는 식물들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 소나무류는 소나무과와 측백나무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침엽수는 25종류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소나무다. 우리나라에 사는 나무 종류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한다. 소나무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가 된 것은 이처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송이라고도 부르는 곰솔, 씨를 식용으로 하는 잣나무와 형제지간이며, 이밖에도 눈잣나무, 섬잣나무, 만주곰솔 등이 소나무과(科) 소나무속(屬)에 속하는 자생식물이다. 스트로브잣나무, 테에다소나무, 리기다소나무, 백송, 방크스소나무 등이 소나무속에 속한다. 소나무과 전나무속에는 전나무를 비롯해 분비나무, 구상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있고, 잎갈나무속에는 북부 지방에 자라는 잎갈나무가 있다. 주목과에는 주목, 개비자나무 등이 있고, 측백나무과에는 측백나무속과 측백나무와 눈측백, 향나무속에 향나무, 눈향나무, 섬향나무, 노간주나무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침엽수들 중 많은 것이 북부지방에 고향을 둔 것이다. 눈잣나무가 설악산 정상까지만 남하해 자라고 있고, 분비나무, 전나무, 구상나무 같은 침엽수들이 높은 산에서만 자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침엽수들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남쪽에서는 점차 쇠퇴하고 북쪽으로 밀려날 것으로 내다보인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中서 10만년 전 인류 두개골 화석 발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10만년 전 인류 두개골 화석이 중국 허난성 쉬창(許昌)시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됐다.중국 국가문물국은 22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의 완벽한 모습의 고인류 두개골 화석을 쉬창 링징(靈井)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굴했다고 발표했다.이번에 발굴한 고인류 두개골 화석은 모두 16조각으로 화석 조각 복원 결과 완전한 사람 두개골 화석이었다.중국과학원의 고고인류학자들은 이번에 발굴한 화석을 관례에 따라 ‘쉬창인’으로 명명했다. 이들은 쉬창인이 8만∼10만년 전의 두개골로 드러났다면서 쉬창인은 중국 현대인의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발굴을 주도한 리잔양 허난문화유적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은 “두개골의 형체가 거의 완벽한 것은 물론 두개골 내부에 화석화된 막조직이 있어 놀랐다.”면서 “따라서 구석기시대 선조들의 신경조직을 추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링징 구석기시대 유적지는 지난 1965년 우물을 파다가 발견됐으며 2005년 발굴 시작 이후 인류 두개골 화석 외에 동물 화석과 구석기시대 석기 등 3만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jj@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김홍도의 그림 ‘우물가’다. 길 가던 사내는 더운 날씨에 목이 무척 말랐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양태가 작지 않은 갓을 등 뒤에 매단 것으로 보아, 아주 상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가슴을 풀어헤치고 물 긷는 젊은 아낙에게 물을 달라니 말이다. 게다가 가슴에는 검은 털이 무성하다. 가슴 털은 성적 기호다. 남성의 떡 벌어진 가슴, 그리고 무성한 털이 성적 기호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성적 분위기 맴도는 우물가 두레박을 건네고 줄을 잡고 있는 젊은 아낙을 보라. 상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참으로 곱지 않은가. 내 생각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로 보인다. 아낙은 수줍어 얼굴을 돌려 사내의 털북숭이 가슴을 보지 않고 두레박만 건넨다. 젊은 아낙 아래쪽의 머리를 위로 틀어 묶은 중년의 아낙 역시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물 속 두레박만 보고 있을 뿐이다. 단원은 우물가에서 남자와 여자가 은밀하게 성적 기호를 주고받는 장면을 작은 화폭에 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그림은 신윤복의 ‘우물가의 고민’이다. 그림 위쪽에 둥근 달이 떠 있다. 밤이다. 달이 걸린 나무를 보시라. 붉은 꽃이 피어 있다. 식물에 대해 무지한 나는 저 꽃이 앵두꽃인지, 복사꽃인지 모른다.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그림 아래쪽에는 젊은 여자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여자는 우물가에 앉아 두레박 줄을 잡고 있고, 서 있는 여자는 오른손을 턱에 괴고 고민에 빠진 눈치다. 무언가 심각한 사건이 있다. 고민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림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지만, 찾아볼 수 있는 데까지는 찾아보자. 두 여자는 양반집 여자가 아니다. 옷차림을 보라. 둘 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있다. 똬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여자는 흰 민짜 저고리를 입었다. 왼쪽 여인은 녹색 저고리이기는 하지만, 저고리 고름만 자주색일 뿐 다른 장식이 전혀 없다. 또 신은 모두 신이다. 초라한 복색으로 보아 두 여인이 양반집 여자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두 상사람 여인네는 왜 고민에 잠겨 있는 것인가. 우물이 있는 장소를 보자.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기와를 얹은 작은 문이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아니다. 큰 양반 가문은 건물이 크고 복잡하며 중간에 무수히 작은 문들이 있다. 이 문 역시 그런 문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담장이다. 담장이 허물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묵은 양반가로 생각되는데, 그 담장에 사내가 하나 서 있다. 사내가 쓰고 있는 양반만이 쓰는 사방관으로 보아, 이 사내는 이 집의 주인 양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내는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꼿꼿이 서서 두 여자를 정시하고 있다. 다만 이 사내의 표정은 음침하다. 주인 양반이 왜 밤중에 집안 여자들이 우물가에 모여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단 말인가. 두 여자는 왜 물을 긷다 말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가, 또 서 있는 여자는 왜 턱까지 괴고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가. 그림은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이 남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혜원이 그림 속에 담은 생각이 무엇인가 늘 궁금하였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으면 상상이다. 담 넘어 서 있는 양반이 서서 고민에 빠져 있는 젊은 여인을 건드렸고, 첩으로 들이려 하자, 그 사실을 여인은 동무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임신을 시켰든지. 이 그림은 바로 그 고민상담의 장면이라는 것이다. 양반은 이런 이유로 서 있는 여성에게 무슨 제안을 하였고, 그 여성에게 하회를 기다리는 중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이런 해석이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꼭 그렇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고민에 빠진 여성과 돌담 밖의 남자 사이에 어떤 성적인 관계가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은 그리 근거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유래 오래된 ‘우물과 성의 결합´ 이제까지 본 단원과 혜원 두 그림 모두 우물이 중요한 제재고, 그 우물가에는 성적인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한데 우물은 원래 성적인 것이다. 물이 솟아오르는, 깊고 어두운 곳, 어딘가 ‘여성’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게다가 우물은 여성들의 공간이다. 우물과 성적인 결합의 연관은 역사적으로 그 유래가 퍽 오래된 것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우물과 성의 결합을 노래한다. 드레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며들면 하면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드레우물의 ‘드레’가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한데 용두레우물이란 말이 있다. 만주의 지명 용정(龍井)을 풀면 곧 용드레우물이 된다고 한다. 용드레는 용두레일 것이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긴 나무 속을 파서 만드는 물 푸는 도구가 용드레다. 아마도 드레는 용두레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드레는 또 ‘두레박’의 ‘두레’와 같을 것이다. 어쨌거나 물을 푸는 도구임은 분명하다. 여자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로 갔더니, 우물에 사는 용이 여자의 손목을 쥔다. 이후의 구체적인 과정은 생략하자. 여자는 용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남에게 알려질까 걱정이다. 본 사람, 아니 본 물건은 두레박 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인즉 밖으로 소문이 나면 너 두레박이 한 것이라 말하겠다. 뭐, 이런 뜻이다. 그 뒤의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우물의 용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모른다. 하지만 우물과 용은 긴밀한 관계가 있음은 사실이다.‘삼국사기’를 보면,‘자비마립간’ 4년(461) 여름 4월에 ‘용이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 하였고,‘소지마립간’ 22(500)년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았으며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났고, 서울에 누른 빛깔의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다.’ 하였다. 이것은 어떤 자연현상을 두고 용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자연현상을 추리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는 매일반이다.‘삼국사기’의 기록이야 1000년 하고도 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옛 것이지만, 지금과 가까운 조선시대에도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다. 태종 18년(1418) 수군 첨절제사 윤하는 경기도 교동현 수영(水營)의 우물에 황룡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수영 앞에 우물이 있는데, 수군이 물을 길러 갔더니, 허리가 기둥만 한 누런 색 용이 우물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무엇을 보기는 본 모양인데, 그것이 과연 어떤 자연현상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우물가에서 ‘용´을 만난 신덕왕후 우물 용을 이야기 하다가 말이 옆으로 샜다. 어쨌거나 우물은 용과 관련이 있고,‘쌍화점’의 여인은 우물의 용과 성관계를 맺는다. 한데 우물의 용은 아니지만, 용과 다름없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다. 이성계의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말랐다. 돌아보니 우물이 있다. 해서 물 길러 온 젊은 아가씨에게 물을 청했더니, 달고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떠 준다. 급한 마음에 입에 쏟아 부으려 하는데, 웬걸 물에 버드나무 잎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잎사귀를 불면서 마실 수밖에. 목을 축인 다음 물었다. 왜 버드나무 잎을 띄웠느냐고? 답인즉 한창 목이 마를 때 물을 급하게 마시면 체한다고, 그러니 잎사귀를 불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었단다. 얼마나 슬기로운가. 그제사 얼굴을 보니, 인물도 곱다. 당연지사 둘은 짝을 지었다. 이 여인이 바로 신덕왕후 강씨(康氏)다. 이성계는 뒷날 강씨의 소생인 방번과 방석을 사랑하여 왕위에 올리고자 했지만,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건 뒷날 이야기고, 이성계는 용상에 올랐으니, 강씨의 입장에서는 우물가에서 용을 만난 셈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입에 가끔 올리는 대중가요에 ‘앵두나무 처녀’란 노래가 있다.“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노래 말이다. 우물가에서 처녀들은 서울에 관한 말만 듣고 모두 물동이와 호미자루를 던지고 서울로 달아난다.2절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동네의 총각도 역시 신부감이 달아난 서울로 달아나 버린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우물가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신호가 오가는 곳이다. 우물도 사라진 지금 그럴 일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2007 CEO대상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2007 CEO대상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때는 1884년(고종21) 음력 10월17일,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이었다. 당시 개화당의 거두이며 우정국총판(郵政局總辦)이었던 홍영식. 그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새로 세워진 우정국의 낙성식에 정부고관과 외국사신들을 초청, 한창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 민가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연회장은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금위대장(禁衛大將)이자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은 반사적으로 가장 먼저 불이 난 곳으로 달렸다. 바로 이때,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고 피흘리며 쓰러졌다. 이날 연회에 참석한 독일인 외무협판(外務協辦) P.G. 묄렌도르프는 민영익을 얼른 자기 공관으로 데리고 가서 미국인 의사 H.N. 앨런을 황급히 불렀다. 머리와 안면부에 예리하게 깊은 상처를 입은 민영익은 동맥이 끊어지는 등 출혈이 심해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다행히 민영익은 앨런의 치료를 받고 3개월 만에 완치됐다. 그러자 고종과 민씨 가문에서는 이같은 기적에 경천동지할 정도로 놀라워했다. 그럴 것이, 조선의 내로라하는 내의원들은 벌꿀을 펄펄 끓여 환부에 들이부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앨런의 치료를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고종과 궁중의 신임을 얻은 앨런은 관립병원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그래서 1985년 4월 한국 최초의 국립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설립된다. 또 앨런은 관립의학교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나중에 지석영 선생이 초대 관립의학교장을 맡아 근대의학 발전에 많은 공로를 세우게 된다. ●스포츠 의학 명의… 연골재생시술 1인자 그러던 1907년 3월 관립의학교는 당시 서울에 설치됐던 치료기관 광제원과 합쳐 대한의원으로 개칭됐다. 이 대한의원은 1909년 새 건물을 지었는데 현재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시계탑건물(빨간벽돌)이다. 지금도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울대병원의 행정업무를 관장해오고 있다. 아울러 이 건물 입구에는 지석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어 우리나라 병원사(史)를 실감케 해준다. 성상철(60·정형외과) 서울대병원장의 집무실도 바로 100년의 빨간벽돌 건물 안에 있다. 성 원장은 지난해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행사’를 이 병원 시계탑 건물 앞에서 개최, 관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서울대병원은 국내 서양의학의 효시인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중앙병원”이라면서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출범과 발전의 토양이 됐던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뿌리깊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 대한민국 의학의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성 원장은 지난해 3년 임기의 서울대병원장에 연임됐으며 병원 원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7년 올해의 CEO대상’에서 최고 영예인 ‘종합대상’에 뽑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u(유비쿼터스)-헬스산업 활성화 포럼’ 초대의장에 선출되는 등 의료발전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성 원장은 인공관절 치환술과 관절경수술 등으로 이미 스포츠의학의 명의로 소문나 있다. 특히 연골배양 이식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켜 연골재생 시술의 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작고한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사위이자, 서울대의대 1회 졸업생으로 경남 거창에서 60년 가까이 ‘자생의원’을 개업, 지역의료 봉사에 일생을 바쳐온 성수현(86)옹의 아들이기도 하다. 화제거리는 이 뿐만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10·26과 12·12사건때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본 의사였다. ●“박지성도 나한테 왔어야 했는데…” 집무실에서 직접 만난 성 원장은 나이보다 꽤나 젊어보였다. 명의여서, 아니면 서울대병원장이어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있는 것일까.“그저 잘 웃는 편이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유머를 섞어가며 좌중을 웃기려고 한다. 웃음만큼 명약이 없는 것 같다.”면서 긍정적인 생활이 건강유지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또 음식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데 최근들어서는 인절미 한두개와 우유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고 부연했다. 잠시 짬이 생기면 청계천과 삼청공원을 찾아 걷는다고 했다. 술은 한때 폭탄주를 열잔 넘게 마실 정도로 즐겼지만 지금은 조금 자제하는 편이란다. 그는 나이들게 되면 관절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통증이 오면 대개 3주 이상 지속되는데 붓는다든가 눌러서 아프면 전문의를 찾아야 하며 관절에 무리감이 느껴지면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지성 선수의 무릎 연골재생 수술 얘기가 나오자 “우리나라의 수준도 세계적이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에서 수술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개 연골파괴의 경우, 그 상처부위가 100원짜리 동전 크기 이내라면 재생수술로 완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자랑한다. “우리 병원은 올해를 제2의 도약, 즉 세계와 경쟁하는 해로 삼았습니다. 서울대병원의 강점인 최고의 브랜드 파워와 의료진, 연구역량 및 4개병원(본원, 분당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보라매병원) 인프라를 앞세워 ‘대한민국 의료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울대병원이 개원 100년을 맞이한 오늘날 연간 입원환자만 100만명, 외래환자가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 규모로 발전했다는 것. 특히 2005년 국내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과학논문 인용색인(SCI) 등재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 1000편을 돌파했으며 파킨슨센터, 뇌자도(腦磁圖)센터 등 중심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아울러 병원부지내 연면적 8400여평, 지상 4층, 지하 6층 규모의 외래암센터가 오는 2009년 완공되면 생명공학(BT)산업의 핵심영역인 첨단치료개발센터와 함께 명실상부 ‘글로벌병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진료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아시아의 의료허브병원으로 거듭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부자간을 떠나 의사로서 아버지 존경” 성 원장은 어릴 적부터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슈바이처나 나이팅게일 등을 다룬 책을 자주 읽게 됐다.”고 술회했다. 성 원장의 아들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로 있으니 3대째 이어지는 의사집안인 셈이다. 성 원장은 부친에 대해 “부자간을 떠나 의사로서 무척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성 원장은 군복무시절 특별한 경험을 한다.15사단 전방을 거쳐 국군서울지구병원(서울 경복궁 옆)으로 근무지를 옮겼을 때 국가원수 시해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러니까 10월26일 저녁 병원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지요. 현관 입구에 쭉 도열해 있는데 김계원 청와대비서실장이 달려오고 그 뒤에 최규하 국무총리와 장인(신현확 경제부총리) 등이 급히 병원으로 들어오더군요.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의무소령이었던 성 원장은 10·26 사건 현장에서 여러발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경호요원으로 유일하게 숨이 멎지 않은 채 실려온 박상범 전 경호실장의 수술을 맡아 기적적으로 소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곧이어 발생한 12·12사건 때에도 총상을 입은 많은 군인들을 치료하게 된다. 그는 경남고 21회 출신. 동기로는 현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허창수 GS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있다. 동기들과는 등산과 골프, 당구모임 등을 통해 취미별로 일년에 몇차례 만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거창 출생. ▲경남고 졸업(21회). ▲73년 서울대의대 졸업. ▲78년 서울대병원 인턴 및 레지던트 수료. ▲83년 서울대대학원 의학박사. ▲85∼86년 미국 하버드대 정형외과 연구원. ▲81년∼현재 서울대의대 정형외과 교수(무릎관절 외과). ▲2002∼04년 분당서울대병원장. ▲04∼현재 서울대병원장, 국립대병원장협회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07∼현재 제17차 한·일정형외과학회 대회장.
  •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갱죽·진흙메기·예천 태평추·물외냉국·무밥·건진국수…. 우리의 희미한 기억속 전통 음식들이야말로 훌륭한 시적 재료가 될 수 있다. 시인 안도현(47)의 신작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펴냄)는 이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2004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이후 4년 만에 펴냈다. 시인은 아스라히 잊혀져 가는 기억속의 전통 먹을거리를 들고 나와 우리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낸다.“짚불을 피우고 배를 딴 메기를 몇마리 던져넣었다/ 메기들은 내장도 없이 불꽃속으로 맹렬히 헤엄쳐 갔다/ 가문 방둑 잿빛 진흙에 대가리를 들이밀듯 꼬리지느러미로 땅을 쳤다/ (중략)/ 진흙이 다 된 메기들은 그때서야 안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달려들어 쫄깃한 진흙의 살을 뜯어먹으며/ 어쩌면 코밑에 메기 수염이 돋아날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진흙메기’ 중에서) 경북 예천의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는 어린 시절의감성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예천 태평추’ 중에서) 요즘은 ‘돼지죽’으로만 치부되는 갱죽도 그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하늘에 걸린 쇠기러기/ 벽에 걸린 시래기/ 시래기에 묻은 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 갱죽을 쑨다/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 훌쩍이며/ 떠먹는/밥상모서리/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간다”(‘갱죽’ 전문) 안 시인은 “음식은 모든 감각의 총결집체”라며 음식 시편을 쓰게 된 동기를 털어놨다.6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신당 “최고위 멤버에 386 다 뺐다”

    손학규 대표가 지난 11일 취임한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이 빠르게 체제 정비를 갖춰 가고 있다.그동안 미뤄 오던 최고위원 인선을 17일에 확정하고 손 대표의 ‘민생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는 분위기다. 손 대표는 최근 서울 중구 신당동으로 전입신고를 마친 것으로 알려져 오는 4월 총선에서 대표 자리를 걸고 정면승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손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에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박홍수 전 농림부장관, 유인태·박명광·홍재형 의원을 새로 선임하고, 정균환·김상희 최고위원을 유임시켰다. 박명광 의원은 정동영계, 정균환 최고위원은 호남, 홍재형 의원은 충청, 유인태 의원은 수도권·중진, 김상희 최고위원은 여성 몫으로 안배됐다. 당초 2명은 외부 인사를 위해 남겨둘 계획이었지만 강금실·박홍수 전 장관으로 대신했다. 공천심사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은 가운데 공천 약속이나 다름없는 외부인사의 지도부 영입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당초 최고위원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던 386의원들을 배제했다. 대신 지도부 구성에 불만을 갖고 있던 정동영계를 선택했다. 측근 배치냐, 내부 결속이냐의 두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손 대표는 취임 후 지난 일주일 동안 최고위원 선임에 고심한 것과 더불어 새로운 야당 만들기에 몰두했다. 크게 ‘민생 챙기기’와 ‘책임있는 야당상 제시’ 등 두 가지로 압축된다. 손 대표는 취임식에서 1가구 1주택 양도세 인하와 같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민생 카드를 꺼내든 데 이어 태안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민심 대장정’을 연상케 하는 민생 행보를 지속해 왔다.이날 오전에도 ‘대통합민주신당-정부 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민생을 우선적으로 챙기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통합신당은 이 자리에서 유가문제와 관련, 시행령 개정을 통한 탄력세 30% 적용을 주문했다. 정부가 난색을 표시하자 2월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 대표가 취임사에서 “정략적인 이유로 발목잡는 야당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이 기존 야당과 차별화하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6일 정부조직개편안이 발표되자 김효석 원내대표가 “방향은 옳지만 통일부는 살려야 한다.”고 밝힌 것도 손 대표의 이러한 취지를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국제구호 단체 “한국 남아선호 심하다” 비난

    국제구호 단체 “한국 남아선호 심하다” 비난

    한 국제 구호단체가 한국의 남아선호 사상을 비난하고 나섰다. 세계적인 국제 구호단체 플랜 캐나다(Plan Canada)는 최근 낙태를 통해 뱃속에 있는 여아를 살해하는 일이 성행한다며 해당국가로 한국을 비롯 중국과 인도를 지목했다. 플랜 캐나다의 탄지난 마르자 박사는 “이들 국가들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이미 남녀 성비가 심한 불균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 한국은 전세계 45개 구호 국가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남아선호에 의한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국가로 특별히 불명예스럽게 거론됐다. 마르자 박사는 “남아 선호는 나중에 커서 돈도 벌어 오고 또 가문도 잇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딸들도 가문을 이어가도록 허용하고 교육을 통해 미래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5~44세의 결혼한 여성 5386명을 대상으로 남아선호 가치관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남아선호가 해체 전단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서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의견은 △1991년 40.5% △1994년 26.3% △1997년 24.8% △2000년 16.2% △2003년 14.1% △2006년 10.2%로 급격히 감소했다. 한편 ‘플랜 캐나다’(Plan Canada)는 종교적, 정치적 성향 없는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육지원단체 중 하나다. 전세계 45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약 130만 어린이들에게 장기 교육 프로그램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약 1300만명의 사람들에게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단체장 새해설계] 박광태 광주시장

    [단체장 새해설계] 박광태 광주시장

    광주시는 올해 역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다. 박광태 시장은 민선 3기부터 지역 살림살이를 챙기는 데 모든 행정력을 쏟았다. 그런 성과가 요즘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는 ‘생산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파란불을 켜고 있다.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수출 및 생산 증가율도 광역시 중 4년째 1위를 기록했다.5인 이상 사업체 증가율도 1위를 차지했다. 박 시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 벽두부터 각종 현안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줄곧 서울에서 살다시피 한다. 지역 일은 행정부시장이 도맡도록 했다.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준비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그는 차기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이명박 사람들’과도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간접시설 확충 계기 박 시장은 U대회를 통해 광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세계속의 ‘광주’는 비엔날레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 하지만 체육계 등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3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집행위원들이 현지 방문실사를 편다. 숙박·교통·경기장 시설 등 모든 분야가 망라된다.5월31일 예정된 개최도시 결정을 위해 러시아·캐나다·스페인·폴란드 등과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그는 최근부터 지역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을 수차례 찾아가 U대회 지원을 요청했다. 박 회장도 “U대회가 반드시 광주서 열릴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이 대회가 광주로 유치되면 국비 등을 지원받아 각종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확충할 수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생산 유발 9500억원, 부가가치 4500억원, 고용 3만명을 창출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 국제대회 유치가 버거웠지만 최근 200실 규모의 특급 호텔을 착공했다.”며 “U대회를 반드시 유치해 도시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올 가을 예정된 2008광주비엔날레와 정율성음악제 등 굵직한 국제대회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준비중이다. ●금융·유가·환율 파장 최소화 새정부가 출범하고 총선이 예정된 만큼 변화와 정치적 격랑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시장 불안, 고유가, 환율하락 등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둔다. 박 시장은 “미래 성장에 중심을 둔 첨단산업 지원과 투자유치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3대 주력 산업인 자동차·디지털 가전·광산업 등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대 목표이다. 문화콘텐츠·첨단부품소재·디자인·신에너지 등 4대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또 가정내 초고속 광통신망(FTTH), 발광 다이오드(LED), 나노기술 등 5대 신기술 응용산업의 육성기반도 다진다. 투자유치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인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에 집중한다. ●문화로 먹고 사는 도시 조성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도 순항할 전망이다. 박 시장은 “문화로 밥먹고 사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 제정된 ‘특별법’과 관련 조례를 토대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종합계획’을 지역실정에 맞게 보완한다. 전문가 등으로 전담팀을 구성, 자체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시민 공감대를 형성한 뒤 중앙정부와 협의에 나선다. 랜드마크 기능보완을 위한 상징 조형물을 설치한다. 음악·공예·디자인·게임·영상 등 문화콘텐츠사업 활성화에 나선다. 이 사업은 2004∼2023년 5조 2900여억원이 투입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도심내 7대 문화권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자리·건강 등 노인복지 강화 광주시내 노인은 현재 11만 3000여명으로 해마다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박 시장은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건강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이들의 노후 생활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시는 이를 위해 2009년까지 남구 노대동 일대 41만여㎡에 ‘빛고을 실버타운’을 건립한다. 이곳엔 1855억원이 투입돼 노인복지회관, 문화센터, 종합체육센터, 노인요양원 등이 들어선다. 단계적으로 골프장과 퇴행성 전문병원, 치매병원, 재활전문병원 등도 건립된다. 시설과 규모면에서 전국 최대이다. 북구 효령동에도 2009년까지 11만여㎡ 부지에 ‘북부 노인복지타운’이 건립된다. 일자리 지원시설과 여가문화·평생학습·체육시설 등이 설치된다. 이밖에 1000만그루 나무심기, 제3순환도로 착공, 어등산관광단지 조성 사업 등도 추진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남 해남에는 어란(於蘭·?∼1597)이 있었다. 충절의 여인 논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어란은 모른다. 두 여인 다 신분이 천한 관기(官妓)였다. 논개가 왜군 장수와 함께 투신해 조선 여인의 기개를 알렸다면 어란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어란이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란은 400여년간 철저하게 묻혀버렸다. 뒤늦게 해남 출신 원로 교육자인 박승룡(81)옹에 의해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최근 문헌으로 확인돼 빛을 보게 됐다. (편집자주) 새해 1일 새벽, 땅끝인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답게 해마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400여년 전통이다.‘당주신위(堂主神位)’라고 돌에 쓰인 신주는 정유재란 때 나라를 구한 할머니로 보인다. 이 마을 옆 동산에는 17세기 초쯤 조선시대에 세워졌다는 석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박승룡옹은 “일제 강점기 때 25년 동안 해남에서 순사를 한 일본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澤村八幡太朗)의 유고집에서 ‘어란’이란 여인의 행적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유고집인 ‘문록경장(임진·정유년)의 역(전쟁)’에서는 명량대첩의 패배를 어란의 간첩행위로 보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알고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할머니 이야기와 책의 내용이 한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흥분했다. 마을주민들은 신주로 모신 주인공의 실체를 이제야 어란 할머니라고 알게 됐다. 박옹은 “정유재란 때 어란과 관계를 맺은 왜장 스가 마사가게(管正陰)는 실존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스가 마사가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파견한 스가 히라에몬(管平右衛門)의 서자라고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히구마 교수가 확인해줬다. ●명량대첩 일등공신 어란 명량해전은 충무공이 남은 12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울돌목(명량)에 수장한 정유재란 최대의 승리다. 난중일기 등으로 당시 해전을 되짚어보자.1597년 8월26일 충무공은 우수영인 어란진에서 울돌목 앞인 진도군 벽란진으로 옮겨간다.9월7일에는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군선 13척으로 정탐차 어란마을에 들어온다. 이어 14일쯤 왜군 총대장인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가 어란마을로 들어온다. 이렇게 보면 어란이 왜장 마사가게를 만난 기간은 일주일 남짓이다. 마사가게는 첫눈에 어란의 미모에 넋이 나갔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잠자리에서 명량해전 출전일을 누설하고 만다. 때마침 조선인 김중걸이 왜군에게 붙잡혀 마사가게 앞으로 끌려온다. 그러나 누군가의 구명으로 김중걸이 풀려난다. 이 누군가는 김중걸이 떠나기 전 “나는 김해인”이라고 안심시킨 뒤 “‘왜놈들이 배들을 모아 조선 수군을 모두 몰살한 뒤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더라.’는 말을 우수영에 전하라.”고 귀띔했다. 왜군 장수의 총애를 받는 어란이 아니고는 포로가 풀려날리 만무하다. 김해인이란 본관이 김해 김씨일 듯하다.100만부가 넘게 팔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왜군이 어란항에서 출항할 때 적장(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몸시중을 들던 조선인 여자 1명이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이지만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충무공은 김중걸로부터 적진 동향을 안 뒤 명량해전 이틀 전인 14일 본진을 벽파진에서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옮긴다. 이로써 충무공의 전술이 명량해협을 뒤에 둔 배수지진에서 앞에 둔 전법으로 급선회한다. 이 전술변경이 명량대첩의 승리를 가져온다. 명량해전 일인 9월16일 충무공은 전투 2시간여만에 불리한 전세를 뒤짚고 왜군 133척을 울돌목에 격침한다. 왜군은 좁고 물살이 센 울돌목에 놀라 큰 배들은 뒤에 남기고 작은 배들로만 울돌목을 건너 전투에 나섰다가 격침됐다. 퇴각하던 스가 마사가게는 이날 벽파진에서 익사한다. 일본 전사(戰史) 기록도 똑같다. 충무공은 9월14일자 난중일기에서 “(김중걸의)말이 모두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도 없지 않을 듯해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어 피란민들을 육지로 피하라고 타이르도록 했다.”고 적었다.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대목이다. ●어란은 이순신의 간첩 사와무라는 유고집의 48,49쪽에서 명량해전 대패의 원인을 어란진의 간첩사건으로 규정했다.‘어란진에 주둔한 스가 마사가게는 이순신군의 간첩인 미기(美妓) 어란과 애인관계로 사랑에 빠져 명량해 출전기일을 발설한다. 어란은 이를 이순신군에 연락한다. 결국 명량해전에서 애인 스가 마사가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에는 충성했지만 인간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다음날 달 밝은 밤에 명량해가 보이는 서쪽바다에 투신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어란이 투신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또 87쪽 그가 지은 한시에는 ‘무희 요염에 유혹돼 어란진의 여심(旅心)에서 정을 맺은 것이 간첩의 그물에 걸리다.’ ‘정유재란 때 논개와 같은 업적을 남긴 여인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지금 마을주민 가운데 누구도 모르던 ‘어란’이란 이름도 이 유고집에서 처음으로 나온다.‘어란’이라는 마을 이름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나온다. 사와무라의 유고집에 신뢰성을 더한 문장이 있다.‘대흥사 앞쪽인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에 임진란과 정유재란 때 붙잡힌 일본인 포로수용소(2000여명)가 존재한다.’고 적었다. 실제 현장확인에서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처음으로 서울신문(1983년 3월 13일자)에 보도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을사람들의 증언 어란마을 주민들이 알고 제사 지내는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다. “명량해전 이튿날인 9월17일, 마을 앞 바닷가로 한 여인의 시체가 떠오른다. 이를 마을 어부가 발견, 시신을 수습해 근처 소나무 밑에 묻는다. 묘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혀 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할머니가 투신했을 것으로 보이는 매봉산 절벽에서 가까운 산에는 사당의 주춧돌이 나뒹군다. 지금 마을 뒤편 사당은 두번째 옮긴 것이다. 주민 김학채(73·향토연구사)씨는 “70살 넘은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석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릴 때 마을에서 날마다 저녁에 불을 켜고 새벽에 불을 끄던 일을 한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말을 했다.“사당의 할머니 신주를 일본의 장군 가문(스가 마사가게)에서 가져가려는 것을 주민들이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민 최사홍(90)옹은 “한학자이신 조부께서 ‘이 등대가 있는 곳은 유서깊은 신성한 곳이고 영을 기리기 위해 석등을 세우고 불을 켰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처럼 석등에 불을 밝히는 어란마을의 관습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불을 켜도록 허용한 점은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히구마 교수는 “사료를 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불을 켠 것은 일본인들도 등대로만 알았지 정확한 내용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어란항은 남다른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임에 틀림없다. 뭍에서 툭 튀어나온 천혜의 군사 요충지이다.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조선시대 수군 무관인 만호 5분의 비석과 해방기념비 1개가 세워져 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구국의 여인’ 찾아낸 박승룡옹 구국의 여인 ‘어란’을 처음으로 찾아낸 박승룡옹은 지난해 8월10일 세기 준이치(瀨木俊一) 일본 해남회 회장으로부터 부탁했던 책을 받았다. 그가 펴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의 유고집이다. 유고는 사와무라의 큰딸인 시마구라 이구고(75·島倉郁子)가 보관하다 해남회에 전달해 인쇄됐다. 해남회는 일제 때 해남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의 친목 단체이다. 해남회 회장은 “임진·정유재란 때 조선과 일본에서 첩자를 서로 활용했다. 어란도 진주의 논개와 같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옹은 친분이 있는 히구마 다게요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로부터 “경장 2년(정유재란)에 스파이(간첩)로 활동한 어란 할머니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인 김학래(85·서울 광진구 광장동)씨는 “일년에 10번 이상 해남을 왕래하는 해남회 초대 회장인 다니구지 노보루(谷口登)에게서 어란 이야기를 들었다. 어란진에서 경찰관을 한 기무라 세이지(木村精一)의 차남인 기무라 오사무(木村修·81)에게서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오사무는 나의 순천농업학교 동기”라고 말했다. 박옹은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도 우리 기록에는 없지만 일본 기록을 참고로 해 오늘날의 유적지가 복원됐다.”며 “어란 할머니의 얼이 깃든 곳을 성역화하면 한·일 우호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이젠 네바다·사우스캐롤라이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주고받은 힐러리 클린턴(사진 오른쪽),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네바다 주(19일·이하 현지시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26일)에서 또 다른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두 지역에서의 대결은 다음달 5일 22개 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열리는 ‘슈퍼 화요일’을 앞두고 대세를 정하는 중요한 일전이 될 것으로 두 후보 캠프는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단 조직과 자금에서 우위에 있는 오바마 의원 쪽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의원 캠프에는 올해 들어 하루에 무려 100만달러에 이르는 선거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경선 지역마다 최고의 선거전문가를 고용했으며,TV광고도 마음껏 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햄프셔에서 기사회생한 클린턴 캠프도 선거자금이 다시 돌면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큰 표 차이로 패배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경선을 포기하기로 했다. ●노조 vs 정치 가문의 대결? 네바다 주 경선전이 시작되면서 오바마 의원은 큰 힘을 얻었다. 조직원이 6만명에 이르는 레스토랑 노동조합이 9일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또 이 조합이 소속된 전미호텔ㆍ레스토랑ㆍ카지노 노동자조합도 오바마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있다. 이 조합의 소속원은 무려 46만명에 이른다. 네바다대학의 데이비드 다모어 정치학 교수는 “노조원들의 지지로 오바마가 유리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클린턴 캠프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네바다는 1992년과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겼던 곳. 빌 클린턴의 역할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클린턴 캠프는 네바다 주에서 영향력이 큰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가문의 후원에도 기대하고 있다. 리드 의원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그의 아들이 클린턴 캠프 네바다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CNN은 오바마와 클린턴이 네바다에서 히스패닉 표를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했다. 오바마를 지지한 레스토랑 노조원의 45%는 히스패닉이다. 반면 클린턴 부부는 네바다 주의 히스패닉 사회와 깊은 유대를 갖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3파전 될 듯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민주당 경선에서 주목받는 지역 중 한 곳이다. 민주당이 경선을 실시하는 첫 남부지역이기 때문이다. 미 남부지역은 보수적인 색채가 강해 대부분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주)에 해당한다. 따라서 민주당에서는 남부지역에서 표를 많이 얻는 후보가 경선에서 유리하다. 민주당이 최근 배출한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모두 남부 출신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인구의 30%는 흑인이다. 민주당원 가운데 50%가 흑인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클린턴 의원을 지지해 왔다. 같은 흑인인 오바마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의원이 아이오와에서 승리하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 흑인 유권자들의 표심이 흔들리고 있다. 이 지역 흑인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미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흑인 유권자 전체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아이오와에서 2위, 뉴햄프셔에서 3위를 기록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드워즈는 이곳에서의 승리에 이번 경선의 명운을 걸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은 의외의 3파전이 될 수도 있다. dawn@seoul.co.kr
  • 재설계 서울시 신청사 3월 착공

    서울시가 신청사 디자인을 원점에서 다시 만들어 오는 3월 첫 삽을 뜨기로 했다.이에 따라 신청사의 높이가 기존 90m에서 최고 110m로, 건물의 폭도 55m에서 65m로 확대된다.서울시는 6일 “문화재위원회가 높이와 폭을 넓히는 신청사 재설계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이번 주에 최종 결론을 내린다.”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는 그동안 심의에서 ‘앙각선’ 규정을 앞세워 신청사의 높이를 90m 미만으로 제한하고 지난해 10월 설계안을 통과시켰다. 앙각선 규정은 국가문화재 경계로부터 일정 거리(서울시 100m) 내의 신축건물 높이가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앙각(仰角) 27도 미만으로 짓도록 했다. 서울시 조영열 건축행정팀장은 “덕수궁과 신청사 거리가 ‘앙각선’ 적용 거리인 100m보다 훨씬 떨어진 145m인 데다 문화재위원회도 기존 높이로는 수도 서울을 대표할 만한 디자인 창조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신청사 설계에 참여할 유걸 유걸건축연구소 대표 등 건축가 4명과 심우갑 건축학회장 등 설계심사위원회 위원 5명을 선정했다. 건축가들이 다음달 14일까지 각자의 기본설계를 마치면, 심사위원들은 15일 설계심사위원회를 열어 4개 설계안 가운데 최종안을 선정한다. 이어 3월부터 지하층 공사에 착수했다. 신청사의 건물 높이와 건물 폭이 확대되면 외부 디자인도 기존 8면 수정체 모양에서 크게 바뀔 전망이다. 신청사와 함께 들어설 지하 4층, 지상 1층(높이 30m) 1300석 규모의 다목적홀도 규모나 외부 디자인이 변경된다. 신청사 완공은 당초 예정인 2010년 9월보다 다소 늦춰진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이 그림은 왜 비쌀까/피로시카 도시 지음

    45억원이 넘는 박수근의 그림에 대한 위작 의혹이 최근 또 불거졌다. 국내 미술시장이 전례없이 커지면서 고가의 대작을 둘러싼 시비 또한 유례없이 잦다. 그림이 어떻게 돈이 되며, 화가는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 이런 근원적 의문을 품어본 적 있을 것이다.‘이 그림은 왜 비쌀까’(피로시카 도시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그런 독자들의 소구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지은이는 독일 뮌헨에서 활약 중인 법률가이자 미술 자문가. 독일 유명작가인 우고 도시의 아내이기도 한 그는 미술사는 물론이고 경제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동원해 미술품에 값이 매겨지기까지의 궁금증들을 풀어준다. 작가, 화랑, 미술관, 컬렉터 등 미술시장을 형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속성과 이면도 자세히 소개했다. 책이 가장 주목한 대목은 미술품이 돈으로 바뀌는 지점. 이를 위해 미술시장의 주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핵심요소는 수집가와 화상.‘묶음’판매 및 구매 행태로 소문난 영국의 거물 컬렉터 찰스 사치의 일화가 제시된다. 골드스미드 칼리지의 학생이던 데미안 허스트를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띄워 올리기까지에는 그의 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골드스미드 칼리지의 여러 젊은 작가들의 파격적 작품을 전시해 그들쪽으로 미술계의 시선이 쏠리게 만들었는가 하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경매에서 비싸게 거래될 수 있도록 조용히 시장을 조종하기도 했다. 예술가 후원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웠다고 평가받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기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당시 고리대금업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돈놀이’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예술후원이라는 꼼수를 부렸다. 미술작품이 상품가치를 높이는 과정에도 보이지 않는 입김이 끊임없이 작용한다.‘패배했지만 승리를 거둔 인간’이라는 식의 반 고흐에 대한 평단의 찬사가 그저 무심한 고흐의 그림들을 세계최고 경매가로 기록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위작에 얽힌 웃지 못할 사례도 실렸다. 엘리아 사카이라는 화상은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해 무려 열두번이나 진품과 위작을 번갈아 팔았다, 크리스티 경매소조차 까맣게 속아 위작을 판매도록에 실었던 해프닝도 있었다.1만 3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폭군? 미치광이? ‘궁예 보고서’

    우리가 기억하는 궁예는 어떤 인물일까. 보통의 독자들이라면 미륵불을 자칭하면서 전제정치를 행하다가 신하들의 정변으로 축출된 군주를 떠올릴 것이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미륵관심법을 터득하였다고 내세우면서 죄 없는 신하들을 반역죄로 처단하고, 간통 혐의를 걸어 자신의 왕비를 불에 달군 쇠뭉치로 쳐 죽인 폭군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궁예는 과연 폭군,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이 책은 궁예와 그가 세운 정권에 대한 종합적 연구이다. 궁예는 901년 고려를 건국하였고,904년에는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었고,911년에는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는데, 마지막 국호를 따 태봉의 궁예정권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신라 제51대 진성왕 3년(889) 중앙정부의 세금 독촉에 항거하여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봉기는 여러 해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성주 혹은 장군이라고 자칭하는 호족들이 성을 근거로 사병을 지휘하며 자신의 영역과 그곳에 사는 농민들을 보호하면서 각 지방의 지배자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견훤은 900년 백제를 세웠고, 이어 궁예도 건국하였다. 마치 삼국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신라 말 고려 초는 후삼국시대라고도 부르는데, 이 시대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던 것은 태봉이었다. 대략 910년 무렵에는 전국의 3분의2를 궁예가 차지하였던 것이다. 궁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신라 말에는 말세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세달사 승려 출신이었던 궁예는 미륵불이 이 세상에 와서 말세에 사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농민들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내세우면서 그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궁예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호족들과도 손을 잡았다. 평산 박씨 가문과 같이 본래 신라의 국경 수비를 담당하였던 패강진의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대두하였던 패서 지역의 호족들이나 해상 무역으로 크게 부를 쌓았던 고려 태조 왕건의 집안을 포섭하였다. 궁예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점차 전제주의를 추구하였다. 나중에는 미륵불을 자칭하면서 국왕이자 부처로서 성속의 권력과 권위를 오로지하였다. 미륵관심법은 그가 신정적 전제주의를 좇았다.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수단이었다. 궁예는 몰락한 진골귀족 가문 출신으로 진골귀족으로서의 특권과 권위에 대한 집착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그였기에 권력을 잡게 되자 점차 가난한 농민들을 돌보거나 권력을 호족들과 나누는데 인색하게 되었을 것이다. 궁예는 기반으로 삼았던 농민들과 호족들이 등을 돌림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인성 경희대 사학과 교수
  • 고속 성장속 중국 사회의 明과 暗

    두 자릿수의 고속 성장률을 보이는 중국. 하지만 환경오염 비용 증가, 인건비 급등 등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는 지금 제동이 걸렸다.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비상을 꿈꾸고 있는 중국이 맞닥뜨린 난제는 어떤 것들일까. KBS스페셜은 중국이 직면한 위기와 도전들을 심층조명해 보는 기획 2부작 ‘2008 격동 중국’을 마련했다.1,2편 방송은 KBS 1TV에서 6일과 13일 이틀동안 각각 오후 8시에 전파를 탄다. 제1편 ‘5억의 샤오캉을 키워라’에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극심한 빈부격차에 주목한다. 후진타오는 이같은 문제점을 간파해 성장위주 정책에서 균형적 발전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과학적 발전관’을 제시했다. 이는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중산층 수준을 유지하는 것)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격차 확대의 심각성을 자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징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황동(31)씨. 그는 ‘농민공’ 집단 거주촌에 아내와 함께 머물면서 공장 노동, 배달, 건설 등 도시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일곱살난 딸 쉐리.1년만에 딸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그의 귀향길과 농민공들의 고달픈 삶을 밀착취재했다. 이와 함께 재레이 그룹 리우 회장의 생활을 통해 중국 상위 1%인 억만장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또 농민공 학교와 명문 사립학교를 비교하며 가난과 부가 대물림되는 현장도 살펴본다. 제2편 ‘천년대국의 꿈, 소프트차이나’에서는 소프트 파워에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문화산업 육성과 창의력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중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을 취재했다.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세계를 공략했던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만에 이제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과 고전이라는 자산을 세계적 브랜드로 발돋움시키려는 시도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상하이의 한 극장에서는 경극을 뼈대로 오페라와 발레를 결합한 신경극 ‘칠석정연’이 전석매진을 기록하며 공연 중이다. 또 새해 방송가에는 청나라 소설 ‘홍루몽’을 각색한 드라마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자의 사상과 유가문화를 재조명하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주목해볼 만하다. 빈부격차, 사회모순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CCTV에서 논어 강의를 방송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국악인] 전통예술명가의 후예 박환영 교수

    [국악인] 전통예술명가의 후예 박환영 교수

    부산대학교 박환영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의 예능보유자 박병천의 아들이다. 문화관광부가 박병천을 중심한 일가를 전통예술명가로 지정했으니까 자연 박환영은 그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박병천 일가는 진도씻김굿만 잘하는 줄 알고 있는데 실은 대금산조를 창시한 박종기(1880∼1947)가 바로 박병천의 종조부이고 지금 박환영이 대금을 전공하고 있으니까 대금산조의 명문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전국적으로 보급된 진도북춤도 박병천에 의해 만들어졌고 진도 상여소리나 진도농악분야에서도 박병천은 최고의 지도자로 또는 출연자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런데 박환영 역시 어려서 진도농악의 상쇠로 크게 활동했고 지금은 대금정악과 대금산조 그리고 진도씻김굿의 이수자로 폭 넓게 활동하고 있으니 이 집안이야말로 진도가 자랑으로 여기고 문광부가 전통예술명가로 지정할 만한 명문가이다. 박환영은 1957년 진도에서 태어났고 진도 지산 초등학교, 진도 지산 중학교, 진도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진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매 맞으면서 장구를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지도하는 진도실업고등학교 농악부에서 상쇠로 활동했다. 그 때까지는 아버지의 음악을 배우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장래에 음악가가 되겠다는 특별한 뜻도 없었고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도 따로 하지 않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와서 이생강 선생에게 대금산조를 1년쯤 배우고 나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육군본부군악대에서 복무하게 된 것이 음악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진도에서 장구를 배우고 장단을 칠 때에는 그 장단이 중모리인지 중중모리인지 장단의 이름도 모르고 그냥 상여소리 장단도 치고 이런 저런 소리의 장단을 치는 식이었다. 그런데 군악대에 있으면서 정악이라는 음악이 엄청나게 많고 국악에 악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재대한 다음 대학의 국악과로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알아봤으나 이미 대학입학 자격고사에 해당하는 학력고사가 끝난 다음이어서 당장 진학할 학교가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추계예술학교의 입학요강이 신문에 났는데 학력고사와 무관하게 진학할 수 있고 국악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추계예술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군대에 갔다 온 후 처음으로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게 된 박환영은 무엇보다 정악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국립국악원에 들어가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정악대금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등교하고 별을 보고 하교할 정도로 매일 대금을 열심히 연습했는데 4학년 올라가면서는 본인의 대금실력을 한 번 테스트해볼 기회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협연자 신청을 해서 협연을 하게 되었는데 정악대금으로 연주하는 난이도가 아주 높다는 이상규 작곡의 ‘대바람소리’를 연주하겠다고 했다. 정악대금을 잡은지 3년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험산준령을 넘어본다는 각오로 도전한 협연은 1984년 4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118회 정기연주회로 최종민(필자)이 객원 지휘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제4회 신인국악연주회에서 독주했고 그 해에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립국악고등학교 출신 아니면서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박환영이 그 관례를 깨고 입단했다. 소년기를 민속악만 접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음악적 성격이 훨씬 달라 보이는 정악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근무했는데 6년 정도 되니까 국악전체를 공부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국악에는 민속악이나 정악도 있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창작음악도 있기 때문에 그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악(작곡전공)과로 진학했는데 국립국악원의 근무는 연주가 많아 대학원 공부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국립국악원을 그만두고 창작음악을 많이 연주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으로 직장을 옮겼다. 더러는 더 좋은 직장으로 알려져 있는 국악원을 그만두고 시립으로 옮긴 것에 대해 의아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본인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시립단원 생활도 10년을 하게 되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고 해서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서는 지휘자나 기획자 행정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휘공부였다. 함께 동아리 ‘오느름’활동을 하는 이용탁이나 함께 시립에 근무하는 이인원 등을 권해서 박은성 교수에게 지휘를 공부했다. 한 5년쯤 지휘이론도 배우고 지휘실기도 배웠지만 아직 지휘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적은 없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있다. 2001년에는 서울시립에서 다시 경기도립국악단 관악악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도자 역할을 하다가 2004년 9월 부산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학교수 생활은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학교 일에 충실하고 있다. 대금전공학생들 실기를 지도하고 장구반주법도 가르치고 있다. 교육대학원 학생들에게는 교사에게 필요한 국악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다. 한양대학교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과 1남 1녀를 둔 박환영 교수는 아들 명규를 국립국악고등학교에 보내 대금을 전공하게 했고 중학교1학년이 딸은 해금을 전공하게 했으니까 온 가족이 음악을 하는 음악가족이다. 자녀들에게 음악을 시키는 이유도 있다. 그들이 자란 환경이 온통 음악으로 둘러싸인 환경이어서 늘 음악을 듣고 자랐고 음악을 할 경우 음악은 자기성취감을 갖게 하기 때문에 비뚤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도 즐겁게 음악을 하고 또 잘 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박환영은 전통예술명가의 후예답게 가문의 음악인 대금음악과 진도씻김굿 음악을 충분히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더 발전시켜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교수로 실력 있는 선생님 역할을 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행사가 있으면 언제나 아버지 박병천을 도와 동생인 성훈 누이동생 미옥, 향옥, 현옥과 함께 씻김굿을 멋들어지게 한다. 대금연주자나 장구반주자로 큰 무대에 자주 서는데 국내·외의 연주를 따지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음반을 낸 수도 상당히 많은데 장구반주자로 나온 것이 많고 본인의 독집음반(박환영 대금연주-박종기의 예술세계)도 냈다. 군복무시절부터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성취하며 살아 온 박환영의 음악인생은 분명 크게 성공하고 있는 삶이다. 뚜렷한 직장이나 행복한 가정 그리고 음악명문가의 배경 등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것을 다 가진 음악가이다. 그런 박환영이 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종증조부 되는 대금의 달인이며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를 내용으로 하는 음악극이나 창극을 만들어 보고 싶고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 재능 있는 후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창조적인 일에 대한 꿈과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이런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기에 박환영의 성취하고 성취하는 삶에 큰 박수를 보낸다.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그의 삶 그의 꿈] 겨울에도 장미는 핀다

    [그의 삶 그의 꿈] 겨울에도 장미는 핀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히트했다. 그렇지만 《장미의 이름》속의 장미는 에코가 고백했듯 소설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설 속에서 장미는 향기로도 그 모양으로도 이름으로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에코의 ‘장미’는 추리 소설을 추리소설답게 장식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된 상징일 뿐이다. ‘장미’ 자체가 하나의 암호인 셈이다. 그리고, 이 난해한 상징은 독자를 호기심으로 이끄는 표지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아무려나, 심명보 화백의 이야기는 ‘장미’로 시작해야 할 듯하다. 품을 좀 넓혀서 말하자면, 세상은 꽃이 있어 한결 아름답다. 특히 실체로서의 장미는 꽃의 대명사로 불릴 만하다. 장미에 관한 역사는 그 다양한 모양과 빛깔만큼이나 살이의 비극과 희극을 무수히 넘나드는데, ‘장미전쟁’은 에코의 소설 제목처럼 실제의 장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전쟁인데 그 전쟁에 관여했던 두 가문의 문장이 공교롭게도 흰장미와 붉은 장미였던 까닭에 세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었다.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장미는 여전히 사랑받는 꽃으로 우리 주변을 장식한다. 진부하고 통속적긴 얘기지만 문학과 예술에서 꽃이 종종 여인을 상징하듯이, 장미는 여인 중의 여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여인이 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아니었던가.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장미를 사랑한 여인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장미는 역사에서의 실체이며 현재다. 다시, 장미의 이름 이제, 앞에서 말했던 ‘장미’의 기억을 심명보 화백의 작업실로 가지고 가자. 화백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이는 누구나 장미를 볼 수 있고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작업실이 온통 장미 꽃밭이다. 화백의 장미는 향기와 빛깔로만 버티는 보통 장미가 아니다. 화백이 피워내는 장미 꽃송이들에서는 향과 더불어 화백의 숨결이 느껴진다. 화백이 피워 낸 장미는 대체 얼마나 긴 수명을 가지고 있을까. 화백의 장미꽃들에서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꽃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화백은 장미꽃을 그린다. 1백호의 캔버스에 달랑 한 송이만 피어 있는 거대한 장미도 있다. 화백의 의지일 수도 있지만, 화면을 가득 채우고 피어 있는 장미는 상당히 사실적이고, 화백의 시선이 줌인한 지점에서는 정지 상태가 아닌 영속성을 담보하며 그 영속성의 자리에서 피어 있는 어떤 순간이 화백의 영감에 의해 붙잡혀 있다.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는 사실이 파문과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장미가 이렇게 흙이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거로구나! 이 장미들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구나! 알게 된다. 장미가 피어 있는 구름 정원 개가 끌고 가는 장미, 소파에 기대어 졸고 있는 장미, 바이올린과 첼로에서 피어나고 오래되어 낡고 녹슨 삽에서도 피어나고 허공의 구름 정원에서 피어나는 장미. 화백의 장미들은 사진이 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연의 신비를 그려내고 있다. 장미를 그리면서 화백은 빛(색깔)을 시각화한다. 빌은 에너지인데, 화백은 ‘장미’라는 실체를 ‘빛의 꽃핌’으로 간주한다. 구름 속에서 피어난 장미는 환상적인데, 장미의 배경인 구름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구름들은 여인들의 누드가 된다. 장미와 구름들이 숨을 쉬고, 그리고 이 어울림에서는 역동적인 아름다움의 실체가 느껴진다. 구름 속에서 피어난 장미는 구름이 되고 구름은 장미 꽃잎이 된다. 화백의 장미 사랑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는 추상 계열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지방 국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1987년에 화백은 뉴저지 주립대학의 연구 교수로 미국 뉴욕에 간다. 화백의 집 근처에 장미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화원이 있었다. 화백은 그곳에서 본 장미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 대학에서 수채화 클래스를 담당했는데, 발렌타이데이에 아끼던 제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그려 선물했다. 화백이 제자의 집에 초대받아 가 보니 자신이 준 그림을 큰 액자에 넣어 걸어놓고 있었다. 그의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충격과 당혹감도 예술이 줄 수 있는 기능이지만 기쁨과 즐거움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화백의 장미는 그렇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병이 아닌 야생의 장미들이 화백의 캔버스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화백은 말한다. 인간이나 곤충을 확대하면 괴물이 되지만 꽃은 확대하면 할수록 환상성의 아름다움을 준다고. 화백의 그림 속 장미들을 보면서 화백의 말씀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리고, 영원한 장미의 이름 화가로서의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화백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대학 교수직을 버린다.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는 건 누구나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 후로 화백은 늦깎이 전업작가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오고 있다. 장미 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타고난 실험정신을 자신의 생에서도 끊임없이 실험한 결과를 장미꽃으로 피워내고 있다. 화백의 캔버스엔 액자가 없다. 캔버스 옆면까지도 그림이 이어진다. 평면이 아닌 입체다. 무한 확대인 셈인데, 프레임마저도 캔버스의 영속성으로 간주하는 화백의 고집이 엿보인다. 화백의 장미는 빛의 축제다. 정물로서의 장미가 아닌, 실체가 주는 신비로움이다. 색은 빛을 전제로 존재하는 것. 아름다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화백의 고백처럼, 화백이 피워낸 장미들은 빛을 숨쉬고 자연을 호흡한다. 신의 축복인 빛을 화백의 장미 꽃송이들이 발산하고 있다. 뽐내고 있다. 화면에 한껏 확대된 장미와 빛이 어울리면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어떤 지점에 화려하게 멈춰 있다. 화원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꽃은 계절이 따로 없다. 화백의 캔버스에서 태어나는 장미 꽃송이들도 그렇다. 그리고, 화백의 장미들이 더욱 소중한 것은 시한성으로부터 떠나 있다는 사실이다. 화백이 피워내는 장미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 예술의 본질인 영원성과 더불어 숨쉬면서 세상과 우주와 진하게 입맞추고 있다. 심명보 2004∼ The Bridgeman Art Artist(London, UK). 1987∼1991 미국 뉴저지 주립대 연구교수. 1972∼1990 경성대,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1988∼1991 아트스튜던츠 리그 오브 뉴욕에서 수학. 아트엑스포 뉴욕, 레이먼 갤러리, 프릿뱅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갤러리, 동아미술관, 갤러리 코리아 등 1970년에서 2007년까지 국내외에서 4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글 최준 시인, 편집위원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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