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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청직원 ‘과외교사’로 나선다

    구청직원 ‘과외교사’로 나선다

    “가난해서 못 배우고, 못 배워서 가난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습니다.” 서울 성동구가 신규채용 공무원 등을 중심으로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습지도에 나섰다. 성동구는 공무원과 공익근무요원으로 구성된 ‘공무원 전문인력 봉사단’을 발족, 내년 1월 중순부터 활동을 시작한다고 27일 밝혔다. 이호조 구청장이 직접 제안한 공무원봉사단은 최근 임용된 고학력 신규 직원과 기존 직원 가운데 전문소양을 가진 직원을 중심으로 편성됐다. 봉사단은 공무원과 공익근무요원 등 모두 173명으로 이 가운데 기존 공무원이 100명, 신규 공무원이 46명, 공익근무요원이 10명이다. 전체 봉사단의 절반 이상이 자원봉사자이다. 공익근무요원들이 저소득층 자녀를 가르치던 ‘마중물단’(공익근무요원들의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도 봉사단)은 이번에 봉사단에 통합됐다. 봉사단은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습 지원은 물론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등에 대한 식사수발, 함께 놀아주기 등의 봉사활동을 벌인다. 봉사단 가운데 62명은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도를 맡는다. 구성은 신규 직원이 46명이고, 기존 공무원 8명, 공익요원이 8명이다. 이들은 내년 1월 중순부터 20개 동사무소로 분산,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나 모·부자가정 자녀들을 지도하게 된다. 대신 이들의 봉사활동은 구청에서 정식 근무를 한 것과 똑같이 처리된다. 초과 근무 수당도 지급된다. 학습지도에 필요한 자료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 등은 구청에서 지원해준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등 기초과목은 물론 컴퓨터 다루는 요령 등을 가르친다. 한사람 당 3∼4명씩 200여명의 학생으로 우선 시작한 뒤 확대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성동구는 이와 함께 주민자치센터 공부방도 지금까지 오후 6시까지만 개방했으나 오후 8시까지 2시간 늘리기로 했다. 이 같은 학습지도는 지금까지 일부 주민자치센터에서만 실시하던 방과후 공부방을 성동구 20개 동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호조 구청장은 “경제 여건의 차이로 교육여건이 월등히 낮은 저소득층 자녀들은 초등학생부터 기초학습이 부족하게 되고 상급 학교로 올라 갈수록 교육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된다.”면서 “저소득층 부모의 낮은 경쟁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이들 자녀에 대한 학업을 지원하게 됐다.”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14) 진정한 멜팅 폿 에티오피아

    (14) 진정한 멜팅 폿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 멕시코 스퀘어라는 곳이 있다. 지하철은 없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종로 3가역쯤 되는 곳으로 이 곳에 가면 볼레(아디스 아바바 국제공항 방면) 쪽으로 가는 차, 서드스 키로(아디스 아바바 대학 방면) 쪽으로 가는 차, 피아사(아디스 아바바 시청 방면) 쪽으로 가는 차를 전부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차는 이곳의 대중교통수단인 미니 버스(현지인들은 꼭 미니 택시라고 한다.)를 의미한다. 멕시코를 연상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멕시코 스퀘어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답변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 멕시코 스퀘어 한 가운데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만으로 멕시코를 연상하기는 어렵다. 멕시코에서 일어난 전쟁에 에티오피아 군대가 참전을 해서라는 설이 있지만 멕시코 정부나 관련 기업의 원조가 있지 않았나 감만 잡을 뿐이다. 문득, 광화문 한복판에 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지 외국인이 물으면 답변을 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왜 세종로라고 부르지? 멕시코 스퀘어에서 사르베트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 보면 오른쪽에 국방부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면 왼쪽에 수단 대사관이 보인다. 수단 대사관을 지나 조금만 직진하면 ‘Melting Pot’이라는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AU(African Union) 바로 전에 위치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이 곳에 가면 에티오피아 음식은 물론 아프리카, 아랍, 남미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다. 음식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인제라가 지겨울 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곳을 자주 찾는다. 아랍 요리 중에 밥이 포함된 게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메뉴 중에 34번과 39번을 강추한다. 흔히 인종, 문화의 도가니라며 미국을 지칭할 때 ‘멜팅 폿’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미국 보다 오히려 더 멜팅 폿이 이곳 에티오피아가 아닐까 싶다. ‘Melting Pot’ 레스토랑에 가면 아주 잘 차려 입은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암하릭어가 아닌 영어나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AU가 가깝다 보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이 레스토랑을 자주 찾기 때문이다. 현재 AU에는 모로코를 제외한 아프리카의 53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국가를 54개국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로코는 AU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모로코는 아프리카가 아닌 위쪽의 유럽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AU만 따져도 에티오피아에서는 아프리카 53개국 사람을 전부 만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 중국, 일본 사람도 이곳에서 다 만날 수 있다. 외교 공관이 100여 개가 넘기 때문에 이런 나라 사람들을 모두 에티오피아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셀 수도 없는 NGO단체가 에티오피아를 원조하겠다고 이나라저나라에서 오늘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사람이 가는 곳에 문화가 따라가는 법. 에티오피아는 가히 멜팅 폿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다. 셈족계와 햄족계의 혼혈이 조상인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또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아주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대통령 영부인은 피부색이 하얀 독일인이다. 에스닉 그룹(소수민족)이 80여 개가 넘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이민족에 대해서 그리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디스 아바바의 작은 수퍼에 가면 전세계에서 온 물건들을 다 만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온 유제품, 이탈리아에서 온 파스타, 중동에서 온 잼, 중국에서 온 싸구려 물건들까지 한마디로 박람회장을 연상케 한다.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전세계에서 온 물건들이 사이 좋게 매장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 전쟁 때 참전했던 에티오피아의 6천 여명의 지상군은 미군 중 절반 가까이나 되는 흑인들보다 15개국의 UN참전국 사람들과 형제처럼 잘 어울렸다고 한다. 문화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다른 인종의 피가 섞여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한국 사람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문화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이문화가 함께할 때 문화가 찬란했었고 융성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함께했던 통일신라가 그랬었고, 말갈을 끌어안았던 고려시대가 또 그랬었다. 암묵적인 차별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가장 큰 힘도 바로 이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너무 가난해서 별볼일 없는 나라로 분류되는 에티오피아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보면 멜팅 폿,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한국보다는 분명 선진국이다.       <윤오순>
  • “국민임대주택 달라졌어요”

    “국민임대주택 달라졌어요”

    올해 집값 급등으로 내집 마련의 꿈이 멀어졌다면 대한주택공사가 공급하는 국민임대 주택을 눈여겨볼 만하다. 주거 환경이 쾌적해지는 데다 낮은 임대료로 최장 30년까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입주 자격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국민임대 이렇게 달라졌어요” 국민임대가 수도권 외곽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초소형 아파트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주공의 국민임대주택은 갈수록 향상된 내부설계와 마감재 등으로 ‘싸구려 주택’ 이미지를 벗고 삶의 질을 고려한 주거공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년에 공급될 경기도 의정부 녹양지구의 경우 주거동의 아래쪽에는 점포를, 내부 중앙부분에는 공용녹지와 놀이시설을 각각 들여놓을 계획이다.2008년 공급될 경기도 안산 신길지구는 하천변의 경관을 살려 조망권을 확보하는 쪽으로 될 전망이다. 주공이 공급하는 국민임대는 전용면적 기준 8∼18평(공급면적 11∼25평)으로 구성돼 있다. 또 거주자 연령대와 소득수준, 지역위치 등 다양한 주택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10개형 31종의 주택을 제공하고 있다.3∼4인 가족이나 신혼부부, 노인, 독신자 등 가족 형태에 따라 원하는 형태를 신청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사업승인이 난 물량부터 2평 안팎의 발코니를 무료로 확장해 준다. 65세 이상 노인,3급 이상 중증 지체장애인, 시각·청각 장애인이 있는 경우 욕실내 미끄럼방지 타일, 좌식샤워시설 설치 등 14종의 시설 중 필요한 시설을 요청하면 입주 전까지 무료로 설치해 준다. 마감재도 매년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친환경성을 고려해 실크벽지와 고급타일, 인조대리석 주방 상판 등을 사용한 임대주택이 나오기도 했다. ●“자격도 까다롭지 않아요” 국민임대이지만 반드시 저소득층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초생활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했던 영구임대와 달리 국민임대는 전체 소득 10분위 중 소득이 적은 1∼4분위 계층까지 입주 자격이 있다. 소득 4분위 가구의 소득 기준은 도시근로자가구당 월평균 소득(325만원)의 70%선, 즉 월 227만원 이하의 무주택 가구주라면 누구나 국민임대에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주공의 국민임대는 18평형 이하까지만 공급된다. 단 서울시 등에서 공급하는 18평 초과 국민임대의 월평균 소득 제한은 325만원 이하다. 그러나 1인 가구는 전용 12평 이하만 입주할 수 있다. 토지 5000만원이나 자동차 2200만원(새차 기준·1년 지날 때마다 10%씩 감가상각) 이상 보유자는 입주할 수 없다. 임대기간 중 소득이 입주자격 기준을 넘어서면 갱신계약 때 임대료가 10∼40% 할증된다. 전용 15평형 미만은 청약저축 통장이 없어도 소득요건을 갖춘 무주택 가구주라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전용 15평 초과는 공공분양과 마찬가지로 청약저축의 순위에 따라 지원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경쟁률이 높지 않아 동시에 1∼3순위 접수를 한다. 장애인, 국가유공자, 노부모 부양자, 모자(母子)가정 등 사회취약계층에는 공급 물량의 20% 범위에서 우선 공급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보다

    [이현세 만화경]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보다

    지난 11월24일부터 캄보디아의 시엠 리아프에서는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와 ‘신라천년의 도시 경주’가 2006문화 엑스포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때를 맞춰서 ‘고도 경주를 어떻게 보존 복원 발전시킬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는 ‘경주 고도 보존회’는 시엠 리아프를 방문했다. 나 역시 고도 보존회 멤버이고 회장인 이정락씨는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으로 6년 동안 법정투쟁을 할 때 그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 준 담당 변호사이자 고교 선배이다. 고도 경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선배님이 수장이다 보니 이래저래 앙코르와트 답사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시엠 리아프는 600㎞에 이르는 지역 내에 100개의 사원이 발견된 앙코르 왕국의 근거지로서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러 인구 150만명이 살았던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의 시기에 건립된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될 만큼 웅장하고 신비롭다. 내가 앙코르 왕국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40년 전 내 나이 13살 때 소년잡지 ‘새 소년’의 화보에서였다. 거대한 부처님 얼굴 석상을 크고 기괴한 팜나무의 뿌리가 파고들면서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정글속의 고대도시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사가 그것이었다. 깊고 어두운 열대의 정글 속에 단 한구의 시체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지도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고대 왕국의 도시이며 어느 때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자극적인 기사는 어린 내게 무한한 상상과 경이로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다’라는 동경이 생겼다. 그 다음호 ‘새 소년’에서는 고우영 선생의 ‘정글 300 리’라는 만화가 실렸는데 재빠르게도 그 만화의 소재는 바로 앙코르와트였다. 세상에…!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한 만화라니. 나는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그 만화에 매료되었다. 한국의 고고학 박사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앙코르 왕국의 유적을 답사하느라 길도 없는 밀림을 경비행기로 날던 중 기관고장으로 불시착한다. 겨우 혼자 살아난 어린소년이 정글속의 원숭이 소년을 만나 우정을 쌓아가며 모험을 하는 이야기였는데 눈빛이 사나운 새까만 원숭이 소년이 원숭이들과 함께 거대한 나무뿌리에 점령당한 고대 사원을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통속적인 이야기였지만 워낙 선생의 이야기 솜씨가 좋은 데다 내 동경이 워낙 컸던 탓에 오랫동안 내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40년 만에 기어코 앙코르와트 앞에 서 있었고 내 눈앞에서 새까만 원숭이 소년이 수백의 원숭이 떼와 함께 눈부신 햇살 속의 사원 위로 춤을 추듯이 날아다녔다. 사원의 여러 겹 문 저 깊숙한 어둠속에서 흰 수염을 한 노인의 번쩍이는 지혜로운 눈빛까지…. 그것은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의 왕이 신의 딸을 배반했던 앙코르 왕국에 신은 세 가지 저주를 주었다. 그 첫 번째 저주는 앞으로 앙코르 왕국은 단 한명의 인간도 살 수 없는 완벽한 멸망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멸망한 도시는 모든 세상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잊혀지게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도시를 다시 찾아내는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저주다. 실제로 1868년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는 이 저주를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그 다음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 오래된 동경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도시 앙코르와트를 답사하는 내내 내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했다.‘지자체 문화 이벤트 수출 1호’라는 요란한 홍보와 함께 40억원의 돈을 쓴 이번 행사에서 천년 고도 경주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고, 세계의 기술들이 모여 해체복원을 했다는 앙코르 왕국의 유적들은 가는 곳마다 복원이 잘못되어 사원 천장이 뻥뻥 뚫려있었고 시멘트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치 일제 시대때 경주의 석굴암이 시멘트로 졸속 복원되어 지금까지 그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듯이 앙코르 왕국의 유적 또한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이 졸속 복원의 에피소드 정점에는 일본의 기술자들이 복원을 끝낸 날 ‘만세정종’을 마시던 순간에 탑이 무너져 내려버린 기가 막힌 일화가 있다. 캄보디아는 16세기 이전에는 동남아시아의 최강국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서 지금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이고, 가장 위대한 조상에 가장 초라한 후손이 되어있다. 유적지마다 어린 꼬마들이 팔찌나 피리 등을 들고 서서 호객 행위를 하며 졸졸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아이들은 버스에 탈 때까지 지치지도 않는다. 새까맣고 큰 눈동자는 마주치면 물건을 사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맑고 선하다. 나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키와 황토 흙을 뽀얗게 뒤집어쓴 맨발을 보면 괜히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캄보디아의 운전기사에게 분노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얼굴.40년도 더 전에 경주의 나와 꼬마들도 반월성의 깨진 기왓장이나 토우들을 들고 일본 관광객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단 돈 10원이 절실했던 그때의 우리들…. 애잔한 마음으로 이 아이들에게서 조잡한 물건이 아닌 사진집을 몇 권 샀다. 현대인의 눈으로 앙코르왕국의 유적을 보면 광인의 흔적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평생을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해서 영토를 넓혔고 잡아온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그 땅에 신의 이름으로 끝없이 사원을 만들었다. 사원에 국고를 몽땅 낭비한 왕국은 힘이 약해졌고, 모든 업보가 증명하듯이 끌려온 노예들의 나라에 의해 왕국은 결국 멸망했다. 돌아오는 날 버스는 어느 금빛 사찰 뒷마당에 있는 작고 높은 유리탑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탑 속에는 해골들이 가득 차 있었다. 1975년, 미국이 사주하고 크메르 루주군이 벌인 ‘3차 킬링필드’의 대학살극은 300여만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했다. 크메르 루주군의 지도자 폴 포트는 적어도 캄보디아의 역사를 40년은 뒷걸음치게 해 놓았고, 국민이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 유리탑의 해골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이 탑은 그 당시 시엠 리아프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모아둔 탑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수많은 노예들의 피로 위대한 앙코르 와트를 남겼고 폴포트는 자국민의 피로 세상에 영원히 남을 해골탑을 남겼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평선 너머로 붉게 타는 노을이 보였다. 핏빛의 하늘만큼 캄보디아는 내게 전쟁과 피와 가난의 모습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유적지에서 본 크고 맑고 선하고 총명해 보였던 그 눈동자들을 더 크게 생각한다.40년 전, 내 어린 꼬마 친구들의 눈동자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듯이 어차피 캄보디아의 미래는 그 아이들의 것이니까. 만화가
  • 그들이 있어 올해도 따뜻했네

    그들이 있어 올해도 따뜻했네

    세밑 찬바람을 막아 주는 건 두꺼운 외투도, 따뜻한 난로도 아니다. 온 세상을 밝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다. 성탄절인 25일 꽁꽁 언 서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한 ‘두 명의 천사’를 만나 봤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일하는 이들처럼 우리도 지금부터 이웃 사랑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전진상 의원에는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하얀 가운을 걸친 한 남자가 나타난다. 벌써 29년째다. 이 남자는 시장의 영세 상인과 서울에서 쫓겨난 철거민, 노숙자 등이 환자의 대부분인 이 병원에서 한 주도 빠짐없이 뇌종양과 뇌출혈, 뇌기형 등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주인공은 가난한 환자들로부터 ‘하얀 옷 입은 천사’로 불리는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고영초(54) 교수다. “대학 시절 가톨릭 의료단체에서 서울 난곡동 달동네 봉사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레 이곳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군 복무 시절을 빼고 계속 봉사활동을 해왔죠.” 신부가 꿈이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고 교수는 대학시절 도시빈민운동을 하던 김혜경 민주노동당 전 대표를 만나면서 국제 가톨릭 의료단체인 국제형제회(AFI)가 세운 이 병원을 알게 됐다. 엑스선과 내시경, 초음파와 뇌검사 등 서민들이 쉽게 받기 힘든 검사로 속병을 살피고 검사가 마땅치 않으면 직접 자신이 일하는 병원으로 데려와 수술 치료까지 해준다. 봉사의 세월이 길다 보니 애틋한 사연도 적지 않다.20여년 전 14살이던 한 아이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란 뇌종양을 안고 시력을 거의 잃은 채 찾아왔다. 수술로 더이상 병 진행은 막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를 잊고 지내던 고 교수에게 최근 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찾아와 안마를 해주겠다고 손을 뻗었다. 바로 20년 전 그 아이가 어엿한 성인이 돼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다. 또 14년 전 역시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고 최근까지 생을 연장해 오다 결국 숨진 미경이도 고 교수의 뇌리에 선명하다. 당시 수술로 급한 생명을 건진 미경이는 며칠 뒤 가방을 하나 내밀었다. 가방에는 종이학 1000마리가 담겨 있었다. 미경이는 뇌종양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꿋꿋하게 종이학 접기를 배워 고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봉사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나서 보세요. 봉사를 마치고 기지개를 켤 때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쾌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길섶에서] 너무 가난해서…/한만교 지방자치부 부장급

    수녀가 된 이모 두 분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40년만에 미사 도중 사제가 잠시나마 퇴장하는 광경을 처음 목격했다. 이틀전 성탄 전야, 가난한 이들도 많이 사는 의정부의 조그만 동네 천주교회. 사제는 강론 중 익명으로 보내온 편지를 읽다가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려고 갱의실로 모습을 감췄다. “너무 적습니다. 제 한달 월급 전부입니다. 성탄 전야에 따뜻한 어묵국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편지엔 돈이 함께 들어 있었지만 사제는 얼마인지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편지를 보낸 이를 모르지만 노동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지금 여러분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박수를 치자 박수의 물결이 이어졌다. 미사 후 어묵 파티가 열렸다. 한 중년 여성이 말했다.“오늘 너무 가난한 이 덕에 큰 축복을 받았네요.” 한만교 지방자치부 부장급 mghann@seoul.co.kr
  • “가난한 이들에 기쁜 소식을”

    성탄절을 맞아 25일 전국 개신교 교회와 천주교 성당에서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와 미사가 일제히 진행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25일 0시와 낮 12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정 추기경은 성탄미사에서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의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면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병들고 허약한 이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신교단체들은 25일 오후 광화문 기독교감리회 본부 앞에서 ‘평택대추리 주민과 함께 하는 성탄절 연합예배’를 진행했다.여의도순복음교회는 7부로 나누어 성탄예배를 진행했다. 이날 설교에서 이영훈 담임목사 서리는 “죄와 절망 중에 있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태어났다.”면서 “분노와 분쟁을 다 버리고 참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kim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어릴 적, 철부지 꼬마는 차갑게 내리는 눈발에도 아랑곳없이 동네 아이들과 연탄재를 발로 차며 놀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몰려와 등을 떠밀었을 때야 귀가했으므로 몸은 꽁꽁 얼어버렸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야단 대신 얼음장처럼 찬 손을 어루만지며 “얘야,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놨다.”고 하셨다. 이뿐이랴. 겨울은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 추억의 창고문을 자주 열게 한다. 문득,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처럼 지금쯤 어디에서 ‘나만큼 늙어가고 있을’ 아련한 첫사랑도 떠오른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찹쌀떡∼, 메밀묵∼’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침을 삼키며 달려나갔던 정겨운 광경이 새삼 그려진다. 또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에 가장 생각난다. 힌트, 두 단어로 표현된다. 하숙집 아랫목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애인처럼 정성으로 돌봐주면 활활 불꽃을 피운다. 다 타고 재가 되면 동네 언덕길에 산산이 으깨어져 등꼬부라진 할머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전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시 한편이 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를 통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속물성과 허위를 준열하게 질타하고 있음이다. 아울러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이며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이면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는 것’이라고 했다. 맞다.‘연탄’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추위란 뼛속까지 에이기에 연탄 한장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음이다. ‘연탄배달의 기수’ 김성수(65)씨.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40년째 연탄배달로 생활하고 있다. 열아홉 구멍 숭숭 뚫린 시커먼 연탄 수십장씩 지게에 올려놓고 달동네 언덕을 숨이 차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왔다. 독거 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결코 지게를 내려놓지 못한 세월이지만, 겨울의 강을 건너야 할 사람에게 스스로 얼음판이 되어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산타’의 길을 걸어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주, 때마침 영하 6도의 추운 날씨였다. 서울 이대 앞 전철역에서 옛날 대흥극장 쪽으로 향했다. 신협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서자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휴대전화로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더 올라오란다. 좁은 언덕길 양쪽에는 구멍가게,00양장점,00상회,00쌀집 등의 간판이 즐비해 1960년대의 흑백필름을 연상케 했다. 언덕 아랫길만 하더라도 외래어간판들로 북적대는 거리가 아닌가.10분여를 더 걸었더니 언덕 꼭대기 한편에 ‘三표연탄’이라는 글자가 전봇대에 메달려 있고 그 옆에 시커먼 판자로 가려진 연탄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였다. 골목길에서 잠바차림에 모자쓴 아저씨가 걸어나왔다. 직감으로 “김 선생님이시죠?”라고 했더니 씩 웃는다.“배달은 언제 나가세요.”라고 물었다. “오후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열댓장만 갖다 주면 된다.”고 했다. 만난 시간이 오전 10시여서 혹 아침 식사를 했느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젓는다.“선생님, 시장하신 것 같은데 순대집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시죠.”라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인터뷰 장소를 인근 순대집으로 옮겼다.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켠 김씨는 “이 동네 누구 집에 숟가락 젓가락 몇개 있는 거 다 알아유.”라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입을 열었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겨울이면 월동준비 1순위로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연탄을 들여놨으니 ‘누구집 강아지 이름’까지 손바닥 보듯 했을 터. 올 겨울 연탄 배달량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했다.“신수동, 창천동, 염리동 일대에 할머니들만 사는 곳에 2200장을 보냈시유.” 대한적십자사의 주문으로 200장씩 모두 열한 집에 보냈단다. 연탄 한 장당 가격이 370원. 또 장당 이문(利文), 즉 배달료가 70원이라고 하니 올 겨울 14만여원이 주머니에 들어온 셈이다. 작년 이맘때 7000장을 배달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하루 200장은 배달혀야 먹고 살아유.”라며 또 한잔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점점 시름이 깊어진다. “이 동네에는 연탄 쓰는 집이 30가구 정도 돼유. 그런데 구의원이나 정치인, 여러 단체 등에서 공장에서 연탄을 다량으로 싸게 구입해 없는 집, 있는 집 할 것 없이 다 돌립니다. 어떤 집에는 부모 자식 돈버는 부잣집인데도 쌀이며 연탄까지 갖다 줘유. 진짜 없는 집은 배가 고픈디 말이여유. 정부에서 하는 일이 왜 그런디유?” 김씨는 안양에 있는 연탄공장에서 타이탄트럭 한 대분(1200장)을 받으면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노고산동과 인근 독거노인들이 사는 집 위주로 배달해오며 생계를 꾸려오고 있다. 연탄배달 외에는 주로 라면박스 같은 것을 주워다가 고물상에 내다 판다. 박스 1㎏에 40원을 받으니 리어카 하나 가득해 봐야 겨우 4000원을 받는 셈. 리어카를 채우려면 일주일은 돌아다녀야 한다.“우리 집 말여유? 혼자 세들어 살지유. 외풍도 세고 비도 줄줄 새는 그런 집이여유.” 결혼 얘기가 나오자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빈 속에 막걸리 몇잔 들이켜서인지 어느새 눈이 젖어 있었다.“고생 고생 해서 번 돈, 아이들 엄마가 어느날 훌쩍 다 갖고 도망가 버렸어유. 그때 아내를 찾으려고 1년 동안 실성하다시피 지낸 것 외에는 연탄배달만 줄곧 해왔시유.” 김씨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많은 식구들이 논농사 12마지기에 의지하기엔 벅찼다. 그래서 대홍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자 함께 상경했다. 그는 스무살 무렵 곧바로 5사단 현역으로 자원입대했다.3년 동안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서울 신촌 인근의 건재상에서 장당 30원을 받는 벽돌배달 일을 했다. 당시 라면 한 봉지에 16원, 막걸리 한 주전자에 30원 하던 시절이었다. 스물다섯 살 되던 1966년에 지금의 노고산동으로 옮겨 한 기와집 추녀 끝에 조그마한 연탄가게를 마련했다. 이어 리어카를 장만하고 지게를 만들어 본격적인 ‘시커먼(?) 인생길’로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동네에서 한달 3만장씩 팔았다. 특히 연대와 이대, 이대부고 등 주변 학교에 배달을 맡아 그럭저럭 돈벌이도 괜찮았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시책으로 가구당 연탄 50장씩 할당하는 카드제가 실시되던 시기였다. 결혼도 이 무렵에 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인 1978년 어느날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던 것.“지나가는 버스만 쳐다봐도 아내가 탄 줄 알고 막 쫓아가고 했시유.” 시련을 딛고 다시 연탄배달에 전념했다. 결국 한때 삼표, 삼천리, 대성, 한일연탄 등 여러 연탄집들이 경쟁적으로 있었지만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들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다들 사라지고 삼표연탄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게 됐다. “얼마 전 구청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자동차가 몇대냐 직원은 몇명이냐고 합디다. 그래서 ‘리어카 한대와 지게 하나.’라구 했지유. 저는 살아오면서 쓸데없는(나쁜) 일은 한번도 안했는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물어봐유.” 주위에서 속이거나 힘들게 해도 싫증 한번 내보지 않았다는 김씨. 또 매서운 산동네의 겨울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40년 동안 한결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고단한 하루를 시작했다. 딸 둘을 키워 시집보내고 지금은 무자식처럼 외롭게 산다. 워낙 가난해서 누가 버린 옷과 양말을 주워다 입고 신어도,‘연탄 한장 갖다 주세요.’라는 말에 항상 위안을 삼으며 살아왔다. “배고픈 거 하늘이 알겠어유, 땅이 알겠어유.” 침묵이 흘렀다. 잔주름 가득한 이마가 할말 많다는 듯 위아래로 미동한다. 그것도 잠시, 김씨는 또한번 씩 하고 웃더니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선다. km@seoul.co.kr
  • [녹색공간] 생태주의의 눈으로 본 모병제와 징병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1991년도 걸프전 때 양인개병제인 징병제를 실시하던 프랑스에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다. 유엔 차원에서 파병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어떤 부대를 보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프랑스 남자는 10개월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만약 전투가 벌어져서 사망하게 되는 경우 너무 억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병역을 10개월간의 부담스럽지 않은 ‘국가에 대한 서비스’라고 설명하던 프랑스로선 곤혹스러운 문제제기였다. 직업군인만으로 새로이 부대를 편성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의무병과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일반 부대를 보낼 것인가를 놓고 찬반이 팽팽했다. 용병이라는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다운 논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론자 모두가 동의를 했다. 결국 일반 부대를 파병하게 되었는데, 그보다 10년 후인 2001년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은 군대를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지금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징병제를 실시하는데, 미국·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같은 일부 국가들이 모병제로 전환을 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사회의 혐오감이 극도로 높아진 1973년 전격적으로 모병제로 전환된다. 그리고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양인개병제이기는 하지만,4개월 정도의 짧은 군사훈련만 하고 상설군대는 유지하지 않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현대 국가체계에서 군대를 유지하지 않는 나라는 없는데, 결국은 누가 군대에 갈 것인가라는 어려운 사회적 결정을 해야 하는 셈이다. 전쟁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생태주의자들에게 전쟁이라는 질문만큼이나 ‘병역의무’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거부한다’는 간단한 대답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생태주의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답변이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라면 징병제가 평화체계에 가까운 것인가, 혹은 모병제가 평화체계에 가까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료만으로 살펴본다면 ‘세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모병제 이후에도 크고 작은 참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므로, 모병제와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만으로 평화체계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모병제 하에서는 베트남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은 없지 않았는가라는 반론이 있기는 했지만, 이라크전 이후로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미국 일각에서는 모병제 때문에 자식들의 전쟁 참가 부담이 없어진 고위층과 부유층이 지나치게 쉽게 경제적 이유만으로 참전을 지지하게 되므로, 전쟁 참가가 많아진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이라크전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줄이기 위해 징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모병제가 확실히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전쟁 부담을 지우게 된 속성이 있기는 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현재 2년 기간의 징병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태주의자들에게는 국방비를 점차 줄여 민간의 후생으로 전환해야, 과도한 경제성장과 물질소비로 저성장 상태에서도 국민경제의 생태적 부하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또 다른 요구에도 답해야 한다. 무조건 국방에 많은 돈을 들여 거의 용병처럼 운용되는 모병제도 찬성하기 어렵다. 생태주의의 논리로만 본다면 스위스의 양인개병제와 평화헌법 체계의 일본 자위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스위스는 자신들의 시스템에 만족하는 반면, 일본은 불만이 많은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병제든 징병제든, 평화에 대한 철학적 논의 및 포괄적 합의와 함께 진행되어야 전쟁 없는 사회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전혀 다른 시스템인 모병제와 징병제가 맞붙었던 이라크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 [25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대한민국 과학,2006년을 결산하다〉(YTN 오후 1시40분) 과학이 만들어낸 기술과 가치관은 이미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학이 그려내는 청사진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지금, 과학은 우리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올 한 해 기쁨과 놀라움으로 다가왔던 과학계 5대 뉴스를 돌아본다.   ●눈꽃(SBS 오후 9시55분) 지섭과 만난 강애는 인터넷을 통해 글을 안쓰겠다고 선언한 것을 봤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미가 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으로 갔다는 소식에 담담하게 대한다. 한편 건희는 정선의 집을 찾아가 요즘 다미의 메신저가 잘 안 들어온다며 안부를 묻다가 자신을 만나러 일본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1시) 서해의 작은 섬 이작도. 깨끗한 물과 고운 모래사장, 그리고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한 모래언덕은 이 마을 사람들의 오랜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20년도 넘게 계속된 모래 채취로 바닷가의 모래가 유실됐다. 해당화며 인근 해안의 물고기도 모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훼손도 심각한 수준이다.   ●있을 때 잘해(MBC 오전 7시50분) 순애는 가게에 찾아온 은수에게 상가에 떠도는 자신의 황당한 소문들을 얘기한다. 한편, 동규 어머니는 동규 문제로 집안이 어수선한 것을 영조의 탓으로 돌린다. 이에 영조도 지지 않고 동규 어머니에게 말대꾸를 한다. 속이 상한 동규 어머니에게 정화는 자신이 영조를 끝장내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55분) ‘2006 파라다이스상’을 받은 대한성공회 김성수 대주교.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특히 장애인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왔다. 김성수 대주교가 소외된 이웃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베풀어온 남다른 인생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면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성탄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말 겨루기(KBS1 오후 7시30분) 올 한 해 동안 달인에 도전했으나 달인 이름을 얻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선 우승자들의 재격돌이 펼쳐진다. 치열한 예심을 통해 40여 명의 우승자들을 제치고 연말 결선에 오른 다섯 명의 도전자들. 인생의 특별한 감동과 환희를 맛본 다섯 명의 도전자들 중 과연 달인에 도전한 사람은 누구일까?
  • [토요일 아침에] 한해를 보내면서/손희송 신부 가톨릭대 교수

    2006년도 채 열흘이 남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얼른 한해 지나서 나이 한살 더 먹는 것이 기쁜 일이겠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나온 한해를 되돌이켜 보면서 이룬 것이 너무 미미한 듯해서 허탈해 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망년회다, 송년회다 하면서 착잡한 심경을 달래보려고 애쓰는가 보다. 하지만 볼 눈만 있으면 지난 시간을 허탈과 후회만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삶에도 얼마든지 감사할 것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따분하게 느끼는 일상에도 기쁨과 보람이 숨어 있지만, 우리에게 그것을 볼 눈이 없을 뿐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웃고, 걷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사도 새로운 눈으로 본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어느 젊은 수도자가 수련기간에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배설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를 관장시키는 일이 임무였는데, 한달 동안 하고나서 이런 말을 했다. “자기 힘으로 화장실 가서 일 보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를 드릴 줄 안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일이?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한탄과 원망만이 나올 것 같은 처지에서도 절망을 넘어서 감사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 거주하던 배영희 시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19살에 뇌막염을 앓아 앞을 못 보는 중증 장애인이 되어 20년 가까이 전신불구자로 지내다가 1999년 12월 세상을 떠났는데,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서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주 적게 받았음에도 행복하다고 한 이 시인 앞에서, 많이 받았는데도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옛말에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로 견주면 남는다.’라고 했다. 하지만 위만 쳐다보면서 늘 모자라다고 투덜대면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높은 이상을 지녔더라도 찡그린 얼굴을 하고 불평과 비판만 늘어놓는다면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없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우리 시대 상황을 비추어 보아도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1960∼70년대 경제개발의 덕분으로 물질적으로 많이 풍요롭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더 황량해져 간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중요한 하나는 바로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제 처지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는 것이고, 만족하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기꺼이 나눌 줄도 안다. 수년 전에 경기도 광명시에 살던 어느 어르신은 평생 자연의 혜택을 받고 살아왔음에 감사하면서, 그 감사를 사회에 보답하고자 20억원 상당의 땅을 시에 희사했다. 올해도 한 익명의 기부자는 30억원이라는 거액을 가난한 이를 위해 선뜻 내놓았다. 이런 사연은 자신만 알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반성을, 그리고 각박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더 많이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면 좋겠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에서 가진 바를 기꺼이 나눔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손희송 신부 가톨릭대 교수
  • ‘체온’을 나누는 요리법

    우리 가족이 미국에 갔다가 잠비아로 돌아왔을 때, 귀환과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방문했다. 9개월 먼저 태어난 친구의 아기가 우리 아기보다 조금밖에 더 무겁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잠비아 친구들은 감자와 정체 모를 플라스틱 물건을 선물했다. 플라스틱은 ‘잠비아 항공’이란 상표가 새겨진 일회용 컵 두개와 접시 두개였다. 잠비아 친구들이 간 뒤 플라스틱 물건을 가슴에 안고 울음을 삼켰다. 왜 우리는 일회용 그릇을 휴지조각처럼 쓰고 버릴까? 반대로 그 일회용품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왜 그것을 구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울까? ‘나눔의 밥상(한얼미디어 펴냄, 김현정 옮김)’은 세계 97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먹을거리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위의 내용은 미국의 린다 나프지거 마이저가 쓴 글이다. 지은이 조에타 핸드릭 슐라박은 식량 및 기아 관련 사무국에서 일했고, 니카과라와 온두라스에 근무했다. 요리책 이상의 요리책 ‘나눔의 밥상’은 음식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차린 식탁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할 목적으로 씌어졌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하지만 그들의 요리법과 이야기는 자유롭고 따뜻하다. 온두라스의 한 부부는 침실이 두개밖에 없는 작은 집에서 자녀 여섯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학생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지은이를 한달반 동안 먹이고 재우며 대접했다. 슐라박은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아낌없이 나누는 온두라스 부부의 대접이 고역이었지만,‘받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음식과 침대를 함께 나누는 것만큼 우리 삶의 이야기와 소망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이 책은 세계 각 지역에서 매일 먹는 일상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특별한 재료 없이 허브, 향신료, 재료의 획기적 배합으로 나오는 맛을 통해 음식의 신성함을 맛보도록 유도한다. 책에 등장하는 요리법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양학 전공자와 조리사들이 여러번 조리해 본 것들이다. 지은이의 실험 요리는 남편과 두 아들이 먹고 ‘아, 맛있어.’부터 ‘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등의 평가를 해줬다. 마음이 따뜻한 수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된 이 책은 음식이 의사소통의 매개 그 이상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1만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책꽂이]

    ●21세기형 변화 경영자 CEO 모세(베른하르트 피셔 아펠트 지음, 엄양선 옮김, 뜨인돌 펴냄) 익숙한 것과의 결별,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한 전진, 고집스러운 실천, 경쟁자와 불확실성에 맞서는 용기…. 노예근성에 젖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40년간 광야를 유랑해야 했던 모세는 이런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거친 시장의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는 CEO들의 상황도 모세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CEO 모세가 제안하는 변화경영 전략의 핵심은 예측하고 소통하며 실천하는 것이다.1만 2000원.●연암 박지원 소설집(박지원 지음, 이가원 등 옮김, 서해문집 펴냄) 연암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기이하다. 똥 푸는 일을 하지만 고귀한 인격을 지닌 엄항수(‘예덕선생전’), 세상을 버리고 신선이 된 김홍기(‘김신선전’), 불우한 삶이지만 유쾌하게 누릴 줄 아는 민옹(‘민옹전’), 기발한 재주로 돈을 모으지만 모두 버리고 가난한 선비로 돌아온 허생(‘허생전’)….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켜켜이 쌓인 비유를 걷어내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주류사회에서 벗어난 이들의 모습 속에는 시대와 불화한 연암 자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짧지만 긴 여운의 소설모음집.8500원.●정의의 여신, 광장으로 나오다(강정혜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19세기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로마법의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로마는 세계를 세번 통일했다. 첫째는 무력으로 국가를 통일했고, 둘째는 정신의 힘으로 교회를 통일했고, 셋째는 중세에 로마법으로 각국의 법을 통일했다.”고 말한 바 있다. 중세 로마법의 영향으로 오늘날 각국의 법에는 로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다. 책은 현대 법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대륙법과 영미법의 형성과 차이점 등을 살핀다. 법은 삶을 이해하는 관계의 그물망이다.9000원.●사랑해, 파리(황성혜 지음, 예담 펴냄) 누군가는 “신이 제일 기분 좋을 때 만든 도시가 파리”라고 했다. 그만큼 사랑과 낭만이 있는 도시라는 얘기다. 그러나 파리를 다녀온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는다. 파리는 지저분하고 시내는 복잡하며 날씨는 우중충하다. 게다가 파리 사람들은 까다롭고 불친절하다고. 심지어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 파리 그 자체의 딴 세상”이라고 말하는 프랑스 사람들도 있다. 파리는 과연 ‘도시 중의 도시’인가, 제멋에 빠진 ‘오만의 도시’인가. 이 책은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1만 1000원.
  • [대선주자 24시] (5) 손학규 前 경기지사

    [대선주자 24시] (5) 손학규 前 경기지사

    #장면1 “할아버지, 시원하시죠. 물이 뜨거우면 뜨겁다고 말씀하세요. 아버지를 이렇게 목욕시켜 드리는 게 소원이었는데….”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 20일 오전 9시30분 안양 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치매와 뇌졸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을 목욕시키기 위해서다. 지난 1996년 복지부 장관 재직 때부터 1년에 한두 차례 해온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그는 노인들을 목욕시킬 때마다 자신이 3세때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떠올린다고 한다. 물론 부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집안에 보관 중인 사진을 통해 아버지의 얼굴을 봤을 뿐이다. 손 지사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7남매를 키웠다. 손 지사는 옆에서 같이 목욕 봉사를 하던 정용대 안양시 만안구 지구당 위원장이 “할아버지, 지금 목욕시키시는 분이 누구신지 아세요.”라고 묻자 손사래를 친다. 노인들한테 좋은 일 한답시고 “내가 누구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불경스러운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냥 봉사활동을 하러 왔으면 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러나 손 지사는 목욕행사를 마친 뒤 이날따라 노인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린다고 고백한다. 그는 “대통령을 꿈꾸는 번듯하게 큰 자식의 손으로 아버지의 몸을 꼭 씻겨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무척 간절했다.”며 혼잣말을 던지면서 목욕탕을 나왔다. #장면2 21일 밤 10시 강남역 근처 한 감자탕집. 손 전 지사가 젊은이 30명과 함께 호프 미팅을 가졌다. 이날 밤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강연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연합 회원들과의 자리였다. 그는 맥주와 소주가 두 순배쯤 돌자 영어를 섞어가며 대학생들과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던 유학시절 얘기도 들려줬다. 손 전 지사는 “이념·지역·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한나라당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한다.”며 “청년, 학생 등 다양한 세력을 영입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장면3 22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 사거리에 위치한 동아시아 미래재단을 찾았다. 말이 연구소지 건물 입구에 ‘활어타운’이라고 큼지막하게 씌어진 간판이 새겨진 창고 같은 건물이다.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동안 건물 주변을 헤매다 건물관리 직원의 도움을 받아 왼쪽으로 돌아서니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3층까지 숨가쁘게 걸어 올라갔다. 용을 쓰고 계단을 올라가서인지 손 지사와의 단독 인터뷰는 다소 도전적으로 시작됐다.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에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불쑥 내밀었다. 이중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3.6%인 모 방송국의 조사 결과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의외로 웃음으로 화답했다. 손 전 지사는 “아직은 일러요. 본선 경쟁력에 대한 판단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후보들의 검증이 본격화되면 ‘손학규의 가치’가 훌쩍 올라갈 겁니다. 정말 본선에 가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되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반드시 올 겁니다.”라고 짐짓 여유까지 보였다.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재차 물었다. 그는 “민주화 투쟁 때는 온몸을 던져 투쟁했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했다.”며 “이후 경기지사를 하면서 ‘CEO도지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자 유치 등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경제 건설상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 지역간 갈등을 아우르며 갈 수 있는 지도자는 자신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손 전 지사는 또한 한나라당이 ‘환골탈태’를 해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며 특유의 개혁론을 이어갔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실정을 하고, 엉망이라고 하더라도 자동으로 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이 한나라당의 지지로 (일시적으로)왔을 뿐이어서 당이 진정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자치구 획일적 복지비분담 개선하라”

    서울 노원구의회가 획일적인 복지비 분담 규정의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노원구의회(의장 이광열) 이순원 의원 외 21인의 의원들은 “정부와 서울시의 획일적인 보조금 분담률과 사회복지정책의 확대로 인해 가난한 자치구의 복지비 부담이 가중되고 자치구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된다.”면서 보조금관련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고 22일 밝혔다. 의원들은 결의문에서 자치구의 재정여건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부담시키는 획일적인 기준보조율 제도를 즉각 시정하라고 요구했다.결의문은 따라서 보조사업을 시행할 때 가난한 자치구에 대해서는 재정사정을 감안해 차등보조금제를 조속히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의원들은 나아가 정부와 서울시는 구비부담을 수반하는 새로운 복지정책 수립시 재정이 어려운 자치구에는 전액을 보조하거나 자치구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고, 부담 가능한 만큼만 부담해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라고 요구했다.노원구의 경우 기초생활 보장 대상자가 1만 690가구로 다른 구청의 2.5∼7.2배에 달한다. 이들을 포함, 복지분야에 쓰이는 사회 보장 비용은 올해에만 998억원에 달해 사회기반시설 투자 등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감동도 배우도 그대로 스크린으로 간 뮤지컬

    감동도 배우도 그대로 스크린으로 간 뮤지컬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의 감동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두편이 새해 나란히 관객을 찾는다. ‘렌트’와 ‘프로듀서스’. 두 작품 모두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현장감과 생동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단점.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이 영화에도 그대로 캐스팅되어 오리지널 무대의 감동을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새달 11일 개봉하는 ‘렌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무대로 가난한 예술가·동성애자·에이즈 환자 등 8명의 소외된 영혼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1996년 초연된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각색한 작품으로 전세계 25개국에서 공연된 히트작이다. 국내 ‘렌트’에 조승우가 있다면 영화에는 애덤 파스칼이 있다. 영화에서도 로저로 분한 그는 출연 작품마다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몰고 다니는 브로드웨이의 ‘흥행 보증수표’다. 그와 더불어 앤서니 랩, 이디나 맨젤 등도 함께 호흡을 맞춰 열정의 무대를 다시 한번 재현했다. 200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프로듀서스’는 토니상 12개 부문을 휩쓸고 새로운 흥행기록을 세워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이다. 지난해 우리 배우들에 의해 국내에서도 공연돼 큰 사랑을 받았다.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만드는 작품마다 줄줄이 실패하는 뮤지컬 프로듀서 맥스와 소심한 회계사 레오가 공연이 망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최악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 실력 없는 작가, 연출가,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춤·노래가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무대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수전 스트로맨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뮤지컬을 성공으로 이끈 ‘황금 콤비’ 매튜 브로데릭, 나단 레인이 맥스와 레오를 맡아 열연을 펼친다. 여기에 ‘킬빌’의 헤로인 우마 서먼,‘아내는 요술쟁이’로 낯익은 코믹배우 윌 페럴이 가세했다. 새달 26일 개봉.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씨줄날줄] 블루 크리스마스/육철수 논설위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러시아 시인 푸시킨이 읊은, 저 유명한 시(詩)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첫 구절이다. 슬픔에 빠졌거나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시대와 공간을 넘어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곤 하는 시구다. 한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올 한해 부동산값 폭등으로 떼부자가 된 이도 많을 테고, 로또복권 당첨으로 돈벼락을 맞은 이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쪽에선 사랑하는 이를 영영 떠나보낸 이도 있고, 모진 병마와 싸우는 이도 있을 것이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도 많을 터이다. 하지만 즐겁든 슬프든, 이제 한해를 조용히 마무리할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어려운 일이 많았던 이는 푸시킨의 시를 나지막이 읊조려 보라. 부디 희망의 끈일랑 꽉 잡고서…. 며칠 있으면 성탄절이다. 길거리 구세군 냄비에 작은 정성이 하나둘 모이고, 사랑의 온도탑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는 것을 보면 따뜻한 인정이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연말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온 누리에 사랑을 베풀고 낮은 곳으로 임했듯, 지난 1년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도 이쯤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 봄이 어떨까. 미국 교회에서는 견디기 힘든 일을 당하거나, 슬픈 사람들을 위한 ‘블루 크리스마스’(슬픈 크리스마스란 뜻) 예배가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빈 의자 신드롬’(Empty chair syndrome)을 앓는 사람을 위해 고안한 것인데, 예배 때 슬픔을 서로 나눔으로써 상당히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예배당엔 침울한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고, 서로 껴안고 우는 순서도 있어 우울한 마음은 금방 씻긴단다. 이쯤되면 ‘블루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메리 크리스마스’다. 가까운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기쁨을 주는 사람 역시 그들이다. 서로 미워 죽겠다고 해도, 그러면서 정이 쌓이는 게 인간만사 아닌가. 올 한해, 나로 인해 슬프거나 속상했던 이웃은 없는지, 주위를 한번 찬찬히 둘러보자.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따뜻한 미셸 위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17·나이키골프)가 운동을 하다 다쳐 사지마비 위기에 몰린 동갑내기 미식축구 선수에게 거액의 치료비를 쾌척했다. 18일 미국 하와이 지역 언론은 미셸 위가 경기 도중 척추를 다친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고교 미식축구 선수 트래비스 헌에게 2만 5000달러를 후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헌이 재활센터에서 치료 중이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뒤 ‘용기를 주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미셸 위는 “헌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니까 헌이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쿼드시티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셸 위는 지난해 5월에는 신촌세브란스 병원 등에 가난한 어린이들의 수술 비용으로 써달라며 30만달러를 내놓았으며 10월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 기금으로 50만달러를 기부했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나눔의 삶 실천하자”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은 성탄절을 맞아 18일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내용의 성탄메시지를 발표했다. 정 추기경은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과 모든 가정 그리고 온 세상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한다.”면서 “예수께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사셨듯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생명, 사랑, 기쁨, 감사, 희망처럼 내적인 가치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 배려하는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24일 밤 12시와 25일 낮 12시에 명동성당 대성당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아스라한 전설의 시대, 호주의 남쪽 어느 바닷가에서 인간과 비슷한 동물이 만들어져 뭍으로 기어올라왔다. 이들은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다시 물가로 내려가 자맥질을 했다. 또한 새로운 먹을 것을 잡거나 다른 곳으로 건너기 위해 스스로 헤엄치는 요량을 터득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두뇌가 발달됐고 육신이 점차 단련되면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설이다. 이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세월이 흐른 근대에 이르러, 영국은 이같은 인간의 원초적 헤엄을 스포츠화시켰고 올림픽의 부흥과 함께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1970년 방콕·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조오련 선수가 연이어 2관왕을 차지하면서 국민적인 ‘수영 붐’을 일으켰다.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최윤희 선수가 3관왕을 차지하면서 또 한번 불을 댕겼다. 그로부터 24년 후인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박태환. 그는 과거 조오련 선수의 주종목 자유형 200m,400m는 물론 1500m에서 당당히 3관왕을 획득,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그의 쾌거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영웅 이언 소프와 비교된다. 인간 어뢰로 불리며 호주 전역을 들끓게 했던 이언 소프의 신드롬처럼 박태환 역시 차가운 겨울철에 뜨거운 ‘수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요즘 각 수영장마다 신기(神技)의 발차기와 잘 생긴 박 선수의 외모는 폭발적인 부러움의 대상이다. 영원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5)씨. 일곱살 때부터 헤엄을 쳤으니 아마 조씨처럼 물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도 드물 터. 기네스북 도전과 한국인의 기개를 떨치기 위해 한강 600리 수영, 대한해협과 울릉도∼독도, 도버해협 횡단 성공 등 수많은 바닷길을 열었다. 때로는 해파리떼들과 만나 사투를 벌였고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휘어졌지만 그래도 물살을 가르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추운 날에도 옷을 벗어야 했고, 다들 살 빼려고 하는 대신 오히려 찌워야 하는 정반대의 역정이었다. 이처럼 한국 수영계의 대부로 끝없는 도전을 해온 그는 요즘 남다른 감회에 빠져 있다. 다름 아닌 도하 아시안게임의 3관왕인 박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하기야 30여년 만에 자신의 주종목에서 금메달을 보란 듯이 따줬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울까. 박 선수가 세번째 금메달을 따던 날 조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수영의 새로운 희망이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귀향해 집을 짓느라 바쁘다.”고 해 지난 13일 조씨의 고향인 해남에서 만났다. 그가 귀향해 사는 곳은 해남군 계곡면 여시골마을. 해남읍내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에 위치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산골이다. 사방 2㎞ 안에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외진 곳이지만 맑은 물이 곳곳에 솟아나오는 청정지역. 때마침 비가 온 뒤여서 그의 집까지 가는 비포장도로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조씨는 흙 묻은 작업복 차림에다 농부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보시다시피 아직 집이 완성이 안돼 컨테이너 막사에 거주하고 있다. 먼길 오느라 점심도 못했을 텐데….”라고 하면서 주방으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데리고 가 직접 삶은 국수 한 그릇을 권한다.6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오래 살아온 솜씨여서 그런지 싱싱한 굴과 큼직큼직한 멸치가 투박하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어 맛이 그만이다.“부엌에서 인부들에게 밥이나 지어주고 있다.”며 활짝 웃는다. 여전히 특유의 호방한 성격 그대로였다. 언제 귀향했느냐는 질문에 “지난 8월31일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다.10년 전부터 귀향하려고 땅을 사놨다.”는 즉답이 나온다. 옛날 절터 주변의 땅 2만여평을 매입했단다.“해남을 떠난 지 꼭 38년 만의 귀향이다. 서울나들이를 비로소 이제야 마치고 내려왔다.”면서 “조용한 곳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좀 보고 자서전도 준비할 생각”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전환점에 선 수영의 마라토너답게 거침없이 나오는 바리톤 음성에는 간단치 않은 삶의 철학이 배어 있었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황토집은 내년 3월에 완공된다. 집 앞마당에는 30m 레인 하나 정도 나올 만한 작은 수영장과 낚시터까지 갖춰진다고 했다. 조오련 수영캠프가 아닌 남은 인생을 스스로 조용히 돌아볼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했다. 박 선수의 경기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이제 아시안게임을 제패했으니까 원을 더 크게 그려 베이징올림픽을 봐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독려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한 “이제 17세인 만큼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취월장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면서 “박태환이라는 총알이 올림픽 과녁을 정확히 맞힐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도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려했던 현역시절이 문득 생각났는지 “나는 수영 선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전국대회에서 3등 정도만 하면 공짜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68년 12월 완행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했다고 회고했다. 시골 형편이 대부분 그랬듯 가난한 가정의 5남5녀 중 막내로 자랐다. 수영은 일곱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혔다. 해남고 1학년 때 심부름하러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하계체전 예선전을 지켜봤는데 1등 기록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어 양정고 1학년에 입학했다. 청계천 부근 간판집과 창고지기로 일하면서 틈틈이 종로 2가의 YMCA 실내수영장을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 그의 천부적 수영실력은 이듬해 6월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수영복조차 없이 ‘사각팬티’를 입은 채 자유형 400m와 1500m에 참가, 내로라하는 장거리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때 마침 귀빈석에서 관람 중이던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그의 사정을 듣고 태릉선수촌에 입촌시켜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경기할 때마다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고3 때인 1970년 드디어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2관왕에 올랐다.4년 뒤인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2관왕에 올랐고 은퇴할 때까지 통산 50개의 한국신기록을 세운다. 은퇴 후에는 거친 바다에 도전한다.1980년 13시간여 만에 대한해협을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도버해협(1982년), 대한해협 재횡단(2000년) 성공,2003년 8월15일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여의도까지 한강 600리를 수영으로 완주했다. 뿐만 아니라 광복 60주년을 앞둔 지난해 8월 성웅(26·회사원), 성모(22·고려대4) 두 아들과 울릉도∼독도간 93㎞를 18시간 만에 횡단하는 데 성공,‘독도가 헤엄쳐 건널 수 있는 우리 땅’임을 당당히 입증했다. 1986년에 결혼한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수영교실을 열어 집안생계를 꾸려나갔다. 두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던 조씨 부인은 2001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살다 보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아들 둘도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만큼 다 컸고 결국 이래저래 귀향결심을 하게 됐죠.” 그는 장시간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무아지경을 경험한다. 성철 스님이 무념무상에서 9층탑을 쌓는다고 하면 자신은 3층높이는 될 것이라는 그는 “바다수영은 조류의 흐름과 파도, 수온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억지로 떠오르려고 하면 가라앉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집이 완공되면 주변 땅에서 녹차밭을 가꾸겠다는 그는 내년에 또한번 새로운 도전을 할 예정이다. 독도 둘레가 6㎞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내년 7월 독도 둘레를 수영으로 33바퀴(3·1독립선언문의 33인 상징) 돌 예정이다. 비록 귀향했어도 굽힘없는 도전정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해남 출생 ▲71년 양정고등학교 졸업 ▲76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1년 고려대 사학과 편입졸업 ▲89년 조오련 수영교실 설립 ▲98년 대한수영연맹 이사 ●경기기록 ▲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자유형 400m,1500m 1위 ▲74년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 400m,1500m 1위,200m 2위 ▲78년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 접영 200m 3위 ▲78년 이후 수영부문 한국신기록 50회 수립 ▲80년 대한해협 횡단 13시간 16분 ▲82년 도버해협 횡단 9시간35분 ▲03년 한강 600리 종주 ▲05년 을릉도∼독도 횡단 18시간 ●상훈 자랑스런 양정인(03년)외 국민훈장목련장, 체육훈장 거성장, 대한민국체육장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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