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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73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儒林(73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퇴계의 운명을 점쳐보는 괘상으로 ‘겸괘(謙卦)’가 나왔다는 사실에 많은 제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너무나 정확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유종의 미.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켜나간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결국 이 말은 결국 스승 퇴계가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점괘가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주역은 퇴계가 겸손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고 운명할 것임을 분명하게 점지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제자들은 모골이 송연하였다. 이덕홍은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효사(爻辭) 중 대상(大象)을 풀이하여 읽어 내려갔다.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에 있다. 이것이 겸(謙)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지산겸’괘의 두 번째 초음(初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겸손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참으로 군자로구나. 대하를 건너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여도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이음(二陰)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스로 몸을 낮추고 겸손하다. 자신의 마음에 자신을 가졌기 때문에 남에게 잘난 체해 보이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한결같이 가지면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효사 중 삼양(三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니 진정 군자로구나.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루어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사음(四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만사 순조롭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지산겸’괘의 효사 중 오음(五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귀한 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하여 주변에 모인다. 불복하는 자가 있으면 정벌(征伐)함이 좋다.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지산겸’괘의 효사 중 마지막 부분인 상음(上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미 군주의 지위는 물려주고 난 위치에 있으나 아직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그러나 겸손하다. 군사를 동원하면 작은 읍국(邑國)을 정복하는 일쯤은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지산겸’ 괘의 총 해설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자가 되어서 교만 없기가 가난하여서 원망 없기보다도 어렵다.” 공자의 이 말은 예수가 말하였던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연상시키는데, 이렇듯 퇴계의 운명을 암시하는 ‘겸’괘는 퇴계야말로 ‘어진 이를 존경하고 선비에게 몸을 낮춰야 한다.’는 ‘존현하사(尊賢下士)’의 도를 완성한 ‘겸손의 군자’임을 드러내는 괘상이었던 것이다.
  • 엄마의 밥그릇

    가난한 집에 아이들이 여럿. 그래서 늘 배고픈 아이들은 밥상에서 싸움을 했습니다. 서로 많이 먹으려고... 엄마는 공평하게 밥을 퍼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마지막으로 엄마 밥을 펐습니다. 엄마는 항상 반 그릇을 드신 채 상을 내가셨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달라고 졸랐지만 절대로 더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배고픔을 못이긴 막내가 엄마 밥을 먹으려 수저를 뻗었다가 형이 말리는 바람에 밥그릇이 그만 엎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엄마가 막내를 때렸습니다. 막내는 엉엉 울었습니다. 형이 쏟아진 밥을 주워 담으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아! 아이들은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엄마의 밥그릇엔 무 반 토막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밥을 더 주려고 무를 잘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밥을 조금 푸셨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제야 엄마의 배고픔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스한 엄마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엄마도 아이들도 저마다 끌어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 TV 행복한 동화 -
  • [옴부즈맨 칼럼] 북한실상을 잘 알 수 있도록/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북한은 대한민국의 일부인가 아니면 독립된 이웃국가인가? 최근 국가인권위원장에 취임한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에 따르면, 국내법상으로 북한의 정체성은 우리 일부일 수도, 또는 아닐 수도 있다는 양극단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일본보다 더 가깝고도 먼 나라가 북한이다. 광복 이후 우리 삶에 끊임없이 큰 영향을 미쳐왔지만 일반인이 북한 사람을 실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필자도 북한사람을 직접 본 적은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첫번째는 15년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 북한 외교관을 만났었다. 우리 외교관처럼 말쑥했으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는 5년전인가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본 50대 북한 아주머니였다. 북-중 경계선을 넘어온 그녀의 모습은 남루했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듯 몸이 마르고 파리했다. 분단 이후 우리는 평화공존을 위한 대규모 남북한 정치 이벤트와 일촉즉발 전면전을 연상케 하는 북한 도발행위를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해왔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필자에겐 북한하면 이들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이 떠오른다. 북한이 대한민국 일부인지, 아니면 이웃 독립국가인지 정체성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최근 북한 핵실험 사태를 보면서 이제 북한 체제가 무너질 날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심을 하게 됐다. 핵폭탄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되며, 가질 필요도 없는 북한이 기어이 그것을 가졌다니 과연 그 체제가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을 포함해 우리 언론은 북한을 크게 두가지 뉴스 프레임을 가지고 보도해왔다. 첫번째는 “공산주의를 이긴다.”는 승공식 프레임이다.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북진통일식 보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번째는 “공산주의를 막아내야 한다.”는 반공식 프레임이다.6·25를 거치면서 북한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이번 핵실험 보도에서 보듯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있다. 반공이나 승공식 보도프레임은 북한이 우리 일부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독립된 정치체제로 간주하면서 미국처럼 북한을 ‘악의 축’ 혹은 ‘햇볕정책’ 대상으로 보도해 왔다. 최근 ‘일심회’ 사건보도에서 보듯 북한관련 이슈는 여전히 혼란스럽게 보도되며, 독자는 북한 정체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안경환 위원장 주장처럼, 북한은 가난한 이웃인 동시에 위력적인 무기 체제를 갖춘 ‘중간적 존재’로 보는 게 현실적이다.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은 북한체제 붕괴를 연착륙시킨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그런 점에선 오히려 승공 뉴스프레임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서울신문에서 보듯, 북한 핵실험 위협에 대해선 지금도 반공 뉴스프레임으로 보도한다. 앞으로는 북한체제가 붕괴됐을 때를 가상해 북한 주민을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 통합, 적응시켜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제3의 뉴스보도 프레임을 준비해야겠다. 북한주민이 밑으로부터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고를 하며,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생생한 뉴스를 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북한관련 보도에서 심각하게 생략된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신문이 야심차게 꾸려나가는 자치행정 지면에 북한지역을 포함하면 어떨까. 기존 북한기사와는 달리 발로 뛰면서 취재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기사를 기대해본다. 또한 정치권력에 의해 북한주민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감시기능을 높여야 하겠다. 국내 보안법 위반사건 보도에서도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원칙을 적용해 피의자 인권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2) 서남亞 영성의 중심도시 파키스탄 라호르

    [이슬람 문명과 도시] (22) 서남亞 영성의 중심도시 파키스탄 라호르

    벌써 세 번째 왔건만, 라호르에는 어디를 가나 붉은 빛이 가득하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붉은 빅토리아식 건물은 물론 무굴제국 시대의 궁전과 모스크들도 대부분 붉은 사암으로 치장되어 있다. 내리쬐는 건조한 태양에 수만년간 달구어진 대지도 붉은 흙이다. 도시 언저리에는 빛바랜 가난이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이고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래도 라호르는 16∼18세기 무굴제국의 영광과 역사적 광채가 펄펄 살아있는 천년고도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도 자부심과 긍지만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라호르를 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델리와 아그라에 이어 무굴제국의 정신과 정점에 달한 이슬람 문화의 화려함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 이슬람의 두 예술건축-서쪽의 알함브라 궁전과 동쪽의 타지마할 이슬람은 완벽한 혼합문화적 성격을 띤다.7세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척박한 오아시스 도시에서 발아된 이슬람은 뛰어난 종교성과 선험적 우월감, 열정에 불타는 유목전사들의 신앙심으로 튼튼한 용광로의 기틀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용광로를 채울 문화적 콘텐츠는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한 이슬람은 정복지의 문화적 전통과 다양한 예술장르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종합하는 놀라운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비잔틴과 페르시아라는 당시 세계최고 수준의 두 문명을 일시에 제압하고 받아들인 이슬람은 서쪽 끝 스페인 땅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걸출한 건축예술을 남겼고,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 끝 인도에서 무굴시대 타지마할이라는 꽃을 피웠다. 최정점의 이슬람 문화시대를 활짝 연 무굴제국의 문화도시가 바로 인도 접경의 라호르다. 여장을 푼 호텔을 나서자 마자 곧장 바디샤히 모스크로 달려갔다.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보고 싶은 것부터 먼저 보고 여행을 계속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그래야 마음껏 돌아보고, 나머지 것들을 포기해도 마음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라호르 성채 맞은편의 모스크가 핑크빛 모습을 드러낸다.1674년부터 30년에 걸쳐 완성된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 왕 시기 작품이다. 세 개의 하얀 대리석 돔이 그렇게 아담하고 우아할 수가 없다.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책에서만 보아왔던 넓은 정원이 나를 반긴다. 달구어진 붉은 사암으로 깔아놓은 정원 한 가운데 대리석 분수가 물을 품고, 세 방향에는 하얀 아치로 이어지는 아케이드가 펼쳐진다. 넓은 정원 사방에 우뚝 서 있는 네 개의 붉은 색 미나렛(기도시간을 알려주는 곳)도 작고 하얀 돔을 파란 하늘에 이고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룬다. 미나렛의 높이를 정확하게 정원 한 면의 3분의1 길이로 설계했다고 한다. 평일인데도 모스크 안에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화려한 페르시아 풍과 동양적 신비를 담은 인도양식이 잘 조화된 실내장식과 아라베스크 디자인은 무굴 문화 특유의 색깔을 마음껏 뽐내주고 있다. 특히 이 모스크 안에는 이슬람을 완성한 예언자 무하마드의 머리카락과 그의 딸 파티마와 사위 알리의 유품들을 보존하고 있어 파키스탄 무슬림들의 중요한 순례지이기도 하다. 이맘의 허락을 얻어 204개의 나선형 계단을 돌고 돌아 미나렛 꼭대기에 올라보았다. 라호르 성채를 비롯한 구시가 전경이 한 눈에 잡힌다. # 무굴제국 시대를 재현하는 중세의 삶과 유적 이제 한숨 돌리고 바로 이웃의 라호르 성채를 둘러본다. 무굴제국 전성기를 이끈 3대왕 아크바르 대제가 1584년부터 1598년 사이에 라호르에 거주하면서 축조한 궁전과 도시성곽이다. 도시 전체를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담으로 둘러싸고 한 면의 길이가 380m에 이르는 12개의 문을 가진 궁성이다. 아크바르 왕을 이어 자한기르와 샤 자한 왕이 부속건물과 묘당, 정원을 증축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특히 거울 궁전으로 불리는 쉬쉬마할 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왕비가 거주하던 공간으로 벽면과 천장 전체를 거울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유리, 진주 등으로 꾸며 놓았다. 어떤 궁전에서도 본 적이 없는 화려한 아라베스크의 색감과 기하학적 균형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역시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타지마할을 건설했던 샤 자한 왕 시대에 만들어졌다. 시내에 나온 김에 페로즈 서점에서 전공 책 몇 권을 사고, 근처의 차만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라호르 사람들이 즐기고 자랑하는 독특한 맛의 아이스크림이다. 과일을 듬뿍 갈아 넣고 피스타치오나 아몬드를 넣어 독특한 향과 맛을 가미했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무굴 시대 정원인 샬리마르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길다란 수로와 화단을 따라 3단의 테라스로 높이를 달리하면서 왕의 침소에까지 다다르게 설계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참으로 안온했다. 이슬람 사람들은 정원을 꾸밀 때, 항상 천국을 생각했다. 꽃과 나무에 새와 나비가 날고, 풍성한 과일이 열리며 분수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와야 했다. 외관의 투박함과 내부의 화려함. 이슬람 건축 철학의 기본이었다. 바깥은 속세이고 내부는 천국이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두 세상이 만나고 단절되는 것이다. 높은 담벽에 둘러싸인 샬리마르는 그러한 이슬람 건축 정신의 상징 같았다. # 라호르 박물관의 고행하는 부처님 라호르까지 왔으니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라호르 국립박물관이다. 간다라 컬렉션의 압권으로 파키스탄 최고의 박물관이란 명성보다는 부처님의 고행상을 보기 위해서다. 선사시대부터 간다라 시대까지 전시품을 차례로 둘러보다가 한쪽 편에 밝은 빛을 발하고 정좌해 있는 고행하는 부처님과 마주했다. 보리수 나무 아래서 인간의 온갖 번뇌를 짊어지고 처절하게 자신을 불사르던 영혼의 빛이 뚜렷하다. 그 모습은 전율이었다. 갈비뼈가 유난히 튀어나오도록 사실적으로 조각한 피골이 상접한 부처님은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시는가? 한참 동안이나 아무 생각없이 그냥 바라만 보았다. 왠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종교와 사상을 뛰어넘어 이토록 절절하게 인간됨을 가르치는 모습을 접한 적이 없었다. 이슬람과 불교의 깊은 숨결이 깔려 있는 도시 라호르. 그 뿐이랴. 그러고 보니 라호르는 시크교가 발아한 곳이 아닌가. 라호르 근교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나나크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접목한 시크교를 창시하였다. 그는 고행을 통해 모든 종교는 하나로 귀일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의 평등과 종교간의 관용과 화해를 부르짖었다. 라호르야말로 서남아시아 영성의 중심지란 생각이 다시 한번 강하게 밀려온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장
  • 오르테가 16년만에 재집권 유력

    오르테가 16년만에 재집권 유력

    5일(현지시간) 실시된 니카라과 대선 초반 개표 결과 좌파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60) 전 대통령이 40%대 득표율로 3전4기 끝에 16년 만의 재집권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감시 시민단체인 윤리투명그룹은 니카라과 전역의 1만 1200개 투표소 가운데 10%를 표본추출해 집계한 결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오르테가 후보가 38.49%를 득표,29.52%에 그친 중도우파 니카라과자유동맹보수당(ALN-PC)의 에두아르도 몬테알레그레(51) 후보를 최소 9%포인트 차로 따돌렸다고 6일 발표했다. 부통령 출신에 집권 헌정주의자유당(PLC) 후보인 호세 리소(62) 후보는 24.15%로 3위에 머물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개표가 15% 진행된 시점에 오르테가 후보는 40%를 득표,33%에 머무른 몬테알레그레 후보를 앞서나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같은 득표율 격차는 7% 개표 시점보다 1%포인트 정도 좁혀진 것이다. 이같은 초반 개표 상황은 오르테가 지지자들이 운영하는 프리메리시마 라디오 방송이 자체 득표율 예측 프로그램을 가동한 결과,40% 약간 넘는 득표율로 오르테가 후보가 1차투표에서 승리를 확정지을 것으로 전망한 것과 일치한다. 만약 오르테가 후보가 40%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거나 최소 35% 득표율에 2위와의 격차를 5%포인트 이상 벌리지 못하면 12월 결선투표로 넘어가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몬테알레그레 후보는 “승리자는 없다. 우리 국민은 결선투표에서 다음 대통령을 결정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총선도 함께 실시된 이날 투표율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70%를 웃돌 것으로 AP통신은 전했다. AP통신은 중남미에서도 아이티 다음으로 가난한 니카라과 국민들이 3기 연속 우파 정권에 기대를 걸었음에도 빈곤 척결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오르테가의 승리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오르테가 지지자인 재클린 알코제(33)는 “맞아요. 다니엘은 (부자들 것을) 빼앗았어요. 그러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랬지요.”라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녹색공간] 경제 재도약과 기술개발/노수홍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

    1820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영국과 최빈국들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개인소득 차이는 4대1 정도였다. 그러나 1998년에는 가장 부유한 미국과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소득격차는 20대1로 크게 벌어졌다.1750년경 영국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이 현재 국가간 소득의 커다란 격차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즉 과학기술 발전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국가와,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을 가진 국가들이 현재 소득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제프레이 삭스 교수가 저술한 ‘빈곤의 탈출’(The End of Poverty)에 의하면 각 나라의 지형학적 조건과 정치·문화적 안정성 등이 산업혁명 혜택을 누리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를 구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영국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은 그 기술을 이용한 철도나 배를 통해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우리나라는 200여년이 지난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산업혁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였다.60년전 우리나라 소득수준은 세계 최빈곤 국가들의 수준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60∼70년대에 투자한 중화학공업과 같은 기간산업, 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인프라 구축이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6분의1이 되는 10억명 이상이 200년 전과 생활수준이 큰 차이 없는 최빈곤 국가에 살고 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대부분의 인류는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산업화과정에서 자원의 무분별한 채취와 남획 등으로 지구 생태계는 파괴되어 환경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았지만 또한 환경오염 피해도 가장 먼저 경험하였다.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영국 맨체스터 지역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시커먼 연기와 대낮에도 가로등을 켜고 다니는 모습이 우리가 동경하는 산업화의 모습이었다. 물론 현재의 맨체스터는 맑은 하늘과 쾌적한 도시로 변모하였다. 영국정부와 지역주민의 지속적인 오염방지 노력과 산업을 성공적으로 구조조정한 결과이다. 우리나라도 산업화를 거치면서 강물이 오염되고 도시 및 공업지역은 대기오염으로 심각한 환경문제를 겪어왔다. 아직도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10년 동안 전반적인 환경조건은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기간에 오염시킨 토양이나 늘어난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의해 오염된 도시의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예산의 투입과 기술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는 제 자리에 머물고 있다.OECD국가가 되고,IMF사태를 경험하고, 산업경제에서 지식경제로 또 창조경제로 전환되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는 뒷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이 되려면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그 결과로 시장이 확대되고, 증가되는 재원이 기술개발에 재투자되어, 시장이 다시 커져 고용이 증대되고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 경제가 작동되어야 한다. 첨단기술 개발과 세계시장 선점화를 위한 선진국들의 연구투자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2005년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는 24조 1554억원으로 GDP 대비 2.99%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다. 환경기술개발 분야도 1992년부터 시작하여 2010년까지 1조 8000억 정도가 투입될 예정이다. 규모면에서는 크게 성장하였지만 아직도 투자 효율성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박사급 연구인력의 70% 이상이 대학에 있다. 그러나 경제의 성장동력이 되는 첨단기술 개발에 대학의 역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대학 연구인력을 우리 경제에서 성장동력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심각히 논의할 시점이 왔다. 노수홍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
  • 김영민(金英珉)양 - 5분 데이트(73)

    김영민(金英珉)양 - 5분 데이트(73)

    「엑스포70」으로 가는 13명의 한국관의 안내원 아가씨들중 표지「모델」로 나서준 아가씨는 김영민(金英珉)양. 올봄 이화여대 영문학과(梨花女大 英文學科)를 갓 졸업한 싱싱한 과일같은 아가씨다. 48년 3월생으로 올해 22세. 부동산업을 하는 여유있는 아버지 밑의 6남매중 세째딸. 어려서부터 언니와 오빠의 귀염동이로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자란 욕심장이이기도 하다. 『「엑스포70」의 안내원으로 응모한 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고 조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자는 생각에서였어요. 가난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열심히 산다는 것을 외국에 자랑하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며 야무지게 입을 다문다. 속이 알차게 여문 생각있는 아가씨의 인상이다. 『저는 결혼을 한 뒤에라도 가정을 지키며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 생각입니다. 결혼을 한 뒤에「흠리」해지는 여성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어요』가정과 사회를 조화있게 양립시켜 보겠다는 욕심장이이기도. 취미는 연극과 고전음악 감상.「피아노」로 가벼운 음악을 치면서 즐기기도 한다고. 이상형의 남성은 건강하고 유능한 남성.「닥터·지바고」와 같은 성격의 남성을 좋아한다고. 존경하는 여성은 미국의 전법무장관 고(故)「보브·케네디」의 미망인. 6개월동안에 걸친 박람회가 끝나면 1주일간에 걸쳐 日本 전국을 관광하게 되는 특전을 받게 된다고. 박람회에 떠나기 전 특별히 마련한 옷은 한복 7벌,「타운·웨어」5벌. 전시기간 중 한복을 입고 안내를 해야할 경우도 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3월 15일호 제3권 11호 통권 제 76호]
  • 구로구 홍보대사에 이다도시씨

    서울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는 프랑스 출신 유명 방송인 이다도시(37)를 홍보대사로 위촉,3일 위촉장을 전달했다. 이다도시는 지난달 초 열린 ‘구로 점프축제’ 때 게스트로 초청돼 인연을 맺었으며, 구로구가 자매결연 도시인 프랑스 이시레물리노시와 활발한 교류를 펼친 것이 홍보대사로 위촉한 계기가 됐다. 이다도시는 앞으로 2년 동안 구로구의 각종 국내외 행사에 참석해 홍보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다도시는 “프랑스인들이 아직도 한국을 가난한 나라로 잘못 알고 있다.”면서 “구로구의 홍보대사로서 구로와 한국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우리 어머니들의 삶 연기해요”

    “우리 어머니들의 삶 연기해요”

    “첫 드라마 주연이라서 설레요. 우리 어머니들의 젊은 시절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6일 오전 8시5분 첫 전파를 타는 KBS 1TV TV소설 ‘순옥이’(연출 신현수·극본 황순영)에서 데뷔 후 첫 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탤런트 최자혜의 당찬 포부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먹보 상궁 ‘창이’역으로 얼굴을 알린 뒤 ‘굳세어라 금순아’‘봄의 왈츠’ 등을 통해 다소 강하고 발랄한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온순하고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인 ‘박순옥’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순옥이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30대까지 살면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남자 아이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와 가난 때문에 부잣집으로 보내져 키워진 뒤 집안이 몰락하면서 험난하고 굴곡진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친구나 여동생 역을 많이 맡아서인지 그런 역할에 자신있다.”면서 “예전부터 순옥이로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배역을 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활발한 역할을 주로 맡아와 차분하고 속에 담아두는 연기를 하려니 힘들기도 하지만, 실제 성격이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면도 많아 익숙해졌다고 덧붙였다. 경험하지 못한 70∼80년대가 배경이라서 어려운 면도 있다고. 그는 “제 엄마의 젊은 시절을 연기해야 하는데, 당시 머리 스타일이나 패션 등을 많이 듣고 참고해요. 그 당시 조심스러운 연인의 감정을 담은 멜로 장면은 다소 부담도 돼요.”라며 웃었다.“편안한 ‘옆집 동생’‘내 딸’같은 이미지로 어필하겠다.”는 그가 수선화같은 순옥이로 변신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새영화] 조국독립을 향한 형제의 갈등·우애

    칸영화제의 단골손님 켄 로치(70) 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으로 올해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형제의 우애와 대립을 그린 영화는 단순히 ‘찬사를 받을 만한’ 좋은 작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수상소감에서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의 이라크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라크를 탄압하는 미국과 영국의 구도는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와 비교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밝혔듯, 영화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순을 드러낸다. 조국의 독립을 향해 같지만 다른 길을 걷는 두 형제의 이야기는, 목표는 하나지만 그 안에서 벌이는 이념 논쟁, 좌파와 우파의 갈등 등 우리의 모습과 교묘하게 오버랩되며 남다른 의미를 던지기도 한다. 너른 들판에서 하키를 즐기는 아일랜드 청년들. 여유로움은 한순간이다. 영국군의 위협과 강압, 살육으로 가득찬 현실이 들이닥친다. 런던의 큰 병원에 취직한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은 영국군의 강제와 억압을 직시하며 의사의 꿈을 포기한 채 아일랜드공화군(IRA·Irish Republican Army)에 입대한다. 구두에 흙이 묻을까 걱정하며 낮은 포복도 제대로 못하던 아일랜드 신사들은 독립이라는 대명제 아래 투사로 거듭난다.IRA 활동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휴전을 이뤄내지만, 또다시 아일랜드는 완전한 독립과 영국의 자치령화를 둘러싼 혼란에 휩싸인다. 감독은 형제 중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조용히 형제의 끝을 그려내면서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희망이란, 또 현실은, 그리고 조국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한편 오는 26일까지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나다와 부산 해운대 요트경기장의 시네마테크부산에서 ‘켄 로치 특별전’이 열린다.‘케스’‘하층민들’‘레이닝 스톤’ 등 13편의 작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적 이슈를 향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서울(02-766-3390) 11월9일까지, 부산(051-742-5366) 10∼26일.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눈에 띄네]CCM가수 데뷔 유상무

    [눈에 띄네]CCM가수 데뷔 유상무

    ‘전교 1등, 가수됐네∼.’ 껑충한 키에 부드러운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맨 유상무가 가수로 데뷔한다. 그런데 그가 부르는 노래는 발라드도, 트로트도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의 첫 앨범은 대중음악 형식의 기독음악인 CCM(컨템포러리 크리스천 뮤직)이다. 평소 CCM을 즐겨듣고 불러온 그는 주변에서 “목소리가 굵고 좋다.”며 직접 CCM 앨범을 녹음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자주 받았다고. 앨범에는 CCM 전문 싱어송라이터이자 인기 댄스그룹 H.O.T. 의 프로듀서로 활동한 곽상엽이 작사·작곡에 참여한다. 또 ‘날개잃은 천사’‘스피드’‘오빠’‘화장을 고치고’‘순정’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최준영이 감수를 맡는다. 유상무 소속사 YK패밀리측은 “개그성을 배제한 유상무의 신앙과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KBS 공채개그맨 19기로 데뷔한 유상무는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에서 잘난 척하는 ‘전교 1등’으로 출연, 주가를 올렸으며 현재 다른 코너인 ‘연인’에서 가난한 애인으로 등장,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KBS ‘연예가중계’, 퀴니 ‘아자아자 겟앰프트’ 등 리포터·MC로도 활동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이호조 성동구청장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이호조 성동구청장

    “교육과 복지, 행정에서만큼은 서울의 중심이 되겠습니다.” 취임 다섯달째를 맞은 이호조 성동구청장은 성동구의 미래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초선이지만 ‘준비된 구청장’으로 거침없이 구정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10여일 만에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이 예상돼 투기가 성행하던 성수 1·2가동 일대에 대해 공동주택의 사전 건축허가를 제한해 투기를 잡았다. 이 조치는 서울시와 다른 구가 벤치마킹했다. 9월에는 5급 승진 예정자를 대상으로 ‘자격이수제’를 자치구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아무 때나 시험을 치러 자격을 따도록 해 공무원들이 승진시험에 매달리는 폐단을 없앴다.10월에는 청계천 하류 특성화 계획을 내 놨고, 간부회의도 전격 공개했다. 이 구청장이 이처럼 능숙한 구정을 펼치는 것은 11년전 성동구에서 관선 구청장을 거쳤고, 최근까지 성동구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을 역임, 성동구를 속속들이 알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은 “1995년 말 민선 구청장에 당선된 고재득 전 구청장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올해 고 전 구청장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면서 성동구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성동구는 다른 구에 비해 아직 뒤떨어진 도시다. 재정자립도도 25개 구청 가운데 중위권 수준이다. 하지만 이 구청장은 이를 기회로 삼고 있다. 개발의 여지가 없는 강남과는 달리 아직도 개발의 여지가 많은 성동구의 이점을 잘 살려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계획 개발을 통해 과거의 아파트 단지와는 다른 주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이러한 논리로 재개발·재건축 조합장이나 조합원을 직접 만나서 갈등을 조정하고 협조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의 목표는 복지·교육·행정에서 서울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삶의 질을 강남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다. 교육은 최근 이 구청장이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다. 성동구에는 7개 고등학교가 있지만 인문계는 3곳(여고 2곳, 남고 1곳)뿐이다. 이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다른 구로 통학을 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앞으로 4년 동안 초등학교의 고교 전환, 성수중학교의 고교병설화, 왕십리 뉴타운 인문계고 유치, 덕수정보산업고에 인문계 모집 등의 방법으로 인문계 학교를 늘려 주민들의 숙원을 풀겠다.”고 말했다. 웰빙 성동도 그의 목표다. 이 구청장은 “한강과 청계천, 서울 숲, 중랑천, 대현산 배수지 공원이 모두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어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고도 웰빙이 가능하다.”면서 “괘적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웰빙 성동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구청장은 서울시에서 사회과장과 보사국장(현 복지건강국장)을 거쳤다. 그래서 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가난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고 내용도 확충했다.”면서 “방과후 학교나 장학기금 등에 대한 지원 확대를 위해 구비 증액은 물론 시의 지원도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취임 후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교육을 체계화했다. 주민자치센터 등 18곳에서 실시하는 방과후 학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자원봉사자도 확충했다. 이 구청장은 1일에도 행당동 저소득층 학습현장을 찾아 학생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걸어온 길 ▲출생 1945년 경북 영천 ▲학력 국립 체신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행정학 석사,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경력 서울 영등포우체국 통신과,10회 행정고시, 서울시 기획담당관·내무국장·교통관리실 실장·상수도사업본부장·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성동구 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용산구청장, 성동구청장 ▲수상 근정포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가족관계 송봉자씨와 2남 ▲취미 등산 ▲기호음식 김치찌개 ▲존경하는 인물 율곡 이이 ▲좌우명 열정과 의지
  • [문화마당] 양쯔강은 흐른다/황주리 화가

    중국의 양쯔강 크루즈는 바다가 아닌 강과 산을 바라보며 유유히 떠다니는 명상여행이다. 중국의 모든 풍경이 그렇듯, 아름다운 강산뿐 아니라 땀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 사는 구경을 함께 한다는 게 좋았다. 어릴 적 말로만 듣던 양쯔강은 누런 흙탕물이 끝없이 흐르는 긴 강이었다. 물난리가 나면 속수무책인 가난한 백성들, 그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양쯔강에 거대한 삼협댐이 세워지고 있다.2009년 댐이 완공되면 삼국지의 무대인 이곳의 귀한 역사 유산들이 수몰된다 하여, 내심 조급한 마음이었다. 이미 강물 수위는 150m나 높아졌고, 많은 토착민들의 집은 수몰되고 높은 곳으로 이주했다. 양쯔강을 끼고 수려한 산과 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장강삼협의 풍경은 실로 중국의 풍경을 심도있게 그려낸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누런 흙탕물 위에 떠가는 나룻배들과 천천히 그리고 눈 깜짝할 새 변하는 삼협의 풍경을 배안의 침대에 누워서 유유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높은 산 중턱에 뚫려 있는 동굴 속마다 2000년 전에 죽은 시신이 썩지도 않은 관속에 누워 있다는 말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앉았다. 중국인들의 죽음에 관한 연구는 그 땅의 크기만큼이나 상상의 폭이 넓고 깊다. 어떻게 관을 들고 올라갔을지 상상이 안되는 높은 산 중턱의 동굴들 속에 누워있거나 가파른 절벽 위에 나무를 괴고 올라가 매달려 있는 2000년 전의 죽음들은, 배를 타고 스치며 눈길로만 만난 풍경이라 해도 섬뜩하고 놀랍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양쯔강의 잦은 홍수 탓에 무덤이 물에 잠길새라 물이 닿지 않는 높은 곳으로 안치한 것은 아닐까? 아주 옛날부터 양지 바른 곳에 묻히기를 바랐던 한국인들에게는 산중턱 절벽 동굴 속에 들어가는 일은 죽어서도 벌받는 일일지 모른다. 양지 바른 곳의 땅 속과 서늘한 동굴 속은 어느 곳이 더 아늑할까? 37년에 걸쳐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묘는 진시황제의 무덤이다. 죽은 왕들과 귀족들의 영생을 위해 한많은 민중들을 착취한 대가로 고대의 화려한 문명이 남아 있다. 고산지대의 추위로 인해 땅을 파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던 자연 배경이 이유가 되었을지 모르는 티베트의 조장은, 시신의 가죽과 살을 발라내 토막을 치고 머리와 뼈는 빻아서 주먹밥을 만들어 독수리떼의 밥이 되게 하는 장례문화이다. 새떼가 시신을 먹어치우면 죽은 이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한다. 이집트의 미라나 진시황의 화려한 지하무덤에 비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티베트의 장례문화는 어떤 의미에서 사회주의적이다.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의 거대한 땅은 어디를 가나 묘지들로 빽빽이 들어차, 중국 묘지의 총면적이 남한 땅보다 넓었다 한다. 마오쩌둥 혁명정부는 1956년 화장을 법으로 정하고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하는 토장제도를 금지시키는 장묘 문화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1979년에 사망한 저우언라이 총리의 유골은 본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한 뒤 비행기로 전국에 뿌려졌다. 저우언라이 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에 고무되어,1994년 이래 지금에 이르는 장묘 제2문화혁명은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시키지 않고 바다에 뿌리는 운동이다. 사회주의는 지도자들이 부와 안일을 버리고 인민의 모범이 될 때 아름답다. 땅은 산 사람들을 위해 알뜰하게 쓰여지고, 죽은 자들의 유골은 바다에 뿌려지거나 나무 밑에 뿌려져 영원한 생명의 순환에 기여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나 역시 죽으면 강이나 바다에 뿌려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그럴바엔 누런 흙탕물 양쯔강보다는 두만강이나 압록강 푸른 물이 좋겠지. 아니 며칠 지났다고 벌써 그리운 한강이 제일 좋겠지.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 사이로 양쯔강은 서서히, 그리고 도도하게 흘렀다.
  • [송두율칼럼] 평화의 이해

    [송두율칼럼] 평화의 이해

    끊임없이 인간은 전쟁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간학적인 전제는 먼저 인간을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로서 보려고 한다. 자연적인 평화상태보다 오히려 전쟁상태에서 살고 있지만 그 무엇으로도 대치시킬 수 없는 이성의 힘에 의하여 인간은 평화상태를 이룰 수 있다는 데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철학적 핵심도 놓여 있다. 동족상잔의 참화를 이미 경험했고 그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던 우리는 적어도 대량살상무기까지 투입될 수 있는 오늘날의 전쟁이 어떤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개되는 한반도의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도 ‘국지전’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이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북에 대한 제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평화주의자’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또 ‘안보불감증’이니 ‘안보과민증’이니 하는, 현사태에 대한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둘 다 평화를 너무 단순하게 안보의 종속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물론 평화는 안보가 보장되어 전쟁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이 없는 상태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르웨이 출신의 평화이론가 요한 갈퉁(J Galtung)은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적극적 의미의 평화는 전쟁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 가난과 질병, 교육, 인종간의 차별과 갈등 같은 구조적이며 문화적인 폭력까지도 사라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평화는 단순히 안보의 종속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핵의 위기적 상황 속에서 사회 일각으로부터 계속 제기되는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평화 개념을 너무 좁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도 안보에 대한 위협적 요소로서 보기보다는, 적어도 소극적 의미의 평화를 위한 ‘안보투자’나 더 나아가 적극적 의미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평화투자’로서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평화는 오늘날 그 자체가 사회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을 피하려거든 먼저 그것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며 ‘미국의 헤게모니가 싫으면 세계평화에 대한 희망을 묻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펴는 하케(Ch Hacke)라는 독일 본 대학의 정치학 교수도 있다. 비슷한 논리는 지금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 한국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보인다. 남북의 군사적 대치 상태와 더불어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중국이 행동반경을 계속 확충하는 오늘날, 그러한 구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과연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인지 신중하게 따져 볼 문제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동북아의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큰 틀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터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수립했던 브레진스키(Z Brzezinski)는 냉전종식이후 미국의 헤게모니에도 단지 짧은 역사적 기회만이 주어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적어도 한 세대 또는 그 이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빨리 사회와 정치적 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과 함께, 평화적인 세계지배를 위한 공동적 책임의 지정학적 중심 수립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이 미래의 미국의 모습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적어도 한 세대 이후의 동북아 체제를 가늠해 보며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겪어본 고통에 대한 인간의 기억은 놀랍게도 짧다. 앞으로 올 고통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그러나 더욱 더 한심스럽다.”라는 독일극작가 브레히트(B.Brecht)의 경고도 있지만, 미래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더 이상 ‘안보불감증’이나 ‘안보과민증’을 둘러싸고 티격태격하는 수준의 논쟁에만 비끄러맬 수는 없다.
  • “6세 어린이 14시간 고기잡이 중노동”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볼타호수 주변에선 한창 학교에 다닐 나이의 어린이들이 새벽 동트기 전부터 해질 무렵까지 고기잡이에 종사하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와 유니세프 등이 이들 어린이를 선주로부터 구출해 학교에 다시 보내는 사업<서울신문 5월11일자 12면 보도>을 펼치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 어린이 강제 노역은 여전히 만연돼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9일(현지시간) 현지 르포를 통해 고발했다. 늪지대를 오가는 카누에서 제 키보다 훨씬 큰 노를 젓고 있는 마크 콰드오의 나이는 불과 여섯살. 콰드오는 새벽 5시가 되기 전 일어나 동료 어린이들이 그물을 강물에 던질 수 있도록 5시간 넘게 노를 저어야 했다. 1년간 콰드오를 부리는 대가로 부모에게 20달러를 쥐어준 선주 콰드오 타키(31) 역시 여덟살때부터 이 일을 해왔기 때문에 “애들이 어떤 심정인지 잘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아는 건 이 일뿐이며 그래서 이 일을 해야 한다.”며 빨리 그물을 걷어올리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다른 어린이들을 다그쳤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매년 불법 거래에 의해 120만여명의 어린이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이 생산하는 연간 부가가치는 10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6분의1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통계치는 없다.2002년 조사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에서만 1만 2000명의 어린이들이 카카오 농장 등에서 강제 노역에 신음하고 있다. 신문은 중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어린이 착취가 갈수록 늘고 있으며 사내 아이들은 고기잡이나 채석장, 코코아 농장 등에서 일하고 여자 어린이들은 가사노동이나 빵공장, 성매매 업소에까지 끌려나간다고 덧붙였다. 인도의 카펫 공장이나 중동지역의 낙타경주 기수로 어린이들이 혹사되는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어린이 노역이 성행하는 것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부모들이 자식 한명 잃는 것을 감수하면 나머지 식구들이 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퇴계가 실질적인 유계(遺戒)를 내린 것은 다음 날인 12월4일이었다. 이날은 마침 퇴계의 병세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자 퇴계는 주위를 물리치고 조카 영(寗)을 불러 자신의 곁에 앉게 한 다음 지필묵을 준비토록 하였다. 이때의 장면이 ‘퇴계언행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2월4일. 병이 조금 덜해진 틈을 타서 좌우를 물리치시고 조카 영에게 유계를 받아 적게 하셨다. 기침 소리가 심하였는데, 좌우를 물리치고 말씀하실 때에는 문득 질병이 몸에서 떠난 듯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쓰기를 마치자 직접 한번 읽어보시고는 영에게 봉하고 서명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런 뒤에야 기침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퇴계의 유계는 그가 죽은 후에야 밀봉이 뜯기고 공개되었다. 퇴계가 남긴 유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국장(國葬)을 쓰지 말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청하면 반드시 유명(遺命)이라 말하고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 2. 유밀과(油蜜果)를 쓰지 말라. 과일은 넉넉지 못할 것이니 간소하게 한 단씩만 차리고 그 외에는 일절 쓰지 말도록 하라. 3. 비석(神道碑)을 세우지 말라. 다만 작은 돌에다 그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쓰고, 그 뒷면에는 향리(鄕里)·세계(世系)·지행(志行)·출처(出處)의 대략을 ‘가례(家禮)’에 언급된 대로 간략하게 순서대로 기록해라.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짓게 하면 기대승처럼 서로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실속 없는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뜻한 바를 스스로 적고자 하여 먼저 자명문(自銘文)을 지었으나 그 나머지는 미루다가 마치지 못했다. 그 초고가 여러 원고들 중에 섞여 있을 것이니 찾아서 쓰도록 하라. 4. 선세(先世)의 묘갈(墓碣)을 세우는 일을 마치지 못하고 이렇게 되니 영원한 한이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이 이미 갖추어져 있고, 형편도 어렵지 않으니, 반드시 문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새겨서 세워라. 5. 동쪽의 작은 집은 본래 너(퇴계의 맏아들 준을 가리킴)에게 주려했고, 적(寂)을 위하여 따로 작은 집 한 채를 짓고 있었는데, 반도 못 짓고 이렇게 되었다. 적의 모자는 가난해서 반드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니, 네가 맡아서 집을 완성해주면 정말 좋겠다. 만약 형편이 어려우면 차라리 네가 그 재목과 기와 등의 물자를 가져다가 재실(齋室) 등에 사용하고 적 모자에게는 이 집을 그대로 주는 것이 좋겠다.” 퇴계의 유계는 지금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도산의 동쪽 끝자락인 청량산 쪽으로 달려 나와 온계에서 흘러내린 퇴계의 물이 하계마을에 이르러 낙천물과 합쳐지는 지점을 직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지산 기슭에 묻힌 퇴계의 묘소 앞 비석에는 다만 다음과 같은 1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도산으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이씨의 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 [피플 인 포커스] 재선 성공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

    “오늘의 승리는 브라질 국민의 승리다.2기 국정운영의 초점은 지금껏 소외받아온 자들에게 맞춰질 것이다.” 29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61)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과 집권당을 둘러싸고 전개돼 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들에게 강력한 성장위주의 정책과 함께 사회의 뿌리깊은 빈부격차 해소에 주력할 것을 약속했다. 집권 노동자당(PT)을 이끄는 룰라 대통령은 이날 결선투표에서 60.8%의 득표율을 올려 39.2%에 그친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 소속 제랄도 알키민(53) 전 상파울루 주지사를 2000만표 이상 차이로 여유있게 제치고 제3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는 4년. 이번 승리로 그는 전임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조 전 대통령(1995∼2002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연임에 성공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룰라 대통령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주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부모를 따라 최대 경제도시 상파울루 근교로 이주한 뒤 구두닦이로 가족의 생계를 돕는 등 어릴 때부터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초등학교 5년 중퇴가 공식 학력의 전부인 탓에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룰라는 14세 때부터 상파울루시 인근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 지역의 한 금속업체에서 공장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다. 근로자로 일하며 기술학교 야간과정을 이수해 18세 때인 1963년 선반공 자격을 취득했으나 이듬해 사고로 왼쪽 손가락을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1969년에는 같은 공장 근로자였던 첫 부인이 산업재해의 하나인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노조활동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는 계기를 맞았다. 1975년 10만명의 노조원을 가진 금속노조 위원장에 선출된 룰라는 이후 잇따른 파업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개혁 성향의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980년 상파울루시 인근 3개 지역 노조가 참여한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주도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브라질 사회를 진정으로 개혁할 수 있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1989년 이후 대선에 세차례 도전했으나 번번이 초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보수 기득권층의 두꺼운 벽에 부딪쳐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난 2002년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해 마침내 3전4기의 신화를 이룩했다. 룰라 대통령은 앞으로 국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대한 강력한 개혁작업을 주도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중남미 최대국으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남남(南南) 협력, 중남미 통합 등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흥 경제대국을 상징하는 브릭스(BRICs) 국가이면서도 저성장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 상황을 타개할 뚜렷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 점은 상당한 고심거리가 될 전망이다. 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온난화 방치땐 대공황 닥칠것”

    다음달 6일부터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리는 12차 기후변화당사국회의를 앞두고 지구온난화의 파국적 결과들에 대한 전문가집단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온난화가 1930년대 대공황에 맞먹는 전지구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진단이 있는가 하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유례 없는 비상국면’을 초래할 수 있다는 NGO 보고서도 나왔다.●“선진국 기후변화 적극 대응을”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영국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은 최근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세계가 기후 변화에 단호히 대처할 때 드는 비용은 앞으로 기후 변화 때문에 지출해야 할 비용을 상쇄하고도 크게 남는다.”며 선진국들의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협약에서 탈퇴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그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금세기와 다음세기 경제·사회적으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그 규모는 2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턴의 추산에 따르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방출량을 목표치만큼 줄이는 데는 해마다 전세계 산업생산의 1%에 해당하는 비용이 든다. 아무런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다음 세기까지 전세계 1인당 소비가 5∼20% 줄게 될 수 있다.●“아프리카는 최대 피해자” 옥스팜, 신경제재단 등 국제 환경·원조단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미래보고서 ‘업 인 스모크(Up In Smoke)2’는 온난화가 부유하고 산업화된 나라들보다 가난한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 거대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29일 BBC방송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평균기온은 100년 전보다 0.5도 상승했다.케냐처럼 20년 전보다 3.5도 상승한 지역들도 있다. 또 적도와 남부 아프리카의 우림지역은 점점 습해지고 있지만, 북부와 서부의 건조·반건조지역은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고서는 “온난화로 건조지역은 더 건조해지고 습한지역은 점점 습해지고 있다.”면서 “아프리카는 가뭄과 홍수라는 악마적 재앙에 포위된 대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구필화가 한미순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구필화가 한미순씨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스물아홉살 처녀였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어느날,200통의 청첩장을 한아름 받았다. 신부 아무개, 가만히 보니 자신의 이름이었다.11월18일이라는 결혼 날짜도 박혀 있었다. 한 남자의 프로포즈였다. 처녀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곧 ‘그래, 이 남자와 결혼하자.’고 마음먹었다.5일 후였다. 처녀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한달 후에 가까스로 깨어나보니 자신의 몸은 온데간데 없었다. 미동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지옥보다 더한 고통의 삶이 시작됐다.22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입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가난하면 어떠랴/예쁘지 아니하면 어떠랴/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살고 싶어서/뒤엉킨 잔가지 잘라내고/호화로운 부귀영화도 싫어/단순하여 성숙하다/발가벗은 순백의 영혼은/채워주실 여백을 남겨두고∼’ 시인이자 구필(口筆)화가로 잘 알려진 한미순(51)씨. 그동안 입으로 처절하게 토해낸 시집과 수필집만 다섯권, 또 이빨이 아프도록, 시리도록 그려낸 그림을 모아 두번의 개인전까지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살면서 오로지 한 조각 삶의 빛을 밝히며 살아왔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조차 이루기 힘든, 전신마비 장애인이 해낸 결과물들이기에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요 아름다움이다. 한씨는 오는 11월1일 구원의 빛을 또 한번 밝힌다. 자신의 세번째 개인전(서울 인사동 인사갤러리,7일까지)을 여는 것. 첫번째 서양화전이자 8년만의 일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을 ‘자연과 삶의 숨소리’라고 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거여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더니 “그냥 들어오세요.”라는 소리가 문 밖으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쪽 방이에요.”라는 목소리가 가냘프게 다가왔다. 소리나는 쪽으로 갔더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1인용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서 한씨는 휠체어에 의지해 컴퓨터 자판을 어렵게 누르고 있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입에 문 붓대를 사용했다. 한씨는 ‘종료 버튼’을 막 누르고 나서야 “어서 오세요.”라고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휠체어 바퀴에 달린 브레이크를 풀어달라고 했다. 도우미 아줌마의 행방을 물었더니 방금 전 미장원에 갔단다. 혹시 휠체어가 움직일까봐 아줌마가 브레이크를 잠그고 외출했음을 직감했다. 문득 건강한 게 오히려 민망스러워진다. 잠시 사진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오른손을 오른쪽으로 옮겨주세요.” 손가락 피부가 약간 창백했으나 나이에 비해 무척 고와보였다.“전시 준비하느라 요즘 무척 바쁘시지요.”라고 했다. 지체없이 돌아온 대답이 “뭐, 입만 바빠요.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가볼 수도 없고….”였다. 이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저기 전화 좀 갔다줄래요.” 무선 전화기를 들고 와 한씨의 귀에 대주었다. 한 2분쯤 통화했을까. 팔이 약간 불편해짐을 느낀다.‘20년 넘게 전신마비로 살아온 고통은 정말 오죽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제 그림은 손을 입으로 대신하는 삶이지요. 삶은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이고요. 처음에는 한국화였지만 이번 전시는 서양화입니다.” 한국화에서 서양화로 방향을 틀게 된 까닭이 도우미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정말 의외였다. 하긴 누군가가 옆에서 물감칠해주고 붓을 입에 물려줘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말이다. 도우미들도 처음에는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대부분 짜증을 내더란다.8년동안 개인전을 열지 못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덧붙인다. 이번 전시에는 주변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평범한 풍경, 즉 꽃·소나무·물·벼·사람 등을 소재로 했다. 그 안에 살아 있는 예쁘고, 맑고, 고요하고, 향기로운 느낌을 캔버스에 살려 오래도록 곁에 붙잡아두어 아름다운 삶의 합창을 하고 싶어서였다. 전시작품은 모두 38점. 미술평론가 정재규씨는 “입에다 붓을 물고 물감들을 배합해 사물의 형태를 형상화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참으로 정신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소나무 그림에서는 풍파를 이겨낸 그의 강인함이 배어 있고, 고개 숙인 벼이삭에서는 열매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원근감과 음양의 심도있는 구사는 감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전시 팸플릿을 통해 설명한다. “교통사고는 한순간에 척수손상 사지마비로 손과 발, 전신을 꽁꽁 결박했지요. 입에 붓을 물고 그리는 그림은 캄캄한 세상에서 한줄기 빛이자 유일한 자유였습니다.” 화제를 바꿨다. 가을날씨가 좋은데 바람쐬러 가끔 나가느냐고 물었다.“도우미 아줌마 눈치봐야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연 한토막 들려준다. 수년 전 상도동 지하방에 살 때였다. 극동방송을 통해 도우미를 요청했다. 스물한살의 앳된 처녀가 왔다. 하지만 하루만에 한씨를 방치해놓고 사라졌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워서 소리치는 일뿐이었다.“사람 살려요.”라고 거듭 외쳤다. 물론 전화도 걸 수 없다. 결국 죽기 직전 119요원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도우미는 자신에게 하늘 같은 존재였다. 한씨는 한 달에 한 번 도우미 도움으로 ‘기독문학회’ 모임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또 매년 9월 거창고교 예술제에 초대받아 지방나들이를 한다. 자신의 자전 에세이를 읽은 거창고 교장선생의 배려 덕분이다. 이때마다 자연의 아름다움, 또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할 가치를 소중하게 느끼고 돌아온다. 한씨는 1989년 세계 구족화가 협회에 가입했다. 리히텐슈타인에 본부가 있으며 현재 전세계 회원은 모두 500명. 이중 한국인 정회원은 5명이다. 한씨는 이 협회에서 받는 돈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돈푼을 아끼고 아껴 이번 전시비용을 충당했다. 한씨의 고향은 충남 부여. 가난한 농가의 2남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장학생으로 중학을 입학했지만 가난 때문에 고교진학을 포기했다.20세에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에 혼자 살면서 모 전자회사에 취직했다. 배움의 열정을 버리지 못해 8개월동안 열심히 공부해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러던 84년 10월 결혼과 학교 선생, 피아노 교습소 운영 등 새로운 삶의 의욕으로 꽉 차 있을 무렵에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소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단 하루만이라도 남의 도움 없이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가슴이 따뜻한 도우미와 평생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활동도 저절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애써 웃었다. “전시 끝나면 이빨 치료를 해야 돼요. 그동안 손 역할을 하느라 많이 망가졌거든요.” km@seoul.co.kr
  • 두여보의 두字엔 사연도 많아

    두여보의 두字엔 사연도 많아

    『두 여보 모시고 보름씩 10년』-69년 3월 16일자 「선데이서울」특종기사가 영화화되었다. 『여보』(신봉승(辛奉承)각본·유현목(兪賢穆)감독)란 작품. 한 여자가 두 남편을 모시고 보름씩 10년을 살아온 기구한 여인의 실화인데 이 영화가 개봉되기까지엔 이야기 못지않게 기구한 역정을 겪어야 해서 또한 화제. 우선 「시나리오」심의에서 다섯 차례나 반려를 당했다. 영화 검열에서도 재고(再考) 삼고(三考)끝 다섯차례의 검열을 받았다. 영화 한편 개봉하는데 이처럼 곤란을 받기는 방화사상 기록. 가위질은 심히 받지 않았다고는 해도 어지간히 검열관을 주저케 만든 작품이다. 그만큼 제작자쪽도 속을 태웠다. 2월 28일 개봉날짜까지 이 영화는 상영허가가 나오지 않아서 개봉관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필름」이 나오지 않아서 다급해진 극장쪽은 몰려든 관객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여야했다.무엇이 이 영화를 이렇게 고경(苦境)에 빠뜨렸나? 이 작품의 문젯점은? 한 여자가 두 남자와 동서(同棲)한다는 점에서 윤이문제가 크게 논의된 것같다. 한 남자가 두 여자와 동서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일처이부(一妻二夫)란 점에서 색다른 문젯거리가 된 것 같다. 사실상 『여보』란 제목부터가 가위질을 당한 삭제작품이다. 제작자 쪽은 당초 「선데이 서울」의 기사제목을 그대로 옮긴 『두 여보』로 영화 제목을 삼았다. 『여보』와 『두 여보』의 「이미지」는 사뭇 딴판인 것이지만 「두」자 하나를 떼어버리면 불륜(不倫)이 배제되는 편리함이 있다. 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이런일이 현실 속에서 가능할까?』 작품을 상식적인 기준에서 판단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일부이처(一夫二妻)의 소재라면 존재할 수 있지만 일처이부(一妻二夫)는 용납 안된다는 한국적 현실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 전자라면 방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미워도 다시한번』등 전형적인 「멜로·드라머」가 있고 검열관들도 신경을 쓰지 않을만큼 대범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문제를 사회적 측면으로 따져 본다면 한국은 아직도 남성본위(男性本位)의 봉건사상에 젖어있다는 증거도 됭 수 있다. 그러나 『여보』 의 소재를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더라도 실존하고 있는 실화다.영화속에서는 현존하고있는 얘기가 아니라 반세기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전설처럼 그 배경을 바꿔놓았다. 상식 또는 현실성(現實性)이 문제가 되자 슬쩍 시대 배경을 바꿔 도피의 길을 만든 것 같다. 『두 여보』의 주인공 김춘자(金春子)씨(가명 35·영화속에서는 문 희(文 姬))는 경남(慶南)통영(統營)군의 어느 산간마을에서 10년동안 두 남편을 섬겨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를 부도덕하다고 욕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녀는 두사람의 남편을 섬겨야 하는 사랑과 동정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남편도 똑같이 김여인을 소유할 권리와 자격이 부여돼 있다. 이 희귀한 얘기를 좀더 상세히 살펴보자. 두 남자는 41세의 朴모씨(영화속에서는 김진규(金振奎))와 38세의 崔모씨(김성옥(金聲玉) 분(扮)). 직업이 뱀잡이, 즉 땅꾼이다. 김여인의 아버지가 땅꾼이 었고 두 사나이는 김여인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뱀잡이를 배운 「제자」 들이다. 김여인은 20게 때 두 사람중 나이가 위인 박씨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결혼생활이 1년. 1년이 지난 뒤 기구한 운명의 씨가 뿌려졌다. 박씨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굽어지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됐고 난치병이란 굴레가 씌워졌다. 그래서 박씨는 말없이 집을 떠났고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김여인은 최씨와 재혼을 했다. 최씨 역시 남몰래 김여인을 사랑했던 터 두사람 사이엔 2년 동안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펼쳐졌다. 그런데 이 2년후에 옛 남편이 돌아왔다. 집을 나간지 5년동안 외딴 섬에서 병을 고치고 그리운 아내를 찾아 집에 돌아온 것. 여기서 복잡한 문제가 일어났다. 김여인은 돌아온 남편을 버릴 수 없다고 나섰고 최씨 또한 김여인을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공서(共棲)생활이 결정된 건 김여인의 아버지가 주재한 가족회의에서다. 어느 쪽도 배반 할 수 없는 의리와 사랑. 그래서 한 남자가 보름씩 김여인과 교대 근무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 약속은 10년니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 세상의 이목이 두려운 이들의 공서(共棲)생활은 인적이 드문 외딴 산골짜기에서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이들은 그들의 얘기가 영화화 했다는 소식에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 제작사쪽은 『쌀가마니라도 보태 줘야겠다』고 선심을 보이기도 했다. 문명사회에서는 자칫 추악한 애기로 타락할 소재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그대로 원시적인 생활 무대위에 설정 된 영화는 신비감마저 준다는 것. 남녀의 애정에관한 자세가 차라리 순수성을 보여준다는 평판이다. 「뱀잡이」를 산삼 캐는 사람들로 바꿔놓은 것도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영화속의 두 남자는 영감(靈感)에 의해 생활하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아버지(황해(黃海))는 두 사위에게 과욕(寡慾)을 가르친다. 욕심은 멸망을 낳는다는 교훈. 욕심이 없기 때문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정하게 공유(共有)할 수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추악, 부도덕한 얘기가 될 것 같은 소재가 신비감마저 풍기는 문제작으로 등장했다. [선데이서울 70년 3월 8일호 제3권 10호 통권 제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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