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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에 첫 올림픽 金 디아스는 두테르테 정권 전복 음모 연루자

    필리핀에 첫 올림픽 金 디아스는 두테르테 정권 전복 음모 연루자

    여태껏 필리핀에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2016년 기준 1억명의 인구를 거느린 이 나라가 1924년 파리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후 97년 만에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가 2019년 5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정부 전복 음모를 꾸민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녀를 의심한 사람은 대통령의 법적 자문관 살바도르 파넬로였다. 공군 현역 상사인 디아스 뿐만아니라 배구 스타, TV 스타 그레첸 호도 포함됐다. 디아스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훈련할 돈을 얻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많았다. 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찾아 다니며 금전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일도 버거웠다. 그렇게 신산한 삶을 산 디아스가 지난 26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27일 필리핀 매체 래플러에 따르면 디아스는 “내가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신은 위대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와 몇몇 기업이 디아스에게 포상하겠다고 밝힌 것은 3300만 페소(약 7억 5000만원)와 집 한 채다. 디아스가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필리핀에서는 축하 트윗이 10만건 넘게 올라왔따. “올림픽 무대에서 우리 국가가 울려 퍼진 건 처음이다. 감동적이다”, “역사를 쓴 디아스에게 고맙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거수 경례를 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필리핀 국민도 함께 울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필리핀 여자 역도 선수로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그녀는 세 번째 올림픽 무대였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은메달을 따내 필리핀 역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필리핀이 20년 만에 따낸 올림픽 메달이었다. 국민들이 함께 오열한 것은 실제로 필리핀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될 정도로 디아스의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 같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삼보앙가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라이시클(삼륜차) 기사부터 농부, 어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디아스의 어린 시절 꿈이 은행원이었던 것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5년 전 리우 은메달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2년 전 두테르테 대통령이 블랙 리스트에 올려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디아스는 지난해 2월 중국인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말레이시아로 전지 훈련을 떠났는데 코로나19 사태 탓에 체육관 출입을 통제당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로 몇 개월 동안 비좁은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역기를 들어 올리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아스는 “당시는 힘들었지만, 신이 준 모든 역경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는 필리핀인이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지난 3년 동안 큰 어려움에 빠뜨렸던 파넬로도 성명을 내 축하했다. 그는 “그녀의 위업은 우리 필리핀인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필리핀 선수들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 꿈이 아니란 사실을 일깨웠으면 한다. 축하해 하이딜린 디아스!”라고 적었다.
  • [박철현의 이방사회] 센스가 없거나 무식하거나/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박철현의 이방사회] 센스가 없거나 무식하거나/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대학에선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1999년 5월 아무 문제 없이 제대했는데 복학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충무로 영화판에서 연출부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아직 IMF의 상흔이 남아 있던 시기였지만 선배들이 충무로 곳곳에 포진해 있어 일자리는 쉽게 구했다. 모 조감독 선배와 약속을 잡고, 영화사 대표와 제작실장이 면접 자리에 나왔다. 간단한 몇 마디를 주고받고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매일 나가서 준비 중인 시나리오를 들여다보며 갖가지 의견도 제시했고, 명함도 받았다. 무엇보다 점심도 공짜였다. 모든 게 새로웠고 매우 즐거웠다. 문제는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돈 얘기가 없다는 거.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해 (별로 원치 않는 회식까지 일의 연장이라 생각한다면) 거의 밤 10시까지 일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돈 얘기를 안 한다. 참다못해 연출부 세컨드 형과 스크립터 누나가 조감독에게 따졌다. 조감독 선배는 “아직 투자 계약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일단 대표님께 건의하겠다”고 했고, 다음날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두툼한 봉투를 갖고 왔다. 거기엔 1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연출부는 스크립터까지 포함해 네 명이었는데, 가장 막내였던 나는 100만원을 받았다. 일을 한 지 세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감독은 “계약이 이뤄지면 훨씬 많은 돈을 줄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대표님이 사비로 주시는 것”이라며 통 큰 사장을 칭찬했다. 세상 물정도 몰랐고, 영화 자체가 돈보다는 예술을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영화예술인은 가난한 게 당연한 시절이었던지라 그런가 보다 했다. 3개월이 다시 지났고, 계약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통 큰 사장님으로부터 100만원이 지급됐다. 그 돈을 받자마자 복학해야 한다고 말하고 회사를, 아니 한국의 영화판을 관두자고 결심했다. 하루에 12시간은 일하는데 평균 월급여가 33만원이니 열정이고 뭐고 생활 자체가 안 된다.2002년부터는 일본의 게임회사에서 일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시급은 800엔인가 했다. 최저임금보다 100엔이 높았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대우였다. 하지만 이 회사도 2년 만에 그만뒀다. 출시를 앞둔 게임 소프트웨어의 디버깅을 3개월 정도 했는데, 문득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추리닝 몇 개를 가지고 가 하루 종일 회사 모니터를 쳐다보며 끊임없는 단순 반복 작업을 했다. 졸리면 커피를 사발에 타서 마시고, 초콜릿을 엄청나게 먹어 댔다. 때때로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묘한 흰색 알약을 먹기도 했다. 집을 아예 안 가니 지금으로 따지면 하루 24시간 노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일요일 집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잤다. 60킬로 정도였던 몸무게는 정확히 3개월 만에 80킬로가 됐다. 돈은 많이 벌었다. 만 26세, 불완전한 일본어의 외국인 알바가 디버깅 기간 중엔 매달 50만엔을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몸이 버텨 내지 못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집 현관 입구 마루였던 적도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쓰러져 열몇 시간 동안 마치 시체처럼 잤던 것이다. 3개월간의 고된 디버깅이 끝난 후 제품이 출시됐다. 약간의 보너스를 받았다. 정사원들은 유급휴가를 가는데 나는 알바였던지라 게임회사 대표가 특별히 신경을 써 준 것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무급이니까(주휴수당 없음) 평균 주급에 해당하는 돈을 보너스란 명목으로 주고, 일주일간 푹 쉬고 다시 출근하라는 뜻이다. 휴가가 끝나 가면서 두려움이 몰려왔다. 도저히 다시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뭔가를 새롭게 만든다 하더라도 어차피 디버깅을 할 것이니 또 지옥 같은 몇 개월을 보내야 하고, 그럼 난 이제 100킬로가 되는 건가 같은 걱정부터 먼저 든다. 죄송하다 말을 하고 회사를 관뒀다. 갑자기 20여년 전의 트라우마를 호출한 이유는 윤석열씨의 주 120시간 언급 때문이다. 그는 논란이 거세지자 비유라고 해명했지만 비유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일하면 결국 죽는다. 죽고 난 다음의 명예와 부와 성취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센스가 없거나 무식하거나.
  • [기고] 어긋난 대선 공약 저지하기/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기고] 어긋난 대선 공약 저지하기/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대선 정국으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여야 후보들이 본격적으로 대선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돌이켜보면 표를 얻기 위한 공약 경쟁은 참된 정책을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비현실적인 가정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희망을 섞어 만든 ‘어긋난 공약’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뒤 행정부와 입법부를 거치며 어긋난 공약들이 수정·폐지되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진영 논리에 갇혀 대부분은 그대로 추진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어긋난 공약의 대표 사례로 남을 듯하다. 어긋난 공약은 통계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왜곡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범위와 개념이 다른 통계를 비교해 확대·재생산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례는 지금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귀결된다. 소득주도성장은 소득불평등의 원인을 자본이 노동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부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한 결과로 진단한다. 그래서 노동 친화적인 분배정책, 가계소득을 높이는 복지정책,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부를 이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보편적 복지 확대, 법인세 인상, 기업규제 3법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정책들도 결국 소득주도성장의 연장선에 있는 세부 정책들이다. 어긋난 공약의 혜택은 특정 집단에 집중되고 그 비용은 국민들의 몫으로 남아 두고두고 피해를 주게 된다.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내용의 정책이 많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어려움에 빠트리고 있다. 국내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국내 공급망은 취약해지고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최저임금이 높아진 영향으로 중소기업은 부도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무급가족봉사로 전락해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투잡’(two job·한 사람이 두 가지 일에 종사)을 뛰는 고달픈 인생으로 전락하는 근로자가 많아지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여야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 중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안 하느니만 못한 어긋난 공약들이 곳곳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걸러내고 제동을 걸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역시 유권자들밖에 없다. 진보든 보수든 각자의 이념을 떠나 미래를 보는 안목으로 공약들을 철저히 따져 보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창업자의 노동시간만큼 직원들 노동시간에도 ‘가치’ 부여해야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창업자의 노동시간만큼 직원들 노동시간에도 ‘가치’ 부여해야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최근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직후 자신이 세운 항공 우주기업인 블루오리진의 첫 유인비행 때 탑승을 자처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 모험으로 그가 받은 관심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올해 초 아마존이 물류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총력 저지한 이후, 뉴욕타임스가 팬데믹 기간 중에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벌어진 일을 탐사 취재한 기사를 내면서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10분에 불과한 우주여행을 하면서 마치 거대한 업적을 이룬 듯 껄껄 웃는 모습을 (다소 과장되게) 연출했으니 사람들이 좋게 보기 힘들었다. 베이조스는 온라인 매장과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물류 부문에서 혁신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많은 실리콘밸리의 갑부가 한때는 대부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나 시도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회사가 망할 위기를 여러 차례 극복해 가며 지금의 대기업을 만들어 냈다면 그들의 업적은 좀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번 돈으로 우주여행 좀 하겠다는데 꼭 비판을 해야 할까? ●노동자를 보는 창업자의 시각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받는 비난의 핵심이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사회를 분열시켰다는 데 있다면, 베이조스가 받는 비난은 대부분 아마존의 노동 환경에서 비롯된다. 특히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노동자는 천성적으로 게으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런 그의 사고방식이 현재 아마존의 노동자를 감시하고 대하는 방식에 반영돼 있다고 한다. 물론 그도 모든 노동자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시급을 받는 물류, 배달을 담당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차고에 간이책상을 놓고 밤새워 일했던 경험을 가진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에게는 시급 노동자들이 대충 시간을 때우면서 할당된 작업량만 간신히 채우는 모습이 게으르게 보일 수 있다.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금도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퇴근을 하지 않고 밤을 새워 일하다가 공장에서 간이침대를 깔고 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최단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뤄 낸 한국도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다. 한국 대기업의 창업 1세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아침형 인간이었다는 얘기는 국민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정주영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밥을 먹고 6시에 걸어서 집을 나섰으며, 회장 시절에는 “아침에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로 유명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현 정부의 주 52시간 정책을 비판하며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일 이후에 맘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배경에는 세상에는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대기업도 만들지 못한 기술을 만들어 내고, 이미 포화한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려는 스타트업이 정시 출퇴근으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건 분명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새로운 시도에는 비범한 노력과 엄청난 양의 노동시간이 필요하다. ●노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 혹은 노동도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예전에 미국의 한 코미디언은 “인류가 이뤄 낸 엄청난 업적들은 전부 노예노동의 결과”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는 대부분 노예나 노예노동에 가까운 희생을 통해 만들어졌고, 심지어 21세기 인류의 삶을 바꾼 아이폰도 중국의 젊은이들이 형광등 밑에서 밤을 새워 집중적으로 노동을, 그것도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임금을 받아 가며 일한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그런 공장에서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생기자 건물에 그물을 설치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만약 그런 중국의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애플이 아이폰을 미국 노동자들을 사용해 만들 경우 지금 가격의 2배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최신 스마트폰의 가격이 100만원을 넘자 충격을 받았고, 애플을 비롯한 제조사들은 저가의 폰을 함께 선보였지만, 만약 중국의 저가 노동이 없어 스마트폰 가격이 처음부터 200만원을 넘었다면 애초에 스마트폰이라는 산업 자체가 생겨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도 마찬가지다. 정주영, 이병철 같은 사람이 아무리 새벽에 일어나 사무실에 출근했어도 현장에서 몸을 상해 가며 저임금으로 일한 노동자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치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창업자들의 노동은 당장은 힘들어도 성공하기만 하면 훗날 수천, 수만 배로 돌려받을 수 있는 노동이다. 반면 그들의 ‘성공 플랜’에 반드시 필요한 노동력은 오늘, 이번 달에 일한 대가를 받는 것으로 끝이다.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 직원들이 일을 최대한 적게 하고 정해진 임금을 받아 가는 것은 베이조스의 생각처럼 게으른 것이 아니라 똑똑하고 경제적으로 현명한 행동이다. 윤 전 총장은 일주일에 120시간을 바짝 일하고 맘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현행법상 불가능한 게 아니다. ‘탄력근로제’를 사용하면 6개월 동안 일한 시간의 평균을 내어 주 52시간을 적용할 수 있다. 제품 출시를 앞두고 그야말로 간이침대에서 잠만 자고 일주일에 120시간을 일한 후에 윤 전 총장의 말처럼 “맘껏” 쉬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바짝 일하고 맘껏 쉴 수 있게” 해 주는 기업이 한국에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주52시간제를 비판하기 전에 일부에서 하는 “실리콘밸리에도 없는 주52시간제”라는 비난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 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업무 관행과 노동 환경이 주52시간제를 낳은 것이지, 한국의 테크업계가 실리콘밸리와 같은 대우를 해주는데 정부가 주52시간제를 만들어 낸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성공한 테크기업에 판교에 입주할 기회를 준다. 판교에 입주할 기회는 결국 장래 가치가 오를 부동산을 장만하게 해주는 거다. 그런데 좀 성공했다 싶은 기업들이 판교에 큰 사옥을 지으면 하는 일이 있다. 유럽 열차의 좁은 침대칸, 혹은 닭장 비슷하게 생긴 침대들이 가득한 ‘야근 직원 숙소’를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야근을 해야 하니…’라는 마인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 그걸 ‘직원을 위한 배려’라고 자랑할 만큼 무감각한 고용주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들고 나온 궁여지책이 주52시간제일 뿐이다. 궁여지책은 문제가 많은 방법이고,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말 그대로 궁한 나머지 들고 나온 것이고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만들어 낸 방법이다. 그러니 “창의력이 뛰어나지 않은 정부와 공무원이 나설 때까지 기업들은 직원들의 삶을 챙겨 주기 위해 뭘 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갑부 창업자와 부자 노동자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주52시간제 같은 제도가 필요 없다. 이런 후진 제도는 창업자는 거대한 빌딩을 소유하고, 노동자에게는 그 빌딩 안에 야근용 침실을 만들어주는 후진 문화에서 필요한 거다. 최근 중국에서는 20대 이하의 젊은이들 사이에 ‘마오쩌둥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고 해서 ‘996 근무제’라 불리는 시스템하에서 아무리 일을 해봤자 저임금 노동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알리바바의 마윈처럼 테크기업의 갑부 창업자들만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이 20세기 초에 자본가들을 비판하며 공산당을 세운 마오쩌둥의 저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중국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21세기에 들어와서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중국의 빅테크는 더이상 자랑스런 존재가 아니다. 덩샤오핑 이후로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듯했지만 알고 보니 자신들에게 돌아온 것은 긴 노동시간과 형편없는 삶의 질밖에 없더라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35세까지 가난하면 그건 당신 책임”이라는 마윈의 말이 중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댕기던 시절은 끝난 것 같다. 사람들이 게을러져서 끝난 게 아니라, 그들이 하는 노동에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난 거다. 직원들이 야근용 침실에 감사하기에는 창업주의 건물이 너무 빛나기 때문이다. 코드미디어 디렉터
  • K2 눈사태에 스러진 英산악인, 김홍빈 조난된 브로드피크서 3년 전 구사일생

    K2 눈사태에 스러진 英산악인, 김홍빈 조난된 브로드피크서 3년 전 구사일생

    김홍빈(57) 대장의 흔적을 찾기 위한 첫 헬리콥터 수색에 성과가 없어 생환 가능성이 점점 엷어지는 가운데 김 대장이 조난된 브로드피크(해발 고도 8047m)에서 9㎞ 밖에 떨어지지 않은 K2(8611m)의 눈사태에 스코틀랜드 산악인이 스러졌다. 화를 당한 이는 릭 알렌(68)으로 저개발국을 돕는 자선재단의 모금 캠페인으로 K2의 남동쪽 사면에 새 루트를 열겠다는 목표로 빙벽에 달라붙었다가 눈사태를 만났다.파트너스 릴리프 앤드 디벨롭먼트(PRD) 재단은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영국 외교부도 이슬람바드 주재 대사관을 통해 사고를 인지했다고 밝혔다. 알렌은 두 산악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스페인의 조르디 토사스와 오스트리아 산악인 스테판 켁, 둘 모두 큰 부상 없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켁은 김 대장의 조난 상황에도 살짝 이름이 등장했는데 K2로 옮겨 등정을 이어가려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 K2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가장 위험하고 거친 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알렌은 3년 전에도 브로드피크를 혼자 등정하다 빙벽에서 떨어져 실종된 일이 있었다. 천우신조로 베이스캠프의 한 요리사가 그의 배낭을 발견하는 바람에 드론을 띄워 위치를 파악해 무사히 구조됐다. 용하게 피했던 죽음의 신을 결국 3년 뒤 K2에서 만난 셈이다. PRD 재단은 성명을 발표해 “릭은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다 죽었고 일생 동안 용기와 확신을 갖고 살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 왔다. 재단 임원 모두가 유족의 슬픔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 [나우뉴스] 4조 비트코인 들고 도망친 쌍둥이 형제, 바누아투 시민권 샀다

    [나우뉴스] 4조 비트코인 들고 도망친 쌍둥이 형제, 바누아투 시민권 샀다

    고객들이 투자한 무려 6만9000개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사라진 쌍둥이 형제가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 시민권을 산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비트코인 사기 사건을 일으키고 잠적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아미어와 라이스 카지 형제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각각 바누아투 시민권을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에서 ‘애프리크립트’라는 비트코인 펀드 회사를 운영했던 카지 형제는 고객이 투자한 6만9000개의 비트코인을 갖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이 지난달 뒤늦게 알려졌다. 암호화폐 사기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 특히 이들은 지난 4월 “비트코인을 해킹당했다”며 “회수하는데 방해가 되니 경찰에게 신고하지 말라”고 투자가에게 알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형제의 이같은 행동은 모두 사기를 치기 위한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이루어진 셈. 사기 시점을 4월로 보면 비트코인 시세로 무려 36억 달러(약 4조 1400억원)에 달하며 현재는 약 40% 정도 떨어진 상태다.그러나 카지 형제는 지난달 말 월스트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범죄 조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남아공에서 도망쳤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카지 형제가 구매한 바누아투 시민권은 현지에 가지 않아도 9만5000파운드(약 1억5000만원)만 내면 살 수 있다. 이름도 생소한 바누아투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인구 31만명의 작은 섬나라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시민권이 인기있는 이유는 비자 발급 없이도 영국과 유럽연합 등 130여 개국에 입국할 수 있기 때문. 여기에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등을 부과하지 않아 조세회피처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돈만 내면 나오는 시민권 때문에 카지 형제와 같은 각종 범죄 용의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은 “세계의 범죄자, 조세회피자, 정치적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바누아투 여권을 구매하고 있다”면서 “가난한 섬나라 입장에서는 ‘여권 장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입”이라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추미애 “민주당답게, 기분 좋게…재난지원금 드리면 안 되나”(종합)

    추미애 “민주당답게, 기분 좋게…재난지원금 드리면 안 되나”(종합)

    추미애 “재난지원금 88% 선별 지급, 대단히 실망”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장해왔던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결정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추 전 장관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88%국민 재난지원금 통과, 만족하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추 전 장관은 “밤사이 국회가 추경 예산을 통과시켰다. 예견됐지만,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애초 정부안이 80%였는데 88%로 올랐으니 기뻐해야 하나. 코로나 위기에 빠진 국민을 두고 여·야·정이 흥정하듯 숫자를 더하고 빼고 했을 생각을 하니 화가 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하위 88% 국민에게만 지원키로 결정한 것은 사실상 정부가 제출한 80% 선별지원안이 근거도 논리도 빈약한, 오직 ‘전 국민 지원’을 막기 위한 꼼수였음을 보여준다”면서 “민주당은 전국민 100% 지원을 당론으로 확정해 놓고도 정부야당의 반대를 핑계 삼아 너무 쉽게 손을 놓아 버린 것은 아닌지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국민지원은 민주당이 싸워 이룩해 온 보편적 복지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며 “온 사회가 감당하고 있는 재난 앞에서 국민은 하나다. 재난을 감내하는 국민을 왜 소득으로 편을 가르고 상위, 하위 낙인을 찍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누구나 받는 돈이라면 내수소비도 선별지원보다 더 활발해질 거다. 이는 이미 전국민지원금으로 확인된 효과”라며 “항간에 당 안팎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두고 여권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셈법이 돌아가고 있다고들 하던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도 했다. 덧붙여 “민주당답게, 기분 좋게, 국민들 속 편하게 드리면 안 되는 것인지 답답한 주말 아침”이라고 했다.이재명 “세금 낸 게 죄? 기가 막힌다” 앞서 전날 이재명 경기지사도 YTN ‘뉴스나이트’에서 “저는 사실 기가 막힌다”며 “비효율, 비경제적인, 경험에 어긋나는 이상한 짓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선별지급을 비판한 바 있다. 이 지사는 “세금 많이 낸 게 무슨 죄라고 굳이 골라 빼느냐. 어려울 때 콩 한 쪽도 나눈다는 옛말이 있는데 얼마나 섭섭하겠는가”라며 “그러면 나중에 세금 내기 싫어진다. 연대의식이 훼손된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지원금도 25만 원인데 12%를 골라내자고 그 행정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더 손실이다. 이건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게 아니고 경제활성화 정책이고 고통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위로금”이라면서 “이 돈은 부자들, 상위 소득자가 더 많이 낸 세금”이라고 덧붙였다. 34.9조 추경 국회 통과…국민 88%에 재난지원금 25만원 지급 고소득자를 제외하고 전체 국민의 88%가 1인 기준으로 25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받는다. 또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회복자금 지원금도 최대 2000만원이 지급된다. 국회는 24일 본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34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추경 금액 33조원에서 1조9000억원이 추가된 금액이다. 전국민(여당)과 소득 하위 80%로 양분됐던 재난지원금이 1인 가구 기준 연소득 5000만원‘에 해당하는 고소득자를 제외하는 것으로 수정, 전체 가구의 약 87.7% 가량으로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 4조 비트코인 들고 도망친 쌍둥이 형제, 바누아투 시민권 샀다

    4조 비트코인 들고 도망친 쌍둥이 형제, 바누아투 시민권 샀다

    고객들이 투자한 무려 6만9000개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사라진 쌍둥이 형제가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 시민권을 산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비트코인 사기 사건을 일으키고 잠적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아미어와 라이스 카지 형제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각각 바누아투 시민권을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에서 ‘애프리크립트’라는 비트코인 펀드 회사를 운영했던 카지 형제는 고객이 투자한 6만9000개의 비트코인을 갖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이 지난달 뒤늦게 알려졌다. 암호화폐 사기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 특히 이들은 지난 4월 "비트코인을 해킹당했다"며 "회수하는데 방해가 되니 경찰에게 신고하지 말라"고 투자가에게 알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형제의 이같은 행동은 모두 사기를 치기 위한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이루어진 셈. 사기 시점을 4월로 보면 비트코인 시세로 무려 36억 달러(약 4조 1400억원)에 달하며 현재는 약 40% 정도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카지 형제는 지난달 말 월스트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범죄 조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남아공에서 도망쳤다"고 항변하기도 했다.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카지 형제가 구매한 바누아투 시민권은 현지에 가지 않아도 9만5000파운드(약 1억5000만원)만 내면 살 수 있다. 이름도 생소한 바누아투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인구 31만명의 작은 섬나라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시민권이 인기있는 이유는 비자 발급 없이도 영국과 유럽연합 등 130여 개국에 입국할 수 있기 때문. 여기에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등을 부과하지 않아 조세회피처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돈만 내면 나오는 시민권 때문에 카지 형제와 같은 각종 범죄 용의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은 "세계의 범죄자, 조세회피자, 정치적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바누아투 여권을 구매하고 있다"면서 "가난한 섬나라 입장에서는 '여권 장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입"이라고 보도했다.
  • MBC 올림픽 개회식에 어이없는 자막과 화면,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

    MBC 올림픽 개회식에 어이없는 자막과 화면,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

    MBC가 역대급 방송 사고를 냈는데 부끄러움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됐다. MBC는 중계방송이 끝나기 전 사과 자막을 띄우고 중계진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해외 누리꾼들은 상식을 뛰어넘은 MBC의 제작 실수를 질타하고 있다.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생중계한 MBC가 도쿄 국립경기장의 개회식장에 들어오는 여러 선수단을 소개하는 과정에 부적절하고 무례하기까지 한 자료화면과 자막을 내보냈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하며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폭발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공식 집계 사망자만 3500명, 피폭으로 인한 기형과 암 발병 등 피해자가 40만명에 이르는 20세기 최악의 참사였다. 국내 누리꾼들은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성수대교 붕괴 사진을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어이없어 했다.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하면서 자막으로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고 달았다. 엘살바도르 선수단 자료화면으로는 비트코인 사진을 넣었다.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으로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했지만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날 만큼 논란이 되고 있다. 노르웨이 선수단을 소개할 때는 손질된 연어 사진을 자료화면에 넣었으며, 마셜제도를 소개하면서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란 상식 밖의 자막을 달았다. 해외 누리꾼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분노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한 일본 누리꾼은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이었지만 일본은 무난한 초밥 사진이었다. 쓰나미나 후쿠시마가 아니라 기쁘다”고 비꼬았다. 말레이시아 누리꾼으로 보이는 이는 MBC 중계 화면을 첨부해 “스포츠는 국내총생산(GDP)과 관계가 없는데, (이를 자막에 넣은 것은) 정말 무례한 행동”이라면서 “MBC가 개회식을 망쳤다. 왜 GDP와 백신 접종 비율을 내보내는거죠?”라고 물었다. 루마니아는 영화 ‘드라큘라’ 사진을 썼고, 시리아는 내전을, 나우루는 인광석 고갈로 인한 경제 붕괴를,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을 화면으로 사용하는 등 해당 국가들이 민감해 할 내용을 다뤘다. 동티모르는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 파키스탄은 ‘종교갈등으로 1942년 인도로부터 분리’ 등 여러 나라의 정치적 갈등과 관계를 언급하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가봉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광고 때문에 중계를 끊었다. 사모아 입장 때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 사진을 썼다. 도미니카공화국 때는 약물 복용으로 몰락한 미국프로야구(MLB) 데이비드 오티스의 사진을 썼다. 미국의 수도를 워싱턴 DC가 아니라 워싱턴으로 표기하거나 미크로네시아의 위치를 대서양으로 표시했으며 인도네시아를 소개할 때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을 표기했다. 모리타니를 소개할 때는 수정되기 전의 국기 사진을 사용했다. 칠레 자료화면으로 수도인 산티아고와 혼동했는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을 올렸고 예멘을 ‘예맨’으로, 스웨덴을 소개할 때는 복지 선진국을 ‘복지 선지국’으로 잘못 내보냈다. 호주를 소개하며 ‘오세아니아의 중심’이라거나 이란을 소개하며 ‘이슬람의 중심지’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중국을 소개할 때 베이징올림픽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위성사진의 좌표는 베이징이 아니라 청두, 충칭 등 쓰촨성 지역인 것 같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국내 누리꾼들의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친여 성향으로 MBC 편을 많이 들어왔던 김용민 씨도 무례하기 짝이 없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릴 정도였다. 그런 수준 낮은 자막과 부적절한 자료화면을 미리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중계진의 수준이 떨어지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동안 도쿄올림픽을 부실하게 준비하는 일본과 일본 정부를 힐난했던 우리 모두를 더 부끄럽고 민망하게 만들었다. MBC 중계진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지적을 받고서야 문제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진과 중계진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나와 다르다고 ‘토해내는 혐오’…약자들 혹한의 밤은 너무 길다

    나와 다르다고 ‘토해내는 혐오’…약자들 혹한의 밤은 너무 길다

    개 다섯 마리의 밤/채영신 지음/은행나무/276쪽/1만 3500원 코로나19 탓에 비대면 수업이 대세를 이룬 지난해에도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은 2만 7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폭력 피해자는 자살 충동 위험이 일반 학생보다 최대 5.6배 높고, 평생 트라우마가 남는다. 특히 선천성 질환을 앓는데도 남들보다 영특하다는 이유로 동급생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혐오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면 고통의 크기는 어느 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까.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받은 채영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개 다섯 마리의 밤’은 초등학생 아들과 엄마가 겪는 혹독한 시간을 중심으로 혐오가 일상화된 비극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동네 아파트 단지 인근에 방치된 폐가에서 초등학생들이 잇따라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 아이 둘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동네 태권도장 권 사범이다. 살해된 상훈과 민성은 모두 백색증(알비노 증후군)을 앓는 세민을 괴롭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민의 엄마 박혜정은 불행한 사건에 자신과 아들이 엮이게 될까 봐 불안하다. 백색증으로 시력 감퇴를 겪는 세민은 학예회 때 선보일 ‘동물농장’ 희곡을 멋지게 써낼 정도로 또래 아이들보다 명석하고 창의적이다. 세민에게 뒤처져 스트레스를 받는 안빈은 그를 증오하며 친구들과 세민을 괴롭히고, 세민은 그럴수록 자존심을 살리려 대립각을 세운다. 안빈 엄마도 세민이 못마땅하다. 그런 와중에 안빈 엄마가 세민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세민 모자를 옥죄는 고통은 커져만 간다. 소설 제목 ‘개 다섯 마리의 밤’은 호주 원주민들이 극도로 추운 밤에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고 자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은유적 표현이다. 평범한 초등학교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세민 모자가 겪는 따돌림은 개 다섯 마리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원래 악하지 않은 인간들이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려고 더욱 잔인해지는 역설을 통해 이 세상이 왜 ‘혐오사회’가 됐는지 강조하는 듯하다. 세민과 권 사범이 종말론적 ‘휴거’를 신봉하는 종교 단체로 연결돼 있다는 점은 소설의 다른 한 축을 형성한다. ‘이단’으로 핍박받아 공동체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폐쇄성을 꼬집는다. 한편으로 멸망을 앞둔 세상을 구원할 ‘성별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비극으로 끝나면서 이 시대 종교의 역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심령이 가난하고 가난한 자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선 이토록 고되고 고되고 고된 길을 통해서만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걸까요.”(266쪽) 한 신자의 이러한 독백은 우리 곁에 존재하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혐오를 걷어내지 않은 채로는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작가는 “신문에서 짤막하게만 볼 수 있는 학교 폭력, 왕따의 문제를 자세히 풀어 우리 모두 무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자 책을 썼다”고 말했다. 탄탄한 구성과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을 통해 그동안 등한시했던 타인의 고통을 통감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현재 모습은 과연 어떤가”라고.
  • 브롬웰 “가난한 아이들의 희망 되고 싶어”

    브롬웰 “가난한 아이들의 희망 되고 싶어”

    도쿄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금메달이 유력한 ‘스프린터’ 트레이본 브롬웰(26·미국)이 이번 올림픽에서의 활약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브롬웰은 21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금메달보다 중요한 건 변화다. 나를 통해 가난한 아이들이 변화를 ‘눈’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브롬웰은 흑인 갱단이 모여 사는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가난과 범죄의 유혹 속에 자랐지만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세계 최정상급 스프린터로 성장했다. 브롬웰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다. 지난 6월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뉴 라이브 인비테이셔널 남자 100m 경기에서 기록한 9초77은 세계육상연맹이 집계한 2021년 최고이자 선수 기준 역대 7위 기록이다. 앞서 우사인 볼트(9초58), 타이슨 게이(9초69), 요한 블레이크(9초69), 아사파 파월(9초72), 저스틴 개틀린(9초74), 크리스천 콜먼(9초76)만이 브롬웰보다 빨랐다. 브롬웰은 “은퇴 후 스포츠 에이전트가 돼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아이들을 성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 이슬람 최대 명절… 종교적 거리두기?

    이슬람 최대 명절… 종교적 거리두기?

    이슬람 최대 명절 ‘이드 알아드하’(희생제) 첫날인 20일(현지시간)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알아크사 모스크에 팔레스타인 신도들이 빼곡히 모여 기도하고 있다. 이드 알아드하는 메카 연례 성지순례(대순례)가 끝나고 열리는 이슬람 최대 명절로, 양과 염소 등 가축을 제물로 바치고 가난한 이웃과 나눠 먹는 풍습이 있다. 예루살렘 AFP 연합뉴스
  • [안도현의 꽃차례] 구리실과 바디힌잎나무/시인

    [안도현의 꽃차례] 구리실과 바디힌잎나무/시인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는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시인이 이 작고 연약한 이름들을 호명한 것은 이것들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를 본떠서 윤동주는 “비둘기, 토끼, 노새, 노루”를 데리고 와서 별처럼 아스라이 멀리 있는 그리운 이름들을 호출한다. 어떤 생명이나 사물에게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존재는 하나의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작명이나 명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시인은 타성에 젖어 사는 사람들 앞에 사물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들이미는 자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골짜기를 어른들은 구리실이라고 불렀다. 고향에 돌아올 때까지 나는 구리실의 의미를 모르고 지냈다.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 마을 이름의 뜻까지 헤아릴 만큼 사는 게 여유롭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집 옆에는 봄에 하얀 꽃이 자욱하게 피는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봄에 그 나무가 늘어뜨린 가지에서 떨어진 꽃잎이 흰 눈처럼 마당 한쪽을 덮기도 했다. 사촌 누님께 사라진 그 나무의 이름을 물었다. 누님은 할머니가 구릉나무라고 했다고 또렷이 기억해 냈다. 나는 무릎을 쳤다. 귀룽나무가 아닐까 싶었는데 내 짐작이 맞아떨어진 것. 귀룽나무는 구름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실’은 골짜기(谷)나 마을을 뜻하므로 구리실은 ‘귀룽나무가 자라는 골짜기’라는 뜻이었다.고향집 마당가 아름드리 귀룽나무는 베어낸 지 오래지만 지금도 5월이면 건너편 앞산 비탈에 귀룽나무가 떼를 지어 꽃을 피운다. 눈부신 구름이 허공에 집을 짓는 모양새다. 구리실에 귀룽나무가 살아 남아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봄에 땅속에서 돋는 달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잎이 워낙 가늘어서 막 돋기 시작하는 풀들과 구별이 쉽지 않다. 집 근처 논둑에 달래가 무더기로 자라는 걸 발견한 이후 사나흘에 한 번씩 괭이를 들고 그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이제 마트에서 달래를 살 필요는 없다고 나는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달래를 캐는데 동네 할머니 두 분이 다가오셨다. 여기는 몇 뿌리 없니더. 저 산비탈 쪽으로 가면 달래가 온통 밭을 이뤘는데, 아무도 캐 가지 않으니 거기 가서 캐라고 손짓으로 알려 주셨다. 그분들이 가리킨 곳으로 가 보았더니 정말 달래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분들이 산모퉁이에서 멈추더니 새순을 뜯기 시작했다. 힌잎나무라 했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어서 귀가 솔깃해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화살나무 새순이었다. 화살나무는 화살 깃을 닮은 줄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화살나무 연한 새순을 홑잎나물이라고 부르는 고장도 있다. ‘힌잎’은 ‘홑잎’의 변형일 것이다. 이 나무를 바디힌잎나무라고 하기도 하니더. 나무줄기가 삼베를 짜는 도구인 바디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바디힌잎나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막힌 시 한 편을 만난 듯 전율이 일었다. 식물 이름은 국제적 명명 규칙에 따른다. 1753년 린네의 제안 이후 속명과 종의 이름, 그리고 식물명을 최초로 명명한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쓰는 게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만들어 식물명의 표준어라 할 수 있는 ‘국명’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화살나무를 바디힌잎나무로 부를 것이다. 도토리를 꿀밤이라고 부르고, 머루를 멀구라고 부르고, 개암을 깨금이라고 부르고, 거름을 걸금이라고 부르고, 강변을 갱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30분 정도 그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나는 그분들이 살아온 평생을 학비도 들이지 않고 배운 것 같았다. 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는 다른 닭들이 얼씬거리지 않도록 막아 줘야 하니더. 물하고 모이는 따로 좀 넣어 주소. 이렇게 조언하시더니 한참 후 우연히 만난 내게 다시 물었다. 닭이 알을 깠니껴? 21일이면 부화가 된다는데 아무런 기미가 없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글렀니더. 암탉이 고생하니까 이제 쫓아내삐리야 하니더. 불치하문(不恥下問). 지위나 학식과 상관없이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을 더 새겨들어야 할 때다.
  • “43년 모아 봐야 집값의 20%뿐” 美 월세 청년의 분노

    “43년 모아 봐야 집값의 20%뿐” 美 월세 청년의 분노

    장학금 받으며 어렵게 대학 졸업했지만 최대 13% 이자 학자금 대출 7000만원 “갚다 보면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기도” 밀레니얼, 이전 세대보다 소득 35% 적어 집값 20% 규모 대출 착수금 마련 어려워 주택 중 11%만 밀레니얼 세대가 소유 “코로나 여파 질 좋은 대졸 일자리 사라져 고용 좋아졌다는데 공장·음식점 자리뿐”“부유층 자녀들만 인턴 등 통해 쉽게 취업”치솟는 집값에 대출도 받기 힘드니 ‘월세 인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언론 보도에는 구인난이 심각하다는데 정작 질 좋은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코로나19로 대학 강의를 ‘줌’(Zoom)으로 들었는데, 간신히 구한 직장에서도 원격근무를 하니 업무 습득이 힘들다. 거액의 학자금 대출이 어깨를 누르고,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 형편은 쪼들린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훨씬 빠르니, 따라잡을 수 없는 부의 불균형에 ‘코인 투자’에 기대를 건다. 상류층 부모들은 자식에게 ‘스펙’을 만들어 준다. 능력주의마저 흔들린다. 한국 청년들이 늘어놓았을 법하지만 이는 미국 청년들의 얘기다. 이들에게 미국에서 커지고 있는 ‘청년 분노’의 이유와 해법을 물었다. 미국 워싱턴DC의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브랜든(31·가명)은 18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청년들이 집을 못 사는 이유에 대해 “질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직장을 가져도 높은 월세와 학자금 부채 때문에 돈 모으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 3500달러(약 401만원) 중에 1500달러(약 172만원)를 월세로 쓴다. 여기에 매월 학자금 대출을 450달러(약 51만원)씩 갚는다. 월급의 55.7%가 이런 식으로 사라진다. 집을 시내 밖으로 옮기면 월세는 조금 낮출 수 있지만 비싼 대중교통 요금을 감안하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게 낫다. 오하이오주에서 사립대를 나온 브랜든은 총 6만 달러(약 6850만원)의 학비를 대출받았다. 그는 “1년 평균 학비가 5만 달러(학비 4만 달러+기숙사비 1만 달러)이니 장학금을 받아 많이 줄인 게 이 정도”라며 “교육부에 이자율이 낮은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지만 정부 대출만으로 충당이 안 돼 고율의 민간기업 대출을 섞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민간기업 대출은 대학을 졸업한 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경제 상황에 따라 8~13% 범위에서 이자율이 정해진다. 브랜든은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17살 학생에게 너무 높은 이자율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또 1년 대학 학비가 직장 초봉보다 높은 경우도 많아 “학자금 대출을 갚다 보면 원금보다 이자를 더 많이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대출받으러 갔더니 “착수금 줄 사람 없냐”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계 장모(30)씨는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을 때 자신의 사회 계층을 분명히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러 갔던 친구가 다운페이먼트(착수금)가 없어 대출을 포기했는데, 은행 직원은 부모가 10만 달러(약 1억 1400만원) 정도는 도와주는데 돈 달라고 할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더라”며 “부모님 사정이 넉넉지 않고 벌이도 많지 않은 나에게도 주택 구매는 까마득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통상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을 때 일부 금액을 다운페이먼트로 내고 나머지 금액을 20~30년 할부로 갚는다. 애니카 올슨 텍사스주립대 도시정책연구소 부국장은 CNN 칼럼에서 “밀레니얼(25~40세) 중 70%가 집을 살 형편이 못 되고, 밀레니얼의 평균 자산은 이전 세대가 비슷한 연령일 때보다 35% 적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간 소득을 받는 미국 청년이 중간 가격 주택에 대해 담보대출을 받기 위한 다운페이먼트 조건인 시가의 20%를 모으려면 15년이 걸린다. 집값이 비싼 로스앤젤레스(LA)는 43년, 뉴욕과 마이애미는 36년을 모아야 한다. 장씨는 점점 주택 구입이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해 “임금 인상 폭이 물가 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다”며 “어떤 노인에게 ‘우리 때는 아르바이트로 학자금을 내며 대학을 다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최근의 물가 상승 추세를 감안하면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희망이 줄어든 청년들은 코인 투자에 열광한다. 내 주변을 보면 90%는 코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다.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밀레니얼 세대는 전체 주택 중에 11.2%를 소유하고 있다. 세대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44.1%의 주택을 갖고 있는 베이비부머(57~75세)는 2001년부터 21년째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X세대(41~56세)가 31.2%로 2위, 사일런스 세대(76세 이상)가 13.6%로 3위다. NYT는 수명 연장에다 “코로나19로 양로원에 가는 노인들이 줄면서 주택의 손바뀜이 더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의 정치권에서 일하는 제인(23·가명)은 ‘줌 유니버시티’(Zoom University·화상 수업 세대)로 불리는 자신의 또래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게 보다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빈 일자리를 채울 수 없다고 하지만 공장이나 음식점 등의 얘기”라며 “코로나19 때문에 채용을 늦추거나 축소하는 기업이 많아져 대졸 일자리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원격 근무로 업무 숙달 등에 한계 느껴” 코로나19를 겪으며 졸업한 이들은 취업 뒤에도 바로 원격근무에 투입되고 있다. 경력자들은 이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데다 업무도 능숙하지만 소위 ‘코로나 세대’는 화상으로 업무 능력을 키우고 인맥을 쌓는 데 한계를 느낀다. 악시오스는 지난 13일 여론조사 업체인 ‘제너레이션 랩’을 인용해 “청년 응답자의 66%가 줌이 아닌 대면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제프리 아네트 클라크대 심리학과 교수는 악시오스에 “(원격근무를 하는) 신입사원들이 사회화는 물론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인은 상대적 박탈감을 또 다른 청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부유층 자녀들은 부모의 힘으로 좋은 곳에서 인턴을 한 뒤에 보다 쉽게 취직한다”며 “반면 학비나 생활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닌 친구들 중에는 취업을 못 해 돈을 아끼려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 중에 세금을 전혀 안 낸 곳도 있다”며 “부자는 세금의 허점을 파악할 능력이 있지만 가난할수록 교육 수준이 낮아 세금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으니 다음 세대로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또 집을 살 돈을 모으겠다며 쉬는 날에도 개 산책이나 아이 돌보기 등 부업을 택하는 직장 동료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직원 임금 1.8% 오를 때 CEO 15.9% 올라 미 경제분야 싱크탱크인 EPI에 따르면 281개 대기업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평균 직원의 임금은 1.8% 오르는 동안 CEO의 임금은 15.9%나 상승하는 등 임금 격차도 커지고 있다. 반면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부터 12년간 시간당 7.25달러(약 8280원)에 머물러 있다. 미국 청년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기성세대의 접근법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장씨는 “정치권에서는 청년 의원이 많이 나오면 무언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상징성일 뿐이다.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흑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지 않으냐”며 “청년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아마존에 다니는 사라 구(23)는 “무엇보다 중산층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고, 제인은 “보다 많은 이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계층 이동을 하도록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빚 갚느라 출산 포기, 식비도 줄여… 금리 오를까 봐 피가 마른다

    빚 갚느라 출산 포기, 식비도 줄여… 금리 오를까 봐 피가 마른다

    1분기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절반이 2030한은 이르면 새달부터 금리 인상 가능성 집값 고점론·코인 거품론에 불안감 확산“집값 오르면 다행… 내리면 폭탄 터질 것”초저금리에 취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달마다 기록을 다시 쓰는 가계빚과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재정을 푼 나라 곳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한 번만 삐끗해도 폭탄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수 있다. 질서 있는 부채 관리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 됐다. 서울신문은 우리나라 부채 문제와 대안을 살피는 ‘2021 부채보고서: 다가온 빚의 역습’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18일 첫 회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2030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빚의 위험성을 짚어 본다.“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아니었으면 평생 못 샀을 거예요.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가 거꾸로 기름을 부었으니까요. 지금도 수입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쓰는데,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네요.” 지난해 7월 이지선(35·여)씨 부부가 각종 대출 한도를 꽉꽉 채워 5억원의 빚을 내 아파트를 산 이유는 분명했다. ‘지금 영끌하지 않으면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이씨는 “그렇게 큰돈을 빌린 건 처음이라 겁이 나서 눈물이 다 났다”며 “지금도 생활이 빠듯하지만, 그나마 오르는 집값을 보면 다행인 건가 싶긴 하다”고 털어놨다. 영끌에 나선 20~30대도 빚이 무섭다. 누구보다 이자의 무서움을 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산 건 자고 나면 오르는 미친 집값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러다 집 없이 평생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벼락 거지’(부동산·주식 등에 투자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만큼은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많은 빚을 지게 했다. 서울신문은 영끌과 빚투에 나선 20~30대 22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사연과 심리 상태 등을 들어봤다.2017년 집주인의 매수 제안을 거절했던 한모(39)씨는 결국 2년 뒤 분양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다. 그새 집값은 50% 이상 뛰었다. 한씨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만큼은 잡겠다고 해서 이를 믿고 전세를 한 번 더 산 게 문제였다”며 “4억 2000만원이면 살 수 있던 집을 못 사고, 결국 분양가 6억 1000만원에 계약했다”고 했다. 은행 대출로 중도금을 낼 때마다 이자 부담이 늘면서 삶의 고단함도 쌓여 갔다. 먹는 것, 입는 것, 전셋집 평수, 아들 교육비, 용돈 등 줄이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꽤 됐다. “집값이 올라도 불안불안하죠. 입주 시점인 2년 후에도 집값이 오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폭탄이 터지는 겁니다. 평생 빚 갚다가 인생 끝난다고 봐야죠. 이르면 다음달부터 금리가 오른다던데, 더 줄일 용돈마저 없어 답답하네요.” 지난해와 올해 가파르게 늘어난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 정도는 20~30대의 몫이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중 20~30대가 차지한 비율은 2019년 33.7%, 지난해 45.4%, 올 1분기엔 50.8%였다. 이렇게 늘어난 빚은 당장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서울신문이 만난 22명은 일해서 번 돈의 3분의1가량을 빚 갚는 데 썼다.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회사 대출 등 모두 4억 4000만원의 빚을 진 이모(37)씨 부부는 매월 245만원의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두 사람의 한 달 벌이가 600만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약 41%를 빚 갚는 데 쓰는 것이다. 이씨는 “아이가 없어 그나마 지출이 적은 편이다. 씀씀이가 크지 않아 지금은 버틸 만하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비상용으로 넣어둔 적금에 손을 대야 한다”면서 “얼마 전 치과 치료비로 120만원이 들었는데 아픈 것은 느낄 새도 없었고, 어디서 돈을 융통할지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대출상환 부담으로 출산 계획을 미뤘다”, “100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빠듯하게 산다”와 같은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두 살짜리 아이가 있는 석모(34)씨는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쓰지 않기로 했다. 육아휴직 급여와 아내의 월급만으로는 생활비와 매달 250만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석씨는 “아이가 생기면 20평도 안 되는 빌라에서 계속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무리하게 대출받아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며 “빚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한 탓도 있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지난해 7월 아파트를 매입한 경모(30)씨는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까지 싹싹 긁어모아 4억 7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경씨와 아내의 벌이로 원금과 이자를 내고 교통비, 관리비, 통신비 등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빼면 수중에 남는 돈은 50만원 남짓이다. 경씨는 “달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조사비나 병원비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고 밝혔다.●“대출보다 더 무서운 건 미친 집값” 정석훈(38)씨 부부는 지난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둘째 계획을 접었다. 정씨가 받은 대출은 모두 5억 5000만원이다. 그는 “지금이야 생활비를 아껴 가며 버틸 수 있지만 아내가 둘째를 갖고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혼자 벌어서 빚을 갚는 게 버겁다. 아이가 둘이 되면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라 조만간 금리가 오르면 갚아야 할 빚이 또 늘어날 텐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가구주 연령대별 가계부채 상환능력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64.6%였다. 2017년 141.5%에서 3년 만에 23.0% 포인트 증가했다. 소득은 3년간 14.3% 늘었지만, 빚은 32.9% 증가한 영향 탓이다. 29세 이하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11.6% 포인트 증가했다. 버는 돈보다 빚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현상이 20~30대에 집중됐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높으면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직격탄을 맞는다. 서울신문이 KB국민은행의 도움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을 추산한 결과 금리 3.0%(원리금 균등 상환 기준)로 주택담보대출 4억원(30년 만기)을 받았다면 시중금리가 1.0% 포인트만 올라도 매월 갚아야 할 돈은 169만원에서 191만원으로 22만원 늘어난다. 시중금리가 2.0% 포인트 오르면 46만원 많은 215만원을, 3.0% 포인트 인상 땐 71만원을 더해 240만원을 내야 한다. 금리 3.0%(원리금 균등 상환 기준)로 주택담보대출 3억원(30년 만기)과 신용대출 1억원(10년 만기)을 영끌한 경우라면 시중금리가 1.0% 포인트 오를 때, 달마다 내야 할 원리금이 223만원에서 244만원이 된다. 한 달 이자가 21만원 늘어나는 것이다. 시중금리가 2% 포인트 오르면 44만원을, 3% 포인트 땐 68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지난 16일 기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1등급·1년)는 연 2.85∼3.90% 수준으로, 지난해 7월(1.99∼3.51%)과 비교하면 하단이 0.86% 포인트나 높아졌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코픽스 연동은 최저 금리가 0.24% 포인트, 은행채 5년물 금리를 따르는 혼합형(고정금리)은 최저 금리가 0.72% 포인트 올랐다. 지난 1년간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1% 포인트 가까이 오른 가운데 금융계에서는 한국은행이 이르면 다음달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이자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금리 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이주열 한은 총재 등은 줄줄이 ‘집값 고점론’을 언급해 영끌로 집을 산 20~30대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경기 파주에 아파트를 산 박모(35·여)씨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등 떠밀려 서울이 아닌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구입한 집인데, 가격이 떨어지면 빚을 갚아야 하는 30년 중 몇 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토로했다. ●금리 1%P 올라도 매월 22만원 더 내야 꾸준히 제기되는 증시·암호화폐 ‘거품론’도 이들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 암호화폐에 3000만원을 투자한 직장인 이모(32)씨는 “오는 9월부터 거래소 규제가 본격화된다는 소식에 주위에 ‘손절’(손해를 중단하는 매도)한 사람이 늘어 불안하다. 그래도 나름 공부하고 투자했으니 내가 보유한 코인이 최소한 상장 폐지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버티고 있다”며 “벼락 거지보다 투자하다 망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용대출 3000만원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주식과 코인 등에 뛰어들었다는 직장인 윤모(27)씨는 ‘거품 우려에도 왜 대출까지 받아 투자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평생 일해 봤자 집 한 채도 못 사는 이번 생(生)은 어차피 망한 인생이다. 투자하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고 터지면 대박인 거다. 빚이야 어떻게든 갚지 않겠나. 남들이 (주식과 암호화폐 등으로) 10% 수익을 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10%만큼 나는 가난해진다. 빚보다 그게 더 무섭다.”
  • 빚 갚느라 출산 포기, 식비도 줄여… 금리 오를까 봐 피가 마른다

    빚 갚느라 출산 포기, 식비도 줄여… 금리 오를까 봐 피가 마른다

    초저금리에 취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달마다 기록을 다시 쓰는 가계빚과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재정을 푼 나라 곳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한 번만 삐끗해도 폭탄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수 있다. 질서 있는 부채 관리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 됐다. 서울신문은 우리나라 부채 문제와 대안을 살피는 ‘2021 부채보고서: 다가온 빚의 역습’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18일 첫 회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2030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빚의 위험성을 짚어 본다.“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아니었으면 평생 못 샀을 거예요.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가 거꾸로 기름을 부었으니까요. 지금도 수입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쓰는데,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네요.” 지난해 7월 이지선(35·여)씨 부부가 각종 대출 한도를 꽉꽉 채워 5억원의 빚을 내 아파트를 산 이유는 분명했다. ‘지금 영끌하지 않으면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이씨는 “그렇게 큰돈을 빌린 건 처음이라 겁이 나서 눈물이 다 났다”며 “지금도 생활이 빠듯하지만, 그나마 오르는 집값을 보면 다행인 건가 싶긴 하다”고 털어놨다. 영끌에 나선 20~30대도 빚이 무섭다. 누구보다 이자의 무서움을 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산 건 자고 나면 오르는 미친 집값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러다 집 없이 평생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벼락 거지’(부동산·주식 등에 투자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만큼은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많은 빚을 지게 했다. 서울신문은 영끌과 빚투에 나선 20~30대 22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사연과 심리 상태 등을 들어봤다. 2017년 집주인의 매수 제안을 거절했던 한모(39)씨는 결국 2년 뒤 분양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다. 그새 집값은 50% 이상 뛰었다. 한씨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만큼은 잡겠다고 해서 이를 믿고 전세를 한 번 더 산 게 문제였다”며 “4억 2000만원이면 살 수 있던 집을 못 사고, 결국 분양가 6억 1000만원에 계약했다”고 했다. 은행 대출로 중도금을 낼 때마다 이자 부담이 늘면서 삶의 고단함도 쌓여 갔다. 먹는 것, 입는 것, 전셋집 평수, 아들 교육비, 용돈 등 줄이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꽤 됐다. “집값이 올라도 불안불안하죠. 입주 시점인 2년 후에도 집값이 오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폭탄이 터지는 겁니다. 평생 빚 갚다가 인생 끝난다고 봐야죠. 이르면 다음달부터 금리가 오른다던데, 더 줄일 용돈마저 없어 답답하네요.” 지난해와 올해 가파르게 늘어난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 정도는 20~30대의 몫이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중 20~30대가 차지한 비율은 2019년 33.7%, 지난해 45.4%, 올 1분기엔 50.8%였다. 이렇게 늘어난 빚은 당장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29세 이하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11.6% 포인트 증가했다. 버는 돈보다 빚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현상이 20~30대에 집중됐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높으면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직격탄을 맞는다. 서울신문이 KB국민은행의 도움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을 추산한 결과 금리 3.0%(원리금 균등 상환 기준)로 주택담보대출 4억원(30년 만기)을 받았다면 시중금리가 1.0% 포인트만 올라도 매월 갚아야 할 돈은 169만원에서 191만원으로 22만원 늘어난다. 시중금리가 2.0% 포인트 오르면 46만원 많은 215만원을, 3.0% 포인트 인상 땐 71만원을 더해 240만원을 내야 한다. 금리 3.0%(원리금 균등 상환 기준)로 주택담보대출 3억원(30년 만기)과 신용대출 1억원(10년 만기)을 영끌한 경우라면 시중금리가 1.0% 포인트 오를 때, 달마다 내야 할 원리금이 223만원에서 244만원이 된다. 한 달 이자가 21만원 늘어나는 것이다. 시중금리가 2% 포인트 오르면 44만원을, 3% 포인트 땐 68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하반기에 한 차례, 내년 상반기에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르면 당장 다음달부터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주택담보대출 3억 5000만원, 신용대출 1억 8000만원(부부 합산)을 받은 임모(39·여)씨는 “아파트 관리비, 통신비, 생활비처럼 한 달에 나가는 돈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거기에 맞춰서 살고 있다”며 “월급이 크게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이자가 몇십만 원 늘면 어떻게 부담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금리 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이주열 한은 총재 등은 줄줄이 ‘집값 고점론’을 언급해 영끌로 집을 산 20~30대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경기 파주에 아파트를 산 박모(35·여)씨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등 떠밀려 서울이 아닌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구입한 집인데, 가격이 떨어지면 빚을 갚아야 하는 30년 중 몇 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토로했다.●금리 1%P 올라도 매월 22만원 더 내야 꾸준히 제기되는 증시·암호화폐 ‘거품론’도 이들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 암호화폐에 3000만원을 투자한 직장인 이모(32)씨는 “오는 9월부터 거래소 규제가 본격화된다는 소식에 주위에 ‘손절’(손해를 중단하는 매도)한 사람이 늘어 불안하다. 그래도 나름 공부하고 투자했으니 내가 보유한 코인이 최소한 상장 폐지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버티고 있다”며 “벼락 거지보다 투자하다 망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용대출 3000만원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주식과 코인 등에 뛰어들었다는 직장인 윤모(27)씨는 ‘거품 우려에도 왜 대출까지 받아 투자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평생 일해 봤자 집 한 채도 못 사는 이번 생(生)은 어차피 망한 인생이다. 투자하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고 터지면 대박인 거다. 빚이야 어떻게든 갚지 않겠나. 남들이 (주식과 암호화폐 등으로) 10% 수익을 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10%만큼 나는 가난해진다. 빚보다 그게 더 무섭다.” 서울신문이 만난 22명은 일해서 번 돈의 3분의1가량을 빚 갚는 데 썼다.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회사 대출 등 모두 4억 4000만원의 빚을 진 이모(37)씨 부부는 매월 245만원의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두 사람의 한 달 벌이가 600만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약 41%를 빚 갚는 데 쓰는 것이다. 이씨는 “아이가 없어 그나마 지출이 적은 편이다. 씀씀이가 크지 않아 지금은 버틸 만하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비상용으로 넣어둔 적금에 손을 대야 한다”면서 “얼마 전 치과 치료비로 120만원이 들었는데 아픈 것은 느낄 새도 없었고, 어디서 돈을 융통할지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대출상환 부담으로 출산 계획을 미뤘다”, “100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빠듯하게 산다”와 같은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두 살짜리 아이가 있는 석모(34)씨는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쓰지 않기로 했다. 육아휴직 급여와 아내의 월급만으로는 생활비와 매달 250만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석씨는 “아이가 생기면 20평도 안 되는 빌라에서 계속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무리하게 대출받아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며 “빚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한 탓도 있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지난해 7월 아파트를 매입한 경모(30)씨는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까지 싹싹 긁어모아 4억 7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경씨와 아내의 벌이로 원금과 이자를 내고 교통비, 관리비, 통신비 등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빼면 수중에 남는 돈은 50만원 남짓이다. 경씨는 “달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조사비나 병원비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고 밝혔다. ●“대출보다 더 무서운 건 미친 집값” 정석훈(38)씨 부부는 지난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둘째 계획을 접었다. 정씨가 받은 대출은 모두 5억 5000만원이다. 그는 “지금이야 생활비를 아껴 가며 버틸 수 있지만 아내가 둘째를 갖고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혼자 벌어서 빚을 갚는 게 버겁다. 아이가 둘이 되면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라 조만간 금리가 오르면 갚아야 할 빚이 또 늘어날 텐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가구주 연령대별 가계부채 상환능력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64.6%였다. 2017년 141.5%에서 3년 만에 23.0% 포인트 증가했다. 소득은 3년간 14.3% 늘었지만, 빚은 32.9% 증가한 영향 탓이다.
  • 잠 못드는 영끌·빚투… “빚만 갚는 인생 막막”

    잠 못드는 영끌·빚투… “빚만 갚는 인생 막막”

    1분기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절반이 2030한은 이르면 새달부터 금리 인상 가능성 집값 고점론·코인 거품론에 불안감 확산“집값 오르면 다행… 내리면 폭탄 터질 것”초저금리에 취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달마다 기록을 다시 쓰는 가계빚과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재정을 푼 나라 곳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한 번만 삐끗해도 폭탄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수 있다. 질서 있는 부채 관리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 됐다. 서울신문은 우리나라 부채 문제와 대안을 살피는 ‘2021 부채보고서: 다가온 빚의 역습’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18일 첫 회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2030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빚의 위험성을 짚어 본다.“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아니었으면 평생 못 샀을 거예요.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가 거꾸로 기름을 부었으니까요. 지금도 수입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쓰는데,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네요.” 지난해 7월 이지선(35·여)씨 부부가 각종 대출 한도를 꽉꽉 채워 5억원의 빚을 내 아파트를 산 이유는 분명했다. ‘지금 영끌하지 않으면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이씨는 “그렇게 큰돈을 빌린 건 처음이라 겁이 나서 눈물이 다 났다”며 “지금도 생활이 빠듯하지만, 그나마 오르는 집값을 보면 다행인 건가 싶긴 하다”고 털어놨다. 영끌에 나선 20~30대도 빚이 무섭다. 누구보다 이자의 무서움을 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산 건 자고 나면 오르는 미친 집값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러다 집 없이 평생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벼락 거지’(부동산·주식 등에 투자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만큼은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많은 빚을 지게 했다. 서울신문은 영끌과 빚투에 나선 20~30대 22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사연과 심리 상태 등을 들어봤다. 2017년 집주인의 매수 제안을 거절했던 한모(39)씨는 결국 2년 뒤 분양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다. 그새 집값은 50% 이상 뛰었다. 한씨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만큼은 잡겠다고 해서 이를 믿고 전세를 한 번 더 산 게 문제였다”며 “4억 2000만원이면 살 수 있던 집을 못 사고, 결국 분양가 6억 1000만원에 계약했다”고 했다. 은행 대출로 중도금을 낼 때마다 이자 부담이 늘면서 삶의 고단함도 쌓여 갔다. 먹는 것, 입는 것, 전셋집 평수, 아들 교육비, 용돈 등 줄이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꽤 됐다. “집값이 올라도 불안불안하죠. 입주 시점인 2년 후에도 집값이 오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폭탄이 터지는 겁니다. 평생 빚 갚다가 인생 끝난다고 봐야죠. 이르면 다음달부터 금리가 오른다던데, 더 줄일 용돈마저 없어 답답하네요.” 지난해와 올해 가파르게 늘어난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 정도는 20~30대의 몫이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중 20~30대가 차지한 비율은 2019년 33.7%, 지난해 45.4%, 올 1분기엔 50.8%였다. 이렇게 늘어난 빚은 당장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서울신문이 만난 22명은 일해서 번 돈의 3분의1가량을 빚 갚는 데 썼다.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회사 대출 등 모두 4억 4000만원의 빚을 진 이모(37)씨 부부는 매월 245만원의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두 사람의 한 달 벌이가 600만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약 41%를 빚 갚는 데 쓰는 것이다. 이씨는 “아이가 없어 그나마 지출이 적은 편이다. 씀씀이가 크지 않아 지금은 버틸 만하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비상용으로 넣어둔 적금에 손을 대야 한다”면서 “얼마 전 치과 치료비로 120만원이 들었는데 아픈 것은 느낄 새도 없었고, 어디서 돈을 융통할지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대출상환 부담으로 출산 계획을 미뤘다”, “100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빠듯하게 산다”와 같은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두 살짜리 아이가 있는 석모(34)씨는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쓰지 않기로 했다. 육아휴직 급여와 아내의 월급만으로는 생활비와 매달 250만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석씨는 “아이가 생기면 20평도 안 되는 빌라에서 계속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무리하게 대출받아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며 “빚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한 탓도 있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지난해 7월 아파트를 매입한 경모(30)씨는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까지 싹싹 긁어모아 4억 7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경씨와 아내의 벌이로 원금과 이자를 내고 교통비, 관리비, 통신비 등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빼면 수중에 남는 돈은 50만원 남짓이다. 경씨는 “달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조사비나 병원비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고 밝혔다.●“대출보다 더 무서운 건 미친 집값” 정석훈(38)씨 부부는 지난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둘째 계획을 접었다. 정씨가 받은 대출은 모두 5억 5000만원이다. 그는 “지금이야 생활비를 아껴 가며 버틸 수 있지만 아내가 둘째를 갖고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혼자 벌어서 빚을 갚는 게 버겁다. 아이가 둘이 되면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라 조만간 금리가 오르면 갚아야 할 빚이 또 늘어날 텐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가구주 연령대별 가계부채 상환능력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64.6%였다. 2017년 141.5%에서 3년 만에 23.0% 포인트 증가했다. 소득은 3년간 14.3% 늘었지만, 빚은 32.9% 증가한 영향 탓이다. 29세 이하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11.6% 포인트 증가했다. 버는 돈보다 빚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현상이 20~30대에 집중됐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높으면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직격탄을 맞는다. 서울신문이 KB국민은행의 도움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을 추산한 결과 금리 3.0%(원리금 균등 상환 기준)로 주택담보대출 4억원(30년 만기)을 받았다면 시중금리가 1.0% 포인트만 올라도 매월 갚아야 할 돈은 169만원에서 191만원으로 22만원 늘어난다. 시중금리가 2.0% 포인트 오르면 46만원 많은 215만원을, 3.0% 포인트 인상 땐 71만원을 더해 240만원을 내야 한다. 금리 3.0%(원리금 균등 상환 기준)로 주택담보대출 3억원(30년 만기)과 신용대출 1억원(10년 만기)을 영끌한 경우라면 시중금리가 1.0% 포인트 오를 때, 달마다 내야 할 원리금이 223만원에서 244만원이 된다. 한 달 이자가 21만원 늘어나는 것이다. 시중금리가 2% 포인트 오르면 44만원을, 3% 포인트 땐 68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지난 16일 기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1등급·1년)는 연 2.85∼3.90% 수준으로, 지난해 7월(1.99∼3.51%)과 비교하면 하단이 0.86% 포인트나 높아졌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코픽스 연동은 최저 금리가 0.24% 포인트, 은행채 5년물 금리를 따르는 혼합형(고정금리)은 최저 금리가 0.72% 포인트 올랐다. 지난 1년간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1% 포인트 가까이 오른 가운데 금융계에서는 한국은행이 이르면 다음달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이자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금리 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이주열 한은 총재 등은 줄줄이 ‘집값 고점론’을 언급해 영끌로 집을 산 20~30대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경기 파주에 아파트를 산 박모(35·여)씨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등 떠밀려 서울이 아닌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구입한 집인데, 가격이 떨어지면 빚을 갚아야 하는 30년 중 몇 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토로했다. ●금리 1%P 올라도 매월 22만원 더 내야 꾸준히 제기되는 증시·암호화폐 ‘거품론’도 이들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 암호화폐에 3000만원을 투자한 직장인 이모(32)씨는 “오는 9월부터 거래소 규제가 본격화된다는 소식에 주위에 ‘손절’(손해를 중단하는 매도)한 사람이 늘어 불안하다. 그래도 나름 공부하고 투자했으니 내가 보유한 코인이 최소한 상장 폐지는 당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버티고 있다”며 “벼락 거지보다 투자하다 망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용대출 3000만원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주식과 코인 등에 뛰어들었다는 직장인 윤모(27)씨는 ‘거품 우려에도 왜 대출까지 받아 투자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평생 일해 봤자 집 한 채도 못 사는 이번 생(生)은 어차피 망한 인생이다. 투자하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고 터지면 대박인 거다. 빚이야 어떻게든 갚지 않겠나. 남들이 (주식과 암호화폐 등으로) 10% 수익을 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10%만큼 나는 가난해진다. 빚보다 그게 더 무섭다.”
  • 유괴당해 52만원에 팔려간 中 쌍둥이, 28년 만에 아버지 상봉

    유괴당해 52만원에 팔려간 中 쌍둥이, 28년 만에 아버지 상봉

    5세 때 유괴당한 뒤 28년 만에 친부와 상봉한 쌍둥이의 기구한 사연이 공개됐다. 중국 산시성 시엔양 우공현 공안국은 인신매매된 뒤 28년 만에 친부와 상봉한 쌍둥이 형제의 안타까운 가족 사연을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 1993년 거주지 인근 시장 골목에서 유괴된 쌍둥이 형제는 28년이 흐른 후 30대 청년의 모습으로 친부와 눈물의 상봉을 했다. 유괴될 당시 쌍둥이 형제의 친부모는 인근 전통시장 야채 가게를 운영했고, 유괴 당일 형제는 부모님이 있는 가게로 향하던 길목에서 인신매매단에 유괴된 뒤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채 지금껏 살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의 친부의 야채 가게로 향하던 중 인신매매를 당했던 것이다. 사건 직후 친부 류 씨는 쌍둥이 형제의 유괴 사건을 관할 공안국에 의뢰했으나, 당시 쌍둥이 남매의 사진이 한 장도 없었던 류 씨의 사건 접수는 사실상 흐지부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관할 공안국은 사라진 쌍둥이 형제의 인상착의와 나이 등의 정보로 유괴 장소를 수색했으나 사실상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건 이후 류 씨 부부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이혼 후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류 씨는 “쌍둥이 형제가 사라진 이후 우리 부부는 모두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하지만 친부 류 씨는 이후에도 줄곧 쌍둥이 형제를 찾기 위해 유괴 장소 인근에 거주하면서 28년 동안 아이들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했다.  주로 유괴 장소를 오고가며 전단지를 배포하고 지역 언론에 형제의 인상착의와 유괴 당시의 사건 내역을 공개 수소문하는 방법이었다. 이 시기 친부 류 씨가 제작해 전국에 뿌린 전단지만 수십만 장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사이 장 씨 부부는 현지 방송에도 출연하고 보육시설을 뒤졌지만,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류 씨는 사건 이후 줄곧 인근 상점에서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으로 근무, 수익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던 중 무려 28년 만에 쌍둥이 형제를 찾았다는 관할 공안국의 연락을 받은 류 씨는 뛸 듯 기뻐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9년 창설된 공안국 부설 전국 실종아동구조센터가 진행한 전국적인 규모의 실종 아동 찾기 운동으로 28년 만에 극적인 상봉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15년 류 씨와 그의 전부인이 제출한 DNA 샘플을 활용, 쌍둥이 형제의 신원과 비교 대조한 결과 이들 사이의 친부 관계가 성립한 것이 확인되면서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 공안국이 공개한 수사 내용에 따르면, 지난 1993년 인신매매단에 의해 봉고차에 실려 사라진 쌍둥이 형제는 각각 허난성 지역의 무자녀 가정에 입양됐다. 사실상의 인신 매매단에 의한 조직적인 유괴와 아동 매매 사건이었다.  쌍둥이 형제 중 첫째는 허난성 소재의 한 가정에 4000위안(약 71만 원)에 팔렸고, 둘째는 인근 마을의 또 다른 가정에 3000위안(약 52만 원)에 입양됐다.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 형제는 이후에도 같은 초중등학교에 입학해 재학하는 등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더욱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쌍둥이라는 사실도 지금껏 인지하지 못한 채 같은 학교 동급생으로 살아왔다.  다만 쌍둥이 중 첫 째인 A씨는 1993년 인신매매단에 유괴됐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관할 공안국의 신원 확인을 위한 연락을 받은 A씨는 사건 당시 기억에 대해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매우 가난했는데, 집이 좁고 몹시 무더워서 동생과 함께 아버지가 있는 야채 가게로 가던 중 유괴당했다”면서 “그날 따라 유난히 날씨가 더웠고, 어머니는 두 살 정도 된 동생을 낳고 몸이 상당히 약한 상태였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를 찾아 가게로 가던 중이었는데 당시 20대 젊은 여성이 접근해서 아이스크림을 준다면서 내 손을 잡고 갔는데, 그 후에 한 봉고차에 탑승한 후 다른 가정에 입양돼 지금껏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한편, 중국에서는 수 십년 동안 조직적인 인신매매단에 의한 아동 유괴와 거래가 횡행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공식 통계는 없으나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지난 2015년 기준 매년 2만 명의 아동이 유괴돼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중국 공안국은 지난 2009년부터 전국적인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유괴된 실종 아동 사건을 재수사 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7월 현재 총 6천 건 이상의 관련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 “담 넘다 붙잡힌 아이...야구방망이로 때려 사망하니 눈앞에서 질질 끌고갔어요”[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담 넘다 붙잡힌 아이...야구방망이로 때려 사망하니 눈앞에서 질질 끌고갔어요”[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할머니 집서 매맞기 싫어 엄마 찾아가다 더한 지옥 끌려간 남매 “야 얘 죽었다. 치워라.”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에서는 아이들을 상대로 견디기 힘든 구타와 학대가 자행됐다. 아이들은 자신의 키에 몇 배가 되는 형제복지원의 높은 담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야구방망이를 든 경비들에게 번번이 붙잡히기 일쑤였다. 한번은 담을 넘으려던 한 남자아이에게 덩치 큰 남자 경비 대여섯 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이를 포댓자루에 돌돌 말아서 방망이로 마구 내리쳤다. 한 명이 “잠깐만”이라고 외칠 때까지 한참 동안 폭행이 이어졌다. 그는 야구방망이로 아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이가 반응이 없자 “얘 죽었다. 치워”라고 말했고, 남자들은 그 아이를 질질 끌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승연(45·가명)씨가 7살의 어린 나이로 목격한 잔혹한 광경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1983년 그녀는 5살짜리 동생 김승준(가명)씨<3일 자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6화] 엄마 만나려 기차탔다 형제원행...자식 찾아 8년 헤맨 아버지는 빚더미>와 함께 엄마를 만나려 기차를 탔다가 잘못 내린 부산역에서 경찰들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4년간 폭행과 학대가 매일같이 자행됐다. 김씨 남매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어떤 날은 김씨가 있던 23소대에 연탄가스가 누출됐다. 밖에서 걸어잠근 문 때문에 제때 피신하지 못한 김씨는 의식을 잃고 끌려나갔다. 김씨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소대에 동료 몇 명이 사망했다. 또 한 번은 전염병이 돌았다. 열이 40도를 넘었고 생사를 넘나들던 김씨는 다행히 회복했지만 동료 한 명을 잃었다. 김씨 남매는 8년이 흐르고서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어린시절 겪은 죽음의 공포는 잊히지 않고, 트라우마도 여전하기만 하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우리의 억울한 일을 국가는 왜 외면하는가? 우리는 왜 여전히 고통받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김씨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주지 않는다.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김승연 진술내용: 전 1983년에 형제복지원에 잡혀갔습니다. 그때 제 나이 7살이었어요. 제 남동생은 5살이었고요. 저와 남동생은 서울 영등포 신길동 친할머니 집에서 태어나 7살까지 살았어요. 엄마랑 아빠는 제가 5살 때쯤 이혼하시고 저랑 남동생은 신길동 친할머니 집에 살았고, 언니는 큰고모 집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때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셔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릴 키울 수 없어서 각각 친척집에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나 막내 삼촌은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매일 나랑 동생을 구박하고 때렸어요. 전 참다못해 대전에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동생의 손을 잡고 영등포역으로 가서 외할머니 집에 갔다가 막내 이모가 아빠한테 연락하여 다시 친할머니 집으로 보냈어요. 영등포에 도착하니까 아빠랑 막내 삼촌이 저희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 아빠한테 혼났는데, 아빠가 미안하다고 백화점에 가서 원피스 한 벌 사주시고 남동생도 옷 한 벌 사주고 언니 옷까지 사줬어요. 맛있는 것을 사서 먹으라며 그 당시 사백 원 정도의 용돈도 줬어요. 아빠는 우리한테 평소에 언니랑 나는 똑같은 옷을 입히는 것을 좋아했고 남동생도 항상 정장 옷에 모자 씌웠어요. 전 늘 공주처럼 옷을 입고 다녔고 애들한테 자랑했어요. 저희가 용돈을 받은 당일 아빠가 막내 삼촌을 혼냈더니 삼촌이 화가 많이 났어요. 아빠는 그 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셨어요. 막내 삼촌은 저희 째려보면서 “집으로 가 있어. 삼촌 친구들 만나고 갈 테니까”라고 했는데 마치 ’너흰 내가 가면 죽었어’ 하는 표정이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집에 도저히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들어가면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다시 뒤돌아서 대전 외할머니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동생의 손을 잡고 다시 영등포역으로 가서 대전가는 기차표를 끊고 기차를 탔어요. 엄마 만나려 기차탔다 잘못 내린 부산역서 경찰들 손에 형제원행그런데 모르고 잠이 들어버려서, 그대로 부산에 도착하게 되었고 밤에 어린아이 둘이 내리니까 역무원 아저씨가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묻기에 대전에 내려야 하는데 잠들어서 여기 부산까지 왔다고 하니까 역무원 아저씨가 부산역 앞에 있는 파출소에 데려다 줬어요. 경찰 아저씨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서 “기차 안에서 잠이 들어 대전에 못 내리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더니 집 주소를 아느냐고 묻기에 외할머니 집 주소랑 전화번호에 약도까지 그려줬어요. 그랬더니 경찰 아저씨가 “알았다. 집에 연락해서 데려다 준다. 기다리라”고 해서 파출소에서 기다리다 잠들었어요. 깨보니 집에 데려다 준다면서 차에 타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차를 봤는데 차가 이상한 거에요. 냉동 탑차 같은 데 타라고 하기에, “집에 가는 차 맞느냐”고 물으니, “맞다. 데려다 줄게”라고 해서 차를 타려는데 어두 컴컴한 차 안에 몇 사람이 타고 있더라고요. 속으로 ‘아 저 사람들도 다 집에 데려다 주나 보다’하고 동생과 차에 탔더니 차 문을 잠그고 출발했어요. 그래서 전 ‘집에 가는구나’하고 차에서 또 잠들었어요. 갑자기 저와 동생을 깨우더니 “집에 다 왔다”면서 내리라고 했어요. 거대한 철문 앞에 차가 서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어른들이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더니 철문을 밖에서 걸어버리는 소리가 났어요. 그러더니 또 다른 누군가가 따라오라고 해서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철문을 또 열쇠로 따더라고요. 문을 3번 정도 열쇠로 따더니 (저와 동생을) 툭 집어넣으면서 “저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하고는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어요. 진짜 무서웠지만 제 나이가 그때 7살, 동생은 5살밖에 안 돼서 무슨 말도 못하고 그저 자라고 하기에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려고 갔어요. 컴컴한 데서 어렴풋이 보니 2층 침대가 쭉 일자로 있더라고요. 나와 동생은 한쪽 침대에서 잤고, 아침이 돼서 일어나라고 해서 깨어보니 어마어마하게 길게 뻗어 있는 2층 식 침대들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놀랐어요. 그러더니 누군가가 불러서 파란 운동복과 검정 고무신을 주며 갈아입으라고 해서 갈아입었어요. 제게 앉으라더니 제 긴 머리를 막 자르더라고요. 전 울면서 동생과 나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막 때렸어요. 조용히 하라고. 그때부터 저희에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어요. 처음에 잡혀들어가면 아무 이유없이 막 때려요. 한마디만 해도 때리고, 울어도 때리고. 그제야 눈치를 채고 여기서 나랑 동생은 평생을 살아야겠구나 하고 포기를 하다시피 하면서 생활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하기 시작했어요. 맨 처음에 시키는 게 있더라고요. 세 가지를 무조건 외워야 한대요. 국민교육헌장, 주기도문, 사도신경 이 세 가지를 1주일을 주면서 외우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맞아 죽는다고. 전 너무 무서워서 그 어린 나이에도 무조건 암기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 한대라도 덜 맞으려고 최대한 빨리 암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취침시간에도 잠도 못 자고 소대 안에 난로가 있어서 그 앞에서 추우니까 다들 딱 달라붙어서 외우기 시작했어요. 신입들은 그걸 외워야 한다기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먼저 잡혀온 사람들은 이미 암기 다했다고 재우고···. 우린 그 어두운 데서 아주 조용하게 그 세 가지를 외워야 했어요. 눈앞에서 아이 때려 죽이고는 “치워라”...잔혹하고 무서운 공포진짜 매일 맞았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의 삶이었고 무서웠고 고통이었지만 버텨야 했어요. 저희 23소대가 여자 아동소대라서 맨 위쪽에 있어서 별걸 다 봤어요. 높은 담에 (아이들이) 도망 못 가게 경비들이 야구 방망이 같은 걸 들고 맨날 서 있어요. 근데도 사람들이나 특히 남자들이 도망을 엄청 시도했어요. 전 그걸 보면서 느낀 게 도망가다 잡히면 매를 맞아 죽는데 왜 가는지···. 그때 제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전 (도망) 시도나 생각도 안 했어요. 아니 그냥 포기하고 살았어요. 어떤 날은 어떤 남자가 도망가다가 잡혔어요. 소대 사이에서 사람들 다 보라는 듯 그 남자를 포댓자루에 돌돌 말더니 대여섯 명이 마구 때리기 시작하더니 한참을 때리다가 때리던 어떤 남자가 “잠깐만”이라고 하더니 맞고 있는 남자를 몽둥이로 툭툭 쳤어요. 그리고는 “야 애 죽었다 치워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그 죽은 사람을 교회 쪽으로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저에겐 너무나 잔혹한 장면이었고 무서웠고 공포였어요. 제가 그 뒤로 사회생활 하면서 교통사고 나서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고 심지어 밥도 잘 먹어요. 난 “내가 왜 이렇게 독하지”하며 살았고,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독하다고 할 때 그냥 제가 마냥 그런 성격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니 그 트라우마 때문에 익숙해져서 몰랐을 거라고 했어요. 그 소리를 딱 듣는 순간 “그렇구나. 내가 어릴 때 사람 죽어나가고 그런 것들만 보고 컸으니 그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내 자신이 무서웠어요. 그렇게 거기서 매 맞아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다반사였어요. 어떤 날은 우리 23소대에서 연탄가스가 누출되어서 자다가 끌려 나온 적도 있어요. 소대는 잘 때 되면 밖에서 문을 잠그기 때문에 안에서 큰일이 발생해도 바로 피신도 못해요. 그러다 연탄가스 마셔서 쓰러지고 깨어보니 누가 저에게 김칫국물 같은 걸 먹이고 있더라고요. 전 가까스로 살아났고 그날 23소대에서 죽은 애들도 몇몇 있었어요.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끔찍해요. 그리고 어느 날 제가 아주 아팠거든요. 그때 열이 40도가 넘었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사회 병원 갔었는데, 병원에서 가망이 없으니 그냥 데려가라고 해서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복귀했어요. 소대 안에 목욕탕이 있는데 그 탕 안에 얼음을 왕창 넣고 절 집어넣어서 열을 내린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 다음 날 저는 좀 정신을 차려서 깨어났는데 저 때문에 23소대 사람들이 다 전염이 되었더라고요. 마지막에 걸린 애가 있었는데 그 애는 결국 죽고 말았어요. 지금도 그 애가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살아요. 매맞다 머리에 못박히고...함께 끌려온 동생은 매일같이 멍들어 거긴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어요.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말 안 들으면 굶기는 건 늘 있고 내 남동생은 바로 옆에 있는 24소대에 살았는데 한 번씩 얼굴 보면 맨날 멍이 들어 있고 다리도 부러지고···. 진짜 매일같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면서 살았어요. 저도 형제복지원 안에서 엄청 맞고 아직도 내 머리 뒤쪽에는 조장 언니가 때리면서 박힌 못 상처가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그때도 죽다 살아났어요. 지금 이걸 쓰면서도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형제복지원에서 지내왔던 4년 6개월을 일일이 쓴다는 자체가 저한테 다시금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런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1987년에 부산형제복지원이 폐쇄됐어요. 다들 급하게 정리한다고 옷가지 몇 개 챙겨서 빨리 봉고차에 타라고 난리였고 그렇게 줄지어 있던 봉고차들이 애들을 한 차에 수십 명씩 태워서 뿔뿔이 흩어졌고, 저와 동생은 부산남광아동복지원으로 또 가게 됐습니다. 형제복지원보다는 나았지만 노동일은 시키는 것은 똑같았어요. 지금도 부산에 내려가다 보면 마지막 부산 톨게이트에 다와 갈 때쯤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어린 나이에 산 한쪽이 불이 나서 나무를 등에 메고 꼭대기까지 심으러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지···. 아직도 그 산을 보면 눈물이 나요. 저랑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매 맞는 게 싫어서 엄마를 보러 갔다가 잠들어서 형제복지원으로 잡혀갔어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런 곳에서 살게 됐어요. 제 남동생은 두 번째 고아원으로 갔을 때 형제복지원에서 갇혀 산 기억 때문에 맨날 고아원에서 도망갔다가 잡혀오고 또 도망갔다가 잡혀오고···. 저와 지도 선생님은 맨날 남동생 잡으러 다니는 일이 일과였을 정도였어요. 공주 옷만 입히던 아버지는 8년간 자식 찾아 다니다 판자촌으로 그렇게 형제복지원 4년 6개월에 두 번째 남광아동복지원 3년 4개월, 모두 8년을 살았어요. 그러다 8년간 우리를 찾아다닌 아빠를 만나서 집으로 가게 됐어요. 근데 막상 집에 와보니 놀랬던 건 우리 집이 그렇게 잘살았었는데 (아빠가) 판자촌 같은 데서 살고 있더라고요. 그때 내가 그랬죠. 우리 집 왜 이러냐고. 그땐 아빠가 말을 안 해줬어요. 차라리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나중에 커서 알게 됐는데 그때 우리 남매를 잃어버리고는 우리를 찾으러 다닌다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오셔서 벌어놓은 돈을 다 썼더라고요. 8년 동안 전국 고아원이라는 데는 다 가서 찾았데요. 형제복지원도 두 번이나 갔었는데, 우리 없다고 아빠를 막 때리기도 했대요. 그래서 우리 집이 가난해진 거에요.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찢기는 마음이었고 너무 미안했어요. 남동생은 집에 와서도 매일 도망 나가고 아빠는 맨날 집을 나가는 남동생을 찾으러 다니고···. 나도 막상 집에 왔는데 적응을 못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남동생은 5살 때부터 갇혀 살아서 그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집에 와서도 아빠와 언니한테 정을 못 붙이고 살았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똑같고···. 어떨 땐 우리 둘이만 식구 같았어요. 전 그곳에서 하도 매질을 당하고 기합받고 해서 안 아픈 곳이 없어요. 10년째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지금껏 살고 있고요. 전 자살 시도한 적도 많아요. 2017년엔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자살한다고 난리 피다가 병원에 3일간 강제입원 당한 적도 있어요. 작년에도 죽음 문턱까지 갔었는데 가까스로 살아나서 지금도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어요. 형제복지원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아직도 그때의 행동이나 습관들이 자리 잡혀 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자고 하거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끼리 만나면, 형제복지원 생활 얘기를 해서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가 않아요. 이 고통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안고 살 고통...인권유린 사건 제대로 바라봐 달라근데 왜 우리의 이 억울한 일들을, 이 인권유린의 사건을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겁니까? 이 고통을 배보상해주거나 트라우마 치료에 힘써주지 않고 국가는 왜 외면하는 겁니까? 우리가 왜요?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 어린 시절에 버젓이 부모님이 살아계셨는데 부모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왜 고통받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그때 물건이 아니었어요. 사람이었어요. 어떻게 사람을 공무원들이 돈 받고 사람을 팔아요? 진짜 짐슴만도 못한 짓을 사람들이 하나요? 왜 부모님들과 생이별을 시켜서 유년시절을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게 했나요? 다시 묻고 싶어요. 우리한테 왜 그랬는지. 저는 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인터뷰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어요. 경비들이 총만 안 들고 있었지 형제복지원은 우리나라에 아주 작은 북한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의 일들을 자신의 아들딸, 부모님, 혹은 본인들이 당했다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권력에 힘이 있었다면요? 본인들 일이라고 다 생각해보세요. 그때는 예외가 없었어요. 갓난아기부터 아주 나이 드신 분들까지 잡혀갔어요. 그때 운이 좋아서 안 잡혀갔던 거지 그 당사자가 본인들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제발 우리 나머지 인생을 고통 속에서 살지 않게 해주세요. 8년간 맞은 몸 후유증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제발 우리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세요!!!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워킹맘 총리·개미의 벗 ‘로빈후드’… 남다른 그들

    워킹맘 총리·개미의 벗 ‘로빈후드’… 남다른 그들

    관심사 공유하는 이미지·영상 세대추구하는 가치 실현에 적극적 행보앞으로 어떻게 세상 물들일지 주목 해외에서도 MZ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는 과거 세대와 달리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 사회 전반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각종 온라인 기술에 친숙하며 텍스트보다 이미지, 영상에 더 친숙한 세대로 상대방과 관심사를 공유하고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하는 데 익숙하다는 특징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며,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각종 사회현상을 읽는 데 중요한 키워드로서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물들일지 주목되는 이유다.●평등·자유·연대 강조하는 36세 최연소 총리 “저는 36세 총리이자 세 살배기 딸의 엄마입니다. 제게 중요한 가치는 평등, 자유, 세계적 연대입니다. 이것들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죠. 환경문제와 생태적 지속 가능성도 제겐 매우 중요합니다.” 언뜻 보면 여느 인권단체의 안내 문구 같은 이 글은 핀란드를 이끄는 산나 마린(36) 총리의 공식 홈페이지 소개다. 마린 총리는 2019년 임명 당시 세계 최연소라는 타이틀로도 잘 알려졌는데, 남성 일색의 세계 정치계에서 대표적인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보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 소속인 마린 총리는 당내에서도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203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스스로 동성 부부 밑에서 자라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례로서 복지국가의 혜택을 더 넓히려 한다. 스무살 때부터 정당에서 일하며 인권과 평등 등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내세웠고, 총리 취임 이후엔 관련 정책에도 집중하고 있다. 총리는 최근 자신의 공식 트위터에 핀란드의 ‘프라이드 마치’(성소수자 행진)를 축하한다는 글을 올리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적극 옹호했고, 각종 인터뷰에선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성차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번도 내 나이나 성별을 장애물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며 “내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를 떠올렸고, 그게 유권자의 신뢰를 얻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결혼식 역시 소박하게 치렀다. 마린 총리는 취임 이후인 지난해 동갑내기 배우자 마르쿠스 라이쾨넨과 결혼했다. 18살 무렵 처음 만난 둘은 오랫동안 동거했고, 어린 딸까지 낳아 키우고 있었다. 총리의 여름휴가 기간에 맞춰 식을 올렸는데 코로나19 시국을 고려해 하객은 극소수만 참여했다. 핀란드 국민이 마린 총리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일반적인 정치인과 다르게 권위를 벗어던지고, 특권 의식을 멀리하며, 여느 ‘워킹맘’처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잡지 보그는 마린에 대해 “밀레니얼 세대이자 페미니스트 환경 운동가”라고 표현하며 “그는 아마도 인스타그램에 모유 수유하는 사진을 게시하거나, 페이스북에 파스타 소스 요리법을 올리는 유일한 총리일 것”이라며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젊은 창업자가 만든 앱에 날개 달아준 개미들 MZ세대는 글로벌 기업 생태계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미국의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끈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 창업자 블래드 테네브(34)와 바이주 바트(36)가 한 예다. 미 스탠퍼드대 동문인 이들은 거대 증권업계에 대한 반발 시위인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존 증권사는 주식 거래에 약 10달러 정도 의 수수료를 받는다.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고팔 때마다 그 수수료로 거대 증권사와 업계 관계자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 구조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이들은 2013년 사용자에게 수수료 없는 주식 매매를 가능하게 한 애플리케이션(앱) 로빈후드를 만들었다. 로빈후드 고객은 계좌를 등록할 때 돈을 내지 않고, 미국에 상장된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를 거래할 때도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대신 회사는 증권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되돌려 준 중세 영국의 의적 ‘로빈후드’의 21세기 버전이다. 서비스의 혁신에 젊은층은 열광했고, 로빈후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현재 로빈후드의 고객 계좌 수는 3100만개가 넘고, 미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서류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매출은 9억 5900만 달러(약 1조 900억원)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보다 무려 245% 급증한 수치로 기업공개(IPO) 절차까지 밟고 있다. 다만 잦은 시스템 중단과 허위 정보 제공 등으로 이용자의 원성을 사고, 미 금융산업규제국(FINRA)으로부터 역대 최고액인 7000만 달러의 벌금(배상금 포함)을 부과받은 점 등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다. 이 앱을 ‘띄운’ 2030세대 주 고객 역시 주목할 만하다. 로빈후드는 손쉬운 인터페이스로 젊은 ‘개미 투자자’(개인투자자)에게 인기가 높은데, 이들의 활약은 지난 1월 게임스톱 사태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기관 주도 대규모 공매도에 큰 불만을 가진 개인투자자들이 헤지펀드에 대항해 게임스톱 주식을 집단 매수하며 증시를 뒤흔들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젊은 세대였다. 이들은 간편한 주식 중개 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기존 체제에도 반기를 든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일하는 10대의 비율은 최근 10년 중 가장 높다”며 “여름 임시직에서 일하든, 투자하든, 용돈을 쓰든 10대는 경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들의 경제관념이 과거에 비해 진화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반정부 시위에선 온라인 해시태그 강조 MZ세대는 시위 문화도 바꿨다. 홍콩 ‘우산혁명’의 대표적인 활동가 조슈아 웡(25)과 아그네스 차우(25)는 고등학생 때부터 홍콩의 민주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2014년 홍콩에선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 시민들이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탄을 막아섰다. 이 중심에 있었던 웡과 차우는 학생단체 ‘학민사조’ 주최자로 조직적 시위에 나섰고, 이후 네이선 로(28)와 함께 ‘데모시스토당’을 만들고 반중 노선을 주장해 왔다. 반중 집회를 조직한 혐의로 당국에 구금됐다 풀려나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이들의 리더십과 학생운동은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웡은 2015년 포천지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뽑혔고, 2017년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됐다. 차우 역시 지난해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홍콩에서 시작한 MZ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태국, 미얀마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국경을 초월해 반독재, 반권위주의에 대한 의식을 공유한다. 태국 반정부 시위 현장에는 노란색 고무보트 ‘러버덕’이 등장했다. 시민들은 경찰의 물대포를 막기 위해 러버덕을 동원했는데, 노란색이 태국 왕실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것 때문에 저항의 상징이 됐다. 지난 2월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 이후 적극적으로 반군부 항의 시위를 열고 현지 상황을 온라인으로 전하는 이들의 대다수도 MZ세대다. 이들은 과거 군부 독재에 대항해 열린 민주화 시위와 달리 온라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독재에 저항하며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영화 ‘헝거게임’에 나온 세 손가락 경례다. 태국 반정부 시위에서 쓰인 후 미얀마에서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미얀마의 청년들은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온라인 기반 네트워크 ‘밀크티 동맹’(Milk Tea Alliance)을 맺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들은 세 손가락 경례 사진을 게시하고, ‘#SupportCDM’, ‘#SaveMyanmar’ 같은 해시태그로 전 세계와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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