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가난
    2026-02-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78
  • 생가 바로 옆에 집 지은 ‘후기 안도현’… 낙향 아닌 상향을 꿈꾸다

    생가 바로 옆에 집 지은 ‘후기 안도현’… 낙향 아닌 상향을 꿈꾸다

    ●초로의 귀향, 새로움의 출발 안도현을 만나러 경북 예천으로 간다. 그가 40년 가까이 살았던 전주 쪽에서 이병초·박태건 시인이 출발했고, 나는 나대로 서울을 떠나 그가 새롭게 안착한 모천회귀의 공간에 닿았다. 예천을 가로지르는 내성천의 굽이를 천천히 바라보면서 그의 집에 들어섰는데, 커다란 유리창 안으로 그가 오수(午睡)에 빠져 있는 게 보인다. 그 고요에 압도당해 나는 전주 쪽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시인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그 고요는 그가 차근한 노동으로 마련했을 돌담과 텃밭, 비닐하우스, 닭장, 연못, 꽃과 나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였을 것이다. 낮은 대문 앞에는 “안도현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인이 베푼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여기 심었습니다”라고 쓰인 작은 비석과 함께 전북산(産) 팽나무가 지금은 비록 앳되지만 한 뼘씩 늘씬하게 자라 가고 있었다. 일행이 도착했고, 강릉 사는 딸네 집에 갔던 시인의 아내 박성란 선생도 돌아와 하룻밤 식구는 이제 다섯 명이 됐다. “귀향하고 나서 한 해가 어느새 훌쩍 지났네요. 나무와 꽃들을 마당 앞뒤로 심었고 돌담을 쌓았고 텃밭을 마련했습니다. 밭에 거름더미도 만들고 비닐하우스도 작게 지었어요. 정말 많이 바빴어요.” 어디 그뿐이랴. 시인은 그 사이사이로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새소리를 들으며 동식물들의 행적을 눈으로 귀로 따라갔다. 아파트라는 문명의 허공에서 수십 년 살다가 지상에 발을 디딘 결과가 이렇게 풍요롭고 즐겁기만 하다. 귀향 무렵 외손녀도 보았으니 이제 영락없이 할아버지가 된 초로(初老)의 시인은 경사를 겹으로 맞이한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예천은 ‘후기 안도현’의 넉넉하고 새로운 출발점이 돼 줄 것이다.●“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존재론 안도현은 1961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에서 태어났다. 지금 집을 지은 곳은 자신이 태어난 생가 바로 옆이다. “고향을 떠나 스무 살 이후 전북 지역에서 40년간 살다가 작년 초에 고향으로 돌아와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년의 생애를 살러 낙향(落鄕)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새로운 시와 생명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상향(上鄕)을 꿈꾼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과 실천은 그의 고향에 흐르는 내성천처럼 격한 탁류가 아니라 잔잔하고 투명한 시냇물이 돼 많은 이들의 기억으로 전이돼 갈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시냇가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시간과 기억과 사물을 담으면서 그네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마음과 이름을 선사해 갈 것이다. 안도현은 1981년 대구매일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약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물론 그는 십대 때부터 성숙한 소년 문사였다.“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가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 접한 문학은 마약 같은 것이어서 학교 공부를 제쳐 놓고 시를 읽고 쓰는 일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는 그때 겉으로 보기에는 말썽을 피우지 않는 얌전한 학생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삶과 문학에 대한 오기로 뭉쳐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다닌 대구 대건고에서는 시인 도광의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지금도 문단에 나와 활동하는 대건고 출신 선후배 문인들이 제법 많다. 그러다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확연하게 한국 현대시사로 진입하게 된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은 그를 우리 시단과 역사 속에 각인한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그 시절 저를 포함해 젊은 시인들이 가졌던 시와 역사를 향한 열정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제게도 시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해 준 ‘불의 시대’였지요.”그 ‘불의 시대’를 건너 시인은 천천히 작고 느리고 외따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해 간다. ‘불꽃’의 시대에서 ‘나무/꽃’의 시대로 옮겨 간 것이다. 특별히 ‘바닷가 우체국’ 이후 안도현은 자연에 대한 감각이 눈에 띄게 점증하면서 자신만의 시적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 그의 시가 지닌 섬세한 감수성과 탁월한 언어 감각은 이때부터 아름다운 서정성으로 많은 독자를 사로잡아 갔다. 소소하고 쓸쓸한 존재자들에 대한 세심한 발견을 통해 현실 경험과 그것의 상상적 치유 과정을 깊이 있게 노래한 결과였다. 이처럼 시인은 따스한 화해의 세계를 지속시키면서도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몸을 바꾸는 순간을 드러내면서 허공의 물기가 한밤중 순식간에 나뭇가지에 맺혀 꽃을 피우는 순간까지 잡아내게 된다. 그 결과가 결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 둘 수 있게 되었다’라는 구절에 가닿게 된 것이다. 그의 열한 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 둘 수 있게 되었다’(2020)는 오랜만에 전해진 ‘시인 안도현’의 편지 같은 존재다. 한때 절필 선언 후 살아온 날들이 담긴 이번 시집을 독자들은 오래도록 기다렸을 것이다. “나무나 꽃과 대화하고 서로 알아보면서 이곳에서 인생을 완성에 가깝게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거창하게 모천회귀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안긴 어머니 품 같기는 합니다.” 그는 이러한 시간이 담긴 이번 시집을 두고 “여건과 환경이 바뀌면서 모든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됐고 그에 따라 시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을 통해 “갈수록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안도현이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니? 안도현이 안 쓰면 누가 쓰나? 나는 그 말이 이제 그가 시를 ‘쓰는’ 단계에서 시를 ‘사는’ 단계로 이월하는 순간을 담아낸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그릇은 나를 얻었다//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그릇)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이 버리기 어려운 허물을 고백하고 반성하지 않는가? 이제 좀 고독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들려주는 그는 자신이 사랑했고 평전까지 집필했던 백석(白石)이 노래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존재론을 고향 예천에서 구상하고 완성해 갈 것이다. 그 믿음이 이제 시를 ‘살아가는’ 힘을 줄 것이다.●잔잔하고 투명한 시냇물 같았던 봄날 시인이 고향에 돌아와 우선으로 한 일은 돌담이나 텃밭이라는 형상으로도 나타났지만, 예천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잡지 ‘예천산천’ 창간으로도 결실을 이뤘다. 그는 이 계간 잡지의 편집인을 맡았다. “예천은 비록 작은 고을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막무가내의 개발로부터 소외돼 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보존된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고향분들을 한 분 한 분 만나 아직도 남아 있는 예천의 자연과 문화 유적들을 잘 지켜 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안도현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자연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노래해 온 시인이다. 그러한 그의 시선이 이제 고향의 작고 느리고 아름다운 사물과 순간과 기억 속에서 더욱 고귀한 삶의 이법을 포착하고 발견해 가는 성취를 이루어 갈 것이다.“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모래 강입니다. 폭도 매우 넓은 귀한 강이지요.” 그런데 상류에 갑자기 영주 댐이 건설되면서 모래사장은 풀밭으로 급속도로 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모래가 제법 많다. 시인은 어릴 적 여름이면 매일 이 강변에서 살았다고 한다. “내성천 곁에 살게 됐으니 내성천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데 헌신하려고 합니다.” 이제 내성천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그의 시와 글과 삶의 흔적들이 안도현의 ‘예천 시대’를 열어 갈 것임을 내비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향 예천은 안도현에게 아득한 과거이자 첨예한 미래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시인의 안내를 따라 도정서원에 들렀다.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정탁(鄭琢)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에서 우리는 내성천의 살가운 흐름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안도현의 고향 예천의 아름답고 잔잔하고 투명한 봄날을 누렸다. 그야말로 “오동꽃 핀 줄 모르고/5월이 간”(식물도감) 순간이 우리의 몸안에 남은 것이다. 이제 예천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후기 안도현’의 시가 탄생해 갈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전주로 서울로 향했다. 고향의 자연과 역사에서 발견하는 시와 삶을 그리고 있을 안도현의 다음 세계가 더욱 아름다운 화폭으로 나타날 것을 마음 깊이 고대하면서 말이다. “뒷산에/핑계도 없이/와서//이마에 손을 얹는/먼 물소리”(우수(雨水))를 한껏 들을 수 있었던 따뜻하고 화창한 예천의 봄날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文 “저는 디모테오, 뵈니 꿈만 같다”… 추기경 “한국교회 상황, 굉장한 자부심”

    文 “저는 디모테오, 뵈니 꿈만 같다”… 추기경 “한국교회 상황, 굉장한 자부심”

    “한국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12~13% 정도일 것 같습니다. 지식인층이 특히 가톨릭 신앙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인권이라든지, 아픈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요즘에는 남북통일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정신적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주도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한국 교회 상황을 설명해 주셨는데, 저에게는 매우 자부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한국 천주교가 사회 정의라든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다는 말씀이 큰 자부심입니다. 평화에서 앞서 왔다는 점도 굉장히 자부심으로 느껴집니다(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미국을 공식 실무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순방 마지막 날인 22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 겸 워싱턴DC 대교구 대주교를 만나 한반도 평화와 인종 화합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레고리 추기경은 지난해 10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추기경에 임명됐으며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확산했을 때 종교시설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전날 개최된 코로나19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할 것을 강조하는 기도를 봉헌했고,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 왔다. 문 대통령은 “주교님을 뵈니 꿈만 같다. 저는 가톨릭 신자로 본명이 디모테오라고 한다”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님에 이어서 두 번째 가톨릭 신자”라며 “한국 대통령으로서, 가신자로서 주교님을 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라고 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저 역시도 뵙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2004년 아시아 지역 주교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는데 굉장히 인상 깊은 여정이었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그레고리 추기경의 인종 갈등 봉합을 위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잇따르는 증오범죄와 인종 갈등 범죄에 한국민도 함께 슬퍼했다”면서 “증오방지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해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이 어려운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고, 갈등도 어려운 사람 사이에서 많이 생긴다”며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고 1주기가 화합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끔찍한 폭력이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문 대통령은 또한 “2018년 10월 로마를 방문해 교황님을 뵈었는데, 한반도 통일을 축원하는 특별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며 “여건이 되면 북한을 방문해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싱턴과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5만명의 교민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15년간 애틀랜타 대주교로 활동했는데, 한국인들의 친절과 배려, 화합에 대한 열망을 잘 안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존중과 사랑을 받으면 보답하는 정신이 있다. 늘 함께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면담이 끝난 뒤 한국에서 가져온 ‘구르마(손수레) 십자가’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수십 년 전 동대문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끌고 다니며 일하던 나무 손수레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십자가로 만들었다”면서 “노동자의 땀이 밴 신성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레고리 추기경은 성스러운 상징이라며 십자가에 입을 맞췄다. 아울러 문 대통령에게 한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축복 기도를 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미 오리건주 농촌 카운티들 “아이다호주 편입시켜달라” 주민투표

    미 오리건주 농촌 카운티들 “아이다호주 편입시켜달라” 주민투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 사이에 끼어 있는 오리건주 동부의 다섯 카운티 주민들이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이웃 아이다호주에 들어가도록 아이다호주 경계선을 서쪽으로 늘려 그어달라고 요구할지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셔먼, 레이크, 그랜트, 베이커, 말레르 등이다. 캘리포니아주 북부와 가까운 하니, 더글러스 카운티도 같은 주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쉽게 말해 이 주의 가난하고 농민들이 주를 이뤄 보수적이며 작은 정부를 표방해 세금을 덜 걷는 데 찬동하는 카운티 주민들이 민주당이 장악한 포틀랜드 정치권에 환멸을 느껴 공화당이 주도해 더 보수적인 아이다호주로 편입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오리건주는 현재 연방 상원의원 둘이 모두 민주당이며 1988년 이래 한 번도 공화당 상원의원이 나오지 않은 반면, 아이다호주는 1968년 이래 민주당 상원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오리건주 시골의 투표 성향은 아이다호주에 훨씬 공통점이 많았다. 같은 시골이라도 윌라미트 계곡을 중심으로 한 와인 주산지들은 부유해 포틀랜드의 정치 성향과 공통점이 많아 오리건주에 남길 바라고 있다. 주민투표를 이끈 단체 ‘더 큰 아이다호를 위한 오리건 경계 변경 운동’(Move Oregon’s Border for a Greater Idaho) 관계자는 현지 언론에 “동부 교외 카운티 주민들은 보수 성향이 강한 아이다호주가 더 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건주 국무부 홈페이지에 아직 개표 결과가 올라오지 않았지만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은 20일 베이커 카운티 의회가 일년에 세 차례 만나 아이다호주 편입 방안을 논의하도록 한 안건을 찬성 3064, 반대 2307로 가결됐다고 지역신문 베이커시티헤럴드를 인용해 전했다. 주민 대표 마이크 맥카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투표는 오리건주 교외 지역 주민들이 오리건주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오리건주가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면 우리의 뜻을 저버리고 카운티를 포로로 잡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정부 관리에 투표할 수 있다면, 정부에도 투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 오리건주 교외 지역을 아이다호에 편입시키려고 한 시도는 시골 주민과 도시 주민들을 구분 짓는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생계와 산업, 지갑, 총기 소유권, 가치관을 위협하는 법안이 주의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보고 화가 많이 났다. 우리는 의원 선출권으로 맞서려 했으나 우리 숫자는 적고 우리 목소리는 무시됐다. 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이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운동은 오리건주 36개 카운티 가운데 14곳을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이 치러졌을 때 오리건주 제퍼슨과 유니언 카운티는 아이다호주로 편입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가결시켰다. 브래드 리틀 아이다호 주지사는 지난해 폭스뉴스 인터뷰를 통해 “일부 오리건 주민들은 아이다호의 단정한 분위기와 가치관을 흠모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통과하더라도 실제로 편입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 경계선 변경을 위해서는 오리건 주의회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민주당이 장악한 상황에 표결을 통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서 떠오른 대안이 오리건주 정부와 아이다호주 정부가 협상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협상을 타결지어도 민주당이 장악한 연방의회의 비준이란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미국에서 주 경계선이 변경된 전례가 있긴 하다. 1792년 버지니아주에서 켄터키주가 갈라져 나왔고, 1820년에는 메인 주가 매사추세츠주에서 분리됐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1863년 남북전쟁 당시 북부연방 정부가 수립되면서 탄생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문대통령 만난 한국계 의원들 “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문대통령 만난 한국계 의원들 “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한국계 의원 4인방 간담회 참석앤디 김 “감격스럽다” 소회 밝혀선서 때 화제된 스트릭랜드 의원간담회에서 울먹이는 표정 짓기도“한국이 잘 되면 미국도 잘 된다. 한국 역사를 보면 오뚜기처럼 복원력이 강한 나라다.” 20일 오후(현지시간) 미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미 하원 지도부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민주당 소속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워싱턴) 연방하원의원은 “한미 양국 간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스트릭랜드 의원 외에도 민주당 앤디 김(뉴저지)·공화당 미셸 박 스틸(박은주·캘리포니아), 공화당 영 김(김영옥·캘리포니아) 등 한국계 하원의원 4인방도 참석했다. 앤디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미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며, 나머지 3명은 초선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분들은 ‘영옥’, ‘은주’, ‘순자’와 같은 정겨운 이름을 갖고 있다. 더욱 근사하게 느껴진다”며 이들의 당선을 축하했다. 이에 취임선서 때 한복을 입은 것으로 화제가 됐던 스트릭랜드 의원은 자신의 SNS에 “땡큐 프레지던트 문!”(Thank you President Moon!)이라고 화답하기도 했다.이날 앤디 김 의원은 “50년 전 부모님이 가난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면서 문 대통령을 의사당에서 만난 데 대해 “매우 감격스럽다”고 했다. 이어 “한미 관계는 북한이나 중국에 대한 관계 차원이 아니라 한국 자체만으로도 미국의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영 김 의원도 “양국 의회 간 교류 활성화를 바란다. 한미정상회담도 건설적으로 진행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스틸 의원은 “지난해 민주·공화 각 2명씩 4명의 한국계 의원이 당선됐다. 매우 중요한 양국의 동반자 관계가 계속 강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한국계 의원 말고도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신 분도 있었고, 스트릭랜드 의원은 대화 도중 울먹이는 표정도 지었다”고 전했다. 한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올해 문 대통령이 보낸 신년 인사 카드를 꺼내 보이면서 “아주 예뻐서 간직하고 있다. 그 안의 내용에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글도 감동적이었다”며 카드를 꺼내 흔드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99% 삼킨 1%… 부를 창출해야 진짜 자본주의

    99% 삼킨 1%… 부를 창출해야 진짜 자본주의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박세연 옮김/열린책들/464쪽/2만 3000원“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부자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방법뿐이라면, 우리 경제 시스템은 크게 잘못된 게 분명하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 하위 90%의 평균 소득은 제자리였지만, 상위 1%의 소득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재산을 합하면 미국 인구 하위 절반을 넘어설 정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 교수가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불평등이다.저자는 불평등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부의 창조’와 ‘부의 추출’이라는 개념을 든다. 부의 추출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부를 가져오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제국주의 국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부를 빼앗은 방식이었는데, 현대 국가에서 기업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거대 기업이 부를 끌어올려 아래로 분배하는 낙수 효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정부가 나서기 전까지 시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규제 철폐가 경제를 자유롭게 만들고, 감세가 동기를 부여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며 시장에 막대한 자유를 안겨 준 로널드 레이건이 이런 사례다. 미국 기업들이 지난 40년 동안 이런저런 혜택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레이건 이전 30년간 연평균 3.7%였던 미국의 성장 속도는 이후 연평균 2.7%로 하락했다.저자가 생각하는 시장 경제의 진짜 목적은 부의 창출이다. 개인의 부를 늘리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부를 늘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결실을 누리자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가리켜 ‘진보적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시장에 무조건 맡기지 말고,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방식이다. 불평등을 줄이고 공정한 규칙만 제대로 세워도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한 부분이 특히 눈에 띈다. 이민자를 비롯해 여성과 노인 등의 노동 참여를 확대하고, 그들의 생활수준과 생산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다. 세금 체제도 중요하다. 저자는 좋은 세법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열쇠라고 봤다. 기후위기 문제를 예로 들자면, 탄소세는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에 투자하도록 장려한다. 환경에도 이롭고, 세수도 늘리며, 장기적으로 혁신을 자극한다. 부유한 개인과 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특히 투자도 안 하고 일자리도 만들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금을 높일 것을 주문한다. 이렇게 늘어난 세수는 고등 교육 기관과 과학 기술,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입하자고 주장한다.책은 정권 교체 전인 2019년 출간됐다. 저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오직 상위 계층이 대다수 사람을 상대로 계속해서 강도질하도록 도움을 주려는 계획만 있을 뿐”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규칙을 적극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사회 불만이 커지고 분열도 심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본주의의 문제만 단순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점을 인정하되 더 나은 자본주의를 고민하는 과정이 담긴 책은 한국이 참고할 부분이 많다. 불평등이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지금 특히나 유용한 아이디어가 많다. 부의 추출이 아닌, 부의 창조를 함께 생각해 볼 때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갓난아기도 목숨 건 ‘유럽행’…모로코 불법이민자 8000명 구름떼

    갓난아기도 목숨 건 ‘유럽행’…모로코 불법이민자 8000명 구름떼

    ‘아프리카의 유럽땅’ 세우타에 이틀간 8000명 넘는 불법이민자가 몰렸다. 목숨 건 유럽행에는 아직 걸음마도 못 뗀 갓난아기도 포함됐다. 스페인국민경호대는 18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서북단의 스페인령 세우타 앞바다에서 어머니 등에 업혀 국경을 넘던 갓난아기를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바다를 건너 세우타로 향하는 모로코 불법이민자 행렬에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이 끼어들었다. 보트가 육지에 다다르자 갓난아기를 둘러업은 여성은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저 앞에 뭍이 보였지만 아기를 등에 업고 헤엄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페인국민경호대 소속 후안 프란시스코 경관은 재빠르게 구명튜브를 챙겨 흠뻑 젖은 아기를 건져 올렸다. 덕분에 아기는 무사히 구조됐다.구조된 아기를 포함, 17일부터 이틀간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간 불법이민자는 8000여 명, 이 중 1500명가량은 미성년자다. 모로코 북동부 해안에 자리한 세우타는 지중해 지브롤터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을 마주한 유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영토다. 스페인이 1580년 점령해 아직도 주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가난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는 주요 경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린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모로코에서부터 헤엄쳐온 불법이민자와 그들이 나눠 탄 보트로 세우타 앞바다는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이 됐다. 불법이민자들은 국경을 따라 설치된 길이 6㎞ 높이 6m짜리 철책선을 기어 올라 세우타에 발을 들였다. 스페인은 경찰과 무장병력을 동원해 밀입국 차단에 총력을 기울였다. 성인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를 제외한 불법이민자 절반은 이미 모로코로 추방했다.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이민 행렬에 스페인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프랑스 파리 방문 일정을 급거 취소하고 세우타로 향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갑작스러운 이주민 유입은 스페인과 유럽에 심각한 위기”라며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란차 곤잘레스 라야 스페인 외교부 장관도 “정부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주재 모로코 대사를 초치해 단속 강화를 요구했다. 사상 유례 없는 불법이민의 배경에는 모로코의 감시 소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로코가 스페인을 압박할 요량으로 이주민을 일부러 통제하지 않는 거라는 해석이다. 앞서 스페인이 모로코 반군 세력인 폴리사리오해방전선 지도자 브라힘 갈리의 입국을 허용한 데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코로나19에 걸린 갈리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용했다고 밝혔지만, 모로코는 스페인이 자국에 알리지 않고 갈리를 받아들인 것은 “동반자 정신에 어긋난다”며 뒤따르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코로나 미국, 유럽서 잠잠…아시아서 폭발적 확산

    코로나 미국, 유럽서 잠잠…아시아서 폭발적 확산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는 반면 그동안 방역 모범국을 자신했던 타이완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재기와 같은 혼란상황없이 철저한 방역정책을 펼쳤던 타이완은 18일 일일 신규 확진자가 335명이라고 밝혔다. 타이완의 총 코로나 사망자 숫자는 14명으로 지금까지 학교, 직장, 식당 등을 정상운영했지만, 줄어드는 병상때문에 봉쇄 조치를 검토 중이다. 세계적으로 330만명이 코로나로 사망했으나 몇달간 확진자가 없던 타이완에서 지난 주부터 환자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극장, 도서관, 레크레이션 센터 등이 폐쇄됐고, 공립학교도 이달 말까지 문을 닫는다.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도 처음으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등에서는 몇달간 볼 수 없었던 바이러스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인도는 코로나 발생의 진앙으로 5월 들어 1000만명의 세계 코로나 확진자의 60% 이상이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싱가포르대의 감염병 전문가인 데일 피셔는 18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통해 “코로나는 세계적 대유행으로 국경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며 “확산세에 비추어 국경이 무너지는 것은 통계적으로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피셔는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 면역에 이르는 것만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끝낼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백신을 통해서만 코로나는 팬데믹에서 엔데믹(풍토병)이 되고 결국 계절 질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백신이 미국, 유럽 등과 같이 부유한 나라에만 있고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처럼 가난한 나라에는 부족하다는데 있다. 인구는 밀집하고, 보건은 취약한데 수백만명이 미접종 상태로 남아있으면 변이 바이러스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 팬데믹이 연장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인도, 네팔, 스리랑카, 몰디브 등에서 빠르게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제 적십자사의 아브히세크 리말은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까지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 깨달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미국의 상황이 좋아보이지만 만약 변종 바이러스가 변이를 하면, 미국에도 바이러스가 이를 것이고 이것이 팬데믹의 순환”이라며 백신의 공정한 분배를 주장했다. 후진국뿐 아니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중진국도 한자리 숫자의 낮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4차 대유행을 겪고 있는 일본조차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의 접종률에 미치지 못한다. 일본 인구의 3%가 못 되는 126만 명이 2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이는 백신 예약 시스템의 비효율성과 관리 부재 탓이다. 원래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던 세계 경제 포럼을 8월에 개최 예정이던 싱가포르도 치솟는 확진자 숫자때문에 행사를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확진자 증가는 ‘코로나 지옥’ 인도에서 온 장기 거주자들 때문이다. 지난 16일 싱가포르는 거의 일년 만에 처음으로 봉쇄 조치를 내렸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백신 맞고 온 입국자, 자가격리 면제 검토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면 외국에서 국내 입국 시 자가격리를 면제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정부가 17일 밝혔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나라에서 승인된 백신과 함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한 백신까지 (자가격리 면제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특정 국가에서 승인된 백신만 허용할 경우에는 상당히 범위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대본에 따르면 현재 WHO의 긴급사용 승인 허가를 받은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시노팜 등 다섯 가지다. 입국 후 자가격리 면제 검토는 자연스럽게 백신여권 논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신여권이 자칫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현실화까진 진통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정 본부장은 “아직 국가 간 예방접종증명서를 어떻게 상호 인증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두고 협상이나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각국이 어느 정도 엄밀하게 (접종 증명) 절차를 확인하는지, 또 개별 국가의 자가격리 면제 범위·예방접종증명서를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 중인지 확인해 국가별로도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다른 일부 국가처럼 백신 접종자는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는 방안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었다. 정 본부장은 “미국은 국민의 약 9.9%가 이미 확진돼 자연면역을 가지고 있고, 또 1차 접종자가 46% 정도로 접종률이 높은 상황”이라면서 “그런 조치를 바로 국내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큰 정부’ 외치는 바이든, 레이건 넘어 ‘복지여왕’까지 깰 수 있을까

    ‘큰 정부’ 외치는 바이든, 레이건 넘어 ‘복지여왕’까지 깰 수 있을까

    ‘바이든은 레이거니즘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복지여왕(Welfare Queen)과의 싸움에서도 이길까.’ 취임 뒤 넉달 동안 2조 5000억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정책을 발표하며 ‘큰 정부의 귀환’을 선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책과 관련해 CNN의 조 블레이크 선임기자 16일(현지시간) 제기한 질문이다.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바이든의 복지 확대 정책이 의회를 통과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복지여왕 이야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총평했다. 복지여왕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76년 대선 유세에서 창조해낸 인물이다. 당시 레이건은 “죽은 남편 4명의 명의로 연금을 수령하고, 12개의 사회보장 카드를 갖고 있고, 80명의 가짜 이름으로 복지수당과 푸드 스탬프(식료품 지원)를 받는 흑인 여성이 있다”며 이 여성을 복지여왕이라고 칭했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 정책 때문에 일하기 보다 각종 복지혜택을 부정한 방법으로 수급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는 취지의 연설이었지만, 레이건이 말한 이 여성은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로 밝혀졌다. 시카고에서 각종 복지 혜택을 부정수급했다 적발된 흑인 여성 때문에 퍼진 이야기이긴 했지만, 4명의 남편이라거나 80명의 가짜이름 같은 대목은 레이건이 발명한 가짜 뉴스였다. 결국 복지여왕은 ‘도시괴담’ 급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정부가 복지를 늘리면 복지여왕 같은 파렴치한 이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공포에 힘입어 이야기는 계속 퍼져 나갔다. 이후 공화당은 복지여왕을 예로 들며, 정부가 불가피한 복지정책만 펴며 자유시장을 장려해야 한다는 ‘작은정부론’을 설파했다. 공공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믿는 민주당 진영에서도 복지여왕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빈곤층에 현금성 복지를 제공하는 일을 꺼리는 자기검열이 이어졌다.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복지개혁법에 서명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푸드 스탬프 대통령’이란 공화당의 비난에 굴복해 결국 사회보장 삭감을 시도했다”며 이들이 복지여왕 담론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바이든 스스로도 상원의원 시절 “고급차를 타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는 이가 있다”며 복지여왕의 등장을 경계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복지여왕 이야기에서 벗어날 기회가 됐다고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진단했다. 사람들에게 현금을 직접지원 하는 방식을 꺼려하던 공화당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복지여왕 극복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봉쇄 중 배달인력을 비롯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유색인종 필수 노동자들의 헌신이 부각된 점 역시 ‘가난한 이들은 게을러서 복지가 제공되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됐다고 블레이크 선임기자는 기대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그들의 차이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그들의 차이

    눈앞으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갔다. 카트만두의 국내선 공항 대합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실내에서 날아다니는 비둘기라니 헛것을 봤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이 높은 허름한 청사 건물의 2층 창문턱에 마치 빨랫줄에 앉아 있는 참새들처럼 비둘기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서너 마리가 또 푸드덕 날아올랐다. 당시에는 신형이던 내 스마트폰을 빤히 바라보는 옆자리 네팔 여성을 의식하면서 관광객들과 네팔 현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에서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가난한 편인 내가 값비싼 비행기 삯을 지불하고 날아와 이 자리에 앉아 있고, 이 나라에서는 상위 중산층임이 분명한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기계를 들고 있다니. 아무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태어난 자리’의 차이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십여 일 뒤에 나는 카트만두의 그린라인 버스 주차장에서 넋을 잃고 서성이고 있었다. 귀국하는 날이라 호텔 객실에서 짐을 싸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다. 진도 7.8의 강도 높은 지진이었다. 허겁지겁 배낭만 메고 일행과 함께 호텔을 빠져나와 몰려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넓은 공터까지 갔다. 본진 때는 놀라서 무서울 새도 없었다. 그러나 20~30분 간격으로 땅이 흔들리고 울부짖는 사람, 불안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통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보니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다.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 땅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어 달 함께 여행했을 뿐 여전히 속내를 잘 알지 못하는 일행뿐 아니라 이름도 국적도 모르는 타인들 모두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홀로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에게 짙은 연민이 일기까지 했다. 이상하고도 낯선 감정이었다. 그날 저녁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공항까지 걸어갈 각오를 하고 거리로 나갔다. 무너진 벽돌이 흩어져 있는 거리의 상점들 대부분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어떤 가게 앞에 뜯지도 않은 생수병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물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냥 가져가라는 것일까? 상황이 다급해서 가게 안으로 미처 들여놓지 못한 것일까? 해답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우왕좌왕 끝에 운 좋게 택시를 잡았다. 어느 정도 불안이 가라앉자 마음은 간사하게도 택시비를 얼마나 내야 할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관광객들에게는 웃돈을 요구하는데, 막힌 도로를 이리저리 우회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큰 돈을 달라고 할지 걱정스러웠다. 공항에 도착하자 기사는 뜻밖에도 미터대로 요금을 내라고 했다. 나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까지 쳐야 했다. 택시 기사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엄청난 자연재해 같은 불행을 함께 겪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잠시, 아주 잠시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지는 걸까. 사라지는 택시를 바라보면서 길가에 쌓여 있던 생수병 상자들을 떠올렸다. 여섯 해 전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은 지난 4월 22일 평택항에서 숨진 이선호씨 사고 관련 기사를 읽은 뒤였다. 그날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는 이선호씨를 덮친 무거운 철판을 들어 올리려 애쓰며 빨리 구조대를 불러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한국인 관리자들은 119가 아니라 상부에 먼저 연락했다. 이것은 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일까? 노동자와 관리자의 차이일까? 스스로 가난하다고 믿는 내가 먼 나라의 풍광을 구경하러 가는 사치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 바로 그 시스템 속에서 오래 살아남고 적응한 힘의 차이일까? 해답을 찾고 분석할 능력은 나에게 없다. 다만 재앙 같은 불행 앞에서는 아주 잠시라도 사람들 사이에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이제 이곳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아 막막하고 서글플 따름이다.
  • [나우뉴스]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나우뉴스]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을 둔 짐바브웨 남성이 17번째 결혼식을 준비 중이다. 6일 남부 아프리카 짐바브웨 국영 ‘더 헤럴드’는 죽을 때까지 결혼과 출산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60대 남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수도 하라레 북부에 위치한 마쇼나란드센트럴 음비레 지역에는 전무후무한 대가족을 거느린 이가 산다. 퇴역 군인 미섹 얀도로(66)가 그 주인공이다. 1977년 해방 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1983년 첫 번째 결혼 이후 15명의 신부를 추가로 맞이했다. 일부다처제가 만연한 짐바브웨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다. 한 해에 3번 결혼한 적도 있다. 얀도로는 “첫 번째 결혼후 본격적으로 일부다처제 과업에 착수했다. 마지막 결혼은 2015년이었다”고 밝혔다.부인 16명과의 부부 생활을 위해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얀도로는 “아내들은 매일같이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그 중 가장 맛있는 요리만 먹은 뒤 나머지는 버린다. 이를 통해 아내들은 발전의 기회를 얻고, 나는 그날 밤 묵을 방을 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평균 4명의 부인에게 ‘부부관계 권리’를 부여하고, 목표한 침실을 차례로 거치며 내 의무를 다한다. 그게 내 일이다. 다른 하는 일은 없다. 아내들도 행복해한다 정말이다. 나 없을 때 한 번 자유롭게 인터뷰해보라”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부인 16명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는 모두 151명. 2015년 마지막 결혼 이후 6년간 낳은 자녀만 22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아버지처럼 일부다처제를 선택했다. 더 헤럴드는 부인 4명을 거느린 얀도로의 아들이 아버지 뒤를 멀찌감치서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얀도로는 이제 17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새 신부는 벌써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얀도로는 “올 겨울 17번째 부인을 맞이할 예정이다. 신부는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우쭐댔다. 16명의 부인을 두고도 결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뭘까. 얀도로는 “자녀를 더 낳고 싶은데, 나이 든 아내가 많아 젊은 부인을 얻고자 함”이라고 답했다.경제적 부담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참전 용사고, 정부가 아이들 양육비를 보조해준다. 장성한 자녀에게서 받는 지원도 많다. 문제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얀도로는 최근 정부에서 대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부지도 할당받았다. 얀도로는 “세계는 아프리카 인구를 줄이지 못해 안달이지만 나는 반대다. 할 수만 있다면 100명의 부인과 1000명의 자녀를 갖고 싶다.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과업 달성 위해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교적 이유로 미성년자와 결혼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빈곤률이 높은 짐바브웨에서는 일부다처제와 가난이 복합적으로 작용, 어린 딸을 식량과 맞바꾸는 조혼이 기승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을 둔 짐바브웨 남성이 17번째 결혼식을 준비 중이다. 6일 남부 아프리카 짐바브웨 국영 ‘더 헤럴드’는 죽을 때까지 결혼과 출산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60대 남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수도 하라레 북부에 위치한 마쇼나란드센트럴 음비레 지역에는 전무후무한 대가족을 거느린 이가 산다. 퇴역 군인 미셱 얀도로(66)가 그 주인공이다. 1977년 해방 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1983년 첫 번째 결혼 이후 15명의 신부를 추가로 맞이했다. 일부다처제가 만연한 짐바브웨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다. 한 해에 3번 결혼한 적도 있다. 얀도로는 “첫 번째 결혼후 본격적으로 일부다처제 과업에 착수했다. 마지막 결혼은 2015년이었다”고 밝혔다.부인 16명과의 부부 생활을 위해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얀도로는 “아내들은 매일같이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그 중 가장 맛있는 요리만 먹은 뒤 나머지는 버린다. 이를 통해 아내들은 발전의 기회를 얻고, 나는 그날 밤 묵을 방을 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평균 4명의 부인에게 ‘부부관계 권리’를 부여하고, 목표한 침실을 차례로 거치며 내 의무를 다한다. 그게 내 일이다. 다른 하는 일은 없다. 아내들도 행복해한다 정말이다. 나 없을 때 한 번 자유롭게 인터뷰해보라”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부인 16명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는 모두 151명. 2015년 마지막 결혼 이후 6년간 낳은 자녀만 22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아버지처럼 일부다처제를 선택했다. 더 헤럴드는 부인 4명을 거느린 얀도로의 아들이 아버지 뒤를 멀찌감치서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얀도로는 이제 17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새 신부는 벌써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얀도로는 “올 겨울 17번째 부인을 맞이할 예정이다. 신부는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우쭐댔다. 16명의 부인을 두고도 결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뭘까. 얀도로는 “자녀를 더 낳고 싶은데, 나이 든 아내가 많아 젊은 부인을 얻고자 함”이라고 답했다.경제적 부담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참전 용사고, 정부가 아이들 양육비를 보조해준다. 장성한 자녀에게서 받는 지원도 많다. 문제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얀도로는 최근 정부에서 대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부지도 할당받았다. 얀도로는 “세계는 아프리카 인구를 줄이지 못해 안달이지만 나는 반대다. 할 수만 있다면 100명의 부인과 1000명의 자녀를 갖고 싶다.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과업 달성 위해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교적 이유로 미성년자와 결혼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빈곤률이 높은 짐바브웨에서는 일부다처제와 가난이 복합적으로 작용, 어린 딸을 식량과 맞바꾸는 조혼이 기승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적어도 40구의 시신이 강둑에, 인도에서 장작값 오르자 수장시킨 듯

    적어도 40구의 시신이 강둑에, 인도에서 장작값 오르자 수장시킨 듯

    적어도 40구의 시신이 인도 북부 갠지스강 강둑에 밀려왔다고 현지 관리들이 밝혔다. 비하르주와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경계를 이루는 강둑에서 발견됐는데 어떻게 주검들이 이곳까지 떠내려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코로나19에 희생된 이들일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영국 BBC가 10일(현지시간) 전했다. 일부 매체는 처음에는 100구 가량 됐다면서 이들 주검이 여러날 강물에 떠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지방 관리 아쇽 쿠마르는 현지 주민들을 조사한 뒤 “시신들이 우타르프라데시 쪽에서 떠내려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방송에 털어놓았다. 그는 유해들을 화장하거나 매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NDTV 뉴스는 시신 일부가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코로나19 사망자를 화장한 뒤 갠지스강을 따라 수장시키려 했을 수 있다는 관리들의 발언을 전했다. 일부 주민과 기자들은 화장을 하려던 이들이 목재가 모자라자 이런 짓을 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현지에선 장작 값이 폭등해 아예 장례를 치를 생각도 하지 않고 시신을 강물에 수장시킨 것일지 모른다고 봤다. 현지 주민 챈드라 모한은 “개인 병원들은 사람들을 약탈한다. 보통 사람은 사제에게 사례를 하고 강둑에서 더 많은 장작을 쌓아 화장할 여력이 없다. 시신을 앰뷸런스에 태워 화장터에 데려가는 데만 2000 루피(약 3만원)를 달라고 한다. 해서 그냥 강둑에서 화장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우타르프라데시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4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의료체계가 붕괴돼 숱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화장터가 없어 시신을 바로바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다. 인도의 누적 확진자 수는 2260만명이며 24만 6116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전문가들은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68년을 교도소 독방에서 지내고 83세에 석방 “그리 기쁘지 않았다”

    68년을 교도소 독방에서 지내고 83세에 석방 “그리 기쁘지 않았다”

    감옥에서 보낸 세월이 68년이다. 난 조 리곤이다. 열다섯 살에 감옥에 처음 들어갔다. 내내 독방에서 지냈다. 미국에서 청소년 시절부터 복역한 최장기 종신수다. 난 늘 자유로운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기다렸다. 그렇게 낙천적으로 살다보니 기회가 와 풀려났다. 이제 여든셋이다. 다음은 9일 영국 BBC 월드 서비스에 털어놓은 나의 회고담이다. “외로웠던 적은 결코 없었다. 늘 혼자였다. 가능한 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체포될 때부터 풀려날 때까지 독방에서 늘 혼자 지냈다. 나처럼 혼자 있고 싶어하는 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난 그런 사람이었다. 감방에 들어가 문이 잠기면 난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라디오와 TV를 가질 수 있게 허용됐을 때 그것들이 내 친구가 됐다.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일요일이면 가족끼리 교회에 다녔다. 열세 살에 필라델피아의 가난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딥 사우스로 기계공 아버지, 간호사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이사왔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스포츠도 할 줄 몰랐다. 친구는 한둘 뿐이었다. 친구를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 1953년의 어느 금요일 저녁 잘 모르는 일행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냈다. 시비가 붙었고, 2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맨처음 내가 체포됐다. 경찰이 내가 누구누구를 흉기로 찔렀다고 했는데 난 그 사람들의 별명만 알고 있었다. 닷새 동안 구금돼 법률적 조언을 받지조차 못했다. 부모들이 찾아왔지만 경찰은 그를 만나게 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날 화나게 했던 문제였다. 결국 살인 죄로 기소됐는데 그는 계속 부인하다 PBS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아남은 두 사람을 흉기로 찌른 사실만 시인하며 후회한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계속 서류에 서명하라고 종용했는데 살인 혐의를 인정하는 내용이었는데 난 모르고 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미국의 여섯 주 가운데 하나다. 난 일급 살인 혐의를 둘이나 인정한 셈이 됐다. 재판 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고됐다는 사실도 법정에서 듣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여튼 그랬다. 난 뭘 물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내 이름 하나도 똑바로 적지 못했다. 감옥 시스템을 두려워하지도 못했다. 그저 혼돈스러웠다. 그냥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가 보다 싶었다. 죄수 AE 4126으로 불리며 얼마나 형기가 남았는지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여섯 군데 교도소를 거치며 오전 6시 기상나팔 소리에 일어나 한 시간 뒤 아침을 먹고 8시에 노역을 하는 생활을 되풀이했다. 부엌과 세탁실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청소 일을 했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노역을 하고 저녁에 점호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잠을 잤다. 마약을 섞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술을 먹으면 살인을 할지 모르니 그런 미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탈옥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 가능한 겸손하게 살려 했다. 감옥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다른 일에 엮이지 말고 내 앞가림에나 신경 쓰라는 것이었다. 곤란할 일은 만들지도 말고 옳은 일만 하려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53년을 복역한 뒤에야 변호사가 날 만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 대법원이 2005년에 청소년 범죄자들을 사형 집행하면 안된다고 판결했다. 브래들리 브리지란 변호사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언도 받은 소년범이 다음 이슈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주에만 525명이 리곤과 같은 처지였다. 물론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다. 필라델피아에만 325명이 있었다. 물론 리곤이 최장기 복역수였다. 브리지를 만나니 눈을 뜬 느낌이었다. 체포된 순간부터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하나도 누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2016년에야 미국 대법원은 모든 소년 종신수들을 재심하라고 판결했다. 리곤의 재심 결과는 35년형이었다.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듬해 항소해 연방법원은 지난해 11월 그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11일 브리지가 날 만나러 교도소에 왔다. 변호사는 나름 “오 마이 갓”과 같은 반응을 예상했는데 내가 너무 차분해 놀라웠다고 털어놓았다. 이내 난 수십년 동안 해왔던 일을 되풀이했다. 혼자 생각에 빠져든 것이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차며 커다란 건물이며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제 가장 잘 아는 일을 해볼 생각이다. 평생 해왔던 일을 똑같이 할 것이다. 청소하는 일을 누군가 줬으면 좋겠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내내 영화 ‘쇼생크 탈출’의 교도소 도서관 사서 브룩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 온 그는 바깥 세상을 한참 두려워하더니 결국 가석방돼 한동안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다 극단을 선택하고 만다. 브룩스와 달리 리곤은 엄청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고 하니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재명 “아버지 대학 중퇴”…김부선 “서울대 졸업했다더니”

    이재명 “아버지 대학 중퇴”…김부선 “서울대 졸업했다더니”

    이재명 “아버지는 학비 때문에 중퇴한 청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공부 좀 해보겠다는 제 기를 그토록 꺾었던 아버지는 사실 학비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청년이기도 했다”며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자, 배우 김부선은 9일 “아버지 서울대 졸업했다더니, 또 거짓말인가”라며 비판했다. 앞서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망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해 올렸다. 그는 “부모님 성묘에 다녀온 건 지난 한식 때로, 코로나 방역 탓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1년 만에 찾아뵐 수 있었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이 지사는 “공부 좀 해보겠다는 제 기를 그토록 꺾었던 아버지이지만, 사실은 학비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청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의 10대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필사적으로 좌충우돌하던 날들이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또 이 지사는 “돌아보면 제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가난이 아니라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일은 참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며 “그 강렬한 원망이 저를 단련시키기도 했지만 때로는 마음의 어둠도 만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이 지사는 자신이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아버지께서 말없이 생활비를 통장에 넣어주셨다고 말하며 “병상에서 전한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에 (아버지께서는) 눈물로 답해주셨다. 그제야 우리 부자는 때늦은 화해를 나눴다”고 적었다. 이어 이 지사는 “떠나시기 직전까지 자식 걱정하던 어머니, 마음고생만 시킨 못난 자식이지만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도 장성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무뚝뚝한 우리 아들들과도 너무 늦지 않게 더 살갑게 지내면 좋으련만. 서툴고 어색한 마음을 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핑계로 슬쩍 적어본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김부선 “또 감성팔이 나섰군” 이 지사 글을 접한 김부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 감성팔이 나섰군. 네 아버지 서울대 나왔다고 내게 말했었잖아. 눈만 뜨면 맞고 살았다면서. 너의 폭력성은 대물림이야”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김부선은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너처럼 막말하고 협박하고 뒤집어씌우고 음해하진 않는다”면서 “언제까지 저 꼴을 내가 봐줘야 하는지. 진짜 역겹다 역겨워”라고 덧붙였다. 또 “난 너의 거짓말 잔치 때문에 무남독녀를 잃었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고 말하며 “덕분에 백수 4년이 넘었다. 어디서 수준 떨어지게 표팔이 장사질이냐”라고 거듭 비판했다. 김부선 “전두환도 석방시켜 줬는데, 박근혜는 왜 사면 안하나” 최근 김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김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앞서 2일 김부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래 전부터 궁금한 생각”이라며 “전두환, 노태우도 ‘국민대통합’이란 명분으로 금새 석방시켜 줬는데 박통은 왜 구속 4년이 지나도록 사면이 없는 것일까”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통이 사람을 죽였나?”라며 “MB처럼 끝까지 거짓말로 국민들을 우롱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말로만 과 포장된 인권 대통령이었던걸까?”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건 엄밀히 성차별입니다. 법 정신에도 법 형평성에도 시대정신도 역행합니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김부선은 서울동부지법 제16민사부(부장판사 우관제)에 출석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언급하며 오열해 주목받았다. 김부선은 “제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인들 싸움에 말려들었다”며 “그 사건으로 남편 없이 30년 넘게 양육한 딸을 잃었고 가족도 부끄럽다고 4년 내내 명절 때 연락이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이 지사에 대한) 형사 고소를 취하자마자 강 변호사가 교도소 간 사이에 수천명을 시켜 절 형사고발했다”며 “아무리 살벌하고 더러운 판이 정치계라고 하지만 1년 넘게 조건 없이 맞아준 옛 연인에게 정말 이건 너무 비참하고 모욕적이어서 (재판에) 안 나오려 했다”고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부선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빛과 따뜻함 좇아간 여성의 삶…시공간 넘나드는 석유 이야기, 연극 ‘오일’

    빛과 따뜻함 좇아간 여성의 삶…시공간 넘나드는 석유 이야기, 연극 ‘오일’

    어둡고 춥고 배고픈 가족들의 날카로운 예민함이 객석까지 그대로 전달됐다. 너무나 당연히 함께하고 있는 ‘빛’이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불안하고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면 빛과 연료가 차고 넘치도록 충만하면 행복할까? 풍족하게 누리던 밝고 따뜻함을 다시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난 1일 개막해 9일까지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오일(OiL)’은 석유의 탄생과 종말을 둘러싼 여러 질문을 객석에 던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독특하다. 그동안 남성들의 무대가 주를 이뤘던 석유라는 소재를 여성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메이와 에이미라는 두 모녀가 인류가 본격적으로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쓰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석유가 고갈되었을 것이라 가정한 21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에 달하는 시공간을 넘나든다.1889년 영국 콘월의 한 농장을 배경으로 시작해 1908년 테헤란, 1970년 헴스테드, 2021년 바그다드를 거쳐 2051년 다시 콘월로 시간이 움직이는 동안 어두컴컴하고 차가웠던 무대에도 점점 빛이 더해진다. 그러나 환해지는 공간과 달리 모녀에게는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이 이어진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20세 임신부 메이는 낯선 방문객이 가지고 온 석유 램프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사랑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1889년). 영국 식민지 테헤란에서 딸을 데리고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인다(1908년). 다국적 석유회사 대표로 일하며 많은 부를 거두고 안락한 삶을 누리지만 탐욕에 사로잡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 에이미와 거듭 갈등한다(1970년). 그리고 엄마를 떠나 바그다드 사막에 머문 에이미(2021년)와 다시 빛을 잃고 어두워진 싱거 농장(2051년) 이야기가 이어진다.석유의 역사라는 방대한 흐름 속에 놓인 두 모녀는 그저 자신의 욕망과 안락,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와 대화, 주변 인물들과의 상황은 계급주의와 여성주의, 제국주의, 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에서 초연된 영국 극작가 엘라 힉슨의 ‘오일’은 극단 풍경이 ‘작가-작품이 되다 장 주네’, ‘작가‘에 이어 3년간 펼친 ‘작가展’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박정희 극단 풍경 대표와의 오랜 인연으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소리꾼 이자람이 메이로 처음 정극에 도전해 진중한 연기를 보여줬고, 그룹 이날치 프로듀서 겸 베이스 연주자 장영규가 음악을 맡아 극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美 2인자‘ 해리스 일단 합격점…성과 따라 차기 경쟁서 유리

    ‘美 2인자‘ 해리스 일단 합격점…성과 따라 차기 경쟁서 유리

    미국의 첫 여성, 남아시아계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요 행정명령이나 법안에 서명하거나 연설을 할 때면 어김없이 그의 뒤를 지키고 서 있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할 때 단상 위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나란히 앉음으로써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연출했다. 해리스 부통령을 따라다니는 역사적·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언론의 관심을 덜 받았던 역대 부통령들과 달리 해리스의 행보는 그 자체가 뉴스다. 부통령의 취임 100일을 다룬 기사가 많았던 것이 이런 관심을 반영한다. ‘워싱턴 정치’ 경험이 짧은 해리스 부통령은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CNN 등 미 언론은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직은 2인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권을 맡긴 중남미 이민자 문제와 미 전국 광대역 통신망 확충 정책 등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해리스의 향후 정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해리스에 대한 ‘첫 100일’ 평가는 ‘긍정적’ 취임 100일이었던 지난달 29일을 전후해 발표된 여론조사기관들의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바이든 대통령(53~54%)보다 낮지만 50% 안팎을 기록했다. 4년 전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별 차이가 없다. 폭스뉴스 조사에서 응답자의 49%가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46%였고, 이 가운데 38%가 매우 부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4년 전 조사에서 펜스 전 부통령도 50%의 지지율을 기록해 거의 비슷했지만 부정적 응답은 33%로 큰 차이를 보였다. CNN·SSRS 조사에서도 해리스에 대한 호감도는 53%였고, 싫어한다는 응답은 37%였다. 2017년 4월 조사에서 펜스 전 부통령은 각각 46%와 39%로 호감과 비호감의 편차가 크지 않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유고브 조사에서 해리스에 대한 호감도는 47%, 비호감도는 46%로 나타났고 2017년 4월 조사에서 펜스 전 부통령에 대한 호감도와 비호감도는 각각 43%와 41%였다.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더 강한 편이다. ●해리스, 바이든 대통령과의 신뢰 구축이 1순위 해리스 부통령은 취임 전부터 나돌던 ‘포스트 바이든’을 노리고 ‘자기 정치’를 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쏠린 이목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원팀’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해리스 부통령은 무엇보다도 바이든의 신임을 얻고자 노력했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자기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대통령뿐 아니라 핵심 측근들에게 심어 주었다. 신뢰 관계가 구축돼야 대통령이 믿고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그래야만 성과를 내 민주당 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은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과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코로나 때문에 최대한 지역 방문을 줄이면서 두 사람이 백악관에서 같이 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CNN 등 미 언론이 보좌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바이든과 해리스는 거의 매일 5시간 이상 함께 보내며 주요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매일 아침 바이든 대통령의 정보 브리핑에 배석하고 매주 한번 백악관에서 단독 오찬을 한다.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통령과 거의 모든 회의에 함께하고, 거의 모든 결정을 함께 내렸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결정에 앞서 자신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천문학적 규모의 코로나19 추가부양책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등 바이든 대통령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은 방에 남아 있는 마지막 사람이라고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여성과 비백인, 남아시아계 미국인 등 소수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동시에 검사로서의 오랜 경력이 악화하는 인종 갈등과 치안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역할… 국가우주위원장도 맡아 날이 갈수록 해리스 부통령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 기후변화 정책과 코로나발 경기부양정책 총괄을 각각 존 케리 전 상원의원과 진 스펄링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에게 맡기면서 해리스 부통령이 주요 정책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3월 이후 굵직한 정책의 전권을 연달아 해리스에게 맡기면서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오랜 난제이자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급부상한 중남미 이민자 유입 문제 해결의 책임을 해리스 부통령에게 맡겼다. 미국 내 여러 부처와의 정책 조율은 물론 중미 국가들과의 외교적 협상까지 맡게 됐다. 이를 위해 이미 과테말라 대통령과 화상회의를 가졌고, 다음달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방문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난과 폭력 등을 피해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중미 3국에서 몰려드는 입국자들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국경 경비를 강화했었다. 보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인권 침해 등 비판도 거셌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민정책과 국경경비의 완화를 기대하며 국경으로 몰려오는 중미 이민자들이 급증하자 바이든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첫 의회 합동연설에서 코로나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 지역 간, 계층 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 전역에 광대역 통신망을 확대 구축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을 해리스 부통령이 총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또 백악관의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국가우주위원회는 ‘아버지 부시’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신설돼 활동해 오다 이후 사실상 해체됐다가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가동한 위원회로 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다. 국가 간 우주개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주개발과 국가안보, 사이버 안보 등의 중요성이 커지며 바이든 대통령도 이 위원회를 유지하기로 결정, 위원장을 해리스 부통령이 맡게 됐다. 이 밖에 코로나 백신 접종 독려 활동과 코로나 이후 여성과 유색 인종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고용 확대 방안을 검토하는 태스크포스도 책임지고 있다.●권한 행사는 기회이자 위험 부담도 따라 해리스 부통령이 맡은 역할이 많아질수록 책임과 함께 부담도 커진다. 상징적인 2인자보다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며 성과를 낼 기회이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따른다. 특히 민감하고 해결이 쉽지 않은 중미 이민자 유입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벌써 공화당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밀입국 실태를 파악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중미 국가들을 방문하기에 앞서 미국 남부 국경지역에 가 상황을 직접 보고 미국인의 애로사항을 들어야 한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밀입국 문제는 외교적으로도 해결이 쉽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장과 국방장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리언 패네타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해리스 부통령은 민감하고 어려운 과제를 맡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일 기회와 부담을 함께 떠안은 셈이다. 코로나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서 대면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중소 도시와 농촌 등을 찾아 바이든 정부의 고용과 경기부양대책을 직접 알리고 지지층을 확대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미 이민자 문제와 광대역 통신망 확충에서 성과를 낸다면 민주당의 차기 지도자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이재명 “성적은 ‘미미‘했지만 고집 세고 씩씩” 초1 성적표 공개

    이재명 “성적은 ‘미미‘했지만 고집 세고 씩씩” 초1 성적표 공개

    이재명 경기지사가 어린이날인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1학년 성적표(당시 통지표)를 공개했다. 이 지사는 이날 인스타그램에서 “99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며 “50년 전 이재명 어린이는 고집이 세고 성적은 ‘미미’했지만, 동무들과 잘 놀며 씩씩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엄청난 결석 일수에 대한 한 줄 변명”이라면서 “학교가 시오리길이라 비 많이 오면 징검다리 넘친다고 눈 많이 오면 미끄럽다고, 덥다고, 춥다고, 땡땡이치느라 학교에 잘 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에 대한 당시 교사의 평가는 “동무들과 잘 놀며 씩씩하다” “활발하나 고집이 세다”로 기재돼 있다. 이 지사는 1964년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 곳은 화전민이 떠난 후 형성된 가난한 산골마을이다.이 지사는 매일 약 5㎞ 거리를 걸어서 삼계초등학교를 등·하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사는 앞서 올린 페이스북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어떤 휘황찬란한 정책 약속보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함부로 넘겨짚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드리고 싶다”며 “여러분들의 마음이 동그라미인지 네모인지 세모인지 더 면밀하게 끈기 있게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정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선거 결과와 여론조사 상으로 드러나는 민심의 이면과 배후를 성실하게 살피는 것이 좋은 정치의 출발이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나타나는 주권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속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대리인의 기본자세”라고 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외인구단’의 엄지처럼 씩씩한 딸”… “이젠 ‘엄지 아빠’ 만들어 줄게요”

    “‘외인구단’의 엄지처럼 씩씩한 딸”… “이젠 ‘엄지 아빠’ 만들어 줄게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로 많은 공감을 얻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을 흔드는 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뭉클하게 그렸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아 선보인 이번 공연에 좀더 특별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무대에 담겼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이엄지(39)씨가 아버지와의 시간을 곳곳에 녹였는데, 그 아버지가 만화가 이현세(65) 작가다.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속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아버지와 늘 그림 그리던 아버지 등을 바라보며 자란 뒤 무대에서 세상을 그리고 있는 딸. 종이와 무대에,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꾸며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부녀의 이야기를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현세씨의 작업실에서 들었다.‘우리 아빠네….’ 엄지씨가 ‘지붕 위의 바이올린’ 대본을 읽고 떠올린 생각이다. “그동안 고전 작품은 잘 안 들어왔는데 신기하게 이 작품이 저를 찾아왔어요. 아빠와 제 이야기 같아 금방 감정이입도 됐죠.”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극에서 아버지 테비예는 땅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가난하지만 억척스럽게 일하며 아내, 다섯 딸들과 행복한 삶을 일군다. 삶은 지붕 위 바이올린처럼 위태롭지만 전통의 힘으로 굳게 지탱한다. 그러나 딸들은 줄줄이 중매결혼이라는 전통에 어긋나는 사랑을 택한다. 그것도 매우 험난해 보이는 길을 나서겠다는 딸들에게 번번이 화를 내고 배신감을 토로하지만 테비예는 결국 “전통도 바뀔 수 있다”며 평생 지킨 신념마저 뒤집고 진정한 사랑과 포용으로 딸들을 감싼다. 이 작가와 엄지씨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몇 차례나 있었다. “엄지가 진로를 정할 때와 결혼을 할 때 특히 많이 부딪쳤다”고 이 작가가 먼저 기억을 꺼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미국으로 유학 간 엄지씨가 전공을 조소로 바꾸겠다고 한 일이다. “힘이 많이 필요하고 외로운 작업”이라는 게 진로 변경을 말린 이유였다. 그는 “평생 혼자 만화를 그려 온 외로움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후에 무대 디자인을 하겠다는 데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무대 디자인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이니 걱정이 덜 됐죠.”엄지씨가 비슷한 일을 하는 짝과 가정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도 이 작가는 몇 번이고 만류했다. 그러나 결국 등산길을 조용히 따라와 응원을 구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딸을 믿는 마음이 더 크기도 하고, 딸을 잃기 싫으니까 져 주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담담하지만 깊었다. “아버지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왔으니 가능하면 딸이 편하게 출발하길 바라요. 내가 10리를 뛰어야 했다면 딸은 자동차를 태워서 보내고 싶죠. 그런데 딸들은 비바람 맞으며 달려가 보겠대요. 그 길이 훤히 보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자신 있다는 씩씩한 딸을 믿고 지켜볼 수밖에 없죠.” 사랑을 찾아 떠나는 딸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테비예를 두고 엄지씨는 ‘내가 아빠에게 이런 무게감을 드렸구나. 이럴 때 상처받으셨겠구나’라며 그 마음을 더욱 헤아리게 됐다고 했다. 늘 자신을 믿어 준 아버지의 감정을 비로소 제대로 읽게 된 것이다. 엄지씨가 ‘엄지’였기에 부녀의 애달픈 감정이 훨씬 촘촘하게 짜이기도 했다. “만화를 시작한 때부터 딸 이름을 엄지로 짓겠다고 결심했다”는 이 작가는 “가장으로서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과 작가로서의 신념이 부딪친 결과”라고 부연했다.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 등장인물 작명 이야기를 꺼냈다. “청소년 성장 만화의 기본 덕목을 캐릭터에 담았어요. 까치는 도전, 엄지는 사랑, 백두산은 우정, 승리는 꿈인 거죠.” 특히 엄지에겐 엄지공주처럼 작은 소녀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모험을 떠난다는 의미를 주었다. “딸이 태어나서 부딪힐 세상이 결국 모험의 여정이니 잘 이겨내고 성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같은 이름을 지으려 했죠.” 그러나 4대가 함께 살던 대가족 안에서 첫 손주 이름을 직접 짓겠다는 큰할머니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래서 첫째는 주명, 둘째는 엄지가 됐다. 찬찬히 설명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지씨는 “할머니 때문인 건 알았지만 제 이름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엄지씨에겐 달갑기만 한 이름이 아니었다. 특히 학창 시절에 많이 버거웠다. “선생님들의 관심은 차라리 감사했어요. 학기 초마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현세 딸이래’, ‘이현세 딸이 저것도 못해?’ 등 눈길을 많이 받았죠. 한 학기가 지나서야 저도 ‘보통 친구’가 될 수 있었고요.” 그 곤혹스러움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유난히 ‘잘해야지, 욕먹지 말아야지’ 애쓰는 모습이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어딜 가나 ‘네가 엄지냐?’라는 관심을 받으니 늘 실수하지 않으려고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다 알고 있었지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무대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한동안 따라붙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엄지씨에겐 당연히 부담이 됐다. 다만 어린 시절과 달리 아버지와의 시간이 한참 쌓인 뒤부턴 생각을 서서히 바꿨다. “그늘을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좀더 잘해서 아빠가 ‘이엄지 아빠’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어릴 때 본 ‘외인구단’ 속 인물들이 성인이 된 뒤 다르게 와닿듯, 엄지씨는 성장할수록 그동안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준 아버지 그늘이 얼마나 크고 넉넉했는지 새삼 알아갔다. “돌아보니 아빠는 굉장히 개방된 분이고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다”면서 “특히 어떤 고민을 할 때 ‘아빠로선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인생 멘토로서의 의견은 이렇다’며 구분을 해서 조언을 해 주셨다”고 엄지씨는 말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 내 뒤엔 아빠가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앞에선 인생 멘토가 끌어주는 것 같아 많은 힘을 얻었어요.” 엄지씨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이 무대에 아버지를 듬뿍 담았다. 우선 검은색 선들로 배경을 그렸다. “예전 아빠 그림이 오로지 선으로 모든 감정이 표현됐 던 것처럼 무대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흑과 백, 선의 굵기와 질감 차이를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검은 선 위에는 빛과 영상으로 쨍한 원색을 비췄다. 아버지와 함께 떠올린 샤갈 그림 때문이었다. “샤갈은 무거운 색을 썼지만 꿈같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아버지도 무겁지만 큰 그늘이 되어 저를 포근하게 감싸 주셨어요.” 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 부녀의 얼굴이 그간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을 가늠케 했다. 엄지씨는 대화 도중 이 작가의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아빠 쉬는 시간”이라고 살뜰하게 챙겼다. 종일 책상에 앉아서 만화를 그리는 이 작가가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몸을 움직이도록 알람을 설정해 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울림을 준 그림을 그린 부녀가 다시 서로를 다독이며 건넨 말들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많은 아버지와 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도 들린다. “가족도 결국은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에 지은 까치둥지 같습니다. 그 안에서 만사 해결되는 것 같지만 밑에서 보기엔 위태롭기 그지없죠.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볼 때마다 짠한 게 있어요. 부모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들겠다는데 독수리처럼 튼튼하게 시작하는 딸들이 얼마나 될까요. 다 외풍 심한 까치집이죠. 그래도 굳세게 버티고 있는 게 대견해요.” 이 작가는 유독 애틋한 눈길로 엄지씨를 바라봤다. “큰 둥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자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신념과 가치, 예술로 든든히 둥지를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잘 지내겠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거야’란 테비예 대사에 많이 뭉클했다는 엄지씨는 “매일 바쁘고 치열한 내가 얼마나 궁금하셨을지 그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면서 “많이 어렵겠지만 더도 덜도 말고 아빠처럼 늘 옆에서 기다리고 지켜주는 부모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아빠가 큰 나무로 만들어 주신 그늘 덕분에 시원하고 편하게 잘 자랐어요. 이제 제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이엄지 아빠’가 되실 수 있게 열심히 달릴 테니 지금처럼 옆에서 든든히 계셔 주세요.”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만화로, 무대에서, 그림으로 세상 만나는 아빠와 딸

    만화로, 무대에서, 그림으로 세상 만나는 아빠와 딸

    만화 거장 이현세 작가와 무대 디자이너 엄지씨“아빠 떠올리며 ‘지붕 위의 바이올린’ 무대 그려”아버지와 극 중 테비예 연결지은 특별한 무대“험한 세상에서 굳세게 버티고 선 딸 대견해”‘기다리고 지켜주는 부모 되고파…아빠처럼“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로 많은 공감을 얻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을 흔드는 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뭉클하게 그렸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아 선보인 이번 공연에 좀더 특별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무대에 담겼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이엄지(39)씨가 아버지와의 시간을 곳곳에 녹였는데, 그 아버지가 만화가 이현세(65) 작가다.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속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아버지와 늘 그림 그리던 아버지 등을 바라보며 자란 뒤 무대에서 세상을 그리고 있는 딸. 종이와 무대에,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꾸며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부녀의 이야기를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현세씨의 작업실에서 들었다. “이거 우리 아빠인데….” 엄지씨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대본을 읽자마자 이 작가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동안 고전 작품은 잘 안 들어왔는데 신기하게 이 작품이 저를 찾아왔어요. 아빠와 제 이야기 같아 금방 감정이입도 됐죠.”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극에서 아버지 테비예는 땅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억척스럽게 일하며 아내, 다섯 딸들과 행복한 삶을 일군다. 그에게 지붕 위 바이올린처럼 위태로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은 바로 전통이었다. 대대로 내려온 길을 따라야만 삶의 균형이 맞춰진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딸들은 줄줄이 중매결혼이라는 전통에 어긋나는 사랑을 택한다. 그것도 매우 험난해 보이는 길을 나서겠다는 딸들에게 번번이 화를 내고 배신감을 토로하지만 테비예는 결국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전통도 바뀔 수 있다”며 평생 지킨 신념마저 뒤집고 진정한 사랑과 포용으로 딸들을 감싼다. 이 작가와 엄지씨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몇 차례나 있었다. “엄지가 진로를 정할 때와 결혼을 할 때 특히 많이 부딪쳤다”고 이 작가가 먼저 기억을 꺼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미국으로 유학 간 엄지씨가 전공을 조소로 바꾸겠다고 한 일이다. “조각은 힘이 많이 필요하고 외로운 작업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한참 말렸다”는 그는 “평생 혼자 만화를 그려 온 외로움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후에 무대 디자인을 하겠다는 데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무대 디자인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이니 걱정이 덜 됐죠.”엄지씨가 비슷한 일을 하는 짝과 가정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도 이 작가는 몇 번이고 딸을 만류했다. 그러나 결국 등산길을 조용히 따라와 응원을 구하는 딸의 손을 잡았다. “딸을 믿는 마음이 더 크기도 하고, 딸을 잃기 싫으니까 져 주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담담하지만 깊었다. “아버지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왔으니 가능하면 딸이 편하게 출발하길 바랍니다. 내가 10리를 뛰어야 했다면 딸은 자동차를 태워서 보내고 싶죠. 그런데 딸들은 비바람 맞으며 달려가 보겠대요. 내 눈에는 그 길이 어떨지 훤히 보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자신 있다는 씩씩한 딸을 믿고 지켜볼 수밖에 없죠.” 사랑을 찾아 떠나는 딸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테비예를 두고 엄지씨는 ‘내가 아빠에게 이런 무게감을 드렸구나. 이럴 때 상처받으셨겠구나’라며 그 마음을 더욱 헤아리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딸을 낳은 뒤 하루하루 부모 마음에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늘 자신을 믿어 준 아버지의 감정을 비로소 제대로 읽게 된 것이다.엄지씨가 ‘엄지’였기에 부녀의 애달픈 감정이 훨씬 촘촘하게 짜이기도 했다. 위로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는 엄지씨에게 이토록 특별한 이름이 붙은 데 대해 이 작가는 “가장으로서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과 작가로서의 신념이 부딪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만화를 시작한 때부터 딸에게 엄지라는 이름을 지어 주기로 결심했다”는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 등장인물 작명 이야기를 꺼냈다. “청소년 성장 만화의 기본 덕목을 캐릭터에 담았어요. 까치는 도전, 엄지는 사랑, 백두산은 우정, 승리는 꿈인 거죠.” 특히 엄지에겐 엄지공주처럼 작은 소녀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모험을 떠난다는 의미를 주었다. “딸이 태어나서 부딪힐 세상이 결국 모험의 여정이니 잘 이겨내고 성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같은 이름을 지으려 했죠.” 그러나 4대가 함께 살던 대가족 안에서 첫 손주 이름을 직접 짓겠다는 큰할머니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래서 첫째는 주명, 둘째는 엄지가 됐다. “당시 꼬맹이들에게 사랑보다 우정이 앞섰다면 우리 세대는 가족이 사랑을 앞섰던 것”이라고 말한 이 작가를 보며 엄지씨는 “할머니 때문인 건 알았지만 제 이름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사실 엄지씨에겐 달갑기만 한 이름이 아니었다. 특히 학창 시절에 많이 버거웠다. “선생님들의 관심은 차라리 감사했어요. 학기 초마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현세 딸이래‘, ‘이현세 딸이 저것도 못해?’ 등 눈길을 많이 받았죠. 한 학기가 지나서야 저도 ‘보통 친구’가 될 수 있었고요.” 그 곤혹스러움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유난히 ‘잘해야지, 욕먹지 말아야지’ 애쓰는 모습이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어딜 가나 ‘네가 엄지냐?’라는 관심을 받으니 늘 실수하지 않으려고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다 알고 있었지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한동안 따라붙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엄지씨에겐 당연히 부담이 됐다. 다만 어린 시절과 달리 아버지와의 시간이 한참 쌓인 뒤부턴 생각을 서서히 바꿨다. “그늘을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좀더 잘해서 아빠가 ‘이엄지 아빠’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죠.”어릴 때 본 ‘외인구단’ 속 인물들이 성인이 된 뒤 다르게 와닿듯, 엄지씨는 성장할수록 그동안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준 아버지 그늘이 얼마나 크고 넉넉했는지 새삼 알아갔다. “돌아보니 아빠는 굉장히 개방된 분이고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다”면서 “특히 어떤 고민을 할 때 ‘아빠로선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인생 멘토로서의 의견은 이렇다’며 구분을 해서 조언을 해 주셨다”고 엄지씨는 말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 내 뒤엔 아빠가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앞에선 인생 멘토가 끌어주는 것 같아 많은 힘을 얻었어요.” 엄지씨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이 무대에 아버지를 듬뿍 담았다. 우선 검은색 선들로 배경을 그렸다. “예전 아빠 그림이 오로지 선으로 모든 감정이 표현됐던 것처럼 무대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흑과 백, 선의 굵기와 질감 차이를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검은 선 위에는 빛과 영상으로 쨍한 원색을 비췄다. 아버지와 함께 떠올린 샤갈 그림 때문이었다. “샤갈은 무거운 색을 썼지만 꿈같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아버지도 무겁지만 큰 그늘이 되어 저를 포근하게 감싸 주셨어요.”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 부녀의 얼굴이 그간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을 가늠케 했다. 엄지씨는 대화 도중 이 작가의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아빠 쉬는 시간”이라고 살뜰하게 챙겼다. 종일 책상에 앉아서 만화를 그리는 이 작가가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몸을 움직이도록 알람을 설정해 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울림을 준 그림을 그린 부녀가 다시 서로를 다독이며 건넨 말들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많은 아버지와 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도 들린다. “가족도 결국은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에 지은 까치둥지 같습니다. 그 안에서 만사 해결되는 것 같지만 밑에서 보기엔 위태롭기 그지없죠.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볼 때마다 짠한 게 있어요. 부모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들겠다는데 독수리처럼 튼튼하게 시작하는 딸들이 얼마나 될까요. 다 외풍 심한 까치집이죠. 그래도 굳세게 버티고 있는 게 대견해요.” 이 작가는 유독 애틋한 눈길로 엄지씨를 바라봤다. “큰 둥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자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신념과 가치, 예술로 든든히 둥지를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잘 지내겠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거야’란 테비예 대사에 많이 뭉클했다는 엄지씨는 “매일 바쁘고 치열한 내가 얼마나 궁금하셨을지 그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면서 “많이 어렵겠지만 더도 덜도 말고 아빠처럼 늘 옆에서 기다리고 지켜주는 부모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아빠가 큰 나무로 만들어 주신 그늘 덕분에 시원하고 편하게 잘 자랐어요. 이제 제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이엄지 아빠’가 되실 수 있게 열심히 달릴 테니 지금처럼 옆에서 든든히 계셔 주세요.”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