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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죽음 권하는 사회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충격을 넘어 우리의 냉가슴을 후벼내는 아픔이자 슬픔이었다.개인의 아픔과 슬픔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참한 장면이었다.꽃잎처럼 떨어져 나가 돌 같이 단단한 시멘트 바닥 위에 납작하게 추락하는 생명체들을 상상해 보았는가.금쪽 같이 아끼며 사랑하는 어린 아들 딸들을 높은 고층 아파트에서 손수 집어 던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그것도 죽기 싫다면서 목메어 애걸하는 고사리 같은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뿌리치면서 말이다. 지난 17일 인천에서 30대 주부가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해 14층 아파트에서 어린 딸 두명을 차례로 창문 밖으로 던진 뒤 자신도 다섯살 된 아들을 품에 안고 투신해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졌다고 한다.그 주부는 가출한 남편 대신 애들 3명을 키우면서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결국 가난에 찌든 고통이 한 가정을 비극의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며칠 전에도 광주에서 11살짜리 5학년 초등학생이 아버지의 폭력이 무섭고 두려워서 10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였다.그 초등학생은 아버지의 무자비한 학대로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던 중 자신의 잘못으로 아버지에게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특별한 복지시설이나 사회안전대책 없는 극단의 처지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가난과 폭력,공포,죽음의 위기 앞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비정한 원시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죄 없는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도덕하다고 한다.거창하게 눈길을 끄는 정치적인 구호나 사건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일상에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3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 사회,부당한 부자의 대물림과 억울한 빈곤의 악순환이 묵인되는 사회,상위계층 1.6%의 소비가 국내 소비 전체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비율이 선진국의 5분의1도 안 되는 3% 수준인 우리의 현실. 외환위기 이후 최근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개인 파산자도 작년에 비해 4.4배 증가했다고 한다.경계를 뛰어넘는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와 구조조정의 그늘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근래 우리 나라에서 하루 평균 36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생활고 등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한다.소위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늘진 계층은 계속 죽음의 행렬로 내몰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치하 어두웠던 시대 ‘술 권하는 사회’를 썼던 현진건은 그의 소설 ‘빈처’에서 가난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부부를 해피 엔딩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주인공 ‘나(K)’의 아내는 친정 아버지 생일 날 막상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었다.쓸 만한 세간과 비단 옷 등은 모두 전당포에 잡혀 있었고 허름하게 걸치는 무명 옷만 남아 있었다.세속적 가치를 외면했던 남편의 무능함 때문에 가난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장인 집에서 보았던 은행원 남편을 둔 부유한 처형의 모습과 한없이 초라한 행색의 아내.그러나 처형은 겉모습만 화려하게 보일 뿐 안으로는 주색잡기에 빠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가진 것 없더라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고마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아내의 눈과 주인공 ‘나’의 눈에 눈물이 넘쳐 흐르면서 끝맺는다.가난과 그것을 이기지 못한 죽음까지도 개인의 무능으로만 돌리는 우리 사회에서 소설 ‘빈처’는 행복을 찾는 지혜를 암시하고 있다.죽음 권하는 사회에서 그 행렬을 벗어나는 지혜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신 일 섭 호남대 교수 역사문화학
  • 테레사수녀 시복식 전세계중계 ‘성인’ 직전단계… 10월 로마서

    |콜카타(인도) AFP 연합|오는 10월 로마에서 거행될 테레사 수녀의 시복(諡福)식은 수억명이 지켜보는 전세계적 TV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인도 콜카타에 위치한 가톨릭라디오TV영화협회(CARTC) 회장인 C M 바오로 신부는 24일(현지시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이 10월19일 오전 7시55분(한국시간 오후 4시55분)부터 10시30분까지 생중계되며 이를 ‘수억명’이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복이란 성인 품에 오르기 직전 단계로 해당 인물이 타계한 뒤 일어난 기적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복자(福者)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시복 이후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나면 성인으로 인정,시성(諡聖)을 하게 된다.사상 최단기간에 시복 품위에 오른 ‘콜카타의 성녀’ 테레사 수녀의 시복은 1998년 복부 종양을 앓던 인도 벵골 여성 모니카 베스라(당시 30세)가 치료된 기적을 바티칸조사위원회가 인정한 후 승인됐다.10월 시복식 이후 알바니아 태생의 테레사 수녀는 ‘콜카타의 복자 테레사’로 공식 고지된다. 테레사 수녀는 반세기에 걸쳐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다 1997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휴가철 볼만한 비디오 / 오싹… 까르르… ‘방콕’ 준비 끝

    산으로 바다로 모두들 자석에 이끌리듯 떠나는 휴가철이다.왁자한 행락행렬에 끼이지 않고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손쉬운 아이템이 비디오다.여름휴가·방학을 맞아 동네 비디오 가게에 나온 신작들 가운데 온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볼 만한 것들을 추렸다. #엠퍼러스 클럽 ‘죽은 시인의 사회’류의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작품.인간의 품성과 예의에 관해 담담한 어조로 성찰했다.케빈 클라인이 말썽많은 제자들을 다독여 인간의 도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덕망높은 철학교수로 나온다.마이클 호프먼 감독. #파 프롬 헤븐 평소 외국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주부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가정에 헌신적인 중년의 여자가,남편이 동성애자란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뒤 우연히 빠져든 사랑에 갈등하고 방황하는 드라마.불륜,인종문제 등 1950년대 미국 중산층 사회의 취약성을 꼬집었다.연기파 배우 줄리안 무어가 열연했다.토드 헤인즈 감독. #시몬 알 파치노가 ‘원맨쇼’를 하다시피한 코믹드라마.캐스팅에 골머리를 앓던 영화감독이 가상의 사이버 여배우를 내세워 세상을 속이고 ‘농락’하다 그 이미지의 허상에 제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줄거리.비록 개봉관에선 큰 재미를 못 봤지만 상상력과 메시지는 충분히 유쾌하고 진중하다.‘트루먼 쇼’의 앤드루 니콜 감독. #투게더 ‘패왕별희’의 첸 카이거 감독의 남다른 감수성이 철철 넘치는 최근작이다.아들의 출세에 모든 걸 바치는 가난한 아버지와,바이올린에 인생을 거는 13세 소년이 엮는 감동드라마.중국 5세대 감독의 작품답게 자본주의에 멍든 중국사회를 은근슬쩍 꼬집기도 한다. “아이들이 보고싶대요” 어린 자녀들에게 괜찮은 비디오를 골라주는 건 생각보다 까다롭다.오래 전 TV에서 방영된 뒤 시리즈로 나온 낡은 비디오 말고 ‘따끈따끈한’ 신작을 골라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것도 알뜰피서의 한 방법. 최근 출시된 별나라 요정 코미(3탄)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어린이에겐 ‘안성맞춤’이다.TV에서 인기를 검증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주인공 요정 코미의 마법여행길을 아이들이 넋을 쏙 빼고 따라다닐 듯하다. 영웅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좋아한다면,엑스맨 울버린과 사이보그로 변신한 연인 유리코의 맞대결을 그린 엑스맨-울버린의 전설과 스파이더맨이 제격.‘스파이더맨’에서는 밤이면 영웅 데어데블로 변하는 변호사 머독과 스파이더맨의 대결상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이들 모두를 앞지르는,된장냄새 폴폴 풍기는 국산 애니메이션 2편.민들레꽃을 피워내는 강아지똥을 통해 희생정신과 숭고한 자연의 질서를 일깨우는 점토애니메이션 강아지똥과,고아가 된 오누이의 눈물겨운 정을 그린 오세암은 이번 방학기간 중 꼭 보여줄 만한 것들이다. 황수정기자
  • [열린세상] 사교육비와 학벌사회

    고등학교 2학년,막내 아이가 방학을 맞았다.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고 담 쌓고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와서야 입시경쟁에 뛰어든 딸아이는 이번 방학에는 학원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 치고는 딸아이의 성적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지만,아이 말에 따르면 혼자 공부해서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그럭저럭 성적을 올릴 수 있어도,수능 모의고사 점수를 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 한다.특히 수학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는 자기 성적이 1학기 평균 98.5점에 학년석차가 14등이지만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80점 만점에 40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제 언니들하고 둘러 앉아 계획을 세우는데,월·수·금 종합반 50만원,화·목 수학전문학원 25만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서실비 10만원 해서 모두 85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수입에 비해 가히 천문학적인 과외비 앞에서 절망하는 나처럼 가난한 이 땅의 부모들을 위해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무슨 위원회를 만든 모양이다.이 위원회에서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는 방과 후 학교를 학원에 임대해서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학교 안에서 해소하려는 엽기적인 발상까지 있다.그래서,학원에 가지 않고도 학교가 학원을 대신해 모든 학생들이 수능시험에서 수학을 만점 받게 만들어주면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겠는가? 어리석은 생각이다.모두가 수학에서 만점을 받으면 신문들이 들고 일어나 수능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떠들어 댈 것이다.그러면 수능시험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다시 학생들을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게 될 것이다. 사교육이 창궐하는 것은 공교육이 부실해서가 아니다.한국의 공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하더라도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는다.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이다.그러나 서울대학의 입학정원은 전체 수험생의 0.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따라서 공교육이 아무리 좋아진다 하더라도 모두를 위한 교육만 받아서는 서울대에 합격할 수 없다.최상위 0.5%에 들기 위해서는 다시 자기만의 비법을 개발해내지 않으면 안된다.그 수요에 대한 대답이 사교육이다.그러므로 서울대가 건재하는 한 사교육은 절대로 근절될 수 없는 질병이다. 이즈음에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모두 학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그러나 과연 학벌문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제는 한 대학,즉 서울대 학벌이 한국의 권력을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따라서 이 정부가 진심으로 학벌을 타파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하기를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서울대의 권력독점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는 시민단체인 ‘학벌없는 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개인적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학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를 없애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한 일은 놀랍게도 13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가운데 12명을 서울대 출신으로 임명한 일이었다.이런 사정은 장관 임명에서도 다르지 않아서김대중 정부에서 절반 정도로 낮아졌던 서울대 출신 장관의 비율은 새 정부 들어서 다시 60%로 높아졌다. 현실이 이러하니 대통령이나 정부가 아무리 학벌을 타파하겠다고 외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한국의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제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지역을 안배하고 여성을 배려하듯이,학벌에 따라 각료들을 안배하는 것 역시 불문율로 만들어야 한다.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보다 어려운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허풍이거나 위선일 뿐이다. 김 상 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 누가 화석이라 했나 춤추는 아프리카

    한반도의 136배에 달하는 면적,7억 5000만의 인구,동서남북의 이질적인 자연환경,수많은 민족과 언어,54개의 독립국들이 공존하는 땅.아프리카는 인류의 발상지이자 인류가 진화해온 터전이다. 철학자 헤겔은 “아프리카에는 역사가 없으며 아프리카의 역사는 유럽인이 만든다.”고 했지만,아프리카야말로 인류의 역사 그 자체라 할 만큼 장구한 역사를 지닌 인류의 고향이다.우리는 아프리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이미지,그것도 대부분 서구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로만 존재해 왔다.무지,가난,기근,질병,쿠데타,대초원,야생동물,원주민,주술….아프리카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이처럼 상식화된 아프리카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부터 거둘 필요가 있다. ●남아공 줄루족의 주술사 ‘상고마’ ‘춤추는 상고마’(장용규 지음,한길사 펴냄)는 아프리카는 화석이 아니라 펄펄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땅이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저자(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어과 교수)는 유럽이나 동양,특히 일본의 전통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이야기되는것과 달리 아프리카의 전통은 너무나 쉽게 희화화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아프리카 문화의 ‘다름과 차이’가 선진국의 문화우월주의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되고 폄하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책은 민족분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 지방의 줄루족,그 혼돈의 중심에 오롯이 남아 민간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상고마’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다.줄루사회를 특징짓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상고마(공식명칭은 이상고마)는 응고마라고 하는 점술혼령의 도움을 받아 점을 치고 사람들의 질병과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영적 치료사를 일컫는다.아마들로지,움타가티와 함께 삼위일체로 줄루 민간신앙의 골격을 이루는 일종의 무속인이다.남아공 사람들 스스로 원시적인 주술사로 치부해버리는 상고마.하지만 남아공 안에서만 공식적으로 10만명을 웃도는 상고마들이 여전히 점을 치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유명한 상고마들이 많다는 에구투구제니 마을에는 아직도 100명이 넘는 상고마들이 활동하고 있다.도시화와 근대화가 진행되면 몇 십년 안에 상고마가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영국인들의 ‘오만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독수리 눈알로 미래 점치기도 과학적 합리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참으로 비과학적인 상고마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저자는 적어도 남아공 흑인사회에서 과학과 상고마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상보적인 개념이라고 강조한다.합리주의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구투구제니 사람들과 꼬박 3년을 함께 생활하며 전수받은 생생한 현장지식을 풀어 놓는다.스와질랜드와 모잠비크 등에 내전이 잇따르면서 아프리카 산속 줄루족의 마을 에구투구제니에는 스며드는 이방인들이 늘고 있다.반면 ‘은신처’라는 뜻을 지닌 에구투구제니에서 옥수수 농사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원주민들은 더반이나 요하네스버그 같은 도시로의 이주를 꿈꾼다.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의 문화,변방의 문화로 알려진 상고마들이 도시로 나갔다.그런 오고 감 속에서도 상고마는 더욱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상고마가 되려는 훈련생도 늘고 있다.에구투구제니의 상고마들은 대부분 모방주술을 믿는 것이 특징.예컨대 선인장은 뾰족한 가시가 있어 번개가 집안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든지,독수리의 눈알은 멀리 앞날을 내다보는 데 효과가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저자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상고마에게 ‘전통’이라는 순결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한다.상고마를 신비주의의 틀안에 가둬두는 것은 또 다른 문화적 폭력이라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상고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라는 점이다.상고마가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춰 개발된 희극적인 이미지의 ‘아프리카판 피에로’로 둔갑하는 현실은 저자로서는 가슴아픈 대목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랜 세월 스스로 성찰할 기회도 없이 서구라는 울안에 갇혀왔다.아프리카의 문화는 어찌보면 ‘서구의 기대’에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민족적 정체성을 고민하기 보다는 서구의 바람에 발맞추기 위해 나날이 민속관을 넓히고 부시맨 차림으로 출퇴근을 한다.현대 구조주의의 창시자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미개사회 자체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실현하기 위해 잘 구성된 하나의 체계이며 그들 나름의 사회구성 원리가 있음을 밝힌다.그러나 신비스러운 조화의 구조를 지닌 원시적인 과거는 우리 눈앞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레비-스트로스의 눈에 비친 열대 원주민 사회는 그래서 ‘슬픈’ 것이다.저자 또한 ‘줄루의 땅’ 에구투구제니의 슬픈 노을을 본다. ●아프리카 문화의 ‘다름’ 인정해야 인류의 문화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그럼에도 선진국의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프리카의 ‘다름’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는 더이상 통용될 수 없다.상고마가 종종 블랙 매직을 행할지라도,그것은 그들 나름의 고유한 전통이요 문화다. 아프리카의 지성 프란츠 파농은 “우리에겐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우리는 외부세계에 의해 화석화된 인종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14세기 세계의 중심들이 일제히 쇳덩이로 만든 발사슬을 배에 싣고 미지의 땅으로 노예사냥을 나선 장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미국은 또한유럽은 얼마나 아프리카에 빚을 지고 있는가.이쯤에서 그들은 “선진국은 아프리카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프리 삭스 교수의 말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마당] 술 이야기

    요즘 모 미술관에서는 술에 관한 재미있는 전시를 열고 있다.각자의 술에 관한 기억과 존재 이유가 다른 만큼 각기 다른 작품들을 바라보며,우리의 지루한 일상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술의 철학에 관해 생각해본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예술가에게 술이란 강남의 환락가 룸살롱에서 아가씨들을 옆에 끼고 한 병에 몇십만원씩 하는 비싼 술을 마시는 사업가들의 술하고는 그 개념이 많이 다를 것이다.그래도 술값 대신 아가씨 얼굴을 그려주니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추억담은 그리운 옛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반주로 딱 한 잔이면 좋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술의 기능은 남들과 많이 다르다.할일을 끝내고 밥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술은 내게는 기분 좋은 일상의 축제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어쩌다 몇 번 가본 고급 룸살롱에서의 술자리는 그 술값이 얼마나 나왔을까 호기심을 갖는 순간 굉장히 불편한 자리가 되고 만다.그렇게 비싼 술을 그렇게 자주 먹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우리나라 남자들 밖에는 없을것 같다. 백만원이 우스운 술자리는 너무나 많다.그런 식으로 사교도 하고 사업도 한다는 구실이 꼭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런 자리를 무척 사랑하는 것일 게다.그렇지 않다면 하고한 날 밤마다 술 마시고 노래하는 술과 장미의 나날들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신용불량자가 날로 늘어나는 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 그 비싼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빚도 많고 한도 많아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장소가 룸살롱인지도 모른다.직장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 샐러리맨,직원들 봉급과 기울어가는 회사 사정에 노심초사하는 사장님들,그리고 규모가 큰 대기업의 대표까지 요즘 맘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들과 더불어 살아남아야 할 가난한 화가의 마음은 오죽하랴.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는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그리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술이 술을 먹고 온 세상을 다 삼켜버리고도 남을 그 비싼 술값을 다른 데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쓸 데 쓸 줄 알고 안 쓸 데 쓰지않을 줄 아는 돈의 존엄성에 관하여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하면 된다는 투지를 안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80년대는 씁쓸한 성공의 추억을 남기고 아스라이 사라졌다.낯선 외국에 가면 어디서나 휘날리던 우리나라 기업들의 당당한 깃발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그 모든 것들이 당장 보기 좋은 거품이었다 해도,다른 나라 땅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그 성공의 전주곡을 멀리서 듣기만 해도 그 깃발의 그림자를 훔쳐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다.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우리 경제도 덩달아 흔들리고,어쩌면 국운까지 나쁜 건지도 모른다.어쨌든 지난 세대는 피땀 흘려 일했다. 다음 세대의 성공의 밑거름이 너무도 불성실한 한탕주의의 당연한 결말이라는 흔한 말들도 술 마시고 싶은 우리의 쓸쓸한 마음에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어디선가 이런 칼럼의 구절을 본 기억이 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으스대기보다는 성공을 가져다 준 운의 작용에 감사해야만 한다.또한 불운 때문에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아량과 겸허함을 갖춰야 한다.” 어찌 보면 옳은 말이다.날이 갈수록 성공이 뭔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든다. 내실을 기하는 기업,빚이 없는 가계,가난하지만 허황되지 않은 개개인의 마음.백 번을 되뇌어도 그저 말뿐인,우리 생전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말지도 모를 건강한 세상을 위하여 딱 한잔,건배를 하고 싶다. 황 주 리 화가
  • 독자의 소리/ 안동하회마을 훼손 막아야

    지난주 아이들과 함께 안동 하회마을을 다녀왔다.안동 하회마을은 전래의 문화유산이 보존된 마을로,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따라서 아이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가르쳐 주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생각해 둘러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입장료를 내고 하회마을로 들어선 순간 하회마을에 대한 기대감이 허물어졌다.마을 입구에서부터 음식점이며 숙박업소가 즐비해,내가 한국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간직된 하회마을에 간 것인지,음식점 골목에 서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기념품가게에서는 하회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악스러운 기념품을 팔고있어 하회마을의 분위기를 훼손시키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관광사업으로 많은 소득을 얻고있는 태국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먹구구식 정책으로 문화유산을 올바른 관광사업의 대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가장 전통적인 문화유적지로 간직되어야 할 안동 하회마을을 훼손하는 마을내 상가난립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임선미 결식아동에 점심 제공을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각급학교의 여름방학이 곧 시작된다.방학에 들어가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제공받던 무료급식의 혜택도 끊기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그나마 학기중에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지만 방학이 되어 학교를 쉬게 되면 급식이 중단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급식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하루 세끼를 빠지지 않고 챙기는 나로서는 부끄러울 따름이다.이에 어려운 형편에 있는 무료급식 대상자를 점차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나 개인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아동들이 밥을 굶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형편이 어려운 아동들이 여름방학동안 굶지 않도록 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사회의 각 부분에서 조금씩만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미라
  • NGO / 시민단체 사랑방 느티나무 카페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의3 안국빌딩 신관 2층에 위치한 ‘느티나무’ 카페.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각종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과 모임이 열리는 곳이다. 98년 9월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이곳에서 열린 각종 기자회견만 줄잡아 600여건.올들어 6월까지 벌써 100건을 넘어섰다. 서울 명동성당-연지동 기독교회관-태평로 세실 레스토랑에 이은 시민단체의 ‘사랑방’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68평 규모의 창고형 카페에 불과하지만,이곳에 일주일만 나와 있어보면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의 돌아가는 형세나 문제점 등 현안에 대한 흐름이 한 눈에 잡힌다. 지난 6월 한달동안 이곳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모두 24건.‘돈으로만 자주국방을 사려는 참여정부’‘시민의 힘으로 대법관을 뽑자’‘NEIS 국민감사 청구 및 국민행동지침’‘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등이 굵직한 것들이다.언론의 주목을 받은 날도 있지만 먼지를 날린 날이 더 많다. 이곳은 시민단체의 대언론 홍보창구이자 활동가들의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활동가들이 이곳을 애용하는 이유는 교통과 공간의 편리성 때문. 느티나무 카페의 필요성은 이 빌딩 3층에 입주해 있던 참여연대 시민운동가들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궁리끝에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출자형식으로 창업했으며 두 단체가 파견하는 간사가 돌아가며 운영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전용 카페’라고 못박지 않았지만 일반 기업체나 단체,일반인들의 이용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자연스럽게 시민단체나 활동가들만의 공간으로 정착한 셈이다. 직원은 모두 7명.매니저 2명이 주야로 나눠 운영을 맡으며 주방장과 부주방장 각 1명 등 정규 직원 4명에다 서빙을 맡은 유급 아르바이트생 3명이 일한다.최대 수용규모는 130명. 메뉴는 차와 음료,술,식사,술안주까지 여느 카페와 다름없다.다만 ‘철학마당 느티나무 카페’라는 상호처럼 차 한잔의 여유를 강조하다 보니 차 종류가 좀 더 다양하고 독특하다. 음료중 인기메뉴는 4000원짜리 유기농 오미자차(냉·온)와 쑥·뽕잎·아카시아 등 5000원짜리 야생초차.주류는 2000원짜리 500㏄ 생맥주가 가장 많이 나간다.식사는 ‘오늘의 주방장 추천요리’가 주종을 이룬다.반찬 4∼5가지에 국과 밥이 따라 나오는 가정식 백반이다.안주류는 버섯두부전골(1만 5000원),골뱅이소면무침(1만 2000원)이 NGO들의 단골안주다.참여사회아카데미 교육간사 출신으로 운영매니저를 맡고 있는 김미란(38)씨는 “수익성 보다는 만남과 소통을 위주로 한 운영을 하고 있다.”면서 “가난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세미나,모임을 한꺼번에 치를 수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열 경우 행사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간당 10만원씩의 대여료를 받는다.저녁행사를 위해 통째 대관을 할 경우 식사대금이 70만원이상이면 별도의 대관료는 받지 않는다.오전에 기자회견,오후엔 후원회의 밤,동아리모임,행사 등이 주로 열린다.14일 현재 7월 셋째주까지 기자회견 등의 예약이 차 있다.김 매니저는 “세금내고,인건비 제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한국의 사랑’ 멕시코 전파 13년/ 정말지 찰코수녀원 원장

    |멕시코시티 연합|빈부격차가 심한 멕시코에서 무료교육 봉사활동으로 ‘한국의 사랑’을 심는 한국인 수녀가 있어 화제다.주인공은 멕시코시티에서 1시간여 떨어진 찰코 수녀원을 책임지고 있는 정말지(사진·39)원장. 정 원장은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이 곳에서 극빈 가정 소녀들을 대상으로 중·고교 과정 무료 기숙학교인 ‘소녀들의 집(비야 데 로스 니뇨스)’을 운영하고 있다.10만평 규모에 각종 첨단 교육시설을 갖춘 4채의 건물을 세웠다.학생 수가 4000명에 달하며 학업성취도도 지역내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정 원장이 13년간 배출한 중학교 졸업생은 1만여명.지난 11일(현지시간) 처음으로 260명의 고등학교 졸업생을 배출하는 뜻깊은 졸업식을 가졌다.이날 졸업식에는 비센테 폭스 대통령을 대신해 호세피나 모타 보건복지 장관이 참석했다. 그는 대통령 비서실과의 ‘핫라인’도 갖고 있을 정도로 멕시코 정부로부터 ‘초특급 대우’를 받고 있다. 정 원장은 “폭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방문해 한국인들의 봉사활동에 감사했다.”고 말했다.경남 밀양 태생인 정 원장의 멕시코 봉사활동은 40년 전 부산을 중심으로 ‘소년의 집’ 봉사활동을 펼친 마리아 수녀회 설립자 고(故) 알로이시우스 스와츠 신부를 따라 멕시코로 건너온 지난 1990년부터 시작된다.스와츠 신부가 92년 별세하면서 정 수녀는 원장직을 맡았다. 정 원장의 봉사활동에 교민들의 정성도 속속 답지하고 있다.LG전자 멕시코법인은 특히 올해 고교 졸업생 2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한동대에 유학시키기도 했다.또한 LG전자 후원으로 120명의 찰코 재학생 합주단원들이 오는 18일부터 한국에서 열흘간 일정으로 공연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 [나의 건강보감]김명곤 국립극장장

    “극장장으로 발령받은 뒤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디다.하루 한번씩이라도 ‘멍’해지라고요.이제야 그 말의 참 뜻을 알것 같아요.요샌 바쁜 와중에도 가끔 창밖 남산 발치를 올려보며 혼자 ‘머엉’해 하곤 합니다.그러면서 마음속에 담을 건 담고 버릴 건 버리지요.” 립극장장 김명곤(51).영화 서편제에서 “소리를 지대로 할라믄 몸 속에 한을 쌓아야 쓰는 것”이라며 딸의 눈까지 멀게 하는 소리꾼 ‘유봉’역을 열연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그는 천상 배우였다.연극판이든,영화판이든 신명을 사를 곳은 ‘무대’라고 여긴다.그래서 지금 하는 일,국립극장에다 잊혀져가는 세상의 온갖 공연예술을 다 모아 놓고는,어르고 간지르며,사그라드는 혼을 일깨우는 일에 그렇게 공을 들이는지도 모른다. ●지나치지 않게 사는법 터득 마른 장마가 사나흘이나 이어지는 7월에 그를 만났다.어거지로 가꾸거나 꾸미지 않아 담백한 때깔에 바탕이 훤히 드러나고,그래서 더 웅숭깊어 보이는 그였다.그의 건강이 궁금했다. “딱히 좋달 수도,그렇다고 아니달 수도 없습니다.내세울 정도는 아니지만 내 일을 내 욕심만큼 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의 삶에 있어 건강이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결핵을 오래 앓았어요.대학 시절에 발병해 십년 넘게 투병했지요.먹고 살기 바빠 약도 제대로 못먹고,연극에 미쳐 몸 살필 겨를이 없었지요.” 옛일을 돌이키는 그의 얼굴에 언뜻 비감이 스친다.그만큼 그에게는 처절한 시기였던 까닭일까.당시 그는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학생이었다.“몸이 계속 시들어갑디다.어느 정도냐면,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지요.고작 스물 한두살 무렵이었는데,‘아,내 삶이 여기서 끝나는구나.’싶은 절망감을 못이기겠더라고요.결국 휴학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지요.” 지리산은 그에게 위안과 안식을 준 ‘어머니의 품’같은 곳으로 기억된다.참담한 죽음의 순간에 찾은 산,그곳에서 그는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추슬렀으며,암자의 불목하니로부터는 소리를 배웠다.그 ‘소리’는 훗날 명창 박초월 선생의 10년 사사로 이어지며 영화서편제의 씨알이 됐다.힘겨운 투병 끝에 ‘천형’인 결핵은 떨쳐냈지만 독한 약 때문에 위장과 간이 많이 상했다.“그때보다 건강은 훨씬 좋다.”는 지금도 무리하거나 흥분하면 곧 몸에 표가 난다.그렇다고 결핵이 그의 몸과 영혼을 마냥 갉아댄 것만은 아니었다.결핵 덕분에 ‘지나치지 않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격정적이던 성격도 조용하게 변해 뒤풀이 술판이 예사인 연기자로 일하면서도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분명하게 절제의 선을 긋는 것은 물론 치받는 화도 숨고르기로 이내 삭인다.그가 온몸으로 깨우친 건강의 지혜다.그러다보니 격정적이기까지 했던 성격도 조용하고 부드럽게 변했다.성격뿐 아니라 생활도 덩달아 바뀌었다. “당연히 생활이 바뀌지요.축구,농구 등 격렬한 운동은 하지 않습니다.대체로 부드럽고 조용한 생활 패턴이지요.자주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데,마음에 드는 책을 갖는 것이 정신적 자족감이나 양식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일이라고 여겨져요.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일상의 번거로움을 잊기도 하고요.” 가끔은친구들과 만나 고래고래 노래도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털어낸다.여유 시간에는 주로 독서를 한다.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오래 전에 사뒀던 책을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하는 식으로 두고 두고 읽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그의 지난 삶은 ‘과로’와 ‘과중’의 연속이었다.여간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연기 활동을 쉬지않고 해왔는가 하면 소리를 할 때는 화장실에 숨어 울컥,피를 토해내기도 했다.그러면서도 연극이든 영화든 무대라는 마당이 있는 곳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그는 이를 두고 ‘열정’이라고 했다.노도처럼 밀려드는 스트레스와 긴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 열정에 있었다.“누가 1억을 준다해도 나는 오로지 내 이상을 좇아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그는 운명적으로 가난한 사람인지도 모른다.그렇지 않고서야 요즘같은 인플레 세상에 자신의 이상을 고작 ‘1억원’에 견줄까. 대학 졸업후 배화여고 교사 등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타고난 ‘팔자’를 속이지 못해 결국 무대로 돌아왔다.극단 한둘과 연우무대에서 힘을 기른 그는 지난 86년 아리랑극단을 창단,직접 연출과 기획,연기,제작 등을 맡으며 내공을 쌓아갔다.“그 때의 경험이 요즘 국립극장 경영에 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힘들었지만 거저 하는 고생이란 없나 봅니다.” ●건강한 문화예술 출발점은 가정 2000년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극장 운영을 책임진 그의 목표는 크게 두가지였다.하나는 극립극장을 국민들의 문화예술 마당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견실한 운영의 토대를 닦는 것.그는 “아직 할 일이 많지만 변화도 많았다.”고 했다. 부임 첫해에 전해의 3배까지 수입을 올리는 등 두드러진 경영 실적으로 지금은 선진국의 20%와 맞먹는 18%까지 재정자립도를 끌어올렸다.공익성과 예술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만한 성과를 얻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런 그에게 듣는 문화예술의 건강성은 신선하다.“문화예술의 건강성이 자칫 획일주의나 경직성을 연상시킬까봐 두렵다.”며 “서울만이 아니라 지역의 것도 살고,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것이 공존하면서 창조적이라면 그것이 건강한 문화예술 아니겠느냐.”고 되묻는다.그는 건강한 문화예술의 출발점으로 ‘가정’을 들었다.우선 가족끼리 서로의 문화적 관점과 취향을 이해해야 지역,국가,세계로 확대되는 광역 문화가 다양하고 건강해진다는 시각이다.“이를테면 한 가정에서 ‘황성옛터’와 보아의 ‘컴 투 미’가 함께 불려지는 것이 바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모델이라는 거죠.” ●‘멍'하게 남산 바라보면 스트레스 풀려 끊임없이 운명에 도전하는 시지프스처럼 그는 살아왔다.“한시도 도발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나름대로는 절박하고 처절한 삶이었지만,뭔가를 일구고 창조해야 한다는 열망 때문에 아플 수도,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건강은 틈틈이 챙긴다.시간날 때 남산을 걷고 단전호흡을 한다.남산을 ‘멍’하게 쳐다보는 것은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된단다. 심재억 기자 jeshim@ ■단전호흡과 태극권 단전호흡과 태극권은 서로 다른 수련 이념을 가졌으면서도 기(氣)의 원활한 순환을 통해 무병장수를 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계보를 갖고 있다. 김명곤 국립극장 극장장은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지리산에 들어가 우연히 만난 은인으로부터 단전호흡을 배운다.1년 가량 수련했는데 다시 ‘환속’해서 그때 익힌 복식호흡법으로 내면의 화를 잠재우고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물론 그가 단전호흡의 호흡법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니다.연극 등 무대에서 몸을 굴리려면 필수적인 조건이 유연성.그는 단전호흡에 태극권을 얹어 언제라도 주어진 역을 소화할 수 있도록 몸을 추스르곤 했다.“연기를 하려면 몸이 꺽꺽하지 않고 유연해야 하는데 그런 운동이 많은 도움이 됐지요.” 우리에게 꽤 익숙한 국선도 단전호흡은 정(精)·기(氣)·신(神)을 3체(삼단전)로 하고 있다.정은 일반적으로 단전이라 부르는 하복부에,기는 머리에,신은 가슴에 뿌리를 두고 온몸에 작용한다고 본다.이 3단전을 단련해 심신을 자유롭게 통제하고 이끌도록 하는 수련이다. 태극권의 내가권법(內家拳法)도 국선도 단전호흡과 흡사하다.태극설(太極說)과 동양의학의 원전격인 황제내경소문,노자사상의 기공법(氣功法)을 조합해 창안한 태극권 역시 정·기·신의 수련을 중추로 해 기력으로 부드러움의 극치에 이른다는 전기치유(專氣致柔)와 부드러움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이유극강(以柔克剛) 등을 추구하는 권법이다.특히 국선도와 태극권의 품세가 전신의 경직을 푸는 유연한 몸동작으로 이뤄져 연극이나 영화가 요구하는 다양한 동작을 소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김 극장장의 견해다. 최근들어 치병(治病)과 건신(健身)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서양에서도 관심을 끄는 국선도 단전호흡과 태극권이지만 처음부터 잘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면 몸과 마음이 맑아져 힘이 넘치는 것은 물론 심신의 건강까지도 얻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수련법”이라고 설명한다. ■ 도움말 국선도 임춘성 수사 심재억기자
  • 길에서 캐낸 서민들의 애환 / 공선옥 기행산문집 ‘마흔에‘

    “세상에는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동족임에도 어쩐지 다른 시대의 다른 나라 사람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사는 모습 자체로 울컥 목메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작가 후기) 문만 나서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 서민들의 애환을 주로 형상화해온 소설가 공선옥이 첫 기행산문집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말)를 내놓았다.그가 나선 길에는 풍경과 서정이 조화롭게 잘 스며있다.그는 여행을 하되 그저 경치만 본게 아니라,발길 닿은 곳마다 배어있는 서민들의 한숨을 불러내 특유의 감성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경북 봉화 화전민 마을,서울 인사동,전북 무주,경북 안동 하회마을,전남 여수 화양반도 등 그가 가는 길마다 묻혀있는 인간의 이야기들을 고구마 캐듯 주렁주렁 건져올린다.그 여정에서 가리봉 오거리에 모여사는 연길의 조선족 우씨·최씨의 을씨년스런 삶이 조명되고 화전민들의 짠한 가난과 슬픔 도 떠오른다. 공선옥의 글이 주는 감동은,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에서 나온다.그는 이 땅 굽이굽이에 서린 애환을 그리되,관찰자로 묘사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오버랩시켜 처연하게 되살린다.또 창원으로 가서 분신노동자 배달호씨의 삶을 “고향사람·피붙이”같은 살가움을 실어 조명한 대목은,그의 글이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를 잘 보여준다.여기에 사진작가 노익상·박여선의 렌즈가 포착한 주옥같은 풍경과 사람들의 땀냄새가,글 읽는 맛을 더해준다. 이종수기자
  • 넝마주이로라도 살아야만 했다

    만주 아리랑 류연산 지음 /돌베개펴냄 고대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은 광활한 만주대륙을 “눈마저 떡가루였다는 전설이 생겨날 만치 ‘세계의 낙토’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주에서부터 독립운동과 광복,중국해방전쟁과 6·25전쟁,문화대혁명,그리고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 만주를 무대로 펼쳐진 우리민족의 역사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지난 92년 한·중수교 이후 역사적 실체로서의 만주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고 남한 작가들의 답사기가 이어졌다.하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외부자의 시선으로 흘깃 보고 그린 인상기이거나,고구려·발해가 정복했던 잃어버린 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에 머물렀다. ‘만주 아리랑’(류연산 지음,돌베개 펴냄)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3세 작가가 일만리 만주 땅을 샅샅이 훑어 잊혀진 땅,만주를 충실히 기록한 책이다.대표적인 이주로였던 회령~게사처(삼합산)~지신~용정에 이르는 험로를 따라 최초 이주민의 발자취를 따라간 저자는,강인한 개척정신으로 만주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삶의 터전을 가꾼 개척민들의 역사를 복원해내고 있다. 만주의 전설적인 벼농사 대부로 통하는 황룡세,김약연(명동학교 설립자) 등이 중국의 한족 대지주의 땅을 사서 한반도 형국의 마을로 만든 명동촌이며,굶주림과 학정을 피해 만주로 온 이주민들이 한인(漢人) 지주의 소작인으로 노예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내 천년 묵은 옥토를 개간하여 용정에 도시를 건설한 예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망국의 설움을 안고 만주로 왔던 이주민들은 1945년 광복이 되자 귀향의 물결을 타고 다시 한반도로 향했다.그러나 땀흘려 일한 한해 농사의 수확을 눈앞에 두고 차마 고향으로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이들이 바로 지금의 200만 중국 조선족의 그루터기가 됐으며,이후 한국전쟁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파란 많은 중국 현대사의 거친 파도에 휩쓸린다.문화대혁명 때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우파로 몰려 15년형을 선고받은 조선족 지식인 오재근의 증언은,조선족이 중국 현대사를 헤치면서 겪은 고난의 역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또 가곡 ‘선구자’(윤해영 작사,조두남 작곡)의 창작경위와 연대가 잘못 알려졌음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흔히 ‘선구자’는 만주 독립운동가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1932년작 노래로 알려져 있으나,저자는 조두남 윤해영과 만주시절 함께 음악활동을 한 김종화의 증언을 통해 ‘선구자’는 만주에서 항일운동이 침체기에 접어든 1944년에 창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 넝마주이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는 김규식 장군의 딸과 외손들,그리고 일생동안 김좌진 장군의 딸임을 숨겨온 김산조 여사의 가난에 찌든 삶은 반쪽 역사에 가려진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고난에 찬 인생을 그대로 보여준다.9800원. 김성호기자 kimus@
  • 끝없는 내전 아프리카 / 阿 ‘피의 다이아몬드’

    빈곤과 에이즈,내전으로 신음하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앙골라와 시에라리온 등에서 수십년간 계속돼온 내전이 최근 끝났지만 라이베리아와 콩고민주공화국 등 서아프리카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이권쟁탈이 불씨가 된 내전과 군사 쿠데타로 여전히 혼란에 빠져있다. 이런 가운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부터 13일까지 취임후 처음으로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다.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테러조직의 불법 자금원인 ‘피의 다이아몬드’ 밀거래 차단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세네갈·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보츠와나·우간다 등 5개국을 순방, ▲아프리카 경제개발 협력방안 ▲기아퇴치 대책 ▲대 테러전쟁 공조 대책 ▲아프리카지역 에이즈 퇴치문제 ▲아프리카 개도국 지원방안 ▲라이베리아내전 등 현안을 폭넓게 협의한다.미국은 휴전에 합의한 라이베리아에 미군 500∼2000명을 파병할 계획이다.1993년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18명의 미군 사망자만 내고 철수한 뒤로 아프리카 내전에 개입을 꺼려왔던 미국은 이번파병 결정으로 대아프리카 정책에 변화를 예고한다. 오는 8월부터 ‘피의 다이아몬드’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제를 앞두고 아프리카 분쟁의 원인이자 ‘피의 다이아몬드’ 실태를 알아본다. ●아프리카 내전의 뇌관,‘피의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콩고민주공화국,앙골라,중앙아프리카공화국,라이베리아 등 국가들의 반군조직에 자금줄 역할을 해오고 있다.수도없이 반군과 정부군이 뒤바뀌는 상황에서 양측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있다. 미국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시에라리온,앙골라,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내전으로 650만명이 고향에서 내몰렸고,370만명이 사망했다. 시에라리온은 금,보크사이트,동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1991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계속된 내전은 한마디로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싼 쟁탈전’이었다.내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군과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간의 싸움으로 수천명이숨지고 수백만명이 피난민으로 전락했다.서구 언론들에 따르면 반군들은 채굴에 협조하지 않는 주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7∼16세의 소년들을 납치,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한 강제노동에 동원했다.이들은 하루 10시간씩 하루도 쉬지 못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해왔다.시에라리온은 지난해 내전이 종식되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베리아와 기니의 정글을 통해 벨기에로 다이아몬드를 밀수출하고 이 돈으로 불가리아 등에서 무기를 밀수입해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1960년 독립 이후 9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했고,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인접국인 차드와 콩고반군은 물론,리비아와 프랑스 등이 개입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것도 다 다이아몬드 때문이다.다이아몬드는 이 나라 수출의 54%를 차지하며 독립 이후 분쟁과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 라이베리아는 미국 등으로부터 하야 압력을 받고 있는 찰스 테일러 대통령이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접국인 시에라리온의 반군 단체를 지원하고 대신 다이아몬드 광산 이들을 독점하면서다른 반군 세력들의 불만을 사면서 내전에 휩싸여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98년부터 4년간 계속됐던 내전에서 겨우 벗어났다가 종족간 분쟁으로 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정부와 반군조직들이 통합군대를 구성키로 합의한 데 이어 권력분점형 과도정부가 일단 출범,콩고 내전이 종식되는 토대가 마련됐지만 지속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앙골라도 40년간 계속됐던 내전 역시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원인이었다.이처럼 아프리카 각국에는 풍부한 광물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만 불러왔다.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들의 자금줄 다이아몬드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89억달러 정도가 거래된다.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합하면 1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가 내전의 불법 자금원 역할을 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제제가 시작되면서 ‘피의 다이아몬드’는 철저히 현금과 무기 등 현물로만 거래되고 있다. 다이아몬드 업계에서는 내전 지역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가 연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유통 물량(3억달러)의 4%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집계하고 있으나 일부 비정부기구(NGO)들은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전국들뿐 아니라 다른 테러조직들도 피의 다이아몬드를 테러자금을 확보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미 정보 당국은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의 반군 세력으로 부터 피의 다이아몬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NGO인 글로벌 위트니스는 알카에다가 테러자금 2000만달러를 다이아몬드를 통해 돈세탁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밖에 레바논의 무장회교단체인 헤즈볼라도 다이아몬드 거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글로벌 위트니스의 관계자가 밝혔다. ●인증서로만 밀거래 차단 어려워 국제 인증서만으로 내전에 휩싸여 있는 이들 아프리카 국가들의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완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내전국 정부들이 반군 세력들이 장악한 다이아몬드 광산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또 관리들의 부패와 내전의 상처로 먹고 사는 것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불법인줄은 알지만 시냇가 바닥에서 손쉽게 채굴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김균미 기자 kmkim@ 국제거래 인증제 도입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의 불법 다이아몬드 유통을 막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첫 시작은 영국의 민간감시단체인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로 불법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회사 상품의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다.여기에 다이아몬드 가공업체인 드비어스사가 힘을 합치면서 다이아몬드 인증제 논의가 벌어졌다. ●7월까지 가입안하면 수출길 막혀 그 결과 2002년 11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다이아몬드 거래와 관련있는 35개국이 참여,다이아몬드 인증제인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를 2003년 1월1일부터 가동하기로 합의했다.킴벌리는 19세기 다이아몬드 붐을 일으켰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시명이다. 이 규약은 다이아몬드 수출입국에 다이아몬드 원석의 원산지,무게,달러로 환산된 가격,수출입업자의 신원,선적 일자 등을 기록한 공인 증명서를 발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또 거래가 이뤄진 뒤에도 관련정보를 3년간 보관해야 한다. ●한국등 56국 참가… 阿도 서명할듯 지난 3월말 현재 한국을 비롯,5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유엔은 지난 1월 이 규약의 실행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현재 내전을 치르고 있는 주요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 협약에 서명할 전망이다.서명기한은 7월말까지다.서명하지 않으면 국제시장에 다이아몬드를 수출할 수 없고 벨기에 등 주요 가공국들과의 교역도 금지된다. 그러나 이 규약은 기본적으로 자율규제에 근거,능력없는 서명국들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내전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반군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직접 장악할 힘이 없다.또 규제대상을 원석으로 국한,부분적 가공과정만 거칠 경우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전경하 기자 lark3@
  • [씨줄날줄] 보리밥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하동군 평사리에는 아직도 넓은 보리밭이 있다.바람에 물결치는 보리밭은 수채화처럼 서정적이었다.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평사리 사람들의 고달팠던 삶의 애환도 물결치는 듯했다.옛날의 보리밭은 가난의 보릿고개를 넘는 푸른 희망이었다.젊은이들의 사랑과 보리피리의 낭만도 있었다.그러나 보리밭은 생활이 윤택해지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지도 모른다.군의 식단에서 보리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7월1일부터 군 장병에 대한 급식에서 보리쌀을 완전히 없앴다고 밝혔다.창군이래 55년만에 보리쌀 급식이 중단됐다.쌀밥만 먹어온 신세대 장병들의 입맛에 맞추고 정부의 쌀소비 확대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다.군의 급식은 1985년까지 쌀 70%에 보리 30%였다.그 이후 보리의 비율은 단계적으로 줄어들었다.87년에는 15%,88년에는 10%,2002년에는 5%였다. 보리밥은 이미 오래전에 주식의 자리에서 밀려나 ‘건강식품’이 되었다.그런데도 군대에서 보리밥이 사라졌다는소식을 접하니 왠지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다.가난한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보리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열무김치와 된장에 썩썩 비벼먹던 보리밥은 정말 꿀맛이었다.농가월령가에도 나오듯 상추쌈에 싸먹는 보리밥은 여름철 별미였다. 보리밥에는 비타민 B1과 B2가 풍부하다.식이섬유가 많고 혈당 조절 효과도 있다.그래서 당뇨병·대장암·심장병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각기병을 예방하고 변비를 방지하는 데도 좋다.그러나 뒤집어 보면 설사를 유발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그리고 쌀보다 영양가가 떨어진다.쌀중에 현미가 건강에 좋듯이 보리도 눈을 벗겨내지 않은 통보리가 더 좋다.보리눈에는 칼륨·칼슘·비타민C·마그네슘 등 여러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 있다. 옛날의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다.쌀이 없어서 보리밥을 먹었다.그러나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환영받고 있다.서울에 있는 어느 호텔은 열무 보리밥 세트 메뉴를 만들어 3만원을 받고 있다.보리밥이 값비싼 식품이 됐다.그러나젊은 세대들에게는 상상의 식단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창순 논설위원
  • 책꽂이

    ●탐욕의 실체(브라이언 크루버 지음,정병헌 옮김,영진닷컴 펴냄) 미국의 7대기업이자 최대 에너지 회사였던 엔론의 파산과정을 내부자의 눈으로 파헤쳤다.엔론 파산 이후 엔로니티스(Enronitis)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Enron as it is(엔론과 같은)’를 한 단어로 축약한 것으로,엔론처럼 재무구조가 부실하거나 변칙회계 의혹에 휩싸여 있는 기업들을 지칭하는 말이다.엔론이 쌓아올린 거대한 위용의 바벨탑이 낱낱이 폭로된다.1만 4000원. ●청계천을 떠나며(이응선 지음,황금가지 펴냄)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를 가르는 하천인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지금의 청계천은 일제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1958년 광교를 시작으로 복개공사를 시작해 1979년 마장교를 완성한 후 그 위에 고가도로를 건설했다.청계천 상인 출신인 저자는 청계천의 뒷골목은 ‘카오스적 질서’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9000원.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하승우 지음,책세상 펴냄) ‘관용’의 가치를 한국사회에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을 제시.차이와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사회윤리로서의 톨레랑스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저자는 톨레랑스의 이미지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를 닮았다고 말한다.한 손엔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저울을,다른 손엔 불의를 응징하는 칼을 든 여신의 모습은 톨레랑스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4900원. ●바이칼,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정재승 엮음,정신세계사 펴냄) 2500만년 전에 형성된 태초의 호수 바이칼.‘시베리아의 진주’‘성스러운 바다’‘또 하나의 지구’‘세계의 저수지’ 등으로 불리는 바이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가장 깊고(1637m),가장 차가우며,가장 큰(남한 면적의 3분의1) 담수호다.우리에겐 한민족의 발원지로서의 의미가 크다.2만원. ●베짱이 할아버지(김나무 글·강전희 그림,문학동네어린이 펴냄) 제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받은 성장동화.어린 주인공 영철이가 할머니의 죽음,시골에서 도시로의 이사,맞벌이 부모,가난한 이웃들의 삶 등을 통해 겪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아내를 잃고 자식을 고아원으로 보낸 베짱이 할아버지의 부성애와 한(恨)을 접하면서 영철이의 마음이 부쩍 커지는데….초등 고학년용.6800원. ●나의 개 부딜(피야 린덴바움 글·그림,허서윤 옮김,꼬마이실 펴냄) 착하지만 게으른 불테리어종 개 부딜의 하루.뭐든 제멋대로인 부딜의 익살,그래도 그를 사랑스럽게 다독이는 주인의 애정이 유머넘치게 묘사되고 있다.4세 이상.8800원.
  • 3일간의 자유 그 대가는 목숨이었다

    3일간의 자유 - W E B 뒤 보아 지음 18세기 독립혁명 이래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유,인권을 대표하는 근대 국가로서 그 이미지를 만들어오고 있다.그러나 ‘자유와 꿈의 나라’ 미국에는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과오가 남아 있다.미국은 인디언 학살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고 노예무역에서 얻은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건설된 국가라는 사실이다.미국으로 팔려간 노예들은 ‘인간’이 아닌 ‘도구’에 불과했다.하지만 한편으론 노예에게도 인간적인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양심적인 백인들의 목소리도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존 브라운(1800∼1859)이다. ●美 노예해방 운동가 존 브라운의 삶 ‘3일간의 자유’는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론자인 존 브라운의 노예해방을 향한 고독한 장정을 그린 전기다.노예해방운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들은 보통 온건파 도덕론자들이다.노예로 태어나 링컨의 고문을 맡은 프레드릭 더글러스나 ‘엉클 톰스 캐빈’을 지은 해리엇 스토 부인,링컨 등이 그들이다.그러나 남북전쟁 직전의 노예제 폐지론자들 중엔 ‘광신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급진적 도덕론자인 브라운은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그렇지만 철학자 에머슨은 그를 “진실하고 선의로 가득찬 이상주의자”로 인정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탓에 정식 학교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늘 성경을 끼고 다녔던 소년 브라운은 열두살 때 한 흑인 노예소년이 이유없이 학대당하는 것을 보면서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데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다.이후 그는 측량기사,우체국장,목재판매상,양모업자 등의 직업에 종사하며 노예해방운동의 배후에서 활동했다.사우스캐롤라이나 노예봉기 시도(1822년),시러큐스 노예제 폐지론자 대표자대회 참석(1855년),블랙잭 전투와 오사와토미전투 (1856년),미주리 습격(1858년)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하퍼스페리 습격’ 주도… 교수형 당해 당시 미국은 노예에게 자유를 준 자유주(북부 16주)와 노예주(남부 15주)로 나뉘어 있었다.하퍼스 페리 무기고가 있는 버지니아주는 브라운의 활동지역인 오하이오주(자유주)와 인접한 첫번째 노예주.브라운은 1859년 22명의 대원과 함께 이 주의 대표적인 무기고인 하퍼스 페리를 습격,무기를 빼앗고 노예를 모은 뒤 남쪽 노예주로 진군한다는 내용의 ‘노예해방전선’을 구상하고 있었다.그러나 작전 수행과정에서 온건파들과의 연대가 깨지면서 공격은 사흘만에 실패로 끝났다.무기고에 이르는 엘러게이니 산맥에서 브라운과 대원들은 며칠동안 머물며 직접 헌법을 만들고 ‘정의로운 나라’를 건설했으며,그 정의를 노예들과 나누기 위해 하퍼스 페리로 내려갔지만 그 꿈은 무위로 돌아갔다. ‘미국의 100대 명장면’에 꼽히는 하퍼스 페리 습격을 주도한 브라운은 결국 붙잡혀 교수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그러나 “노예해방은 피흘림없이 불가능하다.”는 급진적 해방론자 브라운의 ‘사흘천하’는 양심적인 미국인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남북전쟁의 도화선으로 살아났다.‘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은 브라운을 “남북전쟁의 계기를 마련해준 인물”이라고 평했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우미관 다리가 최고의 놀이터였지”‘청계천 토박이’ 이순형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만일 화가라 ‘황혼의 청계천을 뒤로하고 귀가하는 지게꾼’을 묘사한다면 밀레의 ‘만종’(晩鍾)에 뒤질 것인가?”(1954.7.18) 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청계천을 서울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주려는 복원공사를 하루 앞둔 30일,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동문회관 ‘함춘원’(含春苑)에서 이순형(李純炯·68) 전 서울대의대 학장을 만났다.그는 인터뷰 도중 어언 반세기가 지나 샛노랗게 바랜 경기고 시절 학교신문 한 쪽을 감회 어린 눈으로 읽어나갔다.2학년 때 문예반원으로 수필란에 실은 ‘청계천송’(淸溪川頌)이란 제목의 글이다. ●‘서울의 하수구'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 소년 순형은 이 글을 통해 당시만 해도 아낙네들의 빨래터로,인근 빈곤층 가정에서 흘려보낸 구정물 등으로 더러워져 ‘서울의 하수구’로 불렸던 청계천의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에 있다고 보고 목청껏 비난했다.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을 예로 들며 청계천의 소중함을 일깨운 뒤,아침 일찍 청계천에 나가 보면 나라의 혼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세련됐지만 친밀감을 찾아볼 수 없는) 명동거리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이 박사는 60년대부터 불모지였던 국내 기생충학에 몸을 던져 후학을 길러낸 뒤 지난해 은퇴해 명예교수로 있다.청계천을 화두로 꺼내자 금방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얘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다.낡은 볼펜을 꺼내 청계천 주변 지도까지 그려가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한 차례 큰 비가 지나간 뒤엔 장대 끝에 줄을 매단 볼품없는 낚싯대로 가물치를 건져 올리기도 했지요.그럴 때면 웃통을 벗어젖힌 아이들이 너나없이 환호성을 질러대고….” ‘서울 토박이회’ 부회장 직함도 갖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청계천 근처에 살아온 토박이.본적이 청계천변에 자리한 장교동 56번지다.지금은 없어진 종로구 수하동의 청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박사는 “어릴 적 청계천 수표교 쪽에는 부드러운 모래밭이 멋지게 깔려 나이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 정한 뒤 둔치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즐겼다.”고 회고했다.아치형으로 만들어 모양 자체만으로도 인기를 얻은,현재 삼일빌딩앞 우미관 다리는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던 당시엔 손꼽히는 놀이터였다.주민들이 철봉,역기 등 운동기구를 하나 둘씩 들여놓아 요즘 드라마로 더욱 유명한 김두한도 힘자랑을 했단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청계천 하면 탁류를 떠올릴 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잠시 피란 떠났다가 1·4후퇴 무렵 서울로 돌아와 다시 바라본 청계천은 글자 그대로 푸르디 푸른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너나없이 가정형편이 나빠지는 바람에 집집마다 청계천변으로 나와 떡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팔아 연명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이 박사 자신도 열다섯살이던 9·28수복 때에는 담배,껌을 팔아 돈을 벌었다.아직도 국산 ‘공작’이나 미제 ‘러키 스트라이크’ 등 담배 이름을 잊지 못했다. ●‘나이애가라' 막걸리집의 어원은 전쟁이 끝난 50년대 중반,가난을 벗어날 생각에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청계천 주변에는 판잣집이 늘어 갔다.판자로 얽은 막걸리집을 ‘나이애가라’라고 불렀다.화장실이 없어 취객들이 청계천 둑 위에서 소변을 봤는데 아이들의 눈에는 그 물줄기가 거세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5월 단오,8월 한가위 때면 장사교 위에서 동네마다 대표를 뽑아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곤 했지요.” 중·고교생들이 정동 등 시내 학교로 통학하는 길이었던 청계천 10리 뚝방길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분홍빛 사연을 실어나르는 길이기도 했다.자동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비좁은 길에 학생들이 넘쳐나 남녀끼리 자연스레 어깨가 마주쳤다며 이 박사는 씩 웃었다. 흔히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고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수도(首都)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타지인들에게 내준 탓이라고 했다.팔도 사람이 모인 서울을 그는 ‘공설운동장’으로 비유한다.한강도 서울의 하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서 대부분 사대문 안에서 둥지를 틀었던 서울 사람에게는 ‘고향’ 하면 떠오르는 게 청계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청계천 복원은 고향 찾아주는 일 “청계천 복원은 서울토박이는 물론 고향을 잃고 살아가기 쉬운 미래 서울시민들에게 고향을 찾아주는 일로 반기지 않을 수 없지요.” 최근 서울토박이회 회원들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을 염원하는 홍보 캠페인을 벌이던 중 광교 조흥은행 옆으로 난 뒷골목에서 50여년 전의 여염집 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향의 흔적을 찾았다는 감격으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중산층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청계천 쪽에 살면서 상대적으로 외면당해온 북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때로는 청계천 주변을 떠나기 싫어했던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는 이 박사.조상 대대로 무교동·수하동·삼각동 등 청계천 주변을 내내 떠나지 못하다가 60년 모두 의학도였던 4형제의 학비 마련 등을 위해 당시 신도시로 개발된 불광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청계천과 약간은 멀어져야만 했다. “개발에 떠밀려 청계천이 복개될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하는 이 박사.2년 후에 다시 드러날 청계천의 새 모습을 꿈꾸며 옛 추억에 잠긴 듯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글 송한수기자 oneko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 한나라 최병렬체제 출범/최대표 일문일답·프로필

    최병렬 대표는 1938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지리산 기슭에서 자랐다.가난한 산골 소년이었지만 배짱 하나는 두둑했다고 한다.병역 판정 때 면제를 받았지만 재신검을 요구,입대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59년 학생 신분으로 한국일보에 입사해 조선일보 편집국장까지 올랐다.기사 말미에 기자 이름을 박는 기사실명제 등을 도입,오늘날 신문의 편집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이다. 국회는 12대 민정당 전국구로 입문했다.6공 시절 공보처·노동부 장관과 94년 서울시장 등을 지낸 뒤 14∼16대 내리 당선된 4선 중진이다.교통범칙금 중 50%를 사고예방에 쓰도록 한 법이 그의 작품이다. 서울시장 당시 안전모를 쓰고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을 지휘,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접시가 깨질까 두려워 더러운 접시를 닦지 않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접시론’은 지금도 공직사회에서 회자된다. 그러나 풍부한 행정경험에는 늘 ‘원조보수’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다.‘최틀러’는 그의 저돌적 추진력을 산 애칭이지만 노동장관 때 추진한 총액임금제와 무노동무임금 등 일련의 강경 정책과도 어울린다.최근엔 미국 메이저리그 강타자 최희섭 선수의 ‘빅초이’라는 별명을 더 좋아한다. 소장파들은 ‘생각은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그를 평가한다.당내 뚜렷한 계파가 없는 것도 특징.2001년 당·대권 분리를 주장,‘제왕적 총재’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취임 일성(一聲)으로 “대통령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청와대 초청을 기다리지 않고 청와대를 찾아가겠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에 적극성을 띠었다.이어 “체면 차리거나 남 탓만 하고 구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정협조를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재특검 거부 의사에 대해서는 “야당을 짓밟거나 정당성을 상실할 때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특유의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성격을 드러냈다. 경선 연설에서 “17대 총선에 이회창 전 총재가 필요하면 모셔 오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최 대표는 “일각에선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 뜻으로 해석하는데 오해”라면서 “이 전 총재가 총선 후보옆에만 서 있어도 도움이 된다면 왜 못하겠나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이어 “당의 승리에 필요한 분이라면 삼고초려 아니라 십고초려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개혁파의 탈당설과 경선 후유증 등 과제에 직면해 있다.“우리 당에서 개혁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면서 “(탈당이) 불가피한 몇 분도 있지만 당에 꼭 필요한 분들도 있다.”며 끝까지 잡을 뜻을 나타냈다. 박정경기자 olive@
  • 北송금 특검 결과 발표/정치권 상반된 평가

    대북송금 송두환 특검이 25일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1억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정치권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야당은 ‘정상회담=대북송금 대가’라는 의혹이 사실로 입증됐다며 “특검을 추가로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반면 여당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송금은 통일비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리로 여론 설득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특검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한다. ●“중간발표에 불과” 한나라당은 특검이 “대북송금 5억달러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이 있고,이 가운데 1억달러가 정부가 지급한 돈”이라고 밝힌 데 대해 “나머지 4억달러와 관련한 수사가 미진하다.”고 고삐를 죄었다.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당 대북송금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이해구 의원은 “대가성 송금을 1억달러로 제한한 것은 피조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한 결과”라며 “박지원씨가 세 차례에 걸쳐 북대표와 접촉,북측이요구한 10억달러를 5억달러로 깎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또 현물로 제공한 녹용과 향수 등이 ‘순수 경협자금’이란 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민주당 정권의 정상회담용 대북송금 의도를 밝혀내고 ‘통치행위’ 운운한 국기문란사범 8명을 기소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대통령의 수사연장 거부로 비리의혹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고 밝혔다.그는 “새 특검을 실시,‘150억+α’ 등 파생비리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비용 1人 2500원꼴 투자한것” 민주당 이평수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놀랍고 믿기지 않는 일”이라면서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우리는 법률적 잣대를 넘어선 통일비용으로 간주한다.”고 주장했다.그는 “50년 대치상황을 뚫고 어렵게 이뤄진 정상회담이 1억달러를 줬기 때문에 성사됐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화갑 전 대표도 “1억달러 문제가 사실일지라도,가난한 이웃집에 가는데 그 정도의 선물은 국제적 관례에 어긋나지 않는다.”면서 “한반도평화유지를 위해 국민 1인당 2500원 정도를 투자하는 것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주류측 김원기 고문은 “특검팀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큰 테두리를 존중하지 못한 것은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평했다. 김상연 박정경기자 carlos@
  • [열린세상] 한 평의 땅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소작농이었던 그의 꿈은 자신의 땅을 한 평이라도 갖는 것이었다.그러나 작은 꿈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실현되지를 않았다.그러던 어느날,읍내에 사는 마음씨 착한 부자가 사람들에게 땅을 원하는 만큼 무상으로 분할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농부는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부자를 방문하였다.부자는 농부에게 필요한 만큼의 땅을 줄 테니 한가지 조건만 채우라고 하였다.해가 뜨기 시작한 시간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걸어서 돌아온 만큼의 땅을 모두 주겠다는 것이었다.다만 반드시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 지점에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농부는 해가 뜨자 마자 쏜살같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 밑의 땅이 자기의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농부는 온종일 쉬지 않고 달린 후에야 갑자기 주인의 말을 떠올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려 있었다.농부는 급하게 발길을 돌려 출발 지점을 향해서 죽을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안타깝게도 농부는 해가 다 지고 난 다음에야 출발 지점에 도착하였지만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부자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하였다.“제 몸 하나 뉘일 한 평의 땅이면 족할 것을…” 이 이야기는 러시아에서 전해져 오는 것이라고 한다.가끔 기억이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이야기 끝에 만일 그 농부라면 어떻게 처신하겠느냐고 물어보면 반응은 각양각색이다.대부분은 자신도 그 상황에서는 농부처럼 처신할 것이라고 말하였다.가난한 농부는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뜻하고,마음씨 착한 부자는 절대자를 의미한다.땅은 세상에 있는 물질을 나타내고,그 땅을 무상으로 분할해 준다는 것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일출과 일몰,출발 지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말한다.끝없이 달리는 것은 인간의 탐욕에 끝이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태초에 절대자는 모든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황과 물질을 만들어 주셨다.따라서 인간이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을 절제하며 산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욕심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끝없는 욕심은 결국 인간을 파멸과 죽음으로 이끌어 갈 뿐이다. 창조주는 하늘과 땅,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따라서 하늘과 땅에는 창조주의 거룩한 흔적이 곳곳에 담겨 져 있다.우리는 창조주가 마련해 준 공간을 잠시 빌려서 쓸 따름이다.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면 우리가 사는 이 공간도 모두 다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미련없이 떠나야 한다.따라서 우리는 하늘과 땅,대자연 앞에서 늘 겸허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가? 땅이나 그 위에 있는 집은 투기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많은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이미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갖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넓은 땅을 소유하고 넓은 집에서 살 것인지에 관심이 쏠려있다.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앞을 향해서 달려나가고 있다.탐욕을 좇아 나선 사람들은출발지를 향해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각자가 마음의 밭에서 자라는 탐욕의 잡초를 솎아낼 때 비로소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하여 근심 걱정 속에 젖어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절대자는 “제 몸 하나 뉘일 한 평의 땅이면 족할 것을…”이라며 속삭이는 듯하다.이제 자신의 땅을 넓히고 집의 평수를 넓히는 데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평수를 넓혀서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그런 삶을 통해서 자신과 이웃이 더불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정 웅 모 서울대교수 신부 성미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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