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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이슈-프랑스 소요사태 확산] 소요 진원지 클리시수부아를 가다

    [월드이슈-프랑스 소요사태 확산] 소요 진원지 클리시수부아를 가다

    파리 교외 저소득층 지역에서 지난달 27일 이래 계속되고 있는 소요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요사태가 독일, 벨기에 등 이민자가 많은 인근 유럽 지역으로까지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이번 사태는 주로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이 몰려 사는 대도시 교외 저소득층 지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새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청소년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검문을 피하던 소년들의 죽음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우범지역 범죄에 대한 초강경 대응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뿌리깊은 소외의식이 극단적 방식의 분노로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방화가 차량 뿐 아니라 학교, 탁아소, 체육관, 상업시설 등으로 확대되고 인명 피해마저 발생하면서 저소득층 지역 주민들조차도 “이제 폭력은 그만”을 외치며 하루빨리 일상의 평정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클리시수부아 함혜리특파원| 7일 오후 3시(현지시간) 파리 북동부 교외에 있는 올네수부아의 부아욤 고등학교 앞 광장.400여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흑인, 혹은 북아프리카 계열의 유색인들이다. 아직 학교가 끝날 시간이 아닌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몇몇 눈에 띈다. 청소년들의 야간 소요사태로 유리가 깨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학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전화가 와 모든 학생들이 대피했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은 “우리 학교뿐 아니라 근처의 3개 학교가 폭발물 위협을 받았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지 않는 한 소요사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단의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최소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감전사 사고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사르코지(내무장관)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막 도착한 버스에 뛰어 올랐다. 올네수부아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리시수부아. 지난달 27일 경찰의 검문을 피하던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하면서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소요사태의 진원지가 된 곳이다. 밤마다 차별과 소외에 대한 무슬림 청소년들의 분노와 방화로 점철됐던 것과 달리 이곳의 오후 풍경은 평화스러웠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장을 보러가는 무슬림 여성, 길 모퉁이에 삼삼오오 몰려있는 흑인 청소년들….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아랍인들이다. 클리시수부아의 주민 2만 8000여명 중 이방인은 70%가 넘는다. 파리의 고색창연한 주거건물들과는 달리 노후한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어 한눈에도 슬럼가임을 알 수 있다. 아기를 안고 가는 한 주민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20여년 전 터키에서 이민 왔다는 칸(35·전기공)은 “청소년들의 폭력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정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의 50% 정도가 실업자라고 소개한 칸은 “부가 세습되는 것처럼 가난도 대를 물린다. 그들이 현재 상황에서 탈피하도록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 벗어나자 왼쪽으로 거의 불에 탄 채 흉물처럼 남아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6일 새벽 5시쯤 방화로 불에 탄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이다.1997년 준공된 이곳은 바로 옆에 있는 루이즈 미셸 중학교 학생들이 체육시간을 보내고 어린이와 학생, 시민들이 태권도, 유도 등 여가시간을 이용해 체육활동을 하는 장소였다. 루이즈 미셸 중학교에 다닌다는 사디(12)는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왜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체육관을 불태웠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분별없는 폭력에 분노보다는 차라리 슬픔이 앞선다.”고 말했다. 사디의 학급은 모두 23명. 이 중 순수한 프랑스인은 단 한명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5시 30분 클리시수부아 시청 앞에서는 자녀들을 대동한 학부모들과 주민들이 모여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 화재사건과 지난달 27일 이후 끊이지 않는 일련의 폭력사태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클리시수부아 출신의 육상선수 이름을 딴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은 우리들의 자랑거리였고, 청소년들이 유일하게 체육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였다.”고 토로한 뒤 25년이 걸려 건설된 체육관을 불과 몇분만에 잿덩이로 변하게 만든 방화범들에게 분노를 나타냈다. 주민 포리셰는 “30년째 이곳에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와 탁아소 등 공공시설물에 방화가 잇따르고 있다는데 이번 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이 불에 탄 것을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포함,200여명에 이르는 태권도 동호회 회원들과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들의 학부모들이다. 등에 ‘태권도’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박힌 흰색도복을 입은 아들 야쿱(4)의 손을 잡고 시청 앞에 나온 베니나는 “우리 아이가 9월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이제 어디에 가서 태권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했다. 이민 가정의 청소년들과 클리시수부아 시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하나시 목데드(28)는 “이곳 청소년들의 삶은 깊은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열악한 주거환경, 학교생활 실패, 가족과의 갈등, 실업문제는 이곳 청소년들을 끝없는 분노로 치닫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인 상황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들은 분명 법을 어기고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사회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lotus@seoul.co.kr 유럽 각국은 프랑스 전역을 휩쓸고 있는 무슬림 청소년들의 폭력사태가 남 얘기 같지가 않다.9·11 테러 이후 유럽에서 무슬림과 비(非)무슬림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무슬림의 불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파리 사태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벨기에와 독일 등 일부 주변국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하자 관련국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달 영국에서는 북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 이주민들간에 유혈충돌이 발생, 인명피해를 낳았다. 앞서 지난 7월 7일에는 런던 지하철과 버스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52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용의자로 현장에서 즉사한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계 4명이 지목됐다. 2004년 11월 2일에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보수 성향의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모로코계 이민 노동자 2세인 부예리에 의해 살해됐다. 같은 해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역에서 열차 연쇄 폭발로 191명이 숨지고 1800여명이 다쳤다.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 땅에서 무슬림과 관련된 공격이 잇따르면서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그에 비례해 무슬림들의 소외감과 반발 역시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재 유럽에 사는 무슬림 인구는 1500만∼2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럽 인구의 4∼5%다. 높은 출산율과 이주 인구의 꾸준한 증가로 오는 2025년에는 그 수가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유럽 이민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2차대전 이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번 소요사태의 중심층은 생활고와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이민 1세대가 아닌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란 2,3세대. 스스로 ‘유럽인’이라 여기며 성장한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뿌리 깊은 차별대우에 직면하면서 ‘2등 유럽 시민’이라는 냉엄한 현실에 맞닥뜨린다. 주류사회 편입 실패와 가난의 대물림, 사회적 편견, 문화적 소외 등으로 유럽 무슬림들의 인내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9·11 테러 이후 잇단 테러에 대한 대책으로 이민 제한책을 선택했던 유럽 각국은 뒤늦게 다문화통합정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런 점에서 5년 이상만 거주하면 국적을 주고, 언어를 배워 현지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웨덴식 이민지원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프랑스 소요사태 일지 ▲10월27일 파리 북동쪽 클리시수부아에서 경찰 피해 달아나던 북아프리카계 소년 2명 감전사. 분노한 청년들 수백명 차량 23대 불태우고 경찰과 투석전. ▲10월28일 클리시수부아에서 청년 수백명 경찰과 충돌. 일부 경찰 향해 사격. ▲10월29일 주민 500명 침묵시위, 야간에 폭력사태 재발. ▲10월30일 경찰 최루탄이 이슬람사원에 발사돼 무슬림 분노 증폭 ▲10월31일 폭력사태 인근 교외지역 확산. ▲11월2일 드 빌팽 총리와 사르코지 내무장관 해외 방문 일정 취소. 파리 주변의 22개 소도시로 소요 확산. ▲11월3∼4일 디종, 마르세유, 루앙 등 전국으로 소요사태 확산 ▲11월5일 파리 중심가서 방화 사건 발생 ▲11월6일 시라크 대통령, 폭력행위 엄벌 천명 ▲11월7일 파리 교외서 첫 사망자 발생. 베를린·브뤼셀서 모방 방화 사건 발생 ▲11월8일 정부, 지역 도지사 야간 통행금지령 발동권 승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흔히 고음(高音)을 잘 내는 사람을 ‘신이 내린 목소리’에 비유한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 그 자체다. 또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 태너도 고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고, 고음에 도전하다 죽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너 임웅균(5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악가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대학시절 찬송가의 높은 ‘라’음을 내다가 숨이 콱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심청전’ 연습 도중 ‘농부가’에서 또한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 교수는 요즘에도 여전히 고음을 낸다. 공연장에서는 물론 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다. 특히 학생들에게 야단칠 때면 음악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에서 “성악가는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목소리를 강철처럼 단련시키고 싶어 그런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인다. 지난 주 음악원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쩌렁쩌렁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펄쩍펄쩍 신나서 뛰기도 했다. 임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신건강 지킴이’로 위촉돼 정신건강 전령사로 또다른 역할에 나섰다.“나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건강이 아니냐.”면서 노래로 정신건강을 지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며 크게 웃는다. 이어 대뜸 “내가 (국회)출마하면 어떻겠소, 할 일이 꼭 있거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국 60개도시에 사랑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재활프로그램, 즉 세계 최고의 휴먼센터를 설립하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에 휴먼센터에서 보름 동안 재활프로그램을 거쳐 퇴학여부를 결정하자는 것. 이를 위해 매년 1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끝냈다고 했다. 자기 적성과 자아를 파악한 사람은 결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휴먼센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나라는 교과목이 너무 많아요. 학생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어디 노벨상 하나 제대로 나오나요.6,7개 과목으로 팍 줄여야 해요. 그리고 책가방을 왜 들고 다닙니까. 책은 학교에 보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로 공부하면 돼요. 왜 그 흔한 CD 제작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해요.” 임 교수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가 끓는 다혈질의 사나이기에 정 안되면 국회진출이라도 해서 그런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연장 밖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3년전부터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를 담은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68개 어린이단체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국무총리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담판을 지어 원점으로 되돌리게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오른손 문화에서 양손문화로 바뀌어집니다.30대 이상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20대는 양손을 쓰거든요. 컴퓨터 자판도 그렇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다 양손으로 휙휙 날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 정말 중요합니다.” 임 교수는 또 유학시절 유상근 전 명지대 이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 뒤, 한 사람의 투자로 이렇게 성악가와 교수로 성장해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자신했다. 따라서 재벌들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들은 따지고 보면 농민과 서민들이 물건을 사 주니까 재벌이 된 거 아니냐면서 우리 농산물이 무너지면 암 발생 등 만병의 근원이 생기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야 음악얘기가 나왔다. 인간은 음악과 스포츠 두가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면서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작곡 시 노래 무용 등 네가지뿐입니다.”고 했다. 시나 무용도 음악이 있어야 하고 무용 역시 결국은 체육이 아니냐는 것. 예로부터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사람은 음악을 들어야 과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밀양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하얀손수건을 꺼내는 이유를 물었다.“다윗창법을 쓰지요. 다윗은 노래로 신과 대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목소리가 어린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린이들은 고음에서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목이 잘 쉬지 않지요. 그래서 아 이게 바로 벨칸토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했다. 임 교수의 성악적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숙대 성악과에 입학 등록을 한 어머니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수학을 포기했고,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임 교수. 아버지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고교 교사로 있었으나 여섯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곧 실패했다. 임 교수는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성적도 별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때 너무 크게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음악점수는 ‘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중2때 음악선생님한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 ‘고성방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뚝섬 동네 밖에서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웅균이가 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실력은 별로였다. 경기중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고교 역시 1,2차에 거푸 떨어져 대구로 내려갔다가 우여곡절끝에 명지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랐다. 고3때 육사를 지원, 군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와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 집중적인 레슨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대학때에는 문화촌 달동네에 살면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당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무대에 오르기 일쑤였다. 결국 달동네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린 것. 병원비가 없어 작은형의 대영백과사전을 가져다 팔아 겨우 해결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3년 동안 화곡고 음악선생으로 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37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했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인 파바로티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85년 11월 귀국,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연세대 강사로 채용됐고,1년 뒤 ‘KBS콘서트홀’이라는 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 교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열린 음악회’.93년 10월 첫 출연하면서 ‘두만강’‘타향살이’‘밀양아리랑’ 등 클래식과 대중가요, 민요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두가지, 즉 완전한 낙원이거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일 때 그렇지요.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웅변이 곧 금입니다.” 요즘에는 실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 이유에 대해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예의 주시해 왔으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껄껄 웃는다.“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6만,7만명을 끌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6000여명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외국의 노예로 다 팔아 넘겼어요.”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75년 명지고 졸업 ▲75년 연세대 성악과 수석 입학 ▲79년 연세대 성악과 학사졸업 ▲79∼81년 군입대 ▲81년 화곡고 음악교사 ▲83년 이탈리아 유학,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수학(석사) ▲85년 귀국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부교수, 성악과 과장 역임 ▲2002년 5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5년 10월 서울시 정신건강 지킴이 위촉 ▲그외 로마 밀라노 등 이탈리아 17개 도시,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19개 도시 순회연주. 오페라 ‘사랑의 묘악’ 등 국내 30여회 공연 ■ 주요 상훈 만토바 국제콩쿠르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 메리토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성악가상(95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2000년) ■ 음반 선경 한국가곡 4,5집(CD), 독집음반 사랑하는 마음(99년), 태너 임웅균의 클래식 가요(2001년) km@seoul.co.kr
  • [사설] 중·러 동포에 취업자유 허용해야

    중국과, 옛 소련권인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지의 동포에게 모국 방문 및 취업의 자유를 넓혀주는 방안을 법무부가 추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 안대로 ‘방문취업 비자’(H-2)가 새로 만들어지면 이를 발급 받은 동포는 5년동안 출입국을 자유롭게 하면서 한번에 2년까지 마음대로 취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같은 법무부의 정책 추진을 환영하면서 관련 법규가 하루빨리 마련돼 해당지역 동포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그동안 시행해 온 재외동포 정책을 보면, 속칭 ‘조선족’‘고려인’으로 불리는 중국·옛소련권 동포가 얼마나 차별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 타지역 동포들은 아무 제한 없이 이땅을 드나들고 일자리를 잡았지만 이들은 출입국과 취업에서 엄격하게 제한받아 왔다. 그 결과 밀입국과 불법체류가 성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신분이 법적으로 취약한 점을 악용해 임금 떼어먹기 등 각종 범죄가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딸도 아닌가.’라는 한맺힌 절규가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법무부가 추진하는 이 정책에 대해 정부 일부 부처에서 난색을 표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 태도이다. 예컨대 중국당국과의 마찰이 예상되면 외교통상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하면 된다. 중국이야말로 해외동포(화교)에게 갖가지 혜택을 주면서 적극 포용하는 국가인데, 우리가 중국동포에 대한 기존의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데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노동부도 노동시장 교란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새 정책이 노동시장에 무리 없이 정착하게끔 협조해야 마땅하다. 우리사회에는 이미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해져 내년에 40만명가량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그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농어촌 총각의 결혼난 역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해외인력 유입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말과 핏줄, 문화가 통하는 재외동포를 보듬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 [08일 TV 하이라이트]

    ●대발견 아이Q(EBS 오후 8시5분) ‘알쏭달쏭 육아극장’에서 고기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속 시원히 풀어준다.‘아기 실험실’에서는 실험을 통해 각 성격의 특성을 살펴보고 내 아이의 성격에 맞는 육아법을 알아본다. 또 공부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전국의 부모들로부터 다양한 경험담을 듣고 전문가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한다.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놀라운 가족, 진짜를 찾아라. 공연 중에 눈이 맞아서 커플이 된 남편 현찰과 아내 하추나, 고등학생에서부터 젖먹이까지 11명의 자녀를 낳아 대가족을 이룬 사람. 또 월요일에 처음 만나 일주일만인 일요일에 결혼한 부부와 처음엔 누나라고 부르다가 결혼했다는 띠동갑 커플인 12살 연상연하 부부가 등장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양연구소는 물고기 양식으로 매년 5억달러의 매출 실적을 올린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변했다는 사실. 가난한 주민들이 물에 독극물을 풀거나 폭발물을 터뜨려 고기를 잡았으나 지금은 부화장에서 일한다. 기술도 늘고, 새 물고기 품종도 개발해 수출을 한다. ●달콤한 스파이(MBC 오후 9시55분) 강준은 조정해에게 미제사건 파일을 빠짐없이 찾아오라고 하고, 조정해와 심 형사는 답답하기만 하다. 두 사람은 수사과를 찾아온 은주와 마주치고, 심 형사는 은주의 미모에 놀란다. 은주는 자기를 소개하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한다. 은주는 강준에게 자신이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묻고…. ●TV소설 고향역(KBS1 오전 8시5분) 준호의 퇴원 소식을 들은 정인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덕우를 추궁하지만 덕우는 사실을 부인한다. 준호는 부모에게 자신이 완쾌된 것은 전적으로 선경의 덕분이라며, 일어나게 되면 선경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말한다. 한편, 순덕은 선경이 자신의 친 딸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10분) 돌이는 학교에서 미르와 가온이를 기습적으로 공격하려고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다. 마패는 움직이는 폭탄이 된 암흑전사들을 무조건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후크를 만나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암흑전사들은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 [길섶에서] 행복총량/ 이상일 논설위원

    K사장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총량에는 정해진 그릇이 있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땐 몰랐는데 돈을 벌면서 주위의 부자들을 보니 불행해진 사람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 사장은 출판사로 시작해 이제는 큰 빌딩을 여럿 갖고 있을 정도의 부자가 됐다. 요컨대 사람들이 어느 정도를 넘어 돈을 벌게 되면 더 행복질 것같은데 그렇지 못하더란 것이다. 남편의 외도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등 돈이 가져다준 행복감이 다른 문제로 감소되더라는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가정의 평안, 형제간의 우애 등 다른 면의 행복이 보충돼 결국 한 인간의 행복은 일정량을 유지하게 된다는 게 그 사장의 설명이다. 그의 행복총량 주장을 들으며 언젠가 들었던 한 노인의 지적이 떠올랐다. 노인은 “어느 가족·집안이나 모든 게 갖춰져 있지 않으며 건강·돈·자녀 문제와 부부 관계 가운데 한가지는 삐꺽거린다.”고 강조했었다.K사장 말대로 행복이 증가하다 감소하는 재산의 분기점이 있는지, 있다면 그 액수는 얼마나 될지, 행복총량이 있다면 각 개인의 행복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깊어지는 ‘빈곤 악순환’

    깊어지는 ‘빈곤 악순환’

    저소득층이 중간계층이나 고소득층보다 취업도 더 잘 안되고, 취업률 격차도 해가 지날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잡기가 어려워지면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워 ‘빈익빈(貧益貧)’현상이 심화되면서 ‘부(富)의 양극화’가 완전히 뿌리내릴 게 걱정된다. ●가난하면 취업도 잘 안돼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도시근로자 가계의 취업률은 평균 45.5%를 기록했다. 취업자수를 가구원 수로 나눈 수치다. 예를 들어 5명의 식구가 있는 집에서 2명이 취업을 했다면 취업률은 40%다. 이를 소득수준에 따라 10개 집단으로 나눠 비교해 보면 저소득층의 취업률은 평균을 지속적으로 밑도는 데다, 그 격차도 계속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 하위 10%(1분위)의 취업률은 39.8%로 평균 취업률(45.5%)보다 5.7%포인트나 낮았다. 지난 2001년 하위 10%의 취업률은 39.4%로, 당시 평균 취업률(43.6%)과 차이는 4.2%포인트였다. 4년새 격차가 4.2%포인트에서 5.7%포인트로 1.5%포인트나 더 벌어진 데서 알 수 있듯 저소득층은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취업률 차이로, 소득 양극화 우려 원래 가난한 계층이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면 소득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어 고소득층과의 가계수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고소득층의 가계수지 흑자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적자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최상위계층(상위 10%)이 한달 동안 벌어들인 돈에서 쓴 돈을 뺀 가계수지(가계소득-가계지출)는 올 상반기 기준 266만 8000원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최하위계층(하위 10%)의 가계수지는 -33만 5100원이었다. 한달에 번 돈보다 30만원 이상을 더 썼다는 얘기다. 두 계층의 차이는 무려 300만 3100원이나 된다. 지난 2001년에는 최상위계층의 가계수지는 249만 3400원, 최하위계층은 -20만 2100원으로, 격차는 269만 5500원이었다.4년새 최상위계층과 최하위계층의 가계수지 격차가 월평균 30만원 이상 더 벌어진 셈이다. 최상위계층의 가계수지 흑자가 꾸준히 늘어나기도 했지만, 최하위계층의 적자가 계속 늘어난 게 주된 원인이다. 최하위계층의 가계수지는 2002년 -19만 2100원(월기준)으로 전년보다 소폭 개선됐지만 2003년에는 -29만 5600원,2004년에는 -32만 3900원 등으로 계속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경기회복이 본격화하지 않았지만 올해도 평균 가계수지가 예년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평균 가계수지는 올 상반기에 66만 7400원으로 2002년(65만 6500원),2003년(65만 9400원),2004년(67만 9000원)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저소득층의 가계수지 적자폭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취업률이 지속적으로 낮기 때문에 가계소득 증가를 통한 가계수지 개선이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한은 관계자는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교육기회가 적은 데다, 취업난이 심해질수록 소득이 적은 일용직이나 임시직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면서 “이런 현상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워,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5일 TV 하이라이트]

    ●희망풍경(EBS 오후 5시40분) 방콕 아시안게임 3관왕. 휠체어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두 팔 마라토너 문정훈. 고교 2년 때 처음 휠체어를 타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단거리를 시작했으나 휠체어에 더 익숙해지려고 마라톤을 시작했다는 그. 두 팔로 바퀴를 굴리며 달리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 연탄불에 구워먹던 불량식품과 낡고 작은 학교앞 구멍가게. 길고 긴 겨울밤 잠자리에 들기 전 귓가에 들려오던 낮 익은 찹쌀떡 장수의 외침소리. 기억은 지울 수 있지만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속의 아련한 추억을 찾아 옛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찾아라! 맛있는TV(MBC 오전 10시55분) 200회 특집을 맞아 네티즌들과 거리의 식객들에게 추천받은 10가지의 먹을거리를 공개한다.‘주방의 전설’코너에서는 주방의 전설에 출연한 장인들이 똘똘 뭉쳐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고, 새로운 맛과 미각의 대결을 펼친다. 최고의 장인이 되고자 하는 조리장들의 ‘맛있는 승부’를 지켜보자. ●프라하의 연인(SBS 오후 9시45분) 대통령에게 불려간 상현은 결혼을 반대해도 계속 만날거냐는 물음에 자신의 마음 속에 세운 나라의 대통령은 윤재희라고 대답한다. 상현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들은 대통령은 허락은 못하지만 지켜보겠다고 말한다. 한편, 지 회장은 혜주에게 상현과 예전 관계로 돌아간다면 아이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KBS스페셜(KBS1 오후 8시) 최고의 마라토너들도 두려워하는 사하라 극한마라톤에 참가한 송경태.1982년 군 복무 시절, 수류탄 폭발 사고로 시력을 잃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라는 악조건을 딛고, 죽음의 레이스에 도전한다. 그가 자신의 한계와 싸우며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애를 넘어, 한계에 도전하는 그를 만나본다. ●슬픔이여 안녕(KBS2 오후 7시55분) 국수공장을 그만두겠다는 정우의 폭탄선언으로 성재네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정우는 정훈에게 자신이 형이 아니라 삼촌이라고 털어놓는다. 혜선은 정우를 만나 국수공장 일을 다시 하도록 설득하지만 정우는 완강히 거부한다. 성민은 그런 정우를 보다 못해 동생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화를 낸다.
  • 문명의 붕괴/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앙코르와트의 버려진 신전들, 정글에 감춰진 마야의 도시들,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들….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했던 문명의 흔적들을 보며 현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된다.‘이들은 왜 지속·발전하지 않고 몰락했을까?지금 우리의 문명도 이들과 같은 운명을 맞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한 사회가 자멸의 길을 재촉하는 실수를 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미국 뉴올리언스 사태나 쓰나미 참사, 이라크 전쟁 등 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몽 또한 이같은 문명 몰락에 대한 불안감을 던져 준다. 문명 비판서 ‘총·균·쇠’로 퓰리처상를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번엔 ‘문명 몰락’이라는 묵직한 테마에 돋보기를 갖다 댔다. 얼마전 폐막한 독일 프랑크루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화제를 모은 책 ‘문명의 붕괴’(강주헌 옮김, 김영사 펴냄)가 그것. ●이스터섬·마야의 문명이 몰락한 이유는? 책이 담은 내용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과거의 위대한 문명사회가 붕괴해서 몰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저자는 이스터섬의 폴레네시아 문화에서 시작해서 아나사지와 마야에서 꽃피웠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 그린란드에 식민지를 개척한 바이킹들의 불행, 그리고 현대세계까지 추적해 재앙의 기본 패턴을 찾아낸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붕괴의 조짐이 보이는 곳들의 상황도 점검한다. 저자는 문명 붕괴의 이유를 크게 다섯가지로 나눠 관찰한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 감소, 사회문제에 대한 그 구성원의 위기 대처 능력 저하가 그것이다. 그중 가장 강조하는 것은 환경파괴다. 폴리네시아의 이스터섬의 운명에 대해 저자는 ‘순전히 생태적 붕괴’에 가깝다고 말한다. 무자비한 삼림파괴가 전쟁으로 이어졌고, 지배계급이 전복되면서 위대한 거석문화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야문명 몰락의 가장 큰 원인도 환경 파괴로 분석한다. 인구 과잉과 환경파괴가 식량 부족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전쟁으로 이어져 문명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한 피케언 섬과 헨더슨 섬은 우호적인 이웃의 지원 중단으로 붕괴한 예. 이곳에도 환경훼손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주된 무역 상대국인 망가레바 섬이 환경문제로 인해 붕괴된 것이 치명타였다. 이는 경제적 종속 현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다. ●20세기 이후에도 지구촌 곳곳 붕괴조짐 그렇다면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서도 살아남은 사회는 없을까?이는 곧 문명 붕괴 이유 중 다섯번째인 사회 구성원들의 대응의 중요성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예를 들어 몰락한 사회와 살아남은 사회의 극명한 차이점을 보여 준다. 노르웨이령 그린란드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노르웨이의 지원 중단, 이누이트족과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붕괴를 면치 못한다. 반면 아이슬란드는 취약한 환경을 딛고 가장 풍요로운 나라 중 하나로 우뚝 서 있다. 이들은 원주민들의 생활습관을 받아들이고, 노르웨이와의 우호관계를 위해 노력했으며, 환경 파괴를 최소화했다. 저자는 오늘날 이같은 문명 붕괴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표적인 곳이 소말리아와 르완다. 환경파괴와 가뭄, 전쟁 등으로 인해 사회 자체가 몰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과거의 문명 몰락이 주는 교훈 잊지말자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 몬태나에서도 그같은 가능성을 내다본다. 아직도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지난 200여년간 자행된 각종 개발로 인해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곳이다. 한때 가장 부유했던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한 이곳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미 붕괴된 문명들도 겪었음을 상기시킨다. 저자가 보기엔 과거보다 오히려 현대사회가 더 붕괴 위험이 크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세계화로 인해 멀리 떨어진 곳의 붕괴 파장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불어난 인구와 파괴적 첨단 테크놀로지 또한 당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소말리아와 같은 붕괴조짐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과거의 문명 몰락이 주는 교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라고 지은이는 거듭 주문한다.2만 8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자신의 그림을 그린 거장은 렘브란트로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1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인간적인 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말년에 그린 ‘쾰른 자화상’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오랜 불화를 견뎌낸 여유가 느껴집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다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17세기 말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입니다. 남인이었던 그는 출세길이 막혀 막막했던 심경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허울이 아닌 사실을, 시대를 녹여버릴 듯한 강렬한 눈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의 수염은 떨리는 듯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애석하게도 웃는 얼굴이 아닙니다. 여섯 차례의 이사 끝에 겨우 마련한 집. 그러나 유명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남산은 주한미군의 골프연습장에 가려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헬기 소리로 요란합니다. 일제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굴곡은 이곳에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시 희망을 힘겹게 떠올려 봅니다. 먼 훗날에도 이 땅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고백’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요. 당당하면서도 너그럽고, 가난하지 않아도 겸손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층 고고관·역사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그 곳에 있었다. 후손들에게 기록을 남긴 역사(歷史)시대의 모습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문자를 남길 수 없어 유물로만 자취를 남긴 선사(先史) 시대의 모습도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동관으로 줄지어 이어진다.1층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인 고고관과 역사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구석기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까지 한눈에 동관 1층 101∼110 전시실이 바로 고고관이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전도와 함께 일본·중국·대한민국·세계고고학의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역사부도 등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서울 암사동 출토)는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유물. 이어 ‘요령식 동검’(청동기시대·황경남도 신천 〃),‘산수무늬 벽돌’(백제·충남 부여 〃)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검은 돌처럼 바싹 말라버린 선사시대 ‘도토리’(신석기시대·경남 창녕 비봉리 〃)는 ‘갈판·갈돌’(〃·서울 암사동〃)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500년 쯤 지나면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나 배경 화면을 사고 파는 전자화폐 ‘도토리’가 나란히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이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스치며 지나간다.4∼6세기 고구려 고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는 벽화는 ‘사신도’가 대표하고 있었다. 비록 모사품이지만 청룡·주작·백호·현무의 모습은 그 시절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백제실을 대표하는 ‘백제금동대향로’(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 앞에서는 좀처럼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博山) 굽이굽이마다 상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향로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가야실에서 볼 수 있는 ‘투구’와 ‘말머리가리개’(부산 복천동 〃)는 외국 영화의 전투장비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오래 머문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아니었지만 발해실의 ‘용머리 장식’이나 ‘도깨비 기와’(중국 헤이룽장성〃)는 세상의 모든 나쁜 귀신을 쫓아낼 듯하다. 반면 두명의 부처가 함께 조각된 ‘발해불상’(발해 팔련성 〃)은 이민족도 너그러이 융합했던 민족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딸을 시집보낸 왕도 범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고관을 다돌고 나면 맞은 편 111∼120 전시실인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표적 기록문화유산인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금석문, 문서, 지도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역사관 첫 전시실인 한글실에는 한글의 과학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랜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 하노라.’며 조선 현종 임금이 궐 밖으로 시집간 셋째 딸 명양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도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밑거름이 됐던 ‘동국대전도’가 2.3배 확대돼 바닥 타일로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굽혀 살펴보면서 걸어보면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양 한반도 전체를 걷는 느낌이다.‘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도성도’ 등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옛 지도도 직접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등기제도, 노비의 경제적 가치, 조선시대의 의술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소파나 영상물 상영관 등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시설이 전시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해진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정해진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층 미술관Ⅰ·기증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서예·회화·불교회화 등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Ⅰ’과 국내·외 각계각층 213명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 있는 ‘기증관’이 있다. 특히 미술관Ⅰ에는 교과서에 실려 눈에 익은 작품들도 많아 직접 실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네? 미술관Ⅰ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 춤추는 아이, 행상, 벼타작, 담배잎썰기, 씨름도 등이 눈길을 모은다. 꽉 짜인 원형 구도에 간략한 필선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았다. 작품 크기는 30㎝ 안팎으로 아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씨름도’의 씨름꾼 옆에는 이들의 신발로 보이는 신발들이 내팽겨쳐져 있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 하나는 고급신발로 보이는 고무신이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데도 공평한 승부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경기를 보고 있다.‘허허, 저런’‘빨리 넘겨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긴박한 표정과는 달리 엿판을 매고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위를 치면서 열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얼핏보면 빛 바랜 누런 종이에 검은 잉크가 뭉개져 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면 왼쪽 하단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 오른편 상단 도원의 세계가 보인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한 것이다. 전체적인 경관은 짙은 안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잘 어우러져있다. 꿈과 현실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를 법하다. 두루말이 형태로 폭이 20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당대 지적 권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 양쪽에 자신이 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제발(題跋)뿐만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20여명의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품은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불교회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들이 모여있는 불교회화관에 들어서면 좀 더 화려해진다.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 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웅전 석가모니 불상 뒤에 놓였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석가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사실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불화의 세계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 自讚)’은 날카로움 속에서 정중함과 정성을 담아 쓴 흔적이 엿보였다.‘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에서는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나는 듯하다. ●문화재 사랑으로 만들어진 기증관 기증관은 11개실로 구성됐으며 이홍근 박병래 등 문화재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1946년 이희섭 선생이 금동불상 세 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213명이 청동기 금속공예 회화를 비롯한 국보 6점과 보물 32점 등 모두 2만 2091점을 기증했다. 특히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운영자인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등 일본인 3명도 기증자 대열에 포함돼 있어 눈에 띈다. 기증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국보 904호)를 볼 만하다. 투구는 1500년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제작됐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생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투구는 베를린 박물관이 보관하다가 1986년 뒤늦게 손 선생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 투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라 생각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3층 아시아관·미술관Ⅱ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 3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인기 유물’과 그렇지 못한 ‘비인기 유물’ 사이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봐 왔던 익숙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도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 유물도 전시 3층에는 306∼311호까지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중국·일본의 유물이 전시된 ‘아시아관’이 있으며,301∼305호까지 ‘미술관Ⅱ’에는 불상·청자·백자 등 우리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통 301호부터 관람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오면 바로 왼쪽으로 ‘아시아관’입구인 306호가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들은 306호 ‘아시아관’을 먼저 관람하게 된다. 306호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나가 301호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시아관’을 얼른 둘러본 뒤 ‘미술관Ⅱ’에서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아시아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조금 빨라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팔을 가진 부처 조각상이나, 인자해 보이지 않는 부처의 미소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 박사 수준의 설명을 해 주던 엄마들도 이곳의 잘 모르는 유물들 앞에서는 슬쩍 조용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시아관’에서 잠시 풀 죽은 엄마들은 3층 북쪽에 자리잡은 ‘미술관Ⅱ’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볼것 많고 배울것 많은 고려청자 전시실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로 가득찬 301호 불교조각 전시실을 지나면, 전시된 모든 유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숙한 금속공예(302호)·청자 전시실(303호)을 지나게 된다.304호에는 수수한 느낌의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고 305호에는 백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유물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따로 마련된 방에 모셔진 이 불상은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자체에서 풍기는 위엄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미륵반가사유상 외에도 고려청자 전시실은 관람객들의 ‘정체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사방이 온통 비취색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옮길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또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학생들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진열된 어느 것 하나 국보·보물 아닌 것이 없을 듯한데, 그 가운데서도 국보가 있고 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부터 차례로 관람하면서 올라왔다면 3층이 마지막 장소다. 특히 조선백자들이 전시된 305호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된다면, 어수선하게 관람했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손목없는 부처님…왜? “엄마, 왜 부처님 손이 없어요?” 3층을 관람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301호에 마련된 불교조각 전시실에는 많은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3개 철조불좌상의 양 손목이 없다. 공교롭게도 ‘손목 없는 불상’3개 모두 철로 만들어졌으며 앉아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첫번째 ‘손목 없는 불상’은 301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약 2m크기이며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두번째는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된 것으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며, 세번째는 10세기에 만들어져 경기 포천군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손목 없는 불상’에 대해 불상 전문가인 홍익대 김리나 교수는 “불상의 손목은 다른 곳에 비해 가늘고 몸체에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누군가 고의로 잘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불상의 손 모양새(손갖춤)는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짓는 것으로 부처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수목공원·공연장…가족나들이 ‘딱’이네 “박물관도 즐기고 공원 나들이도 하세요.” 박물관은 자칫 아이들에게는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유물에 서려 있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공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런 염려를 덜어도 될 것 같다.‘거울못’과 10만그루의 수목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이 박물관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아이도,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은 어른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연못·폭포·정원·식물원 등 눈길 박물관 바로 앞에는 도심 공원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못’이다. 거울못은 지름만 150m에 달하는 인공연못이다. 박물관을 설계한 정림건축 박승홍 건축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만나게 된다. 거울못은 성벽 모양을 한 박물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모든 물들이 한데로 모이는 저수지이자 통일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연못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연못과 박물관 정문 사이에는 언덕이 하나 있다. 박물관 정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겨울에는 거울못이 얼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열린마당’은 박물관 중심에 시원하게 배치된 수목 공원이다. 한옥의 대청마루에 해당한다.10만 그루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2호 보신각종, 보물 365호 흥법사 진공대사탑 및 석관 등이 숨어 있다.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공부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설계가의 바람이 담겼다. 박물관 왼편으로 석조물정원, 어울마당, 미르폭포 등 다양한 녹지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뒤편에도 크지는 않지만 녹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통염료식물원에서는 개암나무, 씀바귀 등이 재배된다. 그 옆으로는 의자와 잔디밭 등이 펼쳐져 있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도시락을 먹기에 그만이다. ●뮤지컬 즐기고 도서관서 책도 보고 박물관에는 공연장과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전문 공연장 ‘용’은 805석짜리 중극장이다. 서관에 있다. 박물관 안 공연장으로는 국내 최초다. 클래식,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공연도 연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지난달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금난새·정명화의 공연이 열렸다.4일부터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 연극 ‘이’, 뮤지컬 ‘러브 다이어리’ 등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점은 1층에 8석의 장애인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휠체어로 들어와서 옮겨 앉지 않고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회전무대 등 무대시설이 부족하고 완벽한 음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흠이다. 지적인 관람객들이라면 서관 4층에 있는 도서관이 제격이다.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전문 도서관이다.9만여권의 장서와 6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그러나 한 번도 ‘제 집’을 갖지 못했다. 무려 6차례나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60년 동안 타의에 의해 ‘역마살’에 시달렸다. 전쟁과 문화 홀대의 역사를 아프게 말해주는 대목이다. 국립박물관은 광복이 된 1945년 12월 경복궁 내 건물에서 정식 개관했다. 그러나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요 유물 2만여점은 부산대학교 박물관 등으로 전전해야 했다. ‘전세방 처지’는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53년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남산 분관에 자리잡았다가 55년 덕수궁 석조전에 이어 72년에는 경복궁 현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했다. 86년 박물관은 옛 중앙청 건물로 네번째 이사를 갔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96년 경복궁 사회교육원 건물로 옮겨가 지난해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은 환갑이 돼서야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마련한 셈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교통편 ●지하철 용산∼회기 국철과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정문까지 걸어서 100m도 안 된다. 박물관 입구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0분 거리다. ●버스 버스도 비교적 편리하다. 초록버스 0211번(보광동∼옥수동)이나 빨강버스 9502번(의왕 고천∼신세계백화점)을 타면 된다. 용산가족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도심순환코스)를 타도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승용차 서문으로 입장하면 된다. 주차료는 2시간에 소형차 2000원, 대형차 4000원이다.30분당 각각 500원,1000원의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단 종일 주차는 각각 1만원,2만원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개관 초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 ◆관람료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매표소에서 무료관람권을 발급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서다. 내년부터는 성인(19∼64세) 2000원, 청소년(7∼18세) 10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20인 이상 단체는 성인 1500원, 청소년 500원이다.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어린이박물관도 7∼64세까지 500원을 받는다. 6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돈을 안 내도 된다. 그리고 매달 넷째 토요일과 관람 시간 종료 1시간 전부터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국빈이나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 등도 무료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된 문화 기관 17곳 가운데 5곳을 이용하면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관람시간·입장제한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매표는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한다. 휴관일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이다. 최대 300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최대 허용인원은 1만 8000명이다. 어린이박물관은 더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9시부터 1시간30분 단위로 150명만 들어갈 수 있다. 평일에도 오전 일찍 가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관람 유의사항·편의시설 이용법 박물관 안은 당연히 금연지역이다. 음식물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와도 안 된다. 다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은 출입할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돌려 놓는 것은 상식이다. 전화 통화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다면 차라리 전화 전원을 꺼 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유물과 작품의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삼각대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몰지각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상업적 용도의 촬영도 금지돼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유물을 관람하는 값이다.1000원짜리 두 장 냈다고 제것처럼 만지면 안 된다. 혹시 아이들이 제집처럼 뛰어다니거나 유물을 손대면 따끔하게 혼을 내자. 편의시설도 꽤 갖춰져 있다. 유아나 노약자, 장애인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품보관함도 있어 가방 등을 넣어둘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PDA·MP3플레이어 이용하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최첨단 IT(정보기술) 박물관을 자랑한다. 설비시설은 물론 박물관 관리에 최신 IT 기술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PDA와 MP3 플레이어 등 개인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더욱 편리하고 상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모바일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PDA와 MP3를 갖고 전시품 앞에 서면 단말기가 전시품 위 적외선 발생장치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후 관람객들에게 화상과 음성으로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 준다. 지난해 리움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사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PDA를 켜면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언어 선택 화면이 뜬다. 이후 각각의 박물관 전시실과 관람 코스가 안내된다. 전시실이나 코스를 따라 돌기만 하면 된다. 또 세계 최초로 박물관 네비게이터 기능도 갖췄다. 관람객의 현재 위치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MP3 플레이어도 유물 소개는 PDA와 마찬가지다. 다만 네비게이션만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PDA 300대,MP3 400대를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는 각각 100대 이하만 선착순 대여하고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오전 10시만 되면 바로 동이난다. 대여료는 종일 PDA 3000원,MP3 플레이어 1000원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축구가 삶인 이주청년의 도전기 ‘골’ 4일 개봉

    축구가 삶인 이주청년의 도전기 ‘골’ 4일 개봉

    4일 개봉하는 ‘골!’(Goal!)은 스크린의 모든 피사체를 활어처럼 펄펄 뛰게 만드는, 싱싱한 스포츠 영화이다. 할리우드산(産)으로는 보기 드물었던 축구 소재의 드라마. 브라질 출신의 가난한 미국 이주민 청년 뮤네즈(쿠노 베커)는 타고난 스포츠 감각을 키워 프로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나 가족에게 희생하며 사는 것이 남자의 도리라고 굳게 믿는 고지식한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해 번번이 좌절한다.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뮤네즈 앞에 왕년의 축구선수이자 스카우트 담당인 글렌 포이(스테판 딜레인)가 나타나면서 그의 삶은 급반전의 계기를 맞는다.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황금같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속도감 있는 카메라 워킹, 가속을 붙여가는 드라마 전개방식 등이 스포츠 드라마의 밀도를 높여주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감상포인트가 한정적이지 않은 드라마의 내용도 다양한 관객층을 포섭하기에 유리한 점이다. 불법체류 가족이 되어 미국의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는 이민사회의 그늘이 주인공을 통해 그려지는가 하면, 그 장애를 가족의 힘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은 드라마의 감수성을 풍성하게 일궈내는 부수효과를 냈다. 멀리서 뮤네즈의 성공을 기원하는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남몰래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부정(父情) 등이 이 드라마를 ‘축구영화’로만 한정지을 수 없는 소재적 미덕이다. 도약과 질주, 함성이 쏟아지는 큰 동선의 스크린을 즐기고 싶다면, 무리없이 만족할 작품이다. 하지만 스포츠 영화의 고유정서인 ‘헝그리 정신’을 확인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허기가 질 수도 있겠다. 영화의 무게중심은 뮤네즈의 정상등극까지의 눈물겨운 우여곡절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이야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명예와 돈, 세속적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뮤네즈에게 균형감각을 되찾아주는 건 결국 소박한 여자친구 로즈(애나 프리엘)와 가족의 사랑이다. 여성관객이라면 멕시코 출신의 ‘선굵은’ 신인배우 쿠노 베커와 조우하는 즐거움도 ‘덤’이다. 데이비드 베컴, 지네디 지단, 라울 곤살레스가 카메오 출연한다.‘저지 드레드’‘피닉스’‘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을 연출한 대니 캐논 감독.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양극화 사회의 우울/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너사는 주소를 말해봐? 그럼 네가 누군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아니, 네가 어떻게 살다 죽을지도 이야기해줄 수 있을지 몰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도 주소지만 척 봐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판별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한 공간이 사회계층적으로 고착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1960년대 나온 유행가 가사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빙글 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모두가 신분상승을 꿈꾸었고, 크든 작든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언젠가 지나가 버렸다. 이제 부모를 잘 만나야 공부도 하고, 태어날 곳도 잘 골라야 인생이 순탄해지리라. 강남의 중·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한 반에 대여섯 명씩 학생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부는 교육을 통해 세습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과 발전을 뒷받침해왔던 강력한 ‘기회 균등’의 이념이 이제는 힘을 잃었다. 양극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엘리트 대다수는 양극화 사회가 고착되면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신들과 자식들의 미래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다수의 기업인들, 경제 관료들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복지를 비용 개념으로만 보고 예산 타령만 한다.“돈이 어디 있나요?” 이들은 쉽게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심지어 능력에 따른 차별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 지향을 나무라기까지 한다.“돈 좀 쓰면 나빠요?” 이들은 볼멘소리로 외친다. 여기 양극화사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생생한 전범들이 있다. 부자와 빈자의 동네가 양극화된 멕시코, 브라질 등의 중남미 국가들이다. 이곳에는 가난한 것도 불편하지만, 부자들도, 엘리트들도, 이들의 아이들도 편하지만은 않다. 멕시코시티의 강남이라 할 인테르-로마스 지역의 아파트 정문은 항상 닫혀있다. 정문에는 무장 경호원이 늘 카메라를 보며 외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중간계층 사람들조차 납치의 위협에 시달린다.‘납치산업’은 이 지역의 유일한 성장산업이다. 부자 동네 곳곳에 ‘방탄차 개조’ 전문업체가 산재해있다. 이곳 CEO의 연간 경호비용은 1인당 평균 40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상파울루시는 뉴욕시 다음으로 개인 헬기가 많이 떠다니는 곳이다. 방탄차도 신뢰하지 않는 부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등하교에도 경호원이 동반한 차량을 타야 하고, 방과 후에는 집에서 나오지 못한다. 동네거리가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열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쪼개진 사회는 부자에게도, 아이에게도 불편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외환위기 이래 안착된 불평등 구조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더욱 고착화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호황기라 해도 연성장률이 4∼5%가 최대치인 저성장기로 돌입했다. 수출이 호황을 보인들, 공장가동률이 조금 높아질 뿐이지,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다. 졸업시즌이지만 우울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 사교육비 부담에 힘들어하는 서민층, 자신의 소득을 저축하여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꿈을 포기한 신혼부부들. 누가 그들에게 공화국의 구성원으로 충성심과 자부심을 가지라고 할 것인가? 불평등의 고착은 사회내부의 적대감을 증폭시켜, 사회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성숙한 작동마저 방해한다. 그간 힘들게 경제위기를 극복해오는 데 힘을 모아왔다면 이제는 기회의 불평등 구조를 깰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개선에 지혜를 모을 때이다. 조건의 평등, 기회의 평등이야말로 발전의 동력이고, 공화국을 공화국답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성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 [1일 TV 하이라이트]

    ●특별기획(EBS 오후 11시5분) 지난 6월 말, 전국 주요 대학들이 논술의 비중을 강화하면서 통합형 논술시험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면서 변별력 확보에 어려움을 느낀 대학들이 내놓은 논술 강화 방안.2008논술시험, 무엇이 바뀌고, 또 어떻게 준비를 해야하는지 서울의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과 교수들에게 들어본다. ●서동요(SBS 오후 9시55분) 신라 선화공주는 전쟁으로 백제에 빼앗긴 땅을 다시 찾기 위해 진평왕과 함께 묘책을 짜낸다. 백제 위덕왕은 신라에서 보낸 선대 성황폐하의 금으로 된 머리띠를 받는다. 위덕왕은 신라에서 찾아온 성황의 머리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선화공주는 빼앗긴 땅을 돌려주면 진짜 성황의 머리를 돌려 주겠다고 제안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중국에서 에이즈 감염자 1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난한 농부들이 피를 팔면서 오염된 장비에서 에이즈가 감염되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에이즈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노인들만 남게 됐다. 그래서 에이즈 전도사로 불리는 투청 박사는 이런 고아들에게 양부모를 연결시켜 주는 일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요리보고 세계보고(MBC 오후 5시20분)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교토는 유서깊은 사찰과 유적이 많은 도시로 손꼽힌다. 그런 까닭에 이곳의 음식문화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면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기도 하다. 절임음식과 유바, 교야채 등으로 만든 다양한 퓨전음식 등 일본 교토의 멋과 맛을 따라가 보자. ●문화스페셜(KBS1 밤 12시55분) 현대음악을 선도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1월3일이면 그의 서거 10주기를 맞는다. 그의 음악은 유럽에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을 떠나살아야 했다. 끝내 고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임종을 맞아야했던 윤이상, 그의 음악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10분) 스크린 속에 보인 버섯돌이의 얼굴이 돌이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르. 미르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돌이의 사진에서 버섯돌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버섯돌이가 주워간 액세서리를 돌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미르는 힘들지만 돌이가 암흑전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여담여담] 소박한 파티…따스한 감동/최광숙 문화부 차장

    최근 한 파티에 다녀왔다. 바쁜 12월을 피해 때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해서 약간의 들뜬 기분에, 어떤 근사한 파티일까 기대를 하며 파티장을 찾았다. 퇴근후 남들보다 1시간이나 늦게 간 파티장에는 팝페라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늦게 도착해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뒤에 서 있는데 탤런트 신애라씨가 나와 “저도 한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어요.”라며 ‘컴패션’(compassion)을 운운했다. 그러더니만 컴패션과 관련된 짤막한 비디오가 상영됐다.“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으로…”라는 말들이 이어지자 “컴패션이 뭐야. 오늘 파티는 예수님 믿자는 선교 모임인가봐.”라며 같이 간 일행들이 속삭였다. 파티장에는 낯익은 인물들이 많았다. 여성계 인사를 비롯해 기업체 임원, 언론계 인사 등등 각계의 인사들이 다 모였다. 아무리 봐도 공통점은 없었다. 이날 파티를 주최한 사람은 광고계의 여성 CEO 문애란 웰콤대표. 국내 여성 카피라이터 1호라는 타이틀에 머물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광고대행사 ‘웰콤’을 세워 대표로 활동하는 맹렬 여성 선배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전세계 가난한 어린이를 후원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자.”고 인사하며 “뒤에 맛있는 음식이 준비됐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파티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파티 장소는 서울 예술의전당 앞 한 레스토랑.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별 몇개짜리 호텔도 있건만 그녀는 친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빌려 지인들을 초대했다. 찐 고구마에 옥수수, 삶은 밤, 떡, 김밥, 어묵 등 뷔페식으로 마련된 음식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전에도 자선 파티에 가봤지만 이렇게 잔잔하게 감동을 받은 적은 없다. 화려한 호텔에서,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고, 풀 코스의 요리를 즐기며, 유명 아나운서나 탤런트가 사회를 보는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보면서 “음식값과 호텔비용 빼면 자선기금이 얼마나 모아질까.”라며 아쉬움이 남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날 모두들 좁은 공간에서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어묵국물을 훌쩍이며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모두들 환한 표정에 격의없는 대화가 오갔다.6명이 둘러앉은 우리 식탁에서 누군가 어린이 후원 결연 신청서에 사인을 하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뒤따랐다. 최광숙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 [열린세상] 이주여성 인권보호, 정부가 나서라/최광기 전문MC

    어떻게 저런 현수막을 버젓이 걸 수 있을까 싶다.“베트남처녀와 결혼하세요.”농촌뿐 아니라 웬만한 도시 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너무나 친절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로 글들을 써놓았다. ‘초혼, 재혼, 장애인도 가능’,‘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가능’,‘만남에서 결혼까지 7일’ 등. 난 늘 이 현수막을 볼 때마다 너무나 부끄럽다. 베트남 국민들이, 그 여성들이 이 현수막을 본다면 뭐라 할까 싶다.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만큼 국제결혼으로 인한 외국인 이주 여성이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난 6월에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4년 전체 혼인 31만 944건중 한국 남자가 외국인 여성과 국제결혼한 것은 2만 5594건으로 8.2%의 비율이다. 이중 농업에 종사하는 남자의 혼인은 6629건인데 이 가운데 외국여성과 결혼한 것은 1814건으로 27.4%이다. 농어촌 결혼의 4건 중 1건이 국제결혼인 셈이다.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여성은 국적별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이 전체의 90%를 차지했다. 이렇듯 국제결혼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농촌으로 시집을 가는 이주여성의 경우는 한국문화에 대한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그럼에도 한국어, 한국문화, 자녀양육법에 대한 정보 차원의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이런 무관심속에 이주여성들의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남편의 구타와 시집살이로 인해 무작정 집을 나온 여성들은 물론이고 2003년에는 결혼생활 8년동안 구타에 시달린 필리핀 여성이 10층 건물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제결혼한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생활상의 어려움이나 인권침해문제가 상담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외국인이라는 신분상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설 수밖에 없고, 특별한 보호망이 없는 형편이다. 국제결혼한 이주여성의 국적취득은 혼인 후 2년이 지나야 하고, 배우자의 보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남편의 보증이 국적취득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 또는 별거를 하더라도 외국인이라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편, 알선업체나 개인에 의한 국제결혼 사기도 문제가 되는 가운데 올 초 필리핀 정부가 직접 나섰다. 필리핀 당국은 한국남자와 국제결혼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공문을 만들어 한국거주 필리핀 여성들에게 회람시켰다. 내용인즉 한국남자와 결혼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한국에 온 여성들이 결국 술집과 클럽에 남겨져 비참한 처지에 처한 경우를 종종 봤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재인식이 필요하고 외국인이라는 편견에 휩싸여 이주여성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의 인권은 설 자리가 없다. 또한 한국사회가 배타적 단일민족주의와 인종적 편견을 벗어던지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되는 인권침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보완하며 사회적인 관심을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가난을 이겨내고 가족들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여성들이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떠난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이주여성들은 우리들의 할머니들, 어머니들, 누이들을 참 많이도 닮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현수막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 한 구석이 왠지 뻐근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최광기 전문MC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해도 회사 계속 다닐수 있나

    Q최근 중견 제조업체 생산직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연봉 1800만원으로 네 식구가 살아가는데, 채무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 신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산하면 회사 생활을 계속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추심은 계속되고, 빚 갚을 돈을 마련할 방법도 없습니다 -이상호(47)- A보통 파산선고를 받은 자를 해직한다는 회사 규정은 없습니다. 파산했다고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미국 파산법은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입니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파산 선고를 받으면 해직되지만, 이것은 공무를 담임할 자격을 ‘가난하지 않은 자’에 한정하는 차별적 조치입니다. 이 규정 때문에 유능한 인력충원 기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채무자가 파산신청을 하기 전 사장에게 파산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장은 “파산하면 회사를 못다니는 건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채무자는 “달리 갈 데도 없으니, 더욱 더 여기서 열심히 일해야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채무자는 파산과 면책을 진행하는 동안 외국 출장도 두차례 다녀오면서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고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단 하나 급여를 자신의 통장으로 송금할 수 없었지만, 이는 파산 때문이 아니고 거래은행이 지급정지 조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파산신청을 하지 않은 채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에 전념하지 못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고용한 직원들의 업적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채무자는 채권자와의 약속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만들려고 합니다. 카드빚 때문에 매춘을 하고 강도를 했다는 극단적 사례는 신문과 방송을 시끄럽게 합니다. 회사에서는 이들을 경계합니다. 출장비나 자재구입에 관해 지출결의서가 올라와도 다시 한번 검토합니다. 창고관리를 맡기기도 어렵습니다. 내다팔면 돈이 되는 것들이고, 채권자의 추심에 갚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는 갚을 돈 마련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숙련된 관리자는 직원이 일과 중에 한쪽에 가서 전화를 받는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느낌이 옵니다. 파산 신청자는 과거의 빚으로 인한 추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서 채무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근거를 없애줍니다. 파산 신청자는 쉽게 이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숙련된 직원을 원하는 고용주에게 좋습니다. 돈에 대해 큰 욕심을 낼 이유도 없습니다. 채권자들에게 갖다 바치는 돈을 이제 바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과 중에 추심전화에 시달리고 채권자들을 회사로 오게 하는 가난한 직원과 파산을 신청해 당당하게 생활하는 가난한 직원 중 어느 쪽을 고용주가 선택하겠습니까. 파산은 채권추심을 당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입니다.
  • [28일 TV 하이라이트]

    ●시네마천국(EBS 밤 12시)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어젯밤 나와 이메일을 주고받던 그 사람이라면? 영화 ‘유브 갓 메일’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원작이 있었으니, 주인공들이 이메일 대신 편지로 사랑을 나누던 1940년 작이 그것. 그렇다면 편지에서 이메일이 되기까지,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국민 약속 물은 생명이다(SBS 오후 5시30분)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건설에 어려움을 겪거나, 건설되어 있는 기존 댐들 또한 오염이나 생태계 파괴의 이유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5월 감사원의 타당성 재검토 권고 이후 대안이 검토되고 있는 한탄강댐과, 심각한 부영양화로 해체논란이 일고 있는 의암댐 문제를 짚어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패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또 국가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물론 공직자, 시민사회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런 주제를 두고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 강성구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 사무총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MBC 오후 7시20분) 가난 때문에 헤어진 다섯째를 찾는 최옥순씨 오남매. 어렵게 살림을 꾸려온 부모는 막내딸이 유복한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라길 바라며 눈물을 삼킨 채 아이를 보낼 결심을 하게 된다.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해 더욱 미안하다는 옥순씨 남매.30년 전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던 그리운 막내를 만날 수 있을까?   ●HD역사스페셜(KBS1 오후 10시) 충북 진천의 길상사. 이곳에서 김유신을 기려 올리는 제사 때 통상 왕에게만 행해지는 4배가 올려진다. 또 강릉 화부산사에 있는 김유신의 영정은 신라 금관을 쓰고 있어 분명한 왕의 모습이다. 이는 김유신이 죽은 지 160년 만에 흥무대왕에 추존됐기 때문이다. 김유신, 그는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주말부부인 원길과 미경. 일하느라 바쁜 남편 때문에 미경은 하루 하루가 지루하다. 동창회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 설희의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의아해 하던 미경은 설희에게 스폰서가 있음을 알게 된다. 미경은 친구를 통해 스폰서카페에 가입을하고, 일주일에 세 번 만나주는 조건으로 엄청난 돈을 받는데….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외동자녀 명문대로”…6~7세부터 집중 과외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외동자녀 명문대로”…6~7세부터 집중 과외

    날로 뜨거워지는 사교육 열풍에 중국의 부모들도 허리가 휘어진다.1979년부터 시작된 ‘1가정 1자녀 갖기 운동’으로 소위 샤오황디(小皇帝·외동자녀)들에게 아낌없이 교육비를 투자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명문대 입학이 곧 출세로 이어진다는 ‘일류병’과 ‘학력 제일주의’도 주요한 이유다. 이 때문에 중국의 샤오황디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극성에 못이겨 학원을 전전하고 각종 과외에 시달리고 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양우(楊武·12)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다. 베이징(北京) 자오양취(朝陽區) 야윈촌(亞運村)에 사는 그는 내년 7월 치러지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대비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중학교 입학부터 시험을 본다. 무역업자인 아버지는 홍콩과 미국·캐나다와 교역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60평 규모의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한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초등생 14시간 넘게 공부 시달려 양우의 목표는 베이징에서 명문 중학교로 꼽히는 런민(人民大)대 부속 중학교 입학이다. 부모들은 양우가 칭화(淸華)대나 베이징대 등 명문대를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양우의 하루는 대입 수험생 이상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새벽 6시30분에 일어나 7시30분에 등교, 오후 4시반까지 학교 수업을 듣는다. 국어(중국어)와 수학, 영어는 물론 컴퓨터와 음악, 미술, 체육, 사회, 도덕 등 대략 12개 과목을 소화해야 한다. 방과 후에는 야윈춘 근처의 학원에서 하루 2시간씩 영어를 배우고 저녁 8시에 집에 도착,1시간씩 수학 ‘푸다오(輔導·과외)’를 한다. 수학이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학교 숙제를 끝내면 밤 10시가 넘기 일쑤여서 늘 잠이 부족하다. 주말이라고 쉴 틈이 없다. 오히려 더 바쁘다. 입시 과목인 국어(중국어)와 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어머니 리쥐안(李絹·40)은 “좋은 중학교에 입학해야만 명문 대학교까지 술술 풀리는 것이 중국의 교육 상황”이라며 “아이가 불쌍하지만 다른 학부모들도 나처럼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중국의 어린이들은 6,7세때부터 영어나 피아노, 수영 등 온갖 과외를 받는다. 사교육비 부담이 만만찮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려는 부모들의 애뜻한 ‘사랑’을 막을 길이 없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은 더욱 가혹하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베이징대 부속중학교 가오중(高中·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인슝(銀雄·17)은 “대졸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어 명문대를 나오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낙오될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며 “비밀리에 과외를 하는 친구들이 많고 일부는 상당한 고액 과외도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 하이뎬(海淀)구에 위치한 신둥팡(新東方)학원 등 입시학원들은 수험생들로 일년내내 초만원이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무려 2000위안(26만원)이나 하는 고액의 10일짜리 합숙 영어 프로그램에 수백명이 몰려 중국의 교육열을 실감케 했다. ●1년 유치원비 1인평균소득 넘어 높은 사교육열은 가정 경제의 ‘주름’으로 직결된다. 초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베이징의 경우 1년 교육비가 무려 3만위안(약 390만원) 하는 최고급 유치원들도 적지 않다. 베이징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이 2만 8000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와 컴퓨터는 기본이고 피아노와 미술, 수영 등 예체능학원까지 다녀야 한다. 대략 300∼500위안(3만 9000∼6만 5000원) 정도를 내면 희망자에 한해 학교에서 보충수업도 받을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과외 수업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후 수업보다 비싸더라도 질이 높은 가정교사나 학원을 찾는다. 대부분 맞벌이인 가정들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자식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상하이(上海)시 교육위원회가 최근 3027명의 초·중학생 부모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93.1%가 과외나 학원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실제 학원을 보내거나 가정교사를 둔 경우는 초등학생이 19.2%, 중학생 27.5% 등 모두 46.7%로 조사됐다. 상하이 사회과학원은 보고서를 통해 1∼16세까지 자녀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25만위안(약 3250만원)이며 대학 졸업후 취업까지는 총 49만위안(6300만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상하이 시민들은 연간 평균소득이 중국 전체 평균보다 5배 많은 5000달러(500만원)이며 사교육비로 아낌없이 투자한다. 때문에 중국내 최대 사교육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칭다오(淸島)대 멍톈윈(孟天運)교수(사회학)는 “학교성적 올리는 데에만 급급해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는 현재의 사교육은 학생들을 공부기계로 만들 위험이 높다.”고 일침을 놓는다. ●교사 박봉…학원강의 등 부업 높은 교육열과는 반대로 교사들의 처우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 지난해 전국 전문대 이상 대학 교수의 연봉은 평균 4만위안(520만원)이 안되고 초·중·고교 교사의 평균 연봉 역시 2만위안(260만원) 안팎이다. 월급 이외에 제공되는 주택이나 각종 사회보장 혜택은 제외된 금액이다. 언론에 소개된 리밍(李明·29) 교사의 사례를 보자. 그는 지난 2000년부터 난징(南京)의 한 고교에서 영어 선생으로 재직 중이다.2개반의 담임을 맡고 있으며 매주 14시간을 강의한다. 월급은 기본급 1200위안에 수당을 합쳐 2000위안.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빼면 손에 들어오는 돈은 1500위안(약 20만원)이다. 때문에 박봉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과외나 학원강사 등 부업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지역의 경우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문 과외교사로 변신, 현직 때보다 2∼3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청소년 1000만명 정신건강 심각 과외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중국 청년보는 중국의 과외가 ▲보모형 ▲입주형 ▲수험형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모형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영어·수학의 기초와 그림·노래·무용 등 예체능 분야을 직접 챙기는 형식이다. 입주형은 부유한 가정에 대학생들이 함께 살면서 학습 전반과 교육·생활태도까지 지도하는 신형 과외다. 전·현직 교사나 대학교수들까지 가세하는 수험형 과외비는 보통 시간당 100(1만 3000원)∼200위안(2만 6000원) 선이다. 과도한 교육열 때문에 후유증도 적지 않다. 특히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베이징 완바오(北京晩報)는 베이징시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60만명을 넘어섰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 전역에서는 1000만명 이상이 각종 심리적 이상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때부터 시작되는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치열한 성적 경쟁 속에서 중국의 청소년들이 시름시름 병들어 가고 있다. oilman@seoul.co.kr ■ 현직교사 눈에 비친 교육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학교에서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면 학부모들이 줄을 서서 과외 교습을 요청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25년 넘게 교사생활을 해온 왕밍(王明·가명·55)은 중국의 교육열이 최근 하나뿐인 샤오황디(小皇帝·외동자녀)에 대한 기대감과 학력 제일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직 교사로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과외나 학원강사 등의 부업으로 버는 돈이 학교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다.”며 “박봉에 시달리는 중국 교사들이 과외 등 부업의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과외비는 교사들마다 다르지만 자신의 경우 중3과 고3 수험생들의 경우 시간당 100위안이고 ‘일반 학생’은 50위안씩을 받는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시간당 20∼30위안 정도를 받는다. 현재 중국에서는 교사들의 과외 교습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부업으로 과외 교습을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적발되더라도 퇴직이나 감봉 등의 벌칙은 없다. 승진에만 영향을 받을 뿐이다. 왕 교사는 “한 학교에서 대략 20∼30%가 가정교사나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워낙 박봉에 시달리고 있어 학교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자신의 월급을 밝히길 거부했지만 베이징의 경우 대학졸업 후 교사의 초봉은 대략 1500위안이고 10년 정도 지나도 2000위안이 조금 넘는다는 설명이다. 농촌이나 중소도시의 경우 교사들의 월급은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교직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호도를 묻자 왕 교사는 고개를 흔들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인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졸 실업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청년들이 호구지책으로 교사를 선택하지만 좋은 직장을 찾으면 미련없이 교직을 던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중국 교육의 문제점을 물어보자, 왕 교사는 한참 뜸을 들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교육비는 갈수록 높아지고 이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도 적지 않다.”며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oilman@seoul.co.kr
  • 철없는 어른용? 팀버튼의 ‘유령신부’

    철없는 어른용? 팀버튼의 ‘유령신부’

    팀 버튼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마침표를 찍을까. 그의 팬이라면 또 한번 챙겨봐야 할 작품이 새달 3일 개봉하는 ‘유령신부’(Corpse Bride)이다. 지난달 앞서 개봉한 그의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뭔가 모를 허기를 느끼고 있든, 그 천재성에 아직도 흥분을 달래지 못하고 있든 양쪽 모두에게 반가운 기회이다.‘팀 버튼이 만들면 뭔가 다르다.’는 명제를 재확인해 줄, 이번에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1993년 ‘크리스마스 악몽’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 지 10여년만이다. 가진 것이라곤 돈밖에 없는 반 도르트 일가와 가난한 세습귀족 에버글롯 일가가 사돈을 맺기로 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반 도르트 가의 아들 ‘빅터’(목소리 연기·조니 뎁)와 에버글롯 가의 딸 ‘빅토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는 결혼식 리허설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 결혼식 연습을 하던 빅터가 유령신부에게 반지를 끼우면서 인간신부와 삼각관계를 맺고, 빅터는 그 사이를 오가다 진실한 사랑에 눈뜨게 된다. 인간의 몸짓을 그대로 화면에 반영하는 기법(스톱모션) 덕분에 이 애니메이션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까지 한층 더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졌다. 눈썹을 치켜올리거나 찡그리는 표정 등 캐릭터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실제 사람의 동선과 거의 닮았다. 그럼, 이 영화에서 팀 버튼의 성취는? 애니메이션이 동심(童心)에만 복속하는 장치가 아니란 사실을 명백히 확인해준 작품! 팬터지를 잊지 못하는 ‘철없고 싶은’ 어른관객들을 사정없이 빨아들이는 화면이다. 전체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인생은 둥글다고 했던가. 그래서 가운데와 언저리가 있단다.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기왕이면 가운데에서 살아봄이 어떨까. 문득 ‘니나 붓슈만’이란 여인이 생각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생의 한가운데 서서 삶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인다. 파란과 곡절의 인생항로, 우수와 슬픔,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하는 자기 신념이 강한 여성이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70·한국명 許滿理) 이사장. 스물한 살 꽃다운 처녀 때부터 동방의 나라, 낯선 한국땅에서 ‘입양과 장애’라는 두 단어를 어깨에 모질게도 짊어지고 꼭 반세기를 걸어왔다. 어렵고 고달픈 생의 그늘에서도 자신보다 버려진 아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더 소중하게 온몸으로 맞이하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말리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자인 홀트 부부의 딸. 지난 50년을 입양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와 우리나라 입양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버지 해리 홀트(1964년 작고)와 어머니 버서 홀트(2000년 작고)가 떠나간 뒤인 요즘도 24시간 장애인들과 지내며 묵묵히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해외에 입양된 아이만 해도 9만 5000여명.6·25 전쟁의 폐허 속에 시작됐기에 초창기에는 전쟁고아와 혼혈아가 대다수였으며 최근에는 미혼모 아이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타운’을 찾았다. 본관 건물 바로 옆에 ‘말리의 집’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었더니 5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바닥에 앉아 있다. 한 아이는 불편한 몸 때문인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흘리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외출 나갔던 말리가 들어왔다.“미안해요. 미국에서 친구가 와서 보내느라고 조금 늦었어요.”라고 했다. 인터뷰는 마당의 의자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5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한국도 지난 세월만큼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입양아들이)정상적으로 자라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고 피력했다. 때마침 한국인 아가씨로 보이는 두 명이 지나가면서 영어로 인사한다.“어릴 적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 한달 전 자원봉사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온김에 생부모를 만날 생각도 있습니다. 다 커서 저렇게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저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 등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합니다.”면서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놀아주고 일년에 4∼5명 정도는 본가족과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고 부연했다. 50년 세월이면 강산이 다섯번 변했다고 하자 “56년 10월3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을 때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곳곳에 총알이 박혀 있는 건물이며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서울시청 마이크로버스로 고아들을 잔뜩 실어오곤 했는데 워낙 못 먹고 며칠씩 씻지를 못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노인네 모습과 영락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경우에는 버스 안에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 영아들이 보자기나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전구로 보온을 시키는 등 응급조치로 살려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죽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61년 부친이 일산 현 위치에 3만 3000여평의 땅을 사서 복지타운을 건립할 때까지 서울 효창동과 녹번동의 임시 수용시설에서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단다. 지금은 전국 11개지부를 둘 만큼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했더니 “어쩌다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 때 좋은 환경의 집안에 입양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많이 힘들어집니다.”라고 토로했다. 결혼을 안한 이유를 묻자 “신앙심이 있으면 굳이 안해도 됩니다. 고아 장애인들이 있는데 곧 그들의 어머니가 아닙니까.”면서 “꼬마들은 자신에게 할머니 누나 언니 등으로 곧잘 부릅니다.”라며 웃는다. 하루 일과에 대해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경책을 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고 했다. 이어 전날의 일을 깨알같이 메모한다. 아침 7시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할머니가 된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손 훈련을 꾸준히 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온몸에 잼과 밥풀떼기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을 정도. 간단히 샤워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체크한다. 요즘도 미국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메일이 자주 온다.9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평상의 일과를 시작한다.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줄 잼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한국어를 틈틈이 공부한다. 한국말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읽고 쓰기에는 아직도 서툴다. 때문에 영자신문이나 TV를 통해 돌아가는 세상사를 접한다.“한국인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고 했다. 아울러 “중국이나 필리핀을 왔다갔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빨리 달라졌습니다.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었는데….”라고 한국의 발전상에 새삼 놀라워했다. 말리가 한국에 오게 된 연유는 아버지인 해리 홀트의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본인 자신도 평소에 불우아동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잠시 집안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 버서 홀트는 원래 간호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농부인 해리 홀트를 만나면서 농부의 아내가 됐다. 그러나 결혼 직후인 29년부터 대공황이 이어지자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해리는 이곳에서 목재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던 54년 홀트 부부는 우연히 한국전쟁 고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선 한국인 고아 8명을 입양하려고 했으나 당시 미 연방법에는 2명 이상 입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홀트 부부는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의회는 두 달 만에 ‘홀트법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55년 10월12일 8명의 전쟁 고아를 입양한 것을 시작으로 해리는 한국에서, 버서는 미국에서 입양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최대의 시련은 88년 서울올림픽 때. 정부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해외입양 금지령을 내렸던 것. 홀트아동복지회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금지령을 취소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찍부터 부모의 뜻을 이어받은 말리는 그동안 부산 광주 전주 등지의 고아원과 예수병원 등에서 활동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의촌 진료에도 앞장서는 등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은 혈통주의가 강해요. 그러다 보니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입양은 불행한 아이나 아이를 원하는 가정을 위해 서로 좋은 일입니다. 낳은 부모나 기르는 부모나 사랑은 다 똑같죠.” 전문 장애인병원을 건립해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말리는 현재 일산타운에서 주로 입양이 힘든 고아 장애인 270명을 돌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 땅에는 부모가 묻혔고 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곳이기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말리의 어머니는 오리건주 자택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에 따라 현재 일산타운내의 남편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파이어스틸 출생. ▲53년 오리건주 크레스웰고교 졸업 ▲56년 새크래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졸업 ▲64년 오리건대학 간호학과 졸업 ▲91년 노스콜로라도 주립대 특수교육학과 졸업(석사) ▲56∼65년 홀트아동복지회, 부산 이사벨영아원, 우정보육원, 미국 오리건 병원, 전주 예수병원 간호자문역 ▲65∼78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67∼74년 홀트일산원 원장 ▲92∼현재 나사렛대학 재활학과 교수 ▲98∼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2000∼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수상경력 국민훈장 석류장(81년), 로버트 피어상(84년) 세계성령봉사상(98년) 적십자 인동장 금장(00년) 일가상(01년) 비추미 여성대상(03년) 등.
  • 두 남편을 사육하는 아내

    두 남편을 사육하는 아내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사육하고 있다. 이「남편들」은 정확히, 그리고 의좋게 보름씩 아내를 위해「교대근무」를 한다. 경남 통영군내 외딴 산골의 김춘자(34·가명)씨 일가.「세컨드」남편까지 거느린 이 여인의 행복을 일러「남복」이라 해야 할까. 산골 외딴집에 1처(妻) 2부(夫), 두 남편은 완전한 평등권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산골의 외딴집에 기구한 운명이 갈라놓은 한 여인의 두 줄기 사랑이 침침한「베일」속에 가려진 채 흐느끼고 있다. 한 몸으로 두 남편을 섬겨야 하는 숙명 아닌 숙명이 그를 묶어놓고 있다. 자그마치 10년이란 세월을 두고 두 명의 남편을 변함없이 섬기고 있는 김춘자 여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부도덕한 여자라고 욕한다. 그러나 그에겐 사랑과 동정과 책임감이 흐르고 있다. 경남 통영군내 산간 마을 국도변에서 동쪽으로 5리 남짓 가면 나지막한 야산이 나타난다. 멀리까지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산중턱 후미진 곳에 황토흙과 돌멩이만으로 쌓아 올린 토담집 한 채가 있다. 바로 여기가 김여인의 순박한 애정이 두 묶음으로 나누어져 2대 1의 가정을 이끌고 있는 1처 2부의 요람. 토담집 방은 둘 뿐, 부엌도 변소도 제대로 없는 야산의 움막이다. 두 명의 남편에겐 김여인을 가질 수 있는 똑 같은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김여인 자신도 사랑의 척도를 똑같이 재고 있다. 한 명은 최모(37)씨, 또 한 명은 박모(40)씨라고 했다. 둘 다 뱀잡이로 생활하는 땅꾼들 - . 이들에게도 부부생활의 준칙이 설정되어 있다. 1녀 2남의 3인 구두언약이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김여인은 이 토담집을 하루도 떠나지 못하고 두 남편은 15일간씩 외근(?) 활동을 교대로 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 뱀잡으러 외근을 보름씩, 돌아올 땐 생필품 사들고 최씨가 보름 동안 뱀을 잡아 시장에 갔다 판 수익금을 갖고 식량과 일용품을 사 들어오면 그 동안 부부생활을 하던 박씨는 날짜의「에누리」없이 망태를 둘러메고 뱀을 잡으러 떠나는 것이다. 그사이 최씨는 보름 동안 잊었던 아내를 다시 맞아 부부애를 만끽하면서 보름 후에 다시 돌아올 박씨를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최씨와 박씨의 방만은 다르다. 두 개의 방 중 오른쪽은 최씨, 왼쪽 방은 박씨 방이다. 결국 아내가 보름마다 한발 건넌방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들 사이엔 아기가 없다. 아내가 잉태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다한 가정처럼 복잡한 가재 도구는 필요없다는 것. 옷과 이불을 얹을 수 있는 낡은 농 하나씩이 양쪽 방에 있고 두 방 사이에 부엌 삼아 솥 하나 걸어놓고 물동이 하나, 밥그릇 몇 개가 뒹굴고 있을 뿐 - . 물론 전깃불이며「라디오」등 문명의 혜택을 입은 기구는 하나도 없다. 등잔불과, 보름간의 날짜를 기록하는「캘린더」가 이들의 중요한 생활도구 - . 그래도 옷들은 누구 못지 않게 깨끗하다. 기자가 찾은 날도 김여인은 자색 털「쉐터」에 양단치마를 입고 예쁘장한 얼굴에 약간의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마침 당번 근무(?)중이던 박씨도 검은 양복에다 약간 낡은「파일」외투를 입고 나왔다. 옷들은 뱀잡아 번 돈으로 보름간의 외근을 마치고 귀가할 때 시장에서 사들고 온다는 것. 박씨는 낯선 손님들이 찾아들자『또 경찰서에서 왔습니까?』라고 당황스럽게 물으면서 무척 꺼려하는 눈치였다. 관할 경찰서에서 너무 외딴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수상히 여겨 여러 차례 조사를 해갔다는 것. 3년 전엔 갑자기 밤중에 4~5명의 경찰관들이 토담집을 포위, 심한 가택수색까지 한 일이 있는데 그때도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들의 거동이 이상하다고 경찰에 정보를 제공, 출동했다는 이야기다. 쉽사리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 이들의 말을 대충 종합해본 생활동기는 - . 김여인의 고향은 고성군 거류면 - . 아버지가 역시 땅꾼이라 했다. 지금의 두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뱀잡이를 배웠다는 것. 김여인이 스무 살 때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박씨에게로 시집을 갔다. 병으로 집나갔던 남편이 개가(改嫁)하자 뜻밖에 돌아와 두 사람은 가난하면서도 단란한 가정을 꾸며 제나름대로의 행복을 누렸다. 결혼 이듬해에 박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굽어들고 전신이 험하게 헤지면서 난치의 환자라는 굴레가 씌워진 것이다. 박씨는 말없이 집을 떠나 어디론지 발길을 옮겼다. 아내는 처가에 맡겨두고 - . 3년이 넘어도 남편의 소식은 감감했다. 김여인의 아버지는 지금의 최씨에게 재혼을 시켰다. 최씨도 당시 총각으로 김여인을 극히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지금의 2대 1 가정의 시발점이었다. 최씨와 재혼 생활 2년만인, 그러니까 박씨가 떠난 지 5년 만에 박씨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멀리 떨어진 섬에 가서 난치의 병을 깨끗이 고치고 아내를 찾아온 것이다. 돌아온 남편 버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가족회의 끝에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아내는 첫 남편을 버리지 않았다. 아무리 난치병 환자라 해도 버릴 수는 없다고 나섰다. 사랑보다도 동정이 앞섰고 동정보다도 아내였다는 책임감 때문에 박씨를 붙잡고 용서를 빌었다. 최씨도 김여인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티었다. 어쩔 수없이 가족회의를 열었다. 김여인의 아버지를 참석시키고 두 명의 남편과 아내는 함께 살자고 약속했다. 이웃과 친척들의 눈이 무서워 인가 많은 마을을 피해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산중턱에다 집을 짓고 살자고 - . 이 자리에서 맺어진 언약이 바로 보름간의 교대근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이 언약의 위반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부부사이에 말이 없다는 것 뿐이다. 침묵으로 남편을 맞고 또 보내는 것이 아내의 변함없는 사랑의 표시였다. <공하종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16 제2권 11호 통권 제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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