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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프리뷰]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공연프리뷰]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난 네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 이제 황태자 흉내 그만내고 황태자답게 행동해 보지 그래.”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넌 몰라. 위험해지는 건 내가 아니야, 너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도 너라고! 너와 너의 가족!” “싸울 가치가 있는 것에는 그만한 위험도 따르는 거야.” 비장한 대사가 연습장 안에 퍼졌다. 사랑을 깨달은 남자 루돌프와 처음 사랑을 만난 여자 마리 베체라는 이 장면(2막) 이후 파국으로 치닫는다. 행복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모두 감내하다가 결국 한날한시에 파란만장한 삶을 끝낸 두 연인의 이야기가 2시간 40분 동안 펼쳐졌다. 출연자 모두 무대의상 차림도 아니었고, 무대장치라고는 세트 위치를 맞추기 위한 나무판 몇 개뿐이었지만 드라마만으로 끝내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서울 예장동 남산창작센터에서는 오는 10일 개막을 앞둔 ‘황태자 루돌프’의 막바지 전막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 작품은 수많은 뮤지컬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오스트리아 빈 극장협회(VBW)가 함께 제작한 첫 번째 뮤지컬이다. 올 상반기 한국 뮤지컬계 광풍을 이끈 뮤지컬 ‘엘리자벳’의 연작 성격이 강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일단 작품은 비극이다. 19세기 말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태자로서 치열하게 사랑과 개혁을 동시에 이루려다 좌절하고 마는 황태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처절하지만은 않다. 왕가의 화려한 무도회와 시원스러운 스케이트장 장면은 가라앉는 극의 분위기를 반등시키기도 한다. 루돌프와 마리가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은 꽤 볼 만하다. 등장하는 배우 20여명 중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줄 아는 배우는 단 2명이었던 터라 배우들은 몇달 동안 한강 둔치에서 스케이트 강습을 받아야 했다. 덕분에 매우 활기찬 장면이 됐다. “지금도 아침마다 스케이트를 타면서 연습 중”이라는 옥주현은 자유자재로 회전과 정지를 하며 ‘실력’을 자랑한다. 루돌프로 열연할 안재욱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조건이 좋았다.”면서 농담을 던졌지만, 연습에서는 웃음기를 걷어냈다. 아버지 요제프 황제의 명령에 마지못해 순응하는 장면(1막)과 마리를 찾아 기차역에서 흐느끼는 장면(2막)은 그의 연기 내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로버트 요한슨 연출이 “매일 연습을 하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온다. 관객들도 휴지를 꼭 챙겨와야 할 것”이라는 말이 이해되는 장면이다. ‘황태자 루돌프’의 한국 버전에는 빈 버전에서는 없는 음악이 삽입됐다. 루돌프의 정적 타페 수상과 마리의 후원자 라리시 백작부인이 부르는 탱고 선율의 ‘증오와 욕망’(1막), 황태자비 스테파니와 마리의 듀엣곡 ‘그 없는 삶’(2막) 등이다. 루돌프 역을 맡은 세 배우 중 안재욱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임태경은 “노래로 연기를 하는 배우”로 평가받고, 박은태는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이 기대를 갖게 한다. 마리 역시 3명이 캐스팅됐다. 옥주현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연기력이 출중하다. 김보경이 귀엽고 앙증맞다면, 최유하는 두 사람의 중간쯤에 있다. (02)6391-6333.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문화마당] 양반의 사과와 역사인식/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양반의 사과와 역사인식/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재 한국의 족보를 보면, 몇몇 중인 집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조상이 양반이었음을 명시한다. OO공파 몇 대 손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을 요즘도 어렵지 않게 본다. 김해 김씨니, 전주 이씨니 하는 수많은 명문가가 우리 귀에 익다. 자기 조상이 상놈이었다고 말하는 가문은 거의 없다. 그렇다. 그래서 이 땅은 아직도 양반의 나라다. 그런데 18세기 중반에 이르도록 전체 인구에서 적어도 30% 이상은 노비였다. 당시 인구를 대략 1200만~1600만명으로 본다면, 얼추 400만~500만명이 노비, 즉 세 명 중 한 명꼴로 노비였던 셈이다. 지금 당신 주위에 보이는 아무나 두 명을 찍어 보시라. 그러면 당신을 포함해 그 셋 가운데 한 명은 노비의 후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 이 땅은 노비의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조상이 예전에 노비였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고 구속한 아픈 역사를 이제는 깔끔하게 청산한 것일까? 노비제도가 폐지된 것은 갑오개혁(1894년) 때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인 폐지였을 뿐이다. 사회적으로는 대한제국이 망한 후에야 사라지기 시작해 6·25 전쟁을 고비로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그 잔영은 길고 길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말 듣기가 어렵지 않았다. “저 뒷마을 OOO네는 요즘 잘나간다고 거들먹거리는데, 예전에 우리 집 노비였지.” “왜 하필 OOO네 딸내미냐?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이 결혼만큼은 절대 안 된다.” 가혹한 노예제도를 비교적 최근까지(1863년) 유지했던 미국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법이 있는데, 흑인노예의 후손에게 일부 특혜를 주는 법도 그중 하나다. 이에 대한 반발도 있었지만, 비인간적으로 차별받은 노예의 후손에게 지금 사회가 일부 혜택을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평’이라는 법 해석 덕분에 여전히 유효하다. 이 땅에는 그런 법이 없다. 자기가 노비의 후손이라고 당당히 나서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근대화 과정에서 신분 세탁이 ‘평화적으로’ 가장 잘된 나라가 아마 한국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이 땅에서는 진정한 역사 청산이, 과거사 반성이 없었다. 가해자 측의 진정어린 반성은 전혀 없이, 겉으로만 문제가 봉합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역사에서 배우는 바도 적어, 되풀이가 많다.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고 소유한 노예제도가 나쁘다고 지금은 모두 인정한다. 미국에서 노예제도에 대해 사과성명 내기를 완강히 거부하던 보수의 대명사 남침례교단조차도 10여년 전에 마침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공식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비슷한 얘기조차 들리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많은 노비를 부리며 떵떵거린 어느 가문에서도 자기 조상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성명을 내지 않는다. 한국에서야말로 그런 성명을 발표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 노비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이가 없으니 보복을 당할 염려도 없고, 소송에 휘말릴 일도 없다. 그런 성명을 발표하면 오히려 문중 이름이 언론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유명해질 테니, 얼마나 득(得)이 많겠는가? 그러나 어느 문중도 말이 없다. 경주 최씨도, 안동 김씨도, 문화 유씨도, 청주 한씨도, 어느 누구도 말이 없다. 오히려 틈만 나면 과거에 엄청난 양반가였음을 자랑한다. 무엇이 진정한 가문의 영광일까?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요즘 대선의 계절을 맞아 과거사 반성 문제가 떠들썩하다. 이는 역사를 보는 인식과 직결되는 문제다. 현대 인류문명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보아 잘못임이 분명한 과거사에 대해서는 결자(結者)가 확실히 사과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현재완료 진행형’으로서의 역사가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
  • [경제민주화 정책 대해부] (2) 고속성장의 그림자-재벌 문제점은

    [경제민주화 정책 대해부] (2) 고속성장의 그림자-재벌 문제점은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집단(그룹)이 경영 세습과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시가총액 290조원에 달하는 초거대·우량 기업의 후계자로 올라서는 데 들인 돈은 고작 16억원대였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서 받은 60억원에 대한 증여세 명목이다. ●적은 돈으로 경영권 세습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사장의 ‘후계대로’는 탄탄대로였다. 이 사장은 이 종잣돈으로 매입한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주식은 그가 사자마자 상장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550억원)을 안겨주었다. 여기서 나온 돈으로 1996년 삼성에버랜드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주당 7700원에 인수한 뒤 주식으로 전환, 에버랜드 지분 25.1%를 획득하면서 사실상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달랑 에버랜드 지분만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른바 재벌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그 비결이다. 순환출자는 A, B, C 등 세 기업이 있을 때 A가 B에, B는 C에, C는 다시 A에 출자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A는 적은 지분으로 B와 C를 장악할 수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 순환출자 고리의 정점에 있는 기업. 이 때문에 에버랜드 대주주인 이 사장이 사실상 삼성그룹 전체를 휘하에 두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재벌그룹이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를 해온 배경에는 부와 경영권을 보다 쉽게 대물림하겠다는 편의주의가 작용했다. 삼성은 현재 15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롯데가 가장 많은 19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차 2개, 한진그룹 6개 등이다. ●“땅짚고 헤엄치기식 사업” 비난 이렇게 자리를 잡은 후계자들에게는 또 다른 지원이 기다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감 몰아주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로 벌어들인 수익은 ‘기네스감’이다. 정 부회장이 지분을 소유한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은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01년 1985억원에서 2011년 5조 8340억원으로 10년 새 29배나 뛰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2001년과 2002년 총 30억원을 출자한 게 전부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2004년에 지분 일부를 매각해서 850억원을 벌었고, 10년 동안 389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현재 그가 보유한 주식가치는 2조원에 달한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이른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촉발시킨 ‘사건’으로 이 두 가지를 꼽는다. 1~2세 경영인들은 경제발전과 궤를 함께해 왔다는 측면에서 어지간한 편법 행위는 국가와 국민의 암묵적 용인을 받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최근 삼성 사장단 강연에서 “역사적으로 재벌이 이만큼 커 온 데는 국가 차원의 보호와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촉구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재벌가의 자녀들 중 일부는 가족의 돈과 네트워크를 등에 업고 사업체를 하나씩 꿰차면서 최근 몇 년 새 대기업 계열사가 급격히 늘었고, 손대는 업종 또한 증가했다. 10대 그룹의 계열사 수는 2005년 4월 347개에서 올해 4월 583개로 늘었다. 7년 새 236개, 한 해 평균 33.7개씩 급증했다. 진출한 업종 또한 2001년 39개에서 2011년 말 56개로 10년 만에 43.5%가 늘었다. ●“미국이라면 기업분할 명령 내려져” 박승록 착한자본주의연구원 대표는 “2~3세 세습이 계속되는 동안 범삼성·현대·롯데·LG 등 4대 재벌 가문이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50%를 넘어섰을 정도로 경제력 집중도가 심화됐다.”며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오래전에 기업분할명령제(계열분리청구제)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업적 연관성이 없는 무차별 ‘문어발’ 확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삼성, 롯데, 현대, LG, SK 등 웬만한 대기업은 커피·빵집, 떡볶이, 순대 등을 파는 외식업에 진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낳았다. 또 명품과 자동차 등 소비재 수입에만 열을 올려 ‘땅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사업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워런 버핏이 가문의 부를 이어받은 이들을 ‘운 좋은 정자클럽의 멤버들’(lucky sperm club)이라고 폄하하면서 미국은 능력 위주의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 더 들어맞는 얘기다. 재벌의 시장 지배력이 커 가는 사이 기회를 박탈당한 서민들의 삶은 쪼그라들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결과 자영업자의 절반은 창업한 지 3년도 안 돼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 후 소득은 창업 전보다 평균 16.2% 줄어들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공정 경쟁이다. 기업이 일감 몰아주기로 일자리 창출 등의 낙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4세들이 한참 앞선 출발선에 있다는 사실은 반감을 낳기에 충분하다. 박 대표는 “3~4세 경영세습 이후 재벌그룹의 성과들이 계열사 내에서만 돌고 다른 하청기업으로 이전되거나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며 “재벌개혁을 통해 낙수 효과를 회복하고 다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역사상 가장 부자는 ‘440조원’ 가진 아프리카 왕

    역사상 가장 부자는 ‘440조원’ 가진 아프리카 왕

    역사상 가장 부자인 사람은 누굴일까? 최근 한 웹사이트가 ‘셀러브리티 넷 워스’(Celebrity Net Worth)가 지난 1000년간 가장 부자였던 사람 25인을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인플레이션 까지 고려해 발표된 이번 통계에서 넷 워스는 인류 최고의 부자로 14세기 서 아프리카의 왕이었던 만사 문사 1세를 선정됐다. 현 시세로 무려 4000억 달러(약 440조원)로 평가받은 재산을 소유한 문사 왕은 현재의 가나와 말리 지역 등을 통치했으며 1337년 사망했다. 이후 그의 재산은 후손들의 다툼과 전쟁 등으로 사라졌다. 2등은 지난 1744년 부터 현재까지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로스 차일드 가문이 차지했다. 독일계 유대금융 자본으로 알려져 있는 이들 가문은 총 3500억 달러(약 386조원)를 가진 것으로 추산됐다. 3등은 ‘석유왕’ 존 D 록펠러(3400억 달러)가 4등은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3100억 달러)가 차지했다. 현존하는 부자로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12위(1360억 달러)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으며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22위·680억 달러), 투자가 워렌 버핏(25위·640억 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넷 워스 측은 “순위 안에 여성은 없으며 25위에 총 14명이 미국인”이라면서 “현재 달러화와 물가시세를 모두 고려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한국형 다빈치 교육을 말하다] 융합형인재교육 현장 가보니

    [한국형 다빈치 교육을 말하다] 융합형인재교육 현장 가보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 뛰어난 미술작품 외에도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보였다. 다빈치는 1500년대 초반 보르자 가문에서 수석 측량가 겸 엔지니어, 지도 제작자로 일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간의 몸을 직접 해부해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위대한 예술가로 불리는 다빈치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보인 소질과 관심으로 건축가이자 조각가, 수학자이자 철학자라는 직함을 얻었다. 융합교육이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창의적 사고와 학문의 통섭이 강조되는 시대에 한 우물만 파서 성공했다는 ‘달인’의 이야기는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학의 원리를 말로 풀어내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식 기법,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숨어 있는 나노과학 기술 등 두 가지 이상의 학문을 넘나들며 접근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이 새로운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붓과 황금비율 수식이 만나 완성도를 높인 다빈치의 작품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서로 다른 학문이 한데 만나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3회에 걸쳐 스팀(STEAM), 다시 말해 과학(Science)·기술(Technology)·공학(Engineering)·예술(Arts)·수학(Mathematics)을 융합한 한국형 다빈치 교육, 융합형 인재교육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 본다. 지난달 7일 부산 대연중학교 과학실에서는 24명의 남녀 학생들이 모여 로봇 제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SELF-STEAM’(셀프 스팀)이라는 이름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이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 소형 로봇을 투입해 보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꼬불꼬불한 동굴 속 미로에서 잘 움직일 수 있는 스위치 로봇을 만들어야 했다. 방향을 잘 바꾸고, 장애물에 걸려도 넘어지지 않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5개 팀으로 나누어진 학생들은 가장 먼저 보물을 찾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학생들은 로봇의 설계방법과 디자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청소용 로봇, 서빙 로봇, 반딧불이 칠판지우개 로봇 등 개성 있는 로봇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출발해 보물을 향해 달려간 5개의 로봇 가운데 일등을 거머쥔 것은 청소용 로봇. 로봇에 빗자루 모양의 부직포를 달아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이명희 과학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주제를 정해 실험을 하다 보니 전형적인 과학실험이 아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면서 “과학적 지식과 함께 창의적인 사고도 키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STEAM 동아리·방학캠프 등 운영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지정한 STEAM 연구시범학교 중 한 곳인 대연중은 STEAM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지난해 학교 안에 별도의 ‘스팀 존’(STEAM ZONE)을 만들기도 했다. 실험에 필요한 교구를 배치하고 수업 결과물을 전시해 놓았다. 여기서 STEAM 동아리, 토요일 STEAM 교실, 방학 캠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지역 STEAM 연구시범학교로 선정된 서대문구의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는 수업시간에 다양한 융합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학교 과학실에서는 각종 실험도구 외에 클라리넷과 리코더 등 악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음악실도 아닌데 악기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는 소리 전달의 과학적 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한 학생이 리코더로 음악수업 시간에 배웠던 노래를 연주하자 과학교사는 “방금 전 친구가 분 리코더 소리가 여러분 귀에 들리는 이유는 뭘까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학생들도 이내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생긴 공기의 진동이 소리로 바뀌어 귀에 들리는 거예요.” 교사의 설명이 이어지자 학생들은 쉽게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학교 김정효 교장은 “교과서로 딱딱하게 수업을 하는 것보다 노래를 들려주고 눈에 보이는 실험을 하면 아이들의 몰입도가 눈에 띄게 향상된다.”고 말했다. 창의재단은 지난해 8월 전국 16개 학교를 STEAM 연구시범학교로 지정한 데 이어 올해는 80곳으로 확대해 융합교육을 확산시키고 있다. STEAM 연구시범학교로 선정된 학교는 수학·과학·기술가정·예체능 수업의 20%를 융합형 수업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나의 중심 교과를 두고 필요에 따라 다른 교과목을 접목시켜 설명하는 교과 내 수업형과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과목을 함께 배우는 교과 연계형 수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콘텐츠 개발·연구에 교사 역량 중요 자신이 전공한 과목만 숙지해 가르치면 됐던 기존 수업과 달리 다양한 과목을 융합해 가르쳐야 하는 STEAM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수업을 이끌어 가는 교사들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의재단은 올해 전국 150개 교사연구회를 지원하고 있다. STEAM 교사연구회는 현장 적용성이 높은 STEAM 수업모델과 창의적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7명 내외의 현직 교사, 대학 교수, 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협동 연구팀이다. 2년 연속 STEAM 교사연구회로 지정된 진주동중학교 STEAM 교사연구회는 ‘에어서핑(Air Surfing) STEAM 프로그램’을 개발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를 쉽게 설명하고 최근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우주항공산업 분야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해 큰 호평을 받았다. 에어서핑 프로그램은 과학, 기술, 수학, 미술, 국어 등 5개 교과목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융합교육 프로그램으로, 과학 수업 시간에 양력과 베르누이 법칙 등 비행기의 원리를 배운 뒤, 스티로폼을 이용해 학생들이 직접 창의적인 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는 대회로 구성됐다. 에어서핑 프로그램은 다른 학교에도 STEAM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파됐다. 조향숙 과학창의재단 융합교육정책실장은 “STEAM 시범학교와 교사연구회 외에도 융합교육 역량 강화를 위한 교사 연수, 첨단 과학교사연수센터 지원, STEAM교육을 구현하기 위한 미래형 과학교실 지원 등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현재 한국학계에서는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가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개혁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제국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근대화 사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반대로 광무개혁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서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근대화하려 한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제국의 다양한 평가에 앞서 한국학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대한제국의 개혁을 추진한 정치세력이다. 개혁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대한제국의 다양한 해석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이재순(李載純,1851~1904)과 이범진(李範晋, 1852~1911)으로 구성된 궁내부는 고종 권력의 핵심세력이었다. ●이범진, 제정러시아 대한제국 개입 유도 1896년 2월 9일 러시아 순양함 아드미랄 코르닐로프의 내부는 긴박했다. 당시 아드미랄 코르닐로프는 제물포에 포함 보브르와 함께 정박했다. 함장 몰라스는 해군대위 흐멜레프에게 러시아 수병을 이끌고 신속히 서울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2월 10일 새벽 중위 미하일로프는 서대문에 도착해서 대위 흐멜레프를 비롯한 해병부대를 맞이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안내했다. 장교를 포함한 러시아 해병의 전체 인원은 135명이었다. 포함 보브르에서 대포 1문도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송되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迎秋門)→금천교(禁川橋)→내수사전로(內需司前路)→새문고개→러시아공사관으로 신속히 피신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왕이 안방을 내주고 셋방살이를 자처했다는 아관파천이었다. 2월 11일 저녁 러시아공사관과 영사관 사이의 광장에는 청색의 천막이 설치되었다. 1개 중대의 러시아 병력이 러시아공사관의 안팎에서 경계를 시작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 내부 2개의 방을 침실과 접견실로 사용했다. 공사관 정문 앞에 있는 정원에는 대포가 설치되었고, 공사관 내부의 개조된 3개의 방에 33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영사관 내부의 개조된 2개의 방에는 62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그동안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에도 불구하고 제정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현상유지’ 외교 정책을 고수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러시아의 ‘현상유지’ 외교 정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북극곰 제정러시아를 움직인 인물은 이범진이었다. 이범진은 2월 2일 러시아공사관으로 “생명의 위협을 피하여 왕세자와 같이 대궐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에서 피신하려고 한다.”는 고종의 비밀 편지를 전달했다.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 스페예르는 이범진에게 고종 피신의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만 이범진은 “만약 스페예르가 고종의 피신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고종이 대궐에서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며 “고종이 아관파천을 결심했다.”고 답변했다. 아관파천 직전 고종은 자신의 신변안전 때문에 파천의 실행을 주저했다. 그러자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의 지원을 확인하는 한편 ‘궁중(宮中)의 여화(餘禍)가 있을지 모른다.’는 일본의 ‘고종폐위설’까지 유포하여 고종의 결단을 유도했다. 1898년 9월 11일 경운궁이 발칵 뒤집혔다. 이날 저녁 식사 전에 고종과 순종은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의 절반을 마신 순종은 토하면서 혼절하였고, 고종은 구토했다. 남겨진 커피를 마신 내관들도 혼절하였다. ●이재순, 고종 커피에 아편 넣어 정적 제거 사건의 파장이 심각했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날 고종의 수라상에 관련된 인물은 14명이었다. 심문과정에서 김종화(種和)라는 인물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종화의 심문과정에서 전선사(典膳司) 주사(主事)를 지낸 공창덕(孔昌德)의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공창덕에 따르면 그는 김종화에게 1000원의 사례금을 보장하면서 김종화가 고종과 순종의 커피에 ‘아편 1량’을 몰래 집어넣었다. 무엇보다도 공창덕의 심문과정에서 배후인물이 김홍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창덕에 따르면 김홍륙은 공창덕에게 협판을 보장하면서 고종의 독살을 지시하였고, 김홍륙은 자신의 처인 김소사를 통해서 공창덕에게 ‘아편 1량’을 제공하였다. 사건에 참가한 인물 중 김종화는 이재순의 추천에 의해 각감청(閣監廳)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현당(寶賢堂)의 창고지기인 김종화는 홍릉 제사 때에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해서 면직되었다. 그런데 면직된 김종화는 사건 당일 대궐에 몰래 잠입하여 고종의 독살을 실행했다. 공창덕은 고종의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고용한 요리사였다. 아관파천 이후 공창덕은 김홍륙의 추천에 의해서 전선사 주사로 임명되어 왕의 주방에서 외국요리를 관장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의문을 살펴보면 첫째, 커피를 마신 사람 중 죽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독살의 의도가 있었다면 커피를 마신 사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야 한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암살의 계획보다는 정치적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둘째, 김종화라는 인물이 이 사건에 개입한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고종을 암살하려는 인물이 쉽게 체포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면직된 인물이 대궐에 잠입할 수 있는가? 1898년 4월 부임한 러시아공사 마튜닌은 독차사건이 러시아통역관 출신 김홍륙을 파멸시키려는 음모로 파악했다. 당시 러시아의 후원 아래 김홍륙은 궁궐에 자유자재로 출입하면서 정치와 인사 문제까지 깊숙이 개입하였다. 마튜닌은 러시아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로 궁내부대신 이재순을 지목하였다. 이재순은 김홍륙이 러시아공사의 후원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재순은 자신이 김종화를 추천해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에 개입했다. 이재순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고종의 승인을 얻었고 경무청에 조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이후 1898년 10월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반역 음모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소속한 이재순과 이범진 계열을 적극 후원했다. 이범진은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를 구해준 인연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아 민비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관파천 이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범진은 을미사변 관련자를 처벌하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이재순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이범진의 지나친 권력 집중에 반발하였다. 결국 이범진은 1896년 6월 주미공사, 1899년 3월 주러공사에 임명되었다. 대한제국은 1900년까지 도쿄, 워싱턴에만 자국 공사를 주재시켰다. 당시는 의화단 사건 이후 대한제국과 만주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였다. 주러공사 이범진은 고종의 여전한 신임 아래 대한제국 외교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친정시문과에 합격한 청안군(淸安君) 이재순은 종친 내부에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을미사변 이후 시종원경 이재순은 시위대 장교와 병사를 결집하여 고종 구출을 위한 춘생문사건을 주도했다. 그는 김홍륙의 암살시도 및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였다. 궁내부대신을 여러 차례 역임한 이재순은 고종의 군주권 강화를 위해서 각종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대한제국 정치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이재순의 인맥은 충청도 출신자, 반면에 이범진의 인맥은 함경도 출신자가 주축이었다. 궁내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한 이범진과 이재순 계열은 군주권의 강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각각 러시아·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지지기반이 달랐지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서는 상호 연대할 수 있었다. ●고종, 충성심 자극 위해 경쟁 유발… 갈등만 낳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고종은 이들을 단일한 세력으로 통합시키지 않으면서 상호간 경쟁을 유발하여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했다. 이러한 상호 경쟁은 대한제국의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권력 독점을 향한 지나친 대립만 초래했다. 처녀지를 개간하려면 겉으로 미끄러지는 쟁기를 쓸 것이 아니라, 땅속을 깊이 파고드는 플라우(쟁기)를 써야 한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지금&여기] 대선 三國志/이영준 정치부 기자

    [지금&여기] 대선 三國志/이영준 정치부 기자

    중국 역사소설 삼국지(三國志)의 위(魏)·촉(蜀)·오(吳) 대결은 현재 치열한 3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국내 대선판과도 많이 닮아 있다. 대선 후보들을 삼국지 등장 인물에 비유하자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위나라 조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오나라 손권,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촉나라 유비에 각각 대입시킬 수 있다. 단, 중국 명나라 소설가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에 기초를 둔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힌다. 난세의 간웅으로 표현되며 강한 군사력,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보여준 조조는 박 후보와 비슷하다. “내가 세상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세상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하지 않겠다.”라는 그의 말은 최근 측근 비리에 대해 꼬리자르기를 한 박 후보 측 모습을 연상케 한다. 조조의 부하들이 조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손권은 ‘강동의 호랑이’로 이름을 떨친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의 빛에 가려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 후보에게도 ‘친노’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강동에 터를 닦은 손견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뒤를 이어 용맹을 떨치다 단명한 손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유된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계파 싸움이 치열했다는 점도 문 후보 진영과 비슷하다. 손권이 손자병법을 지은 손자(孫子)의 후예로 가문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점은 문 후보가 민주당 후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천하통일이라는 목표보다 답답할 만큼 인의(仁義)를 강조하며 비교적 ‘착한 캐릭터’로 비쳐지는 유비는 상식과 합리를 강조하는 안 후보와 흡사하다. 출마선언을 하기까지 답답함과 함께 끈기를 보여준 모습에서 제갈량을 얻기 위한 삼고초려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가장 적은 병력, 좁은 영토를 가졌다는 점도 ‘무소속’ 안 후보의 사정과 닮았다. 무엇보다 유사한 점은 적벽대전에서 조조(박근혜)를 물리치기 위해 손권(문재인)과 유비(안철수)가 손을 잡았다(단일화)는 점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삼국지만큼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apple@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우리말 겨루기(KBS1 밤 7시 30분) 올해로 566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글, 우리말에 대한 참 의미를 되새기고 바른 말을 살펴볼 기회를 가져본다. 비속어 사용 등 언어파괴의 한 가운데서 바른 말길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데 앞장서온 ‘우리말 동아리’ 학생들이 함께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있는 내용으로 우리말과 맞춤법, 사자성어 등을 다양하게 조명해 본다. ●울랄라 부부(KBS2 밤 9시 55분) 정신이 돌아온 여옥과 수남은 본인들의 처지에 기가 막힌다.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스님을 찾아가고 별의별 쇼를 다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생활하게 되는 두 사람.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옥은 호텔로, 호텔리어 수남은 그렇게 한심해 마지않던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어 버리고 만다. ●마의(MBC 밤 10시 25분) 광현과 영달은 왈패들과 명환의 수하 강정두로부터 도망친다. 그러던 중 광현은 영달이 계집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효종은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내용을 보고받은 뒤 도준의 무고함을 널리 밝히고, 그 가문의 모든 것을 신원하여 회복할 것을 명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석구는 12년 전 자신이 본 살인사건의 진실을 증언하려 한다. ●월화드라마 신의(SBS 밤 9시 55분) 필사의 함정에 빠지게 된 최영을 살리기 위해 다급해진 은수는 덕흥군(박윤재)과 계약을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최영은 분노하며 달려와 은수에게 자기 옆에 있어주면 안 되는지 묻는다. 공민왕은 최영에게 궁을 탈취할 작전을 명하고, 덕흥은 기철과 손을 잡고 현고촌을 기습할 계획을 세운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11월의 세렝게티 초원에 우기가 시작되면 중부 지역에는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그리고 누, 얼룩말, 가젤처럼 무리 지어 사는 초식동물들이 신선한 풀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온다. 지상에서 가장 큰 대형 무리들이 몰려드는 이때가 사자나 치타, 표범, 검은등자칼 같은 포식자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데….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늦은 밤, 부천 경찰서 지능팀에 한 여자의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성매매를 하는 성노동자. 빌린 돈을 다 갚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다 변제되지 않았다며 계속되는 성매매 독촉에 지쳐 신고했다고 털어놓았다. 불법 대부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성매매 알선까지 하고 있는 업자들. 과연 돈과 성매매의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 [문화마당] 시어머니 한 번 모셔봤으면/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시어머니 한 번 모셔봤으면/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아! 나도 시어머니 한 번 모셔봤으면….” 이 기막힌(?) 말은 20여년 전에 내 아내가 했다. 결혼한 친구들을 만났더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시어머니 험담을 하더란다. 일부는 중립을 지키는 신랑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단다. 바로 그런 성토 분위기에 내 아내가 찬물을 끼얹은 말이 바로 “시어머니 한 번 모셔봤으면”이다. 나의 부모님은 함께 월남하셨기에 남쪽에는 친척이 별로 없다. 자식도 많지 않아 형제만 두셨다. 그나마 두 분 다 내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시댁의 실체가 거의 없다 보니, 결혼과 관련해 신랑 쪽에서 내려야 할 모든 결정은 내가 내렸다. 나는 함 들어가면서 동네 시끄럽게 하는 게 싫어 나 혼자 함을 들고 처가에 갔다. 피로연도 없앴다. 아내에게 시부모님은 사진 속의 모습과 산소의 비석으로 입력되었을 뿐이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내의 친구들이 겪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들으면 화가 살짝 난다. 아내의 이야기에 내가 처음 하는 질문은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할 수 있나?”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에는 참 이상한 힘이 있어, 조금 듣다 보면 아내의 말이 곧 사실로 다가온다. 그러면 나는 또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럼 OOO씨(신랑)는 뭐 한대? 그냥 보고만 있대?”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남편들 중 50% 정도는 어머니 편을 들고, 40% 정도는 아예 끼어들지 않으려 한단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좀 불만이다. 아니, 결혼한 남자에게 누가 가장 가까운가? 아내와는 촌수도 없는 일심동체 아닌가? 또한 자기 인생을 던져 남편 한 명만 바라보고 시집에 합류한 그 여인을 남편이 지켜주지 않는다면, 그게 말이 되나? 그런데 남편의 무려 90%가 어머니 편을 들거나 고고한 척 중립을 지킨다고? 요즘 부부 간 갈등을 보면, 시집 식구들의 간섭 때문이 적지 않다. 어엿한 ‘남의 가정’에 왜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할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왜 스스로 그런 외부 간섭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 감당을 슬쩍 아내에게 넘길까? 시어머니의 간섭도 이해가 안 가는데, 시누이 간섭이나 손윗동서의 간섭은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누나나 형이나 형수가 자신의 아내에게 막 대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준엄하게 한 마디 액션을 취하는 게 정말 그렇게 힘들까? 아니면 귀찮아서 빠지는 걸까? 이런 내 생각을 친구들에게 밝히면, 대개 “너도 한 번 겪어 봐. 그게 그렇게 간단하질 않아. 겪어 보지 않았으면 입 다물어.”라면서 머리를 흔든다. 아내는 딸부자 집 셋째 딸이라 중간에 끼여 위 아래로 치이며 있는 듯 없는 듯 컸다. 처가에 다들 모일 때도 대개 설거지하는 딸(아내)만 노상 설거지를 했다. 처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궂은 일은 아내 몫이었다. 아내조차 그걸 잘 느끼지 못하며 성장했고, 결혼 초기에는 나도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며 이런 분위기는 셋째 사위인 내게도 자연스레 전이되었다. 그러나 처가에서 아내의 위상을 분명히 느낀 나는 10년 전 처가 모임에서 “영희(가명)는 이제 아버님 어머님의 딸이기 이전에, 영희는 스스로 영희이며 또한 제 아내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물론 무슨 얘기가 나왔을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타이밍을 맞춰 부드럽게 공표했다. 그래도 “영희는 내 식구이므로 앞으로는 부모님일지라도 함부로 뭐라 하지 마시라.”는 공개선언이었으니, 다른 처가 식구들은 아예 토를 달 여지도 없었다. 그날 분위기는 좋았고, 아내의 위상은 크게 바뀌었다. 다른 자매들의 시샘도 한몸에 받았다. 처가에서 사위의 말과 시가에서 며느리의 말이 그 무게에서 엄청 다르지만, 이제는 한국의 남편들이 그 차이를 좁히는 데 나설 때이다. 한국의 ‘시집문화’를 ‘처가문화’ 수준으로 바꿀 주체는 바로 이 땅의 남편들이다. 한가위 보름달이 지켜볼 것이다.
  • “주말엔 운전대 놓자” 코레일 환경캠페인

    “주말엔 운전대 놓자” 코레일 환경캠페인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콜린 베번은 현대 문명의 삶을 잠시 미루고 1년 동안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이른바 ‘노 임팩트’(No impact)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은 물론 패스트푸드도 끊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했다. 환경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줄 만한 문명의 이기(利器)를 철저히 거부한 그가 장거리 이동을 위해 유일하게 택한 교통 수단이 기차였다. 기차의 에너지 소비량은 승용차의 8분의1 수준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승용차의 20%밖에 되지 않는 등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자동차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기차를 이용하는 빈도가 점점 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레일이 최근 기차 여행 활성화를 위해 ‘주말에는 운전대를 놓자!’ 캠페인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시작한 이 캠페인에 전국 27만명이나 되는 녹색철도봉사단이 참여해 힘을 실었다. 코레일 관계자는 “철도를 이용하면 환경을 지키는 착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운전의 피로에서 벗어나 한층 여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과 단체 여행객을 겨냥한 다양한 체험형 상품을 마련해 캠페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지난 7월 8개 지자체와 연계해 선보인 농촌체험열차 ‘레일 그린’의 반응이 좋다. 열차 여행을 기본으로 각 지역 특산물로 구성된 농산물 수확체험, 계절별 농촌생활 체험, 생산자 직거래 장터, 지역 문화유산 해설 등 특색 있는 농어촌 체험을 할 수 있는 데다 중고생들이 사회봉사활동 시간도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특히 경북 김천으로 떠나는 ‘산골짝 옛날솜씨 마을로 여행’과 경남 산청의 ‘약초향기 따라 행복 따라 산청여행’, 전남 순천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美 순천만 느림여행’ 등이 인기상품이다. 정창영 코레일 사장은 “철도 중심의 여가문화 정착으로 진정한 휴식을 즐기고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냉전 집착증’ 적나라하게 드러난 케네디

    존 F 케네디(1917~1963년) 전 미국 대통령은 우주 경쟁은 물론 하키 경기까지 러시아를 이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냉전 집착증’을 보였다. 자신의 성공은 가문의 이름에 빚진 것이라며 돈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케네디의 맨얼굴이 그가 재임 시절 최측근들도 모르게 백악관 집무실에 설치해 놓은 녹음기에 담긴 260시간 분량의 대화와 전화 통화, 구술 기록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가운데 주요 내용이 존 F 케네디도서관재단이 25일 펴낼 책 ‘존 F 케네디의 백악관 비밀 녹음을 엿듣다’로 공개된다. 1962년 케네디는 제임스 웹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과의 회의에서 인간의 달 착륙이 자신의 최우선 관심사라고 밀어붙였다. 웹 국장이 “우주 환경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자 대통령은 결국 직설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나는 러시아를 때려눕히는 데만 관심 있지, 우주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냉전에 대한 그의 집착은 러시아와의 하키 경기에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1963년 3월 미국 남자 하키팀이 스웨덴에 17대2로 패하자 그는 국가대표 하키 선수였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빌어먹을, 우리가 대체 누굴 (경기에) 보낸 거야? 여자애들?”이라며 불평했다. 화가 나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전화통화도 서슴지 않았다. 같은 해 케네디 전 대통령은 군 측근들이 영부인 재클린 여사가 산기를 느낄 때에 대비해 케이프코드 공군기지 내 군 병원에 침실을 만들고 5000달러(약 558만원)짜리 가구를 사들였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 뿐 아니라 의회에서 군 예산이 깎일 것을 우려한 탓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케네디는 언론 담당에게 전화해 “가구를 취소하고 내 사진을 침대 옆에 걸어 놓은 바보 같은 놈과 책임자들을 알래스카로 전근 보내라.”고 호통쳤다. 이후 공군 참모인 가드프리 맥휴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속 사진에 등장한 참모에 대해 “멍청한 개자식”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토머스 퍼트넘 케네디도서관장의 소개대로 “날것 그대로의 역사”인 셈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높아지는 자살률을 되낮추는 작은 시도들

    [김병일 사람과 향기] 높아지는 자살률을 되낮추는 작은 시도들

    지난주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1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 5905명이라고 한다. 이는 하루 평균 43.6명이 자살로 고귀한 생을 마감했음을 뜻한다. 2006년 1만 653명에 비해 불과 5년 만에 50%나 증가한 수치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인구 10만명당 자살률도 비례해서 높아진다는 점이다. 연령대별로 볼 때 20대와 30대는 각각 24.3명과 30.5명인 데 비하여 70대가 84.4명, 80세 이상이 116.9명으로 가장 높았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봉양받아야 할 70, 80대의 자살률이 20, 30대 젊은 층보다 무려 4배가량 높은 셈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201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우리나라가 33.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8명의 2.6배에 달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국가로 꼽혀온 헝가리, 러시아, 일본 모두를 압도하는 수치다. 그 결과 2004년 이후 줄곧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더구나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은 5년 전에 비해 모두 감소하는데 우리만 거꾸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자살률이 이처럼 늘어만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인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지난 10년간 1인당 소득은 1.8배 높아졌지만 자살률은 오히려 2.3배 늘었다. 복지 혜택도 선진국에는 못 미쳐도 기초노령연금제와 장기요양제 실시 등 그동안 수준이 꾸준히 높아져 왔다. 이런 사실은 경제적 부의 증가가 반드시 행복을 비례적으로 증진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사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기본적인 물질적 수준이 달성되면 그때부터는 부의 증가가 더 이상 행복을 견인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이스털린 패러독스’를 발표한 바 있다. 자살의 주된 동기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이에 따른 정부의 실효적인 대책을 주문한다. 지당한 말이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번민하는 문제 가운데 상당 부분은 제도적인 접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제도적인 접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우리들의 관계이다. 관계는 ‘인간’을 전제로 한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C S 루이스의 조사에 의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미국인의 80%가 그 원인을 타인과의 관계가 좋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결국 행복하게 사는 것도, 불행으로 자살을 하는 것도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높아져만 가는 우리사회의 자살률을 다시 낮추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도 자주 대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유학의 중심덕목인 ‘인’(仁)의 가장 중요한 성분이 타인에 대한 배려,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 선현들 대부분은 학자이기 이전에 이 측은지심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다. 퇴계 선생만 하더라도 가족은 물론 제자와 하인 등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스스로 낮추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삶을 살았다. 퇴계 선생이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가서’(家書)를 보면 선생의 그런 인간적인 면모들이 페이지마다 물씬 풍겨 나온다. 마침 20일부터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민속박물관과 한국국학진흥원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진성이씨 퇴계가문의 유물전시회가 1년 예정으로 개막된다. 여기에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퇴계 선생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이 일반에 선보일 예정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실천했던 선현들의 마음을 살펴보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소중한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1910년 9월 8일 밤, 시문(詩文)으로 인근에 조금 알려진 한 시골 선비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그 평생의 마지막 시가 될 글을 써 내려갔다. “추등엄권회천고(秋燈掩卷懷千古)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 (가을밤 등잔 밑에서 책 덮고 옛일을 되돌아보니, 사람 세상에서 글 아는 이 노릇하기 어렵구나) 시 넉 수를 다 쓴 그는 다시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쓴 후 소주에 아편을 타 마시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 대한제국이 사라진 지 열흘 뒤의 일이었다. ●지조 굽히라는 세상에 날 세운 ‘황현’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855년 전라남도 광양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는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천품(天品)을 타고 났으나, 재주와 뜻을 펼치기에는 출생시대, 출생지, 가문 중 어느 하나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러 대에 걸쳐 서울에서 벼슬을 한 ‘경화사족’(京華士族) 출신이 아니고서는 과거에 합격하기 어렵고, 설령 어렵사리 합격한다 해도 고위직에 오를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된 시대가 이미 1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 입신출세(立身出世)의 꿈이 없었겠는가마는 세상은 그에게 꿈을 접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현실을 확연히 깨달은 것은 나이 30이 넘어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였다. 1888년 성균관 생원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그는 말로만 듣던 과거(科擧) 부정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보고 느꼈다. 세도가 자제들이 글 써주는 사람과 글씨 써주는 사람을 다 따로 고용하여 대리시험을 치는 관행은 더 이상 비난거리도 아니었다. 돈과 연줄 없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하기를 바라는 것은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과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는 자식들도 자기와 같은 출발점에 세우겠다는 절망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강위, 김택영, 이건창 등 마음이 통하는 명사(名士)들을 사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만 위안으로 삼고 낙향했다. 서울에 올라오기 얼마 전에 구례로 집을 옮겼던 그는, 그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시를 짓는 한편 자기가 보고 들은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를 용납하지 않았던 세상, 선비에게 지조를 기르라고 당부하는 대신 지조를 굽히라고 요구하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은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었다. 대원군도, 왕후와 그 친척들도, 왕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혼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더러우면 발을 씻을 것’이라는 옛 어부의 말대로 처신했다. 그의 귀에는 전기나 기차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에 관한 소식이 계속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들이 세상을 맑게 바꿔주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생애 두 번째 ‘선택’을 했다. 그를 버렸던 나라이자 그가 경멸하고 증오했던 더러운 자들이 지배한 나라였지만, 그는 이 뒤에 그를 기다릴 세상은 더 더러운 세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 “나라가 망했으나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원통치 않겠는가?”라고 썼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지 않았으니 나라를 위해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은 자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에 앞장서는 세상에서, 그런 자들이 계속 위세를 부릴 세상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시구는 “증무지하반연공(曾無支廈半椽功) 지시성인불시충(只是成仁不是忠)”(일찍이 나라를 위한 공이 없었으니, 내 죽음은 다만 인(仁)을 이루고자 함일 뿐 충(忠)은 아니로다)이었다. ●日·러·美 연줄 없던 이완용 처세로 부귀 누려 황현이 목숨을 끊던 바로 그 무렵,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은 일왕에게서 백작의 작위와 15만원의 은사금(恩賜金)을 받았다. 대한제국 황실과 친인척 관계가 없는 인물로서는 가장 높은 작위였다. 그는 며칠 전까지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었으나 어차피 허울뿐인 자리였다. 그에겐 남은 생애를 부귀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했다. 이완용은 황현보다 3년 늦게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 가까운 편이었으나 가문은 황현 집안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었다. 그 역시 어려서 남달리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집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의 일생도 황현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1세 때, 그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집안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먼 친척 아저씨인 이호준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 양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서형(庶兄)인 이윤용(李允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882년, 당시 이조판서이던 양부 덕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규장각 대교, 홍문관 수찬, 세자시강원 사서 등 출세가 보장된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1886년 신설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입학했다. ‘나라에서 영재를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육영공원은 미국인 교사가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치는 신식 학교였다. 때는 갑신정변 2년 뒤였고, 조야(朝野)에 개화파에 대한 적개심이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모험일 수도 있는 육영공원 입학을 ‘선택’했다. 양부가 비록 고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문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면, 다른 것으로 만회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왕의 뜻이 있는 곳, 왕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그의 출세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덕에, 그는 주미 한국공사관 참찬관과 주미 공사 대리로 두 차례나 미국에 다녀올 수 있었고, 국내 정치에서 계속 영향력을 키우던 미국인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1890년 귀국 후 관계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1894년 모친상을 당했다. 일본군을 배경으로 수립된 개화파 내각은 그에게 입각(入閣)을 제의했으나, 그는 모친상을 핑계로 일단 거절했다. 이듬해 학부대신으로 내각에 들어갔지만 을미사변(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실각했다. 친일 내각의 적으로 지목되어 미국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그는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숨을 건 정치적 도박에 가담했다. 왕을 미국공사관으로 옮기려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으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려 한 두 번째 시도는 성공했다. 아관파천을 계기로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서리 등을 지내면서 한때 독립협회 회장도 맡았다. 독립협회는 애초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세워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과 만백성에게 알릴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을 넘어 내심으로 ‘군민동치’(君民同治)와 ‘입헌정체’까지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는 독립협회를 떠났다. 러시아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국왕은 일본을 견제하려고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러시아는 이 기회에 한국을 자기 세력권 안에 넣으려 했다. 미국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교육, 군사, 경제 각 부문의 주도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그는 러시아의 침탈에 반발했으며, 러시아 공사는 그를 증오했다. 고종은 그를 전라도관찰사로 좌천시켜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나, 그 자리조차 오래 지킬 수 없었다. 1901년 양부 이호준이 죽자, 그를 핑계로 낙향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4년 초,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고종은 그를 다시 궁내부 특진관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이완용은 또 한 차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본도, 러시아도 그의 배경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배경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일본 편이었고, 이후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미국의 선택을 따랐다. 주지하듯이, 을사늑약 이후의 그는 ‘친일 매국노’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어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그 자격으로 한일병합 조약에 도장을 찍었다. 일제 강점기 공중변소들에는 흔히 ‘이박식당’(李朴食堂)이라는 낙서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이완용과 박제순이 밥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들을 똥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완용 자신은 자기가 시세의 흐름을 잘 살펴 처신한 덕에 계속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그가 한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사실 그는 그 험악한 정변의 시대를 귀양살이 한 번 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이재명의 칼에 맞은 자리가 쑤시고 아플 때마다, 자신이 동포들의 저주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스펙·연줄·기회 강조 現사회, 제2이완용 키우나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몇 권 집어들어 훑어 보았다. 스펙을 쌓아라, 인맥을 다져라, 시세의 흐름을 살펴라, 기회를 놓치지 마라 등. 다들 이완용처럼 살라고 가르친다. 지조를 지켜라, 기개를 길러라 따위를 가르치는 책은 없다. 누구나 이완용을 욕하면서도 다들 이완용을 본받으려 드는 시대다. 물론 10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러나 이완용처럼 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가, 모두에게 계속 안전할 수 있을까? 전우용(역사학자)
  • 영국 왕세손비 노출사진 英-佛 갈등 야기하나

    영국 윌리엄 왕세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의 상반신 노출사진이 유럽을 달구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연예 주간지 ‘클로제’에 사진이 첫 보도된 이후 아일랜드의 타블로이드 신문 ‘아이리시 데일리 스타’ 에 이어 이탈리아 잡지 ‘키(CHI)’ 매거진은 17일자에서 26쪽에 걸쳐 케이트 노출사진을 게재하는 특별판을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키(CHI)’ 매거진과 프랑스 주간지 ‘클로제’는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키(CHI)’ 매거진 편집장은 특별판에는 ‘클로제’에 실리지않은 사진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윌리엄 왕자 부부는 현재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이며, 해당 사진은 윌리엄 부부가 프랑스에서 휴가중에 파파라치에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인들은 15년 전 윌리엄 왕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를 숨지게 한 사건이 결국은 프랑스의 파파라치들 때문에 일어났는데 또다시 왕세손 비의 상반신 노출사진이 프랑스 휴가지에서 파파라치에게 촬영되고 보도됐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편 분노한 영국왕실은 프랑스 연예주간지 ‘클로제’를 고소했으며 첫 심문이 17일(현지시간) 열린다고 현지 언론들이 16일 보도했다, 인터넷 뉴스팀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6)‘개화파’ 김옥균 vs ‘그를 죽인’ 홍종우

    [선택! 역사를 갈랐다] (26)‘개화파’ 김옥균 vs ‘그를 죽인’ 홍종우

    ●혁명가 인정받는 ‘김옥균’ vs 테러리스트 된 ‘홍종우’ 정부 차원에서 주요한 역사적 개념을 규정하는 북한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갑신정변을 ‘근대 부르주아 혁명운동’으로 변경했다. 한국에서 김옥균(金玉均·1851~1894)과 갑신정변에 대한 견해는 연구자들 간에 일치하지 않으나 대체로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최초의 혁명적·진보적 개혁운동으로 보고 봉건제 청산을 위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전개하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본이라는 외세 동원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변혁 주체로서의 역할은 인정하는 편이다. 반면 이와 대비시켜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홍종우(洪鍾宇· 1850~1913)는 대다수 사람들이 갑신정변 주도 인물인 김옥균 암살범이자 독립협회와 대척점에 있던 황국협회를 주도하던 반(反)개화, ‘테러리스트’로만 이해하고 있던 인물이다. 당연히 그 평가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보수반동 성향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갑신정변’ 3일천하… 실패한 비운의 개화파 김옥균 조선을 개혁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일으킨 1884년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난 뒤 반역자로 처단된 고균(古筠) 김옥균. 권력과 세력을 잃고 망명지를 떠돌다가 목숨을 잃고 주검마저 능욕을 입은 비운의 개화파…. 갑신정변의 실패는 정변의 주체들과 일정 부분 이해를 같이했던 윤치호의 아버지이자 군부대신 등 고위관료를 역임한 윤웅렬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갑신정변의 실패 요인을 다음의 여섯가지로 꼽았다. 1. 군주를 위협한 점 2. 외세를 믿고 의지한 점 3. 민심이 따르지 않은 점 4. 청국의 군사력을 과소 평가한 점 5. 왕과 왕비의 의향을 어긴 점 6. 당붕(黨朋)의 도움 없이 일을 조급하게 처리한 점 갑신정변의 행동대장으로서 정권의 핵심인사 살해에 앞장섰던 서재필은 후일 회고담에서 실패 원인을 ‘민중의 무지몰각’에 돌리고 있다. 그는 광범위한 민중의 원동력과 잠재력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매도했다. 정변은 국민적 동의 없이 진행된 것이다. 후일 김옥균은 일본을 ‘이용’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용당한 것이고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봉건제도 청산을 위한 노력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상대적으로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게는 관대하거나 이를 생각하지 못한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와 친한 일본인들은 후쿠자와(福澤諭吉), 도야마(頭山滿), 고도(後藤像二郞) 등 ‘대아시아주의자’이자 한국 침략을 적극 옹호한 인물 일색이었다. 말년의 김옥균은 이른바 삼화주의(三和主義)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흥아지의견’(興亞之意見)에 기초해 이를 설명했는데, 그 골자는 ‘삼국제휴 서력방알’(三國提携 西力防?)을 통해 아시아를 부흥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제창하게 된 것도 정신적 스승인 후쿠자와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흥아지의견’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서 과연 김옥균이 후쿠자와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삼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평화롭게 공존공생하자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04년 러일전쟁 직후 그동안 일본에 망명했던 갑신정변과 을미사변 관련자들은 모두 귀국하여 복권되고 식민지 시기 대다수는 친일의 거두로서 식민지 지배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옥균에게는 유신(維新)을 처음 제창한 사람이고 문명의 선각자로서 충달공(忠達公)이라는 시호가 융희 4년(1910) 7월 27일에 추증되었다. 김옥균 추종 세력은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의 이전 활동을 과장·미화하였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 이르면 일제는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대동아공영권을 통한 아시아 지배와 조선 민중에 대한 무제한의 통제 명분을 김옥균이 주장한 삼화주의에서 찾았다. 김옥균의 삼화주의는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숱하게 왜곡되어 갔다. ●홍종우, 실정 맞는 근대화 추구… 佛르피가로도 ‘개화인사’ 인정 경기도 몰락한 선비의 가문에서 출생한 홍종우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86년 3월부터 프랑스행을 결심하여 1888년 나가사키와 규슈, 오사카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이어 1890년 12월 파리로 들어갔다. 그는 프랑스 유학 후 거의 2년 동안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연구보조자로 활동하면서 춘향전, 심청전, 직성행년편람(直星行年便覽) 등 한국의 고전과 점성술책, 일본과 중국의 고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에 종사했다. 홍종우는 프랑스어 번역본 ‘다시 꽃이 핀 마른 나무’(심청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공화국에 사는 데 습관이 된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 선조가 세운 정부 형태에 우리가 집착하는 것을 탓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기질의 문제이다. 기후가 국민의 관습에 끼치는 영향은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그 누구도 인디언들이 에스키모인과 같이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다른 정체(政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부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번에는 우리가 유럽문명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 일에 있어 우리를 돕고자 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존경과 애정을 바칠 것을 미리 약속한다.” 홍종우의 정체관이 그간의 시대 담론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목표는 조선의 전통과 서양 문화를 조화·절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대중을 계몽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성리학적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척사위정론자들과 다른 것이었으며, 민족 주체성과 민족 문화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화 지상주의론자와도 구분되었다. 1893년 귀국을 결심한 그는 그해 12월 일본에 도착하였다. 이때 고종의 밀명으로 도쿄에 온 이일직과 만났고, 그로부터 김옥균 암살을 제의받게 된다. 홍종우는 김옥균을 만나 프랑스 정국을 소개하고 세계 대세와 동양 정세를 논하는 한편 그의 상하이행을 유도했고 상하이 동화양행에서 김옥균은 결국 홍종우가 쏜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즉사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는 아관파천 이후부터다. 그는 국왕을 황제로, 세자를 황태자로 높이는 한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건원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는 대한제국 수립과 황제 즉위식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홍종우는 대한제국 성립 당시 비서원승으로 활약한 이래 각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전반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경제 문제에 관한 개혁론은 대외적으로 열강의 조선 이권 침탈에 대한 절대불가론으로, 내적으로는 국가재정의 확충과 국내 상인의 몰락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론인 보호주의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은 한러은행 설치 반대, 외상의 도성 개잔(開棧)과 내지행상 반대, 절영도 석탄고 임대 및 광산이권 양도 반대, 조선 연해어업 및 홍삼 사매(私買) 반대, 방곡실시, 광무연호 주조, 상권보호 등이다. 정치·사회 문제에 관한 개혁론은 군주권의 절대화, 군권(軍權)의 확립과 군사권 간섭 반대, 각부 고문관과 각국 공사의 내정 간섭 반대, 불평등 조계 개정, 만국공법의 철저한 준수, 공정한 인사정책, 민선의원(民選議院) 설립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근대적 지도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는 정부의 자립과 과감한 개혁이 이를 보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러일전쟁을 거쳐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식민지가 되자 그는 ‘개화당의 영수’ ‘조선독립의 혁명가’ 김옥균 암살범으로 다시 각인되었고, 근대화를 저해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그는 명실상부한 개화인사였다. 프랑스 저명 신문 르피가로지도 그렇게 보고 있다. 잘 알다시피 홍종우는 프랑스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자 많은 부분 우리 실정에 맞는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그가 수구파라는 결정적인 근거도 없고 그 역시 수구적인 언급을 한 바 없다. ●편견 지우고 입체적으로 보아야 김옥균과 홍종우는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같다 하더라도 양자 간에는 분명한 대립각을 갖고 있었다. 김옥균과 달리 홍종우는 조선이 근대국가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외국으로부터의 도전이라고 인식하고 자주적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했다. 그는 조선의 역사와 현실을 서구에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선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다. 현실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부재 상태에서 문화적 전통과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및 일본의 제도를 무차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그 나라의 발전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김옥균처럼 문명개화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 제국주의 이웃 강국을 끌어들여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방식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자칫 국가를 상실할 위험이 뒤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갑신정변 당시와 지금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 정세는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조재곤(동국대학교 연구교수)
  • 대입 이어… 중·고교 시험도 선행 출제

    서울의 일부 중·고등학교들이 지난 학기 기말고사에서 정규 교과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학교 2학년 시험에 3학년 문제가 출제되는가 하면 수학Ⅰ과목에 수학Ⅱ 과정의 문제를 출제한 고등학교도 있었다. 이처럼 사설 학원이 주도하는 선행학습을 전제로 문제를 출제할 경우 학교수업만 듣는 학생은 내신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어 공교육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최근에도 주요 사립대들이 지난해 대학입시 논술시험에서 고교 교과과정에 없는 문제를 출제해 논란을 빚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의 701개 중·고등학교 모두를 대상으로 수학과목의 1학기 기말고사 문제를 집중 점검한 결과, 39개 중·고등학교가 교육과정을 벗어나거나 사교육의 직접적인 원인인 선행학습형 평가문항을 출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6일 밝혔다. 조사에서는 384개 중학교 가운데 4.2%에 해당하는 16개교와 317개 고등학교의 7.3%인 23개교가 각각 적발됐다. 시교육청은 이들 학교 가운데 9개 학교에는 기관경고, 5개 학교에는 기관주의 처분을 내렸으며 25개 학교에는 시정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조치했다. 특히 경고를 받은 중학교 1곳과 고교 8곳은 전체 시험문제의 70% 이상을 해당 학기 교과 범위를 벗어나거나 지나치게 어려워 사교육이 아니면 풀 수 없는 문항을 출제했고, 주의처분을 받은 학교는 문항의 40~70%가 선행학습이 필요한 문제로 밝혀졌다. 이번에 적발된 학교에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는 포함되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2학기에도 수학과목의 2학기말고사 평가문항을 점검해 선행출제 학교에 대해서는 행정·재정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이 같은 시교육청 방침이 현실을 도외시한 조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부 학교들이 1학기에 일부 2학기 과정을 배우는 등 정해진 교육과정을 앞서가고 있어 시교육청이 이 같은 방침을 고수할 경우 학습만 하고 시험은 보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A고등학교 수학교사는 “사교육을 단번에 없앨 수 없는 상황에서 정해진 교과과정만 학교에서 가르치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씨줄날줄] 공자의 ‘강남스타일 삶’/최광숙 논설위원

    귀족 가문 출신인 도스토옙스키가 평생 쓴 편지의 3분의2는 돈을 꾸어달라고 사정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가 쓴 소설은 하나같이 출판사로부터 선불을 받아 마감에 쫓기며 쓴 것이란다. 석영중 고려대 교수는 ‘도스토옙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라는 책에서 “주인공이 돈을 위해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 ‘죄와 벌’ 등은 모두 ‘돈의 코드’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대 최고의 작가이던 그가 왜 항상 빚 독촉에 시달렸을까? 한때는 도박에 빠졌고, 돈이 생기는 대로 펑펑 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시골의 초라한 역에서 객사했지만 평생 가난과 거리가 멀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넓은 영지와 저작권을 놓고 사회 환원 문제를 부인과 다퉈야 했던 부자였다. 간디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항상 3등칸 열차만 탔다. 또 양과 소젖에 비해 가격이 싼 염소젖만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염소는 비싼 비누로 매일 목욕을 했고, 사료값도 엄청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간디가 자신이 세운 공동체 아슈람에서 추종자들과 함께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들 덕분이다. 간디의 후계자이던 여류 시인 나이두는 “간디에게 청빈한 삶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나라 전체로 볼 때 어마어마한 재산이 들었다.”고 말했다.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판 고흐나 악성 베토벤 등은 평생 가난과 싸우며 고독하게 살았다. 그러기에 흔히 사상가, 문인, 예술가의 삶은 가난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간디처럼 귀족가문의 ‘엄친아’들도 적지 않다. 간디 등의 청빈한 삶은 지긋지긋한 가난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었다. 최근 중국의 한 30대 칼럼니스트는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공자·맹자가 고급 주택에 살았고 경제적으로 윤택했다.”고 썼다. 공자가 위나라 관학에서 받은 연봉은 좁쌀 90t이었다고 한다. 280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집도 3칸이긴 했지만 대지가 2만여㎡로 거의 농장 수준인 호화주택이었다. 맹자는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 제나라에서 좁쌀 1만 5000t을 연봉으로 받았다. 그를 흠모한 송과 설나라 임금으로부터 어마어마한 황금 덩어리도 받았다고 한다. 성인 군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라면 더욱 궁핍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유가는 결코 물질을 경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어떤 방법으로 부를 이룰지 그것이 문제일 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완득이’ 감동 느껴볼까 ‘써니’ 복고 즐길까

    ‘완득이’ 감동 느껴볼까 ‘써니’ 복고 즐길까

    ‘추석에는 청룽(成龍)의 코믹액션’이란 말은 옛날 얘기다. 청룽의 활동이 뜸한 데다 재탕, 삼탕에 방송사나 시청자 모두 지쳤다. 할리우드의 신작도 추석 TV편성표에서 보기 어렵다.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웬만한 할리우드 화제작들은 ‘TV 첫 방송’이란 명목으로 일찌감치 우려냈기 때문. 결국 TV편성표의 심야시간대는 한국영화 몫이 됐다.28일 밤 9시 55분 김려령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든 ‘완득이’(MBC)가 방송된다. 지난해 10월 개봉 당시 530만명을 불러모았다. ‘트랜스포머3’, ‘최종병기 활’, ‘써니’에 이어 지난해 박스오피스 4위.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등 남다른 가정환경 때문에 세상에 등을 돌렸던 고교생 완득이가 담임 똥주와 특별한 사제지간이 되는 성장드라마다. 밤 10시 50분에는 손예진·이민기 주연의 ‘오싹한 연애’(KBS2)가 방송된다. 로맨틱코미디와 공포를 버무린 변종장르다. 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눈에 보여 연애는커녕 평범한 생활조차 쉽지 않은 여자와 겁 많은 호러 마술사의 사랑 이야기다. 29일 밤 10시 이현승 감독의 ‘푸른소금’(OCN)이 첫선을 보인다. 조직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려던 중년의 사내(송강호)와 그를 감시하려고 조직에서 보낸 어린 여자 킬러(신세경)가 묘한 감정에 휩싸이면서 영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대표적인 조폭코미디 시리즈물 ‘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채널 CGV)도 밤 10시에 방송된다. 김수미·신현준·탁재훈 등이 고스란히 뭉친 데다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사장이 메가폰을 잡았다. 평단과 일부 언론에선 억지 코미디라며 비난했지만, 236만명을 불러모았다. 밤 10시 25분에는 ‘퀵’(KBS2)이 방송된다. 30일 밤 8시 40분에는 지난해 736만명을 동원, 복고열풍에 불을 지핀 ‘써니’(SBS) 감독판이 방송된다. ‘과속스캔들’과 ‘써니’를 거푸 흥행시킨 신예 강형철 감독의 감각을 엿볼수 있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등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받으면서 충무로의 보석으로 떠오른 장 감독이 140억원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를 맡았다. 294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곱씹어 볼 만한 영화다. 밤 12시에는 곽경택 감독이 권상우와 정려원을 데리고 찍은 ‘통증’(채널 CGV)도 방송된다. 10월 1일 밤 12시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애제자인 전재홍 감독이 연출한 윤계상·김규리 주연의 ‘풍산개’(OCN)가 방송된다. 김 감독의 흥행 후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이비티주니어, 영역간 균형잡힌 영어클리닉 제시

    아이비티주니어, 영역간 균형잡힌 영어클리닉 제시

    초등생 학부모들은 자녀의 영어실력을 정확하게 판단하기조차 쉽지 않다. 설령 문제점을 파악한다 하더라도 바로잡아줄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학부모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학교나 학원들도 마찬가지다. 영어 4개영역을 세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 평가툴이 없어 선생님의 감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모든 영어시험이 iBT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지만 아직도 레벨을 불문하고 리딩은 영어지문 독해수준을, 스피킹은 인터뷰 형식으로 학생의 실력을 주관적으로 어림짐작하는데 그치는 곳이 많다. 이처럼 주먹구구식 진단을 내린다면 영역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이의 학습성향이나 수준에 대한 정밀진단이 앞서지 않는다면 레벨구성이나 향후 학습과정에 대한 설계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뿐더러 학생에게 맞지 않는 방식으로 학습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학습성과 또한 도출해 낼 수 없다. 이를테면 스피킹 부분에선 어떤 부분이 특히 부족한지, 왜 그같은 불균형이 생겼는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뒤쳐진 약점을 어떻게 잡아줄 수 있을지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한다. 아이의 영어 공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로잡아줄 수 있을까. 영어 4개영역을 골고루 균형있게 다져가는 방법은 없을까. 8년전 iBT 모의토플 시스템을 구축한 iBT주니어는 새로운 진단평가(Placement Test) 시스템을 9월부터 선보인다. 4개영역 모두 iBT로 치르게 될 진단평가는 난이도별로 총 4가지 레벨로 구성돼 있으며, 각 레벨별로 40~50 문항씩, 30~60분 동안 치를 수 있도록 평가문항을 최대한 압축했다. 테스트 영역별 응시방법도 화면상 설명에 따라 학생 스스로 진행할 수 있다. iBT junior 교육설계팀 최준희 대리는 “4개 영역 모두 iBT로 치르게 될 온라인 테스트는 NEAT와 동일한 형태로 화면을 구성했으며, 소리사고력을 기반으로 4개 영역의 수준을 요소별로 측정하게 될 것”이라면서 “영어의 소리와 문자에 직관적으로 반응해서 말하고 쓸 수 있는지를 묻는 속도감각을 평가요소에 포함시켰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비티주니어는 iBT 방식의 테스트에 앞서 진단평가 응시레벨 결정을 위한 오프라인 질문지도 매뉴얼화했으며, 진단평가에서 영어 4개영역간 불균형이 나타날 경우 응시자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한 ‘대한민국 영어 불균형 해소 프로젝트’도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는 영어 4개영역간 문제유형별 점수분석을 통해 영어학습 불균형이 나타날 경우 그 부분을 집중 해소할 수 있도록 한 클리닉 과정이다. 초등생을 대상으로 발음 클리닉, 어순확장 클리닉, 스피킹 클리닉, 리딩 클리닉, 예비중학 클리닉 등 5가지 과정으로 구성했다. 각각의 과정은 소리학습에 기반을 두고 꼼꼼하게 설계했으며 iBT 주니어의 교재를 학생들의 현재상태 및 학습발달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스피킹 클리닉은 어휘 및 기본문형을 알고 있어도 말하기를 주저하는 학습자, 리딩 클리닉은 문법지식을 바탕으로 한국기반의 번역식 리딩습관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미 10여년전에 영어훈련툴을 개발한 iBT 주니어가 교실활용 수업에 대한 노하우까지 녹여낸 특별 집중과정이다. 클리닉 기간동안 학생들은 ITC(Intensive Training Course) 수업에서 적어도 500번 듣고 말하기를 통해 4개영역을 훈련한다. 이어 PAC(Practical Application Course) 수업에서는 배운 문장들을 바로 활용해봄으로써 몸으로 영어문장을 기억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한다. 가정에서는 읽기, 쓰기 중심의 과제활동을 하게 된다. 인터넷뉴스팀
  • 보험사 ‘VIP서비스’ 실태도 들여다본다

    금융감독당국이 은행 부문의 우량고객(VIP) 마케팅 실태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이를 보험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경기불황에도 부유층에게 각종 금융혜택과 서비스를 몰아줘 일반 고객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행태를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보험업계는 일부 우량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9일 “은행에 대한 VIP 마케팅 실태조사에 착수한 만큼 보험사도 예외일 순 없다.”면서 “보험사들의 VIP 마케팅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험사들이 우량 고객들에게 과도한 혜택을 제공했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사 대상은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VIP에 대한 서비스가 이익 기여도에 비해 합당한지, 과당경쟁으로 인해 보험사의 손해로 이어지지는 않는지 등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보험사들의 VIP 마케팅이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고액 자산가들에게 과도한 특혜를 제공하는 ‘퍼주기식’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있다.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라 VIP가 더 우수하고 안정적 시장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우량 고객들을 문화 행사에 초대하거나 부자들의 절대 관심사인 절세와 상속 등을 포함한 종합 재무관리 서비스는 기본이다. 건강검진 서비스, 장례용품 지원에서 후계자 프로젝트를 통한 ‘가문 관리’까지 진화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VIP 고객들을 위한 8개 FP센터에서 종합 재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는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인 초부유층(VVIP)을 대상으로 ‘삼성패밀리오피스’를 열고 종합 자산·가문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패밀리오피스는 한 가문의 자산(동산·부동산) 관리는 물론 가업 승계, 합법적 절세 계획 수립, 자녀 교육까지 관리를 해준다. 대한생명은 VIP 고객에게 장례 용품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매년 종합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VIP 고객을 대상으로 재무설계 상담을 해주는 7개 FA센터를 운영 중이다. 미래에셋생명은 VIP고객을 대상으로 재무관리를 제공하는 ‘VIP 멤버십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의 현황 파악 움직임에 대해 보험업계는 당황스럽지만 문제될 건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우량 고객을 위한 상담센터를 운영해 재무설계를 해주는 것은 보답 차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라면서 “은행이나 카드사에 비해 우량 고객에게 제공하는 혜택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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