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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과 경영 이야기] (26)’창업CEO’ 김기문 로만손 사장

    ㈜로만손의 김기문(金基文·50) 사장은 창업을 꿈꾸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다. 작은 시계회사의 영업직을 그만두고 두어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종업원 두사람을 데리고 출발한 지 15년.그는 임직원 120여명과 전국 영업점 45개,연간 매출 500억원·수출액 3000만달러의 국내 최고 시계보석 전문기업을 일구었다.개성공단에 첫 입주하는 15개 중소기업의 대표이면서,러시아를 방문하는 대통령의 수행 기업인단의 한사람으로 선정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그의 성공 신화는 이렇듯 부지런함에서 시작됐다. ●밀수꾼으로 오해받고 사우디선 납치되기도 1989년 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국제공항.로만손을 창업한 지 1년째 되던 김 사장은 공항에서 세관원에게 봉변을 당했다.가방 3개에 가득 든 시계가 검색대에 쏟아져 나오자 그만 밀수범으로 몰린 것이다.김 사장은 명함 등을 보여주며 “시계 장사꾼이고 견본품들”이라고 해명했다.그러나 세관원은 “샘플이라면 몇개만 들고 다니면 되지 왜 이렇게 많은가.”라면서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그는 “샘플 몇개 보여주자고 비싼 비행기 요금을 내고 먼 길을 오느냐.중동 전역에 만나야 할 거래선이 많다.”고 따졌다. 물불을 안 가리고 발품을 팔면서 비롯된 오해로 밝혀져 밀수범의 누명은 벗었으나 그는 ‘단 한개라도 히트 상품을 만들자.’는 교훈을 얻었다. 1990년 초 또다시 방문한 사우디의 공항 인근.김 사장은 출장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기다리다 평소 안면이 있는 현지 시계판매상을 만났다.“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판매상의 호의를 받아들여 승용차에 올랐으나 곧 자신이 납치된 사실을 깨달았다.판매상은 사막 근처에 차를 세운 뒤 “왜 우리에게는 ‘커팅글라스’ 제품을 대주지 않느냐.사막에 파묻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김 사장은 “그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나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드디어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고 회고했다. 히트 상품에 대한 그의 집념은 3년만에 시계의 유리를 보석에서 응용한 커팅기법으로 깎은 세계 최초의 제품을 탄생시켰다.수출은 ‘1국 1바이어’만 상대한다는 원칙을 세우고,제품의 희소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던 중이었다. 김 사장은 “가난한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기를 보내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면서 “내세울 게 없다.”고 말했다.성공한 배경과 비결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는 청년시절 제대로 직장을 잡기도 전에 잇따라 부모가 돌아가신 뒤인 지난 82년 한 신생 시계 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게 됐다.발로 뛰면서 꽤 실적을 올렸으나 한계를 느꼈다.당시 시계업계는 ‘오리엔트’‘삼성’‘아남’‘한독’ 등의 대기업들이 90% 이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국내 시계업계는 70∼80년대가 전성기로 80년대 후반에는 누구나 웬만한 시계 한개쯤은 차고 다녔다.신생 회사가 기존의 벽을 뚫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다.그러나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걸자는 생각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매출 500억 국내최고 시계보석 기업 88년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사무실 겸 공장을 차리고 기술자 2명과 일을 시작했다.일본 시계회사에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으로 납품하면서 간신히 회사를 꾸렸다.‘품질은 스위스제,가격은 홍콩제’를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구미에 맞춰 최선을 다해 납품했으나 손에 쥐게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는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는데,한개를 만들어도 내 브랜드로 만들자.’고 결심했다.컨셉트는 고급 기호품으로 하고,판매 시장은 ‘처음부터 편견을 갖고 제품을 얕보지 않을 수 있는 수출시장’으로 정했다.브랜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시계 기술자들이 전쟁을 피해 몰려살던 스위스의 산악 마을인 ‘로만시온’에서 따왔다.수시로 유럽,중동,아프리카 등으로 출장을 다녔다.출장중 봉변도 겪었으나 ‘커팅글라스’ 시계가 시장에서 먹혀들면서 매출이 급증했다.이어 지금은 보편화된 이온도금 시계도 세계 처음으로 만들었다.대형 동전에 시계바늘을 결합한 제품,24시간을 150개 등급으로 나눠 전세계 네티즌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타이머’도 만들었다.‘팔찌형 시계’도 대박으로 이어졌다. ●직관서 아이디어… ‘팔찌형 시계’ 대박 김 사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아이디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그는 “여러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듣는 것도 그만큼 많고,느끼는 것도 항상 새롭다.”고 했다.해외출장을 많이 다녀 여권 안쪽에 입출국 승인도장을 찍을 곳이 없어 여권을 일년에 3번 바꾼 적도 있다.그는 “발전하는 사람이나 도시는 몇달 전에 본 모습과 후의 모습이 조금 다른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또 “세련된 제품의 감각은 사람의 머리가 아닌 손끝에서 나온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사람의 직관(直觀)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걸프전 터져 투자금 모두 날려 그에게도 좌절과 실패는 있었다. 그는 초창기에 브랜드 가치와 해외 수출시장을 중시하다 보니 이익이 생기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외박람회에 쏟아부었다.스위스 시계의 유명세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익히 알려진 명성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더디지만 국제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더불어 김 사장에게도 국제적인 안목이 생기게 됐다.바이어들의 취향도 본능으로 느끼게 됐다. ‘박람회의 매력’에 빠져 참가비용을 무리하게 해외로 빼내다 경쟁업체의 신고로 외화밀반출 혐의도 받게 되었다.세금만 호되게 물고 혐의는 벗었지만 ‘뛰더라도 주변과 함께 뛰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 사장은 ‘아랍인들은 유럽인들처럼 고급품은 좋아하지만 결코 그들처럼 값비싼 제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중동시장 공략에 몰두했다.매출을 거의 다 쏟아붓다가 그만 걸프전이 터지면서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그는 “영리한 여우는 굴을 여러 개 파놓는다는 교훈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수출선을 다변화하기로 했다.이는 오늘날 중동뿐만 아니라 러시아,동남아시아,남부 유럽 등 68개국과 거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커팅글라스 시계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자 복제의 귀재라는 홍콩의 시계업자들이 제작한 싸구려 모조 시계가 등장했다.특허권도 소용이 없었다.그는 “제품도 사람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끊임없이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전 직원의 15%가 연구개발 인력인 데에는 이같은 이유가 있다. 김 사장은 “상황 변화를 빨리 읽고,그때마다 과감하게 자기 변신의 결단을 내린 것이 시장에서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덕분에 로만손은 최근 들어 스위스에 오히려 OEM 제품을 주문하는 회사가 되었다.러시아에선 언론사 조사를 통해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선물에 로만손의 ‘팔찌 시계’가 꼽히는 결과를 얻었다.지난해 4월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시계보석전시회’에선 엄격한 심사를 거치는 명품관 전시의 영광도 누렸다. ●68개국과 거래… 스위스서 OEM 납품 받아 로만손은 올해 안에 개성공단 1차 입주 시범단지 2만 8000여평 가운데 10분의 1인 2620평에 106억원을 들여 공장을 세운다.내년초부터는 공장 인력의 90%인 820여명 정도의 북한 근로자들이 로만손의 정식 직원이 된다.북한 근로자들의 최저 임금은 월 57.5달러로 월 7만 9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로만손의 연간 매출을 30% 정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개성 진출을 제2의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시계산업이 사양업종이 아니라는 사실은 로만손의 놀라운 성장을 통해 입증했으나 기술 및 노동집약 산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이 때문에 그는 북한 근로자를 통해 인건비의 부담을 줄이면서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김사장은 “시계는 만드는 사람의 손재주와 감성이 듬뿍 담겨야 명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품 협력업체들이 현재 인천의 남동공단,경기도 광주 등 도처에 떨어져 있어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점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로만손은 15개 협력업체와 함께 개성공단에 입주한다.김 사장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중국으로 건너간 부품업체들도 개성으로 불러들여 개성을 한국 시계산업의 메카로 키우겠다.”고 밝혔다.“그래도 국제시장 가격이 일본 시계의 95% 이상인 고급형을 지향하겠다.”고 덧붙였다. 로만손은 시티즌,세이코,티쏘 등 유명 브랜드들과 어깨를 견주며 오메가와 명품인 메리골드를 추격하고 있다.‘변화를 이끄는 고급 이미지’이라는 쉽지 않아 보이는 길이 로만손의 목표다.중상류층의 기호를 겨냥했다. ●대통령 러시아 방문 수행 기대 커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수행에 대한 기대도 크다.김 사장은 “러시아는 중국,인도 등과 더불어 떠오르는 수출시장”이라면서 “감성이 풍부한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인 특유의 예술적 재치가 넘치는 감성 제품들이 크게 ‘어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김 사장은 “한국의 시계산업을 위해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김기문 사장은 로만손의 김기문 사장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거의 맨손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계보석 전문기업을 만들었다.그는 자랑할 만한 학벌도 없고,디자인도 공부하지 않았다.요즘 인터넷 세상에서는 보기드물게 “사람의 만남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직관으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이렇듯 사람의 능력을 중시하는 점이 성공의 한 요인으로 보인다.지칠 줄 모르는 투지와 부지런함이 밑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그는 로만손을 정상에 올려 놓은 뒤 고려대와 서울대의 경영대학원을 마쳤다.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직책도 갖고 있다.그는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하소연 대신에 “개성공단 입주와 해외시장 개척이 한국의 중소기업이 제2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1) 간월도와 웅도 어리굴젓 맛 대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1) 간월도와 웅도 어리굴젓 맛 대결

    지방자치단체마다 특산품 홍보에 잔뜩 열이 올라 있다.이런 마당에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인지도가 높은 고부가가치의 특산품이 있다면 오죽 좋으랴.충남 서산 어리굴젓이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 아닐까.오랜 역사와 전통을 밑천삼아 팔아먹을 수 있는 ‘해양지적소유권(海洋知的所有權)’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분다고 느끼는 순간,어리굴젓 생각이 간절해졌다.뜨끈뜨끈한 흰쌀밥에 맵짠 어리굴젓을 올려서 먹는 맛이란! 그런 충동 때문이었을까.뜬금없이 천수만 간월도로 향했다.홍성나들목에서 불과 15분 거리.천수만 간척지에 포함돼 더 이상 섬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촌에 돌아와 살면서 ‘해양벤처’를 주도하고 있는 유명근(섬마을어리굴젓 대표)씨는 “어리굴젓이 없었더라면 아마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을는지 모르지요.” 한다.우리에게 어리굴젓은 바로 이런 것,가히 ‘마력의 혼불’이 아니겠는가. 제조 과정을 물으니 대답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시범부터 한다.굴과 소금을 버무려 옹기에서 숙성시킨 강굴을 함지박에 쏟아 놓는다.태양초를 물에 개어 만든 고춧가루 범벅을 붓고 손으로 버무린다.손맛이 중요하다.이걸로 어리굴젓 만들기는 끝. 너무 단순해 재설명이 필요없다.의문이 풀린다.뒷맛이 개운한 것은 들어가는 재료가 소금과 고춧가루뿐이라는 데서 비롯된다.재료가 많으면 맛은 오묘할지 몰라도 뒷맛의 담백함은 놓치기 쉽다. ●간월도 굴은 알보다 털날개가 커 이곳의 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왜 어리굴젓 앞머리에 ‘간월도’가 붙어야 제격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쉽게 이해된다.굴은 몸체인 알과 날개부분으로 이루어진다.그런데 간월도굴은 알보다도 털날개가 크기 때문에 고춧가루로 버무릴 때 양념이 스며드는 면적이 커서 한결 맛이 좋다.간월도 주변은 돌보다 개펄이 많은데 자잘한 돌에 붙어 살던 굴이 2년쯤되면 떨어져나가 펄 속에서 자란다.‘토굴’이니 ‘토화’니 하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으니 깊은 수심에서 크게 키운 양식굴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소금만큼은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소금이 맛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말이다.중국 소금을 쓰면 어김없이 쓴맛이 난다.이곳에서는 천수만 건너 태안군 곰섬의 소금을 들여다 쓰는데 최소한 1년 이상을 묵히며 간수를 뺀다.예전에는 소금을 뜸뿍 쳐서 아예 ‘짠젓’이라 불렀으나 냉장고 덕분에 한결 싱거워져 저염도를 요구하는 현대인의 입맛에도 맞다. 천수만이 방조제에 가로막히면서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몰려들던 ‘천혜의 만(灣)’이 이제는 새들이 몰려드는 ‘천혜의 들판’으로 변해 상전벽해를 실감하게 한다.예전에 조기떼가 몰려들어 우는 소리에 잠못이루던 천수만에 이제는 철새들이 몰려와 임무교대를 하였다.바닷물고기는 사라지고 하늘새가 공간을 대신 차지한 셈.천수만 민중의 삶도 급변해 대를 이어 고기잡이를 하던 어민들이 횟집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어로수입보다 관광수입이 훨씬 벌이가 좋다.어리굴젓만으로는 생계 유지도 어려워 근동 몇 집이 어울려 이를 상품화,내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간월도에서 건너보이는 창리 포구에는 지금도 ‘조기의 신’ 임경업 장군을 모신 영신당이 있어 해마다 정초면 북소리 드높이며 배치기 소리에 맞춰 영신제를 올린다.간월도 건너편의 안면도 황도에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황도붕기풍어놀이’가 전승되고 있으니,간척으로 고기는 줄었어도 오래 지속돼 온 천수만의 민속문화만은 잔존해 그 옛날의 영화를 웅변해 준다. ●생산 주체인 여성 주도의 삶 간월도는 수산의례가 남아 있는 곳이어서 관심이 배가된다.정월 대보름에 아낙들이 펼치는 ‘굴부르기 놀이’가 그것.이 의례는 생산 주체인 여성 주도의 문화유형이다.굴 채취는 물론이고 억척스럽게 머리에 이고 홍성 광천장까지 판로 개척에 나섰던 여성들의 힘이 굴부르기란 축제로 압축되어 유형화한 것이다.굴을 부르는 주술적 의례의 주도권을 여성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섬의 경제 행위에서도 여성의 역할과 권한이 막강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그래서 “간월도의 남자들은 여자들 덕에 놀고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어리굴젓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북쪽의 대산읍 웅도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까닭이 있다.웅도어리굴젓 또한 다른 독특한 맛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맛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웅도는 물때를 잘 맞춰서 가야 한다.경기도 화성의 제부도처럼 물때에 따라서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기 때문이다.웅도가 자리잡은 가로림만은 태안반도에서 그나마 오염되지 않은 곳.대호방조제,석문방조제,이원방조제 등으로 태안반도의 지도가 바뀌는 와중에도 가로림만은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남았다.간만조차가 심해 해남의 울돌목과 더불어 조력발전이 늘상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웅도에도 ‘수산벤처인’이 있다.체험어장 등을 운영하는 김종희씨가 그 대표격이다.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는 ‘해수김치’도 개발해 내고 웅도 어리굴젓의 명맥도 이어간다.간월도 어리굴젓이 ‘김장김치’라면,웅도 것은 ‘겉절이김치’쯤 될까.잘게 자른 쪽파와 생밤,고춧가루 등을 넣어서 즉석에서 먹거나 숙성시켜 먹는다.같은 서산 관내에서도 어리굴젓 제조법이 전혀 다른 것은 해양문화의 지역적 다양성이 매우 중층적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생굴을 바로 담근 것이라 맛이 신선하다.필자 같은 도시민은 대개 갓 담은 젓갈을,현지인들은 조금 발효된 젓갈을 선호한다.사람의 입맛 기준치도 문화적 다양성만큼이나 중층적이다. 간월도와 웅도의 젓갈 맛이 다름은 단지 제조법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광해군 11년(1619)에 서산지방의 풍물을 기록한 한여현의 호산록(湖山錄)을 보면,‘화변과 마산(지금의 간월도 근역)에는 석화가 가을과 겨울철에 여물고 2∼3월에 사라진다.대산과 지곡(지금의 웅도 근역)에는 3∼4월에 여물고 5월에 사라지니 가히 남북 갯벌이 같지 않다.’고 하였다.간월도와 웅도의 갯벌이 다르고 같은 굴이라도 생태적 환경조건에 따라 예전부터 변별성이 있었음을 이르는 말이다.그러한즉 앞으로는 두루뭉술하게 ‘서산 어리굴젓’으로만 부르지 말고 ‘간월도 어리굴젓’이라거나 ‘웅도 어리굴젓’으로 불러 양자의 개미(個味)와 특성을 인정해 줄 일이다. 사실 웅도의 명물은 어리굴젓만이 아니다.호산록에 “홑옷 입은 가난한 어민들이 얼음을 깨고 굴을 따며 눈을 쓸고 낙지를 잡는데,맨발로 언 갯벌에 들어가 천번 만번 죽을 고생하여 관청에 헌납하면 관리들은 인정도 없이 해산물을 더 배정한다.”고 했듯 예로부터 낙지 잡이가 성행했다.지금도 인근 중왕리와 더불어 낙지가 엄청 잡히는 곳으로 꼽힌다. 남도의 세발낙지와 달리 색깔이 붉고 선명하다.초여름부터 11월 무렵까지 잡히는데,맨손어업,혹은 주낙으로 잡는다.맨손으로는 한 사람이 한번에 40∼50마리는 거뜬하고,주낙이라면 한 물때에 200∼300마리까지 잡아 올린다.마리당 4000원쯤 받으니 하루 벌이가 10만∼20만원에서 운 좋은 날은 70만∼80만원까지 치솟을 때도 있다.그래선지 웅도는 인근의 알아주는 부촌이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어린 낙지가 스물스물 펄 밖으로 기어나온다.이때 잡은 낙지를 넣고 ‘밀국낙지’를 끓여냈다.아예 박속에 낙지를 넣어서 끓인 ‘박속낙지’도 있다.추억의 어촌음식인데 이제는 서울 등 대처의 대중음식점 메뉴로까지 변신했다.웅도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소달구지 전통도 이어오고 있다.‘물펄’이라 경운기 바퀴가 빠지는 것도 이유겠지만 전래의 소달구지를 이용해 저물 무렵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일명 ‘달구지마을’이란 웅도의 닉네임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보리 익을 무렵 ‘밀국낙지’ ‘박속낙지’ 별미 그러나 낙지가 지천인 천혜의 가로림만도 이상 징후를 보인 지 오래다.인근의 대규모 간척으로 만에 유입된 조류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는 탓에 펄이 사라지고 있다.펄이 사라지자 자갈밭이 드러나고,해변의 산이 파이고,경관 자체도 변했다.지천에 널렸던 갯지렁이도 거지반 사라지고 없다.갯지렁이가 사라졌다는 것은 가로림만의 생태환경에 적신호가 울렸다는 뜻이다.‘부풀’이나 ‘오리밥’으로 불리는 작은 조개류는 낙지의 먹을거리여서 일명 ‘낙지밥’으로도 불렸으나 15년쯤 전부터 이 조개가 사라지면서 낙지가 줄어 이제는 어과도 예전 같지 않다.미역,우뭇가사리,청각,톳 따위도 지천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황금산을 오른다.태안반도를 굽이쳐 돌아가며 경기만으로 치고 올라가는 해류가 흐르는 황금곶(串).서산 남쪽의 천수만 창리에 영신당이 있다면,웅도 북쪽 방향 끄트머리인 독곶에는 임경업 장군의 신당을 모신 황금산이 있다.남쪽 천수만에 간월도가 있다면 북쪽 가로림만에 웅도가 있는 격이다.일망무제로 태안반도에 북쪽 바다가 펼쳐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임해공단의 굴뚝과 대산항이 먼저 눈에 든다.미려한 사구가 펼쳐진 독곶은 공단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밥상머리에서 비벼 먹는 어리굴젓의 입맛 내림만 의연할 뿐,바다삶의 조건이 이처럼 곳곳에서 급변하고 있으니,이런 기록이나마 남겨두지 않으면 후세가 그 단절의 역사를 어찌 알 것인가.
  • [儒林 속 한자이야기] (36)

    儒林 173에는 布衣(베 포/옷 의)가 나온다.布衣는 ‘베로 지은 옷’,‘벼슬 없는 선비’를 이른다.포의는 庶民(서민)의 옷으로,서민들은 노인이 되기 전 비단 옷을 입을 수 없다는 데서 온 말이라고 한다. 布는 본래 ‘父’(부/보)와 ‘巾’(수건 건)를 합하여 ‘베’를 뜻하는 글자이며,경우에 따라 ‘널리 알리다.’‘베풀다.’의 뜻으로도 쓰인다.‘布告’(포고:고시하여 널리 일반에게 알림),‘布施’(보시:남에게 물건을 베품),‘布衣寒士’(포의한사: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에 쓰인다. 衣는 웃옷,즉 ‘저고리’를 본뜬 글자이다.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옷을 衣라고 함은 사람이 옷에 의지하기 때문이며,웃옷은 衣(의)라 하고,아래옷은 裳(치마 상)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衣자가 들어간 말에는 ‘衣服’(의복),‘衣食住’(의식주),‘衣裳之治’(의상지치:법을 정할 필요없이 인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을 교화함) 등이 있다. 史記(사기) ‘項羽本紀(항우본기)’에는 이런 故事(고사)가 전한다.秦(진)나라의 도읍 咸陽(함양)에 입성한 項羽(항우)는 3세 황제 誅殺(주살)과 阿房宮(아방궁) 全燒(전소),始皇帝(시황제)의 무덤 해체,막대한 金銀寶貨(금은보화) 掠取(약취),부녀자 유린 등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았다.側近(측근)인 范增(범증)을 비롯한 신하들이 부당성을 極諫(극간)하였으나 항우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랴.’라고 하면서 默殺(묵살)하였다. 항우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 彭城(팽성)으로 遷都(천도)하여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功德(공덕)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한다.그러나 關中(관중)지역을 차지한 劉邦(유방)에게 대패하여 천하를 잃고 말았다.여기서 유래한 錦衣夜行(비단 금/옷 의/밤 야/다닐 행)은 ‘아무 보람 없는 행동을 자랑스레 함’을 뜻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布衣를 자처한 사람 가운데 중국 춘추시대의 介之推(개지추)가 있다.그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19년간 망명생활을 한 公子(공자) 重耳(중이:文公)를 줄곧 수행하였다.그러나 그들의 망명생활에 終止符(종지부)를 찍는 朗報(낭보)가 왔다.主君(주군) 중이가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이 소식과 함께 주군을 따르던 무리들은 꿈에 부풀어 황금빛 미래를 그릴 뿐,과거의 쓰라린 기억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배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누더기와 쪽박을 모두 강물 속으로 던졌다.깜짝 놀란 개지추는 그들을 挽留(만류)하며,“우리의 同苦同樂(동고동락)이 이날을 위해서였단 말이오? 어려웠던 과거를 쉽게 잊는 사람은 행복을 논할 자격이 없소.”라고 개탄했다.개지추는 그 길로 벼슬의 미련을 접고 고향 길을 찾았다. 개지추의 예견대로 論功行賞(논공행상)에 눈먼 측근들은 나라와 백성의 安危(안위)보다 일신의 영달에 혈안이었다.민심은 離反(이반)되고 국가 財政(재정)은 枯渴(고갈)되어 갔다.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진문공은 이 難局(난국)을 타개할 인물은 개지추 뿐이라는 判斷(판단)에서 개지추를 찾았지만 그는 끝까지 綿山(면산)에서 布衣之士(포의지사)로 생을 마감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어린이 책꽂이]

    ●팅통탱,마법의 냄비(콜린 프로메이라 글·세실 위드리시에 그림,조현실 옮김)가난한 할머니의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문밖으로 ‘팅 통 탱’ 뛰어나가 우유와 빵을 가득 담아오는 마법 냄비의 이야기.덴마크 동화에서 따왔다.여러 재료를 오려붙인 콜라주 기법의 그림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반딧불이.8000원.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신형건 옮김)‘9·11테러’로 지금은 사라진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를 가느다란 줄 하나에 의지해 건넌 프랑스 젊은이 필립 프티의 실화(1974년).올해 미국의 칼데콧 상과 보스턴 글러브 혼북 상을 받았다.보물창고.9000원. ●낮에 나온 반달(윤석중 시,김용철 그림)‘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으로 시작하는 아동작가 윤석중의 동시 한줄 한줄에다 풍부하고 따뜻한 색감의 그림을 이어붙였다.눈을 감고 누워있는 아이의 꿈속으로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찾아오는 장면이 애잔함을 자아낸다.창비.8800원. ●구성애 아줌마의 초딩아우성(구성애 글,리갤러리 그림)성교육 강사로 유명한 지은이가 인터넷 홈페이지(9sungae.com)에 올라온 초등학생들의 질문과 상담 내용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내용을 뽑아 만화로 엮었다.올리브M&B.1만원.
  • [월드이슈-중국 고도성장의 그늘] “베이징서 살면 수명 5년 단축”

    [월드이슈-중국 고도성장의 그늘] “베이징서 살면 수명 5년 단축”

    중국이 고도성장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평균 9%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했으나 환경 문제를 등한시,중국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다.강은 썩고 공기는 혼탁해져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순환계 질병을 유발하는 온상이 됐다.의료시스템도 형편없다.몸이 아프지만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시장은 경쟁과 효율성을 좇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빈부격차 등에 따른 환경오염과 건강 문제는 ‘성장의 단맛’에 철저히 가려져 있다. ●죽음의 강으로 전락한 생명의 젖줄 지난 7월 말 중국 7대 강 가운데 하나인 후아이강에선 수백만마리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133㎞에 이르는 강의 표면은 짙은 갈색의 띠를 이뤘다.물고기뿐 아니라 주변의 야생동물도 참화를 면치 못했다. 중국 환경보호부(SEPA)의 팬위 부부장은 “너무 많은 물을 끌어 써 강이 자체 정화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설명했다.환경보호주의자들은 강 주변의 공장들이 폐기물을 거르지 않고 강에 그대로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SEPA는 중국의 7대 강 가운데 5개 강의 수질이 인체접촉에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도시화에 따른 가정 쓰레기도 주요한 오염원이다.버려지는 깡통이나 유리병,플라스틱,신문 등이 연간 1억 6800만t에 이른다.이 가운데 20%만 제대로 처리되고 나머지는 방치된다.매일 쏟아지는 하수 37억t 가운데 절반만 정상 처리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광둥성의 작은 마을 상바의 사례를 들었다.농업에 주력하던 이곳 주민은 3300명.주변에 광산이 들어서면서 강물이 오염되고 먼지가 마을을 뒤덮었다.논에 물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유독성 물질이 강에 유입됐고 농업 기반을 잃었다.지난해 사망자 31명 가운데 14명,올 상반기 11명 가운데 5명이 암으로 죽었다.마을 사람들은 광산 탓으로 돌린다.주변에서는 상바를 ‘암의 마을’로 부른다. ●죽음 부르는 대기중 산화물 1999년 당시 주룽지 총리는 “베이징에서 일하면 목숨이 최소한 5년은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지금 상황은 더 나빠졌다.세계은행은 전 세계의 가장 오염된 도시 20개 가운데 중국의 도시가 16개나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의 70%를 석탄연료로 충당하기 때문이다.일반 가정의 난방 역시 석탄에 의존한다.대기 중에 방출되는 아황산 가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중국 전역의 25% 지역에서 산성비가 내린다.SEPA는 중국 300대 도시에서 대기오염을 점검한 결과,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적합한 곳은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승용차 배기가스 문제가 중국에선 이제서야 이슈로 등장했다.중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상하이에서 100만대의 차량 가운데 70%가 옛 유럽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지방정부의 개혁이 환경 개선의 관건 농지 침식과 삼림 황폐로 사막화가 진행돼 베이징에서도 모래폭풍이 일 정도다.중국 정부는 벌목 금지와 대대적인 식목으로 환경 개선에 나섰으나 초지와 농지는 계속 줄고 있다. 중국은 5개년 환경보호계획에 따라 1990년대 GDP의 0.8%이던 환경 예산을 2005년까지 1.3%로 올리기로 했다.그러나 세계은행이 권고한 2%에는 못미친다.특히 지방 환경보호청의 월급과 연금이 성장 위주의 지방정부에 의존,환경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한다.상·하수도를 관장하는 건설부와의 협조도 미미하다. ●붕괴되는 의료시스템 현재 농촌지역에서 의료보험을 갖고 있는 중국인의 비율은 10% 정도다.도시에서도 40%에 불과하다. WHO는 중국의 공공진료 시스템이 세계 191개국 가운데 141위라고 밝혔다.1인당 국민소득이 중국의 절반인 인도는 112위에 랭크됐다.세계은행은 지난 20년간 중국인 4억명이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수백만명이 진료비가 없어 죽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문일 기자 mip@seoul.co.kr
  • 차승원·장서희 주연 ‘귀신이 산다’

    17일 개봉하는 ‘귀신이 산다’(제작 시네마서비스)는 흥행메이커 김상진 감독과 배우 차승원이 또 한번 콤비를 이룬 코미디물. ‘광복절 특사’(2002년) 이후 2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감독은 귀신과 인간이 한 집에서 대치한다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난한 홀아버지 밑에서 셋방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필기(차승원)는 꼭 집부터 사라던 아버지의 유언을 마침내 받들었다.밤마다 대리운전을 해가며 모은 돈으로 바닷가 한적한 저택의 주인이 된 것.그러나 기쁨도 잠시.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는가 싶더니 집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귀신(장서희)이 나타나 그를 몰아내려고 갖은 협박을 한다. 황당한 이야기라며 처음부터 마음을 닫아버릴 관객들을 의식해 영화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효과적 장치를 고안했다.주인공이 집을 사기까지의 애환과 곡절이 도입부에서 충분히 압축설명되는 것.그 과정을 지나면서 필기를 향한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연민과 동조로 순화된다. 귀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그에 맞서 필기는 혼자 필사적인 ‘원맨쇼’를 한다.굿판을 벌이는 등 자잘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들과 차승원의 일인기로 영화는 거의 절반이 채워지다시피 한다. 동어반복의 지루함을 느낄 중반 즈음 여자귀신 연화의 본격 등장으로 드라마는 새 국면을 맞는다.교통사고로 죽은 연화가 남편을 기다리며 옛집에 머물고 있는 사연을 들은 필기는 그녀를 도우며 ‘동거’하기로 마음을 바꾼다.둘의 화해를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갈등장치가 단순한 상황 코미디를 극복하는 처방이 됐다.악덕 부동산업자(진유영)의 위협에 맞서 연화를 위해 집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필기의 모습이 제법 묵직한 감동을 길어올린다.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 컴퓨터그래픽 덕분에 볼거리도 화려한 코미디가 됐다.그러나 지나치게 장황한 설명이 감상의 감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흠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i.kr
  • [세상에 이런일이]가슴 보고 후궁 뽑고

    |루드지드지니 왕립촌(스와질랜드) 연합|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젊은 여성 2만여명이 30일 음스와티 국왕의 후궁으로 뽑히기 위해 왕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놓고 춤을 추는 경연을 벌인 결과 ‘미의 여왕’ 출신인 16세의 소녀가 국왕의 12번째 부인으로 최종 간택됐다.올해 36세의 국왕은 이처럼 매년 왕실 축제를 통해 신부를 뽑는다.전통수호론자들은 이 행사가 오래된 문화 행사의 하나라고 옹호한다.그러나 음스와티 국왕은 사하라사막 이남에서는 유일의 절대 군주로 이미 부인 11명과 약혼자 1명을 두고 있으며 가난,가뭄,에이즈로 고생하는 나라에서 너무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음스와티 국왕은 표범 가죽으로 된 전통 의상을 입고 귀빈석에서 이 여성들의 행렬을 보았으며 측근이 나중에 이를 다시 보려고 비디오로 촬영하자 빙그레 웃었다는 것이다. 한편 스와질랜드는 최근 음스와티 국왕을 세계 10대 독재자로 언급하는 내용의 보도를 일축했다.
  •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중략)” 한국 최초의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1907∼74). 시인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잃어버린 조국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시를 통해 간절히 찾아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노래했다.시작생활 50여년 동안 우리의 산과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켜 여느 시인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태어났던 전북 부안군은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 불릴 만큼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성하고 경관이 빼어난 지역이다.지평선까지 펼쳐지는 황금벌판,낙락장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등성이,일몰이 장관인 격포와 해창 앞바다…. 그가 목가시인,자연시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자양분은 곧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부안읍 선은리 ‘신석정 고택 청구원(靑丘園)’은 시인이 외로움 속에 첫시집 ‘촛불’과 두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펴낸 산실이다.1934년부터 전주로 이사했던 54년까지 20년 동안 시작활동을 했던 이곳은 당시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석정은 처녀시집 ‘촛불’을 펴내면서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릉,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날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전했다.청구원은 앞은 논과 밭들이 이어져 시원하게 툭 터져 있고 멀리 상소산이 보이는 정남향의 아담한 초가삼간이었다.마당이 넓어 시인이 직접 심고 가꾼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청구원에서 출생해 중학교 시절까지 이곳에서 자란 시인의 셋째아들 광연(68·전 동아일보기자)씨는 “아버님은 틈이 날 때마다 마을 뒷산에 올라 커다란 버드나무 밑에서 시상에 잠기셨다.”고 회고했다.또 집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상소산에서 멀리 서해로 이어지는 평야지대와 바다를 응시하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최근 찾은 청구원은 양옥집과 창고에 가려져 초라한 모습이었고,주변 경관도 완전히 변했다.그림처럼 아름답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은 4차선 도로건설과 주택개량사업으로 도시화되고 있다.지난 91년 시비가 세워진 변산면 해창 해변공원 앞바다는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새만금간척사업이 한창이다. 1907년 부안읍 동중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8살때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인근 선은동으로 이사했다. 선은동은 석정이 꿈많은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우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농사를 지으며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닦아갔다.18세이던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고향의 자연에서 얻은 시편들을 발표했다. 1930년 서울로 올라가 중앙불교전문강원(동국대 전신)에서 1년간 불전을 공부하면서 문예작품 회람지 원선(圓線)을 만들었다.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시문학 동인이 된 시인은 당시 시단의 거두였던 정지용,이광수,한용운,주요한,김기림 등의 문인을 만나게 된다. 그해 어머니 상을 당한 석정은 김기림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물려받은 가난과 싸우며 문학의 길을 계속 걸었다.낙향 3년 만에 조촐한 집을 장만해 청구원이라 이름 붙였다. ●시인은 키가 크고 술을 즐긴 멋쟁이 해방 이후 1947년에는 일제 말기 숨막혔던 상황속에서 악몽 같은 세월을 견디며 쓴 32편을 묶어 ‘슬픈 목가’를 펴냈다.이 무렵 석정은 김제 죽산중,부안중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72년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내 무덤에 태산목을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자연에 귀의했다. 허소라(68·군산대 명예교수)씨는 “고인은 키가 훤칠하고 이국적인 얼굴에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술을 즐겼던 멋쟁이였다.”면서 “목가시인이기 전에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입회인이 되고자 했던 올곧은 선비였다.”고 말했다. 석정 작고 10주기인 1984년 후학들이 ‘석정문학회’를 결성해 동인지를 발행하고 있다.올해는 시인 작고 30주기를 맞아 추모문학제가 열렸다.지난 3일부터 오늘까지 시인의 친필 시화와 서예,유품,유영이 전시되고 시세계를 재조명하는 문학특강과 세미나가 개최됐다.청구원과 해창시비를 순회하는 문학기행 행사도 가졌다.30주기 추모 기념우표도 발행됐다.같은 시기에 부안문화원에서는 ‘석정 변산시인학교’와 기념백일장,석정시 낭송회,추모 문학강연이 열려 그를 추모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할리우드와 통하는 中

    할리우드에서 중국 출신 영화인들의 활약이 일취월장하고 있다.이들은 13억 인구의 본토를 비롯해 홍콩 그리고 타이완 출신 등 다양하다. 중국 본토 출신의 경우 엄격한 검열이 시행되는 사회주의의 한계에도 불구,천카이커 감독은 1993년 ‘패왕별희’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함께 칸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50여년 동안 중국 전통 경극 배우로 활동한 2명의 남자가 엮어내는 애증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천 감독과 베이징 영화학교 동기인 장이머우는 돈 많은 양조장 주인의 첩으로 들어간 생활력 강한 여인의 사연을 다룬 ‘국두’로 90년 칸 황금종려상 후보,91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192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가난한 집 규수가 갑부집 세도가의 4번째 첩으로 들어갔다가 주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벌어지는 첩들끼리의 치열한 암투에 끼어 들게 된다는 ‘홍등’으로 91년 베니스 은사자상과 92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추천됐다.이러한 성과를 등에 업고 히로인역의 궁리는 현재 동양권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대접 받고 있다. 청룽(성룡)은 단연 홍콩을 상징하는 국제적 배우.신작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는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성공시키겠다는 영국 발명가의 목표가 성사되도록 헌신을 다하는 중국인 라우역을 맡아 액션 오락극의 잔재미를 부추겨 주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 출신으로 홍콩에서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히트작을 공개해 8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홍콩 누아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우위썬은 할리우드로 진출해 존 트래볼타의 ‘브로큰 애로’를 비롯해 ‘페이스 오프’ ‘윈드 토커’ ‘미션 임파서블2’ 등의 메가톤급 히트작을 연속 발표해 할리우드 1급 감독군에 합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양쯔충은 ‘예스 마담’ 등으로 80년대 홍콩 여형사 드라마 붐을 주도했던 주역.007 제임스 본드 ‘네버 다이’에서 3차 세계 대전을 유발 시키려는 언론 재벌의 음모를 제압하는 중국 보안대 소속 여형사 역으로 캐스팅돼 성적 매력만을 내세웠던 백인 여배우들의 본드걸 이미지에서 탈피해 남성과 대등한 관계를 이루어 가는 새로운 본드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취권’의 감독 겸 무술을 담당했던 위안허핑은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날아 오는 총알을 피하거나 고층 빌딩을 자유자재로 뛰어 넘는 호쾌한 액션 장면만을 특별 지도하는 무술 감독역을 맡아 특수 효과와 쿵후를 접목한 사이버 액션을 고안해 냈다.리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장이머우 감독의 신작 ‘연인’의 주인공 장쯔이는 한때 김희선의 캐스팅 설이 나돌던 스필버그 제작의 ‘게이샤의 추억’의 주역으로 최종 캐스팅됐다. 중국 영화인들이 세계 영화가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할리우드에서 발간되는 영화 전문지들은 여러 가지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그중 쿵후로 단련된 능수능란한 몸놀림,영국 식민지 덕분에 영국식 전통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언어적 강점,그리고 한때 세계 4대 문명을 주도했던 거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화려한 문화 유산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 등이 어우러져 중국 신드롬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 대입개선안 공청회 “고교등급제 대책 뭔가”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이 발표된 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부활 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 중강당에서 첫 공청회가 열렸다.참석자들은 개선안의 큰 틀에서는 공감하면서도 사실상 고교등급제 실시,본고사 부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론화된 고교등급제 이날 공청회에서는 그동안 대학과 고교 등에서 ‘쉬쉬’해오던 고교등급제에 대한 토론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고교등급제는 대학들이 학생을 뽑으면서 고교별 실력 차이를 인정해 고교를 비공식적으로 등급을 나누고 이에 따라 별도의 점수를 주는 제도다. 서울현대고 강익수 교사는 “고교등급제는 대학이 점수 위주 선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교육부는 입학사정자료를 백서로 만들어 공개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회장도 “고교등급제를 실시하면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아닌 환경이나 조건을 보고 학생을 선발하고,농어촌 학생과 가난한 가정의 학생이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면 경희대 이기태 입학관리처장은 “고교간 학력 격차를 해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등을 두지 않으면 학생부의 실질 반영률을 높이기 어렵다.”고 밝혀 대학들이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이견 드러낸 수능등급제 수능등급제와 관련,참석자들은 극심한 점수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데는 뜻을 같이 했지만 등급의 폭이나 고교 학력저하 우려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박경양 회장은 “수능9등급은 여전히 예민한 변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등급을 더 완화시켜 5등급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교총 홍생표 교육정책연구실장은 “9등급제로의 전환은 바람직한 방향이며 장기적으로는 수능을 자격고사나 학업성취도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능등급제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내신반영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교육부의 전망에 대해서도 토론자들은 부정적이었다.현대고 강익수 교사는 “지금처럼 고교교사의 업무가 과중한 상태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평가를 상세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부 기록이 형식적으로 기재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박경양 회장은 “내신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교사에게 학생평가 권한을 부여하고 평가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들 본고사 실시할 것”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수능의 변별력이 약해지고 대학들이 고교 내신을 믿지 못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본고사가 부활될 것이라며 걱정했다.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이철호 부소장은 “대학 서열구조는 그대로 두고 내신과 수능을 모두 등급제로 바꾸면 대학들은 변별력을 이유로 대학별고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육과시민사회 강태중 공동대표는 “논술·면접은 선다형 지필고사 등 다른 유형의 평가보다 수험생과 평가자의 ‘문화적 코드’가 얼마나 맞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계층간 격차는 대학 입학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모른 체하고 넘어갈 사안도 아니다.”며 교육부의 무책임을 질책했다. 경희대 이기태 처장은 “내신 비중을 늘리려는 기본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고교간 학력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수능등급제의 약점을 극복하려면 대학들이 독자전형을 개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부분의 대학들이 사실상 본고사 성격의 대학별고사를 실시할 것을 암시했다.교육부 주최로 열린 공청회는 오는 10일 부산,14일 대전,15일 광주 등에서 세 차례 더 열릴 예정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기초의원 의정활동 ‘내실 다지기’ 구슬땀

    기초의원 의정활동 ‘내실 다지기’ 구슬땀

    최근 숨가쁘게 변화하는 중앙 정치권을 반영한 듯 서울시내 기초의원들도 의정활동이 각양각색으로 바뀌고 있다.이전까지 주류를 이루던 ‘동네정치는 사람장사’라는 주먹구구식 분위기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물론 아직까지도 마당발형 기초의원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하지만 특정분야에서 전문가가 직접 해당 분야를 맡거나 인터넷정치를 시도하는 등 자치구 의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본업과 의정활동 잇는 ‘전문가형’ 17년 동안 잘나가는 은행원이었던 윤갑수(정릉4동) 성북구의회 의장은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금융통이다.은행에서 예산 담당업무까지 거쳤기 때문에 초선때 이미 예산결산위원장을 맡았다.윤 의장은 “예산과 관련된 웬만한 구정질의는 자료 없이도 한다.”면서 “대학과 은행에서 배운 이론과 실무가 의정활동의 숨은 조력자”라고 털어놨다. 건축사인 유중공(갈현1동) 은평구 의원도 본업을 십분 발휘한 사례.현재 재무건설위원장인 유 의원은 구 건축심의 위원과 도시계획심의 의원까지 맡고 있다.유 의원은 “구에서 사업을 추진하면 일단 설계 도면부터 살피며,누가 용역을 수주했는지 지역 현안에는 적합한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본다.”면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중간에 사업내용을 완전히 바꾸면 막대한 예산을 낭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주특기를 살려 갈현1동 공원 2곳의 현대화사업에서 담당 공무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 시정했다.청소년들의 우범지대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공원 내부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설계도를 조정했다.여기에 건축사의 관점에서 인근 주택들과 공원의 조화도 꾀했다. ●속속까지 훑는 ‘현장밀착형’ 이종학 (독산2동) 금천구 의회 의장은 현장지킴이를 자청한다.직접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각종 현안을 처리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이다.최근에는 서울시에서 40여억원을 지원해 추진하는 치매노인병원의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이미 몇 군데를 돌아봤지만 군사지역과 개발제한에 묶여 있어서 부지 확보가 쉽지만은 않다.이 의장은 “관할 동사무소가 병원 부지로 추천하더라도 막상 가 보면 개발제한구역인 경우가 많다.”면서 “꼭 현장을 주시하면서 법적인 근거까지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곽판구(공항동) 의원은 추경예산 편성을 위해 지난 1일부터 열린 강서구 의회의 임시회에 앞서 현장탐방에 나섰다.직접 현장을 누비면서 구청의 사업이 정말 타당한가를 몸소 확인하고 싶어서다. 새 공원에 투입되는 예산이 적절한지 파악하기 위해 일단 동료 의원들과 현장에 나가봤다.탁상공론으로 그칠 뻔 했던 사안을 눈으로 확인하고 의원들과 토론까지 거친 뒤 최종 의견을 취합했다.곽 의원은 “지역 현안은 주로 도로나 하수,공원녹지가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현장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해당 부서가 내 놓은 자료만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인터넷 정치를 꿈꾼다” 소장파 기초의원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이 의정활동을 펼치는데 효율적인 도구로 자리매김했다.이들은 법률적인 근거를 확인하거나 다른 자치구의 사례를 비교하기 위해 자료탐색 수단으로 인터넷을 애용한다.아직까지는 자신들을 홍보 매체로 활용하기보다는 조사를 위한 자료창고로만 활용하는 편이다. 70년생인 김용석(창4동) 도봉구 의원은 아파트단지 사이에 추진되는 모텔을 저지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국회 홈페이지를 방문해 법적인 근거를 살피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모텔 부지는 상업지역이라서 신축이 가능하지만 주택에서 200m이내에 위치하면 제한할 수 있다는 일산·분당의 사례를 접했다.구 건축위원회는 모텔 신축에 대한 허가를 반려했다. 이미성(돈암1동) 성북구 의원도 인터넷을 자주 이용한다.사회복지사인 이 의원은 최근 기초단체의 전체예산 가운데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다.인터넷으로 광주광역시와 각종 시민단체의 홈페이지 등을 서핑하면서 사례를 모으고 있다. ●마당발도 업그레이드 권선복(발산2동) 강서구 의원은 온라인으로 주민들과 접촉하는 ‘업그레이드 마당발’이다.기초의원으로 드물게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된다.여기에 접수된 민원사항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다.방명록에는 지역 주민들이 남긴 크고 작은 사안들이 즐비하다. 권 의원은 “커뮤니티를 통해 딱한 사정을 접하면 사회복지제도 자체를 몰라 이용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면서 “가난한 편모·편부 슬하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받도록 주선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인터넷 커뮤니티나 알음알음으로 딱한 사연을 접하면 이들에게 구청의 사회복지제도를 소개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함께 이용한 경우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사설] 서민가계 파탄 이대로 방치할건가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파탄에 직면하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고 한다.지난 5월 말 현재 전기료를 못 내고 있는 가구는 89만여가구로 외환위기 때보다 1.5배 이상 늘어났는가 하면,6월 말 현재 가정용 상수도요금 연체율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하면서 최상 최대치를 기록했다.전국 인문계 공립고교의 수업료 체납액도 1년새 12%나 늘었고,학원 수강생은 지난해보다 15% 이상 줄었다.올 들어 7월까지 기업의 도산 등으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근로자는 6만여명,체불임금은 2626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서민가계의 파탄은 이혼과 가정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최근 3년 사이에 이혼이 40%나 늘어난 가운데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임현진 서울대 교수가 어제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 사회가 해체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특히 빈곤층의 이혼은 가난의 대물림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위 당국자들은 38%에 이르는 수출 증가율,5%를 웃도는 성장률,200억달러를 넘어선 경상수지 흑자 등 거시 지표를 들먹이며 우리 경제가 견실하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최근 7년새 상위층 20%의 평균소득이 하위층 20% 평균소득의 4.81배에서 5.70배로 늘어난 사실에서도 확인되듯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에는 눈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것 같다.당국이 지표에 현혹돼 서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착시현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그 결과,서민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한결같이 생색내기용에 그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서민들의 고단한 삶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빈곤 탈출의 지름길은 일자리 창출인 만큼 기업이 투자할 수 있게 애로요인을 앞장서 제거해줘야 한다.서민가계에 훈기를 불어넣지 못하면 어떤 명분을 대든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美 부자도시 1위 새너제이

    인터넷 기업들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의 중심도시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가 미국에서 가장 부자도시인 것으로 나타났다.새너제이머큐리뉴스는 지난 26일 발표된 인구통계국의 결과를 분석,29일 이같이 보도했다. 새너제이의 2003년 한 가구당 수입은 7만 240달러(약 8400만원)다.이는 2위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5만 9459달러),3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5만 7833달러)보다 1만달러 이상 많은 수치다.미국의 평균 가구 수입은 4만 3318달러다. 특히 새너제이의 가구당 평균수입은 지난 2000년 이후 6556달러나 줄어들었음에도 1위를 차지,눈길을 끌었다.새너제이는 부자도시이면서도 빈곤층 비율이 8.2%에 불과,빈곤율에 있어서 조사대상 68개 도시 중 하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가구당 평균 수입이 2만 2978달러다. 새너제이의 부의 원천은 실리콘밸리다.지식산업이 몰려 있어 고학력 인력이 모이고 이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다.새너제이의 25세 이상 주민중 44.06%가 학사 학위 이상의 학력이다.고연봉으로 일단 여유자금이 생김에 따라 가구들은 월급뿐만 아니라 주식 배당금 등 다른 소득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CEO 칼럼] 기회의 균등·결과의 차등/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CEO 칼럼] 기회의 균등·결과의 차등/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자식들이 직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배우자를 잘 만나 오순도순 건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어버이는 참으로 행복하다.사람의 삶에서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같은 부모 밑에서,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자식들도 그 삶의 모습이나 방식에는 차이가 난다.한 자식은 공부를 잘해 좋은 학교를 다니고,좋은 직장에서 큰 일을 맡고 있다.다른 자식은 공부보다 특기에 능해 기술직이나 연예계에서 촉망을 받는다.또 다른 자식은 공부를 못해 진학을 포기하고 별다른 특기가 없어 육체노동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같은 학교에서 수학한 동창생이라 할지라도 사회에 나와 활동하는 동안 큰 부자가 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직업도 없이 가난 속에서 헤매는 사람도 있다. 직장에 같은 날 입사한 사원도 10년,20년 지나는 사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퇴출 대상으로 몰려 가난과 절망 속에 헤매는 직원이 있다.평준화된 사원 교육과정을 거쳤어도 각자가 수행한 업무 성과는 차이가 생긴다.여기서 도태된 것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생존 경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주어진 일을 잘해낼 뿐 아니라 다른 일을 더 해내 본인의 성취감과 조직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인재가 있고,또 한 부류는 시키는 일이나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다른 일은 관심이 없는 층이 있다.맡은 일을 감당하지 못해 능률이 떨어지거나 일을 그르치는 부류는 자신의 무능함보다 남의 탓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지어도 소출의 차이가 생긴다.종자의 선택,심는 시기와 방법,관리를 어떻게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실을 본다. 보험모집이나 방문판매 같은 판매직에서는 이런 모습이 더욱 뚜렷하다.같은 상품에 교육도 똑같이 받는다.하지만 근무시간,고객선별,설득력,언변,인간성,성실성,경험,인내력,지속력 등에서 판매성과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와 노력 부족으로 큰 일을 못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다.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서 남보다 더 노력해 자기의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지식을 쌓는 데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건전한 사고와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기계발에 힘쓴 사람과 무지하고 게으르고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의 생활은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국가경영도 마찬가지 차이가 난다.2차대전 전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던 필리핀이 지금은 후진국으로 처져 있다.그 나라의 정치인도 무능과 부패로 문제가 많았고,그 국민들도 게으르고 의욕이 없어 발전을 못했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독일·이탈리아는 모두 성공적인 전후 복구를 했다.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었고,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독일은 통일 후에 평준화를 지향하는데 국력을 쏟아 부은 결과 성장 둔화와 실업으로 최근에는 10년 넘게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에 비해서도 크게 뒤지고 있다. 같은 조건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도 능력과 태도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내가 노력하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다른 사람이 이룩한 부와 지식과 권력을 평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이 절실하다.모두가 내 할 나름이다.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져도 결과는 차이가 난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 작년 빈곤자 130만 증가…가난 늘어나는 美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미국에서 빈곤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미국 인구통계국이 26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빈곤자 수가 130만명이나 증가했으며,의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무보험자도 140만명이 늘어났다. 인구통계국은 지난해 약 3580만명의 미국인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했으며,이는 전체 인구의 12.5%에 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2002년에는 빈곤 인구가 전체의 12.1%인 3450만명이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빈곤 아동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 18세 미만 인구 중 17.6%인 1290만명의 아동이 빈곤 상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는 2002년에 비해 8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빈곤자 수의 증가와 맞물려 의료보험에 들지 않은 인구도 크게 늘어나 지난해 약 4500만명(전체 인구의 15.6%)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평균 가구당 소득은 4만 3318달러였다.아시아계가 5만 5000달러 이상으로 가장 높은 가구당 평균 소득을 올렸으며,백인은 4만 7800달러,히스패닉은 3만 3000달러,흑인은 3만달러 정도였다. 인구통계국은 이번 통계가 불경기 이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결과이며 노동시장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무보험자들이 늘었다고 밝혔다. dawn@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가난하게 산다는 것/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며칠전 구두를 바꾸어 신었다.사연이 있는 구두였다.지난해 후배 신부가 부임해 왔는데 신발장에 전임자가 남기고 간 구두가 있었던 모양이다.그것을 들고 와서는 내 발에 맞는지 신어보라더니 딱이라면서 주었다.그때를 회상컨대,말로야 “그래도 좋겠네!” 그랬지만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남이 신던 헌 구두를 받으니까 무시받는 느낌이었을 터다. 그러나 사실 기분 나쁜 감정은 다른 데 있었다.나는 여태껏 신발이건 옷이건 다 해지도록 신고 입고 살아왔다.내 손으로 새 것을 사본 지 오래다.지금 신고 있는 허드레 등산화도 1984년도에 맞춘 것이니까 20년 된 셈이다.그동안 구두 굽과 창을 수차례 수선했다.옷이 떨어져도,신발이 찌그러져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건지,관심이 없는 건지, 털털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실상 요즘 상품들은 잘 해지지도 않고 질기다.교우들에게 상품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사용할 일이 없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게 된다. 나의 그러한 성품을 잘 알기 때문에,후배 신부는 멀쩡한 구두를 버릴 수 없어 나에게 준 것이다.그것도 당연히 호의로 여겼어야 했다.그럼에도 나는 순간 “난 뭐 늘 헌 것만 신는 게 당연한 거야?”하는 마음이 울컥 솟았던 것이다.그러고선 신발장에 처박아 두었는데 며칠전 꺼내 신게 되었다. 내 구두는 이미 밑창이 뚫려버리고 옆이 벌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새로 신게된 구두는 약간 크긴 하지만 신을 만하다.구두를 신으면서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 나빴던 순간을 기억하니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나는 왜,낡은 옷도 신발도 내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게 느끼면서도 헌 구두를 받은 사실에 그토록 기분나빠 했을까? 자발적인 가난은 좋고 요구받는 청빈은 나쁜 것이라니! 이 속되고 간사스러운 마음,결국 내 스스로 받아들이며 살아오던 종교인의 청빈이란 자만(自慢)으로 포장된 ‘사치’의 다른 이름이었던가.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안락을 흠모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허상의 그림자를 좇고 사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자발적인 청빈과 요구받는 청빈은 결코 같은 청빈이 아니라 거대한 인식의 강을 사이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그래서 어떤 이는 그토록 투쟁으로 얻은 사회적 지위와 풍요로운 도시의 삶을 버리고 귀농을 하고 공동체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버리고 떠난 그 자리를 얻지 못해 안달한다.밥 세끼 먹을 수 있음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고,화려한 명품을 얻지 못해 불만인 사람도 있다.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이,소유의 욕망에 집착하는 이,과연 삶의 의미는 누구에게 충만할까? 부자는 다소 인색함과 비정함도 불사하고 재물을 모은다.수려한 강변에 별장을 짓고 관리인 부부도 둔다.그런데 그는 1년에 며칠을 그곳에 살까? 그 별장 곁에 앉은 낚시꾼은 돈 한 푼도 내지 않고 온 강변이 제 것인 양 하루를 즐긴다.앉을 자리 한 쪽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존재는 한 순간이라도 누리는 자의 것이다. 존재의 강가에서 소유욕에 목말라 하는 사람도 있고 무소유의 길에서 한 뼘 그늘을 얻어 쉬는 사람도 있으니,그렇지! 자발적인 가난은 언제나 넘치는 부요함일진대 우리는 어찌 무소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할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도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니….” 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 [열린세상] 친일이란 판도라상자를 열려면/이덕일 역사평론가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로 시작하는 ‘목포는 항구’는 ‘목포의 눈물’과 함께 이난영의 대표곡으로서 목포를 넘어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이 노래의 작사자 조명암(趙鳴岩,1913∼1993)은 2003년에야 시 전집이 발간되었는데,이는 그가 광복 이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 참여했다가 월북한 좌익 시인이기 때문이다.월북 부친 때문에 고생했을 남한의 유일한 혈육인 딸은 1992년 그가 해금되자 500여곡의 저작권을 되찾고 ‘꿈꾸는 백마강’,‘선창’ 등의 저작권자가 부친이라며 서울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조명암의 시선집을 편저한 대학교수는 “조명암의 민족주의 성향은 만해 한용운에게서 배운 영향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민족주의 인사로 포장되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일제시대 지은 ‘지원병의 어머니’라는 가사는 ‘민족주의’ 운운하는 평가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웅변해준다.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을/ 빛나는 싸움터로 배웅을 할 제/ 눈물을 흘릴소냐 웃는 얼굴로/ 깃발을 흔들었다 새벽정거장/···/ 살아서 돌아오는 네 얼굴보다/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용감한 내 아들의 충의 충성을/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주마.’ 이 가사는 1941년 7월 오케레코드에서 간판급 여가수로 활동하던 장세정(張世貞,1921∼2003)의 노래로 음반 발매되었는데,음반 제목은 ‘애국가’였다.조명암이 작사한 친일 가사는 이뿐만이 아니다.1943년의 ‘혈서지원’에서는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네.’라고 노래하고 있다.친일파 조명암은 북한에서 평양가무단장,문화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부위원장,교육문화성 부상(차관)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죽을 때까지 김일성상(賞)계관인이란 영예스러운 칭호를 누렸는데,이는 적극적 친일파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인 ‘현실 권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탁월한 능력’이 ‘친일파 하나는 확실히 청산했다.’는 북한에서도 괴력을 발휘했음을 말해준다. 시게미쓰 구니오라고 개명했던 신기남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부친 신상묵이 광복 후 경찰간부로 특채된 것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수사했던 경력 덕분이었을 것이다.수사대상만 독립운동가에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대자로 바꾸면 되었던 그는 ‘현실권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친일파의 탁월한 능력’때문인지 서남(西南)지구 전투경찰 사령관을 거쳐 자유당 시절 젊은 도경국장으로 승진한다. 신상묵이 멀쩡한 소학교 교사를 때려치우고 일본군 졸병으로 지원한 1940년,천여명 뽑는 졸병 모집에 8만여 명의 조선인이 지원했다는 ‘매일신보’의 보도는 이 무렵 친일이 권력추구 수단으로 구조화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일제가 적어도 100년은 갈 줄 알았다는 서정주의 친일의 변처럼 독립에의 전망이 부재한 시대였기 때문에 친일은 옳고 그른 윤리적 차원을 넘어 인생역전의 키워드로 구조화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후세대의 친일문제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성을 요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신기남 의원이 의장직 사퇴의 변에서 “인자함과 덕망,주변에 도움을 주며 사셨던 분을 하루아침에 일제의 앞잡이로 매도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 것은 그가 ‘친일이라는 불행한 시대의 판도라 상자’를 열 자격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상자를 열 때 ‘가난,질병,전쟁,거짓말,고통,슬픔,미움,사기’ 등이 상대방에게만 붙으리라고 예상했다면 그 시대에 대한 공부를 한참 더 해야 한다.그런 후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그것 때문에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어야 하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보러갑시다]

    ◇ 국 악 ■ 국악체험교실 ‘장구치고,공연보고!’ 31일까지 오후7시20분 정동극장(02)751-1500. ■ 경서도소리극 ‘아차산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31일 오후7시30분 리틀엔젤스예술회관(02)450-1320. ■ 강진영 가야금 독주회 30일 오후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02)580-3300. ◇ 콘서트 ■ 이선희 콘서트 26·27일 오후7시30분,28일 오후7시 세종문화회관 1544-1555. ■ 김동률 부산 콘서트 28일 오후7시 부산KBS홀 1588-9088. ■ 이승철 대구 콘서트 29일 오후 4시·7시30분 대구 경북대 대강당(053)622-5009. ◇ 클래식 ■ 정 트리오,10년만의 해후 30일 통영 시민문화회관 대극장,31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탐라홀,9월1일 대구 시민회관,2일 부산 문화회관 대극장,오후7시30분(02)518-7343. ■ 첼리스트 장한나 독주회 27일 춘천 강원대 백령문화관,28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30일 수원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31일 광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오후7시30분(02)749-1300. ■ 서울시교향악단 요엘레비 초청 특별연주회 31일·9월1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741. ■ 시링스 목관 오중주 정기연주회 29일 오후3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514-9600. ■ 한국현대음악앙상블 연주회 26일 오후8시 금호아트홀(02)572-9137. ■ 정서연 피아노 독주회 29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3436-5929. ◇ 미 술 ■ 아테네 화필기행전 9월19일까지 사비나미술관(02)736-4371.김봉준 김성호 김홍주 박병춘 박은선 안창홍 양대원 이강화 이만수 이종빈 정정엽 최민화 홍성담 등 13명의 작가가 참여한 그리스미술 특별전.서울신문사와 사비나미술관 공동 주최. ■ 이호섭 개인전 31일까지 갤러리 아트사이드(02)725-1020.좌우 대칭의 색채망들이 빚어내는 꿈과 환상의 세계. ■ ‘사진예술’전 29일까지 가나아트센터(02)720-1020.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사진작가들의 최근작.아타·정재규·고명근·이정진 등 국내 작가와 독일의 베허 부부,일본의 히로시 스기모토 등. ■ 골프이야기전 31일까지 노화랑(02)732-3558.미술가들이 그리는 골프장 풍경.민경갑·송영방·구자승·이왈종·황주리 등 참여. ■ 질꼴전 28일까지 서울갤러리(02)2000-9738.서울산업대 도예학과 동문모임인 ‘질꼴’ 창립 20주년 기념전.신미영·김인선·김상기 등 출품. ■ 체험! 캐릭터박물관전 10월 3일까지 63씨티(63빌딩) 이벤트홀(02)464-3268.1700년대 독일의 ‘노아의 방주’등 캐릭터 장난감 1만5000여점. ■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10월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02)724-2904.‘도시 위에서’‘비테프스크 위의 누드’등 주요 유화 작품과 드로잉,판화 등 120여점. ◇ 뮤지컬 ■ 미녀와 야수 무기한 LG아트센터(02)2005-0114.현광원 조정은 출연.인기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뮤지컬. ■ 우먼 29일까지 한양레터포리시어터(02)3141-8979.서승준 연출,이정한 김영주 박준면 출연.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세미 뮤지컬로 각색. ■ 블러드 브라더스 29일까지 폴리미디어시어터 1544-1555.윌리 러셀 작·글렌 월포드 연출,서징영 이건명 출연.가난한 집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 ◇ 어린이 ■ 바투바투 9월28일까지 코엑스 특별관(02)516-1501.물체극 연출가 이영란의 어린이를 위한 다섯가지 흙놀이. ■ 진기한 콘서트 9월5일까지 호암아트홀(02)6678-1144.국립모스크바중앙인형극장의 내한공연. ■ 토리 29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1588-7890.‘난타’의 제작사 PMC프로덕션이 만든 어린이 뮤지컬. ◇ 연 극 ■ 불 좀 꺼주세요 9월2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02)762-0010.이만희 작·최용훈 연출,조원희 고수민 출연.연극열전 열번째 작품으로 90년대 흥행작. ■ 아트 10월3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02)764-8760.야스미나 레자 작·황재헌 연출,정보석 권해효 출연.남자들의 질투와 우정을 파헤친 코미디극. ■ 데드 피시 10월10일까지 산울림소극장(02)334-5915.팸 젬스 작·채승훈 연출,배종옥 추귀정 출연.네 여자의 성 정체성을 따라가는 페미니즘 연극. ■ 곡예사의 첫사랑 29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02)2280-4115.이윤택 연출,원희옥 남철 남성남 특별 출연.현대 대중극으로 복원한 서커스 악극. ■ 평화씨 9월26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물(02)745-2124.아리스토파네스 작·민복기 연출,김두용 오용 출연.평화를 위해 나선 여성들의 이야기.
  • [데스크 시각] 강화도와 행담도/서동철 사회부 차장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건너다 보면 행담도와 만나게 된다.몇년 전까지만 해도 50여명의 주민이 바지락을 잡아 살아가던 작은 섬이다.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에 속하는 행담도는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아산만을 건너뛰는 징검다리가 됐다.이 섬이 없었더라면 길이 7310m의 서해대교를 세우는 작업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아산만이 바라다보이는 바닷가에는 휴게소가 지어졌다.아마도 가장 호쾌한 풍광을 가진 고속도로 휴게소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휴게소는 여름휴가 기간동안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볐지만,이 섬이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868년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몰고온 1000t급 차이나호는 바로 이 행담도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소총으로 무장한 일행은 작은 배로 갈아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로 상륙했다.이후 덕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시신을 파내려 무덤을 파헤쳤으나,실패하고 황망히 도주했다는 얘기는 국사시간에 배운 바와 같다. 오페르트 사건을 떠올린 것은 프랑스인 페롱 신부가 여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병인박해(1866년) 당시 동료 프랑스 신부들이 순교하는 과정에서 간신히 중국으로 탈출한 페롱 신부는 그만큼 조선 전교(傳敎)의 뜻이 남달랐을 것이다.일행이 시신을 ‘인질’로 대원군과 통상 및 선교를 흥정하고자 한 것도 조선인들이 조상을 극진히 모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선 전교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찾겠다는 뜻은 평가받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남연군의 묘를 파헤친 사건은 결과적으로 천주교 탄압만 심화시켰다. 강화도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또 다른 교훈을 주는 섬이다.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언덕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지금 사제관의 한옥 지붕을 다시 이느라 분주하다. 강화성당은 영국인 트롤로프 신부가 구상하여 1900년 완성시켰다.정문에 해당하는 외삼문에 들어서면 성당인지,절인지 잠시 혼란을 겪게 된다.절을 호위하는 사천왕문의 모습을 한 내삼문이 방문객의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내삼문에는 절에서 봤음직한 큼직한 한국식 종도 하나 매달려 있다. 2층 한옥으로 지어진 본당도 서양의 전통적 성당건축인 바실리카 양식을 한국식으로 변형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절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다만 ‘대웅전’이 아니라 ‘천주성전’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기둥글(柱聯)에도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같은 천주교 성구가 씌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강화성당에서는 오페르트 일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혀진다.조선인 대부분이 익숙했을 불교사찰의 분위기는 기독교라는 새로운 서양 문화에 대한 이질감을 크게 줄여주었을 것이다.‘현지인’에 대한 배려가 선교 효율의 극대화를 노린 성공회의 노하우라고 해도 가치는 퇴색하지 않는다.나의 신념을 설득하기에 앞서 상대의 신념을 먼저 끌어안는 것은 종교의 범주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23일부터 서울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실행위원회가 열리고 있다.케냐 출신의 사무엘 코비아 WCC총무는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과거 서구의 일부 부국(富國)이 저지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중동이든,아프리카든 한국 기독교의 해외 선교가 오페르트와 페롱 방식이 아니라 강화성당을 지은 트롤로프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충고일 것이다. 서동철 사회부 차장 dcsuh@seoul.co.kr
  • 겨레말 ‘전자사전’ 개발 앞장 박용수 시인

    겨레말 ‘전자사전’ 개발 앞장 박용수 시인

    “흔히 사전 편찬자를 일컬어 ‘3무(三無)사업자’라 합니다.업무 특성상 재미·인기·돈 없는 사람이란 뜻이죠.비슷한 맥락에서 ‘가정파탄·외톨이·사회 낙오자’라는 별칭이 따라다녀 ‘3득(三得)사업자’라 불리기도 합니다.” 시인이자 기록사진 작가로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현장을 누빈 박용수(70)씨.삶의 또다른 ‘갈래’인 겨레말 사전편찬자로도 유명한 그는 서울 효자동 한글문화연구소에서 ‘자연어 검색 전자 갈래사전’ 개발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진주중학교 4학년 때 장티푸스를 앓은 뒤 청력을 잃게 된 그를 만나 이메일과 필담 등으로 작업 현황을 들어 보았다. 문화관광부 3년 지원사업으로 지난해 시작한 ‘전자사전’ 작업에 대해 “나라끼리의 만남이 부쩍 늘어나면서 외래어에 밀려 급속도로 입지가 좁아들어가고 있는 우리 말의 사용 빈도를 높여 겨레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100년 안에 민족언어 90% 소멸 진단 사람 좋은 미소를 띠지만 어조는 단호하다.“사람 버릇은 말버릇으로 굳어집니다.이를 가볍게 여기니 ‘아버지는 그저 용돈 넉넉히 주는 사람’정도로 인식돼 살부(殺父) 등 패륜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100년 안에 민족언어 90%가 소멸할 것이라는 유네스코의 진단에 한글이 포함돼 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국어’는 소멸하고 당연히 민족도 사라집니다.” 원래 그의 꿈은 시인.감수성 예민하던 중학생 때,형과 그의 국어선생 친구 사이에 책심부름을 하면서 접한 시인 임화의 작품은 순박한 시골소년을 사로잡았다.그는 ‘가난한 나라의 민족 정서를 시로 담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경남 진주에서 사진기술자로 일하던 60년 11월 종합문예지 ‘영문’에 시가 추천돼 등단했다. 꾸준히 시작업을 하던 박씨는 본격적인 ‘시인의 꿈’을 찾아 70년 1월 서울로 올라왔다.63명이 일하던 ‘허바허바 사진관’의 잘나가던 사진 기술자이던 박씨는 친하게 어울리던 소설가 이문구 김정한 박태순 송기원,시인 고은 신경림 등의 문인들과 함께 1974년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를 구성하면서 ‘역사의 중심’에 뛰어든다. ●민주화운동 기록 사진작가 활동도 이후 고(故) 문익환 목사가 이끌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모든 시위 현장에 담긴 분노와 억압의 장면들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잡아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러던 그를 사전 편찬에 눈을 돌리게 만든 사건이 운명처럼 다가왔다.“81년 200자 원고지 2000장 정도의 서사시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작업했는데 막상 800여장을 쓰고 나니 평생 공책에 모아 둔 우리 말 자료가 동이 나더군요.명색이 시인인데 같은 말을 반복할 수는 없잖아요”.그래서 ‘바람소리’(실천문학사 펴냄)로 일단 시집을 출간한 뒤 사전 편찬작업에 나섰다. ●토박이말 3만 6000여개 주제별로 국어대백과사전을 뒤져 토박이말 3만6000여개를 강·바다·식물 등 주제별로 나눠서 89년 ‘우리말 갈래사전’(한길사 펴냄)을 출간했다.그의 갈래 사전이 빛나는 것은 가나다순이 아니라 생활,문화,사람 등 주제 별로 정리해 어떤 분야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단어에 목말라하는 작가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사전 편찬이 ‘평생의 업’이 된 것은 고 문익환 목사와의 인연 때문이다.“시를 쓴다는 개인적 필요성에서 시작한 겨레말 분류작업이 사전 편찬이라는 피말리는 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그런데 89년 북한을 방북한 문 목사가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제 사전을 선물하는 사진이 외신을 타고 널리 알려져 주위에서 증보사업을 하라고 많이 권유해 손을 댔다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두 사람이 ‘남북통일사전 편찬 합의서’를 쓴 것도 제겐 큰 부담이 됐지요.” 이후 박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뚝심으로 ‘겨레말 갈래 큰 사전’(93),‘새 우리말 갈래 사전’,‘겨레 말 용례 사전’(96) 등 4권의 사전을 펴내면서 ‘외길’을 걸어왔다.또 손수 찍은 기록사진 전시회를 열었고 ‘민중의 길’이란 사진집도 냈다. ●89년 김일성 주석에게 사전 선물 그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은 평생 편찬한 사전을 컴퓨터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주제별 갈래에 따른 겨레말과 그 용례를 묶는 것이다.한자어 등도 보완해 우리말 30만개 쯤을 선정해서 이를 6∼7단계로 분류해 누구나 쓰고싶은 낱말을 쉽게 찾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개인 박용수’는 아직도 시인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그의 시 사랑은 한결같다.‘바람소리’ 2권에 들어갈 시를 포함해 계속 시를 쓰기 위해도 건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기록사진가·시인·민주화 운동 등 파란만장한 삶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예술이기 전에 역사이다/그가 쓴 시는 예술이기 전에 인간/반드시 있어야 할 인간이다”(고은 시집 ‘만인보’ 가운데 ‘박용수’편)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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