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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경제정책 방향 분명히 하라

    경제정책 방향이 혼란스럽다.총선이 끝난 지 한달이 가깝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만 무성할 뿐이다.정책의 큰 줄기를 둘러싸고 힘 겨루기식 대립이 계속되다 보니 기업들은 투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주요 선진국과 우리의 경쟁국들이 14년만에 최고치에 이른 유가,중국발(發) 쇼크,원자재값 폭등세 등 대외적으로 몰아닥친 악재에 맞서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답답하다 못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려는 시장 투명성 확보와 불공정한 시장 질서 시정은 선진 경제 진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성장률 등 눈앞의 수치에만 급급한 나머지 과거 정권이 추구했던 불균형 성장이 ‘빈익빈 부익부’ 심화와 가난의 대물림 등 어떤 부작용을 양산했는지를 똑똑히 기억한다.하지만 최근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면서 성장 잠재력마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개혁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구조로 경제·사회 시스템을 개혁하면 된다지만 어디까지나 이상론에 불과하다.정부와 기업,가계 등 경제 3주체가 생산,투자,소비에 자발적으로 나설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인 것이다. ‘최선의 분배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진리다.세계 각국이 투자 유치를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그럼에도 지금 열린우리당 내부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경제 정책을 시장 친화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시장 규제쪽으로 끌고 가느냐로 엇갈리고 있다.양측 모두가 국가 경쟁력 강화와 민생 안정을 들먹이고 있지만 향후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라는 성격이 짙다. 우리는 기업의 투자와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시장 개혁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정국에서 복귀하는 순간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 MBC PD수첩 '가난 대물림’ 고발

    ‘대한민국 부촌 1번지’인 서울 강남 한복판에 판자촌이 있고,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대대로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10일 오후 11시5분에 방송되는 MBC ‘PD수첩’은 우리나라 최고 부자들이 모여 사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바로 앞에 있는 판자촌을 심층 취재,빈곤의 고착화·세습화 현상을 고발한다. 한 평에 수천만원씩 하는 아파트가 줄지어 늘어선 곳.우리나라 외제차의 50%가 굴러 다니고 소위 ‘돈 많고 빽있는’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런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는 동네가 있다.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자활근로대 마을.70년대 말∼80년대 초 거리부랑아와 극빈층을 자활시키고 근로의욕을 고취하겠다며 정부가 반강제적으로 조성했다. 주민들은 양재천 너머로 마주보고 있는 타워팰리스 등 부자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품을 수거하며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주민 가운데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에 불과하고,30대 이상의 주민 대부분이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거나 초등학교만 졸업했다.20대 이하의 젊은 층도 대부분 중졸·고졸의 학력이다.주민 75%가 빚에 쪼들리고 있으며,10명 중 4명은 직업이 없다. 아이들은 사교육의 전시장인 강남에서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한 여중생은 “학원이 달나라만큼 가고 싶다.”고 말한다.촌지를 줄 돈이 없어 선생님에게 이유 없는 구박을 받고,거지마을을 구경한다며 같은 반 남학생이 뒤쫓아오는 바람에 동네 어귀를 한참 배회한 뒤에야 집에 돌아와야 했던 여중생,박물관을 가지 못해 견학 숙제를 할 수 없는 초등학생의 모습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제작진은 “최고 부자동네 한복판에서 부모의 가난이 고스란히 자식에게 대물림 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
  • 경제·환경등 한국사회 집중 조망/방송3사 신년 특집프로 ‘풍성’

    지상파 방송 3사가 연말연시를 맞아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KBS1은 신년 기획 2부작 ‘동북아 경제 삼국지’를 준비했다.1편 ‘일본 제조업의 부활’은 1월1일 오후 10시,2편 ‘13억 중국의 도전’은 1월 2일 오후 10시 방송된다.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 경제 통합의 흐름을 살펴보고,그 속에서 한국 경제가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KBS1은 또 1월1일 오후 11시35분 방송되는 연중기획 ‘평화로 가는 길’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을 불러 한반도의 북핵 문제를 진단한다.문정인 연세대 교수,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왕지쓰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학연구소 소장 등이 출연한다. MBC는 특별기획 10부작 ‘세계의 국회의원’을 1월4일부터 13일까지 오후 11시30분에 방영한다.각국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살펴 한국 정치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4일 네덜란드·대만 편을 시작으로 13일 미국 편까지 차례로 방송된다. MBC는 1일 오후 7시20분 자연다큐멘터리 ‘날아라 뿔논 병아리’를 방송한다.큰고니 논병아리 뿔종다리 꼬마물떼새 등 보호야생종들의 낙원 천수만의 다양한 새들을 만나보는 시간이다.2일 오후 11시15분에는 신년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 ‘꿈’을 연속방영한다.빈부격차의 심화,기회의 불평등과 가난의 대물림,피폐한 농촌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주변인’들의 삶과 그들만의 꿈을 들여다본다. SBS는 신년기획 3부작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을 내보낸다.화학물질 과민증 환자의 사례 등 우리 생활주변의 공해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1월 3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55분에 방송한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열린세상] 학교평준화를 위하여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간다.연말이면 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나타나고,사람들은 그 곁을 지나며 우리 사회에서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기억한다.올해에는 어느 이름모를 중년신사가 자선남비에 수천만원의 거금을 넣고 사라졌다는 보도도 있었다.그 손길에 복이 있기를. 그러나 자선남비에 적선하고,그렇게 모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일이라 하더라도,처음부터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한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는 전체 사회 곧 국가가 나서서 사회 복지의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인적 적선을 칭찬할 줄 알아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 복지의 차원에서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에는 너무도 게으르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올해 서울대 정운찬 총장을 비롯하여 여기 저기서 터져나온 평준화 폐지론만 보아도 그렇다.국가가 책임져야 할 모든 복지제도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복지이다.국가는 공교육체제를 통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공교육의 혜택이 없다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자기실현의 기회를 제공한다.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는 기성세대의 사회적 불평등이 자녀세대에게 대물림되거나 확대증폭되는 것을 방지한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자녀들이 어릴 적부터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어울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삶의 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마당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하며,이를 통해 그들이 자라서도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서로 소통하고 결속하여 더불어 하나의 조화로운 사회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국민의 평등한 자기실현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남보다 좋은 대학 가서 남다른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의 장치이다.그리하여 한국에서 공교육 체제란 사회적 평등과 통합이 아니라 정반대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장치이다.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그런 가운데서도 대다수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들이 평준화되어 있는 까닭에 교육이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분열을 촉발하지 않을 수 있었다.그러니까 학교평준화는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가난한 계층의 자녀들이 사회에서 낙오하고 소외되지 않도록 만드는 방파제인 동시에,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정서적 및 문화적 단절을 방지해 주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중등학교에서 평준화가 폐지되면 가뜩이나 위기상황에 처한 한국의 공교육은 그나마 남아 있던 사회적 평등과 통합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자녀의 학력이 전체적으로 부모의 재력에 비례한다는 것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인데,평준화가 폐지되면 부잣집 아이들이 일류학교에 다닐 때,가난한 집 아이들은 삼류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가뜩이나 대학 서열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중고등학교의 서열이 부활되면 일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 땅의 대다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학벌차별의 굴레 아래 신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문화적 단절과 사회적 차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증오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자라서 더불어 조화로운 사회와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작은 아파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 담장을 쌓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 부유층의 몰상식은 차고 넘치는데,배운자들까지 평준화 폐지를 선동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이 나라의 상류층은 어찌 그리 하나 같이 몰상식한지,이 나라에서 살아야 할 아이들이 불쌍할 뿐이다. 김 상 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 서울속 연탄마을 /(하)빈곤의 ‘개미지옥’ 실태

    서울의 연탄마을은 빈곤의 ‘개미지옥’이다.탈출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든다.1세대의 가난이 2세대에게 대물림되고 부모의 직업마저 자식에게 상속되는 곳.유일한 탈출수단인 ‘교육’은 빈궁한 가계 탓에 그 기회마저 봉쇄된다. 35년 동안 연탄을 때온 이길수(가명·61·영등포구 문래1동)씨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다.지난 70년 고향인 충북 충주 읍내의 다방 여종업원과 사귀다 함께 상경한 뒤 응암동과 홍제동,신대방동 산동네를 거쳐 4년 전 문래1동 ‘쪽방촌’까지 흘러들었다. ●가난과 직업마저 대물림 상경 전 충주에서 본처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지만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20여년 전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출했고,딸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뒤 연락이 없다. 이씨는 “가진 것도,배운 것도 없는 녀석들이니 언젠가는 나처럼 ‘막장’으로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매일이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성북구 월곡3동,송파구 거여동,영등포구 문래동 등 4개 지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20가구의 가계를 추적한 결과 1세대의가난이 2세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음을 확인했다.20가구에 살고 있는 1세대 27명의 직업분포(무직자는 최근 5년 직업)는 공사장 인부가 7명,파출부 4명,주방보조 1명,경비원 1명 등 일용직 비율이 48.1%였다.나머지는 자영업자,공장근로자,택시운전사 등이었고,5년간 직업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도 33.3%나 됐다. ●1세대 ‘중졸-일용직’,2세대 ‘고졸-무직’ 다수 2세대 40명 가운데 군 복무·재학중이거나 연락이 두절된 17명을 뺀 23명의 직업분포는 1세대보다 오히려 악화된 양상을 보여줬다.5년간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무직자가 무려 47.8%였다. 교육수준은 1세대의 경우 중졸이 37.1%로 가장 많았다.초졸이 25.9%,고졸과 무학(無學)이 각각 18.5%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중졸 이하 저학력층이 60%가 넘었다.2세대 가운데 만 19세 이상의 성인 34명을 조사한 결과 고졸이 44.1%,중졸이 29.4%였고,전문대 재학 이상의 ‘상대적’ 고학력자는 14.7%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는 ‘저소득→저학력→저소득’으로 이어지는 빈곤세습의 구조를여실히 보여준다.홍제3동 주민 정옥선(가명·70·여)씨의 가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난 때문에 교육기회 놓쳐 정씨는 전북 익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일을 거들다 31살 때 결혼,공사장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남편을 따라나섰다.대전,충북 괴산,부산,경기 부천 등을 거쳐 남편과 사별한 83년 서울에 정착했다.파출부와 노점을 하며 10년만에 홍제동의 무허가 주택을 샀다.하지만 슬하의 2남2녀는 이미 교육기회를 놓친 뒤였다. 중학교만 마치고 살림을 거들어온 큰아들(37)은 택배회사에 다니다 허리를 다쳐 7개월째 집에서 쉬고 있다.둘째아들(33)은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수리공으로 일한다. 중학교 졸업 후 부천의 섬유공장에 다니던 큰딸(28)은 동료와 결혼해 역시 부천의 산동네에 산다.막내딸(22)은 전문대까지 보냈지만 취직이 안 돼 미용기술 학원에 다닌다.정씨는 “남들만큼 가르치기만 했어도 자식들만은 지긋지긋한 산동네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지금까지교육은 빈곤층 자녀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면서 “저소득층 자녀들이 학교교육만으로도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이유종 기자 sylee@ ■24년 연탄제조 김두용씨 “15년 전만 해도 좋았죠.연탄을 실을 트럭이 공장 입구부터 100m는 쭉 늘어서 있었으니까요.”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연탄공장 연탄기계를 만지던 김두용(사진·54)씨는 “한참 잘 나갈 때에 비하면 20%도 못 찍어낸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씨가 이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9년.그때만 해도 연탄공장은 최고의 직장이었다.월급을 ‘대기업 못지 않게’ 받을 정도였다. 연료로서 연탄의 최전성기는 86년부터 88년까지.지난해 문을 닫은 대성연탄과 함께 ‘연탄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었다.하루에만 200만장 넘게 찍어냈다.김씨는 “월동 기간인 9월 말부터 12월까지 280여명의 직원들이 매일 아침 6시부터 하루 15시간 꼬박 일해도 주문을 맞추기 힘들었다.”면서 “국민들의 겨울을책임진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89년 이후 수요가 급감했다.요즘은 하루 30만장도 못 찍는 날이 많다.그 바람에 직원이 이제는 22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공장의 경우 97년 IMF 위기 이후 연탄 수요가 더 이상 줄지 않는 것.기름값은 오르고 있지만 현재의 공장도가격 184원은 20년 전에 비해 두 배도 안 되는 등 가격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경제가 어려운 만큼 수입 기름보다 값싸고 품질 좋은 국산 연탄을 쓰는 게 어려운 경제를 위해서도 더 좋다.”고 제안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달동네' 어제와 오늘 “달과 가깝다고 달동네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지 알어?” 산 모양이 반달을 닮았다는 월곡동(月谷洞).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월곡3동 산2번지에 사는 김명자(가명·68·여)씨는 30년 이상 연탄 때는 달동네에 살아온 심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곳은 지난 1960년대 말∼70년대 농촌과 철거지역에서 이주민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주민들이 산비탈을 갈아엎어 밭을 일구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당시 청계천과 중랑천 주변 무허가건물에 살다 정부 시책에 따라 이주한 주민 대다수도 아직 이 곳에 남아 있다.지난해 6월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에는 주민들이 이사갈 임대주택과 아파트를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서대문구 홍제3동의 ‘개미마을’도 60년대 이농열기를 타고 이주민이 몰려 들어 생겨난 곳이다.당시 인왕산 북쪽 7부 능선까지 빼곡히 들어찬 무허가 판잣집이 1000가구를 넘었다.하지만 70년대 초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북한기자들이 동네 모습을 촬영해 보도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대대적인 철거작업이 시작됐고 큰길에서 훤히 보이던 윗마을 판잣집은 대부분 철거되고 아래쪽에 있던 200∼300가구만 남았다.철거민들은 ‘광주대단지’라 불리던 지금의 성남으로 강제이주됐다.현재 ‘개미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은 대부분 10∼20년전 이사왔다.하지만 동네 모습은 60∼70년대 그대로다.간혹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한다.지금은 ‘아홉살 인생’이란 영화가 촬영되고 있다. 송파구 거여동 182번지에 흙벽돌에 슬레이트를 얹은 판자촌이 형성된 것은 용산역과 신설동,제기동 등지에 살던 무허가 주택의 주민들이 이주해온 1960년대 후반.서울시 재개발계획에 따른 것이다.지난 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남한산 서쪽 산기슭에 800여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이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지금은 900가구를 넘어섰다.동사무소 직원 김영수(51)씨는 “잘 사는 사람들이 인정은 더 박하다.”면서 “3년 전에는 판사 아들이 부모를 여기다 내팽개치고 간 ‘신고려장’도 있었다.”며 혀를 찼다.송파구는 지난 78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이곳이 철거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세입자 1600여명은 막막하기만 하다. 영등포구 문래1동의 연탄마을 ‘쪽방촌’은 60년대 제조업 중심의 고속성장이 남겨놓은 유물이다.한국전쟁 직후 생겨난 이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피란민들이 모여들었고 경성방적과 방림방적이 들어섰다.여공들로 다락방까지 꽉 찬 70년대 중반이 쪽방촌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쪽방 대신 철재상이빼곡히 들어선 70년대 말부터 여공들은 하나둘씩 이곳을 떠났고 월세수입이 줄면서 집주인들도 이사를 갔다.거기다 ‘IMF 한파’까지 겹쳐 철재상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며 쪽방촌은 더욱 썰렁해 졌다. 지금은 세들어 사는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주민들은 5∼6년 전부터 소문으로 떠도는 ‘재개발 계획’에 솔깃해 있다.하지만 미래는 확실치 않다.영등포구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도로가 제대로 정비돼 있는 등 재개발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사설] 빈곤층 급증 대책 서둘러라

    지난 1996년 이후 4년 만에 도시 가구의 10.1%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가 나왔다.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로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차상위계층까지 포함하면 빈곤층은 14.77%나 된다고 한다.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업 발생과 함께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초래된 현상이다.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음에도 빈곤층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복지 및 조세정책에 이상이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빈곤층의 확산은 가난과 질병의 대물림으로 귀결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지난 2000년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됐음에도 경직된 운영으로 300만명 이상의 수급대상자가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재활의 기회마저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탓이다.게다가 빈곤층의 증가는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따라서 우리는 제도 중심으로 운영해온 빈곤대책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한다고 본다.절대빈곤층에 대해서는 최저생활을 위한 생계 지원에 역점을 두되 근로능력이 있는 65만명에게는 적합한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차상위계층의 경우 극빈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취업 훈련 외에 생활비의 40∼60%에 이르는 주거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남미 국가들조차도 극빈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빈곤문제 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우리도 기업에 대해 ‘기사도 정신’만 요구할 게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끔 유인책부터 적극 강구해야 할 것이다.
  • [데스크 시각] 가난과 함께 오는 절망감

    외환위기 때 파산한 한 기업인은 반지하 17평짜리 셋집으로 이사갔다.그는 첼로를 배우던 딸아이의 레슨을 중단시키면서 가장으로서 큰 절망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돈이 없어 절감하는 궁핍감과 절망감은 사실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그는 강조했다.첼로는 사치일 것이다.가난 때문에 아파트 밖으로 아이들을 던지고 동반자살한 어머니나,아들이 진 수천만원의 빚 때문에 목숨을 버린 아버지가 겪었을 절망은 얼마나 깊었을 것인가.실직자로 수만원이 없어 아픈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던 빈곤이 주는 절망감,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감,빚 상환 독촉에 시달리는 심적 고통…. 가난은 그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는 ‘불편함’만은 아니다. 한 방송이 벌이는 빈민층의 집고쳐주기 프로그램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천장에서 물이 새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집에서 산다.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 우중충한 집은 아무리 밝은 성격이라도 어둡게 만들 것 같아 보인다.가난이 얼마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풍경의 단편들이다.최소한 돈에 아쉬울 것 없는 재벌 회장이 투신자살한 충격에 접하면서 사람들은 ‘그래,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구나.’ 하고 깨달으면서도 사회 다른 일각에서는 돈이 없어 삶의 전부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목격한다.이른바 ‘빈곤 자살’이 계속 증가,경찰청은 작년 600명에서 올해는 700명 선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헤매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사실 가난은 단순히 파산했다거나 빚을 진 상태라고 돈의 측면에서만 단정짓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다.‘가난의 문화구조’가 있으며 이 구조는 국가차이를 넘어 공통된 점이 있다고 한다.계속되는 생존 투쟁,실업,불완전 고용,저임금,어린이 노동,저축 부재와 만성적인 현금 부족,고리채 의존 등이 그것이다. 빈곤층은 알코올 중독자의 높은 발생률,가족 구타,빠른 성(性)경험,낮은 교육,열악한 주거 환경,파산 가정,여자 가장 등의 사회·심리적인 특징도 여럿 공유하고 있다. 궁핍은 정부 등 공식 기구와 기존 가치관에 대한 가난한사람들의 반(反)사회적인 공격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다.가난한 사람들이 절망감을 자학이 아니라 외부로 향할 때 드러내는 파괴적인 행동을 서구 사회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연구하고 대처해왔다.집값 폭등,빈부 격차 심화 등이 초래하는 바닥 계층의 절망감은 깊어지고 있다.이들이 저지르는 사회 범죄의 증가와 이를 막기 위한 안전 산업 등은 이제 본격적으로 치르기 시작한 사회적 비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지기도 하지만 카드 신용불량자처럼 사회와 제도 탓도 있다.부(富)와 마찬가지로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것은 정설에 속한다.따라서 복지정책을 성장에 저해된다는 논리로,단칼에 거부하기에는 가난의 사회적 과제는 크다.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누리도록 돕는 것은 바람직하다.그들의 사회에 대한 분노를 삭이는 길은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자살한 재벌 회장의 측근은 상가에서 “진작 좀 도와주지 그랬어요.”라고 조문객들에게 한탄을 했다고 한다.가난한 주검들을 대변해주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여야는 복지정책 논쟁만 벌이지 말고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정말 좀 도와주었으면 싶다. 이 상 일 경제부장
  • [열린세상] 죽음 권하는 사회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충격을 넘어 우리의 냉가슴을 후벼내는 아픔이자 슬픔이었다.개인의 아픔과 슬픔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참한 장면이었다.꽃잎처럼 떨어져 나가 돌 같이 단단한 시멘트 바닥 위에 납작하게 추락하는 생명체들을 상상해 보았는가.금쪽 같이 아끼며 사랑하는 어린 아들 딸들을 높은 고층 아파트에서 손수 집어 던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그것도 죽기 싫다면서 목메어 애걸하는 고사리 같은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뿌리치면서 말이다. 지난 17일 인천에서 30대 주부가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해 14층 아파트에서 어린 딸 두명을 차례로 창문 밖으로 던진 뒤 자신도 다섯살 된 아들을 품에 안고 투신해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졌다고 한다.그 주부는 가출한 남편 대신 애들 3명을 키우면서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결국 가난에 찌든 고통이 한 가정을 비극의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며칠 전에도 광주에서 11살짜리 5학년 초등학생이 아버지의 폭력이 무섭고 두려워서 10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였다.그 초등학생은 아버지의 무자비한 학대로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던 중 자신의 잘못으로 아버지에게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특별한 복지시설이나 사회안전대책 없는 극단의 처지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가난과 폭력,공포,죽음의 위기 앞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비정한 원시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죄 없는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도덕하다고 한다.거창하게 눈길을 끄는 정치적인 구호나 사건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일상에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3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 사회,부당한 부자의 대물림과 억울한 빈곤의 악순환이 묵인되는 사회,상위계층 1.6%의 소비가 국내 소비 전체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비율이 선진국의 5분의1도 안 되는 3% 수준인 우리의 현실. 외환위기 이후 최근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개인 파산자도 작년에 비해 4.4배 증가했다고 한다.경계를 뛰어넘는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와 구조조정의 그늘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근래 우리 나라에서 하루 평균 36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생활고 등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한다.소위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늘진 계층은 계속 죽음의 행렬로 내몰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치하 어두웠던 시대 ‘술 권하는 사회’를 썼던 현진건은 그의 소설 ‘빈처’에서 가난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부부를 해피 엔딩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주인공 ‘나(K)’의 아내는 친정 아버지 생일 날 막상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었다.쓸 만한 세간과 비단 옷 등은 모두 전당포에 잡혀 있었고 허름하게 걸치는 무명 옷만 남아 있었다.세속적 가치를 외면했던 남편의 무능함 때문에 가난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장인 집에서 보았던 은행원 남편을 둔 부유한 처형의 모습과 한없이 초라한 행색의 아내.그러나 처형은 겉모습만 화려하게 보일 뿐 안으로는 주색잡기에 빠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가진 것 없더라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고마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아내의 눈과 주인공 ‘나’의 눈에 눈물이 넘쳐 흐르면서 끝맺는다.가난과 그것을 이기지 못한 죽음까지도 개인의 무능으로만 돌리는 우리 사회에서 소설 ‘빈처’는 행복을 찾는 지혜를 암시하고 있다.죽음 권하는 사회에서 그 행렬을 벗어나는 지혜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신 일 섭 호남대 교수 역사문화학
  • [씨줄날줄] 혼혈 고백

    10여년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소아과병원을 운영하던 동포의사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그는 당시 선천성심장병을 앓는 한국 어린이들을 초청,무료로 수술을 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는데,한국인들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의식 때문에 여러 차례 민망한 일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의사들이 수술을 전후해 한국 어린이들에게 친절하게 질문을 하면,어린이들은 물론 보호자들까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심지어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라는 것이다.그는 그러면서 백인 이외 유색인들에 대한 막연한 비하의식이나,배타적인 편견을 극복하는 게 세계화의 선결과제라고 주장했다. 탤런트 이유진(26)씨가 며칠전 자신이 혼혈인이라고 고백했다.스페인계 주한미군이던 아버지가 세살때쯤 미국으로 가버렸고 자신은 외할아버지의 딸로 등재돼 외가에서 살았으며,서류상 어머니는 지금도 언니라고 한다.이씨는 일부 스포츠신문에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자꾸 거짓말하기가 싫어 공개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연예계 데뷔 후 176㎝의 큰 키와 서구적 외모때문에 혼혈이 아니냐는 물음이 많았지만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무서워 부인해 왔다.”는 이씨의 고백은 수많은 혼혈인들의 아픔을 대변하며,우리사회의 전근대적인 인권침해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성공한 혼혈인 가수 윤수일씨는 지금도 “어렸을 때 피부색이 다른 채로 사는 것보다 다리 한쪽이 없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한다.펄벅재단이 2년전 혼혈아 184명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혼혈아들은 냉대와 가난 속에 대부분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다.이들의 중학교 중도 탈락률은 17%(일반 중학생 1%),초등학교 탈락률도 9.4%나 된다.집단 따돌림을 극복하고 학업을 마쳐도 취업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한다는 얘기다.게다가 “혼혈의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10명중 7명이 결혼까지 기피한다고 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며,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차별한다.누가 무슨 권한으로 같은 한국인에게혼혈인지를 묻는지 되묻고 싶다.엄마를 언니로 적으며 커야 했던 이유진씨에게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라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인철 논설위원
  • [CEO 칼럼]청소년 경제교육

    1990년대 말 이후 2000년대 초까지의 외환위기 과정에서 국내 출판시장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제서적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점이다.특히 ‘부자 아빠,가난한 아빠’와 같은 노골적인 제목의 책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돈에 대해 겉으로나마 초연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기성세대의 사고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처럼 경제 관련 서적이 인기를 모은 것은 개인과 사회가 모두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기성세대들은 해방 이후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제운용 방식도 성장 일변도였다.이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 체질을 튼튼히 하는 작업에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외형적인 경제성장에 도취한 나머지 오늘날의 풍요로움이 대를 이어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부모세대는 힘들게 일해 번 돈으로 집 장만하고 자식 공부시키는 재미로 살아왔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다르다. 많은 젊은이들은 부모를 잘 둔 덕분에 눈치보며 경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그런 자식들이 힘들고 어려워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억척 부모들도 상당히 많다. 다행히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는 늦게나마 깨달은 경제관과 ‘돈에 대한 지혜’를 자식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물려주려는 ‘부자 아빠,부자 엄마’가 하나 둘씩 늘고 있다.사회 분위기도 무르익어 언론 매체나 대기업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경제교육캠프를 열고,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도 관련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해외 경제·금융 교육기관까지 국내에 진출했다고 하니 이만하면 ‘경제지식 대물림’에 대한 인프라는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국내 20대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웃도는 7.2%에 이른다고 한다.또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을 넘어섰으며,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20∼30대라고 하는 놀라운 소식도 들린다.불황 속에서도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는 불야성을 이루며,비싼 명품 시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돈 버는 능력 없이 돈 쓰는 능력만 기형적으로 발달해버린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사회의 기성세대로서 중추적인 경제주체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소기업과 소위 3D 업종은 극심한 인력난에 허덕이는 실정이다.쉽게 벌고 쉽게 쓰고자 하는 젊은층의 경제관과 소비행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돈 버는 것과 쓰는 것’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기성세대들이 이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돈 자체보다 돈에 대한 철학을 물려주고,어떤 과정을 통해서 우리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려는 이런 움직임이 한 순간의 교육열이나 유행이 되어서는 안된다.국가와 가정,기업이 모두 나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우리 아들과 딸들이 땀흘려 일하고 그 대가로 수익을 얻는다는 생각,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인식,우리의 풍요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성장한다면,그들이우리 경제의 주체가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김 주 형 CJ(주)사장
  • [길섶에서] 결혼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철제 반지를 선물한 것은 고대 로마시대 이전이라고 한다.왼쪽 약지가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영원’ ‘불멸’을 뜻하는 원형의 반지를 끼워줬다는 것이다. 결혼반지로는 화려한 다이아몬드가 최고 인기다.이제 금가락지는 끼일 틈이 없다.우리 어머니 세대는 금가락지,그것도 쌍가락지를 으뜸으로 쳤다.재산목록에도 오르고,정표도 되고…. 금가락지엔 내리사랑도 얽혀 있다.손자며느리를 보게 되면 우리 할머니들은 끼고 있던 금가락지에다 서너 돈을 더해 금반지·목걸이 세트를 만들어 대물림을 하곤 했다.돌아가신 할머니도 그러셨고,어머니도 그렇게 받으셨다고 했다.그러나 각박한 생활에 소리없이 약지에서 빠져 나와 살림에 보태지곤 했다. 가난한 시절,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부부들이 요즈음 커플링으로 불리는 사랑의 반지를 새로 주고받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금가락지를 대신할 수는 없어도 부부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양승현 논설위원
  • [열린세상] 배제의 사회

    “한국에서 판잣집이 다 없어지면 그 때 일본을 보내주겠다.” 70년대초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한국인으로 귀화한 당시 중국인 수녀 학장은 일본 수학여행을 중단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었다.그 말 한마디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처럼 일본을 가겠다고 한 학생들을 졸지에 부끄럽게 만들었다.30년이 지난 오늘,판잣집 대신에 노숙자가 많아졌고 해외 골프여행자들도 늘어났다.이 시점에서 그 분처럼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또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던 나 자신도 과연 그 뜻을 얼마나 잘 새기고 또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구조로 고착되어 간다는 경고가 거듭되고 있다.그 실증적 근거를 굳이 제시할 필요도 없다.계급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세습적 신분계급사회가 되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이러한 현상을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소득격차가 얼마나 벌어졌고 분배구조가 얼마나 잘못되어있는지를 수치와 정책을 들어 지적하고 비판한들,기존의 부익부 빈익빈 체제를 근원적으로 깨뜨릴 수 없다는 기본적 합의(?)나 체념이 깔려 있는 듯하다.이 체제를 문제시하는 것 자체를 불경시하거나 심지어는 색깔논쟁으로 끌어가는 경향도 없지 않다.신자유주의가 20대80의 양극화된 계급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경고를,아니 그 세계적 현상을,‘지나친 비관론’으로만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란 말인가? 배제(排除)의 사회가 다수의 탈락자와 ‘쓸모없는 인간’을 양산하고,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예노동이 확산되는 현상을 정말 당연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체제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서구에서 자유주의의 역사는 ‘최대다수의 최대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공리주의와 그 궤를 같이했었다.그런데 그 최대다수가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 노동계급으로 나타난 당시의 현실속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로부터 사회개량주의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이처럼 이념은 역사적 맥락의 변화에 따라 자기모순을 드러낸다.그렇다면 오늘에 와서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실업과 고용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가 과연 다수의 행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념과 정책을 말하고 구조를 따지기 이전에 양식(良識)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인간의 행복이 점점 더 부의 척도로 평가되고 그 부가 점점 더 극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에서 과연 그 극소수는 불편한 마음도 전혀 없이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인지 물어보자. 평소에는 특권층의 일상을 살던 정치인들이 선거운동때만 되면 장바닥에서 서민들과 형식적인 악수세례를 ‘베푸는’ 모습은 역겹고 지겹다.게다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는 그들과 허리굽혀 두 손으로 악수하며 황송해하는 서민들의 얼굴은 애처롭기만 하다.그들이 진정 다수의 서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그동안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이루며 지새워야 했을까? 노무현 당선자는 서민 출신이고 ‘서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약자의 운명을 어렵게 탈출한 사람들은 처절한 경험을 한 만큼 그 누구보다도 강자의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있을 것이라 믿기 쉽다.그런데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예들이 적지 않다.확실한 자기소신이 없는 한,오히려 강자가 향유하는 특권과 문화를 모방하는데 열중하거나 아니면 무의식중에 강자의 놀음에 길들여지기 십상이다.노당선자는 변호사가 된 이후 골프도 치고 요트도 타면서 한때 부자들의 문화를 즐겼던 것 같다.그런데 이제 ‘서민대통령’을 자처하는 그가 “노숙자가 다 없어질때까지 골프나 요트는 자제하자.”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지나친 기대일까? 이 영 자
  • 복지 40~80/ 먹여주고 입혀주고 환자의 손과 발 되어 약손같은 ‘간병 도우미’

    “엄마손은 약손…,엄마손은 약손…”쓰리고 아픈 배를 만져주는 엄마손에 아픔이 사르르 풀리면서 꿈나라로 빠져든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갖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아현1동 마포자활후견센터 3층 강당에서는 지난 4일부터 하루 4시간씩 40시간의 간병실습교육을 이수한 ‘신입’ 간병인 30명의 수료식이 열렸다.이들은 앞으로 약손엄마회에 소속돼 서울시내 각 병원에서 활약할 간병인들이다. ■자활후견기관 서울지부 ‘약손엄마회 자활후견기관협회 서울지부 간병인들의 모임인 ‘약손엄마회’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간병하는 모임.서울시내 28개 자활후견기관중 간병서비스를 취급하는 17개 기관에 소속된 간병인 200여명의 자활일터이다. 이 모임이 여느 간병인들과 다른 점은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장애인 등 어려운 처지의 이웃에게 무료로 간병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회원들도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다.하루 8시간의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고 일당 2만원을 정부의 복지예산에서 지원받는다. 이날 40시간의 기본실기교육을 수료한 약속엄마회 제6회차 수료생들은 다음주부터 병원에 배치,1주일동안 보조간호사로 현장실습을 하게된다.이어 10월에 실시되는 60시간의 이론교육을 이수하면 자활후견기관협회가 수여하는 간병인자격증을 손에 쥐게된다. 청일점으로 반장을 맡은 고성규씨(62)는 “교통사고로 지난 2000년 4월부터 지난 4월까지 병원에 2년동안 누워있으면서 간병 서비스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했다.”면서 “이제부터 내가 간병인이 돼 환자들에게 봉사하게 된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씨는 또 “대부분의 간병인이 여성이지만 남자환자입장에서 남자간병인의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집에서 마냥 놀 수도 없고 적성에도 맞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실습교육 강사로 나선 김선숙씨(53)는 간병인으로 4년동안 일한 베테랑.그동안 200여명의 ‘제자 간병인’들을 배출했다. 신입 간병인들은 기본실기교육에서 처치실의 위치 등 병동의 기본구조를 파악하는 일부터 배운다.음식을 주의해야 하는 당뇨 환자인 지 아닌 지,수술은 언제 했는지,특수검사 여부 등 환자에 대한 기본사항을 점검하고 의사 회진시간,시트나 환자복 교환시간 알아두기도 기본이다.또 의사선생님,간호사선생님은 물론 환자의 이름에 ‘님’자를 붙이도록 교육받는다. 말을 많이해서 피곤하게 하지 말기,낮잠자지 말기,말없이 환자를 떠나지 말기,손톱 메니큐어 지우기,향수사용 금지,다른 환자와 더 친하게 지내 소외감주지 말기 같은 환자에 대한 주의사항을 몸에 익히도록 한다. 이밖에 린넬실(시트나 담요보관하는 곳),엘튜브(콧줄식사),드레싱(소독),썩션(가래뽑기),폴리(소변줄)같은 기본적인 의학용어도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영어로 돼있기 때문에 교육생들이 애를 먹는 부분이다. 환자 대·소변받기,머리감기기,콧줄식사,가래뽑기 간병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실습생들은 입을 모운다.또 당뇨병환자,암환자,방사선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세심한 교육이 필요하다. 김씨는 “간병은 환자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도와주며 환자의 건강을 보조하는 사랑의 동반자”라면서 “환자는 만져주고 닦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칭찬하면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다. 약손엄마회 사무국 간사 백미선씨(36)는 “처음 동사무소에서 위탁을 받아 자활프로그램을 선택할 때는 대부분 간병직 선택을 꺼려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오히려 이직률이 가장 낮다.”면서 “간병인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기 때문에 인기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자활후견기관에는 모두 1500여명의 간병인들이 소속돼 있다.서울지역에는 150여개에 달하는 사설 간병기관에서 배출된 간병인이 1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1∼3일 정도의 수박 겉 핥기식 교육을 받은 뒤 간병일선에 나서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활프로그램으로 간병인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는 황은경씨(45)는 “아직 병원현장에서 환자를 돌보진 못했지만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면서 “수급자는 하루 8시간만 간병을 하도록 돼있는 현재의 자활지원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루 12시간이나 24시간 간병을 하면 수입이 좋아지지만 돈을 많이 벌게되면기초생활보호대상자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8시간만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수급자 가정 대부분이 만성질환 환자가 있는 경우가 많아 수급자에서 탈락하면 건강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게되고 임대주택이나 교육비지원도 끊긴다는 것이다. 황씨는 “실직 수급자들이 자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이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수급자들이 혜택을 받기 위해 수급자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서 “시간제한을 없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노주석기자 joo@ ■자활 후견기관이란/ 저소득층 4만여명에 자립기반 마련 자활 후견기관을 아시나요. 전국 175개 자활 후견기관은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 4만6000명에게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일터를 제공,자립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는 민간기관이다. 간병 도우미,청소,도시락제조·제빵 등 외식 사업,집수리,출장세차,음식물재활용사업,폐자원활용사업,공예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면서 900여개의사업단을 중심으로 활동중이다.간병도우미들의 모임인 약손엄마회는 서울간병사업단의 별칭이다. 자활후견기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자활근로자에게는 하루 2만원에서 2만5000원의 임금을 정부가 복지예산에서 지원해준다. 월평균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초생활보호대상 수급자나 수급자는 아니지만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차상위계층)의 실직자를 대상으로한다.현재 160만명에 이르는 수급자중 근로능력이 있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자에게 읍·면·동사무소에서 해당지역 자활 후견기관을 소개해준다.프로그램중 자신의 적성이나 선호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무료 교육후 취업,창업까지 알선해준다. 종래의 단순노동 중심의 취로 사업이나 산불방지 같은 공공근로 행태에서 벗어나 시장성을 추구하면서 자활 의지를 불어 넣어주는 ‘생산적 복지’개념이 담겨있다.각 사업단이 자활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금은 전액 적립한 뒤 자활공동체로 발전하면 창업자금 등으로 지원된다. 자활후견기관은 사회복지 법인(57곳),종교 단체(49곳),실업관련단체(25곳),시민 단체(44곳)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전국 232개 시·군·구중 농촌지역 85곳에는 자활 후견기관이 설립돼 있지 않는 점이 ‘옥의 티’. 복지부 은성호 사무관은 “저소득층에게 공동체정신을 바탕으로 자립의지를 심어주고 소득창출을 위한 자활사업을 전개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방지하는 빈곤탈출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의 홈페이지(www.jahwal.or.kr)에 들어가면 전국에 위치한 지역별 자활후견기관과 연결된다.문의전화는 02-854-1892∼3. 노주석기자
  • [사라지는 것을 찾아] 참빗

    ‘참빗 얼레빗 가슴에 품고 가도 제 복 있으면 잘산다.’ 가난한 시절,입던 옷과 쓰던 빗만 딸려 시집보내야 했던어머니의 안타까운 심정이 절로 묻어난 속담이다.대나무로손재주 부려 만든 참빗.지난 60년대 말까지 우리 여인네들의 필수품이었다. 어른 손바닥 크기로,가운데 대나무 양편으로 부챗살처럼촘촘하게 빗살을 박았다.3년된 참대만을 골라 육질부는 버리고 겉쪽만을 써 빗살 하나하나가 탄력성이 좋고 부러지지 않는다.집안 식구들이 수십년동안 쓰지만 고부(姑婦)간에 대물림할 정도로 단단했다. 70년대 화두인 ‘잘살아 보세’라는 종소리가 봄날 들불번지듯 하면서 잘나가던 참빗이 뒷방 신세로 전락했다. 뒤통수에서 땋아 틀어올려 비녀를 지른 쪽머리가 ‘거추장스럽다.’며 앞다퉈 잘라내면서부터다.미장원에서 연탄불에 달군 쇠로 지져 구불구불 라면가락으로 모양을 낸 퍼머는 빗질안해도 몇달동안 머리가 풀어지지 않았다. 지난 시절 참빗과 머릿니는 실과 바늘 같은 불가분이었다. 할머니는 고추달린 손주 녀석만을 불러 참빗질을 하면서 거리감을 좁히려 애썼다. 어머니가 쓰는 참빗은 빗살이 100여개로 좀 성긴 편이다.일에 파묻혀 닷새장 나들이가유일한 즐거움으로 경대 앞에서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부어 머리에 바르고 이마에서 정수리로 가르마를 탄다.참빗으로 긴 머리를 양편으로 빗어 내리면 반질반질 윤기가 돌았다. 물과 함께하는 참빗질은 비누나 샴푸를 대신했다.이때 빗살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비듬이나 때도 말끔히 씻겨 나갔다.또 머릿니나 서캐를 잡는 참빗은 빗살이 130개로 촘촘히 박혀 실 한오라기 들어갈 틈밖에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전남 영암에서 조상대대로 참빗만을 만들어 참빗장이 된무형문화재 제15호인 이식우(李植雨·60)씨는 “60년대에한달에 1000개 이상 참빗을 팔았는데 우리집에서 참빗을떼다가 시장에서 참빗 좌판을 하던 할머니도 서너명이나됐다.”고 회고한다. 남기창기자 kcnam@
  • [피플 인 포커스] 근로자의 날 산업포장 받은 안장노씨

    그의 웃음은 참으로 밝다.인생사 숱한 좌절에도 굴절되지않은 ‘건강함’이 배어있다.한쪽 팔이 없는 2급 산재 장애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산업포장을 받은 안장노(安章老·47·한국전력 충남지사 직원)씨.84년 충북 산간마을에서공사 중 감전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 탄광일을 하던아버지(80)가 진폐증으로 쓰러진 지 꼭 15년 만이다.가난의 대물림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원망과 분노 대신 ‘더불어 사는 인생’을택했다.필설로 다 못할 장애인의 설움을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승화시켰다.10년 넘게 빈민촌을 찾아 소년소녀 가장과 독신노인들을 남몰래 도왔다.구체적인 내용은 한사코말을 아꼈다. 중학교 학력이 전부인 안씨는 올해 방송통신고에 입학했다.가난으로 중단한 학업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자식(1남1녀)들에게 ‘도전의식으로 살아라’는 산교훈을 주기위함이다. 이런 철학은 직장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업무개선안으로생산성을 높였고 민원인들을 직접 찾아 불편사항을 처리해‘클린맨’으로 통한다. 북한동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100끼니 굶기’에 동참했던 안씨.‘네 탓’이 요란한 이 사회가 이나마 지탱되는것은 안씨 같이 ‘빛과 소금’이 되려는 사람들 덕이 아닌가. 오일만기자 oilman@
  • [외언내언] 대학과 身分의 대물림

    오래된 징크스인 양 대입 수능시험일인 15일도 예외없이 을씨년스러웠다.하지만 보통 시민들의 가슴을 스산하게 하는 소식이 어디 초겨울 날씨만일까.있는 집 자녀가 세칭 명문대 입학을 휩쓸고 있다는 씁쓸한 통계도 그 중 하나일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등 이른바 명문대의 경우 전문직이나 고위 관리직 학부모를 둔 신입생이 급증하고 있다.반면 생산직 근로자나 농어민 자녀의 서울대 입학은 급감하는 추세라고 한다.특히 고급 관리직 종사자가 자녀를 서울대에 보낼 가능성이 생산직의 30배가 넘는다는 추정치까지 나왔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 수재가 열심히 공부해명문대에 수석합격하는 사례가 흔했다.이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가리키는 지표로 간주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인간승리’사례를 신문 사회면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가계별 사교육비 지출 여력이 입시경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다.공교육이 제구실을 못하는 허점을틈타 족집게 과외니 해외연수니 하는 기형적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있다는 얘기다.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과외비가 심하면 2억원대라고하니 말문이 막힌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그 자체가 국민 에너지의 낭비다. 더 큰 문제는이에 투자할 힘이 없는 가계의 상대적 박탈감이다.잔디구장 한번 밟아 보지 못하고 맨땅에서 공을 찬 선수가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되긴어려운 법이다. 이정하 시인은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고탄식하기도 했지만 성적이 곧 경제력 순이라면 공정한 사회라 할 수없다. 미국의 경우 ‘차별철폐조처’(Affirmative action)란 제도가 있다. 대학입학,취업,연방정부의 사업권을 따내는 일에서 흑인이나 여성 등사회적 약자에게 일정한 쿼터를 주는 제도다. 이같은 ‘약자보호조치’에 힘입은 덕분인지 동부의 명문 예일대에서 올해 아시아계가 전체학생의 19%를 차지했다. 이 대학이 본디 앵글로색슨계 백인 프로테스탄트라는 미국사회의 주류,즉 ‘와스프(WASP)’를 위한 대학임은 잘알려진 사실이다.때문에 이 제도야말로 온갖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나름대로 미국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버팀목으로,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기계적 평등은 가능하지도,바람직하지도 않다.고위 당원과 비당원간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끝내 무너진 사회주의권의 실험이 이를 웅변한다.그러나 교육기회의 불균등으로 말미암아사회적 계층이 불공정하게 대물림하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되는 게 바람직하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수도권 신도시개발 전면 재검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판교·천안·화성등 3개 신도시 개발 여부와 관련,경제장관들이 찬·반 여론을 충분히수렴해 결정하라고 16일 지시했다. 김대통령의 언급은 국토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3개 신도시 개발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김대통령은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국민들이 신도시 개발계획에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당정간에 긴밀히 협의하고 국민들의의견을 수렴해 경제장관회의에서 충분한 검토를 해주기 바란다”고밝혔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이렇게 큰 문제를 연구기관이 정부안처럼 발표하면 혼란을일으킨다”고 강조했다.이어 “기초생활보장법은 차질없이 시행하고문제점이 있으면 보완해 입법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면서 “소외계층이 가난의 대물림에서 탈출해 안정된 생활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것이노벨평화상 정신의 진정한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회의시작전 이한동(李漢東)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인사를 건네자 “지금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경제의어려움을 극복,4대 개혁을 완성하고 정보화·바이오산업을 일으켜 세계적인 경제강국을 만들어내야 하며 이것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조선족 마을 지키기(송화강 5천리:3)

    ◎격변기마다 비적·만군·한족들에 수난/재산·식량 약탈표적… 자위대 결성해 저지/최근 이농 늘자 마을규약 만들어 타민족 유입막아/문혁때도 농사에만 전념… 정치적 희생 없어 송화강유역은 한때 비적이 날뛴 무법천지였다.당시 조선에서 소문난 마적이 그들이다.비적들은 떼로 몰려다녔을 뿐 아니라 한 지역을 통치할 만큼 비대해진 적도 있다.이들의 근거지는 사실상 청조의 치외법권지대이기도 했다. 청조는 1682년 오늘의 요령성 개원시로부터 길림성 이수현,이통현,장춘시,구대현을 경유하여 서란현 송화강변에 이르는 구간에다 버들울타리를 쳤다.장장 3백50㎞ 구간의 버들울타리 밖은 변외라 하여 봉금령에 따른 금구로 설정되었다.그러니까 변외의 금구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통행금지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새지 않는 울타리 없다는 속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울타리를 넘어들어갔다.특히 가경 연간(1796∼1820)에 더욱 심했다.그 무렵 산동성에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에 와서 살던 한종헌은 울타리를 넘어 오늘의 화전현 협피구(겹피구)에 당도했다.비적들이 횡행하던 때라 그들을 설득시켜 금광판에 들어갔다.그러다 도금수령 마문량의 눈에 들어 그가 죽고나서 후계자가 되었다. 한종헌은 협피구에서 나는 황금을 독차지하여 송화강 양안에 세력을 확장했다.아들 수문을 비롯 손자,증손에 이르는 4대에 걸쳐 송화강유역을 물론 목단강 서안,휘발하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독립왕국으로 만들었다.이른바 회방이라는 관리기구를 중심으로 각종 조세는 물론 채금업,임업,삼업까지 관할했다.심지어는 개인화폐 금사도 발행했다.그래서 송화강유역 사람들이 한씨는 알아도 청조는 몰랐을 정도로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송화강 양안 비적떼 세력권 한씨 일가와 같은 그들이 바로 청조가 쇠퇴하는 과정에 일어난 도적의 무리였다.그렇듯 비적들이 대물림하는 가운데 아직도 득실거리고 있을 때 송화강유역으로 이주해온 조선족들은 바늘방석에 앉기나 한 것처럼 늘 좌불안석의 삶을 꾸렸다.연변대 반용해(69) 교수는 어려서 부모들을 따라 길림성에 온 이주민 2세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비적은 떼강도들이었다. 『비적들은 뻑하면 조선족마을을 약탈했디요.조선족들에게는 후원세력이 없다는 거이 약점이었댔습네다.건드려도 뒷 근심이 없었으니끼 걸핏하면 쳐들어왔다 이겁네다.또 논농사를 주로 하니끼리 쌀을 빼앗을 수 있고,아무리 가난해도 이불 한 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적들이 잘 알고 있었디요.어느날인가는 비적들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동네사람들이 다 우리집에 모이지 않았겠습네까. 체녀들과 아주마니들은 숯검정을 얼굴에 발라댑데다.얼굴이 반반하면 겁탈을 당하니끼리 그랬디요.또 어떤 아주마니들은 검붉은 피가 묻은 월경대를 소랭이에 담아서리 문밖에 내놓기도 하고….비적들이 피를 보면 재수없다고 돌아간다는 말을 믿은 거디요.그런데 웬걸,우리집으로 들어닥치더니 돈이 될만한 물건은 다 챙겼습네다.심지어는 가축까지 끌고 갑데다.우리집은 얼마 있다가 다시 비적 꼴 안 본다고 장춘으로 이사를 했댔디요』 그 비적의 행패는 만주사변 이후 한 때는 수그러들었다가 광복이 나자 또 극성을 부렸다.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만주국이 무너지자 이번에는 만군들이 비적으로 돌아섰다.그리고 한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조선족을 제2의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족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이는 일제가 통치수단으로 자행한 민족이간책에서 비롯되었다.한족들은 비적 못지않게 날뛰었다.도끼와 낫으로 수장하고 조선족을 예사롭게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조선족마을들은 자구책으로 자위대를 조직했다.마을이 똘똘 뭉쳐 스스로를 지켜냈던 것이다.그 단결력은 뒷날 순수한 조선족마을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다.그래서 광복 이후 송화강유역 조선족마을들은 두만강이나 압록강유역 조선족들보다 정치운동의 풍파를 덜 겪었다.조선족들이 우루루 몰려와 사는 집거구 연변에서는 혁명을 한답시고 동족끼리 때리고 죽인 현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었다. 길림성 영길현 송화강유역의 조선족마을 아라저촌은 중국대륙을 바람처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을 무사히 넘긴 마을이다.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농자천하지대본의 길만을 걸었다.길림시에서 이러저러한 파벌들이 무장을 하고 마을에 와서 당총지 김용구의 매도를 선동했으나,아라저촌의 일은 마을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뜻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이 마을에서는 문화혁명에서 투쟁을 맞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일제 민족 이간책에 속아 그런데 요즘와서 일부 조선족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들고있다.흑룡강성 학강시 단결향 화춘촌은 2백여가구의 순수한 조선족마을이었다.이 마을은 요 몇년 사이에 사정이 달라졌다.시장경제에 팔려 집과 도급농토를 헐값에 팽개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한족들이 야금야금 마을을 잠식한 것이다.한족이 벌써 30여가구가 마을에 들어와 떠나버린 조선족들 대신 농사를 짓고있다. 흑룡강신문보도에 따르면 흑룡강성 조선족촌에서 외지로 빠져나간 가구는 상당수로 밝혀졌다.한 마을에서 많게는 40%,적게는 20%가 도시로 진출했다는 것이다.어떤 조선족촌에서는 도시로 나간 빈자리를 한족들이 들어와 메꾸는 것을 막기위해 타민족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규약까지 만들었다.그래서 떠나는 사람들은 마을의 뜻을 차마 저버리지 못해서인지땅과 집을 그냥 두고 외지로 나가기도 했다.마을 전체가 1백가구가 채 안되는 화천현 성화향 요신촌에는 현재 여남은 가구가 비어있다. ○한족 30여 가구 들어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공민이면 민족을 불문하고 거주권이 있다고 규정했다.그러고 보면 조선족마을 자체가 만든 한족 이주금지규약은 사실상 헌법위반이다.순수한 조선족마을을 지키려는 노력은 조선족입장에서 보면 가상하나 한족 이주를 막는데는 도처에 장애요소가 깔려있다.나북현 동명향과 같은 조선족 밀집지역에서는 궁여지책의 묘안을 짜냈다.외지에서 들어오는 한족들은 조선족들의 주택을 사들이거나 토지를 양도받고자 할 때는 조선족들 끼리 거래하는 액수의 곱을 내야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선족들의 마을 지키기는 현명한 발상이었는지 모른다.도시로 나갔다가 거덜 난 조선족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근년에는 폭락했던 쌀값이 크게 올라 농촌으로 다시 돌아오는 조선족들의 발길이 드문 드문 이어지고있다.이들의 귀환은 도시로 떠나면서 그냥 버려두었던 집과 도급농토를 마을이 지켜주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 애국지사 자녀(외언내언)

    항일투쟁에 몸바친 독립운동가의 집안은 3대에 걸쳐 가난을 대물림하고 친일·매국했던 인사들은 3대째 잘산다는 말이 있다.독립운동을 하느라고 일제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아 가세가 기울어졌으니 자손들이 제대로 배울수가 없었고 출세길도 막혔을 터이다.친일 인사들의 경우는 물론 이와는 정반대다. 8·15해방이후에도 계속된 이러한 사회분위기속에서 나라사랑이나 민족 또는 정의라는 말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수 있었을까하는 회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가 갖게 되는 느낌일게다.이처럼 친일파가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는 자손까지도 두고두고 고난을 겪는 그릇된 역사의 흐름이 국민들의 사회관·국가관을 비뚤어지게하고 자조감마저 들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남북분단의 비극을 가져온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통한의 감정도 쉽게 치유되기 힘든 민족자존심의 상처인 것이다.이러한 대일감정의 응어리는 일본 고위층인사들의 역사왜곡발언들로 해서 날이 갈수록 굳어지는 것 같아 우려된다.그야말로지겨울 정도의 끈질김으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되풀이되는 이들의 한·일관련 망언과 낯간지러운 눈가림식의 사과태도는 상호불신의 벽만 높이고 있다. 꽃다운 나이의 우리 한민족 처녀들에게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절망의 삶을 각인시킨 정신대문제만 해도 일본측의 냉담한 자세에는 큰 변화가 없어 실망감을 가중시킨다.얼마전 일본여학생에 대한 오키나와주둔 미군병사의 성폭행사건과 관련,그들이 보여준 분노의 반응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박영식 교육부장관은 내년부터 독립유공자 유가족자녀들에 대해 대학특례입학을 허용토록 적극 검토할 방침이라고 국정감사에서 밝혀 눈길을 끈다. 일제가 준 상처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낫게 하고 애국적 차원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교육정책으로 받아들이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합천 희복양돈장 안희복씨부부의 을해년 소망

    ◎“경쟁시대 으뜸가는 양돈농 될래요”/시설 곧 자동화… 올 3천5백두로 늘려/값폭락 좌절 딛고 부창부수 오뚝이 삶 『일년내내 돼지꿈을 꾸며 돼지처럼 풍만하게 양돈업을 살찌우고 싶습니다』 새해 아침 불혹의 나이를 맞은 동갑내기 안희복·유윤분씨 부부는 삶의 터전인 경남 합천군 초계면 각곡리 714 희복양돈장에서 이제 막 태어난 아기돼지들과 함께 새해 아침을 맞았다. 8백평 규모의 돈사에 꽉 들어찬 1천5백마리의 돼지들은 낯익은 주인에게 세배를 하듯 고개를 끄덕인다.을해년 돼지띠해에 이들과 함께 시작하는 안씨부부의 새해 소망은 옹골차다. 1백여마리로 양돈을 시작한지 24년만에 안씨는 대규모 자동화시설을 갖춘 부농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71년 양돈을 시작했던 안씨의 「돼지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2남8녀의 장남으로 72년 정미소에서 다리를 다친 부친을 대신해 가장역할을 해야했던 안씨는 79년 제대한뒤 대구·부산등에서 야채행상도 하고 각 부락에 돼지사료도 팔았다. 3년만에안씨는 5백마리의 돼지로 다시 양돈업을 시작할 수 있었으나 84년 돼지값 폭락으로 7천여만원의 부채를 안고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에 양돈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안씨는 그러나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된다』는 부인의 끈질긴 설득으로 86년 다시 돈사를 세웠으나 2천5백여마리가 원인모를 병으로 쓰러져 여러차례 폐사위기를 맞았다. 잇따른 역경속에서도 안씨부부는 꿋꿋이 4전5기의 오뚝이신화를 연출해냈다.안씨는 우선 선진 양돈기법을 배우기 위해 88년과 92년 정부 지원으로 독일의 양돈 박람회장과 일본·네덜란드·덴마크·영국의 농촌을 둘러봤다. 안씨는 밤잠을 설치며 하루 20시간씩 시설 자동화와 기술개발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지난해 갓 태어난 새끼가 어미에게 깔리는 것을 막기위해 쇠파이프로 어미와 새끼의 방을 따로 만든 분만틀을 개발했다. 양돈기술 영문 책자를 읽기 위해 91년 초계종합고에 입학한 안씨는 지난해 3월 아들또래의 동창생들과 나란히 졸업장을 받기도했다. 『과감한 투자없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파고를 헤치고 부농의 꿈을 이룰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안씨는 저축과 정부지원금 등을 포함해 3억5천만원을 투자,올해말 완공예정으로 돈사 3개동 8백여평을 7개동 1천8백여평으로 늘리고 시설도 완전자동화하는 작업에 한시도 눈돌릴 틈이 없다. 이미 자동화된 3개동은 바닥이 철망으로 돼있어 분뇨가 저절로 지하에 묻힌 관을 통해 1백m 떨어진 정화조로 흘러가고 이 과정에서 자동산화된 분뇨는 울타리로 심은 2천여그루의 단감나무에 뿌려진다.환경오염과 비료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푸념 한마디 없이 때묻고 냄새밴 안씨의 작업복을 하루에 두세차례씩 세탁해온 부인 유씨는 『시설자동화가 마무리되는 올해말 돼지수를 현재 1천5백마리에서 3천5백두로 늘릴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안씨부부는 올해 수입을 3억원까지 끌어올려 수입개방시대를 당당히 이겨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가운 한겨울의 계곡바람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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